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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피플 9월 6일자 소개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8월28일 발매 9월6일자)는 ‘8·15 평양 통일대축전’ 이후 통일운동 진영에 흐르는 난기류를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보수세력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통일운동의 혼란과나아갈 길을 집중취재했으며 남측 대표단으로 방북했던 북한전문가로부터 이번 통일대축전의 진정한 의미를 들어보았다. 장기화되고 있는 저금리시대에 알맞는 재테크 요령과 초저금리 정책의 문제점,향후 전망을 다각도로 짚었다.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 불고 있는 부업열풍과 21세기 유망직종으로 각광받는 10개의 직업을 골라 집중분석했다. 국내 최고의 전통을 자랑하는 도자기 업체인 행남자기 김용주 회장과 끊임없는 변신으로 PDA시장 선두업체로 부상한 팜네트시스템 김효식 사장을 만나 그들의 경영전략을 들어 보았다.우리의 영원한 대하소설인 ‘태백산맥’과 ‘아리랑’에 이어 ‘한강’을 출간할 예정인 소설가 조정래씨를 문학마을에 초대했다. 1945년 8월24일 일본의 항복 직후 한국인강제징용자 수천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하다 폭발사고로 침몰한 우키시마호의 진실을 다룬 일본영화 ‘아시안 블루’와 북한영화 ‘살아있는 영혼들’을 자세히 소개했다.
  • 민족행사추진본부 회견 “방북정쟁이 이념갈등 조장”

    ‘8·15 평양 통일대축전’에 참가했다가 만경대 방명록파문 등 물의를 빚었던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가 27일한나라당에 대해 정치공세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 해임결의안을 둘러싸고 여야가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 민간 통일운동단체가 여권의 손을들어준 것이다.여기에 통일부도 “대북정책이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공식 입장표명을 통해 한나라당의 공세에 정면 대응하고 나섰다.임 장관 해임결의안을 둘러싸고 여권과 정부, 시민사회단체 대 야당 및보수세력간의 힘 대결이 정점을 향해 치닫는 형국이다. 추진본부측은 이날 서울 종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남갈등 자제,대북 화해협력정책 지속 추진 등을 촉구했다. 추진본부측은 “평양축전에서의 일부 돌출행동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 “그러나 이런 시행착오를 빌미로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남남갈등을 부채질하는 것은 심각히 우려스런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평양축전에서의 시행착오를 계속 정략적으로이용하는 정당에 대해서는 7대 종단과 추진본부에 속한 시민사회단체의 단합된 힘으로 엄중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평양축전에 참가했던 교수 10여명 가운데 7명도 별도의기자회견을 갖고 “평양축전은 일부 돌출행동에도 불구,남북교류 증진과 관련해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면서 “이를외면한 채 부정적인 면만 침소봉대한 일부 언론과 이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권은 스스로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을 조장하고 있지 않은지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회견에서 추진본부측은 ▲남북 종교 교류 ▲언론·문화예술 교류 ▲10월 비무장지대 평화촌행사 개최 ▲여성계 공동행사 ▲노동계 공동행사 ▲농어업분야 협력 등 평양축전에서 거둔 남북교류 성과들을 조목조목 강조했다. 그러나 오종렬 통일연대 대표는 기자회견장에서 “우리는평양에 관광하러간 게 아니라 기념탑 부근 행사를 참관하러 간 것”이라며 “그것도 안할 거라면 뭣하러 갔느냐”고 주장,통일연대와 민화협,7대 종단간의 이견을 나타냈다. 진경호기자 jade@. ■‘민족행사 추진본부’ 문답. 다음은 민화협의 이돈명·조성우씨, 7대 종단의 김종수·김동완·한양원씨,통일연대의 오종렬·한상열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27일 열린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 기자회견의 일문일답을 간추린 것이다. ▲통일연대와는 앞으로도 계속 연대하나. (3대 기념탑 부근 행사 참석과 관련) 통일연대측에서 따로결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일부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김종수). ▲일부 언론에 대해 사법적 대응의사를 밝혔는데. 면밀하게 검토중이다(김종수). ▲일부의 돌출행동은 무엇이고 언론의 왜곡보도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돌출행동이란 개·폐막식 행사와 관련된 부분과 방명록소동이다.백두산 밀영 운운한 얘기나 북측에서 이번 행사체류비용을 요청했다는 부분 등은 왜곡보도다(조성우). ▲개폐막식 참석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해달라. 우리는 참관단으로 간 것이다. 참관도 안할거라면 도대체뭐하러 갔나(오종렬).미리 원만하게 타협을 하지못하고 간것은 문제지만 음지에 숨어있는 성과도 많이 있는데 그런부분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한양원)
  • 기자커뮤니티 엿보기/ 누가 통일 저해세력인가

    '생각은 자유다!'사상의 자유를 표현한 독일 속담입니다.언론과 사상의 자유,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바입니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사상의 자유가 없었던적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 들어있는 '사상' 때문에 감옥에 가고,죽고,옥고를 치렀습니까? 그러나 요즘엔 '사상' 때문에 국가로부터 핍박을 받는 사람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우파는 우익의 주장을 하고,좌파는 좌파의 논리를 펼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저는 다소 어지럽게 보일지라도 자신의 주장이나 논리를 펼 수 있는 시대가 과거보다는 훨씬 발전한 시대라고믿습니다. 물론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싸움을 하는양상도 있지만, 한쪽이 완전히 눌려 '감정적인 논쟁'마저힘든 것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러 평양을 방문했던남쪽 대표단의 행적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문제는 문제인데….그 핵심은 뭘까요? “만경대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 내에 있는 김일성 밀랍상 앞에서 수십 명의참가자들이 큰절을 올리고,몇몇은 엎드려서 크게 울먹였다”“일부 인사들은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내용의 '한별을 우러러'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큰 충격을 받을만한 내용들이긴 합니다.그러나 저는 강정구 교수가 정말'만경대정신'을 흠모한다고 해도 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어쨌든 사상은 자유입니다.또 누군가 '한별을 우러르건,두별을 우러르건' 개의치 않습니다.'그들이 김일성장군'동상 앞에서 울건 웃건 내 생활이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그들의 자유입니다.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표출하건,표정으로 나타내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동에는 책임이 따릅니다.우리 국민들을 당혹하게 하는 행동을 했던 방북단 일부의 행동은 실수든,돌출 행동이든,사려깊지 못한 것이었습니다.자신들의 행동이 가져올 파장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통일 운동을 그만둬야 합니다.그런 분들은 '반통일세력'은 아니라고 하더라도,적어도'통일저해세력'입니다. 통일을 위해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신념을 실천해 왔는데 어떻게 보수우익과 같은 비난을 받아야 하냐고요? 사회학자 베버가 창안한 개념 가운데 '행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 있습니다.인간들의 '의도된,합리적인 행위'가 '의도하지 않은,비합리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의도'가 어찌됐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오히려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결과'입니다. 물론 남쪽에서 정치적·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려는 생각은없었겠지요.그러나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국민들에게남북 교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있지 않습니까.물론 일부 언론이 이를 필요 이상으로 과대포장해서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경향은 있습니다.그러나 방북단일부의 행동은 분명한 사실(fact)입니다. 북한에서도 이런 상황을 유도하려고 계획한 집단이 있다면 그들도 역시 통일 저해세력입니다.자신들의 행위가 ‘인민'들의 어려움을 덜어 주려는 남쪽 ‘동포'들의 ‘더운 피'를 식혔다면 반성해야 합니다. 통일은 물질적 기반과 함께,정신적 준비도 필요합니다.극좌나 극우는 얼마되지 않습니다.목소리는 크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습니다.대다수 국민들은 이산가족들이 반세기만에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방북단 일부의 어이없는 행동에 분노합니다.그리고 결국 통일을 이뤄갈 사람들은 ‘많은 국민들,평범한 사람들'입니다.현실에 발을디디지 않은 관념적 과격성은 통일운동을 후퇴시킵니다.자신들의 노선이 과연 통일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될 지 성찰해야 합니다.일부의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은 자유지만,행동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전영우 사회팀 기자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6)모윤숙의 사랑과 우정

