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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에 우뚝 세운 한국사

    ■‘오국사기’ 전3권-이덕일 지음/김영사 펴냄. 우리 선조들은 좁은 반도를 서로 갈라 작은 것에 목매며 싸움이나 해댄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넓은 대륙에 말을 달려천하를 다투었고 푸른 파도 넘실대는 해양을 헤쳐나가 정복왕조를 열었던 역사의 승부사였다.일제 식민사관은 한국사를 한반도 안에 가두어 버렸다.그러나 일단의 민족사가들과 ‘역사평론가’라는 새로운 지식인 집단들은 왜곡과 무지의 안개를 걷고 동아시아 한복판에 한국사를 다시 세우고 있다. 역사평설 ‘오국사기’(이덕일 지음,김영사 펴냄)는 우리 역사에 초반도(超半島)의 대륙성과 해양성을 회복시킨 또하나의 현저한 성과물로 기록될 만하다. 먼저 저자는 굳이 ‘오국사기’란 제목을 써 ‘삼국사기’에서 연원한 ‘한국사=삼국사’란 고정관념 뒤집기를 시도한다.그리고 고구려,백제,신라,당,그리고 왜에 이르는 동아시아전체를 한민족의 역사무대로 끌어들여 6∼7세기 한민족의 통일국가 건설 드라마를 서술해 간다. 저자는 이미 전작 ‘우리역사의 수수께끼’에서 전남 나주지역의 백제인 ‘왜’세력이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싸우다 해양을 건너가 일본 왕가를 세웠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전방후원분(앞은 모나고 뒤는 둥근 무덤양식) 등 유적과 유물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새 책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일왕가와 일본고대사를 한국고대사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작업을 편다.1500년 전 백제 모습 그대로인 나라 지역에 독자들을 데려다 놓고 법륭사와 비조사 등 백제인들이 지은 절 안을 거닐게 하고 백제인들이 만든 불상을 바라보게 한다.또한 백제계 일왕인 중대형 황자(천지천황)의 집권과 ‘일본’수립(일본서기에 668년으로 기록)과정 등을 자세하게 밝혀 중대형 황자를 우리 역사속의 위인으로 복권시킨다. 고구려왕 연개소문도 중국사 최고의 황제로 평가받는 당 태종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긴 인물로 묘사된다.당태종은 645년 17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하지만 연개소문은 안시성 혈전에서 60여일의 공방전 끝에 이를 격퇴시킨다.중국과당당히 맞선 우리 역사의 대륙성을 다시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또 하나 저자가 새롭게 들여다보는 것은 신라의 통일이다.흔히 신라의 통일을 외세를 끌어들여 한국사의 대륙성과 해양성을 사장시킨 역사로 비판하지만 저자의 시각은 다르다.고구려,백제와 달리 신라는 약소국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신념과 열정이 있었다.김춘추는 군사를 빌리려 고구려에 갔다가 감금당하기도 하고 바다 건너 왜에 가서도 거부당하지만또다시 아들을 이끌고 중국 서안까지 찾아가는 집념을 보인다.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서슴없이 자신의 몸을 던진화랑들의 희생정신,즉 노블레스 오블리제도 이런 신념과 열정이 만들어낸 우리 역사의 정화로서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정신이라는 것이다.때론 소설처럼,때론 논문처럼,문학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결합한 독특한 글쓰기도 이 책의 새로운 점이다.글 곳곳에서 한·중·일 사료를제시하고 현장답사 사진과 도면을 곁들이는 등 공들인 흔적도 역력하다. 백제의 일본정복을 기정사실화한 것은 과감한 시도로서 앞으로 한일 학자들간 논쟁이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각권 9900원. 신연숙기자yshin@
  • 이회창총재 일문일답 “”대선후보가 총재 겸임해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17일 연두 기자회견에서대권·당권 분리를 선언했으나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다음은 일문일답. [국민경선제를 도입할 의향은.] 좋은 제도이지만 민주당의안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많은 국민이 선거전 과열과돈선거 등 혼탁 양상을 우려하고 있다. [집단지도체제는 어떻게 보나.] 집단지도체제는 민주주의이고 총재 제도는 비민주적이라는 흑백논리 같은 등식은 옳지않다. 각각 장점이 있다.집단체제는 과거 계파·보스 중심정치를 낳았고,공천권과 인사권을 나누었던 단점이 있다. [대통령직과 총재직을 전당대회에서 분리하자는 주장이 있다.] 대통령직과 총재직을 분리하는 것과 야당에서 대통령후보와 총재직을 분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현재로서는 적절치 않다.대통령 후보가 된 뒤 총재로서 당을 이끄는것이 민주화와 개혁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선거를 위해 겸임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목적을 이루는 가장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당적 이탈은.] 그럴 생각 없다.대통령과 여당은 공조해야 한다.