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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조망 너머 금강산이‘오라’손짓(휴전선 해빙의 시대 오는가:下)

    ◎鄭周永씨 訪北후 통일전망대 관광객 북적/명파리 주민들도 “北行 뱃길 열린다” 부푼꿈 그리운 금강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은 더욱 가까이 보였다. 꿈속에서나 갈 수 있었던 세계적인 절경 금강산.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꿈이 아니다. 자연예술의 극치인 아름다운 금강산을 현실세계에서도 갈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금강산을 향한 유람선이 오는 가을 속초를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 鄭周永 현대명예회장이 최근 북한을 방문,금강산개발에 합의한 후 현대그룹은 9월에 유람선을 띄우겠다고 밝혔다. 북한으로 떠나는 유람선은 한국관광객 뿐만이 아니라 남북 해빙의 염원도 함께 태우고 떠날 것이다. 유람선의 고동소리는 남북 화해의 새시대를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모두 바라고 있다. ○남북 화해 새시대 바라 24일 하오 기자가 찾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동해안 절벽위의 통일전망대에는 북녘땅의 금강산을 보기 위해 몰려든 방문객들로 북적댔다. 이들은 이미 금강산을 갈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늘이 맑게 개지못해 실망스런 표정들이었지만 망원렌즈를 가까이 들이대는 이들의 눈길에는 애절함이 배어 있었다. 우뚝 솟은 비로봉을 경계로 펼쳐진 외금강 신금강 해금강 내금강의 아름다운 자태에 지그시 눈을 감는 모습도 보였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금강산에 대한 화답인 듯 했다. 통일전망대에서 해안쪽으로 내려오다 인근에 사는 촌로를 만났다. 명파리에 사는 李씨(76)라고만 소개한 그는 “광복 당시 양양에서 금강산 자락을 거쳐 원산으로 가는 동해 북부선 기차가 지나 다니던 터널을 보기 위해 왔다”며 “죽기 전에 철길이 다시 복원돼 기차로 금강산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감회에 젖었다. 그가 안내하는 터널은 6·25의 상흔을 간직한 채 잡초들만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터널입구 벽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조국’이라는 글자가 분단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철로 흔적 조차 없어 양양쪽으로는 아예 철로의 흔적조차 찾아 보기 어려웠다. 방문객들마다 녹슨 철로라도 보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다는 게 안내장교의 얘기였다. 李씨에게 이곳을 자주 찾느냐고 묻자 “최근까지는 거의 찾은 적이 없었다”며 “그러나 鄭周永씨의 방북으로 늙은이의 마음이 동요된 탓인지 요즘은 가끔 들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명파리 주민들의 마음은 지금 콩밭에 가있을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명파리 마을은 동해안 38선에서 북으로 84㎞지점인 통일전망대 바로 밑에 위치한 140여가구의 자그마한 동네. 대부분이 이곳에서만 살아왔으며 휴전선이 그어지기 전까지는 금강산을 내집 드나들 듯 했다. 금강산에 남다른 감회를 갖는 것도 이유가 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李씨의 말대로 들뜬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도로 옆쪽으로 쭉 늘어선 음식점이나 상점 등의 간판이름이 눈에 쏙 들어왔다. 평양,함흥,금수강산,원산 등 북한지명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96년 명파리 마을이 민통선 지역에서 해제된 뒤부터 생긴 변화중의 하나라고 귀뜀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주민들은 “금강산은 마을 노인들의 옛 휴식처였다”고 남북 해빙 움직임을 반겼다. 동네 노인정을 금강산자락 밑으로 옮겨야 되지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鄭周永씨가 부풀린 기대감 탓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소 부정적 생각을 가진 주민들도 있었다. ‘그리 쉽게 되겠느냐’는 의구심이다. 李성찬씨(65)는 “북한이 그동안 한 짓을 보면 언제 마음이 변할 지 모르겠다”며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라며 못내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李씨는 명파리 사람들이 원하는 ‘금강산구경’이 뭐겠느냐고 되물었다. “명파리 사람들은 매일 매일 분단의 아픔을 삼키며 삽니다. 한 때의 급류타기가 아니라 모두가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신뢰의 분위기가 더 중요합니다” ○마을노인들 옛 휴식처 그는 “鄭周永씨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잠수정이 발견된 것을 보면 남북화해에 대해 아직은 섣불리 착각에 빠져 들 때가 아닌 것 같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철조망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금강산이 꿈에만 그리는 ‘금단의 땅’은 아닐 것”이라며 “鄭周永씨의 방북이 대립과 갈등으로 지속돼온 남북관계가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로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6·25가 터진지 어언 48년. 홍안의 나이는 반세기의 나이테를 더했지만 아직도 어릴 적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명파리의 노인들에게 금강산은 ‘마음의 고향’일지도 모른다. 녹슨 철길이 다시 놓이고,속초항에서 출발하는 금강산 관광유람선의 고동이 울리는 그날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 ‘명파리 마을’사람들. 분단을 아픔을 뒤로 한 채 이들의 마음은 벌써 금강산에 가 있는 듯 하다. ◎“분단 현실 한스러울 뿐”/6·25 당시 북한군 철교 폭파장면 생생/철교 기둥에 박힌 총탁 상흔도 그대로 ◎“분단 현실 한스러울 뿐”/6·25 당시 북한군 철교 폭파장면 생생/철교 기둥에 박힌 총탄 상흔도 그대로/배봉리주민 朴在奉씨 “금강산 구경요. 그 좋죠. 조만간 갈 수 있다니까 아마도 내가 제일 먼저 갈 겁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배봉리에 사는 朴在奉씨(83)는 금강산 얘기가 나오자 어린애처럼 즐거워 했다. 한평생을 여기서 살아왔기에 금강산에대한 일화는 몇날이 걸려도 얘기를 다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朴씨가 사는 배봉리는 통일전망대 아래의 명파리와 불과 1㎞ 남짓 떨어진 곳으로 6·25 당시 동네 개천가 앞의 철교와 터널이 북한군의 폭격으로 폐허화됐던 곳. 철교 기둥에 박힌 총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연신 담배를 빨아들인 뒤 말문을 연 그는 “비로봉 구룡폭포 내금강 외금강 등 금강산은 안 가본 데가 없다”며 “못가는 안타까움보다는 가로막힌 현실이 더 한스러울 따름”이라고 분단의 아픔을 토로했다. “보통학교 시절 금강산을 가기 위해 친구들을 많이 꼬드겼어요. 인근 사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삼일포역에서 내린 뒤 걸어서 온정리로 들어갔지요. 한두어시간 걸렸나요. 그리고는 원정탕에 들러 몸을 깨끗이 씻지요. 명산에 들어갈 때는 몸을 단정히 해야 하거든요”이어 “금강산에서 친구들과 날밤을 새기가 일쑤였다”며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마다 들르던 단골집이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수시로 들락거리던 금강산에 발길을 끊게된 것은 8·15광복과 함께이곳이 공산당에 접수되면서부터. 감시가 워낙 심해 놀러 다닐 분위기가 안됐다. 그러다 6·25를 맞으면서 금강산은 추억속으로 들어갔다. 일제시대 동네앞 철교를 놓을 당시 잡부로 공사일을 한 적이 있는데 6·25때는 북한이 양양으로 가는 이 철교를 부수기 위해 폭격을 한 현장도 목격했다고 회고했다. “옛 친구들이 모두 저승으로 가 금강산을 다시 찾는데도 혼자 밖에 갈 수 없게 됐다”며 “한평생 이곳을 지킨 노인네로서 느끼는 점은 부서진 철교가 다시 복원될 때 분단의 역사는 진정 그칠 수 있다는 확신뿐”이라며 총총히 발걸음을 돌렸다.
  • ‘품바’ 4,000회 기념 축하공연 28일까지

