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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강제동원 피해자 측, 대법원에 “민관협의회 참석한 적 없다” 서면 제출

    [단독]강제동원 피해자 측, 대법원에 “민관협의회 참석한 적 없다” 서면 제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김성주 할머니 측이 특별 현금화 명령을 심리하고 있는 대법원에 준비서면을 제출하고 외교부의 민관협의회에 참석한 적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신속한 판결을 촉구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미쓰비시 근로 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 측 대리인은 지난 11일 이같은 내용의 준비서면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앞서 지난달 외교부와 미쓰비시 중공업 측이 각각 제출한 의견서와 재항고이유보충서의 논리를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의 의견서는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을 찾는 민관협의회를 통해 각계 각층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지난달 29일 재항고 이유 보충서에서 “민관협의체가 구성돼 대안을 마련하고 있으니 결과나 나올때 까지 재판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피해자 측은 미쓰비시 중공업과 외교부가 언급한 ‘민관협의회’에 실제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 측 지원단체와 대리인이 참석하지 않은 점을 들어 판결 연기는 안된다고 반박했다.2018년 대법원이 신일본제철과 미쯔비시 중공업 등 일본 가해 기업의 피해자 원고 14명에게 배상 인정 판결을 내린 이후 양금덕·김성주 할머니는 압류 명령과 특별현금화 명령 등 법적 절차를 밟아 실제 현금화 명령 완성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4일 시작된 민관협의회는 지금까지 3차례 열렸다. 그러나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를 지원하는 일제 강제동원시민모임 측은 민관협의회 첫 회의 직전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적으로 참여 거부 의사를 밝혔다. 강제동원시민모임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 피해자측 대리인 및 지원단체는 위 민관협의체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활동은 이 사건 피해자 측 입장과도 무관하다”며 “따라서 민관협의체의 활동 여부가 재판절차에 영향을 미쳐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원고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해마루와 민족문제연구소는 1차 2차 회의에 참석했으나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이후 “신뢰가 깨졌다”며 불참을 선언한 상황이다. 정부 측은 대법원이 미쯔비시 중공업에 대한 특허권 특별현금화 명령에 대해 심리 불속행 기각 조치를 인용해 오는 19일까지 결론 내릴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 광복군 넋 기린 尹 “무명의 희생, 끝까지 챙기겠다”

    광복군 넋 기린 尹 “무명의 희생, 끝까지 챙기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름도 남김없이 쓰러져 갔던 영웅들을 우리 모두 끝까지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선열 합동 봉송식에서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을 책임 있게 예우하는 데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봉송식은 고 김유신 지사 등 17위 선열들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기 위한 행사다. 윤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고 한휘 지사님의 공적을 정부가 발굴해 건국훈장을 수여함으로써 광복 77년 만에 17위 선열 모두를 국립묘지로 모실 수 있게 됐다”며 17위 선열들의 이름을 모두 호명하고 명복을 빌었다. 윤 대통령은 “오늘날 우리가 마음껏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과 절망 속에서도 오직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분들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이라며 “무명의 희생과 헌신도 국가의 이름으로 끝까지 챙기고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현 봉송을 마친 뒤 윤 대통령은 서울 송파구의 김영관 애국지사 자택을 방문했다.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된 김 지사는 근무 중 탈출해 광복군에 입대해 항일 독립운동 활동을 했고, 이후 건국 훈장 애족장(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김 지사에게 “일류보훈과 국민통합을 실현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애국지사에 대한 예우와 지원을 재차 약속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15일 자유, 법치, 연대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제2의 취임사’ 수준의 광복절 경축사를 발표할 전망이다. 경축사에는 남북관계, 한일관계, 민생·경제 등 향후 국정 운영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핵화를 전제로 한 남북관계 로드맵인 ‘담대한 계획’,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관련 내용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쏠린다. 보수·진보 진영의 이른바 ‘건국절 논란’을 끝낼지도 주목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건국일을 언제로 보든 그 뿌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독립운동이라는 취지의 내용도 담길 것”이라고 전했다.
  • [서울포토] 한국광복군 선열 합동봉송식

    [서울포토] 한국광복군 선열 합동봉송식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을 책임있게 예우하는 데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애국선열 17위의 합동봉송식 추모사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름도 남김없이 쓰러져갔던 영웅들을 우리가 끝까지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행사는 수유리 광복군 합동묘역에 안장됐던 선열 17위를 국립묘지로 봉송하는 것으로, 임시 안치된 서울현충원에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주빈으로 참석해 충열대·묘소에 참배한 데 이어 봉송식에서 광복군 선열 17위에 헌화했다. 윤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우리가 마음껏 누리는 자유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과 절망 속에서도 오직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분들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이라며 “선열들의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수유리 한국광복군 합동 묘소에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중국지역에서 일제에 항거하다 전사하거나 옥중 순국하신 13분을 포함해 17위의 선열들이 지난 60여년간 모셔졌다”며 “광복 77년 만에 17위 선열 모두를 국립묘지로 모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 일제에 체포된 후에도 결코 앉아서 죽을 때를 기다릴 수 없다면서 탈출을 시도하다 순국한 백정현 지사 ▲ 체포돼 잔혹한 고문이 계속되자 군사기밀을 누설하지 않기 위해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옥중자결한 김순근 지사 ▲ 광복 후 귀국해 호림부대에 입대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대북 작전 중 전사한 이한기 지사 등 선열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했다. 윤 대통령은 “무명의 희생과 헌신도 국가의 이름으로 끝까지 챙기고 기억할 것”이라며 “선열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 尹대통령 “독립 위해 쓰러져간 영웅들… 무명의 희생도 끝까지 챙길 것”

    尹대통령 “독립 위해 쓰러져간 영웅들… 무명의 희생도 끝까지 챙길 것”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을 책임 있게 예우하는 데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엄수된 한국광복군 선열 합동 봉송식에 참석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름도 남김 없이 쓰러져갔던 영웅들을 우리가 끝까지 기억해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행사는 수유리 광복군 합동묘역에 안장됐던 선열 17위를 국립묘지로 봉송하는 것으로, 임시 안치된 서울현충원에서 진행됐다. 주빈으로 참석한 윤 대통령은 충열대·묘소를 참배한 데 이어 봉송식에서 광복군 선열 17위에 헌화했다.윤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우리가 마음껏 누리는 자유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과 절망 속에서도 오직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분들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이라며 “선열들의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라고 말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수유리 한국광복군 합동 묘소에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중국지역에서 일제에 항거하다 전사하거나 옥중 순국하신 13분을 포함해 17위의 선열들이 지난 60여년간 모셔졌다”며 “광복 77년 만에 17위 선열 모두를 국립묘지로 모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김유신, 김찬원, 백정현, 이해순, 동방석, 이도순, 김성률, 김운백, 문학준, 안일용, 전일묵, 정상섭, 한휘 지사(이상 한국광복군 제2지대), 김순근, 이한기, 조대균 지사(이상 한국광복군 제3지대), 그리고 현이평 지사(한국청년전지공작대) 등 17위 선열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한 뒤 “무명의 희생과 헌신도 국가의 이름으로 끝까지 챙기고 기억할 것이다. 선열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 일제강점기 잠사공장에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조치원1927’ 개관

