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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붕 없는 박물관’ 성북동… 구청장이 콕 집은 힐링 코스 걸어 볼까

    ‘지붕 없는 박물관’ 성북동… 구청장이 콕 집은 힐링 코스 걸어 볼까

    “‘지붕 없는 박물관’ 성북동에서 수능 스트레스 날리세요.” 이승로 서울 성북구청장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과 ‘제2의 수험생’이나 마찬가지인 가족들을 위한 ‘힐링 명소’를 소개했다. 이 구청장은 18일 “수험생과 가족들에게 이번 주말은 오랜만에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일 것”이라며 “성북동 곳곳에 자리한 역사문화 유산을 둘러보고 치유의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이 첫 번째로 꼽는 곳은 심우장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일제강점기인 1933년 지은 집으로, 당시 조선총독부를 등지는 방향인 북향으로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두 번째 명소는 한양도성이다. 성북동은 한양도성의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손꼽히며, 탐방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특히 북정마을과 맞닿은 한양도성 구간에서는 조각보처럼 알록달록한 낮은 지붕이 아름답게 펼쳐진다.우리옛돌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외 흩어져 있던 한국 석조 유물 약 2000점을 한 자리에 모아 건립한 세계 유일의 석조 전문 박물관이다. 각국 정상들도 한국을 방문할 때 꼭 들른다는 한국가구박물관도 필수 코스다. 서울시 최초의 구립미술관인 성북구립미술관도 명소다. 김기창, 김환기, 변종하 등 성북구와 인연이 깊고, 우리 근현대 미술을 발전시킨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왔다. 현재 성북동에서 약 60년 간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한 한국 수묵화의 거장 서세옥(1929~2020) 작가를 조망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구청장은 사찰 길상사도 추천했다. 종교 시설이지만 종교를 초월한 공간이라는 게 이 구청장의 설명이다. 평생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과 그의 사상에 감동해 자신의 전 재산을 기증한 김영한(법명 길상화) 보살의 이야기는 비움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 이 구청장은 “성북동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세계 42개국 대사관저를 비롯해 골목골목마다 숨겨진 개성 만점의 맛집과 멋집을 찾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며 “서울의 멋진 동네 성북동에서 학업 스트레스와 코로나19로 인한 답답함을 해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이번 역은 가을도 봄이 되는 ‘청춘역’입니다…내리실 문은 낭만 오른쪽, 힐링 왼쪽입니다

    이번 역은 가을도 봄이 되는 ‘청춘역’입니다…내리실 문은 낭만 오른쪽, 힐링 왼쪽입니다

    강원도 춘천은 낭만의 도시다. 서정적 호수(의암호), 고불거리는 강(소양강), 강 따라 흐르는 철도(경춘선), 심지어 ‘봄내’라는 이름까지. 온갖 낭만적인 요소는 모두 가졌다.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싱어송라이터 김현철은 노래 ‘춘천 가는 기차’(1989)에서 지친 일상을 떠나 춘천으로 향하는 심정을 이렇게 노래했다. 무작정, 정말 그리하기 좋은 곳이다. 춘천은. 시간은 30여년도 더 지나 기차는 전철로 바뀌었고 근사한 ITX고속열차도 생겼다. 하지만 구불거리는 북한강도 강촌역도 여전히 꿰고 다니니 추억을 곱씹거나 없었다면 새로 새길 수 있다.책 한 권이 있다면 더욱 근사하다. 이왕이면 춘천에 관한 책이면 좋겠다.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도 좋고 이외수의 책도 어울린다. 김유정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인 소설가 전상국이 쓴 ‘춘천 사는 이야기’나 봄봄의 후편 격인 ‘다시 봄봄’ 등이 좋을 듯하다. 차로 가도 나쁘지 않다. 막혀도 고작 두어 시간이다. 과정도 목적지도 좋으니 만추와 조동이 스치는 계절에 뭔가 로맨틱한 자극이 필요하다면 춘천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곳은 늘 봄처럼 낭만적이니 말이다. 춘천의 춘(春)은 젊음과 낭만을 상징하는 게 맞다. 청춘이라지 않았던가. 차창 밖으로 스미는 나른한 오후 볕에 깜박 잠이 든대도 좋다. 춘천이 종착지다. 철 바퀴가 레일을 지치는 리듬이란 꼭 엄마 뱃속에서 듣던 심장박동이나 이발소 사각사각 가위질 소리 같아 퍽 잠이 온다. 풍물시장을 들를라 치면 남춘천역이 좋고 바로 소양강을 보고 싶다면 춘천역이 낫다. 춘천낭만시장(중앙시장)에도 가 봐야 한다. 총떡과 막국수 한 그릇에 비로소 여행 온 기분을 낸다. 총떡은 춘천에서 메밀을 얇게 부쳐 고기와 채소를 볶아 넣고 총구처럼 돌돌 말아 낸 전병이다. 매콤새콤하고 구수하니 이곳까지 와서 아니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시장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육림고개 역시 요즘 핫플레이스로 뜨는 지역이다. 이름의 유래가 된 육림극장이 있었고 값싸고 독특한 물건을 파는 오래된 점포와 식당들이 많았다. 막걸리를 파는 전집부터 신기술로 빛바랜 사진을 찍어 주는 사진관, 주인이 경상도 울진 출신임을 강조하는 미용실 등이 남아 있다. 서양식 레스토랑, 일식 주점, 근사한 카페들도 터주가 떠나버린 빈자리를 메우며 공존의 고갯길을 열어 놓았다. 낭만은 시장 안에도 깃들었다. 중앙시장에는 예의 전통시장 분위기에 매료된 젊은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점포들이 들어왔다. 장바구니 대신 빵을 사도 좋고 차를 마셔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직접 부친 전이나 조잔부리를 챙기는 재미가 있다. 시장 옆은 명동이다. 춘천에도 명동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전기가 일찍 들어와 번쩍번쩍한 번화가를 거개 명동(明洞)이라 불렀다. 춘천에서도 유일한 시내가 ‘명동’이다. 이리저리 이어진 명동의 좁은 골목에 닭갈비거리가 버티고 섰다. 오늘날 ‘춘천닭갈비’의 명성을 있게 한 곳이다. 여기서 갈비란 늑골 부위를 이르는 게 아니다. 고기 하면 으레 갈비를 최고로 꼽던 시절에 닭을 썼대서 닭갈비다. 돼지갈비만 못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역 대표 메뉴로서 위상을 단단히 수성하고 있다. 요즘이야 철판에 닭고기와 양배추, 고구마, 당면 등을 넣고 볶아 먹는 형식이 대표적이지만 사실은 연탄불에 닭갈비와 살코기 부위를 구워 먹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1970년대 소양강댐이 건설되며 많은 외지 사람들이 몰려왔다가, 여기저기 소문을 낸 것이 전국적 명성을 얻기에 이르렀다. 종류도 다양해져 요즘 춘천에는 숯불닭갈비와 철판닭갈비, 뼈 있는 것, 없는 것 등 다채로운 식문화가 생겨났다.시민들에게나 관광객에게나 춘천의 대표적 낭만 스폿 중 하나는 공지천이다. 이른 아침 운동 코스로도 좋고 야경을 감상하는 저녁 산책 코스로도 딱이다. 공지천을 지나치자면 살짝 커피향이 느껴진다. 6·25전쟁 당시 참전한 에티오피아군 기념탑과 기념관이 이곳에 있어, 예가체프로 유명한 에티오피아산 커피 원두 또한 어느 곳보다 춘천에 가장 먼저 상륙했다.이곳엔 1968년 개업, 국내 최초로 로스팅한 원두커피를 팔아 온 집이 있다. ‘이디오피아 벳(집)’이다. 6·25전쟁 참전을 기념해 세운 커피집으로 에티오피아 원두로 내린 커피를 팔고 있다. 공지천 강물에 반쯤 걸터앉은 이 클래식한 분위기의 커피숍은 커피 마니아들의 순례 코스일 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 황제와도 연관 있는 곳이다. 1968년 에티오피아 황제가 춘천 공지천 참전기념탑을 방문한 후 양국 간 문화교류를 위한 ‘이디오피아 벳’이 생겼다. 커피 원두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는 황실에서 사용하는 원두를 이곳에 보내왔고, 덕분에 무려 53년 전에 로스팅 원두커피를 서울도 아닌 춘천에서 마실 수 있게 됐다. 과연 오리지널이다. 맛있고 향기롭다. 창밖으로 보이는 춘천 풍경은 뜨거운 커피를 더욱 맛나게 한다. 6·25전쟁에 에티오피아군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놀랍다. 그저 터키나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16개국 중 하나려니 했다.(물론 그중 룩셈부르크와 그리스, 콜롬비아, 태국은 생경하다.) 에티오피아 황실 근위대에서 선발한 칵뉴 부대가 주인공이다. 현지어로 ‘적을 섬멸한다’는 뜻의 칵뉴부대는 1951년 5월 7일 한국에 도착해 총 253번의 전투를 치렀다. 와중에 전사자 121명에 536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진 바 없고 단 1명의 포로조차 허용하지 않은 ‘무적의 전승 부대’였다. 중동부전선(철원~양구) 등에서 무패 신화를 세우고 1956년까지 춘천에 주둔했다. 참전 군인 중에는 1960년 도쿄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비킬라 아베베도 있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스러져 간 고마운 에티오피아 군인들의 이름이 전사(戰史)와 업적, 유품과 함께 이곳에 남아 있다. 에티오피아 전통 가옥 형태로 지은 한국전참전기념관에 가면 자세한 사연을 확인할 수 있다. 공지천에는 커피 외에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3대가 가업을 이어받은 노포 햄버거집이다. 햄버거가 3대라니. 라모스 버거는 MZ세대 관광객들로부터 춘천의 명물로 손꼽히는 수제버거집이다. 뉴욕치즈의 여신, 소양강버거 등 각각 특색 있는 버거의 맛이 좋아 많은 이들이 찾는다. 특히 치즈와 블루베리 소스의 조화가 인상적인 줄리엣버거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비대면 로봇 서비스 역시 볼거리로 인기만점이다.춘천 중심부에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의암호가 있다. 강물 위에 우뚝 서 있는 ‘소양강 처녀상’이 랜드마크다. 의암호에는 스카이워크가 두 곳이다. 하나는 소양강 스카이워크, 또 하나는 의암호 스카이워크다. 시내와 가깝고 소양강 처녀상 옆에 자리해 야경이 특히 아름다운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길이 174m의 현수교 모양이다. 투명 바닥 구간만 무려 156m에 이른다. 아찔하니 발바닥이 근질근질 오그라들고 머리는 ‘손오공 머리띠’ 같은 것이라도 씌운 것처럼 저릿저릿하다. 공포의 10m 높이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며 걷는 기분이란 게 꼭 그렇다. 의암호 스카이워크는 좀더 길다. 길이 190m에 이르는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맑은 물을 바라보며 호숫가 바람을 실컷 쐴 수 있다. 의암호를 바라보며 예술과 더불어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KT&G 상상마당도 들러볼 만하다. 유럽의 여느 공원처럼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도심을 둘러봤으니 드라이브 삼아 외곽까지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더할 나위 없다. 춘천댐은 생각보다 넓지만 ‘춘천댐 매운탕골’은 의외로 가깝다. 행정구역은 ‘오월 1리’다. 또다시 봄의 기운을 발견했다. 춘천의 겨울은 습하고 싸늘하다. 뜨거운 쏘가리 매운탕이 절실할 때가 있다. 예닐곱 곳의 매운탕집이 몰려 있다. 송어회나 향어회도 판다. 집집마다 단골을 두고 오랜 시절을 영업해 온 집들이다. 이 중 동춘횟집은 쏘가리나 빠가사리(동자개)와 메기, 잡어 등을 매콤하게 끓여내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 매끌한 수제비와 함께 국물을 떠넘기다 밥을 말면 그 맛에 허기와 한기가 사라진다.배가 불룩 나오면 피부를 당기니 눈이 커져 전보다 훨씬 잘 보이는 모양이다. 중도에는 카누 카야킹과 웨이크보드 등 수상 레포츠 시설도 있다. 아이들에게 인기만점 애니메이션박물관과 토이로봇관, 강원도립화목원 등 관광지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니 함께 다녀보기에 딱이다. 이젠 내려가자. 여기도 낭만이 있고 봄이 있다. 남춘천역 인근에 ‘김유정역’이 있다. 원래 ‘신남’역이었는데 ‘봄봄’의 김유정이 살았던 실레 마을이 있던 곳이라 국내 최초로 인명을 딴 역명으로 고쳤다. 역은 2개다. 괄괄한 ITX청춘이 쏜살같이 내달리는 경춘선 역도 있고 지금은 폐역이 된 구 역사가 있다. 김유정역에서 내려 폐철로를 걷다 보면 인형의 집처럼 앙증맞은 김유정역이 나온다. 이 역사(驛舍)에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지만 역사(歷史)가 깃들었다. 신문 한 장을 모두 펴기에도 좁은 작은 역사 안에는 옛 열차시간표, 역무원 소품을 비롯해 추억의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인근에는 김유정의 삶과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김유정 문학촌이 있다. 폐병에 걸린 춘천 태생 스물아홉 살 소설가는 운명하기 열흘 전 친구에게 편지를 남겼다. 가난과 병마와 싸우던 그는 소설 번역이라도 하겠다고, 그래서 돈이 생기면 닭도 사고 구렁이도 사서 삶아먹고 어서 나아야겠다고 썼다. 그러나 답장이 닿기 전에 김유정은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그의 작품엔 ‘나’와 ‘점순이’가 자주 등장한다. ‘봄봄’에도 나오고 ‘동백꽃’에도 있다. 주요 명장면을 조각으로 만들어놓았다. 점순이가 아직 키가 작아 시집을 못 보내니 클 때까지 일을 더 시키던 ‘열정 페이’ 봉필 영감(‘봄봄’)도, 괜스레 ‘썸타기 위해’ 애꿎은 닭싸움을 붙이던 또 다른 점순이(‘동백꽃’)도 정원을 지키고 있다. 신남마을 레일파크에 따뜻한 늦가을 볕이 한 가득이다. 책 모양 건물 옆을 지날 제 낙엽이 날고 있다. 분명히 가을인데 봄기운이 돈다. 기이하다. 봄내(춘천)골은. 시인 유안진은 말했다.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고. “단풍도 꽃이 되지, 귀도 눈이 되지. 춘천이니까.”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 옛날식 석쇠 닭불고기·뉴욕치즈 여신버거·감자빵… 강추! 춘천 8味■샘밭막국수=숯불닭갈비와 막국수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풍경맛집. 주차장도 널찍하고 실내공간도 넓어 가족단위 방문객에게 적합. ■이디오피아 벳=정통 에티오피아 원두 로스팅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 직접 내리는 드립커피① 한잔에 공지천을 바라보며 쉬어 갈 수 있는 곳. 무려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원조숯불닭불고기=옛날식 석쇠 닭불고기(②닭갈비)를 부위별로 맛볼 수 있는 노포. 뼈의 유무와 내장과 살코기, 오돌뼈 등 다양한 부위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예전부터 춘천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한잔 코스로 인기를 이어 오고 있다. 숯불에 올린 신선한 닭고기가 전국 어디서도 쉽게 보기 힘든 맛의 세계를 선사한다. 춘천 아니랄까 봐 곁들이는 된장과 막국수도 전문점 정도는 한다. ■라모스버거=3대가 하는 햄버거 노포. 번부터 패티, 소스까지 수제로 만들어 다양한 테마로 즐길 수 있다. 치즈를 듬뿍 끼얹은 뉴욕치즈의 여신버거③는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팔도실비집=애막골에서 전국 맛을 즐길 수 있는 실내포차. 대구 북성로 불고기부터 서울식 소불고기, 오징어숙회 등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동춘횟집=춘천댐 매운탕골에 위치한 민물고기 매운탕 맛집. 룸과 평상으로 구성돼 여유 있게 한끼 즐길 수 있는 곳. 송어회 등 회와 쏘가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잡어 매운탕이 있다. ■감자밭=감자와 똑같이 생기고 속은 더욱 맛있는 감자빵④을 파는 집. 쫄깃한 겉에 부드럽고 진한 감자맛을 내는 소가 들었다. 실내외 카페 공간이 있어 한숨 쉬어 가기에도 좋다. ■동해막국수=남춘역 앞에서 오래 운영해 온 막국숫집. 메밀 함량 높은 막국수에 감자전, 묵 종류가 있고 춘천식 메밀총떡도 판다.
  • 팝페라 테너 임형주 5년 만의 앨범… “‘잃어버린 시간’ 통해 앞으로 나아가길”

