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일의 성사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준결승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주민센터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스크린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1945년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91
  • “공동선언 실천 힘 모으자”

    시민·노동단체들은 15일 일제히 남북공동선언 채택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통해 “남북 정상이 상당한 합의에 도달한 것은 냉전적대결의식과 적대감을 넘어서겠다는 전향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진다”면서 “작은 차이에 연연하지 않고 5개항의 합의사항을 이끌어낸 것은 한반도 평화정착의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실련 통일협회는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하려면군비축소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면서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냉전적 요소들을 과감히 청산하는 후속작업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남북정상회담은 민족의 최대 아픔인 분단을 극복하는 데 있어 전환점이 됐다”면서 “남북 동포 모두는 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지혜와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한국노총은 “민간 차원의 교류 확대를 상호 신뢰회복의 첩경으로 보고 북한 노동계와의 다각적인 교류를 추진하겠다”면서 “해상산업노련의 외국인선원을 북한선원으로 대체하는 사업,철도노조를 중심으로 한 남북철도사업,예능인노련을 중심으로 한 남북한 예능인 교류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오는 8월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2000 통일염원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성사 등 남북 노동자의 자주교류와 통일의 밑거름을 마련하는 데 적극 나서겠다”면서 “북쪽의 조선직업총동맹과 남북노동자축구대회를 협의하기 위한 회담을 열어 추진계획을 합의할 것이며,축구대회 이전에 남북노동자 통일토론회를 여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 남북노동자 자주교류의 폭을 넓혀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온겨레평화대행진 행사준비위원회,정치개혁시민연대,전국철거민협의회 등도 환영성명을 발표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北관련 서적·음반 ‘불티’

    남북한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을 계기로 문화계에 북한·통일 바람이 거세다. 정상회담 보도와 함께 북한의 풍광과 영화 등이 연일 TV를 장식해 국민들의시선을 붙잡는가 하면,북한 관련 서적·음반들이 날개돋치듯 팔리는 등 북한신드롬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들어 나온 북한과 통일 관련 서적은 모두 30여종.그중 절반이상이 정상회담 합의가 발표된 지난 4월 10일 이후 출간됐다.김영사가 ‘북한 읽기’ 시리즈를 우선 2권 내놓는 등 출판사마다 발빠르게 북한 관련 책을 쏟아내고있다.최초로 북한 저자와 직접 계약한 ‘북한 향토사학자가 쓴 개성 이야기’(푸른 숲)도 곧 나온다. 홍성원이 6·25 대하장편소설 ‘남과북’(문학과지성사)을 25년만에 개작해펴내고,북한문학 연구서가 봇물을 이루는 등 문학계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평양을 방문중인 차범석 예술원회장은 남북한 ‘통일문학전집’(100권)의 공동 간행을 추진중이다. 대형서점들도 북한 특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저마다 통일 관련 특설코너를마련하는 등 분주하다.교보문고가 운영하는 ‘한국전쟁 50년과 통일을 꿈꾸는 한반도’란 특설코너에는 독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이 코너를 담당하는 최규윤 대리는 “신간 등 30여종을 모아놨는데 요즘 들어 판매가 부쩍늘고 있다”고 말했다.‘현대 북한의 지도자’(을유문화사),‘김정일의 생각읽기’(지식공작소),‘현대 북한의 이해’(역사비평사)등은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휘파람’을 비롯한 북한 노래 7곡 등을 담아 지난 1일 발매된 CD도 좋은반응을 얻고 있다.음반제작사인 동아뮤직 김영 사장은 “시중에 3만장을 깔아놓은 상태에서 열흘만에 도소매상들로부터 재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면서 “고객층은 주로 기성세대들”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9층 화랑에서는 북한 만수대창작사 명품전이 15일까지 열린다.판매도 한다.또 월북 화가 이쾌대의 작품전과 학술세미나가 20∼25일그의 고향인 경북 칠곡군 왜관읍 종합복지회관에서 열린다.북한 영화 ‘불가사리’를 수입,7월중 국내 최초로 극장에서 상영할 예정인 NS21엔터프라이즈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영화 ‘아리랑’을 남북한 합작으로 만들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음악 미술 연극계 등도 북한측과 각종 공연·전시 교류를 추진중이다. 김주혁 황수정기자 jhkm@
  • 정상회담 기념 성악집 ‘우리는 하나’출반

    우리겨레 대대로 오고가던 길/ 산이 높아 오가지 못하는가/ 네가 올 내가 갈통일의 길을/ 우리 서로 손잡고 열어 나가자 (‘통일의 길’가사 발췌)분단 반세기만에 성사된 첫 남북정상회담에 맞춰 통일의 염원을 가득 담은성악집 ‘우리는 하나’(신나라)가 나왔다. 소프라노 윤인숙이 노래한 음반엔 분단역사상 최초로 남북 작곡가가 함께 만든 노래 ‘통일의 길’이 수록돼 더욱 반갑다.이 곡은 1990년 10월 평양에서열린 ‘범민족통일 음악회’에 서울전통음악연주단 단장으로 참가했던 황병기와 북한의 저명 작곡가 성동춘이 합작해 만들었다.꾸밈없이 솔직한 민요풍 가사에 굿거리 장단 가락이 어우러져 민족통일의 염원이 애절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윤인숙은 ‘윤이상선생의 수제자’란 이름에 걸맞게 선생의 초기가곡 5곡을 원형 그대로 담았다.1950년 부산에서 출판된 ‘달무리’라는 가곡집이“음반으로 출반해 달라”는 생전의 뜻에 따라 반세기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윤이상선생은 1917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57년 불혹의 나이로 베를린음대에 유학했다. 눈부신 음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다 끝내 조국땅을 밟지 못한채 95년 독일 베를린에서 눈을 감았다. 음반엔 이외에도 황병기 작곡 ‘우리는 하나’,정풍송 작곡 ‘아! 통일’,문익환 작사 ‘사랑’등이 나란히 담겼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음대 졸업후세계무대에서 중진성악가로서의 입지를 굳힌 소프라노 윤인숙은 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 참가를 계기로 음악적 방향을 선회,전통음악과 성악을 접목한 새로운 민족음악을 개척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허윤주기자 rara@
  • 남북정상회담/ 金대통령·金위원장 남북관련 발언록

