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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인10색” 일 각료들의 「파병론」

    ◎총리ㆍ외상ㆍ법제국장 등 서로 다른 논리/“수정ㆍ철회”… 견해 통일안돼 횡설수설 질의에 나선 사민연의 나라자키 야노스케의원은 이렇게 서두를 꺼냈다. 『이 법안에 대한 정부당국자들의 견해는 구구각색이다. 이쪽에서 문제가 수습됐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 문제가 터진다. 법안을 제안한 사람들조차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한마디로 모순 투성이의 법률이다』 19일 개최된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의 질의답변은 6번이나 중단되는 소란을 피웠다. 총리와 외상의 답변이 다르고,내각법제국장관은 장관대로,외무성 조약국장은 또 그 나름대로 서로 말이 달랐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엔평화협력법안」에 이한 협력대원이 다국적군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인가가 초점이었다. 이날 야마구치 의원은 유엔협력대 파견의 전체가 되는 유엔결의와 협력대에 의한 다국적군 지원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대해 가이후 총리는 『유엔결의를 근거로 파견 또는 결의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국적군이 행하는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나카야마 타로(중산태랑) 외상은 다국적군에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근거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한 유엔결의 6백60호(8월2일),이라크 경제제재 결의인 6백61호(8월6일)와 이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6백65호(8월25일) 3결의안을 들었다. 야마구치 의원은 이 답변에 대해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에의 전개는 8월8일이었다. 유엔결의 6백60회는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비난만을 내용으로 하고 있고 제재조치까지는 담지 않고 있다』며 정부측의 통일된 견해 제시를 요구,질의를 한때 보류했다. 나카야마 외상은 답변을 취소하고 위원회 종료 직전 총리답변대로 통일견해를 내놓았다. 일본정부의 통일견해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는 다국적군은 유엔안보리결의가 추구하는 이라크의 쿠웨이트로부터의 무조건 철수를 실현하기 위한 불가결한 전제』라는 것이다. 이날의 논란은 유엔군이 창설됐을 경우 자위대 참가문제에서도 빚어졌다. 구도 아쓰오(공등돈부) 내각법제국장관은 자민당의 다니가와 가즈오(곡천화수)의원의 『유엔군에자위대 참가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유엔헌장에 따른 정규 유엔군에 어떻게 관여할까라는 문제는 아직 연구중이어서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고 『해외파병은 자위를 위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넘는 것이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는다는 헌법 제9조의 해석을 거듭해 추론하면,그 임무가 일본을 방위하는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유엔군에 자위대가 참가하는 것은 헌법상 문제가 남는 것이 아닌가』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는 당초 『집단적 안전보장행동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자위대참가는 가능하다』는 새로운 헌법해석을 제시할 방침이었으나 이 해석을 앞세우면 오히려 유엔평화협력법안의 심리에 지장을 줄 염려가 있다는 견지에서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간사장등 자민당 집행부는 지금까지 『동서냉전구조의 해소라는 새로운 국제정세의 흐름속에 장래 유엔군에의 대응도 명확히 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정부에 대해 유엔평화협력법의 심의에 앞서 자위대의 유엔군참가에관련되는 헌법해석을 명확히 하도록 요청했었다. 이에 따라 정부도 이번 임시국회중에 새 견해를 밝힐 방침을 세우고 가이후 총리가 외무성과 내각법제국에 의견조정을 지시했었다. 그러나 가이후 총리는 지난 17일 「연구」는 하되 이번 국회에서는 결론을 내지 않기로 작정,연기를 선언했다. 가이후 총리로서는 지금단계에서 무리하게 신해석을 했을 때 「유엔군참가는 헌법상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올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자위대의 해외파병에 길을 열었다는 야당측의 반발로 국회는 공전되고 유엔평화협력법안의 성립은 절망적으로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정국혼란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이번 유엔평화협력법안은 이같은 심의과정중의 난항이 아니더라도 장애가 많다. 우선 「평화헌법」과 「국회결의」를 뒤집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장벽이 있으며,여론의 반대도 강하다. 또 자민당내부와 정부관련기관 사이에도 불협화음이 크다. 게다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의 경계와 저항이 거세며,참의원에서는 여야가 역전되어 있다. 오는 11월12일 거행되는 일왕의 「즉위의 예」까지라는 시간상 제약도 간과할 수 없다. 자위대파병법인 유엔평화협력법안의 행방과 「파병국회」의 거취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 유괴살해범 2명 사형선고/수원지법/기소 27일만에 이례적 속결

    ◎공범아내엔 무기형 【수원=김동준기자】 집앞에서 놀던 어린이를 유괴,쌀부대에 넣어 저수지물에 버려 살해한 범인 3명에게 검찰의 구형량대로 2명에게는 사형,1명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수원지법 형사2부(재판장 유창석부장판사)는 16일 상오 열린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이완희군(5) 유괴살해사건 선고공판에서 전기철(23ㆍ수원시 장안구 신풍동 231) 문경한피고인(22ㆍ 〃 ㆍ 〃 연무동 193)에게 각각 사형을,전피고인의 처 김은실피고인(20)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들 피고인에 대한 1심재판은 지난 9월19일 기소된지 27일만에,지난5일 구형된지 11일만에 이례적으로 모두 끝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동의욕없이 일확천금을 노려 특정한 대상없이 무작위로 범행대상을 삼아 어린이를 유괴,살아있는 상태에서 물에 빠뜨려 숨지게한 범행경위는 극악무도한 인간심성과 도덕성을 상실한 황폐화된 인격을 엿보게 한다』면서 『인명경시풍조를 불식하고 땅에 떨어진 도덕성의 회복을 위해 피고인들을 극형에 처함이 마땅하다』고 선고이유를 밝혔다. 전피고인 등은 지난달 4일 하오3시쯤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1119 집앞에서 놀고있던 이모씨(32ㆍ회사원)의 아들 완희군을 유괴,쌀부대에 넣어 수원시 송죽동 일왕저수지에 버려 숨지게한 뒤 이군집에 3천만원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를 걸다 같은달 8일 경찰에 붙잡혔다.
  • 「일ㆍ북한 수교」 한ㆍ일 사전협의로/정부

