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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tro] “부평 미군기지 근처에 금광”

    최근 금값이 폭등하는 가운데 인천 도심에 금맥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1일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A씨 등 2명이 부평구 산곡동 부평미군기지 근처에 금성분이 있는 광물이 매장돼 있다며 시에 채굴허가를 요청했다. A씨가 금성분이 있는 광물이 묻혀 있다고 주장하는 곳은 일제시대 병참기지가 있던 곳으로 이 병참기지는 일본의 미츠비시사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주민들 사이에서는 1945년 일본 패망 이후 군부대 및 군수기업들이 급히 철수하면서 그동안 모아놓은 금을 가져가지 못하고 미군기지 인근에 매장했다는 소문이 한때 돌았었다.1999년에는 인근 산곡동 육군부대가 있던 곳에서 일제시대 때 군수품 수송로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대형 지하터널이 발견돼 금 매장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증폭됐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한국의 토종](3) 삽살개·진돗개·동경이

    [한국의 토종](3) 삽살개·진돗개·동경이

    “개야 개야 삽살개야, 너에게 밥을 줄 때 먹기 싫어 너를 줬냐. 윗집 총각 오시거든 짖지 마라 너를 줬지.” 연인들의 은밀한 사랑놀음이 개 짖는 소리에 들통 날까 조바심을 내는 내용의 전래민요의 한 소절이다. 삽살개를 비롯해 진돗개, 동경이 등 토종개 이야기는 옛 민요나 시조·민화 등에 종종 등장한다. 신라 김유신 장군의 충견(忠犬)이던 삽살개가 군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일본 사찰의 수호신 동물석상인 ‘고마이누´(高麗개)도 이 땅에서 건너간 ‘삽살개´가 뿌리라고 한다. 온몸에 털이 복슬복슬한 삽살개. 눈과 귀를 덮은 긴 털이 야성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느낌을 준다.‘삽´은 퍼낸다, 없앤다는 뜻이며 ‘살(煞)´은 액운을 의미하니, 삽살개란 액운을 물리치는 개라는 뜻이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삽살개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준 것은 일제시대 때였다는 게 한국일(41) 한국삽살개보존협회 육종연구소장의 말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총독부 산하에 ‘조선원피주식회사´를 세우고 군용 모피로 견피(犬皮)를 연간 10만장에서 많게는 50만장까지 수집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전국의 개가 몰살하다시피 했다는 것. 한 소장은 삽살개가 천연기념물 368호로 지정된 1992년부터 삽살개의 체계적인 혈통관리와 연구를 해오고 있다. 오랜기간 우리 풍토에 적응해온 삽살개는 우리와 정서적으로 매우 잘 통하며 질병에도 강하고, 주의력이 깊고 복종심이 뛰어나다. 최근 애완견을 이용한 정서장애 치료법이 유행인데 삽살개가 좋은 치료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다만 애완견치고는 다소 몸집이 큰 게 흠이어서 삽살개를 작게 만드는 육종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한 소장의 주장이다. 삽살개와 자웅을 겨루는, 또 하나의 명견인 진돗개. 진돗개는 섬이라는 ‘진도´의 특수성 때문에 순수 혈통이 비교적 잘 보존돼 왔다. 평야와 산야지대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진도. 그곳에서 노루, 토끼, 너구리 등을 사냥하며 승부근성 및 민첩성을 발달시켜온 대표적인 토종견이다. 진돗개축산사업소는 진돗개를 세계적인 명견으로 우뚝 서게 하려는 야심찬 계획에 따라 우수 혈통을 얻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전남 진도군이 진돗개 혈통 보존과 보호육성을 위해 설립한 이곳에서 현재 18명의 연구자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윤한성(50) 소장은 “주인에게는 한없이 순하지만, 위험 앞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을 갖췄다.”며 특히 멀리 대전까지 팔려 갔다가 진도의 주인에게로 돌아온 ‘백구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경이적인 귀소본능까지 갖췄다고 칭찬했다. 냄새가 거의 없는 청결한 개이기도 하다. 진도군은 2005년 세계 최고 권위의 개 등록기관인 영국의 케넬클럽(KC)에 진돗개를 등록시켰다. 한국에도 고유 품종의 국견(國犬)이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동경이(東京犬)는 숨겨진 토종견이다. 조선 순종 때 발행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동경(경주를 말함)에 꼬리가 없거나 이상한 개가 많았다. 그래서 이들을 동경견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한때는 꼬리가 잘린 개거나 돌연변이로 취급 받았다. 그러던 동경이가 최석규(51) 서라벌대학 동경이보전연구소 소장에 의해 천연기념물 지정이 추진되고 있다. 최 소장은 “동경이가 토종개 가운데 문헌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개”라면서 “주인과 함께 있으면 낯선 사람에게 절대 짖지 않는 성품을 지녔다.”고 칭찬했다. 이어 “우리의 중요한 생물자원인 동경이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체계적인 관리와 육종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요즈음 근본도 알 수 없는 수입견들이 국내 애완견 시장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견들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개량한 작출견(作出犬)인 데 비해, 우리의 토종개는 우리의 환경이 만들어낸 자연산 그대로다. 최근 멸종위기에 처했던 우리의 토종개들이 DNA 지문법이나 혈청분석법, 역사적인 고찰 등을 통해 복원, 육성되고 있다. 우수 토종견을 보급하는 일은 새로운 국가산업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잃어버린 고향의 마음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바둑이도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사진 글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부고]동성제약 창업주 이선규 회장 별세

    [부고]동성제약 창업주 이선규 회장 별세

    염색약 훼미닌과 정장소화제인 정로환으로 유명한 동성제약의 창업주인 송음(松陰) 이선규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84세. 일제시대 궁부약국 직원으로 의약품과 인연을 맺은 고(故) 이 회장은 지난 1957년 동성제약을 창업했다.1960년대 패션염모제 훼미닌을 개발해 동성제약을 헤어컬러 업체로 성장시켰다.1972년에는 대표 배탈·설사약으로 자리잡은 정로환을 국내에 처음으로 보급했다. 동성제약은 고 이 회장의 장례를 회사장으로 치른다.19일 오전 10시30분 충남 아산공장에서 영결식을 가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남복희씨와 3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5시.(02)3010-2230.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일제 강제동원 11만명 정부, 공탁금 명부 입수

    정부가 일제시대 강제동원자(군인·군속) 11만명의 미지급 임금기록인 ‘공탁금 명부’를 일본정부로부터 넘겨받아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2일 “최근 외교통상부에서 일본정부로부터 넘겨받은 강제동원자 11만명의 공탁금 기록을 넘겨받아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거쳤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등은 3일부터 명부의 내역을 정밀분석할 예정이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공탁금 명부를 일본정부로부터 받은 것은 처음으로, 강제동원자에 대한 보상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장세훈기자 jurik@seoul.co.kr
  • [씨줄날줄] 외국인 장·차관/함혜리 논설위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한나라당은 그제 국가 안보와 보안, 기밀에 관계되는 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와 직위에서 외국인을 공무원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외국인 장·차관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외국인에게 공직사회의 문을 활짝 연 것은 글로벌 경쟁시대에 맞춰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영입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관료주의에 물들지 않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공직사회에 실적과 업무 중심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게 하겠다는 이 당선자의 실용주의 철학도 담겼다. 그러나 고위 공직까지 개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책결정에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데 외국인 장·차관의 국적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가의 이익이 걸렸을 때 그들이 선택할 조국이 한국이길 바라는 것은 솔직히 순진한 발상이다. 명성만 보고 사람을 데려왔는데 언어소통 문제로 정책 집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한국의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구한말의 아픈 역사는 우리의 국민정서에 외국인 각료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남겼다. 아관파천 1년동안 러시아 관료들이 보인 행적을 사례로 들어보자. 아관파천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1895년)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 2월11일 새벽 궁녀의 가마를 타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뒤 약 1년간 거처한 사건이다. 나약해진 조선의 보호국을 자처하게 된 러시아는 아관파천 동안 조선 정부에 압력을 가해 각종 경제적 이권을 차지했고 정부 각부에 러시아인 고문과 사관을 파견해 내정을 간섭했다. 국가재정을 담당했던 탁지부의 고문 알렉세예프는 마치 탁지부 대신처럼 행세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은 공무원자격으로 우리 민족을 지배하며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물론 시대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교훈을 얻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정책 결정자들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70년전 사망자 26%는 5세 미만

