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일왕
    2026-02-25
    검색기록 지우기
  • 투병
    2026-02-25
    검색기록 지우기
  • 75주년
    2026-02-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39
  • “우크라이나에 격분한 일본, 전쟁책임 망각했나” 日지성인의 반성 [김태균의 J로그]

    “우크라이나에 격분한 일본, 전쟁책임 망각했나” 日지성인의 반성 [김태균의 J로그]

    日, 우크라이나 ‘대러 항전’ 동영상에 맹반발...“당장 지원 끊으라” 주장도  “우크라이나 동영상에 정색을 하고 눈을 부라리며 거만하게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비난하는 영상에 일왕의 얼굴을 사용한 데 대해 일본에서 맹렬한 반발이 일었던 것과 관련해 일본의 저명한 시사평론가가 일침을 날렸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트위터에 러시아의 침략을 파시즘에 빗대 ‘러시즘’(러시아+파시즘)이라고 부르며, 끝까지 항쟁할 것을 다짐하는 1분 20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와 함께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 때 일왕이었던 히로히토(1901~1989)의 얼굴이 등장했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쇼와 덴노(히로히토 일왕)는 입헌군주제 아래 형식적 통수권자에 지나지 않아 전쟁 책임이 없는데도 히틀러, 무솔리니와 동일하게 다뤘다”며 강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집권 자민당 내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당장 끊어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나왔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결국 사과한 우크라 정부 결국 우크라이나 정부는 일본 정부의 요청을 수용해 히로히토 일왕의 사진을 영상에서 삭제하는 한편 주일 대사를 통해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일본 측에 사과했다.하지만, 일본의 강력한 반발이 2012년 아베 신조 전 총리 집권 이후 가속화한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지적도 일본내 양심적 지성인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시사평론가 고가 시게아키(66)는 아사히신문 계열 시사주간지 ‘슈칸(週刊)아사히’ 최신호(5월 20일자)에 기고한 칼럼 ‘잊혀지지 않는 과거가 있다’를 통해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일본내 분위기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경제산업성 고위 간부 출신인 고가 평론가는 경제와 정치, 행정에 대한 해박한 식견을 바탕으로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경고하는 분석과 논평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쇼와 덴노 전쟁책임 추궁=日정부·국민 비판’ 논리 성립 안돼” “나는 이번 사건 보도를 보며 많은 일본인들이 과거 일본의 전쟁 책임을 완전히 잊은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언론도 하나같이 우크라이나의 일방적인 잘못이라는 어조로 보도했다.” 그는 “쇼와 덴노의 전쟁 책임을 묻는 것과 현재의 일본 정부 및 국민을 비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며 “이는 히틀러를 비판했다고 해서 독일인을 모욕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고가 평론가는 “쇼와 덴노는 전후 일관되게 일본 평화주의의 상징적 존재였고 이는 헤이세이 덴노(아키히토 일왕)로 계승됐다”며 일본이 ‘평화 브랜드’를 확립하는 데 있어 일왕들이 최고의 공로자들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쇼와 덴노에 대해 태평양 전쟁 발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인이 잊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는 이런 상황은 세계 곳곳을 여행해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의 최고 맹방인 미국에서조차 전범 취급받고 있는 현실 직시해야” “몇년 전 미국 보스턴 미술관을 방문했는데, 전쟁을 소재로 한 전시 코너가 마련돼 있었다. 히틀러, 무솔리니와 나란히 쇼와 덴노를 악인으로 묘사한 일러스트가 당연한 듯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뜻하지 않은 공격을 당한 듯한 느낌이었지만, 일본의 최고 우방이라는 나라에서조차 (히로히토 일왕의 전범 책임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로 취급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이 불명예스러운 기억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미술관 전시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직도 퍼져나가고 있는 것은 일본인들도 알고 있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고가 평론가는 “이번 우크라이나 동영상에 정색을 하고 눈을 부라리며 거만하게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런 자세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일본은 (어두운) 과거사에 눈을 감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유발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냉정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과거의 교훈을 살려 평화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설명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주의 국가의 모습이 아닐까.”
  • 박보균, 친일 칼럼 비판에 “독도는 우리 땅”

    박보균, 친일 칼럼 비판에 “독도는 우리 땅”

    2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과거 박 후보자가 중앙일보 기자 시절 썼던 칼럼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날 박 후보자는 2013년 일왕 생일 축하연 참석과 관련한 친일 역사관 논란에 대해 “초대장을 받지 않았다”며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을 추적하면서 그 과정의 하나로 취재차 갔다”고 반박했다. 과거 칼럼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두고 “전략적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 것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독도는 누구 땅이냐. 장관이 되면 독도를 방문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박 후보자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답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 ‘전두환식 리더십의 바탕은 의리’, ‘수호지 양산박 느낌’ 등의 문구로 전두환 군사정권을 옹호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2700자 칼럼의 90%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위대한 통합 정치에 대해 썼고, 그중 300자 정도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행태를 담았다”며 “전두환 리더십을 조롱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임오경 민주당 의원이 ‘전두환 추징법은 집요했다. 재산 29만원은 혐오의 압축’이라는 내용을 언급하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영령과 유족에게 사과 의향이 있는지 묻자 박 후보자는 “칼럼을 잘못 해석했기에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한편 박 후보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출연을 두고 제기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정치적 편향 논란과 관련해 “깊은 내막은 잘 모른다”면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 정책 원칙을 지켜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박보균, 친일칼럼 비판에 “독도는 우리땅”

    박보균, 친일칼럼 비판에 “독도는 우리땅”

    2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과거 후보자가 중앙일보 기자 시절 썼던 칼럼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박 후보자는 이날 2013년 일왕 생일 축하연 참석과 관련한 친일 역사관 비판에 대해 “초대장을 받지 않았다”며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을 추적하면서 그 과정의 하나로 취재차 갔다”고 반박했다. 과거 칼럼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두고 “전략적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 것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독도는 누구 땅이냐. 장관이 되면 독도를 방문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박 후보자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답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 ‘전두환식 리더십의 바탕은 의리’, ‘수호지 양산박 느낌’ 등 전두환 군사정권을 옹호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2700자 칼럼의 90%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위대한 통합 정치에 대해 썼고, 그중 300자 정도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행태를 담았다”며 “전두환 리더십을 조롱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임오경 민주당 의원이 ‘전두환 추징법은 집요했다. 재산 29만원은 혐오의 압축’이라는 내용을 언급하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영령과 유족에 사과 의향이 있는지 묻자 박 후보자는 “칼럼을 잘못 해석했기에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답했고, 임 의원은 “학살이 의리이고 리더십이냐”, 박 후보자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고 서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날 박 후보자가 장녀의 재산 관련 자료, 차녀의 대기업 근무 소득 및 자사고 편입 과정 등에 대한 자료를 개인 정보를 이유로 제출하지 않자 민주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거론하며 비판을 퍼부었다.
  • “진심으로 감사” 우크라 ‘한국·일본’ 포함 새 감사 영상 공개

