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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책을 말한다] 부귀·도덕 함께 추구한 ‘日경제의 아버지’

    사무라이들은 상인을 더럽다고 천대했다. 상인들도 장사에 도덕이 끼어들면 도리어 해라고 생각했다. 이런 에도 시대에 농사꾼이자 장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시부사와 에이치(澁澤榮一, 1840~1931)는 어릴 적부터 주판을 들고 장사를 했다. 하나 ‘인간 취급’을 받기 위해 사무라이를 꿈꾸었다. 1858년 막부가 일왕의 지시를 무시한 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자 존왕양이 운동에 뛰어들었다. 1863년 23세 땐 봉기를 계획했다. 불발로 끝났다.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가신이 되었다가 1867년에 인생이 결정적으로 바뀌었다. 쇼군의 명으로 파리 만국박람회에 간 것이다. 서양 여행은 충격이었다. 여태껏 사농공상의 신분차별이 준엄하고 ‘상업은 유교에 반(反)하고 상공업은 비천한 자들의 몫’이라던 낡은 관념이 우세하던 일본과 달리, 연회 장소에서 관리와 기업인이 평등하게 대화를 나누고 관존민비의 풍조도 없었다. 오히려 상공업자가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면서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 이때 그는 ‘상공인의 실력을 길러 상공업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일본의 부국강병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868년에 귀국을 한 후 대장성의 관료로서 도량형·조세·은행·회계 제도를 근대적으로 개혁하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1873년 33세 때 드디어 비즈니스맨이 되었다. 서양의 상인들처럼, 그 자신도 일본굴기의 최전선에 서고 싶었다. 제일국립은행, 도쿄가스, 제국호텔, 기린맥주 등등 500개 기업의 설립에 관여하며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최초의’ 사업을 수없이 벌여나갔다. 개인의 부가 다수의 부라는 합본주의 전통을 세웠기에 ‘일본경제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더구나 거대한 부를 교육·의료·빈민구제 등의 공익·사회복지 사업으로 환원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산증인이 되었다. 그래서 ‘일본 현대문명의 창시자’라 불리는 그가 1927년에 펴낸 ‘논어와 주판’(페이퍼로드 펴냄)은 부귀와 상인에 대한 인식의 틀을 송두리째 뒤바꾸었다. “정당한 부는 부끄럽지 않고, 상인은 공익의 전도사이자 국부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다. 송나라 주자학파의 영향을 받은 에도 시대 유학자들은 “부자는 인의도덕이 없기 때문에 어진 사람이 되고 싶거들랑 반드시 부귀의 염을 버려라.”고 했다. 하지만 시부사와는 “부귀와 도덕은 절대로 모순관계가 아니라 함께 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어(도덕)와 주판(경제)’의 통일 즉 ‘의리합일(義利合一)=도덕경제합일’이야말로 ‘원래의 공자’이고, ‘진짜 논어’라는 것이다. 2006년 화제를 몰고 온 중국의 ‘대국굴기’는 이 책이야말로 “일본을 굴기시킨 비결이고 중국 굴기의 출구”라고 평가했다. 후진타오가 기치로 내건 ‘조화로운 사회’와 ‘인본주의’도 문화적 자양분을 ‘논어’라고 하는 소프트파워에서 흡수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경세치용·이용후생·실사구시 정신으로 조선의 부국강병을 실현한 인물이 조선에는 왜 없었나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러면 일제강점기도 없었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노만수 시인 겸 번역가
  • 美·日 “동맹 강화”

    │도쿄 박홍기특파원│아시아 순방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3일 오후 7시쯤 첫 방문국인 일본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특히 내년 50년이 되는 미·일 안전보장조약 개정을 계기로 미·일 동맹을 재검토하기로 합의했다. 회담은 1시간30분 동안 이뤄졌다. 두 정상의 회담은 지난 9월에 이어 두 번째다. 두 정상은 회담 뒤 35분 동안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 ‘핵 없는 세계’의 실현 및 지구온난화 대책,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 등 세 가지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회견에서 “일·미 동맹은 일본 외교의 기초”라고 전제한 뒤 자신이 주창한 동아시아공동체 구상과 관련, “일·미 중심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가 높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동체 구상에 미국을 참여시킬 방침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미·일 동맹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위한 기축”이라고 밝혔다. 하토야마 총리는 “내년 일·미 안전보장조약 개정 50주년을 앞두고 지금부터 1년에 걸쳐 동맹의 방향 등을 재검토하는 협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두 정상은 ‘핵 없는 세계를 위한 미·일 공동성명’을 통해 핵군축, 핵비확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핵안전보장 등 4개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의의 성공을 위한 협조와 핵실험 전면금지조약(CTBT)의 조기 발표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또 북한의 6자회담 조기 복귀도 촉구했다. 양국 사이에 최대 쟁점으로 부각된 주일 미군 후텐마비행장 이전 문제와 관련, 하토야마 총리는 “새롭게 설치되는 각료급 회의체에서 가능한 한 조속히 결론을 내겠다.”, 오바마 대통령은 “신속히 논의를 끝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구체적인 결론보다는 원칙만 확인한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토야마 총리가 아프가니스탄의 부흥에 올해부터 5년간 50억달러(약 58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전하자 “감사하다.”고 답했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지난 9월 뉴욕의 첫 회담 때처럼 ‘유키오’, ‘버락’이라며 이름을 불러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두 정상은 ‘기후변동교섭에 관한 미·일 공동메시지’에서 오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80% 삭감하기로 했다. 에너지 분야의 공동성명에는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차세대 송전망, 이산화탄소의 회수·저장(CCS) 기술, 연료전지, 재생 가능 에너지, 원자력 발전 등 5개 분야의 공동 연구를 포함시켰다. 하토야마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과의 만찬을 마친 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을 위해 14일 새벽 출국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4일 오전 도쿄에서 아시아 외교에 대한 정책연설과 일왕 예방 등의 일정을 끝내고 오후 싱가포르로 떠날 예정이다. hkpark@seoul.co.kr
  • 즉위20년 아키히토 일왕 “日 과거역사 망각해 걱정”

