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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에 「주인없는 땅」2억8천만평/연내 안찾아가면 국가명의 등기

    ◎공고뒤 확인거쳐 소유주에 반환/전남 24.7%로 최다… 경기·경북 순 우리나라의 토지 중 2억8천만평은 주인이 없는 땅이다.이는 여의도 광장 면적을 90만평으로 할 때 3백11배에 해당되는 엄청난 규모다. 8일 재정경제원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현재 권리보전이 안돼 있는 상태로 남아 있는 전국의 땅은 31만5천2백28필지(9백39㎢)였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7만7천8백83필지로 가장 많다.이는 전체 주인없는 땅의 24.7%다.그 다음은 경기(6만6천3백8필지),경북(4만5천6백90필지),강원(3만8천1백35필지),전북(3만5천6백25필지),충북(1만8천9백28필지),충남(1만7천7백95)등의 순이다.또 경남은 3천7백1필지,인천 3천1백47필지,부산 2천13필지,대구 1천7백76필지,대전 1천5백59필지,서울 1천6백30필지,광주 8백10필지,제주 4백8필지 등이다. 이처럼 주인없이 방치된 땅은 일제시대 이후 일본인 명의로 돼 있거나 소유주가 아예 없는 경우,또는 국가명의로 돼 있으나 해당 관리청이 없는 등 세 가지 유형 중 하나에 속한다. 재경원은 이에 따라 올 연말까지 이들 토지를 대상으로 조사를 해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국가 땅으로 등기를 하는 권리보전 작업을 끝낼 계획이다. 이 가운데 창씨개명에 의해 일본인 명의로 돼 있을 경우에는 주인이 나타나면 확인절차를 거쳐 되돌려 준다.또 소유주가 불명인 상태로 있는 무주 부동산은 시·군·구에서 6개월간 공고한 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국가 명의로 등기를 한다.관리청이 없는 토지는 해당 부처나 관청 앞으로 등기를 할 계획이다. 재경원 관계자는 『지난 92년 국유지를 20년 이상 사용한 사람에 대해서는 소멸시효를 적용,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소유권을 넘겨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이후 국유지 관리에 대한 심각성을 느껴 지난 해부터 본격적으로 권리보전 작업을 펴고 있다』며 『워낙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오승호 기자〉
  • 양국 제주정상회담을 보고/안병준 연세대 교수(기고)

    ◎한·일 관계 21세기 미래 밝다/각계 교류증대로 동반자 관계 다져야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총리는 2002년 월드컵공동개최를 계기로 밝은 미래를 향한 한·일동반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했다.이것은 양국민간에 격의없는 교류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하여 환영할 일이다.이제부터 우리는 더욱 진지한 공동노력을 통하여 과거를 청산하고 진실로 「가깝고도 먼나라」가 아닌 편안한 이웃관계를 창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월드컵공동개최는 한·일간에 이러한 화해,협력을 재촉하고 있다.독도문제로 인하여 냉각되었던 분위기 때문에 하시모토총리는 방한을 실현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제주도에 오게된 것이 이것을 잘 말해준다.온 세계인들이 시청할 축구행사를 한·일간에 나누어 치르자면 긴밀한 연락체제를 유지해야 한다.앞으로 6년간 이에 대한 준비를 진행하려면 두 정부는 물론이고 체육계를 비롯하여 각계각층간에 교류와 협력을 증대해야만 한다. 이와같이 한·일 양국이 21세기를 여는 2002년에 처음으로 중대한 세계축제를 함께 개최하게 된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서 협력관계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이것은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며 그결과 통일과정에도 기여할 것이다.이러한 시각에서 두 정상이 북한문제를 다루는데 사전협의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시의적절한 것이다.궁극적으로 북한이 한국과 평화와 협력을 협상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으므로 일·북수교교섭도 남북대화와 관계개선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북한이 당면한 식량위기와 한반도에서 안정을 유지하는데 일본의 건설적 역할과 협력이 필요하다.이때문에 제주도정상회담에서도 한·미·일간의 긴밀한 공조가 중요하다는 것을 재다짐했던 것이다. 미래지향적 한·일협력을 실현하기 위하여 한·일양국은 민간수준의 역사공동연구모임·전통문화교류·청소년교류증대를 실천하기로 했다.역사공동연구는 과거사에 대하여 공동인식을 갖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하시모토 총리도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하여 전향적 언급을 했고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그가 일제시대때 창씨개명을 했던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것은 실로 충격적이다.총리가 그럴진데 일본의 젊은 세대가 그것을 제대로 알리가 있겠는가.이 고백은 잘못된 역사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잘 말해 준다. 한·일간에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허심탄회한 토론과 사실인정이 긴요하다.이것을 하루아침에 다 이룰수 없으므로 양국의 지식인,문화인,청소년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 의논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문화의 뿌리를 찾으려면 전통문화의 교류가 시급하다.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들의 교류를 대폭 늘이기로 한것도 매우 고무적인 조치라 하겠다. 사실 한·일간에 월드컵공동개최고려·안보대화확대·역사공동연구·청소년교류증진 등은 작년에 제3차한·일포럼에서 모두 제시되었던 사항들이다.이번 한·일정상회담이 있었던 바로 그곳에서 한·일포럼은 작년에 「제주도성명」을 발표했던 것이다.여기서 두 나라의 지식인들은 당시에 정부가 할 수 없었던 많은 현안들을 솔직하게 논의했고 아·태지역에서 한·일 양국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느냐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이것은 탈냉전기의 세계에서 민간외교와 비정부조직의 활동이 독창적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신뢰를 구축하는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말해준다.앞으로도 이와같이 민간외교와 공식외교는 상호보완돼야 할 것이다.
  • 역사공동연구(외언내언)

