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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가 불 지핀 남·북·미 정상회담… 문정인 특보 “5~6월 성사 가능성”

    트럼프가 불 지핀 남·북·미 정상회담… 문정인 특보 “5~6월 성사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남·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해 주목된다.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남·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관측이 많지만 당사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북미·남북 정상회담이 열려 성과를 거두면 남·북·미 정상회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 정상이 종전선언에 합의하면 남·북·미 정상이 싱가포르에 함께 모여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당시 3자 정상회담은 무산됐지만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 중대한 진전에 합의하면 이를 의제로 3자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도 한반도 정세가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보다 훨씬 좋다면서 오는 5~6월 남·북·미 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 특보는 12일 런던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에 대한 전망’ 콘퍼런스 기조 강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포함하는 대화 메커니즘이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으로 되살아났다”고 평가했다. 문 특보는 “한미 두 정상이 만났을 때 대화로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의 중요성에 동의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대화와 협상의 촉진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나는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교착상태의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에 대해 “희망적이고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문 특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5∼6월 일본을 방문하면 서울을 방문할 시간이 날 수 있는데 북한이 만남에 대한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6∼28일 새 일왕 즉위 후 첫 일본 국빈으로 방일한 뒤 한 달 만인 6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이봉창 친필 편지·송금증서 일반에 공개

    이봉창 친필 편지·송금증서 일반에 공개

    지난 8일 문화재로 등록된 이봉창(1900∼1932) 의사의 친필 편지와 의거자금 송금증서가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9월 15일까지 여는 테마전 ‘황제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에서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봉투 및 의거자금 송금증서’(등록문화재 제745-2호)를 12일부터 선보인다고 10일 밝혔다. 이 유물들은 1932년 일본 도쿄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 이봉창이 김구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하며 보낸 편지와 이를 받은 김구가 돈을 송금한 증서 일체로 구성된다.이봉창은 의거를 위해 일본에 도착한 뒤인 1931년 12월 24일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라는 이름으로 편지를 부쳤다. 그는 수신인 ‘백정선(白貞善) 선생’에게 의거를 ‘물품’에 비유하면서 “물품은 확실히 다음 달 중에 팔리니까 아무쪼록 안심하십시오”라고 반흘림체 일본어로 적었다. 김구는 이에 1931년 12월 28일 요코하마 쇼킨 은행 상하이 지점을 통해 100엔을 보냈다. 박물관 측은 “이봉창 유물이 거의 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씨줄날줄] 日 새 연호 ‘레이와’ 여진/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日 새 연호 ‘레이와’ 여진/황성기 논설위원

    일본에서 근무한 1990년대 후반 상당수 일본인은 출생 연도나 중요한 시기를 언급할 때 서력보다는 연호를 더 선호했던 기억이 있다. 1963년생이라면 쇼와 38년생이고 오사카만국박람회가 열렸던 1970년은 쇼와 45년, 이런 식이다. 일본인과의 대화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연호에 의한 연도는 외국인에게 진땀을 흘리게 한다. 쇼와 연도에 25를 더하면 서력의 뒤 두 자릿수가 되지만 일본말로 대화하면서 암산까지 하기란 쉽지 않다. 나루히토 왕세자가 일왕으로 즉위하는 5월 1일부터 일본의 연호는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뀐다. 2019년생 아기 가운데 4월 30일 안으로 태어나면 헤이세이 31년생이지만 5월 1일부터는 레이와 1년생이 된다. 헌법상 상징으로만 존재하는 일왕인데도 서기 645년부터 1374년간 연호를 써온 일본에서 생활 곳곳과 행정 문서에 연호 사용은 건재하다. 교도통신의 지난 1, 2일 조사에서 일상생활이나 일을 할 때 서력과 새 연호 중 어느 쪽을 쓸지를 묻자 45.1%가 ‘양쪽을 다 쓰겠다’고 대답할 정도다. 새 연호 레이와에 일본은 들떠 있지만 여진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의 247개 연호가 중국 고전에서 빌려 온 것이라는 ‘반성’에서인지 일본 정부는 새 연호는 고전 ‘만요슈’(万葉集)에서 따왔다고 발표했다. ‘매화의 노래’ 서문에 나오는 ‘초봄 좋은 달이 뜨니 공기 맑고 바람은 부드럽다’(初春令月氣淑風和)가 그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젓는 전문가도 있다. 고지마 쓰요시 도쿄대 교수는 이 구절 자체가 4세기 중국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 중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 평온한 기분이 된다’(惠風和暢)’는 부분과 겹친다고 지적한다. 고지마 교수는 “매화는 중국의 국화로 일본에 전해졌다”면서 “일본의 전통이 중국 문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실증”이라고 말했다. 일본 국민은 영국인만큼이나 왕실을 좋아하는데도 새 연호 제정에 국민의 뜻은 반영되지 않았을뿐더라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에 이용됐다는 비판도 있다. 1979년 ‘연호법’이 만들어진 이후 연호 제정은 왕실에서 일본 정부로 넘어갔다. 지방지인 시나노마이니치신문은 4월 2일자 사설에서 “선정 과정이 비공개이고, 검증도 불가능하고,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한 선정”이라면서 “연호는 총리의 사물(私物)이 아니며, 레이와를 총리가 대국민 메시지로 쓰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레이(令)는 명령, 호령, 칙령처럼 사람을 복종시키는 뜻으로 극우보수 아베답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일본인의 73.7%가 ‘호감을 갖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진은 오래갈 것 같지 않다. marry04@seoul.co.kr
  • 美원폭에 日 항복했지만… 광복 직전 ‘독립작전’은 이미 시작됐다

