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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1919-2019, 기억·록’, 김연아가 전하는 ‘유관순 열사’ 이야기

    MBC ‘1919-2019, 기억·록’, 김연아가 전하는 ‘유관순 열사’ 이야기

    삼일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MBC 특별기획 ‘1919-2019, 기억록’이 오늘(7일)부터 본격적인 방송에 들어간다. ‘1919-2019, 기억록’은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대표하는 100인의 인물을, 이 시대 대표 샐럽 100인의 ‘기록자’를 통해 새롭게 조명하는 3분 캠페인 다큐 프로그램이다. 비와이의 프롤로그와 김연아의 0회차 ‘무명(無名)’에 이어 오늘부터 1회차 방송이 시작된다. 1회차 기록자로 나서는 김연아가 재조명하는 첫 번째 인물은 ‘유관순 열사’다.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사 중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두 가지 행적을 통해 유관순 열사를 재조명할 예정이다. 김연아는 프로그램 촬영에 앞서, 제작진과 함께 유관순 열사에 대한 기록을 검토하고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하는 등 열의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일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MBC 특별기획 ‘1919-2019, 기억록’은 MBC를 통해 수시 방송되고, ‘기억록’ 홈페이지를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돌 기념 광명시, ‘33인 청소년 100일간의 여정 프로젝트’ 추진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돌 기념 광명시, ‘33인 청소년 100일간의 여정 프로젝트’ 추진

    경기 광명시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번 사업은 과거 100년을 기억하고 앞으로 100년을 시민과 함께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시민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달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해 시민 100인으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 광명시 100인 위원회’가 구성된다. 공식 슬로건도 7일부터 14일까지 시 공식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시민 의견을 받아 결정할 예정이다. 시는 1919년 3월 광명에 거주하던 배재고보 학생과 지역 청년들이 경찰주재소를 습격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발상지가 현재 온신초등학교로 3·1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해마다 이곳에서 기념식을 치러왔다. 시는 올해도 온신초에서 기념식을 열고, 많은 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시민회관 대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겨 만세 퍼포먼스와 합창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올해부터 독립유공자 유족들을 위해 국외 항일운동지역 방문을 추진한다. 독립유공자 배우자와 자녀들이 4박5일 일정으로 중국 상해 임시정부 청사와 홍커우 공원, 서안의 광복군 총사령부 주둔지, 중경 임시정부 청사 등을 직접 방문할 예정이다. 조국독립의 의미를 되새기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또 독립유공자 공적을 기리기 위해 항일운동 활동사진과 편지, 유족 인터뷰 등으로 구성된 ‘독립유공자 발자취’ 책자도 발간된다. 책으로 소통하는 어린이 독서골든벨과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등 우리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한 강의도 진행된다. 무엇보다 ‘33인 청소년 100일간의 여정 프로젝트’가 눈에 띈다. 이 프로젝트는 청소년 33명을 모집해 100일 동안 3·1운동지인 종로와 아우내장터,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역사를 돌아볼 예정이다. 기념식 당일에는 만세 퍼포먼스와 3·1운동 100주년 기념 독립선언문 낭독을 추진한다. 특히 학생이 중심이 되므로 3·1운동의 가장 큰 계기가 됐던 2·8 독립선언 의미도 돌아본다. 이 밖에 공모와 참여·캠페인으로 나눠 시민예술활동지원 사업을 운영한다. 시민예술창작공모 사업은 시나리오와 시·수필 등을 공모해 콘텐츠를 바탕으로 창작공연을 기획해 연속성을 갖도록 했다. 광명 1인1악기 사업을 통해 구성된 생활악기오케스트라가 경축행사에서 오프닝 공연을 맡는다. ‘헌 태극기를 새 태극기’로 캠페인은 가족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가정마다 헌 태극기나 어린이가 만든 태극기를 새 태극기로 교환해주는 것이다. 시는 각 부서와 산하기관 별로 운영되던 기념사업을 시 총무과와 여성가족과, 복지정책과 등 관련된 전 부서와 광명문화재단, 광명문화원, 청소년재단 등 산하기관이 포함된 기념사업추진단을 꾸려 이번 사업을 준비해 왔다. 지난해 11월부터 효율적이고 부서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시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뤄낸 자주독립의 역사를 되새기고 기억하기 위해 올 광복절에 ‘광명평화의 소녀상 백일장’을 개최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알리기 위한 UCC공모전도 진행할 계획이다. 박승원 시장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는 앞으로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가 살아갈 100년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때”라며 ‘시민이 주인인 자주국가’라는당시 시대정신을 계승해 진정한 자치분권과 시민주권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금요일의 서재]북한 전문가들이 말하는 지금의 북한과 통일, 그 이후

    [금요일의 서재]북한 전문가들이 말하는 지금의 북한과 통일, 그 이후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관련 책은 꾸준히 나온다. 북한 관련 책 저자는 크게 세 부류다. 탈북 출신이거나 북한에 많이 가봤거나, 북한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한 이들. 이번 주 ‘금요일의 서재’는 신간 가운데 탈북 출신 기자가 쓴 ‘조선 레볼루션’, 북한에 많이 드나든 목사가 쓴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 북한 전문가가 쓴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를 꼽았다. ●2029년 통일된다면=‘조선 레볼루션’(서울셀렉션)은 탈북 출신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가 10년 후인 2029년을 예견하며 쓴 책이다. 저자는 북한 최고 교육기관인 김일성대학교를 졸업했지만, 탈북해 2003년부터 기자로 일하며 북한 관련 기사와 칼럼을 쓰고 있다. 저자는 통일 후 김정은 체제 붕괴를 가정하고 21세기 북한을 이끌어갈 선진 시스템 구축 방법을 모색한다. 저자는 북한 체제가 불안함에도 여전히 유지되는 이유에 관해 “철저한 수용소식 체제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통일은 민중봉기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며, 우리가 이에 맞춰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한과 한국에서 살아본 저자는 통일 이후 경제뿐 아니라 정치, 행정, 사법, 교육, 국방, 복지, 언론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의견을 내놓는다. 한국의 제도와 시스템이 북한에 고스란히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 적절한 방안을 모색한다. 예컨대 정치 체제는 북한이 기존 정치체제 대신 전문가들이 이끄는 위원회 체제를 예상하고, 이에 맞춰 필요한 준비가 무엇인지 강조하는 식이다. 의견 일부는 다소 이상적인 측면이 있지만, 다른 북한 관련 책보다 나름 전문성을 갖췄다. ●평양, 가보니 달랐다=미국에서 NK Vision 2020을 설립해 남과 북을 왕래하는 통일운동가 최재영 목사가 직접 북한을 수차례 오가며 겪은 일을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가갸날)로 엮었다. 저자는 재미교포로 지난 10년 동안 북한을 가장 빈번히 방문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분단 이후 최초로 남과 북의 국립묘지를 모두 탐방한 사람’, ‘분단 이후 북측 교회에서 가장 많이 설교한 사람’, ‘분단 이후 현존하는 북측 종교시설을 가장 많이 방문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저자는 우리가 아는 북한이 최근 들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변화고 있다고 설명한다. 평양 시내에 자가용 물결이 날로 늘어가며, 심지어 상습 교통정체가 일어난다는 것. 결국 폐쇄회로(CC)TV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한 음식점은 메뉴판으로 태블릿PC를 활용한다. 이탈리아식 피자집(별무리), 비엔나식 커피 프랜차이즈점(Helmut Sachers Kaffee)도 문을 열었다. 북한 주민은 스마트폰(아리랑)으로 로동신문을 읽고 게임을 즐긴다. 보급된 휴대전화의 수효가 600만 대에 이른다.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보내고 화상통화를 한 저자의 이야기, 박정희 대통령을 다룬 북한 TV드라마, 한국전쟁에서 월북한 소설가 이광수가 언제 사망하고 어디에 묻혀 있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 등이 소소하게 재밌다. ●전문가의 평양 안내서=통일이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통일 한국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정세현과 외교·안보전문가 황재옥, 정청래 전 국회의원이 모여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에서 논한다. ‘평생 통일을 생각해온 최고 전문가들이 그린 통일 한국의 청사진이자, 평화의 한반도에서 신나고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충실한 안내서’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온다. 세 명이 공동으로 쓰느라 한 주제가 아니라 여러 주제로 묶였다. 1부 ‘가보자’, 2부 ‘해보자’, 3부 ‘만나보자’, 4부 ‘알아보자’로 구성했다. 1부에서는 평양 시내를 ‘국빈 코스’로 안내한다. 정청래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기를 통해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색다른 경험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평양에서 치킨집을 운영했던 사업가와 남북경협 실무자 인터뷰가 실렸다. 북한에서 사업한다면 어떤 것이 성공할지에 관한 내용을 주목해봄직 하다. 3부에서는 평양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듣는 ‘평양 시민이 사는 법’,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김창수 사무처장이 말하는 남북 교류 이야기가 담겼다. 4부에서는 정세현과 황재옥이 한반도 문제 50년 역사를 분석하고, 미래 50년을 전망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항일운동가 베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니 자랑스럽다”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항일운동가 베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니 자랑스럽다”

