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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청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도 계엄 목격…尹 파면해야”

    정청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도 계엄 목격…尹 파면해야”

    탄핵소추위원인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서 “12·3 내란의 밤,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도 계엄을 목격했다”며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했다. 앞서 윤 대통령이 지난 4일 변론에서 “(계엄 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 같은 걸 쫓는 느낌”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25일 정 위원장은 “전 국민이 텔레비전 생중계로 무장한 군인들의 폭력 행위를 봤다”며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을 파면해야 할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은 이미 성숙 돼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부독재로부터 나라를 지킨 것도 국민”이라며 “허리띠 졸라매고 자식들 교육해 오늘날 민주화 산업화를 이뤄낸 주인공도 국민이고, 올림픽 금메달 스포츠 강국을 이룬 것도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윤석열은 나라와 헌법을 사랑하는 국민을 총칼로 죽이려 했고, 피로 쓴 민주주의의 역사를 혀로 지우려 했다”고 비난했다.
  • 리더의 덕목을 실천한 위대한 법조인, 김병로 [한ZOOM]

    리더의 덕목을 실천한 위대한 법조인, 김병로 [한ZOOM]

    챗GPT에 ‘위대한 리더의 덕목’이라는 질문을 해봤다. 결과는 예상과 썩 다르지 않았다. 챗GPT는 비전, 소통, 결단력, 책임감, 도덕성, 공감, 혁신, 열정 등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덕목은 하나의 단어로 귀결된다. 바로 철학(哲學)이다. 철학이라고 하면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부터 현대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수많은 철학의 계파가 떠올라 머리가 아파진다. 역시 주입식, 암기식 교육의 폐단이다. 철학은 딱딱하고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기준과 태도를 의미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질서를 흐트러뜨리는데도 수많은 미국인이 지지하는 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정치 철학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독재자 타이틀이 붙지만 한국의 발전과 성장을 지향한 경제 철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리더의 철학이 무엇인지를 증명한 인물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을 꼽겠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대한민국의 법치를 세운 주인공이다. 김병로 선생은 1887년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이 되어 일제와 싸웠고, 일제 탄압으로 의병 활동이 좌절되자 일본으로 넘어가 법학을 공부했다.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조선 최초의 인권변호사가 되어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하는 데 앞장섰다. 변호사 수입 대부분을 들여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지원하고 그들의 남은 가족 생계를 도왔다. 이념보다 신념, 인권 앞세운 법조인1948년 김병로 선생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이 됐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원하지 않았지만 국무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그를 지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임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병로 선생은 대법원장직과 함께 친일파 행태를 조사하고 처벌하는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반민특위) 특별재판부장을 겸임하면서 친일 역사 청산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비호 아래 득세한 친일파 출신들이 조직적으로 반민특위 활동을 방해했고, 결국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그의 의지는 실현되지 못했다. 반민특위 해체 이후 김병로 선생과 이승만 대통령은 자주 부딪쳤다. 사법부 독립을 추구했던 김병로 선생은 사법부를 장악하려했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절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법원 판결에 불만을 표하자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라고 받아쳤다는 일화도 있다. 김병로 선생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공산주의가 법치주의를 위협한다고 인식했지만 이념보다 인권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를 탄압하지 않았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공산주의자를 변호하기도 했으며, 좌파와도 적극 소통했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 공격에 부인이 희생됐지만 그의 신념은 복수심에 훼손되지 않았다. 오히려 1958년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반대했다. 당시 이런 태도가 공산주의자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인권주의자인 그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우선이었다. 철학을 가진 리더를 기억하는 곳순창에는 김병로 선생의 생가와 유년시절 공부했던 낙덕정이 있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는 일제 때 13년 동안 지낸 집터가 남아있다. 당시 일제의 탄압을 피하고 일본식 이름을 강요한 창씨개명을 거부하기 위해 경기도 양주로 가 농사를 짓고 은둔생활을 했는데, 당시 양주가 현재 창동이다. 2015년 도봉구청은 옛 집터 인근 도로에 ‘가인 김병로 길’이라는 명예도로명주소를 부여했다. 가인(街人)은 김병로의 호이다. 해석하면 ‘거리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나라를 잃고 설움을 받는 동포들을 생각하며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곳 주변에 그의 호를 딴 가인초등학교가 있다. 김병로 선생은 독립운동과 친일파 청산에 앞장섰고,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기틀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과 인권보호에 앞장섰던 위대한 리더였다. 그에게는 위대한 리더의 덕목인 철학이 있었다. 그리고 그 철학은 어떠한 외압과 외풍에도 변질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것이었다.
  • 3월의 ‘거룩한 함성’에 이어지는 韓日 화합의 선율

    3월의 ‘거룩한 함성’에 이어지는 韓日 화합의 선율

    ‘가깝고도 멀다’는 말보다 한일 관계를 잘 설명하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평소 별 생각 없다가도 3월이 다가오면 이 관계에 대해 곱씹게 된다. 어느 한쪽의 정답은 없다. 아픔의 역사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도, 애써 마련한 화합을 앞으로 잘 다져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국립합창단은 3·1운동 106주년을 이틀 앞둔 오는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음악극 ‘거룩한 함성’을 세계 초연한다. 작곡가 김민아가 곡을 쓴 이 작품의 부제는 ‘뜨거운 봄날의 외침’이다. 여성 정옥분을 내세워 일제강점기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노래한다. 소프라노 조선형(왼쪽)이 정옥분을 연기한다. 시대적 상황 탓에 사랑하는 이와의 생이별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희생을 감내하는 여성이다. 조선형은 “처음 악보를 봤을 때부터 울컥했다”며 “성악가로서 무대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훈련은 많이 해 왔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정옥분의 손자이자 아마추어 소설가, 대기업 직원인 최강산은 배우 차인표(오른쪽)가 연기한다. 최강산은 현실의 차인표와도 묘하게 겹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차인표의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 필수도서로도 선정된 바 있다. 차인표는 “이 공연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이야기”라며 “강제 동원 여성들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우리는 그 아픔을 충분히 기억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해 KBS교향악단은 롯데그룹의 후원으로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동연주회를 연다. 새달 2일 도쿄 오페라시티홀과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에는 한국과 일본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이가라시 가오루코가 협연자로 나선다. 두 피아니스트는 두 오케스트라와 함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KBS교향악단 56명, 도쿄필하모닉 55명이 함께하는 대규모 무대다. 정명훈은 KBS교향악단의 계관지휘자로 올해 여러 공연을 함께할 예정이다. 지난 21일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2번 ‘부활’로 포문을 열었고 이번에도 말러를 준비했다. 앞서 ‘부활’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면, 다음달 3일엔 1번 ‘거인’을 선보인다.
  • 성북구, 광복 80주년 3·1절 ‘비밀결사단’ 모집

    성북구, 광복 80주년 3·1절 ‘비밀결사단’ 모집

    서울 성북구 문화공간이육사가 오는 3월 1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프로그램 ‘비밀결사단’을 진행한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정신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활동으로 마련된다. 이 프로그램은 3월 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화공간이육사에서 진행된다. 사전 예약 없이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행사는 참가자들이 독립운동가가 되어, 대한 독립을 위해 임무를 완수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비밀결사단’의 일원이 된 참가자는 독립선언문 필사, 이육사 퀴즈, 포토존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1층에서 진행되는 ‘독립운동에 동참하라!’ 임무는 독립선언문을 직접 필사하며 3.1절의 역사적 중요성을 체험할 수 있다. 2층에서 진행되는 ‘동지 이육사와 접선하라!’ 임무를 통해 퀴즈를 풀며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그날을 재현하라!’ 임무로 태극기를 들고 이육사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그날을 특별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다. ‘비밀결사단’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서, 참가자들에게 독립운동의 깊은 의미를 전하고,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기억하고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광복 80주년과 삼일절을 맞아, 많은 분이 참여해 주셔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역사적 가치를 함께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 이지아 “부모와 연 끊어…친일파 후손으로서 사죄, 일제 취득재산 환수돼야”

    이지아 “부모와 연 끊어…친일파 후손으로서 사죄, 일제 취득재산 환수돼야”