    ◎각설이만도 못한 ‘잘난 사람들’ 한국 현대사를 각설이의 눈으로 풍자한 마당극 ‘품바’가 탄생 18주년을 맞아 4,000회 특별 축하공연을 준비했다.오늘부터 28일까지 서울 호암아트홀. 품바는 지난 81년 초연된 이래,전국을 순회하며 화제가 됐던 장기공연작.각설이 한명이 등장,일제시대부터 해방후,자유당말기까지 각설이패들의 저항역사,그 윤리 등을 들려준다.재물과 지위를 가졌으되 각설이만도 못한 사람들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꼬집는 작품. 원래 일인 모노드라마지만 이번엔 여자품바와 악사 5∼6명이 함께 나서 흥을 돋울 계획.6대 품바 김규형이 품바역을 맡고 10대 여자품바인 박해미가 우정출연한다.그밖에 품바의 작·연출자인 김시라씨가 특별출연,타령을 부르고 4대 고수였던 김승덕씨의 북솜씨와 타령도 곁들여진다.평일 하오 4시·7시,토·일 하오 3시30분·6시30분.278­7580.
  • 경마 농림부 이관 불합리/宣相圭 체육진흥회 회장(발언대)

    말(馬)은 시대변화에 따라 역할과 기능이 다양하게 바뀌면서 인간의 삶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91년 이전에는 말을 단순한 가축으로 보아 농림부에서 관장해 왔으나 92년부터는 레저스포츠인 경마로서 주된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고 체육부에서 관장해 왔다. 그런데 근래들어 마사회를 어느 행정부서에서 관장할 것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논리적 근거를 상실한 채 정치적인 목적과 단순한 경제이익을 내세워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는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쪽으로 몰락하고 말 것이다. 말이 옛날과 같이 밭을 갈고 화물을 운반하고 식용으로 이용된다면 당연히 농림부의 관장을 받아야 마땅하다.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그 주된 기능과 역할이 레저스포츠인 경마에 맞춰져 있다면 문화관광부에 속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논리적 근거를 요약한다면 첫째 현재 말은 기능상 경마가 목적이란 점,둘째 경마는 말이 사람과 조화를 이뤄 만들어 내는 스포츠의 한 분야라는 점,셋째 경마가 국민의 심신건강과 여가선용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넷째 마사회의 주된 설립 목적은 경마를 하는 것이라는 점 등이다.마사회의 명칭을 영문으로 ‘Korea Racing Association’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운영 측면에서도 농림부가 관장할 때는 총 2조5,566억원이던 매출액이 문화관광부 때는 총 10조7,040억원의 실적을 올려 4.2배의 신장을 보였다.축산기금 출연도 농림부 때 343억원에서 문화관광부가 관장한뒤 1,832억원을 지원해 5.3배나 증가했다.문화관광부에서 국민 여가선용으로 활용했을 때가 경제적 운용측면에서 더 효율적이었다. 마사회의 농림부 이관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마사회의 명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마사회라는 명칭은 일제시대부터 사용해온 것으로 글자 그대로 ‘말을 사육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이번 기회에 명칭을 목적에 맞게,예를 들어 ‘한국경마회’ 등으로 개칭하여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민속박물관 민영화’시대역행 발상/崔雲植 한국민속학회장(발언대)