    70년전 사망자 26%는 5세 미만

    70년 전 일제시대에는 여성들의 73%가 10대 후반에 결혼했다.25세를 넘어 결혼하는 여성은 4.8%에 불과했다. 평균 가구원 수는 5.5명으로 6인 가구가 일반적이었다. 또 한해 사망자 4명 가운데 1명은 5세 미만이었다. 통계청은 31일 광복 이전인 1934∼43년 당시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통계연보 자료를 21일부터 국가통계포털(www.kosis.kr)에 올린다고 밝혔다. 자료에 따르면 1943년 말 우리나라 인구는 2583만명으로 지난해 남북한 인구 7138만명의 37%였다. 출생률은 집계되지 않았으나 37년 당시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조출생률)는 29명, 사망자 수(조사망률)는 17.8명이었다.2006년 조출생률(9.2명)과 조사망률(5명)에 비해 많이 태어나서 많이 죽었다. 인구 1000명당 혼인(조혼인율)은 5.8건,1만명당 이혼(조이혼율)은 2건이었다.2006년 조혼인율(6.8건)과 조이혼율(26건)을 감안하면 70년 사이 혼인은 1건 늘어난 반면, 이혼은 24건이나 급증한 셈이다. 혼인 연령은 남성이 20∼24세가 38.8%로 가장 많았다. 여성은 15∼19세가 73%,20∼24세가 15%로 여성 10명 중 9명 가까이가 25세 이전에 결혼했다.15세 미만도 7.7%나 됐다.2006년 초혼 연령은 여성 27.8세, 남성 30.9세이다. 평균 가구원 수는 5.5명으로 지난해 2.9명의 2배 수준이다. 37년 당시 3대 사망원인은 소화기질환(20.8%), 호흡기질환(16%), 신경계질환(15.9%)으로 전체 사인의 52.7%를 차지했다.2006년의 암(27%), 뇌혈관질환(12.3%), 심장질환(8.3%) 등과는 다르다.43년 기준 의사 수는 인구 1만명당 1.4명이었으나 지금은 14명이다. 37년 한해 사망자 수 가운데 갓난아이(0세)의 비율은 11%,5세 미만은 26%나 됐다.37∼43년 한해 평균 2만여명이 장티푸스 등 전염병에 걸려 100명당 17명꼴로 사망했다. 전문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인구 1만명당 1.8명이었다. 당시 일본인은 52명이나 됐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美언론 ‘잃어버린 영화10’에 ‘아리랑’ 선정

    美언론 ‘잃어버린 영화10’에 ‘아리랑’ 선정

    일제시대 저항의 메시지를 담았던 춘사 나운규 감독의 1926년 작품 ‘아리랑’이 미국에서 ‘잃어버린 영화 TOP 10’에 선정됐다. 미국 인터넷영화잡지 ‘필름스레트닷컴’(FilmThreat.com)은 8일 ‘잃어버린 영화 중 가장 흥미로운 10편’을 선정해 발표했다. 사이트는 신년 특집으로 기획된 이 선정에서 한국영화 아리랑을 10편의 영화 중 가장 먼저 소개했다. 나운규 감독이 직접 대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아리랑은 한국영화의 기초를 닦은 흑백 무성영화로 1926년 단성사에서 개봉돼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나 직접 본 사람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아 ‘전설의 명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필름스레트닷컴은 아리랑을 “한국 1세대 영화 중 하나”라며 “일본의 식민지 시절 권력에 저항하는 용기가 담겨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이어 “아리랑은 한국전쟁 때 유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본의 수집가가 가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며 “당시 많은 한국 영화들이 그렇게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이 선정에는 아리랑을 비롯해 ‘고어영화의 원조’라고 불리는 헛셀 고든루이스 감독의 ‘Black Love’(1972)와 마지막 부분이 검열에 의해 삭제되어 원본은 찾아볼 수 없게 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 등이 포함됐다. 한편 아리랑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하고 돌아온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북측이 아리랑의 필름을 가지고 있다는 설도 있다.”고 밝혀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교과서의 꽃에 대한 오해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교과서의 꽃에 대한 오해

