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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세기를 새롭게 비전 ‘한국21’] (5) 사생활을 보호하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나 단체 등으로터 전화와 편지,이메일(전자우편)등이쏟아지는 세상이 됐다.개인 정보가 도용되거나 범죄에 악용되는 피해 사례도잇따르고 있다. 심지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몰래 카메라의 표적이 돼 불법음란 비디오의 주인공으로 팔려나가기도 한다. 인터넷 전자상거래와 정보통신업체,신용카드사 등 개인 정보를 관리하는 업종이 크게 늘고 있는데다 도·감청 장비가 첨단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A여대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는 김모씨(24·여)는 서울 세운상가 등에‘A여대 기숙사’란 제목의 ‘몰래 카메라’ 비디오 테이프가 거래되고 있다는 말을 들은 뒤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혹시 자신이 찍히지 않았을까 하는걱정 때문이다.김씨는 “누군가 엿보고 있다는 불안감에 잠자리에 들기 전창문이 열려있는 지를 확인하고 옷까지 입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회사원 박모씨(32)는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B사에 회원으로 가입한 뒤 보험가입을 권유하는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가입 당시 적은 전화번호와 직업,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가 보험사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주부 조모씨(37)는 최근 C백화점에서 백화점 카드를 발급해 줄테니 의료보험증을 복사해 보내라는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조씨는 신청한 적이 없다며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직원은 가입서에 적힌 조씨의 이름,주소,주민등록번호,연락처 등을 불러주었다.조씨는 “백화점에서 어떻게 입수했는지 몰라도 신상정보가 공공연하게 나돈다니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정보문화센터가 네티즌 9,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국가 정보화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을 묻는 질문에응답자의 38.8%인 3,500여명이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꼽았다.또 국내 인터넷 쇼핑몰 200개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절반이 넘는 110개사이트가 기본 정보(이름·주소·연락처·대금결제계좌) 이외에 불필요한 추가정보 입력을 요구했다.보안성을 갖춘 곳은 5개에 불과해 개인정보 보호에매우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불법 도·감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는 사설기관은심부름센터 등 전국적으로 1,400여개.지난 6일에는 사생활 도청 전문업자 및 도·감청장비 수입업자,개인정보를 빼내 판 심부름센터 직원 등 400여명의 사생활 침해 사범을 붙잡았다.개인의 통화내역을 유출한 전화국 직원과 휴대전화 번호를 불법 복제해준 대리점 업주,재학생 명단을 인터넷 업체에 판 대학교수 등도 포함됐다. 이 중 169명의 심부름센터 직원은 생활정보지 등에 ‘가정 고민 해결,채무해결’ 등의 광고를 낸 뒤 도청·감시·미행 등으로 사생활을 조사했다.도·감청에는 첩보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고성능 소형 녹음기에서부터 손톱만한크기의 렌즈와 마이크가 달린 초소형 카메라 등이 이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용학(金用學)교수는 “인터넷 업체들의 개인정보 유출과도·감청에 대한 국민의 불안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전자 정보보호등 개인 정보보호를 위한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인터뷰] '함께하는 시민행동' 조양호씨 “정보화 사회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일반인들이 아무런 보호막 없이정보사냥꾼들에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조양호(趙暘昊·29) 개인정보보호팀장은 사생활이 무분별하게 침해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정부,기업 등 개인정보를 취득하는 정보취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꼽았다. 그는 일례로 “99년 상반기 동안 국내 4대 PC통신사는 정통부에 662건의 개인 정보를 누출시켰다”며 “1건에 몇명의 ID와 비빌번호가 포함됐는지,누구의 정보가 유출됐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인터넷상의 각종 사이트,PC통신,이메일 등은 생활의 일부가 된지 오래인데도 정부는 아직 컴퓨터상에서 일어나는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정은 기업도 마찬가지다.인터넷 상거래가 확산되면서 신용정보 유출이 고객의 가장 큰 두려움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우리 기업은 신용정보 보호에 무관심한 상태이다.정보누출의 책임을 묻는 약관이나 서버관리자의 감시제도가 없는 것은 물론 인터넷사업을 벌이는 업체 끼리 암암리에 고객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그는 “이러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무관심과 개인정보 악용은전자상거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아직 개인 정보 누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조팀장은 “개인의 사상까지 감시받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정부,기업,개인이 깨닫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도·감청 보호 외국 사례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도청,감청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를 알아본다. [미국] 지난 74년 ‘전기통신 프라이버시법(일명 반도청법)’을 제정,수사기관에 의한 도청을 엄격히 금지해 오다 86년부터 일반인들에 의한 불법도청까지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영장을 발부하는 판사에게 많은 권한을 줘 감청의 남용을 견제하고 있다.영장발부 판사는 수사기관에 감청 진행상황을 수시로 보고할 것을명령하고 감청종료 90일안에 감청대상자에게 감청사실을 통보해 줄 수 있다. 또 수사기관이 청구하는 영장에는 감청 요청자와 참여자의 신분과 위치,구체적 범죄행위,감청 희망기간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토록 하고 있다. 판사는 이런 절차에서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감청을 허용하지 않고 통신비밀보호법에 규정된 사항을 하나라도 어긴 감청은 법정에서 증거능력이부인된다. [일본] 지난해 8월 참의원에서 ‘범죄수사를 위한 통신방수에 관한 법률’이제정돼 마약 등 범죄수사에 한해 감청을 허용하고 있다. 이 법에는 감청 기간이 10일로 규정돼 있지만 감청 남용을 위한 여러가지 견제장치를 두고 있다. 수사기관의 감청에는 통신사업자 또는 지방공공단체 직원이 반드시 참여하고 감청이 끝난 뒤 감청테이프 원본을 법원이 제출받아 5년간 보관토록 하고있다. 또 감청후 30일 이내에 감청대상자에게 감청사실을 통지하고 통지를 받은 대상자는 수사기관에 보관된 감청기록을 자유롭게 열람,청취,복사할 수 있다. 이종락기자 jrlee@ *통신비밀보호법 문제점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감청요건이나 대상범죄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폭넓고 막연한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이에 반해 수사기관의 감청 남용을 막는 장치 등은 미흡,인권보호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 여야가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국회가 감청설비 등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수사기관의 감청요건을 대폭 강화하려 한 것도 이 때문이다.통신비밀보호법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현행 감청 요건만 봐도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미·일은 범죄수사목적으로 한정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범죄수사외에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수집’도 포함시키고 있다. 범죄수사 범위도 마찬가지다.우리나라는 내란 외환 마약 사범 등 꼭 필요한 주요 범죄외에 강도 절도 사기 공갈범죄 등도 범죄수사대상에 넣은 반면 일본은 마약 집단밀항 총기 조직살인 등 일부에 국한하고 있다.미국은 핵시설및 발전시설내 태업 반역 폭동 강도 살인유괴 등으로 제한했다. 감청기간도 마찬가지로 인권보다는 수사기관의 편의에 치중했다는 지적이다.범죄수사의 경우 3개월,국가안보는 6개월이며 각각 한번씩 연장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일본은 10일을원칙으로 연장하되 30일을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긴급감청도 논란거리로 무분별한 감청으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일본은 긴급감청제도가 없으며 미국은 개인안전 국가안보위협 조직범죄의 경우에만 허용되고 있다.더 큰 문제는 감청 남용에 대한 감시기능이 없다는 점.정보기관에서 은밀하게 도청·감청을 해도 이를 막을 방법은 거의 없다. 대한변협의 한 관계자는 “국회에서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해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는 보호방안 등을 마련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그러나 긴급감청 등이 폐지되고 감청 남용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개인의 사생활보호는 요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 *도·감청장비 매매실태 단속이 강화됐지만 ‘몰래카메라‘ 등 사생활침해도구는 여전히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달라진 점은 가격이 올랐다는 것.단속강화로 공급이 줄어든 탓이다.파는 장소도 사람들 눈을 피할수 있는 뒷전으로 조금 물러앉았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구석의휴대전화 판매점.도청기를 살 수 있느냐고 묻자 40대 초반의 남자 주인은 잠시 의심의 눈초리를 보였지만 곧 은근한 목소리로 “전화를 도청할 수 있는 괜찮은 물건이 있다”고 소개했다. 주인은 “단속이 없을 때는 10만원정도 했지만 이제 위험부담이 커진 만큼25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름,전화번호,주민등록번호 등을 꼬치꼬치 캐물은뒤 “계약금으로 3만원을 주면 다음날 물건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몰래카메라도 가격이 껑충 뛰었다.용산 전자상가의 한 ‘CC카메라 전문’가게에 들어가 “몰래카메라를 파느냐”고 묻자 “좋은 데 쓰실 거면 있고,나쁜 일에 쓸 거면 없어요”라고 농담까지 하며 물건을 내놓았다. 가로 3㎝,세로 2.5㎝정도의 초소형 캠코더는 흑백 8만원에서 컬러는 28만원까지 한다.이 카메라는 8㎜ 비디오카메라에 연결,녹화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또 손바닥만한 고성능 외제 비디오 카메라는 최고 150만원까지 한다. 가게 주인은 “이것을 사는 사람이 거짓말을 해도 우리는 확인할 길이 없어 당국이 우리에게 책임을묻는 건 곤란하다”면서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소형 캠코더 카메라일 뿐”이라고 강변했다. 서울 청계천 A전자 직원은 “지난해 도·감청,몰래카메라 등이 크게 문제가 된 뒤 단속이 강화되면서 이런 물건을 파는 가게도 줄고 물건도 많이 나오고 있지 않지만 구할 수는 있다”면서 “대신 일종의 ‘품귀현상’ 때문에가격은 두 배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장택동 박록삼기자 taecks@
  • [포커스 투데이] 일 사민당수 3선 ‘도이 다카코’

