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일제시대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靑 출신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서울 사람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중앙병원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위험천만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23
  • 함박꽃나무와 함께하는 숲여행

    오전 9시.밤새 조용했던 국립수목원에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합니다.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다정한 커플 한 쌍이 수목원 첫 방문객이네요.오늘 하루도 예감이 좋습니다. 아,저는 누구냐고요? 2004년 6월의 나무로 뽑힌 ‘함박꽃나무’랍니다.화려하진 않지만 하얀색 수수한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죠.선조들은 제 꽃을 ‘천녀화(天女花)’라고 불렀다나요? 수줍음이 많아 꽃을 피울 땐 땅 아래를 본답니다.그런 제가 오늘은 용기 내 수목원 얘기를 들려드릴까하는데,들어 보실래요? 다 아시겠지만 이곳은 국내 최고의 숲을 자랑한답니다.이렇게 아름답고도 엄청난 규모의 산림이 지켜진 것은 세조대왕릉 주위 산림으로 500년 동안 엄격히 보호돼 왔기 때문이죠.1987년 광릉 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됐고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지정됐죠. 역사 얘긴 지루하시다고요? 그럼 지금부터는 저를 따라 수목원 구경해 보세요.원하시는 곳부터 보셔도 되지만 감탄을 아끼지 않아도 좋을 만큼 근사한 이곳의 숲, 여러 식물원 등과 함께 보다 알찬 시간을 보내실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아차,5일 전 예약은 필수라는 것 아시죠? 수목원에 있는 저를 포함한 제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에 5000분만 들어오실 수 있거든요. 오전에 도착하시면 숲생태관찰로나 동물원 가는 길로 오세요.수목원 어디든 좋지만 이곳이 키 크고 늘씬늘씬한 몸짱 나무들이 사이좋게 골고루 뿌리내려 살고 있어 삼림욕에 그만인 곳이랍니다.삼림욕은 다 아시죠?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통해 생체리듬을 찾는 민간요법이지요.6∼8월 오전 10∼12시가 최적의 시간이랍니다.땀 흡수가 잘되는 간편한 복장을 입고 오세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시면서 걸으셔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과 두손 꼬옥 잡고 거닐어도 행복합니다.재미있는 일은 없냐고요? 숲해설가 언니,오빠와 동행해 보세요.저희 나무에 대해 하나하나 알게 되면 그저 똑같아만 보이던 친구들이 의미있게 다가오거든요. ‘앉은부채’라는 친구가 곰의 변비약이라는 얘기,알고 계셨나요? 버드나무가 아스피린의 재료라는 건요? 제가 다 얘기해 드리면 재미없으니까 직접 오셔서 들으세요.정문에서 신청하신 다음 오전에는 10·11시,오후에는 2·3시에 입구에서 기다리시면 돼요. 오전에 삼림욕 흠뻑하시고 나면 슬슬 배가 고프시겠죠? 생태관찰로 근처에 마련된 휴게소에서 준비해 오신 도시락을 맛있게 드세요.숲속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 맞고 새소리 들으며 즐기는 도시락,생각만 해도 꿀맛이겠죠? 해가 중천에 뜨면 아무래도 덥지요.소화는 시켜야겠고,이럴 땐 산림 박물관에 들러보세요.겉은 화강암으로 돼 있지만 안은 낙엽송과 잣나무로 만들어졌답니다. 테마별로 크게 5개 전시실이 마련돼 있고 시청각실에서 영상물도 관람할 수 있어요.바로 옆에 있는 난대식물원에도 들러보세요.안이 좀 덥긴 하지만 커피나무,월계수 등 흔히 볼 수 없는 더운 지방의 나무 친구들이 많거든요. 아름다운 곳에 오셨는데 연인끼리는 ‘나 잡아봐라∼’도 해보셔야 되고 친구끼리는 그럴싸한 혹은 엽기적인 ‘폼’도 잡아보셔야죠.수생식물원으로 가보세요.각시수련,가시연꽃 등 예쁜 친구들이 물에 둥둥 떠 있답니다.근처에는 팔각정도 있죠.분위기 짱! 사진 찍기에 참 좋아요.바로 옆에는 손으로 보는 식물원도 있답니다.앞을 못 보시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곳인데 생강나무에서 정말 생강냄새가 나는지 직접 확인해 보세요. 넓긴 하지만 하루 만에 다 못볼 정도는 아니니까 시간에 쫓기지 마시고 천천히 쉬엄쉬엄 둘러보세요.곳곳에 제 친구들이 만드는 숲그늘은 기본이고 의자도 마련돼 있지요.시원한 마실 물도 준비해 두었고요. 전 어디에 있냐고요? 팔각정 근처 화목원에 꽃을 활짝 피운 채 서 있지요.국립수목원에 오시면 제 얼굴도 보러 와 주실 거죠? 제 전화번호는 (031)540-2000입니다.5일 전에 전화하셔야 되지만 6월부터는 예약인원이 미달됐을 땐 하루 전에도 예약이 가능하니 일단 전화 한번 해보세요. 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그밖에 가볼 만한 숲 국립수목원 외에도 전국에는 아름다운 숲들이 많다.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나만 알고 나만 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숲들이 있다.연인과 함께 걸으면 달콤한,가족과 지나면 푸근한 숲들을 소개한다. ●안면도 ‘소나무 숲’ 고려시대·조선시대 국가에서 목재를 조달하는 곳으로 지정됐던 안면도.일제시대 이곳의 수많은 소나무가 베어지는 등 수난을 겪었다.하지만 안면도의 소나무는 과거 명성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안면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길은 양 옆으로 안면송이 서 있다.태안해안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41)672-9737. ●장성군 ‘황룡리 원림’ 지방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된 곳.100년 수령의 80여 그루 배롱나무가 모여 있고 그 앞으로 황룡강이 흐르고 있다.여름이면 그 풍취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1550년께 당대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이 숲에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장성군청 농림과 (061)390-7422. ●원주 ‘진밭마을숲’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취병리의 마을 입구 양쪽으로 펼쳐진 숲이다.10m 정도의 물푸레나무들을 비롯,여러가지 참나무류 등의 활엽수와 소나무,각종 야생화가 살고 있다.아름드리 나무들이 서로 맞닿아 마치 터널과 같은 느낌을 준다.상지대 산림공학연구실 (033)730-0524. ●제주 ‘돈내코숲’ 한라산 해발1300m 이상에서 시작되는 돈내코 계곡 양쪽의 숲.동백나무,종가시나무,붉가시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을 포함한 1800여종의 난대식물들이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432호인 한란 자생지이다.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항시 흐른다 해서 ‘물맞이’ 장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서귀포시 환경녹지과 (064)735-3421. ●화순 ‘백암마을숲’ 하천을 따라 길이 300m,폭 36m 규모로 이뤄져 있으며 아름드리 푸조나무,느티나무,팽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화순군은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산림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화순군청 산림과 (061)374-2657. ■‘빠삐용 늑대’도 보세요 국립수목원 내 동물원이 7년 만에 개방됐다.1991년 문을 연 이곳은 1997년 6월부터 동물 번식기 안정과 숲 보호를 위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백두산 호랑이,반달가슴곰,늑대 등 모두 17종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여느 동물원과는 다르다.우리에 갇혀 있지만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하나하나 관람한다는 매력이 있다. 수목원 동물원은 오랫동안 비공개로 있었던 곳인 만큼 수목원의 그 어떤 곳보다 숲이 잘 보호돼 있다.그래서 오전에 이곳을 찾으면 삼림욕과 동물관찰학습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최정상에 살고 있는 동물은 역시 백두산 호랑이.1994년 중국 장쩌민 전 주석이 기증한 것이다.하지만 최고의 스타는 늑대다.지난 1월 서울대공원에서 이곳으로 옮기던 중 탈출해 ‘빠삐용 늑대’라는 별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밖에 귀염둥이 반달가슴곰,하늘의 카리스마 독수리 등 여러 야생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동물원은 오는 11월15일까지만 개방된다.방문도 오전 10시30분과 오후 2시30분 하루 두 차례로 제한된다.관람을 원할 경우 입장료는 따로 없고 수목원 입장시 정문에서 신청 하면 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 함박꽃나무와 함께하는 숲여행