    한국에 왔다가 독립기념관을 보고 난 일본 청소년들은 『일본 순경이 한국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는 모형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면서 놀란다.일본의 신세대들이 반세기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제시대에 우리 민족이 겪었던 참상에 대해 모르는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그러나 일제시대를 산 장년층,노년층까지 그렇다면 일본측의 역사교육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올해 60세인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가 23일 제주회견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언급한 내용은 그러한 단면을 읽게 해준다.그는 일제시대 한국민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준 창씨개명에 대해 처음 안것이 지난 65년 방한때라고 털어놓았다.패전 당시 국민학교 2학년이었지만 창씨개명에 관해 학교에서 들은 바가 없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무지는 그렇다 치고,한·일 관계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편견은 오히려 역사를 섣불리 아는 식자층(지자층)에서 더 심한 것같다.임진왜란과 한일합방을 일본의 고토회복이라고 보는 견해등이 대표적인 사례다.임진왜란은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과대망상증이 빚어낸 전쟁이었다.그는 중국은 물론 인도까지 평정하여 천황의 거처를 중국 북경으로 옮기고 자신은 영파에서 천하를 다스리겠다고 호언했다가 결국 한반도에서 꺾이고 말았다. 그럼에도 임진왜란을 침략으로 보지않고 6세기 임나일본부의 멸망으로 일본이 한반도에서 잃었던 땅을 수복하려는 것인양 합리화하는 일제시대 식민사관이 오늘날의 일본에서도 여전히 신봉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온다.임나일본부는 우리측 사학자들에 의해 허구의 역사로 부정되고 있지만 일본측은 고대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역사적 사실로 교과서에까지 수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일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려면 양국 국민이 갖고 있는 역사인식부터 바로잡혀야 한다.지난주말 제주회담에서 한·일정상간에 합의된 양국 공동 역사연구회가 그런 역사적 사명에 얼마나 기여하게 될지 궁금하다.〈김호준 논설위원실장〉
  • 우리 겨레 수학이야기/안소정 지음(화제의 책)

    「피타고라스 정리」보다 우리의 「구고현정리」가 5백년이나 앞섰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등 우리겨레 수학의 숨겨진 실체와 뿌리를 역사적 근거에 입각해 차근차근 풀어낸 책. 모두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에서 삼국시대부터 읽힌 「철술」,우리나라 수학의 기본교과서인 「구장산술」,그리고 토지의 넓이와 곡식의 수확량등을 측정하는데 사용된 겨레 수학의 예를 소개하며 2장에서는 수를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 말들을 일러준다. 또 3장에서는 신라시대 천문관 교육의 기본교재인 「주비산경」제1편에 나오는 『구를 3,고를 4라고 할때 현은 5가 된다』는 구고현정리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해 사인정리에 딱 맞아 떨어지는 첨성대의 정확한 구조,1만분의 1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구조의 석굴암 등에 활용된 우리 겨레 수학의 선진적인 모습을 밝혀주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조선 철종때 수학자 남병길,진보적인 실학파 수학자 홍대용,일제시대 대수와 기하의 거두 최규동·장기원 등을 소개함으로써 우리 겨레 수학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다.도서출판 산하.5천5백원.〈김종면 기자〉
  • 「외길 30년」… 조각가 강관욱씨/11년만에 대규모 개인전

    ◎90년 교수직 떠난 전업작가… 전통 기법 고수/폭넓은 작품세계… 천안·광주 등 지방도 순회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의 자양분으로 자라는 자생조각을 하겠다』는 결심아래 외길 30년을 버텨온 조각가 강관욱씨(51)가 11년만의 대규모 개인전을 갖고있다. 서울(예술의 전당,17∼28일)과 충남 천안(아라리오화랑,6월1∼16일),전남 광주(시립미술관,6월20∼30일)에서 순회전을 펼치는 그의 작품주제는 역시 「자생조각전」이다. 이 전시회는 특히 지난90년 전남대 교수직을 떠나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 처음 마련한 자리여서 그 치열한 작업정신에 더욱 눈길이 간다. 전업작가로 나선지 6년여.태안의 바닷가 백리포작업장에 묻혀 돌을 파는 그는 한국의 몇 안되는 굵직한 석조각가의 1인이다.화강암과 한국산 대리석을 소재로 인체와 손,바다등을 형상화한 그는 서구조각의 연마기법을 쓰지않고 정과 망치로 일일이 쪼아 마무리하는 한국의 전통 석조각 양식을 취했다. 이번 전시회의 출품작은 34점.『고통의 강에서 허우적대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작은위로가 되고 행복에 지친 안일한 영혼의 고통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는 그의 근작들은 이전보다 스케일이 커지고 작가의식이 강해졌다.주제나 내용도 예술적 범주를 넘어 사회적·인간적·역사적 메시지를 폭넓게 담고 있다. 일제시대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1937년 어느 길고 긴날」은 여체를 만지는 9개의 손으로 역사속의 추악한 범죄를 비유하며 고발한 작품으로 메시지가 강한 대표작이다.〈이헌숙 기자〉
  • 행정쇄신 이젠 내실 추구를(사설)

    문민정부 들어 출범한 행정쇄신위원회가 20일로 3주년을 맞았다.김영삼 대통령의 사정조치,역사바로세우기작업,금융실명제단행,교육개혁 등 정치·경제·사회분야의 굵직한 개혁조치에 보조를 맞춰 국민 실생활과 관계되는 행정업무들을 합리화·개선해온 것이 행정쇄신 작업이었다. 과거에도 행정개혁위 명칭의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문민정부의 행쇄위는 개혁이라는 커다란 취지에 맞춰 일선행정업무를 공무원이 아니라 시민의 시각에서,그리고 민간위원 중심으로 구석구석을 점검,실천이 가능한 쇄신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르다.양적으로도 불과 3년에 각종 행정간소화 조치등 모두 2천2백37건이나 되는 쇄신방안을 마련했고 곧바로 관계부처에 의해 시행된 눈에 띄는 조치만도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다.운전면허시험 응시지 제한철폐,여권발급업무 전국 시·도 및 서울시 4개 구청 위임,불량상품 환불제 확대,건축허가절차 8단계 축소,경자동차 각종 혜택부여 등이 그것이다.행쇄위는 심지어 3년간 모두 2백16차례,매주 1회이상 회의를소집,역대 정부 어느 위원회보다 많이 회의를 연 부지런한 위원회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행정의 합리화,선진화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이런 점에서 우리 행정은 행쇄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아직 행정편의주의,문서위주의 후진국 행정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간혹 일제시대의 잔재가 남아있는가 하면 간소화된 선진제도가 도입됐지만 좋은 취지는 오간데 없고 나쁜 관행이 되살아나는 경우가 많다.또한 민원행정 공무원들의 불친절도 아직 문제로 남아있다. 오는 98년 2월로 임무를 마치는 행쇄위는 21세기 일류국가진입을 위한 제도개선과 생활개혁을 향후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여기에 이제까지 내놓은 수많은 쇄신조치가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내실있게 실시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마무리 작업을 추가토록 주문한다.
  • 가야금 달인 황병기씨 초청 연주회