    배우 이지아(본명 김지아·46)가 조부 김순흥(1910~1981)의 친일 논란과 집안의 재산 분쟁 등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지아는 21일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오랜 시간 고민하며 조심스러웠지만, 이제라도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책임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어렵지만 용기를 내 말씀드린다”며 직접 입장을 밝혔다. 이지아는 “18살에 자립한 후 부모로부터 어떠한 금전적 지원도 받은 적이 없다”며 “부끄럽지만 복잡한 가족사로 인해 부모와 연을 끊고 지낸 지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다. 논란이 된 가족 재산이나 소송 등 해당 토지 소유권 분쟁도 전혀 알지 못하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친일 논란이 있는 조부에 대해선 “제가 2살이 되던 해 조부께서 돌아가셔서 조부에 대한 기억이 없으며, 친일 행위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자랐다”면서 “2011년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해당 사실을 접한 후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를 여러 차례 방문하는 등 관련 자료를 확인하고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조부의 헌납 기록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번 논란의 중심인 안양 소재 땅이 일제강점기 동안 취득된 재산이라면 반드시 국가에 환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아는 “저는 과거 조부 관련 그 어떠한 발언도 한 적이 없다. 집안을 내세워 홍보 기사를 낸 적도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에서 내가 ‘조부를 존경한다’고 말했다는 잘못된 내용이 확산됐는데 사실이 아니기에 바로잡고자 한다”며 “조부에 관한 역사적 과오를 깊이 인식하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앞으로도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는 데 겸허한 자세로 임하며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이지아의 아버지인 김모씨가 형제들과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김씨는 350억원 상당 토지 환매 과정에서 형·누나 인감을 사용해 위임장을 위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앞서 사문서위조와 사기 등 혐의로 3차례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력도 알려졌다. 갈등 대상이 된 김순흥의 경기 안양시 석수동 일대 토지는 군 부지였다. 2013년 부대가 안산으로 이전, 국방부는 징발재산정리에 관한 특별법 제20조에 따라 피징발자 김순흥의 법정상속인인 자녀들에게 우선 환매권을 부여했다. 김순흥 자녀들은 토지 소유권 등을 이전해 개발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알지 못하는 업체와 169억원 규모 근저당권이 설정된 계약서가 작성됐고, ‘토지주 대표 및 위임인’으로 이지아의 부친 김씨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는 게 조카 A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형제들로부터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당했으나, 지난 7일 검찰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A씨는 공소시효(2025년 2월 12일)가 얼마 남지 않아 수사에 부담을 느껴 이같은 처분을 내린 것 같다며 법원에 재정 신청한 상태다. 한편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김순흥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7월 국방헌금 1만원을 종로경찰서에 헌납한 것을 비롯해 조선군사후원연맹 사업비로 2500원, 경기도 군용기헌납발기인회 발기인으로 참여해 비행기 대금 500원을 냈다. 김순흥은 이에 더해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이른바 ‘일선융화’(日鮮融和)를 내걸고 결성된 동민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43년 8월 징병제 실시에 감격하며 국방헌금 3000원을 헌납하는 등 친일 행적으로 1944년 4월 일본 정부가 주는 감수포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세종로의 아침] 왜 음모를 꾸미는 건 항상 ‘그들’일까

    [세종로의 아침] 왜 음모를 꾸미는 건 항상 ‘그들’일까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국장과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가 쓴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에는 그가 1990년 광주를 방문해 시민대표들과 만나 “5·18에 너무 대처가 늦었던 것에 사과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그레그는 물론 한미 관계에서도 매우 특별한 장면인 건 틀림없지만, 다른 측면에서도 관심을 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미국이 광주학살을 방조했다’ 혹은 ‘미국이 쿠데타 주동세력의 배후’라는 비판이 거셌다. 그레그를 만난 시민대표들 역시 미국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미국은 인공위성으로 한국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사실 이는 당시 일반적인 정서와 맞닿아 있다. 1980년대 시대인식을 반영하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도 주인공 김범우는 미국이 한반도에 있는 전봇대 숫자까지 다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현대사 연구가 진척되면서 알게 된 진실은 완전히 정반대다. 미국은 한반도의 역사와 사회 상황 어느 것도 ‘쥐뿔도 모른 채’ 38선 이남을 점령했다. 그레그를 만난 시민단체나 김범우는 음모론을 믿는 이들이 가진 공통된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음모의 주체는 언제나 ‘그들’이고, 그들은 언제나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다. 음모론 하면 약방의 감초로 등장하는 비밀조직 프리메이슨만 해도 수백년 혹은 수천년에 걸친 역사와 지구 전역에 걸친 조직망, 인맥과 자금력을 갖고 있다. 정작 구글맵에서 프리메이슨을 검색하면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프리메이슨 지부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다 나온다. 과연 프리메이슨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밀조직’이 틀림없겠다. 뭔가 잘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논리로 설명할 수 없을 때, 혹은 논리만으로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직면했을 때 가장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게 음모론이다. 근대 이전만 해도 ‘신의 뜻’이니 ‘운명’이니 ‘인연’이니 하는 말로 넘길 수 있었던 자리를 음모론이 대체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또 그럴듯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심심풀이로 재미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신론자인 내가 사주관상에 귀를 쫑긋 세우는 것처럼. 음모론은 대개 ‘그들’에 대한 경계감을 반영한다. 재앙을 가져오는 건 언제나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공격 목표로 삼는 건 언제나 ‘우리’, 그것도 선량한 우리다. 1918년 처음 발병한 ‘스페인 독감’의 진원지는 사실 미국이었는데, 미국에선 독감의 원인을 두고 “독일인 때문이다”, “동유럽 이민자 때문이다”, “흑인 때문이다” 같은 각종 소수자 혐오 음모론이 종합선물세트로 나돌았다. 음모론은 끔찍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 일본에서 발생한 간토대지진 뒤엔 ‘이게 다 조선인들 때문’이란 유언비어가 퍼졌고 결국 집단학살극으로 번졌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 사람들에게 손쉬운 변명거리가 ‘유대인들 때문에 독일이 졌다’는 유대인 음모론이었다. 그 결과는 홀로코스트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음모론은 20년 전쯤 대한민국 국민들 취미생활이었던 ‘이게 다 노무현 때문’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한반도 북측에선 지금도 틈만 나면 ‘이게 다 미제의 침략책동 때문’이다. 남측이라고 크게 다르지도 않다. 틈만 나면 ‘이게 다 종북좌파 동성애자들 때문’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차고도 넘친다. 그리고 요즘은 ‘우리를 위협하는 강력한 그들’로 새롭게 떠오르는 유행이 중국이다. 지난해 12월 3일 내란의 밤이 어떤 의미인지 인정하기도 싫고 이해하기도 싫은 이들은 ‘이게 다 중국 때문’이고 ‘이게 다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떠든다. 그런데 말입니다. 선거 참관인만 해봐도 부정선거가 끼어들 자리가 없고, 중국을 조금만 접해 보면 ‘완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걸 금방 느끼게 된다. 중국 음모론을 믿는 이들에게는 차라리 ‘탄핵은 외계인들의 음모’라고 하는 게 조금은 더 그럴듯하지 않겠느냐고 조언해 주고 싶다. 강국진 문화체육부 차장
  • 김문수 검증장 된 환노위… 野 “불법 계엄” 金 “의원이 판사인가”

    김문수 검증장 된 환노위… 野 “불법 계엄” 金 “의원이 판사인가”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씨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을 논의하기 위해 20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여권 대선 주자 지지율 1위’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에 대한 검증장이 됐다.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입장을 밝힌 김 장관에게 관련 질의를 쏟아냈고, 이 과정에서 김 장관과 야당 의원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여당 의원들도 야당 의원을 향해 “의제에 집중해 달라”며 반발했다. 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하던 중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대해 “불법 계엄”이라고 말하자 “불법인지 아닌지는 봐야 될 것 아닌가. 의원이 판사인가”라고 지적했다. 또 “헌법재판소 판결 중에 잘못된 것도 많다”며 “헌재를 고쳐 나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될 정도의 잘못이 무엇인지 지금도 납득하지 못한다”고 밝히면서 나왔다. 김주영 민주당 의원이 “헌재 판결도 부정하는 발언이다. 법치가 무너져 이렇게 가다간 민주주의가 위험할 것”이라고 지적하자, 김 장관은 “저도 우려하고 있다. 상당히 혼란이 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12·3 비상계엄 포고령 1호에 적시된 정치활동 금지 조항에 대해 묻는 박홍배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는 “국회 봉쇄는 옳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극우 지지층 사이에선 계엄을 ‘계몽령’이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김 장관은 계엄은 잘못됐다고 봤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김 장관을 향해 ‘계엄에 반대하느냐’고 하자 “계엄을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계엄에 대해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고 답을 해 오셨다. 같은 입장인가’라는 질문엔 “그렇다. 헌법에 나와 있는 권한”이라고 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복귀하는 게 가장 좋은 일로 생각한다”고도 했다. 김태선 민주당 의원이 “회사 창립 기념행사에서 회장 찬양 합창을 강요하면 직장 내 괴롭힘인가”라고 물었을 때 김 장관은 “그렇다. 강요는 안 된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경호처가 창설 60주년 행사에서 윤 대통령의 생일 축하곡 합창에 직원을 동원했다는 의혹에 대해 묻자 “자세하게 봐야 한다. 그런 사실관계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을 바꿨다. 정국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김 장관은 민주당 소속인 안호영 환노위원장을 향해 “회의 주제(오요안나씨 사건)와 관련된 내용을 (질의)해야지 상관이 없는 것은 답변을 안 하겠다”며 “지금 무슨 계엄 특검을 하나”라고 맞섰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도 “직장 내 괴롭힘 의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위원장이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의 대권 행보를 비판하는 질의도 나왔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은 김 장관이 지난 1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난 데 대해 “‘탄핵 기각을 바란다’는 장관의 말과 보여 주는 일정은 편차가 심하다. ‘대선을 준비하는구나’ (생각하게 해) 표리부동”이라고 꼬집었다. 김 장관은 “당연히 찾아뵙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한편 김 장관이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 “중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김구 선생의 국적은 명백한 한국”이라고 밝혔다. 강 장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의 공식 입장은 “김구 선생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은 한국”이라고 했다.
  • 보훈부 장관 “김구 선생 국적은 명백히 한국”

