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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애덤스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애덤스 신부

    수많은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한국은 지구상 유례없는 ‘종교 천국’으로 회자된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은 색이 바래고 있는 것 같다. 종교편향 시비로 불거진 불교계의 집단행동에 즈음해 종교간 갈등이 거론되고 자칫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때맞춰 많은 이들이 종교간 대화를 갈등 해소의 큰 방편으로 입에 올리지만 종교계 형편을 들여다보면 그리 녹록지 않다. 과연 한국의 종교들은 대화를 향한 진정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종교, 특히 한국의 종교간 대화에 천착해 한국에 사는 푸른 눈의 사제가 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로 입국해 목포가톨릭대학에서 지난 9월부터 ‘인간과 윤리’강의를 맡고 있는 아일랜드 출신의 에몬 애덤스(41·한국명 임영준) 신부. 사제서품을 받은 천주교 성직자이지만 틈만 나면 절집들을 찾아 예불도 하고 주지 스님들과 차담을 나누며 불교 연구에 흠뻑 빠져 있는 별난 사제이다. ●전세방 책장엔 불교서적으로 빼곡 광주광역시 쌍촌동 고속버스 터미널 인근, 애덤스 신부가 사는 허름한 아파트 전세방엘 들어가니 책장에 빼곡하게 꽂힌 불교서적들이 시선을 잡는다. 인사를 나누면서도 연신 책장의 책들로 쏠리는 기자의 눈길을 알아챈 신부가 빙그레 웃는다.“두서 없이 덤벼들었더니 책도 뒤죽박죽입니다. 배우는 중이에요.” 겸손한 말과는 달리 깔끔히 정리된 손때 묻은 책들이 소문대로 예사롭지 않은 경지를 보여준다. 육조단경, 보조전서, 한국불교현대사, 한용운전집, 조선불교통사, 친일불교론, 민중불교탐구…. 성경과 천주교 교리서 대신 책장을 가득 차지한 불교 책들. 십자가나 성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사제는 무슨 이력이 있길래 이토록 불교에 빠져 살까. 아일랜드 최북단, 인구 7000명 남짓한 소도시 출신.17살 나이에 성골롬반외방선교회에 입회, 더블린 서쪽의 메이누스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사제서품을 받았다. 한국은 원래 원하던 땅이 아니었다고 한다. 신학대 재학 때부터 종교, 특히 불교에 관심이 많았고 일본불교를 알고 싶어 일본엘 가고 싶었다. 한국은 그저 ‘88올림픽 개최국’정도로만 머리에 있었다. 사제서품 후 선교회 총장 신부가 ‘한국과 파키스탄 중 택하라.’고 해 이왕이면 일본에 가까운 나라를 고른 것이 지금까지 한국에 살게 된 이유이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온 지 올해로 75년째.33명의 선교사가 한국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 고령의 사제들이다.1994년 애덤스 신부가 입국한 뒤 한국을 택해 온 외국인 신부는 필리핀 출신 3명이 전부. 그나마도 모두 출국해 사실상 젊은 사제로는 애덤스 신부가 유일한 셈이다. ●반야경·금강경·화엄경 등 불경까지 통독 한국에 와 곧바로 연세대 서강대에서 한국말을 배운 뒤 광주대교구로 내려가 뉴질랜드 출신 선교사의 집에 얹혀살면서 한국불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도시빈민 사목을 했던 뉴질랜드 신부를 따라다니며 만난 불교 신자들에게서 한국불교를 보게 됐다고 한다. 그때부터 수소문해 대원사며 송광사를 찾아 몇 달씩 살았고 숭산 스님이 주석하던 서울 화계사에서 안거에도 들었다. 절집들을 찾아 만난 벽화며 주지 스님과의 차담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천주교 사제들이며 신자들의 눈총이 따가웠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나요. 빠져들수록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배워야 알지요. 종교간 대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무렵입니다.” 결국 더 배우기 위해 영국 런던대로 유학을 떠났다. 아시아아프리카 학부에 들어 석사학위로 제출한 게 ‘부모은중경’이고 박사학위 논문은 ‘일제시대 한국불교의 혁신운동’이다. “막상 런던대엘 가니 한국불교란 눈을 씻고 봐도 눈에 띄지 않더군요. 일본, 티베트, 태국, 미얀마, 몽골의 불교가 다 있었지만 한국불교는 불모지였어요. 나 자신이 공부하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한국불교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은중경과 한국불교 혁신운동을 택한 것이지요.” 불교 입문자의 필독서인 초발심자경문은 물론 반야경과 금강경, 화엄경을 통독한 실력이다. ●한국 종교 간의 대화 더이상 늦출 수 없어 2007년 2월 한국에 다시 들어와 광주대교구에 머물면서 본격적으로 사찰을 돌기 시작했다. 지금도 틈만 나면 대원사, 무등산 증심사를 찾아 사찰 구석구석을 들쑤시고 염불과 예불도 한다. 화·목·금요일 사흘은 목포가톨릭대 강의에 매달려야 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모두 절집 순례며 종교간 대화 연구에 쏟는다. 주일 미사도 한 성당이 아닌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참석한다고 하니 분명 예사로운 사제는 아니다. 신·구교간 분쟁이 살벌한 아일랜드에서 피로 얼룩진 종교 테러와 살상을 보고 자란 사제에게 평화로운 한국 종교계는 당연히 큰 관심의 대상이었을 터. 그러면 과연 한국은 말대로 ‘종교 천국’일까. “유럽과는 달리 많은 종교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한국의 종교는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문제는 많은 신자들 사이의 갈등이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지요.” 각각의 종교들이 다른 종교에 관여하지 않은 채 따로따로 잘살고 있지만 머지않아 상황은 크게 바뀔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종교간 대화를 더이상 늦출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영국으로부터의 분리, 독립과 맞물린 정치·역사적 상황에 개신교와 천주교가 편들어 가세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띤 아일랜드의 해묵은 종교분쟁. 종교간 대화라는 말을 꺼내기도 어색한 고향 아일랜드와 비교할 때 한국의 상황은 분명 천양지차일 것이다. 하지만 애덤스 신부는 요즘 흔한 한국종교계의 대화에 고개를 흔든다. ●선교는 강요가 아닌 행동으로 말해야 “그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대화가 아닙니다. 진정한 대화는 상호이해와 관용에 바탕해 배우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전제돼야 하지요. 지금 한국의 종교인들은 이런저런 합동행사를 갖고 왕래하지만 다분히 형식적이란 느낌을 갖습니다.” 대화를 하려면 남에게 가르치려는 대신 먼저 남을 배워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칼날 같은 한마디가 요즘 복잡한 우리 종교계의 혼돈에 얹혀 가슴에 콕 박힌다. 천주교 사제가 교육 과정에서 불교 원리와 사상을 배우고 불교 스님들이 기독교 교리와 성경을 배워야 한단다. 지난 8월 오대산 월정사에서 열린 교수불자대회에 불자 아닌 사제로 참석해 종교 본연의 기본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역설해 눈길을 끌었던 그다.“대부분의 종교가 원래 보수적인 속성을 갖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교회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가 불교 공부를 하면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신학 개념의 틀도 깰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종교의 역할은 개개인이 사는 보람을 찾고 넓은 마음을 갖도록 돕는 것”이라는 애덤스 신부. 선교사가 되고 싶어 신학대를 나와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사제의 길을 걷는 그가 생각하는 선교는 무엇일까. “다른 나라에 가서 우리 종교를 믿으라고 하는 게 선교사인가요? 모든 신자들이 다 선교사이지요. 적어도 나에게 선교사의 소임은 사회 속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믿는 것을 행동이나 말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제각각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자리를 인정하고 더 잘살 수 있게 한다는 믿음이 그 바탕이지요.” 다음 학기부터는 본격적인 종교 대화 관련 강의를 하게 될 것이라는 애덤스 신부, 아니 선교사가 품은 욕심은 강의 말고도 많다.‘해방후 한국불교의 혁신운동’ 논문도 써야 하고 한국 불교 27개 종단 소개책자도 영문으로 펴내려 한다. 요즘은 종교와 환경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2012년 여수엑스포를 계기로 종교와 해양을 연결한 국제학술회의 개최와 학회 조직도 벼르고 있다. “화엄경의 인드라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은 모든 존재와 세계가 거미줄처럼 서로 얽혀 있다는 유기체 세계, 종교가 따라야 할 본연의 큰 가치는 바로 인드라망이 아닐까요.” 글ㆍ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애덤스 신부는 ▶1967년 아일랜드 출생 ▶1984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입회 ▶1993년 메이누스 신학대 졸업, 사제수품 ▶1994년 선교사로 한국 입국 ▶1995∼1999년 광주대교구 도시빈민 사목, 한국불교 순례 공부 ▶1999∼2007년 영국 런던대 유학 ▶2007년 한국 귀환, 광주대교구 사목,‘한국 종교간 대화’ 연구 ▶2008년 9월∼ 목포가톨릭대학 출강
  • 이번 주말엔 ‘고인돌 가족’ 돼볼까

