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일왕
    2026-06-01
    검색기록 지우기
  • 노선
    2026-06-01
    검색기록 지우기
  • 입대
    2026-06-0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44
  • 북미 협상 촉진 문 대통령 발목 잡았던 아베 총리

    북미 협상 촉진 문 대통령 발목 잡았던 아베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대북 강경 노선을 설득하며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을 촉진하던 문재인 대통령을 견제한 것으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에 드러났다. 아베 총리는 2018년 4월 17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륙간뿐만 아니라 단거리, 중거리 탄도 미사일, 그리고 생화학 무기도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인 반면 1차 북미 정상회담의 불발을 원했던 볼턴 전 보좌관도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아울러 아베 총리는 회담 며칠 전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한 것이 북한에 강한 신호를 보냈다고 강조하며 군사적 압박을 종용하기도 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아베 총리의 방미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지 않도록 의지를 굳히는 데 시간상으로 완벽했다고 평가했다. 1차 북미 정상회담 5일 전인 2018년 6월 7일에도 아베 총리는 캐나다에서 열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워싱턴을 들러 트럼프 대통령에게 너무 많이 양보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압박하고자 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인들은 자기네 체제에 목숨을 걸었다. 그들은 매우 거칠고 약삭빠른 정치인들이다. 이게 다시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으로 생각하면 그들은 옛날 방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볼턴 전 보좌관은 “세계 지도자 중 트럼프 대통령과 최고의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이는 아베 총리”라며 “보리스 존슨이 영국 총리가 됐을 때도 (두 사람은) 동점이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아버지가 2차 세계 대전에서 가미카제(자살 특공대) 조종사였던 사실을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밝혔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아버지가 일왕을 위해 의도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에 실망했다고 표현했다”며 “아베 총리의 아버지가 가미카제로 성공했다면 아베(1954년생) 총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것 같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기도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동족상잔 70년, 기록으로 기억하다

    동족상잔 70년, 기록으로 기억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가 평화를 이야기할 무렵, 한반도는 치열한 전투 끝에 두 개로 쪼개졌다. 이후 70년, 누군가에겐 여전히 욱신거리는 상처지만 대다수에게 한국전쟁은 그저 빛바랜 역사일 것이다. 반짝 평화모드였다가 다시 강대강 대치를 이어 가는 오늘의 남과 북을 거슬러 70년 전 그날의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 눈에 띈다. 한국전쟁을 가장 오래 취재한 미국 사진기자의 생생한 컬러 사진집과 함께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집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양한 측면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면, 한국전쟁 70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한국전쟁:전쟁을 불러온 것들, 전쟁이 불러온 것들/이상호 지음/섬앤섬/328쪽/1만 9000원●가려졌던 진실, 생생한 증언들 ‘한국전쟁: 전쟁을 불러온 것들, 전쟁이 불러온 것들’은 냉전이라는 거대담론이나 미시적인 국내 기원론 대신 한국전쟁의 발발을 다른 시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우선 우리 시선을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이 아니라 1945년 2차대전 종전 직후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한미 관계, 한일 관계, 미일 관계 등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국제관계 정립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데올로기의 갈등 결과가 바로 한국전쟁이라는 것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이자 맥아더 전문가인 저자는 이를 위해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 당시 맥아더 미국 연합국최고사령관이 일왕을 전범으로 기소하는 데에 왜 반대했는지 설명한다. 일본의 죄를 제대로 묻지 않은 까닭에 한국전쟁은 일본 재건을 위한 발판이 됐고, 한일 관계의 왜곡을 불렀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1948년 주한미군 철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첫 주한 미국대사 존 무초가 어떤 생각을 했고 한국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설명한다. 한국전쟁에서 활약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미8군 사령관 워커의 죽음에 관한 진실도 흥미롭다. 한국전쟁,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신기철 지음/역사만들기/308쪽/1만 8000원‘전장의 기억과 목소리’는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인권평화연구소장이 북한과 맞닿은 인천 옹진 주민의 목소리로 한국전쟁 전후를 다시 재구성했다.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이 지역은 그 특성 때문에 해방과 분단의 중심에 있었다. 군인이 아닌데도 청장년은 물론 여성과 아이들마저 전쟁에 동원됐다. “신도는 ‘대한민국’, 연결된 시도는 ‘인민공화국’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지역 주민은 말한다. “만약 덕적이 육지였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민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지역 민간인 학살은 섬이라서 더욱 잔혹했다. “빨갱이가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며 두 손을 모아 “빨갱이님 저 좀 살려 주세요”라고 했던 주민들의 기억과 증언이 한국전쟁을 좀더 생생하게 재현한다. 인민군과 국군의 교차 점령기에 벌어진 비극을 주민들의 증언으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1950/존 리치 지음/존 리치 사진/서울셀렉션/320쪽/2만원●사진으로 보고, 소설로 생각하다 한국전쟁 관련 사진은 대개 전쟁의 참상만 부각하고 흑백사진이 대부분이라 다소 옛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 통신사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INS) 도쿄특파원으로 일했던 존 리치의 사진집 ‘1950’은 당시 다양한 일상 풍경과 거리, 그리고 사람을 생생한 컬러 사진으로 담았다. 리치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한국으로 급파한 미 해병대 상륙함에 동승해 한국에 도착했다. 이후 3년 동안 한국전쟁을 전 세계에 알렸다. 책은 차 상자 안에 담긴 채 그의 고향 집에 보관됐다가 50년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사진 900장 가운데 150장을 추렸다. 한국군과 미군, 유엔군 장병의 현장감 넘치는 모습과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모습이다. 여기저기 총상을 입은 남대문, 절반이 날아가 버린 수원성, 여전히 모습을 보존한 서울역과 서울시청,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중앙청의 거리 풍경이 새롭게 다가온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들이 썼던 코닥사의 전설적인 컬러필름 ‘코다크롬’으로 촬영했다. 고인이 된 리치는 책 서문에서 “이 사진을 보는 독자들이 한국전쟁을 과거의 역사로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평화가 온다/류재향, 한정영, 박미연, 강리오, 문상은 지음/서해문집/224쪽/1만 1900원‘평화가 온다’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작가 5명의 단편소설을 묶은 청소년 소설집이다. 단편 ‘한반도 특급열차 2050’은 한국전쟁 80년이 되는 2030년이 배경이다.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 그리고 북한과 만주를 거쳐 독일의 베를린까지 일주일간 달리는 열차 개통식에 초대받은 한아와 할머니 이야기다. 실향민의 후손으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한 할머니와 손녀 한아의 속사정을 좇는다. 단편 ‘뼈’에서는 강원도 철원이 고향인 아버지와 늦둥이 아들 해윤이 철원에 홀로 계시는 할머니 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하고 ‘마스코트 테디’에선 한국전쟁 당시 우연히 미군의 마스코트가 된 봉구처럼 독특한 인물의 서사를 그린다. 한국전쟁 당시 정찰 임무를 맡아 섬에 파병된 국군 범석과 북한군 병사 화수의 우정을 그린 ‘섬, 원추리´도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작가마다 여러 이야기를 펼치지만 소설의 지향점은 하나다. ‘전쟁은 잊지 말고, 평화를 생각하자.’
  • [근대광고 엿보기] 영일 연합군 칭다오 함락 축하 광고