    일본 정계의 여걸 도이 다카코(土井たか子)의원이 사민당 당수선거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21일 사민당 당수선거 후보자마감결과 도이 의원이 단독입후보,무투표 당선을 확정지었다.도이 당수는 1998년의 당수선거 때도 무투표로 당선됐었다. 7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정열적인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는 10선의 도이당수는 2월부터 2년간의 새 임기를 시작한다.86년 사민당 전신 사회당의 위원장을 지낸 것을 포함하면 4번째 사령탑을 맡게 되는 셈. 도이 의원은 여성 정치인으로서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그중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내각때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중의원 의장을 맡은 것이 대표적.비자민 7개 정당 연정수립 당시 제1당이던 사회당에서총리를 내지 않은데 대한 배려로 위원장인 그녀를 다른 당에서 의장으로 추대했다.86년의 사회당 위원장도 일본 정치사상 최초의 여성 당수란 점에서숱한 화제를 뿌렸다. 대학강사였던 그녀는 69년 효고(兵庫)현에서 출마,정계에 입문했다.사회당내에서 ‘호헌 및 군축옹호파’로서 신념을 굽히지 않는 진보주의자인 그녀는 89년 참의원선거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를 실현,‘사회당 재건의 마돈나’라는 별명을 얻은데 이어 90년 총선때도 140석을 얻는 위업을 이뤄 인기절정에 올랐다.그러나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참패,위원장직을 내놓는 시련을 겪었다. 새 당수로 뽑힌 그녀의 정치적 과제는 중참 양원 통털어 27석의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사민당의 재건.더불어 일본의 보수우경화 물결 속에 진보진영의목소리를 어떻게 지켜낼지도 그녀에게 쏠리는 관심사중 하나다. 황성기기자 marry01@
  • 日 ‘평화헌법’ 폐지로 가는가

    일본 헌법의 개정논의가 전후 처음으로 국회에서 공식화된다.일본 국회는정기국회가 시작되는 20일 개헌을 다룰 헌법조사회를 중·참의원 양원에 설치,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헌법조사회는 1957년 내각에 설치된 적이 있으나 제1야당이었던 사회당의끈질긴 호헌론에 밀려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64년 폐지됐었다. 이번 조사회는 당시와는 달리 일본의 보수우경화가 힘을 얻고 사회·공산당등 호헌세력이 퇴조하는 시점에 발족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개헌을 추진하는 세력이 양원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고 일본 국민들의 개헌지지도도 높아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지난해 4월 요미우리(讀賣)의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53%로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개헌 반대는 31%에 불과했다. 계획대로라면 2곳의 조사회는 5년간 개정 내용을 검토,양원 의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고 2008년쯤 개헌을 마친다는 복안이다.조사회는 법안제출권은없지만 사실상 개정안과 다름없는 보고서를 낼 것으로 보인다. 개헌론의 초점은 제9조.2차대전 패전뒤 미 군정하에서 46년 제정된 일본헌법의 9조는 ‘육해공군의 전력을 갖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규정하고 있다. “점령군 지시로 제정된 헌법을 자주헌법으로 개정한다”는 집권 자민당의정강에서 엿보이듯 개헌파들의 속내가 교전권 확보에 있는게 아닌가 하는게주변국들의 걱정섞인 시각이다. 대표적인 개헌파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자유당 당수는 얼마전 자위권과 전력보유,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대한 병력제공 등 9조 개정을 중점적으로 다룬 시안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조사회는 일황을 국가원수로 명기할 것인지도 다룬다.일황은 구 헌법에서일본을 통치하는 원수로 돼있다가 현행 헌법에서는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격하됐었다. 이밖에 ▲국제협력 ▲참원개혁 ▲환경권,알 권리,사생활보호 등 새로운 권리와 의무 ▲지방자치 ▲총리 선거제도입 등도 개헌논의 대상이다. 황성기기자 marry01@
  • 日정치인2세 3당연립정권에 대거 입각 ‘화제’

