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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비 유림 사살순간/장병 4인 증언

    ◎새벽 낙엽소리… 10m 앞 M16 든 공비 발견/아군매복 눈치채고 도주… 생포포기 사격 28일 무장공비 유림(39·잠수함 부함장)을 사살한 육군 일출부대 소속 우성제 대위(28)와 휘하 병사 3명은 10일이상 계속된 수색과 매복의 피로를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이겨내 수훈을 세울 수 있었다. 28일 상오 6시35분쯤.우대위와 노극래 병장(25)·박정훈 병장(23)·정철환 상병(23) 등 4명은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해발 250m 야산 정상부근에 참호를 파고 매복작전을 펴고 있었다.전날밤부터 한숨도 자지 못해 눈이 절로 감겼지만 언제 공비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갑자기 「버석버석」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렸다.모두 긴장했다.이어 얼룩무뉘 위장복을 입고 M16소총을 든 남자가 총구를 밑으로 한 채 조심스럽게 산길을 헤쳐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10여m 전방. 모두 숨이 멎는 듯했다.우대위는 『일단 생포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신호로 기다리라고 지시했다.6m 앞까지 다가온 공비는 그러나 아군의 기척을 느끼고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탕 탕」 두발의 총성이 태백산맥의 차가운 새벽공기를 갈랐다.노병장이 쏜 두 발의 총알에 등과 옆구리를 맞은 공비 유림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우대위 등이 다가갔을 때 유림은 이미 숨져 있었다.군 수색대로서는 지난 22일 함장 정용구 등을 사살한지 7일만에 거둔 전과였다. 노병장은 『철모도 쓰지 않은 채 아군으로 위장한 남자가 혼자 산자락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무장공비라는 직감이 들었다』면서 『생포하려 했으나 갑자기 도망가 조준사격을 했다』고 말했다.
  • 동양화가 박대성(이세기의 인물탐구:104)

    ◎청한­적요가 배인 시인같은 화가/한때 전국산천 스케치… 실경산수” 화풍지켜/인위·조작이 없는 소쇄한 화격에 선모심이… 희부연 연묵과 엷은 보라빛이 먼산을 이루는 가운데 가늘고 섬세한 수목사이로 청명한 물줄기가 운문율처럼 퍼져 있다. 사방이 온통 겨울을 재촉하는 계절의 끝에서 수면에 비친 스산함은 청한과 적요의 시를 흩뿌린다. 인적이 끊긴 촌가며 물가에 매어둔 빈 뱃전에도 긴휴면이 스며들어 보는 이의 가슴에 뭉클한 시심을 던진다. 소산 박대성의 수묵담채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소산은 시인같은 화가다. 실제로 화면에 시를 직접 써넣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카비르의 구절들을 어슷어슷 배경속에 수놓기도 한다. 「저 황홀한 피리소리를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누구의 피리소리인지는, 여기 등불하나가 타고 있다. 불꽃의 심지도 기름도 없이 연꽃 한송이가 꽃피어난다」 그의 작품은 간경·산뜻한 선묘가 특징이다. 묵광의 묘취를 한껏 펼쳐 마치 폭우가 쏟아지고 난뒤의 산자수명을 깊은 사유로 그려내고 있다.그중에서도 지난 94년 1천2백호 대작으로 일컬어지는 「성산포 일출봉」은 갈대가 휘날리는 일대장관을 「풍죽처럼 소화한」 호방한 화면이 일품이다. 이 한폭의 대작을 위해 그는 겨울태풍이 그칠줄 모르는 성산포에 머물면서 배를 타고 몇차례나 섬주변을 돌기도하고 봉우리의 성격을 소상하게 파악한후 「의젓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기상을 포착해냈다」고 말한다. ○추경·초동 즐겨 그려 1천호에 손댄 것은 경주 계림의 고목을 그린 「고목의 정원」이 처음이다. 수백년 풍상속에 의연히 서있는 계림의 노목은 그의 넘치는 화심을 움직여 「미의 내용을 구명하는 작업」에 철저하게 몰두할수 있게했다. 진한 먹을 튕겨서 쓰는 갈필대신 산마호라는 장봉을 써서 큰 그림을 그릴때의 일필휘지의 붓길과 은은한 번지기(휘염)로 변화가 풍부한 산의 형세를 제압한 것이다. 드넓은 공간에 그의 소재들을 들어앉히는 동안 『집사람이 먹을 갈아주는데 정말로 한도 끝도 없이 갈았다』고 웃는다. 부인 정미연씨는 생명이 집결된 누드화로 주목받는 서양화가다. 지방에서 활동하던 소산이 중앙화단에 부상된 것은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다음해 대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그때 심사위원의 한사람이던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새로운 작가, 역량있는 신인을 발견한다」는 대전의 취지대로 「그의 그림은 우선 한눈에 새로웠다」고 못밖는다. 소산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과 「커다란 수확」으로 화단에 받아들여졌다. 그는 주로 늦가을 풍경이나 초동을 즐겨 그린다. 평론가 유홍준은 그의 추경을 보고 「고담한 필묵과 스산한 운치의 적막감이 오늘날 박대성 작품의 미점」임을 상찬해 마지않는다. 작가자신도 아일과 풍요보다 쓸쓸함에 깃든 자연의 천리속에 고격이 숨어있음을 터득하고 있다. 그의 초기그림들은 까슬까슬한 붓자국을 들어낸 석묵으로 소슬한 한국의 산천이 안고 있는 정취를 섬세하게 표출해낸다. 그러나 88년 호암미술관이 초대한 대작전에 이은 최근의 작품들은 벽오동과 청오동, 청람이 넘실대는 바다와 수목에 산호색과 비취색 호박색을 장식하여 화사미를 보인다. 전경은 우람창울하고 원경은 생략과 절제로 짙고 엷고 가늘고 굵은 선과 색채가 상조되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나 그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적 시각은 빠른 붓의 속도와 날카로운 선획으로 스케일이 장대한 대작을 성취하였고 이는 「이제까지의 실경산수의 일반적 유형에서는 맛볼수 없는 다른 화격을 이끌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에대해 오광수는 하나의 형식이나 틀에 안주해버리는 우리 미술풍토에서 「부단하게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그의 자세는 「조선후기의 진경산수와 청전 소정을 중심으로하는 근대산수에 이은 「제3세대」로 정의를 내린다. 그는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화단의 시선을 집중시켰을뿐만 아니라 독학으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가 그림을 공부한 것은 청대초기의 화집인 「개자원화전」이 바탕을 이룬다. 경북 청도 한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3살때 부모를 잃고 왼손마저 다치자 고향의 빼어난 경관을 사생하는 것으로 그는 외로운 시절을 보낸것 같다.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이고 형과 누나들의 도움으로 17세되던해 부산으로 내려가 서정묵화숙에서 사사, 부산동아대가 주최한 국제미전 입상과 21세때 국전 첫입선을 비롯해 연속 8회 입선이 그의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국전서 연속 8회 입선 그러나 연이은 국전입선후에는 당연히 특선이 따르기 마련인데도 학맥 인맥이 없는 그는 번번이 도외시되었고 여기에 한맺힌 그는 「뭔가 최고가 돼야 한다, 실력으로 이 모든 것을 설욕하겠다」는 의지로 전국을 떠돌면서 혼자서 산천을 스케치해 나갔다. 『그림이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놀라서 벌떡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는 고백에는 여전히 저항이 들어가 있다. 그가 화가로서 행운을 잡은 것은 대구매일신문 화랑개관기념 초대전이다. 대구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던 주경과 서동균 등 어느 한쪽을 선택할수 없었던 신문사측이 그에게 기회를 주었고 이 전시를 계기로 대만과 일본초대전에서 그의 그림은 「소산화」로 크게 호평되었다. 당시 대만의 원로화가 양우명은 그의 그림을 「청전 이후」로 비유하면서 대만에 머물 것을 극구 권유했으나그는 중앙화단이 있는 서울에 정착했다. 그리고 뒤늦은 나이인 35세때 효성여대 회화과 출신인 정미연씨와 결혼, 부인의 그림자같은 내조가 「시대감각에 걸맞는 현대한국화」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자녀는 딸만 둘. 성격은 내성적인 편으로 일체의 그룹활동이나 단체전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가 평창동에 화실을 마련한 것은 10년간의 팔당시대를 거친 90년초부터다. 북악터널 못미처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소산의 화실은 선비의 화숙처럼 은일하게 숨겨져 그의 정원과 화실은 하나같이 명품이다. 안방에서 내다보면 북악산 줄기가 사방으로 둘러치고 추분이 머잖은데도 연과 소나무와 죽의 푸르름은 작가의 초일한 화경인듯 시들줄을 모른다. 소산은 독특한 실험정신과 물결치는 소재의 전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는 화풍」을 지켜 기를 앞세운 작업보다 광활한 대자연을 테마로한 서정적 세계로 자기변신을 이루고 있다. 창일한 개성과 영롱한 구슬빛이 감도는 소산의 그림앞에 서면 인위와 조작이 없는 소쇄한 느낌, 거르고거른 영매의 화격에 선모심을 금치못하게 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에 한구절의 시를 품게한다. □연보 ▲1945년 경북 청도출생 ▲66년 국전 18회부터 25회까지 8회 연속입선 ▲68년 부산동아대 국제미전입선 ▲70∼80년 국내서 8차례 개인전개최 ▲74∼75년 태만 공작화랑초대개인전 ▲75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개관기념초대 개인전 ▲76년 일본 후쿠오카(복강) 선화랑개인전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 「추학(추학)」으로 장려상수상 ▲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 「상림(상림)」으로 대상수상 ▲80년 「계간미술」이 선정한 「새시대 9인전」,한국 화랑협회초대 「12인전」출품 ▲81년 국립현대미술관주관 「한국미술,81년」「한국현대수묵화전」 신세계미술관선정 「청년작가 10인전」초대출품 ▲82년 경기도 남양주 팔당정착 ▲84년 샘터화랑초대 「박대성·황창배 2인전」 ▲85년 국립현대미술관초대 「현대미술초대전」출품,가나화랑전속 ▲86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초대 「박대성·강대철 2인전」,도쿄 후지갤러리개인전 ▲88년 서독 쾰른시 파리나갤러리 초대전,중앙일보주관 「박대성 작품전」(호암미술관)에 대작 1백여점전시(3월9일부터 30일간) ▲89년 윤범모와 중국문화기행 ▲90년 백두산 만주일대여행,가나화랑초대 제15회 개인전 ▲94년 실크로드 기행전(동아갤러리),개인전(가나화랑)
  • 일 각료 6명 신사 참배/자민·신진당 등 의원 82명도