    ◎새달 각료회담때 「협상조건」 구체화/「경협자금 군비사용 불가」 등 요구/「하나의 조선」ㆍ「전후 45년간 배상」/일 정부 “공식입장 아니다” 통보 정부는 일ㆍ북한간의 「8개항 공동선언」과 관련,일본정부가 「하나의 조선」 「전후 45년간 배상」은 일본정부의 의견과 다르다고 공식통보해옴에 따라 수교 전 배상 불가,경제협력자금의 군비증강 사용불가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한편 앞으로의 일ㆍ북한 수교협상은 한일 양국의 긴밀한 사전협의 아래 진행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 일ㆍ북한간의 수교협의가 11월부터 착수되는 점을 감안,오는 11월 하순에 열릴 제15차 한일각료회담에서 일ㆍ북한 관계개선 문제를 정식 의제로 채택,이같은 사전협의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외교당국자는 6일 일본정부는 우리측이 문제를 제기한 「하나의 조선」 「전후 45년간 배상」 「총리대신 친서」 등 3개항에 대해 외교채널을 통해 공식입장을 전달해왔다고 밝히고 『「하나의 조선」 문제는 가네마루 신(김환신)전 부총리 등이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작성된 것이며 일본정부의 입장과는 다르다고 해명해왔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또 「전후 45년간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정부의 의견과는 다를 뿐 아니라 그에 따른 배상은 하기가 어렵다는 게 일본정부의 생각이라고 전달해왔다고 말하고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일단 일본정부측의 해명을 수용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당국자는 가이후 자민당총재의 친서부분에 대해 일본측은 과거사의 유감표명이 총리대신 자격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비록 친서명의는 자민당 총재 자격이라 할지라도 유감표명 관련 본문에는 내각 총리대신 자격임을 밝히고 있어 우리는 일본측의 해명을 수용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당국자는 또 공동선언문의 배상부분에 대해서는 일본어본과 조선어본간에 표현상 차이가 있다고 지적,일본어본에는 「수교시 배상」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반면 조선어본에는 「수교와 관련하여 배상」이라고 표시되어 있어 배상의 시기문제에 대해 일ㆍ북한간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하고 『우리 정부는 수교전 배상은 있을 수 없으며 배상금 성격의 경협자금이 북한의 군비증강에 결코 쓰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일본측에 분명히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자는 오는 11월부터 일ㆍ북한간에 수교협상이 시작된다고는 하나 오는 11월12일 아키히토(명인) 일왕 즉위식,22일의 대상제(일왕 즉위 후 처음 맞는 추수감사제) 등 일정에 비추어 하순께나 논의에 착수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하고 『오는 11월26일 전후로 열릴 한일각료회담시 일ㆍ북한 관계개선 문제를 주요 현안으로 거론,한일 양국의 사전협의를 확실히 보장받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오는 8일 하오 청와대 방문 희망을 수락한다는 사실을 6일 하오 일본정부에 통보하는 한편 그의 방한이 일본정부나 자민당의 특사가 아니라 개인자격임을 감안,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을 전달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이에 따라 노태우 대통령도 가네마루 전 부총리로부터 「공동선언」 합의의 당사자로서의 경위와 배경설명을 듣는 입장을 취할 예정이며 다만 그동안 일ㆍ북한 관계 문제에 대해서는 한일 양국이 긴밀한 협의를 잘 진행해왔는데 이번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방북활동에서는 너무 앞서가는 느낌을 받았다는 수준에서 주의를 환기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 김일성의 「11월 협상」 제의… 일 정부 반응

    ◎일,예상깬 수교교섭 제의에 “환영”/북한 「두개의 조선반대」 철회 간주/“한국 불이익없게 배려” 입장 확인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북한당국자들이 27일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제의해 온 것에 대해 일본정부는 한때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나 『원칙적으로 수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는 27일 『지금까지 굳게 문을 닫고 있었으나 이처럼 정부간 절충을 제안해온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다. 이것은 큰 역사적 대목이다』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외무성 수뇌도 이날 밤 『정부간 대화는 일본쪽에서 요청하고 있던 것이어서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교섭에 응하겠다는 방침을 명백히 밝혔다. 이 당국자는 북한측이 교섭개시 시기를 11월 상순으로 하자는 것에 대해 『대표단이 귀국 후 이야기를 듣고 상의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11월 초가 「유엔평화협력법안」(가칭)을 심의할 임시국회개회가 예상되는 데다 그 직후 일왕의 즉위식 및 일 소 교섭 등 중요한 정치일정이 집중되어 있어 시기선정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일본 정부간 교섭에 임하는 기본자세에 관해 『한반도전체의 안정,긴장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미국과도 의견을 교환해가며 대화를 진전시켜 나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협력 등 북한·일본 관계개선에 의해,남북대화를 진행시키고 있는 한국이 불이익을 입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문제는 북한측이 왜 느닷없이 예상밖의 국교정상화를 제의했느냐는 점이다. 배경은 자체내의 경제곤란과 한국에 대한 외교적 열등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번 제안은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3당대표자 정치회담에서도 제기됐으나 주무대는 외무실무자들의 협의 석상에서였다. 일본외무성은 이날 하오 북한의 외교담당자가 평양에서 개최된 일본외무성의 가와시마(천도) 아시아국 심의관들과의 실무자협의 석상에서 국교정상화를 제안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날 제안에 대해 가와시마 심의관은 『본국과도 상의하겠지만,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날의 실무자협의에서는 26일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내용을 뒷받침하는 형식으로 열려 북한을 적용제외지역으로 규정하고 있는 일본여권 문제 및 연락사무소,직행항공편 문제 등이 주의제였으며 국교정상화 문제는 전혀 예상밖이었다. 그러나 북한측은 최대의 초점이 되어있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경제협력 등 보상 문제 등이 국교정상화 문제와 분리되어서는 진전을 바랄 수 없다는 판단아래 예상 이상의 과감한 제안을 해 온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어쨌든 북한은 지금까지 『한국과 국교를 맺고 있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는 2개의 조선을 고착화시키는 것』이라며 일본과의 수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방침을 견지해왔다.〈도쿄=강수웅 특파원〉
  • 히로히토 「종전어록」 45년만에 공개/한국계 외상이 기록

    ◎“포츠담선언 수락… 국민 어려움 달래야 태평양전쟁이 막판으로 치닫고 있던 1945년 8월14일 쇼와(소화) 일왕이 최후의 소위 「어전회의」에서한 종전을 결심하는 말을 출석자의 한사람이었던 한국계 외상 도고 시게노리(동향무덕)가 받아 기록했다는 사실이 45년만인 14일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의 조사결과 밝혀졌다. 이 기록은 도고외상의 유족들이 보존해온 1945년의 수첩에 남아 있었다. 3페이지에 이르는 8월14일의 기록에 따르면 일왕은 『전국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국체를 파괴해야될 뿐만 아니라 민족도 절멸상태에 이르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제는 어려움을 참고 이것(포츠담선언)을 수락,국가를 국가로서 남기고 신민의 괴로움을 어루만져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그런 정신을 가져주기 바란다』며 육군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계속론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조칙을 내리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육ㆍ해군내에 이론도 있겠으나 이것도 잘 알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도고외상은 저서 「시대의 일면」에 「어전회의」의 모습을 기술하고 있으나 그 원본이 되는 당시 기록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고외상은 비서였던 양자 후미히코(문언ㆍ후일 주미대사)에게 구술해 받아 적게했다. 국회도서관측은 이 기록을 『소화사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하며 오는 11월부터 국회개설 1백년을 기념해 전시되는 의회정치전에서 공개할 방침이다.
  • 「반일감정」부추긴 미 TV광고 인기(세계의 사회면)