    ◎26일부터 광주·대전·서울 등 6개도시 순회/제자들 회갑기념 사은무대 자작곡인 「남도 환상곡」 선사/찬작가곡 발표회·미 현대음아제도 참가 가야금의 연주와 작곡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황병기(61·이화여대교수)씨가 전국 6개 도시 초청공연에 나선다. 오는 26일 광주 문예회관을 시작으로 대전(5월28일·대덕과학문화센터) 부산(6월3일 부산문화회관),전주(9월5일 전북예술회관),대구(9월18일 대구문화회관),서울(11월1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96황병기 초청 전국가야금연주회」. 각 지방에서 교수활동과 연주활동에 정진하고 있는 그의 제자 성심온 성애순 박현숙 민미란 김남순 윤소희 김철진 이경자 황병주 최문진 정해임씨 등이 기획한 뜻깊은 무대다.63년 작곡된 첫 작품 「숲」을 비롯,「봄」「미궁」「침향무」 등 황교수의 가야금 창작신곡들을 제자 30여명이 연주하는 자리에 스승이 특별 연주자로 참가하는 것이다. 이 초청공연에서 그가 연주할 곡은 「남도 환상곡」.마지막 부분이 현란한 연주기교의 휘몰이로 전개되고 중간중간 느리고 비장한 계면조가 삽입된 작품으로 지난 93년 발표됐던 것이다. 『특별한 준비요? 없어요.늘 하듯 작곡 구상하고 가야금을 연주할 뿐 이지요』 후학들과 함께 가야금을 연주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면서도 자신의 가야금 소리처럼 잔잔하고 담백한 자세를 보일 뿐이다.올해 환갑을 맞은 그에게 제자들은 사은의 뜻도 담고 있지만 그쪽으로는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황교수는 지난 수십년간 공들여 짜온 가야금 산조가락 정남희제 황병기류를 최근 완성,국악계의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월북한 가야금의 달인 정남희의 제자 김윤덕선생으로부터 가야금 산조를 배운 그는 정남희제 가야금산조를 완성하기 위해 일제시대때 나온 SP판을 구입,새로운 자신의 유를 탄생시켰다.40∼50분 길이인 일반 산조와 달리 연주길이만도 70분에 달한다.『정남희제가 그러하듯 들으면 금세 솔깃해지는 대중적인 곡이 아닙니다.지적인 분위기와 구성력이 뛰어난 역동적이고 튼실한 곡이지요』 머지않아 악보 발표와 함께제자들에게 연주토록 할 계획이다.CD제작도 구상하고 있다. 오는 5월25일에는 KBS관현악단 협연으로 현대양악 작곡가 백병동,서영세(재미교포)·구본우 씨와 함께 창작가곡발표회를 갖는다.이날 초연될 그의 가곡은 한용운 시를 토대로 한 「알수없어요」.또 지난해 말 두산그룹이 창립1백주년을 맞아 그에게 위촉한 새 가야금곡 「달하 노피곰」도 마무리 작업중에 있다.8월 전후 초연될 예정. 대규모 해외 학술대회·음악제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오는 7월14일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열리는 국제 현대음악제에 참가,개막콘서트에서 연주하고 22일에는 미국 LA서 열리는 국제한국학세미나에서 「다문화속에서 고유문화의 계승」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10월에는 미국 동부지역을 순회하며 4차례 강의를 겸한 연주회를 가질 예정. 최근 서양음악에 경도돼 있는 우리 음악현실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나는 어떤 종류의 사명감도 갖고 있지 않다.당연히 그 문제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해야 할일을 게으름 피지 않고 할 뿐이라는 설명이다.매난의 기품에 비견되는 그의 가야금연주가 일상생활에 그대로 배어있는 모습이다.〈김수정 기자〉
  • 여야 후보 의외의 인물들(정가초점)