    13일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관계 발언록을 정리해본다. ◆ 김대중대통령. ■남북정상회담. ◎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위해 특사교환을 재개하고 필요하다면 김정일 총비서와 정상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97.12.19 대통령당선 기자회견)◎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특사교환을 제의하며 북한이 원한다면 정상회담에도 응할 용의가 있다(98.2.25 대통령 취임사)◎김정일 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남북간공존공영의 상호협력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도록 제의하겠다(2000.1.20 민주당 창당대회 치사)◎남북문제를 풀어나가려면 김정일 총비서와의 대화외에 다른 길이 없으며김 총비서는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 등을 상당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알고 있다(2000.2.9 일본 도쿄방송 회견)◎과욕 없이 차분히 대처해나갈 것이며 당면한 실제적인 성과를 거두는데 목표를 둘 것이며,한번에 다 하려 하지 않고 다음 정권이 할 일도 생각하면서해나가겠다(2000.4.17 대국민담화문)◎민족적 대과업 앞에 여야가 따로 없으며 너와 내가 달리 있을 수 없는 만큼 초당적이고 범국민적인 협력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2000.4.19 4·19혁명 40주년 기념식)◎서로 모든 문제를 격의없이 논의해 가능한 일부터 성사되도록 하겠으며 합의 안된 것은 2차,3차회담에서 처리하도록 하겠다(2000.6.5 16대 국회 개원연설)■포용정책. ◎햇볕정책은 유화정책이 아니며 북한의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화해와 협력을 하는 포용정책으로 북한의 강경세력에게는 가장 고통스런 정책이다(98.6.30 고려대 인촌기념강좌 특별강연)◎안보정책의 목표와 기본방향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증진,남북간 화해·협력의 지속적 추구,대북정책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공조관계 강화 등이다(99.1.4 제1차 국가안전보장회의)◎연평해전에서 입증한 바와 같이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은 결코 단순한 유화정책이 아니라 굳건한 안보의지와 능력을 바탕으로 한 화해·협력정책이다(2000.2.29 학군장교 임관식)■남북대화. ◎평화공존·평화교류 그리고 장차의 평화통일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떤 수준의 대화에도 응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98.3.1 79주년 3·1절 기념사)◎북한과 실무자급이나 정부지도자급 대화는 물론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등어떤 레벨에서도 대화를 할 생각이 있으나 서두르지 않을 것임(99.3.24 통일부 국정개혁과제 보고시)■남북교류협력◎우리는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의 우방국가나 국제기구와 교류협력을추진해도 이를 지원할 용의가 있다(98.2.25 대통령 취임사)◎경제협력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지킬 것이다(2000.5.9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단 오찬)■이산가족문제. ◎무엇보다 이산가족의 상봉 내지는 생사확인만이라도 서둘러야 한다.이를위해 적십자사 또는 정부기관간 협의 등 어떤 방식도 좋으며 최근 북한이 발표한 내용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98.3.1 79주년 3.1절 기념사)◎북한이 미전향 장기수 17명을 송환요구한데 대해 이해하지만 우리 역시 북한에 국군포로나 납북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으므로 이런 문제에 대해 앞으로 공정한 대화가 있기를 희망한다(99.2.24 취임1주년내외신 기자회견)◆ 김정일 국방위원장. ■우리 세대가 북남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학생운동 지도자 그런 사람들을우리는 높이 평가한다.미군이 나가야 한다.그들 때문에 통일에 지장이 있다(90.10.13 평양을 방문한 정동성 당시 체육부장관과의 대화)■조국을 통일하지 못하다 보니 남조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다.남조선에 비전향 장기수가 많은데 우리는 그들을 데려와야 한다(94.10.16 노동당 중앙위 책임일꾼들과의 담화)■우리나라의 통일문제는 남조선에 대한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고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여 갈라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고하나의 민족적 단합을 실현하는 문제다.앞으로 남조선 당국자들이 온 민족의기대에 맞게 오늘의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 대결정책에서 벗어나 실지 행동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다면 우리는 그들과 아무 때나 만나 민족의 운명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협상할 것이며 조국통일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다(97.8.4 노작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에서)■민족적 양심을 갖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와 단결하여 조국통일의 한 대오에서 손잡고 나갈 것이다.남조선의 집권상층이나 여당과 야당 인사들,대자본가,군장성들도 민족공동의 이익을 귀중히 여기고 나라의 통일을 바란다면 그들과도 민족대단결의 기치밑에 단합할 것이다(98.4. 18 민족대단결 5대 방침)■나도 영화를 통해 서울을 보았는데 일본의 도쿄보다 훌륭한 도시로 서울은조선이 자랑할만한 세계도시다.단지 공해가 심각하고 도시계획이 조금 잘못돼서 복잡하다.남쪽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올림픽을 유치했기 때문이며,일본도 올림픽유치 후 경제발전을 했다고 본다.요즘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좋게 인식되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 유신이니 해서 비판이 많았지만 초기새마을 운동을 한 덕택에 경제발전의 기초가 됐던 점은 훌륭한 점이다(99.10.1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 및 정몽헌회장 오찬)■북남 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기로 한 결정을 긍정평가한다(2000.5.29 중국 방문시 장쩌민 주석과의 회담에서)한종태기자 jthan@
  • 남북정상회담/ 각계 기대와 희망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난다.반세기 넘어 처음이다.때로는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저 밑바닥에는 언제나 민족이라는 핏줄 특유의 애틋함이 흐르고 있었다.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들을 대표해서 정상들이 만난다니 그냥 좋다.몇번이나기대에 부풀었다가 실망해버린 적이 있었다.일정이 하루 늦춰지면서 가슴이철렁하기도 했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예전과 다르다.무언가 이뤄질것 같은 예감이 든다.남북 정상들의 만남에 앞서 ‘사람들’의 얘기를 모아봤다. ■강동희(프로농구 기아 엔터프라이즈 선수)그동안 각종 국제대회에서 이명훈 등 북한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서 우정을 나눠왔다. 그러면서 분단된 남북한이 하루빨리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것을 직접 피부로느꼈다. 특히 지난해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통일농구대회를 치르면서 통일의 물꼬가서서히 열리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런 스포츠 류가 농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뤄졌으면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의 스포츠 교류가 더 이상 뉴스가 되지않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다.더 나아가서는 한국프로농구(KBL)에 북한의 벼락팀이나 우뢰팀이 참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또 축구,탁구에서와 같이 농구에서도 남북단일팀이 구성되기를 바란다. ■김은선(실향민·76·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51년 결혼한 아내와 함께 남한에 내려와 2남3녀를 두고 열쇠공 기술을 익혀 힘겹게 고생하며 산 지 50년째다.북에 두고온 아버지와 여동생의 생사 한번 확인하지 못하고 한달에 1∼2차례 임진각에 가서 고향땅을 바라보며 한스러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우리같은 실향민의 마음만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단지생전에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땅을 한번 밟아봤으면 좋겠다.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다른 것보다도 북한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많이주고 식량이라도 많이 가져가 나눠줬으면 좋겠다. ■박종환(숭민원더스여자축구단 단장)90년 통일축구대회를 위해 대표팀을 이끌고 북한에 갔을 때의 감회가 새롭다.당시 15만명이 입장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펼쳤는데 운동장 시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현지에서 느꼈던 것은 북한 사람들이 남쪽과 모든 것을 성사시키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또 칭찬해주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그러나 그들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으면서도 1단계,2단계 하는 식으로 과정을 만들어 일을 미루곤한다. 그들과 무엇을 하고자 할 때 주의할 점은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조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때보다 세월이 10년이나 흘렀으니 북한 사람들도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기대가 된다. ■신무성(미 8군사령부 병장·24) 남북한이 화해무드 속에서 성사된 회담이라 국민적인 기대감이 무척 큰 것 같다.회담 성사 사실을 발표하던 날을 생각하면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회담 성사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그러나 너무 갑작스런 평화·화해 무드에 도취돼 느슨한 생각으로 북한을 바라봐서는안된다고 생각한다.현역 군인으로서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긴장감을 풀지 않고 국가방위에 충실하고 있다.다른 전우들도 마찬가지다.양측의 적대관계가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는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회담의 최우선 과제는 어떤 경우에도 서로 전쟁은 피한다는 국제적 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측은 경제위기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빗장을 연 것으로 여겨진다. ■신현균(서울 성민교회 목사)지난 부활절,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 봉수교회에서 열린 남북 합동연합예배에 남한 개신교를 대표해 참석했다.감회가 새로웠다.당시 북한 기독교계의 달라진 분위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종교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교류가 많았지만 남북정상회담이후 보다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교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지금 우리 종교계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목소리와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북한의 종교계에서도 남북 교류에 대한 기대가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지난 부활절의 남북 합동예배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직접 실감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종교계가 명실상부한 화합과 일치를 이룰 수있도록 회담이 튼실한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 ■유영례(주부·44·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내가 사는 강화는 북한과 밀접해있어서 집안까지 대남방송이 다 들린다.그래서 그런지 이번 회담을 접하는느낌은 되레 담담하다.다만 아들이 최근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북한이 갑자기이번 회담을 핑계삼아 무슨 도발이라도 할까봐 가슴이 뛸 때가 많다.남북한정상이 분단 이후 처음 만나는데 모든 일이 쉽게 풀리기는 어려울 것으로본다.김대통령께서는 너무 회담 성과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국민은 정부가 소신껏 대북정책을 펴는데 신뢰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물어봤으면 좋겠다.남한에서 쌀이나비료도 지원해주는데 왜 자꾸 딴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이산가족도 만나게해주고 아니면 전화통화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터놓고 상대하면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이남은(인천 부평구 부광여고 3학년·18) 우리 국민과 북한 동포들이 전쟁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이렇게 해서 서로 방위비를 줄이면 교육비에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불쌍한 북한의 어린이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사실 북한을 다른 나라처럼 여겨왔는데,정상회담이 잘 돼 교류가 늘면 한민족이라는 생각이 싹틀 것이다.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으로 곧 통일이 온다고는믿지 않는다.50여년 동안 다른 사상과 문화 속에서 살아왔는데 쉽게 동질감을 느낄수 있겠는가. 우선 평양교예단이나 학생예술단처럼 문화 방문단이 서로를 번갈아 찾으면좋겠다.우리나라 가수들의 공연을 보면 북한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사뭇 궁금하다.많은 일을 하시는 대통령께서는 다음 회담을 위해서라도 몸건강하길 빈다. ■최우영(납북자가족모임 총무·30·여) 납북자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와 설렘은 누구보다 크다.아버지는 지난 87년 1월 부산에서출발한 동진호를 타고 조업을 하다 납북되었다.올해 54세가 되었지만 생사조차 전혀 모르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두 정상이 만나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으면 한다.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북한에 억류돼 있는 우리 국민들에 대한 얘기를 꼭 전해주었으면 좋겠다.이번 회담의 성사는 지속적인 ‘햇볕정책’의 결과이듯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납북자와 북송을 원하는 미전향 장기수에게도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살게 해줬으면 좋겠다.이번 회담에서는 이산가족과 함께 납북자 문제가주요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태진아(가수)지난해 12월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공연을 했던 나로서는 남북 정상의 만남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졌다는 데 대해 놀랍고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그때 만나 ‘형님’이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냈던 북한 분을 평양교예단 공연장에서 만나뵙고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평양 공연때 무릎을 꿇은 채 ‘사모곡’을 부르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이 “왜 그렇게 울었냐”고 묻길래 “나보다 더 평양을 그리워했을 실향민들을 생각하느라 그랬다”고 대답했었다.이번 정상회담에서 그분들의 50년 숙원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나아가 정상회담 이후 남북의 문화교류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온 배달민족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한필성(목축업·67·경기도 파주시 교하면)남북정상회담으로 꿈에 그리던고향방문길이 꼭열릴 것 같다.90년 2월 일본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 스케이트 코치로 참가한 여동생 필화(59)를 상봉한 뒤에도 기회가있을 때마다 어머니(최원화)와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준비해 왔지만 번번히무산됐다. 71년 일본 삿포로 동계올림픽에 북한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선수로 참가한필화와 전화통화만 하고 만나지 못했던 때를 돌이키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생전에 그렇게도 보고 싶던 어머니가 98년 4월19일 94세로 세상을 떠나셨다.고향방문길이 열리면 어머니와 아버지 묘소부터 찾아가 불효에 대한 용서를 빌겠다.이번에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 주었으면 좋겠다. ■현정화(한국마사회탁구단 코치·전 국가대표)91년 남북 탁구단일팀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을 당시엔 당장 통일이 될 것같은 분위기였다.벌써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통일무드가 조성되는 것 같아 너무 기쁘지만 사실 늦은감이 없지 않다.지난 10년간 남북이 서로 화해하고 협력했으면 탁구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훨씬 더 많은 발전이이루어졌을 것이다. 우승을 확인한 순간 같이 부둥켜안고 울던 북한의 이분희가 무척 그립다.팀동료 김성희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는데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나 탁구단일팀 구성은 물론 그리운 사람들도 마음껏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91년에 느꼈던 ‘작은통일’의 감격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황석영(작가)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자고들 하지만 비전을 갖고 해야 할 것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우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야 한다. 4강이 한반도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고 있는 만큼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이다.하지만 이미 91년에 합의한 남북합의서에 기본정신은 다 들어 있다고할 수 있다.그걸 실천하겠다는 두 정상의 선언이 공식화돼야 하겠다.한반도긴장 완화를 위해 평화선언이라도 해서 그 가능성을 열어둬야 할 것이다. 앞으로 문화교류가 물밀듯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문화인의 한 사람으로서교통정리가 되길 바란다.‘두루미와 여우’의 만남처럼 서로의 이질성만을부각시켜서는 안된다.통일문화를 형성한다는 의도된 목표 아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부터 교류할 수 있도록 문화교류기획위원회 같은 전담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 정상회담 보는 외국기자 시각