    ◎국무대신 등 공식직함 밝혀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각료 6명이 패전기념일인 15일 A급전범이 합사되고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구라타 히로유키(창전관지) 자치상겸 국가공안위원장을 시작으로 나카가와 히데나오(중천수직) 과기청 장관,오하라 이치조(대원일삼) 농수산상,쓰카하라 슈ㄴ페이(총원준평) 통산상,우스이 히데오(구정일출남) 방위청 장관 등이 차례로 야스쿠니신사에 들러 「국무대신」 등의 직함으로 참배를 했다. 이들은 모두 자민당 소속 각료다. 이와 함께 자민당의 「모두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오부치 게이조 의원 등 자민당 소속 중참의원 65명,신진당의 「야스쿠니신사참배의원연맹」 소속의원 등 16명,신당사키가케의 도카이 기사부로 의원 등도 이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한편 이케다 유키히코(지전행언) 외상과 최근 한반도 유사시 발언으로 크게 파문을 일으킨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 관방장관은 이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다.
  • 일 각료들도 신사참배/통산상 등 5명 15일에

    【도쿄=강석진 특파원】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일본총리의 야스쿠니(정국)신사 참배에 이어 현직각료 5명이 오는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요미우리(독매)신문이 31일 보도했다. 기자회견등을 통해 참배의사를 밝힌 각료는 쓰카하라 순페이(총원준평) 통산상,우스이 히데오(구정일출남) 방위청장관,나카가와 히데나오(중천수직) 과학기술청장관,가메이 요시유키(귀정선지) 운수상등 5명으로 전원 자민당 소속이다. 이들중 나카가와 과학기술청장관을 제외한 4명은 개인 또는 비공인 입장에서 참배하겠다고 밝혔다.
  • 공예대전 대상 양승옥·서예대전 대상 송신일씨