    ◎신한국­계명대 국제대학원장 조웅규·전북 여학사회장 오양순/민주당­여성단체연 공동대표 이미경·도시설계 전문가 곽영훈/자민련­이북5도 대책위원장 김허남·67년부터 JP맨 송업교 26일 발표된 신한국당 전국구 의원후보를 비롯,민주당· 자민련 전국구후보들 가운데는 뜻밖의 인물이나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들이 눈에 띈다. ▷신한국당◁ 우선 두명의 이름이 낯설다.12번의 조웅규 계명대 국제대학원장(59)과 13번의 오양순 전북여약사회장(51)이 바로 장본인들이다.모두 당선 안정권에 든다. 조교수는 미국 미주리주립대 철학박사 출신의 미국통이다.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 6·25 때 어머니와 월남했으며 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북한에서 목사로 활동하다가 정치범으로 몰려 사망했다.그는 5·16을 수치로 여기며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60년대 도미,김영삼 대통령을 지지하는 해외 민주화투쟁을 이끌어왔다.86년 계명대측의 제의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강단에 서왔으며 2년전 「한미교류협회」를 만들어 활동해왔다. 오씨는지난해 6·27 지방선거 때 신한국당 전북도지사 후보로 나온 강현욱 전 농림수산부장관을 자원봉사자로 도왔다. 그녀의 발탁은 현재 전북여성단체협의회장으로 여성의 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해온 점이 첫 이유로 꼽힌다.아울러 호남 배려 차원도 있다. 오씨는 전북 군산에서 고교를 나온뒤 7년전부터 세명약국을 운영해왔다. 이밖에 그동안 전국구 후보에 거론되어 왔던 9번의 박세환 전2군사령관(56)과 11번의 전석홍 전 전남지사(62)도 관심을 끄는 인물들이다.박씨는 ROTC 출신의 첫 4성장군으로 신한국당이 경북 영주에 지역구 후보에 공천하려고 공을 들여올 만큼 정치권 진입이 미리부터 예상되어 왔다.전 전 지사는 지난해 6·27 지방선거 때 전남지사 후보에 나서 열악한 조건에서도 선전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풀이된다.〈박대출 기자〉 ▷민주당◁ 당지도부가 여성표를 겨냥,전국구 2번에 내세운 이미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46)도 정치권에서는 생소한 인물.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실행위원,한국여성개발원 자문위원,한국여성 비정부간 기구위원회 공동대표,서울시 여성위원회 자문위원 등 굵직한 직함만도 7개나 될 정도의 마당발로 통한다.73년 한국사회선교협의체 간사로 여성운동계에 발을 디딘 뒤 20여년간 활발한 활동을 통해 여성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했다. 9번에 임명된 곽영훈(53) 당국가경영기획단장은 도시설계가 출신의 이색 정치인. 88년 서울올림픽 때 주경기장과 올림픽 공원을 설계하는 데 깊이 참여했고 93년 대전엑스포박람회장 건설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경기고와 미국 MIT 공대 출신으로 나이지리아의 아부야시와 이집트 시나이시설계,필리핀 수비크만 개발등에 참여하며 도시건축가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다. ▷자민련◁ 당선가능권 전국구 후보자 가운데 생소한 얼굴을 꼽는다면 후보순위 4번의 김허남 이북5도대책위원장(75)과 10번의 강종희 전 거창지구당위원장(60)을 들 수 있다.또 당료출신인 11번 송업교 정책연구실장(55)등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김위원장은 만주 간도성 출신으로 현지에서 고등학교를 마친뒤 해방 이후 서울 법대에서 수학했다.부산에서 지난 91년까지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75년부터는 민주시민교육연구회등 사회단체에서 지난 82년에는 학교법인 영도의숙을 설립했으며 93년 부산시의원에 당선됐다.상당한 재력가로 알져졌다. 강 전 위원장은 거창농림고를 거쳐 경희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송실장은 지난 67년 공채 3기로 공화당에 들어온 뒤 신공화민주당·민자당·자민련으로 당이 바뀔 때마다 김종필 총재를 보좌한 전형적인 「JP맨」이다.당료 출신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백문일 기자〉
  • 일 AIDS감염 혈액제제 파문 확산

    ◎일 정부­제약사 결탁 감염위험 은폐/80년내 이후 혈우병환자 1천8백명 에이즈 감염/731부대 출신 창업주 실험자료 팔아 전범 면죄/미 자회사 전사장 “한국 유입 가능성” 제기 혈액제제를 지속적으로 사용해야하는 혈우병환자들이 일본에서 정부관료와 제약회사가 짝짜꿍이 되어 속이는 바람에 대거 에이즈에 걸린 사실이 밝혀져 일본사회를 떠들썩하게하고 있다.지난 80년대 중반 혈우병 환자가 사용하던 비가열 혈액제제가 에이즈를 감염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후생성관료와 제약회사가 결탁,가열제제로 바꾸지 않고 방치해 약 1천8백명의 혈우병환자들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이다. 비가열 혈액제제등에 의한 에이즈감염사실이 처음 보고된 것은 지난 82년 미국에서였다.이에따라 미국식품의약국(FDA)은 83년부터 혈액제제에 열을 가해 에이즈바이러스를 죽이는 가열제제방식을 사용토록 지시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가열제제의 승인이 85년으로 늦춰져 혈우병환자의 에이즈 감염이 크게 늘었다.에이즈환자들중 혈우병환자가 무려 73%나 차지하고 있어 혈액제제에 따른 에이즈감염이 커다란 문제가 돼왔다.피해자들은 이같은 결과가 가열제제의 승인이 늦어진데 따른 것이라면서 국가와 제약회사들의 책임인정과 함께 후생성 관련 기록의 공개도 요구해왔다. 후생성은 그러나 관련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면서 관료주의적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그러던중 지난 1월 취임한 간 나오토(관직인)후생상이 그동안의 후생성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밝혀냈다.그는 취임 직후 자료조사팀을 구성,며칠만에 83년 7월 두차례 후생성 주관으로 혈우병 학자 아베 다케시(안부영) 교수가 주도한 검토회의 자료를 찾아낸 것이다. 검토회의 자료는 더욱이 국가와 제약회사들이 83년 이미 비가열제제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었다.또 첫 회의때 가열제제 승인으로 기울다가 두번째 회의에서는 비가열제제로 기우는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점도 드러났다.이 과정에서 일본내 최대 혈액제제 제약회사인 미도리주지(녹십자)사와 관계가 밀접했던 아베교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일본에서의 가열제제 승인은 85년으로 늦춰졌다. 그런가 하면 미도리주지사는 86년 말까지 1년여동안 비가열제제를 계속 출하했다.미도리주지사는 미국에서 비가열제제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자 대량 수입,이의 소진을 위해 가열제제 승인 지연에 필사적이었음도 드러났다. 일본정부와 제약회사는 피해자들에게 4천5백만엔의 일시금과 15만엔의 건강관리비등을 매달 지급하라는 법원의 화해안을 받아들여 에이즈사건은 일단 해결과정에 들어섰지만 아베 교수와 미도리주지사의 당시 사장은 살인죄로 고발당한데다 일본 검찰도 수사에 나서고 있어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미도리주지사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혈액수요가 급증한 50년 11월 「일본 혈액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회장인 나이토 료이치등 설립자들은 일제시대 만주에서 자행한 인간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았던 731부대출신자들.이들은 전후 미국과 협상,생체실험 결과를 넘기는 대신 전범 처리를 면한 자들이다.이들은 더 나아가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생체실험한 데이터를 적극 활용,사업가로 변신한 셈이다. 한국의 경우 최근까지 확인된 5백37명의 에이즈환자 가운데 17명이 혈우병환자다.일본에 비해 매우 적지만 이들중 일부는 혈액제제에 의한 감염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울대의대 임상병리학과 조한익 교수는 『혈액제제에 의한 감염자의 경우 대부분 외국제 혈액제제에 의한 감염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국산혈액제제가 부족하면 일본 것을 들여와 쓴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일본 미도리주지사의 미국 자회사 알파 테러퓨틱사에서 81∼83년 사장직을 역임했던 토머스 드리스씨는 최근 본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비가열혈액제제에 의해 에이즈감염 피해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 『매우 높다』고 단언했다.
  • 3·1절 새 감회(외언내언)