    일제강점기 잠사공장에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조치원1927’ 개관

    일제강점기 누에를 치는 잠사공장과 6·25 전쟁 당시 여고 임사교사로 활용되는 등 세종시의 근현대사 가치를 지닌 옛 한림제지 공장이 원도심의 복합문화거점시설인 ‘조치원 1927’로 새롭게 탄생했다. 세종시는 12일 조치원읍 남리 60-1 일원에서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으로 추진한 ‘조치원 1927’ 개관식을 열었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누에를 치는 잠사 생산을 위한 제사공장, 한국전쟁 당시 조치원여고 임시학사 등을 거쳐 1970년대부터 2003년까지 한림제지 공장으로 사용된 이곳이 공연장과, 카페, VR체험관 등이 들어선 문화시설로 탈바꿈했다.세종시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년 가까이 주택가 흉물로 방치된 이 공장을 지난 2017년 국비와 시비 등 161억원을 들여 공장 시설과 벽, 기둥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문화공간 재생사업을 벌였다. 역사적 상징성을 감안해 ‘조치원1927’로 명명된 이곳에는 건물 외부 한림제지 시절 사용하던 벽돌 굴뚝과 저유탱크, 저수조 등 옛 건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 공간에서는 향후 플리마켓, 각종 공연, 아카데미 등 지역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행사들이 펼쳐질 예정이다. 다목적 홀에는 콘서트, 영화 상영, 전시 등을 개최할 무대와 객석이 마련돼 있다. ‘재생’을 주제로 한 공간의 구석구석에는 오래되고 낡은 가구와 소품들이 배치돼 조치원읍과 함께 해온 세월을 떠올리게 한다. 최민호 시장은 “옛 한림제지 공장은 일제 잔재가 아닌 기억할 가치가 있는 근현대건축물”이라며 “‘조치원 1927’는 앞으로 지역과 상생하는 문화거점공간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저항시인’ 이육사 친필 편지·엽서 문화재된다

    ‘저항시인’ 이육사 친필 편지·엽서 문화재된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이자 저항시인으로 활동한 이육사(1904~1944) 시인이 친필로 쓴 편지와 엽서가 국가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11일 그가 지인들에게 일상적인 안부, 생활고에 대한 걱정, 건강을 기원하는 내용 등을 담아 보낸 친필 편지와 엽서 등 총 4점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밝혔다. 한문으로 작성한 친필편지에서는 중외일보 대구지국 근무 시절 그의 생활형편을 짐작할 수 있고, 2점의 친필엽서는 인간적인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다. 이와 함께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천도교 본관은 1921년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함께 건립돼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과 사회계몽 활동이 이뤄진 장소다. 당대 건축술의 한계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민족종교 활동 및 민족운동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어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지난 5월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던 ‘일제강점기 이충무공 묘소 보존과 현충사 중건 민족성금 편지 및 자료’는 이번에 국가등록문화재가 됐다. 1931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소가 팔릴 위기에 처하자 성금 모금 과정에서 작성된 편지와 기록물로, 국내외 2만여명이 모금에 참여해 묘소를 지켰다.
  • 살기 좋고 사기 좋은 곳 어떻게 고를까[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살기 좋고 사기 좋은 곳 어떻게 고를까[장동석의 뉴스 품은 책]

    올해 상반기 전국 아파트 매매 거래가 전년 대비 59.3% 감소하면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출 규제 강화,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들의 바쁜 걸음도 멈췄다.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로 집값이 계속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과 새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로 다시 집값이 오르리라는 기대가 맞부딪치고 있다. 도시 문헌학자 김시덕의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는 국가 프로젝트, 안보, 재난, 교통, 재개발을 키워드로 ‘살기 좋고 사기 좋은 곳’을 찾아 나선 인문학자의 각고의 노력이 담긴 책이다. 그는 일주일에 서너 번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했고, 일제강점기 ‘토지구획 평면도’부터 최근의 ‘도시기본계획’까지 100여 년의 문헌 자료를 참고해 이 책을 썼다. 저자는 한국에서 부동산이 실거주를 위한 ‘살 곳’ (places to live)과 투자를 위해 ‘살 곳’(places to buy)으로 구분된다고 강조한다. 살 집을 구하는 데 교통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역세권이라는 말이 보여 주듯 교통은 아파트의 가격을 매기는 중요한 척도다. 그래서 부동산 업계는 역세권을 비롯해 사통팔달의 요지, 최고의 입지, 전통의 명당 같은 미사여구를 쉽게 남발한다. 분양을 받고서야 아파트가 까마득한 언덕 위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GTX는 최근 부동산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개통 예정지도 아닌데 GTX가 들어온다는 허위 광고도 한둘이 아니다. 정치권 인사들이 표를 얻기 위해 호언장담했던 노선들이 선거 후 유야무야되는 경우도 많이 봐왔다. 개통은 됐지만 실효성이 부족한 곳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안보다. 특히 좋은 땅에 혈안이 된 사람들에게 저자가 주는 충고는 무척이나 실제적이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 구석구석에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여 북한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없도록 지도에 여러 가지 제약이 가해진다. 이어지는 저자의 말은 이렇다. “어떤 지역에 투자하려고 할 때는 지도 애플리케이션의 위성사진 모드를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위성사진에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는 부분을 녹지라고 넘기지 말고, 구글맵에서 확인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장에 직접 찾아가서 그 근처에 군부대가 있는지, 개발이 불가능한 급경사지인지, 맹지인지 등을 확인하는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살기 좋은 곳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정말 살고 싶은 땅이 생겼다면” 자가용으로 휙 둘러보지 말고 “실제로 걸으면서 땅의 높낮이를 확인”할 것을 권한다. “공기의 냄새는 어떤지, 주변의 공장이나 축산단지에서 매연과 폐수가 흘러내리는지 확인하고 직접 버스와 열차를 타며 체감적인 배차 시간도 확인해야 한다.” 평생 모아 마련한 집에서 ‘평생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를 미리미리 읽어 두면 좋을 법하다.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 나흘간 비에 보물 등 문화재 48건 피해