    최정희를 둘러싸고 노천명,모윤숙(毛允淑·1909∼1990) 세여인 사이를 오간 편지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이선희(李善熙)이다.함흥 출신인 그녀는 원산 루시여고를 나온(1928) 뒤 서울 이화여대에서 수학,여러 잡지사를 전전했는데,유부남인 연극인 박영호(朴英鎬)와 결혼,그리 순조롭지 못한 가정생활 때문에 이들 모임에 끼어들곤 했었다. 8.15후 월북,작품활동을 재개했으나 괴혈병으로 이내 타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세 여인의 서신 내용으로 미뤄보면필시 이선희의 편지도 있을 법한데 빠져 있다. 같은 함경도 출생인 모윤숙에게 이선희는 애물단지 후배였던 셈이다.최정희의 회고록에는 자신에게 편지를 가장 많이 보내기로는 노천명이라 했지만 정작 더 많은 건 모윤숙이었다.그녀의 편지는 거의 ‘렌의 애가’처럼 춘원 이광수를 향한연모의 사무침이 가져다 준 외로움의 하소연으로 차 있다. 한 여인의 사랑에 대한 집착이 이다지도 강렬하고 끈질기며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일까 경이스럽기 조차 하다. “이 마음이 혹시 흩어져 제 슬픔을 흘리며 미쳐 방황할것만 같아서 나는 내 마음에 독약을 뿌려가며 눈을 감고앉았소.…언제나 당신은 이 아픔을 알아주는 따뜻한 벗이오.내가 이 아픔을 사랑하듯이 당신도 이 아픔으로 사랑해주는 이라고 믿소. 내 연령이 쇠해져서 이 아픔조차 나를떠나간다면 나는 공허해서 어떻게 살겠소.그래서 나는 이아픔 속에 숨긴 행복을 남 몰래 남 몰래 가슴에 파묻고 혼자 즐기고 혼자 눈물 지오.…오관에 감각이 모두 제 맥을잃도록 나는 슬픈 내 행복에 사로잡혀 있소.내가 생각하는고운 제단엔 언제나 아름다운 불꽃이 피고 있다오. 이게무언지도 모르오.나는 그 파란 불꽃에 타면서 타면서 한없는 쾌감을 느끼오.나의 베아트리체는 어느 빌딩에 있는 것이 아니오.내 가슴 한복판에서 제 고집대로 나를 좌우하고살아 간다오.정희! 지난 밤엔 또 못잤지.그렇게 못자는 밤이면 유난히 나는 초점 없는 상념서 벽을 쳐다보다가 유리창을 쳐다보다가 그만 날을 새고 만다오.…나는 얼마나 아름다운 장미를 피게 하려던 것이 황량한 낙엽을 안고 운다는 사실-이것이 내 성격이 만들어놓은 재앙인가 하오.불행도 행복도 다-제게 달린 게 아니오.나는 불행한 감정을 사랑하는 여성이라 그대로 나는 불행에 싸여 걸어가나 보오. 영원히 안 보(이)는 앞을! 잔인한 행복이오. 그러나 나는이 무서운 잔인을 찬미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 되었다오.” 이 글은 아마 우리 근대 문학사에서 공개된 것 중에서는메달권 안에 들만한 연애편지일 것이다.춘원에 대한 사랑의 간접 고해성사의 대행자이자,그녀의 메신저 역할도 담당했던 최정희에게 모윤숙은 속을 탁 터놓고 이루지 못한사랑을 하소연했는데,이들의 미묘한 시샘은 재밌는 일화도많이 남긴다. “모윤숙을 '다알리아'라고 하고,이선희를 '백일홍'이라고 하고,노천명을 '들국화'라고 하고,나(최정희)를 '채송화'라고 했다”(최정희 ‘조광·삼천리 시절’)는 이 네 여인 중 남자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로는단연 모윤숙이다.1909년 원산에서 태어나 함흥에서 소녀기를 보내곤 개성 호수돈여고를 나와(1928) 이화여대를 졸업한 모윤숙은 간도 명신여학교(1932),배화여고(1933) 교사,연극과 문단활동중 춘원을 사랑하게 되어 일생동안 그의사상적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처지에서 기이하게도 모윤숙은 춘원의 중매로 독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안호상(安浩相)과 결혼,딸(일선)까지 얻었으나 사랑의 우상에 대한 열정은 도리어 더욱 뜨거워만 갔다.무작정 경원선 열차에 몸을 싣고친정으로 내려간 모윤숙의 속내는 최정희의 회고록에서 익살스럽게 까발려진다.“함흥 친정에 내려간 모윤숙”을 만나러 그곳엘 찾아간 최정희에게 모의 어머님이 어느 날 “너네들은 밤낮으로 니광신이 니광신이하구 지껄이니,도대체 니광신이가 뭐가?”하고 물었는데,바로 이광수의 함경도식 와전 발음이었다.어머니 앞에서도 친구와 애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야만 했던 그녀인지라 편지엔들 ‘니광신'이가 빠질 수 없다.“이선생” 어쩌구 하는 건 바로 그였는데,이 무렵 춘원은 개인적으로 깊은 은혜를 입은 김성수의 ‘동아일보’를 떠나 ‘조선일보’ 부사장으로 자리를옮겼으나(1933) 여의치 못해 이듬해에 사직,아들까지 잃은허전함을 달래느라 여행, 홍제동 소림사에 칩거 등으로 들락날락할 때였다. 모윤숙의 애타는 심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는 역시최정희가 전해 준다.남의 연애편지를 대신 전해 주는 게유행이었던 때라 모윤숙은 춘원에게 줄 서찰을 최정희에게 의뢰하고 초조하게 그 회신을 기다렸으나 종무 소식.저간의 상황을 최정희는 이렇게 묘사한다.모윤숙의 편지를 가지고 가던 날 밤은 산장에 달이 유난히 컸다.저녁 여덟시면 히틀러가 연설을 하니 듣고 가라면서 ‘니광신'씨는 나를 막 잡았다.기다리고 있을 모윤숙의 일이 딱했으나 한편으로는 골탕을 먹여주자는 짓궂은 마음도 있어서 나는 ‘니광신'씨의 말에 좇았다.이튿날 아침 열한 시가 넘어서 출근을 한 내게 먼저 출근해서 기다리고 있던 모윤숙은 참으로 깊은 시선을 내게 던지고 있다가 “왜 그렇게 됐수?”하고 말을 건네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까 니광신씨가 저녁을 먹고 가라는 거아냐,히틀러가 연설을 한다나,그걸 듣고 가라는 거야.”“아니 그이하구 점심을 먹구 저녁을 먹었단 말이지?”“그럼.”“밥이 넘어가?” “활갤 치구 넘어가던걸.”“어쩜!”하고 모윤숙은 말을 다시 못하고 나를 보고만 있었다.모윤숙은 ‘니광신'씨하고 밥을 마주앉아 먹은 내가 부러운 얼굴이었다.또 얄밉기도 한 모양이었다.(최정희 ‘조광·삼천리 시절’)이 대목에서 모윤숙의 애절한 사랑 말고 이광수의 뇌리에아련히 묻혀있는 파시즘에 대한 환상을 읽을 수 있다. 이룰 수 없는 애정의 정열을 잠재우기 위한 도피처로서의 함흥이나 원산 일대는 센티멘탈한 여성시인의 감각만으로는접근할 수 없는 역사가 고동치고 있었다.“여보! 함흥은난(亂)이 난다고 인심이 대단 불안하오.밤마다 암흑 천지요.여기가 매우 안심되지 않소이다”란 서두의 편지는 일제의 식민 철권 통치가 1930년대 중엽에 저 북녘 땅에서는강력한 도전을 받았던 것을 반증해 준다. 국내 항일운동의근간이었던 적색 농민. 노동조합의 파급과 보천보전투(1937.6)를 상기하면 함경도 지역이 지녔던 풍문만이 아닌 실체로서의 위기감을 감지할 수 있을 터이다.더욱이 중일전쟁 발발(1937) 이후 정세는 사뭇 험악했다. 그러나 불륜의 사랑에 빠진시인에게 민족의 당면 과제나역사는 먼 전설이어서 더 이상 관심도 없었을 터이다. 편지는 곧장 “아침 시가에 나가 '사슴군' 계신가고 학교로전화를 걸었으나 벌써 1주일 전에 상경하셨다니 우리가 셋이서 싸다닐 때 그는 어느 구석에서 망원경으로 다-살피지않았으리오”라는 대목을 읽게된다. 여기서 '사슴'이란 1936년 1월 20일에 100부 한정판으로 ‘사슴’이란 시집을낸 정주 출신의 백석(白石)이다.오산학교를 나와 조선일보장학생으로 일본 청산(靑山)학원에서 영문학을 수학, 조선일보 출판국의 ‘여성’지에 최정희와 함께 근무하다가 나중엔 종합월간지 ‘조광’에서 일하던 그는 함흥 영생고보교사(1936-1938)로 있었다. 그의 해맑은 모습은 당대 여성들에게 제법 인기를 끌었는데,낙향한 모윤숙을 찾았던 최정희와 셋이서 한 판 어울렸음을 이 대목은 증명해 준다.이때 모윤숙이 애독했던 책이‘차탈레이 부인의 사랑’이었던 것도 흥미거리다.거듭 이소설을 들먹이며 예찬한 것으로 미뤄 볼 때, 정열적인 이시인이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육욕에 대한 향수 때문에 매우 감동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편지를 면밀히 뜯어보면 “상경한 사슴 군을 죽기 전 상봉하여 원하던 이야기를 해 보시오”란 대목에 뭔가 냄새가 풍긴다.백석을 가운데 둔 삼각관계였을까? “사슴군이나 어서 왔으면 하오”란 구절도 나온다. 여담이지만 백석은 최정희에게 장문의 연애편지를 겸한사랑의 철학론을 보냈다.도저히 보통관계로는 볼 수 없는내용이다.사랑은 우정도 선후배도 의심하게 만든다.임옥인(林玉仁)을 만난 대목에서는 “그저 자기는 벌써부터 그이(이광수)를 존경할 수 없이 되었다고”하는데,역시 뭔가수상쩍다. 춘원을 둘러싼 이 여성들의 베일은 여전히 두껍기만 하다. 대체로 파인은 여성작가들을 집단으로 만나길 즐겼으나,춘원은 개별적으로 만나길 선호했다는 속설이 여러 정황에서사실로 굳어진다. 함흥에서 “사하라 사막의 떡장수 여편네 모양”처럼 변해간다고 투정부리던 모윤숙은 이내 상경,경성방송국에 다니며 이광수와 사상적인 보조를 맞춰 친일에 나섰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南 보혁갈등에 신중해진 北

