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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설 선생 서거 103주기] “기념관 부지 마련에 정부·지자체 협조 있었으면…”

    [배설 선생 서거 103주기] “기념관 부지 마련에 정부·지자체 협조 있었으면…”

    구한말 항일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구국의 필봉을 휘둘렀던 영국인 배설이 8일로 서거 103주기를 맞는다.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는 1908년 당시 국내에서 발행 중이던 모든 신문 부수를 합친 부수보다 많은 발행 부수 1만 3000부를 자랑하던 당대 최고의 신문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비판한 황성신문에 실린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한문과 영문 호외로 만들어 세상에 널리 알린 것도,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해 국민운동화한 것도 대한매일신보였다. 선생은 언론을 통한 항일운동을 펼치다 수감됐고, 옥고를 이기지 못해 세상을 등졌다. 그는 영국인으로 태어났지만, 대한국인으로 죽었다. 선생의 뜻을 펼치는 배설기념사업회는 8일 서울 양화진 선생 묘역에서 103주년 추모기념식을 갖는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박유철 광복회장, 스콧 와이트먼 주한영국대사 등이 참석해 선생의 뜻을 기릴 예정이다. 7일 배설선생기념사업회 김재원(81) 회장을 만나 선생 사후 103년이 지난 오늘에 되새겨야 할 선생의 얼을 탐구해 봤다. →내일이면 서거 103주기를 맞는다. 배설 선생의 항일구국혼을 이 시대에 어떻게 승화시킬 생각인가. -100여년 전 선생이 생각하던 대한제국의 시대정신이 독립이었다면, 오늘의 시대정신은 대한민국이 선진 열강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이 같은 세계사적 비전을 가지고 국민의식을 한 단계 높이도록 역사문화정신 고취의 중심에 자리하는 사업회를 만들 생각이다. →기념사업회가 발족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선생을 기리는 여러 가지 사업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많다. 새 사업 발굴과 기존 사업 추진에 대한 구상을 소개해달라. -창립 때부터 기념사업회를 이끌어 오던 고 진채호 초대회장에 이어 지난해 말 제2대 회장의 중책을 맡았지만 미진한 점이 많다. 기념관을 건립해 한국과 영국·일본 등지에 흩어진 선생 관련 자료와 기념품 등을 집대성하는 사업을 최우선으로 추진했지만, 아직 부지도 구하지 못한 상태이다. 선생이 묻힌 마포 양화진 묘역 일대나 면목동 용마산에 기념관을 세우고자 관련기관과 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또 대학생을 비롯한 각급 학교 학생들로 가칭 ‘배설봉사단’을 구성해 선생의 뜻을 우리 사회에 되새기도록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선생이 태어난 영국과 우의를 돈독히 하고자 영국 브리스틀대학 등과 정기적으로 친선우호 세미나를 개최하는 방법도 모색해 보겠다. →사업을 시작하려면 재원 마련과 관련 기관과의 협조가 필요한데 어떻게 조달하고 협의할 생각인가. -재원을 생각하면 머리가 띵하다. 회장직을 맡고 보니 사업회는 빚더미에 올라 있었다. 일단 사재를 털어 마포에 작은 사무실을 얻었지만, 사업회 유지비용과 추모식 행사자금 마련에 애를 먹었다. 이번 추모식도 서울지방국가보훈청과 종교단체의 자금 지원으로 준비했다. 다행히 지난해 12월 국가보훈처로부터 기부금 모집 적격단체로 지정받아 앞으로 기부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기부금은 어느 정도 모였나. -안타까운 일이다.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한 푼도 모금하지 못했다. 대한독립운동사의 큰 스승인 선생을 기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쾌척할 독지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기념관 부지 마련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관련 기관의 협조가 있었으면 한다. 김 회장은 광주 태생으로 조선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매일경제신문 창간멤버로 입사해 외신부 기자와 경영기획실 기획부장, 판매·광고국장으로 일했다. 일본경제신문 광고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매일경제 신문이사를 역임했다. 언론계 퇴직 이후 개인사업을 하다 진채호 초대회장과의 인연으로 2010년부터 부회장에 영입됐다. 지난해 말 사업회 성격상 언론인 출신이 적합하다는 이유로 회장에 추대됐다. 노주석기자 joo@seoul.co.kr
  • [시론] 윈윈하는 상생협력이 정착되려면/최성용 서울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시론] 윈윈하는 상생협력이 정착되려면/최성용 서울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민간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의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는 중소기업들의 상생협력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있어 안타깝다. 동반성장은 이들 사이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상호 간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꾀하려는 것이며, 성공적 상생협력체제의 확립 및 추진을 위해서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일본의 에기 지쓰오는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의 형성에서 쌍방이 준수해야 할 기본이념적인 원칙 8가지를 제시한 바 있는데, 상생협력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이 중 6가지 원칙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상생협력 방안을 제시해 본다. 첫째, 동지적 결합원칙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중소협력업체들은 상호이익의 증진을 위해서 단순한 이해관계를 초월한 동지적 결합이 그 기반을 이루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둘째, 동일운명감의 유지원칙이다. 대·중소기업이 동지적 결합으로 형성된 기업군이므로 공동운명감을 갖고서 하도급 거래를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공동운명체로 인식한다면 협력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대등존중의 원칙이다. 대기업이 중소협력업체들에 부당한 압력을 가한다거나 불리한 하도급 단가를 결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중소기업은 규모, 자본 및 기술수준 등이 낮으므로 대기업은 거래관계의 지속적 유지를 위해 대등존중의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 얼마 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대기업들이 글로벌 초우량기업과의 경쟁을 위해 협력업체에 납품가 후려치기를 한다고 지적했다. 넷째, 지도성 발휘의 원칙이다.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비교하면 경영관리나 기술 면에서 뒤지기 때문에 대기업은 지도성을 발휘해 중소협력업체들을 육성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상생협력은 대기업이 갖춘 혁신능력과 조직의 효율성을 중소기업들이 모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섯째, 우자 번영·열자 패퇴의 원칙이다. 납기·품질·협력도 등에 있어서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안일한 자세의 중소협력업체들에 대해서는 거래에서 제외하고, 건실한 경영과 원만한 거래관계를 이룩하는 중소협력업체들은 번영한다는 원칙이다. 우리의 중소기업들은 기술 품질 및 납기 준수 등에서 대기업의 요구를 만족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끝으로, 중소기업 동위수준의 원칙이다. 중소기업들이 규모·경영·기술면 등에 우열이 없도록 일정수준 이상으로 동위화시켜야 한다는 원칙이다. 대기업들은 중소협력업체들이 자사의 생산 프로세스의 일부라는 점을 인식하고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국민경제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경제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늘 변방에서 낮은 경제적 지위에 머무는 현실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작금의 대기업 행태로 미루어 볼 때 대·중소기업 간의 갑을 관계는 쉽사리 청산되기 어려운 과제이다. 대기업은 관료주의적 행태를 불식하고 진정성 있는 동반자 의식을 갖고 협력 생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전격사퇴한 정운찬 위원장이 오죽하면 그동안 대기업들이 말로만 동반성장에 협력하는 척한다고 말했겠는가. 상생협력 문제는 양측이 바람직한 공존관계를 지속할 때 비로소 성공을 거두게 된다. 적대적이거나 경쟁적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대기업들은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진정성 있는 마음을 갖고 대하고, 중소기업들은 품질보증·납기 준수·기술혁신 등으로 적극적으로 화답해야 한다. 여기에 대기업들이 에기 지쓰오의 6가지 원칙을 염두에 두고 나눔과 베풂의 정신 아래 협력관계를 지속해 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상생협력은 정착될 뿐만 아니라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 조계사에 한반도 평화기원 ‘1000일의 등불’ 밝힌다

