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일승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 종로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 벤츠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 30억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 일수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71
  • “북한 권력투쟁 가능성”/개혁 노선 싸고 대립… 김정일승계 지연

    ◎바자노프,러외교아카데미 부원장 【도쿄 연합】 일본을 방문중인 예프게니 바자노프 러시아외무부 외교아카데미부소장(아시아문제전문가)은 24일 북한의 체제확립이 지연되고 있는 것과 관련,북한지도부내에 권력투쟁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나타내고 『북한의 현체제는 종언을 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바자노프부소장은 일본 교도통신과의 회견을 통해 이같은 견해를 밝히고 북한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는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인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자노프는 북한 김정일의 당총서기,국가주석직 취임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북한에는 개혁에 소극적인 김을 반대하는 세력과 김을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있다.정권내부에서 권력투쟁이 계속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북한지도부내에 노선 등을 둘러싼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바자노프는 또 『김정일은 국가주석에 취임한다 하더라도 개혁의 길로 나가지 않으면 안될것』이라고 밝히고 그 이유로 지도부내 개혁파의 존재이외에 ▲축적된 민중의 불만 ▲개혁을 요구하는 중국 등 외부의 압력 ▲심각한 경제위기등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동유럽 등의 사회주의 정권붕괴를 예로 거론하면서 『북한은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지금까지의 독재체제는 결국 붕괴하고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정일승계」 발표 왜 늦어지나/북 「전승기념일」 행사와 권력향배

    ◎“권력서열 조정작업 진행” 추측/화려한 「대관식」 앞둔 준비설도 27일 열린 북한의 이른바 「전승기념일」 행사에서도 김정일의 권력승계 발표가 나오지 않아 김일성 사후 북한권력의 향배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북한이 해마다 휴전협정 체결일을 맞아 치르는 연례행사이긴 하나 이번에는 김정일체제 출범을 알리는 모종의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일부 관측이 빗나간 것이다. 물론 이번 행사가 조용히 끝난 게 반드시 김정일 후계체제의 이상기류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김일성부자가 이례적으로 참석해 요란하게 치렀던 지난해와 달리 소규모 실내행사로 진행되었지만 김정일에 대한 충성다짐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당정치국위원이자 공안담당비서인 계응태가 보고를 통해 『전체인민과 인민군 장병들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우리 혁명의 수호자로 높이 모시고 당의 사상과 혁명에 끝없이 충실하자』고 충성을 유도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 김정일체제의 조기구축 가능성에 의문점을 던지는 몇가지 특이사항이 노정됐다는 분석도 있다.그가 참석하지 않는 가운데 그에 대한 호칭도 여전히 국방위원장과 최고사령관에 그친 것이 그 하나이다.또 군의 최고실력자중 한사람인 최광 인민군총참모장이 군행사에 참석지 않은 사실도 퍽 이례적인 대목이다.더욱이 지난 대회에서 보고서를 낭독했던 권력서열 3위 강성산 총리가 그의 사위의 한국 귀순사실이 밝혀진 이날 불참한 것도 묘한 여운을 자아낸다. 이같은 특이점들은 이날 행사에서 오진우·이종옥·박성철·김영주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참석자들이 한명씩 호명되지 않고 「정치국 후보위원들」이라는 식으로 일괄소개한 것과 함께 권력핵심부간 내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라는 분석도 대두되고 있다.즉 김정일의 권력승계 그 자체에 결정적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권력서열 재조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미 김정일의 권력장악이 기정사실화된 만큼 사회저변의 충성서약을 좀더 이끌어낸뒤 화려한 대관식을 치르기 위한 준비단계가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즉 핵문제 등을 일괄타결한 뒤 이같은 업적을 이용해 오는 10월 전당대회에서 축제분위기 속에 추대식을 치르려는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 독의회,구유고파병작전 승인/조기경보기 역외초계 가능

    【본 로이터 AFP AP 연합】 독일의회는 22일 독일군의 해외전투역할 참여를 승인한 헌법재판소의 최근 결정을 처음으로 적용,해군과 공군을 구유고에 파견한 것을 4백24대48및 기권16표의 압도적 찬성으로 소급승인했다. 의회는 또 유엔의 대세르비아·몬테네그로 무역제재 시행을 감시하기 위해 아드리아해에 파견된 독일함정에 무력행사권을 부여하고 보스니아 상공을 감시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공중경계관제기(AWACS)에 탑승한 독일승무원이 나토영역상공 밖으로 비행하는 것을 승인했다.아드리아해에서는 2척의 독일구축함이 다른 나토함정들과 함께 초계활동을 하고 있으나 금수위반 혐의의 선박에 대한 제지및 수색과 무력사용은 금지되고 있으며 AWACS기에 탑승한 독일군도 나토역외로 비행하는 것이 제한돼 왔다. 이날 결정은 야당인 사회민주당 의원 약 80%가 찬성,초당적으로 이루어진 셈이며 독일의회가 통일이래 가장 중요한 정책변경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전후 독일은 지난 90년의 공산주의 붕괴와 통일 이전에 유엔이나나토의 해외군사활동에 참여한 일이 없으며 걸프전 당시는 방관만 하고 있다는 이유로 맹방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 김일성장례 연기/일,“김정일승계 이상” 제기