    “베델 역사 몰랐다는 게 조금 부끄러워 생가라는 사실 알고 독립활동 공부해” 외관은 1860년대 원형 완벽하게 보존 보훈처, 수집된 자료 통해 막바지 고증 확인되면 국외 현충시설 지정해 관리“베델의 생가가 제 집이란 소식을 접하고 베델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브리스틀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신 분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게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항일언론운동을 펼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생가 현 주인인 아서 쿡(71)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영국 브리스틀에 위치한 자택이 베델의 생가였다는 사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항일운동가 베델이 우리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브리스틀은 런던에서 서쪽으로 190㎞ 떨어진 항구도시다. 베델 생가는 쿡과 부인 조(70)가 1999년부터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월 서울신문의 취재<2018년 8월 10일 27면>로 자신의 집이 베델 생가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 뒤 도서관을 다니며 베델의 독립활동을 공부했다고 전했다. 베델의 생가가 위치한 ‘에저턴 로드’(Egerton Road)는 산업혁명으로 브리스틀에 공업이 발달하고 인구가 늘자 조성됐다. 해당 주택은 1860년대 건축됐다. 현지에서 확인한 주택의 외관은 건축 당시 원형이 대부분 그대로 보존됐다. 단독주택 2개를 붙여서 지은 ‘이호연립주택’(semidetached house)으로 2층 집이었다. 현재도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 형태다. 1800년대 후반에는 주로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 거주했다.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외관과 달리 내부는 거주를 위해 수차례 리모델링을 했기 때문에 당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축 당시 있었던 벽난로 등은 사라졌고 주택 확장 공사로 출입문의 위치도 바뀌었다.보훈처 관계자들은 이날 베델의 생가를 고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쿡이 보관하고 있던 지번 부여 안내서, 마을이 들어설 당시의 지적도 등을 확인했다. 지번 부여 안내서에는 1900년대 초 브리스틀시에서 지번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베델의 생가도 이때 ‘54’라는 지번을 받았다. 또 브리스틀시 기록보관소(아카이브)를 찾아 당시 인구실태조사 자료 등을 확인했다.보훈처는 이번 1차 현장 점검 결과, 베델의 생가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후속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과거 정진석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는 현지에서 찾은 ‘브리스틀 인명록’(1872년판)을 통해 베델의 출생지 주소(Egerton villa, Egerton Road, Horfield)를 특정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영국 주소 체계와 달라 생가를 직접 찾아가지는 못했다. 이후 지난 8월 서울신문이 브리스틀시 공무원의 도움으로 베델이 1872년 태어난 주택(54 Egerton Road, Bishopston, Bristol)을 찾았다. 보훈처는 향후 베델의 생가임을 완전히 확인하면 향후 이곳을 국외 현충 시설로 지정해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영국에 있는 국외 현충 시설은 이한응 열사의 순국지 등 총 네 곳으로 베델의 생가가 지정되면 다섯 번째가 된다. 유럽의 항일운동 역사 유적지는 희귀한 데다 항일언론운동의 주축이었던 베델이 태어난 곳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게 보훈처의 설명이다. 현충 시설로 지정되면 ‘독립유공자의 생가’를 표시하는 안내판을 부착하고 더 나아가 정부가 매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 교수도 “(베델 생가의 현충 시설 지정은) 환영할 일”이라며 “향후 시설을 어떻게 관리할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가의 현재 주인인 쿡은 “나도 지역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쳤기 때문에 역사에 관심이 많다”며 “베델이 한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했지만 크게 본다면 그의 일생이 영국이나 일본 등 당시 만연하던 제국주의에 어떤 의미를 전달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브리스틀에 많은 한국인 유학생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큰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역사를 영국 사람에게 제대로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감회를 전했다. 브리스틀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캠페인 성금 주요 기부자 명단 총 모금액 4112만 702원(최종) ▲개인 이상우 외 203명 ▲단체 대한국인, 스타키 그룹, 복주요양병원, 대구금오회, 광주제일고 등
  • [이사람 e향기] “태양광 에너지는 국가산업 전략 수종… 에너지 자립국으로 거듭나자”

    [이사람 e향기] “태양광 에너지는 국가산업 전략 수종… 에너지 자립국으로 거듭나자”