    ◎일제상품 시장지배 늘자 국민들 반감/GM사등,미국인 자존심 자극 “불매운동”/“일제차 계속 더 사시오”… 역선전이 긍정반응 얻어 일본의 미쓰비시(삼릉)그룹이 지난해 뉴욕 맨해턴의 상징인 록펠러센터를 사들였을 때 미국의 언론들은 『미국의 자존심이 팔렸다』고 보도했다. 미 매스컴의 이같은 반응에서 읽을 수 있듯이 일본재벌의 록펠러센터 매입은 미국인들의 「반일」감정을 악화시키는 하나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워싱턴 주재 일본대사관의 한 고위관리도 미쓰비시의 록펠러센터매입 이후 미국인들의 반일감정이 확산ㆍ증폭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또 최근 뉴욕교외의 전통적인 미국인 고급 주택가에 일본인들이 밀려들자 이들에 대한 거부감이 반일감정으로 비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이같이 날로 증가하는 일본기업ㆍ일본인들의 미국진출과 함께 일본상품의 미국시장 「지배」에 대한 거부감 역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부 미광고회사들이 미국인들의 대일적대감을 광고에 이용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최대의 화제작은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메이커 제너럴모터스(GM)제품인 폰티악자동차의 TV 광고. 이 광고의 스폰서는 GM의 미국내 판매대리점들인데 일본제 자동차에 시장을 잠식당하자 자체광고로 일본공격에 직접 나서고 있는 것이다. 5개 부문으로 되어있는 이 상업광고는 처음 한 아나운서가 나와 『지금부터 몇년후를 상상해 봅시다』라는 코멘트로 시작된다. 그는 이어 『때는 12월,모든 가족이 히로히토센터에 만들어 놓은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를 구경하러 가겠지요』라고 말한 뒤 『계속하십시오. 계속 일본차를 사란 말이오』라고 말한다. 그의 말이 끝나고 검은 화면에 커다란 흰 글씨로 된 『(일본차는)이미 충분치 않습니까』라는 자막이 나오면서 이 광고는 끝난다. 폰티악의 이 광고는 미쓰비시가 구입한 록펠러센터를 일본인들이 전일왕 히로히토(유인)의 이름을 따 히로히토센터로 개칭한다고 가정,몇년 후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미국인들에게 상기시키며 이제 일본자동차를 그만 살때가 되지 않았느냐 하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해석된다. 올즈모빌자동차가 뉴욕 일대에 내보내는 TV광고는 또 미국인들의 키가 일본인들 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강조한 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올즈모빌차는 일본사람들 보다는 미국인들에게 알맞게 만들어진 자동차』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 크라이슬러자동차회사에서 시작된 이같은 종류의 광고는 범람하는 일본상품으로 미국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일본제 수입자동차에 의한 미자동차메이커의 타격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자동차의 올상반기(1∼6월)미국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가 증가한 28%를 기록한 반면 미국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은 69%에서 65%로 떨어졌다. 특히 미국자동차회사들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는 대목은 고급 승용차부문에서도 일본의 시장점유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폰티악이나 올즈모빌자동차 TV광고는 자동차판매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반응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지않은 비난을받고 있기도 하다. 일본인들과 거래를 하고 있는 미국인들은 특히 이같은 광고는 긴 안목으로 볼때 미국의 이익을 해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내 일부 부동산회사ㆍ은행ㆍ금융회사간부들도 미국내의 자금사정의 압박을 이유로 미국은 여전히 일본인들의 투자를 필요로 하며 그들과의 우호적인 관계가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폰티악자동차의 광고주들은 『미국시장은 모든 일본상품에 대해 개방돼 있으나 일본시장은 그렇지 않다는데 대해 많은 미국인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고 폰티악광고는 이같은 미국인들의 감정을 나타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광고효과가 있는한 이같은 TV광고를 멈출 뜻이 없다고 밝혀 「애국심」에 호소하는 미국기업의 광고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 “남북군축 3단계 구체방안 연구”(의정중계 26일 본회의)

