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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색 당선자] 윤완중 공주시장

    윤완중(尹完重·57)충남 공주시장 당선자는 이른바 ‘정치꾼’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만 6번 떨어진 뒤 이번에 단체장으로 ‘종목’을 바꿔 당선됐다.26세에 정치에 입문해 71년 8대 국회의원 선거를 비롯,30년 동안 10·13·14·15·16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윤 당선자는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모두 지역을 위해 일한다는 의미에서 같은게 아니냐.”고 반문한 뒤 “그래서 종목을 바꿨다.”고 말했다.또 “시장이란 자리는 업무의 전문성을 가진 직원들이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총괄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행정경험보다 정치경험이 낫다.”고 역설했다. 그는 공주가 ‘백제의 고도(古都)’여서 건축물의 고도제한을 받는 점이 문제라며 “역사 고증에 장애가 안되는 곳은 고도제한을 풀어 시민의 재산권을 지키고 건축경기를 활성화,지역 발전을 앞당기겠다.”고 다짐했다. 또 인근 대전시민이 유입할 수 있도록 금강자연휴양림 주변 등에 신도시를 건설,반포면을 ‘읍’으로 승격시킬 방침이다.수도권과 가까운 정안면 등에는 공단을조성,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의 균형발전을 이루겠다고 덧붙였다. 충남도청과 호남고속철도 천안 분기점을 유치하는 데도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다.그는 “충남에서 금강이 흐르고 계룡산이 있는 공주만큼 도청 소재지로 적당한 곳이 없다.”며 “천안 분기점은 최단거리 노선으로 국가재정면에서도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윤 당선자는 “일제시대에 도청이 있다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공주의 도시기능이 급격히 축소돼 안타깝다.”며 “도청과 호남고속철도의 천안∼공주 노선 유치는 시장이 해야 할 최고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통 교육도시인 공주가 지금은 천안시 등에 밀리고 있지만 도·농복합도시로 다른 도시에 비해 각종 여건이 뛰어나 전국 최고의 도시로 클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진단했다. “공무원들이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도록 하겠다.”는 그는 공주시를 전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고장’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자민련과 공주고 출신 JP의 텃밭인 공주에서 무소속으로 나온 윤 당선자.6·3사태 주동자로 공무원이나 은행원 등은 꿈도 꿀 수 없어 정치에 입문했다는 그는 “선거로 사분오열된 공주시민을 화합과 사랑으로 한데 묶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가족은 부인 오영희(57)씨와 1남 2녀가 있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
  • 잃어버린 옛地名 되찾기 나섰다

    서울시가 일제시대 때 이름이 바뀐 옛 지명을 되찾는 사업을 추진한다. 강원도 평창군은 일본식으로 개명되거나 사라진 산의 이름을 찾아내는 ‘산 이름 찾기 운동’을 벌인다. 서울시정 인수위 강승규(姜昇圭) 대변인은 25일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 당선자가 24일 문화관광국의 업무보고에서 ‘옛 지명찾기 사업을 검토할 것 ’을 요청했다.”고 밝혔다.강 대변인은 “이 당선자는 ‘창경궁 이름이 일제시대 때 창경원으로 바뀌면서 남쪽은 원남동,서쪽은 원서동으로 각각 지명이 변경된 뒤 창경궁은 옛 이름을 되찾았지만 원남동과 원서동은 그러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시는 시사편찬위원회나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의 자료를 토대로 조선시대에서 일제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지명의 변천사를 분석,바뀐 지명 현황을 파악한 뒤 ‘옛 지명찾기’ 대상을 확정,학계 고증과 주민의견 수렴 등을 통해 지명을 복명(復名)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작업에 들 어갔다. 시는 이와 별도로 이 당선자가 선거운동 당시 공약으로내걸었던 강변북로 를 ‘월드컵대로’로 바꿔 부르는 것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한강 남측 도로를 올림픽도로로 부르듯,한강 북측에 있는 강변북로를 월드컵대로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지명위원회를 거쳐 개명할 방침이다. 한편 평창군은 군내 유명산 중 대동여지도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옛지도나 역사서에 표기된 이름과 달리 이름이 일제식으로 고쳐지거나 없어진 산이 상당수에 이르기 때문에 잘못 불려지거나 지형도에 표시되지 않은 산의 이름을 사료 등에 근거,제 이름을 찾아주고 국립지리원에 일괄 개명을 의뢰하기 로 했다. 평창군 진부면 장전리∼정선군 북면에 걸쳐 연결된 가리왕산의 경우 산의 족보인 ‘산경표’에는 가리산으로만 표기되어 있을 뿐 왕(旺)자는 일제시대 때 일본의 왕을 지칭하기 위해 붙여진 것으로 파악된다. 진부면 장전리∼대화면 하안미∼정선 북면에 걸친 중왕산(中旺山) 역시 산 경표에는 주왕산(住王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발왕산(發旺山)도 일본식 표기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와 함께 1900년대 초기 군지(郡誌)에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는 수정산이 평창읍 서쪽 20리밖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현재는 존재 하지 않아 역사적 고증을 통해 산의 위치를 밝히기로 했다. 평창군 관계자는 “위치나 이름이 잘못된 산으로 인해 산의 가치와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사료에 근거해 산의 제 이름을 찾아 줄 방침”이라고 말했다. 조덕현·평창 조한종기자 hyoun@
  • [월드컵 뷰] 닫힌 방에서 열린 광장으로

