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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사가 마플라이, 에세이집 ‘낯선 곳으로의 산책’ 발간 “역사X청춘”

    작사가 마플라이, 에세이집 ‘낯선 곳으로의 산책’ 발간 “역사X청춘”

    작가 예오름이 청춘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역사여행 에세이 ‘낯선 곳으로의 산책’을 출간했다. 예오름은 작사가 마플라이(MAFLY)라는 예명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태연 ‘아이(I)’, 소녀시대 태티서 ‘할러(Holler)’, 뉴이스트 ‘여왕의 기사’ 그 외에도 여자친구, 트와이스, 인순이, 엄정화, 빅스 등 수많은 아이돌 그룹의 타이틀곡 및 수록곡을 작사했다. 작사가 이외에도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며 밝고 활기찬 메시지를 담은 글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낯선 곳으로의 산책’은 예오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비롯한 중국의 독립유적지 일대를 여행하며 기록한 청춘 일기다. 30대에 막 접어든 여성이 느낀 막막함과 삶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는 에세이로, 역사와 청춘을 결합한 예오름만의 독특한 관점이 담겼다. 예오름은 ‘낯선 곳으로의 산책’에서 일제강점기 시절의 쓰라린 역사가 담긴 유적지 곳곳을 여행하며 느낀 점들을 섬세하고 부드러운 문체로 풀어냈다. 차분하게 묘사한 현장의 분위기와 독립투사들의 열정과 몸을 사리지 않는 희생을 상기하며 깨달은 성찰이 어우러져 잔잔한 울림을 준다. 갓 30대로 접어든 그가 쳇바퀴 돌 듯 지루한 현실에서 의미 있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동안 작품마다 ‘위로’와 ‘희망’, ‘꿈’ 이라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았던 그답게 따뜻하고 정겨운 메시지가 가득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청춘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막막함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면서, 작사가로서 보여준 예오름 특유의 밝고 건강한 이미지가 책 곳곳에 배어있어 눈길을 끈다. 작가 예오름은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작가라 독자들이 채워갈 여백이 많은 책이다.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독자와 함께 우리 시대의 고민과 아픔에 대해 소통하고 생각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임시정부 현장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았다”며 “책을 읽고 청춘의 독자들이 한 번쯤 역사 현장을 돌아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류승완 강혜정 부부, 협회 탈퇴 이어 김동호 강수연 BIFF 사퇴 ‘영화계 술렁’

    류승완 강혜정 부부, 협회 탈퇴 이어 김동호 강수연 BIFF 사퇴 ‘영화계 술렁’

    영화 ‘군함도’ 류승완 감독과 제작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가 최근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영화계의 각종 협회를 탈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부산국제영화제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도 사퇴를 발표했다. 8일 영화계에 따르면 류승완 강혜정 부부는 최근 한국영화감독조합, 영화제작자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여성영화인모임 등 두 사람이 속한 모든 영화 관련 협회에 탈퇴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각종 단체를 통해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두 사람이 소속 단체를 탈퇴한 것은 최근 ‘군함도’를 둘러싼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군함도에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탈출을 그린 ‘군함도’는 CJ E&M이 배급을 맡아 지난 7월 26일 역대 최다인 2천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개봉됐다. 이 때문에 개봉하자마자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류승완 감독이 그동안 스크린 독과점에 꾸준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터라 류승완 감독을 향한 세간의 비판은 더욱 거셌다. 이에 류승완 감독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여름시즌이면 반복되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의 중심에 제가 만든 영화가 서게 돼 대단히 송구하다”며 사과하기도 했다.한편 부산국제영화제(BIFF·이하 부국제)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김동호 이사장과 함께 집행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8일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최근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김동호 이사장과 함께 사퇴하기로 했다”고 공식입장을 표명했다. 강수연 위원장은 집행위원장으로서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 하겠다는 뜻을 강조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영화제는 개최돼야 한다. 올해 영화제를 최선을 다해 개최한 다음 10월 21일 영화제 폐막식을 마지막으로 떠나겠다”고 덧붙였다. 강수연은 지난 2015년부터 부국제 집행위원장으로 위촉돼 약 3년간 부국제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무국 측과 불통·불신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사무국 전직원 일동은 7일 공식 성명서를 통해 “영화제 정상화와 22회 영화제의 올바르고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서병수 부산시장의 공개 사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복귀, 그리고 국내외 영화인들의 지지와 참여를 호소한다”며 “2014년 영화 ‘다이빙벨’ 상영 후 불거진 후폭풍의 잔재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태의 해결을 위해 구원투수처럼 등장한 강수연 집행위원장에게 직원들은 기대를 걸고 그의 뜻에 묵묵히 따르며 일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취임 이후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지금껏 보여 온 영화제 대내외 운영에 대한 소통 단절과 독단적 행보는 도가 지나치다. 두 번의 영화제를 개최하는 동안 실무자에 대한 불통과 불신으로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고 호소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100년만에 발굴되는 아라가야시대 왕 무덤에서 어떤 유물 나올지 관심

    경남 함안군 말이산 일원에 조성돼 있는 아라가야시대 고분군 가운데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는 최고 유력자 무덤으로 추정되는 13호분에 대한 발굴이 추진돼 관심이 쏠린다. 8일 함안군에 따르면 문화재청이 말이산 13호분에 대한 발굴조사 및 정비사업을 최근 확정했다. 군은 말이산 13호분이 봉분 정상부를 중심으로 침하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원인 규명과 정비 계획을 세워 문화재청에 긴급 정비를 요청해 문화재청이 우선 사업비 1억원을 지원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일 군은 13호 고분 발굴조사를 위한 자문위원회를 열고 발굴·조사 및 복원 방향과 세부방법 등에 대한 자문을 받았다. 13호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는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 가운데 4호분 다음으로 두번째 큰 무덤이다. 말이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무덤 직경이 39.7m, 높이 9.7m에 이른다. 13호분은 1918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사업 대상에 포함돼 무분별하게 발굴이 됐다. 당시 발굴작업과 관련해 사진 3장과 간단한 도면 2장만 남아 있을 뿐 자세한 기록이 없어 고분 절반쯤이 발굴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어떤 유물이 나왔는지 알 수 없다. 1970년대 봉분만 복원됐다. 역사학계에서는 일제 시대 도굴에 가까운 발굴로 출토된 유물은 일본 등으로 유출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군과 학계는 대형 고분인 13호분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아라가야시대 역사 연구·고증에 중요한 사료가 될 중요한 유물이 나올 가능성도 기대하고 있다. 자문회의에서 전문가들은 “말이산13호분 발굴·조사는 가야의 역사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말이산13호분 발굴은 현재 추진 중인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등재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철저한 조사기록과 영상 등 다양한 자료를 확보해 잘 보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군은 조만간 발굴조사 기관을 선정해 늦어도 내년 초부터 발굴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발굴·정비·복원에는 2년여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군 관계자는 “2018년은 말이산13호분 조사 100년이 되는 해로 일제강점기에 유린당한 13호분을 가야사 연구복원이 주목받는 시점에서 100년 만에 정식으로 다시 발굴 하게 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군은 13호분 발굴작업을 통해 아라가야 관련 새 유물이 발견되면 가야사 연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발 70m 야산인 함안 말이산 일원에는 아라가야시대 왕들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형 봉분 1000여기가 2㎞에 걸쳐 모여 있다. 37기는 봉분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무덤 호수를 붙여 관리하고 있으며 100여기는 봉분 흔적이 남아 있다. 1992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의 말 갑옷이 발굴되는 등 한반도 철기문화 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함안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靑 관저 ‘신라 석불’ 경주로 돌려보내 달라”