    이번 주말엔 ‘고인돌 가족’ 돼볼까

    6000년 전의 선사시대가 암사동 선사주거지에서 퍼포먼스와 원시 체험으로 재현된다. 강동구는 오는 10∼12일 암사동에서 ‘제13회 강동선사문화축제’를 연다고 7일 밝혔다. 원시마라톤과 바위절 마을 호상놀이, 다양한 원시체험 프로그램 등이 마련됐다. 선사시대를 공부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교육장’인 데다 놀이·체험 마당이 적지 않아 가족 나들이의 최적지로 꼽힌다. 이번 주말엔 선사시대로 돌아가보자. ●11일 원시인 복장 마라톤대회 10일(오후 7시) 개막식에 이어 11일 오전 9시엔 ‘선사 원시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원시인 복장을 한 1200명이 선사주거지를 출발해 선사초등학교, 광나루 둔치, 잠실 둔치를 거쳐 다시 선사주거지로 돌아온다. 대회의 재미를 더하는 이벤트도 마련된다. 원시인 복장은 물론 기발한 분장으로 즐거움을 선사한 참가자에게 분장상을 수여한다. 가족 화합상과 최고령상도 있다. 참가자들은 5㎞나 10㎞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11∼12일에는 원시 타악공연이 펼쳐진다.11일엔 오리지널 난타팀,12일은 비트 서클이 각기 다른 매력의 타악 공연을 진행한다.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원시인 되기 ▲원시마을 만들기 ▲원시춤 배워보기 ▲원시 불씨 피우기 ▲빗살무늬 토기 제작 ▲곡식껍질 벗기기 ▲민속놀이 체험교실 ▲옛 집자리 가상 발굴 등 선사시대 신석기인들의 삶과 문화를 체험한다. ●일제때 교과서 등 희귀도서전 개최 선사문화축제에서 첫선을 보이는 자활박람회와 고가의 소장가치를 지닌 희귀본 도서 전시회도 눈길을 끈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보통학교 조선어 및 한문독본,1949∼1964년 문교부가 발행한 국어, 산수, 사회, 자연 교과서들을 볼 수 있다. 조선왕조 국왕의 수결(결재 서명), 역대 대통령 9명의 서명을 인쇄해 나눠 주는 이색 행사도 열린다. 12일 오후 6시에는 헤어 디자이너의 현란한 헤어쇼가 펼쳐진다. 올해는 ‘고전 전통머리’를 주제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머리 스타일을 각기 다른 개성으로 연출한다. 폐막 무대에서는 가수 윤도현밴드와 여행스케치 등이 출연한다. 이해식 구청장은 “6000년 전 조상들의 삶의 터전에서 풍성한 문화축제를 열게 돼 기쁘다.”면서 “가을 나들이를 나선다면 역사도 공부하고 볼거리도 많은 암사동 선사주거지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서울약령시 “건강 세일합니다”