    ◎일부선 “김일성가족간 알력” 추측/“조문객 모두 수용… 김정일 체제구축” 시각도 【도쿄 연합】 북한이 김일성주석 추도식을 돌연 연기한 이유를 놓고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북한 체제 안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한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는 이즈미 하지메(이두견원)교수(시즈오카대)는 전인구의 7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조문객을 모두 수용하기 위한 것으로 우선 풀이하고 있다.김정일비서를 중심으로 한 북한지도부가 이같은 거국적 슬픔을 김정일체제 구축에 최대한 이용하려 장례식 연기결정을 내린것 같다는 분석이다. 이즈미교수는 국민의 슬픔이 깊으면 깊을수록 후계자 탄생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릴 수 있을것으로 북한당국은 추정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장의일정도 두개로 나누어 19일 영결식에선 김일성에게 이별을 고하고 다음날 추도대회는 실질적 후계체제 출범의 날로 활용하려 하는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일성의 죽음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전문가들은 시각을 달리한다. 현대 코리아연구소의 다마키 모토이(옥성소)이사장은 북한 장례위원회의 발표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면서 실제로는 ▲정권 후계작업에 뭔가 장애가 생겼거나 ▲추도대회에 참석할 군중에 대한 경비에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했다. 다마키이사장은 일단 발표한 장례일정을 변경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로서 권력승계의 지연을 의미한다면서 추도대회에 예상 이상의 주민이 운집할 것으로 보이자 군부나 공안당국이 돌발사태 경비에 자신감을 잃었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지난 9일 김의 사망사실을 발표하기 직전 내부적으로 불순분자의 색출을 강력히 지시한 사실이 있는 등 장례식을 계기로 민중의 불만이 폭발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이 연구소의 사토 가쓰미(좌등승사)소장은 김정일의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사인을 둘러싸고 김일성일족간에 뭔가 알력이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사토소장은 김정일이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말까지 두달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공식석상에 나왔을때도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고 지난 11일 김일성 시신을 공개했을 때도 몹시 여윈 모습이었다고 지적했다.
  • 적극적인 대북자세 요구된다(사설)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우리의 대응은 우선은 북한의 내부사정이 불확실한만큼 신중할수밖에 없을것이다.그러므로 정부가 북한내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단계적으로 대처하는 대응방법을 구사하는 것은 초기단계에서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사망설발표직후 주한미군이 경계수준을 높이지 않은것과는 달리 우리가 전군에 특별경계령을 펴고 대통령차원에서 만반의 대처에 나선 것은 신속한 위기대응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후계체제가 어떤 형태로 가시화되든 보다 명확하고 적극적인 대응방향을 세우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가야한다고 생각한다.김영삼대통령이 그저께 긴급소집된 임시국무회의에서 밝힌 기본입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와 평화공존의 변함없는 추구다.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북한의 상황을 악용하지않으며 북한역시 도발등 모험주의적행동을 하지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김일성 사망이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우리의 기본입장은 국제사회의 합의이기도 하다. 우리는 김일성 사망을 계기로 북한이 안정과 질서속에서 부드럽게 변화의 길을 걷도록 유도해야한다고 생각한다.나아가서 남북간의 신뢰구축과 긴장해소,교류와 협력의 새로운 관계증진으로 이어지게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그러기위해서는 우선 북한 지도부가 우리에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피해의식을 갖지않도록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언동을 자제해야할 것이다.한반도 안정의 유지관리를 위해서도 위기에 처한 북한을 자극하지않는 사려깊은 자세는 필요한 일이다. 그런 바탕에서 남북간의 모든 문제를 부드럽게 해결하는 노력이 있어야한다.정부가 빠른 시기에 북한에대해 대화의 기조를 확실하게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그런점에서 김일성이 죽기전에 남북간에 합의된 정상회담의 계속적인 추진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좋겠다는게 우리생각이다.물론 김정일승계로 공식화된다고해서 김대통령이 바로 그와 정상회담을 할수있겠느냐,그렇게함으로써 부자세습을 우리가 앞서서 공식화할 필요가있느냐하는 비판도 나올수 있다. 그러나 격식이나 시기 장소문제는 접어두고 최소한 원칙문제에서 그가 누구이든 북한의 최고책임자인 경우에 그 현실을 외면할수는 없지않겠느냐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그런 문제를 따지고있기에는 핵문제해결이 너무나 중요한 현안이며 이산가족의 재회문제 하나만해도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시급한 문제인 것이다. 남북간에 대화의 문을 열어놓는 것은 김일성사망이라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우리정부의 주도적 노력이 될수있을 것이다.
  • 여권인사들 “불심잡기” 총출동/민자­불교계 「화해법회」 현장

    ◎JP “비온뒤 땅굳듯… 불자들에 사과/불교계,정부비난 현수막 철거 추진 민자당 불교신도회(회장 곽정출의원)가 17일 서울 부암동의 한 음식점에서 개최한 「창립4주년 기념법회및 정기총회」는 신도단체의 단순한 연례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당안팎의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 3월의 조계사폭력사태 이후 계속되고 있는 여권과 불교계 사이의 냉랭한 분위기속에서 양측 고위인사들의 첫 상면이 이뤄진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불교계의 정서를 달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온 민자당은 이날 김종필대표를 비롯,불교신도인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정각회 권익현회장,곽회장등 불자의원들이 대거 참석,모임에 무게를 실었다.참석자들의 발언도 불교발전과 화합을 유난히 강조하는 등 불심잡기에 애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김대표는 격려사에서 『조계종사태로 불자 여러분들의 마음고생이 컸으리라 생각되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의 뜻을 표한 뒤 『앞으로 당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불교발전을 뒷받침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대표는 이어 『비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지듯 모든 사부대중이 화합해서 호국불교전통을 바탕으로 거듭 태어나길 간절히 발원한다』고 불교계의 개혁과 화합을 강조했다. 권회장과 곽회장 역시 불교의 진흥과 이를 위한 당의 지원을 강조했으며 법회에 이어 열린 총회에서는 경주 이차돈기념관 건립,고려 불화 복원사업,불교회관 건립등 불교활성화를 위한 특별사업 추진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됐다.또 정부에 대해 지방 불교방송국 설립,승가대의 4년제 정규대학화등 대통령 공약사항의 이행도 촉구했다. 조계종측에서는 월탄전종회의장이 법어를,정우총무부장이 탄성총무원장을 대신해 축사를 했으며 천태·태고·총화·미타·대승·일승·법화종의 총무원장등 30여명의 불교계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날의 행사를 포함해 최근 여권과 불교계 사이에는 화해무드가 완연히 나타나고 있다.불교계로부터 사퇴요구를 받은 최형우내무부장관이 지난 16일 조계사를 방문했고 18∼19일에는 불교계가 사찰별로 승려회의를 열어 대정부 비난현수막을 철거할 예정이다.여권에서는 또한 조만간 김영삼대통령과 월하조계종정간의 면담도 추진하고 있는데 늦어도 경주시및 녕월·평창군의 보궐선거 이전에 성사될 것이 확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화해움직임의 한켠에서는 앙금의 흔적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최장관의 16일 조계사발언을 사과로 받아들일 것이냐를 놓고 벌어진 조계종 내부의 논란 때문에 탄성총무원장이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조계종은 20일 원로회의를 열어 최장관의 발언을 사과로 받아들일지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이날의 모임이 「권불화해」의 분수령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폭력조직 동원/무성승려 시인/조계사사태 첫 공판

    조계사 폭력사태와 관련,구속 기소된 무성승려(38·속명 김김철)와 폭력조직「불출이파」 두목 번봉환씨(32) 등 28명에 대한 1차공판이 3일 서울형사지법 홍경호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날 공판에서 무성승려는 『3월26일 고중록규정부장으로부터 폭력배 3백명을 모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1인당 10만원씩 주고 이들을 동원,같은달 29일 조계사내에서 범종추소속 승려들을 폭행한뒤 규정부장 보일승려로부터 3천만원을 받았다』며 공소사실을 시인했다.
  • 보일승려·고중록씨 전국 현상수배