    “靑 관저 ‘신라 석불’ 경주로 돌려보내 달라”

    日 강점기 때 옮겨져 공개 안 돼 조형미 탁월… ‘미남불’로 불려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石佛坐像)을 경북 경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높이 1m의 이 불상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조선총독부 관저가 신축됐을 때 현 청와대(당시 경무대) 터로 옮겨졌다. 이후 90년 동안 대중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7일 “청와대에 있는 석불좌상을 경주로 돌려보내 달라”며 국회와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혜문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 청산을 하겠다면 청와대 내에 있는 일제 잔재부터 청산해야 한다”면서 “일제 약탈의 아픔이 남아 있는 불상을 광복절을 맞아 경주국립박물관으로 옮긴다면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불상은 최초로 경주 남산의 옛 절터에서 발견됐다.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후반쯤인 것으로 알려졌다. 석굴암 본존불과 생김새가 똑같으며 3분의1 크기의 축소형이다. 탁월한 조형미를 갖춰 ‘미남 불상’으로도 불린다. 서울시는 1974년 1월 시유형문화재 24호로 지정했다. 석불좌상은 1913년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경주 시찰 중 경주금융조합 이사인 일본인 오히라로부터 진상받아 서울의 총독 관저로 가져왔고, 1927년 총독관저가 신축되자 지금의 청와대 관사 뒤편으로 옮겨져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됐다. 이후 석불좌상의 존재가 다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4년이다. 1993년부터 구포역 열차전복 사고와 아시아나항공기 추락 사고,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 대형사고가 터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 있던 석불좌상을 치웠기 때문이라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그러자 청와대가 1994년 10월 27일 출입기자들에게 불상이 제자리에 있음을 공개했다. 1989년에는 대통령 관저가 신축되면서 당시 자리에서 100m 정도 위로 올라간 현재 위치로 이전됐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첫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12일 인천 부평공원에서 제막

    첫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12일 인천 부평공원에서 제막

    일본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지하 막장에서 일하다 죽어간 사실을 다룬 영화 ‘군함도’가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 동상이 국내에 잇따라 건립된다. 국내 첫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은 오는 12일 일제강점기 군수물자 보급 공장인 육군 조병창 터를 마주하는 인천 부평구 부평공원에서 제막된다.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 상 인천 건립추진위원회가 시민 성금 1억원으로 만든 이 동상은 공원 안에 이미 건립된 평화의 소녀상 옆에 나란히 세워질 예정이다. 추진위는 공모를 통해 이원석 조각가의 ‘해방의 예감’을 최종 작품으로 선정했다. 이 동상은 가로 4m, 세로 3m 크기로 일제강점기 부녀 노동자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부평 조병창에서 일했던 지영례 할머니 등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았다. 징용노동자 상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지난해 8월 일본 단바망간기념관에 처음 건립했으며 국내에서는 아직 세워진 적이 없다. 창원과 제주에서도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 상을 제정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제정 계획은 확정됐으며 구체적인 일정을 놓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이주의 문화 레시피]

    [이주의 문화 레시피]

    [전시·미술]●마루야마 나오후미 개인전 배경과 사물을 구분하는 경계선 없이 흐릿한 명암과 색채의 미묘한 변화로 사물의 현실적 재현을 희석시키는 마루야마 나오후미의 한국 첫 개인전. 작가의 90년대 드로잉 작품을 비롯해 천에 아크릴로 그린 최근 작품 등 40점을 선보인다. 9월 8일까지, 대구 우손갤러리. (053)427-7736. ●‘미술관 동물원’전 현대미술 속의 동물은 창작과 윤리 사이를 오가며 이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동물원 속 동물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에 착안한 기획전. 작가들은 동물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부각시키거나 동물을 인간에 대입해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강민규, 김기대, 김상진, 노충현 등 참여. 13일까지,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미술관. (02)880-9504. [대중음악]●박남정 콘서트 ‘청춘’ 1980~90년대 ‘춤신춤왕’ 박남정이 2004년 정규 7집 앨범 이후 13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하고 선보이는 소극장 단독 콘서트. ‘아! 바람이여’ ‘널 그리며’ 등 인기곡에서부터 신곡 ‘바로 이 시간’, ‘멀리 가요’까지 다채로운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11일 오후 8시, 12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 5만 5000원. (02)558-4588. ●2017 짙은 유니-버스 클럽 투어 서울 9년 만에 정규 2집 앨범을 발매한 감성 싱어송라이터 짙은이 진행 중인 전국 클럽 투어의 서울 순서다. 2005년 데뷔한 짙은은 본래 기타리스트 윤형로와 보컬 성용욱의 2인조였으나 2011년 윤형로가 팀을 떠난 뒤 성용욱이 홀로 남았다. 공연은 우주 느낌을 가득 담은 새 앨범 위주로 꾸며질 예정이다. 12, 13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 4만 4000원. 1544-1555. [뮤지컬·연극]●뮤지컬 ‘아리랑’ 조정래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파란의 시대를 살았던 민초들의 삶과 사랑, 투쟁의 역사를 그린다. 안재욱·서범석 등 2015년 초연 배우 31명에 윤형렬·박지연 등 11명의 새로운 얼굴들이 합류한다. 9월 3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4만~13만원. (02)580-1300. ●연극 ‘글로리아’ 미국 뉴욕 한복판에 자리잡은 잡지 편집부에서 각자 자기가 맡은 일로 분주하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오후, 이 사무실에서 가장 오랜 기간 근무한 글로리아의 예상치 못한 선택이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며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4만원. 070-4141-7708. [국악·클래식]●낮잠콘서트-문화놀이터 동화 한여름의 피로를 국악으로 날려 보내기 위해 서울돈화문국악당이 마련한 프로젝트의 마지막 주 순서다. 창작국악그룹인 문화놀이터 동화가 윤동주와 김소월 등의 시를 국악과 연극으로 재창조한 음악극 ‘시인의 나라’를 무대에 올린다. 8~1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돈화문국악당. 1만원. (02)3210-7001. ●플루트 앙상블 송 서울시향 부수석을 지낸 플루티스트 송영지의 제자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플루트 앙상블이 꾸미는 무대다. 플루티스트 15명이 피아니스트 문정재와 함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 등을 플루트 위주로 연주하며 흔치 않은 무대를 꾸민다. 13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2만원. (02)581-5404.
  • [역사를 바꾼 요리 가루] 입맛·영양 모두 잡는 한끼 ‘마법의 황금 가루’ 카레