    북한이 ‘8·15 평양축전’으로 불거진 남한사회 보혁갈등에 대해 극도로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심지어 지난 24일 검찰이 축전참가자 7명을 구속했음에도 직접적인 비난을피하고 있다. 북측이 남남갈등에 대해 언급한 것은 지난 19일 ‘민족통일운동촉진 북측 준비위원회’ 대변인 담화와 24일 평양방송 대담 등 두차례에 불과하다.북측 준비위 대변인 담화는“일부 반통일 세력들이 민족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한 남측 대표들을 사법처리해야 한다면서 의도적으로 여론을 북남대결로 몰고 있다”고 비난했다.평양방송은 을지훈련을비난하는 대담 프로에서 “우익보수세력이 평양행사 참가자들을 보안법의 희생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핏대를 돋구워가면서…”라고 한마디 걸치는 정도에 그쳤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과거 방북활동에 대한 사법처리를 맹렬히 비난하던 행태와 크게 대비된다.통일부 당국자는 26일“섣부른 비난은 남한내 보수세력의 입지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고 분석했다. 다른 당국자는 “북한 당국은 평양축전을 민족대단결 행사라고 선전해온 만큼 남한 사회의 갈등을 부추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다만 향후 남한 당국과의 협상에서 공격용카드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일정 수준의 비난공세는 거듭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진경호기자 jade@
  • 방북단 영장 실질심사 이모저모

    동국대 강정구 교수 등 평양 민족통일대축전 방북단 사건관련자 7명에 대한 영장이 24일 실질심사가 끝난지 6시간40분만에 모두 발부됐다. 이날 실질심사에서 혐의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했던 변호인들은 재판부의 결정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본안 심리 때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영장이 발부된 것은 저녁 7시20분.서울지법 영장전담 판사들은 영장 발부 이유에 대해 “일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똑같은 기준을 적용했다”면서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고 검찰의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또 긴급체포가 불법이었다는 등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본안 재판에 가서 다퉈봐야 할 사안”이라고만 말했다. ◆변호인들은 영장 발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정부의 방북 승인도 방북자들에 대한 보호장치가 되지못한다면 민간교류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한 변호사는 “아쉽지만 그동안 국보법 사건 피의자들이 대체로구속됐던 만큼 형평성 문제를 고려한 것 같다”면서 “혐의 내용에 특별한 것이 없는 만큼 재판에서 무죄 입증을 해내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변호인들은 실질심사에서 수사당국이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변론의 초점을 맞추었다.변호인들은 수사당국이 긴급체포 형식을 취한 것에 대해 “긴급체포 구성요건에 맞지 않는 불법행위”라며 수사당국을 불법체포감금죄 등으로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또 이적성 판단기준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변호인단은 “개·폐막식 행사 참가 여부가 이적성 여부의 잣대가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범민련 강령과 규칙 개정 문제에대해서도 “‘연방제’가 아닌 ‘6·15정신 계승’을 강조하는 등 내용면에서 이적성과 거리가 멀다”고 반박했다. ◆방문록에 ‘만경대 정신’이란 문구를 넣어 파문을 일으켰던 강 교수는 21일 귀환 뒤 발표한 글에서 “순간적인 발상으로 가볍게 썼으나 통일운동 단체에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사당국의 영장에 따르면 강 교수는 이 글 이전에두개의 글을 작성했으나 발표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강 교수는19일과 20일 작성한 글에서 “‘만경대 정신’은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기리고 그 자손들까지보상하자는 것이지 김일성 일가를 찬양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변호인단의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않은 채 듣기만 했다.검찰은 피의자들이 축전 개·폐막식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방북조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실제행사장 주변에 참가했는지 여부만 간단하게 심문했다.심사에 참가한 공안부 검사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피한 채 “똑같은 행위라도 그간의 행적을 감안하면 이적성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만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
  • [매체비평] 편향적 이념 부추기지 말라