    ◎제11회 대한민국 공예·제8회 서예대전 수상자 발표 한국미술협회(이사장 이두식)가 주최하는 제11회 대한민국공예대전에서 영예의 대상은 전통공예에 현대기법을 혼합해 우주의 삼라만상을 단순화시킨 금속작품 「조화」를 출품한 양승옥씨(45·서울 마포구 아현동 275의10)에게 돌아갔다.또 제8회 대한민국서예대전의 대상은 자사의 중용을 북위 해서체로 쓴 「중용제1장」(중용제일장)을 낸 송신일씨(41·서울 강동구 성내2동 135의6)가 차지했다.공예대전에서 우수상은 금속분야의 이윤영(29·아이들),도자의 김정옥(39·우리의 기억),목칠의 신랑호(40·일출,일몰),염직의 엄희섭씨(39·상념속에서1)가 차지했고 서예대전에서는 한글분야의 홍정선(61·관동별곡),한문의 김일숙(50·인사),사군자의 최경자(40·묵죽),전각의 이중기씨(50·박학심문 시원유명)가 각각 우수상을 차지했다. 이번 공예대전에는 총4백11점이 출품돼 이가운데 특선 9점을 포함,14점의 입상작을 냈고 1백13점이 입선했다.또 모두 1천7백29점이 출품된 서예대전에서는 특선 34점등 39점의 입상작 외에 2백62점의 입선작을 냈다.입상작은 15일부터 3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며 시상식은 30일 하오4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있다.〈김성호 기자〉 ◎공예대전/대상영예 양승옥씨/현대적 감각 조형물에 전통기법 조화 『지난 10년간 금속공예에 매달려 살아왔는데 이처럼 큰 상으로 결실을 맺게 돼 무엇보다 기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비롯해 이 영광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제11회 대한민국공예대전에서 현대적인 감각의 조형물에 전통공예기법을 가미해 우주의 조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 「조화」로 대상을 안은 양승옥씨. 오랜 직장생활 끝에 금속공예가 좋아 지난 85년 35세의 나이로 홍익대 공예과에 진학,미술대를 수석졸업했고 그동안 대한산업미술가협회 공모전 대상과 동아공예대전 대상을 받았다. 수상작 「조화」는 철·두랄루민·금·은·동등 혼합재료를 쓴 작품.구 형태의 표면에 꽃모양을 금과 은으로 입사해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 모습을 서로 결합시킨 것으로 전통고유기법에 현대감각을 잘 조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금속공예는 다른 공예에 비해 다양한 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 무한성을 갖고 있습니다.차가운 무생물에 감정을 불어넣어 인간의 온기를 느껴가는 과정이 바로 금속공예의 묘미입니다.우리 선조가 우리에게 다양한 공예품을 남겨줬듯이 이제 우리도 후손에게 무슨 공예품을 전해줘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김성호 기자〉 ◎서예대전/대상영예 송신일씨/강건한 북의 해서체 독특한 흐름 강조 『뜻밖의 큰 상을 받게 돼 어깨가 너무 무겁습니다.더욱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서예에 전념하겠습니다』 제8회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중용의 내용을 독특한 북위 해서체,즉 육조체로 쓴 한문분야의 작품 「중용제1장」으로 영예의 대상을 받은 송신일씨. 초등학교때 붓글씨를 배운 뒤 지난 80년부터 여초 김응현선생에게 본격적으로 서예를 사사,이 서예대전에서 3회 입선끝에 마침내 서예계 최고의 상을 차지했다. 수상작 「중용제1장」은 송씨가 심신을 가다듬어 바른 인생을 살라는 유교사상이 담긴 중용의 한 부분을 독창적인 북위 해서체로 써낸 한문.일반적으로 북위 해서체가 칼로 자른 듯이 모가 지고 강건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송씨는 이 북위 해서체를 쓰면서도 공간의 미를 살리고 같은 글자도 모두 다르게 하는등 글체의 흐름을 강조한 게 특징이다.〈김성호 기자〉
  • 현금지급기 일출 “뒷사람 조심을”

    ◎카드조회 훔쳐 보다 자리뜨면 작동/5초내 비밀번호 재입력… 현금인출/서울 지하철서 넉달간 3백23명 검거 「현금지급기 주위에는 범죄꾼이 도사리고 있다」 남의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내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빼내는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신용카드를 훔치거나 주워 사용하는 것은 구식이다.앞사람이 작동 완료를 확인하지 않고 자리를 떴을 때 곧바로 비밀번호만 재입력하면 카드 없이도 작동하는 현금지급기의 맹점을 이용한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25일 유웅철씨(23·은평구 진관내동)를 특수절도 혐의로 긴급구속하고 박장우씨(21·은평구 갈현동)를 수배했다. 유씨 등은 지난달말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533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 설치된 현금지급기에서 김모씨(51·여)가 신용카드를 이용,잔액조회를 할 때 뒤에서 비밀번호를 훔쳐본 뒤 화면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김씨가 자리를 뜨자 곧바로 비밀번호를 눌러 현금 20만원을 빼냈다. 유씨는 경찰에서 『앞사람이 작동을 완전히 끝내고 명세서를 가져가지 않은 상태에서 5초 안에 비밀번호를 누르면 현금지급기가 작동한다』고 말했다.같은 수법으로 11차례에 걸쳐 2백40만원을 빼냈다. 이같은 피해를 막는 방법은 비밀번호를 철저히 관리하는 것.주민등록번호나 전화번호를 비밀번호로 사용하지 말고,신용카드를 잃어버렸을 때 즉시 신고하는 것은 기본이다. 경찰관이라며 비밀번호를 묻는 전화가 걸려와도 신분을 확인하기 전까지 대답해서는 안된다.현금지급기 조작방법을 몰라 당황할 때 도와준다는 말에도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서울경찰청 지하철수사대는 지난 1월부터 4월말까지 지하철역에 설치된 현금지급기를 이용한 신용카드 사범 3백23명을 붙잡아 56명을 구속했다.지하철수사대가 붙잡은 형사범의 55.7%에 해당한다.
  • “4자회담 성사 공동노력”/북에 조속참여 촉구/한일 국방합의

    ◎일 “집단자위권­해외파병 배제” 【도쿄=황성기 특파원】 이양호 국방장관과 우스이 히데오(구정일출남) 일본 방위청장관은 13일 하오 도쿄 방위청사에서 회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4자회담의 성사를 위해 양국이 공동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회담에서 양국 국방장관은 4자회담이 동북아 및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시의적절한 제안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북한의 긍정적 검토 및 건설적 참여를 촉구했다. 양국 장관은 모든 북·일간 접촉은 남북대화의 진전과 4자회담의 진행추이에 맞춰 추진한다는데도 뜻을 같이 했다. 양측은 이어 한·일간 군사교류는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하고 올해 10월로 예정된 국방정책 실무회의에서 양국 군간 교류협력 증진을 위한 세부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우스이,내년 방한 희망 우스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내년쯤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이장관은 방한을 환영한다고 답변했다. 【도쿄 교도 연합】 일본은 집단자위권을 발동하거나 해외 파병을 않겠다는 입장을 13일한국측에 거듭 확약했다고 일본 방위청 관리들이 밝혔다. 우스이 히데오 방위청 장관은 이양호 한국 국방장관과 만나 일본의 대미방위협력은 국제분쟁 해결수단으로서의 전쟁을 배격하고 있는 헌법의 틀 내에 머물 것이라고 밝혔다고 이들 관리는 전했다.
  • 미·일 「신안보체제」 출범/양국 국방회담

    ◎유사시 협력·미 기지축소 합의 【도쿄=강석진 특파원】 미국과 일본은 14,15일 양국 안보협의위원회를 열고 한반도 등 극동지역의 유사사태를 상정한 미·일협력방안의 공동 연구와 미·일방위협력지침의 개정,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축소 및 반환 등에 공식 합의했다. 이로써 양국은 오는 17일 클린턴 미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총리의 도쿄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동안 초점이 돼 온 미·일 안보현안의 대부분을 타결함으로써 새로운 안보체제수립에 커다란 진전을 이룩하게 됐다.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과 우스이 히데오(구정일출남) 일 방위청장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양국 안보협의위원회는 오키나와 미군 해병대 비행장인 후템마기지를 앞으로 5∼7년에 걸쳐 일본에 반환하는 등 11개 기지 4천7백㏊를 전부 또는 일부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전체의 20%에 해당하는 면적으로 지난 72년 오키나와의 일본복귀이후 반환된 기지면적 4천3백㏊를 상회하는 최대의 기지반환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양국은 안보협의위원회등을 통해 면적이 축소되는 일부 기지의 경우 고층화,자위대 시설의 공동이용 또는 긴급이용 확대,본토이전등을 검토해 나가게 된다. 이에 앞서 미·일 양국은 14일 안보협의위원회회의와,페리 미 국방장관과 하시모토 총리 및 우스이 방위청장관과의 개별회담등 연쇄 회담을 통해 극동유사사태 발생시의 미·일 협력방안을 공동 연구하고 지난 78년 책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도 18년만에 개정키로 합의했다.
  • 미 제창「아태 국방장관회의」/일,창설 지지 방침/일 산케이 보도