대통령이 당적까지 떠날 필요는없다. [‘3김청산’을 주장하면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게공을 들이는 것 같다.] 정치적인 시각으로 보지 말기 바란다.그분과의 인연으로 감사원장과 총리를 지냈고 정치에도입문했다.그런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값있게 지키고 싶은것이다. [대선기간 두 아들의 해외체류 여부는.] 가족회의를 열거나해서 결정한 것 없다. 본인들이 정치와는 무관하게 살고자한다.가족이나 인척으로인해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고,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 관련,‘천황’과 ‘일왕’에 대한 견해는.] 호칭은중요하지 않다. 일반적 군주라는 면에서는 일왕이,어느 한나라의 고유명칭이라면 천황이라 할 수 있다. 이지운기자 jj@
  • 대통령 연두회견 이모저모/ 쉰 목소리 “”죄송…미안…”” 거듭 사과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1년의 국정 운영 구상을 밝힌 14일 내외신 연두 기자회견은 전날 밤 신승남(愼承男)검찰총장 사퇴 파문이 채 가라앉지 않은 탓인지 침통한 분위기속에 시작됐다.김 대통령은 회견에 앞서 각종 게이트와 관련,국민들에게 사과한 뒤 “그러나 불퇴전의 결의를갖고 부패척결을 하겠다”며 단호한 의지를 피력했다. ●김 대통령은 ‘21세기 국운융성(國運隆盛)의 길을 엽시다’란 제목의 모두연설을 읽은 뒤 부정부패 척결대책,개각문제,남북관계 등에 대해 16명의 내외신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김 대통령은 이날 세차례나 ‘국운융성’이란단어를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김 대통령은 연설 뒤 곧바로 각종 게이트와 관련,대국민 사과를 하고 부패문제,교육문제 등에 대한 질문에서도 ‘죄송하다’,‘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거듭했다.김 대통령은 “심지어 청와대의 몇몇 전현직 직원까지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저는 큰 충격과 더불어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한 심정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다소 쉰목소리의 김 대통령은 회견내내 특유의 유머와 조크도 자제했다.기자들의 첫 질문도 경제 관련에서 부패척결로 순서가 바뀌었다. ●개각과 관련한 질문에서 김 대통령은 “당사자들을 앞에 놓고 말을 하면 나오던 말도 도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라는 말로 웃음을 유도한 뒤 “매일 터져나오는 게이트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며 비리파문에 신경을 곤두세워 왔음을 토로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기자가 지난해말 일왕이 “천황가계와 한반도는 혈연관계가 있다”고 언급한 데 대한 김 대통령의 평가를 물어 관심을 끌었다.이에 김 대통령은 “천황이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고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이봉창의사 헌신정신 길이 지켜야”

    지난 1932년 1월 8일 일본 도쿄 경시청 앞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진 뒤 체포돼 순국한 이봉창의사의 ‘의거70주년 기념식’이 ‘이봉창의사 기념사업회(회장 金鎭炫)’ 주최로 8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 효창원에서 거행됐다. 기념식에는 이재달 국가보훈처장,윤경빈 광복회장,석근영광복군 동지회장 등 정부·독립운동단체 관계자와 기념사업회 관계자,시민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이 의사에 대한 묵념과 약사(略史)보고에 이은 기념사에서김진현 사업회장은 “이 의사의 거사는 3·1운동으로 불붙은 항일 독립운동이 20년대 말부터 분열되고 피로한 양상을 보인 시점에서 항일의 열정을 재결집시킨 쾌거였다”고 말하고 “일제 치하에 있던 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행한 항일행동중 일왕을 대상으로 한 유일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기념사업회의 한 관계자는 “이 의사가 32살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며 우리에게 보여준 헌신과 이타(利他)의 정신은 근대 항일민족주의 역사와 자료들조차 제대로 정리 못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면서“지난해 2월재발족한 기념사업회가 앞장서서 효창동 생가터 복원 등을통해 일반인들에게 이의사 의거의 역사성을 인식시켜 나갈것”이라고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
  • 日왕족 여왕제 찬성 발언

    [도쿄 황성기특파원] 쇼와(昭和) 일왕의 동생인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의 미망인 기쿠코(喜久子·90)비가 여왕제도입에 찬성하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일본 언론이 7일 전했다. 기쿠코 비는 이날 발매된 여성지 ‘부인공론(婦人公論)에기고한 수기'에서 “여성 왕족이 왕으로 즉위하는 것은 긴일본의 역사를 볼 때 결코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고밝혔다.