    “진심으로 감사” 우크라 ‘한국·일본’ 포함 새 감사 영상 공개

    이전 영상 31개국…새 영상은 37개국으로 늘려우크라이나 국방부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를 포함한 새 감사 인사 영상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외교부가 한국과 일본이 빠진 영상을 공개해 큰 논란이 일자 곧바로 새 영상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지난 27일 공식 페이스북에 “어려운 시기에 협조해주고 변함없는 지원을 해준 파트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우리의 우정은 곧 우리의 승리다”는 글과 지원국 명단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지난 25일 우크라이나 외교부가 트위터에 공개한 것과 같은 문구다. 다만 이전 영상에선 한국과 일본이 빠진 31개국이었는데, 이번엔 37개국으로 지원국 수가 늘었다. 영상은 미국 국기와 우크라이나 국기가 합쳐진 장식품을 단 차량에 한 군인이 탑승해 운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 카메라는 러시아 공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거리의 모습을 비춘다. 이 과정에 지원국 명단이 차례로 올라온다.한국과 일본에선 명단 누락 영상이 공개된 뒤 큰 논란이 일었다. 특히 일본에선 지난 1일 우크라이나 정부가 트위터에 공개한 ‘파시즘’ 영상 때문에 비판 여론이 더 들끓었다. 1분 21초짜리 영상은 러시아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다 말미에 ‘파시즘과 나치즘은 1945년 패했다’는 문구를 올렸다. 문구 상단에는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총통과 독일 나치의 히틀러 총통, 일본 히로히토 일왕의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일본 정부가 외교 채널을 통해 공식 항의하고 네티즌 비판이 이어지자 우크라이나 정부 공식 트위터 계정은 “실수를 범하게 돼 일본에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 일본 국민을 불쾌하게 할 의도는 없었다”며 일왕 사진을 뺀 새 영상을 공개했다.
  • “우크라 지원한 31개국 감사” 명단에 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 없었다

    “우크라 지원한 31개국 감사” 명단에 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 없었다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국을 지원한 각국에 감사 인사를 전하는 영상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가 제외됐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공식 트위터에 “어려운 시기에 협조해주고 변함없는 지원을 해준 파트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우리의 우정은 곧 우리의 승리다”는 글과 함께 영상을 게재했다. 영상에는 우크라이나 군복을 입은 여성이 폐허가 된 건물에서 화분에 물을 준 뒤 포탄으로 무너져내린 벽을 바라보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오른쪽에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31개국 명단이 소개됐다. 미국, 호주, 독일, 영국, 프랑스, 폴란드, 터키 등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초기부터 지원한 한국과 함께 일본·대만 등 국가는 없었다.영상이 게재된 이후 특히 일본에서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선전 영상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 이탈리아 왕국 수상 베니토 무솔리니와 함께 일본의 쇼와 일왕 사진을 담아 일본의 항의를 받았는데, 이 일과 맞물리면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커뮤니티 ‘5ch’에는 “이런 일을 당하려고 도운 게 아니다”, “그동안의 지원이 허사가 됐다” 등 우크라이나를 비판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고, “우크라이나를 돕지 말아야 한다”는 비난글까지 이어졌다. 현재 해당 영상에는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된 아시아 이용자들의 항의성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가 무기 제공 등 군사적 지원을 한 국가의 명단만 올린 것이란 분석이 나왔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 “일본에 진심으로 사과” 히틀러 옆 일왕 지운 우크라이나

    “일본에 진심으로 사과” 히틀러 옆 일왕 지운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공식 트위터 계정에 항전 의지를 알리는 선전 영상을 올렸다가 일본인들에게 사과했다. 일본 제국의 쇼와 일왕(천황)을 나치 독일의 총통 히틀러, 이탈리아 왕국의 수상 무솔리니와 나란히 둔 장면이 영상에 포함된 것에 일본 네티즌들의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정부는 트위터를 통해 “이전 버전의 영상에서 실수를 한 것과 관련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우리는 우호적인 일본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제의 장면을 수정한 새 영상을 다시 게재했음을 알렸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트위터에 업로드한 약 1분 20초짜리 영상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러시아의 이념을 ‘러시즘’으로 명명하고 이를 비판하는 내용이다.문제가 된 장면은 ‘파시즘과 나치즘은 1945년에 패배했다’는 문구가 나오는 1분 11초 지점이었다. 원본 영상에서는 히틀러를 중심으로 왼쪽에 무솔리니, 오른쪽에 쇼와 일왕의 얼굴이 배치됐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등 추축국 3국을 한데 묶은 것이다. 쇼와 일왕을 히틀러, 무솔리니와 동일선상에 놓은 영상에 일본인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일본 네티즌들은 소셜미디어에 “천황을 모욕하는 행위에 단호히 항의한다”,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도움을 준 일본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의 과거를 안다면 놀랍지도 않다” 등 반응을 보였다.문제의 장면은 일본의 역사와 정치 체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히틀러나 무솔리니는 국민이 선출한 독재자지만, 당시 입헌군주제이던 일본 제국의 일왕은 다른 두 사람 같은 전범일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정치권에서도 우크라이나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토 마사히사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은 트위터에 “일본 외무성 유럽국과 다른 당국에 문제의 영상에 대해 즉각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했다”고 적었다.한편 해당 영상에서 문제가 된 부분의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이번 전쟁을 명령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이 나온다. 그 아래에는 “우리는 러시즘과 싸울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라는 메시지가 적혔다.
  • 日 떠난 마코, 초라한 귀국하나…불합격 남편 비자도 만료