    나흘간 비에 보물 등 문화재 48건 피해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집중호우가 나흘이나 이어지면서 곳곳에서 문화재 피해도 계속되고 있다. 11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8일부터 이날 오후 5시까지 중부지방 집중 호우로 인한 국가지정 문화재 피해는 총 48건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사적이 44건으로 가장 많고 천연기념물 2건, 보물과 등록문화재가 각 1건이다. 지역별로는 경기 27건, 서울 19건, 강원·충남이 각 1건이다. 6월 23일 본격 장마철에 접어든 이후 지금까지 문화재 피해는 총 87건 발생했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최근 나흘새 발생한 것이다. 추가로 확인된 피해 사례를 보면 지난해 보물로 지정된 경기 안성 객사 정청은 이번 비로 담장 일부가 무너져 비를 막기 위한 임시 천막을 설치했다. 안성 객사 정청은 고려시대 건립돼 일제강점기 이후 두 차례 이전됐으나 고려 후기 건축물 특징이 남아있는 건물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된 공주 공산성은 진남루 주변 성곽이 무너진 것으로 조사됐다. 붕괴된 부분은 길이 5m, 높이 2∼2.5m에 이른다. 이곳은 현재 관람객 출입을 통제하고 긴급 보수작업을 준비 중이다. 그 외 나무가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피해도 발생했다. 문화재 피해가 속출하자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구리시 동구릉, 남양주 영빈묘 등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복구 작업을 확인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부러진 나무는 현장에서 정리하고 기와, 담장 피해 등 경미한 사항은 관할 지자체와 함께 자체 조치 중”이라며 “추가 피해로 인한 안전사고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TV 하이라이트]

    [TV 하이라이트]

    ●이것이 야생이다 3(EBS1 오후 9시 50분) 한반도의 바다를 지켜 왔던 독도의 바다사자 강치와 서해의 점박이물범. 강치는 일제강점기에 마구잡이로 포획되며 멸종됐지만 점박이물범은 잊지 않고 해마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북방한계선이 그려진 바다를 자유로이 오가며 백령도에 머문다. 야생동물에게 최고의 쉼터가 된 낯설고 아름다운 섬, 백령도에서 인천녹색연합의 박정운 황해물범시민사업단장을 만나 함께 점박이물범을 찾아 나선다. 물범을 보려면 물때가 맞아야 한다. 썰물 때 바위가 드러나야 물범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물 빠질 때를 기다리는 동안 박 단장과 최수종은 망원경으로 물범의 생태적 특징을 관찰한다. 스킨스쿠버 다이빙 교육까지 수료한 최수종은 거센 조류와 탁한 시야 속에서 과연 점박이물범을 만날 수 있을까.
  • 자박자박 다리 건너… 수백년 삶 잇다