    5일 출범한 일본의 자민 자유 공명 3당 연립정권 내각은 휠체어 장관의 첫탄생,정치인 2세의 대거 등장 등 여러가지 화제를 낳았다. ?총리를 포함,19명 각료의 면면을 보면 2세 진출이 두드러졌다.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문부상은 나카소네 전총리의 장남.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상도 전후 보수당의 실력자 이치로씨의 아들.우스히 히데오(臼井日出男)법무상은 ‘청렴한 8선 의원이었던 아버지의 유지를 잇기 위해’80년 정계에들어왔다. 나카야마 마사아키(中山正暉) 건설상의 경우에는 아버지는 참의원,어머니는후생상, 형은 중의원을 지낸 정치 명문가 출신. 오부치 총리도 고헤이(光平)전의원의 차남으로 7명의 각료가 정치인 2세다. ?실무형 내각인 오부치 2기 조각(組閣)과 자민당 3역 인사에서 오부치 총리의 인사 스타일에 큰 변화를 보였다.자세를 낮추고 화(和)를 중시해 ‘진공(眞空)총리’라는 별명도 갖고 있던 그는 이번에는 보복인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달 총재 경선에서 그를 격렬히 비판했던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와 야마사키 다쿠(山崎拓)파를 철저히 무시한 반면 자신을 지지했던 가메이파 등 ‘신주류’ 인사는 요직에 기용했다. 가토파가 각료로 추천한 3명중 입각한 인사는 가와라 쓰토무(瓦力)방위청장관 1명뿐.반면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의원은 정조회장에 기용했다. ?야시로 에이타(八代英太) 우정상은 TV 사회자 출신.73년 사회를 보던중 무대에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됐으나 재기에 나서 77년 참의원 전국구로 정계에입문했다. 일본 정치사상 신체장애자가 각료에 기용된 것은 처음. ?입각자의 출신교는 도쿄,와세다(早稻田),주오(中央)대가 각 5명,게이오(慶應)대가 3명.오부치 총리의 출신교인 와세다대는 1기 내각때보다 3명이나 늘었다.평균 연령은 64세.한편 마이니치(每日)가 이날 보도한 오부치 내각 지지율은 지난해 7월 출범이후 최고인 48%를 기록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日 3당 연립정권 오늘 출범

    일본의 자민,자유,공명 3당의 연립정권이 1일 출범한다.참의원에서 여소야대였던 여당은 새 연정으로 중·참 양원 모두 과반수를 확보하게 됐다.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정권으로선 안정적 정국운영의 길이 열린 셈이다. 오부치 총리는 이날 조각(組閣) 수준의 대폭 개각도 단행한다.유임되는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대장상을 비롯,외무·관방 등 주요 포스트의 각료는 내정된 상태다.입각 대상자의 면면을 보면 오부치 총리의 친정체제가 강화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상 내정자는 알려진대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는 30년 지기다.70년대초 ‘김대중 납치사건’때 진상규명운동으로 인연을맺었다.오부치 외상 시절부터 순풍을 타고 온 한·일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고노 외상체제에서 일본 외교의 최대 관심사는 대북 정책이다.국교정상화교섭 중단 등 대북 제재조치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 주목된다. 고노 외에 친한(親韓)인사로는 방위청장관으로 유력한 가와라 쓰토무(瓦力),후생상이나 금융재생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오치 미치오(越智通雄) 의원을꼽을 수 있다. 이번 개각에선 미야자와 대장상과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경제기획청장관이 유임된다.2년째 마이너스였던 경제성장률이 올들어 플러스로 돌아서는등 경제회생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세 자리인 관방장관에는 오부치 총리의 측근중 측근인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의원이 기용된다.그는 오부치의 정치적 스승인 다케시다 노보루(竹下登)전총리의 최측근이다. 연정 출범에 앞서 3당이 가진 정책협의에서 주목되는 것은 한국정부와 민단이 요구해온 지방참정권을 인정키로 합의한 점이다.반면 주변국으로선 우려되는 점도 있다.3당은 일본이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를 상정한 유사법제 추진에 합의하는 등 최근의 일본 보수우경화에 가속도를 붙일 가능성도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5,000엔이상의 선물·접대 부업소득·주식거래 신고해야

    일본 중앙부처 과장보 이상 공무원은 5,000엔(5만원) 이상의 접대나 선물을 받을 때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심의관급(국장급) 이상 간부들의 급여 이외소득과 주식거래 보고도 의무화된다. 일본 여야는 이같은 내용의 국가공무원윤리법 최종안에 합의,6일 중의원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 이들 과장보 이상 공무원이 접대 등을 받았을 때 내는 보고서는 각 부처의장에게 제출,인사원에 신설될 ‘국가공무원 윤리심사회’에서 심사한다.보고를 하지 않았거나 허위보고를 했을 때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징계처분을 받게 된다. 원안에는 ‘심의관급 이상은 자산 보고를 의무화하고 접대 등의 보고 의무를 어겼을 때 형사처벌을 받도록 했으나 여야 절충과정에서 삭제돼 한걸음후퇴한 최종안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본은 97년 후생성 사무차관의 구속,지난해 대장성 관리들의 잇단 과잉접대 등 공무원 추문이 잇따르면서 관료와 업자의 뿌리깊은 유착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자민 사민 등 연립여당이 법안을 제출했었다. 법안은 6일 중의원에서 통과된 뒤 참의원으로 넘겨질 예정이나 참의원에서처리해야 할 다른 법안이 많아 이번 정기국회 중 확정될 지는 불투명하다고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오부치 日총리 취임 한돌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30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다.취임할때만 해도 단명(短命)하리라던 안팎의 예측을 깨고 그는 안정적 집권의 기반을 닦아나가고 있다. 출범 당시 20%대의 바닥세이던 내각 지지율은 최근 50%대로 뛰어올랐다.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정적(政敵)들을 제치고 무난히 재선될 전망이다. 집권 1년동안 오부치 총리는 일본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경제회복의 실마리를 잡았다.하시모토 전 정권의‘재정구조개혁 노선’을 버리고 선택한 ‘적극재정 노선’이 일단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24조엔의 경기부양책과 금융회생책에 힘입어 일본 경제는 느린 속도나마‘최악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1만3,000엔까지 폭락했던 주가는 7월 들어 1만8,000엔대까지 회복됐는가 하면 마이너스 행진을 해오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3월 플러스 1.9%로돌아섰다. 정치상황도 크게 변했다.지난해 참의원선거 참패로 여소야대(與小野大)의불안정한 정국이 됐으나 곧바로 자유당과의 연정을 추진,1월 연립내각을탄생시킨데 이어 공명당도 연정에 끌어들여 이른바 보수대연합의 발판을 마련했다. 중·참 양원에서의 과반수 확보를 바탕으로 몇년간 끌어오던 미·일안보협력지침을 제정하고 일장기와 기미가요의 국기·국가법안,개헌을 다룰 헌법조사회 설치법안 등을 뚝심 좋게 밀어부치고 있다. 외교도 비교적 탄탄하다.한국과는 과거사 문제를 매듭짓고 역대 정권사상가장 돈독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미국 러시아 중국 등 주변 3강과도 21세기 협력·동반자관계를 구축하며 일본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부치 총리가 약속대로 올해 성장률을 0.5%로 끌어올리고 사상 최악인 실업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하면 장기 집권도 가능하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대한시론] 헌법과 국가적 상상력