    팝페라 테너 임형주 5년 만의 앨범… “‘잃어버린 시간’ 통해 앞으로 나아가길”

    팝페라 테너 임형주(35)가 5년 만에 팝페라 정규 7집 앨범 ‘로스트 인 타임(Lost In Time·잃어버린 시간 속으로)’을 17일 발매했다. 앞서 지난 12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자선독창회도 열었다. 새 앨범을 통해 임형주는 지금의 코로나19 어려움을 계기로 100여년 전 일제강점기 시절 선조들의 나라 잃은 설움부터 6·25 전쟁으로 분단된 한민족의 비극과 깊은 슬픔 등 고난과 역경의 시간들을 돌아봤다. 역사 속에서 소중한 일상의 시간을 잃어버렸던 그 시간들을 꿋꿋하게 이겨낸 한민족의 근성과 DNA를 그 시절 노래로 표현하며 지금의 우리를 위로하고 달랜다는 뜻을 담았다. ‘독립군 애국가‘ 리마스터링 버전을 오프닝곡으로 두고 그가 조직위원회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KBSn 공식 캠페인송이었던 ‘저 벽을 넘어서’를 담았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시그널’, ‘슬기로운 의사생활’, ‘결혼작사 이혼작곡’, 영화 ‘파파로티’ 등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한 이상훈이 작곡하고 임형주가 직접 작사한 창작 팝페라 발라드 ‘산정호수의 밤’도 대표 타이틀곡 중 하나다. 앨범에는 또 설문조사에서 ‘군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군가’로 뽑히기도 했던 ‘푸른 소나무’와 통일을 기원하는 노래 ‘우리의 소원’도 그의 섬세한 목소리로 담았다. ‘우리의 소원’은 북한이주민 가정의 청소년 대안학교인 하늘꿈학교 재학생들로 꾸린 하늘꿈학교 합주단이 반주했고 임형주가 설립한 대안유아교육기관 소르고의 어린이 합창단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이 밖에 ‘사의 찬미’, ‘희망가‘,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등 서정적인 감동을 주는 노래들이 수록됐다. 보너스 트랙으로 유튜브 구독자 32만명을 보유한 앙상블 ‘레이어스 클래식’과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 테마송으로 함께했던 ‘아리랑’도 만날 수 있다. ‘봉선화’,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등 그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대표곡들도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선보인다. 임형주는 “앨범 속 노래들이 마치 우리에게 ‘우리는 과거에서 지혜를 얻고 현재의 경험으로 미래를 계획해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일제 잔재‘ 여주시 능서면 명칭, 세종대왕면으로 변경

    경기 여주시 능서면 명칭이 일제 잔재 논란으로 내년 ‘세종대왕면’으로 바뀐다. 능서면(陵西面)은 수계면(水界面), 길천면(吉川面)으로 불리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두 면이 통합하며 세종대왕릉(능서면 왕대리)의 서쪽에 있다는 이유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17일 여주시에 따르면 능서면을 세종대왕면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내용의 ‘여주시 읍·면·동리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거쳐 다음 달 말 시의회 임시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시는 “일제강점기 방위개념에 따라 명명된 행정구역 명칭을 지역 이미지와 정체성을 반영해 작명함으로써 지역 인지도 향상 및 브랜드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명칭 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능서면은 지난 7∼8월 전체 3074가구 가운데 2624가구(85.4%)의 동의서를 받아 시에 명칭 변경을 요구했다. 능서면은 박시선 여주시의회의장과 노규남 이장협의회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능서면(세종대왕면) 명칭 변경 추진위원회’를 7월 초 출범하기도 했다. 시가 지난달 관내 12개 읍면동 주민 547명을 표본 추출해 설문 조사한 결과 384명(70.2%)이 명칭 변경에 찬성했다. 시 관계자는 “여주시민과 능서면민 대다수가 세종대왕면으로 명칭을 바꾸기를 원하고 시의회도 이견이 없는 만큼 다음 달 임시회에서 조례안이 의결될 것으로 보인다”며 “조례는 경기도 보고 등을 거쳐 내년 1월 변경될 것” 이라고 말했다.
  • 오늘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홍범도 유족 등 134명 포상

    국가보훈처가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기리는 ‘제82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을 17일 개최한다. 16일 보훈처에 따르면 이번 기념식은 ‘또 하나의 별을 노래하자’라는 주제로 독립유공자 유족, 정부 주요 인사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특히 올해는 정부 기념식으로는 처음 독립기념관 겨레의 큰마당에서 개최된다. 기념식은 참배를 시작으로 국민의례, 독립유공자 포상, 기념사, 헌정공연, 순국선열의 노래 제창 순으로 약 40분간 진행된다. 1923년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이 만들어질 때 심어져 순국선열들의 마지막 순간을 빠짐없이 지켜봤던 미루나무(일명 ‘통곡의 미루나무’)를 통해 조명한 관련 영상도 상영된다. 정부는 이번 기념식에서 홍범도 장군의 차남 고 홍용환 선생을 비롯한 여섯 명의 유족 등에게 순국선열의 날을 계기로 선정된 134명의 포상자를 대표해 포상할 계획이다. 보훈처는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자신을 불살라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신 찬란한 별인 순국선열 한분 한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되새기고 온 국민이 화합하는 뜻깊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일제 치하 압박받는 조선 민초들, 나그네 신세 시름·절망·설움 담아 탄식·은유로 자기 치유한 ‘浪漫譜’