    서울약령시 “건강 세일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약종합시장인 서울약령시에서 6∼12일 국내 최대 규모의 한의약문화축제가 열린다. 서울시로부터 서울약령시란 이름을 쓸 수 있다는 승인을 이미 받았지만 여전히 경동(약령)시장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곳이다. 올해는 93억원을 투자한 시장 환경개선 사업이 마무리 단계(공정률 95%)여서 어느 때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손님을 맞을 수 있게 됐다. ●‘할인+할인’그랜드 세일에 무료 진료도 축제기간 내내 약령시에서는 한약재를 10% 할인 판매하는 ‘약령시 그랜드 세일’이 진행된다. 유통과정을 줄여 시세보다 약 20∼40%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온 만큼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할인폭이 더 커지는 셈이다. 조선시대 어명으로 가난하고 병들고 오갈 데 없는 백성을 무료로 치료해 주던 ‘보제원(普濟院·현 약령시 자리)’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에서 한의사들이 외국인 근로자들을 초청해 무료진료와 함께 한약도 제공할 예정이다. 아이들과 한방음식과 차를 먹어본다든지, 약재를 직접 썰고 전통방식대로 싸보는 경험도 해볼 수 있다. 음식과 술, 비누, 방향제 등 한약재를 이용한 다양한 용법을 배우는 자리도 마련된다. ●남사당 놀이 등 각종 공연… 관광특구 육성 볼거리도 풍성하다. 보제원에 제사를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각설이 공연, 어린이 인형극 ‘마리오네뜨’, 품바공연, 남사당패놀이, 웃찾사 공연, 퓨전국악공연, 세계 민속춤 공연, 무술시범 등이 시장 곳곳에서 진행된다. 이름난 축제인 만큼 외국의 귀한 손님들도 많이 찾는다. 올해는 중국, 뉴질랜드, 몽골, 이집트, 카타르, 브라질, 멕시코, 벨기에 대사와 알타르공화국 총리가 참여할 예정이다. 축제 참가 예상자는 1만 5000여명. 갈수록 참가자가 늘면서 동대문구는 한의학문화축제를 하나의 관광아이템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제대로 자리잡힌다면 관광과 한방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관광 아이템이 탄생하는 셈이다. 동대문구는 세계적인 축제를 만들기 위해 한약재 유통 개선이나 한방선진화, 브랜드개발 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홍사립 구청장은 “약령시에서 한의약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아이템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 중”이라면서 “한방특구가 자연스럽게 관광특구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용어클릭 ●서울약령시 동대문구 용두동과 제기동 일대 28만 688㎡ 규모의 한약재시장을 말한다. 전통적인 약령시와 달리 1960년대 말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95년 서울시로부터 지정 승인을 받았다. 전통적인 약령시의 경우 조선 효종 때 약재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대구, 원주, 전주, 공주 등에 개장했지만 모두 일제시대에 강제 폐쇄됐다. 한의원과 한약방, 한약수출·도매업, 제분소, 절단소, 탕제원까지 한약에 관련한 모든 것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 곳곳에 자리잡은 업체만 1000곳이 넘는다.
  • 이항녕 전 홍익대 총장 별세

    이항녕 전 홍익대 총장 별세

    이항녕(93) 전 홍익대 총장이 17일 오전 10시 별세했다. 1915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한 고인은 1940년 경성제국대 법학과를 졸업하고,1954∼71년 고려대 교수를 거쳐 60년에는 문교부 차관을 지냈다. 1972∼80년 홍익대 총장을 역임했고,87년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의장,90년 (사)현정회 이사장과 한국뿌리찾기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일제시대 일본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해 일제 말 하동군수와 창녕군수를 지낸 그는 이후 자신의 친일 행위를 양심고백하고 공개사죄해 화제가 됐다. 유족으로는 재두(재미의사)·재환(전 국민대 교수)·재후(김&장 법률사무소 대표)·재창(고려대 명예교수)·재원(다베루 대표)씨 등 6남2녀가 있다. 발인은 20일 오전 8시, 장지는 경춘공원, 빈소는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 301호.(02)929-1299.
  • [Local] 대구, 선화당 등 3곳 관광자원화

    대구시는 11일 조선시대에 지은 선화당과 징청각, 일제시대의 조선식산은행(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 등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내 문화재 3곳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2010년까지 사업비 92억원을 들인다. 조선시대 경상 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선화당은 통신사 접견, 측우기 사용, 백성 애로사항 청취 등의 집무 상황을 복원하고, 관찰사 처소인 징청각은 생활 공간을 복원해 전국 최초의 감영 전문전시관으로 특화할 예정이다. 또 조선식산은행에는 근대 테마관과 영상체험 공간을 짓기로 하고 내년까지 리모델링 작업을 끝낸다. 경상감영공원 마당에는 공연무대와 야외 체험장, 노천 카페 등을 조성하고 조선시대 민가 생활 및 전통 5일장을 여는 세시풍속을 재연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이 최근 이전함에 따라 전통문화자원 복원과 함께 도심 재생 작업을 추진키로 했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구호림 선생 별세

    일제시대 항일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 구호림 선생이 9일 오전 6시 숙환으로 별세했다.88세. 선생은 1920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나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경기고의 전신)를 졸업한 뒤 1940년 도쿄 중앙대학 법학부에 입학해 학술연구와 상호 친목단체로 위장한 ‘고문(高文)그룹’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 결사활동을 벌였다. 1940년 6월부터 1942년 5월까지 11차례에 걸쳐 회합, 독립쟁취 방법을 논의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치안유지법 등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황희자(84) 씨와 1남 2녀가 있다. 발인 11일 오전 10시, 장지 국립대전묘지 애국지사 3묘역, 빈소 서울의료원 205호.(02)3430-0298. 박홍환기자 stinger@kdaily.com
  • 창원 국내 첫 자전거문화센터 개장

    자전거도시 창원에 자전거 관련 종합 교육시설인 자전거 문화센터가 건립돼 5일 문을 연다. 창원시는 4일 창원시 두대동 창원경륜장에 자전거 종합문화공간인 창원시자전거문화센터가 준공돼 5일 개장식을 한다고 밝혔다. 창원경륜장 기존 시설과 부지를 활용해 조성한 자전거문화센터는 자전거 교육·정비·대여·전시·홍보·공영자전거 운영 등의 업무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 주요 시설은 자전거교실 및 자전거 주행교육장 각 2곳, 정비소, 보관소, 전시장, 자전거 안내소, 시민공영자전거운영센터, 시민공영자전거 터미널, 바이크 라운지 등 다양하다. 실내교육장과 전시공간은 창원경륜장 데크 아래 공간을 이용해 마련했다. 실기 코스는 창원경륜장 앞에 소나무 조경과 경륜장 2층 데크를 활용해 송림황토자전거 코스와 S코스 등 다양한 곡선 코스를 설치했다. 교육은 초급·중급반, 청소년과 직장인을 위한 특별반 등으로 구분해 반별로 20∼30명씩 편성해 10일간 무료로 자전거 교육을 한다. 자전거 관련 법규·예절·기초상식 등을 배운 뒤 실제 자동차 도로와 같은 신호체계를 갖춘 실기코스에서 자전거 타기 능력을 키운다. 정비코너에서는 고장난 자전거를 실비의 부품 대금만 내면 고쳐준다.또 전시공간에는 사이클 국내 양대 업체인 삼천리자전거와 코렉스 회사가 참여해 다양한 최신 자전거를 전시한다. 한편 개장식에는 일제시대 자전거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엄복동 선수가 탔던 1920년대 자전거를 비롯해 창원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거, 막걸리 배달용 자전거, 가장 비싼 자전거 등 각종 자전거를 전시하는 ‘바이클 쇼’가 펼쳐진다. 박완수 창원시장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여는 창원시자전거문화센터가 안전하고 편안한 자전거 타기 문화를 확산하는 중심 역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부친 친일·전별금 ‘궁색 답변’