  • 집중취재/ 호주제 ‘뜨거운 감자’

    [안타까운 사연들] 재혼한 정혜영씨(가명·38)는 최근 전남편 소생인 13살,11살난 두 딸을 미국으로 유학보냈다.재혼한 남편은 좋은 아버지였지만 ‘아버지와 성(姓)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날로 위축되어 갔다. 친권과 양육권을 가졌으나 ‘동거인’에 불과한 두 아이가의료보험도 따로 가져야 하는 등 불합리한 일에 거듭 속상해 하던 차에 학교생활에서도 상처받는 아이를 위해 결국미국에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법이 가족의 단란함을 도리어깼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김정숙씨(68)는 5살난 손자가 자신의 호주다.일찍 세상을떠난 남편 대신 아들을 키웠는데 3년 전 아들 내외가 교통사고를 당해 부모잃은 손자를 자신이 돌봐야 할 처지이다. “벌어먹이느라 손톱이 다 닳도록 일해온 내가 법적으로는어린 아들,손자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되어 있는 것은 뭔가한참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6년 전부터 가정폭력으로 별거해온 윤경선씨(가명·34).남편과 다시 마주치는 것도 싫어 법적 이혼 절차를 거치지 않고 혼자 살아왔다.그런데 지난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이혼을 서두르게 됐다.지지부진한 이혼수속 때문에 만삭이돼서야 이혼소송이 마무리됐고 아이를 낳았다.그러나 이혼후 6개월이 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작 아이의 출생신고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호주제,무엇이 문제인가] 현행 민법이 시대와 현실에 동떨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예는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이혼가정,미혼가정은 늘어나는데 아직도 우리 사회는 ‘정상’ ‘비정상’ 두개의 잣대로만 가족의 형태를 구분하고 있다. 호주제란 실제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있느냐에 관계없이 한가족집단에 반드시 가장인 호주를 두고 그 호주의 지위는승계에 의해 종적으로 이뤄지며,순위는 장남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제도다.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호적에 입적(入籍)해야 하고 자녀도 아버지의 호적에 입적하며 법률상가족관계를 호주를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결혼한 여성은 자신의 부모를 떠나 남편의 가(家)에 입적하고 남편 또는 남편의 아버지인 호주의 보호 아래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호주제의 기본이다.‘출가외인’‘호적을 파간다’는 말은 여기에서 파생된다. 호주제 존치론자들은 “실제로는 호주라고 어떤 이익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묻는다.물론 호주라고 세금을 깎아주거나 아파트 입주권에서 우선권을 준다든지 등 현실적 이익은 없다.그러나 호주제 폐지론자들은 결혼생활의불평등은 물론 우리 사회의 남녀차별이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호주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 필요] 호주제는 일본이 농민이나 토후의 반란으로부터 정부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가족국가’ 이념을 동원한 데서 출발했다. 호주 중심의 가족주의 원리를 국가통치의 원리로 전환해호주가 가족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일왕이 일본국민을 지배하는 것도 정당하다는 의도를 19세기 말 만든 일본 민법에 심었다. 이는 식민통치 수단의 하나로 1921년 우리나라에 도입됐으며,‘제사상속’과 ‘유산상속’ 등 전통의 조선관습에 억지로 ‘호주상속’이란 급조된 통치수단을 덧씌웠다고 법학자들은 지적한다.우리의 고유 전통이라기보다는 청산되지않은 일제의 잔재라는 것이 호주제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최근 ‘여자들 목소리가 커져서 남자들 살기가 힘들다’는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은 “평등을 원하는 여성과 전통이란 미명하에 군림하기를원하는 남성의 부조화 때문에 하루 329쌍이 이혼(2000년 통계청 자료)하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곽 소장은 “호주제가 없어진다고 가족이 붕괴하는 것이아니다.가족은 부계 조상으로부터 아들만에 의해 이어져 오는 것이 아니라 독립한 인격주체로서의 남성과 여성의 결합인 혼인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편견없이 법제도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남주기자 yukyung@ ■1인 1호적등 다각 검토. 흔히 호주제가 폐지되면 당연히 호적제도도 폐지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가족별 편제방식이나 1인1호적제도 등 국민의 신분사항을 기록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여성부 관계자들은 대체로 가족편제 방안을 선호하는 편이다. 호주제 폐지가 너무 급진적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감안,여성부는 강제로 승계되는 호주제를 부부나 가족이 합의한다면 보다 민주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가족문제에서의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인정한다는의식이 확산된다면 궁극적으로 호주제 폐지로 나아가는 길이 보다 쉬워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여성부는 지난 57년 이래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됐음에도호주제가 폐지되지 못했다는 현실상황을 의식해 단계적으로민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우선 고려 중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남성 우선 호주승계 제도를 연장자 순이나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한 승계자 결정 방식으로 바꾼다면현행 호주제의 폐해를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 아내가 남편의 혈족이 아닌 직계비속을 입적시킬 때 호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현행 민법조항을 삭제하면 재혼한여성과 자녀의 불편을 동시에 덜 수 있다.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아이를 아내의 동의없이 입적시킬 수 있는 현행 제도를 아내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도록 고치는 문제도 논의해야 할 부분이다. 