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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왕 방한 추진 보도/정부,전면 부인

    【도쿄=강석진 특파원】 정부는 일본과의 큰 국가적 현안인 아키히토 일왕 방한에 대비해 「A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경비대책 등을 은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16일 서울발로 보도했다. 신문은 한국 정부소식통을 인용,「A프로젝트」의 A는 아키히토 일왕의 이니셜로 일왕 방한의 최대과제인 안전문제에 대해 청와대경호실 등이 90%밖에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일 한국대사관관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보도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 한·일 정상 경주회담­성과와 기대

    ◎21세기 「신 한·일 관계」 위상 정립/역사공동연 설립 등으로 “상호이해” 폭넓혀/독도·경제수역 등 현안 해결에 촉진제 기대 23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당장의 성과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성격이 강한 것이었다.다가오는 21세기,특히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는 한·일관계를 한차원 높여야한다는 과제를 양국민에게 부과하고 있다.제주정상회담은 시대적 과제를 향한 거보의 시작이다. 유종하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5가지 측면에서 설명했다. 첫째는 양국 청소년과 젊은 직장인 교류의 확대다. 지난 95년 한·일간에는 3만7천명의 청소년 교류가 이뤄졌다.수학여행을 빼고 정부,지방자치단체,민간기구 등이 실시하는 정규 프로그램에 의한 방문은 4천5백명수준이었다.양국 정상은 오는 2000년까지 정규프로그램에 의한 청소년교류를 1만명 수준으로 높인다는데 합의했다.이를 위한 협의기구 설립도 추진할 예정이다.양국을 오가면서 이해의 폭을 넓힌 10∼20대의 젊은이가 30∼40대가 될때 두나라간 감정의 앙금은 지워질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둘째,월드컵문제에 대한 정부간 연락체제를 긴밀하게 갖추기로 합의했다. 당초 정부는 월드컵조직위와는 별도로 한·일 정부간 월드컵공동위 설치를 추진했다.그러나 아직 조직위도 공식화되지 않았는데 너무 앞서가면 대회를 주관하는 국제축구연맹이 싫어할 여지가 있었다.일본 국민들이 아직 「월드컵 공동개최」를 「일본의 패배」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한·일 정부간 적극적 합의를 끌어내기 힘들게 했다.정부는 이번에 「긴밀한 협력체제」만 합의하고 앞으로 이를 「공동위」수준까지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셋째,역사공동연구회의 설립을 확실히 한 것도 의미가 있다.비록 민간 차원에서 운영하기로 했지만 그동안 일본내 일부 우익인사들이 한·일간 역사공동연구 자체를 반대했던 점을 감안할때 진전으로 이해된다. 넷째,양국간 체육 및 전통문화교류의 확대도 21세기 「신한·일관계」수립에 도움을 줄 것이다. 다섯째,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격의 없는」 만남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만남을 정례화하자는 합의가 이뤄졌다.하시모토총리는 『김영삼 대통령께서 일본안에서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다고 연락주시면 바로 영접준비에 착수하겠다』고 김대통령에게 밝혔다. 두 정상은 한반도정세에 있어서도 기존의 공조를 거듭 확인했다.4자회담이 성사되기전까지는 일·북수교교섭이 진전되거나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지원은 자제해야한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정부의 한 당국자는 전했다.과거사에 있어 하시모토 총리가 창씨개명과 군대위안부건을 사과한 수준도 우리 정부로서 평가할만했다는 설명이다. 정상회담의 친선분위기가 독도문제와 EEZ설정·어업협정,일왕방한,과거사 정리 등의 난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할 것같다.〈서귀포=이목희 기자〉
  • 한·일 민간역할의 확대/이도운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지난해 9월2일부터 5일까지 제주도 신라호텔에서는 「한·일포럼」이란 행사가 열렸다.양국의 지식인들이 모여 한·일관계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짚어보는 이 모임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채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한 「제주도 성명」이란 결과를 발표하고 막을 내렸다. 이제와서야 놀라운 것은 보고서형태의 성명이 담고있는 내용이었다.우선 눈에 띄는 것은 양국관계 발전을 위해 2002년 월드컵을 공동개최하자는 제안이었다.지금이야 국제축구연맹(FIFA)의 공식결정이 난 상태지만 당시만 해도 월드컵 공동개최는 한·일 양측 모두로부터 실현성없는 아이디어로 보였다.더욱 놀라운 것은 이미 당시의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월드컵의 결승전 장소는 추첨을 통해 정한다』는데까지 의견을 모은 것이다.성명은 이와 함께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설치 ▲청소년교류 확대 ▲예술·문화교류 ▲비자 면제 ▲안보대화 추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한·일포럼」의 제주도 성명은 9개월이 지난뒤 같은 장소에서 열린 김영삼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총리간의 정상회담에서 대부분 수용됐다. 지난해 한·일의원연맹은 한국과 일본이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을 맞는 시점을 기념할만한 갖가지 행사를 기획했다.양국정부가 일본 정치인들의 잇따른 망언으로 첨예한 외교적 대립을 겪는 와중에도 김윤환·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양측 회장은 청소년교류를 위한 1천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이와 함께 청소년교류재단과 수련장 설립,재일동포 출신의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한국공연,기념우표 발행,그리고 데라우치 문고 등 문화재반환과 일왕의 방한 등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행사를 추진했다.대부분이 좌절됐지만 데라우치 문고의 반환과 양국 기념우표 발행은 큰 성과로 꼽힌다.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외교,특히 한·일관계에서는,정부가 직접 나설 수 없는 부분이 많다.양국 정부가 먼저 월드컵을 공동개최하자거나 청소년교류기금을 모으자고 나섰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앞으로도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비정부기구나 민간의 역할이 더 확대되기를 기대한다.일부에서는 한·일간에 막후채널이 없는 점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풀어가는 솔직한 대화와 언쟁이 양국간 이해를 굳건히 세우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서귀포에서〉
  • 한·일정상 제주회담­현안처리