    【도쿄 연합】 일본 정부는 미국이 제창한 미·중·일 3국 중심의 아시아·태평양 국방장관회의 창설을 지지할 방침이라고 산케이(산경)신문이 14일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우스이 히데오(구정일출남) 방위청장관은 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15일 일본을 방문하는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과의 회담에서 미국의 방침을 확인한 뒤 일본의 지지의사를 전달할 예정이다.
  • 페리,14∼15일 방일

    【도쿄 연합】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이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14일부터 15일까지 일본을 방문한다고 방위청이 9일 발표했다. 페리 장관은 14일밤과 15일 두차례에 걸쳐 우스이 히데오(구정일출남) 방위청장관과 회담을 갖는다.
  • 방콕 사흘째(김 대통령 아주순방 여로)

    ◎한·일 정상 「독도」 중압감속 80분간 대좌/하시모토,김대통령에 일출사진 선물/“총리취임 축하”에 “선배로 지도해 달라” 아시아·유럽정상회담 3차회담을 마친 2일 하오 열린 한·일정상회담은 최근 미묘한 현안으로 떠오른 독도 영유권문제와 관련,김영삼대통령의 「수위 높은」입장 전달과 함께 하시모토 총리의 원론적 원칙천명이 이뤄졌으나 선린우호 관계를 다져나가기 위한 공동인식에는 변함이 없음을 거듭 확인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2일 하오 아시아·유럽정상회의가 폐막된 직후 숙소인 쉐라톤호텔 2층 소회의실에서 하시모토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독도영유권문제등 한일양국현안에 관해 깊이있게 논의. 하오5시(현지시간)로 예정된 회담시작시간 3분전에 미리 와있던 김대통령은 곧이어 도착한 하시모토총리를 맞아 얼굴에 웃음을 띠며 반갑게 악수를 나눴고 양국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 다만 양국 모두 독도문제라는 어려운 현안을 다뤄야한다는 중압감때문인지 회담장은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 김대통령의 안내로 회담장중앙에 나란히 마련된 자리앞으로 이동한 두 나라 정상은 사진기자들을 위해 다시한번 악수를 교환. 하시모토 총리는 이때 『금년도 새해 첫날 일출장면을 직접 찍은 사진』이라며 신문지크기만한 액자를 선물로 증정하자 김대통령은 『매우 값진 선물이 되겠다』며 사의를 표했는데 액자 오른쪽맨위에는 금분으로 「김영삼 대통령각하」라고 씌어있었다. 김대통령은 자리에 앉은뒤 『지난번 전화통화를 했지만 총리에 취임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인사하자 하시모토 총리는 『대통령각하께서 선배로서 잘 가르쳐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화답. 하시모토 총리는 이어 『지난해 오사카 APEC정상회의때 많이 협조해 주신데 감사드리며 특히 농업분야에서 많은 협조를 해주셨다』고 거듭 사의를 표명. 김대통령은 이어 『이번에 처음 열린 ASEM회의도 잘 진행됐다』면서 『통역시설이 발달돼 각국 정상들이 자유스럽게 발표한 의견이 전부 통역됐는데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소감을 피력. 두 나라 정상은 이어 보도진을 전부 물리친채 양국외무·통산장관등 8명의 배석자가 참석한 가운데 하오 5시45분까지 확대정상회담을 진행했고 이어 6시20분까지 공로명 외무장관 유종하 청와대외교안보수석 김하중 외무부 아주국장만이 배석한 단독정상회담을 계속.
  • 한전동부지점 산악회/매달1회산행…환경복원운동 앞장(산하 파수꾼)

    ◎유명산 오르며 쓰레기줍기 생활화 『우리 삶의 터전인 자연은 심각한 공해와 공장폐수로 오염되고 있다.이렇게 가다간 우리 다음 세대가 살 수 있는 비옥한 터전은 과연 얼마나 남을까.이런 현실속에 걱정과 탄식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조금이나마 환경오염을 막아보자는 노파심에 우리 산악인은 발벗고 나섰다』 서울 한전동부지점 산악회(회장 마동숙)는 매월 1회씩 정기적으로 서울근교,그리고 주기적으로 전국 유명산을 찾아 자연이 아름다운 소리를 낼 때까지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각오 아래 환경복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전산악회는 체계적인 자연사랑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 환경감시단체에 가입했다.이들은 환경운동의 일원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감시위원이 된 것을 기념하는 첫 캠페인으로 지난해 10월7일부터 이틀동안 두타산과 청옥산일대를 찾아 쓰레기수거와 등산객을 대상으로 산불조심 및 오물안버리기를 당부했다. 이어 지난해 11월24일에는 2박3일 일정으로 66명이 제주도를 찾았다.한라산은 등산로 훼손으로 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어 정상까지는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산장까지만 오른 이들은 인근에 버려진 쓰레기를 서슴없이 주워담아 배낭에 넣었다.말끔히 주변청소를 한 뒤 오물을 짊어지고 하산길에 오르자 눈여겨 지켜보던 이곳 산악인들이 일제히 보내준 성원의 박수는 뿌듯한 감회를 느끼게 했다. 성산 일출봉과 성읍 민속촌의 관광길에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준비해간 쓰레기봉투에 담배꽁초까지 말끔히 수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관광객까지 동참해 흐뭇한 광경이 연출됐으며 마을 골목의 오물까지 치우자 주민은 미안해 어쩔 줄 몰라했다. 『조그마한 수고가 큰 기쁨이 돼 돌아오는 것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한전동부지점 산악회원들이 환경운동에 나선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다.지난 74년 7월 발족한 이들 회원은 87명.건강을 위해 등산길에 나섰다가 자연이 점차 파괴되는 모습을 보다 못해 쓰레기수거를 시작한 것이 자연스럽게 습관화된 것. 지난해 들어서만도 백덕산·사자산·북한산·월출산을다니며 계도활동을 벌였었다.그리고 산악회 창립 30주년을 맞아 보다 효율적인 환경보전을 위해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에 동참했다. 「내고장 산하는 내가 지킨다」는 사명감과 소명의식으로 아름다운 산하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회원들은 올해의 사업계획을 짜며 자연사랑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 휴일 늦단풍 행락차량 몸살/내장산 10만 인파