    정부의 96개 부처 민영화 대상에 국립 민속박물관이 포함됐다는 내용이 지난달 26일 주요 일간지에 일제히 보도됐다.IMF체제를 피부로 겪으며 정부가 거품을 없애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국민의 입장에서 환영하는 바이다.그러나 적용 대상이 적절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민속문화재는 국가재산 민속박물관은 민속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국가가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민속은 민족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의 생활을 통해 형성·전승돼온 우리 민족문화의 주류라 할 수 있다.또한 옛날부터 민속은 민족문화의 전통을 이어오며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일깨우고 민족의 일체감 조성에 크게 기여해 왔다. 일제시대 민족주의자 손진태·송석하선생 등은 전국을 다니며 민속을 조사하고 그 보존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정부수립 직후 송석하 선생은 일제치하에서 자신이 수집한 민속문화재를 중심으로 국내 최초의 국립 민족학박물관을 건립했다.그 박물관이 오늘날의 국립 민속박물관으로 성장했다. 선생은 방방곡곡을 뒤지며 수집한 민속문화재를 개인의 사유물이 아닌 국가와 민족의 공유자산으로 인식,개인박물관이 아닌 국립박물관으로 운영되길 원했다.이렇게 볼 때 국립 민속박물관을 민영화한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으로,민속문화에 대한 무지와 오류에서 나온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동일 기능을 하는 중복부처 및 과다 인원을 민영화함으로써 예산을 절약하고,인원 감축을 도모할 수 있다고 했다.그러나 국내 유일의 국립 민속박물관이 국가의 중복된 부처라고 할 수 없다. 국립 민속발물관은 현재 10명 남짓한 연구인력으로 문화재 발굴 및 관리,유물 전산화,전시,조사,보고서 발간,학술세미나 개최,사회교육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이것을 과다 인원이라고 보고 정리해야 한다는 것은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때문이다. ○상업주의 논리 적용 위험 정부는 민영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서비스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민족문화를 이어가며 세계에 알려야 하는 국립 민속박물관에 그런 상업주의 논리를 적용해서는 안된다.더욱이 국립 민속박물관을 민영화함으로써 얻게 될 수익성이나 서비스 개선이 지금까지 민속박물관을 국립으로 운영하면서 제공했던 민족문화의 정통성에 관한 인식과 국민의 문화욕구 충족을 상쇄할 수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문화사업은 단순히 경제성과 경쟁력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정부는 국립 민속박물관의 민영화가 정부나 국민 어느 쪽에도 혜택이나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것임을 깨닫고,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며,정책 입안이 타당한지를 재검토 해주기 바란다. 국립 민속박물관은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민족정신의 계승을 위해 국가의 역량을 결집하여 육성해야 할 기관이다.현재 민속학 연구가 활발하지 못하기 때문에 민속학 연구를 더욱 지원해야 한다.국립 민속박물관은 한국 민속학 연구의 중추 기관으로 민속학 연구를 선도하게 해야 한다.그리고 통일된 조국의 문화에 대한 깊은 연구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민족문화 연구 터전으로 정부는 이러한 점을 깊이 생각하여 국립 민속박물관의 민영화 계획을 백지화함은 물론,오히려 예산의 증액과 연구인력의 증강을 과감하게 추진하여야 한다.민속박물관이 21세기 민족문화 연구의 근거지로서,전초기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 국립묘지·열사릉 교환참배(김삼웅 칼럼)

    ○유족 상호방문 성묘토록 남한이나 북한이나 일제시대 민족해방을 위해 투쟁하다 돌아가신 애국지사들을 모시는 성지가 있다. 우리는 서울 동작동의 국립묘지가 있고 북한에는 평양근교 신미리에 애국열사릉이 있다.서울 국립묘지의 애국지사 묘역에는 상당수의 항일지사가 묻혀있고 1995년에는 임시정부 요인 묘역이 새로 조성되었다.박은식 신규식 노백린 김인전 안태국선생 등 임정요인 44명의 유해가 임정묘역에 안장되었다. 1986년 9월 완공된 평양의 애국열사능에는 김규식 조소앙 오동진 양세봉 최동오 홍명희 이기영 선생 등이 묻혀있다.이곳에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처형된 조봉암 선생의 가묘도 있다고 한다. 서울 관악산 줄기 43만평의 대지에 자리잡은 동작동국립묘지는 조선조 단종에게 충성을 바쳤던 사육신의 제사를 모시던 육신사(六臣祠)가 있었던 곳으로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듯한 상서로운 기맥이 흐른다는 명당으로 꼽힌다. 평양시내에서 서남쪽으로 2㎞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애국열사릉은 오목한 분지가운데 돋아있는 곳에 위치한 전형적인 좌청룡 우백호의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으로 알려진다. 국립묘지와 열사릉의 풍수지리를 소개하자는 것이 아니다.새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이고 각계 인사들의 방북의 발길이 잦아진다.리틀엔젤스의 평양공연에 이어 재벌총수도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는다고 한다. 국가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조국해방을 위해 한마음이 되어 항일전선에 섰던 선열들이 분단과 함께 남북으로 갈리고 사후에는 ‘이산가족’이 된 것도 비극인데 자손들이 성묘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 애국선열에 대한 국민의 도리를 생각해서라도 국립묘지와 애국열사릉에 묻힌 독립지사들의 유족이 교환방문을 통해 성묘할 수 있도록 남북한 정부가 길을 터야 한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애국지사의 유족으로 현재 북한에 생존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애국열사릉에 묻힌 독립지사의 유족으로 남한에 생존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남북한 정부나 양측 적십자사가 나서서 뒤늦게나마 유족이 선대(先代) 애국지사들의 묘소를 찾아 성묘를 할 수있도록 하는 것이 참다운 보훈의 정신이고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항일지사는 민족동질성의 원형 분단 반세기를 넘기면서 남북한 사이에는 각가지 이질적 요인들이 켜켜히 쌓여가고 있다.이런 속에서 민족적 동질성을 찾는다면 일제강점기의 독립투쟁과 항일지사들의 존재가 아닐까 한다. 남과 북이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면서도 풍광좋은 터를 골라 애국지사들의 묘역을 만들고 성역화하는 것도 이런 연유때문일 것이다. 남북한 정부는 애국지사들의 보훈정신에서,그리고 인도주의와 겨레의 동질성 회복차원에서 이 일을 조속히 성사시켰으면 한다.그리하여 오는 광복절이나 늦어도 추석에는 남북의 애국지사 유족들이 판문점을 넘나들며 국립묘지와 애국열사릉에 묻힌 조상을 찾아 참배하고 성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한국 역사속의 여성 위인/여성개발원 책자 발간