    │도쿄 박홍기특파원│아키히토(76) 일왕은 12일 열린 일본 정부 주최 즉위 20년 기념식에 앞서 11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과거의 역사를 잊고 있다는 것이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장래에 대한 우려가 있느냐.’는 질문에 “고령화 사회 및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과거 역사를 망각하고 있다.”며 일본인들 사이에서 과거 침략전쟁의 기억이 약해지는 것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쇼와(昭和·1926~89) 60여년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교훈을 줬다.”면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회견은 기념식에서 연설을 생략하는 대신 이뤄졌다. 즉위 20년 동안 떠오르는 해외사건으로 ‘베를린 장벽 붕괴’를 꼽은 뒤 “그후 세계의 흐름은 유감스럽게도 평화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았다.”며 9·11테러,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거론했다. 국내 사건으로 6400명 이상이 희생된 1995년 한신대지진이라고 밝힌 뒤 “정말 참혹했다.”고 회고했다. 건강과 관련, “지금 (건강) 상황이라면 평소대로 (업무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해 더 이상의 업무 경감책이 필요없다고 했다. hkpark@seoul.co.kr
  • 장지연 후손 친일사전 가처분신청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예정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위암 장지연의 후손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게재 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주관하는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오는 8일 발간보고회를 강행하기로 했다.민족문제연구소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지난달 26일 박 전 대통령을 친일인명사전에 싣지 말라는 내용의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북부지법에 냈다고 3일 밝혔다. 위암 장지연선생 기념사업회와 후손들도 지난달 10일 서울북부지법에 위암의 이름을 사전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기념사업회 측은 “장지연 선생이 총독 환영시를 쓰긴 했지만 반어법을 사용한 시로 사실은 총독을 비웃는 시”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연구소의 방학진 사무국장은 “박 전 대통령이 1940년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한 뒤 일본육사에 편입·졸업해 1944년 일본군 육군 소위로 임관하는 등 친일을 했다.”며 반박했다. 장지연에 대해서는 “1909년 경남일보 주필로 있으면서 이토 히로부미 추모시와 일왕 메이지의 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 기념시를 실었다.”며 후손들의 주장을 일축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1929년 ‘광주학생운동 무죄’ 탄원서 발견

    전남대 김재기(정치외교학과 교수) 학생독립운동연구단장은 3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리는 ‘학생독립운동 8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앞서 2일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속된 조선인 학생들의 탄원서를 공개했다. 연구단은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에서 1929년부터 3년 간 만들어 극비로 분류한 ‘사상월보’에 실린 탄원서를 최근 국가기록원을 통해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탄원서는 1930~1931년 강달모 광주사범학교 3학년생, 이동선(광주사범학교 졸업생) 전남 담양군 봉안 보통학교 교사, 임주홍(광주 고등보통학교 졸업생) 일본 니혼대학 1학년생 등 3명이 대구 복심법원(현 고등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A4 용지 크기의 15쪽 분량이다. 강씨 등은 식민지 교육체제에 반대하며 조직한 성진회 회원으로서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일제는 ‘성진회가 일왕의 존재를 무시하는 사회주의단체’라며 이들을 처벌했다. 그러나 이들은 탄원서를 통해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항변했으나 일본 경찰이 악랄한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강달모는 “중학 2~3학년 정도의 사람이 결사를 조직했다는 것을 누가 믿겠느냐.”고 호소하면서 고문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하토야마 “戰後 행정 대청소”

    하토야마 “戰後 행정 대청소”