    자박자박 다리 건너… 수백년 삶 잇다

    나이 어린 임금이 어린 왕비와 생이별하던 한여름의 그 다리, 계모의 묘에서 가져온 석물을 거꾸로 뒤집어 다리를 받친 증오의 왕, 열악한 노동 현실에 항거하며 분신한 청년…. 서울 청계천 다리에는 수백년의 시간을 건너온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서울을 강타한 기록적 폭우가 잦아들고, 무더위도 한풀 꺾인 늦여름의 어느 밤, 자박자박 다리밟기 놀이를 즐기며 옛이야기들과 만나 보는 건 어떨까.모전교부터 고산자교까지, 청계천엔 22개의 다리가 있다. 청계천 복원 후 조성된 것들만 따지면 그렇다. 채 6㎞가 못 되는 개천을 따라 걷다 보면 교각 하나하나에 맺힌 무수히 많은 시간 너머의 이야기들과 만나게 된다. 청계천을 걷는 느낌은 독특하다. 지표면 아래를 걷는다. 개천과 도심을 가르는 벽이 혼잡한 풍경을 가리고, 도시의 소음도 막아 준다. 개울 소리, 걷는 사람들의 재잘대는 소리만 그 벽에 메아리처럼 울린다. 들머리는 청계광장이다. 바닥에 구불구불한 물길이 파여 있다. 청계천을 축소한 모형이다. 청계천 초입의 인공폭포 아래에는 팔석담(八石潭)을 조성했다. 경기 일동석 등 전국 8도의 대표 석재로 만들었다.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청계 8경’을 조성했는데, 그중 제1경이 청계광장이다. 청계광장을 기준으로, 청계천의 첫 번째 다리는 모전교다. 예부터 과일가게(毛廛, 모전)가 많아 ‘모전교’라 불렸다고 한다. 모전교는 조형미가 빼어나다. 무지개처럼 반원형으로 휜 홍예교 형태다. 남북으로 쌍을 이룬 교각 사이로 햇살이 비칠 때면 명암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초현대식 건축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모전교 주변엔 경사로 형태의 진출입로가 조성됐다. 휠체어와 유모차도 어려움 없이 오갈 수 있다.두 번째는 광통교(청계 2경)다. 현재 남아 있는 다리들 가운데 가장 고풍스럽고 담긴 이야기도 많다. 광통교는 경복궁에서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연결하는 한양에서 가장 큰 다리였다. 예부터 도성 주민들에겐 수표교와 더불어 정월대보름 다리밟기 명소로 유명했다고 한다. 원래 현 광교 자리에 있던 것을 복원 공사를 하며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광교사거리엔 옛 광통교를 4분의1로 축소한 모형이 전시돼 있다. 광통교는 지대석 위에 사각형의 돌기둥(석주) 8개를 두 줄로 나란히 놓은 형태다. 다리 위는 대부분 청계천 복원 때 새로 만든 것들이지만 아래는 비교적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광통교에는 조선 3대 왕 태종과 신덕왕후 강씨(태조의 계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신덕왕후는 1392년(태조 1년)에 자신이 낳은 아들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며 권력의 중심에 서지만, 1396년에 돌연 병으로 사망한다. 이후 태조의 첫째 부인의 아들인 방원(태종)이 권좌에 오르며 복수가 시작된다. 신덕왕후의 아들 때문에 왕좌에 오르지 못할 뻔했던 태종은 다양한 방법으로 신덕왕후 묘를 핍박했다. 그중 하나가 1410년 광통교를 흙다리에서 돌다리로 개축할 때 신덕왕후의 능을 지키던 신장석을 뽑아 교대(다리 양쪽 끝을 받치는 석축이나 기둥)의 부재로 쓴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를 뭇사람들의 발에 밟히며 고통을 받으라는 증오의 표출이었다고 해석한다. 광통교 아래 교대의 신장석은 지금도 거꾸로 뒤집힌 채 여행객을 맞고 있다. 교각에는 ‘庚辰地平’(경진지평), ‘癸巳更濬’(계사경준), ‘己巳大濬’(기사대준) 등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경진지평은 영조 36년(1760년)에 땅을 평평히 했다는 뜻으로 이때 준천(개천 바닥을 깊이 파냄)했다는 표시다. 계사경준과 기사대준 역시 각각 계사년과 기사년에 준천했다는 뜻이다.광교는 광통교가 있던 자리에 새로 놓인 다리다. 조선시대 광통방에 있던 크고 넓은 다리를 광교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됐다. 이름처럼 광교는 다리를 받치는 주황색 철재 빔의 웅장하고 박력 넘치는 자태가 압도적이다. 교량 밑 공간도 넓다. 청계천 다리 가운데 하류의 고산자교에 이어 두 번째다. 광교 아래 공간에선 미술전, 사진전 등의 이벤트가 곧잘 열린다. 광통교와 광교 사이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하이커 그라운드’(HiKR Ground)가 있다. MZ세대에 포커스를 맞춘 관광 콘텐츠들이 다양한 스마트 기술과 접목돼 1층부터 5층까지 펼쳐진다. 5층에 밖으로 돌출된 베란다가 나 있는데 아직 입소문이 덜 나서인지 찾는 이가 드물다. 청계천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딱 좋다. 입장은 무료다.장통교는 조선시대 도성 중부의 행정 구역이었던 장통방(長通坊) 자리에 세워진 다리다. 장통교 아래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청계 3경)가 있다. 김홍도의 그림을 바탕으로, 조선 22대 왕 정조가 수원 화성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도자 타일 5120장에 이어 붙여 표현했다. 그 아래 삼일교는 3·1 만세운동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종로구 인사동의 고풍스러운 이미지와 중구 명동성당 일대의 현대적인 감각이 연결되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수표교는 청계천의 수위를 재는 수표(水標)가 있었다는 다리다. 1420년(세종 2년)에 세워진 수표교는 1959년 청계천 복개 당시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고, 수표(보물)는 홍릉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 보관 중이다. 청계천 복원 때 원래 위치로 돌려놓으려 했으나 다리 너비와 강폭이 맞지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고 한다. 수표교엔 조선 19대 왕 숙종과 장희빈의 이야기가 전한다. 둘의 만남에 관한 여러 버전의 야사 중 하나다. 숙종이 수표교 남쪽의 영희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아리따운 여인을 보게 된다. 나중에 그를 불러 궁녀로 삼았는데, 그가 바로 희빈 장옥정이다. 관수교는 1918년 일제강점기 때 세워졌다. 현 창경궁로와 배오개길을 오가던 전찻길이 관수교 위에 놓였다고 한다. 현재의 다리는 청계천 복원 때 조성된 것이다. 세운교는 조선시대 효경교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근처에 소경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맹교(盲橋), 소경다리 등으로도 불렸다. 현 이름은 세운상가에서 따왔다. 다리 상판에 약 1m의 강화유리를 깔아 아래를 볼 수 있게 했다.배오개다리는 들끓는 도적 탓에 길손 백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었다는 ‘백고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보행자 전용의 새벽다리는 방산시장과 광장시장에서 새벽을 여는 시장 사람들의 활기를 담았고, 마전교는 소와 말을 매매하는 마전(馬廛)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3차원의 아치로 나비를 형상화한 나래교는 인근 동대문 의류 상권이 세계 패션 1번지로 비상하라는 뜻을 담았다. 바닥에 투명 아크릴을 깔아 아래가 보이게 했다. 전태일다리엔 전태일 열사의 반신상이 세워져 있다. 예전에 왕버들이 많았다 해서 버들다리로도 불린다. 오간수교는 오간수문이 있던 자리에 세운 다리다. 오간수문은 도성을 몰래 들고 나려는 범죄자들이 종종 통로로 이용했다고 한다. 조선 13대 왕 명종 때는 임꺽정의 무리들이 전옥서에 갇힌 가족들을 구한 뒤 오간수문을 통해 달아났다고 전해진다. 1926년 6월엔 순종황제의 국장 행렬이 이 다리를 지났다. 전태일다리와 오간수교 사이에는 청계 4경인 ‘패션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현대미술가들의 작품과 음악분수 등을 즐길 수 있다. 맑은내다리는 청계천을 순 우리말로 바꾼 이름이다. 다산교는 정약용을 기리는 다리로, 사장교 가운데 주탑을 풀잎 형태로 세워 인상적이다.영도교엔 6대 왕 단종의 슬픈 역사가 서렸다. 원래 이름은 영미교(永尾橋)다. 1457년 음력 6월 22일, 노산군으로 격하돼 강원 영월로 유배 가던 단종이 이 다리에서 나이 어린 부인 송씨(정순왕후)와 생이별을 했다. 이후 ‘영원히 건너가신 다리’라 해서 영도교(永渡橋)가 됐다고 전해진다. 영도교는 전통 대청양식을 적용한 아치교다. 다리 중심부 양쪽에 베란다 모양의 공간을 마련해 아름다움과 기능성의 조화를 이뤘다. 다리 위 기둥 형태의 조형물은 경복궁의 열주(기둥)와 돌다리였던 조선시대 영도교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엔 청계 5경 ‘청계빨래터’가 조성돼 있다.황학교는 황학(黃鶴)의 전설에서, 비우당교(庇雨堂橋)는 세종 때의 청백리 유관의 집 이름에서 각각 명칭을 따왔다. 비우당은 ‘비나 피할 정도의 집’이라는 뜻이다. 높은 벼슬을 지낸 유관이었지만 집은 방 안에서 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허름했다고 한다.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청계 6경 ‘소망의 벽’이 있다. 각자의 소망을 표현한 도자 타일 2만여장이 부착됐다.무학교는 조선 개국 초기 무학대사의 법명에서, 두물다리는 성북천과 청계천 등 두 물길이 합류하는 지점이라는 뜻에서 각각 이름을 따왔다. 비우당교와 무학교 사이에는 청계 7경인 ‘존치 교각’이 있다. 옛 청계천 고가도로의 교각 중 세 개를 남겨 둔 것이다. 이후로도 청계천 판잣집 테마존, 청계천 박물관, 고산자교, 버들습지(청계 8경) 등이 이어진다.
  • 그는 김씨가 아니고 전씨였다… 4·3 군사재판 신원 확인 이제 237명 남았다