    ◎용산 미 기지 이전 부담경비 밝혀라 질문/남북 신뢰조성까진 휴전체제 필요 답변 ◇조순승의원(평민)=정부는 7월중 한소수교단을 모스크바에 파견할 예정으로 있으나 소련관계자들은 수교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소련이 유보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며 수교시기는 언제쯤으로 전망하는가. 정부는 한중 수교문제를 협의키 위해 중국에 특사를 파견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현재 어느정도 관계진전을 보이고 있는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서 우리의 통일방안을 결정할 의사는 없는가. 일본은 우리나라 예산의 4배가 넘는 군사비를 쓰고 있는데 일본의 군사정책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박관용의원(민자)=남북한 대결은 남의 「경직된 안보논리」와 북의 「폐쇄적 주체논리」의 소산이다. 이제 더이상의 소모적인 군비경쟁은 종식되어야 한다. 북의 군축제안의 진실성을 확신할 수 없고 핵무기 개발 등도 고려해야겠으나 소련이 개혁과 군축을 선택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북의 제안을 평가할 수 있으며 이를 긴장완화의 호기로 이용해야 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견해는. 남북한 불가침협정의 수용이나 선후없는 교류협정 및 선 군사문제 해결방안을 수용할 의사는. 북측의 군축제안에 대한 우리측의 대안은 무엇인가.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의 개정용의는. 통일원의 위상제고와 예산증액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정몽준의원(민자)=한소 정상회담등 북방외교의 성공적 전개등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약화시키거나 혼란상태에 빠뜨릴 위험은 없는가.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파헤치고 일부 젊은이의 좌경화 환상을 일깨워 줄 교육계획은 무엇인가.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재래식무기 감축이 실효가 있겠는가. 군축에 대한 정부의 기본입장은 무엇이며 북한이 지난 5월31일 제안한 군축안에 대한 정부의 평가는 무엇인가. 군비통제조정위원회의 구성과 기능은 어떻게 되는가. 용산기지 이전의 소용기간과 우리측부담경비를 밝혀라. ◇강영훈국무총리=북방외교는 국민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공개외교방식을 택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초당적 접근방식을 취해나가겠다. 한소 수교원칙은 합의됐으나 그 시기는 보류됐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는 정식외교 수립에 우선 비중을 두고 있으나 실질적인 접근방식을 취하는 소련은 경제협력문제등에 중점을 두고 있어 다소 입장차이가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수교시기문제등은 양국이 외교경로를 통해 협의해 나갈 것이다. 대통령의 지난 방일때 아키히토 일왕과 가이후총리등이 과거 한일문제에 대해 명백히 사과 반성한다는 뜻을 밝힌 만큼 이제 과거사는 일단락 짓고 한일간 선린우호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일왕의 우리나라 방문은 양국 국민들의 환영하는 분위기가 성숙될 때 실현될 것으로 본다. 최근 북한의 군축제안은 현실여건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용어사용등에도 신중을 기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대내외 선전에 더큰 비중을 두고 있어 근본적으로는 종래 입장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고위회담등이 성사될 경우 적극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군비통제문제등을 다루기 위해 군비통제종합조정기구의 설치를 검토중이다. 주한미군문제는 북한의 남침위협이 현저하게 감소될 경우 한미 양국간에 신축성있게 논의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상황변화등을 반영,개정할 수 있으나 국가의 안전보장 차원에서 현행골격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최호중외무장관=외교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교섭과정에는 불가피하게 비밀로 할 때가 있다. 한소 정상회담도 북한의 존재를 의식,소련측의 비밀요청이 있었으며 소련도 고르바초프대통령 측근 몇명만 정상회담 개최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청구문제는 지난 65년의 청구권협정 조인으로 법적으로는 이미 매듭된 것이다. 김­오히라메모는 외교교섭과정에서 행해진 일로 공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본다. 일본의 군사비 증대문제는 기본적으로 주권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나 주변국가들의 과거경험을 고려,전쟁포기를 명시한 일 헌법과 자위권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직ㆍ간접적으로 충고했다. ◇이상훈국방장관=유럽의 군축모델은 개별국가간 협상을 벌여야 하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는 적용할 수 없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 당사자가 주도하고 주변국가가 지원하는 형태이어야 한다. 한반도의 군축을 위해 3단계의 구체적 추진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2천명의 주한미군 감축은 미 국방성이 사전 검토한 바 없으며 미 의회보고과정에서 급작스레 결정된 것이며 한미간에 충분히 협의되지 못했다. 주한미군 감축은 비전투군 중심으로 최소한 감축예정이며 유사시에 대비한 공동작전문제를 협의중이다. 7천명의 규모만 결정된 감축문제는 오는 11월 한미 안보회의에서 구체적 시행시기와 대비책등이 결정될 것이다. 북한은 22개 여단의 특수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는 북한의 40% 수준에 있다. 장비도 북한의 우수부대에 비해 열세에 있으며 한국군내 특전부대가 최정예부대다. 군조직 개편은 독자적인 군지휘체제로 자주국방을 이루려는 것으로 남북한 군비통제 가능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홍성철통일원장관=북한의 군축제의는 종래 대남전략과 달라진 게 없다. TV와 라디오의 일방적 개방은 대남 기본전략이 변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 상호개방이 바람직하다. ◇조희철의원(평민)=정부는 대소정책에 자신감과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그리고 국내 소련관련 연구현황을 밝혀라. 6공화국이후 최근의 샌프란시스코회담까지 북방외교 추진과정에서 사용한 자금내역을 밝혀라. 남북 정상회담의 추진은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가. 민족동질성 회복과 신뢰구축을 위해서는 먼저 문화ㆍ경제분야 및 TVㆍ라디오 등 전파교류의 역할이 크다고 보는데 총리의 견해는. 한반도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북한의 핵보유 보도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정보를 밝혀라. ◇박승재의원(민자)=21세기를 대비한 새로운 외교ㆍ안보ㆍ통일의 전략은 무엇인가. 한소수교가 언제 실현되며 수교가 계속 지연될 때 이에 대한 대비책은. 북방정책의 성과나 한소 정상회담의 성과를 통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도 대폭적인 대북한 화해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한소 정상회담때 노태우대통령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을 통해 북한측에 어떤 메시지를 보냈는지 밝혀라. 정부는 7ㆍ7선언이후 북한과 미 일간의 관계개선을 위해 측면지원한 내용은. ◇강총리=북한은 남북한 정상회담에 아직까지 부정적 입장이나 국제환경등을 감안할 때 계속 거부키는 어려우리라 예상된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은 평화통일에 접근하고 남북 신뢰조성에 효과적 방법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며 이를 국내정치에 이용할 의사는 추호도 없다. 휴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대치하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남북간 신뢰조성 및 평화정착이 될 때까지 휴전협정이 필요하다. 남북 정상간 민족공동체헌장이 제정되고 남북연합이 제도화돼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 대외여건 변화와 국민합의를 바탕으로 실천적 대북 화해조치를 꾸준히 전개하겠다. 북한의 자존심을 손상안주는 방향에서 각 분야의 남북 교류협력을 추진하겠다. ◇최외무=한ㆍ소 정상회담때 노태우대통령은 북한의 선동 대남정책과 우리의 통일정책 그리고 북한의 고립을 원치 않는다고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설명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에 대해 김일성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느냐고 물었으며 노대통령은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것 ▲우리는 북한에 군사적 우위를 행사할 의사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중ㆍ소교포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문제는 거주국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우려가 있는데다 교포들이 고국에 대해 과다한 기대를 가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국방=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하고 성실하게 남북대화에 임하도록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북한을 군비통제협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전력증강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본다. 서독이 동독보다 3배이상의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경제ㆍ군사력 양면에서 우세를 보일 때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 있다.
  • 서울신문 「까투리」만화 일왕 사과문안 바꿨다/일 시사주간지

    ◎“「가슴아프게」는 통속적”… 「통석의 염」으로 지난 5월 노태우대통령의 일본 방문때 당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로 돼있던 아키히토(명인)일왕의 대한사과 표현이 마지막 단계에서 『통석의 염을 금치 못한다』로 바뀌게 된 것은 5월17일자 서울신문의 연재만화 「까투리여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에라(Aera)지 6월5일자 보도에 따르면 솔직하고 알기 쉬운 것을 좋아하는 아키히토의 성격에 따라 대한사과발언 내용은 처음 알기 쉬운 『가슴아프게 생각한다』로 결정됐었는데 한국의 유행가 「가슴아프게」를 일왕이 사죄의 노래로 연습하고 있다는 내용의 「까투리여사」만화를 보고 통속적이란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본정부내에서 대두돼 결국 『통석의 염을 금치 못한다』로 바뀌게 됐다는 것. 아에라지는 『사죄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는 한국언론의 지적도 소개하면서 노대통령 방일시 가이후(해부)총리가 약속한 사죄방안들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면 앞으로 아키히토일왕이 한국을 방문할 때 대한사죄발언이 또다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일왕 차남 결혼에 축전

    노태우대통령은 26일 일본 아키히토(명인) 일왕에게 축전을 보내 오는 29일 거행될 예정인 일왕의 차남 아야노미야(예궁)의 결혼을 축하했다. 이에앞서 노대통령은 25일 저녁 고 백낙준박사 부인인 최이권여사의 빈소에 최창윤정무수석비서관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 노대통령·고르바초프회담 이모저모