    │도쿄 박홍기특파원│하토야마 유키오(얼굴) 총리는 26일 정권 출범 이후 처음 소집된 임시국회의 소신표명 연설에서 ‘전후(戰後·제2차 대전후) 행정의 대청소’, ‘무혈의 헤이세이(平成) 유신(維新)’ 등 강한 표현을 써가며 새로운 일본을 만들기 위한 정치주도의 국정개혁 의지를 밝혔다. 자신의 정치이념인 ‘우애’를 통한 국민의 생명과 생활을 지키는 정치의 실현도 내세웠다. 헤이세이는 현 아키히토 일왕이 즉위한 1989년부터 사용하는 연호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금의 유신은 관료의존에서 국민에게 정권을 반환하는 것이며, 중앙 집권에서 지역·현장주의로, 섬나라에서 열린 해양국가로 국가형태를 변혁시키는 시도”라며 “전후 행정 대청소를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외교 분야에서는 “동양과 서양,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다양한 문명의 ‘가교 역할’이 돼야 한다.”면서 “일본을 둘러싼 바다를 ‘경쟁의 바다’로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특히 미·일 관계와 관련, ‘긴밀하고 대등한 미·일 동맹’을 목표로 내세운 뒤 ‘대등’의 의미에 대해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역할과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일본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제언, 협력해 나갈 수 있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또 “서로 협력하는 중층적인 미·일 동맹을 심화시키겠다.”고도 했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한국, 중국, 또 동남아시아 등 근린 제국과의 관계에서는 다양한 가치관을 서로 존중하면서 공통점이나 협력할 수 있는 점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진정한 신뢰 관계를 구축,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북 문제와 관련, “납치, 핵, 미사일이라는 제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나서 국교정상화를 도모해야 한다.“면서 “관계국과도 긴밀히 연대해 대처해 나가겠다.”고 역설했다. 도로·댐·공항·항구 등 대규모 공공사업에 대해 “국민에게 실제 필요한 것인지를 한번 더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콘크리트로부터 사람에게’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경직화된 재정구조를 바꿔나가겠다.”고 말했다. hkpark@seoul.co.kr
  • [열린세상] 글로벌 시대의 韓·日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글로벌 시대의 韓·日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지난주 금요일 서울에서는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이어 토요일에는 베이징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바로 2주일 전에는 뉴욕과 피츠버그에서 한·일 정상이 무릎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었다. 하토야마 정권이 출범한 지 겨우 3주 지난 시점에서 한·일 정상이 세 번이나 회담을 가졌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한·일 양 정상이 대면할 기회는 1년에 몇 번일까? 우선 매년 2회에 걸친 한·일 셔틀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도 작년부터 정례화되었다. 1990년대부터 열리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아세안+한·중·일 정상회의, 2005년 출범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서는 매년 1회 그리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는 2년에 한 번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더불어 내년부터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세계경제질서 문제를 다루게 될 최고의 회의체로 지정됨에 따라 한·일 정상이 만날 기회는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이렇게 보면 두 나라 정상이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아무리 적어도 연 7회 이상으로, 줄잡아 50일에 한 번은 좋든 싫든 만날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현안과 동아시아 지역의 주요현안, 그리고 글로벌 이슈가 핵심적인 의제로 다루어졌고 두 정상은 세 차원의 현안들에 대해 의견 합치와 공감대 형성을 이끌어냈다. 첫째, 양국간 현안에 대해서는 하토야마 총리가 과거사를 직시하는 자세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일본 신정부의 대 한국 외교 기본자세를 밝히고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재일교포 지방참정권 문제나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 추진 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총론적으로 과거사 직시와 반성론의 입장을 명확하게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각론에서는 일본 국민의 감정과 일본 내 정치사회의 복잡한 역학 관계를 고려할 때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현되기까지는 간단치 않은 장애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동아시아의 핵심 현안은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이른바 그랜드 바겐 구상에 대해 하토야마 총리는 ‘정확하고도 올바른 방안’이라고 평가하고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다.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6자회담 복귀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중국과 미국에만 대화의 창을 열어놓고 한·일 양국과의 직접대화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으로서도 긴밀한 대일 공조를 통한 국제사회에서의 대북정책 주도권 확보 및 영향력 확대는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셋째, 한·일 정상이 다뤄나갈 글로벌 차원의 이슈는 매우 다양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 및 금융 분야의 협력에서부터 기후변화, 개발 및 환경, 인권 등의 분야에서 두 나라는 상당부분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양국 간 공조와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내년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인 G20 정상회의와 일본에서 열릴 APEC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양국의 협력 방안이 깊숙이 논의되었다. 2010년은 한·일 관계에서 보면 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해임과 동시에 역사적인 G20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내년에는 한·중·일 정상회담의 개최도 한국에서 열리게 되어 있다. 한·일 양국은 뜻깊은 2010년의 도래를 계기로 그동안 양국관계를 대립과 반목으로 몰아갔던 역사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글로벌 질서의 개편을 창의적으로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기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 “북핵 그랜드 바겐 협력”