    조계종 폭력사건을 수사중인 서울경찰청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서정옥형사부장)는 29일 사건의 핵심인물인 총무원 규정부장 보일스님(49)과 규정부 조사계장 고중록씨(37)등 2명의 조속한 검거를 위해 이들을 전국에 현상수배했다.
  • 폭력자금 동원/보일승려 주도/조계사수사

    조계사 폭력사건을 수사중인 서울경찰청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서정옥 형사부장)는 21일 폭력배 동원자금으로 쓰인 수표7장의 출처를 역추적한 결과 이 수표들이 모두 조계종 구총무원 규정부장 보일스님(47·속명 정진길)의 요청으로 전국의 각 사찰 주지들에 의해 조달된 사실을 확인하고 수배중인 보일스님의 검거에 주력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국민은행 강원도 철원군 동송지점 발행 1백만원권 2장의 인출자인 심원사 주지 영도스님(43·구총무원 포교부장)으로부터 지난달 21일 동지점에서 1백만원권 15장을 인출해 이 가운데 5장을 총무원행사비 명목으로 보일스님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 검찰,「상무대」 수사여부 싸고 갈팡질팡/조계사폭력 수사 이모저모

    ◎한때,“보일승려 출두” 소문에 긴장/조계사집회 플래카드부착 실랑이 ○…조계사 폭력사건에 대한 경찰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검찰은 6일 김영삼대통령이 사건 수사를 철저히 하도록 이회창국무총리에게 지시한뒤 이총리가 이를 다시 법무부장관과 내무부장관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지시내용이 일부 잘못 전해진 것으로 파악되자 대통령 지시내용의 본뜻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 하느라 진땀. 검찰 관계자는 『주돈식 공보수석에 의해 발표된 대통령의 지시내용을 다시 알아본 결과,「폭력사태를 철저하게 수사하라」는 언급은 있었으나 서의현총무원장의 개인비리나 상무대 사건을 특별히 조사하라는 지시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다』며 『그러나 이총리가 지시한 내용에는 상무대사건에 대한 언급이 들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 그는 이어 『대통령의 진의는 폭력사태를 엄단하라는 것임이 뒤늦게 최종 확인됐다』며 폭력사태에 한해서만 수사를 하게된 배경을 설명. ○…이날 상오8시40분쯤 총무원 사회부장인 도각스님이 수사본부로 전화를 걸어 이날중 보일스님이 자진출두할 예정임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찰은 이같은 사실을 부인. 경찰은 보일스님에게 3번의 소환장을 발부하고 5일 총무원측에 직접 협조요청까지 한 상태여서 이날까지 자진출두하지 않을 경우 사전영장을 신청한다는 입장을 재확인. ○…하오3시 조계사에서 열린 3·29법난 규탄과 종단개혁을 위한범불교도대회는 시작전부터 조계사측 신도들과 대회참가를 위해 조계사에 온 신도들 사이에 플래카드 설치를 놓고 고성이 오가는 등 험악한 분위기. 이날 대회준비위측이 플래카드를 조계사 대웅전앞에 부착하려하자 조계사측 신도들이 『왜 조계사에서 이러느냐,플래카드를 달수없다』고 거칠게 항의하면서 30분남짓 실랑이를 계속. ○…경찰이 갑자기 범종추측 스님3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한 동기를 놓고 주변에서는 여러 갈래의 분석이 설왕설래. 『갑자기 범종추소속 스님들을 구속하겠다는 이유가 뭐냐』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서정옥 수사본부장은 『처음부터 총무원측과 범종추측 수사를 병행해온데다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시점이 지금이라고 판단됐기 때문』이라고 궁색하게 설명. 그러나 범종추 소속 스님들은 『이미 사건 직후에 검찰의 불구속 수사지침을 받아 경찰이 연행자들을 석방해 놓고서 다시 구속방침으로 바뀐 것은 설득력이 없다』며 총무원측 3명에 대한 사법처리와 형평을 맞추기 위한 억지가 아니냐는 분석. ○…그동안 소극적 수사로 지탄을 받아온 경찰은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데다 문책인사설까지 나오자 이날 하오 서울경찰청에서 시내 30개 경찰서장및 형사과정 연석회의를 여는등 뒤늦게 부산을 떨어 빈축. ◎공동대표 시현승려 인터뷰/“범종추서 종단인수 않을것”/이번기회에 불교 체질개선 필요 『이제부터가 불교개혁의 시작입니다』 6일 하오3시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종단개혁을 위한 범불교도대회」에 참석한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범종추)상임공동대표인 시현스님(48)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한국불교의 체질개혁이 단행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11일째 개운사에서 종단개혁을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해온 시현스님은 『국민들께는 심려를 끼쳐 죄송하지만 언젠가는 거쳐가야할 피할수 없는 불교개혁의 길』이라면서 국민들의 이해를 당부했다. 『오는 10일 전국승려대회에서 원로 중진,각 본산대표,소장승등 전종도의 합의 아래 개혁의지를 지닌 스님들을 중심으로 대책기구를 구성할 것입니다』 시현스님은 이렇게 말하며 『범종추가 결코 수권기구가 아니기에 서총무원장이 사퇴해도 종단을 인수하는 일은 없을것』이라고 밝혔다. 범종추는 끝까지 이번 개혁방향을 이끌고 지켜주는 역할에만 머물겠다는 것이다. 그는 개혁 방법에 대해서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기존 집행부가 개혁의지를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 근본문제였다』면서 기존종단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합법적 파행운영이라고 지적했다. 또 범종추가 지나치게 소장파 위주로 구성되지 않았느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앞으로 원로 중진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종단의 화합을 이루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서총무원장에 대해서는 추호의 개인적인 원한이 없다』면서 『다만 서원장이 바람직한 사태해결을 위해서는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 조계종 총무원 곧 압수수색