    日 떠난 마코, 초라한 귀국하나…불합격 남편 비자도 만료

    결혼과 함께 공주 신분을 버리고 미국 뉴욕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는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조카 마코(眞子·30)가 초라하게 귀국할 처지에 놓였다. 결혼 전부터 불안정한 경제력과 집안의 빚문제로 논란이 됐던 마코의 남편 고무로 게이(小室圭·30)가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또다시 낙방했기 때문이다. 고무로는 2018년 8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의 로스쿨에서 공부했고 지난해 7월 변호사 자격시험을 치렀지만 떨어졌다. 그리고 올해 2월 재시험을 치렀지만 또 떨어졌다. 뉴욕주 변호사시험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시험에는 3068명이 지원해 약 1378명이 합격, 약 45%의 합격률을 보였다. 지난해 시험의 합격률은 60%이었다. 20일 주간 신시오는 고무로가 현재 1년짜리 취업비자로 머물고 있으며 늦어도 7월에는 그 기한이 만료된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현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무급으로 일하고 있는 마코가 로열패밀리였던 점을 어필해 오타니 쇼헤이처럼 O-1비자를 취득하는 방법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고무로가 배우자 비자로 머물게 되면 취업은 불가하다고 설명했다.16억 생활정착금 포기한 마코 결혼과 함께 왕족 자격을 잃고 일반인이 된 마코는 품위 유지 명목으로 지급되는 최대 1억5250만엔(약 16억원)의 생활정착금을 받지 않았다. 현재 법률사무소에서 조수로 일하는 고무로의 연 수입이 6000만원 안팎이고, 마코 역시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급여가 없는 상태다. 마코 부부의 신혼집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침실 한 개짜리 아파트로, 원룸이지만 아파트 내에 골프연습장, 바비큐 시설, 스파, 요가 스튜디오 등 커뮤니티 시설을 갖추고 있다. 월세는 4809달러(한화 약 570만원)다. 일본 내에서 공주 신분을 잃은 마코가 여전히 호화 생활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마코 측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신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 “땅 50억 차익” “軍복무 중 대학원 특혜” “강남 위장전입”… 민주, 파상 공세

    “땅 50억 차익” “軍복무 중 대학원 특혜” “강남 위장전입”… 민주, 파상 공세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 등 ‘윤석열 내각’ 후보자들의 신상 의혹이 줄줄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 후보자는 로펌에서 다른 기획재정부 출신보다 2배 높은 연봉을 받은 것이 확인돼 ‘전관예우’ 논란이 또다시 제기됐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김앤장에 대한 경제부처 관료 이직 현황’ 자료에 따르면 기재부에서 김앤장으로 이직한 관료의 2018년 기준 평균 연봉은 2억 6184만원이었다. 같은 시기 한 후보자의 연봉은 5억 1788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많다. 한 후보자의 처가가 2007년 보유했던 서울 중구 장교동 토지를 부동산사업시행자에게 파는 과정에서 50억원대 차익을 거뒀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에 대해 한 후보자는 “이미 2007년 청문회 때도 나왔던 이야기”라며 “모든 세금은 아주 완벽하게 다 납부를 했다. 정상적인 거래가 아닌 어떤 추가적이거나 예외적인 것들은 없었다”고 해명했다.김 후보자는 과거 군 복무를 하면서 대학원 석사 과정 일부를 다닌 것으로 드러나 특혜 의혹이 일고 있다. 19일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1980년 2월 입대해 1982년 6월 중위로 만기 제대했는데, 1982년 3월부터 1984년 2월까지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을 다녔다. 김 후보자가 1982년 3~6월 육군 장교 신분으로 대학원에서 공부한 셈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에게는 강남 8학군에 자녀들을 진학시키기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날 한병도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이 후보자가 2004년 6월 서울 서초구 D아파트에 살 당시 부인 정모씨는 홀로 서울 강남구 도곡동 D오피스텔로 주소를 옮겼다. 이 오피스텔은 대청중·숙명여고·중앙대사대부고 등이 근처에 있어 교육 목적으로 위장전입이 자주 이뤄지는 오피스텔 중 하나라는 게 한 의원의 지적이다. 또 이 후보자의 딸이 고등학생 시절 이 후보자가 근무하던 법무법인 율촌에서 ‘스펙 쌓기’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준비단에 따르면 이 후보자의 장녀는 미국 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2009년 학교에서 공식 운영하는 ‘학교 밖 체험 프로그램’(January Term: Off-Campus Explorations)의 일환으로 율촌을 견학한 바 있다. 이 후보자의 딸은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뉴욕대 정치학과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후보자의 딸이 율촌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근로계약에 기반한 ‘인턴’이나 ‘근무’가 아니라면서 “해당 프로그램은 장녀가 다니던 학교가 전교생의 진로 탐색을 위해 운영하는 교육 과정”이라고 해명했다. 전날 일왕 생일파티 참석으로 ‘친일 논란’을 일으킨 박보균 문체부 장관 후보자는 이날도 ‘한국 비하’ 칼럼으로 도마에 올랐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박 후보자가 2011년 쓴 칼럼을 공유하며 “한국 국민을 비하하고 일본 국민을 찬양했다”고 비판했다. 박 후보자는 해당 칼럼에서 “어느 때부터 남 탓하기와 떼 법의 억지와 선동의 싸구려 사회 풍토가 득세했다. 일본발 문화 충격은 그 저급함을 퇴출하는 자극이 될 것”이라고 썼다. 전 의원은 “이 외에도 다수 칼럼에서 ‘지일’(知日), ‘극일’(克日)이라는 단어가 발견된다”며 “지일과 극일은 일본의 고급스러움을 배워 우리의 저급함을 극복하자는 뜻으로 읽힌다”고 했다.
  • 한덕수·박보균, 2013년 일왕 생일 축하연 참석 논란

    한덕수·박보균, 2013년 일왕 생일 축하연 참석 논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2013년 일왕 생일 축하연에 참석한 사실이 확인됐다. 일본 정치인들의 ‘위안부’ 망언으로 반일 감정이 극에 달했을 시기 큰 행사에 다녀온 것이어서 두 사람의 대일 의식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8일 페이스북에 이런 내용을 지적하면서 “2010년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시작으로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김석기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 등 보수정당·정권 핵심 관계자들이 줄줄이 참석하며 매년 국민들로부터 막대한 비판을 받았던 바로 그 자리”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런 자리에 현재의 총리, 문체부 장관 후보자가 다녀갔다는 점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이 시점에서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을 국무위원 후보자로 추천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되물었다. 또 박 후보자가 한 칼럼에서 일본 국민과 우리 국민을 비교하며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을 낮춰 이른 점을 들어 “이 ‘환장의 조합’ 결과로 일본이 우리를 국제관계의 호구처럼 보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직격했다. 이에 대해 한 후보자 청문회 준비단은 “한 후보자는 2013년 한국무역협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며 “한일 양국의 불행한 과거사를 고려할 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양국의 무역 규모를 생각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너그러이 이해해 달라”고 밝혔다.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박 후보자는 “당시 중앙일보 대기자였으며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역주행을 집중 취재 중이었고 일본인이 어떻게 일왕 생일을 다루는지를 현장 확인하기 위해 갔다”고 해명했다.
  • “중국서 약탈한 문화재 반환해야”…일본 내부서 제기된 목소리 왜?

    “중국서 약탈한 문화재 반환해야”…일본 내부서 제기된 목소리 왜?