    ◎과거사/일 총리 “월드컵계기 미래 열자”/역대총리 보다 사과수준 떨어져/위안부­“금전보상 등 피해자 납득이 우선”/독도­일,「영유권」 언급 회피… 의제 제외 23일 끝난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총리간의 정상회담은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열린 것이다.그러나 한·일간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과거로부터의 현안」이 산재해 있다. ▷과거사◁ 하시모토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과거의 무거운 짐과 미래에의 책임으로부터 도망할 수 없다』는 총리 취임뒤의 발언내용을 반복하는 것으로 전반적인 과거사에 대한 인식표명을 대신했다.하시모토 총리는 『패전당시 국민학교 2학년생이었으며 당시 양국간의 불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고 말하고 일제의 창씨개명을 예로 들어 『그런 행위가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줬는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하시모토총리는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미래의 꿈을 만들고자 한다』는 말로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 이같은 하시모토 총리의 과거사에 대한 언급은 창씨개명,위안부 등 과거사의 일부 단면에 대해서는 공식사과를 했으나 일제의 한국강점과정,2차대전의 성격,한국민의 피해 등 일본군국주의의 과거침략사 전반에 대한 사과는 표명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이는 지난해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전 총리의 「전후 50주년 특별담화」­『통렬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수준에도 미흡하고 지난 90년 5월 한일정상회담당시 가이후총리의 언급­『과거의 한 시기…고난과 슬픔을 체험하셨던데 대하여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린다』­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한마디로 역대 일본총리의 『과거사 사과』수위에 비해서는 상당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군대위안부◁ 하시모토 총리는 전반적인 과거사 발언과 함께 『군대위안부문제 만큼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준 일은 없다』면서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을 한다』고 밝혔다.군대위안부문제에 대해 일본총리가 구체적으로사과한 것은 미야자와·호소카와 총리에 이어 세번째이다. 한·일외무장관 회담에서는 군대위안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의견교환이 있었다.이케다장관은 군대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목표로 설립한 「아시아의 여성을 위한 평화국민기금」이 결코 순수 민간기금일 수는 없으며 정부도 의료,복지분야를 지원하는 민관의 「2인3각체제」라고 강조했다.일본측은 기금을 통한 피해자보상과 총리명의의 위로서한을 한국측이 받아들이기를 희망했다.이에 대해 공장관은 『일본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에 피해자 개개인이 납득을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면서 『일본정부는 피해자 개인과 단체의 주장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정상회담장인 제주신라호텔 주변에서는 군대위안부 희생자 단체 회원 20여명이 나와 『정신대문제 해결없는 정상회담에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독도◁ 이번 회담에서는 애초부터 독도문제가 의제에서 제외됐다.하시모토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독도 영유권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질문에도 답변하지 않았다.그러나 회견 모두발언에서 『유엔해양법조약의 체결과 관련해서는…영유권 문제와 분리하여 교섭을 촉진…』이라고 걸치고 넘어갔다.일본측이 독도문제를 계속 양국간의 현안으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분위기의 반영이라는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일본왕 방문◁ 역시 이번 회담의 의제에 포함되지 않고 김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거론됐다.김대통령은 『양국 국민의 환영분위기속에 방한할 수 있는 시점』을 강조하며 아직은 여건이 적당치않다는 입장을 시사했다.양국관계에서 일왕의 방한이 갖는 정치적 무게는 매우 크다.일본은 일왕이 방한하면 그로써 한일간의 과거사 논란은 일단락된다는 인식을 갖고있는 것 같다.따라서 우리 정부로서는 일왕의 방한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어찌보면 양국의 과거사 해결을 위해 우리가 갖고있는 하나의 카드라고도 할 수 있다.〈서귀포=이도운 기자〉
  • “월드컵 성공 긴밀 협력” 합의/한·일 정상 제주회담

    ◎위안부 사과·반성… 「침략사」 언급 없어/하시모토/내국 「공동 역사연구회」 조기 구성키로 【서귀포=이목희·이도운 기자】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는 23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긴밀한 연락체제를 유지키로 합의했다. 김대통령과 하시모토 총리는 이날 조찬을 겸한 단독정상회담에 이어 양국 외무장관등이 배석한 가운데 확대정상회담를 갖고 두나라간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의 구축을 위해 학생,젊은 직장인을 포함한 청소년 교류를 가일층 확대키로 했다. 양국 정부는 실무진으로 청소년교류 협의기구를 설립해 다양한 정규프로그램에 의한 청소년 교류를 촉진,현재의 연간 4천5백명선의 교류인원을 2002년에는 1만명선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두 나라 정상은 또 양측 민간지식인 각 5명씩 10명으로 역사연구회의를 조기에 구성,역사공동연구를 추진키로 결정했다. 양국 정상은 대북문제에 있어 한·미·일 3국 공조를 재확인하고 북한이 4자회담 수용을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했다.또 하시모토 총리가 김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초청함에 따라 추후 구체사항을 외교경로를 통해 협의키로 했다. 이날 정상회담이 끝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하시모토총리는 『군위안부문제만큼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준 일이 없다』면서 『마음으로부터의 사과와 반성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의사를 공식표명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과거사문제에 대해 『창씨개명등과 같은 일이 한국민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는지를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면서 『우리는 과거의 무게를 안고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미래에 대한 꿈을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그러나 위안부문제,창씨개명등 과거사의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공식사과했으나 일본국군주의의 한국침략등 과거사 전반에 관한 구체적인 사과표명은 하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일왕의 방한 가능성」과 관련한 질문에 『일왕의 방한은 양국간 우호관계를 새롭게 확인하는 좋은 계기로 매우 중요하고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친선분위기 조성을 위한 양국민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빠르게 실현될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김대통령은 제주 정상회담이 끝난뒤 이날 하오 서울로 돌아왔으며 하시모토 총리도 이날 낮 1박2일간의 제주방문일정을 마치고 도쿄로 떠났다.
  • 한·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요지