    美원폭에 日 항복했지만… 광복 직전 ‘독립작전’은 이미 시작됐다

    “일본은 오늘 정오를 기해 미국에 항복한다.”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1901~1989)가 떨리는 목소리로 종전을 선언했다. 광복을 기뻐하는 국민의 만세 소리가 거리에 가득했다. 그러나 이날 저녁 중국군으로부터 일본의 항복 소식을 전해 들은 김구(1876~1949)는 크게 낙담했다. 그는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일본의 항복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 ●일본 항복 받아낸 미국의 ‘리틀보이’ 이날 히로히토가 발표한 종전 방송은 “짐은 제국정부(일본)로 하여금 미·영·소·중 4국에 대해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하게 했다”로 시작한다. 히로히토가 말한 ‘공동선언’이란 1945년 7월 26일 발표한 독일 포츠담 선언을 가리킨다. 연합군이 일본에 항복을 권고한 이 선언에는 전후 일본 처리 문제 등이 담겼다.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이미 연합군에 항복했다. 포츠담 선언 당시 일본은 혼자서 연합군과 싸우고 있었다. 사실상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일본이 항복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결국 미국은 일본 도심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코드명 ‘리틀보이’가, 9일 나가사키에 ‘팻맨’이 투하됐다. 10일 일본은 스위스에 있던 국제연맹(유엔의 전신) 본부에 포츠담 선언 수락 의사를 전달했다. 일본이 항복한 직접적 이유는 원자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히로히토가 발표한 종전 방송에도 “적국은 잔학한 원자폭탄을 사용해 수많은 국민들을 살상하고 있다. 그 참상의 범위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더이상 교전을 계속한다면 결국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하고 인류의 문명까지 파멸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짐작할 만한 구절이다. 민중운동가 함석헌(1901~1989)은 원자폭탄 투하 뒤 찾아온 광복에 대해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고 했다. 그만큼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뉴라이트’ 계열의 일부 학자는 “우리의 광복은 미국의 원자탄 두 발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는 미국의 폭탄이 없었다면 나라를 되찾지 못했을까. ●독립단체 “광복 위한 결정적 시기 온다” 확신 1930년대 후반부터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은 일제가 패망하고 한국이 독립하는 ‘결정적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다. 1941년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며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이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상대로 국외 무장운동 세력과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격하고 동시에 국내에서도 폭동과 무장봉기에 나서면 충분히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2년 윤봉길(1908~ 1932)의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 뒤 중국 각지를 떠돌다가 1940년 충칭에 터를 잡았다. 김구는 이때부터 한국광복군을 훈련시키며 국내에 진입할 준비를 했다. 광복군은 지청천(1888~1957)을 총사령관으로 1940년 9월 결성된 임정 최초의 정규군이다. 초기에는 장교 30여명으로 이뤄진 ‘사병 없는 부대’였다. 1942년 김원봉(1898~1958)이 조선의용대 300여명을 이끌고 합류한 것이 큰 힘이 됐다. 광복군은 1945년 4월쯤 340여명, 같은 해 8월 700여명 정도였다. 아무리 많아도 1000명을 넘지는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견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군은 군속을 포함해 최대 750만명으로 추산된다. 임정이 일대일로 맞붙어 이길 상대가 아니었다. 일부 언론에서 “원자탄이 없었어도 김원봉 등 걸출한 혁명가들이 일본을 몰아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우리의 역량을 지나치게 과장한 것이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 연구위원은 “광복군의 규모와 전투 능력을 아무리 높게 쳐도 일본을 몰아내기는 어려웠다. 광복군은 그저 항일투쟁의 상징적 존재였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일본군 750만… “광복군이 몰아내긴 힘들어” 그렇다고 임정이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체념에만 빠져 있었을까. 아니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 지위를 확보해 우리 스스로 독립을 얻어내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44년에는 버마(현 미얀마) 임팔전투에 참가해 1945년 7월 일본군이 패배해 철수할 때까지 영국군을 도왔다. 1945년 8월 중국에 있던 미국 정보기구 육군정보전략본부(OSS)에서 광복군 38명이 특수요원 훈련을 마치고 국내 잠입을 기다렸다. 미군과 함께 한반도 진공 작전도 추진했다. 역사소설 전문 이원규(72) 작가는 “일본이 일주일만 늦게 항복해 광복군이 한반도에서 독립전쟁을 수행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전후 일본 처리 문제를 두고 국제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장제스(1887~1975) 중국 국민당정부 총통은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1874~1965) 영국 총리의 반대를 물리치고 한국의 독립을 명문화했다. 김구 등 임정 수뇌부의 간절한 청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애초 한국은 카이로 회담의 논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장제스가 예외 조항까지 만들어 우리를 도왔다. 독립을 갈망하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인도의 독립운동가로 훗날 총리가 되는 자와할랄 네루(1889~1964)는 한국을 “아시아 식민지 국가 가운데 열강에게 독립을 보장받은 유일한 나라”라고 부러워했다. 장 연구위원은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았어도 일본은 소련의 참전 등으로 결국은 패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당시 한반도는 (임정의 다각적 노력 등이 맞물려) 광복을 맞이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연합국 덕에 해방? 독립노력 폄하해선 안돼” 일부 학자들은 “연합국이 해방을 가져다줬다”고 말한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일제를 이길 힘이 없었고 국제사회도 임정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제패를 꿈꾸며 전 세계로 세를 넓혀 가던 강대국 일본을 우리 혼자 막지 못했다고 해서 독립을 위한 선조들의 노력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연합국이 임정을 승인하지 않았던 것은 일본이 항복한 뒤 전리품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한시준(65)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해방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어느 나라보다도 오래 그리고 치열하게 일제와 싸웠다. 대한민국은 임정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 세력의 길고 긴 투쟁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광복 이후 우리를 기다린 것은 ‘한반도 분단’이었다. 당시 소련은 8월 9일 일본에 선전포고한 뒤 거침없이 한반도로 진격했다. 당시 미군은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어 한반도로 바로 들어오기 어려웠다. 결국 미국은 소련에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에 나눠 들어오자”고 제안했다. 당시 임시로 친 철조망이 지금까지도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놨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우리가 좀더 주도적으로 독립을 얻어냈다면 해방 이후 한반도 분단과 전쟁, 이념 갈등 등은 없었을 수도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3각 동맹 균열 우려… 미, 한일 간접 중재 나섰나

    외교부 “日 새 연호와 함께 양국 발전 기대” 미국이 잇따라 한·미·일 공조를 공개적으로 강조하면서 악화되는 한일 관계에 대한 ‘간접 중재’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29일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 결과에 대해 1일(현지시간) 자료를 내고 “한미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 정책 전반에 걸친 협력, 또 한·미·일 3각 협력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함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던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귀국길에 일본을 방문해 가나스기 겐지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과 회담한 것도 한·미·일 공조의 일환으로 읽힌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도 지난달 27일 한 강연에서 “역내 주요 안보 및 경제현안은 한국과 일본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한일이 좋은 관계일 때 한·미·일 3국 모두 혜택을 얻는다고 말한 바 있다”고 전했다. 특히 경제 분야의 미중 간 경합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은 한국, 일본, 인도, 호주, 아세안 등을 포함하는 인도·태평양 진영을 구축할 필요성이 커진 상태다.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아세안 시장이 겹쳐 한미 경제 협력도 가능하다. 한편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다음달 새 일왕 즉위에 맞춰 일본이 새로운 연호(레이와·令和)를 발표한 것에 대해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나루히토 즉위 새달부터 ‘레이와’시대… 中 아닌 日고전 첫 인용