    대만이 더 이상 중국과 ‘같은 나라의 한 부분’이라는 정치적 원칙을 유지하지 않겠다는 국가적 선언에 북경은 즉각적이고 격한 반응을 보였지만,리덩후이(李登輝) 대만 총통은 ‘하나의 중국’ 및 그 필연적인 재통합이라는 개념의 우산을 벗고 ‘이국론(二國論)’으로 가겠음을 확실히 하였다.대만은주권국가라는 것이다. 리 총통은 중국과 대만 관계에 대하여,‘각자는 다른 나라의 정당한 통치자’라는 허구에 기초한 일국론(一國論)이 아니라 ‘특수한 나라와 나라간의관계’이다.대륙 정책은 불변이다.하지만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교류·대화는 계속하겠다.현실,법률,역사 등 각 방면을 적극 정리하겠다고 하였다. 대만은 하나의 중국론을 선의로 받아들여 그 틀 속에서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인정받으려 했다.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이를 국제적으로 대만을 압착하는 방편으로 사용해왔으며 그러니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다.‘헌법’을 가진 주권국가의 실질적인 독립선언이다.용기와 자신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다. 중국에 복귀한지 3년째인 홍콩은 주권은 없어도 ‘1국 2제도’하의 홍콩기본법을 지닌,중국과 다른 3권분립에 기초한 법의 지배를 지닌 실체로서 아시아 국제금융의 중심 인프라를 형성했다고 믿었다.그러나 중국과 홍콩 관계에서의 ‘홍콩기본법’은 허구였다. 기본법에 따르면 양친 중 일방이 홍콩 영주권이 있으면 그 자식에게도 영주권이 있다.중국으로부터 몰래 월경한 아이들이 그러하다.그렇지만 중국 정부는 이들을 강제송환할 것을 요구하였다.홍콩 최고재판소는 지난 1월 29일 기본법에 쓰여 있는 대로 영주권을 인정했고 사실상 중국측의 요구를 거부했다.중국 정부는 격하게 반발하였다. 홍콩기본법에 따르면 헌법의 해석권은 우리의 국회 격인 전인대(全人大) 상무위원회에 있다.그런데 홍콩 최고재판소는 헌법을 해석하였다.이것이 월권이라는 것이 중국의 판단이다.전인대는 지난 6월 재판소의 결정이 ‘기본법의 입법취지에 반한다’하여 이를 부정하였다.홍콩은 주권국가가 아님이 명확해졌고,그러니 홍콩기본법은 ‘헌법’이 아니다.중국을 방문중인 오부치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중국 정부에 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北朝鮮)의 미사일(대포동) 재발사 억지에 협조하여 줄 것을 요청했다.‘일·미·한’ 3국의 보조도 언급하였다.하지만 북조선은 주권국가가 아니더라도무력을 보유한다. 북한 사회주의헌법의 성격은 홍콩기본법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일본은 7월 중의원과 참의원에 헌법조사회를 설치하였다.내년 1월 정기국회 때부터 기능한다.전후 55년 체제를 정한 일본국 헌법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한 광범하고도 종합적인 안을 만들 것이다. 21세기 일본의 국가적 상상력과 창의력의 결정체인 ‘겐뽀’(憲法)의 성안이 국회에 맡겨졌다.국권의 최고기관은 국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어떤가?동아시아의 중심국가인 우리 주권국가의 뼈대인 헌법의 기틀을 이루는 권력구조를 둘러싼 논의가 국가적 수준이 아니라 몇 사람 자연인에 의하여 재단되고 있다.국회는 뒷전에서 선거구라는 밥그릇에 연연해 있다.동아시아 정치인들이 ‘자기 나라’ 밥그릇에 눈을 부라리고 있을 때 우리는수저 싸움에 명운을 걸고 있다.“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헌법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이 ‘헌법정국’에서 여당은 특검제고 무엇이고 이를 위해서라면 모두 포기할 마음이다.헌법이 최소한 동아시아라는 밥상에서 차지할 수 있는 밥그릇의 크기를 좌우하는 기재(器材)임을 잊고 있는것이다. 한국의 법치국가,국제적 신인도,그리고 국가적 창의력의 표상인 헌법을 우리가 홀대하고 있다.7월 17일은 제51주년이 되는 제헌절이다.21세기 비전의국가적 상상력을 헌법에 주어야 한다.우리 모두가. 강경근 숭실대교수·헌법학
  • 日열도 총체적 보수화 急流/보수화 움직임들

    일본 열도가 총체적 보수화로 치닫고 있다.곧 탄생할 보수 3당 연립정권,개헌을 다룰 헌법조사회 설치,국기(國旗) 국가(國歌) 법제화 추진 등 보수 우경화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된다.이런 보수화 흐름은 일본내 어떤 세력도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을 형성,21세기 초 일본을 규정짓고 해석하는주요한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일본의 보수화가 새삼스런 얘기는 아니지만 최근의 급격한 보수화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내각 때 단초가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자민 사민 사키가케 연정이 무너지고 98년 여름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이 경제실정(失政)으로 참패하면서 ‘헤쳐 모여’가 가속화됐다. 참의원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한 자민당은 ‘체질’이 비슷한 자유 공명등 야당을 끌어들여 안정적 국회운영을 노렸다.첫 열매가 올 1월 자민 자유연정이었다.늦어도 올 가을전까지는 공명당이 가세한 3당 연립정권이 출범할 것 같다. 새 연정은 중·참원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보수연정은 장기적으로는 제1야당 민주당과의 연합까지 상정하는 ‘보수대연합’의 구도를 그리고 있다.보수를 견제할 대칭축으로는 군소야당인 사민 공산당 밖에는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보수화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풀이가 있으나 거품경제 붕괴후 시작된 10년가까운 장기 불황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다.불황이 보수화를 촉진하고 있는 특이한 경우다. 불안한 미래에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기성 정치,특히 이념정당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게다가 유권자들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속속내놓는 자민당의 인기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내각의 지지도 추이는 보수화의 일단을 엿볼 수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98년 7월말 출범 당시 바닥세였던 내각 지지율은 보수연정을 추진하면서 상승세로 돌아섰다.20%대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은 최근 50% 전후로 뛰어올랐다. 정치의 이런 보수화는 다른 한면으로는 국가의 통합을 급속히 강화하는 쪽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일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국회통과 이후 일본 정부는 자위대의운신을 넓히는데 더욱 애쓰고 있다.일장기(히노마루)와 기미가요의 국기 국가 추진,교과서 검정기준강화,개헌론 등은 보수화와 더불어 나타난 움직임이다. 민족주의를 바탕에 깐 국가체제강화는 국수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중국 등 주변국들이 경계하는 점도 바로 이런 대목이다. 20세기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 보수화를 고리로 국가체제강화,군사대국화로연결돼 자행됐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주변국들의 우려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보수화 움직임들 일본의 보수화 움직임과 관련해 올해 눈에 띄는 일들이 유난히 많았다.자위대의 해외파병을 가능케한 미·일안보협력지침이 제정됐다.헌법조사회 설치법안이 중의원에서 통과됐고 국기와 국가 법안도 국회 심의가 진행중이다. [헌법조사회 설치]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한 현행 ‘평화헌법’을 개정,교전권을 갖도록 한다는게 개헌론의 골자.일본 헌법은 미 군정시절인 46년제정됐다. 자민당은 55년 ‘자주성을 갖춘 헌법개정’을 정강(政綱)으로 채택,개헌논의를 주도해왔다.내년 국회에 헌법조사회가 설치되면 45년만에 자민당 뜻대로 개헌논의가 공식화되는 셈이다. 초점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9조의 개정.주변국들이 개헌론에 끊임없이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바로 교전권을 가지려는 일본의 속내에 대한의심 때문이다. [국기·국가 법안] 6월11일 일본 정부는 일장기를 국기로 기미가요를 국가로 하는 법안을 각의에서 통과시켰다.일본교원노조등은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는 심볼로 삼으려는 저의가 있다”고 맹반발했다.일장기와 기미가요는과거 군국주의 일본에게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종전직후 미 군정이 일장기 게양을 허가제로 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여당인 자민 자유당이 법안에 찬성하고 있고 민주 공명당도 동의하고 있어 심의만 끝나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 문화분야] 극우 사관이 공공연히 세력을 얻어가고 있다.‘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대표적이다.지금의 역사책이 미국의 강요로 기술됐다며 ‘새로운 사관’에 서서 역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미 군정하전범재판을‘날조극’이라고 비판한다.96년 결성돼 지난해와 올해 부쩍 회원을 늘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전쟁을 미화하고 신 대동아공영을 부르짖는 책자들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전쟁론’이나 4월 지방선거에서 도쿄도지사에 당선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의 ‘선전포고,NO라고 말할수 있는 일본경제’ 등은 일본의 우경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황성기기자
  • 日本 헌법조사회 설치…전쟁포기 ‘평화헌법’개정 될듯