    [역사를 바꾼 요리 가루] 입맛·영양 모두 잡는 한끼 ‘마법의 황금 가루’ 카레

    세계를 발밑에 둔 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위용을 떨치던 17세기의 대영제국도 인도의 뜨거운 폭염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당시 인도에 자리잡은 영국인들은 무더위로 인한 만성 식욕부진과 소화기 장애에 늘 시달려야 했다. 반면 인도인들은 아무리 강렬한 더위 앞에서도 기력을 잃지 않았다. 영국인들은 이내 그 비밀을 독특하고 알싸한 향의 황금빛 가루에서 찾았고, 유럽 대륙으로 전격 ‘스카우트’ 했다. 그렇게 국제무대에 데뷔한 카레는 이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음식의 풍미를 돋워 입맛을 사로잡는 주방의 조수이자 1인 가구의 영양 보충을 돕는 든든한 한끼 식사로 자리잡았다.카레는 대표적인 인도 음식이다. 카레의 어원은 인도 타밀어로 ‘소스’라는 뜻의 ‘카리’(Kari)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향기롭고 맛있다’는 의미의 힌두어 ‘투라리’(Turar)로 불리다가 후에 영국에 전해지면서 ‘커리’(Curry)가 됐다는 설도 있다. 일반적으로 카레는 노란색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도 및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널리 쓰이는 향신료인 카레나무는 사실 푸른 잎사귀를 갖고 있다. 우리가 아는 카레의 황금빛은 카레의 주 재료인 강황 때문이다. 카레 잎은 월계수 잎보다 작고 연하며, 보통 줄기에 붙어 있는 신선한 상태로 구입해 기름에 살짝 볶아 향을 살려서 요리에 사용한다. 이 카레 잎과 겨자씨, 강황, 고수, 커민, 고추, 후추, 계피, 페누그닉, 코리앤더 등 각종 천연 향신료를 건조해 분말로 가공한 것이 바로 카레 가루다. 여기에 다시 식품첨가물 등을 적절히 배합하면 소스 카레가 된다. 시중에 유통되는 카레 제품의 경우 고형·분말 제품에는 카레 가루가 5% 이상, 액상 제품에는 1% 이상 들어간다. 인도에서 유래했지만 현재 우리에게 친숙한 형태의 카레는 영국을 중심으로 전파됐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17세기 인도 현지에 머물게 된 영국인들이 음식의 부패나 맛의 변질을 막아주고 식욕을 돋우는 카레의 매력에 눈뜬 것이다. 인도의 초대 총독이었던 워런 헤이스팅스가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대량의 커리 향신료를 빅토리아 여왕에게 진상했다는 기록도 있다. 18세기 초 영국 본토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카레는 1810년 옥스퍼드 사전에 ‘커리 파우더’(curry powder)라는 단어가 처음 등재될 정도로 대중화됐다. 영국에 건너온 카레는 유럽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매운맛을 줄이고 밀가루를 넣은 스튜 형태로 변형됐다. 초기에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다가 점차 대중적으로 수요가 늘었다. 18세기 말에는 ‘크로스 앤드 블랙웰’(C&B)이라는 영국 식품회사가 세계 최초로 카레를 즉석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분말 형태로 제조·상업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급속도로 퍼졌다. 네덜란드에서는 인도네시아 요리의 영향을 받아 코코넛 우유를 넣은 카레 요리를 개발했고, 프랑스에서는 ‘루’(밀가루와 버터를 섞은 요리 재료)를 넣어 걸쭉한 카레를 만드는 등 국가별로 다양한 카레 조리법이 발명됐다. 일본으로도 전해진 카레는 ‘커리’의 일본식 발음인 ‘카레’(カレ)로 불렸다. ‘풍월당’이라는 식당에서 처음 판매돼 점차 일반 가정에까지 보급됐다. 일본의 카레는 유럽식에 비해 고기의 양이 적고 채소가 많이 들어간다. 밥 위에 카레를 끼얹어 먹는 카레라이스도 일본에서 탄생했다.국내에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카레가 처음 소개됐다. 당시 서울 명동 등지에서 운영하던 양식당의 주 메뉴 중 하나가 일본식 카레라이스였다. 그렇다 보니 당시 카레는 부자들만 맛볼 수 있는 진귀한 음식이었다. 쌀 1㎏의 가격이 25전 정도이던 1935년 무렵, 카레라이스 한 그릇의 가격은 그 5배인 1원 25전(125전)에 달했다. 1969년 5월 5일 식품업체 오뚜기가 국내 최초로 인스턴트 카레를 출시하면서 카레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서구화된 생활방식이 널리 퍼진 데다 간편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음식으로 인식되면서 카레가 널리 사랑받았다. 특히 밥에 카레를 끼얹어 조금씩 떠먹는 일본과 달리 비빔밥처럼 소스를 밥에 비벼 먹거나 단무지, 김치를 곁들여 먹는 등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카레 문화가 발달했다. 카레의 원료인 각종 향신료에는 항암·항산화 작용을 비롯해 기억력 강화, 치매 예방 등 효능이 있어 특히 노인에게 이로운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카레가 주식인 인도는 세계에서 치매 발생률이 가장 낮은 국가이기도 하다. 또 카레의 ‘커큐민’ 성분은 위산 분비를 조절해 소화 작용을 돕는 역할도 한다. 카레 가루는 고기의 누린내를 잡아줘 자칫 냄새가 나기 쉬운 닭고기나 양고기 등을 이용한 요리를 할 때 소량을 첨가하면 음식의 풍미를 높일 수 있다.지난해 국내 카레 시장은 판매액 약 1161억원에 판매량 1만 112t 규모였다. 다만 최근 가정간편식(HMR) 시장의 확대로 카레를 대체할 다양한 즉석식품이 등장하면서 카레 시장은 상대적으로 소폭 위축되는 추세다. 업체별로는 오뚜기가 60% 이상의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대상 청정원이 ‘카레여왕’으로 점유율 20%를 돌파하며 오뚜기의 뒤를 쫓고 있다. 높은 진입장벽을 뚫기 위해 CJ제일제당이 2009년 ‘인델리 커리’ 7종을 내놓으며 오뚜기의 아성에 도전했으나 고전 끝에 4년 만에 시장에서 철수하기도 했다.오뚜기는 국내 최초로 레토르트 카레 시장의 문을 연데 이어 2004년 강황 함량을 늘리고 귀리를 원료로 사용해 건강을 강조한 ‘백세카레’를 출시하면서 ‘웰빙 카레’ 시장을 선도하기도 했다. 또 오뚜기의 독주에 도전장을 내밀며 2010년 출시된 청정원 카레여왕은 ‘퐁드보 육수’(오븐에 구운 소고기 뼈에 야채를 넣고 우려낸 프랑스식 육수)를 사용한 프리미엄 카레로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300만개를 돌파하는 등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과거에는 분말형, 과립형 등 제형에 따른 제품 출시에 열을 올렸다면 최근 몇년 새 카레시장은 맛의 다양화에 집중하는 추세다. 청정원은 매운 정도에 따른 맛의 분류만 존재했던 카레시장에 해물, 구운 마늘·양파, 토마토·요구르트, 치즈·코코넛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놔 호응을 얻었다. 2014년에는 향신료의 배합을 달리 한 ‘카레여왕 로열 스파이스’ 3종을 출시했다. 오뚜기도 최근 인도와 태국식 카레인 ‘3분 인도카레 마크니’, ‘3분 태국카레소스 그린’, ‘맛있는 허니망고 카레’, ‘맛있는 버터치킨 카레’ 등 국가별 카레 맛의 특성을 살린 제품들을 내놨다. 김영선 청정원 카레여왕 담당 팀장은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정간편식 시장에서 국내 간편식의 원조격인 카레가 우위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신제품 개발을 하는 것이 업체들에 주어진 숙제”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성공 바란 ‘장삼이사’, 처세·계발론으로 희망 꿈꾸다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성공 바란 ‘장삼이사’, 처세·계발론으로 희망 꿈꾸다