    ◎「86년 단절」 잇는 첫 악수… 화기 넘친 1시간/“반갑다”·“꼭 만나고 싶었다” 첫 인사/고르비 일정쫓겨 회담 1시간 지연/노대통령 회견장 성황… 소 방송 “전세계에 센세이션”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역사적인 샌프란시스코 회담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일정 지연때문에 당초 예정보다 1시간20분 늦은 4일 하오 5시20분(현지시간)부터 진행. 이날 한소 정상회담이 열린 페어몬트호텔 신관23층 스위트룸은 한쪽의 창이 태평양을 면해 있는 방으로 노태우대통령이 창을 향해,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평양을 등뒤로 해 양측 배석자와 나란히 착석. 회담시작직전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바쁜데도 만나 뵙게 돼 반갑다』고 인사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나도 바쁘지만 꼭 노대통령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인사. 노대통령은 회담서두에 창밖의 태평양을 가리키며 『저 건너편에 우리 한반도·소련 그리고 아시아가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멀리 보면서 태평양서쪽의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자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평양지역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지역이며 이곳의 평화와 번영은 모두에게 소중한 것』이라고 화답.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회담을 과일에 비유,『우리가 시작한 새로운 시발을 잘 익도록 해 모든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으로 성숙시켜 나가자』고 말하는 등 회담 중간중간에 양국 대통령은 위트와 유머도 섞어가면서 화기로운 회담을 진행했다고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이 전언. ○고르비,“시간 아쉽다” 당초 이날 하오 6시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캄차카로 향할 것으로 알려졌던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일정이 순차적으로 늦어져 노대통령과의 회담이 6시20분에야 끝나자 서둘러 회담장을 떠났는데 노대통령과 헤어지면서 『시간때문에 아쉽다. 오랜 시간의 비행계획이 남아있고 떠나는 일정이 급해 정말 아쉽다』고 말하며 『오늘 우리의 만남은 건설적인 양국관계의 출발』이라고 다시한번 의미를 강조. 이날 회담이 예정보다 늦어진 것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레이건 전 미대통령과의 조찬을 1시간정도 늦게 시작해 그후일정이 자동적으로 순연했기 때문이라고. ○…한소 정상회담과 노태우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한국기자들에게 별도로 회담내용을 발표. 이대변인은 『페어몬트호텔의 23층 페어몬트특실에서 1시간동안 열린 이날 회담에서 양국정상은 아주 솔직한 의견을 나누었으며 의례적인 것이 아니고 핵심적인 문제에 상호입장을 충분히 얘기해 합의를 도출한 회담이었다』고 소개. ○환한 표정으로 회견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양국정상회담이 끝난지 40분만인 하오 7시 정각에 시작,노대통령의 준비된 성명서 발표와 가지들의 일문일답으로 35분간 진행. 감색 양복을 입은 노대통령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의 결과가 당초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둔 듯 환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인 페어몬트호텔 1층 베네치아홀에 입장한 뒤 곧바로 노창희의전수석의 통역으로 기자회견을 개시.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만남이 한반도 냉전의 얼음을 깨는 첫걸음이라는 내용등 중요 대목에 이르러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을 응시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노대통령은 7쪽의 성명서를 20분가량 읽어 내려간 다음 한국기자 2명(조선·한국)과 미국(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영국기자(파이낸셜타임)등 4명의 질문을 차례로 받고는 상세하게 답해 주었는데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 코니강기자의 감회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끝에 『샌프란시스코시장과 시민들이 3일을 노태우 날로 지정해 주고 4일을 고르바초프의 날로 지정해 주는 알뜰한 협조와 정성을 보여준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치하,역사적 정상회담 장소를 제공한 샌프란시스코시에 대해 고마움을 표명. 노대통령은 마지막 질문자인 영파이낸셜 타임지 기자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 끝나자 『여러분을 기다리게 한데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보너스로 한분만 더 질문 받겠다』고 조크,굳어있던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를 일순 바꾸는 여유를 보이기도. ○미·소측,삼엄한 경호 ○…이날 회담장인 페어몬트호텔에는 미국과 소련측 경호원들이 경비견까지 동원한 삼엄한 경비를 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부터 내외신기자들의 접근을 차단.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미경제인 오찬장인 본관에서부터 복도를 따라 30여m 걸어와 회담장인 신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회색 더블보턴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꽉 짜인 일정 때문인지 다소 피곤한 표정. 이날 회담장에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국빈으로 방미했기 때문에 모든 편의시설이용의 우선권을 소련측이 행사해 모든 엘리베이터 사용이나 경호절차를 소련측이 전담. 이 바람에 우리측 수행기자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측 대표단을 뒤따르려다가 소련측 경호원들의 제지로 기록사진사 1명만 회담장 입장이 가능했으며 이 사진사도 회담시작 20여분전에 미리 소련측 안내를 받아 회담장인 23층에서 대기. ○미소회담 설명들어 ○…한소 정상회담을 6시간여 앞둔 4일 상오 10시(한국시간 5일 상오 2시) 노대통령은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서 솔로몬 미국무부 동아태차관보로부터 미소 정상회담결과에 대해 1시간15분동안 설명을 듣고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에 대비하는등 분주한 일정. 솔로몬차관보는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이 성과를 거둬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갖게된 데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한다는 부시대통령의 인사를 전한 뒤 『부시대통령은 아울러 노대통령의 방일을 통해 일왕과 일총리가 「솔직한 사죄」를 함으로써 미국의 주요한 아시아맹방인 한일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된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언. ○김대표위원과 통화 ○…노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이 끝난 뒤 하오 10시30분쯤 서울로부터 걸려온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의 국제전화를 받고 정상회담결과 등에 대해 20여분간 환담. 김대표는 노대통령에게 『이번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은 냉전시대를 종식시키려는 노대통령의 의지와 우리국민 모두의 노력을 전세계에 과시한 것이며 우리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과 동북아안정을 앞당기는 획기적 계기였다』면서 『이번 회담은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경의를 표시. ○라이사,한인상점에 ○…고르바초프대통령부인 라이사여사는 4일 샌프란시스코 시내 관광중 한국교포 김혜자씨(31)가 경영하는 가게에 들러 약 10분간 담소를 나누면서 부군고르바초프대통령과는 또다른 내조자로서의 한소외교에 한몫을 담당. ○…소련의 모스크바방송은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이 전세계적으로 『진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방송은 노대통령이 한소 정상회담에서는 쌍방의 수교문제와 경제협력 증대문제뿐 아니라 한반도평화 및 통일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하면서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이 회담은 만남 그 자체에 「큰 의의」가 있다고 역사성을 부여한 로이터 통신의 보도를 인용,소개했다.
  • 일왕 방한초청 사실상 공식적/최외무 밝혀

