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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이즈미총리 신사참배 반대 한국단체 日서 원정 촛불집회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저지하기 위한 촛불집회 등 한국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11일 도쿄에서 닷새간의 일정으로 시작됐다. ‘야스쿠니반대 공동행동한국위원회’ 소속 시민단체 회원 등 150여명은 이날 총리관저 앞에 모여 참배반대를 촉구한 데 이어 밤에는 관청가인 가스미가세키를 돌며 촛불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은 날인 15일까지 도쿄 전역을 순회하며 촛불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아울러 유기홍, 임종인, 문학진 등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10명이 이날 일본을 찾아 오후에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taein@seoul.co.kr
  • [창간 102주년 기획] 고이즈미 개혁 야전사령관 다케나카 헤이조 日총무상 인터뷰

    [창간 102주년 기획] 고이즈미 개혁 야전사령관 다케나카 헤이조 日총무상 인터뷰

    |도쿄 이춘규특파원|지난 5년간 일본의 개혁작업을 진두지휘한 다케나카 헤이조 총무상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정권의 개혁 성과에 대해 “부실채권 처리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등 하고 싶은 개혁은 다 마쳤다.”고 강조했다 도쿄 도심의 관청가에 있는 총무상 집무실에서 11일 서울신문과 창간기념 특별인터뷰를 가진 다케나카 총무상은 공직사회 개혁에 대해 “공무원 5년간 5% 감축 방침은 제도화되어 누구도 되돌릴 수가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우정사업 민영화의 향후 10년간 구체적 실행과정 등이 차질을 빚으면 일본은 다시 1990년대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고이즈미 총리 임기말인데도 여전히 방송과 통신의 개혁 등 남은 과제로 바빴다. ▶고이즈미 개혁의 의미와 성과는. -고이즈미 내각이 출범한 2001년 일본은 힘든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었다.‘잃어버린 10년’이 이어지는 때였다. 따라서 내각에 중요한 과제는 경제 구조를 개혁하는 일이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였다. 재정건전화도 중요 과제였다. ▶개혁의 추진 과정은. 우선 대증요법적인 개혁에 손을 댔다. 부실채권 정리가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걸 통해 일본이 본래 갖고 있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동시에 그 본래의 힘을 끌어올리는 선제적이고 예방적인 개혁을 해야 했다. 지구촌시대의 경쟁력을 올리고, 저출산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민간에 맡길 것은 민간에, 지방에 맡길 것은 지방에 맡기는 개혁이다. 우정사업 민영화 등이 핵심이다. 부실채권은 당초 2년반동안 반으로 줄이려 했으나 실제는 3분의1 정도로 줄였다. ▶개혁은 어디까지 왔나. -대증요법적인 개혁은 이미 마쳤다. 예방적·선제적인 개혁은 이제 출발점에 서 있다. 개혁의 끝은 없다. 지금부터 우정민영화 작업은 시작된다. 개혁작업은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다. 이제 예방적이고 선제적인 개혁작업은 향후 5∼10년 걸린다. 개혁을 계속하지 않으면 다시 90년대로 돌아가 상황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 개혁에 대한 관료들의 저항은. -고이즈미 총리는 2개월여 지나면 임기가 끝난다. 강한 리더십의 공백이 우려된다. 이에 따른 저항과 반발이 두드러지고 있다. 첫째는 엎드려 있던 관료집단이 목소리를 높이며 ‘복권’을 시도하고 있다. 강한 리더십이 사라지면 잃어버린 권한을 되찾기 위한 관료의 반격이 시도될 것이다. 두번째는 반시장·반글로벌화 움직임이다. 시장경제시스템을 강화, 일본경제가 건강해졌는데 시장경제원리로 인해 격차가 확대됐다며 반대하는 세력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기득권자가 개혁을 막겠다는 궤변이다. 세번째는 반 세대교체 움직임이다. 젊은세대가 잘못도 저질렀지만 장점은 살려야 한다.90년대 잃어버린 10년은 낡은세대가 잘못된 판단을 해 초래했다. 세대교체를 기필코 달성해야 한다.(그는 고이즈미 정권 이후 일본정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일부 자리에서 밝힌 바 있다.) ▶개혁의 소리는 높았지만 내용은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틀렸다. 일본은 십수년간 부실채권 개혁을 못했다. 그걸 고이즈미 내각이 했다. 우정 민영화는 100년간의 우정사업 문제점을 개혁했다. 정책금융 민영화도 50년만이다. 앞으로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개혁이 매우 많다. ▶개혁에 대해 불만의 소리는. -고이즈미 개혁은 기득권을 깨고, 새로운 도전세력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낡은 세대의 기득권과 새로운 도전세력 중 누가 나라를 위해 필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다케나카 때리기’가 있다는 것이 역으로 개혁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 한국도 공직개혁이 진행 중이다. 일본에서 5년간 5% 공무원 순수 감축이 실제로 가능한가. -지난해 이 즈음만 해도 5%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순수감축은 1% 정도밖에 안된다고 했다. 무리라고 했다. 그런데 우정사업이 민영화되면서 국민들은 작은 정부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읽었고, 그 기세가 이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매년 정원 관리 목표도 설정했다.1.5%는 총무성이 줄이고, 나머지 3.5%도 대상직종을 정했다. ▶차기총리의 리더십 약해지면…. -공무원 감축은 정부방침으로 각의에서 결정했다. 다음 내각도 집행해야 한다. 이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별도의 각의결정이 있어야 한다. ▶낙하산 인사는 일본도 문제인데. -국민감정이 좋지 않다. 이를 막기 위한 강한 방침을 갖고 규칙을 만들고 있다. 내각 전체에서 검토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썩 좋지 않다. 한국경제에 대한 조언은. -한국도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개혁을 진행해 왔다. 개혁의 노하우도 많다. 일본이 부실채권을 개혁하는 방법은 한국에서 많이 배웠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구조가 닮은 점이 많다.‘경제의 이중구조(dual economy)’도 그렇다. 생산성이 높은 부문과 낮은 부문으로 된 이중구조는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미래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다. 두 부문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고 한국이 가진 많은 장점을 살리면 성장잠재력은 높아질 것이다. ▶한·일 FTA(자유무역협정)는. -한·일은 경제구조도 닮았고 공통의 이해도 갖고 있다. 교류도 많다. 두 나라의 FTA는 상호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과 인연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한국인 친구들로부터 많은 감동을 받았고, 지금도 많은 친구들과 교류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다케나카 총무상은 누구 다케나카 헤이조 총무상은 고이즈미 개혁의 ‘야전사령관’ 같은 인물이다. 5년간의 ‘고이즈미 개혁’ 방안은 대부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평이다.2001년 4월 출범한 고이즈미 초대 내각 때 게이오대학 교수였다가 경제재정상으로 임명됐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서는 교수에서 곧바로 각료로 임명되기는 쉽지 않다. 다음해에는 금융상까지 겸직하며 일본경제 회복을 위한 최대 걸림돌이던 부실채권 처리를 시작했다. 이후 도로공단과 우정사업 민영화를 기득권세력의 반대를 뚫고 밀어붙여 성사시켰다. 정치감각이 뛰어나고 작지만 단단한 체구에 뒷심이 강하다는 평이다. 원외(院外)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4년 참의원선거에 출마, 당선됐다. 고이즈미 총리와 처음부터 5년 이상 함께 일해온 유일한 각료이기도 하다. ■ 다케나카 때리기 5년|도쿄 이춘규특파원|지난 5년간 일본의 기득권 세력은 이른바 ‘다케나카 때리기(일본식 표현 바싱구·bashing)’를 쉴 새 없이 시도했다. 기득권을 깨부수겠다는 개혁에 관료, 기업, 정계의 기득권세력은 다케나카 헤이조 총무상에게 쉼없이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가했다. 그가 부실채권 비율을 낮추는 과정에서 “4대 은행도 도태의 예외가 될 수 없다.”, “대기업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등 거침없이 발언할 때마다 기득권세력은 “교수출신이 현실을 너무 모른다.”며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기득권 깨부수기가 외국에선 고이즈미 개혁에 대한 신뢰성을 높인 것으로 평가됐다. 그는 인터뷰 때 다케나카 때리기에 대해 “모두 네차례의 바싱구(때리기)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제1차 다케나카 때리기는 2001∼2002년 사이다.2차 때리기는 금융재생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2002∼2003년. 제3차는 지난해 우정사업 민영화를 단행할 때다. 이 가운데 고이즈미 개혁의 초기인 1∼2차 다케나카 때리기가 가장 격렬했다. 개혁이 탄력을 받기 전에 예봉을 꺾기 위해 정계와 관료, 기업들이 총력을 다해 저항했다. 그는 “3차 때리기까지 목숨을 걸고 반대한다는 인상을 받아 긴장했다.”고 회상했다. 4차 다케나카 때리기가 시도되고 있는 요즈음은 고이즈미 정권이 앞으로 2개월만 지나면 종말을 고한다면서 관료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다케나카 총무상에 대해 맺혔던 한을 풀겠다며 욕설을 퍼붓는 형식이라며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다케나카 총무상은 4차 다케나카 때리기에 대해서는 “맥빠진 내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유쾌하지는 않지만 “긴장감은 없다.”며 평온한 인상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하고 싶은 개혁은 다 마쳤다고 강조했다. 가장 애썼던 부실채권 처리는 목표 이상의 성과를 달성했다. 우정사업민영화도 초석을 깔았다. NHK와 NTT 등 방송·통신 개혁은 저항이 강하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가 끝나기 전 최소한 물꼬만이라도 터놓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taein@seoul.co.kr