    일본인 학자들로 구성된 일본 민간단체가 중·일 전쟁과 러·일 전쟁 당시 일본이 약탈했던 문화재를 중국에 반환해야 한다고 일본 정부에 촉구해 이목이 쏠렸다. 중국 신원망 등 다수의 매체는 지난 15일 일본 민간단체인 ‘중국문물반환운동추진회’가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이 전쟁 중 약탈한 중국 문화재를 반환해 진정한 중·일 양국 우호 관계를 다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고 1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민간단체인 ‘중국문물반환운동추진회’는 지난해 4월 일본인 변호사 게이이치로 이치노세에 의해 설립됐다. 설립 초기부터 중국 유력 매체와 역사학자들과의 빈번한 교류 활동을 진행했으며, 최근에는 중국 당국이 일본에 반환을 요구했던 일본 황궁 내의 돌각비석과 야스쿠니 신사 입구의 돌사자 두 점, 야마현 아리토모 기념관 앞의 돌사자 등 4점에 대한 반환 요구를 이어가고 있다.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일본관동대 덩제 교수는 “일본의 역사박물관의 근대 전시실은 사실상 해외 각국에서 약탈한 문물을 전시한 약탈 박물관일 정도”라면서 “과거 근대화 시기의 일본제국이 해외에서 약탈했던 문물 다수가 일본 각 지역 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며, 심지어 경매 현장에서도 암암리에 거래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서 그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덩 교수는 이어 “이 같은 일본 정부의 태도는 중·일 양국 외교 정치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약탈한 문화재 조기 반환에 대해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국문물반환운동추진회의 공동대표인 이가라시 아키라 역사학자는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무력으로 빼앗은 것은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사실상 불법으로 일본에 밀반입된 문화재 수는 엄청나게 많다. 과거 약탈했던 문화재를 반환하는 움직임은 미국과 유럽 각국을 시작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가관의 관계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했다. 이어 “일본도 이런 현상을 보고 본받아야 한다”면서 “문화재 반환을 시작으로 향후 일본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일본 내부에서 시작된 민간단체의 자발적인 문화재 반환의 목소리는 중국과 일본 양국의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개최됐다. 중국문물반환운동추진회는 오는 20일 문화재 반환 요구를 위한 긴급 집회를 추가로 개최할 계획이다. 한편, 중국은 민간 단체를 통한 과거 일제에 약탈된 문화재 반환요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4년 8월 중국 민간대일본배상연합회 측은 일본 정부와 일왕에게 일본 왕궁 내에 보존된 것으로 알려진 당나라 시대의 유물 한 점의 반환을 요구했고, 지난해 1월에는 야스쿠니 신사 진입로에 보관된 중국 돌사자 반환 요구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또, 지난 3월에는 야마현 아리토모 기념관 원내에 보관 중인 중국 돌사자 유물 반환을 요구하는 서한을 일본 정부에 전달했지만 어떠한 회신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日공주’ 포기한 마코, 맞벌이 확정…남편 또 불합격

    ‘日공주’ 포기한 마코, 맞벌이 확정…남편 또 불합격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조카 마코(眞子·30)가 결혼과 함께 공주 신분을 버리고 미국 뉴욕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다. 2017년 9월 약혼한 마코는 매년 결혼 기사가 나왔지만 연기하기를 거듭하다 혼인신고를 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공주의 남편이 된 고무로 게이(小室圭·30)는 불안정한 경제력과 집안의 빚문제로 논란이 됐다. 일본 매체는 마코의 결혼과 미국행을 ‘야반도주 결혼’이라고 부르며 반감을 드러냈다. 고무로는 2018년 8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의 로스쿨에서 공부했고 지난해 7월 변호사 자격시험을 치렀지만 떨어졌다. 그리고 올해 2월 재시험을 치렀지만 또 떨어졌다. 이번에도 떨어져  마코가 맞벌이에 나설 예정이라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교도통신은 14일(현지시간) 이날 발표된 뉴욕주 변호사 시험 합격자 명단에 마코의 남편인 고무로 게이의 이름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뉴욕주 변호사시험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시험에는 3068명이 지원해 약 1378명이 합격, 약 45%의 합격률을 보였다. 지난해 시험의 합격률은 60%이었다.생활정착금도 없이 호화 월세 결혼과 함께 왕족 자격을 잃고 일반인이 된 마코는 품위 유지 명목으로 지급되는 최대 1억5250만엔(약 16억원)의 생활정착금을 받지 않았다. 현재 법률사무소에서 조수로 일하는 고무로의 연 수입이 6000만원 안팎이다. 마코는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전시회를 돕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학 시절 고무로와 만나 사랑에 빠진 마코는 “태양처럼 밝게 웃는 그의 미소에 끌렸다”라고 고백했다. 한 황실 언론인은 “혼인신고를 먼저 한 뒤 예식 없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건 황실 최초로, 이례적인 사랑의 도피”라고 말했다. 마코 부부의 신혼집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침실 한 개짜리 아파트로, 원룸이지만 아파트 내에 골프연습장, 바비큐 시설, 스파, 요가 스튜디오 등 커뮤니티 시설을 갖추고 있다. 월세는 4809달러(한화 약 570만원)다. 일본 내에서 공주 신분을 잃은 마코가 여전히 호화 생활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마코 측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신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 ‘뉴욕 평민’ 日공주, 미술관서 자원봉사 근무

    ‘뉴욕 평민’ 日공주, 미술관서 자원봉사 근무

    지난해 10월 일반인과 결혼해 일본 왕실을 떠난 나루히토 일왕의 조카인 마코 전 공주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에서 자원봉사자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마코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기획전인 13세기 일본 가마쿠라 시대 승려 잇펜의 전시를 돕고 있다. 마코는 정식 학예원이 아니라 학예원을 지원하는 자원봉사자로 있다. 일본 국제기독대학(ICU)에서 미술·문화재 연구를 전공하고 학예원 자격을 취득했다. 마코는 현재 뉴욕의 침실 1개짜리 아파트에 남편인 고무로 게이와 거주 중이다. 한편 지난 2월 뉴욕주 변호사시험에 재도전한 고무로의 시험 결과는 이달 말 발표된다. 일본 일간스포츠는 “맨해튼의 법률사무소 사무원으로 일하는 고무로가 불합격하면 현재 학생비자로 체류 중이라 오는 7월 체류 자격을 잃을 수 있다”고 밝혔다.
  • “정상회담·일왕 회동 다 추진”… 바이든 방일 분위기 띄우는 日

