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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日王 혈연발언 겉과 속

    아키히토(明仁)일왕이 이례적으로 일본 왕실의 뿌리를 언급하면서 한일우호를 강조했다.자신의 68세 생일을 앞두고 가진 일본 기자단과의 회견에서 ‘간무(桓武)천황’의 생모가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는 사실 등을 직접 언급한것이다.간무 제50대 일왕은 서기 781년에서 806년까지 26년재위 기간 중 혼란한 정계의 기풍을 혁신하고 율령제를 재편했다. 794년 현재의 교토(京都)로 도읍을 옮겨 헤이안교(平安京)를 조성해 약 400여년간의 헤이안시대를 열었다.그의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간무왕의 지시로 편찬된 일본의 ‘속일본기’(續日本紀)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이같은 기술은 오래 전부터 역사학계에서 회자돼 왔으나,일왕 자신이 왕가의뿌리가 한국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공개석상에서 언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일본 사회에서 그같은 ‘연관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사실상 금기시돼 왔기 때문이다. 그밖에 한국과 일본의 혈연설은 무수히 많다.대표적인 것이 백제유민이 일본으로건너가 정착하면서 대륙문화를 전파했다는 학설이다.언어,풍습,문헌 등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이 학설들은 일본 역사학자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이 많으나 공식적으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일왕이 느닷없이 금기를 깬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일본의 식자들은 일왕의 이같은 언급을 한일 우호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그의 발언이 양국의 교류관계 등을 설명한 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양국 국민간의 이해와 신뢰 확대에 기대를 건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는 점이그같은 해석의 근거다.그런가 하면 “뭔가 검은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눈길도 있다.과거 침략시절에 내세웠던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연상하는 것이다. 결론은 아직 이르다.그 발언이 선의(善意)에서 나왔다면 일본이 과거사 반성 및 민간인 피해자 배상문제 등에서 성의를 보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사과’와 ‘신사참배 강행’을 반복하는 식의 행태를 계속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만약후자라면 일왕의 발언은 음험한 속셈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이웃나라 왕실의 경사를 앞두고 나온 발언에 대해 덕담으로 화답해야 마땅하지만 워낙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인지라 어쩔 수 없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日王, 백제문화 전수등 인정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왕이 역사상의 한·일 교류와 한국과의 연(緣)을 이례적으로 강조하면서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양국민의 이해와 신뢰감이 깊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혀 주목되고 있다. 2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68세 생일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월드컵 개최와 관련한한·일 양국의 인적·문화적 교류에 대해 언급,“한국과의연(緣)을 느끼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쓰여 있는데 대해 한국과의 연을 느끼고 있다”면서 “무령왕은 일본과의관계가 깊고 당시 오경박사가 대대로 일본에 초빙됐다”고덧붙였다. 그는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聖明王)은 일본에 불교를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그러나 유감스럽게 한국과의 교류는 그러한 교류만이 전부는 아니었으며 우리는이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과 한국민간에 예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일본서기 등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한국에서 오신 사람들과 초빙돼온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문화와 기술이 전해졌다”고 한·일 관계에 대한 서두를 꺼냈다. 그는 특히 “궁내청 악사(樂師) 중에는 당시 한국에서 이주해온 자손이 대대로 악사를 하고 지금도 가끔 아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러한 문화와 기술이 일본인의열의와 한국인의 우호적 태도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것은다행한 일이며 그후 일본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日 왕세자비 딸 이름 아이코

    [도쿄 황성기특파원] 지난 1일 태어난 일본의 마사코(雅子·37) 왕세자비의 딸 이름이 아이코(愛子)로 결정됐다. 일본 궁내청은 7일 아키히토(明仁·41) 일왕이 장남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와 마사코 비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의 이름을 아이코로 지어주었다고 발표했다.어린 시절왕손을 부르는 이름은 도시노 미야(敬宮)로 정해졌다. 일본 왕족의 이름은 두 글자로 짓는 것이 전통으로 남자아이는 이름 뒷자에 인(仁)을 넣고 여자 아이의 경우 자(子)를 쓴다. 이름을 지을 때는 보통 중국 고전 등에서 한자를 찾아 짓는데 이번에는 맹자(孟子)가 출전이 됐다는 게 궁내청의설명이다. marry01@
  • 日 왕세자비 출산 축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일 오후 아키히토(明人) 일왕에게 축전을 보내 마사코 왕세자비의 첫 출산을 축하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왕세자비 여아 출산’ 日열도 들썩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나루히토(德仁·41) 왕세자의부인 마사코(雅子·37)비가 1일 오후 여아를 출산했다.마사코 왕세자비의 출산은 결혼 8년 만의 일이다. 일본의 각 방송사는 이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출산 소식을 특집으로 내보냈으며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의 대형 빌딩과 주요 백화점은 왕손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일본 열도가 온통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여아 출산에도 불구하고 일본 왕실은 여자가 왕위를 잇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 왕세자비의 출산을 계기로 여자도 왕위를 계승하도록 왕실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왕 논의=일본의 왕위 계승 순위는 나루히토 왕세자가1위이며 2위인 동생 아카시노(36)를 제외하면 아랫대에 남자는 단 1명도 없다.3위가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동생(66)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나마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남자 왕족은 7명에 불과하다. 