    ◎“내국학생·직장인 등 교류 대폭확대” 김 대통령/G7회의때 “KEDO에 협력” 요청계획­하시모토/한반도 평화정착위해 일본과 긴밀 협력­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일본총리는 23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호텔 야외잔디밭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다음은 회견 모두발언과 일문일답 요지. ▲김영삼 대통령(모두발언)=하시모토 총리와 본인은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대회가 성공리에 개최돼 양국 국민간의 우정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하고 양국 정부도 긴밀한 연락체제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우리는 양국의 상호 이해증진을 위해서는 양국에 있어 상대국 및 양국관계에 관한 연구가 한층 활발하고 깊어지는 게 바람직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연구를 지원 장려하기 위해 양국의 민간 지식인에 의한 역사연구에 관한 회의를 조기에 구성하는 게 바람직하다는데 견해를 같이 했습니다.또 차세대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 교류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앞으로 학생·직장인등 청소년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실무협의기구설립을 검토키로 했습니다.두 정상은 21세기를 앞두고 양국간의 경제관계가 더욱 발전하는 게 중요하다는데 기본적 인식을 함께 하고 투자촉진,산업기술협력등 분야에서 공동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키로 했습니다. ▲하시모토 총리(모두발언)=유엔 해양법조약의 체결과 관련,지난번 ASEM에서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내용을 재확인하고 이에따라 영유권 문제와 분리해 배타적 경제수역 경계획정 및 어업협정교섭을 촉진함과 동시에 질서있는 조업을 확보하는등 교섭촉진을 위한 환경조성에도 노력해 나가기로 했습니다.국제정세에 대해서는 양국의 우호협력관계가 아시아·태평양지역 뿐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안정과 번영에 있어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했고 북한의 동향등 동북아정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한·미·일 3국간의 긴밀한 공조체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또 본인은 양측의 사정이 좋은 시기에 김대통령이 방일해 줄 것을 제안했고 김대통령은 이를 쾌히 승낙했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하시모토총리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하시모토 총리=창씨개명 등의 행위가 한국민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는지 상상도 못할 정도였습니다.총리취임이후 과거의 무게와 미래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했습니다.과거의 무게를 안고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미래의 꿈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종군위안부 문제 만큼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준 일은 없었습니다.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말씀을 드립니다. ­일왕 방한에 대한 김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김대통령=일왕의 방한은 이번 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이는 양국의 우호관계를 새롭게 확인하는 좋은 계기로서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양국민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이를 위해 양국민이 상호 노력하는 게 중요하고 그에 따라 빨라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정세에 대한 새 인식을 갖게 됐는지요. ▲하시모토 총리=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일·한·미 3국간 긴밀한제휴가 중요합니다.4자회담을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한일 양국이 공동노력할 생각입니다.그리고 G­7 정상회의에서는 KEDO에 대한 각국의 협력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일·북 관계개선 및 수교협상에 대한 입장을 말해주십시오. ▲김대통령=하시모토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4자회담에 대한 지지입장을 재확인했으며 그 실현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일본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한·미·일 3국 공조의 틀속에서 일본과 긴밀하게 협력을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일본정부도 우리와 공조하에서 대북문제를 풀어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서귀포=이목희·이도운 기자〉
  • 한·일정상 제주회담­성사배경·전망

    ◎「21세기 한·일관계」 초석 놓는다/사열 등 의전생략 「실무방문 외교」 성격/월드컵 계기 “미래지향 협력” 선언한듯 오는 22일 열리는 한·일정상회담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모두 양국관계의 새로운 장을 여는 행사가 될 것 같다.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총리의 제주도 정상회담이 전격 성사된 데는 월드컵축구의 힘이 컸다.월드컵 협력분위기를 앞세워 다른 현안에서도 알찬 결실이 기대된다. 하시모토 총리는 지난 1월 취임했다.첫 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하던 이전 총리와 달리 아직 우리나라를 공식방문하지 않았다.취임초 터진 독도문제로 양국관계가 껄끄러운 때문이었다.우여곡절끝에 지난 3월초 방콕에서 한·일정상회담이 열렸지만 서먹한 앙금이 가셔지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의 한·일공동유치는 두 나라가 아픈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해 나갈 발판을 마련해줬다.속으로 적대감정을 갖고 있으면서 필요에 의해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진정한 우방이 돼보자는 자각이 양국민 사이에 일고 있다.김대통령과 하시모토 총리가 제주도에서 21세기의 협력을 선언하는 것은 두 나라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다. 우리 외교관례를 보면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수개월의 준비작업이 필요하다.의전절차도 보통 번거러운 게 아니다.선진국,특히 서유럽국가들은 이런 절차를 생략한다.한 예로 프랑스와 독일정상은 격식없이 수시로 만난다.지난 63년 관계강화를 골자로 하는 엘리제조약이 맺어진 후 1백여차례 이상의 불·독정상회담이 이뤄졌다. 한·일 양국은 하시모토총리 방한을 13일 공식발표할 계획이었다.그러나 방한검토사실이 일본언론에 보도되자 발표시기를 하루 앞당겼다.12일에도 하오 4시 발표를 예정했다가 상오11시로 당겼다.양국간 직통외교라인이 긴밀하게 가동되고 있는 셈이다.며칠 사이에도 정상회담이 성사될 채널을 갖춰가고 있다. 한·일정상회담이 열리는 제주도는 세계적 휴양지다.하시모토 총리가 방한하는 기간도 토요일·일요일,주말 이틀이다.의장대사열등 형식적 행사를 없애고 간편복차림으로 실속 있는 논의를 해보자는 취지다.호소카와 전 일본총리가 지난 93년11월 경주를찾아 한·일정상회담을 가진 것과 함께 양국 정상간 「새로운 실무방문」의 틀이 정착되고 있다.제주도는 또 고르바쵸프 옛소련대통령,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방문에 이어 한·일정상회담이 열리는 뜻깊은 곳이 되었다.〈이목희 기자〉 ◎“석달만의 대좌” 무슨 얘기 나눌까/월드컵 공동지원·어업협상 방향 모색/일왕 방한·독도문제는 제외 한국과 일본의 외교파트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금기가 하나씩 있다고 당국자들은 말한다. 우리측은 일본이 독도 영유권문제를 거론하면 민감해진다.반대로 일본측은 우리나라에서 「천황」과 관련한 말이 나오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양국이 우호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면,이 두 가지 문제를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당국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한·일간의 배타적경제수역(EEZ)선포를 계기로 독도 영유권문제는 양국 정부 사이에 공식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급기야 지난 3월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총리간의 정상회담에서는 정식의제로까지 올랐다.한번 정상회담에 오른 의제는 다음 회담에서도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오는 22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독도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전망이다.앞으로도 독도문제가 양국 정상간 회담의 의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방콕에서 김대통령이 독도 영유권문제를 거론한 것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전달하고,논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지 새로운 이슈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특히 이번 제주도 정상회담은 월드컵공동개최를 계기로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우호관계를 다지는 초석이 되는 자리다.독도문제가 거론되면 전반적인 회담분위기가 망가질 수 있다고 당국자들은 말하고 있다. 일본왕문제도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거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우리측은 한번도 일본의 「천황」제도나 일본왕가의 문제로 일본측을 곤혹스럽게 만든 적은 없다.양국에서는 월드컵공동개최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일본왕의 방한문제를 검토할 수도 있지 않으냐는 의견이 있다.그러나 우리정부는 일본왕의 방한에 그다지 큰 관심을보이지 않는다.일본의 과거사정리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왕 방한「허용」이 미칠 파장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같이 두 가지 금기사항이 정리되면,양국 정상은 손쉽게 현안논의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국이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도록 정부차원의 지원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큰 의제가 될 것이고 ▲4자회담·식량지원등 대북정책 공조 ▲어업협상 ▲일본의 군대위안부문제 처리방향등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이도운 기자〉 □문민정부 한·일 정상회담 일지 ▲93년 11월6∼7일=호소카와 총리 방한(경주) ▲94년 3월24∼26일=김영삼 대통령 방일 ▲〃 7월23∼24일=무라야마 총리 방한 ▲〃 11월14일=무라야마 총리와 정상회담(인도네시아 보고르) ▲95년 3월11일=무라야마 총리와 정상회담(덴마크 코펜하겐) ▲〃 11월18일=무라야마 총리와 정상회담(일본 오사카) ▲96년 3월2일=하시모토 총리와 정상회담(태국 방콕)
  • 한·일 관계 앞날(출발 2002년 월드컵:1)