    “태양광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가 원자력과 석탄에너지를 제치고 우리나라 미리 에너지 정책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과 바람직한 미래 에너지 정책 설계를 위해 한국원자력학회에 공동 콘퍼런스를 정식 제안합니다.” 정우식 (사)한국태양광산업협회 부회장은 최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이같이 밝혔다(관련 기사 34면). 에너지원별 비중을 ‘현재보다 늘려야 한다’는 응답을 기준으로 태양광 에너지와 바이오에너지, 풍력에너지 등 재생에너지는 각각 67.9%, 66.6%, 61.1% 등인 반면 최근 논란이 된 ‘원자력 에너지’는 25.0%에 그쳤다. 정 부회장은 또 “미국 원자력에너지연구소(Nuclear Energy Istitute) 자료에 의하면 1기가와트 설치에 태양광 에너지는 1060명, 원자력발전은 500명, 석탄발전은 190명, 가스발전은 50명 정도 고용 창출이 된다”며 “검증된 태양광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를 국내에서 자체 생산해 ‘에너지 자립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양광 에너지 등을 국가산업의 전략 수종으로 보고 그에 맞는 법률적 지원과 산업육성정책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새해 태양광지도사 민간자격증 사업을 실시해 인력양성의 물꼬를 트겠다”며 “북한과 태양광 에너지 협력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협회는 지난 10월 중국에서 북측 관계자와 만나 태양광 에너지 협력을 위한 사전준비 작업을 논의했다. 현재 100조원인 세계 태양광 시장이 2~3년 후 150조원 이상으로 폭발 성장할 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데다 북한 주민들의 전기복지 제공과 북한산업 활성화를 위한 전력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만인의 행복으로부터 내 자신의 행복을 찾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삶을 살고자 한다는 정 부회장. 한국의 태양광산업이 명실상부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열어가는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데서 펼치게 될 활약을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서울신문 기획특집(서울플러스)과 공동으로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태양광 관련 대국민 여론조사를 하셨습니다. -태양광 에너지에 대한 국민들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일차적으로 태양광산업협회의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근거자료가 되겠지만 나아가 정부의 태양광산업과 재생에너지 정책에도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지금까지 태양광 에너지를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여론조사 진행은 몇 안 되는 사례로 기억합니다. 새해에는 분기별 여론조사로 정례화시켜 국민의 뜻을 적극 반영할 계획입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로 보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원자력과 석탄에너지를 제치고 우리나라 미래 에너지 정책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협회에 앞서 원자력학회의는 ‘원자력’을 중심으로 지난 11월 19일 여론조사를 발표했습니다. -원자력학회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에너지정책과 바람직한 미래 에너지 정책 설계를 위해 원자력학회와 공동 콘퍼런스를 정식 제안합니다.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직접 소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태양광과 원자력’은 상충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가요. -우리나라 에너지는 석탄·원자력·재생에너지·LNG 분야로 4축입니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발생하는 화석연료는 전 세계적으로 이미 문제 제기가 많습니다. 줄여야 한다는 확고한 흐름입니다. 우리의 미래 세대와 나라를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전, LNG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재생에너지가 산업뿐만이 아니라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재생에너지가 전체 에너지를 감당할 만큼 아직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생에너지가 성장할 동안 국가에너지 체계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보완해 주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현 정부 정책에서 알 수 있듯이 원자력발전은 2083년까지는 재생에너지와 함께 가야 할 주요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양광산업 10대 쟁점’이란 주제로 기자회견을 통해 대표적인 가짜 뉴스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9월부터 태양광에 관한 가짜뉴스가 증폭되어 왔습니다. 가짜뉴스 사례를 보면,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에 대한 오해로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어떤 특정 언론이나 특정 이해 세력을 대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과장, 침소봉대한 언론 보도를 통해서 진실과는 거리가 먼 기사들을 양산하고 있어서 기자회견을 통해 진실한 보도를 해줄 것을 요청 드리고자 했습니다.→현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2030년에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이 EU는 평균 32%, 독일은 2030년 50%~60%에 해당됩니다. 한국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재생에너지에 대한 홀대 속에 그 비율이 턱없이 낮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발표한 3020정책 자체는 아주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계적인 추세에 비하면 상당히 미흡한 게 사실입니다. →태양광산업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제되어야 할 규제는 무엇인가요. -태양광을 설치할 때, 지자체에서 도로 이격거리 제한으로 인해 100m 많게는 900m 이내 떨어진 곳은 인허가가 불허되는 제한 규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산지법시행령의 경우, 원자력이나 화석원료발전소는 산지사용 부담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데 태양광만 산지 전용료뿐만 아니라 20년간 사용 후 원상 복귀시켜야 한다는 규제가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를 20년 사용하고 원상 복귀 시켜야 한다는 조항은 없지 않습니까? 화석발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태양광만 특별히 20년 후 원상 복귀를 시켜야 되어야 하는지요? 이런 규정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 있는 것이고 태양광에 대한 차별정책입니다. 그리고 공장이나 주택 등 건축허가 시 경사도 20°도 까지 신축할 수 있으나 태양광만 15°도 이상은 설치할 수 없습니다. 또 주택, 공단, 골프장 등 산지 훼손 측면이 있음에도 이에 대한 규제가 없는데 오히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이산화탄소를 절감하는 효과가 증명된 태양광에 대해서만 특별 규제를 하는 것은 과도하기도 하고 형평성에 어긋난 차별규제라 생각합니다. 추가로, 수상태양광을 하려고 해도 5㎞ 이내에 주민들에게 모두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문제라든가 이런 것도 과한 규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태양광산업에 대한 세계적인 추세는 어떻습니까. -전 세계 전력에 대한 투자현황을 보면 태양광·풍력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85~90%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원전, 화석발전이 10% 내외입니다.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에 85%~90%를 투자한다는 것은 다른 기존 에너지원 보다 훨씬 경제성, 효율성, 안정성, 환경성 등이 종합적으로 검증이 되었기에 투자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이미 태양광 생산단가가 원전, 화력발전, 가스보다도 훨씬 저렴해졌다는 것입니다. 미국, 중국, 인도, 독일, 영국이 2017년을 기점으로 태양광발전단가가 원전, 화석원료, 가스보다도 저렴해져 있는 상황이고 전 세계적으로는 2023년~2025년에 그리드 패리티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리드 패리티란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단가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존 화력발전 단가가 동일해지는 균형점을 말합니다. →부회장께서는 ‘태양광산업을 국가전략 수종업종’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오셨는데요. -현재 한국의 에너지 사용량은 세계 7위~10위로 에너지 소비대국입니다. 경제 규모는 세계 12위 경쟁대국이고요. 에너지 생산을 위해 99% 가까이 원료를 수입하고 있어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패권경쟁이 치열해지고 에너지를 자원화, 무기화하려는 추세들로 인해 에너지 수입 자체에 불안정성도 높아가고 있어요.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이 750만 인구의 영남지역으로 만약 이 지역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회복할 수 없는 국가적, 세계적 재앙이 될 것입니다. 이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네요. 또한 4차 산업혁명과도 깊은 연관이 있고 현재 세계적으로도 폭발적인 기술혁신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앞으로 우리나라가 먹고 살 수 있는 신성장 동력도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분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국제 정세에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의 태양으로부터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환경적으로 검증된 에너지를 국내에서 자체 생산하여 ‘에너지 자립국가’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에 정부는 태양광산업을 국가산업의 전략 수종으로 보고 그에 맞는 법률적 지원과 산업육성책이 필요합니다. →태양광산업이 일자리 창출, 고용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 원자력에너지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1기가와트 설치에 태양광 에너지는 1060명, 원자력은 500명, 석탄발전은 190명, 가스발전은 50명 정도 고용 창출이 된다고 합니다. 산업생태계를 살펴보면, 태양광연구, 부품 소재 제조업, 설치시공, 유지관리, 발전사업자, 전력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는 빅 데이터, 전력을 생산·판매할 수 있는 프로슈머가 활성화될 것입니다. 특히, 전력 거래 프로슈머는 블록체인기술 기반으로 형성되고, 규모가 큰 태양광발전소는 드론을 통해 관리되는 등 4차 산업과 관련한 다양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합니다. 유럽의 경우, 태양광 제조업이 14%, 유지관리, 발전사업, 설치시공 등이 86% 일자리가 창출되는 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협회에서 준비하는 인재양성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내년 초부터 실시하려는 사업으로 민간자격증 사업입니다.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을 최소한의 기본 교육을 통해 준비하고 투입하고자 합니다. 우선, 태양광지도사자격증 취득을 통해 인력양성의 물꼬를 튼 다음 점차 전문적 영역으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협회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십시오. -지난 참여정부 시절 재생에너지산업에 드라이브를 건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흐름에 재생에너지의 핵심인 태양광산업정책을 생산하고 태양광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협회가 있어야 된다는 공감대 속에 2008년 12월에 협회가 설립되고, 2009년 6월에 사단법인으로 공식 등록했습니다. 현재 세계 1위 기업인 한화를 비롯해서 LG,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 신성이엔지 등 태양광 제조기업을 중심으로 설치시공기업들, 한전을 비롯한 발전사업자들도 회원사로 가입하여 65개 회원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협회 차원에서 북한과 교류협력도 준비하고 계신가요. -태양광업계는 중국의 저가 경쟁에 의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데요. 남북경협이 제대로 된다면 중국을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우수한 기술력에 저렴한 원가경제력이 확보되면 현재 100조원에서 2~3년 후 150조원 이상으로 폭발적 성장 할 세계태양광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협회는 지난 7월에 태양광경협TF를 구성해서 경협을 위한 기초자료수집, 북측의 재생에너지 관련 법률, 정책 등 연구를 진행했고 지난 10월에는 중국에서 북측 관계자를 직접 만나 경협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을 논의한 상태입니다. 북측은 발전량 자체도 부족하지만 전력계통망이나 설로가 낙후되어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북측의 전력망을 신설하려면 10년 이상 소요됩니다. 태양광은 소규모로도 생산해서 공급이 가능해 대규모로 건설해도 1~2년이면 가능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전기복지 제공과 북한의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전력 문제 해결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학창시절 동국대 총학생회장 이후 지금까지 한길로 살아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협회 부회장이라는 중책은 어떤 인연으로 맺게 되신 건가요. -지난 30여년 동안 저의 일관된 삶은 내 자신의 삶보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삶, 내 자신의 행복보다는 만인의 행복으로부터 자신의 행복을 찾는 여정입니다. 학생운동, 시민운동, 통일운동이 그렇습니다. 특히, 불교환경연대 활동 당시 전국의 모든 사찰에 태양광을 비롯한 친환경 에너지를 설치하려고 사업을 준비했어요. 당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저지하는 것이 중심 운동으로 전개되면서 하지 못했던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연이 되어 태양광산업협회에 부회장으로 일을 하게 된 것은 못다 이룬 꿈을 한번 펼쳐볼 수 있는 기회를 하늘이 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 당선을 위해 불교계에서 큰일을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저는 동국대학교로 치면 약 30여 년간 인연을 이어 온 불교계 일을 대한불교청년회 중앙회장을 끝으로 마무리하고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국민들과 같이 저 역시 탄핵 이후보다 민주화되고, 보다 국민의 삶이 청정해질 수 있는 정부가 수립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1년간 준비한 전국의 500명 불자 조직을 통해 새 정부를 만드는데 열심히 뛰었습니다. 불교계 모든 종단이 민주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불교계는 약간 보수적인 후보를 지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교계가 촛불정신을 받은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데 노력하자는 취지에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돕게 되었어요. 불교계 5대 종단의 대표 스님들과 문재인 대통령 후보 내외분과의 자리를 만드는 등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합니다. →마지막으로 삶의 철학이라고 할까요. 개인적인 포부는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 태양광업계가 매우 어렵습니다. 태양광산업이 명실상부한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열어가는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태양광 기업들의 어려움이 해결되고 태양광 종사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산업과 국민을 위해 역할을 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게 일차적인 포부입니다. 삶의 철학은 ‘만인의 행복으로부터 내 자신의 행복을 찾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삶을 살고자 합니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정우식 부회장은 1969 전남 보성 출생 1993 동국대학교 철학과 졸업 경력 1991 서울 동국대학교 총학생회장 2006~2010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2011~2013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청년위원장 2016~2017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민주평통 자문위원 대한불교청년회(KYBA) 중앙회장 조계사청년회장 연꽃 생협 이사장 DMZ평화생명동산 이사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이사 경부운하저지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4대강 범국민대책협의회 집행위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운영위원 한국종교연합 공동대표(현)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회 민족대표(현) (사)평화문화재단 이사(현) 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 민주당 중앙당 교육연수원 부원장 서울특별시당 청년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직능특보 박원순 시장 후보 조직특보 조희연 교육감 후보 종교본부장 저서 : 목민심서, 하루 첫 생각 상훈 :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장상(2001),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2006),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상(2009), 통일부장관상(2013)
  • ‘임을 위한 행진곡’ 세계 민중 가요로 널리 울려 퍼진다