    일제 치하 압박받는 조선 민초들, 나그네 신세 시름·절망·설움 담아 탄식·은유로 자기 치유한 ‘浪漫譜’

    절망의 나락에 서면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운명에 탄식하게 된다. 탄식은 한숨과 넋두리를 동반하는데, 속이 상할 때 한숨을 쉬거나 누구에겐가 하소연이라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대중가요에도 극한적인 슬픔이나 아픔을 이기기 위해 탄식의 방법으로 ‘은유 치료’를 돕는 작품이 드물지 않다. 일제 치하인 1940년 2월 태평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나그네 설움’(조경환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에는 당시 민초들의 시름과 절망의 신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1940년 2월 9일(동아일보)과 14일(조선일보) 신문에는 ‘고달픈 인생 여로를 하염없이 걸어가는 나그네의 피로 엮은 낭만보(浪漫譜)?’라는 광고 문구가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나그네의 피로 엮은 낭만보?’라는 문구다. ‘피로 엮은’이 수탈당하는 조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면 ‘낭만보’라는 말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당시 레코드는 물론 모든 출판물에 단속령(취체령)이 적용되고 있었던 이유로 검열을 피하기 위해 ‘낭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뒤에 물음표를 덧붙여 반어법으로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이 노래는 처음부터 핍박받는 조선 민초들의 아픔과 설움을 표현하고자 만든 작품인 것이다. 가수 백년설은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경기도 경찰부 외사과에 호출됐다. 혹독한 취조를 받은 그는 밤늦게 시말서를 쓰고 방면된 뒤 마중 나와 있던 작사가 조경환과 함께 광화문 뒷골목 선술집에 앉았다. 밤새 울분을 토한 두 사람은 창밖으로 보이는 광화문 거리가 그날따라 유난히 낯설게 보여 이 가요를 만들었다고 한다. 평소 익숙한 거리가 그날따라 생경해 자신이 영락없는 나그네로 느껴진 순간 종이에 다음과 같이 써 내려갔다.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워라/가야 할 지평선엔 태양도 없어/새벽별 찬 서리가 뼛골에 스미는데/어데로 흘러가랴 흘러갈소냐.’ 맨 처음 쓴 노랫말은 이러했다. 일제의 사전 심의에 걸릴 것을 감안해 음반에는 3절로 배치했지만 ‘나그네 설움’의 원뜻은 바로 이 가사에 녹였다. 이 노랫말에는 희망을 잃고 떠도는 주인공의 심경이 묘사돼 있고, 다시 자기가 의사가 돼 은유적 개입으로 치료하는 ‘탄식에 의한 치료’가 이뤄진다.자기치료는 외부의 도움을 얻기 불가능한 상황일 때 쓰인다. 1907년 이준·이상설·이위종이 고종 황제의 특사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세계평화회에서 조선을 강점한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지만 조선에는 아무런 희망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야 할 지평선엔 태양도 없어’는 처절한 조선의 절망감을 표현한 가사로 볼 수 있다. 세계 어디에나 떠오르는 태양이 조선에는 뜨지 않는 것이다. 창작 당시 주인공의 정서에 의한 일차적 이미지는 ‘낯익은 거리=서울의 광화문 거리’라는 원형이었지만, 취조를 받은 후엔 울분에 의한 정서 변형으로 이차적 이미지인 ‘차가운 거리=이국의 거리’로 바뀌었다. 이러한 이미지의 변형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어데로 흘러가랴 흘러갈소냐’와 같은 지향 없는 삶도 다다를 목적지가 없는 나그네의 은유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나그네의 길을 걸어야 했던 일제강점기의 조선 민초들. 그러나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집단적 폭압에 억눌려 있던 자신의 병든 몸과 마음을 달리 가눌 길이 없었다. 이럴 때 한숨이 나온다. 또 탄식이 나온다. 이때 내쉬는 탄식이야말로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방어기제에 해당한다. 나라 잃은 슬픔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나그네 설움’에서 은유적 치료의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탄식을 통한 은유 치료는 대개 독백적 구술 형태를 띤다. 억압된 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여성들의 내적 상처를 치료하는 방식 또한 탄식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과 ‘님이라 부르리까’, 김수희의 ‘애모’ 등 여성 일생사를 다룬 수많은 가요와 규방가사에 푸념과 넋두리가 많은 이유가 이에 해당한다. 이렇게 민족의 탄식을 은유 치료로 위안해 주었던 백년설은 본명이 이갑룡(훗날 이창민으로 개명)으로 191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1938년 문학을 공부할 목적으로 일본에 유학했으나, 고베에서 당시 태평레코드사 문예부장 박영호를 만난 것을 계기로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1939년 전기현 작곡의 ‘유랑극단’으로 데뷔해 큰 인기를 얻었고 ‘번지 없는 주막’, ‘산팔자물팔자’, ‘고향설’, ‘두견화 사랑’, ‘대지의 항구’ 등 많은 명곡을 불렀다. 그러나 연이은 사업 실패 후 1978년 자녀들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1980년 12월 6일 ‘나그네 설움’ 가사처럼 타국에서 사연 많은 일생을 마쳤다. 사후인 2002년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나그네 설움’은 자기를 지킬 힘이 없으면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한 노래로, 힘과 전략을 항시적으로 충분히 비축해야만 비로소 평화가 보장된다는 교훈을 말해 주고 있다. 작곡가·문학박사
  • 숭례문 살린 거장 “원형 복구가 핵심… 장인 육성 힘쓸 것”

    숭례문 살린 거장 “원형 복구가 핵심… 장인 육성 힘쓸 것”

    “문화재 수리 복원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입니다. 전통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고 지형과 수목 등 주변 환경까지 같이 보존하는 것은 물론 해당 문화재의 인문학적 요소까지 고려해야죠.” 김창준(63) 문화재수리기술위원회 초대 위원장은 지난 1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수년간 글씨 색깔 문제로 논란을 빚은 광화문 현판 교체를 통해 얻은 교훈은 문화재 복원은 무엇보다 고증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필요할 때만 자문단을 구성하고 해체하는 방식으로는 객관성, 전문성, 일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수리기술위의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지난 7월 출범한 수리기술위는 의결권을 지닌 위원 30명이 포함된 90명으로 구성돼 모든 문화재의 수리 계획과 방법의 타당성 등을 조사·심의한다. 문화재청은 내년 심의 대상만 494건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술고시 15회로 공직에 입문한 김 위원장은 문화재청에서 33년 근무한 정통 관료 출신. 30년간 진행된 경복궁 복원 사업의 설계자이자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와 전각 복원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1980년대 경복궁에는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가져온 불교 석탑들이 널려 있고 군 부대가 주둔하는 등 근정전, 경회루 등을 제외하고 온전히 남아 있는 건물이 없었다”며 “전각을 복원할 소나무를 찾아 전국 산을 헤매고 폭설 속에 왕복 25㎞를 걸었던 순간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광화문 한자 현판을 시대정신에 따라 한글로 교체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이 있지만 그는 “수리의 목적은 원형을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역사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2008년 2월 방화로 소실된 숭례문 복구 단장을 맡기도 했다. 전통기법을 최대한 적용한다는 원칙에 따라 기와와 철물을 전통 방식으로 제작하는 등 옛 기법을 사용했지만 시행착오도 겪었다. 성곽과 육축은 전통 방식으로 잘 수리됐지만 단청은 경험이 없던 터라 벗겨지고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김 위원장은 “이 때문에 전체 공사가 잘못된 것처럼 매도됐지만 숭례문은 일본 문화청 전문가들도 ‘현장 관리가 일본보다 낫다’고 극찬한 성공적 복원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일제강점기에 없어진 전통가마를 재현해 지붕 기와를 올린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며 “숭례문 복원 사업을 기점으로 전통 재료와 기술을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문화재를 복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수리기술위는 선진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조직으로 문화재 수리를 우리처럼 체계적으로 법제화한 나라도 드물다”며 “기술자들의 고령화 추세 속에 끊임없이 전통 장인을 육성하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 숭례문 살린 거장 “문화재 복원, 충분한 고증 속 원형 그대로 해야“

    숭례문 살린 거장 “문화재 복원, 충분한 고증 속 원형 그대로 해야“

    “문화재 수리 복원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입니다. 전통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고 지형과 수목 등 주변 환경까지 같이 보존하는 것은 물론 해당 문화재의 인문학적 요소까지 고려해야죠.” 김창준(63) 문화재수리기술위원회 초대 위원장은 지난 1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수년간 글씨 색깔 문제로 논란을 빚은 광화문 현판 교체를 통해 얻은 교훈은 문화재 복원은 무엇보다 고증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필요할 때만 자문단을 구성하고 해체하는 방식으로는 객관성, 전문성, 일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수리기술위의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지난 7월 출범한 수리기술위는 의결권을 지닌 위원 30명이 포함된 90명으로 구성돼 모든 문화재의 수리 계획과 방법의 타당성 등을 조사·심의한다. 문화재청은 내년 심의 대상만 494건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술고시 15회로 공직에 입문한 김 위원장은 문화재청에서 33년 근무한 정통 관료 출신. 30년간 진행된 경복궁 복원 사업의 설계자이자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와 전각 복원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1980년대 경복궁에는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가져온 불교 석탑들이 널려 있고 군 부대가 주둔하는 등 근정전, 경회루 등을 제외하고 온전히 남아 있는 건물이 없었다”며 “전각을 복원할 소나무를 찾아 전국 산을 헤매고 폭설 속에 왕복 25㎞를 걸었던 순간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광화문 한자 현판을 시대정신에 따라 한글로 교체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이 있지만 그는 “수리의 목적은 원형을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역사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2008년 2월 방화로 소실된 숭례문 복구 단장을 맡기도 했다. 전통기법을 최대한 적용한다는 원칙에 따라 기와와 철물을 전통 방식으로 제작하는 등 옛 기법을 사용했지만 시행착오도 겪었다. 성곽과 육축은 전통 방식으로 잘 수리됐지만 단청은 경험이 없던 터라 벗겨지고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김 위원장은 “이 때문에 전체 공사가 잘못된 것처럼 매도됐지만 숭례문은 일본 문화청 전문가들도 ‘현장 관리가 일본보다 낫다’고 극찬한 성공적 복원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일제강점기에 없어진 전통가마를 재현해 지붕 기와를 올린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며 “숭례문 복원 사업을 기점으로 전통 재료와 기술을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문화재를 복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수리기술위는 선진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조직으로 문화재 수리를 우리처럼 체계적으로 법제화한 나라도 드물다”며 “기술자들의 고령화 추세 속에 끊임없이 전통 장인을 육성하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 치 떨리고 악에 받칠 산세 아래… 비경 숨겨둔 만추의 속살

