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일본 집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63타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농민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339
  • 절망적 부상 딛고 올림픽 사상 첫 서핑 메달 딴 사나이

    절망적 부상 딛고 올림픽 사상 첫 서핑 메달 딴 사나이

    5년 반 전 절망적인 부상으로 걷기조차 힘들었던 서핑 선수가 올림픽 메달을 획득해 감동을 주고 있다. 호주 서핑 국가대표 오언 라이트(31)는 27일 일본 지바현 이치노미야 쓰리가사키 서핑 해변에서 열린 남자 숏보드 동메달결정전에서 11.97점을 획득해 11.77점을 받은 가브리엘 메디나(28·브라질)를 0.2점차로 따돌리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2018 월드서프리그(WSL) 2회 우승에 빛나는 세계 챔피언을 꺾은 것이다. 서핑 숏보드 종목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라이트는 서핑 종목 최초의 메달 주인공이 됐다. 경기 후 라이트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며 “저는 걷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했고, 그뒤에 파도 타기도 다시 배워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겪는 동안 친구와 가족이 내 옆에 있었다”면서 “그때부터 메달을 목에 걸고 이 자리에 서는 것이 목표였는데, 메달이 무슨 색일지 몰랐고 몇 년 전만 해도 그 힘든 시기를 확실히 이겨냈다”고 소감을 말했다. 5년 반 전 라이트는 걸을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2015년 12월 하와이에서 훈련 도중 거대한 파도에 쓸려 뇌출혈과 뇌진탕을 동반한 외상성뇌손상 판정을 받았다. 그의 여동생이자 그의 옆에서 재활을 도운 동료 프로 서퍼 타일러 라이트(27)가 2016 WSL에서 우승을 차지할 때 그는 집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의 커리어는 그렇게 끝나는듯 했다. 하지만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 사우스 코스트에서 나고 자란 ‘바다의 사나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서핑을 다시 시작하는 데는 4개월이 걸렸고, 엘리트 선수들과의 경쟁에 돌입하는데는 1년이 걸렸다. 고된 재활을 거쳐 도쿄올림픽에서 마침내 선수로 복귀했고, 마침내 올림픽 서핑 종목 최초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6년 3월 다시 무릎 높이 정도의 파도를 타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인스타그램에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면서 “재밌는 일은 내가 파도 위에서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무릎 높이에서 누워만 있었지만 파도를 탔다”고 올려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기도 했다.
  • [글로벌 In&Out] 100년 전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100년 전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 박사과정

    지난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경축대회가 베이징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1921년 7월에 진행된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기념하는 이 경축대회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1시간 정도의 연설을 했다. ‘현대화된 사회주의 강국’이라는 미래의 비전을 재확인한 그 연설의 키워드는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를 연다’(以史爲鑒 開創未來)라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중국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당의 탄생을 선포한 제1차 대회의 역사를 살펴보자. 마르크스주의는 20세기 초 중국에 들어왔다. 파리 강화회의에서의 실패의 영향을 받아 1919년에 발생한 5ㆍ4운동이 당시 유행했던 자유주의와 무정부주의 등 사상의 파산을 보여 주자 새로운 길의 모색에 나선 중국 인텔리와 젊은이들은 러시아혁명에 시선을 돌리고 마르크스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큰 기여를 한 사람은 베이징대학 문과학장이었던 천두슈(1879~1942)였다. ‘신청년’이라는 잡지를 창간한 그는 마르크스주의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중국 각지에서 공산주의소조의 결성을 추진하고 있었다. 창당 준비는 1921년 초부터 진행됐다. 6월 초 상하이에 파견된 네덜란드인 마링(1883~1942)과 러시아인 니콜스키(1898~1938)가 상하이소조의 지도부와 만나 당대회의 소집을 권했다. 상하이소조의 대리서기인 리다(李達ㆍ1890~1966)가 이에 동의하고 대표를 2명씩 선발해서 상하이에 보내라는 편지를 각지의 소조, 그리고 일본에 보냈다. 베이징에서는 19세의 류런징(1902~1987)과 웅변이 좋고 자신감이 넘치는 장궈타오(1897~1979)를, 우한소조는 교육자 둥비우(1886~1975)와 그 학교의 영어교사인 천탄추(1896~1943), 후난소조는 마오쩌둥(1893~1976)과 그 친구인 허수헝(1876~1935), 광조에서는 천궁보(1892~1946) 한 명을, 지난소조는 왕진메이(1898~1925)와 덩언밍(1901~1931), 일본에서는 조우포하이(1897~1948)를 파견했다. 천두슈도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바빴기 때문에 그 대신에 우한에서 활동했던 바오후이성(1894~1979)을 보냈다. 상하이소조는 리다와 각종 잡지의 편집자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보급해 온 리한쥔(1890~1927)을 대표로 뽑았다. 중국대표는 총 13명이었고 평균 연령은 28세 정도였다. 대표들은 7월 23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모였다. 첫 회의는 대부분 대표들의 숙소인 보원여교(博文女敎)의 기숙사에서 진행됐다. 회의에서 코민테른 대표들은 영어로 연설하고 세계혁명과 중공의 임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날, 중국 대표들이 보고하고 각지의 상황을 소개한 후 당면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그 후 이틀간 휴회하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장소를 근처에 있는 리한쥔 형의 자택으로 옮겼으며 27~29일 3일간 회의를 재개했다. 7월 30일, 당 강령 등 문서를 채택하고 폐회하려 했으나 개회 직후 수상한 사람이 집에 찾아와서 왕이라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코민테른 대표 마링이 예감이 안 좋다고 하자 대표들은 휴회를 결정하고 천궁보만 남겨둔 채 회의장을 떠났다. 그러자마자 프랑스 경찰이 찾아와 일본인을 찾고 있다며 수색을 했으나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몇 시간 후 떠났다. 상하이는 이미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리다의 부인 왕후이우가 남쪽에 있는 난후(南湖)에서 배를 한 척 빌려서 마지막 회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1921년 8월 3일 아침, 안전상의 이유로 참여하지 못한 코민테른 대표들과 리한쥔, 천궁보를 제외한 대표들은 난후에서 배를 타고 마지막 회의를 열었다. 열띤 토론 끝에 저녁 6시쯤 중공의 최초 강령을 채택한 대표들은 목소리를 합쳐서 “국제공산당 만세”, “중국공산당 만세”라는 구호를 조용하게 외친 후 배에서 내려 중공당원으로서 상하이로 떠났다.
  • 집과 7억 5000만원… 벼락부자 된 ‘필리핀 영웅’

    집과 7억 5000만원… 벼락부자 된 ‘필리핀 영웅’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26일 열린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55㎏ 용상 마지막 3차 시기. 필리핀 국가대표 하이딜린 디아스(30)가 127㎏을 들어 올리며 이번 올림픽에서 신기록을 세우자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1924년 필리핀이 올림픽에 참가한 지 97년 만에 나온 첫 금메달이 디아스의 두 손에서 만들어졌다. 필리핀의 역도 영웅 디아스가 용상에서 들어 올린 127㎏은 필리핀의 스포츠 역사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는 인상 97㎏, 용상 127㎏으로 합계 224㎏을 들어 올리며 용상과 합계에서 이번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필리핀 국가를 울려 퍼지게 했다. 은메달을 딴 중국의 랴오추윈(인상 97㎏, 용상 126㎏)과는 불과 1㎏ 차이였다. 디아스는 AP 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내 나이가 서른 살이 됐고 경기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믿을 수 없고 꿈 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며 소감을 말했다. 그는 “필리핀 젊은 세대에게 ‘누구나 꿈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 ‘꿈’을 이루기까지 디아스의 역도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디아스는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국민적인 영웅이 됐지만 2년 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면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로 전지훈련을 떠났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체육관 출입을 통제당하고 필리핀 입국이 막히는 등 가족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훈련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시련을 이겨낸 디아스에게 앞으로 ‘꽃길’을 걸을 일만 남았다. 디아스가 금메달을 확정한 순간 필리핀에서는 이를 축하하는 트윗이 10만 건 넘게 올라왔다. 필리핀 정부와 기업 등은 디아스에게 3300만페소(약 7억 5000만원)의 포상금과 집을 선물하겠다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 대변인은 “디아스가 필리핀에 자부심과 영광을 안겼다”며 축하 성명을 발표했다.
  • 224㎏으로 필리핀 스포츠 역사를 바꿨다…7억원 상금 받는 역도영웅

    224㎏으로 필리핀 스포츠 역사를 바꿨다…7억원 상금 받는 역도영웅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26일 열린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55㎏ 용상 마지막 3차 시기. 필리핀 국가대표 하이딜린 디아스(30)가 127㎏을 들어 올리며 이번 올림픽에서 신기록을 세우자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1924년 필리핀이 올림픽에 참가한 지 97년 만에 나온 첫 금메달이 디아스의 두 손에서 만들어졌다. 필리핀의 역도 영웅 디아스가 용상에서 들어 올린 127㎏은 필리핀의 스포츠 역사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는 인상 97㎏, 용상 127㎏으로 합계 224㎏을 들어 올리며 용상과 합계에서 이번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필리핀 국가를 울려 퍼지게 했다. 은메달을 딴 중국의 랴오추윈(인상 97㎏, 용상 126㎏)과는 불과 1㎏ 차이였다. 디아스는 AP 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내 나이가 서른 살이 됐고 경기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믿을 수 없고 꿈 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며 소감을 말했다. 그는 “필리핀 젊은 세대에게 ‘누구나 꿈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 ‘꿈’을 이루기까지 디아스의 역도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디아스는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국민적인 영웅이 됐지만 2년 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면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로 전지훈련을 떠났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체육관 출입을 통제당하고 필리핀 입국이 막히는 등 가족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훈련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훈련 경비도 부족해 그가 SNS에 후원을 요청하는 글을 올릴 정도였다. 시련을 이겨낸 디아스에게 앞으로 ‘꽃길’을 걸을 일만 남았다. 디아스가 금메달을 확정한 순간 필리핀에서는 이를 축하하는 트윗이 10만 건 넘게 올라왔다. 필리핀 정부와 기업 등은 디아스에게 3300만페소(약 7억 5000만원)의 포상금과 집을 선물하겠다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 대변인은 “디아스가 필리핀에 자부심과 영광을 안겼다”며 축하 성명을 발표했다.  
  • 올림픽 개막 5일만에…日도쿄 코로나 확진 2848명 ‘역대 최다’