    ‘임을 위한 행진곡’ 세계 민중 가요로 널리 울려 퍼진다

    동남아선 민주화운동 상징곡처럼 등장 2022년까지 표준 가사 마련해 번역·배포 창작뮤지컬 등 문화콘텐츠 제작·보급도‘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민중가요로 자리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세계 민주주의 상징곡으로 거듭난다. 13일 광주시에 따르면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비 9억원이 내년도 정부 예산에 반영됐다. 곡을 기반으로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제작·보급, 글로벌 브랜드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광주시는 2022년까지 5년간 총사업비 83억원(국·시비 각 50%)을 투입한다. 시는 우선 ‘임을 위한 행진곡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고 2020년 5·18 40돌을 기념해 국내외 순회공연을 추진한다. 또 홍콩·대만·중국·캄보디아·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국가별로 제각각 불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표준화하기로 했다. 이어 2022년까지 표준 가사를 마련하고 가사와 배경, 과정 등을 세계어로 번역해 배포한다. 이 밖에 아시아, 유럽 등 민중가요 분야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아카데미, 워크숍 등 국제학술행사도 추진한다. 시와 광주문화재단은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를 위해 올해부터 관현악곡 제작, 국내외 연주회 개최, 창작 관현악곡 작품공모 등을 진행해 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월 광주의 고통과 시민의 결연한 의지를 녹인 민주화의 상징 노래로 불려 왔다. 5·18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항쟁 마지막날인 27일 옛 전남도청에서 최후를 맞은 윤상원과 지역 노동운동가 박기순(1978년 사망)의 ‘영혼 결혼식’(1982년 2월)에서 처음 등장했다. 소설가 황석영이 통일운동가 백기완의 장편시에서 일부를 차용해 가사를 썼고, 전남대 출신 김종률이 곡을 붙였다. 이후 ‘5월 투쟁’과 시위 현장에서 으레 등장했다. 태국·말레시아·대만 등 동남아 곳곳의 민주화 운동에서도 불리면서 세계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노래로 여겨졌다. 보수정권 시절 5·18 기념일마다 참석자 제창 여부를 놓고 숱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성동 ‘뚝섬항일운동’ 아시나요

    성동 ‘뚝섬항일운동’ 아시나요

    서울 성동구는 지난 4일 구청 8층 대회의실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발족식을 개최했다고 9일 밝혔다. 성동구는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주민들과 함께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준비위원회를 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준비위원회는 역사분과, 종교분과, 문화분과, 구민참여분과 총 4개 분과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역사분과는 뚝섬항일운동 등 지역의 항일운동 발자취를 찾고, 강연 등을 통해 3·1운동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종교분과에선 지역 내 종교계 참여를 유도하고,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등 집회를 연다. 문화분과에선 3·1절 100주년 기념 주간을 지정, 사진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구민참여분과에선 태극기 퍼포먼스, 태극기 달기 운동 등 독립운동 정신을 기릴 여러 행사를 추진한다. 구 관계자는 “행사 기획부터 준비, 진행까지 관이 아니라 주민 주도로 이뤄진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 구 뚝섬 지역에서도 항일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는 점을 구민들에게 널리 알릴 것”이라고 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3·1운동은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으로 진행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평화독립운동이자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점”이라며 “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구민 모두가 역사적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기념행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민주노총 끊임없는 혁신·반성 통해 국가경영 주체돼야”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민주노총 끊임없는 혁신·반성 통해 국가경영 주체돼야”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저는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 농가부채만 늘어나는 농민들, 전세금 폭등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고통과 억눌려 왔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여기 섰습니다.” 2002년 16대 대선,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양자 대결로 압축됐던 대선의 경제 분야 TV 토론에서 이름조차 낯선 한 후보의 모두발언은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IMF 환란은 극복했지만, 정작 서민 중산층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뼈아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원한 노동자이자 진보 정치인’ 권영길(77)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 겸 민노당 전 대표는 그해 대선 후보로 나서 95만표 남짓의 득표를 올리는 데 그쳤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진보정치 정책과 노선을 성공적으로 알렸다. 이후 17·18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과 함께 진보정당이 한국에서 자리잡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2013년 정계 은퇴 뒤 암 투병을 딛고 최근 사단법인 ‘평화철도와 나아지는 살림살이’(이하 평화철도) 이사장으로 남북철도 연결 등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진료차 경남 창원 자택에서 서울로 올라온 권 이사장을 지난 28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남북철도운동에 대해 설명해달라. -2012년 18대를 마지막으로 국회의원(경남 창원성산, 노회찬 전 의원이 같은 지역구에서 20대 의원으로 당선)직을 그만뒀다. 평등 평화 통일이라는 신념을 범국민운동으로 전개하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하고 의원직을 마감했다. 그러나 2014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자가면역체계 이상이 발견됐다. 합병증으로 설암 수술 등을 받고 아직 회복 단계다. 평화철도는 남북철도를 연결하는 실사구시적인 평화운동이다. 평화가 이뤄져야 통일이 이뤄지고, 통일이 돼야 영구평화 체계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의 지원 등은 퍼주기 논란이 벌어진다. 하지만 철도를 깔자는 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다. 이를 위해 휴전선 철조망을 걷어내 평화의 철도를 우리 손으로 만들자는 취지다. 철도 건설에 쓰이는 아스팔트 침목은 1개 10만원이다. 여기에 한 사람이 1만원씩 내서 내 손으로 평화의 침목을 깔자는 것이다. 100만명이 참여하는 ‘침목깔기 1만원 기증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평화철도 공동대표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맡는다. 한반도 평화를 만드는 남북철도 연결에 노동계가 앞장선다는 것이다. 경남 창원의 현대로템은 열차를 만드는 회사다. ‘우리 손으로 제작한 열차가 북녘을 넘어 유럽까지 달린다’는 취지에 공감해 노조 조합원들이 모두 동참했다. 개신교와 불교, 가톨릭 등 종교계도 모두 참여하기로 했다. →남북 경제교류 확대는 한계에 봉착한 우리 경제의 돌파구도 된다. -집이 있는 경남 창원은 조선과 기계공업이 주력 산업이다.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이라 지역 경기가 엉망이다. 얼마 전 목욕탕에 갔더니 어떤 분이 ‘문재인 정부는 통일 정책은 잘 하는데…’라며 얼버무리더라. 그래서 현재의 경제 난국은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겪고 있고,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인 문제라 현 정부를 마냥 탓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한국 경제는 돌파구가 안 보인다. 수출의존형이라는 특성은 그대로인데 해외에서 물건이 안 팔리는 걸 어쩌겠나. 더구나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은 앞으로도 확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더이상 중국의 부상을 용인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격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지속가능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고, 이는 남북 경제공동체가 될 것이다. 남북철도 연결 혜택의 8할은 우리 쪽에 돌아온다. 금강산이나 개성 등 각종 관광이나 물류 등 경제적 효과가 막대하다. 남북철도를 막는 건 대북제재가 아닌 대남제재가 되는 게 결국 이런 이유에서다. →어느 철도를 연결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나. -경의선은 이미 연결돼 있고, 동해선 복원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평화철도는 경원선 복원에 집중할 생각이다. 경원선은 서울에서 백마고지까지 연결돼 있다. 북쪽은 평강 이북까지는 이어져 있다. 백마고지와 평강을 연결하면 된다. 거리도 27㎞ 정도로 비교적 짧다. 침목 설치 비용으로 50억원이면 충분하다. 북한의 원산 갈마관광단지 등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접근성이 갖춰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원선 복원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만 남북 다 군사적 요충지를 지나야 한다. 갈마관광단지를 살리는, 경제부국을 만들기 위한 지름길이라고 북측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평화의 길을 앞당기는 것이다. 몸이 좀 추슬러지면 북한도 방문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 등을 놓고 논란이 많다.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를 하기 위해 마련된 기구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의 목표와 방향 설정 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출범한 게 문제다. 최저임금이나 탄력근로제 등 단편적인 의제에만 매달리니 정상적인 논의가 되기 어렵다. 독일, 네덜란드 등은 우리보다 앞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복지제도 확충, 무상교육 무상보육 등 사회보장 정책을 합의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노조가 국가 권력과 함께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노조는 그런 걸 하는 조직이 아니다’라고 여긴다. 정부도 사회도 심지어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게 근본적인 문제다. 예를 들어 무상보육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에 아동수당만 하더라도 국회에서 예산 싸움만 하고, 그러니 정치권이 신뢰를 얻지 못한다. 우리는 경제 규모 10위권의 국가이지만 교육이나 의료 등은 60위권 국가들만도 못하다. 중산층 서민들이 내는 세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합리적인 재원의 배분까지도 사회적 대화에서 논의가 돼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대화의 틀을 만들고 풀어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아직 절반 이상 남아 있다. →민주노총이 대기업 귀족노조를 대변한다는 비판도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호주와 영국의 노조들이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는 파업을 결의했다. 그러나 호주와 영국에서는 ‘당연히 노조가 할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노조는 자국은 물론 외국의 민주화와 인권 상황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출범 당시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민주 및 인권 신장 등 사회개혁 투쟁을 내걸었던 것도 그런 취지에서였다. 언론노조나 사무금융노조, 금속노조 등 모든 산별노조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개별 노조들이 어느 순간 단위노조 투쟁에 주력하고, 그게 중점적으로 부각된 측면이 있다. 한 대기업 노조 간부가 ‘수십년간 노동운동을 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조합원 자녀 대학 학자금 지원을 따낸 것이다. 개별 회사의 학자금 재원들을 모아 우리나라 전체 대학생의 개별 학자금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민주노총이 움직였어야 했다’고 말하더라. 민주노총 역시 개별 사안에 몰두하다 보니 사회적 역할은 묻혀버렸다. 탄력근로제만 해도 (대기업 중심인)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닌 중소기업의 비조합원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노조가 없는 전체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노조가 탄력근로제를 반대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만 하더라도 일부 조합원의 불만을 설득해가면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이런 과정은 생략되고 민주노총이 조직 이기주의로 비춰지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언론 탓을 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혁신과 자기 반성을 통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히 정부에 반대만 하는 게 아닌 국가 경영의 주체가 돼야 한다. 자기 희생을 통한 대안을 공격적으로 제시해야 민주노총도 살고 대한민국도 살 수 있다. →현 정부와도 노동계가 각을 세우는 분위기인데. -과거에 차령산맥 이북의 노동 관련 손해배상 사건은 김선수 변호사(현 대법관)가, 이남은 문재인 변호사가 가장 많이 맡았다. 대한민국에서 문 대통령만큼 노동자와 함께 싸웠던 이가 없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노조에 대한 개념 정의가 부족한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신자인 문 대통령에게 “멈추지 말고, 두려워 말라”고 당부했다.(권 이사장도 가톨릭 신자다) 그러나 촛불정신에 따라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이 분기점에 서 있는 듯하다. 촛불의 주체는 서민과 노동자 등 지금껏 차별을 받아왔던 사람들이고, 이들을 위한 정치가 현 정부의 역사적 소임이다. 소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정권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대과 없이 임기를 마친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촛불혁명을 통해 당선된 문 대통령은 그래서는 안 된다. 지지율에 연연하는 대신 앞날의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정책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치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진보정당은 철저히 민생정치에 주력해야 한다. 정의당 등도 민생정치는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인가 등을 종합적으로 통찰해 서민 중산층의 희망이 돼야 한다. ‘소득의 평준화’라는 경제 민주화는 사회적으로는 노조가 분위기를 형성하고, 진보정당이 국회에서 현실화해야 한다. 그게 진보정당의 갈 길이고 한국 정치 개혁의 길이다. ‘민주노총과 민노당은 내 영혼’이지만, 지금은 어느 당 소속도 아니다. 진보진영이 다시 통합돼야 한다는 게 변함없는 신념이다. 새롭게 하나가 된 진보정당이 출범하면 다시 당적을 갖겠다. douzirl@seoul.co.kr ●권영길은 누구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경남 산청에서 유년기를 보내다 부산으로 이주해 경남중과 경남고를 거쳐 서울대 농과대학 농잠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서울신문 기자로 입사해 파리특파원 등을 지냈다. 부친이 빨치산으로 활동했다는 가정사가 그를 진보운동으로 이끌었다. 안락한 언론인의 자리를 박차고 1988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초대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 1995년 출범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초대위원장을 맡았다. 이듬해 김영삼 정부 시절 ‘노동법 날치기 사건’에 맞서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총파업을 이끌어 법안 철회를 이끌어냈다. 이후 진보 정치인으로 살았다.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 21에 입당해 1997년 15대 대선 후보에 출마하고, 1999년 민노당 창당 뒤 2002년 16대 대선 후보로 나섰다. 민노당 당대표이자 경남 창원에서 2004년 17대, 2008년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고용·노동 전문가인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사위다.
  • 문 대통령, 프라하에서 청산리대첩 ‘소환’한 까닭은?