    이순신,김유신,세종대왕… 위인전의 주인공들은 이처럼 거의 남자다.어쩌다 끼어드는 신사임당 등도 업적보다는 현모양처란 점에서 각광받는다. 한국여성개발원이 펴낸 ‘한국역사속의 여성인물’은 여성차별 유교문화 아래 역사의 주류에서 철저히 소외돼온 여성들을 발굴,복권하는 책. 70여명의 여성위인을 상·하권에 나눠 소개한 그 상권이 나왔으며 하권은 올 하반기 출간예정.상권에는 고대부터 개화기까지,하권에는 일제시대 인물을 실었다.여성개발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내용을 볼 수 있다.주소는 http://kwoninet.or.kr이다.356­0070.
  • 명동성당 100돌과 민권운동(사설)

    오는 29일은 명동성당 축성 100돌이 되고 金壽煥 추기경이 서울 대교구장에 착좌(着座)한지 30년이 되는 날이다.한국 천주교회로서는 겹경사를 맞은 셈이다.우리는 이 날이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도 의미 깊은 날이라고 본다.명동성당과 金추기경이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명동성당은 지난 한세기동안 영욕의 한국사를 함께 해 왔다.대한제국 말기 이곳에서 李在明 의사가 매국노 李完用에게 칼침을 놓았다.그러나 일제강점기엔 천주교 신자였던 安重根 의사가 당시 서울교구장이었던 프랑스인 뮈텔 주교에게 항의했을 만큼 일제의 폭압에 침묵했다. 일제시대부터 비롯된, 세상과 무관하고 현실에서 고립된 천주교회의 모습은 70∼80년대 들어 크게 변모한다.이 시기 명동성당은 한국 민주화의 성지(聖地)로서 부도덕한 권력에 대항하는 구심점이 됐다. 지난 74년 민청학련 배후 조종혐의를 받았던 池學淳 주교가 이곳에서 양심선언을 하고 당국에 연행됨으로써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돼 한국 민주화운동의 촉매가 됐다.또 76년 金大中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재야인사들이 독재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3·1 시국선언을 발표한 곳도 이곳이다.87년 6월 항쟁의 근거지 또한 명동성당이었다. 이처럼 명동성당은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자,쫓기는 사람들의 피난처,억울한 이들의 대변자,거짓에 대한 고발자로서 민중과 함께 있어 왔다.암담한 역사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자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의 역할을 명동성당은 충실히 해 온 것이다. 이런 명동성당의 모습은 金壽煥 추기경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지난 68년 명동성당 축성 70주년이 되는 날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金추기경은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는 취임사를 했을만큼 교회쇄신과 현실참여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金추기경은 69년 제3공화국 시절 朴正熙 대통령의 3선개헌 지지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고 현대사의 고비마다 미사 강론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금 명동성당과 金추기경의 역할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구제금융시대의 아픔을 껴안는 모습으로 명동성당은 다시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 곁으로 다가서고 있다.또 한국 천주교회의 평양교구장서리이자 황해도를 관할하는 서울대교구장으로서 金추기경의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한 역할도 기대된다.
  • 민주화 운동 희생자 재조명­왜 필요한가

    ◎왜곡된 진상 규명 명예회복해야/개인적 희생 정당한 평가 받아야/특별법 제정·합동묘역 조성 추진 한국 민주화의 분수령을 이룬 5·18 광주민중항쟁은 이제 우리 역사 속에 바르게 자리매김 되고 있다.그러나 해마다 5월이 오면 아직도 명예회복을 못한 민주화운동 희생자 가족들은 저며오는 가슴을 가누지 못한다.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이들.민주화를 달성한 우리의 역사속에 여전히 이들이 설 자리는 없는가.金大中 대통령은 최근 월간 ‘말’지와의 회견에서 “그 분들의 헌신과 공로에 상응하는 조치를 반드시 취할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정확한 진상규명을 통해 그 분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것이며 필요하다면 입법조치도 해야한다”고 밝혔다.이들의 명예회복은 어디까지 와있는가.민주화운동 희생자 특집을 꾸며본다. ▷진상규명◁ 60년대 이후 군사독재 시대가 30여년간 이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됐다.4·19나 5·18처럼 집단화된 희생의 명예회복은 상당 부분 이뤄졌다.그러나 개인적 희생은 지금도 제대로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개인적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되려면 먼저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 민주화나 노동운동 과정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유형은 다양하다.분신,투신,할복,음독,고문,사고,폭행,총상,익사,병,교수형 등이다.이들을 죽음에까지 이르게한 가해자는 주로 공권력으로 추정된다.안기부(중앙정보부),기무사,대공분실 등이 의혹의 대상이다. 가해자가 권력을 쥔 쪽에 있었기에 진상규명이 안된 경우가 많다.金學喆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기획국장은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지만 가해자처벌은 추후 생각해볼 문제고 일단 진상규명이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했다.그는 민관합동의 민주화희생자 진상규명특별위 설치를 제안했다. ▷명예회복◁ 진상규명과 동시에 추진되어야할 것이 민주화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조치다.이를 위해 민주화운동 단체들은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시급한 것은 희생자 합동묘역 조성.현재 마석 모란공원묘지,망월동 구묘역,부산 솥밭산공원묘지 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희생자 묘지를 한곳으로 모아 성역화해야 한다는 것이다.기념관도 만들어 유품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기념탑이나 위령제를 개최해야 한다.교과서에 이들의 활동을 수록하고 기념일도 제정,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일제시대 독립지사들을 국가유공자로 대우하듯 민주열사들도 유공자 예우를 받아야 한다는게 관련 단체들의 희망이다.‘민주유공자예우법’을 만들고 ‘열사공적사항심사위’를 설치,객관적 평가에 따른 대접을 하자는 것이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戰犯의 영웅화/李世基 社賓 논설위원(外言內言)