    월드컵의 열기가 아이들의 놀이문화까지 바꾼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컴퓨터게임이나 하는 아이들이 오늘은 밖으로 나가 공을 차고 뒹군다. 어른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동네 조기축구회의 회원이 늘고 있다.머리가 반쯤 벗겨진 사람,배가 남산만큼 나온 사람들이 신입회원이라며 나와 인사를 하곤 한다. 때마침 한국대표팀이 유럽의 강호 폴란드를 꺾었다.월드컵의 열기는 더 달아오를 것이다.그럴수록 사람들은 열광하며 광장으로,광장으로 몰려 나올 것이다. 우리는 지금 속도경쟁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속도경쟁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불안감·초조감을 안겨준다.이 불안과 초조는 사람들을 한없이 움츠러들게 하고,닫힌 공간으로 치닫게 한다. 아이들의 놀이공간은 게임방과 만화방이다.청소년들의 놀이공간은 PC방·휴게방·편의방·비디오방 등이고 어른들의 놀이공간 역시 노래방·소주방 등을 벗어나지 못한다.모두가 좁은 방에서 이뤄지는 문화다. ‘방’은 자폐의 공간,유폐의 공간이다.월드컵의 열기가 사람들을 이 차단의 공간에서 벗어나게한다면 그것은 큰 의미가 있다. 광장에는 사람들의 숨결이 있다.축구 한 게임만을 하더라도 사람이 모여야 되고,살과 살이 맞부딪쳐야 되고,서로 규칙을 지켜야 한다.타자를 존중하지 않는 경기란 있을 수 없다.개인주의를 심화하는 경기란 결코 있을 수 없다. 한국과 폴란드가 경기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대형 전광판이 자리한 곳은 인파로 물결을 이루었다.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붉은색 티셔츠를 입었고,붉은 치장을 두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붉은 바다’를 연상케 했다.우리 팀이 밀릴 때는 숨을 죽이는 바다,우리 팀이 기세를 올릴 때는 격랑이 이는 바다였다. 그 중에는 온 몸을 보디페인팅으로 색칠하고 출렁이는 이,태극기를 목에 두르고 열광적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는 이도 있었다.어떤 사람들은 벌써부터 걱정을 한다. “저런 광기가 문제야.군국주의·전체주의가 따로 있나.저런 것이….” 일제시대·군사독재시대를 겪어 온 사람들로서는 그런 우려 섞인 시선을 가질 만도 하다. 하지만 광장에 모인 젊은이들,그들은 극단적으로 파편화된 시대에 태어나 유폐된 공간에서 길러진 쓸쓸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언제 자연의 광장을 맘껏 달려볼 기회가 있었던가.그들이 언제 그런 열린 공간에서 한가한 꿈을 꾸어볼 기회가 있었는가. 그들은 지금 누가 시켜서 그런 일체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그들 식의 잔치,그들 식의 춤판,그들 식의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즐기고 있을 뿐인 것이다. 광장으로 나온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장날 구경’가운데 으뜸은 신기한 물건들이겠지만 ‘사람 구경’도 그에 못지않은 볼거리가 아니었던가. 월드컵의 재미 가운데 그들의 뜨겁고 신나는 몸짓도 볼거리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냥 넉넉하게 보고 즐기면 된다.‘논어’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오봉옥/ 시인
  • 인감 잘못발급 거액배상 판결

    인감증명서를 잘못 발급해 거액의 배상금을 물게 된 광주동구 이모(34·여·7급)씨가 상급 법원에 항소키로 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씨는 “공무원으로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나 법원의 판결이 너무 가혹해 항소를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광주 동구 공무원직장협의회는 최근 간담회를 갖고 이번 사건을 ‘전국공무원노조’회의 안건으로 상정하고,인감폐지및 제도개선 운동을 펴기로 했다. 직장협은 또 이씨를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기로 결정,지난 17일 회원을 대상으로 찬반조사에 들어갔다.직장협 관계자는 “사진을 육안으로 비교해가며 정확히 본인 여부를확인하기는 어렵다.”며 “제대로 된 인감확인 시스템을 마련하든지 일제시대 잔재인 인감증명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동구는 최근 본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인감증명서를 발급해 7억여원의 재산상 손실을 입힌 직원 이씨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피고는 원고에게 손실액의 60%인 4억 3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법원으로부터 받아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행정역사실 오늘 개관, 고려~현대 행정 변천사 정리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의 월급명세서,관리 임명장,전 대통령의 친필 문서 등 쉽게 볼 수 없는 우리나라 과거와 현재의 행정자료가 일반에 공개된다. 국가전문행정연수원(원장 金重養)은 고려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 우리나라 행정자료를 시대·종류별로 정리한 ‘행정역사실’을 17일 개관한다. 경기도 수원시 행정연수원 도서관 3층 90여평에 마련된행정역사실에는 고려·조선시대의 왕명(王命),과거·임용등 옛문서나 책자,일제시대 이후의 토지·민원문서,각종행정장비 등 594종 938점이 전시된다. 전시물 중 가장 오래된 ‘급제패지’(及弟牌旨·1205년)를 비롯한 ‘추증교지’(追贈敎旨·1745년),‘사패교지’(賜牌敎旨·1605년) 등은 과거에 급제하거나 벼슬을 내릴때 왕이 수여한 임명장이다. 또 조선후기 관리들의 월급명세서인 ‘녹표’(祿標)나 ‘녹패’(祿牌),조선시대 임용시험 합격증서인 ‘병진사마방목’(丙辰司馬榜目)·‘백패’(白牌) 등도 눈여겨 볼 만하다. 현대 사료 중에서는 70년대 초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진필로 작성한 ‘새마을운동 계획서’가 눈에 띈다.새마을운동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념과 철학이 담겨있는 이문서는 사료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행정연수원측은 “이번 전시품들 중 445점은 지난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통해 감정을 받은 결과 진본으로 확인된 것들”이라면서 “행정역사실을 통해 우리나라 행정의 역사적 변천 내용을 한눈에 파악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
  • [임영숙 칼럼] 우측통행이 합리적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기초질서를 바로잡자는 운동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그 운동의 하나로 보행자의 좌측 통행을강조하는 목소리도 들린다.길을 걸을 때 질서있게 왼쪽으로 걷자는 이야기다.그러나 우리가 오랫동안 교육받고 길들여진 ‘사람은 왼쪽,차는 오른쪽’이라는 원칙을 월드컵을 계기로 재검토해 보아야 할 듯싶다.이 통행 방식은 월드컵 기간 중 한국의 이미지를 무질서하게 보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될지도 모른다. 자동차 통행방식에는 세계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자동차가 도로의 오른쪽을 이용하는 우측 통행 방식과 왼쪽을 이용하는 좌측 통행 방식이다.미국과 유럽 대륙은 우측 통행 방식을,영국과 일본 등은 좌측 통행 방식을 사용한다. 자동차가 우측 통행이면 사람도 우측 통행이고 자동차가좌측 통행이면 사람도 좌측 통행하는 것이 세계적인 관행이다. 빌딩의 회전문,에스컬레이터,공항의 무빙 트랙 등을 미국에서는 오른쪽,일본에서는 왼쪽을 사용한다.북한에서도 사람과 자동차 모두 우측 통행을 한다.이처럼 통행 방식이통일돼야 무질서를 초래하는 동선의 교차를 방지하고 통행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좌측 통행과 우측 통행이 뒤섞여 있다.차는 오른쪽,사람은 왼쪽으로 다닌다는 기본 원칙부터 글로벌 스탠더드와 다른 데다 서울 지하철의 경우 1호선은 좌측 통행이고 2∼8호선은 우측 통행이다.사람의 좌측 보행원칙은 일제시대인 1921년 만들어진 것이고,자동차의 우측 통행은 미 군정청에 의해 1946년 결정됐다.서울 지하철 1호선이 좌측 통행인 것은 구한말 일본 방식으로 시작된 철도의 방향에 따른 것이고,2호선부터는 미국식을 따른 것이다.또 빌딩의 회전문이나 에스컬레이터는 미국식을 따라오른쪽으로 통행하도록 돼 있다.지난 1999년부터 전국의횡단보도에는 오른쪽 통행을 유도하는 화살표가 표시되고있기도 하다. 이처럼 좌·우측 통행이 뒤섞여 있다 보니 보행 질서가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지하철 통로는 보행자로 뒤엉켜혼잡하고 서로 몸을 부딪치는 것은 예사로 여겨질 정도다.이런 모습은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일본과 극명하게 대비돼 한국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요인이 될지도 모른다.우리는 무심코 보아 넘기는 일이지만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뒤섞인 좌·우 통행 방식의 문제점을 자주 지적한다. 통행 방식의 통일은 사고 위험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횡단보도를 건널 때 왼쪽으로 걸으면 달려 오는 차와 곧바로 마주치게 되지만 오른쪽으로 걸으면 차량 정지선과 보행자의 거리가 그만큼 멀어져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경찰청이 횡단보도에 오른쪽 통행을 유도하는 화살표를표시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효과를 바란 것이다.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은 어린이들에게 횡단보도에서의 우측통행교육을 시킨 결과 어린이 교통사고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주장한다.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보행 중 사망자가 약 70%에 이르는데 2000년 518명에서 2001년에는 439명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세계인이 몰려드는 월드컵에 앞서 우리 교통질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어야 한다.자동차와 기차의 통행방향을 일치시키기는 어렵다 할지라도 보행자의 우측통행은 시민운동 차원에서 정착시킬 수 있다.몇십년 몸에 밴 습관을바꾸기 어렵다는 저항이 있을지도 모르나 우리나라의 전통적 통행방식은 우측 문으로 들어가 우측 문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당국은 횡단 보도에 우측 통행 화살표만 그려넣는 소극적 방식에서 벗어나 더욱 적극적으로 우측 보행이 확산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무엇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어린이교통질서 교육 내용이 ‘사람은 왼쪽,차는 오른쪽’에서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교육부와 행정자치부,지방자치단체 등이 우측보행 원칙을세우기 위한 공동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성숙한 사회는 기초질서를 지키는 사회고,기초질서 지키기는 합리적인 시스템의 뒷받침에서 시작된다. 임영숙 공공정책연구소장 ysi@
  • 日帝 훼손 경희궁 복원