    조계사에 한반도 평화기원 ‘1000일의 등불’ 밝힌다

    28일은 한국불교 맏형 격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13대 종정 진제 스님 추대식이 있는 날. 이날을 기해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에 ‘꺼지지 않는 생명평화의 등불’이 밝혀진다.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결사본부·본부장 도법 스님)는 28일 오후 3시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민족화해, 평화통일 한반도 생명평화 공동체 실현을 위한 1000일 정진결사’(1000일 결사)를 시작한다. ‘1000일 결사’는 조계종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수행, 문화, 생명, 평화, 나눔의 5대 결사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자는 행사. ▲생명평화 1000일 정진(1000일 기도) ▲사부대중 야단법석 ▲시민초청 무차대회 등으로 나뉘어 오는 2014년 12월 22일까지 1000일간 계속되는 거대 불사(佛事)이다. ‘1000일 결사’는 진제 스님 추대식 직후 곧바로 시작될 예정이다. 종정 추대식이 끝난 뒤 진제 스님이 조계사 대웅전과 일주문 옆에 마련된 정진단에 1000일 정진등을 켜는 ‘생명평화 1000일 정진’ 입재식으로 1000일 결사는 시작된다. 이 정진등은 1000일 정진을 마치는 날까지 불을 밝히며 자성과 쇄신 결사에 담긴 뜻을 온 사회에 알리는 상징의 불꽃인 셈이다. 결사는 출·재가 종무원과 시민단체 활동가, 신자들과 일반시민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 매일 24시간 릴레이 기도방식으로 진행될 예정. 첫날엔 최근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강정마을 고권일 대책위원장이 첫 번째 기도를 시작해 김정우 쌍용차해고자 대책위원장, 통일운동가 백기완씨가 바통을 이어받아 기도에 참여한다. 개신교 김진해 목사와 천주교 김정일 신부, 원불교 이성심 교무 등 이웃 종교 성직자들과 농민·청년·다문화가족 대표자들도 각각 1시간씩 차례로 정진에 참여한다. ‘1000일 기도’에는 한 사람이 1시간 기도하는 것을 기본으로 몇 사람이 함께 또는 몇 시간 정진하거나, 1주일 또는 한달에 여러 번 참석하는 형식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기도가 끝나는 2014년 12월 22일까지 1000일간 연인원 2만 4000명이 동참할 것으로 결사본부 측은 예산하고 있다. ‘1000일 정진’의 참여를 원하는 개인과 단체는 조계종 결사본부 전화(02-2011-1928)나 이메일(1000day@buddhism.or.kr)로 신청할 수 있다. 릴레이 기도와 함께 이어질 ‘사부대중 야단법석’과 ‘시민초청 무차대회’는 지금 우리 사회와 불교가 안고 있는 주요 문제를 대중들과 함께 고민하고 풀어보는 소통의 자리. 5월 중 처음 여는 ‘사부대중 야단법석’에선 불교에 대한 궁금증이며 사회적 의제에 대해 스님과 시민, 신자들이 한자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와 함께 ‘시민초청 무차대회’는 각계각층의 시민을 부처로 모셔 음식을 대접하고 아픔을 공유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결사본부는 “1000일 정진과 야단법석, 무차대회를 통해 한국불교 1번지인 조계사가 시대와 함께 호흡하면서 뭇생명의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생명평화의 도량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최상욱 선생 별세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펼친 애국지사 최상욱 선생이 13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90세. 고인은 1922년 전남 광산에서 태어나 1943년 부안에 있는 남선교통주식회사에 근무하던 당시 일제의 한글말살 정책에 대항해 한글 사용을 강력히 주장했다. 같은 해 5월 16일 소련과 만주 국경에 배치된 일본군의 병사 급식에도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창씨개명에 반대했다. 5월 27일에는 동네 사람들에게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에 불과하며 이를 거부해야 한다고 설득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고인은 9월 25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총독에 대한 불온한 말과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80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경옥씨와 아들 준영씨, 딸 백란·금란·미란·은란·희란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장지는 대전현충원. 발인은 15일 오전 8시. 010-3951-3195.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3·1절 이름 제대로 짓자” 급속 확산

    “3·1절 이름 제대로 짓자” 급속 확산

    “광복절은 빛을 되찾은 날,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날…. 그럼 3·1절은(?)” 29일 한 블로거의 발랄한 문제제기에 따라 ‘3·1절 이름을 제대로 지어주자’라는 개칭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른 국경일은 명칭에 기념일의 의미를 담았지만 3·1절은 날짜 이상의 의미를 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역사학자 등도 “항일 만세운동의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이름이 있다면 개칭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며 호응하고 있다. 3·1절에 새 이름을 지어 주자는 운동은 아이디 ‘깨몽’이라는 블로거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는 지난 2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3·1절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이름으로 무엇이 좋을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일제 감시가 심하던 시기에 국민이 자발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인 뜻 깊은 날을 그냥 날짜만 담은 3·1절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겁다. 게시 당일부터 하루 1000명 이상의 네티즌과 트위터리안들이 리트위트를 하면서 3·1절 새이름 짓기 운동에 가세하고 있다. 새 이름으로 ‘만세절’, ‘자주선언일’ 등 제안하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전문가들도 3·1절 새 이름 짓기 운동에 긍정적이다.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는 “신선하면서도 의미 있는 제안”이라면서 “3·1운동이 가진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을 담을 수 있는 새 이름을 짓는 것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독립유공자유족회 주최로 29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3·1정신 실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3·1절의 새 이름 짓기를 제안했다. 홍정완 역사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3·1운동은 당시 민중들이 중심이 된 자생적 항일 민족운동이었다.”면서 “3·1절이라는 명칭이 당시 항일운동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으므로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명칭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독립기념관 연구위원도 “젊은 층이 3·1절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새겨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라도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반겼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 점검해 보니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 점검해 보니