  • 아베 “너무 나갔나”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대북한 ‘선제공격론’이 일본 안팎의 강한 비판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선제공격론을 선두에서 제기하고 있는 유력 차기총리 후보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타격을 입을지 주목된다. 12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아베 신조 관방장관, 누카가 후쿠시로 방위청장관, 아소 다로 외상 등 일본 정부와 여당내에서 제기되는 자위대의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선제공격) 주장에 대해 일본내외에서 파문이 확대 중이다. 한국은 물론 중국도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일본의 적 기지 공격능력보유론을 선제공격론으로 받아들이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내에서는 적 기지 공격능력보유론에 찬성하는 의견도 적지 않지만 11일 이후에는 야당과 언론은 물론 여당인 자민당 내에서도 반대론이 확산되고 있다. 자민당 다케베 간사장은 “법정비 논의를 해야 한다.”고 선제공격론을 옹호했지만 가타야마 토로노스케 참의원 간사장은 “일본의 경우 전수(專守)방어와 헌법의 제약이 있으니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면서 선제공격론의 공론화에 제동을 걸었다.taein@seoul.co.kr▶관련기사 12면
  • [포스트 고이즈미 경쟁] 北미사일, 아베 지지도 쏘아올리다

    [포스트 고이즈미 경쟁] 北미사일, 아베 지지도 쏘아올리다

    차기 일본 총리를 사실상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9월20일)를 앞두고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여론조사에서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을 계속 앞지르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따라 아베 장관 등을 중심으로 ‘선제공격’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선거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두 사람이 출마 의사를 공식화하는 다음달 중순에야 선거 구도가 분명해지겠지만, 같은 모리파 소속인 후쿠다 전 장관이 대망을 접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이번 선거는 독도 영유권 문제, 신사참배, 대북 관계 등으로 외교적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선거의 안팎을 미리 점검한다. ■ 강경 아베 힘과 한계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장관은 지난달 초 94명의 현역 의원이 참여한 ‘재도전 지원 의원연맹’을 출범시켜 대중적인 인기뿐만 아니라 당 안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음을 과시했다. 일본인들은 왜 대북 강경파인 아베 장관을 선호할까. 최측근을 자처하는 자민당 야마모토 이치타 참의원은 ▲북한에 대한 확고한 자세 ▲젊고 깨끗한 이미지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라고 짚는다. 화려한 집안 내력 자체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정치적 힘으로 작용한다. 그의 아버지는 1980년대 외상을 역임한 아베 신타로, 외할아버지는 강경파의 원조 격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대표적인 지한파 아베 전 외상은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를 이을 재목감이었으나 1991년 갑자기 병환으로 눈을 감았다. 아베 장관은 대권을 눈앞에 두고 타계한 아버지의 한을 풀겠다는 뜻을 자주 내비쳤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아베 장관은 정치적으로는 강경 성향의 외할아버지 기시 전 총리를 닮았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그 역시 “아버지보다 할아버지의 DNA를 이어받았다.”고 말할 정도다. 헌법 개정과 재무장론은 기시의 정치 노선을 이어받은 것이다. 왜곡된 역사교과서 채택 등 강경우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으니 일본 민족 우월주의라는 피도 물려받았다고 한다. 아베는 고향 야마구치현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야마구치는 메이지 유신과 조선 침략을 주도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이토 히로부미 초대 총리를 비롯해 야마가타 아리도모, 가쓰라 다로, 데라우치 마사다케, 다나카 기이치,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등 7명의 총리를 배출했다.47개 광역단체 중 가장 많은 수이다. 1954년 기시 전 총리의 장녀 요코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차남으로 태어난 아베는 공부는 썩 잘하지 못하는 유력 집안 자제들이 다니는 세이케이 초·중·고·대학을 나왔다. 고베 제철소에서 3년 반 샐러리맨 생활을 체험한 뒤 아버지 비서관으로 들어가 정치수업을 쌓았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곧바로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37세에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200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 정상회담은 그가 총리 후보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납치 문제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기 전에 ‘평양선언’에 서명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평양에서 돌아온 뒤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때마침 터진 요코다 메구미 가짜 유해 사건과 북한 핵개발로 일본내 반북 정서가 확산된 것도 그의 부상에 날개를 달아줬다. 강경 성향과는 달리 심약하다는 평판도 적지 않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몸집은 크지만 대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지지하는 의원들의 응집력과 행동력도 느슨하다는 평이 있다. ■ 온건 후쿠다 저력과 약점 후쿠다 전 장관 역시 후쿠다 다케오(1976.12∼78.12) 전 총리의 아들이다. 도쿄 북부 군마현 출신이다. 해발 2000m 이상의 명산과 이를 휘감아도는 강이 수려하며 기름진 평야도 많은 이곳은 예부터 “큰 인물이 많이 나올 지역”으로 손꼽혔다. 후쿠다 전 총리를 비롯, 나카소네 야스히로(1982.11∼87.11), 오부치 게이조(1998.7∼2000.4) 등 총리 3명이 배출됐다. 후쿠다는 언론과 접촉을 즐기지 않고 잠행하는 스타일이어서 화려한 편은 아니지만 아버지 후쿠다파의 정치적 유산을 많이 상속한 숨은 실력자로 인식되고 있다. 후쿠다는 도쿄 학예대학 부속초등학교를 거쳐, 명문 아자부 중·고를 나왔다. 와세다 대학 경제학과 출신으로 마루젠 석유에 다니다 1976년 부친 비서관으로 정치에 첫발을 디딘 것까지 아베 장관과 똑같다. 중의원에는 비교적 늦은 1990년 2월에 처음 발을 디뎠다. 당시 53세였다. 95년 외무차관을 거쳐 2000년부터 모리·고이즈미 내각에서 관방장관으로 일했다. 그는 역대 관방장관 가운데 1289일로 최고 재임기간을 기록했다. 특히 47세에 중의원에 당선돼 71세에 총리에 오른 아버지처럼 그 역시 70세가 되는 올해 총리의 꿈을 이루려 한다는 얘기들이 들린다. 후쿠다는 아시아를 중시하는 부친의 현실적인 외교 노선(후쿠다 독트린·1977년)을 이어받은 비둘기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자민당 안에서 가장 결집력 강한 우파 모임인 모리파 소속이다. 실제로 관방장관 시절 “이론으로만 보면 일본이 핵을 보유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발언을 했다가 소동을 빚었다. 그가 총리에 오른다 해도 한국·중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거니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후쿠다 지원 그룹은 자민당 중진들을 축으로 하는 ‘반(反)고이즈미, 비(非)아베’ 진영이다. 후쿠다가 출마 기치만 들면 상대적으로 느슨해 있던 이들은 응집력 강한 지지세력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 야마사키 다쿠 전 자민당 부총재 등이 거들 것으로 보인다. 그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자 중진 그룹은 초조해하며 다른 후보 옹립 방안을 검토하는 등 한때 동요했다. 그러자 후쿠다는 지난달 말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한다.”며 “상황을 보고 판단한다.”라고 공언했다. 그의 장점은 17년의 월급쟁이 생활 등을 통해 체득한 상식과 균형감각의 풍부함이 꼽힌다. 반면 지나치게 신중한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특별한 좌우명도 없는 후쿠다는 시간이 나면 음악감상과 독서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히 존경하는 인물도 없다. taein@seoul.co.kr
  • ‘군국주의 교육칙어’ 日유치원 암송 물의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오사카시의 쓰카모토유치원(사립)이 원생 120명에게 일제 침략기 군국주의 정신을 고취했던 일왕의 ‘교육칙어’를 암송시키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도쿄신문이 2일 보도했다. 이 유치원은 “어렸을 때부터 애국심과 공명심, 도덕심을 심어 주기 위해서는 교육칙어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며 지난해 10월부터 매일 수업 첫 시간에 담임의 지도로 암송시키고 있다고 밝혔다.교육칙어는 메이지 일왕의 이름으로 1890년 공포된 교육기본이념이다.`신민(臣民)의 충효´를 국체의 정신으로 규정했으며, 쇼와 일왕 때에는 군국주의의 정신적 기반이 됐다. 일제 패전 후인 1948년 일본 중의원과 참의원은 점령군사령부의 방침에 따라 교육칙어를 폐지했다. 문부과학성은 “교육칙어를 가르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며 “교육요령에서도 원생에게 교육칙어를 암송시키는 것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taein@seoul.co.kr
  • “對韓갈등 안돼” 일침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제1야당인 민주당 새 대표에 정계의 풍운아’ 오자와 이치로(63) 의원이 7일 선출됐다. 신임 오자와 대표는 멀리서 보면 웅장하면서도 부드럽지만 가까이 가면 거칠고 험한 일본 제1봉 후지산에 비유되곤 하는 인물이다. 지난해 9월 세대교체의 바람을 일으켰던 43세의 마에하라 세이지 전 대표가 반년만에 엉터리 폭로 문제로 낙마하면서 장로(長老) 대망론으로 ‘역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는 이날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을 중시, 아시아 외교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한·중과 갈등을 빚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외교면에서 확실한 선을 그었다. 192명의 민주당 소속 중·참의원 가운데 191명이 참여한 이날 선거에서 오자와 대표는 119표를 얻어,72표를 얻은 간 나오토 전 대표를 크게 앞섰다.taein@seoul.co.kr
  • [사회플러스] 외국한센인보상법 日참의원통과

    일제 강점기 일제로부터 강제 격리를 당했던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외교통상부는 3일 일제강점기 일제로부터 강제 격리를 당한 외국인 한센인 피해자에게도 보상을 인정한 ‘한센인 요양원 입소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이날 일본 참의원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기존 보상대상이던 일본인 한센인 피해자는 물론,1945년 8월15일까지 일제에 의해 한센병 요양원에 강제격리된 한국, 타이완 등 외국인들도 보상대상에 포함시켰다.