    ◎귀경 고속도 체증 극심 11월 첫째 휴일인 5일 전국 유명산과 관광지에는 막바지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이로 인해 고속도로와 주요 국도에는 하오가 되면서 귀경차량들이 한꺼번에 몰려 밤늦게까지 극심한 체증을 빚었다. 전북 정읍 내장산 국립공원에는 올 최대인파인 10만여명의 행락객이 몰려 서래봉을 비롯한 신선봉과 장군봉 등 9개 봉우리 주변에서 빨갛게 물든 장관을 감상했다. 행락객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평소 승용차로 20여분 걸리는 호남고속도로 정읍톨게이트에서 내장산에 이르는 진입로 16㎞구간은 3∼4시간이 걸리는 등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었다. 지리산과 덕유산 국립공원에도 이날 하루 6만여명의 단풍관광객이 몰려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즐겼다. 계룡산 국립공원 등 대전·충남지역 유명 관광지에도 모두 8만여명의 단풍 관광인파가 몰렸다.특히 계룡산에는 이른 아침부터 관광객이 몰려 3만5천여명이 동학사와 갑사,신원사 계곡 등 등산로에서 절정의 단풍을 즐겼다. 제주도에도 관광객과 신혼부부들이 서귀포시 중문단지와 성산 일출봉등에 한꺼번에 몰려 크게 붐볐다.
  • 선물세트값 2∼20% 올라/알뜰파 겨냥 3만∼5만원짜리 많아

    ◎자연식품보다 인삼·차·주류 등 인기 추석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백화점업계는 물론 재래시장에 이르기까지 배달강화와 배달상품포장재 즉시 수거 등의 서비스와 함께 귀성자동차 무료점검,전통차례상 전시,드라이브인 매장개설 등 다양한 판촉행사로 고객유치에 부산하다. 그러나 올 추석은 날짜가 예년보다 20일이상 빨라져 시즌상품의 출하가 부진한데다 연속적인 대형사고와 때늦은 비피해 등으로 좀처럼 명절분위기가 무르익지 않고 있다.이때문에 올 추석매출을 작년보다 25%이상 늘려잡은 대부분의 유통업체들은 매출확대를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으나 모두들 목표달성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단체선물주문 등 특수판매부문의 1백20억원을 포함,지난해보다 28.6%가 많은 8백10억원으로 매출목표를 세운 롯데백화점의 경우 1일부터 본격 추석행사에 돌입했다.그러나 햇과일출하부진과 남해안 기름유출사고등에 따른 수산물의 물량부족으로 청과와 선어류 등 자연 선물세트의 확보가 어려워 육류선물세트에 편중된 판촉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이런 상황은 다른 백화점들도 마찬가지다. 신세계는 올해 추석선물판촉에 프라이스클럽과 E마트 등 할인업태의 양주와 건강식품,잡화류등에 주력,전체목표액 7백87억원가운데 1백9억원을 달성키로 했다. 현대와 미도파 그랜드 등 다른 업체들도 소비자들의 선물패턴이 식품중심에서 탈피,상품권 잡화 생활용품 등으로 변화해감에 따라 올 추석엔 상품권매출을 전년보다 5∼10%가량 늘려 전체매출의 25∼30%를 기대하면서 상품권 선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상품권 매출목표는 롯데가 2백50억원,신세계 1백10억원,현대 1백20억원,그레이스 5억5천만원등 이다. 선물의 가격패턴은 알뜰구매성향에 따른 실속형과 가족형의 중·저가선물 및 전통 희귀 명품 특산물 등의 고가선물로 양극화현상을 보임에 따라 3만∼5만원 및 5만∼10만원의 가격대로 분류,판촉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 추석선물가격은 물량부족등으로 청과와 수산물세트의 가격이 지난해보다 10%이상 올랐다.같은 가격인 경우엔 상품성이 떨어진다.이때문에 영향을 덜받는 인삼과 술참기름 차 젓갈류 등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이다.한국물가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전통주가 원·부자재의 가격상승으로 3.6∼7.7% 인상되는 등 각종 차종류와 식용유 햄 김 조미료 비누 타월 등 모든 가공식품 및 공산품 종류가 전체적으로 적게는 2%에서 많게는 20%까지 올라 소비자들의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
  • 전기의 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시베리아 대탐방:29)