    이명박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는 9일 청와대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의 해법으로 이 대통령이 제안한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일괄타결 방안)’이 필요하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이 끝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국제사회에 형성되고 있다.”면서 “북한이 북·미회담을 통해 (북핵) 6자회담에 나올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한·일 두 정상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해결방안에 공감하고 일괄타결을 위해 긴밀히 협의키로 했다.”면서 “북한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하토야마 총리는 “이 대통령이 주장하는 그랜드 바겐, 일괄타결 방안이 아주 정확하고 올바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지지의사를 밝힌 뒤 “북한의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에 대해 일괄적, 포괄적으로 문제를 파악해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 한 경제협력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일왕 방한 문제에 대해서는 “천황 방문에 대해서는 천황도 강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고령이고, 일정적 문제도 있어 총리가 어디까지 이에 대해 관여할 수 있을지 하는 문제도 있다. 간단히 말할 수 없는 환경이란 것도 이해해 달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밖에 두 정상은 회담에서 중소기업 간 협력 등 민간 경제협력 강화와 내년 한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일본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를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이 대통령과 하토야마 총리는 이날 양국 정상회담을 마친 뒤 10일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사설] 日 총리 과거사 의지 실천이 중요하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어제 취임 후 처음 한국을 방문,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달 미국 피츠버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한 차례 회담한 바 있으나 형식과 내용을 볼 때 사실상 한국과 신(新) 일본 정상의 첫 공식대화라 할 것이다.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어가는 첫발을 어제 두 정상이 뗀 셈이다. 그런 점에서 양국간 현안에 대한 하토야마 총리의 어제 발언은 양국 관계의 새로운 진전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 북핵과 관련해 이 대통령이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밝힌 그랜드 바겐(일괄타결) 구상에 두 정상이 의견을 같이한 대목은 6자회담 참가국간 긴밀한 공조가 요구되는 시점을 감안할 때 환영할 일이다. 다만 그랜드 바겐 구상이 구체적 실천방안까지 갖춘 단계가 아니어서 공감의 밀도를 평가하기 이른 데다 큰 틀에서 볼 때 기존 자민당 정권에서의 대북정책 기조와 크게 어긋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예상됐던 수준의 합의 정도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나 재일동포의 지방자치 참정권 부여 등 나머지 현안에 있어서는 하토야마 총리의 전향적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토야마 총리는 “일본의 새 정부는 역사를 직시할 수 있는 정권”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일본 국민들의 감정이 통일돼 있지 않다는 점과 시간이 걸리는 사안이라는 점을 들어 과거사와 참정권 문제,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 문제 등을 비켜갔다. 지난해 6월 정상회담 때 과거사 언급 자체를 피했던 아소 다로 전 총리에 견주면 진일보했다고도 하겠으나 자민당 정권과는 뭔가 다른 새 일본 정부의 미래지향적 자세를 그리던 한국민들의 기대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과거 일본 정부가 던진 숱한 수사(修辭)를 넘어 실천이 필요한 때다. 하토야마 총리가 자신의 전향적 의지를 구체적 정책으로 내보이길 바란다.
  • 李대통령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하토야마 “신정부는 역사 직시”

    李대통령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하토야마 “신정부는 역사 직시”

    ■ 양국 정상회담 의미 이명박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9일 정상회담은 과거사에 대한 기본 인식을 공유하면서 양국 간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하토야마 총리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가슴에 안고 행동하겠다.’고 밝히는 등 전향적 역사인식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이날 정상회담이 새로운 한·일 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왔다. 하토야마 총리가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양자회담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하루 앞서 서울을 찾은 것은 그 자체로도 시사점이 크다는 게 청와대 쪽 설명이다. 하토야마 총리의 방한은 지난달 취임 이후 양자외교 차원의 첫 외국 방문이어서 우리나라와의 관계발전에 대한 관심과 의욕을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한·일 간 협력관계는 양국은 물론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매우 긴요하다.”면서 “가깝고도 가까운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에 하토야마 총리는 “신(新) 정부는 역사를 직시할 수 있는 정권”이라면서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는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경제와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다만 하토야마 총리가 아키히토 일왕 방한, 재일교포 지방참정권 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유보한 것은 양국 간 거리가 단시일내 좁혀지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평가를 낳았다. 하토야마 총리는 한·일 과거사 청산 문제와 관련, “소위 무라야마 담화의 뜻을 정부의 한 사람 한 사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 생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국민의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는 부분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또 재일교포의 지방참정권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결론을 도출하고 싶다.”면서 “그러나 국민의 감정이 통일돼 있지 않아 내각에서 논의를 계속해 결론을 찾아보고자 한다. 내각이란 ‘팩터(요인)’를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총리의 과거사에 대한 언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지난해 6월 아소 다로 전 총리와의 도쿄 정상회담에서 과거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양국 정상은 향후 한·일 관계의 전향적인 발전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G20 한국회의 성공 지원” 日외상, 유 외교에 밝혀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은 29일 내년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와 관련, “중요한 회의이므로 성과가 있는 회의가 되도록 일본으로서도 할 수 있는 한 많은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오카다 외무상은 이날 저녁 도쿄의 총리 관저인 이쿠라회관에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오카다 외무상은 이명박 대통령이 내년에 일왕의 한국 방문을 초청한 데 대해 “아직 (양국 정부 간에) 구체적인 얘기는 없다.”면서 “앞으로 여러 상황을 판단해 가면서 신중히 생각하겠다.”고 답했다.hkpark@seoul.co.kr
  • “한·일회담서 과거사청산 못한 건 반공논리 탓”

    “한·일회담서 과거사청산 못한 건 반공논리 탓”