    최호중외무부장관은 29일 『노태우대통령이 방일기간중 아키히토(명인) 일왕에게 방한 초청을 한 것은 공식 초청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최장관은 이날 정례기자 간담회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정부도 노대통령의 일왕 방한 초청의사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 일왕ㆍ가이후 총리 연내 방한어렵다/일 외무성 대변인

    【도쿄 로이터 연합 특약】 아키히토(명인) 일왕과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 두사람 모두 금년중 한국방문이 힘들다고 와타나베(도변)다이조 일 외무성대변인이 29일 밝혔다.
  • “경제ㆍ사회 안정 연내 꼭 이룩”/노대통령,민자세미나 연설

    ◎물가 잡고 투기 발본/한일 산업협력위 조속구성/역조개선등 방일 후속조치 마련/각의ㆍ당정회의 주재 민자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은 28일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연말까지 경제ㆍ사회안정을 확고히 이룩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부동산투기가 사라질 때까지 강력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며 물가안정과 경제활성화,불법적 노사분규 근절,민생치안의 확립을 위하여 통치권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낮 서울 송파구 가락동 당중앙정치교육원에서 3당통합이후 처음 개위된 당소속의원 세미나에 참석,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공식기강의 단호한 쇄신조치등 사회전반의 분위기를 바로잡아 법과 공권력의 권의를 확립하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민주주의의 정착과 경제활력 회복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이룩되어 있다고 전제한 뒤 『집권당인 우리가 이러한 국민적 요구를 어떻게 수용하고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국가의 장래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민자당 운영방향과 관련,▲민주적인 의사결정 ▲당기구의 활성화 ▲국민속에 파고드는 정당활동 ▲책임있는 정치인으로서 역할 ▲깨끗한 정치윤리 구현 ▲일관성있는 정책집행을 강조하면서 『집권당의 일원으로서 행한 발언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임시국회대책도 논의 노태우대통령은 28일 일본방문 결과에 대해 『이번 방일은 지난날의 문제로 인한 한일간 우호협력관계의 장애를 제거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국무위원과 정부 각부처에 대해 『방일중 체결된 협정과 합의사항의 구체적 진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강영훈국무총리ㆍ이승윤부총리,그리고 최호중외무ㆍ이종남법무ㆍ박필수상공ㆍ정근모과기처장관 등 수행장관을 포함,전 각료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같이 지시하고 『특히 산업기술 협력문제와 무역역조 개선을 위한 한일간 산업기술협력위원회가 빠른 시일내에 구성되고 이 위원회가 일본과의 경제협력관계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과거사문제와 관련,『일본정부의 상징인 일왕과 정부를 대표하는 일본총리,그리고 일본 중ㆍ참 양원의장이 공식발언을 통해 일본이 우리에게 불행했던 시기를 초래했고 일본의 행위에 의해 우리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분명히 사과 반성했다』고 말하고 『일왕과 총리,일본국회의 이 모든 의사표시를 일본의 사죄로 보고 우리는 과거문제를 여기서 매듭짓고 전진적인 한일관계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에앞서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과 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등 민자당 수뇌부와 강영훈국무총리 최호중외무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고위당정회의를 열고 이번의 방일결과에 따른 후속대책과 함께 6월초로 연기된 여야총재회담및 임시국회 운영대책 등을 논의했다. 이날 회동에서 김대표는 임시국회대책과 관련,후반기 원구성을 위해 소집되는 29일의 임시국회를 예정대로 강행하는 한편 평민당측이 주장하는 국회상임위원장 4석할애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는 당의 방침을 보고했다.
  • 「노대통령 방일결산」3개일지 사설

    ◎실질성과 기다리는 한ㆍ일 신시대 요미우리/“마음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마이니치/의의 깊었던 노대통령의 방일 산케이 일본신문들은 노태우대통령의 첫 방일을 전례없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같은 일본언론의 보도자세는 놀랄만한 변화라 할 수 있는데 기사의 양도 양이지만 그 내용도 무척 호의적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다음은 일본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요미우리ㆍ산케이ㆍ마이니치 등 3개 신문의 지난 27일자 사설을 요약한 것이다. ▷요미우리◁ 과거의 응어리에 매듭을 짓고 21세기를 앞둔 한일 협력관계 구축의 발판이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3일간의 한국대통령의 방일은 성과를 올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주일 한국특파원들과의 환담에서 『역사인식의 갭을 메우는데 역점을 두고 방일했다』고 언급함으로써 그 핵심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최소한 정부레벨에서는 이 문제가 일단락 지어졌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금후 이 문제가 양국관계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바이다. 금후의 과제는 미래지향의 한일신시대를 어떻게 내실있는 것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일 양국이 협조ㆍ협력하여 어떻게 세계의 평화나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나카야마 외상은 한국의 최호중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아시아에서의 긴장완화를 위해 9월의 유엔총회에서 아시아 각국 외무장관회의 개최를 제안했으며 최외무장관은 동의했다. 한국은 87년에 대외경제협력 기금을 설립하는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데 개발도상국 원조에 있어서도 한일간에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아시아ㆍ태평양협력,환경문제,자유무역체결의 강화등에 있어서도 협조하는 것이 양국의 국익에 합치되며 밀접한 정책대화가 바람직하다. 물론 양국이 국제무대에서의 협조를 확고히 해나가기 위해서는 중요한 양국간의 관계를 더욱 증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마이니치◁ 노태우대통령의 3일간의 공식방문이 끝났다. 이번의 대통령 방문은 한일 양국에 있어서 결실이 많았었다고 총괄할 수 있을 것이다. 노대통령의 최대의 목적이었던 「역사인식의 갭을 메우는 것」이 정말로 달성되었는가의 여부는 금후의 행동에 의한 결실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핵심문제는 해결되었다.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말함으로써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의 청산문제가 종결되었다는 인식을 시사했다. 일왕의 방한을 요청했던 것과 함께,금후 양국이 친근한 우방으로서 실무관계를 충실히 해갈 수 있는 기초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미 각국에서는 수뇌부의 빈번한 상호방문과 가벼운 전화통화로 의사를 확인하는 일이 흔하다. 한일 양국의 수뇌도 노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형식적인 의례를 생략한 상호방문과 전화를 걸 수 있는 관계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산케이◁ 노태우대통령은 일본 방문을 통해 「과거청산」에 성과를 올렸을 뿐 아니라 외교ㆍ경제ㆍ문화의 각 분야에서 일본의 적극적인 협력 약속을 받아내는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들 약속이 제대로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양국 당사자간의 앞으로의 자세가 중요하다. 노대통령은 온화하면서도 의연한 태도로 지금까지 그를 잘 모르던 일본인들에게 많은 「팬」을 만들었으며 특히 국회연설을 통해 가해자 앞에서 『우리는 국가를 지키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할 뿐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고 밝혔을 때는 그 어른스런 태도 앞에 그져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러나 혹시 일본이 이번으로 끝났어야 할 「사과외교」를 앞으로도 무원칙하게 계속하면 국내로부터 국수주의적인 맹렬한 반발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반면 반대로 한국이 「일본은 만만하다」는 여론에 말려 대일요구를 점증시키면 양국 관계는 또다시 험악해질지도 모른다. 다행히 노대통령은 국회연설에서 『민주주의가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제도라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사회에 동화시켜 창의와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밖에 없다』고 역설하는 등 군인 출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민주주의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일본도 민주주의의 내실화를 게을리해서는 안되지만 한국도 민주주의가 전국에 뿌리내려 군사정권의 등장을 두번 다시 필요로 하지 않도록정치가 성숙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 “일왕의 대한사과는 한국 경제발전때문”/소 방송 논평