    ◎조계사폭력 수사/양심선언 스님2명 출석요구/보일승려 등 2명 사전영장/폭력배 6명 검거·15명 지명수배 조계사 폭력사태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서정옥서울경찰청형사부장)는 6일 법원으로부터 조계종 총무원 규정부장 보일스님과 고중록조사계장(37)등 2명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경찰은 또 이날 재지휘가 내려진 무성스님과 총무원건물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간 혐의로 입건됐던 하유스님(30·속명·김영진·경북 문경군 봉암사)등 「범종추」 승려 3명을 포함,나머지 4명에 대해서도 관련서류를 보완,조속한 시일안에 사전구속영장을 다시 신청,검거에 나서기로 했다. 경찰은 이와함께 전북 김제군 금산사 소속 여산스님(40·전 상주사주지)과 선봉스님(49·전 동화사재정국장)의 양심선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금산사와 범종추 앞으로 여산스님및 선봉스님에 대한 출석요구서를 발송하는 한편 검찰이 서의현총무원장의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함에 따라 서원장의 소환에 대비,소재파악에 나섰다. 경찰은 이와 관련,『폭력배들의 호텔숙박비를 지불하도록 서원장이 직접 지시했다고 폭로한 여산스님과 주지임명때 서원장이 거액의 금품을 받았다고 주장한 선봉스님의 발언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서원장에 대한 수사도 당연히 병행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해 서원장 소환조사가 곧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경찰은 아울러 조계사 폭력사건 현장의 사진채증 등으로 이미 신원이 확인된 동원폭력배 12명 외에 서울시내에서 활동중인 황모씨(21·전남 광주시 서구 슬하동)등 5명의 폭력가담사실을 추가확인하고 이들 17명을 지명수배하는 한편 사진이 확보된 12명의 얼굴사진을 부착한 공개전단을 제작,전국에 배포했다. 경찰은 또 폭력배 동원에 사용된 자금의 출처를 조사하기 위해 조계사 총무원 건물및 경주 불국사,법보신문사등 3곳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회계및 경리장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이밖에 경찰은 조계사 폭력사태에 가담한 폭력배 김정원씨(21·중랑구 중화2동)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하는 한편 서울 강동구 길동 B여관에 투숙중이던 주모씨(35·전남 고흥군 도덕면 용동)등 4명을 종로경찰서로 연행,조계사 폭력사건 관련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 서원장 빠르면 내일 소환/조계사 수사

    ◎“폭력배동원 개입” 전측근 폭로/보일승려에 사전영장 발부/폭력배 8명 연고지에 형사대 급파 조계사 폭력사태를 수사중인 특별수사본부(본부장·서정옥서울경찰청 형사부장)는 서의현총무원장이 폭력배 동원에 직접 개입했다는 불교계 내부의 폭로가 잇따라 진상규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은 폭력사태의 배후인물을 가리기 위해 서총무원장을 소환키로 하고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 경찰의 고위관계자는 『서원장을 소환하지 않고서는 사건의 진상을 밝힐 방법이 없다』면서 『소환시기는 빠르면 7일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특히 서원장이 총무원장의 상좌인 규정부장 보일스님(49·강화 보문사주지)에게 폭력배들의 숙박비를 결제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여산스님(38)의 폭로내용을 중시,사실여부를 가리기 위해 자진출두 형식으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여산스님이 자진출두하는대로 정확한 당시 상황을 조사하는 한편 구속된 도오스님과의 대질신문도 할 예정이다. 경찰은 또 보일스님이 자진출두를 거부함에따라 이날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보일스님 검거에 나섰다. 경찰은 총무원 규정부 조사계장 고중록씨가 조계사 경내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조계사 총무원 주변에 검거전담반을 고정배치하고 감시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지난 4일 하오 사진채증을 통해 사건현장에서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확인돼 붙잡힌 김정원씨(24·중랑구 중화2동)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가담경위등을 조사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달 29일 상오4시10분쯤 고향친구 박모씨(24)로부터 무선호출기로 연락을 받고 신촌에서 만나 이날 하오 조계사에서 다른 폭력배와 함께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있다. 경찰은 또 오일씨(23·노원구 중계1동 103)등 신원이 확인된 나머지 폭력배 8명의 연고지등에 형사대를 급파했다.
  • 「조계사 폭력」 수사확대에 관심

    ◎검찰,“혐의 판명땐 서 원장 사법처리”/배후·자금출처 규명위해 불가피/조사땐 「상무대 의혹」 맞물려 고민 조계종 폭력사건때 서의현총무원장의 핵심측근인 규정부장 보일스님이 폭력배를 동원했다는 혐의가 밝혀지면서 경찰이 4일 총무원 상층부로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어 서총무원장에 대한 수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찰이 총무원 상층부로까지 수사를 확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지금까지의 수사결과 이번 사건에 직접 연루된 승려들이 서원장의 수족처럼 일해온 사람들인데다 폭력배 동원에 사용된 거액의 자금이 총무원 최고위층의 허가없이 집행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더구나 오는 8월로 임기가 끝나는 불국사 주지 종원스님의 경우 감독기관인 총무원의 재가없이 호텔 숙박료등 경비를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 조계종내부의 지적이다. 경찰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일스님이 총무원 지도부로부터 직접 폭력배 동원에 대한 「어떤 지시」를 받았거나 아니면 또 다른 측근을 통해 간접 전달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에따라 ▲폭력배 동원지시를 한 보일스님의 배후 ▲사용된 자금의 출처및 규모 ▲동원된 폭력배들의 신원등에 대한 수사를 위해서는 총무원 고위층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 경찰은 서총무원장의 소환조사문제가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주위의 시각이다. 서총무원장을 조사할 경우 이번 조계사 폭력사태의 원인중의 하나인 상무대 이전자금의 정치권 유입이라는 민감한 정치쟁점을 조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찰은 이에따라 보일스님을 총무원측의 폭력배 동원 주모자로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경우 「축소수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어 전면 확대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 범종추측 스님들이 『총무원측이 미리 경찰투입을 자제해달라고 경찰에 연락한 뒤 자기들이 폭력배들을 동원,난동을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재가불자연합측도 『보일스님 수사정도로는 어림없다』면서 『신흥사·봉은사등 폭력사태를 직접 지시한 고위층을 이번에 함께 밝혀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번 조계사 폭력사태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그동안 말썽 많던 종교계의 비리척결에 대한 검·경찰의 확고한 수사의지와 정치적인 결단까지도 내려져야만 한점 의혹없이 마무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적」 제거에 종원·도오승려 이용/서 원장,지위보장 해주고 자기파 만들어 이번 조계사 폭력사태와 관련,경주 불국사의 자금이 폭력배동원에 사용되고 불국사 말사인 분황사의 전주지 도오스님(42)이 구속됨으로써 조계종 총무원이 이 두 사찰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음이 수사결과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동안 서의현총무원장은 불국사 주지인 종원스님(58)과 도오스님을 이용해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등 세력확장을 해왔고 이 과정에서 두 승려는 서원장의 하수인 역할을 하며 반대급부로 교계내 지위를 보장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된 도오스님은 종원스님의 사제로서 모두 조계종 원로의원인 월산스님의 제자들이다. 이들과 서원장의 이해관계는 역시 월산스님의 제자로서 종원승려의 사제인 전불국사 기획부장 종상승려(46)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서로 맞아떨어졌다. 또 종상스님의 사형인 종원스님은 종상스님이 스승인 월산스님의 문중인 불국사와 금산사·법주사 승려들을 규합해 반서원장운동을 주도하면서 승려들의 신임을 얻게 되자 자신의 지위에 불안을 느껴 반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원장은 이러한 종원스님과 종상스님의 미묘한 양쪽관계를 교묘히 이용,종원스님을 자신의 수족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최대의 「정적」인 종상스님을 제거하는 작업에 나섰다. 또 이 과정에서 두 승려의 사제인 도오스님은 종상스님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불국사내 승려들의 동태등 각종 정보를 서원장에게 전해 서원장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세사람의 「공작」끝에 종상스님은 지난해 12월 종원스님으로부터 폭행혐의로 형사고발된 데 이어 지난 1월에는 불국사 기획실장자리에서 물러났고 지난달 10일에는 조계종 호계위원회의 결정으로 체탈도첩(기독교계의 파문에 해당)되기에 이른다. ◎보일승려는 누구인가/조직폭력 두목과 의형제… 9년째 규정부장직 맡아 조계사 난동사태시 폭력배동원의 실무총책으로 알려진 보일스님(49·속명 정진길)은 현 조계종 서의현총무원장과 3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측근중의 측근이다. 그는 63년 대구 동화사에서 서원장에게 계를 받고 삭발한 뒤 서원장의 상좌가 됐다. 86년 서총무원장체제가 출범하면서 불교계의 감찰기관인 규정부장직을 줄곧 맡아왔으며 89년부터 경기 강화의 보문사주지를 겸임하고 있다. 이 사찰은 노태우전대통령 가족등이 신도로 지낼 정도로 오래전부터 『불공을 드리면 효험이 크다』고 소문이 나 있고 신도들에게서 받는 시주가 연간 10억원대가 넘는 노른자위 사찰로 알려져 있다. 보일은 92년9월 조계사내의 경비원 김모씨를 폭행해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았으나 규정부장직을 그대로 유지할 정도로 서원장의 신임이 두텁다. 집행유예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보일스님은 폭력조직인 「신동아파」의 우두머리 강모씨와 의형제 사이로 지내면서 불교계의 각종 폭력사태에 직간접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번 폭력사태와 관련해서도 보일스님이 강씨를 통해 수십명의 폭력배를 동원하는등 막후지휘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총무원,난투극 조직적 개입