    조선 광해군때 지어져 일제시대때 헐렸던 경희궁(慶熙宮)이 복원됐다. 서울시는 종로구 신문로2가 사적 271호인 경희궁의 1차복원 공사가 마무리돼 오는 21일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한다고 10일 밝혔다. 경희궁 복원공사는 옛 문헌과 기단석 등을 토대로 지난 88년 시작돼 위치 등에서 옛 모습을 회복했다. 이번에 복원,공개되는 건물은 궁입구의 흥화문(興化門)을 들어서 정전(正殿)인 숭정전(崇政殿)과 임금이 집무를 보던 자정전(資政殿),임금의 초상을 봉안했던 태령전(泰寧殿),숭정문(崇政門),태령문(泰寧門),그리고 담의 일종인 회랑(回廊)등이다. 시는 또 일제시대때 세워진 경희궁내 방공호를 올 하반기에 철거,이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인 뒤 결과에 따라침전(寢殿)인 융복전(隆福殿),회상전(會祥殿)과 임금이 걸어가던 길인 어도(御道) 등 2차 복원공사를 2008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경희궁은 조선 광해군때 건축된 궁궐로 숙종이 태어났고경종,정조,헌종,철종이 즉위했으며 숙종,영조,순조가 승하하는 등 조선후기 정치활동의 주무대였다.이동구기자 yidonggu@
  • 昌주변 의혹과 해명/ 빌라소유주,화성 땅투기,최규선돈 수수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문제의 가회동 빌라소유주가 따로 있다는 설이 도는가 하면 손녀 원정출산,부동산 투기,부친 친일문제,최규선(崔圭善)게이트 연루설 등매우 다양하다.주요 의혹들의 실상을 해부해 본다. ●호화빌라 실제 소유주 문제= 이 후보가 사용해 온 가회동 빌라(105평형)의 실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하다.이 후보측은 이 빌라가 사위인 최명석 변호사의 부친 최기선씨(한약상) 소유로 지난 97년 대선에서 낙선한 뒤 마땅한 집을 못 구하자 그가 빌려준 것이라고 말한다.하지만 민주당에서는 이 빌라가 이 후보 측근인 모의원의 것이라거나 심지어는 이 후보 본인 소유라는 등 실제 소유주는 따로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의 폭로 직후 한나라당측은 ‘정치공작’이라고해명했지만 명쾌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이 후보측은 빌라파문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근 옥인동의 3층짜리 주택으로이사했다. ●손녀 원정출산 논란= 미국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 근무중인 이 후보의 장남 정연(正淵·39)씨 부인이 출산시점에맞춰 하와이로 건너가 딸을 낳았다.이는 일부 부유층들이아이에게 미국시민권을 주기 위해 행하는 전형적인 ‘원정 출산’이라는 것.이에 대해 이 후보측은 “며느리가 미국에 잠깐 가서 애를 낳고 돌아온 게 아니라 남편의 직장을따라가 낳은 것인데 무슨 시빗거리가 될 수 있느냐.”는입장이다. ●부동산 투기 시비= 이 후보는 변호사 시절인 87년 경기도 화성시 일대에서 7200평의 임야를 매입했는데 그로부터 1년여 뒤 이 지역을 포함한 5개 지역에 대한 ‘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됐다.매입 당시 평당 1만원 안팎이던 땅값은 평당 20만원을 넘어 장부상으로만 14억원의 시세차익이생겼다.주위에서는 이 후보가 사전에 개발계획을 알고 있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이 후보측은 “화성 땅은 ‘선산용’으로 구입,전매하지 않은 채 법에 따라 재산공개를 해 왔다.”면서“97 대선때도 일부 후보들이 문제를 제기하려 했으나 결국 쟁점화하지 못했다.”고설명했다. ●부친의 친일(親日) 여부= 이 후보의 부친 이홍규(李弘圭·97)옹은 일제시대 검찰 직원으로 재직했다.특히 그는 1930년 10급에서 10년만에 7급으로 승진했는데 일각에서는조선인 핍박과 독립운동가 체포 같은 친일행적 없이 이런고속 승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 후보의 집안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해방 뒤 미 군정청은 법원장·검사장이 추천한 서기를대상으로 특임시험을 치러 판·검사로 임명했다.”면서 “친일했으면 어떻게 추천을 받았고,서기로 근무했던 광주지검에서 어떻게 검사생활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최규선게이트 연루설=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씨가 윤여준(尹汝雋) 의원을 통해 이 후보의 방미 비용으로 수억원을 건넸다는 것이 의혹의 요지다.또 미국통인 최씨가 이 후보 선거 캠프에 참여하기로 했으며 장남 정연씨가 그와 민감한 내용의 e메일을 주고받았다는 설도 나돈다.물론이 후보측은 ‘터무니 없는 얘기’라며 펄쩍 뛰고 있다.이와 관련된 의혹들은 현재 검찰이 수사중이어서 머잖아 가부간 진실이 가려질 가능성도 있다. ●두 아들 병역 기피와 장남의 주가조작 연루설= 장남 정연씨와 차남 수연씨가 모두 체중미달로 군에 입대하지 않았다.이에 따라 두 아들이 체중을 일부러 줄였거나 청탁을통해 병역을 기피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또 정연씨는 올해 초 해외 유학파들이 가담한 K제약 주가조작사건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돌자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이를쟁점화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측에서는 두 아들 병역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97 대선에서 걸러진 사안으로 두 아들의 경우군에 안 간 것이 아니라 몸이 약해 못 간 것이라는 입장이다.또 주가 조작 가담설 역시 근거없는 것으로 이미 판명이 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부안 유천리 도요지 복원한다