    일제시대를 살아본 사람이 아니더라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에다 한국에서는 강제징병과 학도병제를 실시하고 종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소에서 ‘A급 전쟁범죄자’로 회부되어 48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일본의 군국주의자다. 그런 전쟁범죄자가 일본 영화 ‘프라이드:운명의 순간’에서 전범이 아닌 ‘영웅적 사무라이’로 등장해 중국과 서방언론등에 의한 국제적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일제의 식민지 침탈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대동아전쟁은 일본의 자위(自衛)를 위한 정당한 전쟁이자 아시아 해방을 위한 성전(聖戰)’이었음을 강변하고 도조는 ‘일본의 명예를 지키려다 연합군측의 사전각본에 따라 부당하게 처형되는 희대의 영웅’으로 부상된다는 것이다. 작은 일에 생색내고 무의미한 것도 의미있는체 꾸미는가 하면 엄연한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기를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이고 보면 또한 번심한 장난을 쳤구나 하는 안쓰러운 감이 없지 않다. 최근까지도 그들은 일본군 위안부나 남경 대학살등을 고교교과서에 기술하는 것은 ‘자학(自虐)사관’ 이라면서 반일교과서 회수운동을 끊임없이 전개해 왔었다. 그릇된 과거를 덮으려는 자체가 이미 그릇됨을 인정한다는 것을 아마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 개봉을 앞둔 영화시사회에서 과거사 망언으로 유명한 한 고위관리가“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할뿐 아니라 핵심을 찾아내는데도 성공하고 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니 그 뻔뻔스러움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인간사회에서의 참다운 영웅이란 자신의 존재를 대중속에 파묻고 사는 자존심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선한 영웅이 있듯이 악한 영웅도 있다. 영웅이 없는 사회에서 오죽이나 궁색했으면 전범을 영웅화했겠느냐는 측은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도도한 세계사를 역행시킬수는 없다. 영화라는 방법으로 과거를 미화하려는 자체가 영웅의 이미지에서는 이미 어긋난 처사다. 차제에 무분별한 일본영화수입을 심사숙고해봐야겠다.우리 청소년의 역사를 보는 눈은 우리어른들이 지켜줘야하기 때문이다.
  • “한번 세운 목표 꼭 실천” 당부/어린이날 청와대 표정

    ◎“나는 감옥서 영어공부… 집념이 중요”/‘고향의 봄’ 등 동요 합창·즉석 인터뷰 청와대는 어린이 날을 맞아 5일 상오 본관 인왕실에서 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어린이 기자단의 기자회견에 이어 金대통령과 골절상으로 휠체어를 탄 부인 李姬鎬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낙도어린이·소년소녀 가장,사회복지시설 수용 어린이 등 6백30여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본관앞 잔디광장특설무대에서 1시간여동안 축하행사를 가졌다.특히 본관 앞 잔디광장은 국빈 환영행사 장소로 일반이 사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金대통령은 어릴 때 희망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일제시대에 살아서 큰 희망을 갖지 못하고 공부를 잘해 학자가 되는 것이 희망이었다”고 털어놨다.이어 ‘영어공부를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영어는 세계어로 영어를 모르면 말이 안통하고 불편해 일을 할 수 없다”며 “마흔살이 넘어 감옥에서 혼자 공부했는 데,꼭 하겠다는 집념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당선되고 부터 어려운 일이 많아 대통령이 아직 좋다는 것을못느끼고 있다”고 털어놓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과 한번 결심하면 목표를 바꾸지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라는 당부로 회견을 마무리했다. ○…축하행사는 젝스키스와 진주의 ‘알리바바와 40명의 도적’,金건모씨의 ‘사랑이 떠나가네’ 등의 노래에 이어 전래동요 공연,즉석 간담회,레크리에이션,대통령 메시지 발표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金대통령은 ‘DOC와 춤을’으로 명명된 레크리에이션 순서에서 무대에 올라 어린이들과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金대통령은 즉석 인터뷰에서 어린시절 별명을 ‘엉덩이’,李여사는 “히히호호”였다고 공개,웃음꽃을 피웠다. 이날 행사에선 특히 장애인 합주단의 공연이 영상으로 재구성돼 멀티큐브를 통해 방영됐다.행사는 金대통령과 李여사가 어린이들과 ‘어린이 날’ 노래를 합창하는 것으로 끝났다. 金대통령 내외는 행사가 끝난 뒤 참석 어린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학용품을 선물했다.
  • 7순 中企 회장 5년째 노인잔치/‘효자동 산타클로스’ 徐元錫씨

    “남보다 약간 많이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다 보면 제 자신 마음이 더욱 행복해지고 푸근해집니다”‘효자동의 산타클로스’ 徐元錫씨(72·성원제강 회장). 매월 8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일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동네 인왕산정 경로당으로 초청,흥겨운 잔치를 베풀어 주고 있다.올해로 5년째. 徐회장이 자신이 33년동안 살아온 효자동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93년. “제 할머님은 일제시대 보릿고개 때 남 몰래 보리밥을 챙겨두었다가 학교에서 돌아온 손자 손에 들려주시곤 했습니다.맨손으로 사회에 뛰어들어 이제 ‘성공한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된 지금도 그때의 따뜻한 할머니의 손길을 잊을 수 없어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매번 행사 때마다 점심식사 술 안주는 물론,냄비 속옷 등 선물을 장만하는데 4백만원 가량의 돈이 들어가지만 지난해 대통령선거 기간 중 선거법에 저촉될까봐 두 번 생략했던 것 말고는 한번도 거른 적이 없다.세계적인 피아니스트 徐혜경씨가 徐회장의 딸이다.
  • ‘꽃파는 처녀’ 이적표현물 아니다