    보훈부 장관 “김구 선생 국적은 명백히 한국”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이 20일 백범 김구 선생의 국적 논란과 관련해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은 한국이며, 김구 선생의 국적 역시 명백한 한국”이라고 했다. 강 장관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의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 체결된 조약 및 협정은 원천무효라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며 “따라서 김구 선생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은 ‘한국’이다”라고 했다. 강 장관은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은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의 중요한 가치가 폄훼될 수 있는 이러한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앞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일제 강점기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국적이 무엇이냐’는 민주당 최민희 의원의 질문에 “안중근 의사는 조선 국적이고, 김구 선생은 중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국사 학자들이 다 연구해 놓은 게 있다”고 했다.
  • “문화유산은 한민족의 종자… 한류 번성하고 국가 품격 높였죠” [서동철의 노변정담]

    “문화유산은 한민족의 종자… 한류 번성하고 국가 품격 높였죠” [서동철의 노변정담]

    출판인 출발 뒤 문화유산운동가로20·30대 때 부산서 고서 수집 첫발국보·보물 등 출판 유산 다수 소장삼성출판박물관 보유 40만점 달해내 인생 길을 내준 고마운 두 분형 김봉규, 목포에 대양서점 설립당시 책 속 뒹굴면서 꿈 크게 가져이어령 설득에 출판박물관 세웠죠‘문화유산국민신탁’ 설립 주도숱한 문화 행사 참석 ‘축사의 달인’유산신탁 회원 1만 7000명 이끌어보성여관·시인 이상의 집 등 매입‘베푼 것 생각 말고 받은 것 잊지 마라’이젠 ‘입 닫고 지갑 열어라’ 실천중박물관 보람 컸지만 운영 쉽지 않아나 이후엔 사회 환원되지 않을까요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은 문화예술 및 문화유산 분야에서 폭넓은 자취를 남긴 문화운동가이자 문화유산운동가다. 그에게 붙여진 ‘문화계 마당발’이라는 별명도 광범위한 활동의 결과일 것이다. 그는 우선 친형이 1964년 창업한 삼성출판사 운영에 일찍부터 참여해 우리나라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고서(古書)에 대한 깊은 관심은 삼성출판박물관 설립으로 이어졌다. 과거의 출판문화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물론 유산을 후손에 물려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더불어 한국박물관협회를 주도하며 우리 사회에 다양한 박물관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근까지 이사장으로 재임한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을 사회 구성원 스스로 보전하겠다는 의지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를 세검정에서 불광동으로 넘어가는 진흥로에서 북한산 등산로 방향으로 들어가는 초입 서울 구기동에 자리잡은 삼성출판박물관에서 만났다. 김 명예회장에게 출판인에서 문화유산운동가로 탈바꿈한 계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부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형님이 삼성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출판일을 배우라며 부산지사장으로 보내 10년 남짓 일했어요. 그곳에서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교유(交遊)하며 옛날 책에 관심을 갖게 됐지요. 부산의 대표적인 고서점가인 보수동 책방골목에 어지간히 드나들었어요. 당시는 수집가들이 도자기와 그림에 눈독을 들이던 때라 고서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행운이었지요. 아마도 6·25전쟁으로 부산에 피란한 수장가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생활고가 깊어지며 중요한 자료들을 헌책 골목에 내놓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는 “그때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다”면서 “집안에선 젊은 놈이 벌써부터 골동품가게를 어슬렁거린다며 걱정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고 했다. ‘새책 팔아 헌책 사는’ 자료 수집은 서울 본사에 올라온 이후로도 이어졌다. 그가 지금도 관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삼성출판박물관은 국보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과 보물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월인석보’, ‘제왕운기’, ‘금강반야바라밀경’, ‘경국대전’ 등 중요 출판 유산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옛 활자와 문방사우 등 보유하고 있는 출판 문화유산은 모두 40만점에 이른다고 한다. 김 명예회장은 ‘인생에 길을 내준 고마운 두 분으로 형인 김봉규 삼성출판사 창업회장과 문학평론가 이어령 선생을 꼽았다. 형님은 전남대 상대에 다니던 1951년 전남 목포에 대양서점을 세웠다. 당시 전남대 상대는 목포에 있었다고 한다. 형님은 1962년에 서울에 올라와 수도서적을 열었고 1964년에는 삼성출판사를 설립했다. “대양서점은 목포 한복판 죽교동에 있었어요. 일제강점기에 지은 2층 목조 상가 1층에 세들어 있었지요. 살림집도 안에 함께 딸려 있었습니다. 당시 학생이며 선생님, 목포 지역의 지식인들이 모두 이 책방에 들락날락했어요. 책 속에서 뒹굴 수 있던 시기였습니다. 맹모삼천지교를 떠올리게 하는 환경이었다고나 할까요. 형님은 그때부터 출판이 우리 사회와 문화를 주도하는 산업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어요. 덩달아 나도 꿈을 크게 가질 수 있었지요.” 이어령 선생은 김 명예회장에게 출판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한 당사자였다. 이 선생은 초대 문화부 장관에 취임하고 삼성출판박물관이 개관하자 ‘출판박물관은 책의 탑이고, 출판박물관은 책의 씨앗이며, 출판박물관은 악기’라는 인사말을 남겼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처럼 출판박물관은 과거가 아니라 1000년 뒤 미래를 바라보는 존재이고, 곰팡내 나는 책이 있기에 앞으로 태어날 새로운 책들도 예비할 수 있다는 덕담이었다. 무엇보다 ‘출판박물관은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가까이 입술을 대고 허파 깊숙이 호흡을 하면 아름다운 음향이 들려오는 옥퉁소’라며 출범을 축원했다. 김 명예회장은 목포 문태중학교 시절 목포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형님의 권유로 목포상고에 가게 된다. 고교를 졸업할 무렵에도 시인 서정주 선생이 계셨던 동국대 국문과를 염두에 두었으나 다시 형님의 설득으로 같은 학교 경제학과로 진학했다. 그 시절 경제 구조의 선진화가 진행될수록 산업 분야의 격차를 줄이고 균형 있는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경제학자 조동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결국 부(富)든 문화유산이든 나누는 게 바람직하다는 가르침인 만큼 지금도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2022년 충남 논산 돈암서원에 ‘가례집람’ 등의 책판 54점을 기증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가례집람’은 돈암서원에 배향된 사계 김장생(1548~1631) 선생이 주자의 ‘가례’를 해석한 책이다. 더불어 ‘사계선생연보’와 ‘사계선생유고’, ‘사계전서’, ‘경서변의’의 책판도 포함됐다. 돈암서원은 한때 4168개 책판을 보관하고 있었으나 많은 분량이 흩어지고 1841개만 남았다. 기증한 책판은 50년 전 ‘서울 변두리 집 두 채 값’으로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기증으로 돈암서원 책판이 완질(完帙)을 이루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박물관 100년’을 맞았던 2009년에는 삼국시대 금동제 말갖춤과 화살통 장식 등 10건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2023년에는 인촌상을 수상하며 상금 1억원 가운데 5000만원을 자신이 몸담고 있던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부했다. 남은 5000만원은 “문화유산과 박물관 사람들에게 흔쾌히 쏘겠다”고 공언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뚜껑을 열고 보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양방언을 비롯한 음악가들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불러모아 ‘음류’(音流)라는 제목의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던 음악회를 열어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김 명예회장은 숱한 문화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도맡는 ‘축사의 달인’이다. 요즘도 하루 2~3곳은 기본이고 박물관협회 회장 시절에는 7~8곳을 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 축사만 끝내고 자리를 떠야 할 때도 없지 않다. 그에게 “그렇게 숨차게 뛰어다니시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나에게 ‘약방의 감초’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공것이 없다”고 했다. 다양한 행사에 가서 인사말을 하는 것도 결국 주어야 받을 수 있는 품앗이라는 것이다. “문화행사뿐 아니라 경조사에도 많이 갑니다. 옛 어른들은 아무리 원수같이 지낸 사람이라도 부모 상을 당했을 때 찾아가 예를 표하면 다 풀리게 마련이라고, 이런 게 인생의 지혜라고 가르쳐 주셨지요. 경사보단 흉사에 더 많이 가 줘야 합니다. 후손이 어려울 땐 더더욱 가야 하고요. 요즘도 흉사에 가면 자식·손자들에게 돌아가신 분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는지를 증언해 줍니다. 후손들이 그런 줄 몰랐다며 뿌듯해하면 나도 보람이 있고요” 김 명예회장은 “돌이켜 보면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직을 맡았을 때 1000명 남짓이던 회원이 그만둘 때 1만 7000명이 넘도록 불릴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바쁘게 다니며 인연을 쌓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그는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의 요청으로 설립위원장을 맡아 2007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출범할 수 있도록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 2009년에는 다시 이건무 문화재청장 요청으로 제2대 이사장을 맡았다. 그는 문화유산국민신탁에 무보수로 만 15년 넘게 재임한 지난해 연말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우리나라의 전통인 동계(洞契)와 같은 공동체 정신을 이어받아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문화유산을 민간이 보존하는 시민사회운동이다. 산업화로 파괴되는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회원의 회비로 운영된다. 김 명예회장이 추구하는 ‘나눔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 ‘남도여관’으로 등장한 전남 벌교의 보성여관은 복원작업을 거쳐 2012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개관했다. 서울 자하문로에 있는 시인 이상의 집은 2009년 국민신탁이 처음으로 매입한 보전자산이다. ‘마지막 신라인’으로 불리는 경주의 윤경렬 옛집, 군포 동래 정씨 동래군파 종택, 고흥 죽산재도 국민신탁이 사들여 문화공간화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농부는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었다”고 했어요.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다음 농사에 쓸 종자는 남겨 둔다는 뜻입니다. 우리 문화유산은 바로 한민족 문화의 종자이고 씨앗입니다. 종자가 되는 문화유산이 있기에 한류도 번성하고 국가 품격도 높아진 것이지요. 더많은 사람이 국민신탁에 참여해 문화유산을 지켜가야 하는 이유일 겁니다.” 김 명예회장에게 “꿈을 이루셨느냐”고 물으니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욕심을 부려 90세까지 산다고 할 때 처음 30년엔 군대도 갔다오고 자리를 잡는 시기였다면 다음 30년은 그야말로 생업에 전력투구하는 시기였어요. 이후에는 재산이든 재능이든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스스로 좌표를 잘 만들어 80~90%는 실천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희망하시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보시라”고 했더니 “지금 이대로도 너무 바빠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며 웃었다. “그동안에는 좌우명이 ‘베푼 것은 생각하지 말고, 받은 것은 잊지 마라. 다른 사람 단점을 말하지 말고 자기 자랑은 하지 마라’였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고 나선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를 실천하려 하고 있습니다.” 김 명예회장은 삼성출판박물관 개관 당시부터 “박물관은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고 했었다. “출판박물관은 내 생전 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꾸려 가려고 합니다. 박물관은 보람이 컸지만 운영은 쉽지 않았어요. 자식들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합니다. 3남매가 자기들 밥벌이는 하고 있으니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사회에 환원이 되지 않을까요.” ■김종규 명예회장은 1939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목포상고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삼성출판사 사장과 회장으로 일했다. 삼성출판박물관을 설립해 현재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건립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국민훈장 모란장과 은관문화훈장, 인촌상을 수상했다. 글·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 ‘틱톡 난민’ 몰려간 샤오훙수에 “한국은 도둑 국가” 억지 주장 난무

