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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를 바로잡은 황영조/고두현 체육부 국장급기자(오늘의 눈)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우승한 이래 56년만에 바르셀로나올림픽마라톤의 금메달을 황영조가 차지했다. 통한의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우승했던 손기정은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리려고 무척 애를 썼다. 가마다 다다요시(겸전충양)는 손기정의 이야기를 쓴 「일장기와 마라톤」이라는 책에서 『손기정은 사인을 할때마다 국적을 JAPAN아닌 KOREA로 썼다.나라이름을 KOREA로 쓴것은 결코 일시적 충동이 아니다.올림픽개최국 독일이 요구한 국빈용 방명록에도 역시 KOREA로 적었다』고 밝혔다. 리처드 만델은 그의 저서 「나치올림픽」에 『중대한 사실을 적어둔다면 그 마라톤레이스의 시상식때 손기정과 남승용은 기자들에게 대해서 자기들은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임을 이해시키려고 했다는 점』이라고 썼다. 베를린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손기정은 남승용과 함께 안중근의사와 사촌동생인 안봉근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대접받은 일이 있다.그때 난생처음 태극기를 볼수 있었던 손기정은 『일장기 아닌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뛸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안봉근의 통탄에 가슴이 찢기는 아픔을 느꼈다. 70년8월15일 베를린올림픽경기장의 우승기념탑에 새겨져있던 마라톤우승자 손기정의 국적이 당시 독일을 방문중이던 국회의원 박영록에 의해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 바뀌었다. 박의원은 그날밤 몰래 경기장에 들어가 못으로 JAPAN을 뭉개버리고 KOREA를 새겼다. 베를린경찰당국은 공공시설을 파손했다는 이유로 박의원을 체포하려했으나 이미 그때 그는 베를린을 벗어나버린 뒤였다.이 사건을 계기로 36베를린올림픽 마라톤우승자 손기정의 국적문제가 디시 제기됐다.그러나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IAAF(국제육상경기연맹)의 반응은 차가웠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한국이 출전한 사실이 없고 대회조직위원회에 제출된 선수명부에도 손기정은 일본선수로 등록돼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의 우승자 손기정의 국적은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일본이다. 바꾸어 말해서 황영조가 우승하기 전까지 「한국인이 올림픽마라톤의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는 인정을 못받고 있었다.그런 뜻에서 황영조의 우승은 우리민족의 한을 풀고 역사의 그릇된 기록까지 바로 잡은 매우 뜻깊은 승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 개선하는 사람들(사설)

    꿈같은 일이다.저 한맺힌 「일장기 사건」의 손기정 마라톤 이후 실로 56년만에 우리는 마라톤 금메달의 위업을 달성했다.이것으로 열전16일의 막을 내리고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끝났다.다른 금메달 열개보다도 값진 마라톤 금메달을 포함하여 금메달을 12개씩이나 목에 걸어,백여개 참가국들 가운데서 열번 안에 드는 나라가 된 우리는 참으로 대단하고 능력이 있다.그것을 확인해준 젊은이들이 고맙고 대견하다.밤을 지새며 성원을 보낸 국민들의 목소리는 또 얼마나 힘찼는가.올림픽은 그렇게 온 국민이 함께 치렀다. 이번보다 메달수도 많았고 순위도 훨씬 앞섰던 88서울올림픽을 생각하면 별로 발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는 누가 뭐래도 주최국의 이점이라는 것이 있었다.이번이야말로 우리가 우리 힘만으로 따낸 성과들이다. 올림픽에 우리는 평소에 잊고 지내던 일들의 소중함을 되새기기도 한다.육상에 승리한 영국의 선수가 「대영제국」이라는 다소 거만한 느낌을 주는 국호에 유니온잭국기를 잔등에 휘감고 트랙을 돌며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그 모습에서 우리는 지극한 아름다움을 보았다.얼굴에 여드름 기운이 가시지 않은 어린 10대가 옛 카타리나지방의 창공에 태극기를 올리고 『우리나라 만세』로 끝나는 애국가를 따라 부르며 감격으로 울먹이는 광경은,온밤을 다 빼앗기고도 피로한 줄 모르게 하는 보상을 우리에게 주었다.어느새 나라가 이만해졌는지 꿈꾸고 있는 것같다. 우리가 가진 메달들에는 각각 그것에마다 극적 요소가 깃들였다.올림픽을 여는 첫 경기에서 서광처럼 빛나는 금메달을 따냈고,처음으로 올림픽종목에 든 배드민턴 단체전에서 남녀를 석권해 버렸다.아직은 솜털이 가시지 않은 어린 숙녀들이 올림픽 2연패의 기록을 새워 세계의 이목을 붙잡아 두기도 하고,정글 속의 맹수들처럼 거세고 체격이 우수한 선수들 틈에서 요정의 신화를 창조하기도 했다.이런 일은 예사로 되는 일이 아니다.피가 나는 노력을 기울이고도 겸허하게 임하는 인간정신의 세련이 따르지 않고는 이뤄지지않는다.그 기량의 축적이 우리의 잠재력으로 발휘될 것이다. 전쟁과 가난과 분단으로 상처입은 나라로만 알아온 한국이 이미 세계사의 주변국을 벗어나 태평양문화권의 중심이 되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세계안에 유감없이 보여준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올림픽을 이만큼 성과있게 치를 수 있었던 것은 메달리스트들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메달에서 탈락하여 일찌감치 풀이 죽어 돌아온 선수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힘이 모아져서 가능한 일이었다.그들의 감투에도 박수를 보낸다. 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아무 흠도 남기지 않고 성공적으로만 끝난 것은 아니다.우승이나 승리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않고 선수들에게 마음으로 중압감만 느끼게 한 운영이라든지 마음이 콩밭에만 가있는 임원들의 무성의 따위가 예년처럼 드러났다.경기장 메너가 시원찮아서 국제사회에서 부끄러움을 맛보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초의 유일한 금메달을 따고 무개차를 동원하여 선수의 개선을 감격해하던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눈부시다고 밖에 할수 없다.이것이 우리의 국제적 위치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오림픽에서 창출된 활력을 되살려 침체된 우리의 오늘을 되살릴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큰 수확이다.이제 그것을 찾을 시기이다.
  • 외언내언