    해마다 8.15 전후가 되면 통일문제로 나라 안이 시끄러웠던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올해도 예외없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8.15 민족평화 대축전' 민간 방북단의 방북 기간중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방북의 의미가 축소되고,지엽적인 일이 본질로 전도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언론이 여전히 한 몫을 하고 있다.아니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이번 방북은 통일을 위한 민간교류의 활성화 차원에서 다양한 이념의 스펙트럼을 지닌 단체들이 참여한 행사였다.물론우리나라에 좌파적 성향의 단체가 있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수 없는 극우도 있겠지만,그러나 그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가 북한보다 체제가 우월하다는 징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그러나 현실의 해석에서는 이것이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이번방북기간 중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언론이나,일부 보수세력들이 말하는 것처럼 국기를 뒤흔드는 사건이 아니라 통일운동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양성의 일부인 것이다.물론 통일성도중요하다.그리고 그런 점에서 아쉬움도 있다.그러나 우리 언론과 보수세력들은 예전 방남단들이 보인 통일적 행동들을 긍정적으로만 보아주었는가?북한과 우리가 견해를 좁혀갈 수 있는 통로로서 다양한 견해와 방식들을 용인하지 않는 통일운동이 통일에 기여하겠는가? 문제는 언론이 이러한 인식을 가지지도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취재 편집 과정에서 지켜야 할 기본원칙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다.몇가지만 예를 들면 중앙일보나 조선일보는 ‘괘씸죄 정도로 국민 비난 여론 잠재우기 어렵다(중앙,8월 18일기사 본문 중)',‘별 것 아니라고(조선,8월 23일 사설)',‘국기를 흔드는 방북단의 돌출 행동(조선,8월 24일 1면 기사)'등에서 방북 시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국기를 흔드는 중대 사건으로 의미 규정하고 은근히 강경한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특히 그동안 진보적 통일운동에 앞장 서 왔던강정구 교수의 행동에 대해서는 그의 해명이 있었음에도,그의 행동이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는 모 인사의 발언만을 인용하거나 그의 글들이 보여준반미성을 강조하여 마치 친북 또는 북한찬양의 의도성이 있었던 것으로 만들고 있다(반미가 친북인가?).그리고 이를 계기로 통일운동에서 남남갈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이 힘을 모아가고 있었던 현실의 가치를 간과하는 것이언론의 기능인가? 이번 행사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것은 각 신문들이 ‘드러나지 않는 이념적 지향'에 따라 인용한 인사들의 성향이 편향적이라는 것이다.일련의 사건들 중심에는 통일연대가 있었다고 한다.그렇다면 당연히 통일연대쪽 사람들과 인터뷰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23일 밤 KBS2TV ‘북한리포트’가 여러가지측면에서 이번 사건들을 조명하면서 다른 언론에서 보기 힘든 ‘처벌의 기준 (즉,고의성,계획성,이적성 등)을 지적한 것이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 점이었다. 또 조선일보가 방북참가 인사 4명을 대상으로(물론 통일연대쪽 사람은 없었지만) 마련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비교적균형있는 발언을 했고 이언급들이 기사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들을 통해 독자들은 각 신문들의 이념적 지향이 무엇이며,그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 어떻게 기사를 편향적으로 다루는가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을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 [대한광장] 정치 포르노

    방북단 중 일부가 볼썽사나운 짓을 한 모양이다.어떤 이는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고썼다 한다.본인이 김일성 찬양과 아무 관계없다고 하니,그래,이 부분은 이해해주고 넘어가 주자.어떤 이는 방명록에‘훌륭한 장군님’이라 적었다고 한다.이것도 외교적 언사로 이해해 주고 넘어가자. 하지만 어떤 이는 거기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르고,김일성 밀랍 인형 앞에서 눈물을 적셨다고 한다.어떻게 독재자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그 밀랍 인형 앞에서 눈물을흘릴 수 있을까? 이것은 사이비 종교의 신도에게나 어울리는 태도다.사상과 감정은 자유라고 하나,증상이 이 정도면‘정치 포르노’,일종의 음부 노출증이라 할 수 있다. 더 짜증나는 것은 이들의 무책임한 태도다.이들의 돌출행동이 그러잖아도 방문단 내부에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킨 모양이다.듣자하니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고 한다.단체로갔으면 단체로 행동해야 한다.그게 상식이고,예의고, 원칙이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가 언제 국가보안법 무서워서 통일운동 못하냐”며 막무가내로 행동했다 한다.누가 자기들이 국가보안법으로 끌려가는 게 걱정이 돼서 말리나? 그 피해가자기들만이 아니라,고스란히 남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말리지.보라,결국 자기들이 튀긴 흙탕물을 방문단이,통일운동전체가,나아가 통일을 바라는 모든 국민이 뒤집어 쓰지 않았는가. 이 기회에 진보진영은 통일운동 일각의 이 시대착오적 흐름과 선을 그어야 한다.아울러 뚜렷한 이유없이 이산가족상봉에 미적거리고,쓸데없이 장소문제를 걸어 민간단체의교류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드는 북한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통일은 정권의 이해를 넘어서는 민족적 과제다.남북의 어느 정권도 통일의 대의를 정권유지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남의 일각에 반통일 세력이 있다면,북에는 반통일적 경향이 분명히 존재한다.‘통일’에 모든 것을 건 듯이 말하는북한이 정작 남북교류에 소극적인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외세의 개입없는 자주적 통일을 주장하며 사사건건 미국을문제삼아 민족 내부의 교류마저 미국과 연계시키는 것도 비난받아마땅한 일이다. 짜증나는 포르노는 또 있다. 이런 가십거리를 신문 1면에대문짝만 하게 걸어놓고 보수층의 본능을 자극하는 ‘반공옐로 페이퍼들’의 행태다. 국민정신을 해치는 이 저급한 반공 음란물 유포도 이제 자제되어야 한다.왜 이렇게 철딱서니가 없는가.몇년 전에 임수경이 북을 방문했을 때에도 그들이 당장이라도 나라가 무너질 듯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국민들은 공포에 떨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떤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대한민국 안 무너진다.그들의 행동은빈축을 살 일이지 여론몰이로 마녀사냥을 하거나 법으로 단죄할 일이 아니다. 우리 시민사회도 그동안 많이 성숙했다.이 정도는 사상의자유시장에 맡겨도 된다.그래야 그런 ‘삑사리’가 저절로퇴출이 되는 것이다.쓸데없이 이런 목소리들을 억압하니까,그게 황당하게 엉뚱한 장소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김포공항에서 어느 우익단체 회원이 방북단을 환영나온 어느 여학생에게 폭행을 가했다.이것은 그저 한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우리사회에 내재된 이념폭력의 포텐셜(잠재력)이 터져나온 것이다.북에 가서 ‘장군님 만세’ 부르는좌익 음란물도 짜증나지만,멀쩡한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여론몰이로 마녀사냥을 하는 이념 깡패질,우익 폭력물도짜증난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한줌도 안되는 이 몰지각한 사람들이 서로 원수처럼 싸우는 것을 소위 ‘남남갈등’이라 부르며 관람해줘야 하는가.도대체 대한민국에는 이들밖에 안사는가? 이들이 대한민국을 전세라도 냈는가? 이런 분들 하고 한 동포 하려니 정말 짜증난다. 제발 우리,상식 좀 갖고 삽시다. 진중권 문화비평가
  • “남북교류 훼손은 안돼”

    평양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던 기독교 대표단은 23일 “실정법에 어긋난 일이 있었으면 처벌은 마땅하다”고밝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김동완 총무 등 방북 대표단 6명은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방북단 가운데 일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불미스런돌출행동을 한데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실정법을 위반했다면 처벌을 받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단은 그러나 “앞으로 남북 민간교류가 계속돼야 하는만큼 가능하다면 선처도 필요하다”면서 “문제를 확대시켜첫 남북 민간교류의 소중한 성과를 손상시키거나 남북 화해와 협력의 필요성을 훼손시켜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대표단은 방북 성과에 대해 ▲북한에서 연합 예배 ▲일본왜곡교과서 문제에 대해 남북 종교인 대책회의 개최 합의 ▲내년 서울 8·15행사 개최 합의 등을 꼽았다. 대표단은 KNCC의 김 총무와 송영자 여성위원장,성명옥 여성위원회 부위원장,강성모 발전협력위원회 공동회장,윤병조 선교국장과 한국기독청년협의회의 박지영 여성청년분과대표 등이다. 한편 강원룡 목사 등 한국기독교원로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남과 북이 약속한 일에 대해서는 진실성을 갖고 지켜야하며 일부 참석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이 때문에 민간통일운동과 교류가 멈춰서는안된다”고 강조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도 성명을 통해 “8·15 방북단 파문에 대해 이성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면서 “해묵은냉전적 사고와 경직된 대북관에 따라 왜곡·악용한다면 통일은 물론,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분열만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향토사학자 추경화씨 “숨겨진 애국지사 찾아내 뿌듯”