이와함께 원칙적으로 자녀는 아버지에게 입적케하는 규정은 그대로 두더라도 예외조항으로 이혼이나 혼인이 취소된경우 친권행사자의 호적에 두도록 하는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 오정진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여성의 권익옹호만이아니라 민주적 가정과 사회,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근간이호주제의 경직성을 고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호주제로 인해 절실한불편에 부딪혀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안이 정부 차원에서 조속히 확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남주기자. ■””호주제 폐지땐 가족제도 붕괴””. ‘호주제 수호’를 올해 역점 추진사업으로 선정한 성균관은 호주제 완전 폐지에는 반대하지만 일부 조항은 수정할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승관(李承寬·67) 성균관 전례연구위원장은 “이혼녀는독립호주로서 호(戶)를 창설할 수 있고,아들이 없는 가족의경우 딸이 호주를 승계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호주가 미성년자일 경우 어머니나 할머니가 친권자로서 성년이 될 때까지 호주를 대행하는 것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다만 호주제 자체를 폐지하자는 극단적인 주장은 부계 혈통인 우리나라의 기본조직인 가족제도의 해체를 불러오기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그러나 “이혼녀가 재혼했을 경우 새아버지의성(姓)을 따르는 문제는 따라간 자녀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한다는 점과 향후 원래 성과 바뀐 성을 둘러싸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결혼한장남이 따로 호를 구성하는 문제는 현행법에서도 장남이 호주 승계를 거부할 수 있고,이 경우 차남이나 삼남이 호주를승계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딸은 장남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혼인을 하면 남편쪽의 호적을 따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호주승계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외국의 사례. 장자가 호주를 승계하는 우리 식의 호적제도는 사실상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것이다. 우리가 모델로 삼은 일본에서도 호주제가 지난 47년 폐지됨으로써 직접적인 비교대상 자체가 없다.유사한 사례를 구태여 찾는다면 남성 위주의 가장제전통을 갖고 있던 스위스를 들 수 있다.그러나 ‘남편이 혼인공동체의 우두머리가된다’는 규정이 남녀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84년 ‘가족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합의에 의해임의로 가장을 둘 수 있다’고 민법을 개정,스위스도 호주를 남자로 한정짓던 것에서 벗어났다. 또 대만의 민법은 원칙적으로 가장을 친족간의 선거에 의해 선출하고 세대가 같은 경우 최연장자가 가장이 된다고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프랑스 등에서는 개개인이 출생과 혼인,사망등의 변동사항을 보여주는 신분기록을 갖고 있을 뿐이다. 개인별 편제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는다는 정신을 깔고 있다.물론 가족 중 다른 사람의 신분사항 때문에 차별받는 일도 없다. 서양에서 결혼 후 남편의 성(姓)을 따라 사용하는 예를 들어 우리가 남녀평등사상이 앞선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독일은 지난 91년 남편의 출생 성(姓)이 혼인 성이되는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내림에 따라 민법을 개정해 부부는 공동의 성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프랑스에서도 지속적으로 한 성만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은 차별이라는 판례가 있다. 최여경기자 kid@
  • 日語속 한국어 어원 연구서 펴낸 이시바시 교사

    최근 아키히토 일왕이 자신의 생일 기자회견에서 조상인간무(桓武)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밝혀주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한 일본인 교사가 한국말에서 유래한 일본말의 어원을 추적한 책을 펴내 화제다. 일본 규슈(九州) 사가현(佐賀縣) 간자키군(神埼郡)내 한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중인 이시바시 미치히데(石橋道秀·43)씨는 최근 ‘신(新)사가(佐賀)·치쿠고(筑後)의 읽기 어려운 지명(地名)산보’를 출간했다.이 책은 이지역일대의 지명 가운에 보통의 일본어와는 읽는 방식이 달라 타지방 일본인들이 정확히 읽기 어려운 지명의 어원을 추적해 밝힌 연구서.한 예로 이 지역의 해안가에는 한국말 ‘바다’에서 유래한 하다(波多),하다(半田),하토(鳩) 등의지명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또 후쿠오카현 치쿠고 지방에 있는 돈도라(鈍土羅)라는 곳은 돌이 많기로 유명한데이 지명은 한국말 ‘돌’에서 유래한 것이며,간자키군 요시노가리 유적지 인근으로 하천이 많은 메타(米多)라는 지명은 하천의 한국어 고어인 ‘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경우 ‘메타’라는 지명을 먼저 사용하다가 한자음은나중에 새로 붙인 경우라는 것이다. 그는 “간자키군의 요시노가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청동검은 옛 아라 가야(伽耶)가 있었던 경남 김해지방에서 발굴된 것과 동일한 유물로 확인됐다”며 이는 “당시 아라가야 왕족들이 일본으로 건너와 문명을 전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규슈(九州)지방 말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 경상도 남부지역의 사투리에서 유래한 것”이라며 “현지조사와 학자들로부터 연구결과로 확인된 내용”이라고 말했다. 일본내 한일 민간교류 모임인 현해인(玄海人)클럽 회원인그는 “이 책이 한일간 가교역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는데 그동안 현지조사차 20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씨줄날줄] 日王 혈연발언 겉과 속