일본 역사상 지금의 125대 일왕에 이르기까지 10대에 8명의 여왕이 즉위했으나 일왕이 군사 통수권을 손에 넣은 메이지(明治)시대부터 남자 만이 왕통을 이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왕실 규정개정에 대해 “역사,전통을 생각하면서 검토하는 편이 좋다”면서 국민 여론을 봐가며 신중히 검토할 뜻을 비쳤다. 한편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3명의 손녀만 두게 됐다. ◆축제 분위기=토요일 오후의 출산 소식은 일본에 모처럼의 청량제였다.방송들은 “대량실업,광우병 파동,미 테러참사 등 어두운 일만 잔뜩 있는 일본에 모처럼 밝은 소식”이라며 장시간에 걸친 특집 방송을 내보냈고 신문들도일제히 호외를 발행했다. 일왕의 거처인 도쿄 시내 왕거와 왕세자비의 친정집 등에는 많은 시민들이 몰려 아이의 탄생을 축하했다.경제계에서는 마사코 비의 ‘로열 베이비’ 출산이 경기를 이끌 것을 기대하고 있다.한 민간경제연구소는 파급 경제효과가 14조엔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미치코(美智子)왕비가 왕세자를 낳은 60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13.1%를기록했다. ◆마사코 왕세자비=외무성 사무차관,유엔 대사를 지낸 ‘평민 집안’의 장녀로 한파티에서 우연히 나루히토 왕세자비를 만나 1986년부터 교제를 시작,6년 뒤 결혼했다.미하버드대 경제학부를 거쳐 도쿄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외무고시에 합격,외무성 북미과 등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미모 겸비의 재원이다. marry01@
  • 고이즈미 日총리 내년 1월 재방한

    [도쿄 황성기특파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가 내년 1월 말 한국을 공식방문하는 방향으로 한·일양국이 일정을 조정 중인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도쿄의 고위 외교관계자는 이날 “고이즈미 총리의 연말재방한이 한때 거론됐으나 꽁치조업을 둘러싼 협의가 끝나지 않아 사실상 연내 방문은 어렵다”면서 “방한시기는 고이즈미 총리의 동남아시아 5개국 순방이 끝난 뒤인 1월 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10월의 실무방한과는 달리 내년 방한은 공식방문인 만큼 최소한 1박2일 이상의 일정을 추진하고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왕의 2002년 월드컵 개막식 참석과 관련,“일본 정부 내의 분위기는 부정적”이라며 중·일 수교 30주년인 내년 일왕의 방중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10월15일 방한한 고이즈미총리와의 정상회담 때 월드컵 대회 전 방한을 공식요청한바 있다. marry01@
  • 월드컵 조추첨/ FIFA대표단 일문일답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회장 등 FIFA 대표단은 28일 집행위원회를 마친 뒤 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미디어 센터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FIFA규정에 따라만장일치로 중국이 한국에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고 발표했다.다음은 일문일답.대답은 블래터 회장,요한슨 FIFA 조직위원장,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오카노 일본축구협회장 등이 돌아가면서 했다. ▲중국이 한국에서 경기를 하는 이유는. 지리적·경제적면에서 합당하기 때문이다.중국의 많은 축구팬들이 일본에가려면 항공편과 요금 등 제약이 많다. 중국측도 한국에서경기를 하길 원했고 일본 축구협회장도 자진해서 합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같은 대륙 국가가 한·일 양국중 한 나라에 몰리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는일본에서 경기를 가질 것이다. ▲일왕 방한 문제는 어떻게 되나. 이것은 FIFA나 한국 월드컵조직위원회가 나설 문제는 아니고,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공식 초청장을 보내야 가능한 문제다.개인적으로는장쩌민 중국 수석이 한국에서 열리는 중국경기 관람을 약속한 만큼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지구촌 축제에 한·중·일 3국 정상이 모인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이다. ▲프랑스가 한국에서 경기를 하는데 그럼 2위인 브라질은일본으로 가나. 말도 안되는 소리다. 톱시드를 받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같은 대륙국가이므로 무조건 한·일 두나라로 갈려서 경기를 해야 하지만 이는 조추첨을 해봐야아는 문제다. ▲남북 공동개최는 아직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처음에 FIFA가 제안했을 때는 참 좋은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않다.조추첨이 끝나면 개최도시와 경기가 확정되는데 북한을 포함시키기엔 시간이 촉박하다.FIFA가 북한에 기회를줬는데 잘 안됐다.하지만 내년 1월 FIFA대표단이 북한의축구시설·장비 지원을 위해 방북하는 등 계속 문을 두드릴 것이다. ▲한·일 양국이 공동개최국이지만 교과서 문제 등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협력은 잘되고 있나. 양국은 티케팅,수송,미디어 지원 문제 등 전분야에서 원활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월드컵은 인종과 종교 등을 뛰어넘는 세계인의축제이므로 월드컵을 통해 양국의 화해를 다질수 있을 것이다. ▲톱시드를 제외한 유럽 11개국(Ⅱ그룹)중 8개국을 가리는것은 성적이 반영되나. 순수한 추첨으로 결정될 것이다. 나머지 3개 유럽국은 남미 3국,아시아 2개국과 함께 3그룹에 속한다.이들은 유럽국이 톱시드가 아닌 조에 골고루 배치될 것이다.같은 조에 유럽국 3팀이 속하는걸 막기 위해서다. ▲한국이 톱시드를 받고도 잉글랜드,포르투갈 등 유럽의강팀 2팀과 한조를 이룰수 있다는 말인가.추첨 결과에 따라 충분히 그럴수 있다.하지만 유럽은 큰 기량차이가 없이다같은 강팀이다. 포르투갈도 최근 프랑스에게 0-3으로 진것으로 알고 있다. 부산 류길상기자
  • 日 교육기본법 개정 움직임

    일본 정부가 교육기본법 손질에 나섰다. 도야마 아쓰코(遠山敦子) 문부과학상은 26일 중앙교육심의회에 ‘새로운 시대에 알맞는 교육기본법의 모습’을 심의,제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교육기본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일본 정부는 물론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도 불이 당겨질 것으로보인다. 일본 교육의 정신을 담고 있는 교육기본법은 2차대전 패전후인 1947년 시행된 뒤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기본법은 개헌론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개정 논의 자체가 금기시돼 왔다.기본법 전문은 “일본 헌법의 정신에 따라 교육의 목적을 명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일왕의 신격화와 국가지상주의를 담은 ‘교육칙어’는 일제의 패전에 따라 의무교육과 교육기회의 균등을 기초로 하는 교육기본법으로 바뀌었다. 일본 헌법이 일본의 재무장이나 전쟁 포기를 천명한 중심축이라면 교육기본법은 이같은 평화이념의 정신을 지탱하는‘교육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50∼60년대 보수세력들이 “기본법에는 애국심을기술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법 개정을 주장해 왔다.대표적인 인물로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 총리, 극우 논객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가 개헌과 함께 기본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문부성의 법 개정 움직임과 관련,교직원 노조인 닛쿄소(日敎組)는 맹렬히 반발하고 있다. 닛쿄소의 한 관계자는 “기본법은 민주국가를 만들어 세계평화를 실현하자는 헌법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50년이 지났다고 해서 낡은 이념이 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이봉창의사 日王에 폭탄 던진 곳 ‘경시청앞’