    올림픽 개막 5일만에…日도쿄 코로나 확진 2848명 ‘역대 최다’

    도쿄올림픽 개막 5일째인 27일 일본 도쿄도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기준 역대 가장 많은 2848명을 기록했다. 일주일 전보다 1461명 늘어난 것으로 올해 1월 7일 세운 최다기록 2520명을 넘어섰다. 도쿄에 4번째 긴급사태가 발령된 지 2주가 넘은 가운데 감염 확산 속도는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다. TV아사히는 “지난 7일간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가 1762명으로, 이전 7일 평균 대비 49.9% 증가했다”고 전했다. 연령대별로 20대가 가장 많은 951명이었고 30대가 610명이었다. 중증화 위험이 높은 65세 이상 고령자는 78명이었다. 중증 환자는 전날보다 4명 늘어난 82명이었다. 올림픽 대회 관련 확진자도 계속 늘고 있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는 대회 관계자 가운데에서 이날 신규 코로나19 확진자가 7명 나왔다고 밝혔다. 이로써 방역 규범집인 ‘플레이북’을 적용하기 시작한 이달 1일 이후 대회 관계자의 감염 확인 사례는 총 155명으로 늘었다.
  • 필리핀에 첫 올림픽 金 디아스는 두테르테 정권 전복 음모 연루자

    필리핀에 첫 올림픽 金 디아스는 두테르테 정권 전복 음모 연루자

    여태껏 필리핀에 올림픽 금메달이 없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2016년 기준 1억명의 인구를 거느린 이 나라가 1924년 파리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이후 97년 만에 첫 금메달을 수확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국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역도 영웅’ 하이딜린 디아스(30)가 2019년 5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정부 전복 음모를 꾸민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그녀를 의심한 사람은 대통령의 법적 자문관 살바도르 파넬로였다. 공군 현역 상사인 디아스 뿐만아니라 배구 스타, TV 스타 그레첸 호도 포함됐다. 디아스는 강력히 부인했지만 훈련할 돈을 얻기도 어려웠다. 심지어 살해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람도 많았다. 기업과 스포츠 후원가들을 찾아 다니며 금전적인 지원을 호소하는 일도 버거웠다. 그렇게 신산한 삶을 산 디아스가 지난 26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55㎏급 A그룹 경기에서 인상 97㎏, 용상 127㎏으로 합계 224㎏을 들어 올리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27일 필리핀 매체 래플러에 따르면 디아스는 “내가 금메달을 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신은 위대하다”고 말했다. 필리핀 정부와 몇몇 기업이 디아스에게 포상하겠다고 밝힌 것은 3300만 페소(약 7억 5000만원)와 집 한 채다. 디아스가 금메달을 확정한 순간, 필리핀에서는 축하 트윗이 10만건 넘게 올라왔따. “올림픽 무대에서 우리 국가가 울려 퍼진 건 처음이다. 감동적이다”, “역사를 쓴 디아스에게 고맙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녀는 거수 경례를 하며 울음을 터뜨렸고 필리핀 국민도 함께 울었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필리핀 여자 역도 선수로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은 그녀는 세 번째 올림픽 무대였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은메달을 따내 필리핀 역도 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필리핀이 20년 만에 따낸 올림픽 메달이었다. 국민들이 함께 오열한 것은 실제로 필리핀에서 단막극으로 제작될 정도로 디아스의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 같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삼보앙가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트라이시클(삼륜차) 기사부터 농부, 어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디아스의 어린 시절 꿈이 은행원이었던 것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사정과 무관하지 않았다. 5년 전 리우 은메달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2년 전 두테르테 대통령이 블랙 리스트에 올려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디아스는 지난해 2월 중국인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말레이시아로 전지 훈련을 떠났는데 코로나19 사태 탓에 체육관 출입을 통제당했다. 가족과 생이별을 한 채로 몇 개월 동안 비좁은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역기를 들어 올리며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디아스는 “당시는 힘들었지만, 신이 준 모든 역경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우리는 필리핀인이기에 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를 지난 3년 동안 큰 어려움에 빠뜨렸던 파넬로도 성명을 내 축하했다. 그는 “그녀의 위업은 우리 필리핀인을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모든 필리핀 선수들에게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것이 꿈이 아니란 사실을 일깨웠으면 한다. 축하해 하이딜린 디아스!”라고 적었다.
  • [박철현의 이방사회] 센스가 없거나 무식하거나/일본 테츠야공무점 대표

    [박철현의 이방사회] 센스가 없거나 무식하거나/일본 테츠야공무점 대표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대학에선 영화연출을 공부했다. 3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1999년 5월 아무 문제 없이 제대했는데 복학까지 9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충무로 영화판에서 연출부 아르바이트 일을 했다. 아직 IMF의 상흔이 남아 있던 시기였지만 선배들이 충무로 곳곳에 포진해 있어 일자리는 쉽게 구했다. 모 조감독 선배와 약속을 잡고, 영화사 대표와 제작실장이 면접 자리에 나왔다. 간단한 몇 마디를 주고받고 다음날부터 출근했다. 매일 나가서 준비 중인 시나리오를 들여다보며 갖가지 의견도 제시했고, 명함도 받았다. 무엇보다 점심도 공짜였다. 모든 게 새로웠고 매우 즐거웠다. 문제는 한 달 정도 지났는데 돈 얘기가 없다는 거. 매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해 (별로 원치 않는 회식까지 일의 연장이라 생각한다면) 거의 밤 10시까지 일을 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돈 얘기를 안 한다. 참다못해 연출부 세컨드 형과 스크립터 누나가 조감독에게 따졌다. 조감독 선배는 “아직 투자 계약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일단 대표님께 건의하겠다”고 했고, 다음날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두툼한 봉투를 갖고 왔다. 거기엔 1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연출부는 스크립터까지 포함해 네 명이었는데, 가장 막내였던 나는 100만원을 받았다. 일을 한 지 세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조감독은 “계약이 이뤄지면 훨씬 많은 돈을 줄 수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대표님이 사비로 주시는 것”이라며 통 큰 사장을 칭찬했다. 세상 물정도 몰랐고, 영화 자체가 돈보다는 예술을 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영화예술인은 가난한 게 당연한 시절이었던지라 그런가 보다 했다. 3개월이 다시 지났고, 계약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다시 통 큰 사장님으로부터 100만원이 지급됐다. 그 돈을 받자마자 복학해야 한다고 말하고 회사를, 아니 한국의 영화판을 관두자고 결심했다. 하루에 12시간은 일하는데 평균 월급여가 33만원이니 열정이고 뭐고 생활 자체가 안 된다.2002년부터는 일본의 게임회사에서 일했다. 아르바이트였지만 시급은 800엔인가 했다. 최저임금보다 100엔이 높았다.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대우였다. 하지만 이 회사도 2년 만에 그만뒀다. 출시를 앞둔 게임 소프트웨어의 디버깅을 3개월 정도 했는데, 문득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추리닝 몇 개를 가지고 가 하루 종일 회사 모니터를 쳐다보며 끊임없는 단순 반복 작업을 했다. 졸리면 커피를 사발에 타서 마시고, 초콜릿을 엄청나게 먹어 댔다. 때때로 ‘타이밍’이라는 이름의 묘한 흰색 알약을 먹기도 했다. 집을 아예 안 가니 지금으로 따지면 하루 24시간 노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회사에서 일하고 일요일 집으로 돌아가 하루 종일 잤다. 60킬로 정도였던 몸무게는 정확히 3개월 만에 80킬로가 됐다. 돈은 많이 벌었다. 만 26세, 불완전한 일본어의 외국인 알바가 디버깅 기간 중엔 매달 50만엔을 벌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몸이 버텨 내지 못했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집 현관 입구 마루였던 적도 있다. 신발을 벗자마자 쓰러져 열몇 시간 동안 마치 시체처럼 잤던 것이다. 3개월간의 고된 디버깅이 끝난 후 제품이 출시됐다. 약간의 보너스를 받았다. 정사원들은 유급휴가를 가는데 나는 알바였던지라 게임회사 대표가 특별히 신경을 써 준 것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무급이니까(주휴수당 없음) 평균 주급에 해당하는 돈을 보너스란 명목으로 주고, 일주일간 푹 쉬고 다시 출근하라는 뜻이다. 휴가가 끝나 가면서 두려움이 몰려왔다. 도저히 다시 출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뭔가를 새롭게 만든다 하더라도 어차피 디버깅을 할 것이니 또 지옥 같은 몇 개월을 보내야 하고, 그럼 난 이제 100킬로가 되는 건가 같은 걱정부터 먼저 든다. 죄송하다 말을 하고 회사를 관뒀다. 갑자기 20여년 전의 트라우마를 호출한 이유는 윤석열씨의 주 120시간 언급 때문이다. 그는 논란이 거세지자 비유라고 해명했지만 비유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일하면 결국 죽는다. 죽고 난 다음의 명예와 부와 성취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센스가 없거나 무식하거나.
  • 원행스님 “이재명, ‘나눔의집’ 문제 죄송하고 빨리 매듭짓겠다 해”