    1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마련된 남북 정상회담 프레스센터 상주를 시작한 외국 취재진들은 “남북 정상회담은 두 정상의 만남 그 자체에 의미가있으며 통일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로저 윌키슨 ‘미국의 소리’(VOA) 중국 베이징 지사장. 남북간 긴장을 해소하고 대립이 아닌 대화와 협력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남북은 이산가족상봉과 주한미군 철수 등 가시적인 요구사항을 관철하려고 애쓰기보다 남북의 만남 그 자체에 중점을 둬야 한다.특히 남북 경제협력을 성사시키고 통일로 향하는 초석을 다지기 시작했다는 데에 의미를 둬야겠다.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조성된 남북간 대화 분위기로 한반도의 긴장이완화되길 바라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평양방문이 하루 늦춰졌지만 55년을 기다렸는데 하루를 더 기다리는 것은 큰 일이 아니다. ◆시로우치 야스노부(城內康伸)일본 도쿄신문 기자. 남북 두 정상의 만남이한반도 정세에 플러스로 작용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수교협상을 진행중인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에도큰 영향을 줄 것이다.북한은 향후 대일 협상에서 과거보다 유연하게 나오면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려 할 것이다. 반면 일본으로선 걱정되는 면이 없는 게 아니다.남북 경제교류가 진전되면서 남북 모두 일본에 부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경협에 대한 일본의 부담은 일본 국민여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 미사일,일본인 납치의혹 등 대북 현안 등과 일본의 경협이 조정돼야 할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모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우정충(吳政忠) 타이완 FTV 기자 .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북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북한이 회담을 하루 연기한 것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남북 정상회담 의제에 대해 시간벌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남북양측이 서로의 요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협상은 이미 끝난상태라고 본다.따라서 이번 회담은 55년간 단절됐던 남북정상이 만난다는 데의미를 둬야 한다. 특히 회담은 남북한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기때문에 앞으로도 남북이 대화와 협력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 한반도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 정부도 이번 회담에서 보듯이 타이완과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노력을시도하기 바란다. 황성기 주현진기자 marry01@
  • 지자체들 남북교류 ‘바쁜 걸음’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내일 처음으로 평양에서 열린다.남과 북의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50년 분단의 높은 벽을 허물고 통일의 길을 활짝 열어 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남북 정상회담이 분단 극복의돌파구가 되는 것은 물론 남북간 대대적인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지역 특성을 살린, 다양한 교류·협력 방안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지난 98년 11월 고건(高建)시장이 평양에 제의한 경평(京平)축구부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평양측은 그동안 고 시장의 제의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시는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따라 남북간 화해 무드가 한껏 고조되고 있는 만큼조만간 화답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 체육청소년과 등 실무부서는 언제라도 경평축구를 열 수 있도록 자료수집 등 준비에 착수한 상태이며 외교통상부,문화관광부 등 관계 부처에정부 차원의 협조와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경평축구는 1929년 10월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첫 대회가 열린 이후 46년 서울에서의 7회 대회를 끝으로 중단됐다.그 동안 양팀은 18차례 맞붙어평양팀이 6승8무4패로 우세했다.이어 90년 10월 ‘서울·평양 교환 축구경기’가 열려 44년만에 경평축구의 맥이 이어졌었다. [부산시] 부산시는 부산신발지식산업 협동조합이 지난 8일 부산지역의 신발기업을 대표해 조만간 (주)현대아산과 북한에 대규모 신발전용 공단을 조성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체결할 것이라고 발표한데 주목하고 있다.시는 신발조합이 대북 사업 추진에 따른 자금지원 문제나 투자보장,송금문제 등에 관해 제도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 줄 것을 건의해온 만큼 지원 방안을 적극 모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신발조합은 (주)현대아산이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 서해안 남포또는 해주지역 공업단지에 2008년까지 100만평 규모의 신발전용 공단을 조성할 계획이다. [광주시] 규모가 비슷한 도시와 자매결연하고 정치분야를 제외한 문화,의료,체육분야의 교류를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대상 지역에 대한 검토작업에착수했다. 시가 자매결연 추진을 검토중인 곳은 평양특별시,남포·개성직할시,평안남도 평성,평안북도 신의주,자강도 강계,양강도 혜산,강원도 원산 등 12곳.시는 이중 서해안을 끼고 있는 신의주와 남포직할시를 최우선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 시는 정상회담 이후 실향민간 서신교환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이북5도사무소의 협조를 받아 광주지역내 실향민 파악에 나섰다. [대구시] 대구상공회의소와 함께 97년 진행하다 IMF사태 등으로 중단된 북한내 ‘대구전용공단’ 설립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북한내 대구전용공단은 95년부터 대구상공회의소와 북한 대외경제협력위가추진해왔던 사업으로 섬유,안경,양산 등의 생산단지를 북한에 조성한다는 것.대구상공회의소는 조만간 섬유,안경업체를 중심으로 ‘대북투자협의체’를구성해 세부 추진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다. 북한은 95년 당시 대상지로 나진·선봉지구를 제의해 왔으나 대구상공회의소는 물류비 부담이 적고,전력·도로 등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남포지역을적지로 꼽고 있다. 대구시는 이밖에 생산과잉으로 재고가 누적되고 있는 직물을 대북 지원품목에 포함시켜 줄 것을 산업자원부에 요청할 예정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 대구경북지회는 중소기업전시판매장에 북한상품전시장을마련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강원도] 휴전선을 끼고 있는 지역 특성상 남북교류의 실질적인 혜택을 기대하며 각종 사업을 정부에 건의하는 등 발걸음이 가장 분주하다. 철원군은 경원선 철도와 금강산 전철 복원사업을 적극 추진중이다.원산까지이어지는 경원선은 남북간 물자 교류를 본격화할 수 있고, 현재 비무장지대에서 끊긴 금강산 철길은 금강산 관광길을 한결 편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군은 또 비무장지대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농사를 짓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할 방침이다.남쪽이 기술을 지원하고 북한이 인력을 제공,비무장지대의 넓은토지에서 농작물을 생산하면 남북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성군은 남북한 공동 어장을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군은 군사분계선 인근 해역의 경우 문어,전복,가자미,성게 등의 해산물이풍부해 남북 공동어장이 실현되면 어획량 부족에 시달리는 어민들에게 엄청난 도움을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구군은 동면 월운리에서 끊긴 원산행 31번 국도가 확·포장되면 자동차를이용해 금강산 장안사에 쉽게 갈 수 있다며 정부에 조기 착공을 건의했다.월운리에서 장안사까지 52㎞에 불과해 40∼50분이면 자동차로 금강산까지 갈수있다는 것. [전남도] 평안남도와 자매결연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도는 북한의 평야지대인 평남이 농도(農道)인 전남과 여건이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도는 이와관련,통일부에 협조를 요청했다. 도는 평남도와의 농·수산물 교류는 물론 전남도립국악단과 평남도 예술단간 상호 교류도 추진할 방침이다. 도는 98년 7월 통일부로부터 대북접촉 승인을 받고 다양한 접촉을 시도했으나 ‘자치단체별 교류는 시기상조’라는 북한측의 태도로 성과는 없었다.다만 지난 4월 국제옥수수재단을 통해 북한에 비료 2,500부대를 지원했다. [경북도] 오는 9월1일부터 11월10일까지 열리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00’에 북한예술단을 초청하기로 했다. 도는 또 북한의 동북아자치단체연합 가입도 추진하고 있다.도는 오는 9월일본 효고(兵庫)현에서 열리는 제 6회 동북아자치단체연합 회의때 북한가입을 정식 안건으로 상정할 방침이다. 동북아자치단체연합은 동북아 자치단체간의 공동 발전과 현안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93년 결성됐다.한국을 비롯 중국,일본,러시아,몽고 등 5개국 35개자치단체가 참가하고 있다. 도는 이밖에 포항제철과 김책제철간 교류협력,포항~청진간 직항로개설 등을추진하기로 했다. [서울 강동구] 이름이 같은 평남 강동군과 자매결연을 위해 지난해 6월부터자료수집에 착수했다.또 통일부로부터 정상회담이 끝난 뒤 대북접촉을 승인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강동구는 지난 84년 서울지역 홍수때 북한측으로부터 2,000만원 상당의 옷과 쌀을 지원받았으며,97년에는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북한 어린이돕기 성금 5,000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김충환(金忠環)구청장은 “대북접촉 승인이 나는대로 자매결연을 성사시키고 상호방문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연천군] 정상 회담 이후 남북교류본격화에 대비해 연천∼평양,연천∼원산간 고속도로 및 경원선 등의 교차지역인 연천읍 통현리,전곡읍 은대·산답리,군남면 남계·황지리와 미산면 동이리 일대 300∼500만평에 ‘코리아 평화공단’ 조성을 구상중이다. 군은 의류·봉제·전자·장난감·신발 등 무공해 업종을 유치,장기적으로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노동집약적 공단으로 발전시킬 방침이다. 또 남북교역의 거점 확보 차원에서 청산면·백학면 일대 20만∼30만평에 유통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경원선 철도가 끊어진 지점인 인근신서면 고대산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방안도 강구중이다. [광주시 북구]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평양의 작가들과 미술 교류전을 추진키로 했다. 북구는 광주시, 광주미협 등 관련 단체의 도움을 받아 통일의 의미를 강조할 수 있는 작품 100점과 작가 100명을 각각 선정해 상호 교류키로 하고 통일부에 승인을 요청하기로 했다. [전북 군산시]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황해도 해주시와의 자매결연 및 어업협력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시는 통일부에‘해주시와의 자매결연 및 어업협력을 위한 교류 접촉 허가’ 신청을 냈다. 시는 해주시와의 자매결연이 이뤄지면 군산지역 어민들이 양식어업과 수산업 장비 및 기술 등을 해주시에 제공하고, 북한 어장에서 공동으로 어로작업을 해 잡은 수산물을 북측과 일정 비율로 나누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국 종합
  • 방북대표단 8명의 각오·기대

    *朴智元 문화부장관.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특사로서 방북 날짜가 다가올수록 개인적 영광과 함께 민족적 사명감을 더욱 크게 느낀다.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정상회담의 성공을 확신한다.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과거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마오쩌둥(毛澤東)주석과 만남으로써 오늘날 중국이 변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남북 정상이 만나 악수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한반도와 나아가 세계평화의 신시대를 여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방북기간중 북측과의 세부적인 접촉사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정해졌다고 해도 밝힐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다만 비밀접촉 당시 북한쪽 대표인 송호경 특사를 자연스럽게 만나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측면에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가장 활발하게 교류가 이루어진 문화·체육·관광·종교담당 간부를 만나 정상회담 이후의 본격적 교류를 추진하겠다.그러나 수행원 자격인 만큼 북측 인사들의 개별적인 접촉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북한 문화상과의 만남도 결정되지 않았다. 시드니올림픽의 공동 입장이나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등에는 아직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다.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이 적극적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고맙지만 북쪽의 의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므로 속단할 단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상회담 이후 남북 사이의 문화·예술·관광·체육 교류가 본격화돼야 하는 것은 순리요 상식이다. 우선 의견차이가 크지 않을 문화재 공동 발굴·보존·연구를 북쪽에 제안할예정이다.관광산업을 공동으로 확대하는 문제에는 북쪽 인사들도 적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금강산행 철도를 연결해 쉽고 빠르게 금강산에 다녀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朴在圭 통일부장관.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양측의 두 최고당국자가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분명 민족사의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다. 이 땅의 주인인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냉전의그늘을 걷어내고 평화와 화해협력의 큰 길을 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나아가 21세기 세계화와 정보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우리민족의 공동번영을 기할 수 있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이같은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대사가 차질없이 추진되고 훌륭한 결실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주무장관으로서 또 정상회담추진위원장으로서 책임감과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그동안 북한과의 실무절차 협의 등 준비에 전념해 왔다. 특히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범국민적인 지지와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되도록하기 위해 준비과정을 투명하게 국민에게 알리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수렴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그 결과 국민의 결집된 뜻과 역량을 확인했으며 더 큰 자신감을 갖고 정상회담을 추진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가슴 든든한 일이다. 사흘 후면 대통령을 모시고 역사적인 장도에 오르게 된다.준비 과정에서의북측 태도나 국제정세 등으로 볼 때 남북정상회담의 전도는 밝다.정부는 가시적 성과에 급급하거나 서두르기보다는반세기 대결과 불신의 질곡을 메우는 징검다리를 놓는 마음으로 지켜야 할 원칙을 분명히 지키면서 실천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추진해 나갈 것이다. 쌍방간 신뢰와 이해의 폭을 넓히고 대화와 협력의 기본틀을 정착시키는 데최선을 다할 계획이다.우리 수행원 전원은 혼연일체가 돼 대통령을 충실히보좌함으로써 평화와 공존공영의 새 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염원하는 7,000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임을 국민들에게 약속드린다. * 姜萬吉 고려대명예교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현장에서 볼 수 있게 돼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남측 수행원 130명 가운데 유일한 역사학 전공자로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의의미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책임감과 중압감을 함께 느낀다. 이번 방북에서 북측 역사학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분단 이후 남북은 서로 공존의 역사를 기록하지 못했다.통일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역사의 동질성을 찾는 일이야말로 중요하기 그지 없다고 본다.그동안 남북의 화해와 협력에 민족이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론을 펼쳐왔는데,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나의 주장이 현실화되는 첫발을 내딛는 것으로 생각돼 기쁘고도 반갑다. *李完九 자민련의원. 남북정상회담이 우리 겨레에게 화해와 협력의 새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바라는 것은 다른 모든 국민들과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방북단의 일원으로서 긴장감과 기대감이 진하게 느껴진다.국민의 대표라는 마음으로 여건이 허락하는 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그것들이 지니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살펴 볼 생각이다.기회가 되면 현재 가지고 있는 의문과 생각들을 말할 작정이다. 남과 북이 각기 다른 입장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장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으면 바란다.남북 모두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연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므로 어떤 경우라도 지나친 기대나 비관을 할 필요는 없다. *金雲龍 IOC집행위원. 55년 만에 열리게 되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실로 역사적 사건임에 분명하다.세계가 놀라워하고 있는 일이다.통일에 대한 민족의 숙원이 이뤄질 수 있는 전기가 되는 대사(大事)인 만큼 남북정상회담 수행단으로 북한을 방문하면서 회담이 잘 되도록 뒷받침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더 나아가서는 남북 스포츠 교류의 확대를 타진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그사안으로는 오는 2001년 4월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개최되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구성,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 구성 및 합동 전지훈련,부산 아시안게임의 일부 경기 북한 분산 등이 그것이다.이번 북한 방문에서 성과가 있으면 추후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李源浩 中企중앙회 부회장.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현장에 특별수행원으로 대통령을 수행하게 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중소기업인의 대표격으로 참가하게 돼 그동안 중소기업간 남북경제협력에 애정을 갖고 추진해온 입장에서 감회가 남다르다. 그동안 추진해온 중소기업의 남북경협은 긍정적인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다.지금까지는 아주초기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소기업의 대북 진출이 제도화되고,경제적 협력이 용이하게 되기를 바란다. 현지에서 북한의 경제담당 부서 책임자들을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중소기업 교류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돌아오겠다. *金玟河 평통 수석부의장.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세계사의 진운(進運)이며 민족사의 엄숙한 소명이다.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평생을 통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민족 통일에 관한 일관된 철학이 결국 국제적인 지지와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북한으로부터의 통일정책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 때문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성공돼야 하고 성공하리라 확신하면서 우리 수행원 일동은 두 정상이 원만히 회담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뒷받침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이번 회담에 더 큰 성과를 기대하거나 들뜨지 말아야겠다.양정상의 만남 자체가 남북 평화의 문을 여는 큰 발자취인 만큼 실현 가능한의제부터 천천히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통일에 접근해야 한다는 긴 안목을 가져주기 바란다. *李憲宰 재경부장관. 방북에 즈음해 설렘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앞선다.지난 반세기 동안 간직해온 우리 민족의 염원을 생각할 때 무엇인가 희망적인 성과를 갖고 돌아와야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그러나 분단의 반세기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듯이 지금부터의 경제협력도 성급한 기대보다는 벽돌을 하나씩 쌓아나가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북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소망과 앞날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한다는 것자체가 믿음의 출발이 될 것이다.아무쪼록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와남북간 화해·협력의 길을 열어 나가는 첫걸음이 되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을 기대한다.앞으로 경제협력은 남북 모두에 이익이되는 실천가능한 일부터 성사시켜 나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 [대한시론] 남북정상회담과 恨의 승화