    나루히토 즉위 새달부터 ‘레이와’시대… 中 아닌 日고전 첫 인용

    아키히토의 ‘헤이세이’ 30년 만에 종료 아베 “봄 매화처럼 꽃피우는 일본 염원” 보수 세력 의식해 日 시가 문구서 따와 주민등록 관련 서류 등 일제히 변경 작업 오는 5월 1일 차기 나루히토(59) 일왕의 즉위에 맞춰 새롭게 바뀔 일본의 연호가 ‘레이와’(令和)로 결정됐다. 현 아키히토(86) 일왕의 ‘헤이세이’(平成) 시대는 그의 퇴위일인 4월 30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일본 정부는 1일 전문가 회의와 임시 각의(국무회의) 등을 잇따라 열고 나루히토 일왕 시대의 연호를 레이와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레이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요슈’의 문구에서 인용한 것으로, 중국이 아닌 일본 문헌에서 연호가 채택된 것은 이번 248번째 연호가 처음이다. 레이와는 하나의 단어는 아니고 만요슈에 나오는 특정 문장에서 두 글자를 따다 붙인 것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레이와에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맞대면 문화가 태어나고 자란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유구한 일본의 역사를 계승하면서 봄철에 화사하게 피어나는 매화처럼 일본인 모두가 내일을 향한 희망과 함께 꽃을 피워 나가자는 염원을 담았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국문학, 한문학, 일본사, 동양사 등 4개 분야 전공 학자들에게 연호 후보의 제시를 의뢰한 뒤 이 중에서 최종적으로 레이와를 골랐다. 연호 결정 과정에서 보수세력은 “이번에야말로 일본 고전에서 따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아베 총리는 이를 의식해 “중국뿐 아니라 일본의 고전도 포함시켜 검토해 달라”고 선정 작업 참여 인사들에게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키히토 일왕은 2016년 8월 고령을 이유로 장남인 나루히토 왕세자에게 자리를 넘기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왕의 생전 퇴위는 제119대 고카쿠 이후 202년 만이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차기 연호의 공표 시점을 놓고 격론이 오갔다. 직전 히로히토 일왕(연호 ‘쇼와’)까지는 거의 모두 일왕의 사망에 따른 왕세자 계승이었기 때문에 발표 시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정부 측은 “국민생활에 미칠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조기 확정을 추진했으나 보수 정계 인사 등은 차기 일왕이 즉위한 후에 공표할 것을 주장했다. 그 절충안으로 이번과 같은 ‘즉위 1개월 전 공표’가 결정됐다. 일본에서 연호는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왕을 중심으로 하나의 시대를 구분 짓는 성격이 강해졌다. 한 명의 왕에 하나의 연호만 둔다는 뜻의 ‘일세일원’(一世一元) 원칙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재위기간 중이라도 천재지변이나 환란을 만나면 사회 분위기 쇄신을 위해 새 연호를 도입하는 등 교체가 잦았기 때문에 시대를 가르는 의미가 약했다. 일본은 645년 제36대 고토쿠 일왕의 ‘다이카’(大化)를 시작으로 중국에서 받아들인 이 제도를 140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본산인 중국에서조차 사라진 이 제도를 고수하는 데는 ‘천황(일왕)제’를 통해 국가적 구심점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크다. 이날 아사히신문, 도쿄신문 등은 일제히 차기 연호 결정 소식을 호외로 발행했다. 총리관저 공식 트위터로도 중계된 동영상 시청자는 최대 46만명에 달했다. 도쿄 시부야의 대형 전광판 등을 통해 발표를 지켜보던 많은 시민들은 박수를 쳤고, 일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차기 연호 확정에 따라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1개월 동안 주민등록 정보 변경 등 다양한 행정 시스템 개편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달력, 도장 등 관련 업체들은 대목을 잡기 위해 당장 이날부터 레이와 연호가 들어간 제품의 생산을 시작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일본 새 연호 ‘레이와(令和)’…처음으로 일본 고전서 인용

    일본 새 연호 ‘레이와(令和)’…처음으로 일본 고전서 인용

    오는 5월 1일 즉위하는 나루히토(德仁·59) 새 일왕 시대를 가리킬 연호(年號)가 ‘레이와(令和)’로 결정됐다. 레이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요슈(万葉集)에 나오는 말이다. 일본이 서기 7세기에 연호제를 도입한 이후 중국 고전이 아닌 일본 고전에서 연호를 인용한 것은 처음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일 나루히토 새 일왕 즉위를 한 달 앞두고 열린 임시 각의(국무회의)에서 헤이세이(平成) 이후의 연호로 레이와(令和)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기자회견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만요슈는 우리나라의 풍부한 국민 문화와 오랜 전통을 상징하는 국서”라면서 “새 연호가 폭넓게 받아들여져 일본인의 생활 속에 뿌리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레이와에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맞대면 문화가 태어나고 자란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면서 “화사하게 피어나는 매화꽃처럼 일본인들이 내일을 향한 희망과 함께 꽃을 크게 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새 연호 결정에 앞서 총리 관저에서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 등 9명이 참가한 전문가 회의를 열어 의견을 들었다. 아울러 중·참의원 의장단을 상대로도 의견을 청취했다.올해 12월 만 86세가 되는 아키히토 일왕은 2016년 8월 고령을 이유로 큰아들인 나루히토 왕세자에게 자리를 넘기고 생전에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일본에서 ‘덴노’(天皇)로 불리는 일왕의 생전 퇴위는 1817년 고카쿠 일왕 이후 202년 만이다. 이후 일본 정부는 아키히토 일왕 연호인 헤이세이를 대체할 새 연호 제정 등 퇴위 준비 작업을 해왔다. 나루히토 새 일왕은 5월 1일 즉위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일본 1일 오전 11시 30분 새로운 연호 발표...‘헤이세이’ 시대 종막