    올해 77번째 3·1절을 맞는 감회는 예년과 좀 다른것 같다.우리 후손들로선 무언가 새롭고,선열들에게도 떳떳하다는 느낌이다.광복 50주년을 맞아 작년 8월 단행된 구총독부청사 철거개시작업이 민족정기를 새롭게 일깨운 결과일 것이다. 지금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국민적 일체감이 그 어느때보다 단단하게 조성된 것도 일제 잔재 청산을 통해 바로잡힌 민족정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해방후 나라의 토대를 잡기도 전에 6·25라는 동족상잔 때문에 일제 잔재 척결을 철저히 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물론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정권의 소극적인 대처도 문제였다.그 결과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의 상징인 총독부 청사가 해방 50년이 되도록 버젓이 서있었던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로 둔갑해 아직도 대한민국의 상훈록에 버젓이 등재돼 있다는 사실이다.지금 우리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로 대표되는 역사 바로잡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친일파 문제도 바로 이 역사 바로잡기 차원에서,민족정기 회복차원에서 재정리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보훈처는 독립유공자들 가운데 일제시대 친일파와 부역자였던 사실이 밝혀질 경우 이들의 상훈을 박탈할 방침이라고 한다.이를 위해 보훈처는 관계실무자와 사학계 교수들로 심사위원회를 구성,1895년 을미사변부터 해방때까지 항일활동으로 독립유공자로 선정,포상된 7천9백여명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정밀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길게는 1백년전,짧게는 50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친일행적을 색출해 상훈을 박탈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또 문민정부 출범초 이와 유사한 계획이 친일파 후손들의 방해로 좌절됐던 일을 상기한다면 웬만큼 강한 의지가 아니고선 이 일을 추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역사 바로잡기 운동은 친일파 정리문제에서도 새 국면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 「국민학교」 명칭 역사속으로/오늘부터 「초등학교」로 모두 바꿔

    ◎55년만에 교육계 일제잔재 청산 일제시대부터 사용해온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3·1절 77주년을 기해 55년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진다.전국 6천7백89개 국민학교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이날부터 「초등학교」로 바뀐다. 단순히 이름을 바꾼다는 차원을 넘어 교육계에 남아있던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더 크다.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일제 강점기인 지난 41년 2월 공포된 히로히토 일왕의 칙령 1백48호(국민학교령)에 의해 태어났다. 학계에서는 『황국신민의 「국」자와 「민」자를 딴 것으로 한민족을 황국신민으로 만들어 대동아 공영권 형성에 충직한 전시요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줄기차게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외쳐왔다.
  • 지역주의 아성에 개혁탄 공세/신한국 이회창 의장의 호남 유세

    ◎“정치편의로 생긴 지역감정 타파” 호소/“서해안시대 도래… 호남개발 필연” 역설 「이회창호」가 호남에 첫 상륙했다.국민회의의 교두보인 전북의 2개 지역에 함포 사격을 퍼부었다.「지역주의」의 전선이 뿌리깊었지만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개혁탄」의 선제 공세가 만만치 않았다. 신한국당의 이회창 선대위의장은 27일 전북 완주지구당(위원장 강상원 전 전북지사)과 진안·무주·장수지구당(위원장 정장현의원) 임시대회에 잇따라 출정,지역주의에서 벗어난 「결단의 한표」를 호소했다.특히 「신한국당은 지역주의를 초월한 정당」이라며 「지역발전과 새로운 정치를 위해」 개혁대열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이의장은 3시간 간격으로 완주군 삼례초등학교와 진안군민회관에서 열린 지구당대회에서 격려사를 통해 『더이상 지역주의에 얽매이면 발전은 물론 안정도 되지 않고 큰 일이 날 것 같아 정계에 입문했다』고 운을 뗐다.그는 국민회의를 겨냥,『자기 고장에 애정과 긍지를 갖고 다른 지역과 선의로 경쟁·협력하는 지역감정은 결코 나쁘지않다』면서 『그러나 정치인들이 이를 악용,특정지역 출신끼리 똘똘 뭉쳐 피해의식을 갖고 다른 고장을 배척하는 것은 엄청난 폐단을 몰고 올 수 있다』며 지역주의에 바탕을 둔 붕당정치를 거세게 비난했다.호남 푸대접의 원인을 『일제시대 경부철도선을 축으로 개발을 시작한데다 중국·북한의 공산화로 서해안이 경제무대로서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군사독재의 개발과정에서 영남권이 주축이 된 점도 솔직히 시인한다』고 덧붙였다. 대안과 비전도 내놓았다.『멀지않아 중국 개방으로 인한 서해안시대의 도래로 호남권이 서울을 발판으로 대륙으로 뻗어가는 경제발전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칠 것』이라고 내다봤다.그러므로 호남은 더이상 「응어리진 과거로 자신을 한계에 가두지 말고,자존심을 갖고」 세계로 당당히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경사」(역사를 곧게 한다)라는 호에 걸맞게 정치편의에 의해 비뚤어진 지역감정을 말끔히 씻어내자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마당도 지역연고로 뭉쳐진 정당의 한계에 묶일 필요가 없다고 역설했다.특정 지역에 연연하지 않는 정당으로서 총선 승리를 계기로 「지역간 대립을 바탕으로 한 3김구도를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한 촌부는 『총선에서 「죽어도 다시 한번」이라고들 하지만 개발이 뒤떨어져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고 3김도 다 싫다』면서 『여당이 영입한 대쪽 선비가 인물은 인물인데…』라며 초등학교 행사장을 기웃거렸다.
  • 교내폭행 1년이나 당했다니(사설)