    문 대통령, 프라하에서 청산리대첩 ‘소환’한 까닭은?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의미 깊은 해다. 체코는 독립운동과도 아주 깊은 인연이 있다. 1919년 극동지역에서 볼셰비키 전투 중에 있던 체코슬로바키아 군대가 우리 임정 대표들과 여러 차례 교류했다. 1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체코로 돌아갈 때 그들이 가진 무기를 우리 독립군들에게 매도를 해줬다. 그때 한국 독립군이 체코 군대로부터 매입한 무기를 사용해 크게 이긴게 청산리 대첩(1920년)이다.” 고교 시절부터 역사학도를 꿈꿀 만큼 남다른 관심을 지닌 문재인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체코 동포·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이처럼 체코와 청산리대첩의 남다른 인연을 끌어냈다. 1920년 10월 청산리대첩에서 독립군이 10여 회의 전투 끝에 일본군 연대장을 포함 1200여 명을 사살하는 등 빛나는 승리를 거둔 이면에는 체코 무기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프라하 힐튼호텔에서 열린 동포·기업인 간담회에서 “청산리대첩이라는 항일운동에서 가장 유명한 그 승리도 체코 무기의 우수성에 도움을 받은 바가 크다. 그런 사실이 청산리전투 참여했던 이범석 장군의 ‘우둥불’이라는 회고록에 기록돼 있다”고 설명하자 참석했던 20명의 교민은 ‘그런 사실이 있었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 대통령은 이어 “3·1운동도 여기 체코 신문에 아주 크게 보도가 돼서 중유럽과 동유럽에 3·1 독립운동을 알리는 아주 큰 역할을 했다”며 “정부는 내년에 3·1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남북이 공동으로 하는 온겨레의 축제로 준비하고 있다”며 재외 동포들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원래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다…처음 변호사 할 때 ‘나중에 돈 버는 일에서 해방되면 아마추어 역사학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말할 만큼 해박한 역사 지식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문 대통령은 또한 “체코는 아시아 국가 중에 최초로 우리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며 “그런 만큼 체코는 우리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히 중요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체코는 한국전 이후에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위원국으로 이렇게 참여한 인연도 있어서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도 아주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문 대통령은 동포간담회와 별도로 현지 기업인과도 만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간담회에 기업인들을 초청해 한꺼번에 행사를 진행했다. 간담회에는 체코한인회 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체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 주재원,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 감독, 체코국립극장과 국립발레단 단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동포 20명이 참석했다. 양동환 현대자동차 체코 법인장, 박현철 두산 인프라코어 유럽 법인장 등 체코에 진출한 우리 기업인 등 경제인들도 함께했다. 최춘정 세계한인경제인협회 프라하지회 부회장은 “중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체코에 한국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진출했다“며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어, k-pop, 한국 영화 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며 체코인들에게 한국 문화, 역사, 예술을 알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한섭 프라하 한글학교 교장은 “교민 자녀들이 한-체코 간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문화.역사와 한국어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합창단원으로 활약 중인 조원배 테너는 문 대통령 내외를 환영하는 마음을 담아 ‘벚꽃엔딩’과 ‘희망의 나라로’를 부르기도 했다. 프라하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다시 달리려고 멈춘다/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다시 달리려고 멈춘다/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그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조차 못 하겠다. 지난해 9월 네덜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6개국 1만 6000㎞를 내처 달려 압록강 너머 북녘이 훤히 보이는 중국 단둥에 지난달 6일 이른 뒤 한 달 넘게 ‘통일 떠돌이’를 자처하고 있는 강명구(62)씨 얘기다. 1년 1개월을 오롯이 두 다리로만 매일 40여㎞를 달려오다 잠시 멈춰 섰는데 정작 북한 입경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통일 마라토너’란 타이틀을 버렸다.누군가의 말대로 무모했는지 모른다. 그는 헤이그로 떠나기 전 만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이준 열사 묘역에서도 무모했고 한없이 단순했다. 그가 한참 유럽을 관통하던 지난해 가을, 겨울은 특히 더 그랬다. 날 선 미사일 발언이 오갔고, 한반도에는 한 뼘 따스한 기운조차 스며들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가 시작되며 기적과 같은 변화가 찾아왔고 현재 남북은 해방 이후 어느 때보다 많은 접촉과 대화로 갈등과 긴장의 빗장을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질주를 응원하던 이들은 그가 신의주 땅을 밟고 평양에서 한바탕 신명나는 축제를 벌인 뒤 황해도의 할아버지 묘소를 참배하고 판문점을 통과해 남녘에 들어선 뒤 경기 파주 임진각부터 서울 광화문까지 내달려 기나긴 유라시아 횡단 마라톤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염원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다. 그동안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장희 ‘평마사’ 상임공동대표 등이 나서 우리 정부 관계자나 북측과 중국에 강씨의 입경 허가가 떨어질 수 있도록 집요한 노력을 펼쳤고, 평마사 회원 등 30여명이 단둥 등에서 북한 입경 허가를 촉구하는 동반 달리기 등을 했으나 북측은 이렇다 할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강씨는 북한 땅에 발을 들이지 않은 채로 서울에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했지만 중국 비자가 15일 만료된다. 남북이 해결해야 할 조금 더 커다랗고, 더 민족적인 과제 앞에 어쩌면 그는 너무 나약하고 한없이 무모했던 개인에 불과한지 모른다. 끝내 강씨는 독립과 항일운동의 근거지들을 달려서 돌아본 뒤 1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15일 강원 동해항에 도착하고, 다음날부터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달린 뒤 20일 고성을 출발해 30일 경기 파주 임진각에 이르는 DMZ 마라톤으로 북한 일정을 대체한다. 물론 그 뒤 입경 허가가 떨어지면 다시 북녘 땅을 밟는다는 각오다. 근래 부쩍 마라톤에 관심을 보여 온 박원순 서울특별시장도 그의 여정에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압록강을 따라 걸으며 눈물을 삼키고, 백두산에 올라 울고, 윤동주 생가를 돌아보며 눈시울을 적시며 무오독립선언을 새로 발견한 강씨는 두만강을 따라 동진(東進)한 뒤 고성에서 임진각까지 DMZ을 따라 서진(西進)하며 북녘 땅으로 남하하지 못한 울분을 삼킬 것이다. 해방과 분단으로 가름된 선을 따라 달리는 그의 여정에 북녘을 달리는 것 못지않은 각별함이 묻어난다. 어쩌면 할아버지 묘를 참배하겠다며 한사코 무모했던 개인과 하나 됨을 향해 도도히 흐르는 민족의 기운이 함께 만나는 일일지 모른다. bsnim@seoul.co.kr
  • 李총리가 달아준 명패… “국가가 인정해주는 것 같아 감격”