    전북도는 국가 사적 69호인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도요지를 복원,정비키로 했다. 1일 전북도에 따르면 일제때 도굴과 70∼80년대 야산 개발 등으로 훼손된 유천리 도요지를 연말까지 2억원을 들여 정비하기로 했다. 도는 도요지 보호를 위해 국고 지원을 받아 오는 2006년까지 전시관과 체험관,청자 재현 연구관,청자 도예촌,판매장 등의 건립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유천리 도요지는 12∼13세기 최고 품질의 청자를 생산해고려 왕실과 귀족들에게 납품하던 곳으로 일제시대인 1939년 일본인 노모리씨가 이 일대에서 33개의 청자 가마터를확인하고 전남 강진과 함께 고려청자의 2대 생산지로 소개했다. 광복 이후에는 국립박물관이 지난 67년 발굴조사를 벌여수습한 자기파편 등을 통해 제조기법과 비색,형태 등이 강진 사당리 7호분과 같은 12세기 초·중엽의 청자 가마터로 확인했다. 유천리 도요지는 서해안고속도로 줄포 IC에서 보안면 소재지인 영전을 거쳐 곰소 쪽으로 3㎞ 거리에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만화경] 나 굴리엘모 주교의 은퇴

    한국 천주교의 역사는 조선 정조때 이승훈이 중국 베이징에서 프랑스 그라몽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은 1784년 2월부터 시작된다.당시 서학을 접한 소장파 학자 이승훈은 중국 외교사절 부연사행(赴燕使行) 일행이었던 부친을 따라 중국에 간 뒤 선교사들의 권유로 신앙고백을 했으며 이 날이 한국 천주교의 출발로 여겨진다.이렇듯 한국 천주교는 평신도로부터 시작됐지만 처음부터 선교사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외국 선교사가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데는 정묘호란이 끝난 뒤 청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의이야기가 얽혀 있다.소현세자는 당시 중국에서 활발하게선교했던 예수회 소속 선교사들과 자주 만나 천주교에 관심을 갖게 된 뒤 귀국 70여일만에 병사한 비운의 인물이다.애틋한 소식을 전해들은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가 조선선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조선교구를 처음 만든 것으로전해진다. 이후 한국 천주교는 철저하게 선교사들의 영향아래 휘둘려졌고 토착종교와 갈등을 겪으며 적지않은 문제도 만들었다.제사를용인하지 않는 조치는 많은 이들의 반감을 샀고 이는 천주교 박해와 순교의 주 요인이 됐음을 무시할 수없다.일제시대 한국 천주교의 유일한 교구장 뮈텔 주교의영향아래 있었던 한국 천주교는 독립전쟁을 살인행위로 단정하는 등 반민족적인 과거사에서도 비켜날 수 없었다.많은 선교사들은 구한말부터 핍박과 견제의 표적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군사독재의 압제하에선 민초들과 부대끼며 숱한 시련을 견뎌내야 했다.물론 한국 천주교세의 확장에도주도적인 역할을 해냈다. 한국 천주교의 마지막 외국인 교구장인 인천교구 나 굴리엘모 주교가 25일 은퇴한다.교계에서는 이를 놓고 ‘한국천주교의 완전 토착화’란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군종을 포함해 17개 교구의 장이 모두 한국인 주교로 구성됐다는 역사적 사실에의 주목이다. 1954년 한국 땅을 밟은 뒤 41년간 최장수 교구장을 지낸나 주교는 최근 지인들과 만나 은퇴의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처음 교구장에 임명됐을 당시만 해도 11명의교구장중 한국인 주교는 4명에 불과했습니다.경제적신앙적으로 기적적인 발전이 있었지만 교계 안팎에서 세속화개인주의의 그림자가 짙어가는 것은 가슴아픈 일입니다.” 1830년 첫 교구 탄생 172년만에 한국인 주교들만의 교구체제가 갖춰진 것은 분명 큰 의미를 갖는다.여기에서 한국을 줄곧 ‘우리나라’로 부르며 군사독재 시절 도청과 미행 감시까지 받았다는 나 주교의 은퇴에 앞선 솔직한 토로는 ‘토착화’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김성호기자kimus@
  • [대한광장] 이 나라 ‘진짜 주인’의 뜻

