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지망 좋다만 속지마오
당신도 영화배우가 될 수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피를 본 「스타」지망생이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다. 영화에 출연시켜 준다는 미끼에 걸려들어 금품을 빼앗기고 몸을 망치고, 그래서 화려한 「신데렐라」의 꿈 대신 사색(死色)의 낯빛이 되어 돌아오는 젊은이들이 많다. 영화가 주변엔 지금도 「스타」지망생을 노리는 상습 사기꾼이 버젓하게 활약하고 있기 때문.
피해자들의 실례를들어 영화사기꾼의 숫법을 알아보자.
강정태(姜貞泰)(가명·24·고졸(高卒))씨는 2개월가량 영화배우가 된 줄만 알고 기뻐했다가 돈 20만원만 날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그가 마의 손길에 걸린게 지난 6월. S예술학교에 다니면서 출연기회를 노리던 그에게 어느 날 두툼한 편지 봉투가 날아왔다. 『범인을 찾는 12인의 얼굴』이란 영화제목의 광고문과 신인배우 모집요강이 들어 있었다. 신문지 크기의 광고문에는 제작자 김동기(金東基)(가명), 감독 김중원(金中遠)(가명)의 이름으로 『연애시대(戀愛時代)』『흑춘(黑春)』 두편의 영화가 사진과 함께 소개됐고 「개봉박두(開封迫頭)」라고 박혀 있었다. 그리고 동봉한 엽서에는 『출연할 의사가 있으면 일차 면담하자』고 서울 광화문의 S다방을 지정해 놨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金씨는 있는 맵시를 다 내고 지정한 다방으로 나갔다.
먼저 만난게 제작부장이라는 사람이고 그 다음이 제작자 金모, 감독 金모의 차례 최종적으로 金감독은 『우선 촬영현장에 가서 「카메라·테스트」를 하자』고 했다. 일사천리의 진행에 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촬영현장이라는 정능(貞陵) 골짜기에 가서 金씨는 실제로 「카메라」앞에 섰다. 촬영, 조명「스태프」들이 우글거리는 속에서 앞얼굴, 옆얼굴을 찍고 간단한 「액션」도 해보았다.
이틀뒤 金씨는 조연으로 출연시킨다는 통지와 함께 「시나리오」를 받았다. 주연엔 申모, 尹모라는「톱·스타」. 2개월간 세 번 촬영장에 나갔는데 이상하게도 申, 尹같은 「톱·스타」는 그때마다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예명을 짓고 1년간 전속계약까지 체결한 金씨는 그 동안에 제작자에게 1만원에서 5만원단위로 15만원을 빌려줬다. 「카메라·테스트」에 3천5백원, 분장료 9천원, 제작부장, 조명기사, 촬영기사에게 잘 보이려고 준 돈이 근 10만원. 그리고는 끝장이 났다.
똑같은 「케이스」에 걸린 사람으로 朴종만(가명), 文진희(가명)가 있다. 두 사람은 모 영화사가 모집한 신인배우 모집에 응모했다가 낙방한 사람. 약간 실의에 잠겼을 때 예의 초대장이 왔고 각각 15만원~20만원씩 빼앗겼다. 여자인 文양의 경우 「매니저」를 자청한 청년에게 별도의 사례로 2개월에 5만원을 주었고…. 끝장은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로 수상하다고 느끼면 이미 늦은 때였다.
사기꾼의 행각이 그만큼 완벽하기 때문에 배우지망생이 사실을 깨닫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들이 조금만 침착했다면 그들의 출연영화가 실제로 제작되는 것인가를 알아봤어야 했다. 그들을 속인 『연애시대(戀愛時代)』란 영화가 제작됐는가도 알아봐야할 일이다. 제작자는 한국 영화제작자협회에, 감독은 한국영화인협회에 그 정체를 문의해봤어도 될 일이다.