    부친 친일·전별금 ‘궁색 답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2일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안 장관은 여야의 원구성 협상 지연으로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임명됐다. 그래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이날 인사검증으로 대체했지만 마치 인사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야당 의원들은 ▲부친의 친일경력 여부 ▲한국외국어대 총장 시절 업무추진비 사적 남용 ▲총장 퇴임 당시 전별금 논란 등 안 장관의 ‘도덕성 결함’을 집중 질타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안 장관의 교육정책에 대한 소신을 묻는 등 대조를 보였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안 장관이 총장 시절 업무추진비 중 2970만여원을 부정하게 사용하고, 퇴임 시에도 2000만원의 전별금을 받았다.”며 장관으로서 ‘자격 미달’을 주장했다. 같은 당 안민석 의원도 “안 장관이 총장 재직 시 골프장 사용료 4000만원을 업무추진비로 사용했다.”며 안 장관의 사과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안 장관은 “업무추진비는 무혐의 판결났다.”,“학교발전을 위해서 골프를 쳤다.”고 답했다가, 야당 의원들의 재공격을 받고 “사과하겠다.”고 물러서는 등 진땀을 뺐다. 부친의 일제시대 경찰경력이 도마 위에 오르자 안 장관은 안경을 벗는 등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안 의원은 “안 장관의 부친이 일제시대에 순사부장까지 지냈다. 교육부 수장의 부친이 일제 순사였다는 것이 국민 정서상 용납될 수 있겠느냐.”고 몰아세웠다. 안 장관은 “부친은 일제시대 직업으로써 경찰을 택한 것일 뿐, 어떤 상황에서도 친일을 위해 민족을 압박한 일이 없다.”고 해명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25m 절벽 ‘밧줄 청소’ 대작전

    25m 절벽 ‘밧줄 청소’ 대작전

    종로구가 높이 25m 절벽을 깨끗하게 청소해 화제다. 1일 종로구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주민의 안전과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한국산악연맹 회원들과 함께 높이 25m, 길이 60m의 창신동 23의 818(구 창신시장 뒤쪽) 절개지 환경정비를 실시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채석장으로 사용됐던 아픈 역사의 흔적이 절벽으로 남은 곳이다. 일본은 당시 중앙청(조선총독부)을 지을 돌이 필요했고 접근성이 좋다는 점을 이유로 현재의 창신·숭인동 일대의 화강암을 채취했다고 한다. 이번 환경정비에는 서울시 산악연맹의 암벽등반대원 7명, 동사무소 직원 6명, 마을주민 10명이 참여했다. 산악연맹 회원들이 줄을 타고 절개지를 따라 내려오며 쓰레기와 가죽나무 등을 제거하고 주민들과 동사무소 직원들은 절개지 아래쪽에서 함께 잔여물을 치웠다. 이번 정비를 통해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모여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이 만들어지는 모습과 함께 암벽등반가들이 절벽을 타며 쓰레기를 치우는 보기 드문 풍경을 연출했다. 한편 구는 이번 정비가 일회성이 아닌 연 2회 정도의 주기적인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산악연맹과 협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또 절개지 안전철망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호소문을 부착하는 등 절개지 가꾸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김충용 구청장은 “그동안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던 창신동 절개지가 깨끗하게 정리됐다.”면서 “앞으로 절개지면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덩굴식물들을 심고 특징있는 모양을 내며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등 종로구의 구석구석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역사는 배우려는 자의 스승 / 이화여대 학술원 석좌교수 한영우

    몇 달 전 인기 역사드라마였던 ‘이산’을 보면서 정조가 백성을 사랑하는 꿈을 가진 임금이었다는 것이 비교적 잘 전달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규장각과 수원 화성 건설 이야기도 등장했다. 물론 실존인물이 아닌 사람이 규장각 수장으로 등장하는 등 문제점도 있었지만 우리 사극수준이 전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수원화성 건설과 1795년의 행차에 대해서는 이미 내가 책을 낸 바 있고, 그때 ‘행차도’가 지금 청계천에 장엄한 도자기 벽화로 재현되어 있다. 이렇게 정조가 우리 곁에 가까이 오고 있으나, 규장각이 1910년 나라가 망할 때까지 어떻게 운영되어 왔으며, 일제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규장각도서’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으며, 그 도서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읽을 만한 저서가 아직 없었다. 정조와 규장각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규장각도서’를 항상 이용해야 하는 내 전공과도 관련이 있지만,1992년부터 4년간 규장각 초대관장을 지낸 인연도 크게 작용했다. 조선왕조가 519년간 장수한 생명력이 이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고, 이곳을 찾는 외국의 석학들도 ‘한강의 기적’이 왜 일어났는지를 이곳에 와서 확인했다고 하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금년은 마침 대한민국 건국 60년으로서 그 빛나는 성취의 원동력은 조상이 물려준 교육열과 학구열이라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바로 규장각을 세워 인재강국을 만들려고 했던 정조와 같은 임금, 더 나아가 집현전을 세워 기라성 같은 인재를 양성했던 세종, 그 밖에 조선왕조를 이끌어온 수많은 선비들의 꿈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정신적 바탕이 되었다는 말이다. 역사는 무지한 자에게는 한낱 흘러간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눈을 부릅뜨고 지혜를 배우고자 하는 자에게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스승이 된다. 규장각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는, 정조처럼 국가가 마음먹고 고급인재를 키울 때 국가의 중흥이 나타나고,19세기처럼 규장각을 소홀하게 할 때 나라의 운명이 기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규장각이라는 제도는 없어졌으나, 규장각이 남긴 귀중한 문화유산인 ‘규장각도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운명이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규장각 책을 내면서 하고 싶은 말이 또 있다. 외형적인 교육열과 학구열의 전통은 지금 이어지고 있으나,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선비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생명, 평화, 도덕, 품격, 그리고 백성에 대한 깊은 사랑이 진정한 선비의 마음이다. 그러나 지금 나라의 품격이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선비정신을 이어가면서 여기에 폭넓은 세계화를 접목시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이화여대 학술원 석좌교수 한영우
  • 함양서 아마바둑 최고수 가린다