  • 日자민당 ‘한국형 국민참여 경선’ 검토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집권 자민당이 차기총리 후보를 뽑는 오는 9월의 당 총재 선거를 2002년 한국의 민주당이 실시했던 국민참여형 대통령선거후보 경선인 ‘한국형 순회 경선’ 형식으로 치르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어서 주목된다. 이르면 2월까지 도입여부를 확정할 가칭 ‘메이크드라마 프로젝트 2006’이라는 순회경선 계획에 따르면 자민당은 1개월내에 치르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자민당 소식통이 2일 밝혔다. 민주당은 2개월간 순회경선을 했었다. 이와 관련, 자민당은 오는 18일 전당대회에서 발표하는 ‘운동방침’에 “국민이 참여의식을 실감할 수 있도록 열린 형태로 활발한 정책논쟁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총재 선거에 당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참여시키는 국민참여 형태를 시사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다케베 쓰토무 간사장, 야마모토 이치타 참의원의원 등 자민당 실무준비팀은 10개 안팎의 권역에서 국민참여경선 등을 실시, 총재선거의 열기를 고조시키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국민의 관심을 높여 고전이 예상되는 내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 총재의 지명도와 지도력을 크게 강화하겠다는 구상의 하나다. 자민당 소식통은 “2002년 한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도 일반의 예상을 깨고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로 결정됐었다.”면서 “자민당 경선도 국민참여 형태로 치르면 의외의 인물이 부상할 수도 있어 국민적 참여와 관심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민당내 최대 파벌인 모리파를 이끌고 있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파천황적인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며 국민참여형 경선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모리파는 예외성이 예상되는 국민참여 경선 도입을 꺼리는 것이다. 자민당 총재 후보로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과 아소 다로 외상, 다니가키 사다카즈 재무상,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등 4인방과 함께 다케나카 헤이조 총무상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taein@seoul.co.kr
  • [월드이슈-창당 50돌 日자민당] 질주하는 네오콘 브레이크가 없다

    일본 집권 자민당이 지난 15일 창당 50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또 일본의 패전 60주년이다. 일본국민들은 이를 계기로 패전의 멍에를 털고 ‘보통국가’가 되는 걸 은연중 희망하고 있다. 그 선두에 자민당이 서 있다. 세계2위의 경제대국 건설을 이끌어 온 자민당은 이제 군사 재무장을 통한 보통국가 실현을 꿈꾸고 있다. 민족주의 열기 속에 재무장과 ‘보통국가’를 가능케 하는 개헌이 다음 과제라고 공언하고 있다. 세계가 불안한 시선으로 자민당의 변신을 주시하고 있다. ■ 자민당 장기집권 계속될까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자민당은 창당후 한편으로는 경제 재건을, 다른 편으로는 ‘강력한 국가 재건’을 기치로 내걸었다. 경제 재건은 비둘기파(온건파)가, 국가 재건은 매파(강경파)가 각각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비둘기파와 매파가 균형을 이뤄 자민당이 장기간 집권할 수 있었다.”(마쓰노 라이조 전 자민당총무회장)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최근 네오콘(신보수)으로 일컬어지는 강경 매파가 독주하고 있다. 이들을 적절히 제어할 비둘기파는 숨죽이고 있다. ●고이즈미는 네오콘의 선두 자민당의 변신을 이끌 네오콘의 선두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서 있다. 임기 내내 주변국과 충돌하는 ‘힘의 외교’를 펼치며, 일본국민들을 시원하게 해줘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는 평이다. 전후 숨죽여 있던 민족주의를 자극,4년 8개월째 장기집권 중인 고이즈미는 내년 9월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자신의 유력한 후임자 가운데 네오콘들을 내각과 당의 전면에 배치했다. 반면 온건파인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등은 당·정 인사에서 배제시켰다. 이에 따라 총리가 될 경우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군대위안부에는 강제성이 없었다.”는 등 망언을 서슴지 않는 아소 다로 외무상 등이 민족주의를 자극하면서 ‘포스트 고이즈미’ 경쟁을 가열시키고 있다.‘고이즈미의 복심’ 다케나카 헤이조 총무상도 다크호스다. 여론 동향도 네오콘의 입지를 점점 넓혀주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여론도 찬성이 반대를 속속 앞서기 시작했다. ●개혁 이미지로 포장 자민당은 지난 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이 대통합, 보수세력의 안정적인 집권체제 구축을 노렸다. 좌·우파 사회당의 전격 통합에 따른 보수세력과 재계의 위기감이 자민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세계2위의 경제대국을 이뤘지만 자민당은 금권에 기초한 파벌정치로 정·관·재계가 이권을 나눠먹는 ‘부패 커넥션’을 형성했다. 절정은 1972년의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록히드·리크루트 사건 등 정치뇌물사건이 터지면서 환골탈태를 강요받았다. 이후 자민당 정치에 대한 염증이 확산되면서 ‘자민당은 부패집단’이라는 인식이 각인됐다. 결국 1993년부터 10개월 정도 정권을 내주었다가 겨우 정권을 되찾은 자민당은 이후 치밀한 전략에 따라 당 자체를 ‘개혁 이미지’로 재포장했다. 우정 민영화로 대표되는 민영화, 공직사회·연금 개혁 등 ‘이미지 정치’를 통해 총선거에서 압승, 화려하게 부활했다. ●장기집권 전망 우세 자민당의 변화 시도에 여론은 뜨겁게 호응하고 있다. 농촌·기성세대에 기반했던 자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도 최근 선거에서 도시·젊은층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혁을 앞세운 새로운 전략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면서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계속될까. 답은 현재의 일본 정치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공산·사민당 등 진보정당은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오카다 가쓰야 전 대표가 “자민당과 이념적인 차이는 없다.”고 할 정도로 색깔이 불분명, 위기가 계속 중이다. 반면 자민당은 개혁이미지를 선점한 데다 변화를 꺼리는 일본 국민들의 성향으로 인해,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새롭게 시작됐다는 평도 있다. 다만 고이즈미 퇴임 후 ‘강력한 리더십’의 공백이 생기거나 개헌론의 본격화 등으로 이합집산 가능성이 거론되는 정도다. taein@seoul.co.kr ■ 위태로운 日 평화헌법 |도쿄 이춘규특파원|지난 22일 열렸던 창당 50주년 기념식 때 자민당은 자위대의 군대화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 초안을 발표했다. 평화헌법 개정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개정 공론화에 주력 일본 ‘평화헌법’은 전문에 평화주의를,9조에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영구히 무력행사를 포기’(1항),‘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은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2항)고 규정, 전쟁 포기와 군사력 불보유를 다짐했다. 자민당 매파들은 헌법 9조 1항의 전쟁의 영구 포기나,2항의 군대 불보유 두 개항 모두를 바꾸려 한다. 하지만 연립여당의 한 축인 공명당이 당론으로 9조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도 9조 1항 개정에는 반대하고 있지만, 네오콘(신보수)으로 불리는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가 2항 개정에 적극적이다. 이런 배경에서 자민당은 2항만 개정한다는 절충안으로 공명·민주당을 유인하고 있다. 현행 헌법 개정에는 중·참의원 모두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지만 자민당은 양원 모두 자체적으로는 개헌 정족수에 모자란다. 따라서 일단 개헌론을 공론화시킨 뒤 상황을 보면서 ‘전쟁 포기, 군사력 불보유’란 평화헌법을 폐기하려는 작전이다. ●군대보유·보통국가화 자민당 개헌안 초안은 ‘자위군 보유’는 물론 천황제 유지, 개헌요건 완화 등을 담았다. 지난 47년 제정된 현 헌법은 2차대전 패전의 반성에서 출발했다. 자민당 개정안은 ‘자위군 보유’를 명시, 지난 60년간의 평화주의 기본틀을 부정했다. 전쟁을 할 수 있었던 ‘보통국가’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자위대는 이미 국제공헌이란 이름 아래 전세계에 파병하면서 ‘군대보유 금기’사항을 희석시키고 있다. ●평화세력의 입장이 관건 일본의 평화헌법을 유지해온 ‘평화세력’이 약화되면서 개헌의 방어선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사회당·공산당 등이 크게 약화된 것은 물론 제1야당인 민주당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지도부가 들어서며 헌법 9조2항 개헌에 전향적이다. 여론도 민족주의 성향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민당의 개헌안이 곧바로 개헌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고이즈미도 임기 내 개헌을 정치일정에 올리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사회·공산당과 ‘평화시민세력’도 반대하고 있고 민주당도 섣불리 개헌논의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운 처지다. “정치권 내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본격 개헌논의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개헌론의 윤곽이 5년, 혹은 10년이 지나야 드러날 것”이란 분석이다. taei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코오롱그룹-이웅열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코오롱그룹-이웅열 회장家