    “대인 관계가 원활하다는 것은 일을 잘 처리해 낸다는 말과도 같고, 그것은 곧 그 사람의 능력을 좌우하는 말이므로 보다 빠른 성공을 목표로 하는 샐러리맨이라면 복장 연출 솜씨가 뛰어나야 하는 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지혜이다.” 이 말은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1981년에 쓴 책 ‘야망의 날개’ 서문에서 패션과 사회생활의 관계를 설명한 부분이다.그가 말한 대로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부 업계 종사자들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패션에 무관심했다. 패션이라는 말은 배우, 가수 같은 연예인이나 돈 많은 상류층에서 주로 관심 두는 분야였다. 앙드레 김은 우리나라 성인들이 한국전쟁 때 청소년기를 보냈고 그 후 정치적, 경제적 변혁 시대를 정신없이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평가했다. 말하자면 국민 모두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허물어진 국가 기반을 다시 세우는 일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행복과 성장, 발전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기 힘든 시기였다. 한국전쟁 이후 1970년대까지는 이렇듯 국가 혹은 회사가 성공해야 자신도 성공한다는 등식이 지배적이었다. 사회생활은 대부분 남자의 영역이었고 어떤 분야든 일을 할 때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비즈니스라고 하면 보통은 대인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가정이나 학교에서 이런 방면의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처세술이나 대인 관계 등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은 서점에서 언제나 인기가 많았다. 당시에 유행했던 책들은 일본에서 먼저 출판됐던 것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주류를 이뤘다. 그 외에는 ‘삼국지’나 ‘손자병법’ 등 중국 고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배웠다. 중국 고전이 인기 있었던 것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성공의 의미는 주로 ‘권력, 명예, 돈’을 함께 갖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기에 영웅호걸들의 삶의 방식은 훌륭한 처세술 교과서가 됐다. 1980년대 역시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1986년 아시안게임과 뒤이어 열린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사회 분위기는 세계화라는 이미지에 익숙해졌다.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이제 세계인들과 경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특히 대표적인 선진국인 미국은 모든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성공하려면 미국을 배워야 했고 미국 기업인들의 성공 스토리에 관해 쓴 책을 읽는 게 유행이 됐다. 그즈음 밑바닥에서부터 집념 어린 노력 하나로 대기업의 꿈을 이룬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 쓴 책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젊은이들에게 큰 도전 의식을 안겨 주었다.문민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 우리나라는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대한민국도 미국 같은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성공과 행복의 가치는 남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는 쪽으로 옮아갔다. 벤처 사업으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부자 순위에 매번 이름을 올렸다. 그가 쓴 책 역시 히트 상품이 됐다.서양의 부자들은 대부분 철저한 자기 관리로 성공을 이끌어 냈다. 그 시작은 영국의 저술가 새뮤얼 스마일스의 책 ‘자조론’(自助論)이다. 1859년에 쓰인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제목 그대로 외부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는 것으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유명한 문장은 전 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목표를 이루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들의 삶을 모방할 필요는 없어졌다. 개인의 행복은 회사나 국가 같은 공동체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해 나갈 때 의미가 있다. 역사가 길지 않은 미국이 최대의 강대국이 된 이유는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신화적인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사태로 경제가 파탄 나기 전까지 많은 사람이 그런 인물들의 일대기를 그린 책을 참고서 삼아 저마다 부자의 꿈을 키워 나갔다. 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 철강왕 카네기, 석유재벌 록펠러, 그리고 철도 건설로 엄청난 부자가 된 밴더빌트까지. 이들이 돈을 번 방법은 시기와 운이 잘 맞아떨어진 것도 있지만 결국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갔다는 데 핵심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미국 재벌들에 관한 책은 엄청난 판매 부수를 올렸다. 특히 카네기는 인간 관계와 처세술, 협상의 능력, 그리고 벌어들인 돈을 적절하게 투자하는 것은 물론 인생 후반기에는 ‘기부왕’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질 만큼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바람직한 자세까지 이어지면서 수많은 카네기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기계발서 혹은 자기개발서라는 말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평범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건 더욱 힘들어졌다. 이런 시기에 색다른 책이 등장했다. 론다 번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쓴 책 ‘시크릿’은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돕는다”는 말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데, 자기계발서의 시초격이라 부를 만한 ‘자조론’의 내용에 신비주의적인 요소를 가미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지금에 와서는 ‘시크릿 기법으로 돈을 모은 사람은 정작 론다 번 한 사람뿐’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추종자들도 많다.최근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자기계발서는 단순히 부자가 되는 방법뿐만 아니라 마음을 단련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기 위한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내용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 후로 힐링(healing)이, 요즘에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의 약자)에 이르기까지 삶의 방식은 점점 더 다양화되고 성공이나 행복을 가름하는 가치관의 범위도 넓어졌다. 그렇게 된 만큼 자기계발서의 내용도 그저 돈을 벌거나 사회생활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을 넘어서서 인문학이나 고전문학을 소재로 삼는 책이 많아졌다. 무명 작가였다가 2007년 ‘꿈꾸는 다락방’으로 일약 유명인이 된 작가 이지성도 2016년에는 인문고전을 중심으로 한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펴내며 저서의 분위기를 바꿨다. 말 그대로 요즘은 인문학 열풍이다. 빅데이터의 시대다. 지혜와 지식의 개념이 마구 뒤섞이는 시대이기도 하다. 지금은 돈 많은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우러러보거나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권력이나 명예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해 갈지 알 수 없지만, 성공적인 삶과 행복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기준이 중요하다는 단순한 진리는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그렇기에 매번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태도야말로 가장 훌륭한 자기 계발 방법이라고 믿는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군함도’, 군함도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이유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군함도’, 군함도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이유