    함박꽃나무와 함께하는 숲여행

    오전 9시.밤새 조용했던 국립수목원에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합니다.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다정한 커플 한 쌍이 수목원 첫 방문객이네요.오늘 하루도 예감이 좋습니다. 아,저는 누구냐고요? 2004년 6월의 나무로 뽑힌 ‘함박꽃나무’랍니다.화려하진 않지만 하얀색 수수한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죠.선조들은 제 꽃을 ‘천녀화(天女花)’라고 불렀다나요? 수줍음이 많아 꽃을 피울 땐 땅 아래를 본답니다.그런 제가 오늘은 용기 내 수목원 얘기를 들려드릴까하는데,들어 보실래요? 다 아시겠지만 이곳은 국내 최고의 숲을 자랑한답니다.이렇게 아름답고도 엄청난 규모의 산림이 지켜진 것은 세조대왕릉 주위 산림으로 500년 동안 엄격히 보호돼 왔기 때문이죠.1987년 광릉 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됐고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지정됐죠. 역사 얘긴 지루하시다고요? 그럼 지금부터는 저를 따라 수목원 구경해 보세요.원하시는 곳부터 보셔도 되지만 감탄을 아끼지 않아도 좋을 만큼 근사한 이곳의 숲, 여러 식물원 등과 함께 보다 알찬 시간을 보내실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아차,5일 전 예약은 필수라는 것 아시죠? 수목원에 있는 저를 포함한 제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에 5000분만 들어오실 수 있거든요. 오전에 도착하시면 숲생태관찰로나 동물원 가는 길로 오세요.수목원 어디든 좋지만 이곳이 키 크고 늘씬늘씬한 몸짱 나무들이 사이좋게 골고루 뿌리내려 살고 있어 삼림욕에 그만인 곳이랍니다.삼림욕은 다 아시죠?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통해 생체리듬을 찾는 민간요법이지요.6∼8월 오전 10∼12시가 최적의 시간이랍니다.땀 흡수가 잘되는 간편한 복장을 입고 오세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시면서 걸으셔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과 두손 꼬옥 잡고 거닐어도 행복합니다.재미있는 일은 없냐고요? 숲해설가 언니,오빠와 동행해 보세요.저희 나무에 대해 하나하나 알게 되면 그저 똑같아만 보이던 친구들이 의미있게 다가오거든요. ‘앉은부채’라는 친구가 곰의 변비약이라는 얘기,알고 계셨나요? 버드나무가 아스피린의 재료라는 건요? 제가 다 얘기해 드리면 재미없으니까 직접 오셔서 들으세요.정문에서 신청하신 다음 오전에는 10·11시,오후에는 2·3시에 입구에서 기다리시면 돼요. 오전에 삼림욕 흠뻑하시고 나면 슬슬 배가 고프시겠죠? 생태관찰로 근처에 마련된 휴게소에서 준비해 오신 도시락을 맛있게 드세요.숲속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 맞고 새소리 들으며 즐기는 도시락,생각만 해도 꿀맛이겠죠? 해가 중천에 뜨면 아무래도 덥지요.소화는 시켜야겠고,이럴 땐 산림 박물관에 들러보세요.겉은 화강암으로 돼 있지만 안은 낙엽송과 잣나무로 만들어졌답니다. 테마별로 크게 5개 전시실이 마련돼 있고 시청각실에서 영상물도 관람할 수 있어요.바로 옆에 있는 난대식물원에도 들러보세요.안이 좀 덥긴 하지만 커피나무,월계수 등 흔히 볼 수 없는 더운 지방의 나무 친구들이 많거든요. 아름다운 곳에 오셨는데 연인끼리는 ‘나 잡아봐라∼’도 해보셔야 되고 친구끼리는 그럴싸한 혹은 엽기적인 ‘폼’도 잡아보셔야죠.수생식물원으로 가보세요.각시수련,가시연꽃 등 예쁜 친구들이 물에 둥둥 떠 있답니다.근처에는 팔각정도 있죠.분위기 짱! 사진 찍기에 참 좋아요.바로 옆에는 손으로 보는 식물원도 있답니다.앞을 못 보시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곳인데 생강나무에서 정말 생강냄새가 나는지 직접 확인해 보세요. 넓긴 하지만 하루 만에 다 못볼 정도는 아니니까 시간에 쫓기지 마시고 천천히 쉬엄쉬엄 둘러보세요.곳곳에 제 친구들이 만드는 숲그늘은 기본이고 의자도 마련돼 있지요.시원한 마실 물도 준비해 두었고요. 전 어디에 있냐고요? 팔각정 근처 화목원에 꽃을 활짝 피운 채 서 있지요.국립수목원에 오시면 제 얼굴도 보러 와 주실 거죠? 제 전화번호는 (031)540-2000입니다.5일 전에 전화하셔야 되지만 6월부터는 예약인원이 미달됐을 땐 하루 전에도 예약이 가능하니 일단 전화 한번 해보세요. 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그밖에 가볼 만한 숲 국립수목원 외에도 전국에는 아름다운 숲들이 많다.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나만 알고 나만 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숲들이 있다.연인과 함께 걸으면 달콤한,가족과 지나면 푸근한 숲들을 소개한다. ●안면도 ‘소나무 숲’ 고려시대·조선시대 국가에서 목재를 조달하는 곳으로 지정됐던 안면도.일제시대 이곳의 수많은 소나무가 베어지는 등 수난을 겪었다.하지만 안면도의 소나무는 과거 명성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안면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길은 양 옆으로 안면송이 서 있다.태안해안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41)672-9737. ●장성군 ‘황룡리 원림’ 지방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된 곳.100년 수령의 80여 그루 배롱나무가 모여 있고 그 앞으로 황룡강이 흐르고 있다.여름이면 그 풍취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1550년께 당대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이 숲에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장성군청 농림과 (061)390-7422. ●원주 ‘진밭마을숲’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취병리의 마을 입구 양쪽으로 펼쳐진 숲이다.10m 정도의 물푸레나무들을 비롯,여러가지 참나무류 등의 활엽수와 소나무,각종 야생화가 살고 있다.아름드리 나무들이 서로 맞닿아 마치 터널과 같은 느낌을 준다.상지대 산림공학연구실 (033)730-0524. ●제주 ‘돈내코숲’ 한라산 해발1300m 이상에서 시작되는 돈내코 계곡 양쪽의 숲.동백나무,종가시나무,붉가시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을 포함한 1800여종의 난대식물들이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432호인 한란 자생지이다.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항시 흐른다 해서 ‘물맞이’ 장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서귀포시 환경녹지과 (064)735-3421. ●화순 ‘백암마을숲’ 하천을 따라 길이 300m,폭 36m 규모로 이뤄져 있으며 아름드리 푸조나무,느티나무,팽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화순군은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산림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화순군청 산림과 (061)374-2657. ■‘빠삐용 늑대’도 보세요 국립수목원 내 동물원이 7년 만에 개방됐다.1991년 문을 연 이곳은 1997년 6월부터 동물 번식기 안정과 숲 보호를 위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백두산 호랑이,반달가슴곰,늑대 등 모두 17종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여느 동물원과는 다르다.우리에 갇혀 있지만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하나하나 관람한다는 매력이 있다. 수목원 동물원은 오랫동안 비공개로 있었던 곳인 만큼 수목원의 그 어떤 곳보다 숲이 잘 보호돼 있다.그래서 오전에 이곳을 찾으면 삼림욕과 동물관찰학습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최정상에 살고 있는 동물은 역시 백두산 호랑이.1994년 중국 장쩌민 전 주석이 기증한 것이다.하지만 최고의 스타는 늑대다.지난 1월 서울대공원에서 이곳으로 옮기던 중 탈출해 ‘빠삐용 늑대’라는 별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밖에 귀염둥이 반달가슴곰,하늘의 카리스마 독수리 등 여러 야생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동물원은 오는 11월15일까지만 개방된다.방문도 오전 10시30분과 오후 2시30분 하루 두 차례로 제한된다.관람을 원할 경우 입장료는 따로 없고 수목원 입장시 정문에서 신청 하면 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열린세상] 민족주의 버릴 것인가/최광식 고려대 역사학 교수

    최근 전국역사학대회와 철학연구회 학술대회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주제로 하여 전국 규모의 학술대회가 열렸다.역사학 관련 학회뿐만 아니라 철학연구회에서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한 것은 그만큼 이 문제가 단순히 역사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전국 규모의 학술대회에서 논의의 쟁점이 된 것은 민족 단위의 역사 인식과 서술을 고수할 것인가,아니면 이를 벗어나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즉 고구려사의 귀속문제에 대해 중국과 한국이 갈등을 벌이는 것은 민족 중심으로 역사를 인식하고 서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따라서 민족중심의 역사 인식과 서술을 벗어나 탈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역사를 인식하고 서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즉 종래의 민족주의적 관점의 역사인식과 서술을 탈피하고 세계화시대에 맞추어 역사 주체의 단위를 민족을 초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민족주의는 더 이상 세계화시대의 지향하여야 할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고구려사를 가지고 중국과 한국이 서로 자기의 역사로 편입시키려고 싸움을 하고 있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왜냐하면 중국은 2002년 2월 ‘동북공정’을 시작하기 이전까지는 고구려의 역사를 ‘일사양용론’적 입장에서 인식하고 서술하였다.더구나 중국의 역사교과서에는 아직도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역사로 기술하고 있다.즉 고구려의 역사의 귀속문제에 대해 중국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최근의 일로서 역사학적 접근이 아니라 정치적 접근이라는 점이다.따라서 역사를 보는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의한 왜곡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중국이 애국주의적이고 팽창주의적 입장에서 고구려사를 새삼스럽게 귀속시키려 한다는 점을 일차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그러고 나서 우리의 역사 인식과 서술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또한 민족주의라 하더라도 공격적 민족주의와 저항적 민족주의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공격적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을 해치고 식민지화하는 배타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저항적 민족주의는 민족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일제시대 민족주의가 없었다면 우리가 굳이 독립운동을 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민족을 지키기 위해 민족중심의 입장에서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민족주의사학이 필요하였던 것이다.물론 광복이후에는 민족중심에서 벗어나 민족과 세계를 함께 아우르며 역사를 인식하고 서술하는 신민족주의사학이 제창되었으며,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이러한 입장에서 한국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즉 세계사의 보편성과 한국사의 특수성을 함께 고민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바로보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서구와 같이 국경을 허물고 유럽공동체와 같이 지역공동체를 지향하는 시대에 민족이라는 개념은 전혀 필요가 없는 개념인 것인가? 적어도 우리의 경우는 서구사회와 역사적인 경험과 현실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우선 우리는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해 진정한 의미의 민족국가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아직 민족국가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우물에 가서 숭늉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물론 민족중심으로만 역사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나아가 그 범위를 넓히고 보다 넓은 시각에서 역사를 보려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따라서 민족의 특수성과 세계사적 보편성을 함께 고려하면서 역사를 인식하고 서술하는 자세가 아직도 유효한 것이라 생각한다.배타적이 아닌 열린 민족주의 입장에서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는 자세는 민족국가를 이룩하지 못한 현재 아직도 유효한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최광식 고려대 역사학 교수˝
  • 역사학 지원 ‘두계학술재단’ 설립 이태녕 서울대 교수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실용학문이 득세하면서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들 한다.자연과학자들은 자연과학자들대로 똑같은 이유을 들며 심각한 위기론을 펼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시대를 이끌어간 대표적인 자연과학자로,자신의 분야에서 쌓은 연구 업적을 바탕삼아 인문학 발전에 기여하는 노(老)학자의 존재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문화재 보존과학의 선구자는 화학과 교수 이태녕 서울대 화학교육과 명예교수가 주인공이다.‘한국 보존과학계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뚜렷이 한 획을 그은 대학자이다.하지만 이 박사의 인생을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이 박사의 부친은 역사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두계(斗溪) 이병도(李丙燾·1896∼1989) 선생이다.얼마전 타계한 이기백 한림대 석좌교수의 스승으로 일제시대 인문학 분야의 대표적 학술단체인 ‘진단학회’ 창설을 주도하는 등 1980년대 초까지 실증사학계를 주도한 역사학자였다. “처음에는 역사를 전공할 생각이었어요.그런데 아버지가 ‘우리나라가 필요한 인재는 자연과학도’라면서 크게 반대했습니다..” 두계 선생의 셋째 아들로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다는 이 박사는 결국 “내가 약을 개발해서 고통스러운 질병을 물리쳐야겠다.”는 생각에서 화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평생을 화학자로 살아온 이 박사지만 부친의 전공인 ‘역사’와 그리 멀지 않은 삶을 이어왔다.그는 한국땅에 보존과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처음 들여온 인물이다.보존과학이란 과학분야에서 쌓아놓은 연구 성과를 문화재 등의 보존에 활용하는 학문이다. 공군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한 뒤 국방부에 들어가 국방과학연구소(현 ADD)에서 연구실장까지 지낸 그는 5·16 이후 연구소가 해체되자 서울대 화학교육과로 자리를 옮겼다.보존과학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도 이 즈음이다. ●팔만대장경·석굴암 보존 진두지휘 석굴암 보존을 위해 유네스코에서 전문가를 초빙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그는 공주 송산리 6호분의 보존과학적 특성을 밝혀낸 자신의 경험을 설명해줬다.이 일을 계기로 미국에 건너가 일년동안 보존과학을 다시 연구한 그는 이후 해인사 8만대장경과 석굴암 보존 작업 등을 진두지휘했다.이 분야의 체계적 발전을 위해 보존과학회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정년퇴직을 한해 앞둔 1989년 부친이 타계하자 이 박사는 새로운 할 일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님께서 남기신 장서만 1만여권이 넘습니다.그런 자료들이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이 해 여름부터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부친의 고택에서 하루 10시간씩 먼지가 켜켜이 쌓인 고서들과 씨름하고 있다.1000여종의 한문 고서적과 5000여권의 양장본 서적 등 1만 5000여권을 일일이 뒤져가며 책의 종류와 내용 등을 분류,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었다.부친의 대표적 저서인 ‘한국사 대관’‘한국고대사연구’ 등과 함께 부친이 모아놓은 비문,고지도,탁본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 박사는 “아버님이 타계하신지 만 15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온전한 평가가 나오지 않은 것 같다.”면서 “그동안 분류한 데이터베이스 등을 일종의 ‘사이버 라이브러리’로 인터넷에 올려 사학도들이 학술연구에 활용토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먼지 쌓인 부친의 古書 DB로 만들어 그는 곧 자신의 사재만으로 ‘두계학술연구재단’을 설립한다.부친이 타계하기 전까지 33년동안 생활한 옛집을 ‘두계문고’로 개방하여 일종의 도서관으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국내 역사·문화 연구자들에게 부친의 자료는 물론 국내외 연구자료 정보를 지원할 계획입니다.세계 주요 도서관과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연구자료의 탐색 및 수집도 알선해야죠.” 두계 선생과 관련해 잘못 알려진 부분(이완용과는 30촌 이상 벌어지는 먼 친척임에도 사촌간이라는 등의 소문)을 바로잡는 것도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가 진단학회에 전 재산인 100석 규모의 경기도 용인땅을 쾌척한 것과 마찬가지로 두계학술재단은 다른 사람의 도움은 받지 않기로 했다.정년 퇴직 이후 받고 있는 연금과 자신이 개발한 세제 및 알츠하이머 예방 물질 관련 특허료 수입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선 옛집을 도서관으로 쓸 수 있도록 리모델링하고 무질서하게 보관된 장서도 새로 정리하기로 했다.지금도 대문 기둥에 남아 있는 부친의 문패는 그대로 남겨둘 계획이다. ●한자는 2000년 역사의 기호… 반드시 배워야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으며 고생도 많았다.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환갑이 넘은 나이에 처음 부친의 자료를 살펴볼 때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장서의 대부분이 어려운 한자로 되어 있는 역사책들이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사실상 한문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한자의 묘미도 이때 깨달았다고 한다. “한자는 2000년 이상 약속된 기호입니다.서양이 동양을 무서워하는 것은 한자 때문이지요.제2차 세계대전 때 맥아더 장군이 일본을 점령한 뒤 맨 처음 추진하려고 했던 일이 한자 폐지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500자의 한자만 제대로 알아도 충분하다.”면서 “그냥 글자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역사서적 등을 통해 실속있게 가르쳐야 한다.”고 한자교육에 관한 소신을 피력했다. 부친이 떠난 동숭동 고택에 손때 묻은 각종 화학실험 기자재를 옮겨놓고 연구활동을 이어온 그는 기자와 만나는 동안에도 미국의 우주전파망원경이 보내온 신호가 뜰 때마다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하는 영락없는 과학자이기도 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초중고 ‘차렷’ ‘경례’ 사라진다