    이봉창(李奉昌)의사가 1932년 1월 8일 육군 관병식을 마치고 환궁하던 일왕(日王·裕仁)의 마차에 폭탄을 던진 곳은도쿄 시내 황궁의 출입문인 앵전문(櫻田門)앞이 아니라 인근 경시청 앞임을 보여주는 당시 현장약도가 처음 공개됐다. 그동안 일제는 이 사건이 일본 수도치안의 총본부격인 경시청 앞에서 발생한 ‘대역(大逆)사건’이어서 경찰의 체면을고려해 ‘앵전문 사건’으로 왜곡해 불러왔다. 최서면(崔書勉·73)국제한국연구원장은 10일 단국대학교주최 이 의사 순국 69주년 추모학술회의 주제발표에 앞서일본 외무성사료관에서 입수한 약도를 공개,“이 의사의 의거현장은 앵전문 앞이 아니라 경시청 앞으로 확인된만큼 ‘경시청 앞 사건’으로 고쳐불러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의거 직후 일경이 작성한 약도에 따르면,이 의사는 일왕일행이 경시청앞을 지나갈 무렵 호위경찰 뒤에서 일왕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다.일본정부 역시 당일 첫 발표에서는 의거현장을 ‘도쿄시 고오지마치구(麴町區) 소도사쿠라다몬쵸(外櫻田門町) 1번지 경시청 현관앞’이라고 발표했다.그러나 이틀 뒤부터 일본정부는 이 사건을 ‘앵전문 사건’으로 고쳐부르게 했다.앵전문은 황궁의 여러 출입문 가운데 하나로 경시청 현관에서 100여m 이상 북쪽에 떨어져 있다. 정운현기자
  • 일제 찬양 사이트 7곳 폐쇄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일본 수상 각하 동호회' 등 일본 제국주의와 일왕을 찬양하는 내용의 인터넷 사이트 7곳을 최근 폐쇄했다고 17일 밝혔다. 폐쇄된 사이트 중에는 '일본이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등 일본침략을 미화하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친일 사이트가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 지속적으로 이를 점검, 폐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 일본 전역 꼬리문 ‘군국 참배’

    15일 정오 도쿄 시내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스산한 조가(弔歌)가 울려나오자 경내에 있던 참배객 수천명이 일제히묵도를 올린다. 일본 전역에서 실시된 1분간의 묵도가 끝나자 본전 앞 참배를 기다리는 행렬이 다시 조금씩 움직인다.30분은 기다려야 겨우 참배할 수 있을 만큼 경내는 인산인해다.옛 일본군복장에 대형 일장기를 든 단체 참배객들도 곳곳에서 눈에띈다. 대부분은 50대 이상이다.아버지나 할아버지,동료를 태평양전쟁을 비롯한 무수한 전쟁에서 잃은 유가족들이다.해군이던 아버지가 1944년 전장에서 사망했다는 한 50대 참배객은“야스쿠니 참배를 놓고 왜 한국이 이러쿵저러쿵 하느냐”며 “일본에는 일본의 방식이 있다”고 불쾌한 듯 손을 젓고는 다른 곳으로 홱 가버린다. 참배객은 유족이 대부분이지만 더러 “나라를 위해 희생한분들을 기리기 위해” 찾는다는 ‘소신파’도 있다. 한 참배객(57·자영업·도쿄 거주)은 “가족 가운데 전사자는 없으나 1년에 4차례는 이곳을 찾아 머리를 조아린다”면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참배한 것은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보다는 한국이 신사 참배에 대해 잘 이해해주는 것 아니냐”고 엉뚱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젊은 대학생들도 꽤 많다.올해 처음 야스쿠니에 왔다는 남학생(20·대학 2년)은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보통의 국민들을 생각해 왔다”면서 “참배에 정치적인 뜻은 없지만 일본 언론의 보도가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에 합사된 A급 전범에게도 참배를 했냐고 묻자 이내 말꼬리를 흐린다. 대다수 유족들의 참배가 이어지고 있는 본전 앞과는 달리신사 안팎은 우익의 선전장을 방불케 할 만큼 극우 조직원의 시위,집회가 계속됐다. ‘아시아 청년당’,‘정치결사,일본 황정당(皇政黨)’,’쇼화진구(昭和神宮) 창건회’,‘국수국방연합(菊水國防連合)’등 크고 작은 극우 조직들이 동원한 버스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노래와 구호가 연신 흘러나오는가 하면 우익 청년들이 군복 차림으로 신사 이곳저곳을 돌며 세를 과시하기도했다. 이들은 ‘천황 폐하를 중심으로 단결하자’,‘대동아전쟁은성전(聖戰)이다’,‘황국(皇國) 일본 만세’등의 구호가적힌 플래카드로 참배객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신사 본전 입구에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 함대에 뛰어들었던 특공대를 기리는 그림과 붓글씨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지나가던 참배객들이 다투어 사진을 찍고 글씨를 들여다보고 있다.‘너와 내 사랑의 하늘의 이중주,맑아서 얘기하는 하늘의 순간’.말할 것도 없이 일왕에 목숨을 바친 특공대의 심정을 왜곡해 표현한 글이다. 야스쿠니 신사를 돌아보면 볼수록 점입가경이다.“한국과중국은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고 규탄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나라에는 쇼와(昭和·태평양전쟁 당시 일왕의 연호) 수난자만 있을 뿐 A급 전범은 없다”는 역사 왜곡마저도 서슴치 않았다. 두 얼굴의 야스쿠니 신사.일본의 무모한 야욕 때문에 전쟁터에 끌려나가 억울하게 희생된 국민들의 위패가 있는 곳인가 하면 군국주의 일본 정신을 확대 재생산하는 ‘마음의기지’이기도 한 야스쿠니 신사이다.그곳을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13일 참배했다. ◆ 야스쿠니 신사.1869년 메이지(明治) 일왕 때 지어져 일본군이 관리를 맡았다.전쟁에서 사망하면 신이 된다는 독특한 신앙으로 무고한 국민들을 전장으로 내몬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적 시설.2차대전 종전 후 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처형된 14명을비롯,246만여명의 위패가 합사돼 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김삼웅 칼럼] 8·15, 마지막 우상이 무너진다

    8·15해방은 이땅에서 우상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일왕을정점으로 조선총독과 총독체제는 거대한 우상이었다. 실제로 조선총독부는 패전과 함께 전국 1,141개의 이른바 신궁·신사를 소위 ‘승신식(昇神式)’이란 것을 지낸 다음 불태웠다.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조선인을 핍박했던 신궁과신사를 저들 스스로 소각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이성의 태양이 비치지 못한 동굴에는 늘 새로운 우상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해방군 또는 점령군 이름의 하지휘하 미군정에 이어,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백색·청색독재는 총독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신성불가침의 우상이었다. 다행히 6월항쟁을 계기로 정치권력의 우상은 무너졌다. 민간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치적 우상 대신 보편적 민주질서가확립되었다. 대통령은 야당과 언론의 원색적인 비판을 받고있다. 정치권력의 우상이 사라진 동굴에 언론권력이 자리잡았다. ‘천황’과 총독을 숭상하고 군사독재와 유착하면서 엄청난재력과 영향력을 키워온 족벌언론사가 무소불위, 오만불손,무오류성으로 우상의 반열에 올라섰다. 우상이 도사린 신전, 그 추악한 장막속에는 탈세와 변칙상속 등 타락한 장사치의 범죄문서가 널려있다. 