    지난 7월 말 개봉한 영화 ‘군함도’가 500만 관객을 넘기면서 여름 극장가를 지배하고 있다. 황정민·이정현·소지섭·송중기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열연이 한몫했지만, ‘군함도’의 흥행은 잊혀진 역사에 대한 강렬한 환기가 큰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국뽕 영화 아니냐’는 비판적 시선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영화는 흥행몰이를 위한 극적 장치들이 집중되면서,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일명 ‘군함도’라 불린 일제강점기 하시마섬의 실체적 진실까지는 접근하지는 못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혹은 후라도, 한수산 작가의 소설 ‘군함도’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한수산 작가가 일제강점기 하시마섬에 관한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1988년. 일본 체류 당시 일본의 평화운동가 오카 마사하루 목사의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접한 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장교로 복무하는 등 평범한 목사였던 오카 목사는 나가사키 피폭 현장을 둘러본 후 평화운동가로 변신했는데, 이후 조선인 피폭 실태 조사는 물론 일본의 가해책임과 보상문제를 해결하고자 앞장섰던 인물이다. 한수산은 숱한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2003년 ‘까마귀’를 발표했고, 이후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지난해 5월 ‘군함도’를 선보였다.소설과 영화는 몇몇 등장인물의 이름이 비슷할 뿐 다소 다른 내용이 전개된다. 물론 돈을 벌 수 있다는 간교한 꾐에 속는 등 부당한 징용으로 끌려간 한민족의 간난신고(艱難辛苦)는 영화나 소설이 다르지 않다. 남자들은 1000m가 되는 막장에서 일본말을 알아듣지 못해 각종 사고로 팔다리를 잃고, 심지어 목숨마저 잃어야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꽃다운 나이의 여자들은 위안부가 되어 청춘을 잃어버렸다. 영화나 소설이나 조선 사람들의 울분과 좌절은 어쭙잖은 필설로는 다할 수 없는 지경이다. 한수산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다고 강조라도 하듯,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밀하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여 준다.한수산의 소설 ‘군함도’ 외에도 군함도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여러 책들이 출간됐다.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은 물론 3D 퍼즐 조립과 함께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책까지 등장했다. 그중 눈길이 가는 책은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 규명을 위해 애써 온 피해자, 유족, 시민운동가 등 18명이 참여한 이 책은 하시마섬을 비롯해 홋카이도, 오키나와, 멀리는 시베리아와 파푸아뉴기니까지 끌려가야 했던 한민족의 처참한 모습을 증언한다. 영문도 모르고 전쟁에 동원되어 전범으로 몰린 청년들이 있는가 하면, 영영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에 맞선 피해자와 유족들의 법정투쟁 과정을 상세히 소개한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반드시 읽어 볼 가치가 있다.일본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선언했지만,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수난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군함도’가 국뽕이든 아니든, 2시간의 울분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진심 어린 반성을 이끌어내야 할 숙제가 우리에게 남겨졌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자들에게만 승리를 안겨 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 영화 ‘군함도’와 ‘택시운전사’ 그리고 변호사 문재인

    영화 ‘군함도’와 ‘택시운전사’ 그리고 변호사 문재인

    일제 시대 조선인 강제 징용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지옥 섬’ 군함도(하시마섬)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돼 흥행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군함도 징용 피해자를 위해 소송을 맡았던 일화가 주목받고 있다.문 대통령은 2000년 변호사 시절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히로시마 기계제작소에 강제로 동원된 피해자 6명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군함도(하시마섬)를 소유했던 일본 전범 기업이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 탄광 채굴 등에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했다. 이 소송은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한국 법원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첫 제소였다. 당시 변호사였던 문 대통령은 원고 측 대리인 중 한명으로 직접 소장 제출과 서면 준비, 증거 자료 제출 등을 맡아 2006년 11월까지 재판에 직접 관여했다. 1심, 2심은 모두 원고 청구가 기각됐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부산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부산고법은 2013년 7월 미쓰비시에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미쓰비시는 이에 불복하고 상고, 해당 사건은 아직 대법원에 4년째 계류 중이다. 일본은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은 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끝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2일 개봉하는 영화 ‘택시운전사’ 역시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소재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화의 실제 인물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민주화항쟁이 한창이던 광주에 잠입하여 군부정권이 자행한 광주의 참상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5.18 광주의 참상을 담은 필름을 과자통에 숨겨 곧장 독일로 보냈고 그렇게 세계 언론을 통해 광주의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영상은 국내에서는 철저한 언론 통제 하에 성당과 대학가 등에서만 비밀리에 공유됐다. 이 때 한 변호사가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관람전을 공개적으로 열고, 수만명의 부산 시민들이 광주 비디오를 보게끔 했다. 6월 항쟁 전날 밤 일반 시민들에게 광주 학살의 참상이 공개됐고 이는 6월 항쟁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이 변호사는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는 “부산의 민주화 운동은 바로 광주를 알리는 것”이라면서 위르겐 힌츠페터의 영상을 부산 시민들에게 최초로 공개했다. 이 사실은 두 영화의 개봉과 맞물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 그리고 어느 변호사’라는 제목으로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김동율 서울시의원 “죽산 조봉암 독립유공자 서훈돼야”

    김동율 서울시의원 “죽산 조봉암 독립유공자 서훈돼야”

    서울시의회 김동율 의원(더불어민주당, 중랑4)은 31일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열린 죽산 조봉암 선생의 추모식에 참석했다. 이날은 선생의 기일이다. (1959년 7월 31일. 사형) 죽산 조봉암 선생은 일제강점기하에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 제헌국회와 2대 국회의원 및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하고 제2, 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재직하며 농지개혁의 기틀을 마련하고 우리나라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 이었다. 김 의원은 이날 추모식에서 “망우묘지공원에 영면해 계신 조봉암선생은 지난 1959년 이날 억울한 정치적 누명을 쓰고 사형집행을 당했으며 2011년 그 혐의에 대해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독립유공자 서훈이 되지 못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새로운 정권에 새로운 처장을 맞이한 국가보훈처가 적페청산을 위해 죽산 조봉암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통해 역사를 바로 세우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 의원은 그 동안 망우묘지공원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영면하고 계시는 근현대사의 여러 위인들을 소개하고 뜻을 기릴 망우역사문화관 건립을 끈질기게 주장하여 내년에 착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고, 지난해 12월에 준공한 ‘망우리 사잇길’ 정비 사업을 이끌어 유명인사 묘소에 안내시설 및 정비를 하는 등 활발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In&Out] 새 정부 10대 어젠다 유감/송형종 서울연극협회장