    일본 헌법의 개정 논의 등을 다룰 헌법조사회가 내년 정기국회 때부터 설치된다. 일본 중의원은 6일 본회의를 열어 헌법조사회 설치를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을 자민 자유 민주 공명당 찬성다수로 가결시켜 참의원으로 보냈다.사회 공산당은 법안에 반대했다. 참의원 운영위는 참의원에도 헌법조사회를 설치토록 법안을 수정할 계획으로 개정안은 이번 국회 안에 확정될 것이 확실시된다. 헌법조사회는 의안제출권이 없기 때문에 내년에 국회에 설치되더라도 당장헌법 논의가 정치일정에 등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민 자유당 등 보수정당이 주장해온 헌법개정론이 국회내에서 본격화되는 길을 텄다는 점에서 중국 등 주변국의 경계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회는 5년간 헌법에 대해 폭넓고 종합적인 조사를 실시하되 의안제출권은 갖지 않는다. 조사회의 활동에 따라서는 ‘전쟁이나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이른바 ‘평화헌법’이 46년 제정이후 처음으로 개정될 가능성이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기 고] 정치권은 나라밖 문제에 관심을

    일본의 모 정객은 지난 5월 27일 참의원에서 최종통과된 ‘주변사태법’을포함한 미·일방위협력지침 관련 3개 법안은 일본이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제정한 법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뿐만 아니라 일본의 모 보수정당은 내년 국회에서 전쟁과 무력행사·위협을 영구히 포기한다고 명시한 평화헌법 제9조를 개정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그 주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가장 불행한 일을 당하는 이해당사국인 한국은 연일 국내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다.한반도에 유사사태가 발생할 시 일본의 자위대는 후방지역에서 미군 작전과 병참을 돕는다는 명분으로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허용돼 있다. 이러한 미·일방위협력지침의 가장 큰 문제는 유사사태인지 아닌지의 판단주체가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실상 미국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미국은 동북아의 국제정치적 이해에 따라 한반도의 유사사태 여부를결정할 우려가 있다.이에 따라 일본 지방자치단체는 본의 아니게 그 지역소속의 항만·공항을 병참으로 제공하면서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또 한반도에도 한국인이 원치 않는 전쟁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 둘째 문제는 전투지역과 후방지역 구분의 불확실성이다.일본정부는 자위대가 후방지역 지원 및 수색구조활동을 하기 때문에 자위대가 전쟁에 개입될여지가 없다고 자국민에게 강변한다.그러나 한반도 주변지역은 너무 좁아서후방지역과 전투지역의 엄격한 구분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셋째,신가이드라인의 여섯번째 항목인 효과적인 방위협력의 추진을 위한 향후 쌍방계획 중에 ‘공통실시요령’을 새롭게 규정한 것은 교전규칙의 제정이나 다름없다.일본 헌법 9조가 교전권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어떠한교전규칙도 헌법위반이다. 넷째,주변사태에 관한 정의의 애매모호함이다.신가이드라인에는 대만의 포함에 대한 중국의 반발을 고려,‘주변사태의 개념은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사태의 성질에 주목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추후 제정된 주변사태법에는 주변사태란 ‘일본 주변지역에 있어서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사태’라고만 애매모호하게 정의했지,신가이드라인에서와 같이 지리적이 아니라는 말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주변사태 개념의 일관성 없는 애매성은 극동에서 페르시아만에 걸친태평양 전역에 있어서 일본 자위대에 의한 미군지원작전을 가능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일본정부는 애매모호하고 난해한 미·일방위협력지침과 그것을국내적으로 뒷받침하는 주변사태법을 영어원본과는 달리 일어로 오역(誤譯)함으로써 국민을 속여 안심시키면서 사실상 미·일안보의 종래 범위를 넘어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군사대국화의 길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미·일 군사동맹체제는 평화헌법 제9조를 유린하고,한반도의 긴장과중국의 패권주의를 자극시켜 결국은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조성을 크게 저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한반도를 둘러싼 새로운 동북아질서의 형성과정에서 한반도의 주변 외부여건은 크게 변하고 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여야 정치권은나라 안의 시시콜콜한 문제에만 급급할 뿐,주변사태법을 포함한 한반도의 새로운 외부여건 변화에 대한 적절한 정책대안 개발에무신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안하기 그지 없다. 부디 우리의 여야 정치권이 나라의 주권을 뺏기고,나라를 전쟁터로 내주었던과거의 과오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李 長 熙 한국외국어대교수·국제법
  • 정부, 세계 ‘젊은 인사’ 끌어안기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를 주목하라’ 최근 한중 관계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외교부는 중국 21세기를 이끌어갈 ‘차세대 지도자’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향후 명실상부한 지도자로서 발돋움할 중국의 ‘유망 신예’들을 초청,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양국간 친선도모에 나선다는 취지다. 지난해 말부터 외교부와 주중 대사관을 중심으로 폭넓은 초청 대상을 고르고 있다.정계는 물론 경제계·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40∼50대의 ‘대표적 유망주’들로 엄선할 계획이다.내달초부터 시작,올해 10여명등 모두 40~50명을 초청한다.향후 3∼4년간 지속될 ‘장기 프로젝트’로 발전시킨다는 복안이다.이들은 관련 분야에 대한 토론을 통해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고 한국의 첨단 산업시설 방문과 문화기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계획이다. 정부의 차세대 지도자 교류 추진은 중국에 멈추지 않는다.오는 24일부터 5일간 강원 보광피닉스파크에서 ‘제3차 아시아·유럽 젊은 지도자회의’를개최할 예정이다.‘미니 다보스회의’로 불리는 이번 회의는 25개ASEM(아시아·유럽 정상회의) 회원국과 유럽집행위에서 선발된 30∼40대 차세대 지도자 120여명이 참석한다. ‘21세기 도전과 기회준비’라는 대주제를 놓고 정치·안보·경제·사회·문화·미디어 등 8개 분야별 워크숍 토의가 진행된다.회의와 별도로 유·불교 유적지 방문과 국립국악원 공연관람 등을 통해 우리문화의 깊이와 다양성도 집중 소개할 계획이다. 첫날 개막식에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축사와 사공일(司空壹) 아시아·유럽비전그룹 회장,다케미 케이조 일본 참의원의 기조연설이 이어진다. 한국측은 국민회의 김민석(金民錫)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의원과 이찬진(李燦振)한글과 컴퓨터 사장,백지연 앵커 등 20여명이,해외에서는 영국 노동당의 존 그로건의원과 싱가포르 체이 와이 췐 의원 및 언론인 다수가 참석할 예정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 [제2공화국과 張勉]-실패한 내각책임제(24)