우상은 추종자가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은 우상의 허상이 드러날 때까지 맹신을 거두려 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들이 대동아공영권, 반공, 근대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기수인 양 처신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인간지성의 도리에 접근을 방해하는 편견으로서 4종의 이돌라(idola:우상)를 지적했다. ①종족의우상 ②동굴의 우상 ③시장의 우상 ④극장의 우상이다. ①은 종족에 대한 보편적인 선입관이고 ②는 개인적 편견으로서 마치 동굴속에 있듯이 자연의 빛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비유한 것이며 ③은 언어의 부적당한 사용에 기인하는 것으로 시장에서 있지도 않은 풍설이 나도는 것과 같은 것이며④는 논증의 잘못된 규칙이나 철학의 그릇된 학설과 체계에의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마치 무대위에서 상연되는 가공의이야기에 비유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4가지 이돌라중에 족벌언론이 안고 있는 두번째 ‘동굴의우상’이 문제다. 이들은 동굴 밖에 비치는 이성의 태양을바라보지 못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개혁과 남북화해를좌경으로 치부한다. 일제시대 이래 주류세력으로 안락을 누리고 사대근성과 냉전논리에 젖어 민족의 아픔을 외면한다. 동굴 밖의, ‘우상을 무너뜨리라’는 이성의 외침을 듣지못한다. 들불처럼 타오르는 ‘안티’의 불길을 홍위병·악령으로 몰아친다. 글 안쓰기, 구독거부, 입사거부운동까지번지는데도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언론탄압’이란 공염불만 되뇐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믿는 바가 있다. 일제가 있었고독재자가 있었고 수구세력이 있다. 또 정치권력은 유한한데언론우상은 무한하다는 맹신이 있다. 항상 기회주의 속성으로 강자편에 서는 세칭 사회원로, 사이비 지식인·문인들의추종세력이 있다. 두둑한 월급봉투가 있고 촌지도 따른다. 비록 음습한 동굴이지만 밖에 나갔다가는 햇볕에 실명할지모른다는 우려, ‘자유언론’을 외치며 동굴을 뛰쳐나간 선배들의 처절한 모습도 두렵다. 한비자(韓非子)에 ‘세유삼망(世有三亡)’의 가르침이 있다. 세상에는 ‘삼망’즉 멸망에 이르는 길이 세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정쟁을 일삼는 나라가 정치가 잘되고 있는 나라를 공격하면 망하고, 사특한 생각을 가진 자가 올바른 사람을 공격하면 망하고, 도리에 어긋난 자가 정도를 걷는 자를 비판하면 망한다는 뜻이다. 족벌언론의 너울이, 그 추악한 우상의 가면이 벗겨지고 있다. “일제가 200년 갈 것 같아서”친일시를 썼다던 서정주의 비극은 ‘우상’을 바로보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 여전히 ‘족벌의 동굴’에서 남북협력을 ‘퍼주기’, 서민복지를 ‘사회주의’, 언론개혁을 ‘언론탄압’이라 외치는 사람들도 이제 이성을 찾을 때가 됐다. 광복절을 전후하여 ‘마지막 우상’이 무너지는 것은 국가의 축복인가, 너무 늦었는가. 김삼웅 주필 kimsu@
  • [클릭 2002 월드컵] 이연택 월드컵조직위 공동위원장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 개막일이 4일로 꼭 300일을 남기게 됐다.막바지 준비상황을 지휘하고 있는 이연택 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의 집무실을 찾아 준비 현황 전반에대한 설명을 듣는 한편 월드컵대회 기간중 안전을 책임질경찰특공대원들의 땀 냄새 물씬한 훈련 현장을 둘러보았다. ■월드컵이 1년도 안남았습니다.요즘 가장 신경 쓰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남은 300일은 결코 여유 있는 기간이 아닙니다.준비를 착실히 해왔기 때문에 별다른 우려는 없지만차질 없는 경기장 건설,우수한 자원봉사자 선발,완벽한 훈련캠프 준비 등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얼마전 월드컵 리허설로 대륙간컵 대회를 치렀습니다.어떤 평가를 내렸습니까. 조직위 자체평가 결과 경기장 등 하드웨어 분야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크고 작은문제점이 발견된 게 사실입니다.그러나 현장 경험을 통해자신감을 갖게 됐고 여러가지 좋은 경험을 하는 등 수확이많았습니다. ■9월에 시작될 입장권 2차판매에 대해 자신하십니까. 사실1차판매는 다소 부진했습니다.높은 가격,예약문화 미정착,관람 대상국가 미확정 등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이같은 분석을 토대로 새로운 판매전략을 수립한 상태이며국제축구연맹(FIFA)과도 실무적인 협의를 진행중입니다. ■공식 공급업체 선정작업이 늦어지고 있는데. 절반인 3개업종만 선정돼 6개 업종을 모두 확보한 일본에 비해 늦어지고 있습니다.국내 경기의 전반적 침체와 일본의 10분의1에불과한 경제규모가 원인입니다.그러나 3개 업종을 통해 목표수입 500억원 중 400억원 정도를 확보했기 때문에 그나마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어쨌든 나머지 3개 업종 선정을 곧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준비상황 전반을 일본과 비교할 때 각각 어떤 점수를 주시겠습니까. 정확한 비교평가는 어렵습니다.일본은 사회기반시설과 경기장 건설 진척도,숙박시설 등에서 앞서 있습니다.반면 우리는 경기장 관람여건,기념주화를 통한 수익증대사업,자원봉사자 확보 등에서 앞서 있습니다.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로 여러 분야의 한·일 교류가 영향받고 있습니다.양국 조직위간 협력관계에 문제는 없습니까. 조직위간협조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고 대회 개최에도지장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 문제가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어 걱정스럽습니다.월드컵공동개최가 양국간 현안을 순조롭게 해결하는데 기여하기를바랍니다. ■일왕의 월드컵 개막식 참석이 물건너갔다는 시각도 있는데. 일왕의 방한 문제는 원칙적으로 양국 정부간에 논의돼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하나 현재의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이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아직 정부간에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조직위는 정부 방침에 따라 상응한 조치를 취할것입니다. ■‘공동개최에 공동위원장’이란 말로 표현되는 우려가 여전합니다. 기본 인프라가 유럽 등에 비해 뒤지는 우리는 더많은 과제와 행정업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공동위원장제는 이처럼 방대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동시에 두사람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선택한 방안인 것으로알고 있습니다. ■월드컵은 올림픽과 달리 단일종목으로 치러지는 만큼 열기가 집중되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면 오히려 국민통합을 해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프랑스가 월드컵 우승으로국민통합을 이룬 것은 좋은 사례입니다. 경기력 문제는 축구협회의 고유업무이지만 정부에서도 필승대책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전용훈련장 마련과 예산지원 등 측면지원을 하고있습니다. ■조직위는 문화월드컵을 강조하고 있는데 차별화 전략은. 준비기간을 통해 미리부터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할 계획입니다.본선 조추첨,개막식 전야제,개최도시별 전통예술 공연 등이 그 대상입니다.개막식에서는 우리 첨단 IT와 문화예술을 접목해 문화한국의 이미지를 한 차원 높게끌어올릴 계획입니다. ■당부 말씀은. 