    코오롱의 역사는 한국 섬유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 땅에 가장 먼저 나일론을 들여와 의생활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한때는 수출 한국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성숙산업에 따른 한계로 인해 코오롱은 재계서열이 점점 밀려났다. 섬유산업의 위상이 갈수록 위축되는 모양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코오롱의 3세 경영이 닻을 올린지 올해로 10년째. 이웅열(49) 회장은 올해를 그룹경영의 ‘터닝포인트’로 만들기 위해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제2의 도약을 위해 노후화된 주력 사업에 다시 기름을 칠하고, 쪼이고, 닦고 있는 것이다. 혹독한 외환위기를 거치며 체질을 바꾼 코오롱이 재도약을 위한 또 한번의 체질 개선 시험을 치르고 있다. ●풍운아 이원만 창업주 코오롱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과 이동찬(83) 명예회장은 부자간이면서도 사업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 창업주가 그룹의 외연을 넓히고 사업의 ‘바람막이’가 돼 줬다면, 이 명예회장은 그룹의 안살림을 챙겼다. 부자는 동업자로서 40년 가까이 함께 일하며 코오롱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 명예회장이 2세이면서 창업 1.5세대로 불렸던 까닭이다. 부자는 사업 파트너로서 환상의 듀엣이었지만 가정적으론 한때 애증의 관계였다. 기업가보다 정치가로서 더 알려진 이 창업주는 워낙 풍류를 즐기는 성격인 데다 이 명예회장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남은 전답마저 처분하고, 사업을 위해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이 명예회장은 어린 나이에 모친과 누이동생을 돌보며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선친은 이 명예회장에게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선친의 호방한 성품과 능숙한 화술 등은 당시 정·재계에서 유명했다. 이 창업주는 술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술자리에선 재담으로 좌석을 압도했으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는 ‘문화재’로 불리울 정도였다. 이 창업주는 1930년대 초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 기반을 닦았으며, 해방 후에는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들여와 국내 섬유산업을 개척했다.1957년엔 국내 첫 나일론사 제조 공장인 한국나일론(현 ㈜코오롱)을 설립했으며,63년엔 나일론 원사 공장을 지었다. 그는 또 한국산업수출공단 창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오늘의 구로공단과 구미공단을 조성하는 산파역할을 했다. 이 창업주는 정계에도 발을 들여 대한민국 초대 참의원과 6,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인맥 만들기에 탁월한 수단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이 창업주는 1960∼70년대 정·재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다. ●1.5세대 창업주 이동찬 명예회장 “이 명예회장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항상 비서와 한 방에서 잡니다. 비서들에게 해외 출장은 그야말로 곤욕이었죠. 회장이 바로 옆에서 주무시는데 잠이 편히 옵니까. 출장에서 돌아오면 몸무게가 3∼4㎏은 그냥 빠져요. 그렇다고 1달러가 아쉬운 나라에서 잠자는 곳에 돈낭비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씀에 뭐라고 할 수도 없고요.” 코오롱 비서 출신의 한 임원 얘기다. ‘가장의 짐’을 일찍 떠안은 탓에 이 명예회장은 근검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한 번은 이 명예회장이 1947년부터 50여년 이상 신었던 슬리퍼를 비서실에서 새 것으로 바꿨다가 된통 야단을 맞고, 쓰레기통을 뒤져 간신히 찾았던 적도 있다. 또 이 명예회장의 점심 메뉴는 주로 된장찌개와 칼국수, 수제비 등이었으며, 삼복 더위도 부채와 선풍기로 보냈다. 그는 15세 때 경리사원으로 부친의 사업을 도운 지 35년 만인 1977년 코오롱 회장에 올랐다. 그는 등산식, 마라톤식으로 표현되는 꾸준한 내실 경영으로 그룹의 체질을 다져놓은 이후 섬유와 무역에 치우친 사업구조를 건설과 화학으로 확대했다.1980년대는 전자소재와 합성섬유 등 신업종으로 영역을 더욱 넓혔다. 이 명예회장은 과외 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74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직을 맡은 이후 1975년 농구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등으로 다양한 단체에서 활약했다.1980년에는 대한농구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서 스포츠 외교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경총 회장은 82년부터 무려 14년간이나 했다. 1996년 1월 이 명예회장은 10년 이상 경영수업을 받은 장남인 이웅열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고 선친처럼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3박4일’ 이웅열 회장 이웅열 회장은 5명의 누이들 속에서 컸지만 성격은 대단히 남성스럽다. 특히 스포츠를 좋아해서 축구와 야구, 테니스, 탁구, 당구, 골프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또 시작하면 프로(?)수준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의 별명이 ‘3박4일’로 불린 이유는 무엇이든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이다. 그의 학창 시절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다지 풍족하지 않았다. 부친인 이 명예회장이 박하지 않을 정도의 용돈만 줬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재벌 아들이 ‘짜다’는 소리를 수시로 들었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이 회장은 활달하고 사교적이다. 전경련 e비즈니스 위원장을 맡아 재계 2∼3세의 리더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최태원 SK㈜ 회장과 신동빈 롯데 부회장, 류진 풍산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가깝게 지낸다. 그의 이같은 사교적인 성격은 조부인 이원만 창업주의 성품과 닮았다. 호방하고 풍류를 즐겼던 이 창업주는 사업가보다 정치인으로 이름이 더 잘 알려졌다. 1989년 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한 이 회장은 이동통신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그룹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파고로 계열사 매각과 신세기통신(현 SK텔레콤) 지분(1조 700억원어치)을 팔아야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회장은 당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미래를 팔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침통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오롱의 어려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섬산업이 고유가와 중국의 저가 공세로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올해를 ‘턴어라운드’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과감한 구조조정과 수익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경영권 장자 승계 코오롱 가문은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아들이 귀한 집안이다.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은 슬하에 2남4녀를 뒀지만 이 명예회장은 1남5녀, 이웅열 회장도 1남2녀다. 그룹 경영은 장남만 참여하고, 딸들과 사돈가의 경영참여는 철저히 배제한다. 장자일계(長子一系)의 경영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코오롱가의 특징이다. 다른 그룹들이 사돈을 비롯한 친인척들로 방대한 족벌 경영체제를 이룬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명예회장과 숙부인 이원천 전 사장간의 경영권 분쟁이 친인척 배제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 창업주가 그룹경영을 맡고 있을 때는 사위들의 경영 참여가 적지 않았지만, 이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이같은 장자 승계의 원칙이 정해졌다. 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에서 “우리 집 여자들은 아버지 사업이나 남편이 하는 일에 개입하는 법이 없다. 사위들이 처가 덕을 보고 한자리 하겠다면 득보다 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문경영인에게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잘 해내는 경우에도 열등감이 생긴다. 능력이 없다고 ‘백년손님’이라 쫓아낼 수는 없는 일이니 난처해질 것이고, 훗날 내가 일선에서 물러날 땐 조용해지기 어렵다.”고 했을 정도로 철저히 장자일계의 경영구조를 갖춰 경영권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나 다툼을 미리 차단했다. ●김종필 전 총재와 한때 사돈 이원만가(家)의 혼맥은 국내 재벌가의 최정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될 정도로 화려하다. 이 창업주의 넓은 정계 인맥과 국내 굴지의 섬유그룹인 코오롱을 기반으로 정·관·재계 곳곳에 혈연 관계를 맺었다. 이 창업주와 이위문(작고) 여사는 2남4녀를 뒀다. 이 창업주의 영향력이 정·재계에 미치기 전에는 자녀들을 평범한 집안과 통혼시켰지만, 사업 성공에 이어 정치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던 시기엔 국내 내로라하는 집안을 사돈으로 맞았다. 이 때문에 정략 결혼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장남 이동찬 명예회장은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장가부터 들라.’는 부친의 강요로 맞선을 본 지 1주일 만에 평산 신씨가(家)의 무남독녀 덕진(82)씨와 결혼했다. 이 명예회장 부부는 지난해 1월 결혼 60주년을 맞아 회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장녀 봉필(72)씨는 54년 고향 인근 임병진씨의 아들 승엽(작고)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승엽씨는 삼경물산 사장을 거쳐 그룹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차녀 애란(63)씨는 노영태(63)씨와 혼인을 치렀다. 3녀 미자(61)씨는 포항지주인 박문학가(家)의 장남 성기(66)씨와 결혼했다. 