    “4·19의거의 영웅인 학생과 전국민은 단순히 정권교체만을 요구하지 않고…정치 자유의 전면적 회복과 사회복지 향상을 위한 정치의 전면적 개혁을절실히 요구하고 있다.…권력 집중을 방지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언제든지국민에게 책임지며 국민의 진정한 다수 의사를 현실적으로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내각책임제로 헌법을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4월혁명 후 구성된 ‘국회 내각책임제 개헌안기초위원회’(위원장 鄭憲柱)는 1960년 5월11일 국회에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하면서 개헌의 필요성을이처럼 밝혔다. 당시 개헌을 하려면 재적 222명의 3분의 1(74명) 이상이 동의해 상정한 다음 3분의 2(148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했다.‘개헌위원회’는 즉시 서명받기에 들어갔다.시작한 지 1시간 만에 175명이 서명해 통과에 필요한 정족수를 훌쩍 넘어섰다.개헌안 통과가 기정사실로 굳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날 개헌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기명(記名)으로 하도록 국회법을 고침으로써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조직적인 반란표를 사전에 차단했다. 공고기간을거친 내각책임제 개헌안은 6월15일 오전 국회 표결에 올라 참가의원 211명 가운데 찬성 208표,반대 3표로 통과됐다.허정(許政)과도정부도오후에 긴급 국무회의를 열어 이날자로 새 헌법을 공포했다. 내각책임제 헌법이 확정되자 장면(張勉)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은 “개헌이 독재를 배격하고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앞으로 이 제도를 운영하는 데도 철저한 민주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지자 여론은 대통령중심제를 폐지하고 내각책임제를 시행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됐다.“권력은 권력을 낳고 권력은 권력에 집중돼 드디어 12년에 걸친 1인독재가 출현했다”는 ‘개헌 제안이유서’의 한 구절처럼 이승만독재가 대통령책임제라는 제도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내각책임제 개헌에는 자유당과 민주당 구파가 적극 나섰다.자유당은 내각책임제가 되어야 그나마 살아남을 구석이 생긴다는 생각이었다.조병옥(趙炳玉)을 잃어 뚜렷한 대통령 후보를 갖지 못한 구파도 대통령중심제를 원하지 않았다. 민주당 신파는 달랐다.국민이 뽑은 부통령을 지냈고 당 대표최고위원이기도한 장면이라는 걸출한 대통령감이 있었다.대통령중심제를 고수하자는 욕심을 낼 만했다. 따라서 신파는 ‘4월혁명의 구호가 정·부통령 부정선거를 다시 하라는 것이니 재선거를 해 대통령부터 뽑자’고 요구했다.4월혁명때 타도의 대상으로지목된 자유당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독점한 현행 국회에서 개헌을 다룰수는 없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민주당 신파의 핵심인 주요한(朱耀翰)의원은 헌법 기능을 정지시키고 비상입법위원회를 구성,혁명 주체세력인 학생과 변호사,공명선거위원회,교수단,민주당 등이 주축이 돼 헌정질서를 개편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의 요구는 내각책임제 개헌을 서두르라는 것이었고 정치권에서는 자유당과 민주당 구파가 뜻을 맞춰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사태가 이쯤 되자 장면 민주당 대표는 4월28일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나의 지상목표이며 철칙이 독재를 막기 위한 내각책임제 개헌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둔다”고 밝혔다.이어 “개헌을 현 국회가 하느냐,새 국회가 하느냐에 관해서는 제론(諸論)이 있으나 나로서는 현 국회가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장면이 ‘현 국회에서의 내각책임제 개헌’ 지지를 밝힘으로써 개헌 추진은급류를 탔다.과정상 다소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4·19에서 두달이 채 안된6월15일 내각책임제 헌법은 발효됐다.또 이 헌법에 따라 7·29총선을 치러제2공화국이 탄생한다. 장면정부가 내각제를 제대로 운용(運用)하려고 애쓴 흔적은 역력하다.먼저내각 운영의 핵심인 국무회의를 오전,오후 매일 두 차례씩 열었다.당일 올라온 안건을 다음날로 미루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따라서 장면총리는 “새벽 2시 전에 취침해본 일이 별로 없을 정도로“(회고록에서)일에 몰두했고,다른 각료들도 새벽에 나와 밤 늦게 들어가는 일상을 반복했다. 장면은 국회에도 거의 매일 드나들었다.‘오전에는 민의원,오후에는 참의원’하는 식이었다.송원영(宋元英) 당시 공보비서관은 “사소한 것까지 총리에게 물어대는 것은 난처하기도 했다.더구나 같은 안건이 민의원에서 논의될때와 2∼3일 후 참의원에서 논의될 때는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장 총리와 내각의 노력은 그러나 쉽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내각책임제 하에서의 필수적 요소인 ‘의회에서의 안정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민주당 구파가 권력다툼에 패하자 분당(分黨)해 사사건건 시비를 벌인 것은 물론이고,신파 내에서도 소장파는 야당 행세를 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 장면정부는 8개월23일간 집권하는 동안 무려 세 차례나 개각을 해야 했다.하나의 내각이 존립한 기간이 평균적으로 두 달을 조금 넘을 뿐이었으니 일관된 행정을 펴기 어려웠음은 당연했다.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의 월권도 정국안정에 걸림돌이었다.윤보선은 ‘상징적인 국가원수’라는 내각책임제하 대통령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장면정부에 간섭했다.그리고 그 간섭의 바탕에는 ‘구파의 영수’라는 파당적 시각이 깔려 있었다. 장면을 비롯한 신파 수뇌부의 지도력이 부족한 점도 내각책임제가 제기능을발휘하지 못한 책임의 하나로 꼽혀야 할 것이다. 제2공화국의 내각책임제는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을는지도 모른다.1960년대 초 한국 사회라는 역사적 토대에서 어떤 정부제도가 알맞는지를깊이 있게 따지기에 앞서 국민은 이승만독재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내각책임제를 열망한 면이 없지 않다. 더욱이 자유당의 ‘생존 욕구’와 민주당 구파의 ‘대통령감 부재’라는 정파적 이해가 결탁해 서둘러 추진된 점은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 이용원기자 ywyi@-내각제 운영과 폐해 민·참의원 역할구분 없어 비효율적 제2공화국은 우리 역사에서 유일하게 내각책임제를 채택한 정부다.비록 8개월여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각책임제를 실제로 운용했기 때문에 그 제도가 갖는 장·단점을 두루 살펴볼 기회를 제공했다.먼저 제도적인 특성부터살펴본다. 내각책임제에서는 대통령이 상징적인 존재로서 국가원수 지위만을 부여받는다.구체적으로 제2공화국의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지명하는 권리를 비롯해 선전포고 및 외교사절의 신임장 접수,명목상의 국군통수권,사면권 및 계엄선포,훈장·영예의 수여 등을 권한으로 가졌다. 행정권은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국무원(國務院) 곧 내각이 맡았다.행정수반인 총리는 국무위원을 임면하고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국무원령(지금의 대통령령)을 선포할 수 있었다.국무원은 총리를 포함해 15명 이내로 구성하되과반수를 국회의원으로 채우도록 규정했다. 아울러 제2공화국에서는 입법부 기능도 크게 강화돼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제로 구성됐다.무게중심은 민의원에 두었다.민의원은 총리선출권을 보유해대통령이 지명한 총리후보를 거부할 수 있었다.대통령의 지명이 두 차례 거부되면 민의원 스스로가 총리를 선출하도록 했다.또 국무원을 불신임할 수있었는데 이에 맞서 국무원도 민의원해산권을 가졌다. 상원격인 참의원은 그 정원이 민의원의 4분의 1 이내로 제한됐다.민의원에서 통과시킨 법률을 재심해 수정할 수 있었다.다만 참의원에서 고친 법안의 원안을,민의원이 재표결에서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가결하면 그대로 확정됐다. 이밖에 제2공화국 특유의 제도로는 차관을 정무차관·사무차관으로 나눈 것을 들 수 있다.정무차관은 내각과 의회를 원활하게 연계하는 것이 주임무였으며 정책수립과 기획에 간여했다.장관대신 국무회의에도 참석했다. 장면(張勉)정부는 정무차관을 주로 의원으로 임명했다.조각(組閣)때는 장면총리가 장관의 추천을 거치지 않고 재선 이상의 의원 중에서 직접 뽑았다.법무의 김영환(金榮煥),국방의 박병배(朴炳培) 등 두 정무차관이 무소속이었다. ‘정무차관이 사무차관과 알력만 빚는다’는 이유로 신민당(민주당 구파)의서범석(徐範錫)의원이 1961년 1월 폐지법률안을 낼 만큼 부작용도 있었던 듯하다.정무차관으로 시작해 장관이 된 이로는 윤택중(尹宅重)문교와 태완선(太完善)부흥이 있다.사무차관은 지금의 차관과 비슷한 기능을 했다. 내각책임제·양원제·정무차관제 등 제2공화국 특유의 제도에 대해 당시 현장에서 활동한 인사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고려대 법학과교수 출신인 김영구(金永求)내무부 정무차관(이하 당시 직책)은 “60년대 초 한국 사회는 이같은 제도를 수용할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파벌이 많은 데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슈별로도 의견이 엇갈리는 정치 수준에서는 내각책임제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장면정부 지도부의 역량이 부족했다고도 지적했다. 김 차관은 의회가 민의원·참의원으로 나뉘었지만 똑같은 법률을 이중으로다루었을 뿐 참의원 고유의 업무는 따로 없었다고 밝혔다.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아지고,원로원격인 참의원이 권리주장만 하려 한 점도 양원제의 폐단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업(金業)국방부 사무차관은 “정무차관이란 자리가 국회만 들락거릴뿐이지 부내에서는 결재 한번 하는 일이 없었다”고 기억하면서 “일본제도를 모방한 것인데 우리 실정에는 필요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용원기자
  • 日 군사대국 재무장하나-궁금증 풀이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 일본 주변지역은. 가이드라인은 주변의 지리적 범위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중국 등 주변국의반발을 피하기 위해서다.한반도와 타이완,필리핀을 포함한다는게 정설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선 중동이나 인도양에서 비상사태가 터져도 출동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어떤 사태에 자위대가 출동하는가. 주변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했거나 발생하기 직전,분쟁종료 후 질서회복이어려울 때,내란이 국제적으로 확대될 때,난민이 대량으로 일본에 유입될 가능성이 있을 때,유엔 결의로 주변국이 경제제재 대상이 됐을 때 출동할 수있도록 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상륙하나. 투입되지만 전투를 치르지 않는다.전장(戰場)이 아닌 후방에서 탄약과 무기 보급,미군 수송,통신 의료 등의 지원을 하게 된다.전투는 한미연합전력이맡는다.그러나 미군 구조,일본인 구출을 위해 한반도에 자위대가 상륙할 가능성은 있다. ■자위대의 무기사용은 금지되는가. 그렇지 않다.신체방위를 위해서라면 무기를 사용토록 했다.무기사용의 범위가 애매한게 사실이다.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가. 논란의 여지가 있다.말이 후방지원이지 군수보급 등도 분명히 전쟁 행위이기 때문이다.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유고 공습에서 보듯 현대전은 전후방 구분이 갈수록 없어진다.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지만 무기를 사용하고 후방에서 전쟁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가이드라인은 일본내에서 위헌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가이드라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외교통상부는 참의원 통과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공식반응을 유보하고 있다.다만 주권국가로서 일본의 입법행위인 점은 분명하다는 입장이다.우려되는 군사대국화와 관련,“일본은 이번 입법이 헌법의 전수(專守)방위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우리에 통보했고,우리 정부도 이를 수용하고 있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주변국중 타이완(臺灣)만 유일하게 환영했는데.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는 타이완으로선 미일 안보동맹체제의 우산 속으로들어가게 된 점을 반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황성기기자
  • 오부치 日총리 오늘 訪美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29일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 지난해 11월 빌 클린턴 미 대통령 의 일본방문에 대한 답방(答訪)으로 일본 총리의 공식 미국방문으론 87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이후12년만이다. 10여년만의 방미(訪美)인만큼 이번 방문은 21세기 양국의 결속을 다지는데초점이 맞춰져 있다. 5월3일의 정상회담에선 미일이 ‘공통의 가치관’을 갖는 동맹국임을 확인한다.공통의 가치관이란 미국이 세계에 전파하고 있는 자유주의,인권존중,시장경제 등 3대 이념이다. 이런 공감대에서 지구 환경보존과 군비축소,과학기술 발전 등 인류 공통의과제에 대한 정부 및 비정부기구(NGO)차원의 교류촉진을 표명한다. 미일 정상회담에서의 최대 현안은 안보와 경제다. 안보에 있어서 오부치 총리는 ‘선물’을 안고 간다.미국으로부터 조기통과 압력을 받아온 미일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이 27일 중의원에 이어 5월중 참의원 통과가 확실시됐기 때문이다. 새 가이드라인으로 동북아에서 미국은 일본에 파수꾼으로서의 일정한 역할을 떠맡긴 셈이다. 한반도 정세도 주요이슈다.‘페리 보고서’가 나오기 전 대북(對北)정책을최종조율하고 한미일 3국의 긴밀한 공조와 협력을 천명할 것으로 보인다.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저지도 미국측에 요청할 것으로 점쳐진다. 경제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일본의 경기부양책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재정과 금융면에서 추가대책을 요구할 태세다. 일본은 추가경정예산에 경기대책을 반영한다는 방침이나 그 규모가 적을 경우 미국의 불만이 가라앉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오부치 총리는 올해 경제성장률 0.5% 달성과 산업구조개혁,규제완화 등도 클린턴 대통령에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산 철강에 대한 미국의 잇따른 반덤핑제소로 빚어진 양국의 ‘철의 전쟁’을 두 정상이 어떻게 풀 지도 관심사다. 황성기기자 marry01@
  • 美-日 방위지침 관련법안 가결 의미