    학교에서 ‘꽃’에 대해서 잘못 가르치고 있다. 광복 이후 발행된 모든 초등학교 교과서가 꽃에 대한 잘못된 정의를 바탕으로 제작되어 왔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뿐만이 아니다. 현재의 교과서로 바뀌기 전에는 중학교 교과서도 마찬가지였으며, 고등학교 생물교과서는 제대로 된 것도 극소수가 있지만 많은 출판사의 검인정교과서에서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가 이러니, 시판되고 있는 아동도서나 교양서적의 오류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교과서에서 오랫동안 꽃에 대한 개념이 바로잡히지 않고 있는 것은 교육부의 편수지침이 고쳐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종 교과서 및 교사용 지침서는 물론이고 관련 참고서적들이 잘못된 내용을 담은 채 제작되어 왔고,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에 잘못된 지식이 만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꽃의 정의는 ‘씨식물(종자식물)의 생식기관’이다. 이에 따르면, 소나무와 은행나무도 꽃이 피는 식물이 된다. 실제로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교과서에는 ‘소나무꽃’이 등장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런 정의와 내용은, 근대 서양교육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일제시대부터 잘못된 것으로서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청산되어야 할 일제잔재가 교과서에는 아직 남아 있는 셈이다. 외국에서는 유치원생들이 보는 책에서조차 식물을 이끼류, 고사리류, 소나무류, 꽃이 피는 식물 등으로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대학의 모든 생물학 교재에도 제대로 된 정의,‘꽃은 속씨식물(피자식물)의 생식기관’이라 명시되어 있다. 씨식물은 겉씨식물(나자식물)과 속씨식물로 나뉘고, 속씨식물은 꽃을 피우고 겉씨식물은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이라는 생물학적 개념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초·중등교과서가 씌어진 채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우리말 연구에 있어서 최고 권위기관이라 할 수 있는 문화관광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이런 오류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희승 편저의 ‘국어대사전’ 같은 몇몇 우리말사전에서 제대로 된 꽃의 정의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식물은 이끼류, 양치식물, 겉씨식물, 속씨식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순서는 발달의 정도도 함께 나타낸다. 이끼류가 가장 하등한 식물이고, 속씨식물이 가장 고등한 식물이다. 양치식물부터 물관과 체관, 즉 관다발이 발달하므로 유관속(有管束)식물이라 한다.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은 씨를 만들므로 씨식물이라고 한다. 속씨식물은 꽃이 피는 식물로서 꽃식물이라고도 부른다. 이끼류에는 우산이끼와 솔이끼 종류들이 포함되며, 양치식물에는 솔잎난·쇠뜨기·물부추·고사리 등이, 겉씨식물에는 소철·소나무·은행나무 등이 속한다. 속씨식물은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로 구분되며, 현재 지구상에 가장 번성한 식물이다. 속씨식물인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에서만 ‘꽃’이 필 뿐, 겉씨식물인 소나무와 잣나무, 양치식물인 고사리와 고란초, 이끼류인 솔이끼에서는 꽃이 피지 않는다. 이끼류와 양치식물의 생식기관은 홀씨 또는 포자라고 하는데, 이들은 꽃 대신 홀씨를 만들 뿐만 아니라 씨앗도 만들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소나무나 은행나무 같은 겉씨식물에서는 스트로빌루스라는 기관이 꽃이나 포자를 대신하는데, 암·수포자수, 밑씨솔방울·꽃가루솔방울, 암·수솔방울 등으로 부르고 있지만 아직 마땅한 우리말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속씨식물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은 꽃잎, 꽃받침, 암술, 수술 등 4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부분이 모두 갖추어진 꽃이 있는가 하면 이들 가운데 몇몇 부분이 없는 꽃도 있다. 수술 없이 암술만 있는 암꽃, 암술 없이 수술만 있는 수꽃이 따로 피어 성(性)이 분화되어 있는 식물도 많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꽃에 대한 잘못된 정의가 학교 교육은 물론 사회에 파급된 채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참으로 웃지 못 할 일이다. 창피한 일이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16일 TV 하이라이트]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한·일 역사의 피해자였지만 어느 누구보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사람이다. 매화나무에 다소곳이 마주 앉은 한 쌍의 새를 표현한 그림에 소박하고 단아했던 여사의 성품이 그대로 묻어난다. 가혜 이방자 여사의 삶과 작품세계를 되짚어본다.●오천만의 일급비밀(KBS2 오전 9시40분) 추임새 하나로 1억원을 버는 별난 남자의 유쾌한 메들리를 만나본다. 손님이 들어오면 먼저 생년월일을 묻는 이상한 미용실이 있다. 손님의 관상은 물론 사주팔자까지 고려해 헤어스타일을 제안하는 헤어디자이너 변정섭씨도 만난다. 또 1초만에 물고기 신상을 100% 꿰뚫는 `생선도사´ 장문성씨의 사연도 흥미롭다.●옥션 하우스(MBC 오후 11시55분) 상류층 자제들의 모임인 서울클럽이 윌옥션을 통해 자선경매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온다. 서린은 윤재 대신 도영에게 경매를 맡긴다. 도영은 서울클럽의 회장인 성진과 친분이 있는 나경을 통해 서울클럽의 전 회장인 정우를 알게 되고 그에게서 일제시대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잡지를 위탁받는다.●SBS스페셜(SBS 오후 11시5분) 2005년 협의가 시작된 남북경제협력사업은 평양시 용성지구에서 벼농사 시험 재배로 첫 삽을 떴다. 이후 2006년 2월부터는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에서 본격적인 협동농장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남북한 동포가 함께 일궈낸 남북농업협력의 결실의 현장, 평양 당곡리를 찾아가 본다.●교육특집다큐멘터리 선진교육 현장을 가다(EBS 오후 6시50분)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의 교육환경과 시스템, 각 나라의 선진교육현장을 탐방한다. 교육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사회정서 등을 이해할 수 있는 국가의 근본. 선진국들의 교육을 이해하고 우리나라 현실과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을 연구하고 발전방향을 모색해 본다.●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5시30분)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던 릴레이 경주에서는 카이트서핑과 산악자전거 경주, 산악 달리기, 패러글라이딩까지 극한 상황에서 인간과 자연의 한계를 시험한다. 이제 이 케이프타운 경주는 익스트림 스포츠의 정기대회로 자리잡고 있으며, 참가자들은 자연을 향한 경외심을 품고 돌아간다.●명랑주식회사(EBS 오후 9시) 아파트 단지에서 알뜰 장터를 연 사장님과 자립센터 식구들은 시작부터 어려움에 처한다. 영업 장소에 트럭이 주차해 있는가 하면, 천막이 펴지지 않아 애를 먹는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몸이 불편한 장애인 자립센터 식구들의 준비는 더디기만 하다. 과연 알뜰장터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을까?●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1952년 임진왜란. 전쟁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조선군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악조건 속에서도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명장 이순신 이외에도 숨은 명장이 있었다. 조선군에 놀라운 전투기술을 전수한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을까?
  • 역사·조망·문화·도시 4개 테마로

    역사·조망·문화·도시 4개 테마로

    새롭게 바뀌는 ‘광화문 광장’은 차가 점령해버린 서울의 중심을 인간과 자연, 역사가 중심에 서도록 시계 바늘을 되돌리는 작업이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광화문, 남산, 관악산까지 이어지는 서울의 축을 되살리는 것과 광장 가운데 일제시대에 심어진 은행나무를 뽑는 대신 세종대왕상을 옮겨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광장은 광화문이 있는 북쪽부터 전체를 4등분해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경복궁 역사의 존)▲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조망의 존)▲한국의 대표광장(문화의 존)▲시민들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도시광장의 존) 등 4개 테마로 나눠 조성된다. ●6조거리 재현 광화문과 맞닿은 곳인 ‘경복궁 역사의 존’에선 옛 육조거리와 월대를 재현하고 해태상을 제자리로 복원한다. 또 ‘조망의 존’ 바닥에는 육조의 모습을 줄여 놓은 미니어처와 노두석 등을 통해 과거 행정기관인 이조(吏曹)·호조(戶曹)·예조(禮曹)·병조(兵曹)·형조(刑曹)·공조(工曹)가 현재 어느 곳에 위치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관아의 회랑을 재현해 정조릉 행차 등의 역사문화 체험공간으로 바꾼다. 세종문화회관과 KT가 마주보는 구간은 ‘문화의 존’으로 분류된다. 조선의 문화르네상스를 이끈 세종대왕 동상이 덕수궁에서 옮겨진다. 또 분수를 이용한 ‘물 스크린’, 미디어 폴 등을 설치해 IT(정보기술)과 문화네트워크의 축으로 꾸며낸다.‘도시광장의 존’은 세종문화회관과 이순신 장군 동상 사이로 광화문광장과 지하철 광화문역을 연결하는 지하통로를 만든다. 화장실 등 편의시설과 전시장 등 문화갤러리 공간을 갖춘 ‘선큰(Sunken·지하공원) 가든’으로 지하철과 연계해 시민들이 편하게 공원에 들어오는 출입구 역할을 한다. ●야경이 더 아름다운 도시 광화문의 랜드마크인 이순신 장군 동상 주변도 새롭게 조성된다. 우선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토대로 한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 기법 연출이 가능한 바닥분수와 포토존 등으로 꾸며진다. 분수는 배 모양으로 만들어져 마치 장군이 배위에서 해전을 이끄는 듯한 형상을 하게 된다. 광화문 광장의 경관과 전통성, 상징성, 기능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광장부, 차도부, 보도부로 나눠 각기 다른 색상과 패턴으로 포장한다.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대신 돌과 화강암을 써 고풍스러움을 더한다는 계획이다. 해태상, 세종대왕상, 광장 바닥 등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설치한다. 광화문광장은 평소 길이 740m, 폭 34m 규모지만 주요 행사때는 양옆 도로를 통제해 중규모 행사는 67m, 대규모 행사는 100m까지 폭을 넓혀 사용한다. 중앙분리대의 은행나무 29그루는 양측 보도로 옮기기로 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길섶에서] 다이어리/함혜리 논설위원