    ◎조계사 수사/폭력배 1백명 투숙시켜 동원/천호동 등 4곳조직 가담한듯 조계사 폭력사태를 수사중인 서울 종로경찰서는 1일 총무원측이 폭력배를 인근 호텔에 집단투숙시켜 가며 폭행에 가담시키는등 사전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혐의를 잡고 이들 폭력배들의 신원및 배후세력에 대해 집중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특히 이들 폭력배들가운데는 경기도 파주군 보광사 모승려의 상좌 이모씨(42)와 사무장 나모씨(50)가 동원한 폭력배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서울 천호동과 경기도 광명시등을 본거지로 한 4개 폭력조직원이 가담했다는 범종추관계자들의 주장에 따라 이에대한 사실확인작업도 벌이고 있다. 이와관련,범종추 지선스님은 『서울경찰청에 근무하는 수원 팔달사 주지스님의 속가상좌가 4개파조직 폭력배들이 지난달 29일 새벽 폭력배들이 조계사에 난입하기전 미리 서울경찰청에 난입시간과 인원등을 신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경찰의 방조사실에 대한 가능성도 함께 제기했다. 또 범종추측 승려들은 경기도 파주군 보광사 모승려의 상좌 이모씨(42)와사무장 나모씨(50)를 조계사 폭력사건을 일으킨 우두머리들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에따라 총무원 규정부장 보일승려(41)와 조사계장 고중록씨(38)등을 2일 소환,사건 발생 전후의 행적을 조사키로 했으며 총무원 관계자들의 개입사실이 확인될 경우 전원 형사처벌할 방침이다. 경찰은 폭력사태가 발생하기 하루전인 28일 하오 11시쯤 조계사 부근인 종로구 청진동 서울호텔에 김모씨(31)등 건장한 체격의 20대 청년 30명이 910호등 12개의 방에 나눠 투숙했으며 숙박료로 현금 72만6천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박모승려가 경상도 모사찰 김모승려에게 사찰명의의 법인신용카드를 빌려 지난달 29일 조계사 총무원 전화번호를 대고 숙박한뒤 그냥 나간 청년 1백여명의 숙박비를 결제하려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의 신병을 확보,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1일 상오 6시5분쯤 50대 후반의 남자가 서울호텔 경비실에 숙박비조로 1만원권 5백장이 든 돈봉투를 집어던지고 달아났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와함께 당시 괴청년들이 타고 온 경기 2추4983호 흰색 그랜저 승용차의 소유주가 장모씨(70·여·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고층주공아파트)이며 평소 장씨의 아들 나모씨(29)가 이 차를 몰고 다녔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나씨의 소재파악에 나섰다. 경찰은 또 사건당일 조계사 경내에서 확보한 무선호출기에 입력된 전화번호가 영등포와 경기도 광명시 일대의 전화번호로 밝혀짐에 따라 이들과의 연고관계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 한용운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3·1운동 주도한 저항시인/불교대표로 참여… 선언문 배포 지휘/출옥후 신간회·비밀결사 만당 결성/「님의 침묵」등 시 3백편·소설 「죽음」「흑풍」 남겨 만해 한용운선생(1879∼1944)은 토지·조세·신분문제등에 대한 불만으로 전국에서 민란의 불길이 일던 봉건왕조말기에 태어났다.선생은 청년시절 날로 기울어가는 국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동학혁명에 가담하기도 했으나 24세때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 끝에 출가했다. ○동학혁명에 가담 입산한 지 10년만인 1913년 선생은 자유·평등사상에 기초한 「조선불교유신론」을 발간,부패가 만연한 당시의 불교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선생은 이 유신론에서 번잡한 각종 의식을 없애고 직접 생산에 종사하자는 혁신적 주장을 펼쳤다. 선생은 같은해 10월 친일승들이 모여 한국의 원종과 일본의 조동종을 통합하자 이를 친일매불행위로 규정한 뒤 승광사에서 전국승려궐기대회를 열고 임제종을 창립,큰 호응을 얻어냈다. 선생은 이후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방대한 고려대장경을 현대적으로 정리,불교대전을 펴냈으며 처음으로 불교잡지 「유심」을 창간,계몽활동에 뛰어들었다.당시 지식인으로 명망이 높던 최린·최남선·현상윤등도 이 잡지발간에 적극참여,암울한 식민무단통치시대에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횃불역할을 했다. 선생이 독립운동가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1919년 3·1독립운동을 추진하면서부터다. 3·1운동에 초기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한 선생은 당시 유림과 불교계의 포섭을 맡았다.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 뒤 독립선언 하루전인 2월28일에는 독립선언문 3천장을 인쇄소인 보성사사장 이종일로부터 넘겨받아 중앙학림 학생들에게 전달,다음날인 3월1일 시내에 배포하도록 했다.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에 대해서는 선생이 지은 독립선언서를 수정해 삽입했다는 설과 최남선이 작성했다는 설이 나누어 있다. ○옥중에서도 태연 1919년 3월1일 하오2시 종로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서를 돌려보는 것으로 낭독을 대신해 독립운동의 서막을 열었다.선생은 이 자리에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게 돼 책임이 막중하다』며 일제에 체포되더라도 변호사를 대지 말고 사식과 보석을 요구하지 않는등 당당한 대응을 하자고 행동강령을 제시했다.민족대표들은 모임이 끝나자마자 일경에 모두 체포됐으며 선생은 옥중에서도 수도승답게 태연한 모습을 지켰다. 선생은 옥중에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이라는 논설을 통해 『자유·평등·평화는 민족의 자존과 세계평화로 이어지는 대강령이며 이번의 조선독립선언은 국가를 창설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때 치욕을 겪고 있는 고유의 독립국이 다시 복구되는 것임』을 설명했다. 3년여 옥고를 마치고 가출옥한 선생은 청년교육과 훈련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1924년 불교청년회회장으로 취임,대중불교건설에 앞장섰으며 「유심」등 신문잡지를 통해 『청년들에게 역경은 큰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이 땅의 젊은이들은 나라가 없다고 좌절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다. 선생은 1927년 좌우합작 민족유일당운동인 신간회결성에 참가했으나 2년 뒤 이 단체가 광주학생의거 진상보고민중대회를 가지려다강제해산됨에 따라 1930년 청년불교도들이 결성한 비밀항일독립운동단체인 만당의 당수로 취임,와해되기 전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대학설립 수포로 이와 함께 1926년 이상재·이승훈·조만식선생등 30여명과 조선민립대학설립 기성회를 구성,대학을 세우려 했으나 일제가 이 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경성제대를 설립하는 바람에 대학설립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국문학사에서 3·1운동세대가 낳은 최대의 저항시인으로 꼽히는 선생은 1926년 발간한 「님의 침묵」에 모두 3백여편의 시를 실었다.또 소설로는 「죽음」「흑풍」「철혈미인」「박명」등을 남겼다. 선생이 시와 소설에서 쓴 「님」은 일제치하에서 조선의 독립을 갈구하는 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55세인 1933년 재혼한 선생은 방응모등의 후원으로 성북동에 심오장이란 택호의 집을 짓고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집을 지을 때 사람들이 남향으로 터를 잡을 것을 권했으나 마주보이는 총독부건물이 보기 싫다고 끝내 북향으로 집을 틀어버리고 말았다. ○변절자 면담거부 선생은 뜻을 끝까지 같이 한 동지에 대해서는 깊은 의리를 간직했으나 변절자에게는 단호히 단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만주에서 대한통의부총장을 역임한 김동삼선생이 일경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서 순국하자 유해를 심우장에 모시고 5일장을 치르며 눈물을 아끼지 않았으나 3·1운동당시 동지이던 최린이 변절,창씨개명을 하고 믿아오자 끝내 만나지 않았다. 일제치하에서 조선 전국이 감옥이라고 여긴 선생은 추운 겨울에도 심우장 냉방에서 꼿꼿이 앉아 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민족이 배출한 위대한 시인이자 독립투사이며 여성해방론자이기도 한 선생은 44년6월 입적,망우리묘지에 안장됐다. 근대사의 여명기에 태어나 선각자적 삶을 통해 민족정신의 새벽을 연 선생에게 정부는 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일 관료 벽에 밀리는 미/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어떤 사회건 「영구적인 정부」는 「변하는 정부」보다 변화를 싫어하게 마련이며,특히 정책입안에 있어 「만년 관료」가 강하면 강할수록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더 심하다고 생각한다』 클린턴 미대통령이 지난 11일 미­일정상회담에서 무역협상이 결렬된뒤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 자리에서 일본 고급관료들을 겨냥하여 한 말이다. 미국이 연간 6백억달러의 대일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각 분야별로 시장개방 목표수치를 설정하려 했지만 일본은 「관리무역」이라며 이를 거부했다.클린턴대통령은 작년 7월 당시 미야자와총리와 『시장개방점검을 위한 객관적 기준마련』 합의를 끌어내놓고는 자랑스레 「대일승리」의 팡파르를 울렸었다. 그러나 7개월뒤 일본관료라는 까다로운 벽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의 무역협상전선에 나섰던 로이드 벤슨재무장관도 『일본의 어느 장관을 만나더라도 그뒤에는 골치아픈 관료들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실토했다.미측 협상대표인 보먼 커터 백악관경제보좌관은 『일본관료들은 「완고한 만다린(과거 중국의실세관료들)」처럼 변화에 미온적이다』고 푸념했다. 앨 고어부통령은 하타일외상과 만나는 자리에서 『일본관료들이 일본을 통제하여 미국을 움직이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놓았다. 클린턴행정부는 호소카와총리의 일본내각이 대미무역흑자를 시정하려 해도 「소아적 이기주의」가 체질화된 관료들의 「철벽」에 부딪쳐 움직이지를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관료들은 누구인가.의원내각제하의 잦은 총선과 이에따른 각료의 뻔질난 경질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경제대국을 건설한 바탕에는 바로 이들 「관료엘리트」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적어도 대외문제에 관한한 담당과장의 말과 장관의 말에 한치의 틈도 없는 나라가 일본이다. 한국의 직업관료들은 어떤가.소관분야 정책의 일관성유지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또 각종 시책을 과연 얼마나 소신있게 집행하고 있는가.그러면서도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변하는데도 「관료이기주의」에 젖어 변화에 거부의 몸짓을 하고있지는 않은지.일본관료들과의 다른 점과 유사점을 생각해본다.
  • 일,3년불황에도 최고의 무역흑자(현장 세계경제)