    “정상회담·일왕 회동 다 추진”… 바이든 방일 분위기 띄우는 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24일쯤 반중 안보협의체인 쿼드(미국·인도·호주·일본)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기로 하자 일본 정부가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2일 총리관저에서 윌리엄 해거티 전 주일 미국대사와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바이든 대통령의 방일은 이 지역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을 찾는 것은 취임 후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이다. 일본 정부는 여기에 의미를 두고 일본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정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쿼드 정상회의와 미일 정상회담 외에도 납북된 일본인 가족과의 면담, 나루히토 일왕과의 회담 일정도 조율 중이다. 다만 이 일정이 일본 측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요미우리신문은 13일 미일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다음달 21일 총선을 앞둔 호주와 일정 협의가 필요해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일정에 유동적인 면도 있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영국·호주 3자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 3국이 일본에 오커스 참가를 타진했다는 보도에 대해 일본 정부가 부인했다. 산케이신문은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들 국가가 극초음속 무기 개발이나 전자전(戰) 능력 강화 등에서 일본의 기술력을 활용하기 위한 의도로 일본에 오커스 참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영국, 호주가 일본에 오커스 참가를 타진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 “완벽한 서민 변신”…日마코 전 공주, 뉴욕서 새 일자리

    “완벽한 서민 변신”…日마코 전 공주, 뉴욕서 새 일자리

    나루히토 일왕의 조카인 마코 공주가 뉴욕으로 이주한 후 새 일자리를 구했다. 12일 복수의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 후 일본 왕실 직함을 포기하고 뉴욕으로 이주한 일본 마코 전 공주에게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 마코 전 공주는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를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박물관의 아시아 미술 컬렉션 파트에서 일하고 있으며 최근 기획된 불교 그림 전시회에 참여했다. 마코 전 공주는 대학 시절 예술문화 유산 관련 학위를 취득했으며 스코틀랜드 애든버러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2016년 영국 레스터대학교에서 미술관 및 갤러리 연구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일본 거주 당시 도쿄대 박물관 특별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일본법에 따라 공주는 평민과 결혼하면 왕실을 떠나야 한다. 마코 전 공주는 대학에서 만난 남자친구 코무로 케이와의 결혼을 위해 왕실 직함을 버리고 일본 정부로부터 왕실을 떠나는 여성에게 전통적으로 지급되는 1300만 달러(약 16억원)도 포기했다. 그의 남편 코무로 케이는 현재 뉴욕의 한 로펌에서 법률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다. “맨해튼 신혼집 월세만 570만원” 앞선 보도에 따르면 마코 부부는 뉴욕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렸다. 이 아파트는 센트럴 파크, 링컨 센터 등의 명소와 가까운 고급 아파트라고 한다. 침실은 1개지만 건물 내 피트니스 센터, 요가 스튜디오, 영화상영관, 골프연습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마코 부부가 살고 있는 원룸 아파트 임대료는 월 4809달러(약 570만원)이다. 마코는 남편과 맞벌이를 하며 평범하게 살겠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공주 시절과 다르지 않은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 [특파원 칼럼] 평화의 소녀상을 지지하는 일본인도 있다/김진아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평화의 소녀상을 지지하는 일본인도 있다/김진아 도쿄특파원

    지난 2일 일본 도쿄도 구니타치시 구니타치시민예술홀 갤러리에서 열린 ‘표현의 부자유(不自由)전 도쿄 2022’를 취재하러 현장에 가기 전 잠시 숨을 골랐다. 일본 우익 세력이 대규모 모이는 현장 취재인 만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일본 우익 인사들은 ‘일본을 향한 모멸과 차별전인 표현의 부자유전을 중단하라’ 등의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곳곳에서 항의 집회를 했다. ‘일본의 수치다’라고 확성기를 통해 외치는 차량 시위도 전시회 내내 이어졌다. 한 우익 인사는 항의하겠다며 전시회장 안을 무단으로 들어가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는 일도 있었다. 신분 확인 뒤 전시회장에 입장할 수 있었고, 소지품 검사는 물론 만일을 대비해 음료수 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전시회 실행위원회 측은 관람객을 제외한 관계자, 취재진 모두에게 식별할 수 있도록 명찰을 차도록 했다. 긴장이 감도는 분위기와는 달리 그래도 수십 명의 일본 경찰이 전시회장 주변을 통제하고 있어 우려했던 폭력 사태는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은 힘겹게 도쿄에 전시됐다. 도쿄에 전시된 건 7년 만이다. 우익의 협박으로 전시가 중단되거나 장소를 빌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서다. 일본 우익 세력이 ‘표현의 부자유전’ 개최를 항의하는 데는 ‘평화의 소녀상’ 외에도 일왕을 비난한 작품인 ‘원근(遠近)을 껴안고’ 등이 전시되기 때문이다. ‘평화의 소녀상’과 ‘원근을 껴안고’를 실제로 본 감동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건 전시회에 함께한 ‘일본인들’이었다. 오카모토 유카 실행위 공동대표 등은 도쿄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소개하기 위해 구니타치시와 100여회 넘는 협의를 했다. 다양한 연령대로 이뤄진 240명의 자원봉사자와 60명의 변호사는 2일부터 5일까지 열린 전시회장을 끝까지 지켰다. 우익의 항의 집회에 반대하며 표현의 행사 개최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전시회장 밖에서 맞불 시위를 열기도 했다. 나흘 동안 1600명이 전시회장을 찾았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부터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이까지 다양했다. 20·30대로 보이는 젊은 일본인들이 꽤 있어 놀라웠다. “일본을 떠나라”고 외치는 우익 인사의 항의 집회가 신경쓰일 법도 한데 관람객들은 차분하게 줄을 서서 전시회장 입장을 기다렸다. 관람을 마치고 온 한 20대 남자 대학생에게 ‘밖의 항의 시위가 신경쓰이지 않느냐’고 묻자 “폭력만 쓰지 않으면 괜찮다. 전시회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도 저들의 자유가 아니겠느냐”고 성숙한 답변을 했다. 일본에는 과거 좋았던 시절만 남기겠다며 역사 왜곡을 주도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내는 일본인도 많다. 역사 왜곡이 주류가 된 상황에서 이러한 전시회를 기획하고 개최하려고 하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인데도 해내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이를 공감해 주는 일반 시민들도 있다. 한국에서 일본을 거론할 때 ‘혐일’이란 단어는 빠지지 않는다. 잔혹한 과거사로 일본인을 싸잡아 욕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렇게 매도하는 일본인 가운데는 이처럼 용기를 내 자신들의 역사 왜곡이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우리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응원을 보내야 한다. 이런 일본인들과 어떻게 하면 일본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이 자리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무조건적인 혐일보다 훨씬 생산적이다.
  • 소녀상, 도쿄에 앉는 데만 7년… 협박에도 함께 앉은 1600 日양심