    李총리가 달아준 명패… “국가가 인정해주는 것 같아 감격”

    광주학생운동 본받은 항일학생단체 조직 8개월간 옥고… “매일 맞으며 취조당해”광주학생독립운동 89주년인 지난 3일 국가유공자의 명패가 처음으로 광주 남구의 노동훈(91) 애국지사의 자택에 걸렸다. 이날 처음으로 정부 주관으로 치러진 광주학생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용섭 광주시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과 함께 노 지사의 자택을 찾아 현관문에 명패를 달았다. 노 지사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광주시가 여러모로 돌봐 줬는데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감격스러웠다”며 “자식과 손자들이 ‘아버지께서 하신 일을 말로만 들었는데 국가가 직접 명패를 주는 것을 보니 새삼 존경스럽다’고 말해 더욱 기뻤다”고 말했다. 노 지사는 광주학생운동 14년 후인 1943년 3월 광주사범학교 3학년 재학 중 무등독서회를 조직해 항일운동과 식민사관에 대항한 정통역사관 확립에 노력한 공로 등으로 1995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노 지사는 “일제는 광주학생운동의 역사를 지우려 했지만 선배님들의 의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었다”며 “우리도 선배님들의 활동을 본받고자 항일 학생조직을 꾸렸다”고 말했다. 1929년처럼 대대적인 항일 운동을 전개하고자 조직원을 늘리는 역할을 수행했던 노 지사는 1944년 12월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노 지사는 나주에서 50일간 수감됐다 광주로 이송돼 45년 해방 직전까지 갖은 고문을 받았다. 그는 “8개월 동안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거의 매일 두드려 맞으며 취조를 당했다”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다음날 출소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무등독서회 조직원은 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행방이 묘연해졌다. 노 지사는 이후 서너 명과 연락이 닿았지만 현재는 그중에서도 1명만 남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노 지사는 자신이 뒤따르려 했던 광주학생운동의 기념일에 국가유공자 명패를 받아 영광스럽다고 했다. 그는 “광주학생운동의 뜻을 영원히 잊지 않고 기리고자 앞으로도 국가 차원에서 광주학생운동 기념식을 열고 국무총리께서도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셨으면 좋겠다”며 소망을 내비쳤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남북 민간단체 금강산서 10년 만에 재회

    남북 민간단체 금강산서 10년 만에 재회

    北 “관광 재개 기대” 김홍걸 “내년 열릴 것”남북 민간단체들이 10년 만에 금강산에서 다시 만났다. 통일운동단체인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는 3~4일 이틀간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민화협 연대 및 상봉대회’를 진행했다. 남북 민간단체들이 금강산에서 대규모 공동행사를 연 것은 2008년 6월 6·15 공동선언 8주년 기념 민족공동행사 이후 처음이다. 10년 만에 재회한 남북 인사들은 4일 가을을 맞은 금강산 삼일포를 함께 거닐며 회포를 풀었다.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찍는 등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북측 금강산 해설원이 즉석에서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네’라는 노래를 부르자 남측 인사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민화협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향한 염원을 담아 행사 장소로 금강산을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인 3일 김홍걸 남측 민화협 대표상임의장과 김영대 북측 민화협 회장이 처음 만나 환담할 때도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김영대 회장이 “보나 마나 오늘 행사는 금강산 문제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하자 김홍걸 의장은 “저는 내년에는 꼭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노동·농민·여성·청년·교육 등 주요 부문별 모임도 열어 다양한 남북교류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특히 교육분과에서는 한국교총이 내년 남북교육자대표자회의 개최 및 정례화,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교육자 교류 등을 북측에 제의했다. 종교분과 남측 인사들은 3·1운동 100주년 공동행사준비위 구성을, 청년분과는 내년 4·27 판문점선언이나 6·15계기 남북청년대회를 평양, 개성 또는 판문점에서 열자고 제의했다. 이에 북측도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민화협은 또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 치하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논의할 공동토론회를 개최키로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기념비만 남긴 항일기지 ‘신한촌’… 핏방울처럼 맺힌 광복의 혼

    기념비만 남긴 항일기지 ‘신한촌’… 핏방울처럼 맺힌 광복의 혼

    3·1절 1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항일독립운동에 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발원지였던 러시아와 중국 지역은 사실상 잊힌 상태다. 통일을 바라보는 지금, 북한 접경 지역인 이곳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서울신문은 한민족평화나눔재단과 새에덴교회가 주최한 ‘연해주·동북 3성 항일독립 유적지 한민족순례’에 동행해 항일운동의 발자취를 좇았다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 40분을 날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했다. 10월 중순을 넘겼지만 바람이 선선했다. 먼저 독립운동가들의 근거지였던 ‘신한촌’으로 향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루스키섬 방향으로 50여분 떨어진 라게르산 정상에 있다. 검은색 철 울타리에 둘러싸인 이곳에는 직사각형 모양 3.5m짜리 기둥 3개와 네모난 돌 8개가 자리한다. 3개의 기둥은 남북한과 재외동포를, 8개의 돌은 조선 8도를 각각 상징한다. 3·1 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1999년 8월 15일 해외한민족 연구소가 한국에서 석재를 가져와 세웠다. 연해주 지역에는 1863년 한국에서 건너온 13가구가 지신허에 자리를 틀며 한인이 점차 늘기 시작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는 국내외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결집했다. 새로운 한국이란 이름의 ‘신한촌’은 1911년 5월 구개척리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와 건설했다. 연해주 한인들의 자치기관이었던 권업회와 한민회, 한민학교 등이 생겨나며 항일독립운동의 전진기지가 됐다.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때까지 연해주에 한인들이 17만명이 넘게 있었고 신한촌에만 1만여명이 거주했다고 알려졌다. 고향을 등지고 이곳으로 와 치열하게 살며 항일운동을 펼쳤지만, 지금은 기둥 세 개짜리 탑만 흔적으로 서 있다. 철 울타리에 걸린 태극기 정도가 이곳에 한인촌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4㎞ 정도 떨어진 곳에는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이 있다. 모스크바까지 꼬박 1주일이 걸리는 전체 길이 9288㎞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작 역이다. 강제로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열차에 태워진 채 이주당한 고려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북쪽으로 100㎞ 떨어진 우수리스크로 향하는 밤 동안 머릿속에 당시 풍경이 그려졌다.다음날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연해주 한인 동포들이 우리 문화를 지키고 친선을 도모하고자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을 기념해 2009년 건립한 박물관이다. 입구 오른쪽에 ‘인류의 행복과 미래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라는 글귀가 적힌 추모비가 서 있다. 현지 가이드는 “블라디보스토크 의과대 학장이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해 만들었는데, 학장이 바뀌면서 학교에서 버린 것을 7년 전쯤 가지고 왔다”고 설명했다.고려문화센터를 나와 볼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 들렀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이 살던 집이다. 고려문화센터에서 3㎞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한국 정부가 10년쯤 전 사들여 현재 기념관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1860년 함경북도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최재형 선생은 아홉 살 때 연해주 지신허로 와 정착했다. 이후 열한 살에 가출했다가 포시예트 항구에서 만난 러시아 선장의 배려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지식인으로 거듭났다. 많은 돈을 번 그는 크라스키노 연추 마을에 첫 한인 자치기관을 설립하고 한인들을 돕기 시작한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때에는 빨치산을 조직하기도 했다. 최재형 선생의 집에서 1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왕바실재 언덕에 다다른다. 최재형 선생은 1920년 4월 5일 일본군의 빨치산 토벌로 이곳에 끌려와 재판 없이 총살당했다. 한인과 러시아인 240여명이 이곳에서 잔혹하게 죽었다. 이른바 ‘4월 참변’이다. 10분 남짓 언덕을 올라 마을을 내려다봤다. 함께한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이 하모니카를 꺼내 아리랑을 연주했다. 동행한 고려인들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하게 젖었다. 소 이사장은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이곳을 유적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별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최재형 선생 집에서 5㎞ 정도 떨어진 수이푼 강변에는 이상설 선생 유허지가 있다. 이상설 선생은 1907년 헤이그 특사, 1914년 결성된 대한광복군 정부 대통령으로 잘 알려졌다. 고종의 밀지를 받아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에 국권회복을 위해 파견됐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에도 활발하게 항일운동을 하던 그는 1917년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병사했다. ‘내가 죽거든 불태워 유해를 강에다 뿌려 달라’던 유언대로 그의 유해는 이곳 수이푼 강변에 뿌려졌다. 연해주에서 190㎞ 정도 떨어진 크라스키노에는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가 있다. 높이 4m 정도 큰 비석에 ‘1909년 3월 5일경 12인이 모이다’, 높이 1m 정도 작은 비석에는 ‘2001년 8월 4일 102년이 지난 오늘 12인을 기억하다’라고 쓰여 있다. 애초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2001년 10월 크라스키노 추카노프카 마을 강변에 기념비를 세웠지만 물에 잠기고 현지인들이 훼손하는 사례가 잦았다. 비석을 옮긴 지역이 국경지대로 편입되면서 러시아 당국의 허가 없이는 출입할 수 없게 돼 지금 위치로 이전했다. 사방이 허허한 벌판에 핏방울 모양의 비석이 홀로 서 있다. 목숨 바쳐 항일운동을 펼친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잊힌 역사인가, 아니면 잊은 역사인가. 중국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차디찬 바람에 가슴이 시렸다. 글 사진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러시아)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후배들의 십시일반 모금… 들불 같던 선배들의 독립정신 잇는다