    1936년 8월9일 하오,베를린 올림픽스타디움.히틀러총통을 비롯한 10만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자그마한 선수가 스타디움에 모습을 나타냈다.바짝 마른 몸매,가무잡잡한 얼굴,박박 깎은 머리를 약간 옆으로 젖힌 이 선수가 힘차게 테이프를 끊는 순간,10만관중은 모두 일어서 박수를 보냈고 히틀러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나치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의 「손 기테이」선수에게 월계관을 씌워주었다.◆그러나 「손 기테이」는 손기정이란 이름의 자랑스런 한국청년이었다.일장기를 가슴에 단 채 시상대에 오른 그는 올림픽마라톤제패의 기쁨보다는 나라 잃은 슬픔이 복받쳐 눈물만 흘렸다.그로부터 56년이 지난 바로 그날 1992년 8월9일(한국시간 10일 상오1시30분)손기정의 후배선수들이 또 다시 올림픽금메달고지에 도전한다.◆한국선수들은 1948년 런던대회때부터 당당하게 태극기를 앞세우고 올림픽에 출전해 왔으나 마라톤에서는 단 하나의 메달도 따내지 못했다.그러나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관측이 나오고 있다.92년 세계마라톤 10걸중 황영조선수가 3위에 올라있고 김재용선수와 김완기선수가 각각 6,7위에 랭크돼 있기 때문.◆마라톤은 코스와 날씨,그날의 컨디션여하에 따라 변수가 많은 경기이긴 하지만 불 같은 투지로 최선을 다한다면 금메달고지를 정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3명의 선수들도 그동안 훈련을 충실히 쌓았기 때문에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이들중 한명이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할 경우 한국인으로는 손기정에 이어 두번째의 올림픽금메달리스트가 되고 태극기를 가슴에 단 최초의 마라톤 영웅이 된다.또 한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첫금메달(사격의 여갑순)과 마지막금메달을 함께 차지하는 진귀한 기록도 보유하게 된다.베를린의 영광이 바로셀로나에서 재현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교사용 학습지도요령/김문환(문화로 본 일본 일본인:10)

    ◎형식적 외침 “군국주의 반성”/교과서는 「대륙침략」·지도요령엔 「진출」로 표기/입학식 일장기·기미가요제창 89년에 의무화 후쿠오카현의 공립소학교에서 금년 봄 한 명의 재일 한국인 소년이 졸업했다.소년은 6년간 한국이름으로 통학했는데,학교 당국이 졸업식에서 한국의 태극기를 일본의 히노마루와 같이 게양하여 축복해 줌으로써 화제가 된 것이다.차별이 없지 않은 현실에서 본명 통학을 굳이 계속해 온 생도와 부모의 희망이 교사와 학교를 움직였다는 것이다.게양의 「의무화」가 어언 3년째 되는 시점에서 침략의 심벌이었던 히노마루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렸다는 이 사실은 기정 사실처럼 취급되어온 학교 현장에서의 히노마루가 새로운 각도에서 질문된다는 관점도 있다. 주인공은 마에바라조(전원정)에 사는 재일2세의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진오(박진오)군이지만,이에 관계된 구체적인 이야기를 여기에서 자세히 쓸 수는 없다.다만 그 자리에 참석했던 마에바라동중(동중)교장이 이에 감동하여 진오군의 입학식에서도 단상에 커다란 태극기를 게양했다는 뉴스를 덧붙일 뿐이다. 전후 평화교육운동의 심벌의 하나였던 히노마루반대운동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사회당이 이제까지 「침략의 상징」으로 되어온 히노마루를 조건부로 용인하는 자세로 전환한 사실로도 확인될 수 있다.사회당의 문화교육위원장이 작년 12월 19일부터 개최된 대회에 보고·승인받은 이와 같은 자세변화는 히노마루를 국기로 명기한 소학교 교과서가 금년 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사회당으로서는 전쟁책임 한계를 명확히 하기위해 전후 보상의 해결을 포함한 국회 결의요구 및 교과서 문제해결의 국제회의 구상을 전제로 하는 한편,「기미가요」에 관해서는 가사에 의문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국가를 다시 제정할 만하다는 양면 작전을 쓰고 있기는 하다. 이전의 학습지도요령에서는 국기게양·국가제창이 「바람직하다」고 표기되어 있었던 것에 반해 19 89년 이래의 새로운 학습지도요령은 입학식과 졸업식등에서의 게양·제창을 의무화한 것으로 공식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중국등을 침략했던 것에 대해 최근 교과서에서는 「침략」이라고 기술되고 있지만 문부성의 학습지도요령에서는 「진출」이라고 씌어져 있다는 것이 참의원예산위원회에서 지적되고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그런데 수정의 용의를 묻는 질문에 대해 문부성대신은 「일분의 눈이 대륙으로 향해졌다」는 일반적인 것을 쓴 것이므로 고칠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은 것은 적어도 정부쪽에서 발행된 문화정책관계자료에는 군국주의시대의 문화정책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만한 대목을 좀체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예컨대 문화청이 창설 10주년을 맞아 발행한 「문화행정의 걸음걸이」라는 책의 제1부는 「전전,전후의 문화행정」이라고 되어 있으면서 명치이래의 예술문화의 동향,전전의 예술문화행정,전후의 예술문화행정을 비롯해서 문화재,국어,저작권,종교등에 관해서도 비슷한 항목의 설명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전시체제가 진행되어가면서 차츰 예술문화가 통제되고,자유로운 활동은 상실되었다』는 구절에 접한다.그러나 이와 연관된 설명으로 볼 수 있는 『우리나라가 전시체제에 들어섬과 동시에 건전한 국민오락의 육성이라는 입장에서 한걸음 나아가 연극,영화,음악등이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이러한 예술의 「순화발달」을 도모함에 따라서 국민생활을 쇄신하고,국민정신의 고양을 도모하기 위해 예술문화의 지도통제가 강회되었다』라는 문장의 의미가 과연 어느 정도 과거에 대한 비판으로 읽혀질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오늘의 일본이 시행 내지 지향하고 있는 문화정책이 이른바 민주주의적임을 의심하지 않는다.그러나 그러한 지향이 좀더 믿음직한 것이 되고,좀더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인정되려면 아무래도 과거에 대한 좀더 뼈아픈 반성이 국민들 사이에서 보편화되어야 할 것 같다.그것이 진정한 국제시민양성의 지름길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 PKO법처리 이후의 행보(군사대국 치닫는 일본:상)