    ◎「침체경제」 허실을 알아본다/상품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1위/불경기 장기화… 93년 마이너스 성장 추정/상장사 종업원 9만명 해고… 실업률 급증 도쿄 중심부에 있는 미스코시(삼월)백화점.품질과 친절을 생명으로 여기는 일본의 백화점중에서도 손꼽히는 미스코시는 그 흔한 바겐세일이라는 말이 거의 없다.최고급 명품만을 취급하는데다,지난 몇년동안 호황이어서 바겐세일의 필요성이 없었다. 그런데 미스코시가 올들어 금기를 깨고 바겐세일을 단행했다.일본백화점의 대명사격인 미스코시가 자존심을 꺾고 바겐세일을 단행한 것은 3년째 계속되는 일본열도의 불황을 말해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개장이래 첫 바겐 지난 86년12월부터 전후 두번째로 긴 53개월동안의 장기 호황을 누렸던 일본경제는 91년 5월이후 후퇴 국면에 접어들어 2월 현재 34개월째 불황에 빠져있다. 도쿄의 경제전문가들은 『전후 일본의 경기순환 과정의 경기후퇴 기간은 대부분 10∼17개월이었지만 이번의 후퇴는 80년 12월에서 83년 2월까지 36개월동안 지속된 이른바 제2차 석유파동시의 불황기를 훨씬 능가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욱일승천의 기세이던 도요타·마쓰시타·히타치·닛산·닌텐도와 같은 대표적인 초일류 기업들도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지난 91년도(91년4월∼92년3월)에 3.6%였던 실질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은 92년도에 0.4%로 급격히 떨어졌다.대부분의 민간 연구기관들은 93년도의 성장률이 마이너스 0.5∼플러스 0.5%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불황의 장기화는 특히 고용동향에서 예민하게 나타난다.실업률이 93년 1∼4월 2.3%(1백50만명)였으나 11월에는 2.8%(1백84명)로 높아져 실업자수가 34만명이나 늘어났다.직업안정기관의 구직자 수에 대한 구인자 수의 비율인 유효 구인배율은 1월의 0.93에서 11월에는 0.65로 낮아져 고용상태의 심각성을 나타낸다. 수익이 나빠지자 기업들의 고용조정이 두드러지며 일본인들이 자랑하던 「평생고용」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일본의 상장기업 1천6백64개중 44.3%가 93년중 8만8천명에 이르는 종업원을 해고했다.가장 일본적인 도요타마저 평생고용의 전통을 스스로 허물었다. ○일류기업 경영악화 물론 대기업은 해고보다는 신규채용 감축 또는 중지의 형태로 고용을 조정하고,중소기업 및 비제조업은 앞으로 호경기때 인력공급의 제약을 감안해 가능한 한 고용인력을 확보하려고 한다.과거 불경기때는 주로 제조업에서 고용조정을 실시하고 비제조업,특히 도·소매업,음식점등 서비스업에서는 고용조정이 극히 미약했다.그러나 이번에는 거의 전 업종에 걸쳐 폭넓게 고용조정이 일어나고 있다. 작년 연초만 해도 경제전문가들은 일본의 불황이 「거품경제」의 소멸에서 발생한 후유증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이제는 소비자 이익을 무시하고 수출 및 확대지향 일변도인 정부주도 경제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일시적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해석이다. ○구조개혁 서둘러 일본의 새로운 걱정은 최근 미국의 경기회복에 힘입은 미·일간의 역전현상이다.일본은 반도체시장에서 지난 86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시장을 석권했다.그러나 이를 악물고 구조조정을 끝낸 미국은 지난해 반도체 시장의 42%를 장악해 다시왕좌를 탈환했다.일본의 안마당이던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미제 토러스(포드사)가 일본차를 누르고 지난해 베스트셀러차가 된 사실도 일본인들의 표정을 어둡게 한다. 그러나 일본의 시대가 끝난 것은 아니다.일본의 93년 무역수지 흑자는 1천4백14억달러로 92년의 1천3백26억달러보다 6.9%가 늘어났다. 경기는 불황이지만 상품의 경쟁력은 아직도 세계 제일이다.그들이 21세기에도 영광을 누리기 위해 정부주도에서 벗어나 구조개혁을 서두르고,첨단 정보산업에 눈을 돌리는 데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뭔가를 배워야 한다.
  • 임병찬(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미완의 의병조직 독립의군부 이끌어/12년 고종밀서 받고 대규모 전쟁준비/착수 2년만에 일경에 발각… 수포로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돈헌 임병찬선생은 경술국치 이후 독립을 되믿기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의병이 조직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무장세력인 「독립의군부」의 결성을 추진하다 일제에 붙잡혀 유배중 숨진 애국선열이다. 선생은 44세때인 1895년 을미사변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선비로서 지냈다. 그러나 명성황후가 일제 불량배들에게 시해되는 치욕스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복수하기 위해 66세를 일기로 숨질 때까지 의병활동에 온 힘을 쏟았다. 선생은 1851년 2월 전북 옥구군 서면 상평리에서 태어났다. 세살때에 천자문을 읽을 만큼 총명을 타고난 선생은 15세때 전주부 감시에 장원으로 합격,관직에 나섰으며 38세때 도내 유림의 천거로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겸 오위장의 직첩을 받았다. 다음해 낙안군수에 임명됐으나 벼슬보다는 학문에 힘을 쏟기로 하고 곧 관직을 청산,귀향해 회문산 북쪽 종성리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러나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일제를 물리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일제를 물리칠 준비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집안의 남녀종복을 풀어주는등 가산을 정리한 선생은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기 1년전인 1904년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각지에 통문을 보냈으나 정부 대신들이 『시기가 이르다』고 만류하자 거사를 일단 중단하기도 했다. 1906년 면암 최익현 선생을 만나고는 즉시 의기투합,서로 사제의 의를 맺고 본격적인 의병활동을 시작했다. 경기 포천에 살고 있던 면암은 같은해 정월무렵 영호남 사람들과 함께 일어설 것을 도모했으나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문인들이 『호남의 한 선비가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하자 선생을 믿아왔던 것이다. 선생은 이에 따라 그해 6월4일 의병 80여명을 모아 전북 정읍군 칠보면 무성서원에서 창의의 기치를 높게 들고 일어났다. 이 의병들은 사방에 격문을 돌리고 그날로 태인지방을 휩쓸어 군기와 군량을 확보한데 이어 정읍·순창을 차례로 격파,욱일승천의 기세를 떨쳤다. 거사 5일만인 6월8일에는 순창에서 마주친왜군을 단숨에 물리쳐 곡성을 점령하는등 기염을 토했으며 의병수도 9백여명으로 처음보다 10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면암과 선생은 6월12일 전주와 남원 진위대군사가 반격작전에 돌입하자 동포간의 살상을 피하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조직한 의병부대를 자진 해산하고 말았다. 전주진위대는 해산과정의 의병들을 공격,중군장 정시해가 전사했으며 선생과 면암등 13명이 전주진위대를 거쳐 일본군사령부에 잡혀가 7월9일 대마도 위수영에 감금됐다. 그뒤 면암이 옥중단식으로 순국하자 선생은 1907년 첫 유배에서 풀려나 귀국했다. 귀국한 이후에도 불매동맹·국채보상운동등을 전개하다가 다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12년 9월에는 독립의군부 전라북도 순무대장으로 임명됐다.선생이 순무대장으로 지명된 것은 1906년의 의병활동 때문이었다. 선생은 이 막중한 임무를 감당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 수차례에 걸쳐 이 책임을 면해달라는 내용의 상소를 광무황제에게 올려보냈으나 황제는 다시 밀소를 내려보내 그를 신임했다. 선생은 1914년2월 독립의군부를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대한독립의군부 편제를 구성했다.독립의군부의 활동목표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과 조선총독및 주요 관리들에게 한국 강점의 부당성을 깨우쳐주고 대규모 의병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독립의군부의 이같은 계획은 그해 5월 일경에게 발각돼 실패로 돌아갔다. 이어 일경이 6월3일 총사령인 선생을 체포하고 독립의군부 간부들을 투옥시키자 선생은 자결을 결심하고 칼로 목을 찔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6월12일 금고 1년을 선고받은뒤 거문도에 다시 유배됐다.선생은 2년뒤인 1916년 5월 유배지에서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
  • 북 「김정일승계」 구도 마무리/「김영주복귀」 무얼 뜻하나