    아키히토(明仁)일왕이 이례적으로 일본 왕실의 뿌리를 언급하면서 한일우호를 강조했다.자신의 68세 생일을 앞두고 가진 일본 기자단과의 회견에서 ‘간무(桓武)천황’의 생모가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는 사실 등을 직접 언급한것이다.간무 제50대 일왕은 서기 781년에서 806년까지 26년재위 기간 중 혼란한 정계의 기풍을 혁신하고 율령제를 재편했다. 794년 현재의 교토(京都)로 도읍을 옮겨 헤이안교(平安京)를 조성해 약 400여년간의 헤이안시대를 열었다.그의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간무왕의 지시로 편찬된 일본의 ‘속일본기’(續日本紀)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이같은 기술은 오래 전부터 역사학계에서 회자돼 왔으나,일왕 자신이 왕가의뿌리가 한국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공개석상에서 언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일본 사회에서 그같은 ‘연관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사실상 금기시돼 왔기 때문이다. 그밖에 한국과 일본의 혈연설은 무수히 많다.대표적인 것이 백제유민이 일본으로건너가 정착하면서 대륙문화를 전파했다는 학설이다.언어,풍습,문헌 등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이 학설들은 일본 역사학자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이 많으나 공식적으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일왕이 느닷없이 금기를 깬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일본의 식자들은 일왕의 이같은 언급을 한일 우호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그의 발언이 양국의 교류관계 등을 설명한 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양국 국민간의 이해와 신뢰 확대에 기대를 건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는 점이그같은 해석의 근거다.그런가 하면 “뭔가 검은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눈길도 있다.과거 침략시절에 내세웠던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연상하는 것이다. 결론은 아직 이르다.그 발언이 선의(善意)에서 나왔다면 일본이 과거사 반성 및 민간인 피해자 배상문제 등에서 성의를 보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사과’와 ‘신사참배 강행’을 반복하는 식의 행태를 계속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만약후자라면 일왕의 발언은 음험한 속셈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이웃나라 왕실의 경사를 앞두고 나온 발언에 대해 덕담으로 화답해야 마땅하지만 워낙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인지라 어쩔 수 없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韓·日 가까운 관계 상징 의미”

    한승수(韓昇洙)외교부장관은 24일 아키히토(明仁)일본 왕의 “일왕가에 백제 왕실의 피가 섞였다”는 언급과 관련,“굉장히 좋은 일”이라면서 “한·일 관계에서 누구나 다 알고있던 사실을 일왕을 통해 재확인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한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일왕은 한·일 양국이굉장히 가까운 나라라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얘기를 한 것일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日王, 백제문화 전수등 인정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왕이 역사상의 한·일 교류와 한국과의 연(緣)을 이례적으로 강조하면서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양국민의 이해와 신뢰감이 깊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혀 주목되고 있다. 2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68세 생일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월드컵 개최와 관련한한·일 양국의 인적·문화적 교류에 대해 언급,“한국과의연(緣)을 느끼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쓰여 있는데 대해 한국과의 연을 느끼고 있다”면서 “무령왕은 일본과의관계가 깊고 당시 오경박사가 대대로 일본에 초빙됐다”고덧붙였다. 그는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聖明王)은 일본에 불교를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그러나 유감스럽게 한국과의 교류는 그러한 교류만이 전부는 아니었으며 우리는이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과 한국민간에 예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일본서기 등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한국에서 오신 사람들과 초빙돼온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문화와 기술이 전해졌다”고 한·일 관계에 대한 서두를 꺼냈다. 그는 특히 “궁내청 악사(樂師) 중에는 당시 한국에서 이주해온 자손이 대대로 악사를 하고 지금도 가끔 아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러한 문화와 기술이 일본인의열의와 한국인의 우호적 태도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것은다행한 일이며 그후 일본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日 왕세자비 딸 이름 아이코

    [도쿄 황성기특파원] 지난 1일 태어난 일본의 마사코(雅子·37) 왕세자비의 딸 이름이 아이코(愛子)로 결정됐다. 일본 궁내청은 7일 아키히토(明仁·41) 일왕이 장남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와 마사코 비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의 이름을 아이코로 지어주었다고 발표했다.어린 시절왕손을 부르는 이름은 도시노 미야(敬宮)로 정해졌다. 일본 왕족의 이름은 두 글자로 짓는 것이 전통으로 남자아이는 이름 뒷자에 인(仁)을 넣고 여자 아이의 경우 자(子)를 쓴다. 이름을 지을 때는 보통 중국 고전 등에서 한자를 찾아 짓는데 이번에는 맹자(孟子)가 출전이 됐다는 게 궁내청의설명이다. marry01@