    ◎미와 함께 세계질서 주도 꿈꾼다/유엔깃발 아래 47년만의 해외출정/걸프전때 정치적 파워 아쉬움 절감/주변국선 “황군망령 되살아난다” 거센 반발 일본의 과거 군국주의시대를 회상케하는 「위험한 역사」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일본의 군사적 해외진출 야망을 실현코자하는 자위대의 해외파병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국회는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합법화하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을 이달내에 통과시킬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집권 자민당과 공명·민사당등 야당은 5일 PKO법안 재수정안을 참의원 국제평화협력특별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야당인 사회당이 참의원 본회의통과 강력저지를 공언하고 있지만 PKO법안이 다시 폐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PKO법안은 일본 대외정책의 중대한 전환을 상징하고 있다.전후 일본의 군사적 해외진출은 하나의 금기였다.그러나 금기사항은 「평화헌법」의 해석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조금씩 무너져왔다.PKO법안은 이같은 해석논쟁을 종식시키고 자위대의 해외파병길을 열어놓고 있다.전후 일본의전통적인 비군사화 대외정책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군사적 팽창주의는 걸프전에 의해 더욱 촉진되었다.전쟁은 흔히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는다.걸프전은 일본인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경제력만으로는 정치·외교적 힘을 행사할수 없다는 의식이 일본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많은 지식인들과 정치지도자들은 『경제중심의 독특한 일본의 파워구조가 위기상황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일본은 경제력을 지정학적 영향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정치·군사적 힘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주장한다.군사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이같은 변화는 걸프전에서 인적 공헌을 하지않았다는 국제적 비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군사대국화를 「합리화」하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일본의 혼네(본마음)는 군사적 해외진출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다. 일본사회에는 물론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반대하는 세력이 적지않다.일본의 국제정치학자 후나바시는 『세계무대에서의 일본역할에 대한 보다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그러나 많은 일본인들은 군사적 해외진출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최근 요미우리(독매)신문 여론조사에 의하면 68%가 자위대 해외파견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사회 저변에는 「제국주의적」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다.2차대전이후 억압되었던 민족주의가 그동안 축적한 힘을 배경으로 다시 표면화되고 있다.일본은 글로벌파워(Global Power)라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메이지대의 아사이교수(국제정치전공)는 『일본과 미국은 공동으로 세계의 경찰력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는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군사적 해외진출 준비를 서둘러왔다.일본은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을 위해 지휘관을 임명하고 현지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 출동준비를 하고 있다. PKO법안이 성립될 경우 9월경에는 자위대원이 캄보디아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일본군이 아시아에서 철수한지 47년만에 다시 아시아대륙에 상륙하게 되는 것이다. 자위대는 유엔깃발을 달고해외에 파견된다.일본은 「평화」라는 이름의 국제공헌을 강조한다.그러나 일본의 국제공헌론은 아시아 주변국가들을 불안케하고 있다.일본은 과거에도 아시아공영과 자위권 발동이라는 궤변으로 아시아침략을 「정당화」하려 했었다.일본 침략의 상처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치유되지 않았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은 다시 군사적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적 팽창주의는 아시아인을 무대로 하고 있지 않다.일본 외무성의 단바 유엔국장은 『자위대는 아프리카,중남미에도 파견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유엔깃발과 함께 일장기가 세계 곳곳에 휘날릴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유엔깃발은 평화의 상징이다.그러나 일장기는 「침략」이라는 어두운 이미지로 다가온다.「평화」와 「침략」의 깃발을 함께 단 일본은 어디로 가는가. □PKO법안 처리 일지 ◇91년 ▲9월19일=PKO협력법안 각의 결정,국회 제출 ▲10월4일=동 법안,국회 회기 연장으로 계속 심의 ▲11월27일=자민·공명 양당만으로 중의원 국제평화협력 특별위에서전격 가결 ▲12월3일=중의원 본회의에서 가결. ▲12월20일=참의원에서 계속 심의키로 결정 ◇92년 ▲1월24일=제123회 정기국회소집 ▲4월28일=참의원 국제평화협력 특별위원회에서 심의 재개 ▲5월29일=자민·공명·민사 3당이 법안 재수정키로 합의 ▲6월5일=참의원 국제평화협력 특별위에서 재수정안 가결 □PKO법안의 골자 ▲자위대의 부대 등이 행하는 업무로 평화유지군(PKF)에 관한 것은 해외파견 개시전에 국회의 승인을 받는다. ▲PKF관련업무를 2년을 초과,계속할 경우에는 국회의 승인을 받는다. ▲실시요령의 작성·변경 등은 업무의 중단에 관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유엔사무총장의 지도에 적합하게 행한다. ▲파견된 자위대원은 국제평화협력대와 자위대의 신분을 공유한다. ▲업무에 종사하는 총 자위대원은 2천명을 초과하지 않는다. ▲대원은 자신과 다른 대원의 생명,신체를 방어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합리적 필요라고 판단되는 범위내에서 소형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자위대의 부대 등이 행하는 PKF관련업무는 별개의 법률로 정하는 날까지 실시하지 않는다.
  • PKO 법안 새달초 국회통과 의미

    ◎일,패전 47년만에 “아시아 재상륙” 발진/선발부대 7백명 「캄」파병 준비 완료/「국제공헌」 명분,군사대국 꿈 노골화/「전수방위」개념 이미 탈피… 주변국 안보에 큰 위협 일본의 군사적 해외진출야망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자위대의 해외파견을 제도화하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이 다음달 내에 국회를 통과,자위대의 해외파병길이 열릴 전망이다. 집권 자민당은 오는 6월1일 PKO법안의 재수정안을 참의원에 상정,6월초에 통과시킬 방침이다.재수정안은 참의원을 통과될 경우 중의원으로 넘겨진다.중의원은 자민당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PKO법안의 통과는 확실하다. ○사회당선 “결과저지” 미야자와(궁택)총리는 28일 야당인 공명·민사당 당수와의 회담에서 PKO법안을 이번 회기말(6월21일)까지 통과시킨다는데 합의했다.물론 아직도 PKO법안성립의 불투명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최대 야당인 사회당은 「물리적 힘」을 이용해서라도 PKO법안의 국회통과를 저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공산당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평론가들은 PKO법안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전망한다.자민당은 이번 국회통과를 위해 공명당과 민사당의 수정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공명당은 자위대의 평화유지군(PKF)본대 참가의 동결을 주장하고 민사당은 국회의 사전승인을 요구했었다.자민당의 야당요구수용으로 PKO법안의 골격은 ▲국회의 사전승인을 법안에 명기하고 ▲PKF참가 범위를 후방지원업무에 한정하며 ▲3년후 법안을 재조정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아직도 지휘권문제,자위대의 신분처리등의 문제가 남아 있으나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일본은 이에 자위대의 캄보디아파견에 대비,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자위대는 20여명의 영관급 장교를 캄보디아파견대로 인사발령을 냈으며 7백명 이상의 선발부대를 편성했다.자위대는 또 캄보디아현지상황에 대한 정보수집과 수송등 제반문제들을 검토,「출동」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영관급 20여명 발령 PKO법안이 성립될 경우 빠르면 9월쯤 자위대가 캄보디아에 파견될 것으로 보인다.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은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던 일장기의 아시아 재상륙을 의미한다.일본군은 47년만에 유엔평화유지군의 깃발을 달고 아시아에 다시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위대의 국제공헌을 강조하고 있다.일본의 이같은 움직임은 걸프전을 계기로 강화되었다.일본은 걸프전을 위해 1백30억달러의 거액을 지원했으나 인적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본은 이같은 국제적 비판을 군사적 해외진출의 명분으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일본은 마치 국제적 요구에 의해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하는 것처럼 말한다.그러나 일본은 언젠가는 군사적 해외진출을 하여야 한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일본은 지금까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며 경제발전에만 전념해 왔다.경제로 세계를 제패한 일본은 이제 정치군사대국화를 지향하고 있다.단순히 경제대국으로만 남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자위대가 캄보디아에 파견된다고 해서 일본이 당장에 군사대국화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그러나 자위대의 해외파견은 일본의 군사전략이 전수방위개념에서 세계전략차원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이데올로기시대가 막을 내리고 경제가 중시되는 새로운 국제정세에서 경제대국 일본의 군사적 해외진출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더욱이 미국은 경제악화와 국제환경의 변화 등으로 미군의 아시아주둔을 감축하고 있다.많은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떠난 아시아의 힘의 공백을 일본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가공할 군사잠재력 일본은 이제 최첨단 무기로 재무장한 「지역군사대국」이다.일본은 핵무기와 최첨단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가공할 군사적 잠재력을 갖고 있다.더욱이 아시아에는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집단안보체제도 없다.일본은 자위대를 통한 「국제평화」를 강조하지만 일본의 군사적 팽창주의는 아시아안보의 중대한 위협이라는 사실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 일 무장경비정,또 영해침범/1년새 3건/독도근해 선회하다 도주