    내년도 서울신문 다이어리를 받았다. 문득 10여년 전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고집불통인지라 식구들에게 그다지 인기는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일본 주오대에 유학을 하신 인텔리로 6·25 전후로 원주·횡성·영월 군수를 지내셨다. 대쪽 같은 성질 탓에 일찍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칩거하기엔 아까운 분이었다. 한문 실력과 한자 붓글씨 솜씨는 탁월했다. 특히 당신 자신에게 매우 철저했다. 수십년을 하루에 두 끼만 드시고, 냉수마찰과 건포 마사지를 거르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영어로 일기를 쓰셨다. 대학노트를 사용하던 할아버지께서는 언제부터인가 서울신문 다이어리의 애용자가 됐다. 연말에 다이어리가 나오면 즉시 할아버지께 갖다 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종이질이 좋은 데다 칸이 넓어 일기쓰기에 안성맞춤”이라며 고마워하셨다. 연말연초면 여기저기서 다이어리를 받는다. 어떤 것은 사용하지도 않은 채 책상 서랍에서 일년을 보낸다. 영어 일기는 아니더라도 내년에는 나도 다이어리에 일기를 적어 보련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사설] 낯 뜨거운 동북아역사재단의 무지

    동북아역사재단이 독일 라벤스부르크 기념관의 후원을 받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고 있는 ‘한·독 성노예전’을 계기로 내놓은 사진첩이 오류투성이라고 한다.‘위안부들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실은 첫 번째 사진의 경우 여자정신근로대가 노동장소로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을 붙였지만 실제로는 신사참배를 위해 이동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특히 여자정신근로대와 위안부는 원칙적으로 다른데도 그 차이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친일단체로 알려진 애국국방부인회 멤버들 사진에 ‘일본군을 따라 중국전선에 도착한 위안부들’이라는 잘못된 설명을 달아 놓았다. 일제시대 민족 수난사를 대변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제법적으로 ‘인도에 반한 죄’이며, 명백한 ‘전쟁범죄’로 국제사회에서도 다각적인 문제해결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 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유럽에서도 결의안이 추진되는 등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국제적 압력 또한 거세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해 설립된 동북아역사재단이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기초적 사실과 개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고,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를 저지르는 셈이다. 어떻게 일본 정부로부터 군위안부문제에 대한 공식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번 일을 통해 그동안의 실책을 반성하고, 설립 취지를 제대로 살리도록 각고의 노력을 하기 바란다.
  • 대구 도심 골목길 투어 해보세요

    대구 도심 골목길이 문화상품으로 부활하고 있다. 7일 대구시에 따르면 2002년 3월부터 시작된 도심 골목길 투어에 지금까지 1만여명이 거쳐갔다. 매년 3월부터 11월까지 토·일요일(하루 1∼2회) 열린 500여차례 행사에는 매회 20여명의 초·중·고교생과 일반인이 꾸준히 참가했다. 참가비는 1인당 5000원이다. 참가자들은 네이버 카페 ‘대구신택리지’를 통해 답사를 신청, 도심 골목 3㎞ 정도를 2∼3시간에 걸쳐 돌아본다. 주요 골목 투어 코스는 다섯가지다. 일제시대 대구의 부호들이 살았던 남일동의 진골목과 계산동의 이상화고택, 상업 중심지였던 대신동의 서문시장과 시장북로 등이다. 골목투어가 시민들의 인기를 끌면서 대구시와 중구청도 도시디자인 정책수립을 위해 워킹투어에 나서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골목투어는 ‘교육’과 ‘체험‘이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며 “도심 골목을 특색있게 가꿔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기고] 벽오동 심는 뜻은…/정헌율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정책관

    옛날 장롱이 첫번째 혼숫감이던 시절, 조상들은 딸을 낳으면 안뜰에 벽오동을 심었다.20년 후를 내다보는 선조들의 지혜를 보면서 행정을 담당하는 우리 공무원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동사무소의 명칭이 지난 9월 동주민센터로 바뀌었다. 서운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면서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그동안 동사무소는 읍·면사무소와 함께 국가행정의 최일선에서 국가시책을 주민들에게 침투시키는 접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출생신고를 시작으로, 취학통지서·징집통지서·예비군훈련통지서를 배부했고, 각종 공부열람, 세금납부는 물론, 사망 신고를 함으로써 동사무소와의 인연을 마감한 것이다. 동사무소는 읍·면사무소와는 달리 시대상황에 따라 많은 변천을 겪어 왔다. 일제시대 이래 ‘리’와 동일한 지위를 유지해 오다 1961년 행정동제 도입을 거쳐 1988년 읍·면과 동일한 지위로 격상됐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교통·통신의 발달로 행정의 광역화 추세가 강화되면서 동사무소는 또 한차례 변화를 겪게 됐다. 단속·동원업무 등 권력적 행위는 시 본청으로 이관하고 동사무소는 단순 생활민원업무만 담당토록 하면서 그 여유공간에 주민자치센터를 설치해 탈관청화(脫官廳化)가 진행됐으며, 이 과정에서 281개의 동사무소가 통·폐합됐다. 이번에 추진되는 동의 명칭변경도 이러한 진화과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으나, 양적·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동사무소에 가지 않고도 전국 1600여개소에 설치된 무인민원발급기 등에서 70여종의 민원서류 발급이 가능해져 동사무소의 존재 이유가 없어졌다. 반면 복지행정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수 있도록 주민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복지 선진국인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지역별로 설치된 복지센터에서 공무원이라기보다는 자원봉사자에 가까운 사회복지사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독립된 공간의 상담실에서 개별상담을 통해 국가가 제공하는 모든 복지서비스를 추출,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에게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설계해 주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먼 남의 나라 얘기 같지만, 이젠 우리에게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정부는 최근 신설된 87개 복지관련 사무를 포함한 368개의 8대 주민생활지원사무를 통합·관리하고, 전담 포털시스템을 구축해 동주민센터에서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토록 추진 중이다. 자원봉사단체 등과 민관협력체계를 구축, 수요자 입장에서 실질적인 복지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준비도 하고 있다. 또 이미 전국의 동주민센터 2118개소에 상담실을 설치하고,3900여명의 사회복지사를 배치했으며, 장기적으로는 나머지 공무원들도 사회복지사로 배치할 계획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동사무소의 명칭변경이라기보다는 기능이 다한 동사무소를 폐지하고, 새로운 주민센터를 탄생시켰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제는 더이상 동사무소가 공급자 중심인 행정관청이 아니라, 수요자인 주민이 주인이 되는 주민센터가 돼야 한다. 다소 생소한 제도이고, 이제 막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명칭을 바꾸게 된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는 시구처럼 국민들이 애정을 가지고 자꾸 불러주면 주민센터는 한송이의 꽃이 되어 국민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이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정헌율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정책관
  • “한말~일제강점기 외국인 선교사 복음 전파자? 토착문화 파괴자?”