    만해 한용운 선생 등 항일 독립투사들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 후대의 무관심 탓이다. 사적지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가 하면 엉뚱한 곳에 표석이 세워지기도 했다. 표석의 오류를 알면서도 글자 한 자 고치지 않고 있다. 사적지를 관리하는 서울시의 무성의가 후대를 몰역사의 수렁으로 이끌고 있다. ●대부분 4년전 그대로 29일 서울신문이 서울의 독립운동 사적지 90여곳을 2008년에 이어 다시 점검한 결과 4년 전 지적했던 유적지 훼손이나 오류가 대부분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앞서 2008년 중앙대 중앙사학연구소는 독립기념관의 의뢰로 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서울의 독립운동 사적지 90곳 중 70곳이 도로공사와 재개발 등으로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대표적인 곳이 한용운 선생이 머무르며 불교 잡지 ‘유심’을 발행했던 유심사 터다. 만해는 이곳에서 3·1운동 직전인 1919년 2월 28일 중앙학림 학생들을 불러 독립선언서 3000장을 전달했다. 3·1운동을 촉발한 뜻깊은 발원지인 셈이다. ●쓰레기 쌓여있고 엉뚱한 곳에 표석 유심사의 원래 위치는 종로구 계동 43번지다. 그러나 표석은 엉뚱하게도 100m 정도 떨어진 계동 58번지 뒷길에 세워졌다. 유심사 터에는 현재 ‘만해당’이라는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서울시도 알지만 4년째 모른 척만 하고 있다. 위치만 틀린 것이 아니다. 표석의 문구 역시 ‘중앙학림’이 ‘중앙학교’로 잘못 적혀 있다. 중앙학림은 1922년 세워진 불교계 고등교육기관으로, 불교계 항일운동의 본산이지만 표석에는 인근 사립 고등학교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다. 심지어 종로구는 표석 뒷면에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안내판까지 덧대 놓았다. 주민 정모(66)씨는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는 주민도 문제지만 독립운동 사적을 알리는 표석에 커다란 안내문을 붙이는 구청 조치가 참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여운형 선생 집터 흔적도 없이 사라져 여운형 선생이 머물렀던 계동 집터는 1989년 도로 확장 공사로 집 앞쪽이 절반 이상 잘려 나갔고 남은 반쪽도 칼국수집으로 바뀌어 있다. 이곳이 선생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것은 건물 건너편에 있는 작은 표석이 전부다. 1920년대 후반 좌우 항일 세력이 합작해 결성한 신간회의 창립본부 터는 흔적조차 사라지고 없다. 이봉창 의사의 집터(용산구 효창동 118번지)를 알리는 표석은 황당하게도 원래 집터에서 약 250m나 떨어진 6호선 효창공원앞역 1번 출구에 박혀 있다. 한성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했던 독립운동의 아지트(한성오 집터) 역시 표지석은 엉뚱한 곳에 세워져 있다. 4년 전 사적지 실태조사를 담당했던 장규식 중앙대 교수는 “보존·복원 대책은 고사하고 4년이 넘도록 간단한 오류조차 고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사적지 복원이 어렵다고 작은 표석 하나 세우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면서 “후손들이 항일 투쟁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3·1운동길’과 같은 답사코스를 만드는 등 적극적인 복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신진호·홍인기·최지숙기자 sayho@seoul.co.kr
  • 대한항공 A380 獨 취항

    대한항공 A380 獨 취항

    대한항공이 인천~독일 프랑크푸르트 노선에 ‘차세대 항공기’인 A380을 투입한다고 27일 밝혔다. 다음달 25일부터 매일 운항한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이 A380을 띄우는 노선은 뉴욕, 로스앤젤레스, 홍콩에 이어 모두 4곳으로 늘어난다. 프랑크푸르트행 A380은 낮 12시5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프랑크푸르트에 현지시간으로 오후 5시45분 도착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선 저녁 7시45분 떠나 다음날 오후 1시5분 인천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운영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유럽의 대표적 비즈니스 노선인 프랑크푸르트에 A380을 투입함으로써 유럽 여행객들의 편의가 높아지고 여객 수요도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6월, A380 항공기를 국내 처음으로 들여와 현재까지 5대를 운영 중이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與 부산지역 와일드카드… 어디서든 싸울 준비”

    “與 부산지역 와일드카드… 어디서든 싸울 준비”

    4월 총선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낙동강 전선’에서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과 측근의 혈투가 벌어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 목사의 아들인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22일 부산 북강서을 후보로 확정된 가운데 새누리당이 전략 공천을 통해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를 이곳에 내세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 대표는 과거 문 목사의 측근으로, 1990년대 재야단체 ‘통일맞이’에서 정책연구원으로 함께 통일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당초 서울 관악을 출마를 선언했던 하 대표는 당 인재영입분과의 제의에 따라 지역구를 부산으로 돌려 지난 20일 비공개 면접심사를 끝냈다. ●통일운동… 열린북한방송 대표 하 대표는 22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새누리당에서 전략 공천으로 영입하겠다는 제안이 와서 받아들였다.”면서 “제 삶의 의미가 부각되는 의미 있는 선거를 할 수 있는 지역이면 어디에서든 싸움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 내부에서 부산 지역 와일드카드로 검토하는 것 같지만 아직 특정 지역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문 최고위원에 대해선 “정치인으로서 국민과의 소통 능력 등 훌륭한 자질을 갖췄지만 한국 사회를 아직도 30년 전처럼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통일운동 당시 문 최고위원은 영화에 매진해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고 밝혔다. 부산 북강서을 현역 의원으로 공천을 다투게 될지도 모를 친박(친박근혜)계 새누리당 허태열 의원에 대해서는 “3선을 지냈고 경륜과 노련미가 있다. 허 의원이 지역구 후보로 공천되면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원하고 돕겠다.”고 밝혔다. ●“문성근, 30년 전 사고에 갇혀” 그는 새누리당의 위기에 대해 “국익이 아닌 사익을 앞세우다 보니 갖가지 비리가 터져서 당의 근본 정신 회복이 시급하다. 국민과의 소통에도 소홀했다. 당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통일운동에서 반북운동으로 전향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인권, 통일이라는 제 기본가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면서 “가장 관심을 두는 탈북자 문제는 당선되면 중국 내 인적 채널을 활용해 잘 해결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기고] 백두혈통이 아니라 백수혈통이다/림일 탈북작가· ‘소설 김정일’ 저자