    함양서 아마바둑 최고수 가린다

    전국의 아마추어 바둑 애호가들이 선비의 고장 경남 함양에 모여 반상(盤上) 대결을 펼치며 고수를 가린다. 경남 함양군은 21일 함양군 실내체육관에서 23·24일 ‘제1회 노사초배 전국 아마추어 바둑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함양 출신으로 일제시대 전설적인 천재 국수로 이름을 날렸던 사초(史楚) 노석영(1875∼1945년)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 처음 마련된 대회다. 대한바둑협회와 함양군, 서울신문이 공동으로 주최한다. 올해 처음 열리는 대회인데도 전국 바둑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대회 참가 정원 500명은 접수 10여일만에 일찌감치 마감됐다. 현역 유명 국수와 전국 바둑관련 단체장들도 대거 참석해 대회를 빛낸다. ●프로에 손색없는 ‘실력자’ 64명 모여 유창혁 9단, 문명근·박진열 8단, 김찬후·박성수 3단 등이 참석해 대회장에서 즉석 신청을 받아 지도다면기(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사람과 두는 바둑)와 지도 대국 등을 하며 바둑을 가르치는 자리가 마련된다. 조진호 대한바둑협회장, 한화갑 전 한국기원 총재, 김상수 바둑협회장, 이명덕 여성바둑연맹회장, 노진환 서울신문 사장 등도 참석할 예정이다. 대회는 전국대회부와 지역대회부로 나눠 부문별로 진행된다. 각 부문별로 1조 4명씩이 예선 리그전을 해 조별 상위 2명씩이 본선에 진출한 뒤 토너먼트로 승부를 가린다. 전국대회의 경우 백두부는 아마 랭킹 64위 이내의 연구생 출신만 참가한다. 초등부와 중·고등부는 초단 이상이 출전한다. 대한바둑협회 관계자는 “아마 랭킹 64위 이내면 소속만 아마일 뿐이지 기력은 프로에 손색 없는 실력”이라고 말했다. 시상금은 아마 최강부 우승 500만원부터 경남초등 유치부의 감투상 3만원까지 모두 2080만원을 골고루 준다. 아마 최강부 등 우승자에게는 아마 6단증, 단체전 우승자 1명과 중·고·초등 우승자에게는 아마 5단증을 수여한다. 아마 바둑은 전국대회 최강부에 첫 우승하면 6단을 수여하고 세번 이상이면 아마 최고인 7단증을 준다. 대한바둑협회측은 아마 7단 안팎의 기력이면 바둑 공부를 적어도 10년 이상은 해야 쌓을 수 있는 바둑 고수로 프로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실력이라고 밝혔다. 천사령 함양군수는 “올해 처음 시작하는 노사초배 바둑대회를 전국 최고·최대의 아마 바둑대회로 만들어 우리나라 바둑 발전의 토대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제시대 천재 국수 노사초 기려 노사초는 함양군의 대표적인 명문가 출신으로 일제시대 우리나라 바둑의 맥을 잇는 등 바둑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조남철 국수가 한국기원을 만들기 이전 시대에 활동한 그는 바둑계의 명실상부한 1인자로 전국을 유랑하며 바둑을 즐기면서 평생을 보냈다. 때로는 집이나 논 문서를 걸고 내기 바둑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기 바둑으로 함양군 개평리 집이 ‘가차압’되는 일이 되풀이 돼 27차례나 등기가 바뀐 일화도 전해진다. 호방한 전투형 바둑으로 패싸움을 좋아해 별명이 노(盧)패, 노상(盧上)패로도 불렸다. 또 상대방과 서로 큰 손해 없이 운치 있게 내기를 두는 선비형 바둑을 즐긴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함양군은 노사초 선생의 이같은 바둑계 공로를 기려 생가가 있는 지곡면 개평마을에 기념비를 건립해 23일 오전 11시 30분 제막식을 한다. 노사초 선생의 생가는 증조부가 호조참판을 지내 노참판댁으로 불리며 경남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함양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종교플러스] 제1회 의정부교구사 심포지엄

    의정부교구 순교자공경위원회가 주최하고 (재)한국교회사연구소가 주관하는 ‘제1회 의정부교구사 심포지엄’이 29일 ‘경기 북부 지역과 한국 천주교’라는 주제로 경기 고양시 백석동 성당에서 열린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초기교회 시기부터 일제시대까지 경기 북부지역 신앙 역사와 함께 천주교 관련 사적에 대해 살핀다.(02)756-1691.
  • “땅 못내놔” 친일파 후손들 대반격

    친일재산을 환수하는 특별법이 제정된 지 2년 반이 지났다. 순순히 땅을 내놓을 듯했던 친일파의 후손들은 최근 ‘땅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이의 신청이 81.5%에 이른다. 현재 국가에 귀속된 친일파의 땅은 환수 대상 토지의 절반을 웃돈다. SBS ‘뉴스추적’은 친일파 후손들의 반발에 삐걱거리고 있는 재산환수 실태를 집중 조명한다. 친일파 땅을 산 제3자들이 겪는 고충도 함께 들여다본다. 광복절을 맞아 마련한 프로그램 ‘8·15특집-위대한 유산 친일파의 반격’은 13일 오후 11시5분에 방영된다. 최근 한 친일파 후손은 192개 필지, 최소 300억원대의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일제시대 조선인 가운데 최고 작위인 후작의 후손인 그는 “조상이 한일합병에 기여하지 않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아니다.”라며 승소를 장담하고 있다. 자작의 후손이라는 또다른 사람은 “귀족이었다고 친일파로 낙인찍는 것, 친일파라고 해서 재산을 환수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재산조사위는 ‘빨갱이’이고 특별법은 위헌”이라고 비난한다. 친일파가 아니라며 법정 투쟁에 나선 이들. 취재진은 일본 현지 취재에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할 자료를 입수했다.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 129명의 50년 전 녹취록이 그것이다. 구식 릴 테이프 418개에는 총독부가 기억하는 훌륭한 조선인들의 친일 행각과 비화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일본인 관료들이 이완용, 송병준, 박영효, 윤덕영 등 귀족을 포함해 친일파 20여명을 극찬하는 내용도 볼 수 있다. 한편 친일파의 후손도 아닌데 억울한 처지에 빠진 사람도 있다. 연천의 한 농민은 빚까지 내서 땅을 샀다. 하지만 그 땅은 일제시대 귀족의 땅이라는 이유로 1년 만에 국가에 귀속됐다. 그가 정부를 비난하는 사이, 친일파는 땅 판 돈을 챙겼다. 이같은 제3자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엇갈리고 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한인농장 재건… 고국과 농산물 교역하고 싶어”