    그는 김씨가 아니고 전씨였다… 4·3 군사재판 신원 확인 이제 237명 남았다

    #군사재판 수형인 전○○(본명)는 수형인 명부에 제주읍 외도리 2xxx번지 김○○ 1949년 사형 기록이 있었다. 그러나 수형인 명부의 외도리 2xxx번지 토지대장을 통해 토지 소유주가 전○○으로 기록되어 있었고, 이를 토대로 제적등본을 확인했다. 수형인 명부의 기록된 번지수와 같은 번지수의 토지 소유자가 이름이 같다는 점, 수형인 명부에 기록된 나이와 제적등본의 나이가 유사하며, 희생자 결정 당시 정뜨르 비행장에서 총살되었다는 내용 등을 종합할 때, 수형인 명부의 김(金)은 전(全)을 잘못 오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 수형 피해자 167명 신원 추가 확인총 2293명 91% 신원 확인 제주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수형인에 대한 재심이 70여년 만에 이뤄지는 가운데 수형 피해자 167명의 신원이 이같은 확인과정을 거쳐 추가로 확인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4·3 군사재판 수형인 2530명에 대한 자료 분석과 현장 조사를 통해 167명의 신원을 추가로 확인해 7월말 기준 총 2293명(91.0%)의 수형인들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도는 4·3위원회 직권재심 권고과정에서 4·3희생자로 결정된 1931명 이외에 수형인 명부와 4·3희생자 결정 내용을 토대로 심층 분석한 결과 지난 6월 195명을 추가로 확인해 총 2126명의 4·3 군사재판 수형인 신원을 확인한 데 이어 이번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수형인까지 포함해 추가로 167명을 확인하게 됐다. 이제 이제 237명만 신원확인이 되지 않았다. 또한 신원 확인 2293명 중 희생자로 결정된 신원은 2220명이며 나머지 73명은 아직 희생자로 미결정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추가 수형인의 신원은 지난해 4·3특별법 후속조치를 위한 전담조직 신설 이후 약 1년간 각종 4·3 관련 자료 분석을 통해 파악한 것이다. 특히 도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하 합동수행단)에서 신속한 직권재심 청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아래와 같이 행정조사를 추진해 왔다. ● 수형인의 성명·연령·본적 오기 또는 이명 사용연좌제 피해 우려 미신고도 최초에는 수형인명부와 4·3희생자 자료를 서로 비교해 이름이나 등록기준지(본적) 등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신원을 확인했으며, 이후 희생자 결정 당시 내용을 일일이 살펴 인적사항 등 자료를 분석하고 당시 진술, 이명(異名) 또는 아명(兒名), 본적 등을 심층 조사해 추가로 확인했다. 이후 수형인 신분의 단서가 될 수 있는 1999년 도의회 4·3특위 신고서, 국회 양민학살조사보고서, 추가진상보고서, 마을별 실태조사보고서, 4·3희생자 중복신고 철회자료, 2021년에 접수된 7차 희생자 신고자료 등을 비교 분석했다. 또한 제적부 전수 확인, 수형기록 신청자료 분석은 물론 1910년대 일제강점기 토지 일제조사에 따른 구 토지대장 등의 사료를 통해 상당수 확인했으며, 아울러 합동수행단 및 4·3유족회와 협업으로 마을별 경로당, 리사무소 방문 등 사실조사에 나서 추가로 167명의 군사재판 수형인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수형인의 성명·연령·본적이 오기(誤記), 착각, 부지(不知), 이명(異名) 사용 등으로 실제와 상이한 경우와 함께 연좌제 피해를 우려해 희생자 신고를 하지 않은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다. ● 167명 직권재심 청구 전망사실조사 전담조직 가동 도는 수형인의 신원 파악이 재심의 전제이기 때문에 향후 직권재심 추진 과정에서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직권재심은 수형인 명부에 기록된 2530명을 대상으로 하는데, 대상자가 기록된 수형인 명부가 호적(제적)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부의 인물을 호적(제적)에서 찾아 대상자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재심의 시작점이다. 도에서 추가로 확인한 167명은 향후 합동수행단의 검토를 거친 뒤에 재심 청구로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도는 군법회의 수형인 신원 미확인자에 대한 사실조사 전담 조직(총 8명)을 가동해 신원을 확인해 나갈 방침이다. 군법회의 수형인에 대한 동일인 확인을 위해 추가 진술, 증언 등의 자료를 확보하는 한편, 희생자로 결정되지 못한 73명의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해서는 내년 상반기 8차 희생자 추가 신고기간 중 신고를 통해 희생자로 결정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조상범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최근 자료조사는 물론 면밀한 현장조사를 통해 군사재판 수형인의 단서를 찾아냈다”며 “앞으로도 미확인 군사재판 수형인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 윤동주 본적은 천안 ‘독립기념관로 1’

    윤동주 본적은 천안 ‘독립기념관로 1’

    일제강점기에 사망한 데다 직계 후손이 없어 무(無)호적 상태였던 윤동주 지사 등 독립운동가 156명에게 본적이 생겼다.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공적 서류가 없었던 독립 영웅들이 서류상 엄연한 국민이 된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9일 윤동주·송몽규 지사 등을 포함한 ‘무호적’ 독립유공자의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마쳤다고 밝혔다. 직계 후손이 없는 독립유공자의 가족관계등록을 정부 직권으로 창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립유공자들의 등록기준지는 독립기념관 주소인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이다. 보훈처는 10일 독립기념관에서 독립유공자들의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기념하는 ‘무적의 독립영웅, 이제는 완전한 대한국인입니다’ 행사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는 윤 지사의 조카 인석씨와 송 지사의 조카 시연씨, 황원섭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인요한 보훈처 정책자문위원장, 박가영 연세문학회장 등이 참석한다. 보훈처는 윤인석·송시연씨에게 가족관계증명서를 수여할 예정이다. 이들 156명은 일제강점기 조선민사령 제정(1912년) 이전 국외로 이주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광복 이전에 사망해 대한민국 공적 서류상 적(籍)을 부여받지 못했다. 보훈처는 이번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위해 독립유공자의 원적·제적, 유족 존재 여부, 생몰연월일, 출생·사망 장소 등의 신상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지난달 가족관계등록 창설 허가신청서를 서울가정법원에 직권으로 제출했고, 천안 동남구 목천읍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독립영웅들을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토록 그리워했던 새로운 고향,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과 겨레의 얼이 살아 숨 쉬는 독립기념관으로 모시게 돼 매우 뜻깊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독립유공자들의 희생에 감사하는 의미로 ‘독립유공자의 집’ 명패를 독립기념관에 설치할 계획이다.
  • 출국자 짐 속 수상한 골동품, TV진품명품 그 물건… 밀반출 딱 걸렸어![공무원 어디까지 아니]

    출국자 짐 속 수상한 골동품, TV진품명품 그 물건… 밀반출 딱 걸렸어![공무원 어디까지 아니]