    나에겐 여든을 훌쩍 넘으신 외할머니가 살아계신다.할머니는 작년 봄에 일주일 이상 음식을 못 드시고 죽음의 문턱에까지 간 적이 있었다.마지막으로 얼굴을 뵙기 위해 병원에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마지막 기운을 내시며 내 손을 잡고기도를 부탁하시는 것이었다.“이 보잘것없는 늙은이가 지금까지 밤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 왔단다.이제 그 소임을 다 못하고 가니 네가 그 기도를 계속해다오.” 뜻밖의부탁에 당황한 나는 “얼른 기운 차리셔야지 지금 나라 걱정하실 때예요”라며 딴청을 부렸다. 할머니는 기도를 못 물려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던지그후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지금도 밤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배움도 없고 시골 고향마을에 내려가 마지막 여생을 보내는 한 노인이 죽음 앞에서야 마음의 진실 한가닥을 드러내시는 것을 보고 나는 그후 많이 생각했다.이 나라가 힘든역경 속에서도 살아남고,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경제나 사회의 발전을 이루어올 수 있었던 밑거름은 무엇인가.아무런이해관계도 없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마음과 정성을다하는 그 간절한 바람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예로부터 정신적인 에너지를 일컫는 ‘기'를 매우중요시한다.‘기가 찬다' ‘기가 질린다' ‘인기를 받는다' ‘기가 죽는다'는 등 기와 관련된 말들도 많고,기세나 기운이있으면 어떤 힘든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도 선각자들이나 민초들의 기운 하나로 나라를 지킨경우가 많았다.조선시대 의병들의 활동이 그렇고,일제시대의 독립운동과 독재시대의 민주화 운동이 그렇다.기를 모아집중하는 것을 도를 닦는다고 하는데, 산속에서 도를 닦아야만 도사인 것은 아니다.밭 매느라 지친 몸으로 나라가 잘되기를 빌며 기도하는 시골 아낙네들,경쟁사회를 살아가느라 지친 와중에서도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걱정의끈을 놓지 못하는 중년의 가장들,인터넷에 들어가 전문지식을 총동원하여 밤새 열띤 토론을 벌이는 젊은이들,이들 모두가 자신의 진실한 기운을 모두를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도사들이다. 이 도사들의 기도가 깊어지면 때로 서로의 기를 통하며 음모를 벌이기도 한다.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통하니 음모라고 하는 표현이 맞겠다.그런데 기도가 깊어지려면 사사로운 욕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하니,기도가 깊어진 이들의음모는 음모 중에서도 좋은 음모다.우리가 때로 생각지도못했던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이 민초 도사들의 음모 때문이다. 이 민초들의 기운을 받은 사람은 겸허해져야 한다.그는 이들의 소중한 기운들을 거저 받은 것이 아니라 위탁받은 것이기 때문이다.사심없이 진실한 이 기운을 받지 못한 사람은 나서지 말아야 한다.그는 나설 자격이 없다. 할머니는 기도를 부탁하시던 날,6·25 때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식을 겨우 구해내었던 일을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말씀하셨다.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 중에 가장 극한의 순간을 다시 떠올리시는 거였다.그때의 경험이 얼마나 절박했던지 50년이 지났음에도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울기까지 하셨다.아마도 전쟁 속에서는 내 자식을 지켜낼 수 없다는 어미로서의 깨달음이 할머니로 하여금 그후로 간절히 나라기도를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전쟁의 경험에서 증오를 배우고 키우는 대신 평화의 기도를 할 줄 알았던 현명한 우리 할머니들은 세계가 전쟁에 휘말린 오늘날을 사는 우리 어미들의 손을 잡고 이렇게 부탁하신다.“아이들을 전쟁의 총탄 속으로 몰아 넣어서는 절대안된다. 그렇다고 내 아이만 미국인을 만들어서 군대 안보내는 것은 나라 망하는 길이다.지금부터라도 마음과 정성을모아서 평화의 기도를 시작해라. 그리고 평화를 지켜줄 만한 사람에게 그 기운을 모아 줘라.”[박주현 변호사·사회평론가]
  • 자치단체 경찰사찰 중단 요구

    대구지역 공무원들이 경찰의 자치단체 출입과 정보수집 활동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달구벌공무원직장협의회(달공협)는 21일 성명을 내고 경찰의 지방자치단체 사찰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달공협은 “과거 일제시대와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있었던경찰의 행정기관 출입이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며 “지방분권을 침해하고 행정기관의 존엄성을무시하는 경찰의 행정기관 사찰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달공협은 경찰이 정보형사를 자치단체에 출입시켜 기관장을 비롯한 일반 공무원,나아가 지방자치단체를 사찰하고 있다며 이는 정치사찰의 잔재로 시급히 청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달공협은 ▲경찰이 쓸데없이 행정기관에 출입하는 일이 없도록 특별 조치할 것 ▲경찰이 행정기관 출입시사전 허가를 받거나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 받을 것 등을 요구했다. 특히 달공협은 앞으로 경찰이 행정기관에 정보수집 등을 목적으로 출입할 경우 이를 실력으로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달공협 박성철(朴成轍·대구시 자치행정과)회장은 “정보형사들이 매일 행정기관을 출입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앞으로 전국의 공무원직장협의회와 연계해 정보형사의 자치단체 사찰을 금지시키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청의 경우 대구경찰청 및 대구중부경찰서 소속정보형사 2명이 정기적으로 시청을 출입,자치단체 동향 등정보수집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대한광장] 재외동포법 시급히 개정돼야