    “한인농장 재건… 고국과 농산물 교역하고 싶어”

    |피아우이·쿠리치바·루이스에두아르도마갈아에스(브라질) 오상도기자| “내 희망은 농장사업이다. 브라질에선 농업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 농산물을 한국과 교역하고 부지런한 한국인을 좀더 모아온다면 충분히 결실을 볼 것이다.” 원시 아마존과 인디오, 그리고 마천루 같은 현대적인 건물들이 공존하는 ‘극과 극’의 나라, 브라질. 태권도 대사부로 추앙받고 있는 한명재(54)씨는 이곳에서 한인농장 재건이란 새로운 목표를 향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머리와 기술을 가진 한국인도 일본인처럼 ‘큰 물에서 놀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다. ●주지사·상원의원 등 제자 수만명 1972년 1월, 한씨는 18세의 나이로 11명의 다른 태권도 사범과 함께 브라질에 첫발을 내디뎠다.95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키워낸 벽안의 제자만 수만명. 파라나주 연방상원의원인 알바로 디아스, 오스말 디아스 형제를 비롯해 각지의 주지사, 시장 등이 절친한 친구이자 제자다. 한씨의 스승은 ‘태권도’라는 이름을 지은 고(故) 최홍희 장군이다. 최 장군은 한씨에게 국제사범자격증을 줬고, 지구 반대편으로 파견했다.72년은 태권도가 브라질에 전파된 이듬해로 오늘날 1300여개 도장,20여만 태권도인의 뿌리가 됐다. 이곳에선 모든 구령이 한국말로 이뤄진다. ‘마스터’라 불리는 한씨는 태권도장을 떠난 뒤 케이블방송 사업자, 대형 레스토랑 사장으로 잠시 외도했다. 하지만 인생 목표를 대형 농장 경영으로 재설정한 뒤 북부 대평원지대인 세하도에서 대규모 조림지 개발에 나섰다.800m 고원지대인 바히아주의 피아우이와 마라뇽 인근에 7000㏊의 농장을 확보,1200㏊에 유클립투스 나무를 심었다. 브라질에 곧 도입될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고, 나무가 성장하면 그루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목재로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대두와 옥수수 재배에도 나서 수십년 전 막내린 한인농장 재건에도 도전한다.20여년 전 취득한 아마존 인근의 농지 3만 6000㏊에도 투자할 생각이다. 한씨는 남부 쿠리치바에 대형 레스토랑과 저택 등을 소유한 부호이지만, 고생을 사서하는 ‘풍운아’다. 이런 그의 삶의 저변에는 부친과 할아버지가 독립투사라는 집안 내력이 깔려 있다. ●할아버지·아버지 모두 독립투사 할아버지인 고 한준관 옹은 일제시대 가족을 상하이로 도피시킨 뒤 홀로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전기고문으로 생을 마쳤다. 부친인 고 한응규 옹도 2차세계대전 당시 광복단(중국 제3전단)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덕분에 자택 거실에는 건국훈장과 포장, 유공자증이 가득하다. 장인인 김갑인(95) 옹도 1960년대 초반 대규모 가톨릭 농업단을 이끌고 온 이민단장이었다. 부인 문옥(49)씨는 “한인들은 이민 뒤 빚더미에 앉았는데 아버지가 제안한 딸기농사로 빚을 탕감했다. 이들은 도회지로 나와 포목상으로 변신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달랐다. 진득하게 버틴 일본인 가운데 여럿은 브라질 농업을 쥐락펴락하는 대형 농장주로 성장했다. 한씨는 “2005년 룰라 대통령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 토카친스 주지사가 제안한 한인 농업이민 등을 제시했지만 반응이 냉랭했다.”면서 “잠재된 자원의 나라인 브라질과 한국이 친구가 된다면 충분히 결실을 볼 것”이라고 조언했다. sdoh@seoul.co.kr
  • ‘위대함’에 가려진 고뇌와 방황 부각

    ‘위대함’에 가려진 고뇌와 방황 부각

    ‘미실’‘영영이별 영이별’‘논개’ 등 역사인물 소설을 주로 펴낸 작가 김별아(39)씨. 3년간의 캐나다 생활을 접고 지난달 귀국한 그가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 ‘백범’(도서출판 이룸)을 펴냈다. 백범의 개인적인 생애와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복원해낸 이 소설은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백범이 귀국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다시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형식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위해 ‘백범일지’는 물론 대한민국 임시정부사, 서간도 이야기 등을 참고했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썼지만 백범의 생애를 단순히 추적하기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 점이 주목된다. “위대한 애국자, 민족 영웅 등 박제화된 이미지를 걷어내고 보면 김구는 정말 ‘문제적 인간’입니다. 소설 속에서 ‘가슴에 짐승을 지니고 있다.’고 표현된 것처럼 남다른 욕망과 기질을 품고 있던 그가 이 짐승을 다스리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고 변화해 나갔던 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작가는 좌우합작을 위해 잠 못 이루며 애면글면하던 백범의 모습을 그대로 불러내 그가 결코 현실 감각이 없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백범일지’를 다시 읽으면서 백범이 겪은 간난신고의 과정을 돌아보게 됐고 한없는 슬픔을 느꼈다.”며 “백범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낮은 곳에서 끝까지 싸웠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횃불 같은 존재”라고 평가한다. “김구 선생은 어릴 때부터 사상을 떠나 인간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습니다. 바깥에서 주어지는 조건에 매달려 해결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한계를 시험하고 그것에 맞게 자신을 바꿔 나간 것입니다.” ”소설 ‘백범’이 “김구 선생의 위인성을 훼손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는 작가는 “그것이 바로 이번 소설을 쓰게 된 또 다른 목적”이라고 했다. 위대함의 장막에 가려진, 고민하고 방황하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진솔하게 복원해내고 싶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일제시대 등 한국 근대사를 다룬 작품을 쓰고 싶다는 작가는 이전처럼 인물 중심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작정이라고 말한다.“너무나 빨리 변화하는 현실세계에서 내가 문학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들을 제대로 잡아내기가 어렵다.”는 작가는 당분간은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1만 7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원희룡 “건국절? 일제시대는 日 역사인가” 비판