    ◎에니세이강 2개수전… 1억2천만㎾ 발전/풍부한 전력 바탕 알루미늄 콤비나트 형성 크라스노야르스크주(주)로 접어들면서 드디어 동시베리아가 시작된다.이 주경계는 밤중에 지나갔다.동시베리아로 들어서며 느껴지는 가장 큰 변화는 지리적인 변화이다.크게 높지는 않지만 마침내 바위도 있고 얕은 계곡도 있는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오블라스치(주)보다 더 큰 행정구역인 크라이(대주)이다.크라이는 우선 영토도 크지만 통상 그안에 의무적으로 민족공화국,민족 자치구(오크루그)등이 몇개씩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오블라스치와는 구분이 된다.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이에도 하카시아 공화국,북부의 에벵키 자치구,타이미르스키 자치구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전역에는 알타이,크라스노다르,크라스노야르스크,프리모르스키(연해주),하바로프스크등 모두 6개의 크라이가 있다. 러시아의 행정구역은 이외에도 21개의 공화국,49개의 오블라스치,1개의 자치 오블라스치(아르항겔스주),10개의 자치구,1천8백56개의 라이온,그리고특별시격으로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등 2개의 연방도시가 있다.이렇듯 행정구역이 보통 복잡한게 아니라 전문가라도 쉽게 설명하기가 힘들게 돼있다. ○주민고작 2만7천명 혁명 전에는 전국이 일률적으로 「구베르니」라는 행정단위로 구분돼 있었는데 레닌이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그래서 최근에는 이 행정구역을 다시 단순화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그러나 워낙 큰 땅덩어리라 행정구역 개편 자체가 쉽게 손댈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자칫 잘못 손대다간 또다른 엄청난 혼란과 논란을 몰고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주의 첫역은 보고톨.1893년 철도역으로 시작된 주민수 2만7천명의 작은 마을이다.아친스크시가 있는 주 서부지역에서부터 칸스크시가 있는 동부지역까지는 유명한 노천 갈탄산지이다.철로변 주변이 모두 갈탄 산지인 것이다.크라스노야르스크주는 장강 예니세이강에 건설돼 있는 국내 제1,제2의 수력발전소 2곳에서 전력을 생산해내 시베리아 각 도시로 공급한다.서쪽으로 쿠즈바스탄전과 노보시비르스크시로,그리고 동쪽으로는 이르쿠츠크등 양방향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다. 모스크바 시간으로 상오 1시에 크라스노야르스크역에 도착했다.동시베리아에 접어들며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4시간으로 늘어나 현지시간은 상오 5시를 가리켰다.새벽공기를 마시며 호텔을 찾아가는 길에 강폭이 한강의 1.5배는 됨직한 예니세이강 위로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시베리아여행을 시작한지 처음으로 도시 뒤로 제대로 모습을 갖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산중턱에 다차와 마을이 길게 늘어선 모습이 독특하다.강의 범람에 대비하고 임업이 주업임을 알려주는 마을배치였다. ○작은 요새가 도시 변모 크라스노야르스크는「아름다운 계곡」이란 뜻의 이름이다.이름과 같이 원래 예니세이강변의 계곡 위에 작은 요새로 시작된 도시이다.러시아의 정복자들은 마을을 정복하면 주변에 이 마을을 지키기 위한 작은 요새를 짓고,그리고 그 요새를 거점으로 주변 원주민들로부터 「애삭」이라 부르는 주민세를 거둬들였다.시베리아에서 이 주민세는 주로 담비,밍크등 모피였다. 1823년 예니세이스크 구베르니(주)가 창설되고 그 주도가 북쪽의 예니세이스크시에서 이곳으로 옮겨오며 크라스노야르스크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시베리아철도의 건설은 수운의 중심지던 에니세이스크시의 중요성을 떨어뜨리며 철도역인 이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역할을 크게 부각시켰다.1899년에는 도시를 관통하는 예니세이강 다리가 건설됐다.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역사는 예니세이강과 함께 한다.이 강을 막아 러시아 최대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했고,이 강을 따라 목재를 날라 국내 최대의 목재 산지가 됐다.예니세이는 본류만 따져서 3천4백87㎞에 이르는 장강인데 지류까지 합하면 4천1백1㎞에 달한다.몽골국경 부근의 아사야나산에서 발원,시베리아를 종단해 북극해로 흘러들어간다.강상류에 건설된 아사야나 슈센스코에 발전소는 러시아 최대의 수력발전소이다.이곳과 크라스노야르스크 발전소를 합치면 발전용량이 1억2천만외㎾에 달한다. 따라서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시베리아 전기의 수도인 셈이다.이렇게 풍부한 전력 때문에 이곳에는 러시아 최대의 알루미늄 콤비나트(생산단지)가 조성돼있기도 하다.알루미늄은 특히 전기가 많이 소모되는 공업이기 때문이다. ○레닌,1년간 유형생활 크라스노야르스크 역시 시베리아철도가 건설되며 흥한 대표적 도시이다.원래 이곳은 1628년 러시아정복자들이 남쪽 유목민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건설한 작은 요새로 출발했다.방어의 주목적지는 북부 예니세이강에 건설될 예니세이스크시였다.당시 동시베리아의 교역중심로는 예니세이스크시를 중심으로 예니세이강과 앙가라강을 거쳐 모스크바로 연결됐다.이곳에서 베어낸 목재는 뗏목을 만들어 강하류 어느 곳으로든 운반해간다.러시아에서 소비되는 종이는 아르항겔스,볼로그다에서 그 절반을 생산하고 나머지 절반은 크라스노야르스크지역에서 생산된다. 시내에서 서쪽으로 35㎞ 지점에 위치한 크라스노야르스크 수력발전소는 1967년 공사를 시작해 80년 중반에 완공됐다.이 발전소가 완공된 뒤에는 장비·인력이 곧바로 슈센스코에 발전소건설에 투입 됐다.발전소 조금 못미처 당시 노동자들의 노고를 기리는 기념조형물이 건설돼 있는데 하단에 당시 공사장 흙을 실어나르는 데 동원된 트롤리트럭이 8백42대,운전사가 1천1백20명이라고 적혀있다. 시내 강변 선착장에는 레닌이 1898년 이곳에서 유형생활을 떠날 때 탄 증기선 「CB(성) 니콜라이」호가 박물관으로 개조돼 전시돼 있다.레닌은 아내 크룹스카야와 함께 이 배로 예니세이강 상류를 4백㎞ 거슬러 올라가 슈센스코에에서 1년 유형생활을 했다.당시 유형자들은 중죄인을 제외하고는 주거제한만 받았지 가족과 함께 가서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물론 중죄인은 가족을 데려갈수 없음은 물론이고 감옥생활을 하며 카타르가라고 부르는 둥근 쇳덩어리를 손발에 차고 중노동까지 했다.증기선 박물관은 금년 여름 재개관을 목표로 현재 내부수리가 한창이었다.
  • 민통선 북방지역 영농허용면적/가구당 20㏊까지 확대

    ◎성묘객 등 당일 주민증검사로 출입허용 앞으로 휴전선 아래 민간인통제선 북방 전방지역안 주민의 가구당 영농허용면적이 최대 20㏊까지 확대되며 성묘객등 민간인은 주민등록증만 제시하면 당일출입이 허용된다. 합동참모본부는 31일 주민편의를 높이기 위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민통선 북방지역 민사활동규정 개정안」을 마련,8월1일부터 시행키로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그동안 가구당 3㏊로 제한된 민통선 이북지역 영농범위를 10㏊로 늘리고 시장·군수의 승인이 있으면 최대 20㏊까지 허용하는 한편 비닐하우스재배나 화훼단지조성등은 관할부대장의 별도승인을 얻도록 했다. 또 이 지역에 관과 군요원으로 구성,운영해온 「영농심의위원회」에 주민대표를 참고인자격으로 참석토록 해 주민이주나 개간등의 재산권행사와 관련된 문제를 심의할 때 주민의견을 반영토록 했다. 군은 이와 함께 연평균 1만5천여명에 이르는 이 지역 성묘객이나 모내기 및 추수기의 임시고용인등이 이 지역에 출입할 때 종전에 1주일전까지 해당 군·읍·면에 출입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던 것을 폐지하고,대신 당일 출입통제소에 주민등록증만 제시하면 출입이 가능토록 했다. 한편 민통선 북방지역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으로부터 남쪽으로 5∼20㎞까지의 지역으로 경기·강원의 9개 군 24개 읍 1백5개 마을에 걸쳐 설정돼 있으며 2만여명이 상주하고 있다.
  • 천문정보 자동응답/전화 042­861­1501 가동

    ◎일출·일몰 안내… 천문학자와 대화 가능 천문대는 22일 일반인들의 폭증하는 천문정보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전화를 이용한 음성정보안내시스템을 개통했다. 이 시스템은 천문대 민원 전용전화 042­861­1501에 연결돼 자동으로 천문정보를 안내해주고 있다.제공되고 있는 정보는 번호에 따라 ▲1번은 음력날짜를 양력 날짜로 ▲2번은 양력날짜를 음력날짜로 알려주며 ▲3번은 일출과 일몰,시민박명시각(주민이 느끼기에 날이 샜다고 느껴지는 시각),월출과 월몰 시각을 알려준다.3번에서 일출몰 시각은 1번,시민박명시각은 2번,월출물 시각은 3번을 다시 돌려주면 되며 이 정보는 전국 45개 지역별로 세분돼 제공된다.이어 4번은 음력과 양력 대조 증명 신청 절차를 알려주고 5번은 천문학자와 직접 통화를 하고 싶은 경우 연결돼 천문학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번호다.또 0번은 다시 안내를 받고 싶은 경우 누르면 된다.제공되는 정보중 월출몰 시각은 당해 연도 정보만 제공되지만 기타 정보는 1900년부터 2040년까지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 천문대는 이밖에도 매달 일어날 천문현상을 예고하고 해설하는 별동산 소식을 월간으로 발간 배포하는등 천문학의 저변확대 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 중 “아·태 집단안보체제 반대”/강택민