    ◎서울고법,北 영화 일부 무죄 판결 ‘꽃파는 처녀’‘소금’‘춘향전’ 등 북한영화 7편은 이적표현물이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郭東曉 부장판사)는 1일 독일 유학시절 북한영화 테이프를 취득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朴鍾大 피고인(35)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金日成의 항일활동을 찬양한 ‘조선의 별’ 등 4편의 영화만을 원심대로 이적표현물로 인정,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꽃파는 처녀’는 일제시대의 슬픈 가족사를,‘소금’ 등 6편은 항일운동이나 북한 농촌개발운동 등을 담은 영화들로 공격성을 띤 이적표현물로 보기 어렵다”고 밝히고 “다만 이적표현물이 아니라고 곧바로 일반인에게 상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 이상은 선생 전집/한국의 중국철학 새로운 평가

    ◎국내 신 유가철학 선구자… 수필 등 실어 ‘한국의 신 유가철학 1세대의 선구’로 꼽히는 경로 이상은 선생(1905∼1976)의 방대한 학문적 업적이 4권의 책으로 정리돼 나왔다.동양철학 전문출판사인 예문서원에서 펴낸 ‘이상은선생전집’이 그것이다.‘당대 신유학’이라 불리는 현대 유가철학은 중국철학을 대표하는 조류이다.20세기초 서양문화와의 대립과 수용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시 지식인들은 전통문화에 대해 비판하는 한편 동양철학의 진로와 역할을 모색했다.그런 바탕에서 현대철학의 주된 흐름으로 새롭게 떠오른 것이 바로 ‘당대 신유학’이다. 경로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북경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교수,학술원 회원,중국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그는 학행을 겸비한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줬다.하나의 예로 경로는 6·25전쟁의 와중에서도 장기집권을 기도하던 이승만 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마음대로 헌법을 개정한 부산정치파동이 일어나자 ‘중화민국과 원세개’라는 제하의 논설을 발표해 이승만 정권의 불법을 비판했다.이로써 그는 최초의 필화사건을 겪었다. 그러나 경로가 남긴 자취는 무엇보다 한국의 중국철학과 한국철학 연구의 선하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 그의 학문세계에서 빛난다.경로의 학문방법과 내용은 당대 학자들의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었다.그는 현대인과 유리된 채 전래의 ‘성균관’이나 ‘향교’안에만 머물던 ‘유교’를 본래의 모습인 ‘유학’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또한 유학의 의의를 비판의식과 가치의식,그리고 문화정신에서 찾았다.유학자로서의 경로의 문제의식은 항상 과거를 되살려 현대에 도움을 주는 데 있었다.이번에 나온 전집에는 한국과 중국철학에 대한 그의 주요 논문들이 거의 망라됐으며 시론·수필·번역문 등 다양한 저술들이 포함됐다. 1권과 2권은 한국철학편.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부정적으로만 인식돼 오던 전통학문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내린 ‘한국에 있어서의 유교의 공죄론’,근대화문제와 관련된 한국유학의 개신을 다룬 ‘유교의 이념과 한국의 근대화문제’,본격적인 한국철학 논문으로 평가받는 ‘사칠논변과 대설·인설의의의’ 등의 글이 실렸다.3권은 중국철학 관련 논문모음이다.맹자와 공자를 중심으로 전개된 유학논쟁의 핵심문제인 성론에 대해 분석한 ‘맹자의 성선설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유가윤리를 새롭게 해석한 ‘상하관과 차별관’,유일한 도가철학 논문인 ‘허무의 동양적 특성’,‘순자의 인심도심론’등이 담겼다.마지막 4권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시대적 고뇌와 인간적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각종 수필과 시론 형태의 글들이 주류를 이룬다.“공자가 자신의 수제자인 안회를 가리켜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라고 칭찬할 때,안회는 ‘불천노 불이과’,곧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허물을 두 번 다시 범하지 않는다고 했다.인간의 정서생활에 있어서 가장 조절하기 어려운 감정이 바로 분노이다”(‘학문과 인생’) 경로는 한 편의 에세이를 통해서도 생활이상에 충실하려는 유학의 정신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 봄나들이/가족과 함께 ‘선열의 얼’ 되새기자