    지난 15일 광복56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독립유공 포상자 111명 가운데는 이상수(李尙銖·애국장)선생·장학순(張學順·애족장)여사 등 2명이 포함돼 있었다.이상수 선생은 유명국 의병부대의 중군장 출신으로,1908년전후 경남 산청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돼12년형을 언도받고 옥중에서 순국한 의병장이며,장학순 여사는 1919년 3·1의거 당시 경남 남해 지방의 만세시위에참여했다가 일경에 체포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순국선열들이다. 이들이 뒤늦게나마 포상을 받게된 데는 지역 향토사학자의 숨은 공로가 있다.주인공은 경남 진주에 살고 있는 추경화씨(秋慶和·50). 추씨는 경남지역 일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운데 관련자료 부족으로 독립유공 포상을 받지못한 인사들의 독립운동 자료를 찾아내 그동안 여러명이포상을 받도록 해왔다.이상수·장학순 선열 역시 그런사례다. 검정고시로 고교를 마치고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한추씨는 각종 자료수집·관리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특히 독립운동사 분야에서는전문 연구자와 어깨를 겨룰만큼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자료를 자랑한다. 지난 95년에 펴낸‘항일투사 열전·1’은 부자·부부·형제 등 가문별 애국지사들의 면면을 꼼꼼히 엮어,애국선열 현창에 큰 기여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하동군의 의뢰를 받아‘하동지역 독립운동사’ 편찬작업에 참여했다. 최근에는1929년 광주학생사건 당시 활동했던 한 여성애국지사(생존)를 찾아내기도 했다.추씨는 “경남일대의 항일운동사는 아직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점이 있다”면서 “향토의 자랑스런 역사를 힘닿는 데까지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평양축전 참가 3인이 말하는 소회

    ‘평양 8·15 통일대축전’에 참가했던 방북단 일부 인사들의 돌출적인 행각으로 또다시 이념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이 때문에 첫 남북 민간교류의 의의와 성과가 퇴색되지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방북단 일행이었던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통일연대,종교계 인사 3인으로부터 평양에서의 상황과 바람 등을 듣는다. ●김창수 민화협정책실장. 대표단 일부의 돌출 행동은 분명히 잘못됐다.민화협은 공식적으로 국민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는 시행착오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통일운동이나 민족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모두 똑같은생각과 방법으로 진행할 수 없을 것이다.다양한 목소리를하나로 조율하는 메카니즘을 만드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하지만 3대 헌장 기념탑 참관 문제는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에 가서 발생할 수 있는 해프닝에 불과한 측면도있다.작은 부분만을 강조하다 보면 ‘하나를 얻고 열을 잃는’ 우(愚)를 범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남북 당국간의 대화가 사실상 단절된 상태에서민간 세력들이 화해와 협력을 위한 대화의 맥을 이어갔다는 점,남북사이에 많은 약속을 이끌었다는 점 등은 대단히 중요한성과다. 이런 성과들이 우발적인 행동에 대한 비판에 묻혀서는 안될 것이다.사실 관계를 무리하게 확대해선 곤란하다. ‘비무장지대 평화촌 건설’이나 ‘보도문 제2항에 외세배격 대신 평화정착이란 문구를 넣은 것’ 등의 성과는 흔들림없이 이어지길 바란다. ●한충목 통일연대 집행위원장. ‘3대 헌장 기념탑 참관’ 부분은 서울로 돌아오기 전 이미 대표단 차원에서 ‘공동책임을 지고 공동 대응하자’고결론을 내렸다. 남쪽에서 우려했던 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55년만에 처음으로 민족공동 광복절 행사를 성사시킨 민간 대표들을 사법처리하려는 것은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6·15 남북공동선언 정신’을 훼손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문제는 여야 갈등이나 언론개혁 국면에서 수세에 몰린 야당과 보수 언론들이 여론을 호도하며 국면전환을 노리는 음모가 깔려 있다. 민·관을 가리지 않고 6·15공동선언 정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광범위하게 연대해 전국적으로 대국민 방북 보고대회및 공청회를 열어 객관적인 진실을 알릴 것이다.한나라당사와 조선일보 앞에서 항의시위도 벌일 계획이다.그러나보수세력들이 아무리 통일대축전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해도 그 성과와 의미를 훼손시키지는 못할 것이다.내년 광복절에 북측이 대규모 대표단을 내려 보내기로 한 것 등은남북의 정부 당국도 하지 못한 일이다.민간교류는 더욱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다. ●최홍준 천주교 평신도 사무총장. 대표단 일부가 3대 헌장 기념탑에서 열리는 통일대축전개막식에 참여한 것은 방북 첫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일어난 일이다.북쪽의 각계 대표들이 찾아와 참가를 권유했다.북쪽의 천주교 관계자도 거절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권했다. 결국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그 분은 “이웃 잔치에서 음식은 안 먹어도 구경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그 사이에 북측 안내원들이 일부를 일방적으로 개막식에 데려간 것으로 안다. 만경대 방명록 사건도 잘못된 일이라고생각한다.‘평화통일 정도의 문구면 충분했을텐데’라고 여겼다. 국민 정서로 볼 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강정구 교수의실수라고 믿고 싶다. 김포공항에서 보수·진보 진영의 대립을 보면서 남북 대화 뿐 아니라 ‘남남 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6·25전쟁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보수 진영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인 만큼 서로허심탄회하게 발전적인 통일론에 대해 의견을 나눠야 한다. 이번 방북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없었던 것보다는 낫다고 믿고 있다.남북의 잦은 교류만이 이질성을 극복하는 길이다.
  • 남남 갈등 사이버논쟁

    ‘8·15 평양 민족통일대축전’ 방북단의 돌출행동으로촉발된 이념갈등이 사이버 공간으로 확산되고 있다. 22일 통일연대와 재향군인회,민중연대 등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는 보수와 진보성향의 네티즌들은 서로 ‘북한의 하수인’과 ‘통일운동을 탄압하는 세력’ 이라고비난하며 논전을 이어갔다. ‘통일연대’ 자유게시판에는 이날 200여건의 글이 올랐으며 의견이 뚜렷하게 양분됐다.‘통일을 위하여’라는 네티즌은 “방북허가를 내준 정부에 적잖은 피해를 주었는데내년에는 무슨 낯으로 방북허가를 내달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의 빌미를 잡힌 것은 모두 통일연대의경솔한 행동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100여건의 논쟁이 오고간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국사람’이라는 네티즌은 “아직도 재향군인회는 ‘레드 컴플렉스’,‘빨갱이’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제 정부에 그만 이용당하라”고비난했다. 이에 대해 상당수 네티즌들은 ‘국론분열’에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면서 화합해야 한다고주장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보·혁 몸싸움 김포공항 이모저모