    “한말~일제강점기 외국인 선교사 복음 전파자? 토착문화 파괴자?”

    ‘이땅의 천주교 선교사들은 복음의 전파자인가 토착문화의 파괴자인가.’한국 천주교회는 세계교회사상 유례없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태동시킨 독특한 교회이다. 그러나 이땅의 초기 천주교인들도 어쩔 수 없이 성사 집례와 복음전파의 어려움에 부닥쳐 외래의 성직자를 불러와야 했다.1784년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앞다투어 들어온 선교사들은 의욕적으로 성당을 세워나갔다. 이렇다할 기술이나 전도지식이 없던 토박이 신자와 지도자를 대신해 한국천주교의 기초를 다졌던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사를 들여다보면 이들 선교사들은 단순한 선교활동에 그치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교육·의료·사회사업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에 학교를 세우고 고아원을 운영하는가하면 병원·의료활동과 연계한 사회사업들을 병행했다.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초기 선교사들이 제사나 토착문화에 강경하게 맞서거나 배척했던 것은 한국 천주교사의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인사들에 대한 거부와 암묵적 탄압 동조 또한 반성할 대상으로 한국천주교가 인정하고 있다. ●한국교회 발전 공헌 크지만 제사 배척 등 흠도 천주교 한국교회사연구소가 20일 오후 1시30분 명동 가톨릭회관 7층 대강당에서 교회사상 처음으로 이들 선교사들을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을 연다.‘한말·일제시대 선교회의 한국 진출과 천주교’를 큰 주제로 택한 게 예사롭지 않다.“선교회의 활동에 비해 그동안 이들에 대한 조명이 부족했다.”는 교회사연구소측의 말마따나 이번 심포지엄은 선교사의 위상과 역할을 제대로 따지고들 것으로 보인다. 이땅에서의 선교는 1831년 천주교 조선대목구가 설정되면서 조선대목구를 담당하게 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가 1833년 처음 파견된 게 시초다. 이후 1909년 성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1923년 메리놀 외방전교회,1933년 성골롬반 외방선교회가 뒤를 이어 차례로 들어왔다. 심포지엄은 선교회 전문가인 교수·신부들이 각 선교회를 놓고 조목조목 따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파리외방전교회·베네딕도수도회 등 역할 도마에 조현범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파리 외방전교회와 조선대목구의 분할’),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선지훈 신부(‘베네딕도회의 한국진출과 선교활동’), 충남대 김수태 교수(‘1930년대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선교활동’), 광주가톨릭대 옥현진 신부(‘광주교구의 골롬반 수도회’)가 그들이다. 발제에서는 가장 먼저 한국에 들어와 1911년 조선대목구를 서울대목구와 대구대목구로 분할하여 일제 말기까지 양교구의 사목을 담당했던 파리외방전교회의 활약과 모순, 교육사업의 사명을 맡아 초청된 뒤 출판을 통해 한국신자들의 전례참가를 도운 베네딕도수도회의 역할이 도마 위에 오른다. 이밖에 전남·강원지역 선교를 맡았던 골롬반 외방선교회도 해부되며 개신교 확산을 견제, 평안도지역 선교에 앞장선 메리놀선교회의 역할과 부침도 평가받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한국교회사연구소 이사장)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를 비롯한 선교회들은 박해시대 이래 봉사와 희생 속에서 한국교회의 유지, 발전에 큰 공헌을 했지만 아쉬움과 한계점이 있다.”며 “200여년의 한국 교회사에 있어 한국교회를 떠받친 하나의 축인 이들에 대한 재평가를 늦추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덕수궁미술관서 ‘화업 60년전’ 여는 김보현 화백

    덕수궁미술관서 ‘화업 60년전’ 여는 김보현 화백

    “옛날에 나의 인생이 별로 순조롭지 않았거든요. 환상의 세계를 그림으로써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과 같았죠.” 전혁림, 권옥연 등 원로작가를 발굴하는 전시를 꾸준히 열어 온 덕수궁미술관이 작가 김보현(90)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고통과 환희의 변주:김보현의 화업 60년전’을 열고 있다. 내년 1월6일까지. 일제시대에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분단상황을 몸소 체험하다 1955년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는 지금까지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 태평양미술학교에서 그림 공부를 한 뒤 9년여간 조선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한 그가 도망치듯 한국을 떠난 것은 좌익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여수·순천사건 발발 이후 강제 연행돼 모진 고문을 당한 상처는 그의 작품 ‘무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또다시 인민군에게 우익으로 잡혀 고초를 당한 그는 더이상 숨 쉬기 힘든 조국의 현실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달랑 300달러를 들고 뉴욕에 정착한 그는 시간당 1달러의 최저임금을 받으며 소호의 넥타이공장에서 넥타이에 그림을 그리는 등 어려운 생활을 한다.2000년에는 오지호, 천경자 등과 함께 강의를 한 조선대학교에 340점의 작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세오 등 뛰어난 작가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는 조선대 미대의 뿌리에는 바로 작가 김보현이 있었다. 덕수궁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작품 220점은 신산했던 작가의 삶과 달리 화려하기 그지없다.50∼60년대 당시 미국 화단을 주도하던 추상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는 80년대를 지나면서 고난을 승화시킨 듯 밝은 색채로 낙원의 경지를 묘사한 그림을 선보여 왔다. 작가는 “대규모 전시로는 이것이 생의 마지막 같다.”면서도 “오늘부터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그림을 그릴 생각이 있다.”며 창작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 관람료 2500∼4000원.(02)2022-0600.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신당 대선후보 인물 검증] 2002년 대선경선 자금수수 의혹 침묵

    대선철이 되면 각 후보의 과거 행적, 가족사까지 낱낱이 공개돼 도마에 오른다. 정동영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 본지는 정 후보에 대해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정 후보 측의 답변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공소권 없음´ 수사 종결 2004년 1월, 새천년민주당은 정 후보가 2002년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불법자금을 받았고,2000년 최고위원 경선에서 권노갑 고문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았다며 고발장을 접수했다. 대검 중수부는 고발 사건을 중수1과에 배당, 수사에 착수했고 원칙에 따른 수사를 천명했다. 당시 김근태 고문의 불법경선자금 수수 양심고백과 권노갑 고문이 정 후보에게 돈을 건넸다는 폭로가 잇따랐지만, 정 후보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수사를 진행하는 중 정 후보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검찰은 1년 여가 지난 2005년 4월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정 후보의 측근 중 일부만 경선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한 민주당 인사는 “당시 검찰은 정 후보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 권 고문을 불러 참고인 진술 한번 듣지 않았다.”고 전했다.●선친 일제강점하 이력 논란 정 후보의 선친인 정진철(1924∼1969·실제 출생 1921년)씨는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전북 순창군 구림면의 금융조합 서기로 근무했다. 정 후보 부친의 일제강점기 행적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80대의 순창읍 토박이 할아버지는 “금융조합이 곡식 낱알까지 다 걷어가 수원, 김제평야까지 가서 양식을 구해와야 했다.”면서 “당시 금융조합에서 일한 조선인은 간부, 말단직 할 것 없이 다 친일파였다.”고 말했다. 정 후보 측의 직접적인 답변은 듣지 못했으나 정 후보 측은 몇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친의 경력은 사실이나 친일 논란에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금융조합은 일제 말기 전시체제에서 자금 동원 역할을 맡았다.”면서 “현금뿐 아니라 농작물 등 현물까지 강제로 저축하게 했고, 쌀 한 말 값에 해당되는 1원짜리 ‘꼬마 채권’ 등을 발행해 농민들에게 구매를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정 후보의 부친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연좌제 국가도 아닌데 부친의 일제감점하 행적으로 아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정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부친이 일제시대 검찰 서기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연좌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역사 인식의 관점을 짚어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친일 의혹을 명백히 규명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정 후보의 부친은 광복 직후 면장을 지냈고, 한국전쟁을 전후해 ‘대한청년단(한청)’의 구림면 단장으로 활동했다. 한청은 1949년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조직한 우익청년단체로, 활동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관계자는 “한청이 좌익혐의자라고 해서 민간인을 마음대로 연행하거나 불법적으로 학살에 가담한 행위들이 조사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구림면 토박이 전영모(75)씨는 “전쟁시 한청은 군인들이 빨치산인지 양민인지도 모르고 다 죽이려고 하는 걸 막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특별취재팀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8) 전주 원동 ~ 익산 여산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8) 전주 원동 ~ 익산 여산