    ◎권력다툼 “끝”… 체제난국 타개 역점/“경제실패” 대대적 문책 인사 예상 김일성의 친동생으로 전노동당조직지도부장 등 핵심요직을 거친 김영주(71)의 권력일선복귀는 김정일후계구도를 마무리지으면서 경제난 등 북한이 당면한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총동원체제구축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8년만에 복권 8일 북한 노동당 정치국위원으로 기용되면서 사실상 숙청된 지 18년만에 복권된 김영주는 한때 김일성의 후계자로까지 지목되던 인물.그는 지난 70년대 초반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맡으면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나 김정일이 공식후계자반열에 오른 이듬해인 지난 75년이후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왔다.그래서 김영주가 지난 7월17일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준공식에 김부자 등 당고위인사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그의 정계복귀가 임박했다는 관측을 불러일으켰었다.당시 그의 호명서열은 당정치국서열 10위인 당비서 전병호 다음이었다.그러나 당정치국위원으로 선임된 이후 9일 열린 「전국공산주의미풍선구자대회」에서는 박성철부주석과 김영남정무원부총리겸 외교부장 사이인 7위로 부상했다. ○후계자 거론도 그는 62년부터 10년간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라는 요직을 맡아 북한 당·정·군에 걸쳐 자파세력을 확충해나가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김일성 다음가는 실세였다.그는 김정일과의 후계경쟁에서 밀려날 때까지 노동당 정치국위원·중앙위원·정무원부총리 등 핵심요직을 두루 거친 바 있다. 그런 그가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작업이 절정에 달한 시점에 재등장한 점을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의미심장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핵심요직 거처 서재진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영주의 복귀는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김창순북한연구소이사장도 『김영주가 더 이상 김정일후계구도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그의 복귀는 김정일족벌체제의 강화로 볼 수 있다』며 같은 견해를 표시했다. 이처럼 그의 정계복귀는 김정일후계체제가 마무리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반증한다는 분석에 정대규통일원정보분석실장 등 정부관계자들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즉 그의 재등장이 김정일의 계모인 김성애가 김정일과의 불화로 지난 80년대이후 거의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지난달 15일 「여맹」회의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사실과 함께 김일성일가의 가족간 갈등관계가 일단락됐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식 표현대로 「기본가」인 김정일과 「곁가지」인 그의 배다른 동생 김평일의 후견인격인 김성애와 김영주간 삼각암투가 김정일의 완승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김성애가 참석한 「여맹」전원회의가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결의를 했다는 것과 불가리아대사로 「좌천」되어 있던 김평일이 북한으로 되돌아온 사실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마이너스 성장 심각한 상황에 이른 북한경제는 올해도 마이너스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등 연4년째 뒷걸음질치고 있다.이 때문에 북한당국도 올해말로 끝나는 제3차 7개년계획의 실패를 이례적으로 자인,앞으로 2∼3년간 조정기를 갖겠다고선언했다. 이처럼 북한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김영주의 복귀가 이뤄졌다는 점도 음미해볼 만한 대목이다.즉 김달현국가계획위원장을 경질한 데 이어 김영주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홍석형을 그 자리에 앉힌 사실은 『대권에 미련을 두지 않고 조카를 돕겠다』는 것을 전제로 김영주에게 경제분야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하거나 김을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특사로 활용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을 낳게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경제실패의 책임을 묻는 대대적인 후속인사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 바둑제왕들(외언내언)