    【울릉도=김동진기자】 14일 하오 4시45분쯤 경북울릉군 독도 동남쪽 1마일해상에 일본해상 보안청소속의 5백t급 경비정이 나타나 독도주변을 2바퀴선회하다 독도경비대의 경고방송에 따라 되돌아 갔다. 독도경비대에 따르면 이날 배꼬리에 일장기를 단 흰색의 일장기를 단 흰색의 일본경비정이 출현,독도주변 1마일 해상을 선회하다가 경고방송에 이어 경비대가 전투배치를 하게되자 22분만에 도주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1월22일 하오 3시40분쯤에도 4백t급 일본경비정이 독도 동남쪽 1.5마일해상에서 1차례 선회한뒤 달아났으며 하루전인 21일 하오에도 4백t급 경비정이 역시 독도 근해 1.5마일해상에서 20분간 머문뒤 퇴각했다는 것이다. 독도경비대의 한 관계자는 『일본경비정이 나타날 경우 퇴각하도록 경고방송을 잇따라 내보내는 한편 즉시 상부와 군당국에 보고하고 있다』고 말하고 『일본 경비정의 잦은 영해침범에 대한 조치와 대책이 정부차원에서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주가 7백선 회복 초읽기/건설종목·중소형 저가주 강세

    ◎0.6P 올라 지수 6백91.48 주말인 8일 종합주가지수는 전날보다 0.58포인트 오른 6백91.48로 지난 1일(6백91.37)의 올해 기록을 넘어서며,지난해 10월31일(6백95.94)이후 최고기록을 세웠다. 또한 거래량도 2천9백만주에 이르러 지난 1일의 올 반일장기록(2천6백58만주)을 넘어서며 지난해 8월3일(3천6백60만주)이후 반일장으로는 가장 많았다. 개장초부터 쿠웨이트정부의 투자자등록에 따른 자금유입 기대감으로 종합주가지수가 5·90포인트 오르는 강세로 출발했다. 고객예탁금이 5일만에 오름세로 돌아선데다 남북경제협력가능성도 주가 오름세를 부추겨 초반에는 종합주가지수 7백선에 근접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반부터 종합주가지수 7백선에 대한 부담감으로 경계·이식매물이 대부분의 업종에서 쏟아지며 강보합으로 장을 마감했다. 1만원 이하의 중소형 저가주의 강세가 두드러졌으며,건설주는 남북특수와 대만개발계획참여설로 큰폭으로 올랐다. 거래량은 2천8백97만주,거래대금은 4천10억원이었다.
  • 되살아나는 일군국의 망령/김진천 국제부장(데스크시각)