    [기고] 백두혈통이 아니라 백수혈통이다/림일 탈북작가· ‘소설 김정일’ 저자

    16일은 고 김정일의 70번째 생일이다. 필자가 평양에서 해마다 2월이면 집중적으로 받았던 김정일 우상화 교육의 한 대목이다. “항일의 영웅 김일성 동지께서 험산 준령의 백두산에서 강도 일제와 맞서 싸우시던 1942년 2월 16일, 조선혁명의 광명한 미래로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께서 탄생하시었다.” 소가 웃다 꾸러미 터질 소리다. 평양 태생의 김일성은 대부분 만주와 연해주 부근에서 활동했다. 북한에서의 활동은 1937년 6월 4일 보천보 전투(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면 보전리를 90명의 빨치산 대원이 습격한 사건)가 유일한데 이것도 전설 속의 김일성(동북 항일연군 제2군6사 백두산지구장으로 당시 나이가 60대 정도인 노장군)과 엇갈리는 황당한 부분이다.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빨치산 소부대가 만주에서 일제 공격을 피해 1941년 초 연해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2월 16일 김정일(당시 이름 김유라)이 태어났다. 당시 소련 극동군정찰부대 88여단이 주둔하기도 했던 이곳에서 김정일은 5살까지 살았고, 해방이 된 1945년 11월 생모 김정숙의 손을 잡고 함경북도 웅기로 배를 타고 북한에 들어왔다. 1960년 8월 평양 남산 고급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김정일’로 개명하고 ‘수령의 아들’이라는 절대 특권을 누렸다. 1987년 2월 그가 실제 수장인 조선노동당의 결정으로 백두산을 혁명성지로 꾸렸고 그곳이 곧 자기 고향이 되었다. 인민이 우러르는 수령의 고향이 외국이면, 우상화 교육에 걸림돌이 되었기에 엄청난 거짓말도 뻔뻔하게 했던 김정일이다. 북한의 초대 수령 김일성과 2대 수령 김정일에 이어 3대 수령 김정은에 대한 노동당 선전도 기가 막히다. 출생지와 생일이 불분명한 김정은을 “백두혈통을 이어받으신 또 한 분의 위대한 수령,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강철의 영장”이라고 역설하는 노동당이다. 정말 강철판을 얼굴에 깔았다. 백두산에서 한 번도 항일운동을 한 사실이 없는 할아버지 김일성과, 절대군주가 되어 백두산으로 한가한 산행을 자주 갔던 아버지 김정일이 백두산과의 인연이 전부라면 전부이다. 그런데 어떻게 김정은을 백두혈통이라고 하겠는가? 김정은 일가가 할아버지부터 지금껏 북한에 어떤 공적을 쌓았는가? 전국 곳곳에 자신들의 동상과 기념비를 수천개 세웠고, 생가를 비롯한 혁명사적지를 수백개 건립했다. 모든 가정에 저들의 사진과 어록패를 걸었고, 죽어서도 호화궁전에 들어가 있는 그들이다. 인민이 노동당과 정부를 비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체포돼 갇히는 비밀수용소가 20여개 있으며 그 속에 30만명의 정치범이 갇혀 있다. 자칭 인민의 어버이라는 그들이 과연 그 인민을 위해서 무엇을 했단 말인가? 시장에서 쓰레기를 뒤지는 아이들과 굶어 죽는 노인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배고픈 창자를 끌어안고 살벌한 압록강을 넘는 인민들의 기막힌 참상은 과연 뭐란 말인가?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에는 출생신고가 안 된다. 그의 사진만 구겨도 정치범이 되는 잔인한 정권이다. 오로지 자신들의 대대손손 독재와 부귀영화를 위해 살아온 그들은 인민들의 삶과 인권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백수들이었다. 김씨 일가는 백두혈통이 아니라 백수혈통이다.
  • 국정원, 평통사 압수수색

    국가정보원이 8일 진보 성향의 평화통일운동 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의 서울 충정로 사무실과 인천지부 사무실, 평통사 간부 오모씨의 자택 등 6곳을 압수수색했다. 국정원은 주한 미군 철수, 한·미 동맹 폐기, 유엔사 해체 등 평통사의 주장이 국가보안법상 찬양 등의 혐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압수수색을 벌여 각종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통사 간부 오씨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 제작·배포 등의 혐의로, 인천평통사 사무국장 유모씨에 대해서는 북한 노동당 연계 지하당 조직인 ‘왕재산’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두고 있다. 평통사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를 종북단체로 매도하려는 의도”라고 밝혔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민주통합당 초대대표 한명숙] 뼛속까지 노무현 사람… 제1야당 ‘넘버2’

    [민주통합당 초대대표 한명숙] 뼛속까지 노무현 사람… 제1야당 ‘넘버2’

    15일 치러진 민주당 전당대회가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화려한 부활’로 평가되는 분명한 이유는 이 사람, 문성근(59) 최고위원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거에 뛰어들자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었고, 이후 노 전 대통령이 급서하자 정권 교체를 반드시 이루겠다며 어금니를 물고는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을 만든 게 바로 문 최고위원이다. ‘뼛속까지 노무현 사람’인 그가 마침내 제1야당 민주통합당의 ‘넘버2’에 올랐다. 한명숙 대표의 공고한 지지 기반을 뛰어넘지는 못했으나 전당대회 내내 그는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일찌감치 파란을 예고한 바 있다. 문 최고위원이 정치권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노사모를 이끌면서지만 야권과 그의 인연은 사실 훨씬 오래됐다. 재야 통일운동가인 아버지 문익환 목사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쌓은 친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재판 내용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이다. 당시 국내 언론들이 공판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고 외신기자들의 공판 참석마저 제한되자 그는 공판이 열리는 날이면 법정으로 나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재판을 지켜보며 공판 내용을 머릿속에 담은 뒤 이를 외신기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해체와 정권 교체 이후 한동안 정치권에 발을 끊었던 그는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를 맞아 다시 정치활동에 나섰다. 현 정부의 집권 연장을 막겠다며 지난해 8월 야권 단일 정당 건설을 목표로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 운동을 시작, 18만명에 이르는 회원을 모집하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현정·강주리기자 hjlee@seoul.co.kr
  • ‘화염병 투척’ 중국인 구속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투척한 중국인 류모(38)씨가 구속됐다. 김상환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0일 “국내 주거가 부정하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류씨는 경찰조사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인 한국인이었고, 외증조부는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을 하다 투옥돼 고문을 받고 사망했다.”면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데 화가 났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종로경찰서는 외조모와 외증조부에 관한 류씨의 진술이 맞는지 가족관계를 파악해 정확한 범행 동기를 밝힐 계획이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한족의 탁월한 문명이 블랙홀처럼 이민족을 빨아들였다…