성기씨는 한국바이린 사장을 역임했다. 차남 이동보(56) 전 코오롱TNS 회장과 막내딸 미향(51)씨의 결혼으로 코오롱가는 재계 혼맥도의 핵심으로 올라선다. 이 전 회장은 74년 제3공화국의 2인자였던 김종필 전 총재의 장녀 예리(54)씨와 결혼했다. 이를 통해 코오롱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으며, 최고 권력가와 혈연의 끈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결혼은 육영수 여사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성격 차이로 갈라섰다. 이동보 전 회장은 1988년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분가했지만 부도와 구설수에 휘말려 고초를 겪기도 했다. 막내 미향씨는 삼립식품 창업자인 허창성 집안으로 출가했다. 식품종합그룹인 SPC의 허영인(56) 회장이 그의 남편이다. ●정략결혼과 3세 혼맥 코오롱가의 혼맥은 3세로 내려가면 더욱 빛이 난다. 이 창업주가 자신의 입지와 뜻을 펼치기 위해 손주들을 정략 결혼시킨 경우가 있어서다. 이 명예회장과 신 여사는 슬하에 경숙, 상희, 혜숙, 은주, 웅열, 경주씨 등 1남5녀를 뒀다. 장녀인 경숙(59)씨는 1969년 당시 공화당 의장 서리였던 고 이효상 전 국회의장의 3남 문조(65)씨와 화촉을 밝혔다. 이 전 국회의장은 도쿄대를 나와 경북대 교수로 있다가 1960년 정치에 투신해 5선 의원을 지냈다. 정계에선 대구·경북(TK) 인맥의 대부로 통했다. 국회의장을 비롯해 공화당 총재, 영남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문조씨는 현재 영남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차녀인 상희(56)씨는 국내 대표적 ‘송상(松商)’으로 불렸던 고홍명 한국빠이롯드 회장 집안으로 출가했다.1973년 고 회장의 장남 석진(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진씨는 코오롱제약(옛 삼영신약) 사장을 거쳐 빠이롯드전자 회장을 지냈다. 하지만 부도로 인해 고통을 겪다가 98년 별세했다. 3녀인 혜숙(53)씨는 고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남인 동혁(58)씨와 결혼했다. 현재 고려해운 회장인 동혁씨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컬럼비아대학 석사 출신이다. 해운선사로서는 처음으로 타이완과 홍콩 등 동남아 항로에 진출해 해운업계의 프런티어 경영인으로 이름이 높다. 4녀인 은주(51)씨는 테니스 인연으로 신병현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장남 영철(55·의사)씨와 결혼했다. 신 전 부총리는 한국은행 총재와 상공부 장관, 무역협회장, 은행연합회장 등을 지냈다. 이들 부부 결혼식은 신 전 총재가 직접 주례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웅열 회장은 큰 누이 경숙씨의 소개로 1983년 황해도 출신인 서병식 동남갈포공업 회장의 장녀 창희(45)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서 회장은 1962년 고급벽지의 대명사인 갈포벽지를 만들어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부인 창희씨는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이 회장 부부는 규호(21)와 소윤(18), 소민(16) 등 1남2녀를 두고 있으며, 규호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5녀인 경주(46)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최윤석(46)씨와 결혼했다. ●딸·며느리 모두 이대 동문 장자 경영과 친인척 경영 배제의 원칙 때문인지 코오롱가의 딸과 며느리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대외 활동보다 가정주부로서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에 애쓴다. 이 명예회장의 부인인 신 여사는 지금껏 바깥 사교모임에 한번도 참석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 여사는 집안에서 살림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한다.3세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는 이 명예회장의 모친인 고 이위문 여사가 남편인 이 창업주의 호방한 성격과 바깥 활동으로 마음 고생이 매우 심했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고, 자식들을 바르게 키운 선례 때문이다. 코오롱가의 딸과 며느리들은 또 모두 이화여대 동문들이다. 장녀 경숙씨가 생활미술과를 나왔으며, 상희씨는 기악과, 혜숙씨는 가정학과, 은주씨는 도서관학과를 나왔다. 이 명예회장은 평소에 딸들을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장녀는 걷는 모양부터 급한 성격까지 나를 제일 많이 닮았으며, 둘째는 시댁에서 살림만 하는 편이지만, 항상 밝고 착한 데다 쓸데없이 친정에 오는 일이 없다. 셋째는 공부도 제일 잘했고, 바른 소리도 잘했다. 악바리면서 의리가 강하다. 넷째는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해서인지 덜렁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린다.” 며느리 창희씨도 코오롱가의 여자답게 대외 활동보다 조용히 집에서 자녀 교육과 남편 내조에 열심인 한국적인 주부다. 사교 모임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창희씨지만 코오롱그룹 간부 부인들로 구성된 ‘코오롱가족사회봉사단’ 활동엔 적극 나서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코오롱의 ‘李트리오’ 지금의 코오롱그룹 토대를 쌓은 주역 가운데 한 명이 고 이원천 전 한국나일론(현 ㈜코오롱) 사장이다.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의 동생이며, 이동찬 명예회장에겐 숙부가 된다. 이 전 사장은 일제시대 때부터 일본에서 형님인 이 창업주의 사업을 도왔다.1957년에는 한국나일론 사장직에 추대돼 코오롱의 ‘섬유시대’를 이끌었다. 당시 이원만-이원천-이동찬 3인은 코오롱에서 ‘이 트리오’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전 사장은 조카인 이 명예회장과 회사 분할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면서 나중엔 경영권 분쟁에 빠졌다. 이 전 사장은 결국 1976년 한국나일론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지분을 챙겨 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1년만에 쓰러졌다. 이 창업주는 이후 장남인 이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맡겼고, 회장에 오른 이 명예회장은 동생인 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을 분가시켰으며, 매제들도 계열사 경영에서 손을 떼게 했다. 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숙부에 대한 회한이 커지는 요즘에도 회사 분할에 반대한 것은 옳은 일이 아닌가 싶다…. 숙부와의 경영권 분쟁은 결국 조카가 숙부의 세력을 완전히 퇴치해 버린 것 아니냐는 평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그룹을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된 것이라면 나는 굳이 부인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사업엔 실패했지만 이원천가(家)의 혼맥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형님인 이원만 창업주가 제3공화국의 실력자 김종필 전 총재와 인연을 만들었다면, 이 전 사장은 또다른 실세였던 정일권 전 총리와 혈연관계를 맺었다. 이원천가(家)는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 집안과 사돈간이다. 고 정 총리의 딸 희경씨가 이 전 사장의 아들과 결혼했다. 또 이원천가(家)와 영풍그룹은 한 다리 건너 사돈간이다. 고 정 총리의 장남인 세훈씨가 장병희 영풍그룹 창업주의 딸 현주씨와 인연을 맺었다. 영풍그룹은 또 6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김세련씨 가문과도 연이 이어진다. golders@seoul.co.kr ■ 코오롱 이끄는 전문경영인들 ‘코오롱호’를 이끄는 대표 최고경영자(CEO)는 누가 있을까. 한광희(56) ㈜코오롱 대표는 코오롱그룹의 간판 CEO다. 그는 요즘 한계사업 정리와 차세대 먹을거리 준비에 분주하다.1976년 코오롱에 입사한 이후 기획관리 등 주요 사업부를 두루 거쳤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한 대표는 책상에 앉아 숫자놀이를 하는 것보다 현장 영업을 더 즐기는 실물형 CEO에 속한다. 민경조(62) 코오롱건설 대표는 23년간 건설에서만 근무한 전문경영인으로 위기관리가 뛰어나다는 평이다. 사내에선 따뜻한 집안의 가장 같은 CEO로 불린다. 수시로 사내 메신저를 통해 막내 직원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상하간 의사소통을 중시한다.“똑똑… 민경조입니다, 야근 힘들죠, 문제되는 게 뭔가요, 오늘 팀원들과 저녁 같이 합시다.”로 유명해 먼저 다가서는 CEO로 통한다. 논어를 1000번 이상 읽을 정도로 고전에 관심이 많다. 제환석(59) FnC코오롱 대표는 현장주의자다.2003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800개에 이르는 매장을 서울에서 제주까지 하나하나 찾았다. 지금도 주말을 이용해 매장을 방문하고 있다. 제 대표는 또 CEO 명함 외에 ‘열사모’의 방장 직책을 갖고 있다. 열사모는 제 대표가 만든 모임으로 오프라인의 단체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인 사원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가상의 모임이다.“스스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원 모두가 열사모의 열사”라고 말하는 제 대표는 열사모 방장의 이름으로 직원들과 곧잘 의견을 교환한다. 배영호(61) 코오롱유화 대표는 엔지니어로서는 드물게 미국 뉴욕지사 근무를 했다.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 해외 영업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죽기살기로 부딪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배 대표는 당시 직원 가운데 한국으로 되돌아온 유일한 사람이라고 한다. 첫 직장에 대한 그의 신의와 열정은 특유의 사업감각과 합쳐져 코오롱유화를 종합화학 회사로 도약시켰다. 김종근(55) 코오롱글로텍 대표는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긴다. 직원 이름을 기억하고, 애로와 고충을 들어주며, 중요한 정보는 경영에 곧바로 반영한다. 또 직원들에게 책상에 앉아있지 말고 현장을 돌면서 문제와 해결방안을 찾으라고 한다.