    친한파인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정권 출범으로 한일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내년에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을 제안하며 우호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를 청산하지 않고 양국간 진정한 우호관계의 형성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점에서 섣부른 낙관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많다. 히로히토 일왕과 일본 역대 정권은 그동안 몇 차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뜻을 표했지만 핵심인 한일병합의 불법성에 관해선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문제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끊임없이 대두돼 왔다. 14년 교섭끝에 타결된 한일회담은 경제개발이 시급했던 박정희 정권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현실론적 평가도 있지만 식민지 과거청산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박정희 정권이 아니라 다른 정권이었다면 식민지 과거 청산이 가능했을까. 재일교포 2세인 장박진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연구원은 신간 ‘식민지 관계 청산은 왜 이루어질 수 없었는가’(논형)에서 한일회담은 구조적으로 식민지 관계 청산이 불가능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서 식민지 관계 청산은 한일병합의 불법적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그 책임에 따른 보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일회담은 청구권 교섭에 밀려 과거사 청산이라는 본질은 흐지부지됐다. 기존 학계는 한일회담에서 식민지 과거 청산이 이뤄지지 않았던 원인을 주로 미국의 대일 및 대한반도 정책, 일본 정부의 과거에 대한 무반성적인 자세, 그리고 한국 정권의 속성 등에서 찾았다. 하지만 장 연구원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시한다. 애초부터 한일회담의 성격 자체가 식민지 청산을 제기할 만한 구조적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거는 세가지다. 첫째, 한국 정부는 과거청산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능력이 없었다.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상황에서 민족간의 대립은 반공을 국가 수호의 최우선 과제로 삼게 했고, 반공논리는 친일논리와 연결되면서 정부는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했다. 둘째, 일본내에서 과거를 반성하는 세력들은 한일회담 자체를 반대했으므로 한일회담이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토대로 진행될 가능성은 전무했다. 셋째, 한일회담의 법적 근거인 대일평화조약은 반공 논리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기대하는 조약을 이뤄낼 수 없었다. 장 연구원은 “결국 한국은 식민지 관계 청산이 불가능한 조건하에서 한일회담을 가졌던 셈”이라며 “한일회담을 무산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과거청산없는 한일회담은 이미 출발부터 예정된 결과”라고 말했다. 예컨대 박정희 정권이 아닌 어떤 정권이라도 과거사 청산이 불가능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 면죄부를 주거나 옹호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면서 “근본적으로 민족간 대립과 갈등이 한일회담에서 과거사 청산의 기회를 소멸시켰다는 점을 논증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장 연구원은 “한일협정은 주권국가로서 마무리 지은 것이기 때문에 뒤집을 근거가 없다.”면서 앞으로 진행될 북한과 일본의 교섭에서 일본이 불법 지배를 인정하도록 북한과 협력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피해보상 등 일본 정부의 부담을 감안해서 불법 지배를 인정하더라도 정부 차원에서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우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금속탐지기 있으면 아마추어도 일확천금[동영상]

     금속탐지기만 있으면 일확천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나이가 있다.  최근 사상 최대 규모의 앵글로-색슨 시대 초기의 보물급 유물들이 잉글랜드 스태퍼드셔 들판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가운데,이를 찾아낸 주인공이 아마추어 보물 탐험가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언론은 24일(현지시간) 테리 허버트(55)라는 아마추어 보물 탐험가가 지난 7월 친구의 농장에서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이 유물들을 찾아냈다고 보도했다. 허버트는 지난 18년간 취미삼아 금속 탐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허버트는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이 유물들의 존재를 파악한 뒤 5일동안 홀로 발굴을 시도했지만 곧 고고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보물을 찾은 뒤 “모든 아마추어 탐사자의 꿈이 이뤄진 듯하다.”면서 “금으로 가득찬 상자들을 찾아 냈을 때 엄청난 양에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이어 “(보물을 찾은 것이) 복권 당첨된 것보다 더 짜릿하다.”며 “아직도 침대에 누우면 금 덩어리들이 보이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유물들은 앵글로-색슨족이 449년 켈트족을 몰아내고 잉글랜드 지방에 통일왕국을 수립한 7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총 1500점의 유물은 금 5㎏,은 2.5㎏ 등이 사용돼 사상 최대 규모로 평가받고 있다.이 가운데는 전쟁에 사용된 장식품과 검,보석이 세공된 칼자루,화려한 장식이 달린 투구 조각,라틴어 성경 문구가 새겨진 금띠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제단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대형 십자가 2~3개는 작은 상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접혀진 것으로 보여 이교도가 이들 유물을 묻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발굴단을 이끄는 로버트 블랜드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생각지 못한 환상적인 발견”이라면서 “영국의 암흑시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영박물관 대변인은 “모두 보물로 분류할 만한 것들이며 9세기에 씌어진 필사본 복음서(The Book of Kells)에 필적할 만하다.”고 말했다.대영박물관은 이 보물들을 분류하고 가치를 매기는 데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유물의 가격이 판정되면 발견자인 허버트와 땅 주인에게 가격에 상응하는 돈이 각각 지급될 예정이다.  유물은 현재 버밍엄박물관 및 미술관 창고에 보관돼 있으며, 일부는 25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일반에게 공개된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사설] 日 총리 ‘역사 직시할 용기’ 실천 기대한다