    일본 1일 오전 11시 30분 새로운 연호 발표...‘헤이세이’ 시대 종막

    현 아키히토 일왕 시대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를 이을 차기 연호가 1일 발표된다. 서기 연도 이외에 국왕의 대물림에 따라 연호를 바꾸는 거의 유일한 국가인 일본에서 다음 시대를 이을 명칭 공표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접고 새로운 장을 여는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일본 정부는 1일 오전 임시 각의(국무회의)에서 차기 연호를 무엇으로 할지 최종 결정한 뒤 11시 30분 공식 발표한다. 내부 논의 끝에 30년 전 오부치 게이조 당시 관방장관이 했던 것처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정부 대변인)이 발표를 직접 담당한다. 이어 30분 후인 낮 12시 아베 신조 총리가 새 연호의 의의 등을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발표한다. 연호가 바뀌는 것은 오는 4월 30일 아키히토 일왕이 건강상 등 이유로 퇴위하고 다음날(5월 1일) 나루히토 왕세자가 즉위하는 데 따른 것이다. 일본은 왕이 바뀌면 연호도 교체한다. ‘헤이세이’는 현 아키히토 일왕이 1989년 1월 왕위에 오르면서 선포한 연호로 올해 ‘헤이세이 31년 4월 30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연호 공표를 앞두고 일본 사회의 관심은 이번에는 중국 고전에서 탈피할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645년 첫 연호인 ‘다이카’(大化)로부터 ‘헤이세이’에 이르기까지 247개 연호 중 의미가 확인 가능한 것들의 출처는 모드 중국 고전이었다. 일본 정부는 국문학, 한문학, 일본사, 동양사 등 4개 분야의 학자들에게 연호 선정을 의뢰했다. 학자들이 각자 2~5개의 안을 제시하면 정부가 최종적으로 몇개 후보를 추려 각의에서 확정하는 방식이다. 아베 총리는 “중국뿐 아니라 일본의 고전도 포함시켜 검토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를 둘러싼 의견은 갈리고 있다. 자민당 내 보수세력은 일본 고전에서 선정되기를 바라는 열망이 강하지만, 지금까지의 전통대로 하면 되지 굳이 일본의 고전에 얽매일 것은 없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이번 연호 공표 시점을 놓고 일본 정부 안에서는 상당한 격론이 오갔다. 직전 히로히토 일왕(연호 ‘쇼와’)까지는 거의 대부분 부친의 사망에 따른 아들의 계승이었기 때문에 발표 시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직접 시점을 정하는 것이어서 상황이 다르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정부측은 가급적 일찍 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보수파들은 차기 일왕 즉위 이후에 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측은 “새 연호를 미리 공표함으로써 국민생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도였고, 보수파는 “한 명의 왕에게는 한 개의 연호만을 둔다는 이른바 ‘일세일원’(一世一元)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 절충점으로 1개월 앞선 4월 1일로 확정됐다. 차기 연호가 공표되면 지방자치단체는 주민표(주민등록등본에 해당) 발행이나 연금 관련 절차 등에 쓰이는 정보시스템 변경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일본 정부는 이런 작업이 나루히토 왕세자 즉위 전까지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국회 찾은 101세 독립유공자…“나경원은 사퇴하라”

    국회 찾은 101세 독립유공자…“나경원은 사퇴하라”

    역사단체들에 이어 독립유공자와 독립유공자 후손들도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으로 국론이 분열됐다”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비판했다. 지난 22일 국회 정론관에 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을 지냈던 101세 독립유공자 임우철 애국지사와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모여 나 원내대표의 반민특위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임우철 지사가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 658인이 이름을 올린 성명서를 떨리는 목소리로 대표 낭독했다. 그는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 시점에, 자주 독립국가의 완성을 위한 열망에 소금과 재를 뿌리고 반민특위의 숭고한 활동을 역사왜곡하고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더불어 국민들에게 무한한 실망감을 안겨준 나경원은 의원직을 사퇴하고 역사와 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이름으로 요구한다. 과거 나경원은 일왕의 생일잔치에 참석하는 행동 등으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넘어서 토착 일본왜구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100년 전 이맘 때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대표적 친일파 이완용은 3월 1일 전 국민적 독립항쟁을 무산시키고자 3월 항쟁을 향하여 ‘몰지각한 행동’이고 ‘항일운동은 국론분열’이라는 망언을 한 것처럼 오늘날에 와서는 나경원이라는 몰지각한 정치인이 3월 독립항쟁과 임시정부 100주년에 이완용이 환생한 듯한 막말과 행동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그것을 당연한 듯한 행동하는 나경원을 우리는 이 자리에서 순국선열과 독립애국지사님들의 숭고한 이름으로 강력히 응징하고 규탄하고자 한다. 친일청산의 가치를 부정하고 반민특위의 친일청산 노력을 부정하는 나경원의 의원직 사퇴와 함께 자유한국당의 입장을 밝혀줄 것을 황교안 대표에게 요구한다” 앞서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여성사학회 등 29개 역사단체도 지난 19일 공동성명을 통해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반민특위가 좌초되고 반민족행위자 처벌이 무산된 것을 국민 대다수는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친일 부역자들이 오래도록 권력자로 군림하며 우리 사회를 민주적 공동체로 다시 세우려는 노력을 욕보였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고 주장하는 자가 속한 나라는 과연 어디란 말인가. 반민특위를 부인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나 원내대표를 비판했다.고령의 독립유공자까지 비판하고 나서자 나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페이스북에 “송구하고 죄송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연로하신 독립운동가께서 직접 국회에 발걸음 하도록 한데 대해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 원내대표는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반문특위’”였다면서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 색출해서 전부 친일 수구로 몰아세우는 이 정부의 ‘반문 특위’를 반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4월 김정은 입에 쏠린 눈…“원포인트 남북회담 하라”

    4월 김정은 입에 쏠린 눈…“원포인트 남북회담 하라”

    김 위원장 4월초 최고인민회의 전 발표 주목북측이 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하면서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산가족 화상상봉, 남북 공동유해발굴 등 진전을 앞둔 남북 사업의 경우 일단 유보가 불가피해졌다. 무엇보다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혔던 ‘새로운 길’에 대해 발표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북측은 남북 연락관 접촉을 통해 ‘북측 연락사무소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철수한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통보하고 공동연락사무소에서 철수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철수결정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북측이 조속히 복귀해 남북간 합의대로 남북연락사무소가 정상 운영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부는 다음주 근무인원을 유지하면서 북측의 복귀를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현실적으로 북측 인원들이 철수했기 때문에 이산가족의 화상상봉 협의는 어려워 진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음달 1일로 예정됐던 남북 공동 유해발굴, 군사분야의 남북공동군사위원회 구성이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왕래 등도 당분간 유보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섣불리 접근하기보다 우선 시간을 두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천 차관은 “연락사무소 채널 외에 군을 통한 채널 등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며 “북측 인원 철수가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예단하고 판단하기 보다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을 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날 북측 인원은 전체 철수했지만 일부 서류만 챙겼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19일 김형준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 지재룡 중국 대사, 김성 유엔 대표부 대사 등이 평양으로 귀국한 것과 연관지을 경우 김 위원장이 새로운 길을 발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한에 대한 섭섭함, 불만을 넘어 압박도 무의미하다는 의미 일 수 있고, 북한의 새로운 길에 대한 발표가 임박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15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미국과) 이런 식의 협상을 할 생각이나 계획도 결코 없다”며 “짧은 기간 안에 (지도부가)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담긴 새로운 길 발표에 대해 상기시켰다. 일각에서는 4월 초로 예정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 이전에 김 위원장이 국무위원장 명의의 공식 성명을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리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했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 위원장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지속할지 매우 심각하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에 보다 적극적인 대미 설득을 압박하기 위해 북측 인원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최근 주요 국가들의 공관장을 평양에 불러들인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작년 5월 26일처럼 당장 주말에라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약식 정상회담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일왕 즉위 시기에 맞추어 오는 5월 일본을 방문한다면 한국까지 방문해 판문점에서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아베, 4월 하순 트럼프와 회담 추진…미일 정상 3개월새 3번 회동