    한마디로 달갑잖은 소식이다.께름칙하고 거북살스럽다는게 보다 더 솔직한 심정의 표현일게다. 일본의 자위대 해외파병법안 제정은 우리에게 이같이 불쾌한 감정만 불러 일으킨다.결코 「남의 일」로만 보아넘길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 3위의 국방력 일제침략으로 인해 겪어야만 했던 고난의 역사를 돌이켜 생각하면 단순한 불쾌감의 차원을 넘어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들은 아니라고 변명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이로써 일본은 군사대국화의 길로 여보란 듯이 나선 것이다. 멀잖아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란 단정을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일본의 자위대가 「자위」의 범위를 넘어 이미 공격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그동안 어느 한해도 거름 없이 5∼6%씩 군사비를 늘려 왔으며 그네들이 자랑하는 최첨단기술을 바탕삼아 세계제3위의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자국군대의 해외파병에 대해 평화와 인도주의를 앞세우며 국제적 공헌을 강조하고 있다.자기네 경제력에걸맞는 「국제적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역할을 증대해야 하며 정치적 역할의 확대는 적절한 인적 공헌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그러나 그것은 스스로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궁색한 언어의 유희이며 남듣기 좋으라고 하는 무책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부자나라가 할수 있는 국제공헌이 꼭 군대를 해외에 보내는 방법뿐이며 더구나 과거 총칼로 짓밟았던 그땅에 다시 일장기를 앞세운 일군을 진주시키는 것만이 인도주의의 사명을 다하는 것인가.앞뒤가 안맞는 모순된 논리의 고집으로 밖에 볼수 없다. 이념대결의 종언과 더불어 진정한 세계평화,전쟁없는 지구를 만들기 위해 남들은 대포를 녹여 쟁기를 만들자고 지혜를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오직 일본만이 이같은 시대 조류를 거스르고 있다. 일본의 행동을 한꺼풀 벗기면 이같은 화해분위기를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절묘히 역이용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수 있다. 공산주의 소멸에 따라 무력해진 소련이 뒤로 처지고 세계경찰의 임무를 수행해 오던 미국이 힘을 덜려하고 있는 기회를 놓칠세라 그 틈을 비집고 들어서 잽싸게 대국에의 꿈을 실현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경제력과 군사력을 발판으로 하여 아시아지역에서의 힘의 공백을 틈타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나아가 새로 짜여지고 있는 세계질서에 중심국으로 부상 하겠다는 속셈이다. ○「자위」는 언어의 유희 그들의 이같은 야망이 뜻대로 진행되면 이미 일본경제력이 판치고 있는 태평양 서부연안과 동남아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지역이 또 한차례 「일제」의 정치·군사영향권 아래 들어가게 됨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이를두고 구미의 언론들조차 「신대동아공영권」이란 용어를 서슴없이 사용한다.한반도라 해서 그 「공영권」에서 예외지역일 수가 없음은 물론이다. 내심 남북한의 통일을 원치않고 있는 일본은 한반도 분단구조의 현상유지를 위해 그동안 등거리 외교라는 나름대로의 외교전략을 구사해 왔으며 이제는 남북이 경쟁적으로 대일의존도를 높이게 하여 한반도를 경제적으로 분할통치 하겠다는 저의를 숨기고 있다고 지적되기도 한다.최근 대북한 국교정상화회담에 바짝 열의를 보이고 있는 것도 한반도 분단고착을 염두에 둔 외교전략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분석도 따른다. 일본이 군사적으로 거대국이 될때 가장 큰 영향을 받게될 나라는 미국도 영국도 아닌 바로 한반도이며 우리나라인 때문이다.여기에 우리가 일본의 군사대국화 추세를 달가워할 수 없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문제가 제기됐을때 『통일독일은 앞으로 핵무기를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않겠으며 군사력을 제한함과 아울러 집단통제가 가능한 NATO(북대서양조약기구)테두리 안에 머물면서 기존의 유럽국경선의 변경은 절대 인정치 않겠다』는 등의 갖가지 제어장치를 스스로 만들어 이웃들에 약속하는 조심성을 보였다.소련 폴란드 등 어려운 주변나라에는 막대한 원조를 제공하기도 했다. ○동아의 새 뇌관으로 그러나 일본은 어떠했는가.다시는 안그러겠다는 다짐과 약속은커녕 과거에 저지른 못된 짓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 한번 제대로 않은채 다시 군사대국화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긴장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아시아의 이웃들이 왜 자신들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지 통일독일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곰곰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그리하여 군사대국화의 야망을 버리고 인류평화에의 기여를 행동으로 보여줄 때만이 이웃들로 부터의 「침략자 일본」이라는 과거의 오명을 벗고 진정한 선린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일 사회당 “일장기 인정”/의회서 전쟁책임 시인 결의조건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제1야당인 사회당은 24일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던 히노마루(일장기)를 국회의 결의를 거쳐 「평화의 국기」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그러나 기미가요(일본국가)는 인정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사회당 예비내각위원회(그림자내각)의 시마사키 유즈루(도기량)문화교육위원장은 이날 당주최 교육심포지엄에서 『전쟁책임과 평화에 대한 결의를 명확히 하는 국회 결의를 채택한다면 히노마루를 평화의 국기로 인정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그는 『가미가요는 천황주권시대의 가사인 데다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주권재민의 헌법에 맞는 국가를 새로 제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일장기의 캄보디아 상륙/이창순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이 마침내 「평화」라는 이름으로 이른바 「국제공헌」활동을 적극화하고 있다.일본은 파리에서 캄보디아평화협정이 조인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캄보디아문제 개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나카야마(중산)일본외상은 『일본은 평화협정 조인국의 하나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그는 또 캄보디아 「부흥회의」를 도쿄에서 개최하겠다고 제의했다.일본은 캄보디아 개입의 당위성은 물론이고 더나아가 이니셔티브를 잡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를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캄보디아지원을 현지지휘하기위해 태국주재 일본공사에게 캄보디아 최고국민평의회(SNC)담당대사를 겸임토록 했다.다음달에는 상주대표부를 개설한다.연내에 현지조사단을 파견하고 국제연합 선거조사단에 외무부관리를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일본은 난민구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국제연합 캄보디아 잠정통치기구(UNTAC)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UNTAC간부진에 일본관리를 포함시킬 방침이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UNTAC조직의 일부로 편성되는 국제평화유지군에 일본 자위대가 파견된다는 사실이다.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제도화할 국제평화유지활동(PKO)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중이다.그러나 다음날 5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이법안이 통과될 것은 확실하다.자위대 깃발이 캄보디아에 휘날릴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캄보디아는 일본이 군사대국화로 가는 길목이 될지 모른다. 캄보디아는 물론 일본의 경제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은 경제지원만으로 만족할 것인가.「국화와 칼」의 저자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은 과거에 대한 깊은 죄책감을 느낄줄 모르는 도덕성이 얄팍한 민족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아시아인들은 정치·군사대국화로 가는 일본인들의 이같은 미숙한 도덕의식을 우려하고 있다.과거에 대한 진정한 회개가 없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아시아안보의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아시아에는 유럽의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체제도 없다. 그러나 일본은 「국제공헌」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역할을 증대시키고있다.그들의 국제공헌은 당연히 국제윤리를 바탕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그러나 역사는 그렇지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거리에는 「왜색문화」가 범람하고 있다.섬뜩한 일이 아닌가.
  • 주가 올들어 최고… 7백50선 육박

    ◎증권주 무더기 상한가… 15P 뛰어 주가가 이틀째 큰 폭으로 올라 종합주가지수 7백50선에 육박했다.3일 주식시장은 전날의 오름세가 그대로 이어지면서 종합주가지수를 전날보다 15.12포인트 오른 7백48.15까지 밀어 올렸다. 종합지수 7백48.15는 올들어 최고이며 지난달 30일(7백34.48)의 최고기록을 4일만에 깨뜨린 것이다. 이날 거래량과 거래대금도 반일장 증시사상 최고기록을 1주일만에 또다시 경신했다.종합주가지수가 7백40선을 넘은 것은 지난해 10월25일(7백67.06)이후 9개월여만이다. 종합주가지수는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던 지난 6월22일의 5백90.57에서 6주만에 1백57포인트(27%)가 상승했다. 주가가 이처럼 큰 폭으로 오름에 따라 3일현재 증자설이 있는 현대 쌍용 제일 부국증권등 증권주 17개종목은 연중 신고가를 기록했다. 주말인 이날 주식시장은 주중에 충분한 조정을 거쳤다는 일반투자가들의 판단으로 무조건 사자는 모습이었다. 유상증자및 외환업무허용설로 증권주가 연이틀 강세를 보이는 등 금융주가 장을 주도했다.북방관련기대감으로 무역 건설주의 상한가행진도 이어졌다. 거래량은 3천6백60만주,거래대금은 6천1백76억원으로 지난달 27일의 종전 반일장기록을 넘어섰다. 증권주의 무더기 상한가를 비롯,4백1개종목이 올랐으며 하한가 35개종목등 2백72개 종목이 내렸다.
  • 주가 내림세 반전/5P 밀려 6백29/거래량 올 들어 최저

    주가가 다시 하락했다. 10일 주식시장은 정국불안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돼 거래가 뜸한 가운데 반락세로 돌아섰다. 종가 종합지수는 4.89포인트 떨어진 6백29.83이었다. 보름 만에 다시 지수 6백20대로 밀려났고 특히 거래량이 4백53만주로 평일장기준 연중최저치를 기록했다. 주문건수가 급감해 전장에서는 통들어 1백52만주만 매매됐다. 4백96개 종목이 하락(하한가 16개)했고 98개 종목만 상승(상한가 12개)했다.
  • 외언내언