우리가 월드컵을 유치한 목적은 성공 개최를 통해 국가발전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개최도시는세계적 도약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국민모두는 개개인이 월드컵 무대의 주인공이라는 마음가짐을가지고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합니다. 박해옥기자 hop@. ●여름잊은 경찰특공대. ‘월드컵 경기장의 안전은 우리가 책임진다.’ 월드컵축구대회가 30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회 경비와 보안을 책임진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특공대원들의 땀방울도 점점 굵어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사당동 남태령 고개에 있는 경찰특공대본부 사격장.3명의 여경 특공대원을 포함한 경찰 특공대원들이 ‘일격필살(一擊必殺)’의 자세로 사격훈련에 임하고있다. 표적을 등지고 섰다가 사격신호와 함께 재빨리 돌아서 지름 10㎝의 표적을 1초만에 명중시켜야 하는 회전사격,1초만에 사라지는 표적 12개를 뛰고 구르며 순식간에 쓰러뜨리는자동화사격이 주된 훈련대상이다.사격장에 긴장감이 감돌아서 인지 금속성 총성이 더욱 귀청을 울렸다. 대원들은 7개의 작은 방을 조심스럽게 뒤지다 불시에 튀어나오는 표적들을 제압했다. 테러범들은 불과 3분만에 간단히 진압됐다. 캐비닛 안,책상 밑,소파 뒤 등 어디에 표적이 숨었는지 알수 없지만 동물적인 감각이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테러범 모습의 표적이라도 총을 들고 있지 않으면 인질로간주돼 총을 쏘아서는 안된다.장애물 6단계를 소리없이 통과해야 하는 장애물 극복훈련에서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속출했다. 2m20㎝ 높이의 담을 뛰어 넘은 뒤 곧바로 11m 높이의 굴뚝을 줄을 타고 오른다.레펠로 내려오면서 3m 가량 떨어진 건너편 건물 지붕으로 뛰어 넘었다.몸에 부착된 휴대장비 17종의 무게가 40㎏을 넘지만 대원들의 몸은 사슴처럼 날렵하고 잡음도 없었다. 대원들은 3개의 건물 지붕을 수색한 뒤 높이 2m 길이 5m의지하 하수도를 통과했다.가스배관을 타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표적을 제압한 뒤에야 숨소리가 커졌다. 종합훈련이 끝나면 개인 장비를 손질하고 체력단련에 들어간다.특공대 뒷산에 조성된 2.5㎞의 산악 구보길에는 외나무다리,통나무,늘임줄 등 20여종의 장애물이 설치돼 있다. 매일 오전 실전처럼 이뤄지는 특공무술 훈련도 빼놓을 수없다.전투화를 신은 채 남녀 간에 사정없이 발차기를 했다. 경찰특공대는 이미 완공된 수원,대구 경기장은 물론 공사중인 전국 10개 월드컵 경기장 주변을 헬기로 돌며 주변 지형을 익히고 있다.어디에 무엇있는지 이제는 눈감고도 훤하다. 지난해 4월처음 선발된 여경대원 10명의 임무는 항공기납치사건이 발생하면 항공기 여승무원으로 위장해 테러범을제압하는 것 등이다.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여경 특공대원이 된 맏언니 김혜선(29) 경사는 “남자들도 힘들어 하는특공 훈련이지만 세계적으로 큰 잔치인 월드컵의 안전을 내가 책임진다는 각오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위령탑 세워 日강제징용 사죄”

    “피해자인 줄만 알았던 제가 가해자임을 깨달았을 때 한국인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한 일본인 부부가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강제 징용돼 희생된 한국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일본 땅에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주인공은 일본 굼마현(群馬縣)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굼마 평화유족회 사무국장 나카야마 도시요(中山敏雄·58) 부부. 한국인 징용 희생자의 유족들을 찾기 위해 부인 나카야마사치오(中山幸代·52)와 함께 지난 30일 한국을 찾은 나카야마는 신사 참배와 일왕제를 거부하며 일본의 전쟁 책임론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일본의 ‘양심가’다. 그는 98년부터 3년동안 일본에서 ‘1인당 1,000엔 모금운동’을 펼쳐 500만엔을 모금했고,앞으로 300만엔을 더 모아 내년 1월쯤 위령비를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카야마는 91년 한국의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가 도쿄(東京) 지방법원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을 때 평화유족회 사무국장 자격으로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면서 위령비 건립을다짐했다. 나카야마는 “전후 50년이 넘었는데도 일본은 아시아 ‘희생국’들에게 사죄는 커녕 교과서 왜곡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면서 “한국인 희생자들의 위령비를 건립하고 후손을 찾아 사죄하는 것만이 일본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해 “분명히 일본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지금은사죄와 대화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고이즈미 대해부] (1) 신사 공식참배 고집

    29일의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는 ‘고이즈미 열풍’에 의존한 자민당 대승으로 요약된다.압승의 여세를 몰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이제 일본 열도 개혁에 발을 내디디려 하고 있다. 일본 국민이 선택한 고이즈미 총리는 누구인가. 인물 고이즈미를 시리즈로 분석해 본다.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서 일본 정국의 초점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공식 참배쪽으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를 강행할지, 아니면 주위의권유를 받아들여 포기할지를 단언키란 무척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선거 승리의 주역인 고이즈미 총리가여론과 주변국의 반발에도 불구,기세를 타고 참배할 것이라는 관측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선거도 끝났고 한국과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고있는 만큼 슬그머니 발을 빼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나오고있다.그러나 이는 다분히 참배 철회의 ‘희망사항’을 섞은착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중지를 촉구한 일본 변호사연합회의 후지하라 세이고(藤原精吾) 부회장은 “한다고 하면 결행하는 그의 평소 성격으로 볼 때 (참배)하러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 얘기만 나오면 그럴 수 없이 진지해진다.그는 왜 야스쿠니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그가 일본 정계에서 보수의 맥을 잇는 인사라는 데는 그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그러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 같은 ‘보수 확신범’ 계열에 그를 포함시킬 수 있는지에 이르러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의 30년 정치 행적,발언으로 따져볼 때 정치적 DNA는 이들 보수 매파보다는 보수 온건 쪽에 가깝다.서방 언론들은그를 국수주의가 아닌 국가주의(내셔널리즘) 정치인으로 분류한다. 야스쿠니에 대한 집착을 ‘보수 우익’이라는 단 하나의키워드만으로 풀기 어려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그런 점에서 그의 야스쿠니 집착증을 형성하고 있는 조각들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총리건 개인이건 국가를 위해 희생한전몰자를 참배하는 게 헌법 위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야스쿠니에 가겠다는 이유 치고는지극히 단순명료하다. 