    [In&Out] 새 정부 10대 어젠다 유감/송형종 서울연극협회장

    21세기가 문화의 시대라는 건 자명하다. 문화는 여러 분야에 직간접적인 영향과 효과를 만든다. 그러나 연극, 무용, 음악, 미술 등 기초예술은 상업예술의 기반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기초예술을 갈고 닦는 것에 대한 지순한 가치 체계를 정립하기보다 입시 중심 교육 경쟁에 가두어진다. 표현의 자유 또한 보장되지 않는다. 지루하고 어렵다는 사회 전반의 인식도 바꾸려는 노력이 없다. 기초예술은 흔히 말하듯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겁다. 그 가치와 중요성은 갈고 닦은 예술적 기교에 경험과 사상이 결합해 변화 발전할 때 빛을 발한다. 다시 말하면 기초예술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자산이며, 이 자산은 우리 스스로 구하고 보호해야 그 가치를 온전히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새 정부 10대 어젠다에서 ‘문화 육성’ 또는 ‘기초예술 육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일자리 창출, 육아 지원, 기업 규제와 전략사업, 도시재생, 광역교통 시스템, 보건 위생 체계, 환경, 청정 에너지, 지자체 주도 남북 교류, 지방분권뿐이다. 일제강점기에도 김구 선생은 “우리는 문화 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경제, 국방도 아닌 문화 강국이 돼야 한다는 얘기를 당시 사회 주도층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가장 동경하고 따라하고 싶은 나라가 된다는 것은 이미 한류 열풍을 통해 알고 있다. 그 중심에 근본적인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 바로 기초예술이다. 기초예술은 사회 전반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준다. 사회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순수한 인간 본성을 끝없이 변주한다. 첨단 문명 시대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돈을, 지원금을, 공연장을 제공하는 것이 기초예술을 보호, 육성하는 방법일까. 성과에 따라 차별 지원한다는 것이 진정한 육성책일까. 기초예술은 자본주의 밖에 있다. 기초예술은 결코 성과 중심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짧은 기간의 지원으로 보호되고 육성되는 것도 아니다. 예술은 단순히 보고 듣고 즐기는 것이 아니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그 무엇까지 얻는다. 그래서 새 정부 10대 어젠다에서 빠진 것이 더욱 안타깝다. 연극은 중·고교 교과 과정에 포함돼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협치와 협력?협동이, 생각나눔?행동나눔이 연극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예술은 국가 근간의 차원에서 엄중하고 진지하게 다각도로 접근해야 하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예술가는 육성, 지원할 대상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복지 대상 1호가 아닌, 지원 육성 1호. 이 둘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두 달여가 지났다.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문화정책 공약으로 ‘문화가 숨 쉬는 대한민국’을 내세웠다. 그 첫 번째가 ‘예술인 문화복지 사각지대 해소’였고, 두 번째가 ‘창작권 보장’이었다. 이는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주체인 예술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로 이해하자는 것이 사회 전반의 분위기였다고 기억한다. 이제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때다. 단순히 돈 몇 푼 나누어 주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기초예술의 기초인 대한민국의 연극은, 공연예술계는 세계 무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가의 거시적 지원이 절실한 시기다. 새 정부의 문화 정책에 대한 의지, 믿고 싶다. 믿으려는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 부디 보여 주길 바란다.
  • ‘군함도’ 류승완 감독, 스크린 독과점 논란+평점 테러 “모든 테러 반대”

    ‘군함도’ 류승완 감독, 스크린 독과점 논란+평점 테러 “모든 테러 반대”

    ‘군함도’ 류승완 감독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들에 직접 입을 열었다. 29일 방송된 YTN ‘뉴스와이드’에는 영화 ‘군함도’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이 출연해 ‘군함도’의 역사 왜곡 논란부터 일본 정부의 주장, 스크린 독과점 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이날 영화를 만든 계기에 대해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를 둘러 싼 사건들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영화감독 이전에 한국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공론화 시킬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저 역시 모르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다. 마침 제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상황도 만들어져 있었다. 피해선 안될 것 같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군함도’의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대해 류승완 감독은 “저도 독립영화로 출발한 사람이다. 굉장히 마음이 무겁다. 여름 시즌이면 반복되는 논란의 중심에 제가 만든 영화가 서게 되어서 대단히 송구스럽다”며 “끊임 없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개선 대책을 세우고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까지 빼앗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원칙을 중요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별점 테러‘에 대해서 류승완 감독은 “많이 단련됐다”면서도 “모든 테러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6일 개봉한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일본 군함도(하시마, 군함 모양을 닮아 군함도라 불림)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개봉 3일째인 29일 누적관객 2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한국 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이경재 지음, 소명출판 펴냄) 1917년 이광수의 ‘무정’부터 2015년 해이수의 ‘눈의 경전’까지 한국 현대문학 속에 자리한 인천, 서울, 베이징, 만주 등 특정 공간과 장소가 한국문학과 관계 맺는 양식을 살핀다. 438쪽. 2만 6000원.들소에게 노래를 불러준 소녀(켄트 너번 지음, 서정아 옮김, 글항아리 펴냄) 미국 미네소타주 레드레이크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여러 원주민과 어울려 지낸 저자가 그들과 교류하며 경험한 일들을 통해 낯선 문화를 이해하는 오래된 지혜를 들려준다. 500쪽. 1만 9800원.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김상미 지음, 나무발전소 펴냄) 프란츠 카프카, 잉게보르크 바흐만, 폴 발레리 등 김상미 시인이 본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친 작가 11명의 삶과 창작 세계를 조명한다. 200쪽. 1만 2000원 한국과 일본, 역사 화해는 가능한가(박홍규·조진구 지음, 연암서가 펴냄) 일본 식민지 지배, 한·일 국교정상화, 조선인 전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의 한·일 간 주요 사건들을 짚으며 양국 간 역사 화해의 단초를 찾는다. 252쪽. 1만 5000원. 잠시 멈춤이 필요한 순간(저우궈핑 지음, 정세경 옮김, 한빛비즈 펴냄) 중국인이 사랑하는 현대 철학자로 꼽히는 저자가 사랑, 종교와 신앙, 결혼과 육아 등 10가지 주제에 대한 총 150개의 철학적 깨달음을 짧은 글로 정리했다. 328쪽. 1만 4500원. 일제강점기 언론의 신라상 왜곡(김창겸 외 5명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펴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학자들이 식민 사관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라 왕조의 역사문화를 왜곡한 실태를 추적한다. 288쪽. 1만 6000원.
  • 백만 배우 소간지 넘어 천만 배우 소지섭으로