그러나 정체를 알아보는 것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얼마전에 이름을 대면 곧 알 수 있는 영화감독의 명의로 배우지망생을 농락한 사기한이 있었다. 그 사기한은 서울교외 팔당(八堂)에 근거를 두고 주로 여배우 지망생에게 야릇한 「카메라·테스트」를 며칠간 했다. 7,8명이 빈집에서 합숙하면서 「필름」도 들지않은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을 했다. 이런 경우는 피해자 자신이 수치심 때문에 고발을 못했다. 물론 그런 약점이 충분히 이용된 것이지만 상습 사기한은 숫법이 좀 더 치밀하다. 3년전에 피해자의 고발로 철창신세를 진 일이있는 K라는 사기한은 지금도 다른 이름(그에겐 10개 이상의 이름이 있다)으로 계속 성업중. 그가 내건 영화사 이름만도 「x亞필름」등 6개나 된다.
그는 신인모집에 1개월쯤 앞서서 월간잡지에 만들지도 않는 영화광고를 낸다. 윤정희(尹貞姬), 남정임(南貞妊) 같은 A급 배우의 사진을모아 「스틸」을 만들고 「개봉박두(開封迫頭)」를 선전한다. 이용하는 잡지는 주로 「영화xx」「xx잡지」등 값싸고 판매율이 적은 잡지.
그 다음엔 같은 이름으로 일간지 광고난에 신인모집 광고를 낸다. 잡지에 게재한 「개봉박두(開封迫頭)」의 영화는 「포스터」로 만들고 거기에 신인기용의 새작품을 발표한다. 제작 실적을 과시함으로써 의혹을 씻으려는 작전이다.
응모자가 나타나면 20명이든 30명이든 우선 면접통지를 우송하고 예의 「카메라·테스트」를 한다. 「테스트」비용 3천여원을 선뜻 내면 우선 합격이고 2단 3단계로 돈을 긁어낸다. 신인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혼자만 합격인가 싶지만 사실은 몇십명을 각각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숫법으로 상대하는 것.
이들은 실제로 「시나리오」도 만들고 촬영흉내도 낸다. 7,8명이 작당해서 「카메라」를 메고 야외 「로케」를 나간다. 「레디·고」를 부르고 연기연습도 시키지만 사실상 그 앞에서 돌고 있는 촬영기는 「필름」도 들지 않은 빈털터리. 믿고 돈이나 주면 그들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이들중에는 현역감독, 제작자의 이름을 빌어 행동하는 철면피도 있다.
정진우(鄭鎭宇), 문여송(文如松)씨등의 이름이 이용된건 오래전 일이고 얼마전엔 가짜 정소영(鄭素影)감독이 나타나 말썽이 되기도 했다.
원칙적으로 영화제작은 당국에 등록된 영화사만이 할 수 있고 촬영에 앞서서 제작자는 작품신고를 하게 돼있다. 신인모집은 감독, 제작자가 「스카우트」하는 경우와 공개모집의 두 「케이스」가 있지만 사서함(私書函)을 이용하거나 신문 3행광고를 이용하는 따위 옹색한 짓은 않는다. 「스타」지망생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은 더욱 있을 수 없다. 또한가지 배우지망생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는 이른바 각종명칭의 배우학원이다. 서울에는 한때 20에 가까운 배우학원이 난립하여 눈을 어지럽게 했다. 이중 실제로 일정「코스」를 정해 교육시키고 있는 학원은 불과 4,5개. 이중 10년 전통을 자랑하고 배우산출 실적이 있는곳도 한둘 있으나 나머지는 믿을게 못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기한이 그렇듯 영화계 주변의 사기한들은 피해자가 고발을 못하도록 교묘한 수단을 쓰고 있다. 일단 법망에 걸려도 빠져 나오기 일쑤. 영화의 부산물 치고는 엄청난 사회문제다. 배우 지망의 선남선녀는 우선 영화 출연에 돈이나 그밖의 것을 요구하는 제작자가 있다면, 그를 사기한으로 고발하는게 좋을 것 같다.
[선데이서울 69년 10/12 제2권 통권 제 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