    교사가 교단에 서거나 수업후 나갈 때 ‘차렷’,‘경례’라는 구령에 맞춰 목례를 하는 인사방식이 사라진다.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14일부터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구령 없이 인사하기운동’을 시범실시한 뒤 채택을 바라는 학교는 7월5일부터 교장 재량에 따라 실시키로 했다. 수업시간마다 구령에 따라 교사와 학생들이 인사하는 것은 일제시대 때 시작돼 지금껏 이어진 의식의 하나로,일본과 중국 등 몇몇 국가에서만 볼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구령에 따라 앉은 상태에서,중국에서는 모든 학생이 일어난 후 구령에 따라 인사를 나눈다. 미국이나 영국,홍콩에서는 교사가 먼저 인사하면 학생이 답례하거나 출석확인을 하면서 개인별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교육청은 “교내 인사문화는 권위주의적인 측면이 있어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배우는 데 적합하지 못하다.”면서 “새로운 인사문화 창조의 일환으로 이 운동을 전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교육청은 ‘구령 없는 인사하기 운동’을 시작으로 학교문화 전반에서 구령 없이도 정감있는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구령 없는 학교 만들기’를 추진하기로 했다.이를 위해 지역교육청·고교지구별 생활지도부장교사 회의,우수학교 사례 발굴·홍보,학생들의 의식을 높이기 위한 글짓기·포스터 공모전 등을 개최하기로 했다. 또 ‘여러분,상쾌한 아침입니다.’,‘선생님 반갑습니다.’ 등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격식 없이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인사예절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적극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주병선의 ‘칠갑산’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주병선이 부른 노래 ‘칠갑산’이 히트를 치면서 칠갑산은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애정이 있으면 자연히 지식도 늘어나는 법.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충남 청양군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충남의 ‘알프스’ 충남 사람들은 칠갑산을 이렇게 부른다.물 맑고,공기 좋은 산세를 유럽의 명산 알프스에 빗대 자부심을 드러낸다.아직도 청정무구의 상태지만 이 말은 그만큼 오지라는 뜻도 함유한다. 칠갑산 아래 대치면 대치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고규칠(70)씨는 “지금이야 버스를 타고 청양읍내 5일장에 가지만 어릴 땐 칠갑산을 넘어 정산장까지 걸어갔다.”며 “공주 금강교가 신설됐을 때는 어른들이 구경하러 새벽에 떠나 밤늦게 돌아왔다.”고 회상했다. 차령산맥 끝줄기에 있는 칠갑산은 산세가 험해 일제시대 호랑이가 출몰했다고 한다.산밑 마을에서는 호랑이 피해를 막기 위해 호랑이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산신제를 지냈고 요즘도 정월 보름 많은 마을에서 산신제가 열린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주민은 나무를 하거나 숯을 구워 장에 내다 팔았다.아직도 골짜기 곳곳에는 숯을 굽던 가마터가 남아 있다.깊은 산골짜기에 사는 주민들이 짓는 농사라야 화전일 뿐이었다.고씨는 “지금은 비닐하우스도 하고 농사가 다양하지만 당시에는 콩농사를 많이 지었다.”고 말했다. ●완행버스,그 속에 묻어난 서민들의 고단한 삶 1977년 추석 직후 충남 공주 버스터미널.서울행 완행버스에 몸을 실은 칠갑산의 작사·작곡가 조운파(61)씨는 비 내리는 차창 밖으로 아낙네들을 유심히 쳐다본다.고향 부여군 은산면에서 탄 이 버스는 공주 터미널에서 잠시 정차해 손님들을 태우던 중이었다.당시 완행버스는 서울까지 7시간이 족히 걸렸다. 터미널 차양밑에서 비를 피하며 청양행 버스를 기다리던 이웃인 듯한 아낙네들은 “대장간에서 호미를 갈라고 나왔어.”“콩은 잘 자라고” 등 소박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고향이 칠갑산과 가까워 평소 칠갑산 주변 마을주민의 정서를 잘 알고 있던 조씨는 차를 타고 서울로 오면서 시를 짓는다. 조씨는 “아낙네들 얘기를 들으니 노래말이 절로 떠올랐다.”면서 “작곡가를 찾았으나 내 생각과 달라 직접 작곡도 했다.”고 말했다.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당시 칠갑산 주민들의 정서를,어린 딸을 부잣집 민며느리로 보낸 뒤 복받치는 서러움을 콩밭으로 달려가 달래는 어머니의 마음에 빗대 노래말에 담았다고 한다. 딸은 딸대로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울어 주던 산새 소리만 텅빈 가슴속을 태웠소’라고 애닯게 속울음을 울며 한을 달랜다. 처음 윤상일이란 가수가 불렀으나 반응이 없었고 88년 대학가요제 수상자인 주병선에게 주어 리바이벌했으나 역시 신통치 않았다.하지만 모 방송사 주부가요대회에서 출연자가 이 노래를 불러 주목을 받은 뒤 주병선의 원곡으로 관심이 쏠리면서 공전의 히트를 친다. ●칠갑산에 살리라 교통이 좋아지고 칠갑산 위로 대전 등지로 빠지는 대치터널이 생기면서 가난한 주민들의 아들·딸이 대치로 떠나 70년대까지 12만명이 넘던 청양군 인구가 4만이 채 안되게 줄었다.공무원 사회에서는 요즘도 대치로 올 때 ‘달랑 고무신만 신고온 깡촌×’이란 의미로 청양출신 동료를 ‘꺼먹 고무신’이라고 놀려댄다.고씨는 “자식들이 도시에서 출세를 하고 살림도 예전보다 나아지면서 인심이 더 좋아졌다.”고 전했다. ‘산천은 의구하되‘라는 시조의 구절처럼 옛 모습 그대로인 칠갑산이 좋아 이북출신 조각가 박칠성(79)씨는 터널 부근에 집을 짓고 33년째 살고 있다.“칠갑산에 살다보니 세속의 시름을 잊게 된다.”는 박씨는 집 앞에 ‘콩밭매는 아낙네상’도 세워놓았다. 조씨는 “요즘도 가끔 칠갑산을 찾는다.”면서 “칠갑산 노래를 다시 만든다면 한이 배지 않은 신나고 흥겨운 가락이 나올 것같다.”고 말했다. 청양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삷과 경영이야기] (13) ‘마라톤 CEO’ 구자준 LG화재 사장