“사장님은 오늘도 지방사업장을 순회하고 있습니다. 바로 대표와 직원들간의 간담회 때문이죠. 간담회라는 자유로운 형식을 통해 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61개 사업장인데 올해만 해도 벌써 세번째 라운딩입니다. 연초에 전직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쁜 일정에도 사업장을 순회하고 계십니다.”한 직원의 이러한 설명에서 올 상반기에 비상장 5개사를 합병, 덩치가 커진 코오롱글로텍을 외형만큼이나 건실하게 키우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아베 신드롬… 日 거침없는 우경화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포스트 고이즈미’ 4인방 가운데 아베 신조 신임 관방장관의 대국민 인기가 치솟고 있다. 그의 극우적 성향 때문이다. 아울러 일본 사회의 ‘우향 우’ 움직임도 3차 고이즈미 내각 출범과 함께 가속화되고 있다. 내각 요직에는 초강경 매파들이 포진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3분의 1 가량이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지지한다. 무엇보다 국민여론의 우경화 경향이 한계 수위를 넘어서는 양상이다. 개각 이후 강경우파 노선을 뚜렷이 한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은 급상승했다.2일 언론들의 여론조사 결과 대부분 50∼60%의 높은 지지율이다. 각각 전회 조사보다 5∼9%포인트씩 상승한 셈이다. 자연히 이번 개각도 50% 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다. 관심을 끄는 차기 총리 선호도에서도 일본 국민들은 일본판 ‘네오콘’인 아베 장관을 압도적으로 꼽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는 아베 장관이 33%를 기록했으나, 아소 다로 외상과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등 경쟁자들은 한자릿수 지지율에 그쳤다.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은 누구인가.’를 물은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서도 아베 장관은 41%의 지지율로 한자릿수에 그친 경쟁자들을 크게 제쳤다.‘아베 신드롬’으로 불릴 정도로 개각 이후 그의 인기는 급등세다. 같은 맥락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여론도 찬성이 반대를 속속 앞서는 등 우경화 경향이 심상치 않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47%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를 찬성했으며, 반대한다는 답변은 37%에 불과했다. 국회의원들의 ‘우향 우’도 거침 없는 모양새다. 초당파 국회의원 모임인 ‘일본회의국회의원간담회’는 1일 한국, 중국 등의 반발에도 불구,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지지를 결의하고, 새로운 무종교 국립추도시설 건립에 반대하기로 결의했다. 이 모임 소속 국회의원은 233명으로 중·참의원 전체 의원 720명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이들 초강경 매파의 역사인식도 변화가 없는 분위기다. 차기 주자군인 아소 다로 외상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시작된 것’이라는 자민당 정조회장 시절의 망언에 대해 한국, 중국 등에 설명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전쟁전의 얘기는 기본적으로 한·일기본조약으로 모두 끝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경외교 기조가 물씬 풍긴다.taein@seoul.co.kr
  • 日 강경파 아베 입각할듯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3일 치러진 참의원 보궐선거에서도 압승하자 다음달 2일로 예상되는 내각과 당지도부 개편을 위한 조정작업을 본격화했다. 일본 언론들은 24일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대북 강경파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대리가 입각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언론들은 아울러 고이즈미 개혁의 전도사인 다케나카 헤이조 경제재정·우정민영화 담당상이 내각에 잔류, 개혁의 마무리를 담당할 것으로 분석했다. 아베 간사당대리는 관방장관이나 외무상, 문부상 중에서 한 곳을 차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taein@seoul.co.kr
  • 日 우정민영화법 참의원 통과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개혁의 핵심과제로 추진해온 우정공사 민영화 관련법안이 14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찬성 134, 반대 100표였다. 참의원 표결에서는 중의원 해산 전 표결 때 반대표를 던졌던 자민당 의원 대부분이 찬성했다. 자민당과 공명당을 합한 연립여당의 참의원 의석은 136석이다. 중의원 해산 전 참의원 본회의 표결 때는 자민당 의원 22명이 반대하고 8명이 기권해 법안이 부결됐었다. 우정민영화 관련법은 일본우정공사를 2007년 10월 민영화해 우편사업, 창구사업, 우편저금은행, 우편보험의 4개사로 분할하도록 하고있다. 우편저금과 보험 등 2개 금융사의 지주회사 보유주식은 2017년 9월 말까지 전량 민간에 매각, 최종적으로 민영화 절차를 마치게 된다. 지난 11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가결된 우정민영화 법안은 이날 상임위인 참의원 우정민영화특별위원회를 통과, 본회의에 긴급상정됐다. 다케나카 헤이조 우정민영화 담당상은 “작은 정부를 만들기 위한 개혁을 가속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taein@seoul.co.kr
  • 日 우정민영화법 중의원 통과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정권이 총선 압승 후 재상정한 일본우정공사 민영화법안이 11일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돼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집권 자민당과 공명당은 오는 14일쯤 이 법안을 참의원에서 가결, 최종 성립시킨다는 계획이다. 중의원 본회의 표결에서는 중의원 해산 전 법안에 반대, 자민당을 탈당했다가 무소속으로 당선된 13명이 대부분 찬성표를 던져 찬성 338, 반대 138표로 200표나 차이가 났다. 지난 7월 중의원 표결 때는 5표차였다. 참의원의 자민당 반대파 의원들도 대개 찬성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법안 성립은 확실시되고 있다. 법안이 성립되면 일본 우정공사는 오는 2007년 10월 폐지되며 지주회사 아래 우편사업과 창구사업, 우편저금은행, 우편보험의 4개사로 분할된다.2017년 9월 말까지 금융 2사의 전주식이 민간에 처분, 완전 민영화된다. 일본을 방문중인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은 법안 통과 전 기자회견을 갖고 우편저금과 우편보험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평등한 경쟁 토대를 정비해야 한다.”며 미국계 금융기관이 민영화에 불이익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줄 것을 우회 주문했다.taein@seoul.co.kr
  • 고이즈미, 관료사회 정조준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와 여당이 우정민영화 다음 과제로 ‘작은 정부’ 실현과 연금제도의 개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7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여당은 2006년부터 4년간 국가공무원 2만 7681명을 감축, 올해 감축분을 포함하면 2009년까지 지난해 말 기준 정원의 10%에 해당하는 3만 3000명을 줄이기로 했다. 아울러 국가공무원의 총인건비(약 5조 4000억엔)가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10년 안에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국가공무원 ‘5년간 10% 감축’을 오는 10월4일 각료회의에서 결정키로 했다. 총리 자문기구인 경제·재정자문회의는 연내에 감축인원에서 증원분을 뺀 순감목표와 총인건비에 관한 기본지침, 실천기한, 목표 등을 정한 행동계획을 마련키로 했다. 일본 정부·여당은 일반 월급생활자에 비해 유리한 공무원 대상의 공제연금을 회사원이 가입하는 후생연금에 통합, 일원화하기로 했다. 또 일반 국민에 비해 크게 유리한 중·참의원 대상의 의원연금 폐지도 추진키로 했다. 이처럼 대대적인 공무원 감축과 인건비 축소, 연금개혁을 단행키로 한 것은 악화일로인 재정상태 때문이다.일본 재무성이 26일 발표한 국가자산·부채현황에 따르면 일반·특별회계, 특수법인 등을 더한 연결기준으로 2003년 현재 부채가 자산보다 245조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채무 초과액은 2002년보다 3조엔 늘어난 것으로 국가재정상태가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26일 “이 정도의 채무초과는 민간 기업이라면 도산할 수준”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taein@seoul.co.kr
  • 고이즈미 “임기중엔 개헌 않겠다”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마술’에 의해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난 일본 중의원 총선거는 여·야 정당을 뿌리부터 흔들어놓고 있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정권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다진 반면,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는 쓸쓸히 퇴장했다. 이런 가운데 ‘포스트 고이즈미’에 대한 시선도 뜨거워지고 있다.●차기 주자 적극적으로 기용한다 고이즈미 총리가 압승을 거둔 직후 12일 오후 자민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포스트 고이즈미’에 대해 얄궂게 질문을 퍼부어댔다고이즈미 총리는 “나 다음에 의욕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각료나 당 주요 간부 등을 통해) 활약할 장을 적극 마련해 주겠다.”면서도 자격 요건과 관련해서는 “고이즈미 개혁을 전진시킬 정열을 가진 인물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임기 연장론에 대해서는 “내년 9월 임기종료 이후에는 (자민당)총재를 안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그 다음 문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운을 남겼다. 아울러 우정민영화와 함께 연금개혁, 소득세 증세 등 각종 개혁조치들도 중단없이 하겠다고 밝혔다.●모리파 최대파벌 부상 종전 파벌 중심의 정치가 상당부분 희석됐지만, 그렇더라도 중의원 선거의 자민당 당선자를 파벌별로 분석해 보면 고이즈미 총리의 출신 파벌인 모리파가 해산시 51명에서 53명으로 2명이 늘었다. 