    ◎21세기 동반협력관계 전기로/개·폐회식 참석「일왕 방한」 상징성 큰 행사/비자없이 왕래… 일 문화 본격 상륙할지도 2002년 월드컵의 한·일공동개최에 대해 외무부의 일본 관련업무담당자는 『한·일관계로만 볼 때 공동개최는 차선이 아닌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외무부 당국자들은 광복50년(일본은 종전50년),국교정상화 30년이라는 역사성을 가진 지난해에도 국민감정 때문에 양국이 그럴듯한 공식행사 한번 치를 수 없었던 현실을 매우 아쉽게 생각해왔다.그런 상황에서 올림픽과 함께 최대의 국제행사로 꼽히는 월드컵을 공동으로 치르게 됐다는 것은 두 나라 관계발전에 더 없는 기회가 된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양국의 국민은 서로에게 소원한 느낌을 갖고 있지만,국제사회에서 양국간의 이해는 일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시장경제와 무역입국을 추구하는 양국의 국가목표가 같다는 것이다.실제로 우리나라는 지난해 유엔 안보리 이사국 선출과 김철수 전 상공부장관의 세계무역기구(WTO)차장 선임과정에서 일본의 적지않은 협조를 받았다.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시아유럽회의(ASEM)등에서도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이 당국자는 일본측이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인식만 갖게 된다면,이러한 기반을 토대로 양국은 「전략적 동반관계」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월드컵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일본지도층 일부의 비뚤어진 과거사 인식이나 배타적경제수역(EEZ)획정과 독도영유권,재일한국인 지위,군대위안부문제등 양국간에 해결해야 할 오랜 현안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양국의 외무당국자들은 한·일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 문제는 한·일간의 다른 관계와는 분리해서 처리한다』는 편의적인 발상을 하지만 실제로는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일본측의 성의 있는 조치가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6년동안 월드컵행사를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국의 외무부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의 관계발전조치를 하나씩 하나씩 시도해갈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가장 큰 행사는 역시 일본왕의 한국방문이 될 것이다.일본왕이 서울에서 열리는 개막식,혹은 폐막행사에 공동주최국의 국가원수자격으로 당연히 초청될 것으로 보인다.일본왕이 방한을 계기로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수도 있지만,행사의 성격상 거론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부담이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양국 국민간의 교류를 보다 확대하기 위해 입국사증(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다.우리 정부는 일본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 88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인에 대해 비자를 면제했다. 양국 관계발전의 마지막 단계는 우리정부의 일본 대중문화개방이 될 것으로 보인다.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일본은 자연스럽게 대중문화의 한국 진출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이도운 기자〉
  •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향후 과제

    ◎개·폐회식 장소 결정이 최대 난제/일왕 방한·출전티켓 배분 논란 예상 오는 2002년 열리는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는 한국과 일본 두나라에서 열기로 31일의 FIFA의 집행위원회에서 확정됐다. 그러나 한·일공동개최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을 헤쳐야 한다. 31일 국제축구연맹(FIFA)집행위원회의 공동개최결정 및 한·일공동개최 권고안 채택,1일 특별집행위원회의 발표,한·일 두나라의 수용의사접수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어렵사리 끌어낸 공동개최성사를 위한 최우선 과제는 규약개정. 「1개국 개최원칙」을 명시하고 있는 FIFA의 규약을 개정하는 일은 형식논리상 1일의 집행위원회 이전에 이뤄졌어야 하지만 현행 규정하에서 이미 공동개최가 결정됐으므로 2002년 한·일대회의 경우 소급적용대상이 되는 셈이다.그리고 규약개정은 반드시 총회의 승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FIFA는 오는 7월3∼4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총회에서 공동개최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은 규약개정안을 상정,표결에 부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총회는「2002년 대회의 한·일공동개최안」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규약을 고치는 역할만을 하게 된다.따라서 공동개최안이 총회의 승인을 받으면 FIFA는 다시 집행위원회를 열어 이때 비로소 2002년 대회의 한·일공동개최를 다시 논의할지도 모른다.개최지신청과 관련,2002년 대회는 아시아대륙에 개최권을 주기로 사전양해가 돼있고 한·일공동개최 권고안이 채택된 만큼 두나라의 유치신청만이 유효한 것으로 그대로 처리된다. 이렇게 해서 한·일공동개최가 최종확정되면 집행위원회는 공동개최의 갖가지 쟁점들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게 한다.현재까지 거론된 쟁점들로는 ▲개·폐회식 장소 ▲수익금 배분비율 ▲32개 참가팀수는 그대로지만 개최국 자동출전국이 두나라로 늘어나는데 따른 문제,즉 아시아대륙지분 티켓인 3·5장속에 한국과 일본을 포함시킬 것인지,다른 대륙의 양해를 얻어 아시아대륙지분을 한장 더 늘린 것인지의 여부 ▲조직위구성과 조직위원장 선임 ▲한·일 양국의 실무협의진 구성 등이 꼽힌다.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될 사안들이 아니지만 이 가운데 개·폐회식 장소결정문제는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이에 대해서는 개·폐회식가운데 어느 하나씩을 골라 두나라가 나눠 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그러나 이것이 해결된다해도 개·폐회식에는 주최국의 국가원수가 참여해야 하는데 특히 일본의 경우 국왕이 한번은 한국에 와야하는 지극히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현재 두나라의 국민정서로 볼때 일본국왕의 한국방문은 보안상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어 우선 일본쪽에서 이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레나르트 요한손 유럽축구연맹(UEFA)회장은 『한·일 양국에서 개막전을 한게임씩 열고 32개 팀이 두그룹으로 나뉘어 경기를 치른다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혀 개회식이 두군데서 동시에 열릴 수 있음을 암시했다. 또하나 어려운 과제인 대륙지분 조절문제는 회원국들의 첨예한 이해가 걸려 있는 만큼 난항이 예상된다.다른 대륙에서 한장의 출전티켓을 빼오는 것도 어렵겠지만 아시아회원국들이 두나라가 자동출전권을 얻게 됨에 따라 지분이 1.5장으로 줄어드는 것을 선선히 용납지 않으려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문제를 포함한 쟁점들이 해결된다해도 조직위구성등 숱한 난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한·일 두나라는 한동안 머리를 맞대고 숙의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박해옥 기자〉
  •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어떤 이익 있나