    [근대광고 엿보기] 영일 연합군 칭다오 함락 축하 광고

    제1차 세계대전 중 칭다오 맥주로 유명한 중국 칭다오를 영국과 일본 연합군이 함락한 것을 축하하는 광고가 매일신보에 실렸다. 매일신보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일신보는 축하 광고를 이따금 실었다. 특히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에는 광고주들을 끌어들여 축하광고를 실었다. 1914년 8월 31일자는 4면에서 6면으로 늘려 발행하면서 천장절 광고로 1면부터 6면까지 광고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1924년 6월 10일자에는 매일신보 사옥 신축 광고도 1개 면을 실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영국과 동맹 조약을 체결했던 일본은 동맹 관계를 이유로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영국과 일본이 연합 작전으로 독일의 조차지인 키아우초우를 습격해 함락하고 칭다오를 점령했다. 일본과 영국의 첫 연합작전인 이 전투를 칭다오전역(戰役)이라고 부른다. 당시 칭다오에 주둔하던 독일군은 5000명에 불과해 10배나 되는 일본 침략군과 영국군에 중과부적이었다. 전투에서 이긴 일본은 승전국으로서 칭다오를 지배했다. 일본의 칭다오 지배와 산둥반도 문제는 중국 5·4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결국 1922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 따라 칭다오는 중국에 반환됐다. 칭다오는 원래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았지만 청일전쟁 후인 1897년 독일은 이른바 삼국간섭으로 자오저우만에 침입한 뒤 이듬해 자오저우만의 조차권을 얻어 칭다오 조계지를 설치했다. 독일은 17년 동안 칭다오를 조차하면서 붉은 지붕의 건물과 맥주를 남겼다. 칭다오 맥주는 1903년 칭다오의 맑은 물과 독일의 맥주 제조기술이 결합돼 탄생했다. 1차 세계대전 전에 영국과 일본은 두 차례 동맹을 맺었다. 1902년의 1차 영일동맹은 영국과 일본이 러시아를 적으로 삼아 러시아의 동진(東進)을 막고 동아시아의 이권을 나눠 가지려 맺은 조약이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러시아를 만주에서 축출했고 한국에 대한 독자적인 침투 권한을 보장받았다. 1905년의 2차 영일동맹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두 제국주의 국가의 약소국 침략권을 서로 인정하는 조약이었다. 즉 일본은 영국의 인도 지배를, 영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상호 보장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의식해 영국은 3·1운동도 일본의 발표 내용을 아주 작게, 그것도 늦게 보도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신문 ‘더 타임스’는 1919년 3월 19일에야 3·1운동을 ‘소요’나 ‘폭동’으로 묘사하면서 짤막하게 보도했다. 4월 10일자에는 ‘한국의 볼셰비즘’이라는 제목 아래 한국의 폭도들이 경찰을 공격하고 관공서를 불태웠다고 보도했다. 3·1운동을 공산주의자의 소요 사태로 왜곡·축소 보도한 것이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박지성 J2리그 교토 역대 최고 선수

    박지성 J2리그 교토 역대 최고 선수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39)이 단 2년 반의 활약에도 일본 프로축구 J2리그 교토상가의 역대 최고 선수로 선정됐다. 일본 축구 매체 사커다이제스트웹은 2일 J2리그 소속팀 22개 팀의 역대 최고의 선수를 꼽으면서 교토상가 최고의 선수로는 박지성의 이름을 올렸다. 박지성은 2000년 중반부터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까지 교토(퍼플)상가에서 뛰었다. 이 매체는 “2002년 일왕배 결승전에서 동점골을 넣는 등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며 “우승 타이틀을 선물하고 유럽으로 떠났다”고 박지성의 활약상을 짚었다. 2000년 6월 교토상가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은 2001년 J2리그 우승을 이끌며 팀을 1부 리그에 올려 놓기도 했다. J1리그와 J2리그를 오가며 모두 85경기에 출전, 12골을 터트렸다. 한일월드컵 이후 박지성은 2003년 1월 네덜란드 명문 PSV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로 진출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韓축구 레전드 박지성, 3시즌 뛴 日교토상가에서도 레전드

    韓축구 레전드 박지성, 3시즌 뛴 日교토상가에서도 레전드

    일 사커다이제스트 웹 선정···J2 우승과 일왕배 우승 이끌어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39)이 단 3시즌 활약에도 일본 프로축구 J2리그 교토상가의 역대 최고 선수로 선정됐다.일본 축구 매체 사커다이제스트웹은 2일 J2리그 소속팀 22개 팀의 역대 최고의 선수를 꼽으면서 교토상가 최고의 선수로는 박지성의 이름을 올렸다. 박지성은 2000년부터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까지 교토(퍼플)상가에서 뛰었다. 이 매체는 “2002년 일왕배 결승전에서 동점골을 넣는 등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며 “우승 타이틀을 선물하고 유럽으로 떠났다”고 박지성의 활약상을 짚었다. 2000년 6월 교토상가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은 2001년 교토상가의 J2리그 우승을 이끌며 팀을 1부 리그에 올려 놓기도 했다. J1리그와 J2리그를 오가며 모두 85경기에 출전, 12골을 터트렸다. 한일월드컵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러브콜을 받은 박지성은 2003년 1월 네덜란드 명문 PSV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로 진출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윤미향, 8년 전 李할머니 총선 출마 막았다”

    “윤미향, 8년 전 李할머니 총선 출마 막았다”