중의원·참의원을 합하면 79명으로 당내 최대파벌로 단숨에 뛰어 올랐다. 이른바 ‘자객 소동’ 등에서 무파벌이나 파벌 미정의 당선자가 93명이고, 이중 신인도 71명이나 된다. 이들 가운데 고이즈미 총리가 출마를 설득한 경우가 많아,‘포스트 고이즈미’ 후보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간사장대리가 속한 모리파가 한층 더 세력을 확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반면 해산시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이었던 옛 하시모토파는 50명에서 35명으로 줄어 중·참 양원을 합하면 70명으로 제2의 파벌로 전락했다. 이밖에도 가메이 시즈카 전 정조회장이 탈당, 신당으로 간 가메이파는 우정민영화 파동의 최대 피해를 입어 사실상 분열상태에 빠졌고,3위 파벌은 호리우치파가 유지할 전망이다. 앞으로 무파벌 당선자를 상대로 한 영입작업이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개헌론 급물살?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중의원에서 헌법개정 발의선(3분의2)을 웃도는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개헌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벽이 많다. 우선 참의원에서는 연립여당을 합해도 3분의2가 되지 않는다. 특히 공명당이 개헌에 부정적이다. 자민당은 정권 공약대로 창당 50주년인 11월15일 개헌안 초안을 발표하는 것을 계기로 공론화의 시동을 걸 전망이다. 핵심적인 내용은 평화헌법을 이루는 핵심인 9조를 고쳐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다만 고이즈미 총리는 압승 후 “개헌은 남은 임기 1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부담스러워했다. 따라서 차기 주자 선발과정이나 2007년 참의원선거에서 개헌론이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taein@seoul.co.kr
  • 日총선 고이즈미 압승

    日총선 고이즈미 압승

    |도쿄 이춘규특파원|11일 치러진 일본의 중의원 총선거에서 개표가 종반으로 접어든 가운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총재인 자민당이 압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종 결과는 12일 새벽 확정된다. NHK가 12일 0시10분 현재 집계한 정당별 의석수는 자민당 268석, 민주당 91석, 공명당 28석, 공산당 7석, 사민당 3석, 우정민영화법안 반대파 무소속 12석, 순수무소속 및 기타 6석 등이다. 총 의석은 480석이다. 앞서 모든 일본 언론들도 오후 8시에 공개한 출구조사에서 자민당이 300석 안팎을 얻어 압승, 절대 안정의석을 확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결과에 대해 “역사적인 대승”이라고 표현했다. 고이즈미 정권은 이처럼 압도적인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지난 4년 4개월여간 견지해 온 보수·우경화 노선을 한층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가 우정민영화 찬성이냐, 반대냐라는 단일 선거쟁점이 분산화될 것을 우려해 유보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연내 강행하면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 갈등심화가 예상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밤 “임기 중 다양한 개혁을 추진해왔으며 국민들이 지지로 화답해주었다.”면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임기연장론’을 부인,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면 물러날 것임을 시사했지만 임기 연장론은 공론화될 것으로 관측됐다. 반면 정권교체 실패시 퇴진하겠다고 약속한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는 이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혀, 향후 민주당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 존립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최종적으로 자민당이 300석을 넘기게 되면 1980년대 중반 나카소네 정권 이후 20여년 만이고, 과반수를 넘긴 것은 15년 만이다. 이번 총선의 원인을 제공한 우정민영화 법안은 이달 하순 재제출돼 중의원·참의원을 통과할 것도 확실시 돼 우정민영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taein@seoul.co.kr
  • 亞경시외교 고수… 韓·中과 마찰 일듯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국민들은 11일 총선거에서 ‘안정’과 ‘개혁’을 택했다. 집권 자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 안정 속에 개혁 작업을 지속적으로 펴도록 밀어준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개혁 이미지’로 포장한 ‘우정민영화’ 기치 아래 당내 반란파 축출과 명망가 공천의 화려한 ‘극장형 선거전’을 통해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집권 기반을 공고화, 안정적인 장기 집권의 가도에 진입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앞세워 지금까지 유지해 온 미국 중시, 아시아 경시 외교 노선을 유지, 강화할 것으로 보여 한국과 중국 등과의 외교마찰을 부를 수도 있다. ●오카다대표 “퇴진”… 1야당 민주당 사실상 몰락 2001년 4월 말 취임한 고이즈미 총리는 중의원을 장악할 수 있는 절대안정 의석을 확보하면서 참의원 내의 반대 분위기도 압승 기세로 제압할 것이 확실시 돼 1년여 남은 임기의 기반을 탄탄히 굳혔다는 평가이다. 임기연장이나 ‘킹 메이커’의 영향력 확보 가능성도 점쳐진다.‘포스트 고이즈미’ 논의로 초래될 수 있는 레임덕도 피하면서 정권의 명운을 걸었던 우정민영화법을 재추진, 성립시킬 수 있는 동력도 확보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 과정에서 중의원 우정 민영화법안 반대파 37명을 축출하고 명망가 위주의 신진을 대거 공천, 파벌과 이익집단이 당정의 의사결정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구태정치를 일소했다는 평이다. 다만 “비주류를 말살해 고이즈미 총리의 독주가 예상된다.”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고이즈미 개혁의 결정판이라는 우정민영화는 국철 민영화, 도로공단 민영화, 전화사업 민영화 등에 이은 ‘작은 정부’를 구현, 구미 경제계에 일본 경제와 사회에 대한 믿음을 줘 향후 경제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제1야당인 민주당은 사실상 ‘몰락’, 당의 존재기반까지 흔들리는 최대 위기에 처했다. 오카다 가쓰야 대표는 퇴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며, 기사회생을 위한 세대교체론이 급부상하면서 당은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민주당의 몰락은 “자민당 보다 더 일부 정책이나 의원은 보수적”이라는 색깔의 불명확성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호헌세력인 공산당과 사민당을 포함한 야권의 대대적인 재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평이다. ●자위대 이라크주둔 재연장 전망 고이즈미 총리가 압승을 앞세워 주변국은 물론 유엔 개혁 외교정책에서 강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12월에 끝나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기한을 재연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우경화 노선도 가속화, 창당 50주년인 오는 11월 자민당은 개헌초안을 내놓고 공론화를 본격화할 전망이다. 자민당의 개헌안 초안은 전력 보유와 교전 포기를 골자로 한 헌법 9조를 고치는 것이 뼈대이다. 군사대국화 망령도 본격 부활할 수 있다. 주일미군 재편도 연내에 마무리할 예정이며 이 때 압도적인 국민 지지를 앞세워 일본측의 부담을 경감하는 등 일본측에 유리한 협상안을 이끌어내려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측과 작은 충돌도 예상된다. 향후 일본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개혁정책이 가속화, 경제회복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이 나오는 반면 770여조엔에 이르는 국가 및 지방정부 채무 해결, 갈수록 악화되는 국민연금 재정 위기 등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다. 고령자들의 의료·복지비 자기부담 확대 등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재정위기의 확대로 인한 ‘사회 안전망’의 약화는 일본 국민들이 ‘우정민영화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냉정하게 고이즈미 정권을 평가하기 시작하면 안정이 다시 흔들릴 수도 있어 보인다. 특히 민주당의 몰락으로 견제세력이 없어진 자민당은 ‘브레이크 없이 폭주’할 수 있어 보인다. 따라서 다른 의미에서 고이즈미의 자민당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오만과 독선’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taein@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 야스쿠니 8월 두표정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 야스쿠니 8월 두표정