    일본에서 민주당이 집권한 뒤 한·일 관계가 일단 순탄한 길로 접어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 신임 일본 총리가 미국 뉴욕에서 가진 정상회담은 첫단추가 제대로 꿰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정상회담에서 하토야마 총리의 다짐이 이전 자민당 정권 때와 다르다. 말에 그치지 말고 실천으로 옮겨야 새로운 한·일 관계가 열린다.하토야마 총리는 “민주당 새 정부는 역사를 직시할 용기를 갖고 있다.”면서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고 밝혔다. 역사를 직시한다는 것은 일본의 새 정부가 과거사를 해결할 의지를 갖고 있음을 알려준다. 일본은 1995년 당시 사회당 출신 총리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담화를 통해 일제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했다. 하지만 이후 정권들은 틈만 나면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군비강화 등 말 따로 행동 따로의 모습을 보여 왔다.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실천하지 못한 셈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적절한 시기에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수준의 입장 표명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진심을 담아 한국·중국 등 주변국가 국민들의 마음에 닿도록 하길 바란다.또한 하토야마 총리의 역사 직시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군위안부와 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역사교과서 역시 진실이 수록되도록 앞장서야 한다. 재일동포 지방참정권 허용 문제는 내년 초 법안 제출 약속을 지키고 반드시 입법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도 일본 측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가시적 조치들이 이행되는 가운데 한·일 간 안보·경제 공조가 튼튼해진다면 새로운 양국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는 실천방안을 내놓은 뒤 일왕이 방한하는 절차를 통해 한·일 신시대의 진정한 개막을 지구촌을 향해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 [서울광장] ‘어른 일본’ 그리고 일왕의 방한/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어른 일본’ 그리고 일왕의 방한/김성호 논설위원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정권이 엊그제 닻을 올렸다. 새 각료 17명의 진용을 갖춘 ‘하토야마호’는 복지, 탈(脫)관료, 동아시아공동체 실현의 3대 과제를 밀어붙일 태세다. 취임회견에서 하토야마 총리는 “역사의 전환점으로 정치와 행정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첫날”이라는 강한 일성을 남겼다. 54년 만의 정권교체, 보수에서 중도좌파로의 전향에 각국이 긴장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일본의 지각변동을 한국만큼 민감하게 보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하토야마가 선거 전부터 양국관계의 개선발언을 잇달아 낸 만큼 정권출범에 거는 기대가 크다. 각료 17명 중 10명이 지한파인 데다 친한 성격의 한·일의원연맹 소속 민주당 의원이 51명이나 되는 점을 감안하면 양국관계를 겨눈 하토야마 발언들에 무게를 싣는 게 괜한 건 아닐 듯싶다. 가뜩이나 하토야마는 한국 중심의 외교를 강조해온 터다. 하토야마 발언들이 관심을 끄는 건 무엇보다 과거사 인식을 통한 청산의 구체적 실천제시에 있을 것이다. 야스쿠니를 대체할 추도시설 건립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재일교포 지방참정권 부여에도 적극적이다. “총리 취임 후에도 야스쿠니에 참배할 생각이 없다.”며 각료들에게 자숙을 촉구하겠다던 하토야마다. 한·일 과거사와 관련, 극우보수 입장으로 일관했던 자민당 정권에 화살을 쏜 하토야마 행보에 시선이 쏠리는 까닭이 분명한 것이다. 우호적 분위기와는 달리 한·일 양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얽히고설킨 앙금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지난달 일본에선 극우색채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제작한 두 종의 중학 교과서 출판을 법원이 모두 인정했다. 국내에선 사할린 징용 피해자들이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족 22명도 국가 상대의 첫 단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런 점에서 ‘하토야마호’ 출범 전날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방한 제의는 모험적인 돌파구 찾기로 보인다. 한·일 강제합병 100년을 맞는 해에 일왕의 한국 방문은 양국 모두에 큰 의미를 갖는다. ‘일왕’의 상징적 의미를 볼 때 혹여 방한 중 일왕의 신변에 가해질 수 있는 불상사에 대한 일본의 우려가 클 것이다. 국내에서도 ‘과거사 청산 없는 일왕 방한’에 대한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다. 일왕 방한이 자칫 양국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설득력을 갖는다. 이 대통령의 제의에 당분간 일본 정부는 고심할 것이다. 한·일 관계의 전향적 개선을 외치는 민주당 정권은 내년 7월 참의원선거라는 심판대를 거쳐야 한다. 일본인 정서를 감안할 때 하토야마 정권이 과거사 청산과 그를 통한 관계개선에 일방적으로 박차를 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제의는 하토야마 정권에 대한 강수의 정치 공세로까지 볼 수 있다. 공을 넘겨받은 일본으로선 중대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왕 방한을 과거사 청산의 정점에 놓을지, 악화시킬지는 양국 정부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류의 “일본이 드디어 어른이 됐다.”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인들은 정권교체로 그들의 삶이 향상될 것으로 믿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했다. 우리가 ‘어른 일본’에 대한 장밋빛 기대에만 머물게 아니라 무엇을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일 수 있다. 청산과 망각은 분명히 다르다. 일왕의 한국 방문은 그래서 결코 간단히 넘길 수 없는 무거운 화두인 것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사설] 일왕 방한으로 새로운 한·일 관계 열기를