    “통일열기에 찬물을 끼얹지 말라” “감상적인 통일운동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 평양 8·15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던 남측 방북대표단이돌아온 21일 김포공항 옛 국제선 2청사 1층 입국장 주변에서는 보수와 진보 양쪽 진영의 팽팽한 이념 대결이 펼쳐졌다. 오전부터 극심한 신경전을 벌이던 한총련,전국연합 등 통일연대측과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들은 오후 3시40분쯤 방북단 일부가 공항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충돌직전까지 갔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방북단을 구속하라”며 목청을 높이던 6·25 참전전우회와 향군여성회 회원 등 100여명이 청사 바깥으로 나오던 몇몇 방북인사들을 향해 계란세례를 퍼부었다.이에 앞서 대부분의 방북단은 참전단체들이 1번 게이트앞을 지키고 있자 충돌을 피하기 위해 공항 귀빈주차장쪽 출구로 급히 방향을 바꿨다. 불과 10여m 떨어진 곳에서 한반도기를 흔들며 연좌농성을 벌이던 대학생과 통일단체 회원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맞섰다.참전단체 회원들도 대형 태극기를 펼쳐들고 ‘애국가’로 대응했다. 보수·진보단체의 맞대결은 방북단이 도착하기 3시간전인오전 11시부터 시작됐다. 아침 일찍부터 방북단을 환영하러 나온 대학생과 시민단체 회원 등 300여명은 경찰의 출입통제로 공항청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청사 밖에서 ‘방북단 환영’ 등의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기세를 올렸다. 특히 한총련 등 대학생들은 공항 1번 게이트 앞에서 한반도기를 흔들며 “평양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참배 등 주변적인 문제로 방북자들을 사법처리한다는 것은 반민족적이고 형평성을 잃은 처사”라며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오전 11시쯤 재향군인회원 등 1,000여명이 ‘좌경불순세력에게 방북을 승인한 정부는 국민 앞에 사죄하라’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 시위를 벌이면서 긴장감이감돌기 시작했다. 재향군인회 윤창노(尹昌老) 대변인은 “통일운동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지만 북한의 체제를 직시하고자유민주체제를 수호하면서 남북 화해를 지향해야 한다”면서 “실정법을 어긴 방북단을 환영한다고 나온 이들은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것 같다”고 개탄했다. 반면 통일연대 관계자는 “우익단체들이 냉전 이데올로기와 민족 대결주의에 사로잡혀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오후 1시쯤에는 일부 대학생들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참전단체 집회장 앞을 지나가자 전우회 회원들이 이들을 쫓아가 멱살을 잡는 등 심한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경찰은 이날 이념단체들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병력 23개 중대 2,300여명을 배치,청사의 모든 출입구를 막고 출입자를 일일이 검색하는 등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연행과정=법무부 출입국 검사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일부 연행 대상자들은 검찰과 경찰의 임의동행 요청에 순순히 응했지만,일부는 실랑이를 벌이며 버텼다. 검·경은 이날 오후 2시15분쯤 검사대를 통과한 천영세 변호사(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의 연행을 시작으로 동국대 강정구 교수까지 16명을 연행했다. 연행되던 천 변호사는 ‘긴급체포하겠다’는 요원들에게‘나는 변호사’라며 강하게 항의했다.통일연대 소속 일부대표들은 동료들이 연행되자 “우리만 빠져나갈 수 없다”며 연행을 제지하며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송한수 류길상기자 onekor@
  • 평양축전 이모저모/ 공동보도문 끝내 무산

    8·15 평양 민족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중인 남북 대표단은 20일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에서 방북후 세번째 부문·단체별 모임을 갖고 향후 남북간 교류협력 지속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어 이날 자녁 7시 부터 평양시내 양각도호텔에서 열린 남측 추진본부 주최 만찬은 화기애애한 가운데 밤 11시 까지진행됐다. ■이날 남북은 공동보도문 채택을 위한 막바지 협상에 박차를 가했으나 상호입장 차이로 밤늦게까지 진통을 거듭한 끝에 무산됐다.남측의 초안은 구체적인 교류방안을 담은 반면북측은 원론적인 선에 그쳐 줄다리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 관계자는 “북측의 초안이 기대에 못미쳤다”고 전했다. ■남측 대표단은 남측 당국의 처리방향 및 언론의 보도내용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착잡한 하루를 보냈다.일부 대표단은 기자들에게 “개막식 참석자들은 모두 사법처리를 받게될 것 같으냐” 고 묻기도 했다.두 사건에 모두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통일연대측은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북측은 대표단 및 실무자 접촉에서 남측의 정치상황과 여론추이에 큰 관심을 보였다.남측 대표단 관계자는 “북측은접촉 때마다 개막식 참석자에 대한 남쪽 여론추이를 물어왔다”고 전했다.다른 관계자는 “남쪽 정권의 지지도와 내년도 대선에 대해 여러차례 은근히 물었다”고 말했다. ■평양 의과대학 관계자는 이날 고려호텔 객실로 고 이한열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를 찾아와 고 이한열 열사의 명예 졸업장을 전달했다.리원길 평양 의대 학장은 “이 열사는 87년 7월11일 평양 의대 명예학생으로 등록됐으며 90년 3월10일졸업했다”고 말했다. ■앞서 19일 하루동안 예술인,농민,노동자,언론인,작가,통일운동단체 등 평양축전에 참가한 각 부문별·단체별 모임이열려 민간차원의 교류 및 통일방안 등이 논의됐다.특히 고려호텔 영화관에서 비공개로 열린 남측 통일연대와 북측 민화협의 부문별 접촉이 눈길을 끌었다.통일연대측 관계자는 “구체적인 안건없이 앞으로의 통일운동 전개방향 등에 대해여러가지 논의를 했다”고 전했다. 평양 공동취재단 진경호기자 jade@
  • [사설] 그래도 민간교류 계속돼야

    ‘8·15민족통일대축전’참가를 위해 방북한 남쪽 대표단일부 인사들의 잇단 ‘돌출행동’이 빚어낸 파문이 남북 민간교류와 남북관계 전반에 큰 후유증을 남기지 않을지 우려된다.정부는 어제 국가안보회의 상임위를 열고 ‘8·15방북단’사태를 검토한 끝에 위법사항에 대해서는 엄정히 조치하되,‘민간차원의 남북교류는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가기로 방침을 정했다. 8·15방북단 일행이 오늘 돌아오는 만큼 당국은 집행부의경위 설명을 들은 다음 ‘헌장탑’앞 개회식·폐회식 참석및 ‘만경대 방명록’에 관련된 인사들에 대한 조사에 나설것이다.조사 결과에 따른 사법적 조치에 대해서는 사안별로우리의 생각을 밝히겠지만,우리는 우선 관련인사들의 사려깊지 않은 돌출행동에 대해 다시 한번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방북단 구성원들도 정부가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방북을 허용했는지를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남북 당국간의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민간차원의 교류만이라도 지속시키겠다는 고심어린 결정이 아니었겠는가. 그럼에도 일부 인사들의 돌출행동은 결과적으로 방북단의일정한 성과와 관계없이 민간 통일운동은 물론 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에 엄청난 상처를 입혔다.정부와 통일운동가들의실수를 노리고 있는 우리 내부의 보수세력에게 더없이 좋은공격의 구실을 준 것이다.오죽했으면 방북단 집행부가 “우리는 통일의 싹을 짓밟았다”고 개탄하겠는가.그 결과 민간통일운동 내부의 분열이 우려되지만 그 문제는 자체 토론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남북문제는 특정세력이 열망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고 특정세력이 ‘결사반대’한다고 이뤄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어차피 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명이기 때문이다.따라서 통일운동세력은 국민 대다수의 통일 열망과 보조를 같이해야 하고보수세력 또한 민족적 염원인 통일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정부도 그렇다.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간 남북교류가 좀더 성숙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정비할 필요는 있다.그럼에도 민간차원의 교류는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우리 민족사의 명령이다.
  • [사설] 방북단 일부의 돌출행동