    ◎미·러 제의 일출… 관련국과 직접 대화 【북경=이석우 특파원】 중국의 강택민주석은 유럽을 포함한 다른 지역의 안전보장 모델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전보장제도의 전형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고 인민일보가 16일 보도했다. 인민일보는 이날 독일방문을 마치면서 독일언론과 가진 강택민주석의 회견을 인용,이같이 보도했다.이같은 강주석의 발언은 최근 아·태지역의 집단안전보장제도에 대한 중국의 반대 의사를 표명한 첫번째 공식반응으로서 주목된다.이같은 반응은 한편 미국,러시아 등의 아·태지역에서의 집단안보체제 구성과 관련한 제의와 구상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인민일보는 아·태지역의 안전보장체제 수립에 대한 중국의 입장에 관한 독일언론의 질문에 강택민주석이 『아·태지역의 상황은 유럽을 포함한 기타 지역과는 다르다』고 전제한 뒤,다른 지역의 안전합작(집단안전 보장제도)의 모델을 따를 수도 없고 따라서도 안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 신문은 강주석이 『중국은 협상·합의와 점진적 방법을 통해 관련당사국들과 아·태지역의 안전확보를 위한 효율적인 방안을 논의하기를 원한다』고 언급했다고 보도,중국이 쌍무적인 대화 통로를 통해 이 문제에 관해 한국,일본,러시아,미국 등과 개별적으로 해결책을 찾아갈 것임을 확인했다.
  • 6일만에 「보」서 생환 미 조정사/비상생존낭 절대 역할

    ◎「피격서 탈출까지」 스토리 재구성/무선통신기·나침반등 구비/서바이벌지옥훈련도 큰 도움 추락 6일만에 극적으로 구출된 스코트 오그래디 미공군대위의 피격에서 구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미백악관및 국방부의 발표와 현지발 외신 등을 묶어 재구성해 본다. 2일 하오 보스니아 비행금지구역을 초계비행중이던 오그래디의 F16C기가 3시쯤 러시아제 SAM6 지대공미사일에 피격,6천m 상공에서 추락했다.추락장소를 세르비아계 통제하의 반자루카 남쪽 40㎞ 지점인 므르콘지치 부근으로 추정할 뿐 같이 비행했던 나토 비행사들은 오그래디의 비상탈출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4일 포겔만 미 공군참모총장이 추락지점 인근에서 비상탈출 조종사의 위치전달 무선신호음으로 여길 수 있는 시그널이 간헐적으로 포착되고 있다고 밝혔다. 삼림지대에 추락한 오그래디는 세르비아계에 붙잡히지 않도록 최대로 몸을 숨기는 한편 구조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며 조금씩 이동했다.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이르러서야 배터리가 한정된 무선신호기를 켰으며 비상식량이 동나자 곤충,풀 그리고 빗물로 연명했다.오그래디는 머리와 귀 부분이 주변의 나뭇잎 색깔과 구별되지 않도록 조종사들의 위장 장갑을 덮어쓴 채 나무아래에 엎드려 몸을 숨겼다.세르비아 군인이 바로 옆에서 이잡듯 숲과 언덕을 수색하는 동안 거의 5시간을 「꼼짝않고」 숨을 죽였다. 중위 시절 개미와 메뚜기를 잡아먹으면서 겪어낸 3주일간의 서바이벌 훈련과 추락전투기에 장착된 비상생존낭이 오그래디의 철인적 생존에 절대적 도움을 주었다.한 행낭은 조종석 밑에 부착된 다소 큰 것으로 개인무선통신기(PRC),섬광신호탄,위치전달용 거울,구급상자,나침반,호루라기,권총,고무 구명뗏목,식수,담요 등과 서바이벌 팸플릿이 빼곡이 담겼 있으며 좀더 작은 것은 조종복 조끼에 달려있는데 안면위장용 페인트,지혈기와 함께 그의 구조에 최대의 역할을 한 소형 무선통신기가 들어 있었다. 추락 6일 후인 8일 상오 2시8분 오그래디가 구조항공기를 목격하고 전파신호를 음성신호로 일시 변경할 수 있는 소형 배터리무선기를 통해 보내는 음성과 모르스 신호를 나토군의 한 조종사가 포착했다.2시20분 조기경보기 AWACS의 레이더가 그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고 5시50분 40대의 항공기로 편성된 구조대가 아드리아해상의 키어사지호를 출발했다.일출 46분 후 시각이었다. 6시44분 오그래디는 구조대에게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기 위해 노란 연기를 피워올렸다.각 20명의 해병대원을 실은 2대의 CH53 헬기가 착륙했다.해병대원이 뛰어나와 헬기장 주변의 사주경계에 들어가자 권총을 손을 든 오그래디 대위가 45m 밖 숲속에서 달려왔다.즉시 구조대원에 의해 헬기로 옮겨졌고 헬기는 착륙 2분도 못돼 이륙했다.7시7분쯤 2기의 미사일공격과 소총공격을 받았으나 피해는 없었다.15분 보스니아 국경을 넘어 7시40분 키어사지호에 무사히 착륙했다.
  • 추상화가 유영국(이세기의 인물탐구:72)