    6월은 한많은 6·25의 비극을 상기하는 달이다.북한의 남침이 빚은 동족상잔의 참화로 인해 수백만명이 죽었고 지금도 천만명의 이산가족이 한을 품고슬픔을 되씹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과연 6월 중순에 성사될 남북정상회담이 6·25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남과 북에서 지금도 울음을 삼키고 사는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매스컴 보도에 의하면 남북정상회담에 낙관적 기대를 걸만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꾸준히 지속해온 ‘햇볕정책’이 결실을 이루는 증좌가 여러모로 엿보인다.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의 정책이 우리 정부의 구상을 뒷받침하고 있다.또한 인터넷 등의 통신혁명으로 인하여 ‘지구촌화’된 세계에서 북한만이 고립정책을 고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사물을 다룰 때 낙관을 앞세우면 방만해지기 싶다. 무조건 비관할 필요는 없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 여러 가지 유발될 수 있는비관적 현상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다각도로 대비하는 지혜가 참으로 요청되는 때이다. 정부당국은 이 점을 유의하여 제반준비를 다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특이성을 일고할 필요가 있다.역사 속에서 겪었던 오랜 고통 때문에 한국인들은 ‘한(恨)’의 민족이라고 알려졌다. ‘한’이라는 단어는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 없다. ‘한’에 가까운 영어 단어는 ‘원한,불평,상처,앙심,증오’이다.‘한’은이 모든 것을 함축한다.그러나 동시에 이들 중의 어느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한’은 한국인만이 공감할 수 있는 독특한 것이다.한국인의 오랜 고난의산물인 셈이다. ‘한’은 다양한―개인적,공동체적,문화적,민족적,존재적,다세대간의,그리고 동시에 공통적인―단계의 고통을 나타내주는 표현이다.역사적으로 상고할때 우리 민족이 지녀온 한은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일요드라마 ‘왕과 비’에서 폭군 연산군이 지니고 있던 ‘한’은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그러나 한이 높은이념,이상과 연결될 때 그것은 놀라운 창조의 동력이 될 수 있다.일본제국주의 압제에 품은 우리 민족의 한이 민족적 자유를 요구하는 민족운동으로 승화될 때 3·1운동이 일어났고 상해임시정부를 중심한 독립운동이 민족해방을낳을 수 있었다. 이제 한많은 6월에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머리를 맞대었을 때 그들은 우리민족의 한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6·25는 확실히 남침이었다. 그것을 결정한 장본인인 흐루시초프의 비망록에입증되어 있다. 유태민족이 독일의 나치정권이 저질렀던 홀로코스트를 말할때와 같이 우리는 “6·25를 잊지 말자.” 결코 잊으면 안된다.그러나 오늘의 유태인들이 독일인들을 대할 때 하는 말과 같이 “용서하자.” 이번 역사적 회담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두 정상이 민족적 이상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어 민족적 한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하는 데 있다.새천년을맞이하여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한민족이 살 길은 모두가 모두를 사랑으로 감싸안고 21세기 지구촌에 우뚝서는 민족의 비전을 보는 데 있다. 우리 남과 북이 이스라엘 민족이 추구해온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드는것과 같은 공동비전을 가질 수만 있다면 우리의 한은 더 높은 차원으로승화될 것이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염원했던 ‘동방의 빛’이 되는 민족적 비전으로 우리의 한을 승화하는 결실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마련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李 元 卨 한국기독교학교연맹 이사장
  • 박태준총리 사퇴/ 배경·파장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당초 박태준(朴泰俊) 전총리를 바꿀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명의신탁 문제가 법적으로 하자가 없고,재산신고도 한 데다 스스로 사과까지 한 상태이므로 파문이 확산되지 않기를 바랐다는 게 관계자들의전언이다. 특히 의욕적으로 국정을 챙기고,실물경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박 전총리만한 인사를 당장 찾기 어렵다는 현실적 요인도 작용했다.총리직무대행 체제를 다음주 초까지 유지하는 것도 이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도 “김 대통령은 박 전총리가 경제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갖고 국정을 챙긴 점을 높이 평가했다”며 “중도하차를 아쉽게생각한다”고 전했다. 김 대통령은 대선 뒤 “내가 박태준의원을 얻은 것은 행운”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볼 때 김 대통령이 박 전총리의 사의를 전격 수리한 1차적 이유는공인으로서 책임을 지려는 박 전총리의 명예를 최대한 보호하려는 배려로 볼수 있다. 총리의 도덕성을 문제삼는 여론의 집중포화 속에 책임지는 공인의모습으로 물러나는 길 말고는 달리 수가 없는 형국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김 대통령이 지난해 옷로비 의혹사건 이후 국민에게 약속한 민의 수렴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남궁진(南宮鎭) 정무수석도 “18일의기류는 하루 이틀 정도 여론 추이를 지켜보자는 것이었는데, 너무 여론이 비등했다”고 말해 여론의 비난이 결정적 요인임을 시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 전총리가 직무를 계속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인식’의 결과로 읽힌다. 일단 김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성공과 자민련과의 공조복원 측면에서 후속인선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그렇다고 남북정상회담뒤 대폭 개각을 구상하고 있던 터여서 당장 기본 밑그림을 흐트러뜨릴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총리교체가 ‘집권 3기 구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전체적인 조정이 이뤄져야 하므로 당장 개각을 단행할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후임총리의 임기가 ‘1개월’일 수는 없는 만큼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김 대통령은 자민련과의 관계개선 속도를 높일 것으로 관측된다.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과 남궁진(南宮鎭)정무수석도 자민련과 협의할 것임을분명히 하고 있다. 이 연장선상에서 김 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자민련 명예총재간 회동이 성사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남북문제,경제개혁,자민련과의 공조가 후임 총리인선의 주요요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문명자씨 특별기고/ 내가 본 김정일 총비서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한매일은 회담의 상대방인 북측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의 면모를 알아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이 특집은 재미언론인 문명자(文明子)씨의 ‘내가 본 김정일 총비서’특별기고와 북한문제 전문가인 서대숙(徐大肅) 미 하와이대 정치학 석좌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의 국제전화 인터뷰로 구성했다.이번 기획특집은북한을 현실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위원장의 품성과 지도자적 자질이 어떠한지를 전문가들을 통해 파악해보자는 것이다.이는 김정일 위원장을 ‘성격이괴팍한 영화광’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의 성격과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최근 북한연구자들이 김정일 위원장을 재평가하는 연구서를 잇따라 출간하고 있는 것도이같은 의미로 풀이된다.문씨의 기고는 지면사정으로 절반가량 압축한 것이며 함께 실린 사진은 문씨가 제공했다. [편집자주]■나는 지난 92년 4월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인터뷰했다.참으로 어렵게 마련된 자리였다.인터뷰 성사까지는 꼬박 2년이 걸렸는데 그것은 오찬을 겸한 인터뷰였다.장소인 금수산기념궁전 접견실에는 식탁 가운데에 김정일화가 장식되어 있었다.김 주석은 그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꽃을 개발한 일본 사람의 요청에 따라 ‘김정일화’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는데 사실 저 꽃이 너무 고와서 조직비서 성격하고는 맞지 않는단 말이오.우리 조직비서는 통이 크고 사나이 답거든.” 김 주석은 아들을 꼭 ‘조직비서’라고 불렀다.나는 내심 갸우뚱했다.서방에 알려진 ‘내성적인 영화광’이라는 평과는 다른 얘기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자식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부모다.계속 연구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비로소 김정일 총비서와 만나게 된 것은 94년 7월 14일 김일성 주석의장례식 시기였다. 비록 국장의 마당이었지만 나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그를세밀하게 관찰했다.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렇게 멀리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가짐은 정중했고 목소리에는 무게가 있었다.최은희 신상옥 부부의 주장과는달리 말을 더듬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얼굴은 여위고 눈자위가 붉어져 있었지만 손은 따뜻했고 손아귀에 힘이 있었다.전혀 건강에 이상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조문 후 잠시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그는 말했다. “지난 4월 쓰신 수령님 인터뷰 기사를 잘 읽었습니다.제가 글자를 크게 확대해서 수령님께도 가져다 드렸습니다.” “혹시 잘못된 곳은 없었습니까.” “아주 정확히 쓰셨습니다.잘 읽었습니다.” 나는 김정일 총비서와의 면담을 포함해 김일성 주석의 언급,측근들의 증언,주변 취재,북한 인민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그의 진면목에 다가서 보고자 했다.단지 김정일 총비서와의 94년 7월 이후의 면담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자세히 밝힐 수 없어 양해를 구한다. 나는 김정일 총비서의 생일 명절인 2.16 기간에 북을 방문한 일이 있다.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었지만 본인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전에도자신의 생일 행사에 나타난 적이 없다는 얘기였다.그 시기 그는 어디로 갔을까.나는 그 점이 궁금했는데 뒤에 알게 되었다.그는 매년 그 무렵이면 백두산을 찾는 듯 했다.특히 99년 2월에는 백두산 천지를 등반한 후 2월 16일 갑무(갑산-무산) 경비도로를 달리다 차에서 내려 10리를 걸었다고 한다.갑무경비도로는 길 양편으로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한대림이 끝없이 이어진 풍치 좋은 길이다.그러나 이 무렵의 백두산 지역은 영하 40도를 오르내린다.혹한 속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그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며 특히 백두산의 겨울을 좋아한다고 한다. 서방의 관측통들은 지금까지 그가 “내성적이며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그가 사람들 앞에 나서지않는 것은 사실이었다.김일성 주석의 급서 후 나는 당시 북미 회담의 북측대표이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국가원수가 서거하셨는데 회담 진행에 차질이 없겠습니까.” “물론 회담은 수령님의 결재로 진행되어 왔지만 장군님께서 직접 지도해오신 사업이기 때문에 예정대로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은 상식으로 되어 있지만 그 때만 해도 김정일 총비서가 막후에서 북미회담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뉴스였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 사후에도 김 총비서는 외교 의전 일선에 나서는 시기를계속 미루어 왔다. 서방의 관측통들은 그 이유 중 하나를 그의 ‘내성적인성격’ 때문으로 평가해 왔다.반면 그의 측근 인사인 김용순 비서는 그를 “박력 있고 한 번 한다면 하는” 성격의 소유자라 평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 나는 종종 두 인물을 비교해 달라는 요청을받는다.물론 차이가 있다.소년 김정일은 대단히 영리했던 것 같다.김정일 총비서는 아버지를 꼭 ‘수령님’이라 불렀다.그런데 김정일 총비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라 외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바로 94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였다.남북정상회담 성사에 고무된 김일성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7월 한여름 더위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대통령이 들르게 될 묘향산 특각을 직접 돌아보기 위해 평안북도로 떠났다.묘향산 인근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고 묘향산 특각에 도착한 김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 부처가 묵게 될 방의 냉장고 문까지 열어보았다고 한다.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노인의 건강을 염려한 김정일 총비서는 김일성 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평양으로 돌아올 것을 계속 권유했다.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성공의 일념에 가득차 있던 김 주석은 말을 듣지 않았다.계속 설득하던김 비서가 마침내 전화통에 대고 소리쳤다. “아버지! 제발 돌아오십시오.” 김정일 총비서가 스타일상 김 주석과 다른 점이라면 표현 방식의 차이를 들수 있을 것이다. 김 주석과 달리 김 총비서는 노기를 표현하는 인물이다.그만큼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 사후 대부분의 평자들은 김정일 정권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점쳤다.짧으면 3개월,길어야 3년 안에 붕괴한다는 것이다.그 유력한 논거 중하나가 북의 새 지도자 김정일은 아버지의 후광으로 후계자가 되었을뿐 아버지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오늘날 페리 보고서조차 ‘김정일 정권의 안정성’을 공언하는 것을 보면 이같은 문제는 해소되었다는 얘기가 된다.지난 95∼97년 사이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총비서는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입증한 것이다.그의 정책 결정의 특징중 하나는 ‘의외성’이라 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의 장지가 금수산기념궁전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현재 금수산기념궁전은 북의 사회 통합의 구심이 되고 있다. 98년 8월 북이 발사한 ‘물체’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며칠 후 북이 그것을‘인공위성’이라 발표했을 때 세계는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국문제의 인공위성은 한반도의 정세를 뒤바꾸어 놓았다. 미국에게 북은 ‘붕괴시켜야’ 하거나 ‘변화를 유도해야’ 하는 대상에서 ‘있는 그대로의 체제를 인정해야’ 하는 대상으로 변화했다.물론 심각한 식량난 속에서 막대한외화를 들여 인공위성을 개발했어야 하는가라는 비판도 있다.이에 대해 북의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우리에게 그같은 능력이 없었다면 미국은 우리를 이라크나 유고처럼 대했을 것이다.그것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이었다.” 북의 인민들은 김 총비서의 정책적 의외성을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나가는’ 강점으로 인식하지만 서방에서는 ‘예측불가’라는 그다지긍정적이지 않은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내가 아는 김 총비서는 다양한 방면에 대해 화제가 풍부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이같은 측면이 성격적 대담성과맞물려 정책의 ‘의외성’을 빚어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일 총비서는 64년 6월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지도원으로 당사업을 시작했다.총비서에 이르기까지 37년간의 당 사업에서 그는 여러 가지 일화를남겼다.업무스타일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것은 ‘한밤중의 전화’다.나는 북의 여러 고위인사들로부터 이같은 얘기를 들었다.김 총비서는 “서류를 결재하던 중 의문이 생겨 늦은 시간이지만 부득이 전화했다”며 낮에 올린 결재서류에 대해 보다 자세히 묻곤 한다고 한다. 그가 반드시 묻는 말 중의 하나가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라는 것이다.그러니 부하들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듯하다.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도 김 총비서 업무스타일의 한 특징이라 한다.“새로 작곡된 음악을 틀어놓고 평가하면서 눈으로는 결재 서류를 검토하는 한편 전화로는 누군가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식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서구식 양복을 입지 않는다.그가 서구식 양복을 입지 않는이유를 물었을 때 한 측근 인사는 “화려한 옷차림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계셨다”고 했다.가장 좋아하는 꽃이 목화꽃이라는 점은 같은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목화꽃은 화려하지 않으나 유용하다. 서방과의 교류가 많지 않은 북의 지도자 김 총비서가 세계적인 추세를 제때에 파악해 나가는 수단은 무엇일까.김 총비서가 서방의 방송,영화를 많이 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이것은 단순히 영화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서방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나는 특히 그가 영어를 이해하는 것으로 느꼈다.그가 구사하는 것은 전통적인 영국식 영어가 아니라 현대미국어였다. 김일성종합대학에는 ‘김정일 사적관’이 있다.전국에서 유일한 곳이라 한다.이 곳에서는 김정일 총비서의 대학시절을 잘 볼 수 있다.사적관에서 필자는 그가 재학중 쓴 ‘3국통일 문제를 다시 검토할 데 대하여’라는 논문을특히 관심깊게 보았다.핵심내용은 “신라의 3국 통일은 통일이 아니다”라는것이다. 동시대 조선반도에 발해라는 다른 주권국가가 존재하고 있었으며,신라는 영토를 넓히려는 야심만 있었을 뿐 통일국가를 세우려는 지향이 없어서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국가를 멸망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초의 민족통일은 3국중 통일 지향이 가장 강했던 고구려를 이어 받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적관에는 김정일 학생과 동료들이 군사 강의,사격훈련,점호,야간습격 전투훈련,군사야영훈련 등을 받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다.사적관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다 보면 재미난 공통점이 발견된다.학급 동료들과 함께 찍은 여러장의 사진에서 김정일 학생은 사진의 가운데 있는 인물이 아니다.그의 모습은 항상 맨 뒷줄 한켠에서 발견된다.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던 4월 10일 나는 평양에 있었다.4일부터 8일까지 계속된 제9차 조일회담 취재차 방북했다가 역사적인 뉴스에 접하게 됐던 것이다.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김 총비서의 한 측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분단이후 여러차례 최고위급 회담 성사를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이루어지지 못했다.특히 94년에는 수령님의 서거로 최고위급 회담이 무산되었는데 이제 드디어 성사되었으니 우리 민족의 손으로 통일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닌가.장군님께서는 지금 회담 준비로 대단히 바쁘다.그 분의 건강을지켜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그는 특히 “지난날 조문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며 이번에는 아무런 전제 없이 서로가일단 부딪혀 보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오는 6월 12일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될 남북의 두 정상.그 한 당사자인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나는 30년간의 취재 파일을 바탕으로 지난해 책을 한 권출간한 바 있다. 나의 눈에는 두 정상의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게 비친다.오는 정상회담에서 이 두 정상의 서로 다른 캐릭터가 어떻게 어우러져 분단 50년의 역사를 청산해 나갈지 기대되는 바가 크다. ◆ 문명자씨 프로필. 문명자(文明子)씨는 올해 71세의 재미 원로언론인으로 미국 ‘US아시안 뉴스서비스’의 주필이며,아직도 미 백악관을 출입하고 있는 현역이다.61년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시작으로 국내 여러 언론사의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문씨는 73년11월 당시 보도금지 사항인 ‘김대중 납치사건’을 보도한 직후미국에 망명했다.90년 이후 10여차례 방북 취재했고 두 차례에 걸쳐 김일성주석을 회견했다.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면담한 바 있다.그녀는 서방기자중‘최고의 북한소식통’으로 불릴 정도로 북한 지도층과 북한 사회에 이해가깊다.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4)적십자회담