    ◎경제적효과 4조원 추산/고용창출 11만명·간접자본 시설 확충/건설·정보통신업종 등 주가상승 예상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공동개최는 우리나라에 엄청난 경제적 활력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94년 미국 월드컵 기간중 전세계의 TV 시청자수는 연인원 3백20억명으로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의 2백60억명을 능가했다.월드컵의 홍보효과나 경제적 파급효과가 올림픽을 능가한다는 얘기다. 단독개최 예상과 달리 일본과 공동개최하기로 결정된 상황이어서 결승전 개최장소 등 변수들이 많고 양국간 엄청난 물가차이로 인해 비용계산이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얻을 경제효과만 따로 떼내 정확히 계산하기란 쉽지 않다.대략 단독개최 경우에 비해 절반정도로 봐야 할 것같다. 한·일 공동개최가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은 단독개최를 전제로 작성된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월드컵유치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어느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KDI에 따르면 2002년 월드컵대회를 단독으로 유치할 경우 관광소비지출 7천6백억원과 경기장 건설 등 직접 관련 투자 1조6백억원에 따라 승수효과를 감안한 총생산 유발효과는 5조7백억원,부가가치 유발효과는 2조3천2백87억원,고용창출 22만여명,수입유발액 4천6백51억원 등 파급효과는 총8조원으로 예상된다.공동개최 때는 절반 정도인 4조원 수준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그러나 단독이든 공동개최든 상관없는 사회간접자본 투자규모는 99조3백31억원 정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공동개최로 국내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큰 차이가 발생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먼저 공동개최로 경기횟수가 줄어드는 만큼 경기장을 많이 지을 필요가 없어진다.프로구단들이 보유하고 있는 전용구단을 증·개축하는 수준에 머물거나 한두개 신설하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 단독개최할 경우 지방도시에 국제수준의 호텔 5개를 건설하기 위해 5백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던 숙박시설도 공동개최로 자연히 축소된다.경제전문가들은 관람객과 관광객들이 일본에 적을 두고 경기만 관람하러 우리나라에 왔다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관광수입도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가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은 크게 없을 것으로 증권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일부는 단독개최 무산에 대한 실망으로 소폭 하락했다가 회복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대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공동개최 인정이 FIFA 집행위원회에 상정된 뒤 7월 총회에서 최종 결정됨에 따라 주식시장에서는 월드컵이라는 조정장세 탈출 실마리가 1개월정도 연기되는 것으로 실망감이 대두될 것으로 보여 최근의 조정장세가 길어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단 사회간접자본의 조기집행은 지속될 것으로 보여 건설주에 대한 관심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88년 올림픽 개최결정 시점인 지난 81년 9월30일 이후 3일동안 종합주가지수는 7.6% 단기급등했고 업종별로는 건설업종을 필두로 도매,운송업종의 상승을 주도하며 경기관련주인 화학,철강,전기기계등의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월드컵 공동개최로 수혜를 입을 업종도 역시 건설업종 및 건설관련업종,수출관련업종등으로 이들이 주가 상승을 견인할 것으로 보이며음식료,운수보관,서비스업종등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또 2002년 월드컵은 「정보통신 월드컵」이 예상되고 있어 국내 정보통신 기술과 서비스 능력을 세계 각국에 홍보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현재 선정작업이 진행중인 PCS,TRS등이 모두 중심적인 통신서비스로 대회 관계자에게 제공돼 국내 관련기업들의 큰 투자없이 수출확대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정보통신관련주도 수혜주로 꼽힌다.〈김균미 기자〉 ◎외교적 영향/한­일 새로운 협력의 장 열릴듯/일 총리 방한추진 등 관계강화 예상/동북아 안보·대북정책 공조에 기여 2002년 월드컵축구 대회의 한·일 공동개최는 우리의 단독 유치와 비교할때 국민적 아쉬움이 남는다.그러나 외교적으로 나은 측면도 있다. 우리 외교는 미국과 일본을 중요축으로 하고 있다.한국과 일본중 한나라가 월드컵을 단독 유치했을때 한·일 우호관계에 금이 갈 것은 뻔했다. 일본측은 그동안 하시모토 총리의 연내 방한을 추진해왔다.월드컵 유치를 둘러싸고 한·일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방한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였다.이제 모양좋게 공동개최가 결정되었으므로 하시모토 총리의 방한이 적극 추진되는 등 양국관계가 정상궤도에 오를 것이다. 한·일 공동개최는 사활을 걸고 대치하던 두나라가 휴전을 이룩했다는 의미를 뛰어넘는다.공동개최를 준비하고,실제 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한·일간 협력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외교뿐 아니라 경제·사회 등 모든 부문에서 양국의 동반자 관계가 공고해지게 된다.이는 동북아질서 재편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전망된다. 한·일 두나라는 또 월드컵대회를 치르기 위해 경기장·숙박시설 건립과 관광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보조를 취해나가리라 예상된다.대회가 개최되면 양국 정상과 대규모 응원단의 교류가 이뤄질게 틀림없다.한번도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없는 일왕의 방한 여부가 주목된다. 물론 한·일관계가 모두 순탄하리라 점치기는 힘들다.월드컵대회 개막전과 결승전 개최장소를 포함,대회준비 과정에서 부딪칠 사안이 많다.두나라 국민간 라이벌 의식을 감안할때 양쪽다 선뜻 양보가 쉽지 않다.그런 문제들이 잘못 다뤄질때 오히려 한·일간 국민감정이 나빠질 우려도 제기된다.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서도 몇 갈래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현재 북한의 4자회담 수용과 대북 경협을 사실상 연계시키고 있다.대화와 개방의 장으로 나와야 경제협력 등 실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북한이 절감할때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이때 중요한 것은 미국 일본의 공조다.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는 우리와 일본의 외교안보적 공조를 더욱 강화시키고 대북문제를 둘러싼 보조도 일치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정부는 우리가 월드컵을 단독유치했을때 북한 지역에서 일부 경기를 치르는 「남북분산 개최」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수차례 밝혔었다.한·일 공동개최가 됨으로써 남북 분산개최 여지가 낮아지긴 했지만 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정부의 한 당국자는 『월드컵경기의 절반을 일본과 나누었다해도 우리에게 배정된 몫중 적은 부분이라도 북측 지역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남북간에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을 궁지로 몰음으로써 남북관계가 악화되리라는 우려도 있다.하지만 월드컵 준비국으로서 세계의 이목을 받는 이상 북한의 도발을 국제사회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한반도 안보태세는 더욱 확고해지리라는 관측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는 한·일,남북관계를 떠나 한국이 일본과 나란히 어깨를 같이하는 선진국이라는 인식을 전세계에 심어줌으로써 「21세기 선도국」으로서 우리의 위치를 확실히 자리매김해주는 행사가 될 것이다.〈이목희 기자〉 ◎재계의 반응/“경제 활성화 도움 될것” 큰 기대/일부업체 「월드컵특수」 전략자기 본격화 재계는 2002년 월드컵대회의 공동개최가 결정되자 비록 공동개최이지만 국가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고 한·일간에 관계개선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경제적으로도 긍정적인 요소가 많아 세계화 추진전략의 요체가 될 뿐아니라 우리 경제의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특히 일부 기업들은 월드컵 특수 극대화 전략을 준비하기 위해 이날 밤부터 부산한 모습들. ○…전경련은 『공동개최인 만큼 어려움 점이 많겠지만 한·일 양국이 힘을 모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힘을 모을 수 있는 분위기조성이 필요하다』는 입장. 한국무역협회는 『공동개최라 하더라도 사회간접시설 등 국가발전기반 구축과 지역의 균형발전 및 국제사회의 외교역량강화 등의 대외적인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 또 대한상의는 『경기시설,교통인프라,관광 등 각 분야에서 경쟁이 불가피해진 점을 감안해 범국민적 노력으로 월드컵유치효과를 극대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경총은 『동북아경제발전과 평화질서유지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 ○…현대그룹은 일본보다 3년이나 늦게 유치활동에 나서는 등 여건이 어려웠음을 감안하면 좋은 결과이며 어쨌든 월드컵을 아시아 최초로 개최하게 된 것은 온국민의 쾌거라고 촌평. LG그룹은 세계의 관심속에 월드컵대회를 공동 개최하게 돼 국가는 물론 기업이미지제고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며 국내경기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그리고 이번 결정을 계기로 그룹의 이미지홍보에 박차를 가해 대외수출과 국내경기활성화에 일익을 담당할 방침. 대우그룹관계자들은 『양국간의 감정이 해소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남북화합과 통일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일본이 노력해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 ○…두산·진로그룹 등은 주류및 음료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을 기대.두산은 88올림픽당시의 자료를 찾아보는 등 월드컵 장사에 착수한 느낌. 진로도 휘장사업에서 일본의 경쟁사들을 누르기 위한 비책마련에 돌입하는 한편 세계 주류시장을 평정할 새로운 제품개발에 나설 채비. 한편 한진그룹과 금호그룹은 공동개최로 한·일 노선의 승객수송실적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손성진·김균미 기자〉
  • 일왕 원수격상 등 포함/「헤이세이신헌법」 공개