    국회서 위안부 문제 해결 의지 밝혀 尹 “의원 안 해도 할 수 있는 일” 만류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가 8년 전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에 출마하려 한 이용수(92) 할머니를 만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 할머니는 당사자로서 국회에 들어가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 상임대표였던 윤 당선자는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CBS노컷뉴스는 2012년 3월 8일 이 할머니와 윤 당선자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 내용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당시 윤 당선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출마를 준비하는 이 할머니에게 “국회의원을 안 해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의 총선 출마를 싫어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대해 이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이 뭐하는데 기분 나빠하느냐”며 “걱정되면 ‘할머니 건강이 걱정된다’고만 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의 통화는 이 할머니가 국회의원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열기 직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할머니는 그날 민주통합당 대구시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도저히 죽을 수 없다”면서 “국회의원이 되면 일왕의 사죄와 배상을 반드시 받아 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같은 달 20일 발표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 40명에 들지 못했다. 윤 당선자는 8년 전 이 할머니가 국회에 들어가려 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21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번에는 이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한다”며 윤 당선자를 말렸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할머니의 분노는 ‘내가 정치하고 싶었는데 나를 못 하게 하고 네(윤 당선자)가 하느냐. 이 배신자야’로 요약할 수 있다”며 “다른 할머니는 윤 당선자가 국회의원이 되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좋다고 하는데 이분은 특이하게 배신을 프레임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이용수 할머니 8년 전 출마 말린 윤미향 “다른 할머니들 싫어해”

    이용수 할머니 8년 전 출마 말린 윤미향 “다른 할머니들 싫어해”

    이 할머니 “국회 가서 일본 사죄·배상 받아오겠다”윤 당선자 “국회 안 가도 해결 가능” 끝까지 말려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가 8년 전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에 출마하려 한 이용수(92) 할머니를 만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 할머니는 당사자로서 국회에 들어가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오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 상임대표였던 윤 당선자는 국회에 가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이 할머니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CBS노컷뉴스는 지난 2012년 3월 8일 이 할머니와 윤 당선자의 통화내용이 담긴 녹취록 내용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당시 윤 당선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출마를 준비하는 이 할머니에게 “국회의원을 안 해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의 총선 출마를 싫어한다는 취지로 말했다.이에 대해 이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이 뭐하는 데 기분 나빠하느냐”며 “국회의원이 되면 월급은 다 좋은 일에 (기부)하겠다. 걱정되면 ‘할머니 건강이 걱정된다’고만 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의 통화는 이 할머니가 국회의원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열기 직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할머니는 그날 민주통합당 대구시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도저히 죽을 수 없다”면서 “국회의원이 되면 일왕의 사죄와 배상을 반드시 받아오겠다”고 밝혔다. 당시 기자회견에는 일제피해자인권특위위원장인 최봉태 변호사, 최용상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30여명이 참여해 이 할머니의 출마 선언을 지지했다.이 할머니는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도 출마를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새누리당 측에 아는 사람을 통해 의사를 전달했지만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아는 스님 추천도 있고 해서 민주통합당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같은 달 20일 발표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 40명에 들지 못했다. 윤 당선자는 8년 전 이 할머니가 국회에 들어가려 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번에는 이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한다”며 윤 당선자를 말렸다. 이 할머니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도 “그 사람(윤 당선자)은 자기 맘대로 했으니 (국회의원) 사퇴를 하든지 말든지 그건 제가 할 얘기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박근형 연출의 친일 풍자 연극 ‘해방의 서울’ 재공연

    박근형 연출의 친일 풍자 연극 ‘해방의 서울’ 재공연

    박근형 연출이 연출과 극작을 맡은 친일 풍자 연극 ‘해방의 서울’이 이달 15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선돌극장 무대에 다시 오른다.2017년 초연한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영화촬영지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당시 친일로 윤택한 삶을 산 사람들을 풍자하며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친일의 잔재를 꼬집는다. 1945년 8월15일. 창경원 동물원과 그 옆 춘당지 연못을 배경으로 문예영화 ‘사쿠라는 피었는데’를 촬영하는 배우들은 영화 속 비극의 주인공이 죽는 마지막 장면만 남겨두고 있다. 그 순간 라디오에서는 일왕의 전쟁 항복선언이 흘러나온다. 영화 촬영을 마친 뒤 만주로 떠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에 들떠 있던 배우들은 갑작스런 일본 패망 소식에 당황해 한다. 연극은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보여주면서 아직 풀지 못한 역사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배우 강지은, 김정호, 이원재, 이호열, 김은우, 김동원, 안소영이 출연하며, 코로나19 방지를 위해 거리두기 좌석제를 운영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노태우 정부 때 일왕 첫 해외 일정으로 방한 추진했었다

    노태우 정부 때 일왕 첫 해외 일정으로 방한 추진했었다

    아키히토 즉위 직후 방한 논의했지만 日 우경화 흐름에 재임 내내 한국 못 와 헝가리에 차관 주고 동유럽 첫 수교 임수경 비밀 방북 문서는 공개 안 돼아키히토 전 일왕 즉위 직후인 1989년 한일 정부가 일왕의 첫 해외 일정으로 한국 방문을 진지하게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했던 아키히토 전 일왕의 방한은 결국 양국의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가 31일 비밀 보존기한 30년이 지나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89년 4월 우노 소스케 당시 일본 외무상은 한일 외무장관 회담차 일본을 방문한 최호중 외무장관에게 “한국 측 분위기가 성숙했다고 판단되면 일본 정부로서는 예견 가능한 장래에 (일왕의) 최초 해외 방문으로 방한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우노 외무상은 한국의 반일감정을 염두에 둔 듯 “한국 내에서 미묘한 상황도 있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은밀히 답변을 듣고 싶다”고 했다. 정부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이듬해 방일을 준비하면서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을 고려할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주일대사관도 외교 전문에서 “세부 교섭 사안들과 일왕의 방한 초청 가능성을 연계해 성과를 높일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듬해 노 대통령의 일본 방문 당시 아키히토 일왕은 만찬사로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는 다소 진전된 입장을 밝혔다. 2차 세계대전과 식민통치 시기에 일왕으로 있었던 선대 히로히토 일왕은 전두환 대통령과 만나 “불행한 과거는 유감”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일왕의 방한은 재임 기간 내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에선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나오는 등 과거사 청산 요구가 커졌고 일본도 보수 우경화 흐름이 나타나면서 결국 무산됐다. 아키히토 일왕은 황태자 신분이었던 1988년에도 한국 방문을 타진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1989년 노태우 정부 초기 주요 외교 이슈들이 담겼다. 모두 1577권(24만여쪽) 규모다. 북방외교를 펼치던 당시 정부가 동유럽 최초로 헝가리와 수교하기 위해 1억 2500만 달러의 은행차관을 제공한 사실도 포함됐다. 다만 1989년에 이뤄진 ‘임수경 방북 사건’에 대한 문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비밀 방북 관련) 간략하게 그런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에 관한 문서이기 때문에 외교문서공개심의회가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日아베 부인, 코로나19 확산속 남녀 연예인들과 벚꽃놀이 구설수