  • 日 왕세자비 출산 축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일 오후 아키히토(明人) 일왕에게 축전을 보내 마사코 왕세자비의 첫 출산을 축하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왕세자비 여아 출산’ 日열도 들썩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나루히토(德仁·41) 왕세자의부인 마사코(雅子·37)비가 1일 오후 여아를 출산했다.마사코 왕세자비의 출산은 결혼 8년 만의 일이다. 일본의 각 방송사는 이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출산 소식을 특집으로 내보냈으며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의 대형 빌딩과 주요 백화점은 왕손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일본 열도가 온통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여아 출산에도 불구하고 일본 왕실은 여자가 왕위를 잇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 왕세자비의 출산을 계기로 여자도 왕위를 계승하도록 왕실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왕 논의=일본의 왕위 계승 순위는 나루히토 왕세자가1위이며 2위인 동생 아카시노(36)를 제외하면 아랫대에 남자는 단 1명도 없다.3위가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동생(66)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나마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남자 왕족은 7명에 불과하다. 일본 역사상 지금의 125대 일왕에 이르기까지 10대에 8명의 여왕이 즉위했으나 일왕이 군사 통수권을 손에 넣은 메이지(明治)시대부터 남자 만이 왕통을 이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왕실 규정개정에 대해 “역사,전통을 생각하면서 검토하는 편이 좋다”면서 국민 여론을 봐가며 신중히 검토할 뜻을 비쳤다. 한편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3명의 손녀만 두게 됐다. ◆축제 분위기=토요일 오후의 출산 소식은 일본에 모처럼의 청량제였다.방송들은 “대량실업,광우병 파동,미 테러참사 등 어두운 일만 잔뜩 있는 일본에 모처럼 밝은 소식”이라며 장시간에 걸친 특집 방송을 내보냈고 신문들도일제히 호외를 발행했다. 일왕의 거처인 도쿄 시내 왕거와 왕세자비의 친정집 등에는 많은 시민들이 몰려 아이의 탄생을 축하했다.경제계에서는 마사코 비의 ‘로열 베이비’ 출산이 경기를 이끌 것을 기대하고 있다.한 민간경제연구소는 파급 경제효과가 14조엔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미치코(美智子)왕비가 왕세자를 낳은 60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13.1%를기록했다. ◆마사코 왕세자비=외무성 사무차관,유엔 대사를 지낸 ‘평민 집안’의 장녀로 한파티에서 우연히 나루히토 왕세자비를 만나 1986년부터 교제를 시작,6년 뒤 결혼했다.미하버드대 경제학부를 거쳐 도쿄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외무고시에 합격,외무성 북미과 등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미모 겸비의 재원이다. marry01@
  • 고이즈미 日총리 내년 1월 재방한

    [도쿄 황성기특파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가 내년 1월 말 한국을 공식방문하는 방향으로 한·일양국이 일정을 조정 중인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도쿄의 고위 외교관계자는 이날 “고이즈미 총리의 연말재방한이 한때 거론됐으나 꽁치조업을 둘러싼 협의가 끝나지 않아 사실상 연내 방문은 어렵다”면서 “방한시기는 고이즈미 총리의 동남아시아 5개국 순방이 끝난 뒤인 1월 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10월의 실무방한과는 달리 내년 방한은 공식방문인 만큼 최소한 1박2일 이상의 일정을 추진하고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왕의 2002년 월드컵 개막식 참석과 관련,“일본 정부 내의 분위기는 부정적”이라며 중·일 수교 30주년인 내년 일왕의 방중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10월15일 방한한 고이즈미총리와의 정상회담 때 월드컵 대회 전 방한을 공식요청한바 있다. marry01@
  • 월드컵 조추첨/ FIFA대표단 일문일답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회장 등 FIFA 대표단은 28일 집행위원회를 마친 뒤 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미디어 센터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FIFA규정에 따라만장일치로 중국이 한국에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고 발표했다.다음은 일문일답.대답은 블래터 회장,요한슨 FIFA 조직위원장,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오카노 일본축구협회장 등이 돌아가면서 했다. ▲중국이 한국에서 경기를 하는 이유는. 지리적·경제적면에서 합당하기 때문이다.중국의 많은 축구팬들이 일본에가려면 항공편과 요금 등 제약이 많다. 중국측도 한국에서경기를 하길 원했고 일본 축구협회장도 자진해서 합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같은 대륙 국가가 한·일 양국중 한 나라에 몰리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는일본에서 경기를 가질 것이다. ▲일왕 방한 문제는 어떻게 되나. 이것은 FIFA나 한국 월드컵조직위원회가 나설 문제는 아니고,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공식 초청장을 보내야 가능한 문제다.개인적으로는장쩌민 중국 수석이 한국에서 열리는 중국경기 관람을 약속한 만큼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지구촌 축제에 한·중·일 3국 정상이 모인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이다. ▲프랑스가 한국에서 경기를 하는데 그럼 2위인 브라질은일본으로 가나. 말도 안되는 소리다. 톱시드를 받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같은 대륙국가이므로 무조건 한·일 두나라로 갈려서 경기를 해야 하지만 이는 조추첨을 해봐야아는 문제다. ▲남북 공동개최는 아직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처음에 FIFA가 제안했을 때는 참 좋은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않다.조추첨이 끝나면 개최도시와 경기가 확정되는데 북한을 포함시키기엔 시간이 촉박하다.FIFA가 북한에 기회를줬는데 잘 안됐다.하지만 내년 1월 FIFA대표단이 북한의축구시설·장비 지원을 위해 방북하는 등 계속 문을 두드릴 것이다. ▲한·일 양국이 공동개최국이지만 교과서 문제 등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협력은 잘되고 있나. 양국은 티케팅,수송,미디어 지원 문제 등 전분야에서 원활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월드컵은 인종과 종교 등을 뛰어넘는 세계인의축제이므로 월드컵을 통해 양국의 화해를 다질수 있을 것이다. ▲톱시드를 제외한 유럽 11개국(Ⅱ그룹)중 8개국을 가리는것은 성적이 반영되나. 순수한 추첨으로 결정될 것이다. 나머지 3개 유럽국은 남미 3국,아시아 2개국과 함께 3그룹에 속한다.이들은 유럽국이 톱시드가 아닌 조에 골고루 배치될 것이다.같은 조에 유럽국 3팀이 속하는걸 막기 위해서다. ▲한국이 톱시드를 받고도 잉글랜드,포르투갈 등 유럽의강팀 2팀과 한조를 이룰수 있다는 말인가.추첨 결과에 따라 충분히 그럴수 있다.하지만 유럽은 큰 기량차이가 없이다같은 강팀이다. 포르투갈도 최근 프랑스에게 0-3으로 진것으로 알고 있다. 부산 류길상기자