    지난 4일 오전 서울 다동 LG화재 본사 사장실.인터뷰 도중 구자준 사장의 휴대전화에서 ‘띠리링∼’ 문자메시지 도착음이 울렸다.‘5월 손익 ○○억원 초과 달성.목표치 상회.상세보고 예정-권중원 드림’경영기획본부장의 보고를 받은 구 사장이 노란색 최신형 카메라폰 위로 잰 손놀림을 이어간다.‘수고했음.오후에 상세보고 바람-구자준’ 분당 200타는 됨직한 능숙한 문자입력 솜씨.“허리춤에 전화기 차고 다니면 아저씨 취급 받는다지만 그래도 어쩔 수 있나요.” 구 사장에게서 대기업 오너라는 딱딱한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들다.아침에 직원들과 달리기로 땀을 낸 뒤 설렁탕 한 그릇 하는 걸 최고로 친다는 그 스타일 그대로다.미사일공학 엔지니어에서 보험업계 대표 경영인으로 연착륙하기까지의 경험과 철학을 들어봤다. ●미사일공학 엔지니어가 보험CEO로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창업자 가족치고는 너무 늦게 최고경영자(CEO)가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하지만 나는 그런 대접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집안 전통이기도 하다.대학 졸업하고 금성사(현 LG전자)에 말단으로 들어가 남들과 똑같은 과정 밟아 입사 13년 만인 1986년에야 처음 임원이 됐다.우리 연배의 경우 사원에서 임원까지 평균이 15년이 걸렸으니까 2년 정도 혜택 본 것 아니냐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만일 위에서 배려해 주었더라도 내가 거부했을 것이다.폼잡는 데 익숙해지 있지 않다.어려서부터 부잣집 아들이란 소리 신물나게 들었지만,남들 다 걸어가는데 나 혼자 차 타고 편하게 갈 성격이 아니다. -원래 나는 서울대가 목표였다.그러나 68년 초 대학입시를 얼마 안 남기고 급성맹장염에 걸려 시험을 제때 보지 못했다.그래서 잠시 미국행(캔자스대,미주리대)을 하기도 했지만 70년 다시 돌아와 한양대에 들어갔다.다른 건 몰라도 수학만큼은 천재소리를 들었던 나는 공과대학을 택했고 74년 금성사에 입사했다. -현장에서 직원들과 같이 생활했는데 동료들은 ‘저 사람은 사주집안 자식이니까 곧 경영진이 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하지만 내 스타일을 알게 된 뒤 금세 친구가 됐다.얼마 후 방위산업 부문이 금성정밀로 분사됐고,나는 이곳에서 대학 전공을 살려 미사일 개발 분야를 맡았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미사일 연구를 가장 많이 한 축에 내가 끼지 않을까 싶다.그때 우리 팀에서 해낸 일이 미국산 호크 미사일의 재(再)장착 작업 국산화였다.미사일은 실전배치된 뒤 몇년 지나면 정기적으로 내부 전자장비 등을 개보수해 재장착을 해야 한다.그때까지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없어 재장착을 하려면 일일이 미사일을 미국으로 보내야 했다.미사일 기술 국산화는 지금도 나에게 커다란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마침 이번에 그 회사(현 LG이노텍내 방산부문)가 LG화재에 인수돼 ‘넥스원 퓨처’라는 계열사로 다음달 1일 출범한다. -99년 LG그룹 계열분리로 나는 생전 몰랐던 보험업계에 발을 들였다.용어부터 낯선 보험업계는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았다.농사꾼이 사무실에 넥타이 매고 앉은 격이었다.“어이쿠,바로 일에 뛰어들었다가는 괜히 회사에 방해만 되겠다.” -2000년 1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보험전문대학원 TCI에 입학했다.우리 나이로 50줄에 접어든 때였지만 여유 부릴 계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해 여름 LG화재의 자회사였던 럭키생명이 최악의 경영난에 직면했다.서둘러 귀국했다. ●퇴출위기 회사맡아 ‘마라톤경영’ 시작 -럭키생명 사장은 CEO로서 첫자리치고는 너무나 여건이 가혹했다.직원 월급 주기도 빠듯한 퇴출 직전의 회사였다.사장 한달 접대비가 고작 200만원.마냥 고민할 만큼의 여유도 나에겐 없었다.더욱이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원들 앞에서 나까지 힘든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골프를 끊었다.당시 내 골프실력은 핸디3에 이를 만큼 수준급이었다.“많지 않은 돈으로 직원들을 다독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마라톤이었다.새벽이나 휴일에 직원들을 불러모았다.1시간 정도 뛰고 나서 설렁탕 한 그릇 같이 먹으면 50명이 모여도 20만원이면 족했다.가장 힘들다는 영업소의 소장들을 선발해 함께 달리기를 하기도 했다.나는 매번 꼴찌였다.맨 뒤에 처져 있는 소장들을 도착점까지 이끌어야 했다.1년여 전 시작한 달리기는 많은 힘이 돼 주었다. -자연스럽게 사내 술자리가 줄었다.어려운 회사일수록 술자리가 잦다.쓰린 마음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고,다음날 컨디션이 안 좋으니 열심히 일을 안 하고,그러다 보니 실적 안 오르고,또 술을 찾게 되는 ‘술의 악순환’ 고리가 끊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마라톤 경영’이라고 명명한 경영기법은 여기에서 비롯됐다.마라톤과 보험업은 비슷한 점이 많다.둘다 한번 경쟁에서 처지면 선두를 따라잡기 힘들다.제조업은 한번 대박이 터지면 수직상승을 하지만 10원,10원씩 꾸준히 돈이 쌓이는 보험은 그게 불가능하다. -보험과 마라톤에는 철저한 준비와 기초체력이 필요하다.순간적인 재치나 순발력,기술만으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지구력도 마찬가지다.보험의 ‘보’자만 들어도 고개를 돌리는 게 사람들 심리다.그때마다 지쳐 포기한다면 레이스는 그걸로 끝이다.적응력과 순발력도 보험과 마라톤의 공통점이다.마라톤 코스에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보험업도 순간순간 바뀌는 영업환경에 적응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다.마지막으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이란 점이 똑같다.통상 42㎞ 구간 중 35㎞ 지점이 되면 도저히 못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러나 거기에서 포기하면 35㎞까지의 고생과 노력도 말짱 헛일이 된다. -흔히 쓰는 말 중에 ‘못 먹어도 고’란 게 있다.왜 먹을 수가 없는데 ‘고’를 하나.당연히 ‘스톱’이어야 한다.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접어야 한다.대신 확실하게 판단을 내려 게임에 뛰어들었으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우리 LG화재 경영의 1차 목표는 ‘이기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단지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자기 마라톤 기록을 2시간30분에서 2시간으로 단축시킨다 한들 남들이 1시간30분에 들어왔다면 자기 자신한테는 이겼을지 몰라도 다른 선수에게 이긴 것은 될 수가 없다. -LG화재는 ‘비전 2010’이라는 경영목표를 갖고 있다.지금은 업계 3∼4위이지만 2010년에는 확고한 2위를 차지해 1위 도약의 발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그 핵심수단이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기본기,지구력,순발력 등 모든 조직역량을 총동원하는 ‘마라톤 경영’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뷰로크라시’(관료주의)다.금성사에 있을 때부터 뷰로크라시를 없애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회사내 상관은 휴일에 등산 가서도 상관이고,골프를 칠 때도 상관일 때가 많다.그러면 그 회사는 경직돼 있는 것이다.윗사람에게 문제점을 제대로 건의하지 못한다는 말도 된다.내가 보고를 휴대전화나 문자메시지로 받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왜 다들 바쁜데 사장실 앞에 서류철 들고 죽 늘어서서 기다리나. ●‘이기는 회사’ 목표 줄서기부터 없애 -사장실 앞 줄서기는 내부 줄서기와 무관치 않을 수 없다.직원의 업무능력이 인사 고과평가의 90% 이상이 돼야 하는 데 줄서기가 만연하면 그게 어렵게 된다.직원들의 신뢰가 깨지면 인사고과의 공정성이 사라지고 투명한 인사로 평가받지 못한다.줄서기를 없애는 것이야말로 ‘이기는 회사’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인사청탁은 있을 수 없다.정기인사때 일정 직급 이상 직원의 인사파일을 모두 내가 외우듯이 들여다보는 이유다. -우리 사회 전반에 비효율이 너무 많다.예를 들어 해외에서 쓸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려면 미국에서는 단돈 10달러와 자국 면허증만 있으면 되는데,우리나라에서는 반드시 여권 사본을 내야 한다.여권없이 해외 나가는 사람도 있나.어차피 출국할 때 없으면 안되는 서류를 왜 번거롭게 중복해서 한번 더 제출하게 하나.대입 수능시험도 그렇다.해마다 한번씩 직장인 출근시간을 늦추고,경찰들이 수험생을 실어나르기 위해 오토바이 비상대기를 한다.차가 막혀 도착하지 못한 수험생이 울면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시험시간을 몇 시간 늦추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 아닌가.인감증명은 일제시대 잔재인데 정작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다. -어른들을 위해 한마디.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자녀에게 직접 사랑을 표현해 보라.어색하지도 번거롭지도 않고 즉석에서 바로바로 답장이 날아온다.부모와 자녀간의 대화를 늘리는 데 이것만한 게 없을 것 같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구자준 사장은 구자준(具滋俊·53) LG화재 사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동생 고 구철회 회장의 4남4녀 중 막내다.반도상사(현 LG상사)와 락희화학공업(LG화학) 등의 사장을 지낸 구철회 회장은 창업주와 동고동락하며 그룹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구 사장은 LG전자·LG상사 등을 거쳐 1999년 LG화재가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올 때 부사장으로 취임했다.‘마라톤 경영’을 주창해온 그는 국내 2회,해외 3회 등 5차례의 완주경험(최고기록 4시간28분)을 갖고 있다. 해발 8611m의 세계 2위봉인 K2원정대(2001년)와 남극원정대(2003년)의 원정대장으로 현지에 동행,강철 같은 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지난해 11월에는 개인홈페이지 ‘준스 스토리’(Joon’s Story)를 개설해 직원들과 수시로 대화하고 보고의 상당부분을 휴대전화로 해결하는 능률 위주의 전문경영인이다.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그의 좌우명이다. ˝
  • 아리랑 TV ‘영상으로 읽는 한국문학’

    박경리의 ‘토지’,조정래의 ‘태백산맥’,서정주의 ‘질마재신화’….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 속 배경지에는 어떤 한국적 정취와 문학의 향기가 숨어있을까. 아리랑TV는 11일부터 ‘영상으로 읽는 한국문학’(금 오전 10시50분)에서 스무편의 문학작품 배경지를 찾아간다.작품이 쓰여질 당시의 삶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현장에서 문학작품 속 주요 장면을 살아있는 드라마로 재연해낼 예정이다. 첫회는 한센병자들의 아픔을 다룬 이청준의 장편 ‘당신들의 천국’을 잉태한 소록도의 현장에 발을 디딘다.환자들이 만든 중앙공원과 일제시대에 수용된 환자들의 상황을 증언하는 감금실과 검시실 등이 소개된다. 18일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는 단 두 행의 시로 주목받은 정현종 시인의 쉼터인 신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그밖에 김용택의 ‘섬진강’,채만식의 ‘탁류’,양귀자의 ‘천년의 사랑’,김승옥의 ‘무진기행’,신경숙의 ‘외딴 방’ 등 근현대문학을 탄생시킨 20곳에서 작품의 배경과 당시 한국상황 등을 짚어본다. 이 프로그램은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것을 기념해 전세계적으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노벨 문학상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공동 제작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춘천 ‘호반 번개시장’이 다시 뜬다

    눈이오나 비가오나 일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리는 춘천의 호반시장(일명 번개시장)이 다시 뜨고 있다. 수십년을 이어온 시끌벅적한 정겨운 재래시장의 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낡고 나지막한 점포들이 20,30년전 재래시장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한보따리씩의 채소를 이고 나와 새벽시장에 좌판을 펼친 할머니들의 모습이 추억의 시장으로 정겹기만하다. 새벽마다 잠깐씩 열리는 재래시장이 대형할인점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요즘세상에 새삼스레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이유일 것이다. 이곳 번개시장은 새벽 4시면 시작해 해가 퍼지기 시작하는 9시쯤이면 사라져 일명 ‘번개시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좋은 물건을 골라 사고 시장통의 정감을 느끼려는 사람들은 아침 6전후쯤 찾으면 딱이다. 춘천 근교인 서면과 중도,우두동,사농동 등 의암호를 중심으로 강 서쪽과 북쪽에 있는 농민들이 밤새 채소를 다듬어 잠깐씩 시장에 내면서 시작된 자연발생 시장이다. 번개시장의 유래는 오래됐다.강 건너 서면 사람들이 배에 물건을 싣고 나와 소양로 배터 바로 앞 신작로에 난전을 벌이면서 시작됐는데 그 시작은 일제시대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어렵게 생활하던 서면일대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넉넉했던 춘천도심 사람들에게 야채를 팔기 위해 뱃터 주변에 좌판을 벌인 것이 번개시장의 유래가 됐다는 것. 이후 시장이 지금의 호반시장 공터로 옮긴 것은 지난 1980년.소양로 인근의 정미소와 연탄공장이 문을 닫고 그 앞 공터를 시장으로 개방하면서 지금의 시장 모습을 갖추게 됐다. 시장은 소양·의암호와 인접한 소양로1가파출소를 끼고 곧장 시작돼 청과상회,야채상회,농약·종묘상회,소금·새우젓가게,기름집,닭 직매장 등이 빼곡히 늘어선 50m 남짓 되는 골목으로 이어져 형성돼 있다. 그리고 시장통 가장 끝자락쯤에 있는 200여평쯤될까한 공터에 야채좌판 아줌마들이 죽 들어서 손님을 맞는다.시장에 나오는 농산물은 대부분 배추,무,파,시금치,호박,곰취,산나물,토마토,오이 등 춘천시 근교에서 재배되는 것으로 박스째 팔려나가는 것도 있지만 좌판 아줌마들은 한단씩 묶어 소비자들을 직접 찾기도 한다. 번개시장을 찾는 주요 소매 고객들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많다.대형 할인마트보다 이곳을 찾는 것은 갓 수확한 우리 농산물이 도매가격 정도로 값이 싸고 간단한 아침 반찬거리도 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야채상인들 사이로 어묵,떡,묵,올챙이국수,팥죽 등 새벽 먹거리를 파는 틈새 먹거리 좌판이 있어 출출한 새벽상인들을 유혹하기도 한다.더러는 집에서 담근 묵은 김치와 장아찌,바구니에 담은 개똥참외도 보인다. 시장은 매일 소양호 수면위에 어둠이 깔려 있을 무렵인 새벽 4시쯤이면 어김없이 그렇게 시작된다. 지금의 신매대교가 놓이기전,몇년전만해도 소양로 뱃길을 이용해 물안개를 헤치며 의암호 건너편 서면주민들이 들고 나며 힘겹게 농산물을 팔아 왔지만 지금은 다리가 놓여 차량으로 채소를 내고 있다. 30∼40년씩 시장을 찾아 장사를 해오는 주민들에게는 애환도 많다.한겨울 살을 에는 강바람을 안고 새벽시장을 오가며 얼굴과 손에 동상이 떠날 날이 없었다는 애절한 사연부터 새벽잠은 팔자에서 아예 지워버렸다는 얘기까지 다양하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아오면서 자식들의 교육열도 대단해 서면 한마을이 아예 ‘박사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야채상인들의 최고 자랑이다. 새벽 5시를 넘으면 시장통은 리어커와 외발수레 등에 실려 채소가 쉴새없이 들고 나고,1000원이라도 더 받고 덜 주려는 흥정이 곳곳에서 이어진다.춘천시내 채소 소매상들과 식당주인들이 싸고 싱싱한 물건을 찾아 시장통은 발디딜틈 없이 붐빈다. 동이 트고 새벽 6시를 넘으면 인근 주부들과 새벽잠을 잃은 노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분주하다. 40년을 넘게 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해오고 있다는 김옥분(72·서면)할머니는 “몸이 아플 때 말고는 매일 이곳 시장을 찾아 야채 좌판을 벌였다.”며 “하루라도 번개시장을 찾지 않으면 좀이 쑤셔 못배긴다.”고 번개시장 자랑이 늘어졌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전차 영웅시대