    원행스님 “이재명, ‘나눔의집’ 문제 죄송하고 빨리 매듭짓겠다 해”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4일 월주스님 추모차 금산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불교계에 ‘나눔의 집’ 문제와 관련해 사과의 뜻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25일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기자들에게 “제가 (어제) 직접 같이 (이 지사를) 만났다”며 “(이 지사) 당신은 (나눔의 집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했는데, 일이 좀 꼬였다. 죄송하게 생각하고 최대한 빨리 매듭을 지어서 큰 스님의 유지를 잘 받들겠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원행스님은 24일 분향소에서 참배를 마친 이 지사와 경내 적묵당에서 30여 분간 비공개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가 사과의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원행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번 지낸 월주스님의 상좌(제자)다. 지난 22일 입적한 월주스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지원시설인 ‘나눔의 집’ 설립자이자, 20년 넘게 이곳의 이사장을 지냈다. 하지만 지난해 ‘나눔의 집’에서 내부 고발 형태로 후원금 유용 논란 등이 불거지며 이사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당시 경기도는 민관합동조사에 착수했고, 후원금 용도 외 사용, 보조금 목적 외 사용, 기부금품법 위반 등을 이유로 월주스님 등 승적을 가진 나눔의 집 이사 5명을 해임 처분했다. 경기도의 해임 명령이 내려지자 조계종 내부에서는 경기도 행정 조치와 이 지사에 대한 비판, 불만이 감지됐다. 원행스님은 이날 “근래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만, 특히 나눔의 집 문제로 인해서 (월주 큰스님이) 충격을 받으셨다”고도 했다. 이날 경내 보제루에서 열린 월주스님 상좌(제자) 간담회에서도 나눔의 집 논란으로 월주스님이 많이 힘들어했다는 목격담이 나왔다. 간담회에 참석한 동국대 이사장 성우스님은 “(큰스님이) 이사장 직무 정지까지 됐는데, 굉장히 상심하셨다”며 “그래서 마음에 병을 얻으셨고, 지병을 얻으셨다”고 회고했다. 다만 그는 “나눔의 집과 관련해 행정적으로 미비한 사항이 있으면 전부 바로잡으라고 말씀을 하셨다”며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전부 수용해서 세상 사람들이 나눔의 집에 대해서 잘못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최대한 조처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 [올림픽 1열] ‘스시’와 ‘사쿠라’로 와이파이를 쓰는 도쿄올림픽

    [올림픽 1열] ‘스시’와 ‘사쿠라’로 와이파이를 쓰는 도쿄올림픽

    [중계화면 그 이상의 소식, 올림픽을 1열에서 경험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속도는 느리지만 안 끊기는 스시와 사쿠라 스시의 나라 일본은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취재진에게 ‘못 먹는 스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구경 못 하는 사쿠라도 있습니다. 꽃잎이 다 떨어진 여름이어서가 아니고 진짜로 안 보여서 그렇습니다. 스시와 사쿠라는 각각 도쿄올림픽에서 버스와 미디어센터에 사용되는 와이파이 이름입니다. 이번 편은 1편 [‘문서 고문’하더니 ‘매뉴얼 세계관’에 갇힌 일본], 2편 [침대까지 종이로… ‘종이 왕국’ 일본의 종이 사랑]에 비해 불편한 점에 관한 이야기는 딱히 없습니다. 여러 곳의 와이파이를 써봤지만 아직 한국에서 와이파이 이름이 ‘김치’이거나 ‘무궁화’인 걸 본 적은 없습니다. 무궁화 열차 와이파이에 관한 소식을 찾아보니 무궁화 열차의 와이파이명도 무궁화가 아니라고 하네요. 보통은 상호명이 들어가거나 통신사가 제공한 기기명으로 제공되는 탓에 웬만하면 눈길을 끌기 힘든 와이파이 이름에 자국의 대표 상품을 내건 점이 단박에 눈길을 끌었습니다. 각국의 취재진이 미디어센터 와이파이 이름이 사쿠라인 것을 재밌어하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수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사용하다 보니 속도가 한국처럼 빠르진 않습니다. 사쿠라는 지금 볼 수 없으니 와이파이 때문에 스시가 땡기는 취재진이 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근처 편의점에 들렀는데 아쉽게도 스시는 안 보였습니다.올림픽 곳곳에 콘텐츠 녹인 일본 스시와 사쿠라 와이파이처럼 일본은 자국의 콘텐츠를 올림픽에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만화와 게임 등 전 세계에 영향력이 뻗어 있는 자신들의 콘텐츠를 올림픽을 통해 홍보하는 모습입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6년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 마리오 분장을 하고 나타난 것이 일본이 가진 콘텐츠를 올림픽에 활용한 시초가 되겠네요. 올림픽을 적극 유치해 결국 지금의 사태를 만든 아베 마리오가 개회식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지금은 배신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개회식에서도 일본은 나라명이 적힌 팻말을 만화 말풍선으로 표현해 일본 만화 콘텐츠를 올림픽에 활용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팻말을 든 사람은 일본 만화에 사용되는 스크린톤 인쇄 기법을 기반으로 디자인한 옷을 입었습니다. 이번 개회식에서 눈길을 끈 픽토그램 공연 역시 일본이 콘텐츠를 잘 활용한 사례였습니다. 일본은 이번 올림픽 픽토그램이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사용했던 픽토그램을 계승 발전했다는 점을 보여주며 픽토그램을 공연이라는 또 새로운 콘텐츠로 발전시켜 화제를 모았습니다.열심히는 했으나 혹평받는 개회식 게임 좀 하신 분이 개회식을 보셨다면 배경음악도 익숙하셨을지 모르겠네요.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개회식 음악은 일본의 유명한 비디오 게임 노래를 메들리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위닝 일레븐, 킹덤하츠, 파이널 판타지 등 15개 게임의 19곡이 선수들이 입장하는 동안 연주됐습니다. 어느 올림픽이나 자기들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겠지만 일본처럼 게임 음악을 올림픽에 활용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열심히 콘텐츠를 활용한 것과는 별개로 개회식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은 평이 대체로 많은 분위기입니다. 영국 정치매체 폴리틱스의 편집장인 이언 던은 “장례식장에 참석하는 것과 같았다”며 “자국 정서를 고려해 절제한 건 알겠는데, 전 세계인들을 고려해 조금은 즐겁게 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지적했습니다. 던은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활기차고, 엉뚱하며, 흥미진진한 나라 중 하나인데 이 개회식이 그들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며 기대한 콘텐츠를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또한 폭스스포츠는 해외 누리꾼들의 반등을 종합하며 역대 최악의 올림픽 개회식이라는 데는 의견일치를 이뤘다고 전했습니다. 일본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한 행사였는데 호평을 못 얻은 걸 보면 일본이 가진 콘텐츠의 한계일지 모르겠습니다. 개회식은 혹평을 샀는데 폐회식은 어떨까 궁금해집니다.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보랏빛 여름으로 안내하는 맥문동/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보랏빛 여름으로 안내하는 맥문동/식물세밀화가