    치 떨리고 악에 받칠 산세 아래… 비경 숨겨둔 만추의 속살

    강원 원주의 ‘치악산 둘레길’이 완성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치악산은 원주의 으뜸 볼거리 중 하나다. 한데 ‘치’가 떨리고 ‘악’에 받칠 만큼 오르기 힘든 게 흠이다. 치악산 둘레길은 이처럼 힘든 산행을 피하고 온순한 치악과 만날 수 있게 조성한 길이다. 그 마지막 구간이 11코스다. 잣나무숲, 조붓한 흙길 등 걷기 좋게 조성된 11코스를 둘러봤다. 이 여정에서 조만간 원주 관광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를 ‘소금산 그랜드밸리’, 만추의 비경을 갈무리한 ‘히든카드’ 매지호 등 미처 알지 못했던 원주의 속살도 함께 만났다. 치악산을 두고 거친 산세에 견줘 속살은 보드랍다는 평가를 내리는 산악인들이 있다. 치악산 둘레길은 이처럼 거친 치악의 아래 자락을 연결해 조성한 길이다. 전체 길이는 139.2㎞. 마지막 11코스인 ‘한가터길’이 최근 문을 열었다. 길이는 9.4㎞. 산길이긴 하나 난코스가 없어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절집 국형사 주차장을 들머리로 삼았다. 11코스의 종착지이자 1코스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국형사에서 출발할 경우 초반부의 계단길을 제외하면 어려운 부분이 거의 없다. 동네 뒷산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코스 중간쯤에서 만나는 잣나무 숲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 일대에 거주하던 화전민들이 모두 떠난 빈터에 잣나무를 심어 조성했다. 잣나무는 얼추 40년 정도 사람의 간섭 없이 저 혼자 자랐다. 간격이 조밀해 둥치는 크지 않지만 대신 위로 쪽쭉 뻗었다. 잣나무 숲은 둘레길이 열리면서 비로소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둘레길은 잣나무 사이로 휘휘 돌아가도록 설계됐다. 잣나무 우듬지 사이로는 가을빛이 쏟아져 내린다. 빛이 닿는 곳마다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한 가을이 드러난다. 나무 아래 황톳빛 흙길은 느리게 걷기 딱 좋다. 길은 잣나무숲을 나서면 끝난다. 한가터 삼거리에서 숯둔골까지는 아직 조성 중이다. 대신 이전에 조성된 ‘원주굽이길’을 빌려 쓴다. 공사가 끝나면 ‘한가터길’이 치악산 둘레길 중 가장 긴 숲길이 될 거라고는 하는데, 공사 완료일은 미정이다. 치악산 둘레길 11코스의 한가터 주차장 인근에 반곡역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중앙선의 한 역으로 시작해 이제는 문을 닫은 폐역이다. 개통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고풍스런 역사(驛舍)는 등록문화재(165호)로 지정돼 있다. 반곡역은 봄에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역사 앞의 늙은 벚나무 두 그루가 꽃을 틔우는 장면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다. 한데 늦가을 분위기도 그에 못지않게 서정적이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면 옛 철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남은 철로는 무척 길다. 국내에 폐역이 꽤 많지만, 멀리 소실점까지 철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곳은 그리 흔하지 않다. 반곡역은 머지않아 관광시설로 탈바꿈하게 된다. 인근의 똬리굴을 중심으로 대규모 테마 관광지 조성 사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반곡역 역시 레일바이크 정거장 등 온갖 시설이 빼곡한 번다한 공간으로 변한다. 폐역이 주는 낡은 감성의 유효 기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가을에 찾을 만한 원주의 히든카드 하나 덧붙이자. 원주 외곽의 매지호는 주민들만 알고 있는 소담한 관광지다. 연세대 원주캠퍼스와 바짝 붙어 있다. 연세대 학생들이 펴내는 학보 ‘연세춘추’에 따르면 매지호는 1962년 조성된 인공호다. 호수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은 ‘키스 로드’다. 교정과 호수 사이로 난 산책로다. 온갖 소셜미디어에 빠짐없이 ‘인증샷’이 게시될 정도로 연인들이 즐겨 찾는다. 반면 동성끼리 이 산책로를 걸었다간 몇 년 동안 연인이 생기지 않는다는 시샘 가득한 속설도 전한다. 연세춘추의 한 기사는 “오늘도 학생들은 매지호를 보며 등교하고, 수업을 듣는다. 매지호에는 앞으로도 이야기가 더해지고 더해져, 원주캠 학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로 남을 것”이라고 썼다. 기사에서 보듯, 연대 학생들에게 매지호는 매우 정감 어린 공간인 듯하다. 매지호 뚝방길을 따라 호수를 걸을 수 있다. 섬 끝쪽엔 거북섬이 있다. 매지호 조성 당시 발굴된 고려시대 석불이 섬에 남아 있다. 아쉽게도 거북섬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겨울철 호수가 결빙됐을 때만 걸어서 갈 수 있다. 이 시기에 소박한 지역 축제를 여는 것도 관광객을 유인하는 좋은 방법이지 싶다.학문의 전당인 대학 교정을 여행지라 말할 수는 없지만, 여행 삼아 연세대를 찾는 이들은 꽤 있다. 가장 이름난 곳은 은행나무 가로수길이다. 노란 낙엽을 밟으며 교정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로 시작하는 연인들에겐 추억을 새기는 곳이고, 긴 인생을 살아온 이들에겐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곳이다. 외부인들에게 개방됐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학문의 공간이다. 학생들의 학업에 불편을 주는 행동은 자제하는 게 좋겠다.이제 원주의 랜드마크로 떠오른 간현 관광지를 말할 차례다. 몇 해 전 ‘소금산 출렁다리’로 공전의 히트를 친 간현 관광지가 또 하나의 빅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소금산 그랜드밸리’다. 소금산 일대를 모험과 볼거리 가득한 공간으로 조성하려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핵심은 ‘소금잔도’(326m)와 ‘울렁다리’(유리다리·404m)다. 거대한 암벽 사이에 놓인 ‘소금산 출렁다리’를 지나면 오금이 저렸던 다리가 기력을 되찾을 틈도 없이 소금잔도가 이어진다. 소금산 정상 바로 아래 200m 높이의 바위 절벽을 끼고 도는 길이다. 소금잔도에 서면 출렁다리 못지않게 오금이 저린다. 현재 막바지 공정이 진행 중이다. 스카이타워(전망대) 못 미쳐 바깥쪽으로 삐죽 튀어나온 부분이 하이라이트다. 발아래로 작은 소나무가 있고, 그 너머로 산태극 수태극 형상으로 어우러진 간현 관광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원주 일대 산자락들도 마루금을 바짝 좁힌 채 다가선다. 공포와 전율, 놀람과 환호가 마구 뒤섞이는 순간이다. 스카이타워는 소금잔도와 울렁다리 사이에 있다. 두 공포 시설물의 연결 구간이자 전망을 보며 쉬어 가는 공간이다. 한데 온전히 휴식처 노릇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스카이타워가 들어선 곳 역시 바위 벼랑의 끝자락이라서다. 전망대 난간에 서기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설 듯하다. 스카이타워는 울렁다리와 곧바로 연결된다. 울렁다리는 건널 때 가슴이 울렁댄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출렁다리보다 2배 정도 더 길다. 출렁다리 앞엔 엘리베이터(970m), 울렁다리엔 에스컬레이터(285m)가 각각 놓인다. 접근성이 한층 좋아졌다. 예정대로라면 소금잔도와 울렁다리는 12월 ‘소금산 그랜드밸리’ 그랜드 오픈에 앞서 이달 말 문을 연다. 데크 산책로, 하늘정원 등 다양한 시설도 함께 들어선다. 밤의 소금산은 화사하다. 미디어 파사드, 음악 분수 등 화려한 볼거리가 이어진다. 영상쇼의 이름은 ‘나오라쇼’다. 소금산 출렁다리가 걸린 거대한 바위벽을 스크린 삼은 미디어 파사드, 레이저와 결합한 음악 분수 등으로 구성됐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구름 관중을 이룰 만큼 인기다.
  • 766억 기부한 이수영 회장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 5억’”

    766억 기부한 이수영 회장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 5억’”

    ‘카이스트에 766억 기부’ 이 회장‘통장잔고’ 묻는 질문에“마이너스 통장 한도 5억” 카이스트에 766억원을 기부한 수백억 자산가 이수영(85) 광원산업 회장이 자신만의 투자 비법을 소개했다. 또 통장 잔고를 솔직하게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 회장은 9일 방송된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와카남’에 출연해 사업 철학에 대해 언급했다. 이 회장은 “사업에는 비밀이 필요하다. 나의 움직임을 몰라야 한다”며 “눈여겨 본 땅이 있다면 주소부터 물어보라. 소유주와 주소만 있으면 인터넷으로 정보를 다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진 만큼만 투자해야 한다. 빚내서 어떻게 하나”라며 “(돈 벌고 싶으면) 낭비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출연진들이 통장 잔고를 궁금해하자 이 회장은 “마이너스”라고 답했다. 그는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 5억이다. 마이너스 5억 통장이 있어서 돈이 필요할 때 그 통장에서 빼서 쓰면 된다”고 밝혔다. 이날 이수영 회장은 최근 매매한 충남 당진의 6800여 평에 달하는 텃밭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얼마에 텃밭을 샀냐’는 물음에 “평당 16만 원에 싸게 샀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먹거리 좋고, 기후 좋고, 수도권이랑 가까워서 샀다. 또 여기 경전철이 들어온다”고 덧붙였다.“766억원 기부, 대한민국을 세계에 드높이는 데 쓰이길” 1936년생인 이 회장은 이수영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후 서울신문·현대경제일보(現 한국경제신문)·서울경제신문 등을 거치며 기자로 활동했다. 17년 간 기자로 일한 그는 1971년 목장을 설립해 축산업을 시작했고, 1988년 여의도백화점 5층을 인수해 부동산 전문기업인 광원산업을 창업했다. 기자 시절 안양에 당시 10원 정도 하는 땅 5000평을 사 돼지 두 마리와 암컷 한우 세 마리로 시작한 일은 ‘광원목장’이라는 이름 아래 돼지 1000마리와 젖소 10마리로 규모를 늘렸다. ‘기부왕’으로 불리는 이 회장은 총 90억원 상당의 미국 부동산과 676억원 상당의 국내 부동산을 카이스트에 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이 회장은 “오랫동안 가까운 자리에서 카이스트를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발전은 물론, 인류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최고의 대학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며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드높이는 데 기부금이 쓰이길 바란다”고 했다.이 회장은 지난해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서남표 카이스트 전 총장의 연설을 듣고 ‘우리나라에 과학자의 필요성, 과학 발전과 국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내 마음을 흔들었다”며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는 아직 배출하지 못했다”고 기부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 회장은 통 큰 기부가 시작된 계기를 설명하면서는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나는 일제강점기에서 컸다. 나라 없는 슬픔과 6·25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며 “사람들이 너무 굶어서 배고픈 사람들의 몸이 부었다. 그때 우리 어머니가 음식을 하면 그 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게 내 마음속에 싹이 됐다”고 말했다.
  • 윤보선 생가에 ‘윤씨 일가 친일행적 안내문’ 설치 갈등