    소녀상, 도쿄에 앉는 데만 7년… 협박에도 함께 앉은 1600 日양심

    “‘평화의 소녀상’을 보고 일본이 과거 잘못했던 일을 알게 돼 부끄럽습니다. 이 전시회를 둘러싸고 저렇게 시끄럽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지난 2일 일본 도쿄도 구니타치시 구니타치시민예술홀 갤러리에서 열린 ‘표현의 부자유(不自由)전 도쿄 2022’ 관람을 마친 70대 남성이 이같이 말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남성에게 전시회 소감을 묻는 내내 전시회장 밖에서는 일본 우익 인사들의 전시회 반대 시위가 확성기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도쿄에서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전시된다. 7년 만에 열린 이번 전시회는 1600명분의 입장권이 모두 매진되는 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표현의 부자유전·도쿄실행위원회’(실행위)는 지난해 6월 도쿄 신주쿠구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려고 했지만 우익 단체의 협박으로 장소 대여가 어려워지면서 전시회를 열지 못했다. 앞서 2019년 8월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기획전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하려 했지만 이 역시 협박 때문에 전시가 사흘 만에 중단됐다. 지난해 7월 나고야에서도 폭죽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배달돼 전시가 중단된 바 있다. 실행위는 도쿄도 중심부로부터 떨어진 구니타치시와 100여회 협의 끝에 겨우 전시회를 열기로 했지만 우익의 방해는 계속됐다. 개최 소식이 알려지자 구니타치시 측에 100여건에 달하는 항의 전화 및 메일이 쇄도했다. 이날도 ‘일본을 향한 모멸과 차별전인 표현의 부자유전을 중단하라’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 시위를 하는 일본 시민, 전시장 진입을 시도하려다 경찰에 저지당한 우익 등으로 전시회장 주변은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전시회 개최를 지지하는 뜻 있는 일본인들이 전시회장을 지켰다. 240명의 자원봉사자와 60명의 변호사가 힘을 합쳐 전시회 개최를 도왔다. 또 전시회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도쿄는 파시즘에 반대한다’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우익 시위에 항의했다. 오카모토 유카 실행위 공동대표는 “전시회가 협박 때문에 열리지 못한다면 이는 일본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전시회에는 16명의 작가가 제작한 수십 점의 작품이 소개됐다. 평화의 소녀상 외에도 ‘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 ‘군마현 조선인 강제연행 추도비’ 등 한국과 관련된 작품들도 다수 소개됐다. 도쿄에서 온 한 50대 여성은 “평화의 소녀상을 보고 전쟁 상황에서 여성이 성폭력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며 “아직도 한일 간 이 문제가 정리되지 못해 안타깝다. 일본이 정말 잘못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일제의 조선 침략 장본인인 히로히토 일왕을 비난한 작품으로 유명한 ‘원근(遠近)을 껴안고’도 전시됐다. 20대 남자 대학생은 “일본에서는 천황(일왕)을 공개 비난하는 게 드문 일인데 천황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작품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 [르포] “우익 반대 시위 부끄러워”…도쿄에 7년 만에 등장한 평화의 소녀상

    [르포] “우익 반대 시위 부끄러워”…도쿄에 7년 만에 등장한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을 보고 일본이 과거 잘못한 일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 전시회를 여는 것에 밖에서는 이렇게 시끄럽게 반대하는 것도 정말 부끄러운 일 아닙니까.” 2일 도쿄도 구니타치시 구니타치시민예술홀 갤러리에서 열린 ‘표현의 부자유(不自由)전 도쿄 2022’ 관람을 마치고 온 70대 남성은 이같이 말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남성에게 전시회 소감을 묻는 내내 갤러리 밖에서는 일본 우익 인사들의 전시회 반대 시위가 소란스럽게 이어졌다. 이 남성은 “이렇게 전시회에 오게 된 건 최근 일본의 행태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제대로 (역사를) 배우기 위해 이번 전시회에 왔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7년 만에 일본 수도 도쿄에서 2일부터 5일까지 전시된다. 평화의 소녀상이 도쿄에 전시되는 건 2015년 1월 이후 7년 3개월 만이다. 1600명분의 입장권은 모두 매진되는 등 전시회에 관심이 집중됐다. ‘표현의 부자유전’이 일본에서 개최되는 건 인내와 고통을 필요로 한다. ‘표현의 부자유전·도쿄실행위원회’(실행위)는 지난해 6월 도쿄 신주쿠구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려고 했지만 우익 단체의 협박으로 전시장 측이 장소 대여를 거부하면서 끝내 전시회가 열리지 못했다. 2019년 8월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기획전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하려 했지만 이 역시 협박 때문에 전시가 사흘 만에 중단됐다. 지난해 7월 나고야 역시 폭죽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배달돼 전시가 중단되기도 했다.이번에도 우익의 방해는 일찌감치 예상된 일이었다. 실행위는 구니타치시 등과 지난해 9월부터 100여차례 협의를 하며 전시회를 준비했다. 개최 소식이 알려지자 구니타치시 측에 100여건에 달하는 항의 전화 및 메일이 쇄도하기도 했다. 실제 전시 첫날인 이날 우익의 항의가 이어졌다. 확성기를 통해 “일본의 수치다”라고 외치는 차량이 전시회장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았다. ‘일본을 향한 모멸과 차별전인 표현의 부자유전을 중단하라’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 시위를 하는 일본 시민, 전시장 진입을 시도하려다 경찰에 저지당한 우익 등 전시회장 주변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전시회 개최를 지지하는 뜻있는 일본인들이 전시회장을 지켰다. 240명의 자원봉사자와 60명의 변호사가 힘을 합쳐 이번 전시회 개최를 도왔다. 또 전시회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도쿄는 파시즘에 반대’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우익 세력 시위에 맞서 항의 시위를 열었다. 오카모토 유카 실행위 공동대표는 “전시회가 협박 때문에 개최하지 못한다면 이는 일본의 민주주의가 문제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구니타치시의 협력 및 여러 시민의 힘과 목소리가 합쳐져 전시회 개최가 가능했다”고 말했다.이번 전시회에는 16명의 작가의 수십 점의 작품이 소개됐다. 특히 평화의 소녀상 외에도 ‘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 ‘군마현 조선인 강제연행 추도비’ 등 한국 관련 작품이 소개됐다. 상당수의 관람객은 평화의 소녀상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온 50대 남성은 “TV에서 자주 보도돼 실물을 한 번 보고 싶었다”며 “(소녀상) 옆에 앉아보기도 하고 직접 보니 슬픈 감정이 들었다”고 밝혔다. 50대 여성은 “이 작품을 보면서 전쟁 상황에서 여성이 성폭력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 마음이 무거웠다”며 “아직도 한일 양국 사이에 이 문제가 정리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제의 조선 침략을 일으킨 히로히토 일왕의 모습을 담은 실크스크린 작품이 불타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영상 작품인 ‘원근(遠近)을 껴안고’ 등도 전시됐다. 우익 세력이 전시회를 반대하는 이유로는 평화의 소녀상 외에도 일왕을 모욕하는 작품이 소개됐다는 것도 있다. 트위터를 통해 전시회 개최 사실을 알고 보러 왔다는 20대 남자 대학생은 “(원근을 껴안고 등) 천황(일왕) 작품을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일본의 천황 제도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데 작품이 어떤 식으로 반대하는지 알고 싶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 비장함 대신 환한 미소로… 조국 독립의 ‘영원한 쾌락’을 선택했다[김별아의 도시 기행문 서울을 걷는 시간]