    매년 초여름이면 일본 홋카이도의 라벤더 축제로부터 초대 메일이 온다. 5년 전 이 축제에 다녀온 후부터였다. 보라색의 화려한 꽃송이가 태양빛에 빛나는 라벤더 밭 풍경을 보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은 6월 홋카이도로 모인다.우리나라에도 대규모 라벤더 농장들이 있다. 그중 강원도 고성의 라벤더 농장에서 6월마다 열리는 축제는 이미 지역 축제로 자리잡았다. 수백 미터 펼쳐진 보랏빛 라벤더를 보고 있으면, 이 식물이 수세기에 걸쳐 세계를 주름잡는 허브식물이자 화훼식물로 인기를 이어 온 이유가 짐작 갈 정도다. 3년 전 강의 일정으로 경주에 갔다. 그곳에서 만난 학생에게 경주에서 가볼 만한 식물원이나 공원이 있는지 물었다. 대부분 유적지만 알았기 때문에, 지역민들이 아는 식물 장소가 있는지 궁금했다. 학생이 말했다. “황성공원이란 곳이 있는데요. 여름이 되면 여기에 보라색 맥문동 꽃이 쫙 피어요. 라벤더 밭이랑 비슷한데, 경주에서는 라벤더보다 맥문동이 인기 있어요.” 늘 보아 왔던 맥문동이 꽃밭을 이룬다니. 강의가 끝나고 황성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소나무 군락 아래에 핀 보랏빛 맥문동 들판을 만났다. 그 앞에서 라벤더 밭 풍경이 떠올랐다. 두 식물은 보라색 꽃밭을 만든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분류학적으로 전혀 다르다. 게다가 라벤더는 지중해 연안 원산의 외래식물이며, 맥문동은 우리나라에 자생한다.맥문동 꽃밭을 눈앞에 두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맥문동이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는 식물이란 사실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맥문동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었다. 맥문동은 도시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다. 내 작업실 뒤 화단이나 학교 화단, 그리고 집 아파트 화단처럼 우리가 흔히 지나는 곳에 심어져 있다. 길가 가로수 아래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너무 흔하고 익숙한 풀이기에 맥문동 꽃을 보아도 본체만체 지나가는 일이 많았다. 언젠가 함께 화단의 맥문동을 본 친구가 “이 식물 많이 보이던데 왜 이렇게 많이 심는 거야?”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관리도 쉽고 우리나라 환경에 잘 맞아”라고 별 식물이 아닌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맥문동이 피어나는 지금 이 계절을 기회 삼아, 이들이 우리나라 도시 화단에서 중요한 이유, 정원에 많이 심는 이유를 이야기해야겠다. 맥문동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식물의 성격, 말하자면 햇빛을 좋아하고 겨울에는 잎을 떨구는 보편적인 식물의 특성을 따르지 않는다. 이들은 그늘을 좋아하며, 겨울에도 녹색 잎을 그대로 내보인다. 게다가 푸르름 위주의 여름 정원을 보랏빛으로 밝혀 준다. 정원가들은 우리나라 여름 정원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식물이 한정적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안 그래도 날이 더워 관람객을 정원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운데 여름에는 푸르른 녹음 위주라 관람객들이 정원에 꽃이 별로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에 꽃이 피는 원추리, 상사화, 나리, 무궁화, 비비추 그리고 맥문동의 존재가 참 소중하다고. 맥문동은 6~8월 긴 꽃대에서 수십 개의 작은 보라색 꽃을 피운다. 맥문동이란 이름은 한자 보리 ‘맥’과 겨울 ‘동’을 쓴다. 겨울 문을 여는 보리를 닮은 식물이란 뜻이다. 이들의 뿌리가 보리와 닮았다. 그리고 문동이라는 이름은 다른 식물들이 잎을 떨궈내는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녹색 잎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매서운 겨울 추위에 녹색 잎을 내보이는 화단식물을 떠올리면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맥문동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겨울은 무척 길기 때문에 정원가로선 겨울 정원을 황량한 모습으로 둘 수도 없다. 길고 혹독한 겨울을 푸르른 모습으로 지나는 이 식물이 소중한 이유다. 맥문동은 햇볕보다 그늘을 선호한다. 우리 주변 아주 작은 화단부터 큰 정원까지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식물이 바로 소나무인데, 소나무 아래 땅을 비워 둘 수는 없기에 이 공간을 채울 풀을 찾다 보면 결국 맥문동을 부를 수밖에 없다. 경주 황성공원에서 소나무 아래 맥문동이 피어 있던 이유다. 맥문동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 됐다. 긴 보라색 꽃대에서 피는 작고 두꺼운 꽃잎 송이. 그 안의 보라색과 대비되는 연노란빛의 수술과 미색의 암술…. 꽃이 지고 가을이 되면 꽃이 있던 자리에는 동그란 녹색 열매가 열리고, 이 열매는 까맣게 익어 갈 것이다. 올해만큼은 외국 어딘가의 라벤더 밭을 그리워하기보다 우리 가까이의 맥문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 [올림픽 1열] ‘문서 고문’ 하더니 ‘매뉴얼 세계관’에 갇힌 일본

    [올림픽 1열] ‘문서 고문’ 하더니 ‘매뉴얼 세계관’에 갇힌 일본

    [중계화면 그 이상의 소식, 올림픽을 1열에서 경험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문서에 문서에 문서를 더한 ‘문서 고문’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 취재진에게 올림픽 준비 과정은 그야말로 문서로 고문을 당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조직위원회가 읽기 벅찰 정도로 수많은 텍스트로 가득한 문서를 끊임없이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한 설명까지 자세히 곁들인 문서 속 세계를 탐험하며 ‘일본의 디테일함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같은 직장인일 문서 작성자가 끝없는 야근으로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을 모습이 상상됐습니다. 영어를 잘하더라도 올림픽 조직위 측의 문서는 시간을 내서 읽기가 참 벅찹니다. 메시지의 홍수 속에 독자는 시시때때로 길을 잃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절로 생각하게 됩니다. 문서 속 올림픽은 굉장히 안전합니다. 불멸의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정대만이 각성해 3점슛을 던지면 다 들어갈 것 같고, 188㎝의 강백호가 제아무리 키가 큰 선수를 만나도 다 뛰어넘어 리바운드를 잡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조직위가 수많은 문서를 통해 형성한 세계관에서 이번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 시국 속에서도 완벽하게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올림픽일 것만 같습니다.매뉴얼 밖 올림픽에 당황하는 일본 일본여행을 다녀보셨던 분들이라면 아실 텐데 일본에 들어갈 때 세관 신고서와 현지 체류 주소 등을 적는 종이를 줍니다. 그런데 이번에 도쿄로 향할 때는 이들 외에 또 다른 서류를 받았습니다. 서약서인데 굉장히 형식적인 내용을 적으면 되는 문서입니다. 수많았던 매뉴얼 어딘가에 안내는 되어 있었겠지만 솔직히 그 많은 매뉴얼을 다 읽지는 못해서 혹은 읽었더라도 까먹었을 것이 분명해서 예상 밖의 서류였습니다. 그래도 친절하게 뭘 써야 하는지는 쉽게 알아볼 수 있어서 적으라는 것들을 적었습니다.문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꾸역꾸역 하라는 건 다 했으니 무사히 입국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절차에 충실히 따라 모든 사전 절차를 완료하고 조직위 측의 ‘매뉴얼 세계관’ 속 일본에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 등장 인물이 될 준비가 됐기 때문입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함께 탑승한 여자배구 대표팀을 비롯해 선수단이 먼저 입장한 후 취재진이 뒤따라 입장했습니다. 안내받은 대기실에서는 OCHA(Online Check-in and Health report APP)라는 건강관련 필수앱을 켜보라고 합니다. 이름도 생소한 OCHA는 이번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습니다. 아마 다른 기사에서도 많이 보였을 이 앱이 매뉴얼대로 진행이 안 돼서 여러 취재진이 OCHA와 관련해 대한체육회에 문의를 했습니다. 입국 직전에 승인된다고도 하기에 믿고 기다렸지만 결국 OCHA가 실행이 안 됐습니다. OCHA가 안되는 상황이 많았을 법도 한데 기자의 OCHA를 검사하려던 공항 직원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이렇게 쉽게 일본인을 만난다고? OCHA가 안 되는 인원만 따로 모아 대기가 시작됐습니다. 죄 없는 승객들을 도와주려고 나선 대한항공 일본 직원들도 발을 동동 구릅니다. 문제가 생겼으니 해결은 해야겠는데 이런 상황은 매뉴얼에 없었나 봅니다. 중간 생략, 아 요즘은 동영상 시대니까 스킵인가요. 어쨌든 5시간이 넘는 기다림의 과정은 스킵하고 어찌저찌 해결은 됐습니다. 그리고 숙소까지 이동할 택시를 타러 가니 또 매뉴얼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숙소에 함께 갈 회사 동료와 따로 택시를 타고 가랍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이유를 묻자 미소와 함께 “프로토콜(정해진 절차)이기 때문이죠”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여기까지가 매뉴얼의 세계였다면 이제 매뉴얼 밖 세상이 펼쳐집니다. 택시를 타러 가는 길에 일본인을 대거 지나치기 때문이죠. 이상했습니다. ‘매뉴얼 세계관’에 따르면 취재진은 일본인과 접촉할 일이 거의 없어야 하는데 “이렇게 쉽게 만난다고?”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습니다.수많은 매뉴얼을 통해 이번 올림픽의 세계관을 창시한 작가에게는 아쉽게도 작품이 벌써 망한 것처럼 보입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보니 그 기분은 더해졌습니다. 숙소 옆 편의점을 갈 때마다 담배를 피우는 일본인을 스쳐 지나는 건 기본이고 근처 다른 편의점에 가는 길에 유모차에 탄 아기도, 자전거를 타는 학생도, 공사 중에 잠시 쉬는 인부도 만났기 때문입니다. 매뉴얼 세계관에서는 일본인과의 접촉은 불가능할 것처럼 돼 있었는데 그 세계관에서 어긋나 있는 모습을 보며 마치 세계관 최강자라도 된 기분입니다. 설명에 설명에 설명을 더해 매뉴얼을 만들었던 이가 알면 슬퍼할 일이겠지만. 일본에서 발달한 관료제는 ‘레드 테이프’(문서만능주의)와 ‘형식주의’의 폐해가 있습니다. 레드 테이프는 문서에 규정된 그대로 따르기를 강요하는 것을 의미하고 형식주의는 목표 실현에 가치를 두기보다는 절차 등의 형식에 지나치게 매몰된 모습을 뜻합니다. 이 설명에서 혹시 여러분의 직장 상사가 떠올랐다면 위로를 전합니다.입국 과정 전후의 일은 이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줬습니다. 매뉴얼이 지나치게 중시되면 사람이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줄어듭니다. 매뉴얼대로 따르려고 문제 해결 대신 “기다려달라”고 하는 직원이나 1인 1택시를 안내했던 직원의 잘못은 딱히 없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이 개막하면 수많은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것이 뻔합니다. 매뉴얼대로 착착 진행돼서 무사히 막을 올리면 좋을 올림픽이겠으나 매뉴얼 밖 문제는 자꾸 생기고 갈수록 불안한 목소리도 커집니다. 매뉴얼 속 세계관대로 준비가 되긴 됐을까요. 매뉴얼 밖 문제는 또 어떨까요. 여전히 일본인은 너무 쉽게 만나고, 지정된 장소 방문과 지정된 교통수단만 허용한 지침도 잘 지켜질까 모르겠습니다.
  • 아직 SM소속 크리스 우, 성폭행 의혹 폭로에 모델 하차