    54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 어제 공식 출범했다. 특별국회에서 새 총리로 선출된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123년간 지속된 ‘관료정치의 상징’ 사무차관회의를 폐지하고 개혁 성향의 거당 내각체제를 갖춤으로써 변혁의 시동을 걸었다. 탈미입아(脫美入亞)를 모토로 ‘동아시아 공동체’를 모색하는 등 한국·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의 구체적인 협력체제 구축에 나설 태세다. 특히 총리와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는 등 한·일관계에 있어 과거 자민당 정권과는 다른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과 유럽연합과의 관계 개선 사례를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모델로 제시하고 내년 일왕 방한 초청의 뜻을 밝힌 것은 양국 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우경화 추세에 비춰볼 때 한·일관계를 낙관만 할 수는 없다. 독도 영유권 문제 등과 함께 과거사 변수가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른다. 민주당 내에는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우익성향 의원이 적지 않다. 하토야마 총리는 독도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일왕의 방한이 이뤄진다면 과거사의 악연을 끊고 양국 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대통령도 “한국을 방문하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방문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듯 방한의 실질(實質)이 중요하다. 과거 역사에 대한 진정어린 반성과 사죄가 전제되지 않는 한 국민감정만 악화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일왕의 방한이 한·일 신시대를 여는 도약대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 하토야마 “진정한 국민주권 국가로”

    하토야마 “진정한 국민주권 국가로”

    │도쿄 박홍기특파원│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16일 공식 출범, 일본 정치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날 오후 특별국회 총리지명선거에서 중의원 480명 가운데 327표를 얻어 제93대 총리로 선출됐다. 60명째 총리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날 저녁 7시30분쯤 일왕궁에서 임명식과 함께 각료 인증식을 가졌다. 정권 발족의 절차를 마친 뒤 첫 각료회의도 열었다. 하토야마 총리는 임명식에 앞서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총리로 선출되는 순간 일본의 역사가 바뀐다는 전율과 같은 감격과 함께 막중한 책임을 느꼈다.”면서 “진정한 국민 주권의 국가로 변화시켜 나가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정권교체의 승리자인 국민을 위해 정치가가 국정의 주도권을 쥔 탈관료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관련, “중장기적인 구상이지만 미국을 제외할 생각이 없다. 미국을 제외한 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국을 의식한 듯 당초 제시했던 ‘한국·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방향을 틀었다. 미국에서는 이 구상을 ‘반미적인’ 구상이라고 비판했었다. 하토야마 총리는 ‘대등한 미·일 관계’의 추진을 위해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면서 신뢰를 높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오는 23일쯤 미국에서 열리는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역시 “신뢰 구축에 가장 주안점을 두겠다.”며 미국에 대한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또 연립정권의 한 축인 사민당·국민신당과 공약한 미·일 지위협정의 개정에 대해 “기본 방침을 바꿀 생각이 없다.”면서 다만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도 시사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 “해결을 위해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납치문제를 잘 전개시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하토야마 총리는 국정의 우선순위에 대해 “공약으로 제시한 내용을 확실히 추진해 나가되 국민 가계에 도움이 되는 시책부터 펴나가겠다.”고 말했다. 내수의 활성화를 위해 복지 정책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아동 수당은 물론 가솔린의 잠정세율 폐지 등을 맨 먼저 시행, 국민이 정권교체를 피부로 느끼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오전 민주당 참의원 총회에서 “오늘은 역사의 전환점으로 정치와 행정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스타트(시작)의 날”이라면서 “오늘부터 우리는 미지의 세계와 조우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행동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날 부총리 겸 국가전략담당상에 간 나오토 대표대행, 외무상에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 후생노동상에 나가쓰마 아키라 정조회장 대리 등 17명의 각료를 임명했다. ‘미스터 연금’으로 불리는 나가쓰마 후생상은 자민당 정권의 추락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은 연금기록 부실관리를 파헤친 공을 인정받아 발탁됐다. hkpark@seoul.co.kr
  • 이대통령 “제한적 개헌 검토”

    이대통령 “제한적 개헌 검토”