    84년 9월8일 아침.한달 전 서울·경기 일원의 대홍수로 엄청난 수재민이 발생,복구 작업에 정신이 없었을 때였다.북한 적십자회는 ‘방송 통지문’을통해 쌀 50만석 등 수해지원 의사를 통보했다. 대한적십자사는 부랴부랴 회의를 소집해 다각적 검토에 착수했다.당시 정용석(鄭鎔碩·8∼10차 본회담 대표·단국대 교수) 한적 청소년자문위원은 “일각에선 북한의 대대적 체제선전에 이용당할 것을 우려,반대도 심했었다”며“그러나 경제적 자신감을 토대로 남북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 대세를 이뤘다”고 회고했다. 72년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성사를 위해 25차례의 예비회담에관여했던 이병웅(李柄雄)적십자남북교류위원장은 “결렬 직전까지 가는 숨가쁜 고비를 인내와 끈기로써 버텼다”고 회고했다. 남북대화의 물꼬는 이처럼 늘 남북적십자회담에서 터졌다.60년대 내내 대남강경책을 구사한 북한과 ‘선(先)건설 후(後)통일’을 견지한 박정희 정권사이에서 남북대화가 설 자리가 없었다.첫 신호탄은 70년 8월15일 선의의 경쟁을 촉구했던 ‘평화통일 구상’이었다.결실은 1년 후 71년 8월20일 판문점에서 첫 예비접촉을 통해 역사적 남북대화가 시작됐다. ■70년대/ 제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은 72년 8월30일 평양 대동강 회관에서열렸다.남북은 ▲이산가족의 주소와 생사 확인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방문과 상봉 실현 ▲이산가족의 서신왕래 ▲이산가족 재결합 ▲기타 인도적 해결문제 등의 5개항의 의제를 재확인했다.서울 2차회담에 이어 흥분이 가라앉은평양 3차 본회담(73년10월24일)부터는 남북간 견해차가 드러났다.북측은 “남한의 모든 법률적·사회적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며 정치적 색깔을 노골화했다.이후 거의 한달 간격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7차 본회담(73년 7월11일)까지 지속됐지만 ‘반공활동 금지’를 공동성명에 넣자는 북측 요구로결렬,12년간의 동면에 들어갔다. ■80년대/ 84년 9월 남한 대홍수에 따른 북측의 수해물자 인도 제의에 따라돌파구가 마련됐다.북적은 남한 수재민에게 쌀 5만석 등을 제의했고 이를 계기로 8차 본회담이 5월27일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열렸다.85년 9월,40년만의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이 실현되는 쾌거를 이룩했다.예술공연단 교환 방문이 성사됐다. ■90년대/ 89년말에서 90년중반까지 제2차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공연 문제로 8차례의 실무대표접촉을 가졌다.하지만 북측은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공연을 고집,아무 성과없이 중단됐다.92년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단 문제도 협의했지만 8차례 실무접촉이 무위로 끝났다. ■평가/ 적십자 회담은 출발부터 인도적·정치적 색채가 동시에 섞여있는 이중성격을 갖고 있었다.남북 통일의 열망과 이산가족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는 명분에서 시작됐지만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쥐면서 정권 유지에 활용하겠다는 남북 정권 담당자들의 정치적 계산도 숨어있었다.정용석 교수는 “인도주의 정신은 남북간 긴장속에서 어렵게 남북대화를 지탱했지만 결국 정치적 결정력에 의해 좌우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당시 주역들. 남북 통일의 열망과 이산가족의 고통을 대변했던 남북 적십자 회담은 남북모두숱한 ‘통일 일꾼’들을 배출했다. 남한 대표들의 경우 이후 통일부 장·차관과 외무부장관 등으로 정권을 지탱하는 주요 축으로 활약했고 북한 대표들 역시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71년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던 예비회담 우리측 수석대표는 이범석(李範錫)당시 한적부총재였다.그는 이후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다 83년 아웅산 사건으로 순직하기도 했다. 역시 대표로 활약했던 서영훈(徐英勳) 당시 한적 청소년부장은 그후 흥사단단장과 KBS사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말부터 민주당 대표로 정치권에서 맹활약중이다. 홍일점 대표였던 정희경(鄭喜卿) 당시 한적 청소년지도위원도 15대 전국구국회의원을 지냈다.70년대 남북적십자 회담의 자문위원을 지낸 박준규(朴浚圭) 당시 서울대교수는 그후 정치인으로 변신,8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의장에까지 올랐다. 80년대 남북적십자 회담의 수석대표였던 이영덕(李榮德) 한적부총재는 통일부총리로서 대북 통일 정책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통일부총리 이후 총리직도수행했다. 당시 대표였던 송영대(宋榮大) 한적구호협의회 위원은 대북창구로서 눈부신활약을 하다가 통일부 차관을 역임했다. 자문위원이었던 한승주(韓昇洲) 고려대교수는 문민정부에서 외무부장관으로4강외교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이다. 북한의 경우 80년대 모습을 드러낸 박영수 대표는 대남 강경파를 대표했던인물이다.94년에는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70년대 자문위원으로 뛰었던 윤기복 당시 노동당 대외연락위부위원장은 81년 조평통 부위원장으로 재직 이후 대남 사업을 주관하는 막강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북측 수석대표 또는 대표들은 이후 큰 활동없이은퇴,통일 무대에서 사라졌다. 오일만기자
  • [우리 지자체 최고](9)경북 봉화군