    아베, 4월 하순 트럼프와 회담 추진…미일 정상 3개월새 3번 회동

    日언론 “대북 대응·미일 무역협상 등 협의 목적”트럼프, 5월 방일·6월 오사카 G20 참석 예정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말 일본을 방문이 확정된 가운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내달 하순 미국을 방문,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에 대해 조율에 들어갔다고 교도통신이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21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도 참석 예정이어서 내달 아베 총리의 방미가 확정되면 미일 정상이 3개월새 3번 회동하게 되는 셈이다. 아베 총리의 방미가 실현되면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참석 이후 처음이 된다. 미일 정상회담으로는 지난해 11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회담 이후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 한달 전인 내달 26~27일 아베 총리가 내달 26~27일쯤 미국을 방문하는 방안을 놓고 일본 정부가 미국 측과 조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는 “이 시기에는 미중 정상회담에 열릴 가능성도 있다”며 이 때문에 아베 총리가 유럽을 먼저 순방한 뒤 방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일 정상회담에선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 무산으로 끝난 북한 문제와 관련, 향후 대응 방침을 조정하면서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되지 않는 한 제재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할 것으로 교도는 예상했다. 특히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일 간 무역협상에 대해선 현재 양측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 측은 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일본 측은 여기에 서비스 분야가 포함되지 않는다며 FTA가 아닌 ‘물품무역협정’(TAG)이라고 주장해 왔다. 회담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5월 26~28일 일본 국빈 방문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아키히토 일왕은 4월 30일 물러나고, 나루히토 왕세자가 왕위를 잇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 일왕을 만나는 첫 외국 정상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오사카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내달 아베 총리의 방미 일정이 확정되면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5월, 6월을 포함해 3개월 연속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아사히는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일본 측이 트럼프 대통령이 방일하는 5월까지 기다리지 않고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등에 대해 미국과의 연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李총리 “北 비핵화 불신으로 지난 9년간 빈손” 한국당 질타

    李총리 “北 비핵화 불신으로 지난 9년간 빈손” 한국당 질타

    김재경 “北처럼 핵무장을” 발언에 반박 “한미동맹 공고함 정부도 생각하고 있어 올 상반기 내 한일 정상회담 개최 기대” 박상기 “김학의 동영상 직접 보지 못해 김학의·장자연 조사연장 2개월 내 매듭”이낙연 국무총리와 자유한국당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한국당 김재경 의원이 논란이 됐던 나경원 원내대표의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수석대변인’ 주장을 언급하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도 무장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총리는 “그렇지 않다. 한미 동맹의 공고함은 의원님 못지않게 정부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북한은 핵을 포기하기 어렵고 그는 신뢰할 수 없는 지도자이지 않나”라고 재차 묻자 이 총리는 “어떻게 하기를 바라나. 그런 접근 방식으로 9년(이명박·박근혜 정부)간 무엇을 이뤘는지 반성하고 있고 눈앞의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질타하듯 답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이 크게 반발했다. 이 총리는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응책을 묻는 질문에 “회담 개최를 위한 물밑 대화가 진행 중이며 상반기 안에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며 “오사카 G20 정상회의(6월)와 일왕 취임 축하연(10월) 이전에라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정부의 대북특사 파견 여부에 대해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북특사를 보낸다면 사전 협의가 필요한데 현재 사전 협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정부질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과 고 장자연씨 사건 등을 놓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 핵심 증거물로 꼽히는 당시 동영상을 봤느냐는 질의에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보고받았다”면서 “조사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박 장관은 김학의·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조사기간을 2개월 연장할 것을 건의한 데 대해 “2개월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며 “진상조사단 조사 결과가 마무리되는 대로 필요한 부분에 수사를 착수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리는 나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과 선거제 개혁 문제 등을 문 대통령이 보고받았냐는 질문에 “아는 것 같다”며 “오늘 아침에도 국회에 대해 걱정했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日 차기 연호 공표까지 10여일…이번에는 중국色 탈피할까

    日 차기 연호 공표까지 10여일…이번에는 중국色 탈피할까

    나루히토 일본 왕세자의 차기 국왕 즉위에 따른 4월 1일 새 연호 발표가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번에는 일본 정부가 중국 고전 인용에서 탈피할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현재의 ‘헤이세이’(平成)를 이을 차기 연호를 확정하기 위해 여러 후보 중에서 압축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아사히신문은 19일 “지금까지 연호는 중국의 고전으로부터 선택돼 왔지만, 현재 검토되고 있는 후보 중에는 일본의 고전이나 국서에서 유래된 것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일본과 중국 양쪽 모두에 뿌리를 둔 연호가 채택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일본의 연호는 지금까지 총 247개가 있지만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연호는 모두 중국 고전에서 채택한 것이었다. 중국의 고전 중 해당하는 내용에서 발췌해 2개의 한자로 구성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지난 13일 국회 답변에서 최종 선정 절차와 관련해 “국문학, 한문학, 일본사학 또는 동양사학 등에 학식이 있는 분들을 위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사히는 “아베 총리의 지지 기반인 보수파에서도 일본문학 등에 근거를 둔 연호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간단하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고전이 한자의 뜻이 아닌 발음을 따서 쓰인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한자 자체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사히는 “일본의 서적에서 좋은 의미의 두 글자를 찾으면 그 근본이 되는 출처는 중국의 고전이 되는 사례가 많아진다”며 이 때문에 “중국과 일본의 양쪽 고전에 근거할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분석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8일 국회에서 새달 1일 연호 발표 시점에 맞춰 담화를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8월 중도 퇴위 의향을 밝힌 아키히토 일왕은 4월 30일 퇴위하고, 다음날인 5월 1일 나루히토 왕세자가 즉위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새 일왕 즉위를 한 달 앞둔 내달 1일 새 연호를 발표할 예정이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일본서 요즘 정보 전산시스템 손질에 분주한 이유