    원희룡 “건국절? 일제시대는 日 역사인가” 비판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최근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과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건국절’ 개명 논란에 대해 “광복절이라는 의미를 스스로 깎아내리면서 ‘건국절’로 바꾸겠다고 하면 상해 임시정부나 일제에 저항해 싸운 시기는 무엇이 되겠는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원 의원은 8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건국의 의미를 광복절과 함께 기린다는 여지는 열어둘 수 있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 3·1운동으로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역사가 단절되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한 뒤 “1948년 이후만 우리 국가이고 그 이전은 실체가 없는 국가로 취급한다면 독립운동은 어느 나라를 위해 싸운 것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광복절’이란 명칭은 역사적 관점의 문제”라고 전제한 뒤 “장차 통일에 대비해서라도 상해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전통을 지키고 살려야 한다.”며 “자유대한민국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 때문에 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어 ‘건국절 추진세력이 친일·반민족 행위자에 대해 처벌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에 “역사 앞에서 감히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 원 의원은 “(건국절 추진이)오해의 소지를 제공할 수 있다.그들의 주장은 일제의 지배를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건국60주년 기념사업회측에서 ‘영토와 국민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를 해야 건국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그렇다면 일제가 영토와 국민을 실제로 지배했던 36년간의 시간은 일본국의 역사인가.”라고 강력히 반박하며 “이 문제는 독도 주권 문제 및 중국과의 동북공정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우리 헌법과 역사 해석을 스스로 부정하는 소모적이고 일체의 정당성이 없는 발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이 이른바 ‘쇠고기 파문’ 후유증에서 벗어나 국정장악력을 회복하기 위해 ‘강공드라이브’를 펼치고 있다는 관측에 대해 “정부가 취임 이후 정국 주도를 하지 못한 것은 민심읽기에 실패한 자업자득”이라고 평가한 원 의원은 “국정주도권 회복이 민심읽기와 인사쇄신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강공에만 의존한다면 민심과 더 멀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의 인사 문제와 관련 “현재까지 ‘끼리끼리 인사’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 뒤 “과거식 정실 인사를 한다면 국민의 지지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줄줄이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를 찍어서 내보내는 최악의 인사는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원 의원은 하지만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 문제에 대해서 “정 사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를 지키겠다’는 정 사장의 주장에 “(정 사장이)언제부터 그렇게 법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다.”고 비꼬면서 “KBS를 저렇게 ‘절단’내놓고도 스스로 임기와 독립성을 말하는 것은 너무 뻔뻔하다.”고 비난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6) 전남 구례군 토지면 안한수내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6) 전남 구례군 토지면 안한수내마을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 19번 국도변에 자리한 ‘송정리’는 4개의 작은 마을로 나뉘는데, 각각 한수내(川) 안쪽에 위치했다 해서 안한수내(내한), 바깥쪽에 있다 하여 바깥한수내, 새로 생긴 동네이므로 신촌, 사적 제106호로 지정된 ‘석주관 칠의사묘’ 옆 원송마을이 되겠다. 원래는 4개 마을을 합쳐 내한이라 부르던 것을 한수내 근처에 쉬어가기 좋은 큰 나무 정자가 있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정리로 개칭했다. ●일제강점기때 마을 존재조차 몰라 1590년쯤 금녕 김씨가 정착한 것을 시작으로 1800년께 창녕 성씨가 입주해 크게 번성했지만, 여순사건 때 마을 전체가 소개되면서 가구 수가 줄었다. 안한수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된 건 50년 전쯤으로,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도 없고 딱히 마을을 떠난 사람도 없어 22호 40명 남짓한 주민이 한 가족처럼 거주 중이다. 당시 뿔뿔이 흩어졌던 집들 중 일부가 신촌에 정착했는데 그런 연유로 ‘새로 생긴 마을’, 즉 ‘신촌’이 된 것이라고. “큰길에서 산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터라 일제시대 전까지만 해도 내한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가 많아 의병장 고광순이 은거하며 의병활동을 했습니다. 담양 창평 출신의 고광순은 임진왜란 때 활동했던 고경명의 후손으로 산능선 너머 연곡사에서 순절했지요.” 여기저기서 마을 설명이 줄줄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고영만(70)씨는 말이 없다. 그이는 고광순의 손자이다. 안한수내는 한학자들에게도 좋은 피난처였던 터라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한자에 능하다고 한다. 마을 초입 정자의 현판과 상량문도 이장이 직접 쓴 것이란다. 예전엔 개울가 주위로 다랑이 논이 많았지만 소득을 올릴 수 없어 20년 전부터 과실수 재배가 부쩍 늘었다. 두릅, 고로쇠, 고사리, 젠피(초피)도 수확한다. 요즘 같은 계절엔 피서를 즐기려는 외지인들이 적잖이 몰려드는데, 부녀회에서 두 명씩 짝을 지어 매일매일 쓰레기 수거와 오물 처리를 한다. 그렇다고 펜션이나 최신식 민박집이 있는 건 아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평상과 유산각 대여료를 받는 게 전부다. 모기가 거의 없을 뿐더러 여름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선 잠을 못잘 만큼 시원하다. ●봉화산 봉화축대 아직도 흔적 남아 간혹 등산객들도 보이는데 봉애산을 거쳐 왕시루봉(1212m)방향으로 향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부산에서 봉화를 올리면 이곳을 거쳐 서울까지 소식이 닿았다 해서 마을 주민들은 봉화산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축대 흔적이 남은 봉애산에는 불을 피웠던 옛 기억 대신 산불을 감시하는 무인 감시탑이 들어서 있다. 왕시루봉은 2017년까지 출입통제로 묶여 있어 공개적인 산행은 할 수 없다. 마을을 관통하는 한수내는 이 왕시루봉 기슭에서 발원한 물줄기다. “고생한 건 이루 말할 수도 없지. 나무를 해다 팔아 식량을 구입했어. 새벽밥이라도 먹으면 다행이었지. 소나무 껍질을 말려서 돌로 빻아 먹었는데 먹기 싫어도 먹을 수밖에 없었어. 산죽 열매를 먹으려고 화개 연동골까지 가곤 했는데 열매를 갈아 채에 내려 죽을 쒔어. 그 열매조차 매년 열리는 게 아니었는데 일설엔 산죽 열매가 맺히면 흉년이 든다는 말도 있고, 봉황이 먹는 음식이란 전설도 있지. 그야말로 안한수내 사람들 모두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이었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송기홍(77)옹이 씁쓸히 술잔을 들었다. 마을 자랑은 딱히 할 게 없단다. 전기, 전화, 차가 다 들어오니 불편할 것도 없다.5년 전 2차선 도로가 뚫리면서 하루 세 번씩 군내버스도 다닌다. 글 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 ▶가는 길 전남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도 하동을 거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송정리는 구례읍과 하동군 화개면 중간쯤에 위치한다.
  • 안병직 “日보다 독도 증거 많다고 주장 못해”