이전에도 그는 각료나 의원 자격으로공식 참배를 했다. 그는 지난 5월 21일 국회에 출석,“가족과 떨어져 전장에간 사람의 기분은 어떠했을까.특공대에 비하면 총리의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3대 세습 정치인인 고이즈미 총리의 아버지는 고향이 제2차 세계대전 가미카제(神風)특공대의 발진기지 지란(知覽)비행장이 있던 가고시마(鹿兒島)이다. 그는 자주 가고시마를 찾는다.그곳 박물관에 전시된 특공대원의 유서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아버지쪽 친척중에도 특공대로 죽은 사람이 있다. 그의 애독서는 자살특공대로 몸을 던진 해군비행 예비학생 제14기의 ‘아아, 동기(同期)의 사쿠라’이다. 이런 파편들이전몰자와 이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에 대한 고이즈미류(流)의 집착과 향수(鄕愁)를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의 보수 성향,개인적인 집착이 총리라는 일국의지도자라는 직위에서 아무런 여과없이 나타난다면 문제는달라진다.일왕을 위해 맹목적으로 목숨을 버리는 행위를 애국심과 동일시하고 대동아전쟁을 아시아 민족해방 전쟁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총리의 공식 참배를 부르짖는 극우 보수주의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게 된다. 한국과 중국이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일본을 전쟁으로 밀어넣고 아시아를 침략과 식민지배의 고통으로 빠뜨린 A급 전범들이 바로 야스쿠니에 합사돼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朝日)신문은 30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고이즈미 총리에게 충고하고 있다.“총리의 언동(야스쿠니 참배)이 어떤 정치·외교적 영향을 불러일으킬지에 대한 깊은 통찰이없으면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아시아에서 불신을 받고 고립되어서는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日 자민 압승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낙승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가 단기간에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참의원 선거의 표심(票心)’을겨냥,대외강경책을 구사한 고이즈미 내각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만큼외교정책의 유연성을 회복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피력해왔다. 정부 당국자는 30일 “고이즈미 총리가 역사교과서 및 신사참배 문제,‘미국 편중,아시아 경시’라는 대외정책 등을둘러싸고 내부의 비판여론도 적지 않아 적절한 시점에 한·중 등과 관계회복에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일본이조만간 전향적인 자세변화를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그러나 “일본이 외교적 유연성을 회복할 ‘적절한 시점’이 ‘내달 15일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이후’나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지도자로서 여론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고이즈미총리가 신사참배 공언을 갑작스럽게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당국자는 “고이즈미 내각은 선거 결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오히려 신사참배나 교과서문제 등에서는 기존 방침을견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로선 일본이 특별한 변화를 꾀하려는 어떤 징후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신사 참배까지는 냉각기,이후에 점차 유화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지만,이 또한 불투명하다”고 말했다.여기에는 오는 9월 자민당 총재선거나 국내 구조개혁일정 등을 감안,고이즈미 내각이 대외강경론과 보수색깔을일정 기간 고수할 것이라는 추측이 깔려 있다. 실제 이날 도쿄(東京)에서 열린 한일 꽁치협상이 결렬되는등 한일관계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
  • 김희선의원 “반민족행위 다시 조사 국회내 특별기구 두자”

    민주당 김희선(金希宣)의원은 18일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을 통해 “일제하 반민족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국회 내특별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국회 내에 새로운 ‘반민 특위’를 구성,친일 문제를 원점에서 재조사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돼 눈길을 끌었다. 김 의원은 특히“일제하 언론의 경우 조선,동아일보 등 일부 언론사가 일제 말기 천황 찬양기사를 1면에 싣고 일왕 생일을 민족 명절로 선전·선동해 조선 젊은이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군대 위안부로 팔아 넘겼다”고 특정 언론사를 겨냥했다. 이어 “이들 언론사들은 속죄도,역사적 심판도 없었으며 오히려 교과서에 ‘민족신문’으로 왜곡, 기술되어 있는 등민족 정기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일제 때 독립군 3지대장 김학규 장군의 손녀이며 백범 김구가 이끌던 한독당의 비밀 청년 당원이었던 김일련씨의 딸이다.김 의원은 그동안 민족 정기를 고양하는데 앞장서왔다. 이종락기자
  • [씨줄날줄] 야스쿠니의 원혼들

    중종실록에는 경순왕후 위패 도둑을 잡은 포도청 관리에게면포 1,500필과 3계급 특진의 포상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면포 100필을 포상한 일반 도둑 검거에 비해 파격적인 것으로 위패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숭조사상은 그만큼 뿌리가깊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야스쿠니(靖國) 신사(神社)에합사된 한국인 징용희생자의 위패반환을 일본 정부에 공식요청키로 방침을 정한 것은 교과서 왜곡문제가 불거지고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결정과 관계없이 진작서둘렀어야 할 일이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는 2만1,000여명의 한국인 위패가 안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 원혼들이 아직 야스쿠니에있다는 것은 전쟁이 끝나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징용으로 끌려가 잡혀 있는 셈이다. 일본측은 이들 위패에 대해 “전사한 시점에서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사후에도 일본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든가“일본 군인으로 싸우다 죽었기 때문에 야스쿠니 합사는 당연하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물론 개중에는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며 죽어간 ‘영광스러운 황군 장교’ 출신도 있겠지만 그 자체가 침략이 빚은 넌센스이니 그 또한일제의 피해자가 아닌가.그리고 그 역시 영혼이나마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을 터이니 이들의 귀향은 너무나 당연하다. 야스쿠니 신사가 어떤 곳인가.도죠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종전후 처형된 14명의 A급 전범과 함께 11번의 전쟁에서전사한 246만명의 일본인 위패가 안치된 곳이다. 