    [3·1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독립운동가의 명패] 후배들의 십시일반 모금… 들불 같던 선배들의 독립정신 잇는다

    포상자 212명 중 36명이 광주제일고 출신 이틀동안 50만 3250원 모아 광복회 전달 사회적협동조합도 후원금 200만원 보태 “광주고등학생 의회 알려 동참 호소할 것”29일 오전 11시 광주 북구 누문동 광주제일고 정문에 들어서자 왼쪽에 우뚝 솟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이 손님을 맞았다. 숲과 어우러진 공간 맞은쪽 학교 본관에선 학생들이 코앞에 닥친 수능 시험에 대비해 책장을 넘기느라 숨소리조차 죽여야 했다. 벌써 내년이면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1929년 이맘때쯤 이곳 광주고등보통학교는 일제에 맞선 동맹휴학이나 독서회 활동 등으로 술렁였을 터다. 며칠 뒤 전국적 운동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신호탄이었다. 이젠 과거와 달리 평온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치는 보통 고교 풍경이다. 이런 역사를 가슴에 안은 학교 후배들이 최근 ‘뜻깊은 일’을 펼치고 있다. 1920년대 최대 규모의 항일학생운동을 주도한 선배들의 정신을 기리는 운동에 나선 것이다. 항일운동 참여자 중 생존자는 거의 없는 만큼 그 후손을 찾아내 ‘독립운동 유공자 문패’를 달아 주는 일이다. 교장실에서 만난 학생회장 장민성(17·2년)군은 “최근 반별 대의원회의를 열어 ‘명패 달기’ 안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한 뒤 지난 22~23일 전교생 800여명과 선생님을 대상으로 50만 3250원을 모았다”고 말했다. 점심시간 등 자투리 시간에 교직원과 전교생이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보탰다. 부회장 조효인(17·2년)군은 “이런 운동의 취지 등을 학생회에서 운영하는 페이스북과 곧 열리는 ‘광주 고등학생의회’에 알리고 동참을 호소하겠다”고 덧붙였다.매점 등을 운영 중인 학교 사회적 협동조합도 200만원의 후원금을 내놨다. 조합의 학생 대표인 이승민(17·2년)군은 “이사회에서 후원 금액 등을 흔쾌히 받아들여 어렵지 않게 성금을 마련했다”며 웃었다. 실제로 광주학생운동 관련 독립운동 포상자 212명 가운데 이 학교 출신이 36명에 이른다. 자료 분실이나 다른 이유 등으로 빠진 사람을 합치면 더 늘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처는 당시 좌익계로 분류돼 훈장 수여 또는 유공자 지정에서 제외된 사람을 발굴·포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이날 푼푼이 모은 성금을 ‘크라우드펀딩’을 주도하는 광복회에 전달했다. 문대식 광복회 광주전남유족회 고문은 “독립유공자가 작고하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현실에서 젊은 학생들이 유공자와 후손에게 자긍심을 심는 것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띤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광주제일고 학생 100여명은 지난 27일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펼쳐진 제89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 만세재현 행사에 당당히 참여했다. 학생의 날인 오는 11월 3일에도 선배들의 항거 장소인 옛 전남도청 앞과 옛 광주역(광주동부소방서) 주변 등지에서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부터 5개월에 걸쳐 열기를 뿜었다. 194개교 5만 4000여명이 참가했다. 구속 1642명, 퇴학 582명, 무기정학 2330명이나 될 만큼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항일 학생운동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승오 광주제일고 교장은 “선배들의 독립항일 정신이 오늘날 면면히 이어지는 게 자랑스럽다”며 “학생 자치회에서 이끄는 명패 달기 운동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정부 기념식으로 격상되는 광주학생운동

    3·1운동, 6·10 만세운동과 함께 3대 항일운동으로 꼽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식(11월 3일)이 정부 기념식으로 격상된다. 보훈처 관계자는 29일 “그간 지방 교육청이 진행하던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식을 격상해 정부가 주관토록 하는 안건을 30일 국무회의에 상정한다”며 “다음달 3일 열리는 89주년 기념식부터 국가행사로 커지게 된다”고 밝혔다. 국무회의에서 행정안전부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 올해부터 교육부와 보훈처가 해당 기념식을 공동 주관하게 된다. 광주학생운동은 그간 광주시 교육청이 주관하는 지역 행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보훈처 업무보고에서 “광주학생운동이 동문회 주관행사로 전락해 정부 관계자가 참석하지 않고 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또 올해 2월 민주운동 기념 오찬에서 “학생독립운동이 광주서중과 광주일고 안에서만 기념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 차원에서 책임 있는 행사 참석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번 기념식에 문 대통령이 참석할지 관심이 쏠린다. 참석한다면 현직 대통령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1999년)에 이어 세 번째다. 광주학생운동은 약 5개월간 전국에서 벌어진 학생 시위운동이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전남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일고) 학생들과 광주중학교(일본인 학교) 학생들의 충돌이 도화선이 됐다. 11월 3일 명치절(일본 메이지유신 기념일)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광주 시내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고 이어 전국 194개 학교의 5만 4000여명이 동맹휴교와 시위운동을 벌였다. 당시 학생 중에 절반이 넘는 규모였다.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11월 3일은 1953년 ‘학생의 날’로 지정됐고, 유신 직후인 1973년 3월 30일 정부가 각종 기념일을 통폐합하면서 국가기념일에서 폐지됐다. 이후 1984년 9월 국가기념일로 부활했으며, 2006년 학생독립기념일로 명칭이 변경됐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이봉창 의사 기념관, 고향 용산에 생긴다

    이봉창 의사 기념관, 고향 용산에 생긴다

    서울 용산에서 나고 자라 묻힌 독립운동가 이봉창(1901~1932) 의사의 삶을 되새기는 기념관(투시도)이 세워진다. 무대는 그가 살았던 용산구 효창동 118번지 인근 소공원(479.1㎡)이다. 용산구는 내년 10월 10일 이봉창 의사 서거 87주기에 맞춰 기념관 건립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했다고 25일 밝혔다.지상 1층, 연면적 60㎡ 규모의 기념관은 2020년 4월 완공될 예정이다. 내부 전시 방법, 소장품 구매 등은 용역 연구를 통해 결정된다. 구가 최근 마무리된 효창4구역 주택재개발사업으로 마련한 소공원을 역사공원으로 바꾸는 절차도 병행된다. 이 의사는 용산을 대표하는 독립투사다. 1901년 용산구 원효로2가에서 태어나 1917년 효창동 118번지로 이사했다. 1919~1924년에는 용산역 역무원으로 일하다 1925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1931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그는 백범 김구 선생과 대화를 나눈 뒤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지는 ‘동경거사’를 감행했다.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의 뜻은 당시 침체됐던 항일운동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이후 1932년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처형당한 이 의사는 1946년 유해가 봉환돼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묻혔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기념관을 통해 투사의 생애를 널리 알리고 역사도시 용산의 정체성을 확립할 것”이라며 “기념관이 의사의 높은 뜻을 되살릴 수 있도록 유물 기증 등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봉창 의사 기념관, 고향 용산에 생긴다