    日아베 부인, 코로나19 확산속 남녀 연예인들과 벚꽃놀이 구설수

    일본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가운데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연예인들과 단체로 벚꽃놀이를 즐긴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달 초부터 전국 초중고교에 휴교 요청을 하는 등 이동제한이 계속되는 가운데 행정수반의 아내가 ‘퍼스트레이디’로서 지나치게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주간지 주간포스트 인터넷판은 26일 아키에 여사가 최근 도쿄 시내 모처에서 남녀 모델, 가수 등 13명의 연예 관계자들과 벚꽃놀이를 즐기며 찍은 사진을 공개하고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 때문에 자살한 긴키재무국 직원의 수기가 알려져 의혹이 새삼 주목되는 가운데 아키에 여사는 사적으로 ‘벚꽃을 보는 모임’을 즐겼다”고 전했다. 사진 속 아키에 여사 옆에서는 인기 여성 모델 후지이 리나, 아이돌그룹 뉴스(NEWS)의 데고시 유야, 음악 프로듀서 등 13명의 연예 관계자들이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었다. 후지이는 2014년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아키에 여사와 대담을 하는 등 전부터 친분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감염자 확산에 따라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도시봉쇄’ 가능성을 언급하며 벚꽃놀이 등 불요불급한 이동의 자제를 요청하고 나선 상황이어서 아키에 여사에 대한 비판의 수위는 한층더 높아졌다. 자신이 깊숙히 개입돼 있는 모리모토 스캔들과 관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무원의 사건 진상 폭로가 담긴 수기가 공개된 시점이란 것도 논란을 증폭시켰다. 모리토모 스캔들은 아키에 여사의 지인이 이사장으로 있던 모리토모 학원이 2016년 6월 오사카부의 국유지를 감정평가액보다 8억엔(약 89억원) 정도 싸게 사들이는 과정에서 아베 총리 부부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아베 총리가 퇴진 직전까지 몰렸던 이 사건을 정부 차원에서 은폐하기 위해 재무성 주도의 공문서 조작이 이뤄졌고 이와 관련해 오사카 긴키재무국의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기사에는 “정말 이 사람은 퍼스트 레이디로서 자각이 떨어진다. 모리토모 문제에 관해 책임이 큰 사람으로서 꽃구경을 할 여유가 있다면 최소한 인간의 도리로 진지하게 유족을 대해야 한다”, “역시 아키에씨, 워스트 레이디로서의 활약이다”, “부인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계속 방치하는 듯한 사람에게 이 나라를 맡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오싹합니다” 등 댓글이 붙었다.역대 다른 총리 부인들과 달리 튀는 행동을 자주 보이는 아키에 여사는 그동안에도 여러차례 여론의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지난해 10월 나루히토 일왕 즉위 의식에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혼자서만 무릎이 훤히 드러나는 흰색 스커트 정장을 입고 나타나 구설을 타기도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포토] 마스크 쓰고 졸업식에 참석한 日 아이코 공주

    [포토] 마스크 쓰고 졸업식에 참석한 日 아이코 공주

    나루히토 일왕의 외동딸 아이코 공주가 22일(현지시간) 도쿄 가쿠슈인 여자고등학교 졸업식에 마스크를 쓴 채 참석하고 있다. AP·로이터 연합뉴스
  • 수원 일왕저수지→만석거, 서호→축만제…정조때 이름 되찾아

    수원 일왕저수지→만석거, 서호→축만제…정조때 이름 되찾아

    경기 수원시는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에 따라 일왕저수지는 만석거(萬石渠)로, 서호는 축만제(祝萬堤)로 공식 명칭이 각각 변경됐다고 16일 밝혔다. 만석거(수원시 향토유적 제14호)와 축만제(경기도 기념물 제200호)는 조선 시대 정조(재위 1776∼1800)가 수원화성을 축조하면서 안정된 농업경영을 위해 만든 인공저수지로, 수원시 송죽동과 화서동에 각각 있다. 만석거는 1936년 수원군 일형면과 의왕면이 합쳐져 일왕면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일왕저수지로 불렸고, 축만제는 수원화성의 서쪽에 있다 해서 서호(西湖)로 불렸다. 지난 1961년 국무원 고시 제16호에 의해 법적 명칭이 일왕저수지와 서호로 제정됐다. 수원시는 두 저수지의 역사적 정체성 회복을 위해 지난 1년간 명칭 정정을 추진해 수원시 및 경기도 지명위원회 심의·가결과 국가지명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토지리원 명칭변경 고시를 끌어냈다.심규숙 수원시 문화예술과장은 “60년 만에 ‘만석거’와 ‘축만제’라는 이름을 되찾게 돼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이 담긴 수원시의 정체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이 원래의 이름으로 후대에게 불려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축만제는 2016년 국내 관개시설물증 최초로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가 지정하는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됐고, 이듬해 만석거도 같은 유산으로 등재됐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日 도쿄마라톤 축소·올림픽 예선전 연기… 공포 확산에 초비상태세

    日 도쿄마라톤 축소·올림픽 예선전 연기… 공포 확산에 초비상태세

    일왕 생일 국민초대 24년 만에 취소 NTT 20만여명 직원 대상 재택근무 크루즈선 확진 99명 추가 총 454명전국 곳곳에서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가 잇따르며 일본 사회의 공포지수가 극단적인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오는 7월 도쿄올림픽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는 가운데 일왕 생일행사가 24년 만에 취소됐고, 도쿄마라톤도 사실상 무산됐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이제 겨우 초기 단계일 뿐”이라며 한층 더 심각한 사태가 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열린 감염증 전문가 회의는 그야말로 우려 일색이었다. 전문가들은 “국내 감염 확산은 이제 발생 초기로, 앞으로 더 격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감염 확산 방지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줄 것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우라시마 미쓰요시 도쿄지케이카이의대 교수는 “이번 주 발생하는 신규 확진환자 수가 향후 추이를 좌우할 것”이라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하루 확진환자가 10명, 20명 등으로 급증하는 것으로, 이 경우 국가적으로 외출자제 요청과 집회제한 등 조치를 취해야 될지 모른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말했다. 공포가 확산되면서 각종 행사도 취소 또는 축소되고 있다. 일본 궁내청은 오는 23일로 예정됐던 나루히토 일왕의 생일 기념 국민초대 행사를 취소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지난해 5월 1일 왕위에 오른 나루히토는 즉위 후 첫 생일을 맞아 마사코 왕비를 비롯한 왕족들과 함께 왕궁 베란다에서 국민에게 인사를 할 예정이었다. 이 행사가 취소된 것은 1996년 주페루 일본대사관 인질 사건 이후 24년 만이다. 다음달 1일로 예정된 도쿄마라톤도 약 3만 8000명에 이르는 일반 참가자는 출전이 금지되고 약 180명의 전문 마라톤 선수들만 참가하는 형태로 치러지게 됐다. 도쿄마라톤재단은 이날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도쿄올림픽 일본 대표 선발전 성격으로만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물론 세계 각지의 마라톤 애호가들이 참가하는 축제로서의 행사는 무산된 셈이다. 도쿄올핌픽 예선전에도 큰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 중국, 카자흐스탄,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올림픽 8개 종목 12개 대회가 연기·취소되거나 개최지가 바뀌었다. 기업들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본 최대 통신그룹인 NTT는 혼잡한 공간에서의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약 20만명의 전 계열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재택근무와 탄력적 출퇴근을 실시하도록 요청했다. 이런 조치는 다른 기업들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가뜩이나 도쿄올림픽 이후 본격적인 경기하강 우려가 높아져 있던 터에 일본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이날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의 확산이 일본경제에 가장 큰 불확실성이 되고 있다”면서 “바이러스의 기세가 어떻게 될지가 최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날 일본 내각부는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 기준)이 전 분기 대비 -1.6%(연간 환산 시 -6.3%)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경제성장률’로 불리는 실질GDP가 전 분기 대비 감소한 것은 5분기 만이다. 한편 이날도 요코하마항의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는 확진자 99명이 추가로 나와 이 배의 감염자는 총 454명으로 늘었다. 또 후생노동성 직원 등 6명의 감염이 추가로 확인되는 등 이날 오후 7시 현재 일본의 전체 확진자는 519명으로 집계됐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원맨쇼 넘버원’ 원로 코미디언 남보원 별세