    일본서 요즘 정보 전산시스템 손질에 분주한 이유

    일본 정부가 14일 정보 전산시스템 혁신을 위한 범정부 부처 회의를 갖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새로운 일왕의 즉위에 따라 5월1일 0시부터 나루히토(德仁·59) 일왕 체제의 새 연호(年號)를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연호는 일본 공문서와 일부 우익 매체 등에서는 많이 쓰인다. 일본 정부는 이날 각 부처와 독립 행정법인의 시스템뿐만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금융 및 교통 등 민간기업의 인프라와도 원활하게 호환되는 지 등의 대응에 대해 확인했다. 또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10일간의 연휴기간, 국민 생활에 미칠지 모르는 영향을 재확인하기로 했다고 교도통신 등 일본 매체들이 전했다. 5월 1일부터 적용될 새 연호는 한달 전인 4월 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다. 새 연호 선정과 관련해 이번에는 중국 고전 의존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연호 선정을 관장하는 일본 정부(내각관방) 관계자는 13일 국회 답변에서 선정 절차에는 높은 식견을 가진 전문가들이 참여한다며 국문학자와 일본사학자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문학자는 일본어 전문가이고, 일본사학자는 일본 고대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정통한 학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전의 연호 선정 과정이 한문학자와 동양사 전문가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과 비교해 달라진 부분이다. 일본은 서기 645년 제36대 고토쿠(孝德) 일왕(덴노)의 다이카 개신(改新) 때 연호를 들여왔다. 일본에는 연호와 관련한 간단한 ‘원호법(元?法)이 있다. 원호 즉 연호는 일본 정부가 정하고, 왕위 계승이 있을 때에만 생산한다는 일세일원(一世一元) 원칙을 두고 있다. 선정 조건으로 국민의 이상에 어울리는 좋은 의미, 읽고 쓰기 쉬운 것, 지금까지 사용된 적이 없는 것, 일상에서 속되게 사용되지 않는 것 등이다. 영문 이니셜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의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부터는 영문자로 표기될 때의 머리글자가 어떻게 되는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전의 메이지(M), 다이세이(T), 쇼와(S)와 구분하기 위해 H가 영문 머리글자로 표기되는 헤이세이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루히토 새 일왕의 연호로는 M, T, S나 H가 머리글자로 표기될 수 없는 한자가 선정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에서 연호의 보도는 특종 보도가 오보가 판명되는 일이 있는 등 경쟁이 치열하고 민감한 분야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고종은 망국 책임자… 대중문화가 돈벌이 위해 역사왜곡”

    “고종은 망국 책임자… 대중문화가 돈벌이 위해 역사왜곡”

    ‘시대를 잘못 타고난 개혁군주 고종(1852~1919), 조선을 지키려다가 억울하게 살해된 명성황후(1851~1895),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에게 독립의식을 키워 준 덕혜옹주(1912~1989).’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지금 대한민국의 영화와 드라마, 소설, 뮤지컬이 보여 주는 조선 황실 인물의 모습이다. 이들은 열강의 조선 침탈 압박에도 나라를 구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그려진다. 문제는 이런 내용이 대부분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부 문화계가 돈벌이를 위해 부끄러운 우리 역사까지 항일이라는 이름으로 세탁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문화 콘텐츠의 특성상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상상이 허용되지만 일부 작품은 가히 역사 창조 수준”이라고 비판한다. 조선 황실의 과오를 희석시키고자 망국의 책임을 일본에게 모두 전가하는 ‘분노 마케팅’의 산물이라는 설명이다. 우리는 일본이 위안부 강제 동원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역사 왜곡을 일삼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역사 왜곡’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조선 황실 남성들 日장교 돼 일왕에 충성” 지난해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은 항일 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의병과 긴밀히 소통하는 ‘우국(憂國) 군주’의 모습으로 나왔다. 이태진(76)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도 “개혁가로서 그의 진면목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패하기는 했지만 광무개혁(1896~1904) 등을 통해 청과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국가를 만들려고 애썼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미지는 다양한 작품에 투영돼 고종을 ‘비운의 군주’로 인식하게 만든다. 하지만 학계 대다수는 이런 현상에 매우 회의적이다. 다른 나라들이 입헌군주제로 전환해 민주주의로 나아갈 때 오직 고종만이 조선을 전제군주제로 되돌려 망국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청일전쟁(1894~1895) 때는 미국 공사관으로, 러일전쟁(1904~1905) 땐 프랑스 공사관으로 피신하며 비싼 대가를 치렀다. 갑신정변(1884)과 을미사변(1895) 등 변고가 생길 때마다 자신을 외세에 의탁하기 바빴다. 1898년 독립협회가 의회 개설 등 개혁을 요구하자 세계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이들을 탄압한 것도 큰 과오다. 당시 조선사회를 기록한 외국인들도 그를 ‘무능한 군주의 전형’으로 여겼다. 1910년 중국의 대표적 개혁가 량치차오(1873~1929)는 “조선 멸망의 최대 원인은 궁정 자체에 있었다”고 개탄했다. 조선이 입헌군주제 국가로 탈바꿈하지 못해 세계 발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이로 인해 결국 일본에 병합됐다는 것이다. 망국의 가장 큰 책임이 왕 자신에게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무엇보다 고종은 자신의 안녕을 위해 조선 민족 전체를 일본에 넘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13일 “고종과 황실은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지키고자 조선의 식민지화에 앞장서 협력했다”며 “조선 황실은 식민지 기간 내내 (백성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이 제공하는 특권을 누렸다. 이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반민족 행위”라고 꼬집었다.실제로 조선 황실은 1910년 경술국치 뒤로 별다른 국권 회복 노력에 나서지 않았다. 이들은 일본으로부터 ‘이왕가’(李王家)로 책봉된 뒤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으며 살았다. 경술국치 때 작성된 한일병합조약에는 조선 황실의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조문이 빼곡히 담겨 있다. 황실 인사들은 일본식 고등교육을 받았고 특히 남성들은 일본군 장교가 돼 일왕에 충성했다. 그나마 1919년 의친왕 이강(1877~1955)이 중국 상하이로 망명을 시도한 것이 유일한 항일 운동이었다. 3·1운동 시위에 참가한 학생의 기록에는 “주민들은 가난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데 (고종 사망을 계기로) 그간 조선 황실이 너무도 호화롭게 지내 온 사실을 알게 돼 크게 실망했다”고 나온다. ●백성들에게 ‘늙은 여우’로 조롱받은 명성황후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명성황후 역시 매스컴에 의해 이미지가 조작된 대표적 황실 인사다. 일부 문화계 인사들은 그를 ‘조선의 잔다르크’로 칭송한다. 국민들의 인식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개인적 원한 때문에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1821~1898)과 권력 다툼을 벌여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고 무속 신앙에 심취해 국가 재정을 파탄 낸 ‘세기의 악녀’로 평가한다. 일부에서는 그가 “조선의 국가 규모를 감안할 때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를 넘어서는 사치를 부렸다”고 지적한다. 1895년 시해 때 일본 자객들은 명성황후를 ‘늙은 여우’라고 칭했는데, 이는 일본인이 만든 별명이 아니다. 조선 민중들이 그의 악행에 분노해 스스로 지어낸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명성황후는 소설과 드라마, 영화, 뮤지컬, 무용, 뮤직비디오 등에서 조선을 지키려고 싸우다가 희생된 애국자로 등장한다. 그의 최후가 너무 비극적이어서 대중의 안타까움이 과잉 이입된 탓이다. 역사 전공자들은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명성황후 미화가 도를 넘었다”고 비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평론가는 “명성황후가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로 포장된 것은 2001년 KBS에서 그의 삶을 드라마로 방영하면서부터다. 국민에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해야 할 공영방송이 되레 망국의 주범을 구국의 위인으로 탈바꿈시켰다. 제대로 된 고증 없이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돼 ‘조선은 선(善), 일본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덕혜옹주 조선에 살 때부터 기모노 입어” 2016년 개봉 당시 6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영화 ‘덕혜옹주’도 역사 왜곡 논란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이덕혜는 1912년 고종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1925년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났고 1931년 쓰시마번주 귀족과 원치 않는 결혼을 했다. 1962년 정신질환 상태로 한국에 돌아와 1989년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인간 이덕혜’는 분명 우리 역사의 안타까운 희생물이다. 영화 속 그는 시대 상황을 마음 깊이 고민하고 일제에 지속적으로 저항했다. 일본 옷 입기를 거부하고 조선인 유학생들과 항일 교류 모임을 가졌다.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연설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돕고자 중국 상하이 망명도 추진했다. 그러다가 일제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정신병을 얻어 힘든 말년을 보냈다. 하지만 실제 덕혜는 조선에 살 때부터 기모노를 입었다. 정신질환도 일본의 압박이 본격화되기 전인 10대 때 나타났다. 그가 일본에서 독립운동에 나섰다는 기록이나 증거는 없다. 영화 속 내용은 모두가 원작소설 ‘덕혜옹주’를 바탕으로 허진호 감독이 머릿 속에서 만든 상상의 소산이다. 역사소설가 이원규(72)씨는 “대중 문화계에 근대 역사 왜곡이 심각하다. 어떤 작품에서는 살아있는 왕에 대해 ‘우리 고종께서…’라며 묘호(죽은 뒤 왕에게 내려지는 이름)를 썼다”면서 “최소한의 지식도 없는 작가들이 역사의 궤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놓으려는 듯한 콘텐츠를 생산해 우려스럽다. 문화계 내부에 문제의식은 있지만 ‘동업자 정신’ 때문에 비판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日정부, 징용판결 대항 조치로 관세 인상 검토…100개 리스트 마련”