    백만 배우 소간지 넘어 천만 배우 소지섭으로

    개봉 첫날 100만 가까운 관객 돌풍…날것 그대로 액션으로 흥행몰이 “‘소간지’라는 별명도 좋기는 좋지만 이제는 배우, 소지섭이고 싶습니다.”영화 ‘군함도’가 개봉 첫날부터 1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으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극화하면서 대중성, 오락성까지 고루 갖춘 결과로 분석된다. 스타들도 즐비하다. 황정민, 송중기, 이정현, 그리고 소지섭. 5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소지섭은 일본 탄광섬에 강제 징용된 수백명의 조선인 중 경성 최고 주먹 최칠성을 연기하며 흥행의 한 축을 책임지고 있다. 허세를 떨다가 굴욕을 당하며 웃음과 측은지심을 부르는 모습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남자다운, 그러나 마음은 따뜻한, 그리고 날것 그대로의 액션을 보여주는 화끈한 캐릭터다. ‘영화는 영화다’(2008), ‘회사원’(2012) 등에서 남성미를 뽐냈던 터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은데 최칠성은 조금 다르다고 소지섭은 말한다. “보여지는 게 전부인 친구예요. 류승완 감독님이 호랑이에 비유하며 농담 삼아 내면 연기가 필요가 없다고 했죠. 대사도 느리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에 익숙했는데 이번엔 정반대였어요. 처음엔 어색하다가 나중엔 시원하더라고요.”올해 데뷔 20주년이다. 이렇게 오래 연기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원래 수영 선수를 꿈꿨다.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했었는 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며 접었다. 청바지 모델 등으로 얼굴을 알리다가 연기자로 전향했다. 연기 데뷔작은 드라마 ‘모델’(1997). “한발 앞보다 한발 뒤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에요. 카메라 앞에 서면 지금도 떨리죠. ‘미안하다, 사랑한다’ 때부터 연기가 조금씩 재미있어졌어요. 그전까지는 먹고살아야 해서 돈 벌려고 연기를 했습니다.” 20년 세월에 견주면 필모그래피는 그다지 두텁지 않다. 드라마에서 인기작들을 꾸준히 선보여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도둑 맞곤 못살아’(2002)로 시작해 특별출연한 ‘사도’(2015)를 제외하면 겨우 여섯 편. “큰 화면에 나온 제 얼굴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 컸어요. 너무 부족하고 비어 보여서 ‘아직 영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각인됐었죠. ‘영화는 영화다’에서부터 조금씩 털어낸 것 같아요. 아직 영화 쪽으로는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배우죠. 드라마를 할 수 있는 날이 그리 길게 남지는 않은 것 같아 나이가 더 들게 되면 영화 쪽에 비중을 두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관객들은 영화 크레딧에서 그의 이름을 출연자가 아니라 ‘공동 제공’으로 많이 접할 듯하다. 소지섭은 2012년부터 다양성 영화 전문 수입사 ‘찬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들을 들여오고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투자한 작품만 11편. 자신의 1인 기획사 51k 명의까지 포함하면 35편에 달한다. ‘영화 덕후’로서의 기질이, ‘영화는 영화다’ 때 제작 관계자였던 찬란의 이지혜 대표와 맺었던 인연과 맞물려 시너지를 내고 있다. 현재 상영 중인 프랑소와 오종의 신작 ‘프란츠’도 51k 투자작. 1만명 안팎의 관객이 대부분이었지만 지난해 들여온 우디 앨런의 ‘카페 소사이어티’는 12만명이나 들었다. “돈 벌려고 하는 것은 아니에요. 좋은 영화를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 자연스럽게 시작했어요. 지금은 파트너들이 골라 놓은 영화 중 그때그때 마음이 가는 작품에 투자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직접 마켓에 가서 골라 보고 싶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보는 편인데 울적하거나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는 멜로를 봐요. ‘첫 키스만 50번째’ 같은 작품이요.” 연기 외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그래야, 연기할 때 흥이 난다고 했다. 랩을 하며 간간이 노래를 발표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많지 않은 데 랩은 그중 하나지요. 배우는 주어진 대사를 하지만 래퍼는 자기 이야기를 뱉는다는 게 매력입니다. ‘쇼 미 더 머니’에 나가보라는 말도 듣는데 실력도 안 될뿐더러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인데 평가를 받으며 스트레스를 자처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아요.” 역사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과 국내 시장 규모로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만큼 상업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마음이 겹치며 긴장감이 컸는데 이제 한시름 놓을 듯하다. “그간 출연작들이 대개 백만을 조금 넘겨 백만 배우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딱히 천만 강박은 없는데 ‘군함도’는 그 정도는 해야 손해 보지 않은 작품이더라고요. 그래서 천만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작품이 또 만들어질 수 있게.”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송중기 ‘뉴스룸’ 출연 “군함도 허구라는 일본 주장 안타깝다”

    송중기 ‘뉴스룸’ 출연 “군함도 허구라는 일본 주장 안타깝다”

    배우 송중기씨가 27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최근 개봉한 영화 ‘군함도’와 배우 송혜교씨와의 결혼 소식 등을 놓고 손석희 앵커와 이야기를 나눴다. 송중기씨는 “최고의 여름을 보내는 것 같다”는 말로 촬영을 끝낸 영화가 개봉된 소감과 오는 10월 송혜교씨와의 결혼을 앞둔 심정을 전했다.편안한 대화만 오갈 것 같았던 인터뷰는 손 앵커의 진지한 질문으로 분위기가 잠깐 가라앉는 듯 했다. 손 앵커는 손중기씨에게 “영화 ‘군함도’가 개봉 첫날 97만명이 넘었고, 이틀째에는 관객 100만명이 넘었다. 독과점 영향이다는 말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군함도’는 개봉 첫날인 지난 26일 20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독과점 논란’에 휩싸였다. 송중기씨는 “영화에 참여한 배우로서 관객들이 많이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면서 “배급 문제 등에서는 제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말씀을 드리기가 조금 조심스럽다. 물론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 중 한 명이지만, 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실지는 나중에 관객분들이 평가해 주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침착하게 답변했다. 이어 손 앵커는 ‘군함도’ 속에 등장하는 ‘조선인들의 촛불’ 장면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다. 송중기씨는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우리나라에서 촛불집회가 실제로 열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손 앵커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영화평 별점 테러도 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고, 송중기씨는 “그런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손 앵커는 “제가 너무 칭찬하는 건지는 몰라도 송중기씨는 배우의 위상을 알아서 높이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을 향한 일본의 반인륜적 만행을 다룬 영화다보니 ‘군함도’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각은 곱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에 대한 일본의 민감한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손 앵커의 질문에 송중기씨는 “제가 정치·외교 전문가는 아니라 전문지식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직도 피해를 입고 한을 풀지 못한 어르신들이 아직도 계신다. (일본은) 영화가 허구라지만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저희도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라 영화를 만들었다. 일본 정부의 주장은 안타깝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부겸 장관 “과거사 청산 최선 다할 것”

    김부겸 장관 “과거사 청산 최선 다할 것”

    “군함도란 쪼매난 섬은 그야말로 죽는 데지 사는 데가 아닙니다. 사람이 일하는 데가 아니라 귀신이 일하는 데지요. 유가족한테는 미안하지만 내가 살아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26일 영화 ‘군함도’가 상영되는 서울 용산CGV 극장을 찾은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이인우(94)옹은 국민의 관심에 감사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일본에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참상을 담은 영화 ‘군함도’를 희생자, 유족들과 함께 관람했다. 김 장관은 영화 관람에 앞서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와 유족, 단체 대표 50명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 유가족과 함께 영화 ‘군함도’를 보게 돼 의미가 깊다”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한스러운 과거를 풀어 주는 것이고 이는 국가의 중요한 임무로 과거사 청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하시마 탄광에서 석탄을 캤던 조선인을 그린 영화 ‘군함도’의 제목은 하시마섬의 다른 이름으로 섬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시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며, 섬을 둘러볼 수 있는 관광상품이 운영 중이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 군함도에 강제징용된 조선인은 500~800명으로 추정되며 군함도 생환자 가운데 국내 생존자는 6명이다. 이날 김 장관과의 간담회에는 대구에 사는 이옹과 대전에 거주 중인 최장섭(90)옹이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해결이란 국정과제를 맡은 행안부는 과거사 진실 규명과 보상 문제 해결을 통해 국민이 주인인 정부를 만들게 된다. 내년 상반기에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재개해 국가 잘못으로 인한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 배상 또는 보상을 통해 사회통합과 미래 지향적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예정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김부겸 장관, ‘군함도’ 관람…日강제동원 희생자·유족 위로