    경북 봉화군은 반짝이는 행정아이디어로 가장 생산적인 수익사업을 벌이고있는 자치단체 중의 하나로 꼽힌다. 봉화군은 새 군청사 마련을 위해 임야를 깎는 과정에서 나오는 사토(沙土)처리에 드는 예상 소요비용 135억원을 불과 14억원으로 줄여 부지 조성사업을 성공리에 마무리지었다. 올해 대한매일의 후원으로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한 제1회 지자체 경영행정성공사례 발표대회에서 우수 지자체로 선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봉화군측의 ‘발상의 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사토를 주민들에게 농지 객토용이나 도시계획구역내 형질변경·저습지·구릉지 성토용등으로 무상 활용토록 한 것이다. 이로 인해 121억원의 엄청난 예산절감과 농지 객토 등을 통한 지력증진으로 각종 농산물의 수확량 증수효과를 가져 오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성과를올린 것이다. 봉화군은 지난 98년 2월 지은 지 30년이 넘는 현 청사의 노후와 협소 등으로 민원인이 겪는 각종 불편과 관리상 문제점 등을 해소하기 위해 새 청사부지로 봉화읍 포저리 일대 임야 2만1,000여평을 10억원에 매입했다. 문제는 사토 처리비용이었다.묘책을 찾는데 골몰하던 중 한 대책회의에서‘사토 처리를 농토가꾸기 사업과 연계,농민들에게 객토용으로 흙을 가져가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처음에 이 제안은 군과 주민간의 수의계약 체결방식이어서 대부분이 반대했다.관련 법규를 위반해 공사를 했다가 상부기관의 감사라도 받는다면 ‘목이 열개라도 살아 남을 공무원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다른 선택방법은 없었다.결국 엄태항(嚴泰恒)군수가 결단을 내려 일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봉화군은 농한기인 지난해 1월 농토를 개량하기 위해 흙을 가져가는 주민에게 트럭(15t) 당 7,000∼1만원까지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도시계획구역내 형질변경도 약속,건당 4∼500만원씩이나 드는 형질변경에 따른 도면 작성 등을 주민들에게 무료로 해 주고 흙을 운반해 가도록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이 방법으로 사토처리를 14억원에 거뜬히 해결할 수있게 됐다. 농가의 반응도 좋다.지난해 2월 2,100평의 논에 객토를 한 남호원(南浩元·52·봉화읍 석평2리)씨는 “군이 흙을 무상 지원해 준 덕택에 객토를 해 3급지인 저습지 논을 1급지로 만들었다”며 “‘땅심’(지력)도 좋아져 지난 여름 태풍때도 벼가 쓰러지지 않았으며,수확량도 예년에 비해 10% 이상 늘었다”고 자랑했다. 엄 군수는 “이런 성과는 과감한 발상전환으로 가능했다”라며 “사토처리방법 개선이 엄청난 예산절감과 농가 소득향상에 기여하게 돼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봉화 김상화기자 shkim@. *사토 무상제공 결단 嚴泰恒군수. 봉화군의 새 군청사 부지 사토처리 방법 개선은 엄태항(嚴泰恒·52)군수의아이디어와 강력한 의지가 밑바탕이 됐다. ■군 청사 신축배경은. 현 청사는 지난 67년 부지 4,383㎡에 2층 건물로 건립돼 공간이 협소하고노후정도가 심하다.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증·개축을 했지만 사정은 별로나아진 게 없다.특히 여러 부서가 본청이 아닌 외청 등에 분산돼 있어 민원인 불편이 많다.단열 불량으로 냉·난방 등 청사관리 비용이 과다 지출되는등의 문제도 있었다. ■사토처리에어려움도 적지 않았다는데… 무엇보다 관계 공무원들의 반대가 심했다.반드시 공개입찰을 해야 한다는법규를 무시하고 수의계약 형식으로 공사를 하면 ‘목이 날아 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관련 법규는 특혜 소지가 있는 수의계약을 막자는데 있지 예산을 절감하고 주민에게 득이 되는 일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라며 강력히 밀어붙였다.장비 임대업자들의 불만과 항의도 만만치 않았다.군이 얼마든지 돈을들여 공사를 할 수 있는데도 굳이 예산을 절감하면서까지 공사를 해야 하는불평이었다. ■사토처리 방식 개선의 파급효과는. 전국 행정관서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이 사례를 연구중이며 김홍대(金弘大) 전 법제처장은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 감사원도 지방공무원 교육때 경영사업 우수 사례로 소개했으며,대기업 등에서도 경영혁신 모델로 평가하고 있다.여타 자치단체 실무자들이 벤치마킹하려 한다. 봉화 김상화기자. *'경영행정' 숙원사업 민관협력 自力해결. 경북 봉화군의 자치행정은 경영행정 추진을 통한 생산성 극대화에 초점이맞춰져 있다.최소의 비용으로 행정의 효율성과 주민소득을 극대화하는데 행정력이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봉화군은 지난 97년부터 ‘잘사는 봉화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민·관 협력으로 ‘새마을 자조·협동’사업을 전개해 오고 있다.마을 진입로와 농로 포장 등 각종 주민 숙원사업을 해결하는데 주민 스스로 인건비를 부담하고 군이 각종 자재를 지원하는 방법으로 추진되고 있다. 분출하는 주민 욕구에 비해 한정된 지역개발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해 각종시너지 효과를 얻자는 계산에서다. 특히 이 사업은 주민 자력(自力)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외주공사에 비해 연간 20억원의 예산 절감효과와 지역균형개발을 촉진시킬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지난해까지 68억3,700만원을 들여 628건의 각종 숙원사업을 말끔히 해결한데 이어 올해는 7억원으로 99건을 추진할 계획이다. 봉화군은 98년부터 키 낮은 사과대목 포장 직영으로 과수농가에 대목을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해 오고 있다.일반 시중가 3,000원(그루당)에 크게 못 미치는 500∼600원에 지금까지 17만 그루를 분양, 농가에 4억원 이상의 혜택을 안겨줬다. 봉화군은 올 1월부터 전국 군 단위로서는 드물게 지역 전체에서 발생되는생활폐기물 수집·운반업무를 민간 위탁,처리에 들어갔다. 군 관계자는 “지역발전과 주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초일류 경영행정을 구현하는 것이 봉화군의 행정목표”라고 밝혔다. 봉화 김상화기자
  • [김삼웅 칼럼] 부처님 오신날 ‘큰 수레’의 사명