    평양 ‘8·15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측 대표단 일부 인사들이 정부와의 약속을 어기고 15일 저녁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앞에서 열린 개막식에 참석해 파문이 일고 있다. 남측 대표단 집행부는 북측과 개막식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헌장탑’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는 조건으로 방북했다며 참석을 거부했다.그러나 북측은 “참석이 어려우면 참관만이라도 해달라”고 요구했다.실랑이가 계속되는 가운데 통일연대 소속 일부 인사들이 개막식 참석을 주장하고 나와 “각서까지 써놓고 무슨 말이냐”며 만류하는 민화협 및 7개 종단 인사들과 언쟁까지 벌였다.남북간,남남간 논란이 몇시간 동안 이어지자 참석을 주장하던 100여명의 인사들이 대기중인 버스를 나눠 타고 행사장으로 갔다고 한다. 우리는 국민들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이번 사태를 보고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첫째,북한의 태도다.당초 통일부는 ‘헌장탑’앞에서 남북공동행사를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대표단의 방북을 허용하지않기로 했었다.그러다가 “헌장탑 행사에는 오지 않아도 된다”는 북측의 전문을 받고 방북을 허용했다.‘헌장탑’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대표단 집행부의 각서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그럼에도 북한은 “이미 2만명의 군중을 동원해 놓았다”며 남측 대표단을 ‘강박’했다.북측은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당국의 신뢰를 저버린 것이다.이러고서야 어떻게 남북간에 신뢰가 쌓이겠는가. 북한의 태도는 그렇다 치고,집행부의 만류를 뿌리치고 행사에 참석한 인사들의 ‘돌출행동’은 사려가 부족했다.“북녘동포들이 뙤약볕 밑에서 몇시간씩 기다리고 있는데 가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행사장으로 달려간 심경은충분히 이해가 간다.그러나 그들은 너무도 중대한 사실을간과했다.‘헌장탑’은 북한의 고려연방제 주장을 상징하는 축조물이다.그 앞에서 벌어진 행사에 참석한 것을 두고 “고려연방제를 지지하는 게 아니냐”는 국내 보수세력의 색깔공세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정부는 “정황을 명확히 파악한 다음 참석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있으면 묻겠다”며 사법처리 가능성을 비치고있다.참석자들은 ‘통일 염원’이 남다른지라 개인적인 희생을 각오했는지 모른다.그러나 그같은 돌출행동은 결코 통일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정부의 햇볕정책을 ‘대북 퍼주기’니 ‘대북 유화정책’이라고 폄하하는 보수세력에게정부를 공격할 수 있는 구실을 보태 준 셈이다.정부는 100명이 넘는 참석자들을 한사람 한사람씩 조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으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출행동의 책임자들에게는 마땅히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그러면서 우리는 정부와 국민 모두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번 사태의 파문을최소화하는 데 힘을 모았으면 한다.
  • 북한 풍향계

    ■북한 내각기관지 민주조선은 최근호(7월17일자)는 90년대이후 북한에서 인기를 끌었던 가요들을 정치적인 노래와 생활가요로 구분,각각 10곡씩 소개했다. 정치적인 노래로는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김정일장군의 노래▲우리는 맹세한다▲높이 들자 붉은기▲승리의 길▲강성대국에서 우리 살리라▲무장으로 받들자우리 최고사령관▲혁명의 수뇌부 결사 옹위하리라▲김정일장군님께 영광드리네▲천리방선 초병들은 아침인사 드리네등이 베스트 10에 꼽혔다. 남한의 대중가요와 비교적 가까운 생활가요에서는 잘 알려진 ▲휘파람을 비롯,▲우등불▲내이름 묻지마세요▲준마처녀▲녀성은 꽃이라네▲우리집은 군인가정▲통일 아리랑▲병사가 거리를 지날때▲처녀시절 꽃시절 등이 선정됐다. ■1907년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했다가 자결한 이준 열사의 아들이용씨가 북한에서 도시경영상을 역임하는 등 고위직을 지낸 사실이 밝혀졌다. 북한 통일신보 최근호(7월28일자)는 아버지의 자결 소식에항일운동에 투신한 이씨가 도시경영상 외에도 최고인민회의대의원,사법상 등도 지냈다고 전했다. ■북한 도로망의 출발점인 도로원표(道路元標)는 어디에 있을까. 북한은 이를 ‘나라길 시작점’이라 부르며 평양시 중구역김일성광장 주석단(연단)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표시비는 90년대초 평양 중구역 해방산여관 앞마당에서 평양성 함구문으로 옮겨졌다가 96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의해 현 위치인 김일성광장 주석단 아래로 옮겨졌다. “나라길 시작점을 수령의 혁명활동 역사와 결부시켜 올바로 정한다”는 이유에서다.
  • 파인아들 김영식씨 공개 작고문인 서한의 의미