  • 日 교육기본법 개정 움직임

    일본 정부가 교육기본법 손질에 나섰다. 도야마 아쓰코(遠山敦子) 문부과학상은 26일 중앙교육심의회에 ‘새로운 시대에 알맞는 교육기본법의 모습’을 심의,제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교육기본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일본 정부는 물론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도 불이 당겨질 것으로보인다. 일본 교육의 정신을 담고 있는 교육기본법은 2차대전 패전후인 1947년 시행된 뒤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기본법은 개헌론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개정 논의 자체가 금기시돼 왔다.기본법 전문은 “일본 헌법의 정신에 따라 교육의 목적을 명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일왕의 신격화와 국가지상주의를 담은 ‘교육칙어’는 일제의 패전에 따라 의무교육과 교육기회의 균등을 기초로 하는 교육기본법으로 바뀌었다. 일본 헌법이 일본의 재무장이나 전쟁 포기를 천명한 중심축이라면 교육기본법은 이같은 평화이념의 정신을 지탱하는‘교육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50∼60년대 보수세력들이 “기본법에는 애국심을기술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법 개정을 주장해 왔다.대표적인 인물로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 총리, 극우 논객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가 개헌과 함께 기본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문부성의 법 개정 움직임과 관련,교직원 노조인 닛쿄소(日敎組)는 맹렬히 반발하고 있다. 닛쿄소의 한 관계자는 “기본법은 민주국가를 만들어 세계평화를 실현하자는 헌법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50년이 지났다고 해서 낡은 이념이 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이봉창의사 日王에 폭탄 던진 곳 ‘경시청앞’

    이봉창(李奉昌)의사가 1932년 1월 8일 육군 관병식을 마치고 환궁하던 일왕(日王·裕仁)의 마차에 폭탄을 던진 곳은도쿄 시내 황궁의 출입문인 앵전문(櫻田門)앞이 아니라 인근 경시청 앞임을 보여주는 당시 현장약도가 처음 공개됐다. 그동안 일제는 이 사건이 일본 수도치안의 총본부격인 경시청 앞에서 발생한 ‘대역(大逆)사건’이어서 경찰의 체면을고려해 ‘앵전문 사건’으로 왜곡해 불러왔다. 최서면(崔書勉·73)국제한국연구원장은 10일 단국대학교주최 이 의사 순국 69주년 추모학술회의 주제발표에 앞서일본 외무성사료관에서 입수한 약도를 공개,“이 의사의 의거현장은 앵전문 앞이 아니라 경시청 앞으로 확인된만큼 ‘경시청 앞 사건’으로 고쳐불러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의거 직후 일경이 작성한 약도에 따르면,이 의사는 일왕일행이 경시청앞을 지나갈 무렵 호위경찰 뒤에서 일왕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다.일본정부 역시 당일 첫 발표에서는 의거현장을 ‘도쿄시 고오지마치구(麴町區) 소도사쿠라다몬쵸(外櫻田門町) 1번지 경시청 현관앞’이라고 발표했다.그러나 이틀 뒤부터 일본정부는 이 사건을 ‘앵전문 사건’으로 고쳐부르게 했다.앵전문은 황궁의 여러 출입문 가운데 하나로 경시청 현관에서 100여m 이상 북쪽에 떨어져 있다. 정운현기자
  • 일제 찬양 사이트 7곳 폐쇄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일본 수상 각하 동호회' 등 일본 제국주의와 일왕을 찬양하는 내용의 인터넷 사이트 7곳을 최근 폐쇄했다고 17일 밝혔다. 폐쇄된 사이트 중에는 '일본이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등 일본침략을 미화하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친일 사이트가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 지속적으로 이를 점검, 폐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 일본 전역 꼬리문 ‘군국 참배’

    15일 정오 도쿄 시내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스산한 조가(弔歌)가 울려나오자 경내에 있던 참배객 수천명이 일제히묵도를 올린다. 일본 전역에서 실시된 1분간의 묵도가 끝나자 본전 앞 참배를 기다리는 행렬이 다시 조금씩 움직인다.30분은 기다려야 겨우 참배할 수 있을 만큼 경내는 인산인해다.옛 일본군복장에 대형 일장기를 든 단체 참배객들도 곳곳에서 눈에띈다. 대부분은 50대 이상이다.아버지나 할아버지,동료를 태평양전쟁을 비롯한 무수한 전쟁에서 잃은 유가족들이다.해군이던 아버지가 1944년 전장에서 사망했다는 한 50대 참배객은“야스쿠니 참배를 놓고 왜 한국이 이러쿵저러쿵 하느냐”며 “일본에는 일본의 방식이 있다”고 불쾌한 듯 손을 젓고는 다른 곳으로 홱 가버린다. 참배객은 유족이 대부분이지만 더러 “나라를 위해 희생한분들을 기리기 위해” 찾는다는 ‘소신파’도 있다. 한 참배객(57·자영업·도쿄 거주)은 “가족 가운데 전사자는 없으나 1년에 4차례는 이곳을 찾아 머리를 조아린다”면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참배한 것은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보다는 한국이 신사 참배에 대해 잘 이해해주는 것 아니냐”고 엉뚱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젊은 대학생들도 꽤 많다.올해 처음 야스쿠니에 왔다는 남학생(20·대학 2년)은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보통의 국민들을 생각해 왔다”면서 “참배에 정치적인 뜻은 없지만 일본 언론의 보도가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에 합사된 A급 전범에게도 참배를 했냐고 묻자 이내 말꼬리를 흐린다. 대다수 유족들의 참배가 이어지고 있는 본전 앞과는 달리신사 안팎은 우익의 선전장을 방불케 할 만큼 극우 조직원의 시위,집회가 계속됐다. ‘아시아 청년당’,‘정치결사,일본 황정당(皇政黨)’,’쇼화진구(昭和神宮) 창건회’,‘국수국방연합(菊水國防連合)’등 크고 작은 극우 조직들이 동원한 버스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노래와 구호가 연신 흘러나오는가 하면 우익 청년들이 군복 차림으로 신사 이곳저곳을 돌며 세를 과시하기도했다. 