    ‘틱톡 난민’ 몰려간 샤오훙수에 “한국은 도둑 국가” 억지 주장 난무

    최근 ‘틱톡 난민’ 대거 유입서경덕 “美누리꾼 세뇌 우려” ‘틱톡 난민’을 자처한 미국 누리꾼이 대거 유입된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훙수’(영문명 레드노트)에 “한국인들이 중국 문화를 훔쳐 가고 있다”는 궤변이 난무하고 있다. 샤오훙슈는 중국에서 많이 쓰는 SNS 중 하나로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3억 명에 달한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최근 중국과 미국에 거주하는 누리꾼의 제보를 받고 샤오훙수를 살펴본 결과 이런 게시물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서경덕 교수는 “일부는 ‘한국은 도둑 국가’라는 식의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며 “‘한국을 믿지 말라’, ‘김치의 원조는 중국’ 같은 내용의 글과 영상이 퍼지고 있어 꽤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샤오훙수는 지금까지 중국 내에서 주로 이용됐고 사용자도 대부분이 중국인이었지만, 미국 누리꾼이 대거 갈아타면서 자칫 이런 억측에 세뇌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문화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다 보니 중국 누리꾼의 심한 열등감에서 비롯한 행위라 볼 수 있다”며 “이처럼 삐뚤어진 중화사상은 중국을 고립국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中의 황당 왜곡 “윤동주 국적은 중국”중국의 문화공정 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 교수는 지난 16일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의 서거 80주기를 맞아 윤동주마저 중국인이라 우기는 중국 측 행보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여전히 윤동주에 관한 왜곡을 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윤동주 시인의 국적을 ‘중국’이라고 표기한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 백과사전이 지난 5년간 꾸준히 항의 메일을 보낸 것을 외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시에 있는 윤동주 생가 입구에는 ‘중국조선족애국시인’이라고 적힌 대형 표지석이 그대로 남아있다. 2023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글로벌타임스는 윤동주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 투쟁에 참여한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소개해 논란이 됐다. 한편 서 교수는 중국 등의 역사 왜곡에 맞서 SNS에 소식을 전할 뿐 아니라 세계적인 유력 매체와 관광지 전광판, 구글·유튜브 등에 다국어 광고·영상을 올리는 등 역사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고 있다.
  • 美누리꾼 몰려간 ‘중국판 인스타’에 “한국이 중국 문화 훔쳐” 궤변 난무 [핫이슈]

    美누리꾼 몰려간 ‘중국판 인스타’에 “한국이 중국 문화 훔쳐” 궤변 난무 [핫이슈]

    최근 ‘틱톡 난민’ 대거 유입서경덕 “美누리꾼 세뇌 우려” ‘틱톡 난민’을 자처한 미국 누리꾼이 대거 유입된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훙수’(영문명 레드노트)에 “한국인들이 중국 문화를 훔쳐 가고 있다”는 궤변이 난무하고 있다. 샤오훙슈는 중국에서 많이 쓰는 SNS 중 하나로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3억 명에 달한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최근 중국과 미국에 거주하는 누리꾼의 제보를 받고 샤오훙수를 살펴본 결과 이런 게시물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서경덕 교수는 “일부는 ‘한국은 도둑 국가’라는 식의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며 “‘한국을 믿지 말라’, ‘김치의 원조는 중국’ 같은 내용의 글과 영상이 퍼지고 있어 꽤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샤오훙수는 지금까지 중국 내에서 주로 이용됐고 사용자도 대부분이 중국인이었지만, 미국 누리꾼이 대거 갈아타면서 자칫 이런 억측에 세뇌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문화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다 보니 중국 누리꾼의 심한 열등감에서 비롯한 행위라 볼 수 있다”며 “이처럼 삐뚤어진 중화사상은 중국을 고립국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中의 황당 왜곡 “윤동주 국적은 중국”중국의 문화공정 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 교수는 지난 16일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의 서거 80주기를 맞아 윤동주마저 중국인이라 우기는 중국 측 행보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여전히 윤동주에 관한 왜곡을 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윤동주 시인의 국적을 ‘중국’이라고 표기한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 백과사전이 지난 5년간 꾸준히 항의 메일을 보낸 것을 외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시에 있는 윤동주 생가 입구에는 ‘중국조선족애국시인’이라고 적힌 대형 표지석이 그대로 남아있다. 2023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글로벌타임스는 윤동주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 투쟁에 참여한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고 소개해 논란이 됐다. 한편 서 교수는 중국 등의 역사 왜곡에 맞서 SNS에 소식을 전할 뿐 아니라 세계적인 유력 매체와 관광지 전광판, 구글·유튜브 등에 다국어 광고·영상을 올리는 등 역사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고 있다.
  • 비구니의 독립운동사, 뮤지컬 무대로…28일부터 옴니버스 형식 공연

    비구니의 독립운동사, 뮤지컬 무대로…28일부터 옴니버스 형식 공연

    일제강점기에 제주의 사찰을 독립군의 비밀 훈련장으로 제공했던 봉려관 스님, 국채보상운동에 가장 먼저 참여한 서울 옥수동 미타사의 40여 비구니 스님…. 이 땅엔 알려지지 않은 비구니의 독립운동사가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전국비구니회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소리없이 헌신한 비구니 스님들이 이야기를 뮤지컬으로 제작해 무대에 올린다. 전국비구니회 산하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는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다큐 뮤지컬 비·스·독’을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 ‘비·스·독’은 ‘비구니 스님들의 독립운동 이야기’의 줄임말이다. 뮤지컬은 봉려관(蓬廬觀, 1865~1938) 스님, 상근(祥根, 1872~1951) 스님, 성해(性海, 1889~1982) 스님, 보각(普覺, 1904~2006) 스님, 옥봉(玉峰, 1913~2010) 스님을 중심으로 옴니버스(독립된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은 공연 방식) 형태로 진행된다. 봉려관 스님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제주에 여러 개의 사찰을 세워 불교를 중흥시킨 인물이다. 1909년 사찰에 숨어든 항일 인사가 참사를 당한 것을 보고, 이들이 목숨을 부지하며 항일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은신처 역할을 한 법정사를 1911년 창건한다. 이후 제주 안에서 항일 자금을 조달하고, 인사들을 키우며 항일 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이때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한 이가 성해 스님이다. 봉려관 스님의 상좌로, 전남 담양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봉려관 스님과 함께 활동하며 제주의 독립 운동을 이끌었다. 상근 스님은 한용운, 백용성 등 항일 운동에 뛰어든 여러 스님과 독립 인사들의 운동을 뒷받침하는 조력자 역할을 했다. 보각 스님은 유관순 열사와 함께 3·1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에서도 활약했다. 옥봉 스님은 만해 스님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의 자금 조달책과 연락책을 맡았고, 안창호 선생의 옥바라지도 도맡았다. 뮤지컬은 공연 기간 중 매일 오후 3시, 7시 등 총 6회 공연한다. 불자 중심의 뮤지컬 극단 야성이 공연을 맡는다.
  • ‘김구 증손’ 野김용만 “김문수 망언에 독립운동가들 통곡”