    국내에서 일하는 재중동포 노동자의 인권 침해가 여전히심각하다.불법체류자로서 임금체불과 추방의 공포에 떨고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재중동포는 국내 외국인노동자 30여만명 중 4분의1을 차지한다.또 그들의 74%는 불법체류자다.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하재외동포법)에 의하면 그들은 재외동포가 아니다.한국정부는 재중동포를 ‘한국계 중국인’으로만 대하고 있다.그들의 대부분은 대한민국의 출입국관리 행정을 교란하는,‘불법’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범죄자일 뿐이다. 재외동포법은 재외동포가 국내에서 내국인과 거의 대등한법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1999년 제정되었다.재외동포법 제정 이후 ‘외국국적 동포’라 할지라도 재외동포 사증을 발급받은 자는 참정권과 병역의무를 제외한 권리와 의무를 누릴 수 있다.문제는 재외동포법에서‘외국국적 동포’를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 및 그직계후손’으로 한정하여,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해외로 이주한 한인과 그 후손을 제외시킨 점에있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11월29일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재외동포법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헌법에서 대한민국이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다고 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일제시대 기아(飢餓)와 식민 압제 및 전화(戰禍)를 피해,또 독립운동을 위해 해외로 이주한 한인과 그 후손이 재외동포로인정받지 못하는 불합리성을 지적한 것이다. 재중동포와 재구소련동포 등을 포괄하도록 재외동포법을시급히 개정하여야 한다.재외동포법을 바로잡는 데는 두 가지 장애요인이 있으나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그 하나는 재외동포 체류자격은 사실상 ‘이중국적’이므로 중국내 소수민족 분열을 조장한다는 중국정부의 우려다. 이에대해서는 재외동포 체류자격은 참정권과 병역의무가 배제된,출입국과 체류 및 취업에서의 편의만 제공하는 것이라는점,한국도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여중국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외교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약 30만∼60만명에이르는 재중동포와 재구소련동포가 유입되어 국내 노동시장에 교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한국정부의 우려이다.이에 대해서는 거주국별로 연간 재외동포 사증 발급 건수를 제한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아마 재중동포와 재구소련동포들이 그 제한 대상에 포함될것이다.한국정부는 국내의 인력 수요와 공급 상태를 고려하여 수용할 수 있는 재외동포의 수를 결정하여 그에 따라 연간 재외동포사증 발급 건수를 제한하여야 한다.국내 노동시장의 일자리 수급 상황을 잘 살핀 후 재외동포 인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다.이러한 사실을 중국정부에 알리면,재외동포 체류자격이 이중국적 부여와는거리가 먼 것임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한국 노동시장의 문호를 재중동포에게서서히 개방하는 자세를 견지하여야 한다.중국의 경제발전이 현재와 같은 속도로 지속될 경우 재중동포가 한국 노동시장으로 쇄도할 가능성은 앞으로 점점 낮아질 것이기도 하지만,남북 통일 후 노동시장 통합을 사전연습한다는 의미에서도 그 개방의 폭을 넓혀 가는 진취적 자세가 필요하다. 거주국에 따라 민족에 차별을 두는 재외동포법은 시급히개정되어야 한다.현재 재중동포 사회에서는 이런 말이 떠돌고 있다.“한국인은 1등 국민,중국조선족은 2등 국민,북한인은 3등 국민.” 이러한 등급 나누기는 일본 제국주의가실시한 분할지배의 연장선상에 있다.이같은 정서가 통일 후까지 지속된다면 민족 차별은 2등 국민과 3등 국민의 위상이 뒤바뀐 채 지속될 것이다.동포조차 차별한다면 전지구화된 세계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다.이제는 삶의 패러다임을‘지배와 예속’에서 ‘평등과 공존’으로 바꾸어야 할 때다.한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선진 민주복지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
  • [친일청산 부끄러운 과거와 현재] (3)해방후 친일파 득세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저서 ‘한국의 해방과 미국정책’을 통해 해방직후 미군정 통치기간 동안 군,관료,정치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전에 일본인이 해놓은 임신을 성공적으로 결말짓는 산파 역할만 했다고 미국을 비판한바 있다.해방된 한국이 직접 자손을 보도록하는 고려가 없었다는 것이다.이 말은 1945년 9월12일 출범한 주한미군정(USAMGOK)의 친일 인사의 등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군정청이 당시 선발한 60명의 장교 가운데 40명이 일본군 출신이었고 경찰 조직도 간부의 53%,하위직의 25%가 일본경찰출신이었다. 이처럼 친일파들은 지탄과 단죄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전락하기는커녕 미군정기부터 식민지시대 못지않은 국가 및 사회 파워그룹 참여의 헤택을 부여받았고 근대화와독재시대를 거쳐 파워를 몇배나 증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식민지 시절부터 사회적,경제적으로 우월한 상황에 있던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대전환기였던 해방이후의 한국 역사에서 다른 국민보다 더 빨리 출세하고,더 많이 돈을 모으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에 비해 피식민,피점령의 역사에서 막 벗어난 대부분의 나라들은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인적 단죄가 철저하게이뤄졌고 참회와 화해도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2차대전 독일점령 시절에 독일에 협력한 인사들을 ‘비국민’으로 규정,공직사회 진출을 금지시켰다. 부역자들의 재산은 압류됐고 2000여명이 사형,4만여명이징역형에 처해졌다.벨기에 네덜란드도 5만여명이 징역형을 받았다. 다소 성격이 다르지만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 역시 국가정체가 바뀌면서 30년동안 9만명을 기소,5000여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승전한 연합국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을 통해 나치전범을 처단당했던 독일은 이후 스스로 나치 부역자에 대한 추적과 재판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반민특위에 의한 단죄가 집행유예 5인,실형7인,공민권 정지 17인에 그쳤고 그나마 실형을 받은 7인도 50년 봄 재심청구로 모두 풀려났다. 이처럼 친일 세력들이 해방후 단죄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민족과 국민을 철저하게 괴롭힌 공산주의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공산주의와 세계패권 다툼을 벌이던 미국은 이런 목적에 금방 써먹을 수 있는 친일파를 등용했고,친일파들은 반공의 절대적 기치 아래 매카시즘의수법으로 친일청산을 거론하는 반대파를 성공적으로 제거해왔다.수십년이 지나면서 이들 후손들은 한국 사회의 기득층과 파워그룹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했다.친일 부역자들은 정통성을 따질 겨를이 없는 과도기를 통해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연스럽게 부상했고 지금까지도 그 맥이 이어진것이다. 친일세력은 법조계부터 정계 문화예술계 등 모든 분야에서 엘리트 세력으로 위용을 부리고 있으며,‘황국사관’을 지키고 있는 많은 강단사학자들은 교과서에서까지 친일의 흔적을 지우려 애쓴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들 친일세력들의 득세는 한국 사회 부조리와 비정상의 근본 뿌리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반면 독립 유공자들의 후손들은 대부분 선대의 자기희생적 활동 결과 사회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기반을 상실해해방후 대격변기에 빈곤층으로 계층하락하고 말았다.‘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엄혹한 일제시대의 두려움이 해방후 현실화한 것이다. 광복 5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언어 및 사회생활구석구석엔 일제의 잔재가 엄존하고 있다.이는 자각되지못한 국민 탓도 있지만 친일 부역자들이 줄곧 사회지도층으로 득세하고 있는 데 따른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냉철한 역사적 평가를 통해 친일파에 대한 인적 청산이 요청되는이유인 것이다. 김성호기자 kimus@ ■친일청산특별법 연내 제정. 국회의원들의 친일파 명단 발표 후 앞으로 친일 청산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국민들의 관심이 크다. 이번 발표를 주도한 김희선 의원측에선 일단 ‘친일 청산의 당위성’을 논의의 장에 올리고 국민적 관심을 끄는 데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자체평가하고 있다.따라서고조된 국민적 관심이 식기 전에 예정된 작업을 서둘러야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친일청산 작업은 앞으로 크게 세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친일 반민족행위자와 관련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설치,그리고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다.이를 위해‘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은 이달부터 두차례 정도 공청회를 가질 예정이다. 위원회는 민족문제연구소 등 친일문제 연구단체의 성과를 토대로 이미 발표한 명단에 대한 검증작업,앞으로 추가로 발표할 친일인사에 대한 친일행위 규명작업 등의 일을 맡게 된다. 또 친일 반민족행위 선정 기준에 대한 보강도 시급하다. 첫 발표 때는 광복회가 반민법을 기준으로 발표한 명단에16명을 추가한 정도지만 추가 발표 때는 보다 강화된 기준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이는 반민법에 애매한 문구가 적지 않아 실제 적용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친일파 명단 발표를 토대로 잘못된 국민적 인식을 바로잡는 일이다.이를 위해 교과서 개정 및 연구단체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 지원 등의 작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김 의원은 “친일이 확실히 청산될 때까지 작업을 계속해야겠지만 우선 올해 안에 특별법 제정 및 특위 구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70년전 농민들 어떻게 살았나