입구에는일왕이 내린 제국 군인의 덕목을 적은 ‘칙유비’가 있고‘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 동상,자살비행을 감행했던 가미카제 ‘특공용사의 동상’,군마(軍馬)군견(軍犬)위령탑이 있다.말하자면 일본국민의 군국주의 학습장이나 마찬가지다.그 뿐인가.지난해 집권 자민당은 ‘야스쿠니 간담회’를 만들어 국가재정 지원등 사실상 신사 국영화를 시도 했다.종전 55년을 맞아 본격적으로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한 것이다.교과서 왜곡,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등이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보면 예삿 일이 아니다.설사 그들이 한국인 위패를 모신 뜻이 진심이라하더라도 A급 전범위패와 함께 있는 한 한국인 원혼 뿐 아니라 일본인 영혼들도 모골이 송연할 일이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한·일 교과서 갈등/ 야스쿠니 신사를 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 공식 참배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종전기념일인오는 8월 15일 참배가 실현되면 걷잡을 수 없는 파동이 예상 된다.파동의 폭발력을 알고 있는 만큼 한국과 중국이 몇차례 참배 계획 철회를 요구했는가 하면 일본 여야와 언론들도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한낮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간 16일 찜통 같은 날씨에도 도쿄(東京) 시내의 야스쿠니 신사는 참배객, 외국 관광객들로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신사측이 해마다 이맘때쯤 개최하는 ‘마쓰리(축제)’ 마지막 날이어서 마쓰리를 즐기려는사람도 적지 않아 보였다. 신사 입구의 양쪽에는 대동아전쟁을 비롯,러·일, 청·일전쟁 등에서 숨진 전몰자의 유족들이 영혼을 기리기 위해설치한 크고 작은 등불 2만여개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경내에 들어서니 옛 일본군 차림의 집단 참배객들이 눈에띈다.전장에서 숨진 동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년에 꼭 3차례 참배하러 온다는 해군 출신의 후쿠다 요시카쓰(福田義勝·84·도쿄 거주)씨는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1938년 21살의 나이로 징병돼 캄차카 반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까지 근무했다는 후쿠다씨는 “50년이나 지난 일인데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한국이나 중국에서 반발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참배는 정치문제라기보다 인정(人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이즈미 총리도 후쿠다씨처럼 “국가를 위해 희생한 전몰자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참배를 하는 건 헌법을 어기는 일이 아니며 일반 전몰자와 A급 전범을 구별할 필요가없다”며 참배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그가 개인 자격이 아닌 총리로서 공용차를 타고 가서 방명록에 총리라는 직함을쓰는 공식 참배가 될 경우 그의 논리와는 달리 문제는 달라진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책임을 묻는 도쿄 재판 때 A급 전범으로 분류돼 처형된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14명이 합사(合祀)돼 있다.78년 10월 신사측이 몰래이들을 합사했다가 6개월 뒤에서야 합사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중국 등은 전범이 합사된 신사의 공식 참배를 “일본이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가 공식참배했고 한국·중국과의 외교 관계가 경색된 85년 이후로는 주변국 배려 차원에서 어떤 총리도 공식 참배를 하지 않았다. 고이즈미 총리가 역대 총리로는 두번 째, 16년 만에 신사참배를 고집하는 데에는 정서적 뿌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역시 정치가였던 부친의 고향이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의 발진기지였던 가고시마(鹿兒島)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크다. 그는 기회가 있으면 가고시마를 찾는다. 그가 즐겨 읽는 책이 자살 특공대로 몸을 던진 해군비행예비학생 제14기의 ‘아아,동기(同期)의 사쿠라’라는 사실은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도이 다카코(土井 たかこ) 사민당 당수는 “전범들에게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유럽의 피해국들이 히틀러에게 헌화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추궁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공식 참배가 갖는 상징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두번 다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주장과는 달리 전범이 합사된 신사 참배는 과거 전쟁의인정이라는 의미에서 한걸음 나아가 전쟁이 가능한 국가를지향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주변국들의 반발은 바로 이 같은 군사대국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극우 보수세력들이 총리의 참배를 부르짖는 이유도 바로야스쿠니 신사를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전쟁에 대한 향수를노리고 있어서다.메이지(明治) 일왕 때인 1879년부터 일왕의 명령으로 전장에 나가 전사해 이곳에 합사되면 ‘신’이된다고 하는 ‘신화 시스템’을 야스쿠니는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보수우경화 흐름과 관련해 고이즈미 총리취임 이후 야스쿠니 공식 참배를 우호적으로 보는 국민들이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 특히 젊은층은 그렇다. 야스쿠니 신사의 마쓰리를 보러 왔다는 이지마 겐(飯島健·20·대학 2년)씨는 “한국과 중국에서 강력 반발하는 공식 참배를 총리가 굳이 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최근 사설을 통해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가 헌법위반이라고 지적했다.신문은 “참배에는 근린 제국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국가는 어떠한종교적 활동도 해서는 안된다”며 참배 자제를 촉구했다. 중·일 외교 마찰의 현장을 보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에 들렀다는 한 중국인 관광객(25·엔지니어·상하이 거주)은 “신사를 둘러보니 일본이 얼마나 호전적인 국가였는지 실감했다”면서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분명히한다는 점에서 공식 참배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靖國)신사는 1869년 일왕을 떠받들고 서양 세력에 반대하는 세력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도쿄 초혼사(招魂社)’란 이름으로 지어졌다. 10년 뒤 야스쿠니로 이름을바꿔 육·해군이 관리를 맡았다. 군대가 신사를 소관한 점은 바로 야스쿠니 신사를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이 경계하고우려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승리 후 일본에 진주한 연합군사령부(GHQ)는▲국가와의 관계를 끊고 종교시설로 남거나 ▲종교색이 없는 전몰자 시설로 바꾼다는 두 가지 안을 신사측에 제시,야스쿠니는 종교시설 쪽을 택했다. 현재 야스쿠니에는 대동아전쟁 때 숨진 213만 3,760명을비롯,청·일,러·일 전쟁 등 근대 이후 일본의 크고 작은전쟁에서 숨진 246만6,344명이 합사돼 있다.