    승패를 거는 겨룸에서 이긴다는것은 어쨌든 기분좋은 일이다.한국이 국제기전의 타이틀을 싹쓸이했다는 사실도 그점에서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엊그제 오사카에서 열린 후지쓰(부사통)배 준결승전에서 조훈현9단과 유창혁6단이 각기 일본기사를 물리침으로써 결승전은 한국기사끼리 벌이게 되었다.그러니 응창기배(서봉수우승),동양증권배(이창호우승),진로배(단체우승)에이어 그동안 일본이 독차지해온 후지쓰배까지 한국이 거머쥐게 된 셈이다.세계바둑사상 처음있는 일로서 19 93년을 한국바둑의 해로 만들어놓고 있다. 세계바둑대회가 시작된 88년만 해도 정기적인 교류전을 가져오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한국을 한수 아래로 치부했다.하지만 대국을 가지면서부터 양상은 달라지기 시작한다.중·일의 쟁쟁한 고수들이 한국기사 앞에 무릎을 꿇는것이기 때문이다.더구나 타이틀의 싹쓸이는 「어쩌다 운으로 이길수도 있는것」과는 다르다.토를 달 수 없는 실력의 결과가 아닌가. 세계정상에 선 이들 네기사중 조9단을 빼면 모두 국내파라는 점이주목된다.서9단은 진작부터 그 간판스타로 되어오는 터이지만 이·유6단 또한 국내에서만 그 기량을 갈고닦았다.나이도 어려 얼마든지 더 뻗어날수 있는 그릇들이기까지 하다.그래서 한국바둑의 내일을 더 밝게한다. 9단진만도 몇십명이 포진하는 일본에 비긴다면 아직 전문기사의 층이 엷은것이 우리현실이다.그만큼 프로바둑의 연륜도 젊다.그렇지만 욱일승천의 기세로 떠오르는 신예기사들이 있어 마음든든하게 한다.올해들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최명훈2단은 조훈현9단·양재호8단등 고단자를 꺾으면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그밖에도 윤현석·이상훈·윤성현등 10대기사들의 일취월장은 미더운 모습이 아닐수 없다. 이젠 한·중·일 3국의 정기교류전이 열려야할 시점이다.이는 중국·일본쪽에서 먼저 손짓해야할 계제 아닌가 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