    최근 인천국제공항을 오가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면서 문화재 밀반출 우려도 함께 높아지게 됐다. 문화재청 소속으로 인천공항에 상주하는 문화재감정위원들은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했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임무를 맡은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인사혁신처 도움을 받아 김종민 문화재감정위원을 9일 인천공항에서 만나 문화재 지킴이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화재감정위원의 역할을 자세히 설명한다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물건은 현행 문화재보호법으로 해외 반출을 금지한다. 따라서 공항과 항만에서 출국 승객의 수하물과 휴대품, 국제우편에 문화재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그 역할을 우리가 담당한다. 국내 반입을 관할하는 관세청의 요청을 받아 감정해 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문화재 반출을 막았을 때가 기억이 많이 날 것 같다. “2011년부터 2014년에는 대구공항에서 비상근으로 일했다. 2012년에 짚신을 비롯해 정과 망치, 제작틀 등 짚신 제작도구를 반출하려는 걸 적발한 적이 있다. 출국하는 승객 짐에 도자기가 있었는데 뭔가 의심이 들어 짐을 더 조사했다. 거기서 짚신 공구를 찾아냈다. 단속에 걸린 물품은 우리가 임시보관했다가 주인에게 되돌려줬다. 민속품으로서의 가치가 큰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법 모르고 신고 안 해 걸리는 게 절반 -법규를 몰라 낭패를 보는 사례도 있겠다. “한국학을 전공하는 독일인 학자 사례는 지금도 안타깝다. 연구를 위해 조선시대 말기 책을 많이 사서 독일로 가져가려다 적발됐다. 우리에게 이 책이 얼마나 가치 있는 책인지 설명해 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연구 차원이라는 걸 감안해 훈방조치하고, 책은 모두 압수해서 국가에 귀속시킬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사전 신고하고 감정을 받을 수도 있는데 법을 몰라 신고하지 않았다가 단속대에서 걸리는 게 절반가량이다. ‘TV진품명품’에서 감정가들이 인정한 골동품도 있었다. 사실 한국은 문화재를 약탈당했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외국에 비해 더 엄격하게 문화재 반출에 대응한다고 할 수 있다.”-일부러 골동품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던데. “현재 한국에서 골동품 감정 결과를 공인해 주는 국가기관은 여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나온 고서적의 감정액을 알고 싶다며 일부러 항공권을 구입한 뒤 감정을 받고는 항공권을 취소한 사람도 있었다. 내가 조사한 사례는 아니지만, 30억원 정도 값어치가 있는 고려불화라며 감정요청을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 있었는데 감정해 보니 모조품이어서 소동이 일기도 했다. 골동품이면 무관세인데 골동품이 아니라서 현대 공예품으로 분류돼 관세를 내게 됐다. 이래저래 화를 많이 냈다고 들었다.” ●국보급 ‘오대산사고본’ 日서 되찾기도 -문화재를 반입하다 걸리는 사례도 있겠다. “해외에서 경매로 골동품을 구매해 들여오기도 한다. 2018년에 조선왕조실록 중에서도 ‘오대산사고본’(五臺山史庫本) 효종실록 1책을 일본 교토 경매에서 거액을 주고 구매한 뒤 입국한 사람이 있었다. 본인이 직접 세관 신고를 해 관세청이 우리에게 감정요청을 했다. 오대산사고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밀반출해 도쿄제국대학이 소장하고 있었다.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 때 대학에 있던 건 모두 불에 탔고, 천만다행으로 당시 도서대출된 게 살아남았다. 화재를 피했다가 반환된 게 그때까지 74책이었는데, 일부 파악이 안 된 게 있었던 것이다. 오대산사고본은 국보급 문화재라고 할 수 있어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구매해서 소장하고 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업무인 것 같다. “언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3교대로 24시간 근무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철야 근무를 해야 한다. 문화재감정위원은 경험과 안목, 끊임없는 공부가 필수인 데다 사람이 적은 게 항상 아쉽다. 특히 최근 반출 경향을 고려한다면 민속품과 복식 분야는 전공자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민속품은 엑스레이 검사를 해도 적발이 쉽지 않은 데다 전공자가 아니면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도 쉽지 않다. 열악한 근무여건 속에서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건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지킨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고려시대 ‘사경’ 희소성만큼 연구 필요 -불교미술로 학위를 받았다. “사실 학부에선 성악과를 다녔다. 아버지가 피아노 조율사를 하면서 악기 판매업도 한 영향이 컸다.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서 사학과 수업도 듣곤 하다가 아예 전공을 미술사학으로 바꾸게 됐다. 고려 사경(寫經)을 전공한 지도교수를 이어받아 조선 사경을 전공했다. 불경을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베껴 쓰는 종교활동 성격이 강한데, 특히 사경을 예술 경지로 제작한 건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워낙 희소해서 실물을 접하기도 힘들고 밀반출된 것도 많다 보니 불교미술사에서 연구가 가장 부족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수몰 위기를 맞은 인각사 지키기 운동에 참여하는 등 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관심이 많던 차에 2011년 비상근 문화재전문위원 제안을 받아 지원을 했다. 2014년 전문임기제가 됐고, 2016년부터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고 있다.” -문화재감정위원 업무에 관심이 많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틈날 때마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고 답사도 많이 다녀서 직접 눈으로 보는 게 중요하다. 안목을 키우려면 많이 봐야 한다. 나쁜 물건만 봐서는 안목을 키울 수가 없다. 문화재 감정을 수십년 해도 모조품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하는 건 제대로 된 작품을 충분히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 신동원 서울시의원, 태릉골프장 일대 공원화 촉구

    신동원 서울시의원, 태릉골프장 일대 공원화 촉구

    서울특별시의회 주택균형개발위원회 신동원 시의원(국민의힘·노원구 제1선거구)은 지난 5일 (제312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노원구 공릉동 태릉골프장 일대 공공주택지구 지정 계획 반대 및 공원화 추진을 촉구했다.  2020년 8월 국토교통부는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8.4대책)’을 통해 노원구 공릉동 태릉골프장 일대에 1만 호의 주택 공급을 발표한 이후 2021년 8월 공급 규모를 6천 8백 호로 조정하고 현재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커 8월 5일 서울특별시의회 제312회 임시회 본회의에 ‘노원구 공릉동 서울태릉골프장 일대 공공주택지구 지정 반대에 관한 청원’이 상정되었고 통과됐다. 신 의원은 태릉골프장 녹지의 우수한 점을 언급하며 “탄소중립 추진 전략 중 하나가 도심숲과 녹지공간 조성이 있는데 천연기념물들과 오래된 적송들이 있는 태릉골프장을 공원화한다면 탄소중립 방향에도 맞고 서울시민들의 행복한 휴식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신 의원은 태릉과 태릉골프장이 화랑로 6,7차선으로 양분된 점을 지적하며 “일제강점기 때 가운데에 도로를 내어 양분된 지점을 공원화한다면 일제에 의해 맥이 잘린 능역의 모습이 복원돼 역사를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 윤동주 본적은 ‘독립기념관로 1’, 독립지사 156명, 독립기념관에 호적 생긴다

    윤동주 본적은 ‘독립기념관로 1’, 독립지사 156명, 독립기념관에 호적 생긴다

    직계후손이 없어 대한민국 국민임을 나타내는 공적 서류가 없었던 윤동주 지사 등 독립 영웅 156명에게 본적이 생겼다. 국가보훈처는 9일 윤동주·송몽규 지사 등을 포함한 “‘무적’(無籍) 독립유공자의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보훈처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사망해 국내에 호적이 없었던 독립유공자들 가운데 직계후손이 있는 경우엔 2009년 개정된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독립유공자법)에 따라 그 후손이 가족관계등록(옛 호적) 창설을 신청하면 정부가 이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직계후손이 없는 독립유공자의 가족관계등록을 직권으로 창설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훈처는 이번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위해 독립유공자의 원적·제적, 유족 존재 여부, 생몰연월일, 출생·사망장소 등 신상정보를 일일이 확인하고 사실관계에 맞게 정정하는 작업을 거쳐 가족관계등록 창설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 7월엔 서울가정법원에 독립유공자들의 공적·신상 관련 정보와 가족관계등록 창설 허가신청서를 직권으로 제출했고, 허가등본을 받은 천안 동남구 목천읍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했다. 증명서에 기재된 등록기준지는 독립기념관 주소인 ‘충남 천안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이다. 이와 관련, 박민식 보훈처장은 “156명의 독립영웅들을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토록 그리워했던 새로운 고향,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과 겨레의 얼이 살아 숨 쉬는 독립기념관으로 모시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했다. 보훈처는 10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독립유공자들의 가족관계창설을 기념하는 ‘무적의 독립영웅, 이제는 완전한 대한국인입니다’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날 행사엔 윤동주 지사의 조카 윤인석씨와 송몽규 지사의 조카 송시연씨, 황원섭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인요한 보훈처 정책자문위원장, 박가영 연세문학회장 등이 참석한다. 박 처장은 행사에서 윤인석·송시연씨에게 가족관계증명서를 수여할 예정이다. 또 보훈처는 나라를 위한 독립유공자들의 희생·헌신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독립유공자의 집’ 명패를 독립기념관에서 설치할 계획이다.
  • “정부, 日과 협상 때 ‘강제동원’ 보상받아… 피해자에게 과오 사과해야” [이석우의 국제법 포럼-천동설에서 지동설의 나라로]