    ◎일 자주헌법의원동맹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왕의 지위를 원수로 격상시키고 자위군 보유와 국방의무를 명기한 이른바 「헤이세이(평성)신헌법」이 자민,신진당 의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자주헌법기성의원동맹」회장인 기무라 무쓰오(목촌목남) 전 참의원의장의 「헌법개정사안」으로 11일 소개돼 주목되고 있다. 산케이(산경)신문이 1면 박스로 보도한 기무라씨의 헤이세이 신헌법은 『냉전붕괴 후의 국제 신질서에서 일본이 해야 할 역할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현행헌법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전제하에 ▲일왕의 국가원수명기 ▲자위군 보유 및 해외파견 용인 ▲국민의 국방의무 부여 ▲국회 일원제 ▲헌법개정 간소화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 「국민학교」 명칭 역사속으로/오늘부터 「초등학교」로 모두 바꿔

    ◎55년만에 교육계 일제잔재 청산 일제시대부터 사용해온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3·1절 77주년을 기해 55년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진다.전국 6천7백89개 국민학교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이날부터 「초등학교」로 바뀐다. 단순히 이름을 바꾼다는 차원을 넘어 교육계에 남아있던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더 크다.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일제 강점기인 지난 41년 2월 공포된 히로히토 일왕의 칙령 1백48호(국민학교령)에 의해 태어났다. 학계에서는 『황국신민의 「국」자와 「민」자를 딴 것으로 한민족을 황국신민으로 만들어 대동아 공영권 형성에 충직한 전시요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줄기차게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외쳐왔다.
  • 일,「한국합병」 사전 계획/단행 1년전 각의서 정식 결정

    ◎일 외무성 외교연표 【도쿄 연합】 일제는 이미 한일합방 1년여 전에 한국을 병탄하기로 각의에서 정식 결정,일왕의 결재를 맡았으며,일본제국의 백년 대계를 위해 합방을 단행키로 사전 계획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일제가 1909년 각의에서 결정,통과시킨 「한국병합에 관한 건」에서 드러난 것으로 「적당한 시기에 한국병합을 단행」토록 계획하고 있는 이 각의 결정사항은 한국 병탄이 일왕과 내각의 조직적 개입하에 「제국 백년의 장기계획」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일본 외무성이 편찬한 「일본외교연표 및 주요문서」에 수록돼 있는 이 병합결정기록은 구체적으로 『한국을 병합해 제국판도의 일부로 삼는 것은 반도에 대한 우리 국력을 확립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전제한 뒤 『내외의 형세를 감안,적당한 시기에 단연코 병합을 실행함으로써 반도를 명실공히 우리 통치하에 두는 동시에 한국과 모든 외국과의 조약관계를 소멸시키는 것을 제국백년의 장계로 한다』고 합방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 이봉창의사 폭탄투척 등 기술/총독부 비밀문서 발견