    한족의 탁월한 문명이 블랙홀처럼 이민족을 빨아들였다…

    중국 동북공정이 화제였다. 우리 역사를 통째로 삼키려 든다는 분노가 대단했다. 근거는 한화(漢化)다. 중국의 옛 역사를 돌이켜보니 한(漢)족의 탁월한 문명이 블랙홀처럼 다른 이민족들을 빨아들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족을 정복해 군림한 왕조들마저 한화를 피하지 못하고 그 속에 녹아들었으니 한족의 문화적 저력이 엄청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틀을 부정하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신청사(新淸史)다. 논문이나 저서가 산발적으로 나오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신청사라는 이름 아래 묶이게 된 흐름이다. 이를 개괄해 볼 수 있는 김선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의 논문 ‘신청사의 등장과 분기-미국의 청대사 연구동향’이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 겨울 호에 실렸다. 김 교수가 신청사에서 흥미롭게 보는 대목은 중국사를 한화의 역사로 보는 시각 자체가 “20세기 초 중국 민족주의 역사학의 산물”이라 지적하는 부분이다. 탈민족주의자들이 ‘단군 이래 반만년 단일민족 신화’를 비판하면서 항일운동 시기에 한국의 민족주의가 지나치게 신화화됐다고 주장하듯 중국의 ‘한화’ 개념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신청사는 최근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번역, 소개되고 있다. 연초에 나온 이블린 로스키의 ‘최후의 황제들-청 황실의 사회사’, 마크 엘리엇의 ‘건륭제’ 같은 책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화에 대한 부정이다. 한자 자료뿐 아니라 만주어, 몽골어, 티베트어 문헌 분석을 통해 만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남달리 노력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례는 많다. 가령 러시아와의 국경 협상에 대해 청나라는 한문 자료를 남기지 않았다. 북방 문제는 남쪽에 사는 한족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 여긴 탓이다. 또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볼 수 있듯 여름이면 청 황제는 열하로 갔다. 문제는 왜 그랬을까다. 한화의 시각에서 황제의 여름철 열하 체류는 북방 이민족에 대한 견제구로 읽히지만 신청사의 시각에서는 만주의 전통과 자존심을 잊지 않겠다는 황제의 선언으로 읽힌다. 한걸음 더 나아가 김 교수가 눈여겨보는 대목은 팔기(八旗)에 대한 해석이다. 팔기는 청나라만의 독특한 군사·행정조직이다. 팔기에 속한 이들은 기인(旗人)이라 불렸는데, 처음엔 만주족으로 구성됐으나 청나라 팽창과 더불어 몽골·조선·여진·한족 등 다양한 민족이 발탁됐다. 그럼에도 팔기는 곧 만주족으로 간주됐다. 김 교수는 “정치, 세금, 예산 등과 관련 있던 기인이 단일민족 집단처럼 여겨진 것은 19세기 후반 반청혁명 운동의 흐름에서 나타난 근대적 현상”으로 “한족 중심 공화혁명 과정에서 중국을 지켜내지 못한 무능한 집단으로 만주족을 묘사”하기 위해 ‘기인=만주족’이란 선입관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청나라는 한화된 국가가 아니었을뿐더러 그렇다고 오로지 만주족만의 국가였다고 말하기도 어려워진다. 이 점은 청 황제가 ‘유학자’이자 ‘문수보살’이자 ‘대칸’임을 자임한 데서 잘 드러난다. 한족을 상대할 때는 유학자임을, 티베트를 상대할 때는 문수보살임을, 몽골 등 유목민족을 상대할 때는 대칸임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제국을 총괄하는 보편 황제의 지위였던 셈이다. 보편이란 언제나 그렇듯 텅 빈 기호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생각해봐야 할 화두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교통문화발전대상] ‘교통안전 지킴이’ 236명 포상

    제4회 ‘교통문화발전대회’ 시상식이 15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이 행사는 국토해양부가 주최하고 서울신문사와 교통안전공단이 공동 주관한다. 도로·철도·항공·해양 등 각 분야에서 교통안전을 위해 노력한 단체와 개인에게 포장(1명), 대통령 표창(8명), 국무총리 표창(개인 10명·단체 4곳), 서울신문사장 특별상(단체 1곳) 등이 주어진다. 국토해양부 장관 표창(140명)과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표창(40명)도 이뤄진다. 또 교통문화지수 우수 지방자치단체 8곳을 선정해 국무총리표창(4곳)과 안전공단 이사장 표창(4곳)을 수여한다. 교통안전 사용자제작 콘텐츠(UCC) 공모전 입상자 22명에 대한 시상도 실시된다. 지난해부터 해양 분야가 추가돼 수상자가 소폭 늘었다. 대회는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교통봉사상과 교통안전공단이 주관해 온 교통안전촉진대회가 통합돼 2008년 출범했다. 올해에는 교통문화발전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 등 236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포장(개인) ▲조성일 중부고속㈜ 대표이사 ■대통령 표창(개인) ▲강대석 경남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대표 ▲김기봉 교통안전공단 센터장 ▲김성식 신성기업사 대표이사 ▲김인하 영인운수㈜ 대표이사 ▲박희대 대구광역시 주사 ▲이득로 손해보험협회 자동차보험 본부장 ▲임충성 새서울고속㈜ 전무이사 ▲조동혁 한국철도공사 강릉역 역무원 ■국무총리 표창(개인) ▲권순돈 인천국제공항공사 운송시설처 팀장 ▲문원우 한국중부발전㈜ 서천화력발전소 차장대리 ▲박치영 전북지방경찰청 경사 ▲서종도 한국도로공사 경남지역본부 차장 ▲성기천 한국공항공사 시설안전본부장 ▲신성필 교통안전공단 선임연구원 ▲이규민 충남고속㈜ 대표이사 ▲이상공 대기해양㈜ 상무이사 ▲이원귀 경기도 새마을 교통봉사대 부대장 ▲최강환 인천광역시 행정사무관 (단체) ▲경전여객자동차㈜ ▲용남고속㈜ ▲전국버스공제조합 ▲한남관광개발㈜ ■국토해양부장관 표창(개인) ▲신인휴 ▲임종택▲ 박도형 ▲김성곤 ▲변홍구 ▲윤병주 ▲조장우 ▲김현수 ▲변장선 ▲안광엽 ▲곽수민 ▲서종호 ▲이판호 ▲백정기 ▲김종면 ▲이혜경 ▲김용한 ▲최상구 ▲백승권 ▲오주일 ▲배치호 ▲강위석 ▲윤복한 ▲이홍석 ▲정평훈 ▲신우균 ▲박경환 ▲조재갑 ▲김춘길 ▲이창순 ▲박세장 ▲김영조 ▲한윤택 ▲이종섭 ▲장유진 ▲정관목 ▲공태영 ▲문창용 ▲오문식 ▲홍성령 ▲허치영 ▲김학현 ▲최종훈 ▲주정식 ▲박문환 ▲장병주 ▲박종화 ▲박종수 ▲이철희 ▲임성규 ▲한재혁 ▲염규한 ▲문종호 ▲배영진 ▲김정기 ▲김인충 ▲한우진 ▲민승곤 ▲박정근 ▲박수일 ▲이공우 ▲전연후 ▲빈주연 ▲전병규 ▲박성권 ▲윤재승 ▲양태모 ▲우남철 ▲전봉기 ▲이승형 ▲고양권 ▲이동기 ▲박창준 ▲김춘식 ▲임덕수 ▲이규일 ▲권영길 ▲이동환 ▲강병정 ▲김석 ▲우춘식 ▲박수한 ▲조주현 ▲전선영 ▲최영박 ▲이춘희 ▲정춘택 ▲김명주 ▲이대호 ▲안상태 ▲김명기 ▲강남택 ▲정창숙 ▲이민자 ▲김윤배 ▲이애경 ▲배연돈 ▲유진화 ▲김혜원 ▲이상원 ▲김주수 ▲권영희 ▲이강영 ▲이광호 ▲이덕형 ▲안동문 ▲김덕성 ▲김경원 ▲김수진 ▲권오우 ▲ 서기수 ▲남임숙 ▲신원집 ▲위지환 ▲우영근 ▲조을현 ▲김병태 ▲지태희 ▲강대규 ▲이용배 ▲김길호 ▲최구원 ▲소순기 ▲김윤기 ▲김성태 ▲권종하 ▲임정백 ▲박재식 ▲서광옥 ▲신건규 (단체) ▲공군본부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충북 청주 흥덕지회 ▲대전광역시 도시철도공사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전주 덕진지회 ▲한승택시㈜ ▲한일운수㈜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강원 삼척지회 ▲금강운수㈜ ▲가성㈜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경북 영주지회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표창 ▲심윤수 ▲안종형 ▲정행균 ▲김기철 ▲장충구 ▲손주호 ▲방상선 ▲박광식 ▲박명식 ▲곽원준 ▲강명훈 ▲정종희 ▲박찬주 ▲장명식 ▲석인주 ▲공석영 ▲박영하 ▲최윤정 ▲박경아 ▲권윤근 ▲김병락 ▲김종식 ▲김종훈 ▲김희철 ▲임신풍 ▲황윤환 ▲이종원 ▲김술호 ▲황임수 ▲이은미 ▲김정환 ▲오세윤 ▲박종화 ▲이동경 ▲유영국 ▲이경구 ▲변상호 ▲허석길 ▲양철용 ▲공양진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종서러움…조국을 되찾자” 1세기만에…조국서 해방가