    이명박(얼굴) 대통령은 15일 개헌 문제와 관련, “너무 광폭적으로 헌법에 손을 댄다면 이뤄질 수 없다.”며 “정치권에서 아주 신중하게, 현실성 있도록 범위를 좁혀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日교도통신 등과 인터뷰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연합뉴스, 일본 교도통신과 공동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행정구역 개편,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 문제를 놓고 거기에 통치권력, 권력구조에 대해 (제한적으로) 검토하면 될 것”이라면서 정치권에 여건이 성숙되면 권력구조, 선거주기 등과 관련한 개헌을 추진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선거구제와 관련, “지금 같은 (소)선거구제를 갖고는 동서(영·호남)간 화합이 이뤄질 수 없다.”면서 “지역적으로 너무 편차가 나는 것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선거구제에다 중선거구제를 플러스한다든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한다든가 여러 측면에서 정치권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여야 의원들도 그렇고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겠지만 이번 행정구역 개편이나 선거구제를 다소 수정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초당적으로 국가발전 목표를 향해 이 시대에 우리가 한번 힘을 모아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 문제와 관련, “양국관계의 거리를 완전히 없애는, 종지부를 찍는다는 의미가 있다.”며 “방한이 내년 중이라도 이뤄질 수 있으면 양국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천황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방문하느냐,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금까지 일왕이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다. 이 대통령은 “일본 천황이 세계를 다 방문했는데 한국은 방문하지 못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천황이 한국 방문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논의를 한다는 것은 한·일 관계에 거리감이 있다고 볼 수 있고 그렇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김은혜 대변인은 “내년에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데 일본 천황 방한이 이뤄지면 과거사에 종지부를 찍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16일 출범하는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에 대해 “이번에 새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에 한·일간 협력문제를 포괄적으로 한번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여야 관계에 대해서는 “여야 구분 없이 항상 만난다는 전제를 열어 두고 있다.”며 “야당이 지금 만날 여건이 안돼 있어서 그런 것이지, 나는 항상 만날 수 있도록 열려 있다.”고 야당과의 소통 의지를 나타냈다. ●北, 핵포기 진정성 안 보여 이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에 대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실질적 효과가 나타나 곤혹스러워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현재로서는 핵을 포기하겠다는 진정성과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 문제와 관련, “현재 세계가 다시 출구전략을 써야 되느냐, 쓰지 않아야 되느냐를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까지는 그래도 신중하게 임해야 된다고 본다.”며 “너무 빨리 출구전략을 썼기 때문에 다시 위기를 맞이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역대 日王 방한 추진사례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연합뉴스, 일본 교도통신과의 공동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밝힘으로써 내년 일왕의 방한이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일왕의 방한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거론된 것은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재임시절이다. DJ는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한·일 과거사 문제를 종결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일왕의 방한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 1998년 1월 일본이 일방적으로 한·일 어업협정을 파기하자 DJ는 일본 정부의 방침을 비난하면서 “일본과의 관계를 다시 세우려는 목적으로 일왕의 방한을 위한 여건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일왕 방한 추진을 포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취임 이후 DJ는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왕의 방한 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일왕의 방한 문제가 기존의 한·일 정상회담에선 단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특히 DJ는 지난 1999년 한·일 각료 간담회 참석차 제주도를 방문한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에게 “앞으로 오부치 총리와 협력해 아키히토 일왕 방한과 월드컵의 성공적인 공동개최를 이루고 싶다.”고 밝혀 일왕 방한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협력을 당부했다. 이에 따라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에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으나 결국 일본 정부의 반대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앞서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취임 이후 군사정부와 문민정부와의 차별성을 위해 일왕 방한을 추진했으나 국내 종군위안부 등 반일 여론에 의해 성사시키지 못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관계자는 “과거 대통령들은 대부분 일왕의 방한을 추진했기 때문에 정부가 일왕의 방한을 계속 초청해 놓은 상태라고 보면 된다.”면서 “그동안 일본측에서 일왕의 방한에 대해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日 하토야마 정권 출범

    │도쿄 박홍기특파원│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정권이 16일 공식 출범한다. 하토야마 대표는 이날 개회되는 특별국회에서 제93대 총리로 선출된다. 이어 아키히토 일왕으로부터 인증서를 받아 새 정부, 민주당 연립정권의 닻을 올린다. 민주당은 지난 9일 사민당, 국민신당과 연립 구성에 합의했다. 아소 다로 내각은 하토야마 정권 출범 직전에 총사퇴할 예정이다. 하토야마 대표는 15일 저녁 새 정권을 운영할 17개 부처의 각료 인선을 마쳤다. 조각에서는 정권교체에 부응할 수 있도록 당의 ‘간판급’ 정치인들이 대거 등용됐다. 하토야마 대표는 신설될 부총리급 부처인 국가전략국담당상에 간 나오토 대표대행, 외무상에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 관방장관에 히라노 히로후미 당 대표 비서실장, 재무상에 후지이 히로히사 당 최고고문 등을 내정했다. 가와바타 다쓰오 전 간사장은 문부과학상에 기용됐다. 연립정권의 한 축인 사민당 후쿠시마 미즈호 대표는 소비자행정상을, 가메이 시즈카 국민신당 대표는 금융상 겸 우정문제담당상을 맡았다. 또 나오시마 마사유키 정조회장, 마에하라 세이지 부대표, 오자와 사키히토 국민운동위원장, 아카마쓰 히로타카 선거대책위원장, 센고쿠 요시토 전 정조회장 등도 입각이 확정됐다.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은 이날 열린 참의원·중의원 총회에서 ‘거대 여당’을 이끌 간사장에 정식 취임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이날 오전 민주당 상임간사회에서 “지금부터 시작이다. 국민 중심의 정치를 구축하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다. 일치 단결해 일본의 정치를 밝히자.”고 호소했다. 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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