    라이터 불로 손가락 지지기,송곳으로 손바닥 찍기,칼로 온몸 긋기,화장실에 가두기….일제시대의 고문얘기가 아니다.우정과 청운의 꿈을 키워가며 정의감에 불타야 할 나이인 서울의 고교 2년생 5명이 심장병으로 몸이 허약한 급우에게 가한 집단폭행의 예다. 1년간 50여차례나 온갖 수모를 당한 그 딱한 학생의 고통이 어떠했을까.더욱이 다른 급우들이 집단폭행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니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우리 청소년들이 어쩌다 이토록 정서가 메마른 폭력적·가학적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이번 사건은 정부가 1백여명의 학원폭력담당 검사를 임명해 위험수위를 넘은 학원폭력 근절에 나선 가운데 불거져 나온 것이어서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제공한다.학원폭력은 검·경의 힘만으로는 결코 근절될 수 없다는 것이다.학교와교사,학부모와 사회전체가 나서야만 하는 것이다. 경찰은 지난 연말 2개월에 걸쳐 학원주변 폭력배 2만9천여명을 적발,9천여명을 구속했었다.또 서울지검은 지난 1월말 서울시내 6백31개 중·고교중 3백14개교로부터5백14명의 「우범학생」 명단을 통보받아 고민 상담을 해주는 등 특별관리에 들어갔다.그러나 이로써 학원내 폭력의 뿌리가 뽑힌 것은 아니다. 물론 등·하교길의 불량청소년,조직화된 10대 폭력배들에 의한 폭행과 금품갈취 등 학교밖 폭력범죄는 공권력에 의해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때문에 검·경의 단속조치도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든 청소년폭력의 싹이랄 수 있는 이번과 같은 학교내 집단폭행이 교사들의 교육적 노력과 학부모들의 협조아래 자체적으로 근절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1년여나 공공연하게 자행된 집단폭행을 방치한 교사는 교육자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학원내 폭력의 양상이 교사가 손댈 수 없는 지경으로 가버렸다는 변명은 직무유기의 핑계일 뿐이다.당국만 바라보지 말고 학원폭력 근절에 학교와 교사가 적극 나서야 한다.
  • 데라우치문고 백35점 24일 한국 반환/추사 서예집 포함

    【마산=강원식기자】 일본 야마구치여대가 한국에 반환하기로 한 한국관련 자료 1백35점이 마침내 오는 24일 국내로 돌아오게 됐다.이 자료는 일제시대의 조선총독 데라우치가 수집,일본 야마구치여대가 보관하고 있다. 경남대(총장 박재규)는 이정수 교수(64·일어교육학과)와 김봉렬교수(44·사학)로 구성된 인수단이 오는 22일 현지에서 이 자료들을 확인한 뒤 24일 김해공항을 통해 들여올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반환되는 자료들은 야마구치여대 「데라우치 문고」가 보관하고 있는 1천5백여점 중 98종·1백35점이며 추사 김정희의 서예집 「원당법첩주눌인서」 등이 포함돼 있다.
  • 원로시인 김상옥씨/일제때 시동인지 「맥」 재창간

    ◎37년 박남수·임화·함윤수씨 등 주축 창간/“순우리말 잡지” 이유로 일제 핍박… 자진 정간/“시류 휩쓸리지않는 좋은 작품 게재할것” 『절대로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이 나라의 옳은 문학작품을 찾아내는 눈이 필요해요.한국에서 가장 좋은 시잡지로 키울겁니다』 원로시인 김상옥(76)씨가 일제치하에서 중단됐던 동인지 「맥」을 재창간하며 불같은 일성을 내뿜었다. 「맥」은 지난 37년 박남수·임화·황민·김용호·함윤수씨 등 후일 한국문학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 문학청년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계간 시전문지.가난한 인쇄소 공원이었던 김씨는 17세 최연소로 「맥」동인에 가세했다. 『당시 책은 서울서 꽤 큰 한성인쇄주식회사에서 나왔고 함북 청진과 평양 등엔 지부도 있었어요.경향각지에서 모인 동인들은 모두 애국청년들이긴 했지만 서정시를 위주로 발표했구요.그러나 태평양전쟁 준비에 혈안이 돼있던 일본은 「맥」이 순우리말 잡지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비밀결사로 몰아갔지요.그 등쌀에 못견뎌 한 너댓권 내고 그만 자진 정간해버렸어요』 「맥」은 꿈만 먹고 산다는 신화속의 짐승으로 예술가의 상징인데다 조선민족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고. 당시 동인들중 「이식문화론」으로 유명한 평론가 임화는 월북했다 처형당하는 비참한 종말을 맞았고 서울신문사주최 제2회 공초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재미시인 박남수씨도 얼마전 타계하는 등 김씨를 빼곤 거의 유명을 달리했다.김씨가 복간을 서두른 데는 『이렇게 가다간 「맥」이 기억속에서 영영 지워져버릴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크게 작용했다.현재 문단이 와해직전에 있다는 위기감도 또 하나의 이유. 『요즘 문인들중 작품으로 승부하는 이들이 몇이나 됩니까? 조금만 이름얻었다 하면 되는 이 안되는 이 마구잡이로 추천,문인의 질이나 떨어뜨리고 문단정치에나 기웃거리는 한심한 작태가 태반입니다.일제시대 「맥」의 정신이 그랬듯이 글하나로 비뚤어진 문단을 뜨끔하게 만들겁니다』 중창 첫호엔 고결한 자연을 인간사와 비겨 주로 시조형식에 담은 김씨의 시 12편이 실렸다.한국의 대표적 수필가로 꼽히는 피천득씨의 신작시 7편(「꽃씨와 도둑」「어떤 오후」 등)도 눈길을 끈다.새로운 동인 노중석·이종문·김원길·송화선·조동화 시인도 시조를 보탰고 평론·수필·신간평 등도 실렸다. 『가끔 시조시인이란 말을 접하는데 시인 따로있고 시조시인 따로있습니까?이건 시조를 시의 서자쯤 취급하는 시조의 기본도 모르는 발상이에요.시조는 특정 정형률을 갖췄다뿐 가장 전통적이고 우리 정서에 닿은 대표적 한국시입니다.제대로된 작품으로 시조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는데도 분투할 생각입니다』 격월간으로 예정된 「맥」에 원고를 보내 채택되는 문인들은 원고료대신 전각가 정문경선생이 작가의 이름을 새겨준 도장을 선사받게 된다.
  • 고려석탑 등 한국문화재 11점/일 도쿄 오쿠라집고관서 확인