    26일 일본 중의원 특위서 미일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이 가결됨으로써 법안 제출 이후 1년여를 끌었던 가이드라인 논란은 일단락됐다. 자민 자유 연립여당 의석만으로는 참의원 통과가 어려웠으나 제2야당 공명당이 가세해 수적 우세를 확보,5월안 중·참 양원 통과가 확실시된다. 가이드라인은 일본 주변국에서 발생하는 비상사태 때 미국과의 협력을 담은 일종의 군사지침이다.중국과 한국 등도 일본의 군사 대국화와 연관시켜 일본이 내리는 주변사태의 정의나 미군 지원활동에 자위대가 얼마나 깊숙이 가담할 지 등을 예의주시해왔다. 이날 가결된 법안은 주변사태를 ‘방치하면 일본 직접 무력공격으로 이어지는 사태’로 규정했다.일본 열도 유사시에 버금가는 ‘준유사’의 개념으로끌어올려 미군에 협력하는 주변국 비상사태의 범위를 크게 넓혔다. 주변사태가 발생하면 자위대는 미군을 돕기 위해 탄약수송 등 후방지역 지원 및 미군의 수색구조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후방지원 지역에서 정당한 방위를 위해 자위대원이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됨은 물론이다.이러한 대미 협력의 기본계획은 일본 국회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나 긴급할 때는 사후승인도 가능하게 했다.한편 자민 자유 공명 3당협의의 막바지 초점이 됐던 자위대의 선박검사 조항은 삭제됐다. 미국으로부터 ‘조기통과’ 압력을 받아온일본 집권 자민당과 정부는 29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의 미국 방문길에 큰 선물을 안겨준 셈이 됐다. 황성기기자 marry01@
  • 日, 도주 선박에 무력행사키로