    “정부, 日과 협상 때 ‘강제동원’ 보상받아… 피해자에게 과오 사과해야” [이석우의 국제법 포럼-천동설에서 지동설의 나라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군수 물자 생산을 위해 사실상 강제징용을 당한 피해자들이 당시 군수 회사에 뿌리를 둔 지금의 일본 기업을 상대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다.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된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동일한 소송이 일본 법원에서 진행됐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과 달리 헌법 정신과 배치되는 일본 법원의 판결을 인정할 수 없고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은 전혀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2심 법원은 피해자인 원고들에게 각각 1억원 및 8000만원 상당의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명하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이 불복해 재상고하고 대법원이 기각함으로써 판결은 확정됐다. 피고 기업들은 원고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원고는 피고 기업의 국내 소유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절차(현금화)를 밟아 이제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전지방법원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의 상표권과 특허권에 대한 매각 명령이 내려진 상황이며, 신일철주금이 한국에서 포스코와 합작 법인으로 설립한 주식회사 PNR의 주식에 대해서도 압류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미쓰비시중공업이 낸 재항고를 대법원이 기각하면 올가을쯤 현금화가 이뤄진다. 정부는 지난 7월 4일 강제동원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민관협의회를 출범시킨 데 이어 대법원에 “해결책을 마련 중이므로 현금화 절차를 늦춰야 한다”는 의견서도 제출했다. 민관협의회에 참여한 원고 측은 정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내자 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정부가 어떤 해법을 가지고 피해자들을 설득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일협상 대일 청구 범위 日법인 포함 원고 대리인과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는 7월 18일 외교부에 ‘외교적 보호권’과 관련한 세 가지 질의를 했다. 첫째, 정부는 강제동원이 일본 기업만의 불법행위라고 판단하는지 아니면 일본 정부·기업의 공동불법행위라고 판단하는지, 둘째, 정부는 강제동원 불법행위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 성립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지, 셋째, 외교적 보호권 성립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의했다. 외교부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외교부가 답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답이 국제법과 외교적인 해법에 가장 적합할까. 1952년 말부터 국교정상화 및 전후 보상 문제를 협의한 한일 정부는 1965년 6월 22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그 부속 협정의 하나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은 한국에 10년간 3억 달러를 무상으로, 2억 달러를 차관으로 제공하기로 함과 동시에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한 것으로 확인했다. 당시 의사록을 보면 ‘한국의 대일 청구 요강’ 범위에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 청구, 한국인의 일본인 또는 일본 법인에 대한 청구가 포함돼 있었다. 즉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시켜 일본과 협상을 했고,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권은 모두 소멸됐다고 주장한다.●대법원 한일협정 해석 국내에만 효력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 성격에 관한 첫 번째 질의의 정답은 사실 정해진 것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는 일제식민지 강제동원은 불법행위이며, 구체적으로는 일본 정부와 기업의 조직적인 공동불법행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원고들이 손해배상 소송의 피고를 일본 기업으로 한정했고, 일본 정부를 피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판단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불법성이 일본 정부와 무관한 일본 기업의 단독불법행위라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 빈약한 주장이다.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해 대법원이 어떻게 해석하든 이는 국내에서만 효력을 갖는 것이며 한일이 체결한 조약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주장하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 그에 따른 식민지 강제동원의 불법성과 일본이 주장하는 식민지 지배의 합법성은 타협이 어렵다. 식민 지배의 합법·불법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타협이 있었기에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나온 것이다. 한일기본조약 체제에 내재한 일제강점기에 대한 한일의 대립적인 인식은 사실 자체로 인정해야만 한다. 외교적 보호권과 관련한 두 번째, 세 번째 공개질의는 상호 연관돼 있다. 외교적 보호권은 어느 국가가 타국의 국민에게 신체나 재산상의 피해를 보게 한 경우 피해를 본 국민의 국적국이 외교 조치나 평화적 수단을 통해 가해국에 대해 적절한 구제를 청구하는 것으로 관습국제법상 인정되는 국가의 고유한 권리다. 국가가 자국민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며 자국민도 이를 주장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 피해국이 자국민을 위해 청구를 제기할 의무를 갖는 것도 아니며, 피해국이 스스로 포기하거나 피해국의 행위로부터 추론되는 묵인(默認)에 의해 또는 합의를 통해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할 수 있다. 피해국은 외교적 보호권 행사 여부나 수단 등을 결정할 때 국익을 기준으로 가해국과의 정치·외교적 영향을 고려한다. 행정부의 재량 행위인 외교적 보호권 행사와 관련해 각국의 사법부는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심사를 자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외교적 보호권의 판단 기준 가운데 타국의 위법·불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했는지 여부는 중요하다. 사법부의 판결은 국가기관을 기속(羈束)하므로, 대법원 판결에 근거할 때 일본 정부의 위법·불법행위로 원고들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의 성립 요건 즉 보호 대상에 포함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외교적 보호권의 보호 대상이더라도 정부가 외교적 보호권을 반드시 행사해야만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국적국 정부가 자국민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가해국 정부에 대해 외교적 보호를 행사해 일괄 협정으로 배상금 또는 보상금을 받았다면 양자 사이의 문제는 해결되고 국내적으로 배상금 또는 보상금을 지급하는 문제만 남는다. 따라서 동일한 문제에 대해 더이상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할 여지는 없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외교적 보호권의 행사로 피해자 원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해 일괄 협정으로 배상을 받았기에 한일 사이의 문제는 해결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日기업 피해 땐 韓에 구제청구 불 보듯 따라서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및 청구권협정 체결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피해자 문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과오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해당 사안에 대한 국내 이해당사자 간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모든 피해자에 대한 신속하고 충분한 보호와 과거사 문제의 올바른 해결이라는 정책적 대안을 포함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 뒤 선행 조치로서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 이전에 해당 손해배상금을 선지급하고, 종국적으로는 특별법 제정의 입법 행위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에 대해 일률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른 선배상을 해야 한다. 이후 외교적 협의를 통해 일본 정부 및 관련 기업들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신탁금을 받아 피해자 및 유족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을 실행하는 방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 없이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가 이뤄진다면 일본 정부는 피해를 본 기업의 국적국으로서 가해국인 한국에 대해 적절한 구제를 청구하는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한일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임이 자명하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되살아난 100년 전 국내 첫 지질도