    ‘원맨쇼 넘버원’ 원로 코미디언 남보원 별세

    ‘청춘 만만세’ ‘웃으면 복이 와요’서 큰 인기 은관문화훈장 등 영예… “전수 불가 재능”원로 코미디언 ‘넘버원’ 남보원(본명 김덕용)씨가 21일 타계했다. 84세.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에 따르면 남씨는 올해 초 건강에 이상을 보였으며 치료와 퇴원을 반복하다가 폐렴 증세로 입원한 서울 순천향대병원에서 이날 숨을 거뒀다. 북한 평안남도 순천 출신인 고인은 1963년 영화인협회가 주최한 ‘스타탄생 코미디’에서 1위로 입상하며 코미디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극장은 물론 ‘청춘 만만세’, ‘웃으면 복이 와요’, ‘유머 1번지’ 등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안방극장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사람이나 사물의 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는 성대모사와 구수한 평안도 사투리를 바탕으로 한 원맨쇼는 그의 주특기였다. 폭격음, 색소폰, 뱃고동 소리 묘사는 물론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 선언 방송을 따라 하는 등 실향민의 아픔을 희극적으로 묘사한 콩트는 그가 현대사의 산증인임을 보여 줬다. 2010년 세상을 떠난 코미디언 백남봉씨와는 40년 가까이 라이벌이자 콤비로 지내며 ‘쌍두마차’로 불렸다. 백씨가 타계하자 사흘 내내 빈소를 찾았고, “하늘에서 다시 만나 투맨쇼를 하자”며 통한의 눈물을 흘려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방송계 원로로서 무대를 향한 애정은 남달랐다. 종종 감기를 앓으면서도 건강이 나아지면 무대를 찾았고, TV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2018년까지 지상파와 종편 TV에 모습을 드러내 “성대모사를 100개는 한다”며 너스레를 떨고, 아내와 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엄용수 한국코미디언협회장은 고인을 두고 “전수가 불가능한 재능을 가졌다. 전수가 안 되는 능력이라, 미리 녹음 같은 걸 해 뒀다면 큰 문화유산이 됐을 것”이라며 “한국 코미디계의 한 세대가 저물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고인은 예총예술문화상 연예부문(1996),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상 화관문화훈장(2007), 대한민국 신창조인 대상 행복한사회만들기 부문(2015), 제7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2016)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되며, 장지는 남한산성에 있는 가족묘다. 발인은 23일이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햇살 16개 욱일기는 軍 상징… 올림픽 응원 말도 안 돼”

    “햇살 16개 욱일기는 軍 상징… 올림픽 응원 말도 안 돼”

    “전범 해군 계승한 日 자위대 쓰는 깃발 정교하게 접근해야 국제사회서도 인정 일왕 국가원수 만들면 野 견제 안 받아” 아베 정권 개헌 시도 의중에 우려 보여“욱일기 햇살은 몇 개일까요, 아는 분 계시나요?” 1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김창준아카데미 조찬포럼에 연사로 나온 한일 문제 전문가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질문을 던지자 순간 강연장에 정적이 흘렀다. 올해 도쿄올림픽에서 경기장 반입 허용을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욱일기에 대해 호사카 교수는 “진짜 욱일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스포츠행사에서 왜 욱일기를 쓰면 안 되는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태양 주위로 햇살이 퍼져 가는 문양을 한 욱일기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해외에서도 유사한 디자인을 볼 수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하며 국제적인 여론전을 펴고 있다. 호사카 교수는 “욱일기는 햇살이 몇 개인지 정해져 있다. 문제가 되는 욱일기의 햇살은 16개로, 전범 해군을 계승한 일본 해상자위대가 쓰는 바로 그 깃발”이라며 “이는 16개 꽃잎으로 된 일왕 국화 문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를 본떠서 야스쿠니 신사 문양이 만들어졌고, 다시 욱일기로 계승된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적이기보다는 좀더 정교하게 접근해야 국제사회에서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욱일기는 해상자위대의 깃발이고, 군의 상징”이라며 “군의 상징을 스포츠행사에 쓰는 경우는 없다는 논리로 (도쿄올림픽의 욱일기 응원 움직임에)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호사카 교수는 맥아더 연합군 총사령관이 주도해 만든 평화헌법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적시된 일왕의 지위를 ‘국가원수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바꾸려고 하는 아베 신조 정권의 개헌 시도가 어떤 의중을 갖는지도 설명하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아베 정권의 가장 중요한 노림수는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일종의 어명인 ‘칙령’을 일왕으로부터 얻기 위한 것”이라며 일왕을 국가원수로 만들면 극우파 정권은 오히려 야당의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사카 교수는 도쿄대 공학부를 졸업하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친 뒤 독도 문제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강제징용 역사 등 한일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2003년 한국으로 귀화했으며, 2009년부터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장으로도 취임해 활동하고 있다. 글 사진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박록삼의 시시콜콜] 일왕에 폭탄 던진 이봉창이 누린 ‘영원한 쾌락’

    [박록삼의 시시콜콜] 일왕에 폭탄 던진 이봉창이 누린 ‘영원한 쾌락’