    일제시대 농촌과 농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 발간됐다. 농촌진흥청은 ‘1930년대 우리나라 농업·농촌 사진집’(국배판 230쪽)을 발간했다고 4일 밝혔다.1919∼1945년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농진청의 전신)에서 일했던 일본인다카하시 노보루(高橋昇·46년 작고)박사가 찍은 사진 1700여점 중 256점을 추려 만들었다.1930년대 경상도 제주도황해도의 농촌 생활상과 농기구,농사기법 등이 자세한 해설과 함께 실려 있다. 농진청은 2000년 다카하시 박사의 아들 고시로(甲四郞·77)씨를 설득해 사진을 넘겨받았다.고시로씨는 이전까지 수많은 기관으로부터 사진 양도를 요청받았지만 매번 거절해오다 “부친이 활동했던 나라의 정부기관이라면 사진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농진청에 사진의 영구보관·관리권을 주었다. 농진청은 이 사진집을 500부 한정판으로 찍어 전국 대학과 연구기관 등에 배포할 계획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
  • [기고] 남북 선사유적 학술교류 시급

    최근 ‘새해 맞이 남북 공동 모임’이 무산됐다는 뉴스를접하며 지난달 남북 선사유적 관련 학술교류 협의차 평양을방문했던 당시가 새삼 생생히 떠오른다. 착륙 전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평양 시내는 고층빌딩사이에 고대 유적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깨끗하고 정비된근대 도시의 모습이었다. 필자와 김충환 서울시 강동구청장등 방북단 일행은 남북관계를 총지휘하고 있는 허혁필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을 위시한 북한 관계자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는 신석기주거지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평양시 강동군에는 단군릉을 위시한 여러 유적들이 밀집돼 있기 때문에,두 지역간의 유적을 통한 학술교류 추진을 위한 첫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한민족이 한반도에 이룩한 역사는 남북한 어느 한 쪽의 연구 성과만 가지고는 제대로 밝혀낼 수 없다.더구나 역사의첫 장을 장식하는 선사시대는 우리 조상이 남겨 놓은 유적과 유물로만 연구가 가능한데,해방 후 가로막힌 장벽 때문에 남북교류가 막힌 상태로 오늘에 이르렀다.이러한 상황에서오히려 남북한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일본이나 그밖의 제3국 학자의 견해가 우리 역사 연구를 주도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해방 후 한국 선사고고학자로서는 처음으로평양을 방문한 필자로서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평양 중심부의 김일성 광장에 있는 평양중앙역사박물관에는지난 50년간 북한 고고학자들이 힘써 발굴·조사한 유물 13만점이 전시,수장돼 있었다.민족의 보고로 손색이 없었다. 북한 학계는 그간 한반도에 구석기시대 존재의 최초 확인,신석기시대의 농경문화 최초 확인,일제시대에 부정됐던 청동기시대의 존재 확인 등 남한 학계에서는 연구의 체제조차갖추지 못한 시기에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바로 그런 증거물들을 하나하나 실견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아시아의 피라밋’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웅장한 단군릉도 돌아보았다.한 변의 길이가 50m,높이가 22m 규모로 만주 통구(通溝)의 장군총보다 세 배나 크다.물론 남한이나 일본 학자들 중에는 이 단군릉이 학술적 뒷받침이결여된상황에서 복원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삼국유사와 고려사·조선사의 기록에서 단군릉의존재가 확인되고,무덤에서 발굴된 뼈가 5000여년 전의 것이라는 북한 사회과학원의 연대추정 등으로 볼 때 단군을 단순하게 ‘신화’적 측면에서만 볼 수도 없는 일이다.이는의견을 달리하는 남북한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연구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이번 방문을 통해 필자는 놀라울 만큼 세련된 모습으로 정돈된 문화유적을 보면서북한이 남한 못지 않게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문화유산 정비작업을 벌여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높기만 한 이념의 장벽 때문에 남북간의 학술·문화교류는 미미했고,이에 따라 역사해석을 놓고도 양쪽 학자들간에 견해차가 적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 평양방문이 앞으로 이러한 견해차를 좁히는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온 필자로서는 최근 잇따른 남북교류무산 소식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정치·경제분야 못지 않게남북간 학술교류는 중요하고 시급하다. 이번 사태의불똥이남북간 문화·학술 교류에까지 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임효재 서울대교수 한국선사고고학회장
  • ‘친일 명단’ 여야 반응/ “”역사 바로잡기”” “”잣대 모호””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회장 金希宣의원)의친일행위자 708명 명단 발표에 대해 1일 여야와 개별 의원들이 엇갈린 반응을 보이는 등 논란이 정치권에 확산되고있다. 특히 여야는 상대방 수뇌부에 대해 친일 의혹을 제기하는등 이 문제가 정치공방으로 비화하는 모습이다. [논란] 친일인사 명단 발표에 대해 민주당은 ‘환영’,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곡절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국회의원들의 노력이 결실을 봤다.”고 높이 평가했다.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은 “명단에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부친이 포함된 한나라당 최돈웅(崔燉雄) 의원은 알량한 변명보다 솔직한 고백과 참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선주자인 정동영(鄭東泳)고문은 “일제하에서 15년간이나 총독부 검찰서기로 근무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 부친의 친일행적에 대해 이 총재는 솔직하게 고백해야한다.”고 이 총재를 직접 겨냥했다. 반면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대변인은 사견임을 전제,“동시대에 함께 호흡했던 분들이 아닌데 젊은 국회의원들이이런 식으로 재단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이회창 총재는 명단 발표 당일 “우리 근대사에 족적을 남긴 지도자들까지도 이제 와서 친일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고 남 대변인이 전했다. 특히 이 총재에 대한 여당의 공세에 대해 남 대변인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일제시대 학예회에서 일본군인역을 자임한 친일파 중의 친일파”라고 맞불을 놓았다. 자민련 정진석(鄭鎭碩) 대변인은 “집중 심의대상이었던 16명 가운데 시대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온 분들이 있는데친일이란 다분히 모호하고 막연한 잣대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쳤다.”고 밝혔다. [격려 쇄도] 명단발표를 주도한 민주당 김희선 의원은 이날“‘큰일했다.’는 격려전화와 화환이 집과 사무실로 쇄도하는 등 국민적 호응이 대단하다.”면서 “항의전화는 한통도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모 검사는 이름을 밝히며 직접 전화를 걸어 “‘검찰내부에서도 의원들의 용기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김 의원은 전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항일 유적지 日관광객 러시