    “日정부, 징용판결 대항 조치로 관세 인상 검토…100개 리스트 마련”

    지지통신 보도…“대항조치 발동 시 한일관계 더 악화할 것”한국인 징용피해자 소송의 원고 측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압류자산을 매각하면 일본 정부가 관세 인상 등으로 맞대응하기로 했다고 지지(時事)통신이 10일 보도했다. 한일 관계가 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현재의 상태보다 더욱 악화될까 우려된다. 지지통신은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 경제에 동등한 손실을 주는 조치로 한국산 일부 물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축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지통신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일본 정부는 100개 전후의 리스트를 마련해 놓고 있다고도 했다. 통신은 “일본 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에 기초한 협의를 최대한 요청할 방침이지만 한국 정부가 응할 조짐이 없다”며 “대항 조치가 발동되면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韓징용피해자 미쓰비시 자산압류 신청에 日정부 “극히 심각”▶문희상 “일왕, 위안부 직접 사죄”에 日외상 “말조심해야” 지지통신은 관세 인상 외에 일부 일본산 제품의 공급을 중단하거나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방안도 부상하고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맞는지와 일본 경제에 어떤 영향이 나타날지를 고려해 구체적인 대응 수위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신은 또 일본 정부는 해당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이 이뤄지면 한국 정부에 대한 협의 요청을 중단하고 청구권협정에 따라 제3국 위원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하는 쪽으로 입장을 전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정부가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해 대응에 나서지 않는 ‘무시전략’에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최근 ‘전쟁 주범 아들인 일왕 사죄 발언’ 등으로 일본에서 반한 분위기가 더욱 깊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일본 정부는 징용 배상 소송에서 이긴 피해자들의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압류 움직임에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면서도 공식적으로는 구체적인 대응 조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지난 7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그런 일이 행해지는 것은 극히 심각한 상황”이라며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풀기 위한 협의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여당 내에선 한국 정부가 청구권협정에 따른 협의에 응하지 않자 주한 일본 대사의 소환과 방위 관련 물품 수출규제, 한국산 수입품 관세 인상 등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의견이 올 초부터 나오고 있다.한국 대법원은 2018년 11월 말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90) 할머니 등 5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1인당 1억~1억2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지만, 미쓰비시는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지난 1월 별세한 김중곤 씨를 제외한 원고 4명은 서울중앙지법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국 내 자산 압류명령 신청을 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日 “10일 연휴” 발표 땐 좋았지만…날짜 다가올수록 근심 ‘수북’

    日 “10일 연휴” 발표 땐 좋았지만…날짜 다가올수록 근심 ‘수북’