    아직 SM소속 크리스 우, 성폭행 의혹 폭로에 모델 하차

    한국 SM엔터테인먼트의 인기 아이돌 그룹 엑소의 전 멤버였던 크리스 우(30)가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유명 브랜드 광고 모델에서 하차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지난 19일 중국전매대학교에 재학 중인 두메이주(19)는 크리스 우가 뮤직비디오 촬영 또는 소속사 신인 모집을 빌미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했고, 술자리를 강요해 피해자들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틈을 타 강간을 범했다고 폭로했다. 이 여성은 크리스 우와의 채팅 내역과 폭로 방지를 위한 합의서 및 50만 위안(약 9000만원) 선입금 내역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통해 공개했다. 폭로에 따르면 크리스 우에게 피해를 입은 이는 두메이주를 포함해 최소 8명이다. 이가운데 14살 이하 미성년자는 2명이라고 공개한 두메이주는 자신이 마지막 피해자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이와 같은 폭로에 분노하며, 크리스 우에게 연예인을 그만두고 중국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중국에서 현재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 우는 폭로 내용을 부인하며,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두메이주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17살 때 크리스 우를 처음 만났으며, 그가 다른 여성과 함께 집으로 초대해 술을 마시라고 강권했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깨어보니 크리스 우의 침대였다고 밝혔다.또한 크리스 우는 두메이주에게 다른 여성을 소개해주면 돈을 주겠다고도 했다고 덧붙였다. 두메이주는 크리스 우로부터 입막음용으로 받은 50만 위안은 이미 돌려줬으며, 법적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크리스 우의 소속사는 두메이주가 모든 이야기를 꾸며냈다고 비난했다. 19일 크리스 우는 자신의 웨이보를 통해 “내가 일찍 대응에 나서지 않은 것은 법적 판단 과정에 개입하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제기된 혐의 중에 내가 한 가지라도 저질렀다면 내 발로 감옥에 가겠다”고 말했다. 크리스 우는 두메이주를 친구의 파티에서 단 한번 만났을 뿐이며 성폭행 혐의 등에 대해서는 모두 부인했다. 성폭행 혐의 폭로에 상하이의 화장품 회사, 향수 브랜드 등은 크리스 우와의 광고 계약을 중단했다. 또 다른 화장품 브랜드 키엘과 과자 브랜드도 웨이보 계정에서 크리스 우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다. 중국 광저우에서 태어난 크리스 우는 11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으며, 2012년 엑소로 데뷔했으나 2014년 중국으로 돌아갔다. 크리스 우는 2014년 SM엔터테인먼트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 부존재확인 소송을 냈으며, 법원의 화해 권고 결정에 따라 원래 계약대로 2022년까지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유지된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지역에서 SM엔터테인먼트가 매니지먼트 권한을 위탁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
  • 이준석이 걱정하는 홍콩인들에 일본 오키나와 새 이주지로 부상

    이준석이 걱정하는 홍콩인들에 일본 오키나와 새 이주지로 부상

    2020년 홍콩의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가 모호해지고 대신 중국 공산당 정부가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난 섬을 옥죄는 ‘국가안전법’이 제정되면서 홍콩인들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일 홍콩에서 비행기로 2시간 20분 거리에 있는 일본 오키나와가 홍콩인들의 새로운 이주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치인 가운데 유일하게 2019년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한국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홍콩인들이 많을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홍콩인들에게 영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가 부상하게 된 것은 일본의 투자 및 비즈니스 비자 프로그램 덕이다. 홍콩인들이 오키나와에서 홈스테이 같은 비즈니스를 열고 3~6달이면 5년 뒤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과정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일본의 비자 프로그램은 영국 여권이 없는 홍콩인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가구 등이 모두 갖춰져 있는 이층집의 가격은 4500만엔(약 4억 7000만원)이다. 12명의 사람이 묵을 수 있으며, 면적은 3700여㎡(약 1100평) 정도다. 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이 줄면서 임대료는 10% 정도 떨어졌지만, 집값은 되려 상승했다. 오키나와 나하시에 집을 산 한 홍콩인은 일본이 코로나때문에 비자 발급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면서 여전히 아직 홍콩에 발이 묶여 있다. 이들은 온라인으로 오키나와 부동산을 찾았고,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경쟁이 심한 홍콩 교육체제에서 자녀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바람도 있다. 한편 이 국민의힘 대표는 싱하이밍 중국 대사를 만나 홍콩 인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기대한다는 발언을 했고,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홍콩 자치권을 억압하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데 있어 문재인 정부가 미국보다 부드러운 어조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중국 관변언론은 이 대표에게 ‘지식 없는 정치인’ ‘인터넷 연에인’ 등으로 맹공격했다.
  • 코로나로 갇혀 지내지만 어떻게든 훈련은 해야 묘안 백출

    코로나로 갇혀 지내지만 어떻게든 훈련은 해야 묘안 백출

    23일 막을 올리는 2020 도쿄올림픽은 이른바 ‘올림픽 버블’ 속에서 치러진다. 입국할 때부터 엄청 까다로운 검사를 받고, 선수촌에서도 매일 아침 바이러스 검사를 받는다. 사실상 선수촌과 경기장을 오가는 것 말고는 허용되는 일이 별로 없다. 다른 방에 놀러가는 일도 할 수 없다. 선수촌의 방역 수칙을 총괄하는 플레이북에 따르면 술 판매도 안된다. 사실상 선수촌에 감금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도쿄나 일본까지 왔는데 훈련을 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참가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지만 그렇게 힘들게 왔는데 이왕이면 좋은 성적, 하다못해 개인 기록이라도 끌어올리고 지난 대회나 과거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훈련장이나 경기장을 오가며 훈련하려면 까다로운 검사와 방역을 통과해야 한다. 훈련에 쏟는 시간보다 오가는 데 더욱 많은 신경과 시간을 써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그냥 선수촌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영국 BBC가 19일(현지시간) 선수촌 안에서 담금질에 비지땀을 쏟는 선수들의 묘안들을 살짝 엿봤다. 먼저 미국 육상 남자 5000m에 출전하는 폴 첼리모다. 트레드밀 대신 욕조 바닥에 세제 같은 것을 뿌리고 수건 등을 걸어놓는 봉을 붙잡은 채 걸어 종아리 근육을 단련시키고 있다. 골판지 침대가 부실하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틈틈이 이렇게 훈련에 열중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스위스 배구 대표팀의 아눅 베르게듀프레는 선수촌이 아니라 도쿄의 한 주택에 격리된 모양이다. 자신은 발코니에 있고 마당에 언니를 내려보내 토스 연습을 하고 있다. 필리핀 역도 대표팀의 히딜린 디아스는 체육관으로 이동하는 대신 부엌 공간에서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훈련 모습을 라이브스트리밍으로 생중계하며 기부금을 모아 여러 가정에 먹거리를 전달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복싱 대표 기니 푹스는 다른 종목 선수들과 어울려 망치를 들어 마당의 바위를 깨부수며 근력을 단련하고 있다. 쿠바 레슬링 대표 다니엘 그레고리치는 지붕 위에서 팔굽혀 펴기를 하거나 코치를 어깨에 얹은 상태로 스쿼트를 한다. 인도 사격 대표로 여자 10m에 출전하는 디브얀시 싱 판와르는 자신의 집에서는 사거리가 나오지 않아 코치 집에서 방아쇠를 당긴다. 레바논의 사격 대표 레이 바실은 주차장을 찾는다. 원래는 공기소총을 써야 하는데 샷건을 대신 쓴다. 야후! 스포츠는 미국의 여러 선수들이 어떻게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지 지난 17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육상 단거리 스타 앨리슨 펠릭스는 로스앤젤레스 동네를 뛰면서 컨디션을 유지하고, 아티스틱(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의 아니타 알바레스는 모든 수영장이 문을 닫아 집 뒷마당에 애들의 물놀이 풀에 들어가 줌 화상회의를 연결해 동료들과의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 처음 정식종목이 된 스포츠클라이밍에 출전하는 브룩 라부투는 열살 때 아버지가 기술을 익히라고 만들어준 지하실의 인공암장이 그대로 남아 있어 비지땀을 쏟고 있다. 계단이나 부엌 조리대 등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조그만 여지만 있어도 훈련 공간으로 변신한다.
  • 세븐틴, ‘원팀’으로 계속 간다…멤버 전원 재계약