    ◎천안 유관순 열사 추모각­봉화대­생가 등 유적지 인접/홍성 한용운·김좌진 장군 생가도… 하루 코스로 적격 79년전 우리 선조들은 3월1일을 시발로 일제에 맞서 근 3달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그래서 3월은 우리들에게 설레임보다는 숙연하게 다가온다. 절기상으로는 봄이지만 봄나들이를 나서기에는 아직 이르다.3월을 맞아 독립투사의 생가 등 항일운동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다. 독립투사들의 생가를 보려면 충남으로 가야한다.유관순 열사는 천안에서 태어났고 윤봉길 의사는 예산,김좌진 장군과 만해 한용운은 홍성출신이다.충남에 독립운동가들이 많은 것은 충청도가 예로부터 충절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천안시 병천면 탑원리에 있는 유관순 열사 유적지는 추모각,봉화대,생가가서로 가까이에 있어 순회코스로 안성마춤이다.천안시내에서 독립기념관으로가는 21번 국도로 나가 18㎞정도 가면 아우내장터가 나오고 이 곳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열사의 영정을 모신 추모각이 있다.추모각을 구경한뒤 추모각 뒷편의 매봉산에올라 독립운동 거사를 알리기 위해 봉화를 피운 봉화대를 둘러보고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생가가 나타난다.모두 다 둘러보는데 1시간이면 된다. 김좌진 장군과 만해 한용운의 생가가 있는 홍성은 인근의 용봉산과 천수만 방조제를 연계하면 하루 단위 나들이길로 적격이다.먼저 충남 서부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홍북면 용봉산으로 가 1∼2시간 땀을 흘린다.하산길에 점심식사를 하고 생가터로 발걸음을 옮긴다.갈산면 행산리에 있는 김좌진 장군의 생가터에는 24평 규모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기념관에는 국내 및 해외활동과 관련된 유품과 함께 영상자료가 전시돼 있다.이 곳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에는 한용운 생가가 있으며 생가를 거쳐 방조제로 가면 된다. 윤봉길 의사는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출생했다.시량리에는 윤의사가 태어나서 4살때까지 살던 광현당,중국으로 가기 전인 23살때까지 지냈던 저한당,윤의사의 사당을 모신 충의사와 유물전시관,충의관 등이 4만2천여평의 경내에 보존,관리되고 있다. 서울에는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종로2가 탑골공원,서대문구 현저동 독립공원이 있다.3·1운동의 발상지인 탑골공원은 1897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이다.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팔각정을 중심으로 국보2호인 원각사지 10층석탑,원각사비 등의 문화재와 3·1운동 기념탑,3·1운동 벽화,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과 한용운 선생 기념비 등이 있다.서대문 독립공원은 일제시대 유관순,손병희 등 애국지사가 수감돼 있었던 곳으로 지난 92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조성된 곳이다.감옥 7동,사형장,지하옥사 등이 복원됐으며 독립문,3·1운동기념탑,순국선열 추념탑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의인 대거 배출된 충청도 충청지역은 예로부터 충절의 고향이라고 불려 왔다.이러한 사실은 실제로도 입증된다.1900년부터 1973년까지의 명사 150인을 분석한 한 조사에 따르면 충남은 독립운동가 부문에 6명(유관순,윤봉길,김좌진,한용운,이범석,조병옥)이 올라 10명인 서울 다음으로 2위에 올랐다.조사 당시 서울인구가 충남인구의 두배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인구비례로는 충남이 서울보다 훨씬 높은 셈이다. 충남에서 의인이 많이 배출된 것은 역사적으로도 뒷받침된다.사육신인 성삼문(홍성),박팽년(대전)을 비롯,북벌론을 주장한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이 회덕출신이다.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이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실질적인 고향은 아산이고 구한말 의병운동이 가장 먼저,가장 강하게 일어난 곳도 충청지역이다. 이로 미루어볼 때 충청지역은 일찍부터 충절 또는 민족의식이 저변에 강하게 깔려 있었고 이러한 전통이 독립운동가 배출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송시열로 대변되는 기호학파가 200여년간 지배세력이었다는 것도 간과할수 없다.즉 나라를 잃은데 대한 책임의식이 그만큼 강할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충청인의 기질을 보면 ‘충청도 양반’이라는 말처럼 대체로 행동이 점잖고 느린 편이다.이 말은 뒤집어 보면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행동은 신중한 것으로 해석된다.즉 충동적이기 보다는 심사숙고하며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바로 이러한 요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여주게 된 동인이었는지도 모른다.
  • U자형 국토개발/홍철 국토개발연구원장(굄돌)

    우리나라에 근대적 의미의 국토개발이 시작된 것은 일제시대부터이다.일제는 식민지수탈과 중국침략을 위해 부산∼서울∼신의주,목포∼서울∼원산∼청진을 잇는 X자형 국토개발을 추진하면서 철도와 항만을 건설했다.목적은 한반도의 발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빼앗을 수 있을까 하는 침탈의 효과에 있었다. 해방과 더불어 남북이 갈라지면서 X자의 윗부분이 떨어져나가고 X자의 아랫부분인 인자,즉 남한만 남게 되었다. 60년대 이후 공업화시대에도 국토개발은 인자형 개발구도를 그대로 이어받아 서울과 부산을 잇는 인자의 오른쪽인 경부축을 주축으로 삼았다.왼쪽인 호남축은 보조역할을 하도록 하는 전략을 취해왔지만,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80년대 들어 중국이 경제성장에 속도를 내자 우리도 여기에 대응,그동안 소외되었던 서남해안을 개발해야 한다는 L자형 국토개발 방안이 제기돼 우리나라의 국토개발 전략은 전면 수정됐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구소련이 붕괴하고 북한이 나진·선봉지구 개발에 나서면서,그동안 꽁공 얼었던 동해바다의 얼음이 녹고 있다.바로 환동해경제권의 등장이다. 세계화시대에 서남해안 뿐만 아니라 동해안까지 포함해서 바다 3면 모두를 적극 활용하는 U자형 국토개발을 추진해야만 한다.더구나 남한 해안만을 개발대상으로 설정하는 u자형 국토개발이 아니라,신의주에서 남해안을 돌아 동해안 꼭대기의 나진·선봉으로 이어지는 U자형 국토개발이 되어야만 한다. 전국토의 해안선을 십분 활용해 U자형으로 뻗어나가면,그 힘은 돋보기의 원리처럼 만주대륙으로 집중될 것이다.만주대륙을 우리의 활동무대로 삼는 길은 바로 바다를 공략하는 데 있다.
  • 일제,탑골공원 유린 기도/일본식 다방·음악당 설치

    ◎총독부 ‘예정설계도’ 발견 3·1운동의 발상지인 탑골공원이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 의해 유린당할 뻔했던 사실이 밝혀졌다.일제는 일본식 다방과 야외음악당 설치를 기도했으며 위락시설 설치는 민족정기를 말살의도로 해석된다. 이는 정부기록보존소가 1920년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총독부의 국내사찰과 문화재 조사 및 수리계획 도면을 최근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탑동공원다방 예정설계도’라는 제목의 8장짜리 도면에서 일제는 현재공터인 탑골공원에 1백50여평 규모의 다방을 설치하려 했다. 특히 ‘아오키(청목) 다방’으로 이름지어진 다방은 다다미방과 주방을 갖춘 전형적인 일본풍으로 일본식 담장형태인 나무울타리로 둘러 쌓이게 돼 있었다.
  • 이산가족 상봉 이번엔 이뤄질까