    윤보선 생가에 ‘윤씨 일가 친일행적 안내문’ 설치 갈등

    “독립운동을 한 대통령에게 ‘친일파’ 연좌제를 씌우는게 말이 되나”(주민들) “가옥을 관광자원화하면서 그 집에 살았던 친일파들에 대한 설명을 뺄 수 있느냐”(민족문제연구소) 윤보선 전 대통령(1897~1990) 생가 등 윤씨 집성 가옥에 ‘친일행적 안내문’을 설치하는 것을 놓고 마을 주민들과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갈등을 빚고 있다. 충남 아산시는 10일 둔포면 신항리 윤 전 대통령 생가 옆 마당에서 ‘해평윤씨 일가 친일행적 안내문 설치’ 주민설명회를 연다고 9일 밝혔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크다. 신항리 1구 이장 임춘길(63)씨는 “윤 전 대통령은 20대 때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여운형 등과 독립운동을 했다”면서 “우리 마을 해평윤씨 가옥 전체를 윤보선 생가처럼 생각하는데 윤보선 일가 중에 친일파가 있다고 해서 그런 안내문을 설치하면 윤 전 대통령도 친일파인줄 오해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임씨는 “헌법이 연좌제를 금지한다”며 “임기가 짧지만 충청도 출신의 유일한 대통령으로 주민들 자부심이 컸는데 스스로 먹칠하는 것”이라고 했다. 논란은 아산시가 2018년부터 20억원을 들여 ‘윤보선대통령 기념관’ 등 근대문화마을 조성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애초 사업계획에 안내문 설치는 없었으나 지난해 12월 충남도의회 친일잔재청산 특별위원회에서 자문위원들이 건의했다. 2009년 국가지정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에 해평윤씨 5명이 올라 있고, 이 중 일제강점기 때 중추원 고문 등을 지낸 윤치호와 윤 전 대통령의 부친으로 중추원 참의를 지낸 윤치소 등 친일파 4명이 이곳 근대문화마을 가옥에서 태어났다. 박창봉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장은 “역사에는 명과 암이 있다. 윤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윤치호 등 친일파들이 태어난 마을인데, 모든 인물의 행적을 방문객에게 알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 “윤보선 대통령에 연좌제하냐”…부친 친일 안내문에 주민 반발

    “윤보선 대통령에 연좌제하냐”…부친 친일 안내문에 주민 반발

    “독립운동을 한 대통령에게 ‘친일파’로 연좌제하는 거냐”(주민들) “가옥을 관광자원화하면서 그 집에 살았던 인물들 설명을 뺄 수 있느냐”(민족문제연구소) 윤보선 전 대통령(1897~1990) 생가 등 윤씨 집성 가옥에 ‘친일행적 안내문’ 설치하는 것을 놓고 마을 주민들과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갈등을 빚고 있다. 충남 아산시는 10일 둔포면 신항리 윤 전 대통령 생가 옆 마당에서 ‘해평윤씨 일가 친일행적 안내문 설치‘ 주민설명회를 연다고 9일 밝혔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커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신항리 1구 이장 임춘길(63)씨는 “윤 전 대통령은 20대 때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여운형 등과 독립운동을 했다”면서 “우리 마을 해평윤씨 가옥 전체를 윤보선 생가처럼 생각하는데 조상 중 친일파가 있다고 해서 그런 안내문을 설치하면 윤 전 대통령이 그런줄 알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임씨는 “헌법이 연좌제를 엄격히 금지한다”며 “임기가 짧지만 충청도 유일의 대통령으로 주민들 자부심이 컸는데 스스로 먹칠하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은 생가 주변에 반대 플래카드를 수십개 내걸기도 했다. 이는 아산시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도비 등 20억원을 들여 ‘윤보선대통령기념관’ 등 근대문화마을 조성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사업계획에 안내문 설치는 없었으나 지난해 12월 충남도의회 친일잔재청산 특별위원회에서 자문위원들이 건의했다. 2009년 국가지정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에 해평윤씨 5명이 올라 있고, 이 중 일제강점기 때 중추원 고문 등을 지낸 윤치호와 윤 전 대통령의 부친으로 중추원 참의를 지낸 윤치소 등 친일파 4명이 이곳 근대문화마을 가옥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윤 전 대통령 생가는 윤치소가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윤 전 대통령은 부친의 막대한 재산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정치활동도 해 대통령이 됐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로 1년 5개월 만에 하야했다. 임씨는 “몇년 전까지 생가를 방치해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아무나 주차해 방문객들이 ‘외암민속마을처럼 관리하지 않고 왜 방치를 하느냐’고 불평했다”며 “문화마을 조성으로 그나마 관리가 잘 되는데 친일행적 안내문을 설치하면 어찌 하느냐”고 반문했다. 신항 1구에는 100 가구, 230여명 주민이 산다. 박창봉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장은 “역사에는 명과 암이 있는 거 아니냐. 윤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유치호 등 친일파들이 태어난 마을인데 모든 인물의 행적을 방문객에게 알리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안내문이 설치돼야 문화마을사업이 끝나는 만큼 시에서 주민들을 적극 설득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 “일본이 근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이유…칭찬받을 역사가 없기 때문”

    “일본이 근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이유…칭찬받을 역사가 없기 때문”

    “일본의 정치가 바뀌어야 역사 교육도 바뀔 수 있고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도 가질 수 있을 텐데…최근 중의원 총선거 결과를 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나가사키 원자폭탄 희생 한국인 위령비 제막식 하루 전날인 5일 일본 나가사키시 오카마사하루기념평화자료관에서 만난 신카이 도모히로 부이사장은 이같이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오카마사하루기념평화자료관은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맞서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 한국인들의 인권을 지키는 데 앞장선 오카 마사하루 목사의 유지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곳이다. 여기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만행을 겪은 한국과 중국, 특히 위안부와 강제 징용의 실태를 낱낱이 알 수 있어 나가사키를 찾는 이들이 평화공원과 함께 꼭 한 번은 방문해야 할 곳으로 알려졌다. 신카이 부이사장은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발생한 지 76년 만에 한국 주도의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만들어진 것이 뜻깊다고 했다. 그는 “1979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이 주도로 위령비를 만들었지만 일본인은 식민 지배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았음에도 사과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등 잘못된 방향으로 만들어졌다”고 오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카 목사는 생전에 일본 식민 지배 피해를 남과 북으로 나누지 않았고 원폭 희생은 한반도 전체의 문제라고 말해왔다”고 덧붙였다. 한일 관계 악화와 그 원인인 과거사와 관련해 근본적으로 일본에 책임이 있다고 신카이 부이사장은 강조했다. 그는 “일본이 잘못했다고 사과하지 않는 데는 식민 지배를 인정해버리면 일본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며 “일본의 문자는 중국 한자의 기원이고 또 역사적으로 한국으로부터 배움을 받은 것도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상한 프라이드가 있다”고 비판했다.시민활동을 하기 전 고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던 신카이 부이사장은 이처럼 일본의 잘못된 역사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일본의 역사 교육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카이 부이사장은 “과거 자료관 방문객은 학생 70%, 어른 30%였다면 아베 정권 시절 학생 방문객 비율은 20~30%로 역전되는 등 정치권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국에 방문해 학생들과 이야기해보면 한국 학생들은 역사 문제를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일치시켰는데 일본에서는 거의 그렇지 않다”며 “일본 역사교과서는 꽤 두껍지만 근현대사 부분은 굉장히 얇다. 사실상 메이지 시대에서 역사가 끝나버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메이지 시대 이후의 일본 역사는 전쟁과 침략뿐이니 칭찬받을 역사가 아니다 보니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려 한다”며 “그래서 이를 바꾸기 위해 정치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며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암기식의 수험용 역사 공부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신카이 부이사장은 앞으로도 자료관을 중심으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알리는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나를 비롯해 40명이 월급을 받지 않고 자원 봉사로 일하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완화되면 한일 간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130년 전 모습 찾은 ‘향원정’…’청운의 꿈’ 품은 고종의 시름 묻어나