    ┑도쿄·워싱턴 黃性淇·崔哲昊특파원┑일본정부는 24일 괴선박의 영해 침범사건을 계기로 도주선박에 대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관련법규 개정을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는 이날 오전 참의원 본회의에서 “이번 대응을 토대로 법 정비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외상은 24일 북한쪽으로 도주한 괴선박의 인도문제와 관련,베이징(北京)의 북한대사관과 뉴욕 주재 유엔대표부 등 외교채널을 통해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영해를 침범한 선박이 북한의 영역으로 들어갔을 경우 포획,인도를 요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 日나카무라 법무 중도퇴진…부당수사등 국회공전 책임

    ┑도쿄 黃性淇 특파원┑일본의 나카무라 쇼자부로(中村正三郞) 법무상이 8일 리조트개발과 관련한 부당한 수사지시 등 일련의 문제로 국회 공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후임에는 건설성 국장과 농수산성 정무차관 등을 지낸 진노우치 다카오(陳內孝雄.65) 자민당 참의원이 임명됐다.이로써 지난해 7월말 발족된 오부치(小淵惠三)내각에서 업무와 관련,야당의 인책요구로 중도 퇴진한 각료는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방위청장관에 이어 2명으로 늘어 났다. 나카무라 법무상은 자신이 경영하는 호텔이 경합중인 리조트 개발에 대해수사를 지시하는 외에 미국 유명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입국허가를 위해제출한 서류의 사적 보관과 헌법비판 발언 등으로 야당측으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아 왔다.
  • 日 평화헌법 개정 가능성

    [도쿄 黃性淇 특파원]일본 국회에 헌법 개정여부를 다룰 헌법조사회가 설치된다. 헌법조사회에 활동에 따라서는 ‘전쟁이나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골자의 이른바 ‘평화헌법’이 1947년 시행 이후 처음으로 개정될 가능성이 있다. 헌법개정에 반대하는 사민 공산당을 제외한 초당파 의원들로 구성된 ‘헌법조사회 설치추진 의원연맹’은 25일 자민 자유 민주당 등 각 당 간사장과 회의를 갖고 ‘헌법조사회’를 중참 양원에 설치키로 기본합의했다. 조사회 관련법안 제정으로 빠르면 6월 끝나는 정기국회 회기안에 조사회가설치될 전망이다. 2차대전 패전후 미군 점령하인 46년 제정돼 이듬해 시행된 일본 헌법은 ‘육해공군의 군사력을 갖지 않고,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제9조를 둘러싸고 보수파를 중심으로 개정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자민당은 ‘미 점령군사령부의 지시로 제정된 헌법을 자주헌법으로 개정한다’는 내용을 55년 정강(政綱)으로 채택,당내에 ‘헌법조사회’를 설치하는 등 헌법개정 논의를 주도해왔다. 그러나 사민 공산당등은 반전(反戰)과 평화수호를 내세워 호헌(護憲)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헌법 개정은 국회 중참 양원 3분의 2 이상 발의로 국민투표에 의해서 가능한데,개헌을 주장해온 자민당 의석이 그동안 3분의 2에 미달,논의수준에 머물러왔다. 제1야당 민주당은 헌법조사회 설치에 반대해오다 최근 “국민주권,기본적인권의 존중,평화주의의 원칙이 지켜질 경우 논의를 할 수 있다”고 입장을바꾸었다. 한편 97년 발족한 ‘헌법조사회 추진연맹’ 가입의원은 지난해 연말 중참의원 전체의석 752석의 과반수를 넘었다. marry01@
  • 日, 자위대 유엔평화軍 파견 허용

    │도쿄 黃性淇 특파원│연립정권 출범을 앞두고 정책협의로 진통을 겪고 있는 일본 집권 자민당과 자유당은 7일 유엔평화유지군(PKF)에 대한 자위대의참가 동결을 해제키로 합의했다. 양당은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적극 참여한다는 입장에 따라 92년 제정된 PKO 협력법에서 동결시킨 자위대의 참가를 허용하기로 했다.해제 법안 제출시기는 자민당은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관련 법안의 정기국회 통과후를 주장하고 있고 참의원에서 양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정등을 감안,앞으로 조정해나가기로 했다. PKF는 분쟁당사국 군대의 철수와 정전감시 등을 주임무로 하는 부대로 일본은 PKO 협력법 제정당시 야당측이 자위대가 분쟁에 휘말려들 수 있음을 우려해 강력히 반대하자 별도의 법률을 마련할 때까지 동결시키기로 했었다. 양당은 지난 6일 정책협의에서 자위대의 유엔 다국적군 참가와 관련,무력행사를 하지 않는 후방지원에는 적극 협력키로 하고 구체적인 협력내용은 정부가 사안별로 결정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marry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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