이 가운데는 종전 직후 연합국이 주도한 도쿄 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분류돼 처형된 14명이 78년 몰래 합사됐다. 자민당 내부에서는 총리의 신사 참배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 A급 전범을 다른 신사로 옮겨야 한다는 ‘분사(分祀)론’을 제기했으나 신사측의 강력한 반대로 유야무야됐다. A급 전범이 합사되기 전에는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전 총리가 75년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 처음으로 개인 자격으로참배했으며 합사 이후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 총리가 유일하게 총리 자격으로 85년 참배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 야스쿠니 관련 일지. ■1946년 2월 국가 신도(神道)로서 신사·신도 폐지■75년 8월 미키 다케오 총리,종전기념일 첫 참배(개인 자격)■78년 10월 A급 전범 합사■85년 8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첫 공식 참배■85년 9월 중국 외교부,공식 참배 비난■86년 8월 나카소네 총리,공식 참배 보류 발표■91년 9월 센다이 지방법원,“야스쿠니 공식 참배는 위헌” 판결■99년 8월 노나카 히로무 관방장관,A급 전범 분사안 제기■2001년 5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참배는 위헌 아니다”고 참배 강행 의사 표명
  • [김삼웅 칼럼] ‘일왕의 음모’에 도사린 음모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둘러싸고 현해탄의 파고가 높아간다.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북한과 중국·대만 등 과거일제 침략을 당한 많은 나라가 일본의 ‘신군국주의 교과서’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동북아 평화질서를 교란하는 일본의 처사에 분노가 치솟는다. 일본은 전후 미국의 핵우산 아래 급속히 경제성장을 이루는 한편 ‘전범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침략주의보수본류세력이 지금까지 일본사회를 지배해왔다. ‘도쿄재판’으로 A급전범 몇명이 처형됐지만 미국이 주도한 재판이고 그나마 미·일간의 유착으로 최소한에 그쳤다. 일본군국주의 만행이나 독일·프랑스 등과 비교할 때 형식적인 처리에 불과했다. 오늘날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은 여기서 배태되고, 한국이 친일세력을 척결하지 못하여 수구세력이 득세한 것과 비슷하다. 흔히 일본의 이중성을 비판하여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제시되지만 일본의 이중성과 교활성은 ‘일왕의 음모’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면서일본 왕실은 은밀하게 우수한 인재를 골라 미국에 유학을보냈다. 패전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여 일본의 로비스트로 육성하려는 원려지계(遠慮之計)였다. 실제로 패전후 이들의 역할은 대단했다. 일본을 잘 모르는 미국은 이들의 자문으로 전후처리에 나섰다. 일왕(천황)제 유지, 전범처리최소화 등 일본의 명운에 크게 기여하고 전후 복구와 미·일동맹관계에도 역할을 했다. 전쟁을 준비하면서 적국에 간첩이 아닌 유학생을 보내는 나라, 그것도 왕실에서 은밀히 추진한 저들의 이중성과 교활함에 전율을 느낀다. 도쿄의 고서점가를 둘러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본의 저력은고서점에서도 찾게 된다. 도쿄중심지의 최신건물에 진열된어마어마한 고서들, 분야별·국가별·전문서적을 갖추고 그것이 사업으로 번창하는, 일본독서층을 볼 때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1900년대 초기에 한국의 가축, 도로, 하천, 귀신, 무당…등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전문분야를 연구하고 출판하고 보존·유통하고 있다. 일제의 한국병탄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연구하고 준비하여 먹어삼킨 것이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한국의 족보를 연구하는 사람이 수십명이라고 들었다. ‘족보’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저들의 한국연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치열하고 치밀하다. 우리는 어떤가. 사학자들은 너도 나도 독립운동사에 매달린다. 국가정통성에서 볼때 중요하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보다 몇십배 많은 친일파·매국노문제를 본격적으로, 필생의과제로 연구하는 학자는 드물다. 유학이라면 대부분 미국행이다. 서울대교수 64%가 해외유학출신이고 미국이 전체 유학파의 78.6%다. 미국으로 가야 출세가 보장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의 신군국주의는 누가 뭐래도 갈데까지 갈 것이다. 우리 정부의 군사교류 중단이나 문화개방연기, 일본함정입항불허 등 대책이나 국민의 규탄시위로 시정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김치 하나라도 ‘기무치’를 이기는 전략과 치밀함이다. 세계적 석학 앨빈 토플러가 정보통신 정책연구원의 의뢰로청와대에 제출한 ‘발전전략’에는 음미할 대목이 많다. “한국정부는 민간기업 및 대학과 공동으로 ‘바이어벤처펀드’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이 펀드를 통해 미국·유럽·중국지역의 최첨단 생명공학 신생업체 100곳을 선정, 한국과학자와 대학원생이 연구에 공동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투자해야 한다. 투자과정에서 일부 손실이 발생하겠지만 가장 진보된 지식영역에 한국을 진출시키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는 내용이다. ‘일왕의 음모’에 비교할 바 아니지만 정부나 기업, 민간단체들이 서둘러야 할 지적이다. 일제가 침략하던 100년전과 비교하여 지금 우리는 무엇이얼마나 변했는가. 국토는 여전히 두동강이고 정쟁에 날이저물고 수구언론은 족벌이해에 얽혀 사회정의와 민족문제를왜곡한다. 일본을 깊이 알자. ‘일왕의 음모’속에서 또 무엇이 ‘음모’되는가를. 김삼웅주필 kimsu@
  • 韓·日 교과서 갈등/ 월드컵에 영향있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을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과 2002월드컵축구대회의 직접적 연관성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같은 견해는 스포츠가 정치 또는 외교적 갈등을 초월한다는 기본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양국 조직위원회 역시월드컵을 외교문제로 망칠 수는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성공개최의 여건 조성에 장해가 될 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한국 조직위는 당장 일왕의 개막식 참관이 원만히 이뤄지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월드컵 개막식에 일왕을 초청,축구를 통한 화합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려는 의도가 영향받을 수 있다는것이다. 한국 조직위 관계자는 “양국 조직위 사이에 교과서 문제로 인한 갈등은 없다.오히려 교과서 문제 언급을 서로 삼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그러나 월드컵 개막식 이전에 내년 봄쯤 일왕의 사전 방한을 원하는 조직위 입장에서는 갈등이 오래 이어지면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해옥기자 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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