    ◎DJ 상봉문제 제기하자 북측 즉각 응답/북 진의 파악한뒤 구체적 일정 마련키로 북한이 15일 중앙방송을 통해 3월1일부터 이산가족찾기 사업에 착수한다고 밝힘에 따라 지난 71년부터 추진된 남북이산가족 상봉문제가 새정부들어 정착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새정부 100대과제로 고령이산가족 방북허용 방침과 이북5도민 하례회에서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직후 북측이 이같은 보도를 한 것은 김당선자의 정책에 대한 간접 반응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환영을 표시하는 한편,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입장이다.중앙방송보도에 따르면,일제시대,미군정,6·25전쟁으로 인해 흩어진 가족을 찾는다고만 언급돼있어 재남 이산가족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다.또 사회안전부내 주소안내소에서는 지난 96년부터 내부적으로 이산가족찾기 사업을 해왔다. 따라서 새정부가 출범하는 대로 먼저 북한측 의도부터 제대로 파악한뒤 이산가족사업에 대한 구체일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남북이산가족 상봉문제는 지난 71년부터 남북이 몇차례 회담을 거치고 실제 고향방문단을 파견하는 등 꾸준히 쌓아온 전례가 있기 때문에 양측의 의지만 있으면 제도보완 등으로 어렵지 않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산가족상봉 논의는 71년 한적의 제의로 적십자회담을 개최해 85년 9월에는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교환합의로 남북에서 각각 151명이 1차방문단으로 접촉한 바 있다.그러나 이후 북한측의 회담거부로 적십자차원에서는 진전이 없었다.대신 90년 한국내 남북교류협력법 제정으로 북한주민 접촉신청제도가 뒷받침돼 제3국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은 물밑에서 계속 진행돼오고 있는 현실이다.
  • 186억대 국유지 사기극/전국과수 실장 등 21명 적발

    6·25 때 토지 문서가 없어진 경기도 파주시와 연천군일대 국유지 37만여평(시가 1백86억여원)을 일제시대 때 매입한 것처럼 꾸며 가로채려한 소송 사기단 21명이 적발됐다. 서울지검 특수2부(문영호 부장검사)는 10일 토지사기단 주범 김재간(56·부동산매매업) 공문서 위조책 정일섭(62) 제일문서감정원장 김형영씨(57·전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장)등 10명을 사기 및 허위감정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이들로부터 돈을 받고 재판에서 거짓 진술을 한 이용준씨(61)등 파주시와 연천군 주민 10명은 위증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문서위조범 이종익씨는 수배했다. 김씨 등은 93년부터 파주시와 연천군 일대 국유지 37만여평의 등기부와 호적부 등 토지 관련 공문서가 없다는 점을 이용,일제 시대에 토지를 산 것처럼 토지매매증서 43장을 위조한 뒤 국가를 상대로 22건의 소유권 확인청구소송을 내 이 가운데 7건 50억여원의 국유지에 대해 승소판결을 받아낸 혐의를 받고 있다.
  • 창작악극 ‘눈물젖은 두만강’/일제시대 비극의 한 가족사

    악극의 대명사 극단 가교가 다섯번째 창작악극 ‘눈물젖은 두만강’을 15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일제하인 1930년대 두만강과 만주,상해 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항일 독립운동과 이에 연루되는 한 일가의 비극의 가족사를 눈물과 진한 감동으로 그린 작품.두만강 백사공의 딸 정애는 독립군 승빈이 총상을 입은채 일경에 쫓겨 집으로 찾아들면서 역사의 격랑 한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간다.독립군의 정인이 된 관계로 일제의 갖은 박해를 받다 화류계 여성으로 전락,일본 현병대장을 암살하고 옥중에서 생을 마감하는 정애의 인생유전을 중심으로 그녀의 부모,승빈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민우,일경의 앞잡이로 승빈을 밀고 하는 오빠 등 두만강변 한 가족이 겪어가는 불행한 민족사가 구슬픈 노래와 대사로 전개된다. ‘홍도야 울지마라’ ‘울고넘는 박달재’ 등 다수의 악극에서 기량을 쌓은 권소정이 주인공 정애역을 맡았으며 박인환 최주봉 윤문식 김진태 태민영 박승태 등 TV를 통해 낯이 익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눈물젖은두만강’ ‘물새야 왜 우느냐’ ‘청춘 블루스’ 등 흘러간 우리 옛노래와 ‘카르멘 조곡’ ‘인 더 무드’ 등 외국곡을 합해 총 35곡의 노래를 들려준다. 김상열 작·연출.하오 4시·7시30분(월요일은 쉼).369­2911.
  • 법률 용어 쉬워진다/대법,‘법원 맞춤법 자료집’ 배포

    ◎일본식 어투·한자 투성이 한글로/‘금일→오늘’ ‘일응→신체’ 등으로 일본어투가 많고 한자어 투성이인 판결문 등 법원의 공문서가 쉬운 우리말로 바뀐다. 대법원은 25일 일제시대 법률문장의 잔재 등을 우리말로 쉽게 바꾼 ‘법원 맞춤법 자료집’을 전국 법원에 내려보내 판결문·결정문 등을 쓸 때 반드시 참고토록 했다. 우선 습관적으로 사용해 온 일본식 용어를 고쳤다.거래선은 거래처로,금일은 오늘,논지는 말하는 취지,대합실은 기다리는 곳,매장은 점포나 가게 등으로 바꿨다.수순은 순서나 절차,신병은 신체,일응은 우선·일단,지분은 몫,행선은 갈 곳으로 각각 고쳐 쓰도록 했다. 또 ‘∼라고 보여진다’는 ‘∼라고 보인다’로,‘이유없다 할 것이다’는‘이유없다’로 고쳤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전문 법률용어도 쉬운 말로 바꾸었다.간석지는 개펄,가액은 값,개거는 도랑,개호는 간호,고지는 알림 등을 선택해 쓰기로 했다. 이밖에 ‘개전의 정이 현저한’은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으로,‘용에 공하기 위하여’는 ‘쓰임에 제공하기 위하여’로 쉽게 풀이하도록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재의 판결문 등 법원문장은 일제시대의 영향이 남아있던 50∼60년대에 제정된 것”이라며 “앞으로도 각종 공용문서의 맞춤법 오용사례 등을 모아 올바른 우리글로 꾸준히 바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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