    모레(11일)는 ‘부처님 오신날’이다.서기 372년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와공인된 지 1,60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이미 토착화된 민족종교가 된 것이다. 불교가 그동안 우리 민족에 끼친 정신적 문화적 영향은 지대하다.지금도 가장 많은 신도를 포용한다.불교는 세계인구 4분의 1의 신도를 얻어 신앙의 기초는 물론 철학 사상 문화의 바탕이 되었다.그리스도교,이슬람교와 더불어세계 3대 종교 중 하나로 인류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새천년의 첫 석탄일을 맞아 남북불교지도자가 상대방 신도들에게 각각 축하메시지를 보낸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경하할 일이다.대한불교 조계종서정대 총무원장과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 박태화 위원장이 각각 팩스를 통해 상대측 신도에게 인사말을 보낸 것은 분단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부처의 법이 하나이듯 겨레도 하나이다”(서정대),“풍성번영하는 통일된 강성대국을 그려보자”(박태화)는 양측의 석탄절 메시지는 민족통일을 향한 남북불교도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석탄절 관련 ‘삽화’ 몇 토막. 心田에 씨앗뿌려 석가모니가 어느날 탁발하고 있을 때 한 농부가 “우리는이렇게 씨를 뿌려 농사를 지어서 양식을 얻고 있고,당신도 스스로 씨를 뿌려서 식량을 얻는 것이 좋지 않겠소?”하며 힐문했다.석가는 “당연한 말이오. 나도 역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그 수확으로 식량을 얻고 있소”라고 대답했다.농부가 다시 “하지만 당신이 씨뿌리고 밭가는 것을 본 적이 없소.당신의 괭이와 소는 어디 있으며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소?” 이에 석가는 “지혜는 내가 일구는 괭이요,믿음은 내가 뿌리는 씨앗이다.몸(身)·입(口)·정신(意)에서 악업을 뽑는 것은 내가 밭에서 잡초를 뽑는 일이오.정진은 내가끄는 소(牛)로서, 그것은 쉼없이 활동하여 물러남이 없고 슬퍼함이 없으며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한 경지에 이르게 함이다.이것이 내가 일구는 밭이니,그 수확물은 감로(甘露)의 과실이오.사람들은 이렇게 밭을 갊으로써 일체의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는 것이오.”(‘잡아함경:雜阿含經’) 달속의 토끼 ‘달과 토끼’란 부처님 전생설화가 있다.어느날 여우와 원숭이,토끼가 놀고 있는 곳에 배고픈 나그네가 지나갔다.세 마리의 짐승들은 너무가엾게 생각하여 길손에게 줄 음식물을 찾아나섰다.여우와 원숭이는 음식물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토끼는 빈손이었다.하는 수 없이 토끼는 자신의 몸을모닥불 속에 던져 나그네에게 그 몸을 바쳤다.부처의 모습으로 바뀐 나그네는 토끼의 그 갸륵한 마음씨를 칭찬하고 달세계에 보내어 이로부터 달에는토끼가 살게 되었다 한다. 雪山童子 어느날 설산동자가 수행을 하기 위해 산길을 걷고 있는데 사람을잡아먹는 귀신(羅刹)이 나타나서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是生滅法)’이라고 읊었다.동자는 세상의 이치를 노래한 이 말에 감심하여 다음 구(句)를 기다렸으나 끝내 말하지 않으므로 나찰에게 “내 몸을 당신께 바치겠으니다음 구절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그러자 나찰은 ‘생멸멸기 적멸위락(生滅滅己寂滅爲樂)’이라 읊었으며,동자는 이것을 후세인들에게 수행의 길잡이로 삼도록 나무에 새긴후 약속대로 절벽에서 나찰을 향해 뛰어내렸다.그런데 순식간에 오색구름이 몰려와동자의 몸을 받치고 귀신은 부처의 모습으로바뀌었다.(‘열반경:涅槃經’) 불교계의 참회운동 기독교에서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있듯이 불교에는 석가를 배신한 사촌 아우 데바닷타(提婆達多)가 있다.유다와 데바는 둘다 죄를뉘우치고 결국 자살하였다. 한국불교는 토착종교로서 국가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호국불교의 전통도 지켜왔다.그러나 민족과 중생을 배반한 ‘데바’도 적지않았다.특히 일제시대 친일불교도들의 매국적 행위나 해방후 독재정권에 기생하면서 민주화를외면해온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지금도 조계종은 31본사(本寺)제도와 같은일제 잔재가 유지되고 있으며 염불보다 잿밥,사판승(事判僧)과 이판승(理判僧)의 대립,지나친 물신(物神)주의와 기복(祈福)주의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있다.가톨릭이 역사적 과오에 대해 ‘고해성사’를 마다하지 않듯이 한국불교도 지난날의 ‘과오’를 회개하면서 통일운동의 선구자로 거듭나야 한다. 다행히 달라이라마의 9월 방한도 성사된다하니 참회를 통해 한국불교가 국민화합과 민족통일의 ‘큰 수레(大乘)’의 사명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김삼웅 주필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3)무산된 金泳三·金日成 회담

    94년 7월9일 낮 12시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보름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에 대비,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하던 이홍구(李洪九)통일부총리에게 메모지 한장이 전달됐다.-‘김일성 사망’ 회의장은 일순 놀라움에 술렁거렸다. 분단 반세기만에 성사를 눈앞에 뒀던남북 정상간 만남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김영삼(金泳三·YS) 당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여성정책심의위원회’ 위원 15명과 환담을 나누던 중인 12시2분쯤 전날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았다.얼마나 놀랐던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그것은 그가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동안 적지않은 ‘마음고생’을 했다는 것을나타내기에 충분했다. YS는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란 정통성을 무기로 취임 초부터 남북문제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온다.9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연설을 통해 ‘민족우선론’을 펴며 김일성과의 회담을 제의했다.그러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의사를 밝힌 것을 계기로 핵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면서 그의 대북정책은강경으로 치닫게된다.6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핵무기를 가진 자와는 악수를 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94년 2월25일 취임 1주년 회견에서는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된다면 김일성 주석과 만날 용의가 있다”며 갑자기 종전과 다른 입장을 밝힌다.일부에서는 한달전인 1월28일 현 대통령인 김대중(金大中) 당시 아·태평화위원장이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의 회담이 조건없이 하루빨리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한 것에 YS가 자극을 받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동안 북한의 반응은 냉담했다.‘희소식’은 6월 중순 대북특사로 북한을방문,김일성을 만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왔다.카터는 김일성이 “언제 어디서든 조건없이 김영삼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고,YS는 이를 전격 수락했다.당시 김일성의 회담 제의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엔의 대북제재를 무산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후 양측은 6월28일 판문점에서 예비접촉을 갖고 정상회담을 7월25일부터27일까지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하는 등 세부일정을 거의 확정지었다.그러나북한은 김일성 사망 사흘뒤인 7월11일 “우리측의 유고로 예정된 북남 최고위급 회담을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회담 무산’을 공식 통보해 왔으며,YS는 “아쉽게 생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94년의 ‘무산된’ 남북 정상회담은 제3국의 개입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정상간 만나자는 약속을 처음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이때의 경험이 밑바탕이 됐기 때문에 지금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이 비교적 쉽게 추진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상연기자. * 역대 정상회담 추진사. 남북 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남과 북이 수십차례 제의했으나 서로 묵살하거나 지나친 전제조건을 내세워 94년까지는 공염불 상태나 다름없었다. 남북이 이 문제를 처음 공식 거론한 것은 72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제2차 회의석상에서였다.이때 양측은 이른 시일내 정상회담이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입장을 공동으로 밝혔다. 처음으로 정상이 직접 이를 제시한 것은 75년8월18일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뉴욕 타임스 회견.박대통령은 “김일성이 군사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통일을 추구한다면 그를 만나 통일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박대통령은 또 집권말기인 79년1월 연두회견에서 “남북한 당국이 시기, 장소에 상관없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우리측의 정상회담 제의는 전두환(全斗煥)대통령 시절부터 활발히 벌어졌다.전대통령은 81년 1월12일 국정연설을 통해 ‘남북한 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을 제의했다.재임시절 동안 전대통령은 그후 거의 매년 국정연설,8·15 경축사 등을 통해 정상회담의 성사를 북측에 촉구했다.이에 북한은 남한에반공정책 포기와 주한 미군철수 등을 역으로 요구하며 피해갔다. 북방외교를 가장 큰 목표로 내건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전대통령보다 정상회담에 더 열심이었다.노대통령은 8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용어를 쓰며 김일성과 만날 뜻을 밝혔다.88년 10월 유엔연설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의제까지도 자세히 밝혔다.또 91년 12월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는 과정에서 양측이 막후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해 성사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북한 김일성은 신년사를 통해 가끔 정상회담 의사를 비쳤으나 별로 무게가실리지 않았다.90년에는 평양을 방문한 남북고위급회담 우리 대표에게 정상회담 의사를 밝혀 기대를 모았으나 역시 말에 그쳤다. 김상연기자 carlos@. *당시 협상 주역. 94년 남북정상회담 협상을 맡았던 남북한 대표들은 서로 일면식(一面識)도없는 사이였다.그러나 한번의 예비접촉만으로 7월25∼27일의 정상회담 일정을 도출했다. 양측은 통일문제 전문가 3명씩을 협상에 내세웠다.우리측은 당시 이홍구(李洪九)통일부총리·정종욱(鄭鍾旭)청와대외교안보수석·윤여준(尹汝雋)총리특별보좌관이,북측은 김용순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안병수 조평통부위원장·백남순 정무원책임참사가 나왔다. 북측 수석대표 김용순과 34년생 동갑내기인 이부총리(현 주미 대사)는 당시북한문제 최고 브레인으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고 있다는평가를 받았다. 정수석(현 아주대 교수)은 대통령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윤보좌관(현 한나라당 의원 당선자)은 당시 안기부 3특보로 북한담당이아니었으나 말솜씨와 언론관계 등이 고려돼 특별보좌관이라는 직함으로 협상단의 일원이 됐다.윤보좌관은 예비접촉후 속개된 실무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다.특히 지난 3일 간암으로 타계한 엄익준(嚴翼駿)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의경우 당시 딸 결혼식에까지 불참하면서 우리측 실무협상 대표로 나서 두 차례 협상만에 실무합의서를 타결짓는 열의를 보였다. 북측 김용순 대표는 대남전략은 물론 미국·일본 등 국제문제에도 정통해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웠다.그는 현재도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겸 당 통일전선부장으로서 대남사업을 총지휘하고 있으며,김정일 앞에서 직언할 수 있는 몇안되는 인물로 꼽힌다. 김상연기자
  • 향후 정치일정 주요 포인트는

    ‘5월 정국’이 스타트했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은 여야 정치권에겐 중요한 달이다.굵직한 정치일정이 많아서다.16대 국회의원의 임기도 오는 30일 시작된다. 자연히 관전포인트도 여럿 있다.그 중에서도 16대 원구성 문제가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여야 영수회담에서 비롯된 대화와 협력의 정치를 계속 이어가는 지렛대가 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여야가 1·2일 총무회담과 양당 3역회의를 잇따라 여는 등 의욕을 보이는것은 5월 정국의 중요성을 충분히 감안한 때문으로 풀이된다.일단 출발은 산뜻하다는 평가다.하지만 국회의장 경선을 포함한 선출방법과 상임위원장 배분 및 위원정수 조정 등 쟁점현안은 여야간에 더 머리를 맞대야 할 것 같다. 또 하나 자민련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해 캐스팅보트로서의 역할을 굳힐 지도 관심거리다.민주당이 여러 면에서 조력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어서그 결과에 따라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복원 여부가 결판날 전망이다. 같은 맥락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간의 ‘DJP회동’이 이달 중에 성사될 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원구성 협상이 순항할 경우 영수회담 합의사항인 정책협의체와 미래전략위,정치개혁특위가 개원식과 함께 가동에 들어가 의욕적인 활동을 벌일 것으로예상된다. 한편으로 민주당은 9월 최고위원 경선을 앞두고 원내외 중진후보군(群)들의움직임이 본격화할 전망이고, 이달 말로 예정된 원내총무 경선도 많은 관심속에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한나라당은 오는 31일의 총재 및 부총재단 경선이 가장 관심을 끈다.총재 경선은 이회창(李會昌)총재에 맞서 비주류 연합전선이 어느정도 위력을 발휘할 지가 관전포인트이고,부총재단 경선은 ‘포스트 이회창’의 윤곽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여야 모두 국회의장단을 노리는 다선 후보군들의 발걸음도 빨라질 전망이다. 나아가 386을 포함한 푸른정치모임(민주당)과 미래연대(한나라당) 등 여야의 젊은 의원들이 의정개혁을 위해 어떤 용틀임을 할지도 관심대상이다. 한종태기자 jthan@
  • [사설] ‘새마을 30년’ 새시대의 역할