    130년 전 모습 찾은 ‘향원정’…’청운의 꿈’ 품은 고종의 시름 묻어나

    조선 왕조 법궁인 경복궁 북쪽 후원에 자리 잡은 ‘향원정’(香遠亭)은 향원지(香遠池)로 불리는 연못 한가운데 지은 육각 2층 정자다. ‘향원’(香遠)은 북송 시대 중국 학자 주돈(1017∼1073)이 지은 ‘애련설’(愛蓮說)에서 따온 말로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이다. 26대 임금 고종(재위 1863~1907)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 벗어나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건청궁(乾淸宮)을 지을 당시 왕과 왕비의 휴식 공간으로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향원정으로 향하는 다리 ‘취향교’(醉香橋)가 파괴되고 건물이 기울어지는 등 역사의 모진 풍파를 견뎌내야 했다.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3년간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5일 공개한 향원정 일대는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이 심화하던 19세기 말 향원정에서 시름을 달랜 고종과 민비(명성황후) 당시의 모습을 충실하게 재현했다.●건물 기울어 3년간 공사…말뚝 799개 박고 온돌도 찾아 2012년 보물로 지정된 향원정 보수 공사는 건물이 전반적으로 기울고 목재 접합부와 기단 등이 헐거워졌다는 진단에 따라 시작됐다. 2017년 5월 설계 용역을 추진하면서 향원지 주변에 가림막을 설치했고, 2018년 11월 작업에 들어가 3년 만에 마무리됐다.궁능유적본부는 향원정을 완전히 해체한 뒤 다시 조립했고, 섬 둘레에 있는 석축(石築)을 정비했다. 나무 부재는 10∼20%를 교체했으며, 건물 하부 지반을 보강하고자 말뚝 799개를 박았다. 궁능유적본부는 발굴조사를 통해 1층에 있던 도넛 형 온돌도 찾아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향원정 구들의 구체적인 형태와 연도(煙道·연기가 나가는 통로)의 위치 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온돌은 보통 밭고랑이나 부챗살 모양으로 고래(구들 밑으로 난 연기가 통하는 길)를 설치하는데, 향원정은 가장자리를 따라 고래를 둬 난방이 바깥쪽을 중심으로 이뤄졌음이 드러났다. 또 현존하는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를 활용해 향원지 외부와 연결된 낮은 굴뚝을 복원했고,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연못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는 모습을 확인했다.●취향교는 흰색 목제다리로 본래 위치로 옮겨 취향교는 옛 사진에 나타난 모습을 되찾았다. 이전에는 돌기둥에 평평한 나무를 얹은 평평한 다리였다면, 복원을 통해 아치형 나무다리로 바꿨다. 흰색으로 칠한 나무는 얼핏 보면 철제 구조물 같아 보인다. 이에 대해 정현정 궁능유적본부 주무관은 “흰색 나무가 낯설어 보일 수 있으나, 고종 때도 건축에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다양한 방식의 재료들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길이 32m, 폭 165㎝의 다리인 취향교는 원래 건청궁에서 향원정으로 건너갈 수 있게 향원정 북쪽에 세워졌다. 이후 1953년 재건립 됐지만, 관람 편의를 위해 향원정 북쪽의 본래 위치가 아닌 남쪽에 지었었다. 이번 공사를 통해 다리 위치를 북쪽으로 옮기면서 68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향원정 건립시기는 1885년으로 추정 이번 복원 공사를 통해 향원정과 취향교의 건립 시기도 알게 됐다. 1887년(고종 24년) 승정원일기에 ‘향원정’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면서 건립 연대를 1887년 이전으로 추정해왔는데, 목재 연륜 연대 조사를 통해 1881년과 1884년 두 차례에 걸쳐 벌채된 목재가 사용된 것이 확인됐다. 이에 문화재청은 향원정 건립시기를 1885년으로 추정하고 있다.궁능유적본부는 향원정의 6개 기둥 중 동남쪽 방향 주춧돌을 조사한 결과 주춧돌을 받치는 초반석의 균열로 가라앉는다는 것을 확인해 건물 기울어짐의 근본원인을 찾아냈다. 정 주무관은 “호수 위에 만든 인공섬 위쪽까지 지반을 보강하는 장치가 부족했던 탓”이라며 “이번에는 야구방망이보다 조금 더 두꺼운 정도의 나무 말뚝 799개를 박아 지반을 다졌다”고 설명했다. 6개 기둥 아래쪽에는 6m짜리 긴 말뚝 150개를 섬 바닥까지 닿게 박아넣고, 건물 주위에는 1.8m 혹은 2.7m짜리 짧은 말뚝을 649개 꽂아 토양이 조금 더 빡빡해지고 단단해지도록 했다.●푸른색 능화지로 1층 천장 도배…‘청운의 꿈’ 상징 향원지 일대의 옛 사진을 분석해 훼손된 절병통(지붕 중심에 세우는 항아리 모양의 장식기와), 창호, 능화지, 외부 난간대 등도 복원했다. 일제 시대에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친 향원정 내부의 지지목을 떼어낸 자리에선 향원정 건립 당시 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청의 원형이 발견됐다. 2층 천장에는 봉황 무늬가 가득하다.건립 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내부에 발라져 있던 겹겹의 창호지 맨 아래에서는 왕실 건물에만 사용되는 ‘능화지’(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문양을 밀랍으로 눌러 새긴 한지)를 볼 수 있다. 강성찬 중요무형문화재 배첩장(전통 도배, 장판 등 기술 보유 장인) 이수자가 찍어낸 능화지 수백 장으로 천장과 기둥 등 벽지를 발랐다.강 이수자는 “능화지는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것으로 밀랍이 함유돼 있어 벌레가 오지 않고, 항산화·항습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며 “여러 문화재 복원 현장을 가봤지만 향원정은 고증을 많이 한 뒤 전통방식으로 오롯이 복원해 의미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천장을 바른 푸른색 능화지에 대해 강 이수자는 “옛 양반가에서는 청운(靑雲)의 꿈을 품는다는 것을 중시해 자제들의 방에 종종 푸른색 능화지를 사용했었다”면서 “벽에 붙인 흰색 능화지가 문양을 내기는 더 힘들다”고 덧붙였다.●내년 4월부터 내부 특별관람 형태로 공개 궁능유적본부는 건립 당시에 칠한 것으로 추정되는 단청의 안료를 추가로 조사하고, 내년 4월부터 내부를 특별관람 형태로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향원지 수위는 30∼40㎝ 정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내년 봄이 지나면 홍련과 백련이 피어 화려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금괴 2톤’ 매장설 또 불붙었다…“옛 일본인 농장 사무실 도굴 흔적”

    ‘금괴 2톤’ 매장설 또 불붙었다…“옛 일본인 농장 사무실 도굴 흔적”

    ‘금괴 2톤 매장설’에 휩싸였던 전북 익산시 옛 ‘일본인 농장 사무실’ 바닥이 누군가에 의해 파헤쳐진 것으로 확인됐다. 광복회는 3일 “최근 농장사무실 안에서 일본인 농장주가 은닉 매장했다고 의심되는 구석진 계단 밑 부분의 콘크리트 바닥이 파헤쳐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3월 익산에 ‘일본인 농장주가 해당 사무실 지하에 금괴를 매장해 놓았는데, 광복이 되자 옮기지 못하고 급히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의 소문이 퍼지면서 지역사회가 술렁인 바 있다. 바닥이 파헤쳐진 것을 확인한 광복회는 도굴 여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해당 시설에 대한 발굴 허가와 사전 탐사 허가를 요청했다. 하지만 전북 행정심판위원회는 광복회의 신청을 거절했다. 익산시 관계자는 “해당 건물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인 항일독립운동 기념관 건립사업 대상지다”면서 “매장물 탐사 발굴보다 기념관 등 조성 사업이 시민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해 허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파헤쳐진 흔적은 2층으로 가는 계단을 만들기 위해 시가 공사했던 부분이다”며 “얕게 파헤쳤기 때문에 도굴 흔적이라고도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광복회는 “멀쩡한 문화재 건물 콘크리트 바닥을 파헤친 땅속의 도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더욱 사전탐사가 필요함을 주장하고 현장보존과 조사의 필요성을 전북 행정심판위원회에 요구했지만 결국 불허가처분취소청구가 기각됐다”며 “우리는 문화재 건물인 일본인 농장사무실 바닥이 파헤쳐진 사실과 그 지하에 매장된 문화재와 국가재산인 금괴 등이 도굴 됐는지를 문화재청에 조사와 수사 의뢰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구 일본인 농장 사무실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오하시가 설립한 대교농장의 사무실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오하시는 일본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은행을 소유할 정도로 큰 부자였다. 그는 1907년 농장을 개설하고 익산과 김제 지역의 땅을 사들여 순식간에 대농장으로 키웠다. 대교농장에는 엄청난 양의 쌀을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탈했다. 농장 사무실은 일본식 2층 목조 건물로서 외간이 단순하다. 아직도 일부 시설이 남아 있는 이곳은 일제강점기 농업 수탈의 역사를 보여 주는 장소로서 가치가 있다. 익산시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 지난해 10월 약 4억5000만원에 부지를 매입했다.
  • [신간]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

    [신간]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 유씨북스 펴냄, 304쪽, 1만 5800원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는 ‘표석으로 읽는 서울의 근현대사’ 시리즈로 대한제국의 한성과 일제강점기의 경성에 이어 광복 이후 대한민국 서울의 풍경을 담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은 1960~1970년대 연평균 9%라는 고도성장을 이루며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하지만 서울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1950년 160만 명이었던 인구는 1970년 500만 명을 넘어섰고, 인구 급증은 도시문제와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수도 서울의 안보와 맞물려 도심 기능의 분산·주택난 해결과 인구 분산·경제성장 등을 목적으로 서울은 행정구역을 늘리거나 넓히면서 경부고속도로와 아파트로 대변되는 영동 개발 등 도시계획과 신도시 개발을 빠르게 진행했다. 전쟁 폐허에서 올림픽·월드컵·G20 정상회의 등을 개최한 세계적인 도시가 된 서울, 근대적 도시에서 현대적 대도시로 급변하며 상전벽해를 이룬 서울. 표석을 따라 거닐며 서울의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의 변화상을 살펴본다. 이 책에는 표석 38개, 자료 사진 223장을 수록해 역사 문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소개할 뿐 아니라 표석 답사 지도 9장과 서울미래유산 8곳, 함께 둘러보면 좋은 곳 64곳을 함께 소개해 역사 문화를 경험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했다.
  • 기생충은 ‘반지하’ 오징어게임은 ‘빈부격차’…日언론의 흠집내기

    기생충은 ‘반지하’ 오징어게임은 ‘빈부격차’…日언론의 흠집내기

    영화 ‘기생충’ 때도 반지하 주택만 그렇게 부각시키더니, 이번에도 일본 언론은 한국의 빈부격차를 강조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일본 TV아사히 교양프로그램 ‘와이드! 스크램블’ 역시 27일 오징어게임 특집 방송을 통해 한국의 빈곤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프로그램 측은 방송 전 공식트위터를 통해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소개한다. 이야기 배경에는 날로 심각해지는 한국의 빈곤 문제가 있다고 한다. 드라마가 시사하는 바를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방송 당일에는 예고대로 한국의 취업난과 가계 부채 등을 들여다보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방송의 초점은 오징어게임으로 드러난 한국의 빈부 격차를 부각시키는 데 맞춰졌다. 오징어게임 속 이야기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 쪽으로 구성이 이뤄졌다. 대졸자 취업률과 임금 격차, 청년층 가계부채 규모를 나타내는 통계 자료를 상세히 다뤘다. 먼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인용해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크다고 지적했다.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 대졸초임은 4690만원인 반면, 5인 미만 사업체 정규직 대졸초임은 2599만 원으로 대기업의 55.4%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기업 수가 전체의 0.3%에 불과한데다, 신입보다 경력사원을 선호하는 채용 분위기 탓에 대기업 입사를 위한 대졸자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청년층 가계부채 문제도 꼬집었다. 9월 한국은행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를 바탕으로 나온 국내 언론 보도를 인용해, 한국의 2030세대 부채 규모가 485조79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높은 집값 때문에 부채 중 절반 이상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이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출 상환 능력이 없는 청년은 고시원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면 되는 2평짜리 좁은 방에서 공용화장실을 써야 하는 처지라고 했다. 고시원과 서울 동부이촌동 고급 주택가를 비교해 보여주며 한국의 극명한 빈부 격차를 강조했다.이 밖에 사채와 도박 문제가 심각하다는 내용도 인터뷰를 통해 전달했다. 방송은 ‘오징어게임’의 성과보다 한국의 ‘치부’를 드러내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오징어게임 성공을 이용해 오히려 국격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결은 다르지만 이번 오징어게임 특집 방송에 대한 비판은 일본 현지에서도 불거졌다. 한 일본인은 트위터를 통해 “일본 청년 빈곤도 심각한데 한국을 동정하고 있다. 최근 TV프로그램 상태가 최악”이라고 쏘아붙였다. 다른 이는 “오징어게임은 한국 현실과 비슷하다는 내용으로  긴 시간 동안 빈곤, 취업난, 도박중독 등 한국 사회 문제를 다뤘다. (TV아사히가) 한국 방송국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오징어게임 특집이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방송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었다. 한 일본인은 “선거 전 으레 하는 일상적인 한국 비판 방송인 것 같다”면서 “일본 선거 얘기나 더 다뤘으면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과거 ‘기생충’ 때도 비슷한 기획을 했던 것 같은데, 지겹지도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실제 TV아사히 모회사 아사히신문은 우리나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후 작품의 배경이 된 반지하 주택을 집중 조명했다. 반지하 주택의 유래와 함께, 영화에 등장한 서울 마포구 반지하 주택을 직접 찾아가 취재한 내용도 함께 지면에 실었다.한편 일본 언론은 다양한 방식으로 ‘오징어게임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얼마 전 순위 조작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이번엔 원조 논란을 일으켰다.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 서울지국장 스즈키 쇼타로는 ‘오징어게임이 담고 있는 일본의 잔여’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드라마 속 게임이 모두 일본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어린이 전통 놀이는 그 뿌리가 일제강점기에 있으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했다. 쇼타로 지국장은 일본 ‘달마상이 넘어졌다’가 변형된 것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이며 딱지치기, 구슬치기, 달고나도 모두 일본이 원조라며 오징어게임 원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 “日, 韓에 지기 싫어 역사 무시… 강제징용 사과·배상 어려울 것”