    *학국문학사 빈공간 메워줄 귀중한 자료””. 한국문학사는 흔히 ‘겨울언덕에 홀로 서 있는 나목(裸木)’으로 비유된다.작가들에 대한 작품론은 풍성한 편이지만,작가들이 활동한 시대와 작가들의 개인적 여건 등을 알 수있는 연구는 미흡하기 때문이다.이는 서류 등 자료를 소홀히 하는 경향에다,사생활에 관한 자료를 노출하기 꺼려 하는 풍토 탓이다. 최근 김영식씨가 공개한 문인 48명의 사신(私信) 214통은 한국문학사의 이같은 ‘빈 공간’을 메워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학계와 문단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그동안 더러 문인들의 육필서한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수량이 적었다.아울러 특정문인에 한정된 것이어서 한국문단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반면 김영식씨가 내놓은 서한들은 수량도 방대하거니와 일제하 민족진영과 친일성향의 작가는 물론 해방후 월북작가 등 각 분야를 망라하고 있어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편지는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오고간 것이 대부분이다. 김영식씨는 이달말 파인(巴人) 김동환 시인의탄생 100주년에 맞춰 기념행사를 갖기 위해 8년여전부터 각종 자료를모아왔다.이 편지는 자신이 소장해오던 것과 최정희 여사에서 태어난 이복형제들이 갖고 있던 것들이다. 김영식씨는 “문인들의 편지 속에서 선친과 관련된 ‘흔적’을 발견하고 반가움과 함께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면서 “가치있는 자료는 수요자,특히 연구자에게 자유롭게활용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편지를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편지들은 첫 공개되는 것이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단교류기의 편린들로 당대의 문예사조,동호인관계,특정 문인의 개성,송수신자간의 내밀한 사연까지 고루 다루고 있다”면서 “이번에 밝힌 편지 말고도 60여통이더 있으나,관련자들 가운데 여럿이 생존해 있어 추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문인들의 사신은파인 김동환 시인이 부인 신원혜에게 보낸 32통을 제외하면,나머지 182통은 모두 문학사적 가치가 큰 ‘사료’들이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주로 소설가 최정희 여사인데,이는 그가 당시 파인 김동환 시인이 운영하던 삼천리사의 기자로근무하면서 문인들에게 원고청탁 등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파인 김동환 시인의 편지가 적은 것은 1946년 12월 당시 파인 가족이 서울 종로구 적선동 183번지(현 정부세종로청사자리)에 살고 있을 때 집에 불이 나 각종 자료 등이 모두없어졌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이 편지들에 대해 “우리 근대문학사 한 세기를 담아낸 기록”이라면서 “문인 몇 사람의 사신 차원을 넘어 문화재적 가치를 갖는 사료”라고 평가했다.임헌영씨는 또 “외국의 경우 문인들의 개인 전집에 작품은 물론 그가 주고받은 사신도 전부 수록하고 있다”면서“문인 인물연구는 물론 그동안 숨겨진 우리 문단사의 상당부분을 되살릴 수 있을 만한 자료”라고 말했다. 임헌영씨는 이 편지들은 ▲일제 때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비(非)카프계열 문인들의 교류 파악 ▲남북한의 주요 문인 망라 ▲파인에서부터 학생시인 박봉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 포함 ▲최정희-모윤숙-노천명 등 당시 여류문인의 인간적 관계와 사생활 이해 ▲김남천의 문학비평 소개 ▲김사량의 편지를 통한 재일조선인 문단의 활동상 파악 ▲문단과 거의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이육사의 문단 교류 등의 사실을 처음 또는 재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밝혔다. 임헌영씨는 대한매일에 이 편지를 토대로 한 시리즈를 연재하기 위해 지난 한달여동안 기존 문단사와 비사 등을 확인하고 김영식씨로부터 가족사 등에 대해 청취했다. 정운현기자 jwh59@. ■파인 김동환·최정희는. 파인 김동환(1901∼1950년 납북후 사망 추정).그는 ‘국경의 밤’으로 우리 문학사에 굵은 획을 그은 작가이다.장편서사시와 민요시 창작을 주도했다.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에 가담하는 등 한때 계급문학에 관심을보였으나 주된 정조는 민족정신이었다.고전에 몰두해 가사문학 등 전통문학과의 접목을 시도하면서 민요시를 왕성하게 발표했으며,1929년에는 종합 대중잡지 ‘삼천리’를 창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치열한 현실 의식의 부족으로 30년대 말부터 친일문학의 늪에 빠져들었고,1941년8월 친일단체를 망라한 ‘임전대책협의회’의 발족에 앞장서기도 했다.1931년쯤 ‘삼천리’에 입사한 최정희와의 ‘관계’가 1942년에 알려져화제가 된 뒤 43년부터 동거에 들어갔다. 소설가 최정희는 1931년 ‘정당한 스파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주로 일제하 지식인 여성의 고통을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인간문제’로 유명한 당대의 여류소설가 강경애가 민족의 수난과 정면대결을 시도한 작가였다면 최정희는 여성의 문제에 일찍 눈을 뜬 작가였다.‘지맥’‘인맥’‘천맥’ 등의 대표작에서 신여성의 진보적 의식이 당대의경제적 사회적 관습에 어떻게 짓눌리는가를 주로 다뤘다. 이종수기자 vielee@. ■편지 주인공들. 파인 김동환 시인과 최정희 여사가 보관해오던 편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우리 근대문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거목’들이다. 이들 중에는 국권상실기에 문학을 통해 일제에 대해 저항의식을 표출하던 사람도,친일성향을 띠었던 사람들도 있다. 또한 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한 사람들도 제법 많다.이는 우리 역사의굴곡을 여실히 보여준다.이들은 편지에서 생활의 애환을 털어놓거나,문학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모습을 보여주는 등 문인의 각종 고뇌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우선 편지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국내에 비교적 자료가 적은 월북시인 및 작가들의 것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이들에대한 문학적 연구는 지난 90년대초 월북문인 해금조치로 조금씩 이뤄지고 있으나 사료가 적은 탓에,학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편지를 남긴 월북 시인 및 작가는 박태원·한설야·이태준·김남천·이현욱·안회남·박찬모·이용악·김사량 등이다.박태원은 말년에 중풍으로 전신불수,실명상태에서 ‘갑오농민전쟁’을 탈고해 ‘한국의 밀턴’으로 불린다.한설야는 북한에서 교육문화상·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을,김남천·이태준은 각각 문학가 단체에서 요직을 지냈다.또 이현욱은 임화의 두번째 부인으로,지하련이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편지를 남긴 사람들 가운데는 친일성향의 작품이나 글을 남겼거나,친일단체에서 활동한 인사들도 적지 않다.김동환을 비롯해 백철·이헌구·정인택·박종화·유진오·정비석·노천명·모윤숙 등이 그들이다.박종화는 학병권유 글을 썼고,노천명은 일제의 태평양전쟁을 미화하는 시를 썼다. 다른 여러 인사들도 친일성향의 글을 몇 편씩 남겼다.그러나 ‘민족시인’ 이육사의 엽서 1통도 보여 눈길을 끈다. 최근까지 활동했던 소설가 김동리(95년 작고)와 황순원(2000년 작고)의 편지도 포함돼 있다.또 말년까지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한 설창수 시인의 편지도 있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의 항일운동 공로로 지난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특히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이 최정희인지라 같은 여성인 모윤숙(22통),노천명(21통)등과 나눈 편지가 많다.이들 3명은 당시 문단에서 ‘쌈바가라스’(‘삼총사’의 일본식 표현)로 불릴 만큼 정이 도타웠다.편지에는 이들의 사생활과 개인적 친분관계가 숨김없이 드러나 자못 흥미를 끈다. 정운현기자
  • 민노당 정책이론지 창간

    민주노동당은 27일 당 정책이론지 월간 ‘이론과 실천’ 창간호를 발간했다.특집으로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를 다뤘다.그외 강준만 교수의 글에 대한 비판과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의 관계를 논의하는 ‘쟁점’ 등을 실었다.
  • 2대째 항일운동 박영창옹/ “”교과서 왜곡 日 자해행위””

    “역사는 정사(正史)가 아니면 가치가 없습니다.허위로 만든 역사는 결국 망국행위지요.그런 점에서 지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결국 일본인 자신들에게 크나큰 자해행위가 될 것입니다.” 최근 한·중·일 동양3국간에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과 관련,1개월간 일본을 항의방문한 ‘80대 청년’이 있다.올해 86세로 미국 LA에 거주하는 박영창(朴永昌·86·미주 광복회 원로회장·사진)목사가 그주인공.박목사는 지난 5월 3일부터 30일간 일본에 머물면서 다카코 외상,도이 일본의회 외무위원장,도이 전 중의원의장 등 일본 정계인사와 최상룡 주일 한국대사를 비롯해 일본 기독교 지도자,언론관계자 등 100여명을 방문,교과서 왜곡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90이 멀지않은 박목사가 노구를 이끌고 태평양을 건너 일본을 ‘항의방문’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박목사는 일제당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옥고를 치른 항일운동가의후손이다..박목사는 대를 이어 항일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평양에서 개업의로 활동하던 그의 부친인 박관준(朴寬俊)장로는 일제가 황국신민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신사참배를강요하자 당시 평안남도 지사와 조선총독을 찾아가 이의 부당성을 경고하였다.그러나 별 소용이 없자 1939년 3월 도쿄로 건너가 일본제국주의의 심장인 제국의회(현 중의원)회의장에 잠입,‘한국내에서 신사참배 강요를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뿌리고는 현장에서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뤘다.석방후에도 다시 신사참배·궁성요배 반대운동을 펴다 재차 수감된 그의 부친은 해방 5개월을 앞두고 병보석으로 석방됐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70세로 순국했다.이른바 ‘제국의회진정서 투하사건’ 당시 25세로 일본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그는 부친의 ‘의거’를 돕다가 이 사건에 연루돼 1개월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의 ‘항일운동’은 해방후에도 계속됐다.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으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하던 지난 82년 7월 그는 미국에서 한국신문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역사교과서 왜곡의 주무당국자인 일본 문부성 관계자가 “한국인에게 신사참배를 ‘강제’한 증거가 없어 교과서에 ‘장려’로 기록했다”고 주장한 대목을 신문에서 보고는 그 길로 그는 일본으로 향했다. 박 목사의 손에는 일제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한 한국인 50명의 명단,사건관계기록,부친의 재판기록 등이 들려 있었다.그는 이 자료들을 일본 언론에 폭로,대대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아사히,요미우리 등 일본의 주요신문들은‘신사참배는 역시 강제’라는 제목으로 이를 대서특필했다.지난 89년 일황 히로히토 일황이 사망하자 그는 다시 단신 ‘경고사절’로 일본을 방문,일본 언론에 ‘일본이여 대답하라’는 자작시를 공개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그는 “‘전범1호’인 히로히토를 국장(國葬)으로 장례 치르는 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방일까지 합치면 그의 항의방문은 모두 네번째인 셈이다.그는 “한국정부가 모처럼 정면대응을 하는 것이 다행스럽다”며 “일본을 탓하기 앞서 우리역사를 후손에게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5월 한달간 일본을 돌아다니느라 퉁퉁부어오른 발을 두고 “일본에서 받은 선물”이라고 했다.8·15 광복절에 다시 오겠다며 박목사는 17일 미국으로 향했다. 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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