    비장함 대신 환한 미소로… 조국 독립의 ‘영원한 쾌락’을 선택했다[김별아의 도시 기행문 서울을 걷는 시간]

    한 사내가 있었다. 잔인한 20세기가 시작되던 해 유달리 덥던 여름에 세상에 났다. 아버지는 소실을 둘씩이나 거느린 한량이었다. 어머니는 사랑을 잃고 의기소침한 여인이었다. 배다른 형제까지 6남 1녀, 아무도 병약한 둘째 아들을 귀애하지 않았다. 바람과 함께 컸다. 먼지덩이처럼 구르며 자랐다. 귀 얇은 아버지가 교활한 일본인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은 몰락했다.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았다. 열다섯 살에 몰씬한 단내를 좇아 일본과자점에 취직했다. 화과자와 찹쌀모찌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뻤지만 가난한 점원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열일곱 살의 생일은 말라리아와 함께 왔다. 열병 끝에 관절염이 생겼다. 이후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뼈마디부터 저리고 아팠다. 짧은 생애가 삐걱거렸다.(졸저 ‘백범’ 중에서)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은 후대의 일이다. 민족 혹은 국가, 어떤 공동체가 역사의 인물을 기념하는 것은 과거보다 현재의 의미 때문이다. 냉소적으로 말하면 선양 사업은 잘난 자손의 가업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자손이 없거나 한미하면 같은 일을 하고도 역사의 어둠에 묻혀버리기 일쑤다. 고향의 지자체에서 자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그조차 복불복이다.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다. 우당 이회영 같은 명문거족 출신은 아니더라도 백범처럼 부모의 총애를 담뿍 받았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윤봉길처럼 고향의 뿌리와 월진회를 조직해 함께 활동한 동지들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복형제까지 더해 7남매 중의 둘째 아들, 용산에서도 일본 오사카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떠돌이, 안팎 어디서나 누구라도 그에게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았을 게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으니 빚도 없었다. 그 고독한 바람의 사내 이봉창이 여기 있었다. ‘이봉창 집터: 독립운동가 이봉창(1901~1932)이 살던 집터이다. 이봉창은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명중시키지 못하였고, 그해 10월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하였다.’ 효창공원역 1번 출구 귀퉁이 화단에 더부살이했던 부정확한 표석은 철거됐고, 새로운 표석이 2018년 사용 승인된 용산KCC스위첸아파트 102동 3·4호 라인 현관 맞은편 화단에 자리잡았다. 이봉창 의사는 경성부 용산방 원정2정목(현 원효로2가)에서 태어나 경성부 금정(현 효창동) 118번지에서 열한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살았다.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번지수가 불명확해진 탓인지 일부 인터넷 지도에는 집터와 생가터의 표기가 혼동돼 있다. ‘이봉창 집터’ 표석이 있는 102동 앞에서 후문으로 빠져나와 경사진 언덕길을 내려오면 ‘이봉창 역사울림관’이 있다. 거리로는 멀지 않은데 아파트 벽으로 막혀 있으니 아쉽다. 효창공원역 1번 출구에서 접근하면 역사울림관을 먼저 보고 표석을 찾는 동선이 자연스러울 듯하다. 역사울림관이 12시부터 13시까지 점심시간에 문을 닫는 걸 모르고 갔다가 1시간을 꼬박 밖에서 기다리게 됐다. 기념관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기에 그냥 돌아갈까 망설였다.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을 적은 패널과 사진, 기념품 몇 점을 전시한 재미없는 공간이 내가 기억하는 기념관의 전부였다. 그래도 2021년 10월에 개관했다니 뭐라도 다를까 궁금하고, 작은 뜰 앞 툇마루에 놓인 푹신한 방석이 마음에 들어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햇살은 따스하고 사위는 고즈넉하다. 거리를 향해 놓인 벤치에는 두 사람의 실루엣으로 조각이 앉아 있는데, 버튼을 누르니 녹음이 흘러나온다.“군은 무엇인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사건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해도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 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묻는 사람은 백범이고 답하는 사람은 이봉창이다. 쾌락을 말하는 이봉창의 말에는 허무가 묻어 있다. 허랑하고도 방탕하게, 분진으로 가득한 누항을 떠돈 자의 지독한 피로다. 이봉창의 모습은 전형적인 운동가의 그것이 아니었다. 조직은커녕 소개인이나 소개장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청사를 찾아와 일본인들이 부르는 ‘가정부’(假政府)라는 이름으로 임시정부를 찾았다. 일본말과 조선말을 섞어 쓰는가 하면 엔카를 멋들어지게 불러서 ‘일본영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오리 바람에 게다짝을 끌고 청사에 들어오려다 중국인 문지기에게 쫓겨나기까지 했다. 모두가 오해했다. 많은 이가 의심했다. 하지만 백정선이라는 가명을 쓰던 한 사람, 백범만은 그의 진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비장한 태도와 결기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마지막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의지는 굳건했다. 그는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단순하고, 선명하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자유로운 이봉창만의 방식이 있었다. 백범의 매서운 눈빛을 어린아이처럼 맞받으며 반달눈으로 빙긋이 웃던 이봉창은 그렇게 한인애국단 1호 단원이 됐다.‘일을 맡기면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 백범의 원칙은 명확했다. 미주와 하와이, 멕시코와 쿠바에 사는 동포들이 보내준 피 같은 돈을 일체의 망설임 없이 이봉창에게 건넸다. 돈은 정직하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은 모험이다. 그러나 그만큼 의미 있는 모험이었다. 이봉창은 난생처음 진정한 믿음을 얻었다. “엊그제 선생께서 속주머니를 뒤집어 천여 원의 거액을 제게 주셨지요. 그 돈을 받고 돌아가서는 온밤을 잠들지 못하였습니다. 눈물이 절로 흐르더이다. 누더기 단벌 장삼에 굶기를 밥 먹듯 하는 형편을 뻔히 아는데, 대관절 저를 어떻게 믿고 이같이 큰돈을 털컥 맡기십니까? 프랑스 조계에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하는 선생께서는 제가 이 돈을 가지고 달아나 마음대로 써버려도 찾으러 오지 못하실 테지요. 과연 영웅의 도량이로소이다! 제 평생에 누가 저를 이토록 믿어 주었겠습니까? 이토록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은 선생께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기다리길 잘했다. 두 칸짜리 한옥 크기의 이봉창 역사울림관은 평면적이고 지루하다는 기존 기념관에 대한 편견을 깬 작지만 새로운 공간이었다. 바닥에 그려진 발 모양에 맞춰 의사의 흉상을 마주 보고 서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겠다’는 선서문이 들린다. 한인애국단 단원이 돼 사진을 찍는 증강현실(AR) 체험과 1932년 1월 8일 일왕의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지는 현장에 함께하는 가상현실(VR) 체험(VR은 기술적 측면에서 조금 더 개선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을 할 수 있다. 이봉창 의거와 사형 집행, 해방 후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기까지의 신문 기사들을 여닫이창을 화면 삼아 띄워 볼 수도 있다. 직접 가보지 못한다면 인터넷을 통한 3D 체험도 가능하다(https://my.matterport.com/show/?m=T9Wk7zuBySz). 오롯이 이봉창 의사를 기리는 공간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제는 그 사내도 영원한 쾌락 속에서 편히 쉬리라. 바람 끝이 많이 따뜻해졌다. 바야흐로 봄인가 보다. 소설가
  •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동아시아의 어떤 연대감/번역가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동아시아의 어떤 연대감/번역가