    옛길은 이야기속으로 사라진 길이다. 한때 민족 이동의 대동맥이었던 호남대로는 이제 역사로만 기억되는 잊혀진 길이다. 하지만 옛길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간직한 보고이다. 길을 다니던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옛길의 생명력은 또한 끈질기다. 국토의 개발이라는 거대한 밀물에 사라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원형이 보존된 곳이 적지 않다. 개발에서 소외된 호남지역은 그런 의미에서 옛길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지역일 수 있다. 원(院)과 주막(酒幕), 객주(客主)는 사라지고 없지만 기쁨, 슬픔, 절망, 한의 역사를 간직한 옛길의 흔적을 좇을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전주의 뒤안길이 된 옛길 전북 지방의 옛길은 전북의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의 서쪽 변두리를 지난다. 호남대로란 옛말이 무색할 정도다. 나지막한 구릉지대를 지나는 옛길은 한적한 2차선 도로로 변했다. 옛날 원이 있었다 해 붙여진 전주시 원동을 지난 옛길은 전주∼군산간 국도 26호선과 교차한다. 국도 26호선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길이다. 봄이면 전국에서 가장 긴 일백리 벚꽃터널을 이룬다. 벚나무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재일교포들이 전해준 것이다. 일제가 수탈을 위해 만든 길에 재일교포들이 일본의 나라꽃을 심은 길은 이제 전주와 익산, 군산을 연결하는 산업도로로 변했다. 옛길이 국도 26호선과 교차하기 직전 오른쪽에는 ‘한국도로공사 수목원’이 자리잡고 있다. 1970년 호남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남은 땅에 다양한 수목과 희귀식물을 심어 꾸민 수목원이다.33만 9380㎡의 부지에 178과 3010종의 수목을 재배하고 있다. 인터체인지 부근은 일제 시대에 미쓰비시 재벌이 운영하던 동산농장을 비롯한 일본인들의 대규모 농장이 있었던 곳이다. 전라선 철도도 동산농장에서 생산되는 쌀을 반출하기 위해 부설된 사설 협궤 철도였다. 그러나 동산농장이 있던 곳에는 전주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섰다. 옛길은 용덕·용정·구정마을을 지나면서 호남고속도로와 교차해 완주군 삼례읍을 향한다. 호남고속도로를 왼편에 끼고 삼례까지 펼쳐지는 평야지대를 나란히 달린다. 옛길은 아련한 모습으로 논밭 사이를 지나다 만경강 상류인 삼례 한내 천변에서 끊겼다. 강을 건너던 다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내를 건너면 완산팔경(完山八景)의 하나인 비비정(飛飛亭)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비비정은 1573년(조선 선조 6년) 무관이었던 최영길에 의해 건립됐다. 이곳에 오르면 전주시내와 호남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앞으로는 한내가 흐르고 주변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풍광이 대단히 아름답다. 유유히 흐르는 물위로 기러기들이 내려앉는 풍경을 볼 수 있어 옛 조상들은 이곳을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 했다. 양반들은 이 정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시를 지어 주고 받으며 정취를 달랬다고 한다. 깊고 천이 넓어 군산, 부안에서 온 소금배와 젓거리배가 쉴새 없이 오르내렸다. 백사장 한쪽에는 큰 시장이 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조선시대 9대로 가운데 전주·남원·통영 방면으로 가는 ‘6대로’가 분기하는 곳이다. 호남대로는 비비정 옆 언덕을 지난다. ●동학농민군 2차 집결지 삼례 비비정 마을을 지난 옛길은 삼례읍 중심지에 들어선다. 삼례초등학교 앞을 지나 원삼례마을을 향하면서 헤어졌던 국도 1호선과 다시 교차한다. 국도 1호선은 익산쪽을 향하지만 옛길은 호남고속도로와 나란히 삼례중앙초등학교 옆을 지난다. 삼례는 동학농민혁명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1894년 9월(음력) 10만여 농민군이 항일 투쟁의 깃발을 앞세우고 재집결한 2차 봉기 장소이다.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범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키자 일본군과 탐관오리를 아내기로 결의한 농민군들은 삼례뜰에서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삼례봉기는 근대 민족·민중운동의 출발이요 새로운 한국사회를 밝히는 위대한 횃불이었다. 이에 앞서 1892년 11월(음력)에는 동학교도 수천명이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탄원하기 위해 모인 장소다. 이른바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이다. 삼례집회는 전라감영의 무력진압을 각오한 것으로 실은 탐관오리에 대한 투쟁이었다. 이들은 삼례역에 모여 두차례 전라감영에 의송(議送)을 보내 동학 교조의 신원(伸寃)을 할 것과 동학도에 대한 수탈 중지를 요구했다. 삼례집회는 본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동학도에 대한 부당 주구금지 조치를 얻어냈다. ●백제 도읍지 익산 호남고속도로 삼례인터체인지를 지나면 행정구역이 변한다. 옛길 남쪽은 완주군 삼례읍, 북쪽은 익산시 왕궁면이다. 왕궁은 백제문화제가 널리 분포되고 있는 지역이다. 제석사지(사적 제405호),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 함벽정(전북도 유형문화제 제127호) 등이 있다. 왕궁리 유적은 1989년부터 학술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지설이 전해지고 있다. 왕궁리 유적지에는 백제계 석탑 형식에 신라탑 형식이 가미된 고려 초 작품으로 추정되는 5층 석탑(국보 제289호)이 남아있다. 옛길은 왕궁면 남촌마을과 삼례읍 농원마을 사이를 지나 봉광동을 스친다. 통정·역기·신기마을을 지날 때까지 왼쪽으로는 호남고속도로가 계속해 달린다. 전광리에서 호남고속도와 교차한 옛길은 왕궁저수지를 향한다. 왕궁저수지는 1931년 일제시대에 준공됐다. 옛길은 왕궁저수지 건설로 일정 부분이 수몰됐다. 대동여지도에 옛길은 왕궁저수지 중앙을 통과하는 것으로 기록돼있다. 저수지를 지나 연봉정 마을을 지난 옛길은 탄현고개를 넘는다. 연봉정 마을은 주막촌이었으나 현재는 초라한 농촌 마을에 지나지 않는다. 탄현고개를 넘으면 익산시 여산면이다. 이곳부터 옛길은 국도 1호선과 다시 한몸이 된다. ●천주교 성지 여산 여산은 한양에서 내려올 때 호남의 초입 고을로 위세를 떨쳤던 지역이다. 호남에 들어가기 전 중요한 길목이어서 주막과 객주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는 장급 여관 하나 볼 수 없는 전형적인 농촌 면소재지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는 여산은 한때 학문과 행정의 중심지였다. 천주교의 전래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빨랐다. 그만큼 박해도 많이 받았다. 여산성당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여산부의 속읍지였던 금산·진산·고산 등지의 심산유곡에 숨어있던 신자들이 여산관아로 잡혀와 모진 형별과 굶주림의 고통을 당하고 1868년 처형돼 순교한 성지다.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철거된 동헌이 남아 있다. 동헌은 사또가 있었던 관아다. 여산동헌(전북도 유형문화재 제93호)은 조선 후기 관아 건물 가운데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된 몇 안되는 귀중한 문화재다. 동헌 앞에는 천주교 신자들의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백지를 여러 붙여 질식사시킨 ‘백지사(白紙死)터 성지’가 남아 있다. 옛길은 여산 동헌을 지난 뒤 1번 국도와 다시 만나 충청남도 논산시를 향한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신정일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대표 “옛길 복원해 보행권 되찾아야” “역사 속에서 실재했던 옛길을 복원해 국민들의 보행권을 확보해야 합니다.”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53) 대표는 “옛길을 복원해 보행권이 확보되면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 우리 국토의 재발견과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땅 걷기 모임은 차를 타는 것 보다 느리게 걸으며 우리 국토를 다시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발족했다.‘보행권 되찾기 운동’과 ‘옛길 문화재 지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두발로 우리 땅을 걷자는 뜻으로 11월11일을 ‘길의 날’로 정했다. “우리 산, 우리 강, 우리 국토가 너무 아름다워 걷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하며 얻은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을 책으로 쓰고 있다. ‘다시 쓰는 택리지’를 비롯해 그가 펴낸 책은 무려 32권이나 된다. 모두 그가 발로 뛰며 몸으로 느끼고 본 것을 엮은 것이다. 영남대로, 삼남대로는 물론 한강, 낙동강, 금강, 만경강 등 8개 강을 걸었고 400개의 산을 올랐다.25년 동안 전국을 답사하며 걸은 거리만 해도 지구를 몇바퀴 돌 정도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현대판 김정호’라는 별명이 따라 다닌다. “옛날 만경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주로 배를 탔지요. 비비정이 완산팔경으로 꼽히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는 “현재 왕궁리 근처에 가면 축산 폐수가 악취를 풍기지만 옛 백제의 숨결을 느끼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의미 깊은 곳”이라며 “호남대로는 걸으면 걸을수록 깊은 맛을 느낄수 있다.”고 강조한다. “옛 선비들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고 책을 읽는 것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답사를 하다 지치면 책을 읽거나 쓰고, 이 역시 지치면 다시 답사를 떠나지요.” 그는 이처럼 요즘도 일주일에 3일은 답사를 위해 걷고 4일은 책을 쓴다. 신 대표는 “걷는 것은 곧 자연 사랑이고 자연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하나의 첩경”이라며 옛길 복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李 통일 “포용적 자세로 검토”