    ‘김구 증손’ 野김용만 “김문수 망언에 독립운동가들 통곡”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백범 김구 선생이 중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발언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를 향해 법적 조치를 언급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민주당도 김 장관의 역사관을 문제 삼으며 “국무위원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장관은 대한민국 장관은커녕 국민 자격조차 없다”며 발언 근거를 가져오거나 사죄하라고 했다. 앞서 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일제시대 김구 선생의 국적이 뭐냐’는 최민희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김구 선생은 중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부분은 국사학자들이 다 연구해 놓은 게 있다”고 답변하면서 논란이 됐다. 김 의원은 “대체 누가 어떤 내용으로 그런 연구를 했는지 어디 가져와 보십시오”라며 “할아버지께서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소리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지하에서 통곡할 역대급 망언”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또 “당신이 서 있는 이 대한민국, 당신의 장관직, 그 모든 것이 선열들의 피와 희생으로 세워졌다”며 “당신의 발언은 일제의 국권 침탈이 불법임을 선언하고, 임시정부가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천명했던 선열들의 노력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헌법적, 반민족적 그리고 비상식적인 무지의 망언”이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의 역사관이 논쟁 대상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 장관은 지난해 8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일제강점기 시기 우리 국민들의 국적은 일본이었다’, ‘대한민국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서면브리핑에서 “대한민국 국무위원이라는 사람이 애국열사, 순국선열을 욕되게 하고 사과마저 거부하고 있으니 그저 기가 막힐 뿐”이라며 “김 장관은 선조들과 애국열사, 순국선열께 더는 죄를 짓지 말고 당장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 홍준표, 김문수 역사관 비판…“‘김구 국적 중국’ 망발 참으로 유감”

    홍준표, 김문수 역사관 비판…“‘김구 국적 중국’ 망발 참으로 유감”

    홍준표 대구시장이 15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역사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김 장관이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을 두고 일본이라고 하거나,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의 국적이 중국이라는 주장을 펼치면서다. 홍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국민의 국적을 일본이라고 하는 것은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일제의 식민사관”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그렇게 보면 일제하의 독립운동은 내란이 되고 강제로 한 혼인도 유효하다고 보는 것과 다름없다”며 덧붙였다. 그는 이어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은 강제로 맺어진 무효 조약”이라며 “그건 국제법이나 국내법이 인정하는 무효인 조약”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그래서 일제하 우리 국민의 국적을 일본이라고 하는 걸 망발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시장은 또 “김구 선생의 국적을 중국이라고 기상천외한 답변을 하는 것도 어이가 없는 일”이라며 “나라를 구성하는 3대 요소는 영토·주권·국민인데, 일제강점기에는 국민은 있었으나 영토와 주권은 빼앗겼다”고 설명했다. 홍 시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국민들은 ‘무국적’ 상태였다고 봤다. 그는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설립된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부터 국적이 대한민국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국가의 3대 요소 중 국민만 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그래서 당시 우리 국민들은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모두 무국적 상태로 살았고, 해방 이후 나라를 되찾은 뒤 비로소 국적이 회복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 장관을 향해 “독립운동의 영웅 김구 선생의 국적이 중국이었다는 망발은 참으로 유감”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한편, 김 장관은 전날(14일)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일제 강점기에 김구 선생의 국적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여러 주장이 있지만 중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있고, 학자들의 연구도 있다”고 답해 논란이 됐다. 앞서 김 장관은 지난해 8월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선조의 국적은 일본이라는 주장을 펴 역사관 논란이 일었다.
  • 2월 16일은 윤동주 순국 80주기···친필 유고 보존한 광양 ‘정병욱 가옥’

    2월 16일은 윤동주 순국 80주기···친필 유고 보존한 광양 ‘정병욱 가옥’

    2월 16일은 윤동주가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45년 스물아홉의 나이에 절명한 순국 80주기가 되는 날이다. 지난해 광복절 보훈부가 공개한 일본 국립공문서관의 ‘치안보고록’에 따르면 윤동주는 1943년 7월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 혐의로 검거돼 같은 해 12월 6일 미결수로 교토구치소에 수감됐다. 이후 1944년 3월 31일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이듬해인 1945년 2월 16일 순국했다. 이같은 상황에 윤동주 순국 80주기를 앞두고 윤동주의 친필 유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지켜내 시인으로 소환한 광양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병욱 가옥는 우리 말과 글이 금지된 일제강점기, 시대 상황으로 시집 출간이 좌절된 윤동주가 손수 묶은 친필 유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보존한 장소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전 세계가 전쟁의 늪에 빠져든 1941년 겨울, 연희전문 졸업을 앞둔 윤동주는 지금까지 쓴 시 노트를 꺼내 졸업 기념 시집에 넣을 시들을 정리했다. 그중 열여덟 편의 시를 고르고 서시를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3부를 엮어 한 부는 자신이 갖고 한 부는 이양하 지도교수에게 전달했다. 나머지 한 부는 연희전문 2년 후배로 나이는 다섯 살 어리지만 진중하고 성미도 비슷해 함께 하숙을 지내는 등 각별하게 의지 삼은 정병욱에게 줬다. 이후 학도병으로 징집된 정병욱은 윤동주에게 받은 시집을 광양의 어머니께 맡기며 잘 보관할 것을 당부했고, 시고는 명주보자기에 곱게 싸여 망덕포구에서 살아 숨 쉬었다. 윤동주와 이양하 교수의 시고는 행방을 잃었지만 정병욱 가옥 마룻바닥 아래서 보존된 시고는 1948년 1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출간돼 윤동주를 시인으로 부활시켰다. 지난 1925년 양조장과 주택을 겸해 지어진 정병욱 가옥은 유고를 보존한 가치를 크게 인정받아 2007년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정병욱은 회고록 ‘잊지 못할 윤동주 형’에서 “내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린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윤동주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를 뜻하는 백영(白影)을 자신의 호로 삼기까지 했다. 광양 망덕포구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에는 명주보자기에 곱게 싼 유고를 항아리에 담아 마룻바닥 아래 간직한 당시 상황이 재현돼 있다. 정병욱 가옥에서 500여m 떨어진 ‘윤동주 시 정원’에는 서시를 비롯해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시대의 어둠을 비추는 등불 같은 시들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망덕포구와 배알도 섬 정원을 잇는 해상보도교 ‘별헤는다리’와 동주카페, 별헤는 강 등 윤동주 시인과 그의 시를 모티브로 한 공간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김미란 광양시 관광과장은 “윤동주의 유고를 지켜낸 정병욱 가옥이 있는 망덕포구는 550리를 달려온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희망과 부활의 공간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얼음이 녹고 꽃망울 터뜨리는 봄의 길목이자 부활의 공간인 섬진강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을 찾아 윤동주의 시 정신과 정병욱의 신실한 우정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광양시는 국내외 윤동주의 발자취를 잇는 윤동주 테마관광상품 운영 여행사와 개별관광객 등에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는 등 광양과 윤동주의 관계성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 되~게, 가고 싶다… 기차 타고 대게 먹으러