    “日, 韓에 지기 싫어 역사 무시… 강제징용 사과·배상 어려울 것”

    한국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 3년“징용 규모 불분명… 증거 없는 경우도 일본이 뭐가 우수한가, 근거가 없어한국도 피해자 중심주의 명확히 해야”“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이 있다는 역사적 자료가 있지만 일본인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태가 분명히 있는데도 말입니다.” 30일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 등 일제강점기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강제징용 손해배상 책임을 대법원으로 인정받은 지 3년째 되는 날이지만 일본은 여전히 오리발이다. 2018년 10월 30일 이 판결에 반발해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등의 보복 조치를 취했고 그 후로 한일 관계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연구실에서 28일 만난 도노무라 마사루 교수는 이와 관련, “역사 문제를 뿌리로 악화된 한일 관계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인으로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다룬 책인 ‘조선인 강제연행’을 쓴 도노무라 교수는 “(일본이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일본인의 정체성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수많은 자료가 있음에도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넘어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무시한다”면서 “아시아 국가 중 일본인이 1위라는 우월 의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일본이 뭐가 그렇게 우수하고 훌륭한지 보면 근거가 없다. 국내총생산(GDP)이 높아서라거나, 경제 대국이기 때문에 우수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미 그것은 중국에 추월당했고 한국이 따라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도노무라 교수는 “(일본이 강제징용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한국에 대해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라면서 “우리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언급이 한국에서 나오면 ‘왜 그런 것을 해야 하느냐’고 반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노무라 교수는 일본 내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재판 결과를 토대로 진정한 사과 및 배상을 원하는 한국 내 바람이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일 기업이 기금을 조성하는 등의 방안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피해자(도노무라 교수는 일본 정부가 쓰는 표현인 징용공이 적절하지 않다며 동원 피해자라고 지칭함)의 종류만 해도 다양한 데다 미쓰비시인지 미쓰이인지 어느 기업에서 징용됐는지, 후쿠오카현인지 사가현인지 어느 지역으로 징용됐는지도 모르고 증거도 없는 피해자들도 있다”고 했다. 또 “(3년 전 재판 결과 등에서) 판결이 모든 피해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를 구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도노무라 교수는 한국 정부가 내세우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리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옳다는 것은 안다. 다만 피해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등 구체적 요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강제징용 피해라는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다는 점을 꾸준히 알리면서 일본이 이를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피해자 실태에 대해) 한일 정부가 공동으로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 전주는 멋있다…전주는 맛있다