    하타노 이소코의 ‘소년기’(우주소년·2018)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공습을 피해 시골에 피신해 있던 한 어머니와 중학생 아들이 나눈 4년간의 편지를 묶은 책이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일왕의 항복 방송이 나온 뒤,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거리에 나갔다가 즐거워하는 어머니의 표정을 읽고 그날 편지에서 분노를 표한다. “어머니가 전쟁을 싫어하셨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모두 패전을 슬퍼하는데 어떻게 즐거워하실 수가 있죠? 안 그런 척 숨기실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이다. 나라를 위해 자기도 전장에 나가고 싶다고 한 ‘애국 소년’으로서는 당연한 항의였다. 비슷한 장면을 중국 작가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2012)에서도 본 적이 있다. 1976년 9월 어느 날 아침 고교 2학년이었던 위화는 모든 교사와 친구들과 함께 학교 강당에 불려 간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의 위대한 영수 마오쩌둥 주석이 불행히도 지병으로 서거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곧장 강당은 울음바다가 됐다. 1000여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우는 통에 위화도 덩달아 울긴 했지만 문득 이렇게 풍부하고 다채로운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모두 울음소리 경연을 벌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이 나왔고 놀라서 앞 의자에 두 팔을 올린 채 그 위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친구들은 어깨까지 떨며 가장 슬프게 울더라고 그를 위로했다. 위 두 장면을 읽고 이른바 ‘동아시아적 연대감’을 느꼈다. ‘동아시아’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게 한중일 외에 대만과 북한의 역사에도 저 연대감에 속할 만한 장면이 숱하게 많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적 연대감은 자랑할 만한 장면들의 소산은 아니다. 모두 어린 시절 우상의 배반에서 비롯된다. 내게 그것은 매일 오후 6시 국기강하식 시간의 전국적인 ‘얼음 땡 놀이’의 기억으로 상징된다. 해가 질 무렵 학교와 관공서의 스피커에서 사이렌이 흘러나오면 길거리의 남녀노소, 자전거, 손수레까지 멈춰 서서 국가와 애국선열을 떠올리며 장중한 묵념에 빠졌다. 정확히 1971년 3월부터 1989년 1월까지 18년 동안 나와 친구들은 군사정권의 그 제식 놀이에 농락당했다. 우리는 우상의 시대에 태어나 우상화 교육을 받았기에 그것이 놀이인 줄 몰랐고 놀이가 끝났을 때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아이들의 순진한 정신까지 마비시키는 국가주의 교육의 시대는 우리에게서는 다행히 끝났다. 하지만 얼마 전 “대만은 우리 땅이에요. 그걸 부정하면 당연히 강제 점령해야죠”라는 중국인 제자의 말을 듣고 중국에서는 그것이 끝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야 하지? 대만인도 같은 중국인이라면서?”라는 내 물음에 그는 머뭇대다가 “모르겠어요. 학교에서 그렇게 배워서인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 역사의 주춧돌 위에 미래 쌓아 올리는 용산 [현장 행정]

    역사의 주춧돌 위에 미래 쌓아 올리는 용산 [현장 행정]

    효창공원 등 근현대 명소 곳곳에이봉창 등 독립투사 기념관 건립23일 용산역사박물관 개관 앞둬박물관 인프라 연계 시너지 효과“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선열들의 가르침은 역사라는 물줄기를 타고 흘러 후손들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근현대사 유물을 바탕으로 ‘역사문화도시’ 용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습니다.”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이 평소에도 자주 들르는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을 지난 11일 찾았다. 서울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앞역 인근에 있는 이곳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1932년 일본에서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진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를 기념하는 곳이다. 성 구청장은 “용산에서 나고 자란 이봉창 의사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됐지만 1등급 대한민국장이 아닌 2등급 대통령장에 머무는 등 업적에 걸맞은 예우가 부족했다”며 “의사의 업적을 더 널리 알리고 숭고한 독립 정신을 기리고자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15일 구에 따르면 2010년 민선 5기부터 3선 연임한 성 구청장은 일찍이 용산의 경쟁력을 ‘역사문화관광’에서 찾았다. 용산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7명의 유해가 모셔진 효창공원과 승전기념관, 미군 기지 등 근현대 역사 명소가 곳곳에 있다. 성 구청장이 2016년 효창원 의열사를 재정비하고 같은 해 9월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건립한 데 이어 2020년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을 개관하는 등 역사 사업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역사도시로서의 용산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용산구는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4월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역사문화르네상스특구’로 지정됐다. 특구는 한강로3가 약 57만㎡ 규모로 용산구 면적의 3분의1에 해당한다. 2024년까지 510억원을 투입해 4대 주요 특화 사업을 추진한다. 성 구청장은 “특구로 지정된 지 1년 만에 외형적인 인프라를 상당 부분 갖췄다”며 “국립중앙박물관을 포함한 박물관 9곳과 미술관 4곳 등 기존 역사문화 인프라와 연계해 ‘박물관 도시’로서의 가치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특히 성 구청장은 오는 23일 개관을 앞둔 ‘용산역사박물관’이 특구를 이끌 주춧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는 1928년에 지어진 옛 용산철도병원(등록문화재 제428호) 건물을 개보수해 지역사 박물관을 만들었다. 성 구청장은 “민선 6기부터 역사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대적으로 유물을 수집해 현재까지 4000여점을 모았다”며 “멀지 않은 훗날 국내외 관광객들이 박물관 투어 버스를 타고 용산 곳곳을 돌아보며 용산이 지닌 역사 문화 콘텐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