    대한민국 경제사의 기적과 신화를 이끈 두 재벌 총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과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청년시절 만났다면 어떤 꿈과 야망을 나눴을까? ‘불새’후속 MBC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100부작 ‘영웅시대’(극본 이환경· 연출 소원영) 촬영이 한창이던 지난 24·25일 중국 상하이(上海).차인표와 전광렬 두 배우의 ‘카리스마 대결’로 촬영장은 후끈 달아 올랐다.중국 현지 촬영분은 맨주먹 하나로 세계 굴지의 기업군단을 일군 뒤 남북협력사업과 대통령 후보에까지 뛰어든 천태산(차인표)과 선진 사업철학으로 세계 제일의 기업을 창조해낸 국대호(전광렬)의 젊은시절 회상장면.둘다 중국으로 건너와 세계 제일의 기업가가 되기 위한 꿈을 키우며 성장한다.그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의 현장 모습을 전한다. #하나:꿈속의 라이벌 24일 오후 상하이를 관통하는 황푸장(黃浦江) 하류의 섬 푸싱다오(復興島)의 한 부둣가.색바랜 작업복 차림의 차인표가 화물선 갑판 위를 걷던 중 배 위에 서있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전광렬을 발견한다.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온 차인표가 가슴 속의 라이벌 전광렬이 먼저 중국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 꿈을 꾸는 장면.“국형! 이제 오시오?” “아니,자네는?” 전광렬,빙그레 웃더니 화물선 뱃머리 아래로 내려온다.마주 보는 두 배우.그러나 PD의 ‘컷!’소리.“전광렬씨,실감이 안나! 마지막 웃음소리를 좀더 여운이 남게 끌어.차인표씨는 카메라가 안 비 추더라도 대사 좀 같이 쳐주고!” 둘은 나란히 서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본다.그리고 서로 천하제일의 기업가가 되겠다고 장담하며 멋들어지게 어깨 동무를 하며 촬영을 마무리 지으려 하는데….“컷! 찍으면 뭐해.중국인 엑스트라들 때문에 죽겠네.어휴∼말도 안 통하고…”PD의 한마디.화면 뒤 배경으로 나오는 중국 엑스트라 100여명이 문제였다.무거운 상자를 드는 것처럼 연기해야 하는데 텅빈 상자 안쪽이 고스란히 보이게 대충대충 들고,걷는 자세도 느릿느릿.‘만만디’가 따로 없다.10여차례의 ‘NG’ 끝에 이번에야 ‘OK’사인을 자신했던 차인표와 전광렬,연신 허탈한 웃음을 지우지 못한다.중국어를 할 줄 아는 스태프가 나서서 엑스트라들에게 겉이 막힌 드럼통으로 바꿔들게 하고 나서야 “OK!” #둘:만주 방문 25일 오후 상하이 처둔(車墩)세트장.영화 ‘아나키스트’의 촬영장소이기도 했던 이곳은 150만여평의 대지 위에 1930년대 중국의 거리와 가옥,전차 등의 모습을 실물 크기로 완벽히 재현해 놓았다.극중에서는 전광렬이 만주로 가 조선상인들이 모여 있는 재래시장 등을 둘러보고 미래를 구상하는 장소.이날 촬영에만 중국 엑스트라 400여명과 당시 자동차,인력거,달구지 등 엄청난 양의 소품이 동원돼 1930년대 만주 모습을 똑같이 연출했다.그러나 이번에는 취재진이 문제.전광렬이 극중 조선 상인 임동호(최재호)와 함께 ‘절강로교’(浙江路橋)란 이름이 붙은 아치형 철교를 건너오는데….“컷! 카메라 플래시가 화면에 들어왔잖아! 누가 카메라 플래시 터뜨렸어요?” 무안해하는 취재진.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셋:‘영웅’들의 드라마 ‘영웅시대’는 천태산과 국대호,두 인물을 중심으로 일제시대부터 격동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한국경제사를 다룬 대하드라마.차인표가 맡는 천태산역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을,전광렬이 연기하는 국대호는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삶을 각각 모델로 삼아 기획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두 재벌 총수의 소소한 가족사,자식의 출생의 비밀은 물론 과거 두 기업의 군사정권과의 정경유착 문제까지 다룰 예정이어서 삼성·현대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드라마다. 글 상하이 이영표기자 tomcat@ ■‘호암’연기 두근두근-‘국대호’역 “개인적으로 한국 기업경영의 교과서 같은 인물을 연기하게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고 이병철 회장을 모델로 한 국대호 역을 맡은 전광렬은 “언론통폐합 때 이 회장이 동양방송(TBC)을 군사정권에 뺏기는 현장에 내가 있었고,당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가슴아팠던 기억이 있다.”며 촬영에 임하는 소감을 밝혔다.그는 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한 1980년 TBC 22기 공채 탤런트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여태껏 차분한 역할 위주로 연기를 해온 그는 오랜만에 강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한다.“출연 계약을 하고 난 뒤 줄곧 이 회장과 삼성에 대한 연구와 자료수집을 했어요.이 회장은 단순히 알려진 것과 다르더라고요.” 연기를 하면서 또 다른 이 회장의 모습을 발견하고 짜릿한 긴장감마저 느꼈단다. 그는 “용기·신념·주도면밀한 추진력 등 ‘인재제일’의 경영철학과 예술에도 관심을 가졌던 고 이회장의 모습이 국대호라는 인물을 통해 새롭게 시청자들에게 보여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고 덧붙였다. “‘허준’ 출연 때는 ‘침술 드라마’ 가 아니냐는 우려와 지적을 받았죠.그런데 결국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줬잖습니까?‘영웅시대’도 ‘재벌드라마’라는 주위의 우려는 곧 사그라질 거예요.” ■왕회장? NO 허구적 인물-‘천태산’역 “꿈을 키우는 청소년,경제문제로 고통 받는 실직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꿈과 희망을 얻길 바랍니다.” 25일 저녁 상하이 성창(勝强)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만난 영화배우 겸 탤런트 차인표는 “큰 드라마의 큰 역할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고 중국 현지 첫 촬영 소감을 밝혔다.그는 고 정주영 회장을 모델로 한 배역에 부담이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주영 회장 역이었으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천태산은 완전한 허구의 인물이며 계속 그런 생각으로 연기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렇기 때문에 촬영에 들어가기 전 정주영 회장과 현대 그룹에 대한 어떠한 연구나 자료 수집도 일절 하지 않았다고 했다. “4500만명이 보는 드라마보다는 15억인구가 보는 드라마에 매력을 느꼈죠.한국에서는 30대 후반이 넘어서면 ‘사극’ 캐스팅만 들어올 뿐 드라마 주인공에서는 밀려나기 일쑤죠.중국에서는 40대 전후가 배우로서 제일 각광받는 나이예요.”‘영웅시대’ 출연 계기도 최불암이 바통을 이어받기 전인 ‘젊은’ 천태산의 모습만 연기하기 때문이란다. “당분간 중국활동에만 전념할 겁니다.하지만 ‘영웅시대’와 같이 좋은 작품이 있으면 언제라도 국내팬들에게 인사드릴 거예요.” 이영표기자˝
  • 현존 最古 장군총사진 공개

    최소한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이전에 우리나라 사람이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 최고(最古)의 장군총 사진이 공개됐다. 우리가 장군총으로 알고 있는 이 무덤이 고구려 장수왕릉으로 확인된 만큼 중국과 일제가 우리 역사를 의도적으로 폄하해 부여한 ‘장군총’이라는 능명 대신 왕릉임을 나타내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경대 서길수(고구려연구회 회장) 교수는 25일 최근 자신이 중국 조선족 동포 허창흘(66)씨를 통해 입수한 장군총 사진을 공개하고 “이 사진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 허씨의 조부가 일제에 의해 3·1운동 직후 독립운동 혐의로 붙잡혀 3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출옥한 뒤 행적이 없는 점으로 미뤄 최소한 1919년 이전에 찍은 현존 최고의 장군총 사진”이라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당시의 사진은 이후 일본 학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찍어 일제시대에 책으로 소개했던 것”이라며 “이 사진은 우리 민족이 장군총을 배경으로 찍은 최초의 사진으로,이는 이 왕릉이 당시 우리 민족의 의식과 생활 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소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사진은 장군총을 배경 삼아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과 한복을 입은 주민 157명이 함께 찍은 것으로,일부 훼손된 장군총의 계단형 석축과 머리 부분의 우거진 나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 교수는 “사진을 제보한 허씨가 이 무덤을 아직까지 ‘황제무덤’으로 지칭하고 있었으며,18세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에도 ‘황제묘(皇帝墓)’로 적혀 있다.”고 소개하고 “최근 중국측 연구에 의해 고구려 20대 장수왕의 능임이 확인된 마당에 이를 장군총이라고 부르는 것은 심각한 역사 왜곡이 아닐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심재억기자 jeshim@˝
  • 與워크숍 ‘파병-재검토’논쟁 다시 점화

    열린우리당이 24일 개최한 2차 당선자 워크숍에서는 정치·경제·사회 각 부문의 핫이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5개 정책조정위원회별로 해당 부처의 업무보고를 받은 뒤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과 추가파병,사법개혁,추경 편성과 유가 급등 등의 해법을 놓고 당선자간에 자유토론을 벌였다.이들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정리한다. 1. 이라크 추가파병 이날 열린우리당 워크숍에서 당선자들은 이라크 추가 파병문제와 관련,“파병 철회나 전면적인 재검토는 어렵다.”는 데 정부와 인식을 같이했다. 당선자들이 이날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통일·외교통상·국방부 등 관련부처 관계자들과 가진 2차 당선자 워크숍에서 추가파병 재검토 문제를 논의한 결과다. 안영근 제1정조위원장은 “정부에서 파병을 결정했고 16대 국회의 동의를 얻었으므로 이라크 주변 상황이 악화됐다고 해서 파병을 철회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신뢰나 한·미동맹 관계를 볼 때 맞지 않는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회의에서 정부측은 다국적군 대신 유엔평화유지군(PKO) 형태로 파병이 이뤄질 가능성에 대해 “PKO로 파병하려면 유엔 안보리 결의가 있어야 하는데 유엔은 현 단계에서 PKO로 전환할 계획이 없다.”며 “미국과 영국,프랑스 등이 논의하는 유엔보호군은 이라크내 유엔시설,요원 등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평화유지군과는 다르다.”고 밝혔다.또 한·미양국 정부간에 군사이동 문제를 긴밀히 협의할 수 있는 채널을 이른 시일 내에 구성해야 한다는 데에도 의견일치를 봤다. 앞서 당내 진보성향의 당선자들은 물론 여성 당선자들은 파병 철회를 포함한 ‘전면 재검토론’를 주장,“여권내 파병기류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진보성향인 임종인·이은영 당선자 등은 인권유린 등 이라크 상황을 고려,파병을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소장파인 임종석 의원도 전남도지부 선대위 발대식에 참석하느라 워크숍에 불참했으나 파병반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워크숍에 앞서 따로 모임을 가진 유승희·이경숙·이은영·장향숙 등 당내 여성 당선자들도 “이라크전의 국제적 명분 상실로 평화재건부대의 성격이 바뀐 데다 16대 국회의 파병결정 과정에서 정보 공유와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17대 국회에서 파병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결국 여당내 전반적인 기류는 파병은 하되,파병 시기와 규모,파병지 등은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2. 사법개혁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진행된 열린우리당 당선자 워크숍에서 당선자들은 국가보안법 개정에 한목소리를 냈다.사법개혁의 우선순위로 ‘사법부의 불신 해소’와 ‘인적 청산’을 꼽았다.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시기 상조’와 ‘대체복무제 허용’ 등의 엇갈린 입장이 나왔다.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법무부에 요청했다.한명숙 상임중앙위원은 “야당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고 지난 16대 때부터 이미 개정 논의는 이루어졌다.”며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김덕규 의원도 “정부가 발의하든 국회에서 의원입법을 하든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현안과 관련,당 사법개혁추진단은 다음주 상임중앙위원 회의에서 최종적인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이은영 당 사법개혁추진단장은 “여당의 사법개혁은 부패 추방이 핵심”이라면서 “불법정치자금 수수와 관련된 자금의 국고환수는 물론,국회의원의 주식 백지신탁제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김원웅 의원은 “우리 사법부는 현재까지도 일제시대의 인적구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면서 “법조 인력 충원방법과 임용까지 시민사회적 요소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희상 당선자는 “최근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만나 사법부 개혁을 위해 실무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편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4선의 이용희 당선자는 “시기상조”라고 일축하고 “남북이 대치하고 북핵 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는 가운데 아직은 국방의 의무가 강조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민변 출신의 임종인·이원영 당선자 등은 대체복무제 도입 등 제도적인 차원의 보완책만 갖추면 문제없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구혜영기자 koohy@ 3. 경제분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 경제분야 워크숍에서 일부 당선자가 정부의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 방침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이에 따라 향후 여당내 논의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채수찬 당선자는 워크숍에서 “연·기금의 수익 관리를 위해 주식투자를 허용하겠다고 하는데,연·기금의 입장에서 주식투자가 아니더라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며 사실상 반대입장을 밝혔다.그는 또 “정부가 제시한 자료나 설명을 보면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으로 주식시장이 활성화될 만한 근거도 충분치 않다.”고 덧붙였다.이에 대해 정책위의장 출신 정세균 의원은 “이 문제는 당내에서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가세했다. 당선자들은 또 정부측에 추경예산 편성을 거듭 촉구했다.김진표 당선자는 “올 상반기에 경기 조절을 위해 예산을 앞당겨 썼기 때문에 하반기에 예산이 비게 된다.”며 “추경 편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강봉균 의원도 “상반기 집중적인 예산집행으로 몇천억원씩 쓰던 공사가 하반기에 예산이 떨어지면 중단될 우려가 있는 만큼,추경을 편성해서 내수를 진작하고 공사 기간도 앞당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힘을 보탰다. 정세균 의원은 “고유가와 중국쇼크,미 금리인상 등 최근 발생한 대형 악재들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비상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송영길 의원은 “현 경제상황에서는 분배냐 성장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상돈 당선자는 “최근 청년 실업이 급증한 것은 대학 정원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그는 “대학 배출 인력을 늘리려면 취업 가능성도 병행해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정부측 설명을 보면 실업대책·기업대책은 있는데 중산층 대책은 없다.”고 지적했다. 지병문 당선자는 “재래시장 문제가 시급한데도 정부측 6월 입법 예고안에는 이 문제가 빠져 있다.”면서 “서둘러 입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한광원 당선자는 “우리나라는 개발독재 시대 이래 정부와 기업이 싸우는 시스템으로만 인식되고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 서울대 출신 45년 양복匠人 이순신씨