    학교·은행·병원 등 기반시설 기능 스톱 10일 온전히 못 쉬는 학부모 돌봄 걱정 현금결제 많아 소매점 등 잔돈대란 우려 병·의원 집단 휴진 따른 의료 공백도 문제 시급·일당 받는 비정규직 월소득 33% ‘뚝’ 아베, 선거에 활용하려다 불안 확산 당혹처음에는 마냥 좋기만 했는데 차츰 들뜬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반드시 그럴 일만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는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이어지는 ‘10일 연휴’에 대한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다. 일본에서는 매년 4월 29일 ‘쇼와의 날’(히로히토 전 일왕 생일), 5월 3일 ‘헌법기념일’(한국의 제헌절), 5월 4일 ‘숲의 날’(식목일), 5월 5일 ‘어린이날’이 고정 휴일이다. 이 시기를 통상 ‘골든위크’로 부른다. 하지만 올해는 다른 때와 차원이 다른 10일짜리 초대형 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5월 1일이 새 일왕 즉위에 따른 휴일로 지정되면서 토요일인 4월 27일을 시작으로 월요일인 5월 6일(대체휴일)까지 쉬게 됐다. 1948년 일본의 공휴일 관련 법 제정 이래 가장 긴 것이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10연휴 계획을 처음 밝혔을 때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연속적인 휴일을 통해 여유 있는 국민 생활의 실현을 기대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했다. 언론들은 10일 연휴를 겨냥해 북적이는 해외여행 상담창구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이 쌓여 갔다. 나와 가족은 쉬지만 사회 전체는 그대로 돌아가는 휴가나 방학과 달리 병원, 은행, 학교 등 기반시설들이 최장 10일간 기능 정지에 들어가는 데 대한 우려들이 부각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이 3일 전했다. 많은 학부모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가 쉬는 이 기간 동안 자녀들 돌보는 게 큰일이라고 한숨 짓고 있다. 특히 10일간 온전히 쉴 수 없는 직장인들은 영유아, 초등학생 자녀를 어디에 맡겨야 하나 걱정이다. 쉬지 않아 곤란한 사람도 있지만, 쉬어서 힘든 사람들도 많다. 시급이나 일당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등에게 10일 연휴는 산술적으로 월소득의 3분의1이 없어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병의원 집단휴진에 따른 의료서비스 공백도 걱정거리다. 현금결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일본 사회의 특성상 현금이 없어 발을 구르는 사태도 우려되고 있다. 연휴 기간 ATM 현금 부족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 때문이다. 심지어 ‘거스름돈 대란’ 걱정까지 나온다. 은행들이 10일 동안 문을 닫기 때문에 식당이나 소매점에 거슬러 줄 동전이 없어도 구할 길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10일 연휴 결정을 올여름 참의원 선거의 호재로 활용하려던 아베 정부는 국민 불안이 확산되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급기야 지난달 26일 의료, 고용, 보육, 복지 등 8개 분야에 걸친 정부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보육시설의 임시 수용인원을 늘리고 연휴 기간 응급병원 대응을 강화한다는 등의 내용이지만 현실적으로 허점이 수두룩해 여당 안에서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글 사진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윤봉길 종손’ 윤주빈, 3.1절 편지 낭독 ‘뭉클’

    ‘윤봉길 종손’ 윤주빈, 3.1절 편지 낭독 ‘뭉클’

    윤주빈이 3.1절 기념식서 심훈 선생의 편지를 낭독했다. 탤런트 윤주빈은 1일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된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날 윤주빈은 과거 심훈 선생이 옥중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를 낭독했다. 앞서 일왕 승일 기념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해 스물다섯의 나이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의 종손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은 윤주빈은 윤봉길 의사와 똑 닮은 외모로 할아버지의 업적을 기려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지난 28일 생방송 된 KBS2의 3.1운동 100주년 특집 전야제 ‘100년의 봄’에서 한수연, 박환희와 함께 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할아버지들에게 영상 편지를 보냈다. 이들은 “할아버지, 잘 지내시나요? 2019년 봄의 문턱에서 아직 많이 춥기만 했을 1919년의 봄을 떠올려 봅니다. 할아버지의 용기 덕분에 대한민국의 의지를 세계에 알렸고 그 덕분에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몸을 던져서 나라를 구한 할아버지의 뜻을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라고 전했다. 특히 이들은 각자 할아버지의 사진을 소중히 안은 채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으며 “저희에게 주어진 매일을 감사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며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여기는 완전한 봄이 왔어요”라고 말해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사진 = 방송 캡처 연예부 seoulen@seoul.co.kr
  • [현장 행정] 서대문형무소의 슬픈 수형기록, 기억하리

    [현장 행정] 서대문형무소의 슬픈 수형기록, 기억하리

    “2010년 구청장에 오른 직후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민주축제를 개최하는 등 역사를 기리는 데 꾸준히 힘썼죠. 하지만 여전히 독립지사들이 정당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잊혀지기 일쑤라고 해요. 이들의 정신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이어 가야 우리의 미래도 평화로 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은 지난 19일 독립문 옆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개막식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대문구가 문화재청과 손잡고 이날부터 오는 4월 21일까지 형무소 10옥사와 12옥사에서 진행하는 이번 전시는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항일독립유산을 국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에서는 3·1운동 당시 사용됐던 다양한 태극기와 유관순(1902∼1920) 열사의 훈장을 비롯해 임시정부 성립 축하문, 애국공채,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에서 치러진 일왕 생일 행사 때 터트린 윤봉길(1908~1932) 의사 폭탄, 건국강령초안 등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규채(1888∼1947) 지사와 김구(1876~1949) 선생의 독립운동 일대기도 별도로 전시됐다. 당시 3·1운동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애국선열 1014명의 수형기록카드도 공개됐다. 이날 독립유공자 후손 20여명과 함께 전시를 관람하던 문 구청장이 10옥사에 마련된 수형기록카드를 보며 “3·1운동 무렵 서대문형무소 수감자만 3000여명에 이르는데, 이 중 관련 죄목으로 수감된 1014명을 추려내 기록을 분석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참석자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기록카드 속 얼굴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서대문구는 지난 25일 이들의 수형 기록을 엮어 1300여쪽짜리 자료집을 펴냈다. 3·1운동 수감자만을 대상으로 단독 자료집을 발간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황해도 수안군 등 이북지역 출신 수감자 230명의 기록을 포함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지역 3·1운동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이 밖에도 서대문구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부터 매월 셋째 주 화요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강의실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2019 이달의 독립운동가 교양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오는 6월까지는 3·1독립선언기념탑 진입로 양쪽에 독립지사의 족적을 새기는 ‘풋프린팅 메모리얼 로드-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공간 조성도 추진할 예정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내에도 추모 공간이 마련된다. 문 구청장은 “우리 역사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한편 자료를 발굴·분석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향후 3·1운동이 갖는 평화시위의 의미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게 목표”라며 입을 앙다물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애국지사 7509위 제례상 차려 퍼포먼스하는 용산

    서울 용산구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백범 김구(1876~1949) 선생 등 7위 애국선열을 모신 효창공원에서 기념행사를 연다. 다음달 1일 오전 10시 30분 성장현 구청장이 주도하는 애국지사 추앙 제례에서 3·1운동으로 순국한 7509위 제례상에 태극기, 무궁화, 쇠말뚝을 올려놓고 퍼포먼스를 벌인다. 성 구청장은 “선열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태극기와 무궁화, 일제가 우리네 넋을 흔들려고 전국 팔도에 박은 쇠말뚝을 뽑는 일이었다. 3·1만세주와 일왕 항복주, 8·15광복주를 제상에 올린다”고 말했다. 낮 12시엔 성 구청장과 진영 국회의원을 비롯한 내빈과 학생, 보훈단체 회원 등 500명이 공원 정문~주민센터 300m 구간에서 만세운동을 재현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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