    이봉창 의사 기념관, 고향 용산에 생긴다

    서울 용산에서 나고 자라 묻힌 독립운동가 이봉창(1901~1932) 의사의 삶을 되새기는 기념관이 세워진다. 무대는 그가 살았던 용산구 효창동 118번지 인근 소공원(479.1㎡)이다. 용산구는 내년 10월 10일 이봉창 의사 서거 87주기에 맞춰 기념관 건립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했다고 25일 밝혔다. 지상 1층, 연면적 60㎡ 규모의 기념관은 2020년 4월 완공될 예정이다. 내부 전시 방법, 소장품 구매 등은 용역 연구를 통해 결정된다. 구가 최근 마무리된 효창4구역 주택재개발사업으로 마련한 소공원을 역사공원으로 바꾸는 절차도 병행된다. 이 의사는 용산을 대표하는 독립투사다. 1901년 용산구 원효로2가에서 태어나 1917년 효창동 118번지로 이사했다. 1919~1924년에는 용산역 역무원으로 일하다 1925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1931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그는 백범 김구 선생과 대화를 나눈 뒤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지는 ‘동경거사’를 감행했다.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의 뜻은 당시 침체됐던 항일운동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이후 1932년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처형당한 이 의사는 1946년 유해가 봉환돼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묻혔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기념관을 통해 투사의 생애를 널리 알리고 역사도시 용산의 정체성을 확립할 것”이라며 “기념관이 의사의 높은 뜻을 되살릴 수 있도록 유물 기증 등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태풍 콩레이 피해지역 특별재난지역 선포

    태풍 콩레이 피해지역 특별재난지역 선포

    24일 정부는 제25호 태풍 콩레이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고 밝혔다.이번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된 지역은 경북 영덕, 경주 외동읍·양북면, 경남 거제 일운면·남부면, 전남 고흥군 동일면, 완도군 소안면·청산면이다. 이들 지역은 관계부처와 민간 전문가 합동조사 결과 피해 규모가 특별재난지역 선포기준(시·군은 45억∼100억원, 읍·면은 4억5000만원∼10억5000만원)을 초과한 곳이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은 피해 복구비 중 일부가 국고에서 지원될 예정이다. 따라서 자치단체는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고, 지원받은 복구비로 피해시설 복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주택 침수, 농업시설 유실 등의 피해를 입은 주민은 전기요금과 같은 공공요금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지난 7일 남해안을 지나간 태풍 콩레이는 13개 시도에서 총 549억원의 피해를 입혔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김포의 항일운동사’ 독립운동기념관 특별기획전 연다

    ‘김포의 항일운동사’ 독립운동기념관 특별기획전 연다

    경기 김포시청소년육성재단의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은 오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특별기획전 ‘김포의 항일운동사’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의병재판기록부와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등 항일 관련 사료들을 바탕으로 김포의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들을 살펴볼 수 있다. 김포에서는 의병이 결성되지는 않았으나 인근 지역 의병 부대들이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김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전개하는 등 보급지 역할을 한 사례들이 나타나 있다. 또 김포 출신이 인근 지역의 의병부대에 참여해 김포를 중심으로 활동한 사례들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의병재판기록부를 통해 김포 출신 의병인 김경운·이종근·조봉근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한 의병 후손의 증언에 따르면 김포 지역에서도 의병활동이 있었고 김포 인근 지역 의병 부대에 소속돼 활동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의병항쟁 재판기록이나 판결을 통해 김포에서 의병활동을 일부분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독립운동 특별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자세한 사항은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031-996-6271)으로 하면 된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단둥에서 입북 허가 기다린 지 열흘, 강명구 “통일 떠돌이도 괜찮다”

    단둥에서 입북 허가 기다린 지 열흘, 강명구 “통일 떠돌이도 괜찮다”

    지난해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압록강이 바라보이는 중국 단둥에 도착한 것이 지난 6일이었다. 북한 땅에 들어가 판문점을 거쳐 휴전선을 넘는 최초의 민간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61)씨는 얼마나 복잡다단한 감회에 젖어 있을까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16일 오전 그가 보내온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24-절벽에 서서 새 희망을 바라보다’는 그가 어려움 속에서도 전혀 초심과 결의를 잃지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강씨는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입북 허가가 나오면 돌아와 다시 뛰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북한 국경에서 ‘통일 떠돌이’가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강씨의 북한 지역 통과를 위한 북측과의 협의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고 전했다. 16일 오전에는 남북·유엔사령부 3자 접촉이 판문점에서 진행돼 공동경비구역(JSA)를 비무장화해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성급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조금씩 경계를 허물면 강씨의 입북 허가도 머잖아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원래 분량은 200자 원고지 22장이었으나 글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 10장으로 줄였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양해 구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나의 달리기가 기대한 것이 나비효과다.?거대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한 것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이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 가녀린 날갯짓에 수많은 가녀린 나비들이 동조해 태풍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가 평화의 나무를 한 그루 심고, 수많은 이들이 따라 하면 숲을 이룰 터이고 통일은 그 숲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가녀린 날갯짓 한 번과 나무 한 그루 심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사소한 일을 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큰 꿈을 꾸는 것이다. 난 이곳 단둥에서 멈추고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입북 허가가 나오면 돌아와 다시 뛰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내 달리기는 과거형이 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금방 잊힐 것이다. 제 막 힘을 받던 나비들의 날갯짓도 동력을 잃을 것이다. 내 달리기는 끝날 때까지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내가 이곳에 머물러 있는 일 자체가 남북 당국에 압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난 북한을 통과하지 않고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다음 주까지 방북 허가가 나오지 않으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도 각오하고 있다. 그 여정이 지금까지 달려온 여정보다 더 멀고 험할지라도! 북한 국경에서 떠돌이가 되어 돌아다닐 것이다. ‘통일 떠돌이’가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한반도가 자주적으로 평화통일이 되기 전까지 우리 모두는 떠돌이 신세인지 모른다. 슬프게도 너무도 오래 떠돌이 신세였다. 우리가 있어야 할 제자리를 찾아나서는 머나먼 순례길이 바로 평화의 길이고 통일의 길이다. 떠돌이 중의 대표 떠돌이로 만주 벌판과 연해주를 잇는 항일운동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옛 선지자들의 얼을 되살리는 것도 축복의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선양을 거쳐 백두산으로 향하는데 날이 좋지 않아 해란강, 발해 유적지, 시인 윤동주가 태어난 룽징(용정) 마을 등을 둘러보며 사흘을 보내다 나흘째 되던 날 드디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개이고 날씨는 따듯해 백두산 장군봉에 오를 수 있었다. 천지로 향하는 길은 동서남북 네 갈래인데 서파와 남파, 북파가 중국쪽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북측 지역에 속한 동파로 장군봉을 오른 뒤 천지로 내려갔다. 천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찢겨 살아온 73년의 세월이 슬픔으로 복받쳐온다. 이제 슬픔은 다 쏟아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채워야 할 때다. 우리는 작대기로 눈 위에?‘평화통일’이라 쓰고 그 앞에 소주병과 사과를 놓고 네 번 절을 올려 천지신령에게 예를 다했다. 카톡이 이곳에서도 터지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셀피로 눈 덮인 천지의 장엄한 모습을 찍어 전송하니 사진으로 보는 이들이 나보다 더 흥분한다. 다시 단둥으로 내려와 아침운동을 하면서 압록강 앞에 섰다. 입북 허가가 여전히 캄캄하다. 압록강이 내 앞에 수천 길의 절벽처럼 막아서 있다. 맥이 빠지니 동공이 풀리고 풀린 동공으로 저 멀리 바라보니 절벽의 이중성이 보인다.절벽에서는 아래를 굽어보면 현기증이 나도록 아찔하지만 시선을 멀리 던지면 시야가 확 트이는 것이 가슴마저 시원하다. 시선을 멀리 던지니 가슴벅차오르도록 시원한 미래가 펼쳐지는 듯하다. 절벽이란 어떤 이에게는 세상의 끝이지만 독수리처럼 결연한 이에게는 세상의 시작이 된다. 새끼 독수리는 어미에 의해 절벽에서 던져진다. 떨어지면서 살기 위해 버둥거리다 보면 어느덧 날개에 힘이 들어간다. 비로소 아기 독수리는 기류를 자유자재로 타며 새 세상을 훨훨 날아다닌다. 그 순간 아기 독수리에게 절벽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는 것이다. 압록강이란 절벽이 내게 새 세상의 시작이 될 것 같은 멋진 예감이 든다. 많은 시민들이 내 등을 떠미는 것을 느낀다. 벼랑에서 뛰어내리면 독수리 등에 올라탈지 아니면 내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날지 모르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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