    세븐틴, ‘원팀’으로 계속 간다…멤버 전원 재계약

    보이그룹 세븐틴이 데뷔 때부터 함께해온 소속사와 동행을 이어간다. 소속사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는 세븐틴 멤버 13명 전원과 재계약을 체결했다고 19일 밝혔다. 소속사는 “기존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전이지만 세븐틴과 그룹의 비전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한 끝에 공감대를 형성했고 조기에 재계약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븐틴의 국내외 활동 계획을 보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수립해 아티스트와 함께 성장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세븐틴은 “13명 모두 서로를 향한 믿음과 그간 다져온 견고한 팀워크로 계속 함께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며 “앞으로도 ‘원 팀’ 세븐틴으로 전 세계 팬분들께 좋은 음악과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 드리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2015년 5월 데뷔한 세븐틴은 국내 정상급 보이그룹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발매한 앨범 4장 모두 100만장 이상 판매돼 밀리언셀러에 올랐으며 일본에서도 매 앨범이 오리콘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달 선보인 미니 8집 ‘유어 초이스’(Your Choice)로 데뷔 후 처음으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15위로 진입하는 등 미국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 [씨줄날줄] ‘먹방’ 속 명란젓/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먹방’ 속 명란젓/서동철 논설위원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먹방 TV’를 보는 시간도 늘었다. 최근에는 일본의 포장마차에서 명란구이를 먹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초등학교 시절 명란젓은 나무로 짠 상자에 담고 일본풍이 뚜렷한 붉은색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일본 음식이라고 생각한 이유일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펴낸 ‘민속학연구’를 들춰 보다가 명란젓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 주는 글을 발견했다. 정연학 학예연구관의 ‘동해의 명태잡이에 대한 한일 갈등과 명태문화의 확산’이라는 논문이다. 결론적으로 일본식 명란젓 멘타이코(明太子)는 광복 이후 한국에서 돌아간 일본인이 소금에 절이는 한국식 대신 자기네 기호에 맞게 조미액으로 짜지 않게 만들면서 재탄생한 음식이었다. 북어(北魚)의 유래도 보인다. 명태는 동해안 추운 지역에서 잡혀 이렇게 불렸다. 그런데 실학자로 농정 개혁가로도 유명한 서유구(1764~1845)는 ‘날것을 명태, 건조한 것을 북어라고 한다’고 했다. 명태와 북어의 개념이 19세기 초반에 이미 정리돼 있었다. 과거 일본에서 명태는 맛없는 생선의 대명사였단다. 그런데 1883년 ‘조일통상조약’으로 일본 어선이 조선 해역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엄청난 어획고를 올리기 시작하자 명태 부산물의 산업화에 들어갔다. 그렇게 홋카이도 어민들이 조선의 명란젓 만드는 방법을 배워 1911년에는 중국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1914년에는 멘타이코가 일본 신문에도 처음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명란의 역사를 3기로 구분한다고 한다. 제1기는 1905년 이른바 관부연락선이 다니면서 부산의 일본인 상점에서 만든 명란젓이 시모노세키를 중심으로 일본 전국에 확산되는 시기다. 제2기는 1945년 이후 홋카이도 상인과 시모노세키 상인이 경쟁적으로 새로운 명란 제조 기술을 개발한 시기, 제3기는 1978년 이후 명란이 일본 전통 식품으로 정착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 명란젓인 후쿠오카의 가라시멘타이코는 ‘매운 명태의 알’이라는 뜻으로 한국 영향을 받아 고춧가루를 넣고 가다랑어포, 청주, 맛술 등을 첨가한 저염도 젓갈이다. 이런 제조 방식의 명란젓은 한국에서도 지속적으로 만들어져 1970년대까지 중요한 대일 수출품의 하나였다. 1980년대 명란젓 수출이 중단된 것은 짐작처럼 동해안 명태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1971년 ‘자원보호령’을 개정해 27㎝ 이하 명태 어획을 금지한 규정을 삭제해 2008년에는 공식 어획량이 ‘0’이 됐다. 인현왕후의 큰아버지 민정중(1628~1692)은 “300년 뒤에는 이 고기가 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 예언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 올 여름 어린이 연극축제 온라인으로 즐겨볼까

    올 여름 어린이 연극축제 온라인으로 즐겨볼까

    어린이들을 위한 ‘2021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이하 여름축제)가 해외공연물 3편과, 국내공연물 9편 모두를 온라인으로 선보인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어린이들의 건강 안전을 위해서다. 당초 여름축제는 미국, 캐나다‧퀘벡, 일본의 해외공연 3편은 온라인으로, 국내공연 9편은 오프라인으로 선보일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광주 ACC어린이극장, 대구 수성아트피아, 서울 종로 아이들극장, 서울 유니플렉스 2관에서 국내공연 7편을 오프라인으로 선보이고, 현재 폐쇄된 서울 관악아트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2개 공연을 포함한 국내공연 9편과 해외공연 3편, 총 12작품을 네이버TV 아시테지코리아채널을 통해 상영된다. 오프라인으로 선보여지는 국내공연 7편 중 복합 인형극 ‘할머니의 이야기 치마’, 마술‧극기반 다원예술 ‘에코백’, 인형극 ‘오늘, 오늘이의 노래’, 음악극‧뮤지컬 ‘멸종위기 동물편’, 움직임 오브제극 ‘나와 몬스터 그리고 가방’은 각 공연 당 한 회차의 공연 실황을 생중계하며 인형극 ‘세 친구’와 넌버벌 ‘네네네’는 사전에 녹화된 영상을 오프라인 공연과 동일한 시간에 1회 상영한다. 오프라인 공연이 취소된 넌버벌 코믹 놀이극 ‘정크, 클라운’과 창작국악뮤지컬 ‘수상한 외갓집’ 또한 사전에 녹화된 영상으로 1회 상영한다.이와함께 지역 간 이동으로 공연장을 찾기 어렵거나 공연장 주변 시설 이용이 걱정인 부모들을 위해 온라인 공연을 추가 편성한 아시테지는 어린이 관객들이 집에서도 공연장과 같은 생생한 자극과 다채로운 감상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국내공연 영상 키트를 준비했다.
  •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별것 아닌 호의/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별것 아닌 호의/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선거를 준비하는 때다. 큰 말이 오고 간다. 으르렁거리는 말이다. 이해한다. 원래 정치는 상대방을 제압해야만 ‘내’가 사는 야수들의 게임이다. 하지만 그런 거친 말을 자꾸 들으면 피곤해진다. 심미안에 거슬린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국가, 민족, 국민을 들먹인다. 공허한 말이다. 아주 가끔 그런 말이 울림을 지니는 때도 있다. 국가와 사회 공동체가 위기에 처한 때가 그렇다. 국가가 침략을 당하거나 지금처럼 심각한 바이러스 방역이 요구되는 때다. 평상시에 사람은 작은 울타리 속에서 의미를 찾고 산다. 가족, 친구, 동료와 맺는 관계가 그것들이다. 그 관계들이 좋을 때 우리는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행하다. 작은 울타리가 헐거울 때 우리는 쉽게 불안해진다. 오래전 한 외국 친구가 했던 질문이다. 한국인들은 낯선 이들을 마추칠 때 왜 대체로 얼굴이 굳어지는가? 우리는 왜 상대방이 나에게 건네는 부드러운 말에 부드럽게 응답하지 않는가? 우리는 의심한다. 무슨 저의가 있는 게 아닌가? 날 이용하려는 게 아닌가? 그래서 표정이 딱딱해진다. 역시 이해할 만하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가 공정의 기준으로 언급되는 시대에는 자연스러운 방어 메커니즘이다. 상대방을 딛고 일어서야만 살아남는 상황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말과 표정은 나오기 힘들다. 좋은 문학과 영화의 기능으로 비판과 위안을 꼽는다. 비판의 문학은 세상의 어두움과 악의를 드러낸다. 악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포착한다. 비평가로서 나는 그런 악에 둔감한 작가는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문학예술은 위안과 위로의 역할도 한다.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 어떻게 여전히 선의(善意)가 남아 있고 생기 있게 움직이는지를 보여 준다. 얼마 전에 읽은 빼어난 산문집에서 그런 선의의 힘을 떠올렸다. “그래서 막연한 배짱 같은 것을 가졌더랬다. 나 하나 건사할 길은 어떻게든 계속 열리겠지 하는. 그렇게 열어 준 것은 세상 너머로부터의 자비로운 손길이었겠지만, 이는 이 땅 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호의를 경유하여 비로소 일용할 양식의 형태로 내 손에 쥐어졌다. 영화 속 소녀가 아버지 나라에 다다를 것이 설령 준비되어 있던 선물이라 할지라도, 그곳으로 가는 여정에서 지친 몸을 잠시 의자에 누이도록 해준 것은 특별히 선하거나 자비롭지 않은 한 인간이 건넨, 별것 아닌 호의였던 것처럼.”(이소영, ‘별것 아닌 선의’) 험한 시대에 사람을 살게 만드는 건 이런 “별것 아닌 호의”가 지닌 힘이다. 최근에 본 영화도 선의의 힘을 보여 준다. 소소한 일상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 장기가 있는 일본 드라마와 영화 중에서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카모메 식당’을 꼽을 만하다. 영화의 내용은 분명 판타지다. 영화에는 현실과는 다르게 악인이 없다. 캐릭터들은 서로 아끼고 배려하고 걱정한다. 그리고 일종의 대안적 가족과 공동체를 구성한다.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지만 사람을 다시 살게 힘을 주는 것도 역시 인간이라는 걸 영화는 보여 준다. 한국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그런 예다. 이 드라마 속 의사들은 현실에서 찾기 힘들다. 역시 판타지다. 하지만 우리는 판타지라는 걸 알면서도 본다. 현실에서 부재하거나 사라져 가는 것들의 가치를 드라마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심장 이식을 기다리거나,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의료인이 적어도 그 드라마에는 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세상을 자기 힘만으로 살 수는 없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 나희덕 산문집 ‘예술의 주름들’에서 읽은 시는 그 점을 짚는다. “저녁 무렵의 광장에서 빛나고 있다. 내가 모르는/사람들의 얼굴이. 나는 게걸스럽게 쳐다보았다./사람들의 얼굴을, 저마다 다른,/각자 뭔가를 말하고, 설득하고,/웃고, 아파하는 얼굴들을./나는 생각했다, 도시는 집을 짓는 게 아니구나,/광장이나 가로수길, 공원이나 넓은 도로를 짓는 게 아니라/등불처럼 빛나는 얼굴들을 짓는구나,/늦은 밤, 구름처럼 피어나는 불꽃 속에서 땜질을 하는/용접공의 점화기처럼 빛나는 얼굴들을.”(아담 자가예프스키, ‘얼굴’) 현실에서도 “등불처럼 빛나는 얼굴들”을 더 많이 만나길 바란다.
  • 제자와 茶맹세 아직도 그윽… 민초의 한 머금은 길따라 뚜벅뚜벅