    그는 창씨개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선인이건만 유창한 일본말에 비해 오히려 한국말이 서툴렀다. 약국, 제과점, 철도 역부 등으로 일하면서도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친구와 어울리길 즐기던 ‘모던뽀이’였다. 이 청년은 일본 내지로 건너가 기꺼이 ‘기노시타 쇼조’가 됐다. 그는 꼬박 88년 전인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키 연병장에서 만주국 괴뢰황제 부의(溥儀)와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습기를 머금은 수류탄은 불발탄이 됐고, 그는 곧바로 체포된 뒤 그해 10월 10일 사형됐다. 이봉창(1901~1932) 의사다. 그가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기 전 양 손에 수류탄을 들고 해맑게 웃으며 찍은, 그 유명한 사진은 볼 때마다 정말 놀랍다. 아무리 조국을 사랑하고 독립을 염원하는 펄펄 피 끓는 청년이라 하더라도 의거 뒤 뻔한 죽음이 예고된 상황에서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아니다. 물론 최근 들어 합성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긴 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일본인에게 차별받고 싶지 않았던 이봉창은 조선에서 차별은 당연했고, 차라리 일본으로 건너가면 동등한 대우를 받으리라 믿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임에도 호기롭게 돈을 쓰며 유흥을 즐기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창씨개명을 하고, 아무리 일본어가 유창해도 조선인 꼬리표는 어딜 가든 붙어다녔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이봉창의 각성은 이때 시작됐다. 일왕 히로히토 즉위식을 볼거리 삼아 구경하러 갔다가 오로지 한글로 된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의 제지를 받고 9일간 유치장에 갇힌 점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게 만들었다. 상하이임시정부를 찾아가 무턱대고 김구(1876~1949)를 찾았고, 밀정이라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상하이의 한 철공소에서 일하며 틈만 나면 술과 국수를 사와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자리를 가졌다. 술잔 공세에 의심이 무뎌졌을까. 그의 진심은 조금씩 통했다. 무엇보다 한인애국단을 이끌던 김구에게 전한 이봉창의 편지는 ‘모던뽀이’였던 그가 왜 이런 비장한 결단을 내렸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됐는지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선생님,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저는 지난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도(圖)키 위해 독립 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에 왔습니다.”비장하긴 한데 뭔가 유쾌하다. ‘쾌락’을 독립운동의 이유로 삼다니. 이봉창답다. 그는 상하이에서 일본으로 온 뒤 열흘 동안 김구로부터 처음 받은 300원이라는 거금을 몽땅 술과 유흥에 탕진하고, 이후 200원을 추가로 받아 역시 밥값, 술값에 기꺼이 써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족히 1000만원이 넘는 돈인데 말이다.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의도적 쾌락’이었다. 김구는 한인애국단 1호 단원 이봉창의 모습을 백범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기념 사진을 찍을 때에 내 낯에는 자연 회연한 기색이 있는지 이씨는 나를 권한다. “나는 영원한 쾌락을 향(享)코저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양인이 희열한 안색을 띄고 사진을 찍읍시다.” 나 역시 미소를 띄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남겨진 사진 자체는 합성일지는 모르지만, 철저히 이타적인 영적 쾌락에 대한 지향을 드러낸 88년 전 식민지 청년의 기백에 찬 표정과 말투가 떠오른다. 88년 뒤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쾌락을 누리려 바둥거리고 있는 걸까.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박록삼의 시시콜콜] 일왕에 폭탄 던진 이봉창이 누린 ‘영원한 쾌락’

    그는 창씨개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선인이건만 유창한 일본말에 비해 오히려 한국말이 서툴렀다. 약국, 제과점, 철도 역부 등으로 일하면서도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친구와 어울리길 즐기던 ‘모던뽀이’였다. 이 청년은 일본 내지로 건너가 기꺼이 ‘기노시타 쇼조’가 됐다. 그는 꼬박 88년 전인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키 연병장에서 만주국 괴뢰황제 부의(溥儀)와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습기를 머금은 수류탄은 불발탄이 됐고, 그는 곧바로 체포된 뒤 그해 10월 10일 사형됐다. 이봉창(1901~1932) 의사다. 그가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기 전 양 손에 수류탄을 들고 해맑게 웃으며 찍은, 그 유명한 사진은 볼 때마다 정말 놀랍다. 아무리 조국을 사랑하고 독립을 염원하는 펄펄 피 끓는 청년이라 하더라도 의거 뒤 뻔한 죽음이 예고된 상황에서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아니다. 물론 최근 들어 합성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긴 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일본인에게 차별받고 싶지 않았던 이봉창은 조선에서 차별은 당연했고, 차라리 일본으로 건너가면 동등한 대우를 받으리라 믿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임에도 호기롭게 돈을 쓰며 유흥을 즐기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창씨개명을 하고, 아무리 일본어가 유창해도 조선인 꼬리표는 어딜 가든 붙어다녔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이봉창의 각성은 이때 시작됐다. 일왕 히로히토 즉위식을 볼거리 삼아 구경하러 갔다가 오로지 한글로 된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의 제지를 받고 9일간 유치장에 갇힌 점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게 만들었다. 상하이임시정부를 찾아가 무턱대고 김구(1876~1949)를 찾았고, 밀정이라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상하이의 한 철공소에서 일하며 틈만 나면 술과 국수를 사와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자리를 가졌다. 술잔 공세에 의심이 무뎌졌을까. 그의 진심은 조금씩 통했다. 무엇보다 한인애국단을 이끌던 김구에게 전한 이봉창의 편지는 ‘모던뽀이’였던 그가 왜 이런 비장한 결단을 내렸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됐는지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선생님,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저는 지난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도(圖)키 위해 독립 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에 왔습니다.” 비장하긴 한데 뭔가 유쾌하다. ‘쾌락’을 독립운동의 이유로 삼다니. 이봉창답다. 그는 상하이에서 일본으로 온 뒤 열흘 동안 김구로부터 처음 받은 300원이라는 거금을 몽땅 술과 유흥에 탕진하고, 이후 200원을 추가로 받아 역시 밥값, 술값에 기꺼이 써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족히 1000만원이 넘는 돈인데 말이다.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의도적 쾌락’이었다. 김구는 한인애국단 1호 단원 이봉창의 모습을 백범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기념 사진을 찍을 때에 내 낯에는 자연 회연한 기색이 있는지 이씨는 나를 권한다. “나는 영원한 쾌락을 향(享)코저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양인이 희열한 안색을 띄고 사진을 찍읍시다.” 나 역시 미소를 띄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남겨진 사진 자체는 합성일지는 모르지만, 철저히 이타적인 영적 쾌락에 대한 지향을 드러낸 88년 전 식민지 청년의 기백에 찬 표정과 말투가 떠오른다. 88년 뒤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쾌락을 누리려 바둥거리고 있는 걸까.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일제 심장부 도쿄서 일왕에 수류탄… 이봉창 의사 의거 88주년 오늘 기념식