    되~게, 가고 싶다… 기차 타고 대게 먹으러

    ‘등허리 긁어 손 안 닿는 곳’이 경북 울진이랬다. 단순히 멀다는 뜻이 아니다. 이 표현엔 수도권을 기준으로 어떤 도로를 타고 가도 시원하게, 단박에 가 닿을 방법이 없다는 뉘앙스가 담겼다. 차 이외엔 접근할 방법이 없는 답답한 교통 여건도 한몫했다. ‘그’ 울진에 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생겼다. 기차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 어떤 철길도 닿지 않는 곳이 있었다. 거기가 울진이다. 지난 1월 1일 동해선 철길이 전 구간 개통하면서 울진에도 마침내 ‘역’이 생겼다. 기차라는 문명의 이기가 한반도에 들어온 지 꼬박 136년 만의 일이다. 마침 시절은 대게철. 사라진 입맛이 다시 돌고, 상쾌한 눈맛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살맛 나는 여행이다. 한국의 철도 역사는 1889년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지간한 시골까지 철길이 깔렸지만 울진은 예외였다. 바로 위 강원 삼척까지, 아래로 경북 영덕까지 기차가 오갔어도 유독 울진만큼은 기차와 인연이 없었다. ●운전 필요 없이 맛있는 ‘기적 소리’ ‘철길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선 사실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일제강점기 때 아주 짧은 철길이 울진 후포항에 있었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정어리 등 해산물 수탈을 위해 조성한 철길이다. ‘사람이나 물자의 수송을 위해 궤도 위를 달리는 차’라는 기차(열차)의 사전적 의미에 비춰 보면 울진에도 기차는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역이 있고,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차량이 있는 일반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번에 개통된 건 동해중부선 삼척~포항(166.3㎞) 구간이다. 강릉~삼척 구간은 관광 열차인 ‘바다열차’가 이미 오가고 있었고, 1년 정도 운행이 중단되긴 했으나 포항~영덕 구간 역시 일반 여객열차가 오가고 있었다. 이 사이 이빨 빠진 구간을 잇는 게 동해중부선이다. 이 구간이 개통되면서 국토의 등뼈에 해당하는 강원 강릉과 부산 부전역 사이 모든 철길이 하나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수도권 사람들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수고 없이도 기차 타고 울진까지 대게를 먹으러 올 수 있는 ‘기적’을 불러왔다. ●2~3월께 살 올라… 대게 지금이 딱! 울진, 죽변, 후포 등 역 주변에 렌터카나 전기자전거 같은 공유 이동 장치들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여전히 불편하긴 해도 택시나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그런대로 돌아볼 만하다. 울진군에서 군내버스를 무료화하는 등 개선책을 준비하고 있다니 기대해 볼 일이다. 멀리서 희미하게 대게 향이 나기 시작한 건 강릉을 떠난 동해선 기차가 울진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비릿하면서 달큰한 향기.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피 냄새를 맡은 드라큘라의 전율이 이랬을까. 후각으로 세상을 봤던 ‘장바티스트 그르누이’(벤 위쇼 분, 영화 ‘향수’·2007)의 편집광적 환희가 이랬을까. 예부터 우리 선조들도 이렇게 표현했다. ‘소는 한 마리를 다 먹어도 흔적이 안 남지만, 대게는 작은 놈 한 마리만 먹어도 숨길 수가 없다’고. 대게의 향기는 그만큼 짙고 오래간다. 이 계절의 대게찜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그 향기, 그 촉감, 짭짤 쌉쌀 달큰 고소한 맛. 과연 겨울 식도락의 정수다. 대게는 찬바람이 불면서 여물기 시작한다. 2~3월께부터는 다리마다 살이 포실하게 들어찬다. 향도 짙어진다. 해마다 울진에서 이맘때 대게 관련 축제를 여는 건 이 때문이다. ●대게 다리 쪄서 말리는 ‘해각포’ 일품 울진 최남단의 후포항. 국내 최대 대게잡이 항구 중 하나다. 아침이면 대게를 경매하느라 부산스럽다. 큼직한 대게들이 아침 햇살 받으며 어판장 바닥에 깔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대게의 발이 얼마나 고운지는 햇빛을 마주하고 봐야 안다. 싱싱한 주황빛이다. 매니큐어로 멋을 낸 여인의 손끝인들 저리 고울 순 없다. 대게 경매가 끝나면 곧바로 붉은대게 경매가 이어진다. 흔히 ‘홍게’라 불리는 녀석이다. 한때 홍게는 값싼 게의 대명사였다. 다리가 잘려 경매에 오르지 못한 홍게를 거저나 다름없는 헐값에 사서 도회지 사람들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한데 이는 정상적인 홍게와 한참 다르다. 홍게도 대게처럼 북풍에 맛이 든다. 살점도 포실해진다. 이맘때 홍게 다리를 보면 대게 못잖게 ‘꿀벅지’다. 홍게는 대게보다 깊은 수심층에 서식한다. 대게보다 홍게가 더 짭조름한 건 이 때문이다. 일부 현지인은 깊은 바다향이 묻어난다며 비싼 대게 대신 저렴한 홍게를 선호하기도 한다. 붉은대게가 제 값어치를 인정받는 건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면 단박에 몸값부터 뛰니, 소시민으로선 그게 걱정이다. 해각포도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해각포는 대게 다리를 쪄서 햇볕에 사나흘 말린 것이다. 말린 대게 다리는 주전부리나 반찬으로 주로 먹는다. 멸치처럼 육수를 낼 때 쓰기도 한다. 술꾼들에게는 안주로 제격이다. 말린 오징어처럼 짭조름한 맛과 꾸덕꾸덕한 식감은 소주 한잔과 ‘찰진’ 궁합을 이룬다. 이 계절에 맛봐야 할 또 하나의 별미가 곰치국이다. 정식 명칭은 꼼치다. 뱀장어목의 사냥꾼 곰치와 혼동을 피하기 위한 이름이다. 하지만 강원, 경북 등 바닷가 지역에선 거의 ‘곰치’라 불린다. 귀한 대게를 통째 삼켜대는 대단한 폭식가다. ‘곰치’는 보통 칼칼한 묵은지 등과 함께 매운탕식으로 끓여낸다. 한데 후포항 인근에선 맑은탕(지리)으로 낸다. 국물엔 곰치 살코기보다 껍질이 월등히 많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현지인들은 맛과 영양 면에서 살점보다 껍질에 점수를 더 많이 준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껍질을 많이 주는 게 제대로 된 손님 대접인 셈이다. 곰치 살점도 그렇지만 껍질은 훨씬 더 물컹거린다. 씹는 맛이라곤 찾을 수 없다. 후포에서 곰치국을 먹을 요량이라면 이 점을 미리 알고 가는 게 좋다. ●금강송 군락지에 체류형 산림휴양시설 이제 울진의 볼거리 이야기다. 요즘 울진군에서 홍보에 열을 올리는 곳이 금강송 에코리움이다. 금강송 군락지에 조성된 체류형 산림휴양시설이다. ‘체류형’은 숙박자에 한해 각종 체험과 치유 프로그램, 식사 등이 제공된다는 의미다. 숙박 시설은 단독 주택 형태다. 실내는 솔향이 가득하고, 누우면 천장의 창을 통해 별을 볼 수 있는 객실도 있다. 객실에 어지간한 가전용품은 다 있지만, TV는 없다. 가족 간 대화나 사유의 시간을 가지란 뜻일 터다. 3월엔 ‘지관서가’도 문을 연다. 지관서가는 일련의 도서공간 조성사업을 이르는 이름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한 유휴 공간에, SK가 재원을 기부해 조성한다. ●덕구온천서 여행 피로 싹~ 덕구온천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고 있는 곳이다. 향긋한 솔향과 함께 노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오래돼 낡았지만 외려 이를 빈티지로 여기는 MZ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죽변해안스카이레일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꾸준히 찾는 스테디셀러다. 죽변항에서 후정해변까지 왕복 4.8㎞ 구간을 오간다. 새로 기차역이 생긴 이후 죽변면에선 군내버스 노선을 변경해 죽변역과 울진해양과학관, 해안스카이레일 등 관내 관광지를 연결해 운행하고 있다. 후정해변에 있는 국립해양과학관은 축구장 15개 면적에 각종 해양 전시 체험시설이 가득한 곳이다. 특히 인상적인 건 바닷속에 조성된 해중전망대다. 길이 393m의 해상보행교를 건너야 한다.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후포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바다 위에 높이 20m, 길이 135m 규모로 조성됐다. 스카이워크 끝자락 57m 구간은 바닥이 강화유리여서 스릴이 넘친다. 스카이워크 뒤편의 등기산도 공원처럼 꾸몄다. 불영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계곡 중 하나로 꼽히는 불영계곡(명승 6호) 안에 터를 잡은 절집이다. 경내 불영지에 부처(佛)의 그림자(影)가 비친다 해서 불영사다. 불영사엔 의상대사와 선묘룡 이야기 등 많은 전설이 담겼다. 내용을 듣고 나면 절집과 계곡 둘러보는 맛이 한층 깊어진다. 망양정(望洋亭)은 동해안의 경승지를 대표하는 ‘관동팔경’의 하나다.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쓰고 읊조렸던 ‘관동제일루’가 바로 여기다. 망양정까지는 ‘바람소리길’을 따라간다. [여행수첩] -‘2025 울진대게와 붉은대게축제’가 28일~3월 3일 후포항 일대에서 열린다. 울진 대게 경매, 붉은대게 낚시 등 독특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버스킹 공연과 버블매직쇼 등도 행사 기간 내내 이어진다. 붉은대게는 흔히 가공식품으로도 많이 판매된다. 붉은대게를 재료로 만든 다양한 가공식품 무료 시식회가 축제 기간에 진행된다. -축제 기간 외에 울진을 방문할 경우 후포항 인근의 ‘왕돌회수산’을 추천한다. 대게와 붉은대게찜, 문어 등 겨울 진미를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시장통’은 선술집에 가까운 횟집이다. 후포항 번화가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어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다. 드물게 혼획된 고래 고기도 맛볼 수 있다. 곰치국은 후포항 앞 ‘호암회대게수산’이 잘한다. 맑은탕(지리)으로 낸다. 대부분의 집에서 곰치국은 시가로 받는다. ‘곰치’ 경매가에 변동이 커서다. 1인분에 보통 1만 8000~2만원, ‘곰치’가 금값일 때는 3만원대 가격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망양정해물칼국수’는 칼국수가 맛있는 집이다. 칼국수의 양이 적게 느껴질 정도로 가리비 등의 해산물을 듬뿍 넣는다. 죽변항에 있다. -동해선은 차창 밖 풍경에 차이가 크다. 한쪽은 오션뷰, 다른 한쪽은 대체로 ‘뒷산뷰’(혹은 ‘절벽뷰’)다. 강릉에서 부전행은 진행 방향의 왼쪽, 그러니까 A와 B석, 반대로 강릉행은 오른쪽 C·D석이 오션뷰다. -코레일관광개발이 울진대게 축제를 돌아볼 수 있는 4종의 기차 여행 상품을 출시했다. 수도권뿐 아니라 부산, 울산 등 여러 지역의 여행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구성했다.
  • 1908년 표준시의 등장… 우리의 삶을 바꾸다