    한·일 월드컵이 열리는 올해 3·1절을 전후해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대문 독립공원,안중근의사 기념관 등 국내 항일 유적지에 일본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대부분 학생이나 배낭 여행자,단체 관광객들이다. 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뒤 많은 애국인사와 항일투사들이 투옥됐던 서대문 독립공원내 형무소에는 지난 한해 동안 일본인 관광객 1만 900여명이 다녀갔다.독립공원측은 “올들어 일본인 관광객이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천안 독립기념관에도 일본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전체 외국인 방문객의 66%에 이른다.지난해 1만여명이 다녀갔으며,계속 증가하고 있다. 남산 중턱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도 하루 평균 200여명의 일본인이 찾고 있다.지난해 이맘 때보다 1.5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일본 관광객의 80%는 수학여행차 방문한 고등학생들로 대부분 일본 역사교과서에서는 배우지 못한 한·일관계사를익히고 있다. 서대문 독립공원을 둘러본 일본인 관광객 나미에 사토(27·여·회사원)는 28일 “일제시대 감옥이나 사형장,고문현장을 재현한 사료 등을 통해 한국인이 희생당한 사실을접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곳을 방문했던 일본인 친구의 추천으로 이날 독립공원내 형무소를 찾은 기타카와(55·도쿄 거주)는 “올바른 역사의 진실을 알고 보니 그저 놀랍고 한편으로는 일본인으로서 죄를 지은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독립기념관 홍보팀장 김현달(50)씨도 “일본의 한국 침략 사실을 독립기념관을 방문하고 비로소 알게 됐다는 일본인이 많다.”면서 “이들은 고문장면이나 명성황후 시해현장을 재현한 일제침략관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놀라워한다.”고 설명했다. 이영표 윤창수기자 tomcat@
  • [대한광장] ‘땜질식’ 교육정책이 문제

    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개인의 운명과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만고불변의 상수다.건국이래 역대 정부가 사교육 대책에 부심했지만 과외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작금세계 각국이 인적자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개혁을서두르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렇게 중요한 교육이 시장원리와 형평성이라는 본질적인문제에 부닥쳐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교평준화 논쟁이 대표적인 경우다.논쟁의 시발은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1비전과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고교평준화제도를 폐지하고 시장논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데서 비롯됐다.무한경쟁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경쟁원리를도입해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시장론자들의 주장이다.이들은 평준화 28년에 교육현장이 황폐화되어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저하하고 있으며 이에 실망한 학부모들이 강남으로 몰려들어 부동산 값이 뛰는 것을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한다.반면 교육부는 평준화를 폐지하고 사립학교를 자율화하면 중3병이 도지고 공교육 붕괴가 더욱 가속화된다는 반론을펴고 있다.대다수 학부모와 국민여론도폐지를 원치 않는다는 설명이다. 시장론과 형평론은 각각 장단점을 갖고 있다.시장론은 경쟁을 부추겨 교육수준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뒤처진 자와 못가진 자를 더욱 힘겹게 만드는 단점도 있다.한편 형평론은 기회균등과 공정경쟁의 미덕을 살리는 장점이 있지만 교육의 질적 저하를 감수해야 한다.따라서 양자택일식으로 문제를 접근할 것이 아니라 수렴논리로 접근해야 한다.시장론의 장점과 형평론의 장점을 다 함께 살려 나가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미다.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우선 교육부는 이번 기회에 교육정책의 기조를 바로 세운다는 각오로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시장론과 형평론의 보완가능성을 치밀하게 분석해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시장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갑자기 정책기조를 바꿔서는 안된다.무조건 거부반응을 보이거나 우왕좌왕하는 것은 이성적인 자세가 아니다.평준화정책을 획일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도 지양해야 하고 시장원리를일거에 적용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성급한 결정이나 땜질식 처방은 절대 삼가야 한다.사회학자 아미타이 에치오니(Amitai Etzioni)의 주장을 빌리면 모든 정책은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과 미시적이고 단기적인 관점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현실적 합성과 실천 가능성을 갖추게 된다. 둘째,교육적 관점뿐만 아니라 사회경제학적 관점에서도문제를 해부해 봐야 한다.교육정책은 사회경제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교육학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시각적편협성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개발연구원이 경제학적 관점에서 시장론을 제시했다는 것은 경제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예컨대 인적자원개발 정책을 교육논리로만접근한다면 노동시장과 괴리된 결론을 도출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교육부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시각의 폭을 넓혀야 하고 의견수렴을 폭넓게 해야 할 것이다. 셋째,교육개혁은 교육목표의 본질을 파고 드는데 초점을맞춰야 한다.과외병 치유와 아파트값 안정이 교육의 본질이 아닌데도 우리의 교육정책은 이러한 부작용 문제에 매달려 우왕좌왕해 온 게 사실이다.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추진해 온 교육개혁이란 것이 교육이념을 실현하고 목표를달성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부작용 해소에 매달려 온 셈이다. 평준화 문제만 해도 신흥 명문고가 생겨나 입시과열을 부채질할 것을 우려해서 성급하게 도입하다 보니 원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만 것이다.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새로운 정책은 대부분 실험으로 끝나고 일제시대 교육이 차라리 더 낫다는 역설적인 혹평이 나오게 된 것이다.이런논거에서 볼 때 고교평준화 정책이나 신입생 학교배정방식을 현재 말썽이 되고 있는 서울 강남지역의 집값 문제와연계시켜 수정한다면 교육의 본질을 또 한번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교육평준화 논란과 고교신입생 학교배정파동은 교육개혁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본보기다.교육부의 고뇌도 그만큼 클 것이다.새로 나올 보완책이 시장론자와 형평론자의 논리를 절묘하게 절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호진 고려대교수·전 노동부장관
  • 일제 종군위안부 재활자료 찾았다

    일제시대 강제 동원된 종군위안부들의 해방후 국외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문건이 최초로 공개됐다. 독립기념관은 25일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해방후 중국에서방황하던 한국여성들을 돕기 위해 중국동포 독지가들이 만들었던 ‘상해 한국부녀공제회’의 ‘수용인원 명부’를공개했다.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와 한국인들의 광복 직후 생활상과관련된 사례와 증언은 많이 있었으나,구체적 실증자료가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명부에 따르면 상해 한국부녀공제회는 방황하고 있던 한국인들을 구제하기 위해 중국동포 독지가인 공돈(孔敦)·권후원(權厚源)·강대형(姜大衡)·임영호(任永浩) 등 중국동포 독지가 4인에 의해 1945년 11월 3일 조직됐으며,수용자들의 심신수양을 위한 교육과 위생·보건·건강사업을펼쳤다. 명부상의 수용자 총 수는 831명(여자 807명,남자 24명)이고,지역별로는 경남 186명(22%),경북 102명(12%),전남 98명(11.7%),서울,부산,대구 순이었다. 하지만 수용 일별 누계인원은 1946년까지 총 6만6536명,월평균 1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와있다.연령층은 1세부터 63세까지 다양하나 20∼30대가 85%를 차지하고 있다. 이 부녀공제회의 실체는 대한매일 전신인 ‘서울신문’의1946년 5월12일자 ‘일본에 의해 끌려간 조선 여성들이 상해 동포들에게 구제’ 기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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