    일본의 패전 60주년인 8월15일 야스쿠니(靖國)신사는 또다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찜통 더위에도 불구하고 20만여명의 참배·관람자들과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들어서다. 군국주의 향수에 젖은 우익세력들은 하루종일 신사 경내를 휘젓고 다녔다. 침략전쟁을 반성하자는 양심세력은 신사 근처를 빙빙 돌다 밀려났다. 당연히 엄숙한 추모분위기 대신 소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인들에게 무엇이고, 왜 논란의 중심인가. |도쿄 이춘규특파원|야스쿠니신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집권한 2001년부터 총리가 매년 참배하고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더욱 더 주목을 끌고 있다.2002년 이후 일본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야스쿠니신사는 우익들에게는 군국주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상징적인 곳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군국주의 시절 향수를 자극한다 8월15일 야스쿠니신사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옛 일본군복 차림의 우익인사들이 집단으로 신사를 참배했다. 이들은 오전과 오후 수차례에 걸쳐 거대한 구령소리로 다른 관람자 등에게 위압감을 주면서 옛 일본군이 출전하기 전에 참배하던 식으로 ‘받들어 총’ 자세로 신사를 참배했다. ‘영령에 답하는 모임’ 회원들은 초등학교 어린이까지 가세,A급 전범 분사를 요구하는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도 비난하고 “일본 정부는 외부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분사반대 서명운동을 펼쳤다.‘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고이즈미에게 신벌(神罰)을’이라는 섬뜩한 깃발이 날리기도 했다. 자신을 하라사키라고 밝힌 옛 일본군복 차림의 일본인은 사람들에게 “자위대는 군대다. 따라서 헌법을 고쳐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야스쿠니를 찾는 사람들, 특히 우익들은 한국언론을 싫어한다. 한국어투가 섞인 일본말로 질문하면 “한국인이지….”라며 적대감을 표시한다. 사라지라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그들의 속내를 듣기는 어렵다. 결국 그들간의 대화를 귀동냥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른 나라는 간섭하지 말아줘요 패전 60주년인 올해는 한국인 기자에게 더 민감했다. 평범하게 생긴 60대의 와타나베는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짜증냈다. 자신도 참전했었다는 한 80대 노인은 참배 논란에 “내정간섭”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물론 가족을 기리는 참배자도 많았다. 한 80대 할머니는 “형제가 두 명 전사했다. 생명이 있는 한 참배를 계속 하겠다.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으면 우리 형제들이 불쌍하고, 오기도 싫어진다.”고 우려했다. 평소 연인들도 숲이 우거지고 시내 한복판에 있는 야스쿠니를 데이트장소로 많이 찾는다.20대 연인 한 쌍은 “유족은 아니지만, 일본인으로서 참배하러 왔다. 이분들이 일본의 주춧돌이다.”면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참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한 대학생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총리는 참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국내에도 유족은 아주 많이 있지만, 해외에도 피해자가 있지 않은가.”라고 주장했다. ●소리 안내는 사람들, 마음은 복잡 평소 사석에서 접하는 일본인들은 비교적 본심에 가깝게 야스쿠니신사 문제에 대해 토로한다. 은퇴한 뒤 4년째 각종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나카자와는 태평양전쟁에 자원 입대했던 삼촌 2명이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돼 있다. 그래서 야스쿠니를 특별한 의식 없이 찾는다. 다만 A급 전범 분사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이 확실하다. 일본인은 죽으면 신분 고하를 떠나 신이 되고,A급 전범도 그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분사해도 여전히 신이라고 한다. 따라서 분사해도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인들에겐 생뚱맞게 들릴 법하다. 50대 회사원 곤노의 설명은 현실적이다. 야스쿠니에는 246만여명의 위패가 있기 때문에 일본인 전체가 먼 친척까지 포함하면 야스쿠니신사와 일정정도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계기로 야스쿠니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초·중·고 시절 단체참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국주의 찬양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본에는 분명 야당이나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분사나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중지를 요구한다. 극단적으로는 야스쿠니신사 경내의 전쟁박물관인 유슈칸만이라도 즉각 없애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야스쿠니신사가 국제적 논란의 대상이 된 뒤 호기심에 야스쿠니를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상당수 일본인들은 “야스쿠니 논란 장기화는 누구에게나 상처만 남긴다. 따라서 하루빨리 어떤 형태로든 결론을 내야 한다.”며 걱정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日유족회 모리타 쓰구오 부회장|도쿄 이춘규특파원|야스쿠니신사에 위패가 안치된 태평양전쟁 전사자 유족 모임으로 자민당 최대 후원단체인 일본유족회 모리타 쓰구오(전 참의원 의원) 부회장은 유족회 사무실에서 만난 기자에게 “20년 이상 된 (야스쿠니 신사) 소란이 언제나 그칠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일본인이 야스쿠니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본인 중에도 참배 안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젊은이 가운데는 야스쿠니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찾는 경우가 많다. 일반 신사와 다를 게 없다. ▶고이즈미 총리 등의 참배에 한국, 중국 등이 강하게 반발하는데. -일면 이해한다. 그러나 일본에는 일본의 가치가 있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리다. 참배자 대부분이 A급 전범에 관계 없이 유족의 관점에서 참배한다. 나라를 위해 숨진 영령들을 위령하는 이곳을 국정 최고 책임자인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A급 전범 등은 다르지 않나. -일본인들은 A급 전범을 범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도쿄재판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731부대 책임자가 미국의 정보에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에 전범에서 누락되는 등 의문점이 많다. 전쟁 책임은 인정하지만, 왜 14명만이 특별히 책임져야 하나. 독일도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나치나 히틀러에 대해 사죄했지, 독일 자신의 사죄는 아니었다. 일본에는 히틀러 같은 사람이 없다. ▶A금 전범 분사에 대해선. -한국과 중국을 만족시킬 해결책이 있으면 검토하겠지만 지금은 해결책이 없는 상태다. 분사는 있을 수 없다. 일본을 위한 희생자인데 246만 영령에 끼지 못하는 것은 이상하다. 분사 의견도 있긴 하지만 분사는 도쿄재판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반대한다. ▶무종교 추도시설 건립은. -새 추도시설을 만들어도 결국 새로운 논란만을 낳을 뿐이다. 기념비 같은 것은 해외 여론을 달랠 뿐 국내에선 새로운 논쟁이 격렬해진다. 기독교, 불교 등의 반대가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이후도 130년 역사의 야스쿠니가 유일한 추도시설이다. ▶일반 국민의 유족회에 대한 생각은. -우익단체나 군국주의를 연상하며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시각에 강력히 반대한다. 우리는 피해자다.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1985년 나카소네 전 총리의 참배 이후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커지며 20년간이나 시끄러운 문제가 됐다. 유족들은 유지하고 싶은데 근린제국들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돼버렸다. taein@seoul.co.kr ■ 야스쿠니 신사는야스쿠니 신사는 왕궁, 국회, 총리관저, 관청가와 가까운 도쿄 한복판에 있다. 연간 참배·관람자는 500만여명에 달한다고 신사측은 밝힌다. 야스쿠니는 ‘편안한 나라’라는 의미다. 따라서 나라를 편안하게 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다.1978년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되고,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가 참배하며 국제적인 논란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최근은 더 심하다. 야스쿠니 신사는 옛 일본군들이 “죽은 뒤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며 참배한 뒤 태평양전쟁에 나갔을 정도로 국가 신도의 상징장소였다. 일왕 중심의 군국주의의 온상이기도 했다. 따라서 연합군사령부가 야스쿠니를 없애려다, 동북아에 긴장이 조성되자 유지시켰다.1개 종교법인으로 격하됐지만 일본인들에겐 야스쿠니는 특별한 존재다.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진 무진전쟁 이후 태평양전쟁까지의 11개 전쟁 전몰자 246만 6532명(지난해 10월17일 현재)이 안치되어 있다.
  • 盧 ‘對野관계 불편한 심기’ 피력

    “고이즈미·슈뢰더, 참 부럽다.” 노무현 대통령은 24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오찬에서 이런 언급을 했다. 국회, 특히 야당과의 관계에서 불편했던 심기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우정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자민당 내부 반란표로 부결되자 중의원을 해산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좌파 지지자들의 반발에 맞서 의회를 해산하고 재신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은 “필요한 개혁이 기득권 구조 때문에 지체돼 이런 사태가 온 것”이라며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고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도자들이라고 한다면 개혁에 당장 손해보기 때문에 저항하는 쪽이 국민들, 지지자들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슈뢰더 총리의 재신임 요구에 대해 “정권을 바꿔서라도 이 개혁은 해야 되겠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강력하게 던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추론한다.”며 참모진에게 관련자료 수집을 지시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은 뭐냐? 당을 걸고 승부를 할 수도 없고, 자리를 걸고 함부로 승부를 할 수 있는 것도 제도화돼 있지 않고,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사표만 낸다고 이(지역구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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