     95년만에 발굴된 신흥무관학교 ‘학우단가’(學友團歌)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가사에는 독립운동에 몸 바친 선열들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해외 항일문화 국내 영향”  1절 ‘조상의 세우신 녯나라 어듸메뇨. 충용한 무리아 그 은혜 끄까지 이즈랴’라는 부분에서는 나라를 잃은 설움과 함께 조국을 기억하려는 독립투사들의 의지가 엿보인다. 2절의 ‘종설음 받으며 이 목숨 이여가는 이천만 생령의 인생길 인도할이 뉘뇨’라는 노랫말에서는 일제의 억압에 신음하던 동포들의 선각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의 사명감이 느껴진다. 3절 ‘우리의 마음을 련단코 큰 힘 길너 녯나라 억만년 새기초 공고케 세우세’는 해방 조국에의 희망과 의지가 담겼다.  노동은 교수는 “가사를 음미해보면 당시 어려운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과 함께 선각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 “특히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뜻이 잘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은 당시 항일운동이 국외에서는 항일무장투쟁, 국내에서는 계몽운동으로 구분돼 있었다는 기존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군 노래가 국내에 전파돼 핍박받던 국민들의 독립의지를 키우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당시 만주에서 불리던 많은 항일노래가 국내에 전파돼 민족사학을 중심으로 교육됐다.”면서 “해외 독립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국내에 영향을 줬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학우단가의 발굴이 항일음악은 물론 우리 음악사 연구에도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노래는 단순한 유흥의 요소를 갖고 있었지만, 문맹률이 높아 주로 교육·선전의 도구로 사용됐었다. 실제 일제는 1919년 3·1운동 이후 문화통치라는 미명하에 민족문화 말살을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의 가요를 우리 국민들에게 강요해 황국신민화의 내용을 담은 노래가 국민들 사이에서 불려지게 됐다. ●항일음악·친일음악 연구 전환점  그러나 자료가 대부분 망실돼 항일음악과 친일음악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발굴된 학우단가의 곡이 실린 ‘광성중학교 최신창가집(1914년)’도 일본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항일운동 중에서도 무장투쟁과 관련된 자료가 부족하다. 특히 신흥무관학교는 국군의 뿌리인 만큼 육·해·공군사관학교부터 이런 정신들을 발굴·계승하려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신흥학우단가 가사와 해설  1절  祖上(조상)의 세우신 녯나라 어듸메뇨  忠勇(충용)한 무리아 그 恩惠(은혜) 끄까지 이즈랴  四千春光(사천춘광) 빗나소든 배달 내나라  自由(자유)의 樂園(낙원)을 지을자 우리가 안인가    조상이 세우신 옛 나라는 어디냐  충성스럽고 용감한 무리야 그 은혜를 끝까지 잊으랴  4000년 역사의 빛나는 배달 내 나라  자유의 낙원을 만들 자 우리가 아닌가    2절  종설음 받으며 이 목숨 이여가는  二千萬(이천만) 生靈(생령)의 人生(인생)길 引導(인도)할이 뉘뇨  굳은 마음 참된 精誠(정성) 힘을 다하야  썩어진 民族(민족)의 새 榮光(영광) 나타내이여라    종의 서러움을 받으며 이 목숨을 이어가는  이천만 생명의 인생길을 인도할 사람이 누군가  굳은 마음 참된 정성 힘을 다해  썩어진 민족의 새 영광이 나타나게 해라    3절  우리의 마음을 鍊鍛(련단)코 큰 힘 길너  녯나라 億萬年(억만년) 새基礎(기초) 鞏固(공고)케 세우세  大千世界(대천세계) 덥고 남은 긔운 다하라  普天下優勝(보천하우승)의 冕旒冠(면류관) 길히 빗나도다    우리의 마음을 단련해 큰 힘을 길러  옛 나라 억만년의 새 기초를 공고하게 세우자  큰 세상을 다 덮고 남은 기운을 다해라  온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면류관 길이길이 빛나라
  • 고법 “독립운동 유죄판결은 친일 행위”

    서울고법은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에게 실형을 선고한 행위로 훈장을 받은 판사에 대해 친일 행위라고 판결했다. 1심은 ‘항일운동 재판에 관여했다는 것만으로 일제에 협력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친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었다.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 곽종훈)는 10일 고(故) 유영 판사의 손자가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친일 반민족 행위 해당자 결정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1심과 달리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헌법 이념상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유죄 판결은 당시 실정법에 따랐다고 할지라도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형사재판은 관존민비의 직권주의적 색채가 농후하고 인권 침해의 사례가 빈번했으며 항일독립운동의 탄압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 점 등을 볼 때 판사의 재판 행위가 우리 민족을 탄압하는 적극적인 행위로 친일 반민족 행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유 판사는 재직 당시 밀양경찰서에 폭탄 투척을 한 독립운동가 이수택 등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는 등 모두 7차례에 걸쳐 독립운동가의 형사재판에 참여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이란 선생 별세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운동을 펼친 애국지사 이란 선생이 9일 오후 11시 20분 별세했다. 86세. 강원 춘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1938년 춘천중학교의 항일 학생결사 조직인 상록회의 활동이 일본 경찰에게 발각된 뒤 학생들의 항일 의식을 높이고자 ‘독서회’를 만들어 독서운동을 전개했다. 선생의 부친과 친했던 독립운동가 여운형이 춘천을 자주 방문하자 학생들은 그를 찾아가 상하이 임시정부와 세계 정세 소식 등을 들으며 항일 의식을 높였다. 그러던 중 독서운동에 참여하던 고제훈, 원후정, 김영근 등이 일제의 민족 차별에 분개해 1941년 3월 10일 일본 육군 기념일을 맞아 벌인 모의 시가전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충돌하는 사건으로 독서회 활동이 발각된다. 이 때문에 체포된 선생은 1년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42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단기 1년, 장기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부순(79)씨와 아들 위찬(KBS 기술국장), 호찬(신화 엔지니어링 이사), 중찬(자영업)씨가 있다. 발인 11일 오전 7시 30분, 장지 대전국립현충원, 빈소 서울 보라매병원.(02)841-7652.
  • [김문이 만난사람] 조선왕실의궤 반환 주역 환수위 사무처장 혜문 스님