    【부산=이기철 기자】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소장 박낙조)는 28일 1932년 이봉창 의사의 일왕 폭탄투척의거에 대한 조선총독부 비밀문서 「경비관계철」을 발견,판독한 결과 이의사가 1924년쯤 부터 이미 항일청년단체를 결성했었다는 등 그의 청년시설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의사는 거사후 일경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폭탄을 건네받을 때부터 성능을 의심하고 헛되이 희생되지 않을까 고민했다는 진술이 사실적으로 나타나 있다. 또 폭탄투척사건 직후 일본에서는 친일파 거두 박춘금이 친일단체인 「상애회」회원 1백여명과,국내에선 한상용,박영철 등이 친일단체인 「동민회」회원과 함께 일왕에 사죄하는 등 부끄러운 내용도 담겨
  • 일인 “금이 최고”/고베지진이후 인기/수입 작년보다 2배

    【도쿄 AFP 연합】 고베 대지진 당시 지폐와 증권 더미들이 불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일본인들에게 금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의 금 수입은 올 상반기중 1백65.2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5.2t에 비해 거의 두배로 늘어났다. 이는 히로히토 일왕의 60회 생일 기념 금화를 발행하기 위해 막대한 금이 수입됐던 지난 86년 이래 가장 많은 수입량이다. 일본 최대의 금 중개상인 타나카 기킨조쿠 고교사의 이케다씨는 올초 고베 대지진 참사 당시의 TV 뉴스 보도가 금에 대한 관심을 되살렸다고 말했다. 『금만이 엄청난 재난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금 중개상들은 이같은 심리적 요인 외에 엔화의 미달러화에 대한 급격한 가치상승도 금의 인기를 부활시킨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경제가 전후 최대의 불황기를 맞은 가운데 일본 금융기관들이 악성 채권등으로 문제를 안고있는 점도 금을 다시 찾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
  • 「침략인정」과 히로히토 면책론/강석진 도쿄 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는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15일 담화를 발표,「국책을 그르쳐 전쟁의 길로 나아갔다」며 일본의 전쟁책임을 명확히 했다.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내놓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들에 비해 일단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는 이어 「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특히 아시아 여러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면서 「의심할 여지도 없는 역사의 사실」이라고 지적해 침략행위 여부에 대해 더 이상의 논란이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총리로서의 소신을 집대성한 것처럼 보인다.거기에다 이날 발표된 담화는 각료회의의 의결을 거쳤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일단 간주되고 있다. 아마도 무라야마총리는 지난 6월 채택된 종전50주년 국회결의가 원래 뜻과는 달리 한국등 피해국들을 격분시킨데다가 시마무라 요시노부 문부상등의 망언파동으로 뭔가 분명한,강도높은 사회당위원장 출신 총리다운 태도와 전쟁관의 표명이 필요하다고 느꼈음직하다. 하지만 무라야마총리의「성의있는」 담화를 두손들어 환영하기에는 여전히 미진한 부분들이 남아 있다. 그는 담화를 발표한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쇼와(히로히토)일왕의 전쟁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점을 못박았다.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모순된 일이 아닐수 없다.쇼와일왕은 당시 국가원수이자 일본제국군 최고통수권자였다. 또 그는 종군위안부,강제징용자의 보상등 미해결 전후처리문제와 관련,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및 2국간 조약등에 의해 해결된 문제이므로 개인보상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그러나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만큼 종군위안부 보상,새로이 밝혀지는 징용자등에 대한 보상,나아가 전범등에 대한 처벌등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총리가 담화를 발표하는 비슷한 시간 하시모토 류타로 통산상등 자민당출신 각료들이 줄줄이 전범이 모셔져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총리의 진일보한 담화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늘 주변국들의 신뢰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신뢰는 구체적인 행동의 누적속에 쌓인다.사죄라든가 침략행위 인정등당연한 말들도 늘 망언들로 뒤집혀 왔기 때문이다.
  • “전쟁은 정당” 일 극우단체 시위/종전 50주년… 일·미·태 표정

    ◎워싱턴 공식행사 전무… 언론도 침묵­미국/10만여명 희생된 콰이강서 위령제­태국/일 각료 9명 전범위패 안치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8천여명 추도식 ▷일본◁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로 불리는 15일 정부주관하에 「전국전몰자추도식」이 도쿄 기타노마루공원 무도관에서 일왕부처,무라야마 도미이치총리와 도이 다카코 중의원의장등 정부·국회관계자,유가족등 8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조선인·대만인 등을 포함한 군인·군속 2백30만명,일반인 85만명등 3백15만명을 추도한다는 이날 행사에서 무라야마총리는 『그 전쟁에서는 많은 나라,특히 아시아 여러 국민에 커다란 고통과 슬픔을 주었다.이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깊이 반성과 애도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무라야마내각의 각료 9명이 전범들이 봉사되고 있어 늘 말썽을 빚고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올해 참배각료는 14일 미리 참배한 우라노 야스오키 과학기술처 장관을 포함,1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7명의 각료가 「개인」 자격으로 참배한데 비해 올해는수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통산상,방위청장관등은 「공인」 자격으로 「공식참배」. 특히 히라누마 다케오 운수상은 이날 참배시 다른 각료들이 머리만 숙인것에 반해 「2례 2바교수 1례」의 신도식으로 참배해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 규정과 관련해 물의 무라야먀 총리 등 연립여당 3당 당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배하지 않았으나 자민당의원 1백32명(대리참배 73명),신진당의원 36명(대리 20명)등 국회의원들도 대거 참배대열에 합류,정치권의 분위기가 지난해보다 「참배」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줬다. ○배상 등 요구 시위 ○…오사카(대판)에서는 15일 한국유족,중국남경대학살 생존자,일본시민등 4백7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일본의 전쟁책임을 추궁하는 집회가 열렸다고 교도통신이 보도. 이날 집회에서 일제징용으로 남편을 잃은 유족 이김주(74·전남 광주)씨는 『일본인은 한국인을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버렸다』면서 사죄와 배상을 일본정부에 촉구. ○안보리 기념성명 ▷미국◁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는 태평양전쟁승리 50주년이 「망각」된 채 지나갔다.현지시간 14일인 승전일에 미국정부의 전승기념 공식행사는 물론 이에 대한 언급도 전무했다.이를 다룬 신문사설조차 없었다. 미국에서 태평양전쟁 승리는 일본의 미 진주만 기습(41년12월7일) 기념행사때 함께 축하되지만 언제나 종속적인 신세를 면치 못한다.진주만기습 50주년 기념행사는 4년전 미전역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바 있다. 미국인에게 정작 8월은 원자폭탄 투하의 달로 더 기억된다.미국언론은 지난 6일 원폭 투하 50주년 당시 히로시마에 대한 연민의 정을 담은 대대적인 기획기사를 다뤘다. 한편 유엔 안보리는 이날 아시아지역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3개항의 기념성명을 채택,국가간 신뢰구축과 협력을 통한 단결이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길이 된다고 밝혔다. ○생존포로 등 참석 ▷태국◁ ○…2차대전당시 일본군의 포로로 잡혀 태국에서 철도부설을 위한 강제노역에 동원됐다가 숨진 연합군장병 1만6천여명과 아시아인 10만여명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겸한 종전50주년 기념식이 15일 연합군 생존포로및 전일본군 병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콰이강의 다리가 있는 방콕서쪽 칸차나부리에서 거행됐다.
  • 일제,중 전역서 세균실험/일왕 밀명으로… 비·호등서도 계획