    가업(家業).사전적 의미는 대대로 물려받은 직업이란 뜻이다.세업(世業)이라고도 한다.선대의 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후대 입장에선 도박일 수 있다.후대의 적성과 가업의 계승이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할아버지,아버지의 거대한 그늘에 눌려 평생 자리를 찾지 못하고 ‘짝퉁’으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청출어람(靑出於藍).’그렇게 호락호락한 사자성어가 아니다. 장인을 천하게 취급하는 분위기도 가업을 쉬 포기하게 하는 요소가 돼왔다.이런 탓에 유럽이나 일본처럼 수백년 전통의 장인 명가를 제대로 배출하지 못했다.더군다나 장인이 추구하는 옛것이 성장의 가파름과 무관할 때 장인 명가의 생존율은 급격히 떨어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를 물려 고집스럽게 양복을 지어온 명문대 출신 재단사가 있다.서울 소공동 해창양복점 사장 이순신(68)씨.대학생이 귀했던 1950년대 명문 서울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그가 40여년 동안 한 길만 걸어온 사연은 무엇일까. ●75년의 궤적을 쌓은 해창양복점 “저쪽 길 건너 해창양복점이오.” 양복점이 운집한 소공동에서 가장 오래된 양복점을 물으면 재단사들은 입을 모아 해창을 가리킨다.경쟁자들마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월의 누적이 해창을 믿게 만든다. 지난해 12월 해창은 롯데호텔 본점 지하아케이드인 롯데 일번가에서 소공동 양복점거리로 되돌아왔다.롯데백화점이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자 다시 옛 둥지를 찾은 셈이다.1929년 부산에서 문을 처음 연 해창양복점은 우리나라 수제 양복의 산실이다.해창은 30년대는 서울 을지로4가에서,해방 전후에는 소공동,79년에는 롯데일번가로 자리를 바꿨지만 해창 특유의 브리티시 스타일 양복에는 변함이 없다. 해창의 창업자인 이씨의 아버지 이용수씨는 보통학교를 마친 뒤 일제시대 당시 면서기로 근무를 하다 작은아버지가 있는 일본 고베로 향한다. 항구도시인 고베의 한 양복점에서 이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군복과 예복 등을 지으며 양복기술을 습득한다.그리고 23세에 귀국해 자신의 가게를 시작한다. ●은행 취직 대신 가업을 잇다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학을 졸업했지만 이씨는 주저없이 아버지의 양복점을 첫 직장으로 택했다.살림집과 붙어 있던 양복점에서 살다시피 했던 그는 자연스럽게 재단사로 진로를 정했다.주위의 시선을 고려하면 쉽지 않았을텐데,이씨는 “은행에 다니는 것보다 옷을 만드는 것이 훨씬 재미있어서”라며 선택이유를 평범하게 밝혔다.의외로 아버지도 아들을 이해하고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이씨는 이미 고교 2학년때 수를 놓아 교복의 명찰을 만드는 방식을 처음 고안해낼 정도로 감각을 타고 났다. 당시 상과대학 학장이던 은사는 “상대생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냐?”면서 그의 장래를 걱정했지만 1년 뒤 제자를 다시 만났을 때는 잘 선택했다며 격려해 주었다. “동창들 가운데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친구들은 많아요.하지만 그들만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죠.나도 내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가지고 성공한 셈입니다.” 적성을 찾은 이씨는 지난 1959년부터 고객의 몸치수를 재고 직접 재단을 했다.1970년에는 노동부 주관의 양복재단 1급 기능사 자격증도 거머쥐었다.옷을 짓는 일뿐만 아니라 국내외 양복관련 단체에서도 맹활약했다.70∼80년대에는 한국복장기술경영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영국,프랑스,독일,미국,일본 등 전세계 20여개국 양복제작자들의 단체인 세계주문복업자연맹에서 회장으로 활동했다. ●꼼꼼한 이병철,소탈한 정주영 해창의 오랜 역사가 말해주듯 해창을 거쳐간 단골 명사들도 적지 않다.웬만큼 멋을 찾는 사람들은 옷의 맛을 찾아 해창의 문턱을 넘는다. “제일모직에서 복지를 새로 만들면 인근 양복점에서 고 이병철씨의 옷을 시범으로 만들었습니다.지금은 고급 복지로 평가받지만 초창기에는 물에 적시면 사용한 실의 수축정도가 달라서 복지가 울었어요.” 옷이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듯 단골인 이병철씨와 정주영씨의 취향도 제각각이었다.이병철씨는 권위적인 느낌의 옷을 좋아하며 옷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으며 정주영씨는 소탈하고 서민적인 양복을 즐겨 입었다.해창의 단골손님으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화신백화점의 박흥식씨,한국일보의 장기영씨 등이 있다. “젊은 시절 음식점 국일관에서 일했던 이기붕씨는 정치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적으로는 무척 세심한 사람이었어요.옷을 가지고 가면 옷상자까지 되돌려주고 상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옷값은 즉시 지불했죠.” 풍채가 좋았던 한국일보 창업자인 장기영씨는 검정색 계통의 옷을 즐겨 입었다.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던 시절 숯다리미는 불의 강도 조절이 어려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옷에 흠을 냈던 일화도 있었다. ●“사람의 개성과 옷이 조화를 이뤄야” 40여년 동안 쌓은 이씨의 옷 철학은 비싼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란다.옷은 입는 사람의 개성과 품위,지위와 함께 조화를 이뤄야 제값을 한다고 말한다. “옷은 사람에게 제2의 피부로 감정표현이 가능합니다.비싸고 좋은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품격에 맞는 옷을 입어야 인상이 좋게 보이고 호감도 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점차 사양길에 접어든 맞춤 양복에 대한 아쉬움은 떨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해창은 대량생산보다는 다품종 1제품 생산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도 양복 한벌을 짓는데 1주일여가 소요된다.다음 공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제대로 된 옷이 나오기 때문이다. “양산을 많이 하면 품질을 조정하기 힘들죠.수량이 많아지면 사람의 개성이나 취향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어요.” 옷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은 역시 후학 양성으로 귀결된다.이씨의 아들도 불투명한 맞춤복의 미래 탓에 기성복 수출 쪽에서 일하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 대학에 양복재단 관련 학과를 세우려고 하는데 이를 하겠다는 학교재단이 거의 없어요.요즘 젊은 사람들은 10년이나 소요되는 재단사에 뛰어들지 않습니다. 관련 학과라도 만들어야 맞춤양복의 명맥을 잇지 않을까요.” ■프로필 ▲1936년 1월 8일 서울 출생 ▲1955년 2월 서울고등학교 졸업 ▲1959년 2월 서울대 상과대학 졸업 ▲1959년∼현재 해창양복점 경영 ▲1966년∼현재 세계주문복업자연맹 한국대표 ▲1976∼1986년 한국복장기술경영협회 회장 ▲1984년 9월 제19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양복심사장 ▲1984년∼현재 서울대 총동창회 이사 ▲1991∼1999년 세계주문복업자연맹 부회장 ▲1997∼2003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1999∼2003년 세계주문복업자연맹 회장 ▲2003∼현재 세계주문복업자연맹 명예회장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5)내 마음의 등잔불빛(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5)내 마음의 등잔불빛(下)