    일본은 자국군을 일본군이라 부르지 않고 자위대라고 부른다. 제국 일본시절엔 대일본 제국군이라고도 불렀고 황군이라고도 불렀다. 이 제국군,황군이 아시아 각국에 무슨 짓을 어떻게 했는지는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스스로도 일본군이란 명칭을 못쓰고 경비대 방위대 같은 느낌의 자위대란 이름을 붙였겠는가. ◆잔악하고 포악했던 일본군의 역사를 반성하고 자숙한다는 뜻도 있는 것이었다. 이제부턴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오직 자위만 할 것이란 대외선언이기도 했던 것. 해서 주변국들도 얼마간 안심을 했던 것이 사실. 그 일본 자위대가 최근 들어 자위대 아닌 일본군대로 변모해갈 기미라 주목되고 걱정된다. ◆1만3천㎞의 한달거리. 기뢰도 거의 제거되어 굳이 갈 필요도 없을 것 같은 걸프해역에 전후 처음으로 해외에서 일장기를 펄럭이는 해군 소해함대를 파견한 일본정부가 연이어 이번에는 유엔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육군 병력의 캄보디아 파병을 검토중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캄보디아는 일본제국군의 침략무대였던인지반도. 일본은 마침내 일제부활의 향수에 젖기 시작한 것인가. 군사대국의 신제국주의라도 해볼 생각인지 의심하게 된다. ◆현재 일본군은 병력 27만3천여 명 정도의 비교적 소규모. 그러나 작년의 군사예산은 2백81억2천2백만달러. 우리가 1백8억,중국이 61억달러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다. 현대전은 과학기술전이고 첨단무기의 싸움이란 것을 감안하면 일본은 이미 아시아 제1의 군사대국이다. 이런 일본이 중동과 동남아에 파병을 했고 하려는 것이다. 세계와 아시아문제에 군사개입을 시작하려 하고 있는 것. ◆소해함대 파견에 대한 일본 여론조사 결과 당연하다 34%에,부득이하다 44%로 78%가 지지했다. 일본 국민의 여론도 크게 변하고 있다. 탈냉전으로 미소의 군사력이 축소되는 아시아의 공백을 일본은 자신이 채우고 싶은 것이다. 아시아의 맹주노릇도 그리운 모양. 일본의 걸프파병 양해가 일본의 군사대국화,아시아 맹주화까지 양해한 것은 아니란 사실을 일본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 외언내언

    1936년 8월9일 하오,베를린올림픽 스타디움. 히틀러 총통을 비롯한 10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자그마한 선수가 스타디움 정문에 모습을 나타냈다. 바짝 마른 몸매,가무잡잡한 얼굴,박박깎은 머리를 약간 옆으로 젖힌 이 선수가 힘차게 테이프를 끊는 순간 10만 관중은 모두 일어서 박수를 보냈고 히틀러는 만연에 웃음을 띤 채 나치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의 「손기떼이」선수에게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그러나 「손기떼이」가 「손기정」이란 이름의 자랑스런 한국청년이란 것을 모르는 우리 백성은 당시 한 사람도 없었다. 나라 잃은 슬픔에 가슴만 쳤을 뿐…. 동아일보는 시상대에 선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하는 바람에 9개월이나 정간되는 수난을 당했고 민족의 시인들은 그때의 울분을 「통한의 시」로 달래기도 했다. ◆손기정 선수가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세운 기록은 2시간 29분19초2. 처음으로 30분벽을 깨뜨린 세계신기록이었다. 3위도 우리의 남승룡 선수.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해방이 된 후 우리 정부와 체육계는 손기정 선수의 이름과 국적을 바로잡아 달라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 올림픽위원회에 끈질기게 촉구해왔으나 계속 거절당했고 지금도 고쳐지지 않은 상태. ◆지난 70년 야당의 한 의원은 베를린올림픽 스타디움에 몰래 들어가 스타디움 벽면에 구리로 새겨져 있는 올림픽 수상자명단에서 손기정 선수의 일본 이름과 일본 국적을 징으로 쪼아버린 해프닝을 벌이기도. 그런데 뒤늦게나마 일본의 고교 영어교과서에 「한 한국인 마라톤 주자」(A Korean Marathon Runner)란 제목으로 손기정 선수의 장하지만 슬펐던 실화가 사실 그대로 실렸다고 한다. ◆손기정 선수의 이름과 국적이 일본 교과서에서는 반세기가 넘은 55년 만에 되찾아진 셈. 반가운 일이다. 또 일본의 고교 국어교과서에 재일교포 여류작가 이양지씨의 소설 「유희」가 실리 것도 흐뭇한 소식. 조그마한 일 같지만 이런 일들이야말로 한일관계를 보다 까깝게 하는 큰 걸음이 아닌가 싶다.
  • 베를린마라톤 「손기정이야기」/일 교과서에 첫 수록

    【도쿄=강수웅 특파원】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유명한 손기정씨(79)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우숭 이야기가 일본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처음으로 실렸다. 교과서 전문출판사인 계림관이 발행한 고등학교 영어 I「OCEAN」이라는 교과서는 올해 처음으로 「A Korean Marathoner」라는 제목으로 손옹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글에는 36년 베를린올림픽에 손옹이 일본 대표로 출전해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했으나 일장기가 붙은 유니품으로 시상대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던 갈등이 잘 묘사됐으며 또 동아일보가 시상식 사진을 보도하면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까지도 자세히 소개했다. 이 교과서는 5만여 권을 발행한 계림관의 편집부측은 『한 인물을 조명함으로써 평화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소개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 「일본의 구심점」 천황/강수웅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즉위식은 소란한 가운데 치러졌다. 과격파 게릴라는 자위대기지 5곳에 18발의 박격포탄을 쏘아댔다. 도쿄의 순환동맥인 야마노테센(산수선)은 2시간20분이나 스톱됐다. 진자(신사)도 방화로 화염에 휩싸였다. 즉위식이 거행된 12일 하루동안 전국 곳곳에서는 모두 36건의 동시다발 게릴라사건이 발생했다. 중핵파들은 도처에서 「천황제 반대」 집회를 벌였다. 일본열도는 이날 봉축과 반대ㆍ무관심ㆍ테러로 얼룩졌다. 북해도로 스키여행을 떠나던 남자 대학생은 이렇게 쏘아 붙였다. 『세상이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즉의식은 좀 조용히 치를 수는 없는가』 즉위식 행사를 끝낸 일왕부처는 30분동안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차량행렬은 10㎞의 속력이었으며,온화한 미소를 띤 일왕은 손을 흔들어 연도시민들에게 답례했다. 구경나온 11만7천여명의 시민들은 일장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70대의 노파는 이렇게 말했다. 『TV에서 총리가 천황폐화 만세를 3창할 때는 눈물이 쏟아졌다. 감격적이었다』 60대 중반의 학자는 또 이렇게도 코멘트했다. 『일본문화의 정수를 총집결한 극치가 아니겠는가』 일본의 「천황」과 「천황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일 수 있다. 그러나 일왕의 역할과 존재의의는 하나로 모아진다. 그의 권능이 「통치권의 총람자」에 이르거나,또는 단순히 「상징천황」에 머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일본천황」은 일본국민의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구심점이다. 국력단결의 귀착점으로도 볼 수 있다. 모든 힘은 그에게로 모아지고,모든 힘은 그로부터 나온다. 「천황」은 일본의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천황제의 문제는 자위대 해외파병과는 또다른 성격을 띤다. 일본국민들이 그를 신격화시키거나 혹은 보통사람으로 놓아두거나는 일본내부의 일이다. 「천황」의 이름아래 36년간을 짓밟힌 한국의 입장에서 일왕에 대한 반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또다른 「침략」을 우려하는 탓이다. 그러나 그같은 행위가 통용될 수 없는 현대 국제화 사회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천황」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아니라,「천황의」 이름아래 결집되는 일본의 국력이다.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개인적으로 따져볼때 일본인보다 우수할 것이라고 추상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 증명은 어렵다. 혹은 정말로 한국인이 우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정해서,열악한 점을 극복하고 힘을 한곳에 모아 오늘날 세계 최대의 국부를 축적한 일본,그것이 바로 일본인들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증거이며 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천황제를 반대하는 일본인들은 많다. 그러나 일본인구는 1억2천만명이다. 그 숫자는 아무리 많아도 1백분의 1,1천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말없는 다수는 묵묵히 한곳을 향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도 국력을 한곳에 모을 수 있는 정신적 「왕」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즉위식을 지켜본 기자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 잇단 과격파 테러속「평성시대」개막/62년만의 일왕 즉위식 이모저모