    안병직 “日보다 독도 증거 많다고 주장 못해”

    “우리가 일본보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만한 법률적·사료적 증거가 많다고 할 수도 없다.” “일본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 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말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는 안병직 뉴라이트 이사장이 일본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의 독도 영유권 명기로 불거진 독도 분쟁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강경 대응을 자제하자고 주장해 논란이 예상된다. 안 이사장은 지난 15일 저녁 CBS 라디오 ‘시사자키 고성국입니다’에 출연,“독도 분쟁이 여론화돼서 양국 사회가 시끄러워지면 독도가 국제분쟁지화가 된다.우리가 사실상 독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분쟁으로 번지면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고 주장한 뒤 “독도가 역사적으로 우리 것이라는 게 완전히 증명되면 좋지만,사실 일본도 일본 것이라고 주장할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법률적·사료적 증거가 많지 않음에도 우리나라가 단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안 이사장은 “냉정하게 말해 독도 문제는 한·일 관계의 수많은 문제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며 “국제 협력을 통해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해결될 전망이 없는 문제를 자꾸 부각시켜 선진화라는 큰 국정 방향마저도 그르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면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이는 독도를 둘러싼 갈등보다는 일본과 협력을 통해 발전에 힘써야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 그는 이어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협조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과거 정권들은 독도 문제에 발목이 잡혀서 (일본과의)협조를 통한 이익을 얻어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안 이사장은 “일본은 독도 외에도 중국과 조어도 분쟁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 뒤 “그것을(독도 문제) 떠들어서 양국이 발전을 위해 국제협력도 안 해야 하느냐,아니면 그 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이 어려우니 당분간 덮어두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느냐 사이의 선택을 해야한다.”며 거듭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협력이 동등한 협력이 아닌 일본의 원조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독도 문제를 철저히 자국 이익에 따라 시행되는 경제적 협력과 연관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지적이다. 일본의 이번 독도 영유권 명기 결정에 대해 “우리도 지금 독도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우리 교과서에도 다 독도가 올라가 있다.”고 말한 그는 “일본이 독도가 일본 것이라는 내용을 교과서에 올리는 것도 아니고 교과서 지도요령에 표기하겠다는 정도일 뿐이다.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큰 난리가 난 것처럼 반응하면 말려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하지만 안 이사장이 주장하는 ‘차분한 대응’은 독도 문제에 한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국민 정서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뿐만 아니라 ‘일본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의 독도 영유권 명기’ 사태의 영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측에 “냉정한 대응을 하라.”고 주문한 일본측의 태도와 그의 ‘차분한 대응’이 맥을 같이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기도 한 안 이사장은 지난 5월까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을 맡았으며 “일제시대에 한국이 근대화됐다.”,“일본이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했다는 증거는 없다.” 는 등의 발언으로 일각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또 지난 6월에는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관련,“국민들이 이해력이 부족해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이두일 선생 별세

    일제시대 항일 학생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 이두일(李斗一) 선생이 7일 별세했다.94세.제주 태생인 이 선생은 제주농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1년 3월 한국인 학생들을 억압하던 일본인 교장의 사택을 습격하고 격문을 살포하는 등 항일운동을 벌이다 체포됐다.그해 10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을 받고 출옥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발인은 9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대전묘지 애국지사 3묘역, 빈소는 경기 군포시 수리동 성당. 전화 017-719-0324.
  • 친일파 후손에게 사들인 땅 주인은?

    제3자가 친일파 후손에게 사들인 땅이 국가에 귀속되는지에 대해 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려 상급심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김종필)는 4일 청송심씨 효경공파종중이 “정당한 대가를 주고 산 땅의 국가 귀속은 위법하다.”며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친일재산 국가귀속결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 1일 의정부지법 행정부(부장 최영룡)는 곽모(50)씨가 낸 비슷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선고했다. 소송에 휘말린 땅은 모두 친일파 민병석의 후손이 매매한 것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2005년 12월 시행됐다. 민병석 후손에게서 심씨 종중은 2006년 6월 경기 연천군 땅 6576㎡을 1억 5400여만원을 주고, 곽씨는 같은 해 5월 경기 고양시 설문동 땅 956㎡을 3억 6800여만원을 주고 매입했다. 이듬해 4월과 11월, 친일조사위는 민병석이 일제시대 때 취득한 재산이라며 이 땅을 국가 귀속으로 결정했다. 종중과 곽씨는 “친일재산인지 모르고 매입한 것”이라며 행정소송을 각각 냈다. 쟁점은 친일 재산이 언제 국가에 귀속됐다고 판단해야 하느냐이다. 특별법이 시행된 2005년 12월이라고 보면 땅 매매는 원칙적으로 무효라 원고들은 땅을 국가에 줘야 한다. 친일조사위가 결정한 때라고 보면 원고는 특별법이 보호하는 ‘선의의 제3자’에 해당해 땅을 유지할 수 있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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