    1908년 표준시의 등장… 우리의 삶을 바꾸다

    日, 조선 통치 위해 기준 시간 도입한반도 경도 기준 땐 30분 차이 나1954년 이원철 ‘시간 광복’ 주장도군사정권 때 日표준시로 다시 바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표준시’ 제도가 등장한 때는 1908년이다. 일본 통감부가 조선의 공적 시간을 양력으로 편제한 해이기도 하다. 표준시란 한 나라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지방 평균 태양시를 가리킨다. 우리가 원해서 따라간 게 아니라 당시 일본이 조선 통치를 수월하게 하고자 도입했다. 일본의 표준시와 차이가 나면서 불편함을 느끼자 일본은 1912년 우리나라 표준시를 일본 경도 기준으로 맞춰 버렸다. 해방 이후인 1954년 이원철 국립중앙관상대장이 ‘시간 광복’을 주장하며 우리나라 경도를 기준으로 표준시를 바꾸면서 30분이 늦춰졌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세계 각국 표준시는 정수로 시차를 둔다는 이유로 1961년 다시 일본 표준시로 바꾼다. 우리나라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정착한 것은 백 년 남짓에 불과하다. 일본이 침탈을 시작한 근대에 특히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이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표준시 변경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혼란에 혼란을 거듭했다. 책은 한국에서 태양력을 채용한 1896년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나는 1945년까지 근대적인 시간의 형성을 따라간다. 종, 오포, 사이렌, 시계, 라디오, 달력 같은 사물들이 어떤 목적으로 도입되고, 어떻게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바꾸는지 살핀다. 저자는 시간이 우리 삶을 반영하면서 반대로 삶의 모습을 바꾸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조선시대에는 시계가 아니라 달력 정도만 있어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차츰 관공서, 우편국, 철도역, 백화점, 은행, 병원, 학교 등 이른바 ‘시계’를 장착한 공간이 늘어나면서 ‘시간의 질서’가 재편된다. 한일병합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시간에 맞춰 쏘는 오포가 등장했다. 1920년대 중반 무렵엔 사이렌이 이를 대신했다. 훨씬 더 넓은 공간에 시간을 알리기 위해서다. 1930년대가 되면 시계와 라디오의 대중적인 보급으로 근대적인 시간이 일상화한다. 특히 6월 10일 ‘시(時)의 기념일’은 시계의 보급과 시간 관념의 확산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라디오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벌어진 일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사이렌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매일 아침 학교, 공원, 신사 등에 모여 체조를 하면서 서로의 몸을 하나로 조율했다. 전시에 언제든 조선인을 동원할 수 있도록 몸과 정신을 통합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따라서다. 당시에 사람은 일종의 ‘물자’나 다름없었다. 책은 800여쪽에 걸쳐 시간 정착의 근대사를 사실 위주로 담담하게 기록한다. 그러나 행간마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어떻게 시간을 악용하고 오용하고 남용했는지 읽을 수 있다. 근대적인 시간은 매우 느린 속도로 조선의 공간에 스며들었고, 부자연스럽고 엉성하게 침투했다. 손목시계가 점차 사라지고 휴대전화가 시계를 대신하는 지금, 우리에게 시간은 어떤 개념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 ‘연봉 60억’ 전한길 “나는 머슴”… 광화문 오라는 전광훈 요청 거절한 이유는

    ‘연봉 60억’ 전한길 “나는 머슴”… 광화문 오라는 전광훈 요청 거절한 이유는

    “尹 탄핵되면 제2의 4·19 혁명 일어날 것” 연봉이 60억원에 이른다고 밝힌 유명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고 있는 것과 관련, “대한민국이 침몰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며 탄핵 반대 집회에서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전씨는 지난 12일 공개된 뉴스1TV와의 인터뷰에서 ‘연봉 60억원 일타강사가 왜 목소리를 내냐는 관심·궁금증이 많다’는 질문에 “(그런 궁금증은) 아내랑 가족들이 반대하는 이유랑 같을 것이다. 돈 잘 벌고 인기 있고 존경받던 일타강사가 왜 갑자기 욕먹어가며 이런 걸 하냐고들 한다”면서 “역으로 제가 오죽 답답하면, 돈도 못 벌 수도 있는데 나섰겠느냐”고 답했다. 전씨는 이어 “역사 강사로서 역사적으로 보면 헤게모니가 바뀔 때마다 전쟁이 나는 등 굉장히 큰 위기가 닥친다”며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보면 예기치 않았던 비상계엄이 터졌고, 그 후 탄핵 정국 속에서 대통령, 국무총리 등이 탄핵에 탄핵 되면서 대한민국이 추락할지 모른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마저 입법부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만약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까지 되면 대한민국은 히틀러의 나치당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제가 골프나 치러 다니고 여행 다니면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살 수도 있지만, 나이 더 들어서 먼 훗날 인생을 돌아봤을 때 ‘너무 비겁했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또 2030 내 제자들이 비참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보수집회 참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축인 ‘광화문파’와 손현보 부산세계로교회 목사와 개신교계 단체 세이브코리아의 ‘여의도파’로 분열됐다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서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한배에서 자식이 나와도 아이들 성격이 다 다르지 않느냐”며 “하지만 ‘파’라고 말할 수는 없고 모두가 윤 대통령 탄핵 반대라는 목표에서는 하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광훈 목사가 저한테도 ‘광화문에 와 달라’고 벌써 2번 전화했었다”며 “‘지난 5년간 광화문에서 태극기·성조기 들고 (보수집회) 해줘서 그 동력을 받아서 제가 전국 돌아다니며 이렇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렸다”고 했다. 그럼에도 전씨는 광화문에 와달라는 전 목사의 요청엔 응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거길 가는 순간 (반대 세력이 저와 전 목사와) 같이 엮을 것이고, 그러면 (진영) 전체가 약화된다”며 “우리는 더 크게 확장하기 위해 각자의 역할이 나뉘어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전씨는 오는 3·1절 서울에서 진행되는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정치 활동’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30 세대들이 절망할 것이라 생각하면 (탄핵 인용 시) 기꺼이 한 몸 던질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땐 고문 당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는데, 지금 우리가 고문을 당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기꺼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씨는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헌재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을 기각한다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다음은 혁명밖에는 없다’고 답한 것을 인용하면서 “(윤 대통령 탄핵 인용 시) 국민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제2의 4·19 혁명이 일어나지 않겠나 싶다”라고도 했다. 전씨는 “2030 세대들은 지역을 막론하고 공정과 상식, 법치가 존중되는 대한민국을 원한다면 집회에 무조건 다 와달라는 부탁을 드린다”고 당부하면서 “전한길은 머슴이다. 나는 머슴이고, 여러분들이 주인이다”라고 했다. 한편 전씨는 지난 1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된다면) 국민들은 불의한 재판관들의 심판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이 헌재를 휩쓸 것”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샀다. 이에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지난 5일 전씨를 내란선동 등 혐의로 고발했다. 이 사건은 경기남부경찰청에 배당됐다.
  • 용도에 따른 다양한 공공건축[노은주·임형남의 K건축 이야기]

    용도에 따른 다양한 공공건축[노은주·임형남의 K건축 이야기]