    제자와 茶맹세 아직도 그윽… 민초의 한 머금은 길따라 뚜벅뚜벅

    올봄 영화 ‘자산어보’가 개봉하면서,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형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극중 ‘강진 선생’으로 불리는 다산(류승룡 분)의 학자적, 철학자적 모습이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당대 세상을 호령하던 고관대작(형조참의) 자리에 있다가, 머나먼 전남 강진 땅에 유배를 와 묵묵히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 정약용의 인품은 주인공 정약전(설경구 분)의 극중 비중에 견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대선을 앞둔 최근엔 소설 ‘대통령 정약용’이 눈길을 끌고 있다. 타임슬립을 통해 현대로 온 다산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간다는 유쾌한 상상을 담았다. 대통령 다산이 추진한다는 ‘실학21’의 바탕이 된 1표2서(‘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를 저술한 땅, 강진을 다시 돌아보니 그동안 보고 알았던 것보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역사상 한반도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다산은 그야말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그는 유학자이면서 실학을 주도적으로 연구했으며 행정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법학과 법의학을 두루 전공한 법률가였다. 또한 의학과 지리학, 건축학에 통달한 과학자요, 발명가였다. 게다가 언어학자, 아동 교육자, 걸출한 시인에다 차 전문가, 동서양사를 넘나드는 역사 철학 이론가이기도 했다. 18세기 말 조선은 만사‘다’통이었다. 다산을 거치면 안 될 게 없었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다빈치처럼. 아, 공교롭게도 다산과 다빈치, 둘 다 이름 첫 자에 ‘다’자가 들어간다. 마침 다빈치도 유배는 아니지만 1516년 고향을 떠나 프랑스 루아르 강가의 앙부아즈 궁에서 살며 ‘모나리자’ 등 역작을 남겼다. 그런 다산이 강진에 내려왔다. 조용한 강진에 유배를 오는 바람에 그의 눈부신 업적이 꽃을 피웠다고 하는 것도 맞겠다.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저서와 서간, 일화, 대한민국 차문화가 탄생했다. 당시 조선의 유형(流刑)은 명나라의 대명률을 따랐다. 죄의 경중에 맞춰 2000리, 2500리, 3000리 등으로 올려가며 유배를 보내는 거다. 1리가 400m쯤이니 1000리면 한양에서 직선거리로 전남 완도까지도 갈 수 있다. 조선에선 이런 거리가 나올 수 없는 터라 일부러 여러 지역을 거치며 행로를 늘렸다. 세종이 ‘실정에 맞게’ 600, 750, 900리로 조정하기 전까지 1년 가까이 돌고도는 유배길을 떠났다. 유배는 많은 것을 남겼다. 깡시골인 유배지로 한양의 높은 지식과 문화 산업이 수혈됐다. 당쟁이 치열했던 조선 때 이름난 관직자는 대부분 유배를 다녀왔을 만큼 유배는 ‘일상’이었다. 정조는 창덕궁 부용정에 인공 섬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신하들과 시 짓기 내기를 하다가 ‘잠시 쉬는’ 벌칙으로 인공 섬에 유형을 보내기도 했다. 블루마블 게임에서 ‘무인도’ 같은 의미다. 그만큼 유형은 고급 관리를 대상으로 했다는 뜻이다. 시에 능한 다산이 ‘인공 섬’에 유배를 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다산을 친애하던 정조가 승하한 후, 정말 강진 땅으로 기나긴 유형을 떠나게 됐다. 그나마 강진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축에 속했다. 예나 지금이나 유형을 가기도, 여행하기도 딱 적당한 거리다. 프로야구의 옛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는 2군 구장을 강진에 뒀는데 당시 1군 선수가 2군에 내려가면 “유배간다”고 자조했다. 당시 몇몇 선수들은 강진에서 2군 생활을 경험하며 다산의 후예가 됐다.다산이 처음 도착한 곳이 강진읍의 사의재다. 다산의 인품을 알아본 주막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 주모의 호의로 여기서 4년간 생활했다. 다산은 이 주막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생각과 외모, 말, 움직임을 네(四) 가지 덕목으로 삼아 마땅히(宜) 바로잡는 집이란 뜻이다. 다산의 일기에 따르면 1803년 겨울의 일이다. 초가 주막이던 본래 사의재 건물은 사라졌지만 2007년 강진군청은 이를 복원해 한옥체험 숙소, 식당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남도 강진 음식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사의재는 아욱국이 맛있기로 소문났다. 다행히 유배지 주위에 가시나무를 심어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는 ‘위리안치’는 아니었다. ‘강진 선생’ 다산은 고성사 보은산방, 제자 이청의 집 등을 전전하다 47세이던 1808년 봄에 귤동리 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의 외가 쪽 집안인 해남 윤씨 윤단과 윤규로의 선처 덕분이었다.(해남 윤씨 윤선도는 무려 25년을 유배지에서 생을 보낸 ‘유배의 왕’이다.) 다산은 산정 초당을 고쳐 다산초당이라 이름 짓고 그곳에서 윤규로의 네 아들과 조카 둘을 가르쳤다. 다산은 18년 유배 기간 중 다산초당에서 약 11년을 머물며 다양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했다. 저서는 ‘목민심서’, ‘경세유표’를 비롯한 500여권에 달한다. 이를 총정리한 ‘여유당전서’는 철학, 법제, 종교, 악경, 의술, 천문, 측량, 건축 등 모든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을 총망라하고 있다. 애초의 초당은 무너지고 1958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가 현재 초당을 다시 지었다. 다만 원래 초당 건물이 아니라 목조 기와건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쓴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초당 뒤 바위에는 다산이 직접 깎은 글자 ‘丁石’(정석)이 새겨져 있으며 앞뜰에는 차를 달였다는 ‘청석’이 있고 한켠에는 ‘약천’이라는 약수터가 있다. 초당 왼쪽에는 작은 연지가 있다. 초당에 관어재(觀魚齋)란 현판이 따로 있는 것으로 봐, 연지에 잉어를 키웠을 것으로 유추된다.초당 뒤 가파른 길은 만덕산 백련사로 이어진다. 꿀럭꿀럭한 산길을 15분 정도 걸으면 동백숲으로 유명한 고찰 백련사로 갈 수 있다. 이 길이 ‘사색의 길’이다. 다산과 백련사 혜장선사의 만남이 이뤄진 길이다. 다산은 차와 바다를 찾아 백련사로 향했고 혜장은 스승과 책을 찾아 초당을 오갔다. 유배 와 제자를 가르치며 산중칩거하던 다산이 다른 철학(불교)을 통해 학식과 견문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당대의 학승 혜장 덕분일 수도 있다. 산중 차향은 그렇게 피어나 학문으로 승화됐다.다산은 강진의 아름다운 산(만덕산, 월출산)과 강(탐진강), 바다(강진만) 등 자연을 사랑했다. 특히 월출산 옥판봉을 바라보는 백운동 원림과 그 인근에서 생산되는 야생차를 각별히 좋아했다. 월출산의 남쪽 월남(베트남이 아니다) 마을에 이르면 다산의 차를 재배했던 다원이 나온다. 전남 최대 가람이었던 월남사지 앞에 차를 재배하며 제다(製茶)해온 다부 이한영 가문의 생가 다향산방과 다원, 전통차문화원이자 시음장이 함께 있다. 이한영의 선조는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이다. 1830년 해배 후 광주(현 경기 남양주)로 올라간 다산은 제자 중 막내인 이시헌에게 편지를 보낸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잘 받았다. 고맙다. 내 몸이 좋지 않아 오직 떡차(餠茶)만 의지하고 있는데 다시 곡우가 되었으니 차를 또 보내 달라”고 했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거칠었다. 반드시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곱게 빻아야 한다. 알아들었느냐?”며 나무라기도 했다.‘목민심서’를 집필한 ‘강직한 공직자’ 다산이었지만 제자에게는 단호하게 차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제자와 맺은 다신계(茶信契) 때문이다. 다산이 강진을 떠나더라도, 제자들은 매년 공부한 글과 차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이시헌은 이 약속을 평생 지켰다. 약속은 100년 이상 대를 이어 전해졌고 마지막으로 이를 지킨 사람이 이한영이다. 평생 차를 위해 살아온 그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에서 난 차가 일본 차로 바뀌어 유통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우리 고유 상표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로,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차’라는 뜻이다. 그는 하마터면 끊어질 뻔한 한국 전통차의 맥을 이었고, 백운옥판차와 금릉월산차는 다시 100여년의 세월을 지나 현 이현정 전통차문화원장에 이르고 있다. 다산이 즐기던 차가 바로 백운옥판차다. 사제 간의 다신계가 정녕 200여년 지속된 셈이다.생가 옆에는 백운동 원림(園林)이 있다.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전통 원림이다. 이곳에도 다산의 흔적이 있다. 다산은 평소에도 백운동 원림을 찾았고 1812년에는 초의선사와 함께 백운동 12경을 방문한 후 각각 그림 같은 풍경에 대한 시(백운동 12승사)를 남겼다. 여기에 초의선사가 그린 그림(백운동도)을 묶은 것이 바로 백운첩이다. 옥판봉, 산다경, 백매오, 홍옥폭, 유상곡수, 창하벽, 정유강, 모란체, 취미선방, 정선대, 운당원 등 백운동 12경이 널리 알려지게 된 일화다.람사르 협약 생태습지로 유명한 남포 습지에도 다산과 관련된 사연이 있다. 강진만과 탐진강 물길이 만나는 남포마을은 제주, 완도 등 섬과 육지의 교역 중심지로 예부터 번성했는데 다산초당 만덕산에서 내려오면 닿는 곳이라 다산의 행차도 잦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포마을의 옛 이름은 갈대밭이란 뜻의 갈밭마을. “강진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그 포구를 바라볼 수 있었고, 강진만의 색다른 정취는 그 포구에서 우러나오고 있었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 등장하는 문구다. 다산은 이곳에서 탐관오리들이 민초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세리들은 세금을 징세하기 위해 죽은 이와 갓난아이까지 군적(軍籍)에 올리는 백골징포, 황구첨정 등의 횡포를 부렸다. 도저히 군포를 감당할 수 없어 이에 항의하던 한 백성은 “아이를 낳은 내 잘못”이라며 스스로 거세하기에 이르렀다. 다산은 이 안타까운 사연을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로 남겼다.‘시아버지는 상복 벗은 지 오래고, 갓난아이는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모두 실렸네/ 억울한 사연 호소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은 크게 포효하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네/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간 방에 피가 흥건하고/ 남편은 스스로 아이 낳은 죄를 한탄하네’ ‘애절양’ 시구는 강진만 생태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남포호 전망대에 선명히 적혀 있다. 강진만 생태공원은 3282만㎡(813만평)에 이른다. 자전거와 도보를 이용한 에코 투어 코스가 마련돼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급 정보와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덕인지, 강진에는 특이한 맥주 소비 트렌드가 있다. 인구 3만 5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지만 신기하게도 술집마다 미국 맥주 브랜드인 ‘버드와이저’를 팔고 있다. 서울 등 다른 도시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심지어 생맥주 체인점에서도 버드와이저를 주문하면 따로 내올 정도다. 20여년 전 강진에는 주류를 공급하는 회사가 하나밖에 없었다. 당시 이 회사가 상대적으로 고급제품이었던 버드와이저 마케팅을 펼쳤는데, 뜻밖에 이게 먹혀들어 누구나 버드와이저를 즐겨찾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강진은 전남에서도 주류소비량이 높은 편이라 주류회사들의 주요 마케팅 대상지였다. 이런 시장 상황이 지속되며 버드와이저가 국산 맥주보다 좋다는 이미지를 남겼고 마침내 ‘군민 맥주’로 인정받게 됐다. 싱가포르에서 ‘싱가폴 슬링’을 찾아 마시듯 무더운 여름날 강진에 간다면 시원한 버드와이저 한 잔 마셔 보는 것도 여행의 작은 즐거움이 될 듯하다. 다산이 18년이나 살며 많은 흔적을 남긴 강진 땅. 농가체험숙박 ‘푸소 프로그램’과 역사문화 체험, 청정 생태 여행 1번지로 변모한 이 청잣빛 푸른 땅에 스스로 ‘아름다운 유배’를 떠나보는 것도 역병으로 우울한 이 여름, 참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강진 여행 체크리스트 무엇을 볼까 이한영전통차문화원은 이현정 원장의 재미있는 해설을 들으며 백운옥판차 등 다양한 전통차 시음과 차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월남사지 잔디밭에 앉아 다식을 들며 차 소풍을 즐길 수도 있다. 민화박물관에선 민중의 삶을 그대로 녹인 민화를 통해 조상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2층에선 성문화를 표현한 한중일 3국의 춘화를 만날 수 있다.뭘 먹을까 은행나무는 한정식 미향(味鄕) 강진에서도 이름난 한정식집이다. 반찬 그릇 위에 또 그릇이 올라가는 ‘강진한정식이층탑’ 별칭이 있을 정도다. 해물과 고기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음식의 면면이 훌륭해 어느 하나 손이 안 가는 것이 없다. 토종닭과 전복, 문어를 넣고 끓인 회춘탕(해천탕)도 여름철 복달임으로 좋다. 설성식당은 한 상 가득 돼지불고기 백반상을 받는 집이다. 조선 중후기 육군 사령부가 있던 병영면에 돼지불고기 거리가 형성돼 있다. 불맛 가득한 양념 돼지고기는 물론 각종 곁들임 찬만 해도 12가지가 넘는다. 1인 1만원꼴로 값도 저렴하다.
  • 목축이던 주막선 군민맥주 캬~ 다산 걷던 동백숲서 시름 털털