    다음 달 2∼4일 열리는 2차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 내외 등 남측 방북단이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는 방안을 정부가 적극 검토하고 있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의제 논란에 이어 정치권을 비롯한 국내 보수·진보 진영간 논란이 예상된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20일 정례브리핑을 갖고 노 대통령의 아리랑 공연 관람에 대해 “남북관계 진전과 국민 의식 수준을 감안할 때 상호체제의 차이에 대한 이해와 존중 차원에서 좀 더 포용적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북측이 아리랑 공연 관람을 전체 일정 중 하나로 검토해줄 것을 현재 방북 중인 남북정상회담 준비 선발대측에 제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리랑 공연은 2002년 4월 고 김일성 주석 90회 생일행사로 시작돼 매년 개최되는 대규모 집단공연행사로, 학생과 근로자·예술인 등 총인원 6만여명이 동원돼 일제시대 항일투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카드섹션과 집단체조 등을 통해 펼쳐보인다. 이 장관은 “귀환 길에 노무현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문제를 북측과 현재 협의하고 있으며 아직 결론을 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또 “공식수행원 숙소는 백화원초대소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특별수행원에는 김재현 한국토지공사 사장이 추가됐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7) 정읍 태인~전주시 원동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7) 정읍 태인~전주시 원동

    호남대로는 한양과 충청·전라도를 수직으로 가깝게 연결하는 옛길이다. 선조들이 걸었던 옛길이 후손들에 의해 건설된 국도 1호선이나 호남고속도로와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을 볼 때 길과 도시 발달의 역사는 결코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호남대로는 때로는 험한 산을 넘고 물살 거센 강을 건너기도 하지만 드넓은 평야지대를 지나는 곳이 많다. 들녘을 걷는 것이 산을 넘는 것보다 힘이 덜 든다고 하지만 발품을 팔아 먼길을 가는 것은 역시 고단한 일이다. 호남평야에는 겨울이면 살을 에는 듯한 모진 북서풍이 몰아친다. 서해안에 가까운 지역은 눈보라도 많아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여름에는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숲도 드물다. 그러나 넉넉한 들판 만큼이나 인심 후한 전라도 길은 나름대로 풍류와 멋이 넘쳤던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 ●민초들의 애환 서린 호남평야 호남평야는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들판이다. 전북 전주, 군산, 익산, 정읍, 김제, 완주, 부안, 고창 등 8개 시·군에 넓게 펼쳐져 있다. 남북으로 80㎞, 동서로 40㎞이며 면적은 약 3500㎢에 이른다. 제주도와 비슷한 넓이고 서울시의 3배 정도이다.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이 넓은 들은 예부터 기름지고 농사가 잘돼 “조선 팔도가 흉년이 들어도 호남이 있어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이 내려오고 있다. 호남(湖南)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수자원개발의 효시인 김제 벽골제, 익산 황등제, 정읍 눌제 등 3개 호수의 남쪽이란 뜻이다. 벽골제는 백제 비루왕 27년(330년)에 쌓았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둑의 길이가 3.3㎞, 물을 대주는 몽리면적이 1만㏊이며 수문도 5개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1700여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장생거’와 ‘경장거’ 두 수문의 돌기둥이 고색창연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묵묵히 펼쳐진 이 들판은 수많은 민초들이 한을 움켜쥐고 살아온 땅이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렸고 일제시대에는 뼈아픈 수탈의 현장이었다. 허리 휘도록 고생한 보람 없이 자식처럼 애지중지 가꾼 쌀을 빼앗기고 억울함과 배고픔에 서럽게 울부짖었던 애환 서린 곳이다. 오늘 날에는 KTX가 시원스럽게 질주하는 황금 벌판이지만 역시 지역개발에서는 소외된 슬픔을 겪고 있다. 길은 호남평야의 동쪽 부분을 구슬 꿰듯 뚫고 지나간다. 호남평야 동남쪽 초입인 정읍시 입암면에서 정읍시내, 태인면을 거쳐 김제시 원평면과 금구면을 향한다. ●동학군·관군 최후 결전장 원평 역사와 문화의 고장 정읍 태인을 뒤로 하고 솟튼재를 넘으면 김제시에 들어선다. 솟튼재는 평야부에서는 제법 높은 산길이다. 김제시는 도작(稻作)문화의 발상지요 우리나라 제1의 곡창인 호남평야의 중심지이다. 옛길은 태인부터 김제 원평까지 국도 1호선과 거의 일치한다. 이 때문에 2차선 포장도로로 변했던 옛길에 4차선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다만 태인 독양마을에서 용호교 부근까지는 국도 1호선 서쪽으로 약간 벗어난다. 솟튼재를 넘는 길도 국도 1호선은 산길 구배를 따라 구부러지지만 옛길은 직선이다. 태인∼원평간 옛길은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치기 위해 달려간 진격로이자 보급로이다. 왼쪽으로는 호남평야이고 오른쪽은 모악산 자락이다. 김제 초입 신장마을을 지나면 원평시장이 보이고 이어 원평초등학교 앞을 통과한다. 원평면은 호남평야에서 가운데 토막인 금만평야의 동쪽 끝부분이다. 예전에는 원평이 금구현에 속한 작은 교통 취락이었으나 현재는 금구보다 훨씬 크다. 행정 구역도 금산면 원평리이다. 원평은 전략적 요충지여서 관군과 동학 혁명군이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동학군의 주된 근거지도 원평이었다. 전봉준을 비롯한 혁명군의 수뇌부가 이곳에서 머물면서 집강소를 호령했다.2차 봉기했던 동학군이 일본군에 패퇴하면서 최후의 결전을 치른 곳도 이곳이다. 동학군을 이끌었던 김덕명 장군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김 장군은 금구의 동학 대접주로 1894년 교도 2000명을 이끌고 전봉준 장군과 함께 선봉장 역할을 했다. 