    [김문이 만난사람] 조선왕실의궤 반환 주역 환수위 사무처장 혜문 스님

    ‘집 나간 부처가 돌아왔다’를 사자성어로 하면 뭘까. ‘환지본처’(還至本處)라는 말이 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중생들은 이승에서 본래의 자리가 어딘지 몰라 우왕좌왕 헤맨다고 한다. ‘금강경’에 그 뜻을 풀이해놨다. 2010년 8월 10일 간 나오토 총리가 ‘한일강제병합 100년’과 관련된 담화를 통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히고 그에 따른 조치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해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 이른 시일에 인도하겠다.” 이는 2006년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4년간 지속적인 반환운동을 전개하고 한·일 국회의원과 시민단체가 협력해 이루어 낸 한·일관계의 중대한 일이었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사무처장 혜문 스님이 있었다. 일본 최고 두뇌 집단이라고 하는 도쿄대를 끈질기게 상대해 ‘조선왕조실록’을 찾아오고, 일본 권력의 중심인 일본 왕궁에 직접 들어가 조선왕실의궤를 목격한 뒤 반환의 결정적 역할을 했으니 말이다. 혜문 스님은 이 밖에도 도쿄 시내 오구라호텔에 있는 고려시대 문화재 ‘평양율리사지 오층석탑’ 환수 등 북한까지 포함시켜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문제로 그 영역을 확대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혜문 스님은 ‘문화재 제자리 찾기’와 ‘오류 바로잡기’ 운동가로 분주히 활동하고 있다. 몇 가지 흥미로운 예가 있다. 슈베르트의 가곡 ‘숭어’는 잘못된 번역이다. 하여 당국에 정정 신청을 내 ‘송어’라고 교과서에 고쳐놨다. 국보146호 청동방울은 당초 강원도에서 출토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혜문 스님은 추적 끝에 강원도가 아닌 충남 논산으로 올바르게 돌려놨다. 안동 도산서원에 심어진 금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것으로 돼 있으나 사실은 안동군수가 심었다는 것도 그가 새롭게 밝혀낸 일이다. 도산서원 준공 당시 박 전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가서 금송을 심었는데 겨울이라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겁을 먹은 안동군수가 몰래 금송을 사다가 심었다는 것. 또 있다. 명성황후가 생전에 쓰던 표범가죽 양탄자의 행방을 찾아내 눈길을 끌었다. 지금까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돼 있던 조선시대 기생 명월이의 생식기 표본과 백백교 교주 머리의 보존 중지 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렇다면 스님이 이런 일을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문화재 제자리 찾기’ 사무실에서 스님을 만나 그 까닭을 먼저 물었더니 ‘환지본처’라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다시 “그래도 꾸준히 그런 일을 벌이기가 쉽지 않을텐 데요.”라고 했다. “누가 그러더군요. 교수나 공무원이 독립운동하는 것 봤냐고 말입니다.”라며 크게 웃는다. 그렇다면 문화재 환수를 위해 그동안 일본에만 40여 차례 오갔는데 경비는 어떻게 조달하느냐고 했다. “다 부처님 것이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에구, ‘도 닦은 스님’에게 괜히 물어봤나 보다. 이렇게 그의 말은 빨랐고 거침이 없었다. 호탕하게 웃는 것도 그랬다. 조선왕실의궤 환수운동은 어떻게 벌이게 됐을까. “2003년 저희 은사 스님인 철안 스님께서 경기도 봉선사 주지로 부임하셨습니다. 철안 스님은 불교문화재에 관심이 많으셔서 봉선사의 관할 사찰 중 27개의 전통사찰에 대한 문화재 현황 파악을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멸실된 문화재의 현황이 그대로 드러나게 됐지요. 예를 들어 현등사 사리구는 삼성미술관 리움이, ‘조선왕조실록’은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파악됐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불법적인 유통경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이에 따라 흩어진 문화재를 제자리로 되돌리려는 ‘제자리 찾기’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탄력을 받은 혜문 스님은 ‘한·일협정 문서공개’와의 연관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본으로부터 1432점의 문화재를 돌려받고 문화재 청구권을 포기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특히 한·일협정 문서는 일부만 공개됐다가 2004년 완전 공개되는 과정에서 과연 1432점의 반환 문화재가 어떤 것들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세세하게 살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짚신, 막도장, 우체부 모자 등 문화재적 가치가 의심되는 것들을 보고 졸속 협상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됐다. “때마침 그 무렵 일본에 공부하러 갔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일본에 있는 것을 알게 됐지요. 신물(神物)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문득 느꼈습니다. 일왕 궁내청에서, 1922년 진상품으로 건너와 일본인의 소유가 되어 버린 ‘조선의궤-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를 봤을 땐 더욱 그랬습니다. 원래의 소장처를 나타내는 ‘오대산’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더군요. 색을 화려하게 배합해 그려진 갖가지 그림은 1895년 일본인에게 죽임을 당한 뒤 무려 2년 2개월에 걸쳐 치러진 생생하고도 슬픈 ‘국장의 기록’들이었습니다.” ‘보인소의궤’란 책이 눈에 들어왔을 때도 그랬단다. 고종 13년(1876), 경복궁 교태전(交泰殿)에서 발생한 화재로 조선의 옥새가 소실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고종은 무위소(武衛所)라는 관청에 옥새와 인장을 새로 제조하도록 명령, 각종 보인 11과(科=개)가 제조돼 고종에게 헌상됐다. 이때의 제작과정을 낱낱이 기록한 종합보고서가 바로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로 이는 옥새 제작에 관한 유일한 자료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한민국 국새’ 제작도 ‘보인소의궤’에 근거해서 제작된다고 한다. 스님은 또 1897년 10월 13일 대한제국의 탄생과 관련된 중요한 의궤인 ‘대례의궤’란 책을 봤을 때도 ‘신물의 부름’으로 울컥했다고 말했다. “명성황후의 죽음은 한·일 간 피로 피를 씻었던 사건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항일의병,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 등 반일운동이 탄생하는 역사적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제가 살고 있는 봉선사와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신물의 부름이 아니겠습니까. 명성황후를 죽인 칼 ‘히젠도’를 후쿠오카에서 봤을 때는 ‘아 이것이 조선의 심장을 찌른 칼이구나’ 하는 생각에 피가 거꾸로 쏟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명성황후를 죽이고 국부검사를 자행한 기록 ‘에이조 보고서’를 입수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는 현재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 가운데 고종의 갑옷과 투구 반환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 조선시대 대대로 내려오던 임금의 투구가 일본에 있다는 것은 여전히 볼모로 잡혀 있다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군대가 싸울 때 적에게 깃발을 빼앗긴 것과 같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스님은 여러번 강조한다. “조선시대 군사권력의 최고 상징인 투구, 정치권력의 최고 상징인 임금의 관모 익선관(翼善冠·높이 19㎝)이 도쿄국립박물관에 아직까지 인질처럼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스님이 던지는 말문마다 조목조목 비장함이 서려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도까지 친일 논쟁만 했습니다. 누가 친일을 했느니 안 했느니 말입니다. 일본에서 들은 얘기지만 2000년 이후에야 직접 도쿄에 와서 ‘우리 문화재 내놓으라’고 일본 외무성을 압박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본 당국은 그런 사람들을 예의 주시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장본인이거든요. 사실 우리가 직접적으로 문화재 환수 문제를 제기한 것은 너무 늦었습니다. 스스로 자기반성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북·일 수교 때 대대적인 문화재 반환을 약속받아야 하는 것도 지금부터 바짝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일본은행에 있는 징용 노무자 공탁금 4조원이나 사할린 강제징용 문제 등도 말입니다.” 그에게 앞으로 남은 숙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50가지 오류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10가지밖에 못 했다.”며 웃는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환구단의 조경과 석등이 일본식으로 돼 있는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도 중국 갑옷과 일본도를 차고 있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조선왕실의궤도 원소장처인 오대산 제자리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칠 무렵 “백백교 교주의 머리가 오늘 화장을 하는데 염불하러 가야 한다.”며 바삐 자리를 떴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혜문 스님은 1998년 대한불교 조계종 25교구 본사 봉선사에 철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01년 부산 해운정사 금모선원에서 진제 스님을 모시고 수선안거를 한 이래 봉선사에서 정진하고 있다. 2004년 일본 교토 유학 중 ‘조선왕조실록’이 도쿄대에 소장돼 있음을 확인한 후 ‘조선왕조실록환수위’를 구성, 반환운동에 앞장섰다. 2006년 9월 ‘조선왕실의궤환수위’를 조직해 4년에 걸친 운동을 전개, 일본 정부로부터 1205점의 문화재를 반환받게 했다. 그 외에도 6·25 전쟁 당시 미군 병사가 약탈했던 ‘표범카펫’의 행방에 문제를 제기, 60년 동안 박물관수장고에 있던 것을 찾아냈으며 보스턴미술관 소장 라마탑형 사리구 반환운동 등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과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 등을 맡고 있다.
  • “담배 끊고 나랏빚 갚자”… 달구벌서 되살리는 선열의 얼