    【내외】 일본이 노태우대통령의 방일기간동안 아키히토 국왕과 가이후총리를 통해 과거 식민통치에 관해 사과한 것은 한국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일본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26일 소련관영 모스크바방송이 보도했다.
  • 선 총리ㆍ후 국왕 방한/일 정부 방침

    【도쿄=강수웅특파원】 사카모토 미소지(판본삼십차) 일본 관방장관은 28일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방한문제와 관련,『시기를 보아 고려한다는 점에서는 가이후(해부) 총리가 먼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왕의 방한시기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정부로서도 내외정세를 살펴 협의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하고 『노태우대통령의 말도 오는 11월12일 즉위식이 끝난 뒤라는 얘기였던 모양인만큼 앞으로의 정세를 고려,결정하겠다』고 밝혔다.
  • “한국의 국제적 지위 격상” 실감/노대통령 방일을 보는 일의 시각

    ◎노대통령 환대 속마음으로부터의 표현/70만 재일동포에겐 자긍심 심어준 계기 일본의 대한인식은 최근 두번 변했다. 한번은 88서울올림픽때였으며,또 한번은 이번 노태우대통령의 방일때였다. 서울올림픽때 일본국민들이 보여준 관심과 지원은 대단한 바 있었다. 「스바라시이」(훌륭하다)를 연발했으며,재일한국인들은 모처럼 어깨를 펴고 다녔다. 이때 일본인들은 같은 아시아권에,그것도 가장 가까운 거리에 이처럼 「큰 나라」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으며 자긍심마저 느꼈었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은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일거에 부상시킴과 동시에 일본의 대한인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번 노대통령의 경우도 우선 그 인상부터가 만점이었다. 「노 스마일 하네다(우전)착륙」등의 사회면 톱기사 제목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의 부드러운 미소는 일본국민들의 마음을 적어도 사흘동안은 사로 잡았다. 궁중만찬,사상최초의 국회연설,일본기자클럽에서의 한국대통령의 모습은 늠름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의 한국을 일본인들은 군사정권의 연장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당당한 체격에서만은 「군출신」임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한살차이의 동년배인 아키히토(명인) 일왕과 나란히 선 그의 모습은 월등했다. 노대통령이 체일하는 사흘동안은 물론 방일 휠씬 전부터도 일본의 언론들은 한ㆍ일의 현안과 노대통령에 관한 기사로 지면을 가득가득 채웠다. NHK를 비롯한 각 TV방송도 노대통령의 도착광경에서부터 영빈관에서의 환영행사등 각종 이벤트를 그때그때 생중계했다. 거리에는 「국빈의 일본 공식방문때문에」 교통을 통제한다는 알림이 곳곳에 나붙었지만 누구하나 불평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협조적이었다. 경시청은 당초 대통령의 방일기간중 도심교통량의 30%정도를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도쿄시민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나 실적은 그 목표를 웃돌았다. 평소보다 휠씬 한적해진 도심을 달리는 택시운전사들은 『대통령이 자주 왔으면 좋겠다』고 싱글벙글했다. 일본정부당국이 사상유례없이 세심하게 배려한 이번 대통령의 방일행사는 무드 그자체만으로도 대성공이었다. 다만 아키히토 일왕의 「역사청산」에 관한 발언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사죄의 뜻을 포함하느냐의 여부에 논란은 있으나 전체적인 방일성과는 대성공이었다. 전후 45년만에 골라낸 사죄용 어휘 「통석」에서 나타난 바와같이 일본인들은 확실히 인색한데가 있다. 좀더 알기 쉬운 말로 『일본이 잘못을 저질렀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 책임을 느껴 앞으로 잘해 나가겠다』라고 말하면 충분하지 않느나고 생각하는 한국측의 입장에 흡족할 만한 표현은 일본측은 이번에도 하지 않았다. 일본은 일왕의 상징성,헌법상의 제약,정치ㆍ외교적 한계등을 내세우고는 있으나 실상 그 속사정은 다른 데 있다. 『일왕의 말 한마디로 일왕에의 충성을 맹세하며 목숨을 바친 수많은 「황국신민」의 가족들이 남아있는데 이제와서 천황이 내가 잘못했소라고 말한다면 이 유족들의 입장은 무엇이 되느냐』라는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속마음이다. 그나마 노대통령의 방일에 이만한 표현이라도 나온 것은 한일 언론의 힘이었다. 노대통령이 여러차레 밝힌바와 같이 일왕의 표현,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의 직접적인 사죄,중ㆍ참의원의장의 전례없는 사죄코멘트 등 전반적인 정황으로 미루어 볼때 과거역사의 인식에 있어서 일본측이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다만 일왕의 표현만이 해석상의 뉘앙스를 남길 뿐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일본인은 『혼네(본음)와 다데마에(건전)의 역전』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속마음을 표시하는 「혼네」와 겉으로 나타내는 행동 「다데마에」가 다른 것이 일본사람이다. 겉으로는 상냥하고 친절하게 잘하면서도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나온 「혼네 다네마에론」은 일인들이 갖고 있는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따라서 「다데마에」는 항상 「혼네」보다 화려하며 외교적인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이번 노대통령의 방일의 경우에는 이것이 거꾸로 되었다는 것이다. 속마음으로는 더 해주고 더 표현하고 싶은데도 여러가지 「사정」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의 「대접」이 그 정도에 머물렀다는 견해이다. 노대통령은 26일 귀국에 앞서 가진 일본기자클럽에서의 오찬회견에서 『나는 사흘간의 일본방문을 통해 새로운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방문에서 일본국민의 따뜻한 우의를 느끼며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두나라간의 공통된 열의를 확인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지적한 「새로운 것」은 바로 일본의 대한인식의 변화이며,그 변화는 『이제 한국은 만만치 않은 존재이다』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임은 물론이다. 전후 45년동안 변화한 것은 일본이 아니라 바로 한국과 한국민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 「통석의 염」 의미 “사죄한다” 내포/일 외무성 보도관