이들은 ‘천황 폐하를 중심으로 단결하자’,‘대동아전쟁은성전(聖戰)이다’,‘황국(皇國) 일본 만세’등의 구호가적힌 플래카드로 참배객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신사 본전 입구에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 함대에 뛰어들었던 특공대를 기리는 그림과 붓글씨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지나가던 참배객들이 다투어 사진을 찍고 글씨를 들여다보고 있다.‘너와 내 사랑의 하늘의 이중주,맑아서 얘기하는 하늘의 순간’.말할 것도 없이 일왕에 목숨을 바친 특공대의 심정을 왜곡해 표현한 글이다. 야스쿠니 신사를 돌아보면 볼수록 점입가경이다.“한국과중국은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고 규탄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나라에는 쇼와(昭和·태평양전쟁 당시 일왕의 연호) 수난자만 있을 뿐 A급 전범은 없다”는 역사 왜곡마저도 서슴치 않았다. 두 얼굴의 야스쿠니 신사.일본의 무모한 야욕 때문에 전쟁터에 끌려나가 억울하게 희생된 국민들의 위패가 있는 곳인가 하면 군국주의 일본 정신을 확대 재생산하는 ‘마음의기지’이기도 한 야스쿠니 신사이다.그곳을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13일 참배했다. ◆ 야스쿠니 신사.1869년 메이지(明治) 일왕 때 지어져 일본군이 관리를 맡았다.전쟁에서 사망하면 신이 된다는 독특한 신앙으로 무고한 국민들을 전장으로 내몬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적 시설.2차대전 종전 후 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처형된 14명을비롯,246만여명의 위패가 합사돼 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김삼웅 칼럼] 8·15, 마지막 우상이 무너진다

    8·15해방은 이땅에서 우상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일왕을정점으로 조선총독과 총독체제는 거대한 우상이었다. 실제로 조선총독부는 패전과 함께 전국 1,141개의 이른바 신궁·신사를 소위 ‘승신식(昇神式)’이란 것을 지낸 다음 불태웠다.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조선인을 핍박했던 신궁과신사를 저들 스스로 소각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이성의 태양이 비치지 못한 동굴에는 늘 새로운 우상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해방군 또는 점령군 이름의 하지휘하 미군정에 이어,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백색·청색독재는 총독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신성불가침의 우상이었다. 다행히 6월항쟁을 계기로 정치권력의 우상은 무너졌다. 민간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치적 우상 대신 보편적 민주질서가확립되었다. 대통령은 야당과 언론의 원색적인 비판을 받고있다. 정치권력의 우상이 사라진 동굴에 언론권력이 자리잡았다. ‘천황’과 총독을 숭상하고 군사독재와 유착하면서 엄청난재력과 영향력을 키워온 족벌언론사가 무소불위, 오만불손,무오류성으로 우상의 반열에 올라섰다. 우상이 도사린 신전, 그 추악한 장막속에는 탈세와 변칙상속 등 타락한 장사치의 범죄문서가 널려있다. 우상은 추종자가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은 우상의 허상이 드러날 때까지 맹신을 거두려 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들이 대동아공영권, 반공, 근대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기수인 양 처신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인간지성의 도리에 접근을 방해하는 편견으로서 4종의 이돌라(idola:우상)를 지적했다. ①종족의우상 ②동굴의 우상 ③시장의 우상 ④극장의 우상이다. ①은 종족에 대한 보편적인 선입관이고 ②는 개인적 편견으로서 마치 동굴속에 있듯이 자연의 빛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비유한 것이며 ③은 언어의 부적당한 사용에 기인하는 것으로 시장에서 있지도 않은 풍설이 나도는 것과 같은 것이며④는 논증의 잘못된 규칙이나 철학의 그릇된 학설과 체계에의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마치 무대위에서 상연되는 가공의이야기에 비유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4가지 이돌라중에 족벌언론이 안고 있는 두번째 ‘동굴의우상’이 문제다. 이들은 동굴 밖에 비치는 이성의 태양을바라보지 못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개혁과 남북화해를좌경으로 치부한다. 일제시대 이래 주류세력으로 안락을 누리고 사대근성과 냉전논리에 젖어 민족의 아픔을 외면한다. 동굴 밖의, ‘우상을 무너뜨리라’는 이성의 외침을 듣지못한다. 들불처럼 타오르는 ‘안티’의 불길을 홍위병·악령으로 몰아친다. 글 안쓰기, 구독거부, 입사거부운동까지번지는데도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언론탄압’이란 공염불만 되뇐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믿는 바가 있다. 일제가 있었고독재자가 있었고 수구세력이 있다. 또 정치권력은 유한한데언론우상은 무한하다는 맹신이 있다. 항상 기회주의 속성으로 강자편에 서는 세칭 사회원로, 사이비 지식인·문인들의추종세력이 있다. 두둑한 월급봉투가 있고 촌지도 따른다. 비록 음습한 동굴이지만 밖에 나갔다가는 햇볕에 실명할지모른다는 우려, ‘자유언론’을 외치며 동굴을 뛰쳐나간 선배들의 처절한 모습도 두렵다. 한비자(韓非子)에 ‘세유삼망(世有三亡)’의 가르침이 있다. 세상에는 ‘삼망’즉 멸망에 이르는 길이 세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정쟁을 일삼는 나라가 정치가 잘되고 있는 나라를 공격하면 망하고, 사특한 생각을 가진 자가 올바른 사람을 공격하면 망하고, 도리에 어긋난 자가 정도를 걷는 자를 비판하면 망한다는 뜻이다. 족벌언론의 너울이, 그 추악한 우상의 가면이 벗겨지고 있다. “일제가 200년 갈 것 같아서”친일시를 썼다던 서정주의 비극은 ‘우상’을 바로보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 여전히 ‘족벌의 동굴’에서 남북협력을 ‘퍼주기’, 서민복지를 ‘사회주의’, 언론개혁을 ‘언론탄압’이라 외치는 사람들도 이제 이성을 찾을 때가 됐다. 광복절을 전후하여 ‘마지막 우상’이 무너지는 것은 국가의 축복인가, 너무 늦었는가. 김삼웅 주필 kim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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