    ◎「신헌법」 이후 첫 의식… 일 열도 흥분/일왕 오픈카 퍼레이드에 12만인파 환호/자위대기지 5곳 피습… 전철 운행도 중단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즉위식이 12일 하오 1시 왕궁내 세이덴(정전)의 마쓰노마(송□간)에서 일본왕족과 3부요인,세계 1백58개국 및 2개 국제기관의 사절 등 모두 2처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일왕은 이날 『일본국 헌법과 황실전범에 정해진 바에 따라 이미 황위를 계승했으며 이제 소쿠이노레 세이덴노기(즉위례 정전□의)를 거행,즉위를 국내외에 선포한다』며 즉위사실을 선언했다. 그는 즉위에 즈음한 「말씀」을 통해 『쇼와(소화)천황의 60여년에 걸친 재위기간중 어떠한 때라도 국민과 고락을 함께 한 마음 씀씀이를 깊이 새겨 항상 국민의 행복을 기원한다』고 말하고 『일본국 및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의 직분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국민의 예지와 꾸준한 노력으로 일본이 더 한층 발전을 이루어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인류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할 것을 간절히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가 축하의 인사와 함께 만세 3창을 선창했다. 이날 일왕의 즉위식은 1928년(소화 3년) 이래 62년만에 거행된 것이며 일왕의 지위가 「통치권의 총람자」에서 「상징천황」으로 바뀐 신헌법 하에서는 처음 거행된 것이다. 이날 즉위식은 규모면에서는 쇼와(소화) 일왕의 즉위식보다 성대했으나 도쿄(동경) 도심부 등 전국에서는 이날 새벽 JR역 및 지하철,자위대기지,신사 등을 겨냥한 28건의 동시 다발 과격게릴라 습격사건이 발생,3만7천여명의 병력을 풀어 경비중인 경찰당국을 당황케 했다. 이 게릴라 습격으로 도쿄의 순환동맥인 야마노테센(산수선)과 게힝도후쿠센(경빈동북선)은 2시간20분동안 운행을 중단,4만7천여 승객이 발이 묶이는 피해를 입었으며 나라시노(습지야) 육상자위대기지 등 5곳의 기지가 박격포 공격을 받았으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신사도 5곳이 방화됐다. 즉위식을 끝낸 일왕부처는 왕궁에서 아카사카고쇼(적판어소)에 이르는 4.7㎞를 오픈카에 동승하고 퍼레이드를 벌여 일장기를 흔들며 「천황폐하 만세」를 연호하는 약 12만 인파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일왕의 즉위식은 12일 하오 1시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정전의 「마쓰노마」(송□간)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시작됐다. 정전 북쪽 회랑을 통해 「마쓰노마」에 들어선 일왕은 중앙에 안치된 「천황의 자리」인 「다카미구라」(고어좌)에 들어섰다. 시신들이 이 좌대의 포장을 젖히고,일왕은 즉위의 「말씀」을 했다. 이번 즉위의 「말씀」은 62년전 「쇼와」천황(소화천황)이 즉위했을 때 보다는 많이 민주화됐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우선 과거에는 『일본국 헌법을 지키고』라고 말했으나,이날은 『준수하고』라고 바뀌었으며,『천황의 책무를 다할 것』이라는 표현도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직분을 다하겠다』로 수정됐다. 그러나 전통의식에 따라 거행된 이날의 즉위식은 비록 신헌법하에서의 첫 즉위식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등극」의 분위기를 씻지는 못했다고 많은 사람들은 지적했다. 즉위식후 하오 3시30분부터 왕궁에서 아카사카고쇼(적판어소)에 이르는 4.7㎞의 연도에 늘어서 「반자이」(만세)를 외치는 많은 시민들의 모습도 일왕은 여전히 「일본의 천황」이라는 사실을 실감케했다. ○…일왕이 즉위를 선언한 정전내의 「옥좌」인 「다카미구라」(고어좌)는 8각의 3층 대좌인데 높이 6.5m,폭 5.4∼6m,무게 약 8t이다. 왕비가 앉는 「미조다이」(어장대)는 이보다 약간 작은 무게 약 7t 규모였다. 일왕은 이 대좌에서 즉위를 선언하는 「말씀」을 했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의 만세 3창은 본래 이 대좌가 있는 전상에서 내려서서 중정에서 할 예정이었으나 『민주국가에서 신하의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다카미구라」가 안치된 전상에서 선창했다. 만세 3창을 선도하는 말도 처음에는 단순히 「천황폐하 만세」라고 되어 있었으나 『만세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야당측 주장에 따라 『즉위를 축하하여 천황폐하 만세』로 바뀌었다. 이번 사용된 「다카미구라」는 대정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대정ㆍ소화 양 일왕이 사용했으며 교토(경도)에 보관중인 것을 옮겨와 수리하고 칠을 새로 입혔다. 이날 일왕이 서 있는 위치는 총리가 서있는 자리보다 1.3m 높았다. ○…일왕 즉위식에 관련된 비용은 총리부ㆍ궁내청ㆍ경찰청ㆍ외무성 등 관계 각 분야를 합쳐 모두 1백20억엔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즉위식 자체인 「소쿠이노레」(즉위□례)의 예산은 총리부에 계상된 33억8천5백만엔인데 내역별로는 메인 이벤트인 「세이덴노 기」(정전□의)에 14억3천6백만엔,오픈카 퍼레이드에 1억2천만엔,12일부터 15일까지의 7차례에 걸친 만찬비용 4억3천3백만엔 등이다. ○…일왕의 즉위식이 거행된 12일은 「국민의 휴일」로서 공립학교는 거의 휴교했으나 주로 기독교계통의 사립학교를 중심한 20여개교는 정상수업을 하거나 교사ㆍ학생이 자유참가하는 강연회 등을 개최했다. 특히 이가타(신석)의 경화학원고교 등은 평소대로 수업을 했다.
  • 외언내언