    전주는 멋있다…전주는 맛있다

    전북 전주 한옥마을. 아, 듣기만 해도 얼마나 예스럽고 고즈넉한 곳인가. 가을과도 딱 어울린다. 단청에 익숙하기 때문일까. 가을 단풍의 색은 전주의 고옥(古屋) 느낌을 그리도 닮았다. 한옥마을. 전국에 한옥들이 모여 있는 곳은 많다. 예전부터 내려오던 곳도 있고 새로 조성한 곳도 많다. 서울만 해도 북촌과 남산골, 익선동, 은평에 한옥마을이 있다. 대구 옻골, 달성한옥마을과 대전 이사동, 강원 강릉 오죽과 왕산, 고성 왕곡마을, 충북 청주 오창, 충남 아산 외암, 경북 경주 교촌과 송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 전남 순천 낙안읍성, 영암 구림마을 등 한옥마을이야 전국에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전주 한옥마을이 가장 특별한 이유는 전주라는 큰 도시의 도심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기와 처마가 이리저리 이어진 곡선이 마음에 편안함을 준다. 그 아래 숨어 있는 골목이야말로 전주한옥마을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리저리 돌다 갑자기 끊기는 막다른 골목을 어디 요즘 사방격자 도시에 익숙한 도시인들이 알겠나? 차 한 대 들어가지 못할 만큼 좁은 골목은 상상조차하기 어려운 세대들도 이 ‘불편한’ 마을을 찾아온다. 전주 한옥마을이 가진 저력이다.●경기전~전주향교~한벽당~전동성당 ‘쉼’있는 마을 통칭 한옥마을이라 부르지만 행정구역상 명칭은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과 풍남동이다. 인근 구도심과 함께 전주 역사문화벨트에 속한다. 경기전을 끼고 전주향교, 한벽당, 전동성당을 품은 이 평평하고 너른 마을을 오목대와 이목대가 둘러쌌다. 그 간극을 길게는 100여년 가까운 한옥 고택들이 채우고 있다. 실핏줄 같은 골목이 이들을 연결하니 비로소 마을 자체가 숨을 쉰다는 느낌을 준다. 곳곳에 나지막한 담장과 그 위로 삐죽 튀어나온 기와집 처마들이 옆집과 파도처럼 줄줄이 이어진다. 자고 일어나면 수직과 수평으로 이뤄진 직선의 세상에서 살다 온 이들에겐 그 얼마나 생경한 풍광일까.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곡선미를 자랑하는 한옥 지붕 아래서 대대로 살아온 우리에겐 정말 숨통이 트이는 ‘곡선 처방’이다. 수직 스트레스에 대한 ‘백신’ 같은 곡선을 눈으로 받아 마음에 항체를 형성한다. 전주 한옥마을에 찾아가면 아직 잔여 백신이 잔뜩 남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옥마을엔 한복을 입은 이들이 한가득 골목을 메우며 용의 눈에 점을 찍는다. 가을 노염을 피해 곡선 처마 아래 몸을 숨긴 한복 차림의 젊은 관광객들. 길을 걷는 양반님네 행차, 추노꾼과 함께 꼬치구이를 사 먹는 관기(官妓) 차림까지 있다. 물론 현대화된 것도 있고, 저승사자인지 군관인지 정체(신분)를 알기 어려운 차림새도 섞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곡선 거리에 곡선 옷이 다닌다. 또 한 차례 눈이 쉬어 가는 순간이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새마을운동 노래 2절) 근대화 시절, 개발은 절대 미덕이었다. 철근 콘크리트 앞에서 기와 역시 적폐였다. 만지면 손을 벨 만큼 반듯반듯한 직선의 교차 속에 대한민국의 ‘새마을’이 곳곳에 들어섰다. 이후 최근까지 거침없이 줄곧 이어진 신도시와 부동산 개발 열풍 덕분에 모든 국민이 서로 비슷한 집(집값은 아주 다르지만)에서 살게 됐다. XY좌표로 아파트를 표시해도 되고 몇 열의 몇 번째로 집을 지목하는 콘크리트의 매트릭스에 길들여졌다.●일제와 개발 맞서 100여년 전통 지킨 전주의 힘 그런데 어떻게 전북의 중심지 전주에는 이런 한옥마을이 오롯이 남았을까. 전통과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전주 시민의 성향이 이를 지켜낸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모든 중세 및 근대도시에도 한옥마을이 있었지만 교조적 개발주의의 광풍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을사늑약(1905년) 이후 일본인들이 대거 전주에 들어왔다. 전주 부성 밖에 모여 살았다. 서문 밖 전주천변에 일본인 마을이 형성됐다. 대개 이 시기의 대도시 읍성들이 그렇듯 행정 편의상 성곽이 허물어지고 풍남문만 남았다. 상업에 종사하던 일본인들이 성안으로 들어와 점포를 냈다. 다가동과 중앙동에 일본인 상가가 생겨났다. 1930년대에는 전주부성 내부 공간 역시 개발에 의해 격자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이 생겨났다. 전주 시민들은 슬금슬금 밀려드는 일본인 거주지 확장에 맞불을 놓을 요량으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집을 짓고 모여들었다. 마치 테마파크에서 일부러 조성한 각각의 구역처럼 풍경이 나뉘게 됐다. 일본식 가옥촌과 한옥마을, 서양식 선교사촌으로 나뉘고 태조의 어진을 모신 조선 경기전과 비잔틴 로마네스크 혼합양식 전동성당이 맞보고 섰다. 유교의 향교와 서양식 학교도 이곳에서 한데 어우러졌다. 한옥도 양식이 혼재됐다. 성곽이 있던 태조로를 중심으로 경기전 인근의 가옥들은 일식 가옥에 조선식 기와를 얹은 혼합 양식이다. 내부 역시 중간에 복도가 있는 등 일본식 건축기법을 보여 준다. 반면 전동성당 뒤쪽 한옥과 향교 쪽 가옥들은 전통 한옥이다. 복합 한옥 공간이라 건축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한옥마을에 사는 이들에겐 큰 갈등의 시기였다. 꽤 너른 대지에 비해 단층인 한옥 특유의 구조 탓에 공간이 부족한 데다 차량이 보급되면서 주차하기도 불편했다. 생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혹여 이웃집 한옥이 양옥으로 개축하면 도미노가 이뤄졌다. 덩달아 화장실을 들인 개량 한옥으로 바꾸거나 번듯한 2층 양옥집을 올리는 경우도 생겼다. 비싼 기와 대신 볼품없는 플라스틱 기와로 올린 사례도 많았다.●볼거리·먹거리·놀거리… KTX 타고 청춘들 명소로 2000년대 후반 들어 한옥마을을 보존하기 위해 전주시가 정비에 나섰다. 낡아빠진 ‘양옥’을 철거하고 신축 한옥을 늘려 나갔다. 인근에 관광지가 밀집해 있는 한옥마을만 제대로 정비해도 예향 전주의 고유한 색깔을 살릴 수 있으리라 판단한 전주시의 판단은 주효했다. 주5일 근무제 시행 후 인기 관광지로 떠올랐으며 2011년 전라선 KTX의 개통으로 전주역에 고속열차가 정차하자마자 20~30대 젊은층의 최고 관광명소가 됐다. 2016년 연간 1000만 관광객을 돌파했고 여행잡지 론리플래닛에서 ‘1년 안에 가봐야 할 아시아의 10대 명소’로 전주가 선정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현재 전주시는 한옥마을에 관광트램 도입 계획을 진행 중이다.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한 관광트램은 순환선이며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케이블카 같은 관광시설이다. 경기전~전동성당~전주천~전주향교~오목대 등을 찬찬히 둘러보는 노선이라고 한다. 원래부터도 전주는 ‘한’ 스타일의 도시다. 한정식, 한지, 한선(韓扇) 등 한옥 이외에도 우리 전통을 지켜온 곳이다. 또한 예(禮)를 따지며 예(藝)를 추구하는 전주 사람들의 풍류는 남달라, 다른 어느 지역의 정서와는 딱히 비교하기 어렵다. 마주치면 눈인사라도 나눠야만 할 것 같은 한옥마을의 비좁은 골목에서 자란 정(情)이 가득한 덕이다.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도 잘한다. 가져와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전주식’으로 재해석한다. 카카오 열매를 갈아 만든 수제 초코파이가 전주에서 그리도 맛이 좋아지고, 17세기 초 지은 경기전 너머로 보이는 20세기 초의 전동성당이 퍽 어울리는 이유다. 동문 사거리에서 출발해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넓어진다. 걸음을 멈추고 칼국수, 도넛, 회오리감자, 지팡이 아이스크림, 비빔밥 크로켓(고로게) 등 주전부리를 챙겨 먹으면 위장도 커진다. 몇백 년 세월이 조성한 마을이다. 한옥마을을 지켜보는 오목대와 이목대를 살짝 다녀오면 한옥마을의 전경이 눈에 든다. 곳곳에 아기자기한 숍과 전시관, 체험관이 있어 둘러보는 데 한나절쯤은 거뜬히 걸린다. 낮 풍경도 좋지만 해질 녘부터 가랑비처럼 푸른 밤이 내리면 한옥마을이 아름다운 야경으로 갈아입는다. 고풍스러운 가로등과 담장, 기와지붕이 밤하늘과 그렇게도 어울릴 수가 없다. 특히 달이라도 활짝 뜬다면 운치가 좋아 당장 한옥 숙박을 찾아 짐을 풀고 대청마루에 앉아 달 삼매경에 빠져들고 싶다.●한옥스테이서 단청 밤풍경·풀벌레 소리와 1박2일 게스트하우스와 한옥스테이가 곳곳에 많은데 조용히 하룻밤 묵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침 가을 풀벌레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니 뜨끈한 구들장에 몸을 누이고 단단히 여독을 풀 수 있다. 심심하면 전시관이나 숍에서 한지 공예품을 둘러보고 출출할 때 국수나 한 그릇 챙겨 먹으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난다. 최명희문학관, 한지문화관, 강암서예관, 완판본문화관, 전통술박물관, 김치문화관 등을 둘러보면 좋다. ‘위드 코로나’로 재개되는 행사가 많다. 가끔 마당창극이나 풍물 등 공연도 펼쳐질 테니 이를 꼼꼼히 챙겨봐도 좋다. 골목 어귀에 서 있으면 왠지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 들어 아는 사람을 만날 것 같다. 대도시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같이 느끼는 게 인지상정일 테다. 몰아치듯 다가온 가을, 날은 쌀쌀하지만 마음은 푸근하다. 졸졸 흐르는 전주천 개울을 따라 한벽루까지 걷는다. 야속한 비가 섞인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한벽루 앞 평상에는 칼칼한 오모가리(민물고기 매운탕)를 앞에 두고 역시 서늘한 소주를 마시는 이들이 눈에 띈다. 도심 한복판 개천변에 평상 술판이라니. 한 상 차려 걸터앉아만 있어도 절로 흥이 나는 곳이다. 어둑해질 무렵. 어느새 나도 우리가 됐다.●50년 된 노포 갈까, 원도심 ‘객리단길’ 갈까 ‘전주에서의 밥걱정’이야 재벌과 연예인 걱정만큼 부질없다. 한정식, 비빔밥, 콩나물국밥, 피순대 등 전주 대표 메뉴부터 칼국수(베테랑분식)에 물짜장(영흥관), 석갈비 등 단품 메뉴도 한가득이다. 삼천동, 평화동, 서신동, 효자동 등에 막걸리집들이 몰려 있다. 서신동 옛촌막걸리는 내공이 보통 아니다. 바깥에 어디 방송프로에 소개된 집이라 붙여 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집은 미국 뉴욕타임스, 일본 NHK, 중국 CCTV 등에 나온 집이다. 체험 상차림을 고를 수 있어 막걸리를 많이 마시지 않아도 음식을 착착 내온다. 고기나 생선, 해물 반찬 등을 상이 떡 벌어지게 차린다. 삼천동 막걸리 골목 다정집은 그날 장을 봐 온 찬거리로 맛있는 안주를 내는 집이다. 관광객보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집이다.거한 상차림이 싫다면 쫀득한 족발 맛집이 있다. 효자동 권씨네족발은 국내산 생족을 특제 간장에 부들부들 삶아내 족발 특유의 야들한 식감을 최대한 끌어낸 맛으로 유명하다. 취향에 따라 앞다리와 뒷다리를 고를 수 있으며 집에서 담은 깻잎지에 싸 먹으면 궁합이 좋다. 커다란 족발에 비빔막국수와 신동진흑미주먹밥을 곁들인 파티메뉴도 있어 집에서 주문해 먹기에도 딱이다.한벽루는 50년째 한옥마을 전주천변에서 오모가리탕을 줄곧 해 온 노포다. 화려한 상차림과 더불어 각종 민물고기 매운탕과 민물새우탕을 끓여 낸다. 부드러운 시래기도 넉넉히 들었고 따로 밑국물을 잡아 국물의 풍미가 좋다. 서늘한 가을 바람 불어오는 평상에 앉아 매콤시원한 탕 한 그릇에 식사를 겸해 한 잔 걸치기 딱 좋다.영흥관은 50년째 영업해 온 중식 노포다. 전주 명물인 물짜장을 잘한다. 물짜장은 춘장을 쓰지 않고 각종 해물과 채소를 전분소스로 볶아낸 면이다. 그래서 수이자장(水炸醬)이다. 매콤한 소스에 손반죽으로 쫄깃한 면을 비벼 먹으면 전주여행의 즐거움이 더하다. 바삭하게 튀겨낸 두툼한 고기 튀김에 달큼한 소스를 끼얹은 탕수육을 곁들이면 더욱 좋다.한옥마을은 풍남문 남부시장과 이어지고 또 객사길로도 이어진다. 전주 원도심 중앙 객사길은 상권이 밀집한 곳이다. 요즘은 카페와 식당이 그득한 ‘객리단길’로 불리며 한옥마을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긴다. 전주국제영화제 거리로부터 이리저리 이어진 길에는 눈여겨 찾아볼 곳이 꽤 많다. 서울 명동처럼 이름난 국수와 보리밥을 파는 집, 메밀국수로 소문난 집, 갈비집 등 수십 년을 이어 온 노포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바리스타와 소믈리에가 차린 트렌디한 커피숍과 와인 레스토랑 등이 생겨나 공존하고 있다. 전주 행원은 100년 가까운 고택 카페다. 풍남문 옆 골목에 있다. 은행나무 정원이란 뜻을 가진 행원(杏園)은 일제강점기 일본식 건축법이 녹아든 한옥이다. 따로 마당 없이 ‘디귿’ 자 건물을 짓고 중정(건물 가운데 있는 정원)과 못을 두었다. 이곳은 전주 예술인의 성지였다. 1928년 조선요리를 팔던 식도원으로 출발했지만, 요정을 거쳐 한정식집으로 운영되다 2017년 전북전통문화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카페로 바뀌었다. 행원은 전통차와 음료뿐 아니라 판소리와 국악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뒀다. 글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 [오늘의 서울 톡]

    강서 비대면 아동 구강보건교육 지원 강서구는 구강보건교육 영상과 교육용 물품을 활용한 비대면 치아건강 꾸러미 사업을 추진한다. 아동들에게 ‘칫솔질 모래시계 만들기 세트’를 제공해 3분 칫솔질 습관을 잘 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세트엔 교사들을 위한 안내 자료도 함께 들어간다. 이와함께 구는 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칫솔질 인형, 동화책, 치과놀이 가운 등을 교육기관에 대여한다. 교육에 참여하려는 기관은 오는 11월 2일까지 신청서를 작성해 강서구보건소 의약과에 내면 된다. 용산 ‘위수감옥 역사’ 30일 심포지엄 용산구가 오는 30일 오전 10시~오후 6시 용산문화원 3층 대강당에서 ‘용산위수감옥의 역사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연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참석 인원을 제한하고 용산문화원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생중계한다. 위수감옥은 군령을 어긴 일본 군인 등을 가두기 위해 용산기지 내 건설했던 군 시설이다. 발표 주제는 ▲일제강점기 용산위수감옥의 역사 ▲미군정기 대한민청사건과 용산위수감옥 ▲한국전쟁 전후 용산위수감옥의 역사 등 5개다. 종로 ‘스마트팜 사업’ 중앙고 등과 협약 종로구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도심형 스마트팜 사업’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 중앙고등학교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구는 스마트팜 설치를, 해당 학교들은 시설 유지·보수·관리 및 프로그램 운영을 맡는다. ‘스마트팜’은 ICT를 농업에 접목시켜 작물의 생육 환경을 관리하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농장이다. 구는 다음달까지 130여개 개체를 식재할 수 있는 스마트 제어 식물재배기 설치를 마무리한다. 중랑 ‘봉제강사 교육’ 새달 6일까지 중랑구가 오는 6일까지 면목 봉제 강사양성교육을 운영한다. 참가자는 20명으로 모두 패션봉제업체에서 5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우수 봉제인들이다. 교육은 패션산업 및 이미지메이킹 전문가가 초빙돼 면목 패션봉제특구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강의하며 지난 23일 첫 강의가 열렸다. 오는 6일까지 3주간에 걸쳐 ▲패션산업의 이해 ▲기초기술지도 교수법 ▲이미지 메이킹 기법 등 실제 강사양성에 필요한 내용을 위주로 진행한다. 강동 건축행정평가 서울 자치구 중 1위 강동구가 국토교통부 주관 ‘2021년 대한민국 건축행정평가’에서 서울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우수기관(장관상)으로 선정됐다. 강동구는 ▲건축행정절차 합리성 분야 ▲건축관련 안전관리 분야 ▲건축행정 개선 노력 분야 ▲유지관리 적절성 분야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 건축안전센터 설립·운영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위를 기록했다. 구는 건축행정 건실화를 위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과단위로 운영하는 ‘건축안전센터’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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