김 장군은 공주 전투에서 관군에 패한 뒤 원평 전투를 마지막으로 농민군 지도자들과 함께 몸을 숨겼다가 주민들의 밀고로 체포됐다. 원평에는 그의 넋을 기린 학수제가 있다. 원평초등학교 앞에서 오른쪽으로 지방도 712호선을 타고 가면 모악산과 금산사가 나온다. 모악산은 노령산맥의 중봉으로 해발 793m이다. 김제시 금산면과 완주군 구이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호남평야의 전망대로 불린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면 호남평야가 발 아래 아스라히 펼쳐진다. 증산교와 단학을 비롯한 수많은 신흥종교 교조와 교주들이 이 산에서 득도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모악산 남쪽 자락에는 대가람 금산사(金山寺)가 자리잡고 있다. 1400여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금산사는 599년 백제 법왕의 자복 사찰로 창건됐다. 국보 1점(미륵전·국보62호), 보물 9점, 지방유형문화재 1점 등 11점의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전라좌도와 우도 사찰을 관할하는 규정소로 지정된 미륵신앙의 성지다. 진표율사는 금산사를 근본도장으로 해 법상종을 5교9산 중의 한 종파로 발전시켰다. 원평을 빠져나온 옛길은 원평천을 건너면서 다시 1번 국도와 합쳐진다. 왼쪽으로는 호남고속도로가 달린다. ●사금의 고장 금구 금산면과 금구면 경계 부근에서 1번 국도는 우회도로로 변하지만 옛길은 곧장 금구면 소재지를 향한다. 금구는 사금(砂金)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모래를 걸러 금을 찾는 ‘골드 러시’가 이어졌다. 지금도 농사철이 끝나면 대형 중장비들이 논을 파헤쳐 사금을 캐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원평에서 4㎞ 떨어진 금구 소재지 역시 동학군과 관군의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원평보다는 적지만 관군과 동학군 모두 많은 희생자를 냈다. 옛길은 금구 소재지 금구향교 앞에서 급하게 왼쪽으로 꺾이면서 국도 1호선, 호남고속도로와 교차해 우산마을 옆을 지난다. 금구향교 앞에는 온갖 풍상을 지켜본 40여개의 공덕비가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부터 완주군 이서면을 거쳐 삼례읍에 이를 때까지 국도 1호선과는 완전히 멀어진다. 호남고속도로를 왼쪽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 북진한다. 두월천을 건너면 왼쪽에 거북이 바위가 나온다. 바위 맞은 편 마을이 구암마을이다. 이 마을을 경계로 김제시 금구면이 끝나고 완주군 이서면이 시작된다. 이서면 소재지까지 이어지는 길은 조용한 2차선 도로다. 옛길은 약간 높은 구릉지대여서 왼쪽으로는 드넓게 펼쳐진 호남평야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옛길은 이서면 소재지에서 국도1호선과 교차해 면사무소, 삼우중학교 옆을 지난다. 호남고속도로 전주 인터체인지까지 평야부와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번갈아 이어진다. 교통량이 적어 매우 한적한 전원적인 분위기의 2차선 도로다. 이서면 반교리 일대에는 국내 최대의 관상어단지가 조성돼 있다. 물고기 마을에서는 1만 6000㎡에서 80여종 200만마리의 관상어를 관람할 수 있다. 물고기 마을부터 전주시 원동까지는 구릉지대다. 황토밭에는 배과수원들이 몰려 있다. 원동을 지난 옛길은 지방도 25호선인 전주∼군산간 도로를 가로질러 호남고속로와 나란히 완주 삼례를 향해 나아간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사라진 옛길 너무 많아 하루빨리 복원해야” “옛길을 되찾아 복원하고 보호하는 사업은 지금 하지 않으면 못합니다. 하루가 시급한 일 입니다.” 김병학(전 김제문화원장·77)씨는 “도시개발과 사회간접시설 확충 사업이 급속히 추진되면서 온데 간데 없어진 옛길이 너무 많다.”면서 “옛길에 대한 고증을 해 줄 수 있는 세대가 아직 살아있는 시기에 서둘러 복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가 지긋한 마을 원로들에게도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옛길을 청·장년들은 전혀 알 수 없고 관심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90년대 중반 김제지역 지명과 마을 이름의 유래를 파악하기 위해 시 전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의 역사와 옛길이 일제에 의해 너무 많이 파괴됐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 아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평생을 농촌운동과 향토문화창달에 헌신해온 김씨는 “옛길과 옛 지명에 얽힌 사연과 유래만 알아도 우리 역사의 반은 파악될 것”이라며 사라진 옛길을 아쉬워 했다. 일제가 옛 지명과 길 이름들을 나름대로 재해석해 개명하는 바람에 엉뚱한 이름이 진짜인 것인 양 사용되고 있다는 것. “김제시는 도작문화의 발상지요 호남평야의 중심지입니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이 발달한 문화의 고장이고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인재의 고장입니다.” 그는 호남평야를 관통해 한양으로 향하던 김제지역 옛길만이라도 제대로 복원해 마라톤 코스나 자전거 여행 답사길로 만들면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릴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옛길 복원사업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옛길을 복원하면 자동차가 다닐 수 없어 도보여행이나 자전거여행을 해도 매우 안전하고 뜻깊은 도로가 될 것이라는 것. “옛길은 목적지를 향해 최단 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지금 새로 나는 도로들은 도시와 마을을 피해 우회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는 “고문헌과 서적을 뒤져보면 옛 지명과 길에 대한 자료를 어렵게 구할수 있지만 실제로 찾아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면서 “옛길은 아직도 이용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적은 사업비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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