    전기가 없었던 예전,예전이라 해봐야 기껏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의 8할 정도는 가난한 생활을 했고 방안의 어둠을 밝히는 데 등잔불을 켰었다.불을 밝히는 기름은 주로 식물성이었는데, 가장 널리 사용된 들기름을 시작으로 아주까리기름,산초기름 등 우리나라 산하에서 자라는 나무 열매들을 볶아서 기름을 얻었다. 기름을 담아 보관하는 기름병이 발달하고,심지를 넣어 불을 켜는 그릇은 접시 또는 작은 잔 형태였다.가난한 집에서는 아주 드물지만 쇠고기국을 끓이게 되면 등잔기름으로 쓸 굳기름을 걷어내느라 각별한 조심을 했고,기름 한 숟갈이라도 얻어가기 위해서 아낙들은 부산을 떨기도 했었다. ●호형 도자기등잔 처음엔 궁궐서 사용 그러다가 1876년(고종13)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석유가 들어오게 되었는데,석유를 등잔 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호형(壺刑,아가리가 좁고 복부가 나온 항아리 형태)으로 만든 도자기 등잔이었다.석유의 인화성 때문에 등잔 뚜껑 위로 심지를 뽑아 올려 사용하도록 만들었다.초기에는 주로 궁궐에서 쓰여지다가 점차 양반집,중인들에게로 보급되어 일반 서민들이 널리 사용하게 된 것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였다. 석유와 호형 도자등잔은 우리나라 조명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새벽이었고,이같은 신문물의 위력을 돋보이게 한 것은 1885년 영국인에 의해 처음으로 성냥공장이 들어서서 생산된 성냥과 조화였다. 호형 등잔은 일제 때 일본의 고미술 수집상인들에 의해 대부분 일본으로 빠져나갔다.그 대신 일본 상인들은 그들의 대표적인 가마인 아리다가마(有田窯)에서 대량 생산한 저질의 등잔 서너개와 우리것 한 개를 맞바꾸는 속임수를 썼다.제대로 굽혀지고 모양도 괜찮은 도자등잔 대부분은 일본인 소장가들의 소유가 되고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남아 있지 않다.흔히 민속품 전시장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도자등잔 열 개 중 아홉은 일본인들이 우리를 속일 때 썼던 물건들이다.등잔 하나도 제대로 지니지 못한 민족이니 무슨 민족사며 정통성을 제대로 지니고 있을지 새삼 두렵고 아프다. 한국등잔박물관 김동휘 관장이 등잔에 쏟고 있는 열정은 세월에 걸리지 않고 섣부른 지식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하고 뿌리 깊은 또 하나의 등잔처럼 느껴졌다. ●90%가 日이 빼돌린 명품 대신 받은 저질 문:이곳에 들어서면서 보니까 이곳 박물관 명칭을 적은 글자가 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韓國의 등잔 博物館’이라 되어 있더군요.왜 ‘등잔’이란 말만 한글로 적으셨는지요. 金:유식한 사람은 등잔을 燈盞이라 씁니다.또 어떤 유식한 이는 old lamp라고도 합니다.제가 박물관을 세운 뒤 이름 짓는 문제를 여러분들께 자문을 구했지요.고등기(古燈器),옛불빛 그릇 등 여러 가지 이름을 권하더군요.저는 옛 선인들의 생활문화가 지녔던 지혜를 현대사회는 물론 미래 세대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서 더 좋은 이름을 생각했습니다.그때 한 외국인이 쓴 글을 읽게 되었지요.아,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DEUNG-JAN’이라 적혀있더군요.등잔은 등잔이라 부르고 적어야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었는데,일제 때 일본인들 앞에서 머리 숙이지 않기 위해 의학 공부를 했고,새 생명이 태어나는 일과 어머니의 고결함을 생각하면서 의사 일을 했습니다.중국인,일본인들이 이곳에 와서 볼 때 ‘등잔’이 지닌 우리 것을 느끼도록 해줘야겠다는 뜻도 조금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문:이렇게 귀한 것들을 수집하고 박물관을 세우게 된 데는 남다른 애정과 노력이 필연적이었겠지요.그 동안의 과정을 좀 들려주시지요. 金:조상들의 얼이 묻어 있는 민속자료들을 관심 깊게 지켜보아 왔는데,1971년 당시 국립박물관 학예실장이시던 최순우 선생께서 큰 격려를 해주셨습니다.제가 수집하고 있는 등잔을 보시고는 한국 최초·최고의 등잔사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용기가 생기더군요.수원에서 등잔만 가지고 첫 전시회를 열었는데 우리나라 등잔전시회의 효시가 된 셈이었지요.그 후 국립박물관과 공동으로 열거나 독자적으로 전시회를 가져왔습니다. 그걸 보러 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저는 거듭 놀라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요.정신없이 살다보니 잃어버리게 된 자신들의 역사이자 자기의 한 부분이기도 한 등잔 앞에 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가 봅니다.돈으로 치자면 몇 푼도 안되는 등잔이지만,인간에겐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더 많은 소중한 추억과 역사와 자존심,순수성,영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등잔 앞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가 봅니다.제가 등잔을 볼 때마다 우리 어머니를 만나게 되듯이 말이지요. 문:등잔전시회를 하면서 그 외에 특별하게 깨달으신 것도 많으실텐데요. 金:전시회를 열면 관람객들의 편리를 위해 밝은 전기 조명을 하게 됩니다.전기 불빛은 등잔을 상하게 합니다.또한 많은 관람객들의 시선도 등잔을 상하게 합니다.전시회를 마치고 박물관으로 돌아오면 일정 기간 등잔들을 지하층 어둠 속에다 모셔둡니다.정양(靜養) 즉,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여 피로나 병을 용향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만 합니다.그런 다음 다시 꺼내어 보면 등잔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문:등잔에겐 어둠이라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데,매우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金:이곳 박물관의 시설이 비교적 어두운 이유도 그렇습니다.등잔불빛이 지닌 상징성을 한번 생각해보세요.등잔불빛은 전깃불처럼 공격적이지 않아요.전깃불에서는 어둠이라는 상대에게 항복받으려는 적극적 공격성과 아주 없애버리겠다는 섬뜩함도 느껴지거든요.그러나 등잔불빛은 어둠과 공존 상생합니다.어둠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필요한 절대조건입니다.또한 어둠과 밝음의 중간도 필요하지요.먼동이 터올 때의 그 절묘한 빛과 어둠의 상생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는 은은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적당한 어둠이 필요하지요.신록의 숲속에서 맛볼 수 있는 자연의 그늘,여름날 시냇가에 어리는 오후 산그늘,저녁의 기운이 짙어질 때 고향가는 산 언덕에서 바라본 그 기막힌 어둠과 빛의 조화,이런 것들이 모두 등잔불빛에서 맛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지요.등잔불은,어느 시인도 말했지만 별이 되고 별빛이 되기도 합니다.지치고 목마른 나그네의 먼 여정에서 등잔불빛은 구원이자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거든요. ●해마다 5월5일에는 어린이들 초청 문:박물관을 경영하시면서 느끼신 아름다움,감동적인 일을 소개해주세요. 金:해마다 어린이날이면 어린이들을 초청합니다.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아이들을 앉혀 놓고 전깃불을 끄고 등잔불을 켜는데,등잔불 구경을 하는 프로그램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전깃불 아래서는 그렇게도 떠들어댑니다.그러다가 전깃불을 끄고 등잔불 하나만 켜놓지요.캄캄한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등잔불을 보면서 아이들은 신기할 만큼 고요해집니다.어쩌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어머니 자궁 속에 있을 때의 그 자연의 고요와 생명의 빛을 기억해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저는 그때 느낍니다. 지금 세상의 전깃불은 너무 밝다고.등잔은 반드시 제 그림자를 안고서 빛을 냅니다.그러나 전깃불은 제 그림자를 없애버리지요.등잔은 존재의 상생관계를 가르치지만 전깃불은 제 자신밖에 모르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그리고 어른들은 전깃불을 끄고 등잔을 켜두면 떠들면서 고함도 칩니다. 문:관장님의 삶은 분명 또 하나의 등잔이 되어 있습니다.경영의 어려움이 크실텐데,우리들이 등잔의 고향인 이곳을 자주 와서 잃어가는 어둠의 미학을 더 늦기 전에 배워야만 관장님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거들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5)내 마음의 등잔불빛(下)

    전기가 없었던 예전,예전이라 해봐야 기껏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의 8할 정도는 가난한 생활을 했고 방안의 어둠을 밝히는 데 등잔불을 켰었다.불을 밝히는 기름은 주로 식물성이었는데, 가장 널리 사용된 들기름을 시작으로 아주까리기름,산초기름 등 우리나라 산하에서 자라는 나무 열매들을 볶아서 기름을 얻었다. 기름을 담아 보관하는 기름병이 발달하고,심지를 넣어 불을 켜는 그릇은 접시 또는 작은 잔 형태였다.가난한 집에서는 아주 드물지만 쇠고기국을 끓이게 되면 등잔기름으로 쓸 굳기름을 걷어내느라 각별한 조심을 했고,기름 한 숟갈이라도 얻어가기 위해서 아낙들은 부산을 떨기도 했었다. ●호형 도자기등잔 처음엔 궁궐서 사용 그러다가 1876년(고종13)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석유가 들어오게 되었는데,석유를 등잔 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호형(壺刑,아가리가 좁고 복부가 나온 항아리 형태)으로 만든 도자기 등잔이었다.석유의 인화성 때문에 등잔 뚜껑 위로 심지를 뽑아 올려 사용하도록 만들었다.초기에는 주로 궁궐에서 쓰여지다가 점차 양반집,중인들에게로 보급되어 일반 서민들이 널리 사용하게 된 것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였다. 석유와 호형 도자등잔은 우리나라 조명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새벽이었고,이같은 신문물의 위력을 돋보이게 한 것은 1885년 영국인에 의해 처음으로 성냥공장이 들어서서 생산된 성냥과 조화였다. 호형 등잔은 일제 때 일본의 고미술 수집상인들에 의해 대부분 일본으로 빠져나갔다.그 대신 일본 상인들은 그들의 대표적인 가마인 아리다가마(有田窯)에서 대량 생산한 저질의 등잔 서너개와 우리것 한 개를 맞바꾸는 속임수를 썼다.제대로 굽혀지고 모양도 괜찮은 도자등잔 대부분은 일본인 소장가들의 소유가 되고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남아 있지 않다.흔히 민속품 전시장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도자등잔 열 개 중 아홉은 일본인들이 우리를 속일 때 썼던 물건들이다.등잔 하나도 제대로 지니지 못한 민족이니 무슨 민족사며 정통성을 제대로 지니고 있을지 새삼 두렵고 아프다. 한국등잔박물관 김동휘 관장이 등잔에 쏟고 있는 열정은 세월에 걸리지 않고 섣부른 지식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하고 뿌리 깊은 또 하나의 등잔처럼 느껴졌다. ●90%가 日이 빼돌린 명품 대신 받은 저질 문:이곳에 들어서면서 보니까 이곳 박물관 명칭을 적은 글자가 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韓國의 등잔 博物館’이라 되어 있더군요.왜 ‘등잔’이란 말만 한글로 적으셨는지요. 金:유식한 사람은 등잔을 燈盞이라 씁니다.또 어떤 유식한 이는 old lamp라고도 합니다.제가 박물관을 세운 뒤 이름 짓는 문제를 여러분들께 자문을 구했지요.고등기(古燈器),옛불빛 그릇 등 여러 가지 이름을 권하더군요.저는 옛 선인들의 생활문화가 지녔던 지혜를 현대사회는 물론 미래 세대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서 더 좋은 이름을 생각했습니다.그때 한 외국인이 쓴 글을 읽게 되었지요.아,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DEUNG-JAN’이라 적혀있더군요.등잔은 등잔이라 부르고 적어야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었는데,일제 때 일본인들 앞에서 머리 숙이지 않기 위해 의학 공부를 했고,새 생명이 태어나는 일과 어머니의 고결함을 생각하면서 의사 일을 했습니다.중국인,일본인들이 이곳에 와서 볼 때 ‘등잔’이 지닌 우리 것을 느끼도록 해줘야겠다는 뜻도 조금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문:이렇게 귀한 것들을 수집하고 박물관을 세우게 된 데는 남다른 애정과 노력이 필연적이었겠지요.그 동안의 과정을 좀 들려주시지요. 金:조상들의 얼이 묻어 있는 민속자료들을 관심 깊게 지켜보아 왔는데,1971년 당시 국립박물관 학예실장이시던 최순우 선생께서 큰 격려를 해주셨습니다.제가 수집하고 있는 등잔을 보시고는 한국 최초·최고의 등잔사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용기가 생기더군요.수원에서 등잔만 가지고 첫 전시회를 열었는데 우리나라 등잔전시회의 효시가 된 셈이었지요.그 후 국립박물관과 공동으로 열거나 독자적으로 전시회를 가져왔습니다. 그걸 보러 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저는 거듭 놀라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요.정신없이 살다보니 잃어버리게 된 자신들의 역사이자 자기의 한 부분이기도 한 등잔 앞에 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가 봅니다.돈으로 치자면 몇 푼도 안되는 등잔이지만,인간에겐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더 많은 소중한 추억과 역사와 자존심,순수성,영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등잔 앞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가 봅니다.제가 등잔을 볼 때마다 우리 어머니를 만나게 되듯이 말이지요. 문:등잔전시회를 하면서 그 외에 특별하게 깨달으신 것도 많으실텐데요. 金:전시회를 열면 관람객들의 편리를 위해 밝은 전기 조명을 하게 됩니다.전기 불빛은 등잔을 상하게 합니다.또한 많은 관람객들의 시선도 등잔을 상하게 합니다.전시회를 마치고 박물관으로 돌아오면 일정 기간 등잔들을 지하층 어둠 속에다 모셔둡니다.정양(靜養) 즉,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여 피로나 병을 용향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만 합니다.그런 다음 다시 꺼내어 보면 등잔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문:등잔에겐 어둠이라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데,매우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金:이곳 박물관의 시설이 비교적 어두운 이유도 그렇습니다.등잔불빛이 지닌 상징성을 한번 생각해보세요.등잔불빛은 전깃불처럼 공격적이지 않아요.전깃불에서는 어둠이라는 상대에게 항복받으려는 적극적 공격성과 아주 없애버리겠다는 섬뜩함도 느껴지거든요.그러나 등잔불빛은 어둠과 공존 상생합니다.어둠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필요한 절대조건입니다.또한 어둠과 밝음의 중간도 필요하지요.먼동이 터올 때의 그 절묘한 빛과 어둠의 상생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는 은은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적당한 어둠이 필요하지요.신록의 숲속에서 맛볼 수 있는 자연의 그늘,여름날 시냇가에 어리는 오후 산그늘,저녁의 기운이 짙어질 때 고향가는 산 언덕에서 바라본 그 기막힌 어둠과 빛의 조화,이런 것들이 모두 등잔불빛에서 맛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지요.등잔불은,어느 시인도 말했지만 별이 되고 별빛이 되기도 합니다.지치고 목마른 나그네의 먼 여정에서 등잔불빛은 구원이자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거든요. ●해마다 5월5일에는 어린이들 초청 문:박물관을 경영하시면서 느끼신 아름다움,감동적인 일을 소개해주세요. 金:해마다 어린이날이면 어린이들을 초청합니다.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아이들을 앉혀 놓고 전깃불을 끄고 등잔불을 켜는데,등잔불 구경을 하는 프로그램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전깃불 아래서는 그렇게도 떠들어댑니다.그러다가 전깃불을 끄고 등잔불 하나만 켜놓지요.캄캄한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등잔불을 보면서 아이들은 신기할 만큼 고요해집니다.어쩌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어머니 자궁 속에 있을 때의 그 자연의 고요와 생명의 빛을 기억해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저는 그때 느낍니다. 지금 세상의 전깃불은 너무 밝다고.등잔은 반드시 제 그림자를 안고서 빛을 냅니다.그러나 전깃불은 제 그림자를 없애버리지요.등잔은 존재의 상생관계를 가르치지만 전깃불은 제 자신밖에 모르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그리고 어른들은 전깃불을 끄고 등잔을 켜두면 떠들면서 고함도 칩니다. 문:관장님의 삶은 분명 또 하나의 등잔이 되어 있습니다.경영의 어려움이 크실텐데,우리들이 등잔의 고향인 이곳을 자주 와서 잃어가는 어둠의 미학을 더 늦기 전에 배워야만 관장님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거들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北 용천역 폭발] 美 ‘의도적 사건’ ‘비극적 사고’ 엇갈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워싱턴 조야는 북한 용천역 폭발사건의 원인뿐 아니라 향후 북한 정세에 미칠 파장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미 국무부는 22일 공식 브리핑에서 “언론보도 이외에는 모른다.”고 함구했으나 미 언론과 한반도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용천역을 지나친 뒤에 사고가 발생한 것에 주목한다.대부분 부실한 인프라 등에 따른 사고로 보지만 ‘의도적인 사건’일 수 있다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미 당국은 사건 직후 정찰위성을 통해 용천역 주변에 커다란 화염이 일어난 것을 확인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3일 보도했다.그러나 원인이 기차 충돌인지 아니면 한국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다른 화물차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특히 일제시대때 만들어진 낡은 철로와 전력난 때문에 수시로 멈추는 북한의 철도 시스템을 감안하면 이같은 대형사고는 이례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는 김정일 일행이 역을 통과한 지 9시간 뒤에 사고가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을 겨냥했다는 추측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의 고위 관리도 폭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의도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으며 ‘비극적인 사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면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대사는 “반(反) 김정일 세력이 이같은 암살을 시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과거에도 그같은 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그러나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존 울프스털 연구원은 암살 가능성을 부인하며 다만 김 위원장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그에게 반대하거나 불안정한 세력들을 숙청하려는 기회로 삼을 수는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재단의 스콧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사고가 난 철로는 중국에서 북한으로 이어지는 ‘생명줄’임을 상기시키며 피해가 어느 정도이고 얼마동안 중국으로부터의 주요한 수입원을 가로막을지가 의문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정보가 없을지라도 북한의 지도부를 동요시킬 것이며 과대망상적인 반응을 부를 수도 있다고 전했다. mip@seoul.co.kr
  • 행자부 ‘옛제도연구기획단’ 운영 옛것에서 배운다