    【북경 로이터 연합】 일본은 1930년대에 히로히토(유인) 일왕의 비밀 지령으로 세균부대인 731부대와 100부대를 설치,하얼빈 등 만주 지역과 북경·남경·광주·대연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인체 실험을 자행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중국 북부 흑룡강성 성도 하얼빈에서 최근 열린 세균부대 관련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중국과 일본 학자들의 말을 인용,당시 악명높던 731부대가 중국 여러지역에서 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콜레라 등 각종 세균으로 인체 실험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신배림 흑룡강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부소장은 『당시 히로히토 일왕의 밀명을 받아 하얼빈에 위치했던 731부대를 직원 3천명에 최신식 설비를 갖춘 세계 최대의 세균전 수행기지로 만들었다』고 폭로했다. 중국측 학자들은 최근 싱가포르의 한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자료들을 인용,당시 중국 및 한국·몽골·옛소련출신 포로 3천명이 인체실험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신화통신은 익명의 일본 교수의 말을 인용,『일본 당국은 1942년부터 1944년까지 필리핀과 호주·하와이·미얀마 등지에서도 세균전을 계획한 데 이어 1944년에는 사이판과 괌에서의 세균전 수행을 인가했다』고 말했다.
  • 50여년만에 벗은 일 잔재 오명/「국민학교」 명칭 변경 의미

    ◎소학교­보통학교­심상소학교로 불러/일 제국주의 산물… 현학제와도 안맞아 정부가 11일 국민학교의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기로 한 것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늦게나마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야 하고 명칭 자체도 부적절하다는 여론을 적극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민학교라는 이름은 1941년 2월28일 일왕 히로히토가 칙령 제148호 「국민학교령」을 내린데 서 비롯된 것으로 광복후에도 고치지 않은채 54년동안 그대로 사용돼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본이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쓰도록 한 목적은 민족말살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국민들을 태평양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말고도 일본·대만에서도 적용됐다. 이때 「국민」은 민족이나 백성이라는 뜻보다는 「황국신민」의 뜻으로 보아야한다.이런 이유 때문에 대만은 물론 일본조차도 광복직후인 46년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버리고 「소학교」로 바꾸었다. 41년 이전에도 국민학교 명칭은 여러차례 바뀌었다.1883년 원산학사에서 시작되는 우리의 근대교육은 초등과 중등의 구분없이학사나 학당이라는 이름을 학교의 의미로 썼다. 1894년 갑오경장 직후 비로소 신식 교육체제를 갖추게 되면서 학교등급도 구분되어 「소학교」가 생겨났고 이 명칭은 「보통학교」로 바뀐 1906년 8월까지 사용됐다. 「보통학교」는 「내선일체」의 구호를 내세운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1938년 「조선교육령」이 공포됨으로써 「심상소학교」로 다시 개명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겨난 「국민학교」는 정부수립이후 교육법에 그대로 명시됐고 50년이 훨씬 지나서야 일제의 잔재라는 오명을 벗게됐다. 정부가 이번에 개명을 하게된 데는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말고도 명칭자체가 전체·제국주의의 산물이고 현행 학제와 맞지않으며 「프라이머리 스쿨」이라고 부르는 국제적인 추세에도 어긋난다는 견해가 작용했다. 본래 국민학교의 어원은 나치 독일의 「폴크스 슐레」를 일제가 그대로 옮긴데서 유래하며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 확대되는 현실에서 국민학교만 국민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하는 학교로 볼 수 없고 초·중·고등교육의 학제에 비춰서도 부적합하다는논리였다. 이에 따라 한국외국어대 박창희 교수 등이 중심이 된 민간단체들의 연합체인 「국민학교 명칭 개정을 위한 협의회」에서 본격적인 개명운동을 벌이기에 이르렀으며 3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4건의 개명청원이 국회에 제출됐다. 명칭의 대안으로는 「초등학교」 「기초학교」 「보통학교」 「어린이학교」 「새싹학교」 등이 제시됐으나 「초등학교」가 가장 적절한 명칭으로 받아들여졌고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45.6%,교육관계자의 69%가 찬성할 만큼 호응을 얻었다. 한편 명칭변경에 따라 전국 5천7백72개의 학교간판과 학교직인·교기 등을 새로 제작하는데 20억8천만원 가량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교육부는 추정하고 있다.
  • “일 침략전쟁 진정 반성해야/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가능”

    ◎김 대통령,일지 회견 【도쿄 연합】 김영삼 대통령은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 확립과 과거 역사의 직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식민지 지배,침략전쟁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있어야만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8일 아사히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전후 50년을 맞는 양국 관계에 대해 이같이 말하고 일왕의 한국방문 성사 여부에 대해서도 『양국민,특히 일본측의 노력이 중요하며 일부 정치가나 일본국민이 한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은 또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교섭과 관련,『북·일 협상이 남북대화보다 너무 앞서가면 일본이 한반도 통일을 원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한국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반대하지 않으나 미·일 양국의 북한과의 협상은 남북관계의 개선과 「조화및 병행」을 유지하면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또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원칙은 이미 합의돼 있기 때문에 북한의 권력체제가 정비되면 자연스럽게 논의될 것』이라고 말하고 다국간 협의의 테두리 속에서 북한을 개방체제로 유도하면서 남북한 협의를 추진할 의향을 표명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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