    일제 심장부 도쿄서 일왕에 수류탄… 이봉창 의사 의거 88주년 오늘 기념식

    일제 심장부인 도쿄에서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이 8일 거행된다. 국가보훈처는 7일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제88주년 이봉창 의사 의거 기념식’이 8일 진행된다”고 밝혔다.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정수용)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기념식은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및 회원, 시민, 학생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이 의사 약사 보고, 기념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1901년 서울에서 출생한 이 의사는 1931년 1월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고자 상하이로 건너갔다. 임시정부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의 김구 단장을 만나 일왕 폭살 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거사를 준비했다. 1년여의 준비를 마친 이 의사는 1931년 12월 말 도쿄에 도착했다. 히로히토 일왕이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신년 관병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날을 거사일로 결정했다. 이 의사는 당일 도쿄 경시청 앞에서 일왕 행렬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나타나자 수류탄을 투척했다. 수류탄은 일본 궁내대신이 탄 마차 옆에서 폭발해 일장기 기수와 근위병이 탄 말 두 필만을 거꾸러뜨리는 데 그쳐 이 의사의 계획은 안타깝게 실패로 끝났다. 당시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같은 해 9월 30일 도쿄 대심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10일 오전 9시 2분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김구 선생에 의해 국내로 봉환돼 효창공원 내 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는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IOC “도쿄올림픽 정치적 시위 엄금” 욱일기 함구, 눈길 끄는 BBC 보도

    IOC “도쿄올림픽 정치적 시위 엄금” 욱일기 함구, 눈길 끄는 BBC 보도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7월 도쿄 하계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올림픽 무대에서 정치적인 시위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국이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한 욱일기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3일(한국시간) 올림픽 관련 뉴스를 다루는 온라인 매체 인사이드더게임즈에 따르면 바흐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정치적 항의를 지양함으로써 함께 경쟁하는 동료 선수들을 존중해달라고 촉구했다. 바흐 위원장은 점점 커지는 스포츠의 정치화 현상이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하고, 종국에는 기존의 분열을 더욱더 깊게 만들 수 있다며 선수들의 정치적 시위에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냈다. 이어 “올림픽은 언제나 선수들과 그들의 경기력을 위한 글로벌 무대였으며 선수들에겐 스포츠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존중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대회 기간 욱일기의 경기장 반입을 허용하며 응원 도구로 활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정치적 선전물이 아니란 이유에서다. 일제의 아시아 침략 피해 당사자인 우리나라는 당시 피해국들과 연대해 욱일기 사용을 IOC에 촉구했지만, IOC는 사안별로 판단하겠다며 소극적인 자세만 되풀이하고 있다. 영국 BBC는 일장기와 욱일기의 유래는 물론, 욱일기가 지금도 해상자위대에서 쓰이고 있으며 변형된 형태로 자위대 정규 군대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과 대동아전쟁 때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등으로 피해를 입은 한국과 중국, 대만, 필리핀 등에 지난한 아픔을 상기시킨다고 보도했다.그런데 방송은 중국 체육계는 왜 욱일기 문제에 침묵하는지 조명하고 있다. 일본군은 1937년 난징을 점령하고 몇개월에 걸쳐 살육과 강간, 약탈을 저질렀다. 중국 통계에 따르면 3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2만명 이상의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 데이비드 어레이스 존스 홉킨스 대학의 난징 캠퍼스 교수는 “중국은 떠들썩하게 이슈를 만들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민들이 이 깃발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봄에 일본을 찾아 일왕을 알현할 계획을 갖고 있는 듯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는 사정도 곁들여진다. 방송은 또 우리 정치인들이 욱일기가 나치 독일의 스바스티카(swastika)를 연상시킨다는 주장을 들여다봤다. 일본 정부가 욱일기를 묵인하는 것과 달리 독일 정부는 철저히 만장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오직 극우 집단만이 사용할 따름이다. 도쿄 소피아 대학 정치학과의 나가노 코이치 교수는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끔찍한 인권 유린에 향수를 느끼거나 수정하고 싶어하는 이들이나 욱일기를 흔들어댄다”고 말했다. 그는 욱일기가 나치 만장보다는 미국 남북전쟁 때 남군에 속한 주들이 썼으며 지금도 금지되지 않아 남부 주들에서 버젓이 내걸리는 남부동맹군(Confederate) 깃발에 가깝다고 했다. 이 깃발은 인종격리와 백인 우월주의를 상징하지만 연방제를 택한 미국에서는 별다른 이슈가 되지 않는다.그러면 일본은 우리의 강력한 문제 제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까? 일본인들은 욱일기가 특별히 대동아전쟁과만 결부돼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 부적과 같은 것으로 취급됐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운다. 아이가 태어났다거나 계절 축제, 풍어를 기원하는 어민들이 사용하는 깃발이란 것이다. 심지어 보수파 신문의 대표 격인 아사히 신문의 로고도 욱일기를 약간 변형시켰다. 물론 방송은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한 한일 관계의 급랭이 욱일기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냉전시대 일본을 동맹 삼았던 미국이 일본을 두둔하고 있는 실정도 소개했다. BBC 보도는 우리의 주장에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지 않고 균형을 취하려는 듯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이 정도라도 영어권 독자에게 욱일기의 의미를 알린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文대통령 올 사주 환상적… 김정은 풍수적 기운 강해