    제시 오언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미국의 이 흑인 스프린터를 위한 대회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남자 육상 1백mㆍ2백mㆍ4백m 릴레이와 넓이뛰기에서 우승,4관왕의 경이적인 위업을 이룩했다. 베를린 올림픽은 또 우리 민족에게는 손기정이 비록 일장기를 달았지만 마라톤에서 우승해 한국인으로는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역사의 현장으로 기억된다. ◆제11회 베를린올림픽은 히틀러의 나치즘이 세계 정복의 야욕을 꿈꾸는 가운데 그해 8월1일 개막됐다. 정치ㆍ인종ㆍ이념을 초월한다는 올림픽정신은 뒷전으로 밀어둔 채 히틀러는 「비유태계 백인(게르만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그 대회를 유치했다. 스포츠를 통한 내셜널리즘을 앞세운 히틀러는 또 3천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막대한 돈을 쏟아 넣었다. 그러나 그의 망상은 오언스라는 한 흑인선수에 의해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그러한 어두운 과거를 가진 베를린시가 2000년도 올림픽을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베를린시 지도자들은 최근 통독 후 가진 첫 합동회의에서 베를린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국민들간의 평화라는 올림픽 이상을 진작시킬 평화적 통일의 적절한 상징이라고 선언하면서 올림픽 개최지의 후보로 나서기로 한 것. 베를린시의 올림픽 개최는 지난 88년 12월의 미 소 정상회담 때 레이건 전 미대통령이 분단도시의 양쪽에서 여는게 어떻겠느냐고 발언한데서 싹텄다고. ◆베를린시는 분단의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반경 10㎞ 범위안에 각 경기장을 세워 치르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동베를린시 재건의 일환이기도 한 베를린시의 올림픽 유치안은 대회준비에 약 30억달러(한화 약 2조원)를 투입하며 대신 텔레비전 중계료 등을 합쳐 약 40억달러의 수익을 계상하고 있다는 것. 꿩먹고 알먹는 계획이다. 사마란치 IOC위원장도 『냉전은 끝났다. 올림픽으로 동서 대결이 종결됐음을 기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한 바 있어 93년의 올림픽개최지 결정에서 베를린시와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른 중국의 대결이 볼만하게 됐다.
  • 통일축구 열리는 평양의 표정

    ◎서커스장에 입장하자 관객ㆍ출연자 기립박수/체육기자연,북측에 이길용씨 생존확인 요청 ○널뛰기 전회비행 선봬 ○…한국축구선수단과 기자단은 10일 하오 4시부터 평양 광복거리에 있는 평양교예(서커스)극장에서 열린 평양교예단 공연을 관람. 평양교예단은 세계대회에서 몇차례 1위를 한 요술(마술) 널뛰기 전회비행(공중트라피스)팀 등이 소속된 북한의 가장 뛰어난 교예단. 북한에서는 서커스의 인기가 대단해 함흥ㆍ청진에도 교예단이 있으며 평양교예단은 평일에는 매일밤 한차례,명절에는 낮과 밤 두차례 공연을 하며 좌석 3천5백석이 빌 때가 드물다고 안내원은 설명. 정동성 체육부 장관 등 한국선수단 일행이 교예극장에 들어서자 출연자들은 문앞까지 나와 반갑다고 인사했고 극장 안에 미리 입장했던 관람객들은 기립박수로 환영. 이날 공연에서 계란재주란 코미디를 한 공훈배우 윤광섭 씨(63)는 자신이 배우경력 33년의 원로급이라며 자동차 운전사로 일하다 지난 58년부터 배우생활을 했고 한국 원로가수 김정구 씨를 어릴 때부터 알고 있다며『하루빨리 남북의 희극인들도 교류를 해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측 보도태도에 촉각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이 10일 하오 7시쯤 판문점을 통해 행낭편으로 처음 이곳 한국선수단이 묵고 있는 고려호텔에 도착하자 북측 기자들은 『우리도 1면에 대서특필됐는데 서울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들도 크게 다뤘구먼』이라고 말하고 『이번에 온 기자들은 매우 사실에 근거하여 보도했구먼』이라고 첨언. ○해설없이 사실만 보도 ○…북한 노동당기관지 로동신문은 7일 조간에서 한국선수단과 기자단이 평양에 도착한 사실을 7면과 8면(모두 8면 발행)에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북남 통일축구경기에 참가한 남측 선수단 평양에 도착 수많은 군중들 거리에 떨쳐나가 열렬히 환영」제하로 3단으로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한편 북한 중앙TV는 10일 하오 7시 저녁 뉴스시간에 남북 축구경기를 위해 9일 평양에 도착한 한국선수단의 방북소식을 화면이나 해설없이 사실보도만 했다. ○…한국체육기자연맹은 남북 통일축구를 위한 한국선수단의 평양방문 기간 동안 일제 때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당시 체육기자 이길용 선생(74)의 생존여부를 확인해 주도록 10일 북한올림픽위원회 김형진 부위원장에게 요청. 이길용 선생은 1936년 손기정 씨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청전 이상범 화백과 함께 손씨 가슴의 일장기 사진을 지운 후 신문에 게재,일제에 의해 투옥됐었다. 이 선생 가족들은 6ㆍ25 때 남북으로 갈렸는데 이 선생의 장남 이태영 씨(49)도 체육기자로 활약,현재 중앙경제신문 체육부장(국장대우)으로 재직중이다. ○…이날밤 김일성광장에서는 로동당창당 45주년기념 경축무도회가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을 비롯한 1백25개국 경축사절단과 북한의 고위급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펼쳐진 경축무도회에는 원색차림의 남녀 5천여쌍이 참가,휘파람 등 댄스뮤직에 맞춰 군무를 펼쳤다. 북한 중앙TV는 이날밤 7시30분부터 1시간30분 동안 경축무도회 행사를 생중계했으나 한국 축구선수단과 기자단은 초청대상에서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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