    【도쿄=강수웅특파원】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노태우대통령에게 밝힌 일본의 과거사 사죄발언중 「통석의 염」은 「사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다고 일 외무성의 와타나베 보도관이 밝혔다고 26일 일본의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다. 와타나베 보도관은 이 deepest regret를 apologize(사과하다 사죄하다)로 받아들여도 좋다고 도쿄주재 외국기자단에 설명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 “역사인식 일치 큰수확 한국민주화 후퇴없다” 노대통령 일 기자회견

    【도쿄=강수웅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26일 『한국의 민주화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으나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발전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낮 12시부터 일본기자클럽에서 가진 오찬회견에서 인사말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이번 방일의 성과,「과거청산」문제,남북관계의 개선,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한일간의 경제협력문제 등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소상히 답변했다. 노대통령은 「과거청산」문제에 관한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발언과 가이후(해부) 총리의 사죄에 대해 『과거 역사의 불행했던 사실이 일본에 의해 저질러 졌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점을 의미깊게 받아 들이고 있으며 나와 한국민은 과거 역사에 관한 한일간의 응어리는 이것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지금까지 역사진실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 왔으나 이번 방일을 계기로 인식을 함께하게 된 것이 큰 수확』이라고 밝히고 『이제 한일 양국은 이를 바탕으로 우호협력의 새 차원에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의 동반자 관계로서 세계에 공헌하리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문제에 대해 『3세문제는 대체적인 합의를 보았으나 1ㆍ2세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1ㆍ2세도 3세와 같은 수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요청,이에 대해 가이후 총리로부터 전향적이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또 『남북한의 근본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양쪽 당국자 최고회담이 선행되어야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북한의 김일성은 이를 받아들이기는 커녕 더욱 문을 굳게닫아 폐쇄상태에 있는데 거기에는 북한내부에 문제점이 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노대통령 방일 2박3일간 결산

    ◎21세기 지향 「동반협력의 가교」 놓다/교포문제ㆍ경협 등 현안 가시적 성과/북방정책ㆍ대북한 관계에 공동보조/일의 후속조치 심도따라 「통석」의미 퇴색될 수도 노태우대통령의 2박3일간에 걸친 방일은 다소 시각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한일간의 과거문제를 매듭짓고 새로운 동반자 관계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이번 방일기간중 두차례의 정상회담과 일왕의 사과발언,노대통령의 일 국회연설 등은 한일 양국간에 그동안 관계발전의 걸림돌이 되어왔던 과거문제를 상당수준 해소했고 재일한국인 법적 지위,과학기술협력,무역불균형 개선,양국 국민의 교류확대 등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사과와 관련,일본측은 일왕ㆍ일총리ㆍ중의원의장 등이 일종의 역할분담 형식으로 파상적인 사과발언을 함으로써 사과와 반성의 심도를 깊게 했다. 『일본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국민이 겪었던 고통,통석한 마음』(아키히토 일왕) 『한반도의 국민들이 일본의 행위로 인해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 겸허한 반성,솔직한 사과』(가이후 도시키 일총리) 『우리나라가 귀국과 귀국민에 대해 다대한 폐를 끼친것,참으로 유감,진지한 반성,우호와 신뢰관계 구축에 최선』(사쿠라우치 요시오 중의원의장)등은 각기 일본의 상징,일정부의 최고책임자,일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행한 사과로서 이뤄진 것이다. 노대통령도 『일본 국내의 헌법상 제약과 정치ㆍ외교적 한계속에 일왕의 사죄를 받아낸 것은 과거사에 대한 양국의 인식차이를 해소한 것』이라고 평가,일측의 사과를 일단 수용했다. 그러나 일왕의 「통석의 염」 발언대목과 관련,우리 정부가 「뼈저리게 뉘우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 대해 국내 일부에서는 쉽게 납득을 하지 않고 있어 일측 사과를 국민적 합의로 수용하기에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재일한국인 법적지위문제와 관련,3세에 관한 양국간의 기존합의(지문날인 배제ㆍ외국인등록증 대체수단 강구ㆍ재입국기간 연장ㆍ강제퇴거사유 한정)가 1ㆍ2세에게도 적용될 수 있도록 촉구한 데 대해 일측은 적극 검토를 다짐했으나 그 실현여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과거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사과는 이번 방일의 핵심적 성과를 이루고 있으나 앞으로 법적지위문제 등에 있어 일본측이 「말따로 행동따로」식의 자세로 나온다면 성과의 퇴색은 물론 한국민의 대일 불신의 골은 다시 메울 수 없이 깊어질 것이다. 둘째,양국간 실질적인 협력분야의 성과로서 이는 두차례의 정상회담 결과를 토대로 한 외무ㆍ과기처ㆍ상공ㆍ법무장관 등 수행각료들과 일본측 관계장관들과의 개별회담으로 구체화되었다. 무역불균형 시정문제와 관련,일본이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한국에 파견키로 하고 무역마찰 사전방지를 위한 민관합동정책기구를 신설하며 보다 근본적인 시정을 도모하기 위한 「한일간 산업구조 조정촉진위」를 설치키로 한 것은 지금까지 막연했던 「무역의 확대균형」이란 외교적 수사와는 그 의미를 크게 달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중소기업 자동화기술 협력과 함께 일 정부가 일 민간기업에 대해 대한 첨단산업 기술이전을 촉진토록 최대한의 영향력을 발휘키로 약속한 것도 종전의 「민간차원의 논의사항」이라며 한마디로 자르던 태도와는 크게 변화된 것이다. 이와같은 구체적인 실질협력 성과는 결국 과거청산을 바탕으로 하여 양국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새롭게 발전되어 가야 한다는 양국 정상과 정부의 인식이 일치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국제협력분야에서의 동반자관계 강화를 성과로 꼽을 수 있다. 21세기의 아태시대 개막이 예견되고 있는 가운데 EC(유럽공동체)의 통합,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자유무역지대 형성등 경제적 블록화추세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경제권의 지위강화를 위해 우선 인접한 한일 양국간의 동반자적 협력관계가 요청되고 있다. 또 우리의 북방정책 추진과 일본의 대북한 관계개선에 있어 상호 긴밀한 협의를 갖기로 합의한 점도 한반도및 동북아정세에 대한 공동대응의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함에 있어 ▲남북대화 재개 ▲핵안전협정에의 가입을 선결전제조건으로 해야 한다는 우리측의 요청에 수긍한 것은 이같은 공동대응의 일환으로 생각된다.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성과의 중ㆍ장기적 평가는 일본측이 앞으로 어떻게 「반성ㆍ사과」에 상응한 협력을 실천해 주느냐와 연계되어 있다. 노대통령은 방일 마지막날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을 초청했으나 이는 의례적인 성격으로 보이며 일왕의 방한이 구체화되는 과정은 일측의 각종 「후속조치」의 강도와의 상관관계속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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