    최근 중앙부처에서 우리의 옛 제도와 관습을 행정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그동안 ‘우리 것’은 외면한 채 미국 등 선진국 사례를 접목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과는 무척 비교된다는 지적이다.이를 테면 행정 분야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인 셈이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달부터 우리의 옛 제도와 관습 가운데 우수한 것을 행정에 도입하기 위해 ‘옛제도연구기획단’을 구성,활동하고 있다.”고 15일 밝혔다. 연구기획단은 공직인사 및 윤리,국가상징,참여능률,지방조직,재난관리 등 모두 8개반으로 구성됐으며,국·과장급 공무원을 중심으로 한 실무연구진과 관련분야에 정통한 전문가 등 56명으로 짜여졌다. 이들은 지난 달 25일 첫 모임을 갖고 ‘조선시대 지방관의 책임성 확보제도’ 등 21건을 연구과제로 선정했다.또 이달 말까지 2차,5월 말까지 3차 연구과제를 각각 발굴할 방침이다. 반별로 한 달에 두세차례씩 모임을 갖고 있으며,6월 말에는 보고서를 낸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선시대 관리의 출·퇴근제도는 지금의 ‘겨울철 단축근무제’와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조선시대의 출·퇴근시간은 하절기에는 출근이 오전 6시인 묘시(卯時)이고,퇴근은 오후 6시인 유시(酉時)였다. 동절기에는 오전 8시인 진시(辰時)까지 출근했고,퇴근은 오후 4시인 신시(申時)에 했다는 것이다.연료 등이 귀한 탓에 여름철보다 겨울철 근무시간이 짧았다. 또 백성이 군수·현감 등 지방관의 부정·비리를 도 관찰사 및 중앙에 고소할 수 있도록 하는 ‘부민고소법(部民告訴法)과 지역 엘리트 등이 하급공무원의 부정·비리를 수령에게 고소하도록 하는 원악향리처벌법(元惡鄕吏處罰法) 등은 지방행정의 책임성 확보 차원에서 도입 가능성도 거론된다. 오는 6월12일부터 중앙부처의 인사권을 완전히 넘겨 받는 중앙인사위원회는 지난 해부터 ‘옛 것’ 배우기에 들어갔다. 이미 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의 인사행정기관과 신규채용,승진,보수,윤리,복무 등에 대한 연구를 마쳤다. 올해에는 일제시대부터 최근까지의 인사제도 변천과정을 연구할 방침이다. 중앙인사위 관계자는 “사실 그동안에는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은 소홀했고 외국에만 눈을 돌렸었다.”면서 “이번 연구작업을 계기로 ‘우리 것’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덕현기자 hyoun@˝
  • [씨줄날줄] 60~70대/강석진 논설위원

    정치인에게 설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최근 몇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60∼70대를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뒤늦게 사과하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분들은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미래를 결정해 놓을 필요가 없다.미래는 20대,30대의 무대.60대 이상은 투표 안 하고 집에서 쉬셔도 괜찮다.”는 게 발언의 요지다.때를 기다렸다는 듯 야당은 ‘현대판 고려장 발언’이라고 포화를 퍼붓는다. 그래,고려장이지.‘노인들 투표 말았으면‘이라는 속내가 숨김없이 드러난 것이야.아니야.젊은이들 투표 독려하려던 발언 끝에 나온 실수야.어느 쪽일까.잘 모르겠으되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를 고려장으로 돌려 보자. 고려장은 이름 때문에 우리나라 고유의 악습인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유라시아 대륙 도처에서 발견되는 풍습이다.불교 설화집에도,그림 형제의 독일 동화집에도,이솝우화에도 기로(棄老) 풍습은 등장한다.일본에서는 오바스테(嬉老)라고 말한다.풍자지만 ‘노인은 죽어 주십시오.나라를 위해’라는 센류(川柳:에도시대 유행한 17자의 짧은 시)가 남아 있는가 하면 나가노현에는 지명도 남아 있다. 대부분의 기로 설화에서 인간이 천륜에 어긋나는 풍습을 버리는 데는 노인들의 지혜가 계기가 된다.재로 꼰 새끼로 바위를 묶는 이야기나,똑같이 생긴 말 두마리 가운데 어미와 새끼를 구분하는 지혜 따위가 그것이다.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인간이 기로 풍습을 버린 것은 한 사회의 생산력이 노인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라고 말한다.‘경로’와 ‘기로’의 갈등은 인류사의 한 단면이었다. 60∼70대가 거쳐온 시대를 돌이켜 보자.일제시대,광복,전쟁을 거쳐 청년 시절에는 머리카락 모아서 가발 만들고 1달러 와이셔츠 팔아 한닢두닢 외화 모으던 시절,죽어라 일하고,윗 세대 부양하고,자식을 키워낸 ‘산업전사’들이었다.등가죽 벗겨지도록 고생했지만 지금은 노후보장도 없이 지내고 있는 처량한 세대다. 정 의장도 잘 알 터.50대인 그나,투표 많이 해 주길 바라는 20∼30대나 언젠가는 ‘집에서 쉬셔도 되는’ 나이가 된다는 것을.지지율이 그만하면 먹고 살기 넉넉할 터인데,정치 고려장으로 세대 갈등을 부추기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다.바라기는 정 의장 발언이 실언이고,진심으로 수습하길 기대할 뿐이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
  • [총선 D-13] 정동영 ‘입’ 사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4·15총선을 앞두고 60대 이상 노년층 유권자들을 폄하하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정의장의 발언을 비난하는 글이 줄을 잇는 가운데 일부 옹호하는 주장도 있어 세대갈등 양상까지 우려된다. 1일 국민일보·CBS·iTV 공동 총선기자단 VJ팀에 따르면 정 의장은 지난달 26일 “(이번 총선에서)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다.”며 “(투표일에)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말했다.정 의장은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유권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질문에 “촛불집회의 중심에 젊은이들이 있다.미래는 20∼30대들의 무대”라며 “한걸음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그분들(60대 이상 70대)이 미래를 결정해 놓을 필요는 없다.그분들은 어쩌면 이제 무대에서 퇴장할 분들”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당시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구지역 언론사 오찬 기자간담회 직후 VJ팀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정 의장은 이날 호남 방문 도중 예정에 없이 전남 장흥에 있는 경로당 2곳을 찾아 노인들에게 큰절을 올리며 용서를 구했다.정 의장은 “만일 본인의 발언이 60,70대 분들은 투표를 안해도 된다는 식으로 들려 불쾌감을 드렸다면 사죄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일제시대와 전쟁을 겪고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세대인 노년층에 대한 경시를 넘어 살아 있는 역사에 대한 결례이며 모독”이라고 비난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 [위기의 수협 (하)부실수협 회생의 해법은] 작년 8800만원 ‘쏠쏠한 흑자’

    전남지역 25개 수협중 유일하게 자립경영을 하고 있는 완도 금일수협은 지난해 8800만원의 흑자를 냈다.1990년 완도수협에서 분리,독립한 금일수협은 점포 운영 등 고정자산에 대한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위판장도 일제시대때 지은 건물을 최근까지 사용하다 지난해에야 국고 보조금 5억원 등 13억원을 들여 신축했다.조합원은 1600여명으로 대부분 시설자금이 덜 드는 다시마·미역·톳 등 해조류 양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수협은 지난해 마른 다시마 1587t과 마른 톳 217t 등을 위판(수수료 4%)해 4억여원을 벌어 들였다.또 다시마 환,과립,엑기스 등 건강식품 가공사업도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금일수협이 다른 곳과 달리 흑자경영이 가능했던 것은 역대 조합장들이 사업확장 등 외형 불리기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수협 본점과 광주시 월산동 지점 등 2곳에 모두 3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을 뿐이다. 조명호(38) 총무과장은 “해조류를 건강식품으로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우리 조합은 고정자산에 대한 투자 대신 건강식품을 가공,개발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남기창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