    새마을운동협의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21세기 새마을운동 선언문’을채택,국민화합과 통일운동을 통해 다시 태어날 것을 다짐했다.새마을운동의방향을 시대변화에 맞게 지역사회 봉사와 북한농촌돕기에 주력하겠다는 선언이다.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협의회가 23만명의 지도자를 포함, 230만명의 대가족을 거느린 잠재력과 시민운동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한 때문이다. 70년대 시대적 요청인 잘살기운동으로 출발한 새마을운동이 조국근대화에기여한 공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된 것은 한때 군사정권의 특혜성지원아래 정치활동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새마을운동의 바탕은 우리 사회의 전통적 미덕인 근면·자조·협동정신을 조직화해 잘사는 공동체를이루자는 데 있다.농어촌 환경개선,질서의 생활화,생활의식개혁,상부상조정신등은 이 단체가 이룬 값있는 업적이었다. 그러나 권력구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5공정권의 비호를 받아가면서 특혜성사업에 손을 대고 책임자가 비리에 연루돼 조직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새마을운동이 제구실을 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 관변단체라는 오명을 씻어야 한다. 협의회가 선언문을 통해 앞으로 정부의 지원을 거부하고 본래의 새마을정신으로 돌아가 국민 자율적 참여를 바탕으로 한 시민운동에 전념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당면한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국제화사업과 통일사업이다.북한에 대한 식량과 물자지원뿐만 아니라 남북한이 지역별로 자매결연을 맺고 상호교류사업을 벌이겠다는 의지이다.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70년대 우리 농촌을 가난과 정체의질곡에서 구해 낸 경험을 되살려 북한의 황폐한 농업재건에 기여해 통일의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새마을운동은 한때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국내외로부터 지역사회 개발모델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는 70%이상이 자율적 시민단체로 활동하길 바랐으며 개발도상국가들에 새마을운동 모델을 계속 전파해 새시대 한국의 이미지 개선을 꾀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지금까지 새마을운동 현장을 견학한 외국인이 3만8,000여명에 달한것은 이 단체에 대한 평가와 잠재력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새마을운동은 새천년과 남북화해시대를 맞아 민간단체가 담임해야 할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케 하는 전환점을 맞았다.우리는 이 협의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지난날의 업적과 막강한 조직력을 활용해 지역화합을 위한 사업에 앞장서고 통일의 초석을 쌓는 활동에 전념하길 바란다.
  • 남북정상회담 기다리는 ‘9旬의 통일꾼’ 홍순명옹

    “남북 정상이 만난다니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것 같습니다.통일은 남과 북이 모든 분야에서 서로 협력하고 화해의 기틀을 다져나가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통일협회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구순(九旬)의 홍순명(洪淳明·90·서울 송파구 문정동)옹의 통일관이다. 특히 홍옹은 “남북은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점령하는 냉전시대의 통일이아니라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화합적 통일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옹은 지난 85년 경실련 통일협회에서 지원봉사를 시작으로 북한동포돕기모금운동,통일관련 세미나 등 북한과 관계된 일에는 빠짐없이 참가해 오고있다.지난 98년 11월 첫 관광단으로 당시 화제를 모았던 금강산 미녀 관리원과 ‘반갑습니다’라는 노래를 함께 불러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홍옹의 제의로 올 개천절(10월3일) 남한에서 개최를 목표로 남북한 및 러시아 중국 일본예술가와 학자들이 참여하는 ‘환동해 국제예술제’가 추진되고 있다. 평북 신의주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 만주로 이주해살다 6년제 중학교를마친 뒤 18살때 서울로 혼자 내려와 22살때 경성사범을 졸업했다.일제 치하중국 단둥(丹東)의 소학교로 발령을 받아 교편을 잡았다. 해방 후 서울로 돌아와 미 군정 산하 보건사회부 서무과장으로 근무했다. 통일협회 차승렬(車承烈)부장은 “홍옹의 활동력은 젊은 간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면서 “홍옹의 생전에 통일이 되기를 빈다”고 말했다.홍옹은“미국에 사는 3남매가 함께 살자고 제의했지만 한국에서 통일을 맞이해 고향 땅을 밟고 싶다”면서 “통일이 될 때까지 청년으로 살아가겠다”며 활짝 웃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뚜렷한 주제로 호기심 자극

    문인들이 다양한 산문집을 내고 있다. 소설가 배수아의 첫 산문집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이룸)는 최근 유행적인 담론인 ‘몸’ ‘욕망’에 대한 미공개 글 모음이다.전통적인 틀에서상당히 벗어난 소설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는 타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편 글쓴이에 대한 평가 욕구를 유발시키는 부메랑 같은 소재에 직진해 들어간다.‘The Hair’‘여자에게 왜 가슴이 있는 걸까’ ‘네이키드 라이프’‘관음증에 관하여’‘고독인가 관계인가’‘친구에게 성욕을 느낄 때’‘입었는가 벗었는가’‘사람들은 왜 차에서 하는 것일까’‘버스 안에서’ 등등거침이 없다. 소설가로서 배수아를 주목하지 않았던 독자는 그녀의 개별적인 목소리를 알게 되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주목해온 독자들이라면 어떤 한계를 느낄 수 있다.그 한계는 가끔 의도적으로 보인다. 중진 소설가 김원일의 이색적인 산문집 ‘그림 속 나의 인생’(열림원)은이 땅의 소설가가 쓴 첫 미술 산문집이라고 한다.‘그림을 어떻게 감상하느냐’의 질문을 소설가의 시각으로 풀어나간다.지은이는 화가의 생애와 한 장의 명화가 전달하는 내면세계로 잠행,그 시대의 의미와 한 장의 그림이 주는감동의 단서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추적한다.국내외 50점 명화에 대한 글로칼라 화보가 곁들여 있다. 원로 시인 황금찬의 ‘문단 반세기-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저편’(신지성사)은 선배 문인들이 남긴 일화를 모았다.이광수 정지용 김동명 김영랑 노천명조지훈 박목월 박인환 심훈 안수길 정비석 이원수 이범선 손응성 장수철 등40여명 문인들이 소재.따뜻한 인정과 아름다운 인간애가 돋보인다. 김재영기자
  • 남북 정상회담/ 4강의 반응

    *미국의 반응. 미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을 ‘해빙의 시작’ ‘남북관계의 전환점’이라며 환영과 지지를 나타냈다. 뉴욕타임스는 11일자 사설에서 “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늦기는 했지만 남북관계에서 희망적 해빙의 시작이 될 수 있다.이는 또 냉전의 마지막 군사적대치의 장에서 긴장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그러나 북한은 아직 위험하고 예측불가능한 만큼 한국은 정상회담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은 11일 “남북한간의 첫 정상회담은 분단 한반도의 관계를 개선하는 긴 과정의 중요한 한 조치로만 끝날 수도 있지만 동북아의 군사적 위협을 줄이고 남북한 모두의 경제적 이득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고보도했다. 한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11일자 사설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지구상의 한 위험지역에서 미해결 상태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역사적 돌파구가 될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 정상회담 성사는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이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햇볕정책이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그러나 정상회담에 너무큰 기대를 갖는 것은 아직 무리이며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통일이 금방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통일이 된다면 6월 정상회담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아시아문제연구소장 정상회담 후 남북관계는 완만하기는 하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전이 이뤄질 것이다.남북한이서로 신뢰를 구축해나각 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한국으로선 남북관계의 급격한 발전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여유를 가지고서서히 추진하다 보면 이산가족 상봉,편지 교환 등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일본의 반응. 일본 언론도 12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면서 현재 진행중인 북·일 수교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아사히(朝日)는 사설을 통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은 북한의대남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포용정책’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요미우리(讀賣)도 “남북회담의 합의는 한·미·일의 3개국이 협조를 강화하고 북한에게 대화를 촉구해온 결과”라면서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종결시키고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했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교수 북한은 외교적으로 큰 전기를맞고 있다.북한측에서 보면 우선 대미관계를 개선한 뒤 일본,마지막으로 한국이라는 종래의 외교방침을 역전시켜 남북을 기점으로 대일,대미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 한다는 점에서 남북회담은 전략적인 전환이다. 그 배경에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냉전구조를 재편하고 나아가 경제를재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 북한이 경제재건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인프라 정비,특히 에너지 지원을 한국측에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북한은 결단을 내리기 앞서 ‘한국은 북한을 흡수통일하지 않는다’는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켜봤을 것이다. ●요시다 야스히코(吉田康彦) 사이타마대 교수 정상회담 후속으로 총리급의실무적인 회담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정상회담이 1회에 그칠지 계속 이어질지 현재로선 불투명하지만 그 회담이 ‘결렬’이라든지 ‘실패’라든지 하는평가는 이를 것이며 북한과의 채널 구축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황성기기자 marry01@. *중국의 반응. 중국의 언론과 한국문제 전문가들은 12일 남북한 정상회담 합의가 한반도분단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역사적 사건이라고 지적하고 남북한이 평화·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데 대해 환영과 지지를 보낸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人民日報)와 신화(新華)통신은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가오랫동안 남북한이 공동 노력,신뢰를 구축해온 결과로 긴장 완화라는 국제환경 및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추이잉주(崔應九)교수(베이징대학 조선문화연구소 명예소장)정상회담은 민족사와 동북아 국제관계사에서 크게 평가돼도 지나침이 없다.대결과 분단의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1961∼64년 북한 유학시절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다녔다. 김 위원장은 민족의 장래와 운명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안다. ●쉬바오캉(徐寶康) 인민일보 논설위원 남북한이 외부의 개입없이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것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실현,자주 평화통일에 큰 도움을줄 것으로 본다. ●장스화(張世和)교수(지린대학 조선·한국연구소) 정상회담은 시대조류에부합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과 안정이 확보돼 외국자본이 북한에 투자될 것이다.남북 양측에 말은 적게 하고 일은 많이 한다(少說多作)는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을 전하고 싶다. ●브라이언 브리지박사(홍콩 한국문제 전문가) 정상회담이 김 대통령 정부의일관된 화해정책의 결실이라고 평가하고 남북관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정상회담까지는 2개월여의 시간이 남아 있고 남북관계의 여러 변수도고려해야 하는 만큼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린추산(林秋山) 박사(타이완 한국문제 전문가) 정상회담이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양측 지도자가 만나 화해를 도모하는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둬야하며 회담 성과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게 바람직하다. 김규환기자 khkim@. *러시아. 러시아 언론과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 및 이에 따른 대외개방 움직임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고 평가하며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와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는 11일 정상회담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바탕으로 하며,자체 미사일 개발을 자국에 대한경제지원을 위한 무기로 활용하는 북한의 대외개방 움직임이 베를린 선언을촉매로 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 외무부국장(한반도 담당) 북한이 전례없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채택,결단력과 선견지명을 보여줬으며 1년전부터 추진해온 자체 대외정책에 부합하는 조치를 취했다.북한은 한국 총선에서 김 대통령의입지가 강화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한국 대통령이계속 도와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게오르기 쿠나제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대학 부총장(초대 주한 러시아 대사) 정상회담 합의는 한국 정부가 그동안 추구해온 대북(對北) 정책에 부합한다.김 대통령은 남북 정상간 나이차를 감안하지 않고 평양방문 의사를 피력함으로써 용기와 정치적 성숙도를 보여 줬다. ●아나톨리 토르쿠노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총장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두나라 국민들의 운명에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하지만 너무 큰 기대를 걸면실망도 클 수 밖에 없다.남북한은 오랫동안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국가이며이념적으로 다른 체제를 보유하고 있고 전쟁을 치른 적도 있는 등 모든 점등이 갑작스런 접근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유리 바닌 러시아 학술원 산하 동방학연구소 한국·몽골과장 남북 정상은회담을 통해 군사분야에서 38선내 군사긴장 해소와 안정,상호신뢰를 위한 방안 수립 문제를,경제적으로는 햇볕정책의 기조가 되는 경제협력관계의 실현방안을,인도적으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거론할 수 있다. 김규환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