    “담배 끊고 나랏빚 갚자”… 달구벌서 되살리는 선열의 얼

    한국 근대사에서 기부 문화의 효시로 꼽히는 국채보상운동이 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난다. 대구시는 옛 대한제국 국채보상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후세에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5일 문을 연다고 3일 밝혔다. 기념관은 대구시 중구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지하 2층, 지상 2층(연면적 1129㎡) 규모로 지어졌다. 여기에는 국비와 시비 각 20억 1000만원과 국민모금액 7억 8000여만원 등 모두 50억 1000여만원이 들어갔다. 전시관에는 일제 침략의 배경과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과정에 대한 사료와 사진이 비치된다. 또 이 운동을 주도한 김광제, 서상돈, 양기탁, 베델 등 인물 코너도 마련됐다. 항일운동에 관한 도표와 모형도 전시된다. 국채보상운동의 발단은 일본이 한국을 경제식민지화하는 계략에서 비롯됐다. 한일합방(1910년) 3년 전에 일본은 러·일 전쟁의 승리와 을사늑약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정치·군사적 지배권을 확보했다. 일본은 불필요한 차관을 강요했고, 식민지건설 비용을 모두 한국 정부에 전가했다. 1905년부터 1908년 사이 일본에 빌린 부채는 1300만원으로, 이미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에 대구지역의 선각자들은 국권 회복을 위해선 국가채무부터 갚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김광제·서상돈 선생 등은 담배를 끊어 외채를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했다. 1907년 1월 대구 인쇄업체인 광문사(현 중구 수창공원)에서 발기인 대회를 가진데 이어 2월 21일 첫 집회인 대구군민대회를 북후정(대구시민회관)에서 열었다. 거사일 북후정에는 아이들까지 포함해 2000여명의 대구 시민들이 집결, 시위를 했고 경북도 경무부는 이를 무허가 집회로 규정하고 탄압했다. 이 운동은 대한매일신보 등 덕분에 전국 각지와 해외로 확산됐고, 고종황제까지 참여했다. 부녀자들은 은비녀와 가락지 등 패물을 내놓는가 하면 고관들도 비단옷과 가마를 버리고 밥 대신 죽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러나 국채보상운동은 1년 반만인 1908년 일제의 탄압과 방해로 막을 내렸고 목표액인 1300만원에 크게 못 미치는 16만원을 모금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국민의 피와 눈물이 섞인 국권 회복운동은 훗날 3·1만세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 항일운동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준공되면서 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로서 위상을 높이게 되었다. 당시의 흔적과 이를 기리는 상징물이 대구 시내 곳곳에 있다. 기념관이 자리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4만여㎡ 규모의 대형 도심 공원이다. 이 공원은 국채보상운동을 제대로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공원에는 우리 역사상 처음 일어난 여성운동을 기념하는 비석이 서있다. 김광제·서상돈 선생의 흉상도 세워져 있다. 기념관을 가로지르는 도로 이름은 ‘국채보상로’이다. 달구벌대로와 함께 대구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주 도로에 국채보상운동의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이다. 북후정에는 기념비가 서 있고 광문사 자리와 진골목에 국채보상운동을 상징하는 표석이 설치됐다. 대구시 관계자는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대구의 자랑인 국채보상운동을 자세히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그처럼 바라던 통일의 봄 못보고…”

    “그처럼 바라던 통일의 봄 못보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6일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의 유가족에게 조전을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7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조전에서 박용길 장로의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하며 “박용길 여사는 그처럼 바라던 통일의 봄을 보지 못하고 우리 곁을 애석하게 떠났지만 그가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 바친 애국의 넋은 북과 남, 해외 온 겨레의 마음속에 길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장례위 방북 불허 앞서 김양건 북한 아시아태평양위원회 위원장은 26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 팩스를 보내 박 장로의 장례에 대해 협의하자며 유족과 장례위원회 관계자의 개성 방문을 요청했지만 통일부가 방북을 불허했다. 장례위는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통일부의 조치에 유감을 표명했다. 장례위에 따르면 북측의 개성 방문 요청 사실을 통일부에 알렸으나 통일부는 ‘조문단이 서울로 온다면 정중하고 안전하게 편의를 보장하겠지만, 북이 내려오지 못한다면 개성이든 다른 곳이든 일체의 접촉을 허용할 수 없다.’며 방북을 허락하지 않았다. 장례위는 이 같은 내용을 북측에 전했다. 북측은 이에 대해 “준비시간 관계상 개성으로 갈 수 없게 됐다.”는 답변을 보냈다. 북측은 박 장로에 대한 조의 표시나 조문단 파견 등을 위한 협의를 염두에 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박 장로는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남측준비위 명예대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을 지내며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또 류우익 통일부 장관 취임 이후 이번 장례 접촉 제의를 통해 남측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떠보기 위한 포석이 깔린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장례식 소박하고 검소하게… 노제 생략 김상근 장례위원장은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아쉽다.”며 “장례위와 유족의 입장을 정리해 북측에 전하겠다.”고 말했다. 통일부 측은 “유가족이나 장례위 관계자가 방북해 북측 관계자를 만나는 것은 전통적인 장례 예법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박 장로의 장례식은 28일 오전 9시 30분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 위치한 한신대 신학대학원 예배당에서 ‘겨레장’으로 치러진다. 겨레장 명칭은 ‘통일의 봄길’로 정해졌다. 장례식에서는 고은 시인이 조사를 낭독하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등이 조사를 한다. 소박하고 검소하게 하겠다는 유가족들의 바람에 따라 운구, 영정 차량은 없이 이동하며 노제 또한 생략한다. 장례식을 마친 뒤 수유리에 있는 통일의 집을 거쳐 오후 1시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문익환 목사와 합장된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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