    잡록집 ‘용재총화’를 쓴 성현은 조선 세조 대에 태어나 성종과 연산군 대에 활동하며 공조·예조판서 등을 역임했던 당대의 풍류객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과 풍경 그리고 당시 사회의 모습을 마치 옆에서 수다를 떨 듯 재미있고 방대하게 엮어 놓았다. 자세한 기록이 드문 한양의 관청과 그 공간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는데 특히 예조 청사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예조는 광화문 쪽을 봤을 때 서쪽에 있는 정부서울청사 자리였다고 한다. “육조에서 예조가 가장 아름답다 하겠다. 비록 큰일을 만나면 몹시 바빠서 틈이 없으나 일이 끝나면 항상 한가로웠다. 일본, 여진의 사신을 접대할 때는 당상관 세 사람이 모두 무늬 있는 예복을 입었고, 예빈시는 연회를 베풀었으며, 악관들은 연주를 했다.” 예조 청사가 화려했던 것은 군무를 통할하는 삼군부 터였기 때문이다. 조선 초 정도전이 “정부와 군부는 일체”라며 광화문 동쪽 의정부에 비할 만큼 만들다 보니 다른 관부보다 웅장해진 것이다. 이후 삼군부를 폐지하고 중추원을 뒀다가 오례를 관장하고 다른 나라의 사신을 접대하는 곳으로서의 임무가 중하다고 해서 예조로 바꿨다. 서울 옛 지도를 보면 광화문 앞 큰길 좌우로 의정부, 예조, 형조 등 정부 관리들의 집무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의금부는 종로1가에 있었고 대궐에서 쓰는 여러 가지 식품, 직조와 연회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내자시는 내자동에, 왕실의 쌀·베·잡화 및 노비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내수사는 내수동에, 정치 문제에 관해 논하는 언론기관의 역할을 담당하던 사간원은 사간동에 있었다. 즉, 지금 동네의 이름이 당시 있었던 관청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관청 자리는 시대별로 변화한다. 가령 도화서는 지금의 조계사 근처에 있다가 왕실에 건물을 내주며 을지로1가 페럼타워 자리로 옮겼음을 시대가 다른 지도를 비교하며 알게 된다. 서울은 그렇게 관청이 사대문 안에 두루 펼쳐져 있었는데 지방의 경우는 어땠을까. 사극에서는 동헌에 고을 수령이 앉아 있고 그 주변에서 이방·호방 등이 조아리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최근 방영한 ‘옥씨부인전’에서는 지금의 변호사 격인 외지부라는 생소한 직함이 등장해 관찰사 앞에서 현감의 잘못을 따지거나 억울한 백성을 위해 법 조항을 들며 적극적인 변호를 하는 모습이 나와 무척 인기를 끌기도 했다. 조선은 군현제도에 입각해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밑에 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 등을 구성했다. 관찰사가 집무하던 관아를 ‘감영’으로, 목사·부사·군수·현령·현감 등 크고 작은 각 읍의 수령이 근무하던 관아를 ‘동헌’으로 불렀다. 각 관아에는 객사라는 숙박시설도 따로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중앙에서 파견된 사신들이 이용하던 것이었다. 객사는 본전에 왕을 상징하는 ‘전’(殿)이나 ‘궐’(闕) 같은 글자를 두고 정기적으로 궁궐을 향해 절하는 망궐례 의식을 거행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강릉은 도호부가 설치됐던 유서 깊은 도시다. 영동 지역의 중심이었고 향교와 많은 시설 등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 모습이 남은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강릉 ‘임영관 삼문’(객사문)은 강릉 객사로 들어가는 문이다. 배흘림기둥과 주심포 형식이 웅장하며 전국에 몇 남지 않은 고려 시대 건축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예전 객사와 동헌 등을 복원하며 새롭게 단장된 건물들 사이에서 그간의 풍상을 지그시 눈을 감고 회상하는 현자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앞 도로변에는 ‘칠사당’이라는 건물이 있다. 지방 수령의 업무 공간인데 우리가 아는 동헌과는 좀 다르다. 복원된 동헌은 대외적인 행사와 재판 등을 관장하던 외동헌이라 볼 수 있는데, 칠사당은 평소 일반적 행정업무를 수행하던 장소다. ‘칠사’란 지방 수령이 수행해야 할 일곱 가지 업무를 말한다. 얼마 전 칠사당과 객사문을 보기 위해 강릉에 다녀왔다. 새로 복원해 찌르는 듯한 단청의 색조를 띠고 있는 영역을 지나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담인 방화장으로 행랑이 길게 이어지는 대갓집 같은 느낌의 솟을대문에 들어섰다. 커다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고 높게 솟은 누마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부가 드러나는 필로티 형식의 누마루는 정면 한 칸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대문과의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장대한 느낌이 들었고, 기둥을 받치고 있는 원형 주초석과 기둥은 불끈 일어선 동물의 발처럼 강인해 보였다. 건물은 누마루 뒤편에 온돌방이 있고 옆으로 3칸의 마루, 3칸의 방으로 구성된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순한 구조다. 이 건물에 근엄함을 주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면 대청마루와 그 옆으로 붙은 방들을 툇마루가 묶어 주고 그 앞으로 한 켜의 회랑공간을 더 내단 것이다. 회랑은 단순한 공간에 깊이를 준다. 누마루라는 수직의 요소에 회랑이라는 수평의 요소를 한 겹 붙이면서 칠사당은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민의를 수렴하는 공적인 공간이 가지는 엄정한 자세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보는 이를 압도하기 위한 권위만 앞세우며 자꾸만 규모를 키우는 현실의 관청들을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건축이다. 노은주·임형남 부부 건축가
  • 갈림길에 선 제주 평화대공원… 스포츠타운 조성 계획에 ‘발칵’[이슈&이슈]

    갈림길에 선 제주 평화대공원… 스포츠타운 조성 계획에 ‘발칵’[이슈&이슈]

    일제 상처 품은 알뜨르비행장 일대파크골프장·전지훈련 시설도 건설찬성 측, 평화·스포츠 연관성 강조“토지 강제수용 주민에게 환원해야”반대 측, 역사적 상징성 간과 비판“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줄지 고민을”반발 거세자 제주도 “확정 아니다”제주도가 지난해 12월 일제강점기와 제주 4·3사건의 아픔을 동시에 간직한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 일대에 조성할 주민 숙원 사업인 평화대공원 밑그림을 공개한 뒤 논란이 일고 있다. 69만㎡ 규모의 평화대공원 조성 구상안에 파크골프장은 물론 야구장, 사격훈련장 등 대규모 스포츠 시설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평화대공원 조성 사업은 당초 ‘제주평화대공원 조성 기본계획’에 포함된 평화전시관, 평화광장, 관람로, 조경 시설, 격납고 등 전적지 문화재를 보존·정비하는 역사공원 조성 사업과 함께 지역 발전을 위한 주민 숙원 사업도 담았다. 도는 송악산 난개발 및 경관 사유화 방지와 도민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매입한 40만 748㎡를 중심으로 도립공원을 확대하고 알뜨르 비행장 주변 평화대공원과의 생태적 연계축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가 발표한 평화대공원 구상에서 지역경제 활성화 및 주민 숙원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전지훈련 시설(5만 375㎡)과 스포츠타운(23만 8713㎡)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 동쪽에 야구장 4면과 사격장을 건설하고 북동쪽 지하 벙커와 관제탑 유적지 주변에 대규모 파크골프장(36홀)을 건설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또한 송악산 인근 산이수동 마을 근처 옛 뉴오션타운 개발사업 터에는 전지훈련 복합시설로 숙박 시설을 포함한 국민체육센터(1만 6116㎡)와 축구장(9403㎡) 조성 등이 계획됐다. 문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대정읍 상모리 마을 아래의 너른 벌판에 건설한 군용 비행장인 알뜨르 비행장 일대가 역사적 비극이 서린 장소라는 점이다. 설 연휴 중이던 지난달 29일 오후 찾은 알뜨르 비행장 일대에는 찬바람이 부는데도 가족 동반 관광객들 20여명이 보였다. 알뜨르 비행장 일대에는 일제 고사포진지를 비롯한 셋알오름 일제동굴진지,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 등 역사의 비극을 마주할 유적지가 많아 제주 ‘다크 투어리즘’(역사교훈여행)의 성지로 불린다. 1930년대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만들어 1945년까지 사용했던 알뜨르 비행장은 당시 주민들이 일본군에게 땅을 빼앗기고 강제 노역에까지 동원되는 등 아픈 역사를 품은 장소이다. 동시에 4·3의 광풍 속에서 인근 주민들이 예비검속으로 인해 학살당하기도 한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이 일대를 중심으로 역사의 아픔과 평화의 정신을 녹여내 평화 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국방부 소유인 알뜨르 비행장 일대 토지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주평화대공원 조성 관련 개정 법안이 2023년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공원 조성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제주도 관계자는 “평화대공원을 제주 역사의 상징적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일제강점기 전적지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보존·정비한 뒤 다크 투어리즘과 연계해 제주의 근현대사를 전하는 역사·문화 관광지로 조성한다”면서 “다만 마라해양도립공원 공원구역 변경 용역 과정에서 용역진과 함께 대정읍 지역 주민들과 소통했고, 그 과정에서 전지훈련 유치를 위한 체육 시설을 건설해 달라는 건의를 받아 가칭 ‘스포츠타운’으로 명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다수 도민은 제주도의 평화공원 구상안은 제주의 숙원 사업이었던 데다 알뜨르 비행장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의 무게를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유산을 후손들에게 어떻게 물려줄지 고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용역보고회 자리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찬성 측은 평화와 스포츠의 의미적 연관성을 강조하며 일제강점기에 토지를 강제 수용당한 지역 주민에게 환원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스포츠와 연계한 체류형 관광자원을 확보해 송악산을 방문하는 연간 관광객 370만명의 경제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대정 지역 주민은 “스포츠파크 건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스포츠와 평화는 공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세계인이 감탄하는 땅에 일제강점기 동안 군사 시설이 마구잡이로 건설됐다”면서 “옛날에 설움을 받았던 주민들의 넋이라도 달래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반면 반대 측은 주민들의 체육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하나 왜 하필 스포츠타운이 평화대공원에 들어서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영권 제주역사교육연구소장은 “역사 유적은 한번 망가지면 회복되지 않는다”며 “도민의 문화 의식 수준이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도 “주객이 전도됐다”며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후손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 송악산과 제주평화대공원 보존을 위한 ‘송악산·알뜨르사람들’은 최근 성명을 내고 “평화와 생태의 공간에 난데없이 체육 시설 건설안을 검토한다는 발상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송악산과 알뜨르 일대가 생태와 평화의 가치를 온전히 실현하는 평화대공원으로 조성되길 바란다”고 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제주도 관계자는 “이번 용역안은 확정된 게 아니고 검토 단계일 뿐”이라며 “세계 평화의 섬 제주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올해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지 20주년을 맞는다. 정부는 2005년 1월 27일 과거 냉전의 아픈 역사를 극복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정착시키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다. 이와 관련해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은 메시지를 통해 “1단계 평화 실천 사업 중 지지부진했던 평화대공원 사업 또한 도민 합의를 기반으로 평화에 부합한 진정한 사업으로 조속히 추진돼야 하며 국가 차원의 지원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6일 도청에서 열린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올림픽이 평화의 제전인 것처럼 평화와 스포츠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 오예진 선수가 파리올림픽에서 사격 금메달을 땄을 때 제주에 사격장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평화대공원 일부에 사격장과 전지훈련장 등 스포츠 훈련 시설이 들어서면 위상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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