    김부겸 장관, ‘군함도’ 관람…日강제동원 희생자·유족 위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26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을 다룬 영화 ‘군함도’를 관람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로했다.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김 장관은 이날 오후 7시 서울 용산 CGV에서 유족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했다. 김 장관은 영화 관람에 앞서 일제강제동원 희생자와 유족, 단체대표 등 50여명과 간담회를 열고 유족들의 생활실태·애로사항을 듣고 대화를 나눴다.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하시마’ 탄광 지하 1000m에서 석탄을 캐던 강제징용 조선인의 참상을 그린 영화다. 군함도 생존자와 유족들은 극장에서 무대 인사를 통해 “국민들이 영화를 보고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기억할 수 있게 해준데 대해 영화사 측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실제 군함도 징용 생존자인 이인우(94)옹과 최장섭(90)옹이 가족과 함께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이 옹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며 “정부와 국민의 관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국민이 영화 ‘군함도’를 보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정부는 피해자와 가족의 어려움을 살피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청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 빈소서 송영길·손혜원 ‘엄지척’

    위안부 할머니 빈소서 송영길·손혜원 ‘엄지척’

    더불어민주당이 ‘당 기강 해이’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할 때 소속 의원이 26명이나 불참해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을 받더니 이번엔 소속 의원들의 경솔한 행동으로 또 한번 ‘입길’에 올랐다. 송영길, 손혜원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경기 분당차병원 빈소에서 벌인 일탈행동 때문이다. 지난 24일 두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군자 할머니의 빈소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밝은 표정으로 사진 촬영을 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논란이 됐다. 네티즌들은 “남의 장례식장에 와서 잔치 기분 내고 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는 등의 댓글을 달며 두 의원을 강하게 비난했다. 논란이 커지자 25일 송 의원은 “‘위안부’를 포함한 일제강점기의 만행에 분노하고 김군자 할머니의 명복을 기리는 모든 분께 큰 상처를 드렸다”고 사과했다. 손 의원도 “장례식장의 추모 분위기에 맞지 않은 엄지 척 제스처를 취한 점은 제가 경솔했다”고 사과했다. 한편 이날 국민의당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는 ‘알바비(아르바이트 임금)를 떼여도 고발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 정신’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학교급식 노동자 비하 발언에 이어 또 도마에 올랐다. 이 의원은 “알바를 한 적이 있고 월급을 떼인 적이 있다”면서 “사장이 살아야 나도 산다는 생각으로 노동청에 고발하지 않았으며 이런 공동체 의식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논란이 커지자 “노동자가 임금을 체불해도 사장을 생각해서 노동청에 신고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 의식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라고 뒤늦게 해명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데스크 시각] 용서보다 먼저 있어야 할 것/박상숙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용서보다 먼저 있어야 할 것/박상숙 문화부장

    “나, 오늘 화이트야!” 문화계 블랙리스트 얘기가 나오자 고은 시인은 입고 온 하얀색 남방을 내보이며 농을 걸었다. 얼마 전 본지가 창간 113주년 기념행사로 개최한 시 낭독회를 위한 저녁 자리. 연극배우 손숙이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걸 얘기하며 시인을 향해 “선생님도 그렇잖아요?”라고 묻자 내놓은 멋들어진 대답이었다. 백팩을 메고 청년처럼 나타난 노시인의 유머에 웃음이 터졌다. 코미디 같은 시대 상황을 격조 있게 비트는 내공이 남달랐다. 사실 블랙리스트는 저질 코미디 같은 유치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2차대전 후 소련과 체제 및 군비 경쟁에 몰두했던 미국은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삐딱한’ 인사들을 가려내기 시작했다. 1949년 소련의 핵실험 성공에 조바심이 나던 차에 “반공”을 외치며 등장한 정치인 조 매카시에게 미국 정치권은 반색했다. ‘매카시즘’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인사들을 길들이고자 했던 연방수사국(FBI) 국장 에드거 J 후버에 의해 조장됐고, 극우 언론의 호들갑(미국 어디든 공산주의자들이 없는 곳이 없다)에 광풍으로 번졌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트럼보’는 바로 블랙리스트의 폭풍우를 지나온 할리우드 이야기다. 천재 시나리오 작가 달턴 트럼보는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혀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간 할리우드 영화산업계 종사자 43명 중 하나였다. ‘알고 있는 공산당원을 대라’는 으름장에도 ‘고자질’을 거부한 트럼보를 비롯한 10명은 ‘할리우드 텐’으로 불리며 의회 모독죄로 감방에 처박혔고 일자리를 잃었다. 생계를 위해 가명으로 시나리오를 양산하던 그가 동료 이름으로 쓴 ‘로마의 휴일’은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으나 오스카 트로피가 그에게 전해진 건 사후 17년이 지나서였다. 할리우드를 20년간 억누른 블랙리스트는 영화인의 재능만 허비한 채 별무신통하게 끝났다. 반복은 역사의 숙명인가 보다. 일제강점기에 일상화된 검열과 억압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지속됐다.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일수록 코웃음 나오는 블랙코미디를 엄숙하게 일삼아 왔다. 전직 대통령과 닮아 방송 출연을 금지당하거나 신문 연재소설에서 군인 출신 경비원을 시니컬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작가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고문을 당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떠다녔다. 흘러간 줄 알았던 옛이야기는 지난 10년간 더욱 교묘하게 전개됐고, 직전 정권에선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총동원돼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이번 주는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에 중요한 분수령이다. 사흘 뒤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에게 1심 선고가 내려진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약속했던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위원회도 이르면 주 내 돛을 올린다. 도 장관은 필요할 경우 직접 진상 조사위에 참여하고 문체부 내 관련자도 세세하게 들여다보겠다며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했다. 탄력 붙은 적폐청산 작업을 둘러싼 불편한 기색은 그래도 여전하다. 촛불 집회와 태극기 시위를 동일 선상에 놓고 국론 분열 운운하며 국정 농단에 대한 단죄를 위험한 정치 보복으로 몰아간다. 그래서일까. 요즘처럼 용서와 화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적도 없었던 듯하다. 문제는 선후에 있다. 일본의 논객 우치다 타츠루에 따르면 시비를 판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망할 수밖에 없다. 영어의 정의(Justice)에는 재판이란 뜻도 있다. 먼저 추상같은 법의 심판으로 정의를 세우고서야 용서를 꺼낼 수 있다. 법정에서도 형을 선고한 뒤 벌을 유예해 주지 않나. 용서는 그다음이다. okaa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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