    文대통령 올 사주 환상적… 김정은 풍수적 기운 강해

    풍수학·명리학으로 본 경자년 국운2020년 경자년(庚子年)을 흰 쥐의 해로 풀이한다. 10천간(天干) 중 경(庚)은 오행으로 금(金)이며 흰색, 12지지(地支) 중 자(子)는 쥐를 가리킨다. 그렇게 나온 흰 쥐의 해에는 예로부터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나왔다. 올해는 한반도 안팎으로 좋은 기운과 현명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4월 총선에서 새로운 인재들이 나올 수 있을지, 답보 상태인 남북 관계 실마리가 풀릴지 관심이 높다. 풍수학자 김두규 우석대 교양대학 교수와 사주 명리학 전문가 신정원 원광디지털대 동양학과 교수가 올해 국운을 내다봤다.[의미] -경자년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나. 김 교수 우선 사주를 통해 운명을 내다보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학술(學術)이라는 말에서 학은 과학을, 술은 술수를 의미한다. 개인이나 국가의 운명을 보는 사주는 ‘술’에 해당한다. 과학이 완전하게 해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술로써 뒷받침해 학술이 완성되는 것이다. 태어난 연월일시에 음양과 오행의 배합을 보고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현대의 사주이론은 송나라 때 완성됐다. 인간 본성과 자연 이치를 결합한 성리학의 기본 이론을 바탕으로, 농경사회 진입이라는 사회 변동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걷는 시점이 중요하다 보니 연월일시로 구성된 사주를 중시하게 됐다. 쥐는 12지지 중 가장 앞에 있는, 으뜸가는 동물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존력이 강하고 번식력도 뛰어나다. 조선 세종 때 실록을 보면 흰 쥐가 길한 동물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흰 쥐가 워낙 희소해 명나라 황실에서는 흰 쥐를 키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경자년생은 이성적이고, 죽음도 무릅쓰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촉의 장수 관우, 명나라 영락제, 194대 교황 베네딕토, 영국의 찰스 1세, 2019년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도 같은 흰 쥐띠다. 신 교수 오행으로 봤을 때 경은 백색 금속이고 자는 검은색 물(水)을 의미한다. 경자년은 흑백의 명백한 대립이며 금과 물이 상생하는 조합이다. 보통 금붙이는 재력을 의미하지만, 이 금속은 겉치레가 아니다. 실질 가치를 선호하고 선을 분명히 그어 내실을 다지는 것을 의미한다. 차가운 금속 기운이 검은 물을 만나서 고치고 개혁하고 심판하게 된다. 경제, 사회, 정치 등 각 분야에서 기득권층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국운] -변화가 나타난다는데, 경자년 국운을 총평한다면. 신 교수 기술적으로는 발전하리라 전망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침체기이다. 앞에서도 자에는 물의 기운이 들어 있다고 했는데 경제는 나무(木)·불(火)의 기운이 들어올 때 활성화하고 물은 어둡고 침체된 기운을 뿜는다. 이러한 분위기는 2021년 신축(辛丑)년까지 이어질 것이다. 주역으로 경자년을 점쳐보면 2020년은 주역 64괘 중 대축괘(大畜卦)의 해이다. 말하자면 하늘이 산속에 들어 있어 쌓이는 것이 많은 해이다. 그런데 여기서 쌓이는 게 돈이 아니고 학문과 도덕이다 보니 인재 양성을 위해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김 교수 일단은 좋은 면으로 보고 싶다. 전체적으로 경제는 나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어두운 물의 기운은 큰 먹구름으로도 해석한다. 먹구름은 비를 만들어 내려보낸다. 또 쥐의 해는 먹을거리와 자식이 풍성한 해이기도 하다. 먹을거리가 많으니 놀 수 있는 해다. 또 입에서 돈이 생기는 해로 아이디어나 말, 유려한 언변이 흥하는 해다. 사회적으로 본다면 남성이 주도하는 세계에 대한 반란이나 성 해방론도 확산할 것으로 본다. 김 교수 정치적으로 본다면 2020년에는 미국 대선과 한국 총선이 있다. 대축괘의 해에는 전쟁을 멈추고 서로 같은 뜻이 있는 사람끼리 대화를 통해 적을 복종시켜야 한다. 위태로움을 미리 알고 스스로 그치고 갈등을 멈추어야(輿說輹·바퀴통을 뽑고 수레를 멈춘다는 뜻) 하는 해이다. [정세] -열강에 둘러싸인 한국이라 국제정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문재인 대통령과 각국 지도자의 조화가 궁금하다. 김 교수 문 대통령은 ‘늦가을 화초’의 사주다. 사주가 굉장히 강하다. 경자년의 ‘경’이 바위인데 바위에 난이 끼어 있는 환상적인 형국이다. 그래서 올해는 문 대통령의 운이 2019년보다 훨씬 좋을 것으로 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겨울에 태어난 자갈이다. 풍수적으로는 모란봉 등 명당에 3대 선영을 모두 모시고 있어 가장 강력한 기운을 받고 있다고 봐도 좋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여름 메마른 논밭의 형국이다. 실제로 골프장을 비롯해서 그가 지은 부동산들이 모두 물을 끼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까지, 북중미 지도자가 다 물을 구하는 사주를 갖고 있다. 다들 같은 기운을 찾기 때문에 같은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올해 운이 좋지 않다. 다른 나라와 다른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본다. 신 교수 문 대통령이 동목(冬木)이라면, 김 위원장은 동금(冬金)이다. 오행의 상관관계로 볼 때 나무는 금의 단단함을 이기기 어렵다. 중요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때로 곤란에 빠뜨릴 수도, 때로는 위기에서 구출할 수도 있는 행동이나 결정을 취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주는 뜨거운 토양으로 보인다. 사주에 뜨거운 화기는 모두 자신인 토양을 돕고 있다. 본인 위주로 모든 것을 파악하는 성향이고, 때로 스스로 크고 높은 갑목 나무라고 생각할 정도다. 어두운 물의 기운을 오히려 반기고 활용해 경제적으로 더욱 발전이 있을 수 있다. 아베 총리 사주는 태어난 계절의 힘을 얻고, 조상으로부터 이어온 타고난 권력 유산 또한 아주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 불 기운을 본인의 권력 유지를 위해 가장 잘 활용한다. 그러나 경자년에는 아베 사주의 권력이 심하게 손상되는 일이 일어난다. 권위나 권력을 잃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해가 될 것이다. [총선] -올해 총선이 있다. 권력자가 등장할 기운이 있는가. 김 교수 앞서 언급했듯 경자년에 태어난 사람 중에 힘 센 지도자가 많았다. 바위에서 물이 나오는 형국이기 때문에, 경자년생들은 냉철하고 이성적이다. 조직 안에서는 형편없는 상사, 상관을 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경자년생으로, 대표적인 기질을 품고 있다. 그래서 총선이 더욱 주목된다. 새로 부상하는 지도자들이 나오고 이들이 대선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신 교수 경자년은 인재 발굴의 해다. 재산이 많은 사람보다는 도덕적 함양이 뛰어난 자가 차기 리더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전통적 권력의 성격보다는 인화를 이끌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자가 대중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 여러 다양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을 아우르고 그 탓에 야기된 갈등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 의사 소통의 능력이 좋은 사람을 조직에서 앞세우면 승산이 있다. [희망] -경자년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 희망을 줄 수 있는 말씀도 부탁드린다. 김 교수 경제가 많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소득이나 수출로 보면 양적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7위 경제 대국이다. 선진국 국민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검약하게 산다면 삶이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우리도 충분히 잘살고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면 좋겠다. 신 교수 완벽한 사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보더라도 운이 좋을 때가 있고, 반대로 운의 흐름이 안 좋을 때도 있다. 그게 운명이다. 자신의 사주팔자에 해마다 바뀌는 육십갑자의 운세를 적용해 운명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먼저 자신을 알고 때에 맞게 주변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게 지천명(知天命)의 가르침이 말하는 지혜로운 삶이다. 경자년은 특수 기술이나 재능이 발휘되는 해이다. 공부하고 자신의 실력을 다지다가 좋은 기회가 다가오면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한 해로 삼으면 될 것이다. 정리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