    ◎간결한 선­강렬한 색채 “산의 화가”/데생을 하지않은 성품… 비례로 화면 골격잡아/자신의 그림 천여점 보좌,12일부터 공개 전시/고교2년때 화가 결심… 도일후 대학3학년때 일 미술전 대상 수상 그의 산은 항상 젊다.거센 불길로 타오르거나 짙푸른 숨결로 우거져 있다.화면 여기저기서 문득문득 솟구치는 빛의 반사는 비바람과 일출,일몰을 함축한다.단순하게 선 하나를 그었을 뿐인데도 원근의 면과 지평선의 무한공간,원과 삼각형이 절묘하게 조화된다.잡다한 수사학을 떨친채 그의 산은 높고 꿋꿋한 기상으로 피안을 우러르고 「강렬하고 명쾌한 색채의 변부」는 급류처럼 화면에 휘몰아친다. 그가 산을 그리게 된 것은 「산이 높아 골이 깊다.(산고곡심)」는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그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친 속에서 산만을 바라보며 성장했다.울진의 중첩된 산들은 습곡단층을 이루면서 항상 무엇으론가 꽉차 있었고 그때부터 산은 무한한 신비감과 감동으로 그에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산의 작가」이자 「원색의 연마사」로 대변되는 화가 유영국은 『화가의 눈은 항상 먼곳을 바라볼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먼곳으로 눈을 돌릴때 산과 바다와 자신의 세계가 도저(도저)하게 펼쳐진다.일부러 산을 그리지 않아도 자연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그곳에서 절로 『산과 바다가 대어나온다』고 도했다. ○“항상 먼곳을 보라” 강조 「근대한국미술논총」을 보면 평론가 김영나는 「1930년대 동경 유학생들」이란 글에서 『유영국의 경우 19 48년부터 계속 산을 주제로한 그림을 그려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제국미술학교출신이며 판화가인 정규는 『1930년대 자유전을 대표한 추상주의 화가는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이지만 그중에서도 철저한 우리나라의 추상주의 화가는 유영국』이라고 단정하고 있다.그만큼 보이지 않는 변화속에서 산에 대한 그의 사고와 사상이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틀속 갇혀 안주하는 형은 아니다.구성과 묘사가 완성되는 타블로와는 달리 초기엔 크고 작은 나무판을 콜라주한 릴리프(부조)적인 방법으로 앵포르멜 경향을보이고 있다가 차츰 기하학적 구성에서 벗어나 넓은 면과 밝은 색채,직선을 선회한 곡선의 이미지로 장식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평론가 오광수는 그의 색채 감정에 대해 『매우 투명한 원색이 주류를 이루면서 화사한 색채의 구성은 경쾌한 사유를 동반한다』고 말한다.모든 것을 극도로 걸러낸 생략과 절제는 이미 그 자체가 아름다움의 극치로서 색채언어를 완결했다는 의미다.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것은 서울 경성제2고보(현 경복고)졸업반때 부터다.일본 유학 안내팸플릴을 보고나서 화가가 될것을 결심했으나 그는 도무지 데생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망설이던 끝에 데생시험이 까다로운 동경(동경)제국미술학교 대신 데생시험이 없는 동경(동경)문화학원을 지망하게 되었고 혼자서 데생을 공부하는 모색과 탐구의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지금도 그는 그림을 그릴때 데생을 하지 않는다.화면에 자리와 크기만 정하고 공간관계 비례관계로 골격을 잡아 나간다.야외에서 스케치를 하는 일도 없고 미대 시절외엔 대상을 놓고 그림을 그린 적도 없다. 당시동경(동경)분위기는 일본 문부성이 주도하는 문전(문전)과 이과전(이과전)이 대립되어 일년 내내 전시회가 열릴 만큼 회화운동이 열기를 띠고 있었다.그는 대학 3학년때인 38년 자유미술가협회 창립전에서 영예의 최고상을 차지 했다. ○한때는 고기잡이 생활 그러나 전쟁말기의 일제의 문화정책 말살로 「선 면 색」의 삼요소로 형태의 절대화를 추구하게 되었고 설화성과 감정이 배제된 단순한 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그가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의 작가 몬드리안을 좋아하는 이유는 「몬드리안의 그림은 말없는 시이고 말하는 회화」이기 때문이며 그림은 그래야 된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화가로서의 활동에 제동이 걸리자 그는 43년에 귀국하여 일단 고향에 잠적했다.한동안 고기잡이 배를 타는 엉뚱한 생활을 하다가 해방과 함께 김환기 장욱진 이규상과 신사실파전을 창립,「절제된 율동미로 신비스런 평면세계를 전개」하기도 했으나 또다시 6·25가 터져 귀향,이번엔 죽변에 정착하여 그림을 멈추고 부인 김기순여사와 함께 양조장 경영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새벽부터 밤늦도록 술을 거르기도 하고 마차로 손수 술배달에 나서기도 했다.그러다가 『이만하면 생계에 급급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수 있다』고 생각되자 다시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왔다.고향에 두고온 양조장은 그가 그림을 팔지 않아도 될만큼 얼마동안은 생활의 근거가 되어 주었다. 처음엔 난로를 피워도 손이 시려운 약수동의 적산가옥에서 몇시간씩 선채로 그림을 그린 것이 화근이 되어 뒷날 골절을 앓게 되었고 79년부터는 화곡동에 거주 7년전부터 건축가인 차남(건)이 지어준 지금의 신방배동으로 이사해 왔다.자녀는 2남2녀.다리가 불편 해서 주로 휠체어를 타고 그림을 그린다. 최근의 그는 산의 형상성을 존중하여 자연으로 귀의하려는 또다른 변모를 보이고 있다. 이는 「동양적인 또는 한국적인 자연관을 지닌 때문」이며 근작들에 이르러「더욱 불타는 색채의 대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산은 모든 자연풍경의 시초이자 종말」이라는 러스킨의 말을 절감시킨다.처음은 즐겁고 다음은 깊은 사색을 던지며 상서로운 관유(관유)와 유열의 진동이 화면전체에 창만해 있다. ○휘체어 타고 그림 그려 언제나 시대의 첨단에 서서 선도적 구실을 했다는 자부심을 감추고 갈채를 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까.그는 최초의 추상작가니 선구자니 하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자신이 좋아서 했을뿐」선구자가 되겠다는 의도는 없었기 때문이다.회화의 개화를 주도한 이후 혼란과 무분별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언제나 의연하게 자신의 세계를 지켜왔고 현재도 그는 시대적인 경향으로 자신만의 회화간을 고수하는 자세다. 큰 키에 희끗한 머리.은근하게 멋이 풍기는 옷차림에 꾸밈없는 경상도 억양이 그럴수 없이 정답다.직업화가로서 고집스럽게 평생을 버텨온 그로서는 실은 커다란 우여곡절을 겪었다곤 할수 없다.그의 절친했던 화우인 장욱진같은 기인기질도 천재적 광기도 신화도 없어 보인다.다만 싫은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자신의 모슴을 쉽사리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자 한다.아침마다 동네를 산책하고 한달에 한번 예술원 회의,병째 마시던 폭주습관은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렸다. 그가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은 천여점,드물게 거의가 보관되어 있고 그래서 그것은 한 화가의 위대한 투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직장에 나가듯 하루 8시간의 작업을 지켰으나 요즘은 아침 저녁 한시간씩 그린다. 그의 화실에는 근작 소품들의 손질이 끝나가고 있다.12일부터 갤러리 현대 초대로 실로 10여년만에 60년대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한지리에 펼치기 위해서다. 그의 산하는 여전히 푸르르고 보석더미처럼 번쩍이는 화면은 이제 「차가운 추상」을 지난 중첩되는 산주름이 격정적으로 되살아나는 것이 경이롭다. 만일 현대의 고전이란 말이 가능하다면 형태와 색채에 있어 독보적일 뿐만 아니라 미술사를 말할때 그를 빼고는 말할수 없다는 차원에서라도 그의 존재는 눈부신 그의 화면만큼이나 「빛나는 고전」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연보 ▲1916년 경북 울진출생 ▲1935년 경성제2고보(현 경복고)졸업후 동경문화학원 유화과 진학 ▲1937년 일본 독립미술전 출품,제1회 자유미술전 출품(42년까지),N·B·G(NeoBeaux­ArtsGroup)출품(41년까지) ▲1938년 동경문화학원졸업,제2회 자유미술전 회고상 수상 ▲1947년 신사실파 창립회원(유영국 김환기 이규상),서울대 강사 ▲1957년 모던아트 창립전 ▲1958∼61년 현대작가초대전 및 국제자유전 ▲1962년 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신상회 창립전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1964년 제1회 개인전(서울신문회관 화랑),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 ▲1966년 제2회 개인전(중앙공보관)한국현대회화 10인전 ▲1967년 동경국제 미술전 ▲1969년 제3회 개인전(신세계화랑) ▲1971년 제4회 개인전(신세계화랑),한국회화 100인전(국립현대미술관) ▲1975년 제5회 개인전(현대화랑) ▲1976년 제6회 개인전(신세계) ▲1977년 제7회 개인전(진화랑),예술원상 수상 ▲1978년 살롱 드메초대전(파리시립현대 미술관) ▲1979년 국립현대 미술관초대 유영국 회고전(1백20점 전시) ▲1982년 제8회 개인전(현대화랑) ▲1985년 서울미술대전출품 ▲1988년 88올림픽 기념 세계현대미술제출품 ▲1995년 갤러리 현대초대전 「1965∼1990」 예술원회원,화집 「유영국」(79년 국립현대미술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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