    ◎일 한글잡지 「월간아리랑」 보도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 도쿄시내에서 고려시대 초기 5층석탑 등 한국문화재가 대량 확인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도쿄에서 발행되는 한글잡지 월간 아리랑은 1월호 표지스토리에서 오쿠라호텔옆 오쿠라 슈코칸(집고관) 주위에 충주 탄금대 부근 정토사에서 가져간 고려시대 초기(10∼11세기) 5층석탑 등 11점의 석재문화재가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확인된 문화재가운데는 이밖에 평안남도 대동군 율리사에서 가져간 고려중기(12∼13세기) 팔각5층석탑과 조선시대 석인상4점,화표 4점,석양 등이다. 이들 문화재는 오쿠라재벌총수이던 오쿠라 기하치로(대창희팔낭)가 일제시대 한국문화재를 대량수집하면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월간 아리랑대표 김종영씨는 『보존상태가 좋을뿐 아니라 고려시대 초기 석탑 등 시기적으로도 문화재가치가 높은 것같다』면서 『옥외에 있는 이들 문화재뿐 아니라 슈코칸 내부에도 한국문화재가 다량 소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한편 오쿠라호텔측은 경복궁에서 가져간 자선당을 최근 삼성문화재단을 통해 한국에 돌려보낸 바 있다.
  • “간척지 논·밭 겸용으로 개발”(공직자의 소리)

    ◎기계영농 가능하도록 필지도 대규모화 우리나라에 있어서 간척사업은 대체로 개화기 이전의 농촌사회에서의 자급영농지의 조성 및 군량미 확보를 위한 사업추진 단계를 거쳐 일제시대에서의 식량수탈 정책의 일환으로 사업을 추진하던 단계를 지나,지난 60년대 이후부터는 경제개발계획에 부응하고 식량자급기반 달성을 위해 정부와 민간에 의해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사업의 추진으로 국토의 확장뿐만 아니라 주곡의 자급기반을 조성하고 농어촌의 소득증대와 고용기회의 확충으로 농어촌의 경제발전과 농어촌의 생활환경개선에 적극 기여하여 왔었다. 우리나라 국토면적은 1994년 현재 9백9십3만9천ha로서 절대면적이 협소하며,이중 경제적 이용이 어려운 산지가 6백4십5만6천ha로서 전국토의 65%에 달하는 등 국토자원이 빈약하고,또한 기계화,규모화 영농이 가능한 평지 면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산업화·도시화 등으로 지속적으로 농지가 타용도로 전용되는 등 농경지의 절대면적은 90년이후 지난 5년간 연평균 1만5천ha씩감소되고 있으며,1차 산업 종사인력이 2·3차 산업으로 흡수되면서 발생하는 이농현상으로 인해 농업인구감소와 함께 농업 노동력이 노령화·부녀화되고,기계화 영농이 불가능한 한계농지도 94년말 현재 6만3천ha에 달하고 있는 등 농업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바,농업구조개선을 위한 농지 규모화와 과학영농이 가능한 신규 우량농지의 확대개발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특히,간척지의 개발은 지력이 높아 쌀 품질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광활한 면적에 대해 원격조정에 의한 자동 물관리,항공기를 이용한 파종 및 농약살포 등이 가능하게 되어 쌀생산비를 낮춤으로써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수자원 확보와 수질의 합리적 관리로 용수를 효율적으로 공급,연안역 일대의 부족한 용수 해결과 연안역 주민들의 생활여건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간척사업은 토지이용측면에서 볼 때 98% 정도가 농업진흥지역으로서 집단화된 우량농경지로 조성될 뿐만 아니라 택지조성,경지정리,배후지 저지대의 배수개선,육운·유통 구조개선,관광·항만 개발여건 조성 및 수자원의 조성 등 타산업 발전효과도 매우 크기 때문에 농업은 물론 국가경제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간척지 개발은 인구증가,경제 및 사회발전 등으로 인하여 급증하는 토지수요에 적극 대처함은 물론,주곡인 쌀의 자급유지와 향후 남북통일에 대비하여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우량농경지의 절대면적을 확보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어장의 오염 및 퇴적 등으로 효용가치가 상실 또는 저하된 간척지의 효율적인 이용으로 농어촌정주생활권 조성 등 개방화에 대응하는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간척지의 개발·확보는 매우 의미있는 중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농림수산부에서는 최근 생활의 질이 향상되고 환경 및 수산자원 보전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간척사업 시행에 따른 어업피해보상 규모가 확대되는 등 간척농지 개발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대두됨에 따라 그 동안의 간척지의 개발위주정책에서 탈피하여 수산·환경보전 등 비경제적 요인까지 고려하여 지금까지 기술적으로 가능한 간척농지개발대상지40만2천ha를 장기적인 계획아래 20만8천ha로 대폭 축소·조정하여 19만4천ha를 제외하여 시행키로 하였으며,간척농지개발사업을 시행함에 있어 단순한 논위주의 개발을 지양하고 논·밭 겸용으로 이용이 가능하도록 개발하여 농지 이용률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여 내연적인 농지확대도 도모하기로 하는 한편,대형농기계에 의한 기계화 영농이 가능하도록 필지 규모도 대구획으로 개발해 나가기로 하였다.
  • 네팔 룸비니동산에 첫 한국 사찰 건립