    되살아난 100년 전 국내 첫 지질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팀이 국내 최초 지질도인 ‘조선지질도’는 물론 한국 지질학자들이 만든 ‘대한지질도’ 복원에 성공했다고 8일 밝혔다. 등록문화재 603호인 조선지질도는 일제강점기인 1924~1938년에 5만대1 축적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 지질도로, 국내 지하자원을 탐사하는 용도로 활용됐다. 처음으로 한반도 전체에 대한 면밀한 지질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광복 이후인 1956년 순수 국내 지질학자들이 제작한 축적 100만대1의 대한지질도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조선지질도는 찢어지거나 닳아 내용 판독이 어려워 복원이 필요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연구팀은 1년 동안 변색, 경화, 왜곡된 부분을 개선하고, 심하게 구겨지거나 찢어진 부분은 보존성이 우수한 한지를 이용해 보강하는 등 복원 처리를 해 보존수명을 연장시켰다. 연구팀은 조선지질도 이외에도 1956년에 만들어진 대한지질도와 그 영문본, 1981년판 대한지질도도 이번에 복원했다.
  • “징용기업 자산 현금화 땐 가장 피해받는 건 피해자”

    “징용기업 자산 현금화 땐 가장 피해받는 건 피해자”

    윤덕민 주일본 한국대사가 8일 “국내에 압류 중인 일본 기업의 자산을 현금화했을 때 가장 피해를 받는 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라고 말했다. 윤 대사는 이날 도쿄 미나토구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강제징용(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가 몇 년 동안 방치되면서 일본 기업의 자산이 압류돼 있고 현금화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윤석열 정부 첫 주일대사로 지난달 16일 부임한 윤 대사는 이날 첫 특파원 간담회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이행을 위한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자산 매각(현금화)의 동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사는 “현재 피해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은 1억원 정도의 배상을 받는 사안”이라며 “일본 기업 자산은 물질적인 것들이 아닌 브랜드, 특허권 등인데 이를 경매를 통해 현금화해 충분한 보상을 받을 만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사는 “그렇게 (현금화)했을 경우 일단 일단락되는 상황이겠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적을 텐데 그렇게 되면 승자가 없는 상황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반적으로 현금화했을 때 가장 큰 피해는 피해 당사자들이 보게 될 수 있고 한일 양국은 물론 기업과 국민까지 천문학적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으로 일본의 보복과 그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이어지면서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윤 대사는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를 먼저 막고 사법의 영역이 아닌 외교적 해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안(일본 기업의 배상 참여와 사과 등)에 대해 일본은 이를 다 수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윤 대사의 사퇴를 요구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성명을 통해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일본 정부를 설득하고 대법원 판결 실현을 위해 외교적 노력에 앞장서야 할 주일대사의 책무를 망각한 대단히 위험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 윤덕민 “일본자산 현금화에 가장 피해받는 건 강제동원 피해자…외교로 해결”

    윤덕민 “일본자산 현금화에 가장 피해받는 건 강제동원 피해자…외교로 해결”

    윤덕민 주일본 한국대사는 8일 “국내에 압류 중일 일본기업의 자산을 현금화했을 때 가장 피해를 받는 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라고 말했다. 윤 대사는 이날 특파원 간담회에서 “강제징용(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가 몇 년 동안 방치되면서 일본 기업의 자산이 압류돼 있고 현금화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윤석열 정부 첫 주일대사로 지난달 16일 부임한 윤 대사는 이날 첫 특파원 간담회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가 가장 어려운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 개개인의 인권 문제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면서 국가가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며 “어렵지만 피해자를 최대한 설득해 이야기를 나누며 피해자가 바라는 방향 속에 국가가 최선을 다해야하고 그렇게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사는 “현재 피해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은 1억원 정도의 배상을 받는 사안”이라며 “일본기업 자산은 물질적인 것들이 아닌 특허권 등인데 이를 경매를 통해 현금화한다면 충분한 보상을 받을 만한 자금을 마련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게(현금화) 했을 경우 일단 일단락되는 상황이겠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적을 텐데 피해자 단체로서는 도덕적 승리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승자가 없는 상황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또 “한일 관계는 치명적 피해를 입을 것이고 우리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도 날아갈 수 있다”라며 “전반적으로 현금화했을 때 가장 큰 피해는 피해 당사자들이 될 수 있고 한일 양국은 물론 기업과 국민까지 천문학적 피해가 우려된다”라고 강조했다. 윤 대사는 일본기업 자산 현금화를 먼저 막고 사법의 영역이 아닌 외교적 해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피해자들에게 가장 큰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외교가 작동될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안(일본기업의 배상 참여와 사과 등)을 100% (일본이) 받아들였다면 현재의 한일 관계가 이렇게 되지 않았겠지만 일본은 이를 다 수용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사는 “그럼에도 국가가 최대한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하며 문제 해결에 나서기 위해 공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 100여년 전 제작된 국내 첫 지질도 복원 성공

    100여년 전 제작된 국내 첫 지질도 복원 성공

    일제 강점기 국내 지하자원 탐사에 활용됐던 국내 첫 지질도가 복원됐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팀은 국내 최초 지질도인 ‘조선지질도’는 물론 한국 지질학자들이 만든 ‘대한지질도’ 복원에 성공했다고 8일 밝혔다. 등록문화재 603호인 조선지질도는 일제 강점기인 1924~1938년에 5만대 1 축적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 지질도이다. 일제가 국내 지하자원 수탈을 위해 만든 지도이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한반도 전체에 대한 면밀한 지질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됐다는데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지질도는 광복 이후인 1956년 순수 국내 지질학자들이 제작한 축적 100만대 1의 대한지질도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조선지질도는 찢어지거나 닳아져 내용 판독이 어려워 복원이 필요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연구팀은 1년 동안 변색, 경화, 왜곡된 부분을 개선하고, 심하게 구겨지거나 찢어진 부분은 보존성이 우수한 한지를 이용해 보강하는 등 복원처리를 해 보존수명을 연장시켰다. 연구팀은 조선지질도 이외에도 1956년에 만들어진 대한지질도와 그 영문본, 1981년판 대한지질도도 이번에 복원했다. 대한지질도는 조선지질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한반도 전체 지질분포와 지하자원 탐사 등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면서 국가 경제발전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팀은 이들 지질도들이 한반도 지질과 동북아 지각의 진화사 연구는 물론 전시, 열람 등 활용도가 높아 복제본도 제작했다. 이평구 지질자원연구원 원장은 “공공적 활용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복원함으로써 지질과학의 역사적, 과학적 가치를 한 단계 높였다는데 의미가 크다”며 “땅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땅의 만능백과사전인 지질도를 이용해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연구원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연구원은 2020년부터 전국을 47개 구역으로 나눠 10만대 1 축적의 수요자 맞춤형 지질도를 제작하고 있으며, 국민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4차원 지질·환경 통합 정보시스템 구축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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