    ◎조계종 대성 석가사 기공… 2005년 완공/통일신라 건축양식… 석가·다보탑 재현 2천5백년전 석가모니가 태어난 네팔의 룸비니 동산에 처음으로 한국 사찰이 건립된다. 대한불교 조계종 대각사(주지 불심도문스님)는 6일 상오 네팔의 룸비니 국제사원구역에 통일 신라시대의 사찰 건축양식을 본뜬 한국사찰 대성 석가사 기공식을 가졌다. 이날 기공식에는 대각사 주지 불심도문 스님과 네팔주재 한국 성정경 대사,네팔 불교회신도회장이며 네팔 문화교육부 룸비니개발위원회 고문인 록 다산,대각사 신도등 5백여명이 참석했다. 도문 스님은 기공식에서 『대성석가사의 기공은 1천6백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불교 세계화의 첫걸음』이라며 『앞으로 인도와 중국에도 한국사찰을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성 석가사는 가로 세로가 각기 1백60m의 정방형 부지의 8천여평 규모이나 앞으로 3배 이상 확장해서 2만평정도의 공간을 확보할 예정이다. 석가사의 기본 설계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홍광표 교수가 맡고 공사는 한국네팔합자기술회사 코네코(사장 정현일)가 담당한다. 석가사는 5백평규모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설법전,선원,강원,율원,요사체,종각,고루등 10여개의 건물을 만다라 형식으로 배치하는 기본 건축을 한뒤 회의실과 식당,숙소등의 현대식 건물 「한국의 집」도 지을 예정이다.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재현한 석탑과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연못과 돌다리도 들어선다. 총 공사비 1백억원이 소요되어 10년 간 공사끝에 오는 2천5년에 공사를 끝낼 이곳에는 한국승려들의 유학시설도 갖추게 된다. 석가모니 탄생당시 인도 가필라국에 속했던 룸비니 동산은 현재 중국·일본·버마등 세계각국의 불교신자들이 성지순례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세계적인 고적지이다. 대각사가 룸비니에 한국절을 세우는 것은 일제시대 종로구 봉익동에 대각사를 처음 세운 백용성스님의 유언에 따른것.3·1운동 당시 33인중의 한분이었던 백용성스님은 일제 시대에 우리가 독립을 해서 세계적인 국가되면 부처님이 탄생한 네팔의 룸비니동산,성도지인 보리수원,최초의 설법지인 녹야원,열반지인 사라 쌍수원등지에 한국불교계가 기념 사찰을 건립하고 주도적으로 가꾸라는 유훈을 남겼다.
  • 군부내 공산세력 조직적 활동 첫확인/「김창룡 일지」를 보고

    ◎「숙군 작업중 마찰」등 피살 배경 밝혀져/이중업 탈주­고희두 사건 내막도 담겨 김창룡 중장은 어떤 인물이며,육군 특무부대장으로서 어떤 일을 하였고,왜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피살될 수밖에 없었는가.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자료 「김창룡일지」를 서울신문이 발굴했다.당시 주한미대사관 1등서기관 존스가 번역한 것으로 1957년 2월20일 국무부로 보내진 것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비밀일지 전문을 찾기 위해 탐문중에 있지만 우선 흥미를 끄는 부분이 많다.베일에 쌓여 있는 「김창룡암살사건」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김창룡은 일제시대 관동군에서 특무공작에 종사하였으며,해방후 육사3기로 입대하였다.그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동기생 가운데 김지회 ·홍순석·박호산 등 약 8할이 공산주의자였다고 한다.일지는 당시 불법화된 공산당에서는 이중업을 시켜 조선경비대에 공산계열을 침투시킬 것을 계획하고,이재복을 군사책,김영식을 군사레포로 하여 2만여명정도의 공산주의자 혹은 그 동조자를 군내에 조직하였다고밝혔다.경비대 간부는 물론 생도대장 오일균,교수부장 조병건 등 육사 간부급 거의 전부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점유되었던 것이다.김창룡의 「타공」은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정황을 읽을 수 있다. 육사 졸업후 김창룡은 제1연대 정보참모부에 배속받았다.거기서 그의 숙군작업이 시작되었다.통위부 고문관 가소(Kasso)소령이 그를 적극 후원했다는 사실도 이 일지를 통해 알 수 있게 되었다.김창룡은 경비대총사령관 송호성 준장도 공산주의자와 내통하고 있었다고 밝혔는데 그것은 이재복과 김영식의 채포에 의해 밝혀졌다.다시 말하면 군내에 침투한 공산주의자의 명단및 공작금수령 영수증등의 자료에서 입증했다. 송호성에 대하여 김창룡은 숙군에 앞장선 자신을 6회에 걸쳐 전출시켰고,여순반란사건을 일으킨 육군 제14연대 최남근 연대장등은 적극 비호했다고 규탄한다.송호성이 공산주의자와 연계했었다는 김창룡의 판단은 정확했다.송호성은 뒷날 월북하여 1956년 「재북평화통일협의회」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김창룡은 정부수립후 방첩대장으로서숙군을 위하여 서대문형무소에 한 방을 얻어 부하들과 그곳에서 기거하는 과정에서 남로당 조직총책 이중업을 체포하여 남로당을 붕괴시키기에 이른다.그의 일지에는 이중업의 육군형무소 탈주사건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이 사건에는 김형륙과 여간첩 김수임 및 그의 정부이던 베트중령등이 관련된 것으로 말한다. 비밀일지에서는 1949년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고희두 사건에 대하여 그 내막과 이면에 얽힌 이야기도 자세히 정리하고 있다.사건을 직접 조사한 당사자가 아니면 알려지지 않을 내용들이다. 김창룡은 한국전쟁시기와 그 이후에도 반공의 최선봉에서 활약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적을 만들었고,그에 대한 살해위협도 계속되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 「법조인 사표」 초대 대법원장 가인선생 흉상 제막

    ◎“혼탁한 세상… 당신의 강직한 삶을 기립니다”/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 법원 백년사 전시실도 열어 대법원은 24일 상오 11시 서울 서초동 신청사에서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1887∼1964)선생의 흉상제막식과 법원사 전시실 개관식을 동시에 가졌다. 근대 사법 1백주년을 기념하고 사법 2세기를 시작하는 의미로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최종영 법원행정처장 등 대법원 관계자와 가인선생의 장손 김완규씨를 비롯한 유족 등 1백여명이 참석했으며 특히 가인선생의 손자로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수사와 관련,검찰에 소환됐던 김종인 전청와대경제수석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일제시대때 항일 독립투사였던 가인선생은 건국 이후 48년8월부터 57년12월까지 초대 대법원장을 지내면서 사법부의 기틀을 다진 민족주의자였으며 청렴강직한 원칙론자로서 모든 법조인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또 흉상의 맞은편 1층에 문을 연 42평 규모의 전시실에는 법원 1백년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사진과 유물·유품 등 1백여점이 「사법의 역사」「법과 정신문화」「법과 시민생활」 등 3개 구역으로 나누어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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