    목축이던 주막선 군민맥주 캬~ 다산 걷던 동백숲서 시름 털털

    올봄 영화 ‘자산어보’가 개봉하면서,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형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극중 ‘강진 선생’으로 불리는 다산(류승룡 분)의 학자적, 철학자적 모습이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당대 세상을 호령하던 고관대작(형조참의) 자리에 있다가, 머나먼 전남 강진 땅에 유배를 와 묵묵히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 정약용의 인품은 주인공 정약전(설경구 분)의 극중 비중에 견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대선을 앞둔 최근엔 소설 ‘대통령 정약용’이 눈길을 끌고 있다. 타임슬립을 통해 현대로 온 다산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간다는 유쾌한 상상을 담았다. 대통령 다산이 추진한다는 ‘실학21’의 바탕이 된 1표2서(‘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를 저술한 땅, 강진을 다시 돌아보니 그동안 보고 알았던 것보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역사상 한반도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다산은 그야말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그는 유학자이면서 실학을 주도적으로 연구했으며 행정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법학과 법의학을 두루 전공한 법률가였다. 또한 의학과 지리학, 건축학에 통달한 과학자요, 발명가였다. 게다가 언어학자, 아동 교육자, 걸출한 시인에다 차 전문가, 동서양사를 넘나드는 역사 철학 이론가이기도 했다. 18세기 말 조선은 만사‘다’통이었다. 다산을 거치면 안 될 게 없었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다빈치처럼. 아, 공교롭게도 다산과 다빈치, 둘 다 이름 첫 자에 ‘다’자가 들어간다. 마침 다빈치도 유배는 아니지만 1516년 고향을 떠나 프랑스 루아르 강가의 앙부아즈 궁에서 살며 ‘모나리자’ 등 역작을 남겼다. 그런 다산이 강진에 내려왔다. 조용한 강진에 유배를 오는 바람에 그의 눈부신 업적이 꽃을 피웠다고 하는 것도 맞겠다.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저서와 서간, 일화, 대한민국 차문화가 탄생했다. 당시 조선의 유형(流刑)은 명나라의 대명률을 따랐다. 죄의 경중에 맞춰 2000리, 2500리, 3000리 등으로 올려가며 유배를 보내는 거다. 1리가 400m쯤이니 1000리면 한양에서 직선거리로 전남 완도까지도 갈 수 있다. 조선에선 이런 거리가 나올 수 없는 터라 일부러 여러 지역을 거치며 행로를 늘렸다. 세종이 ‘실정에 맞게’ 600, 750, 900리로 조정하기 전까지 1년 가까이 돌고도는 유배길을 떠났다. 유배는 많은 것을 남겼다. 깡시골인 유배지로 한양의 높은 지식과 문화 산업이 수혈됐다. 당쟁이 치열했던 조선 때 이름난 관직자는 대부분 유배를 다녀왔을 만큼 유배는 ‘일상’이었다. 정조는 창덕궁 부용정에 인공 섬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신하들과 시 짓기 내기를 하다가 ‘잠시 쉬는’ 벌칙으로 인공 섬에 유형을 보내기도 했다. 블루마블 게임에서 ‘무인도’ 같은 의미다. 그만큼 유형은 고급 관리를 대상으로 했다는 뜻이다. 시에 능한 다산이 ‘인공 섬’에 유배를 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다산을 친애하던 정조가 승하한 후, 정말 강진 땅으로 기나긴 유형을 떠나게 됐다. 그나마 강진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축에 속했다. 예나 지금이나 유형을 가기도, 여행하기도 딱 적당한 거리다. 프로야구의 옛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는 2군 구장을 강진에 뒀는데 당시 1군 선수가 2군에 내려가면 “유배간다”고 자조했다. 당시 몇몇 선수들은 강진에서 2군 생활을 경험하며 다산의 후예가 됐다.다산이 처음 도착한 곳이 강진읍의 사의재다. 다산의 인품을 알아본 주막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 주모의 호의로 여기서 4년간 생활했다. 다산은 이 주막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생각과 외모, 말, 움직임을 네(四) 가지 덕목으로 삼아 마땅히(宜) 바로잡는 집이란 뜻이다. 다산의 일기에 따르면 1803년 겨울의 일이다. 초가 주막이던 본래 사의재 건물은 사라졌지만 2007년 강진군청은 이를 복원해 한옥체험 숙소, 식당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남도 강진 음식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사의재는 아욱국이 맛있기로 소문났다. 다행히 유배지 주위에 가시나무를 심어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는 ‘위리안치’는 아니었다. ‘강진 선생’ 다산은 고성사 보은산방, 제자 이청의 집 등을 전전하다 47세이던 1808년 봄에 귤동리 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의 외가 쪽 집안인 해남 윤씨 윤단과 윤규로의 선처 덕분이었다.(해남 윤씨 윤선도는 무려 25년을 유배지에서 생을 보낸 ‘유배의 왕’이다.) 다산은 산정 초당을 고쳐 다산초당이라 이름 짓고 그곳에서 윤규로의 네 아들과 조카 둘을 가르쳤다. 다산은 18년 유배 기간 중 다산초당에서 약 11년을 머물며 다양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했다. 저서는 ‘목민심서’, ‘경세유표’를 비롯한 500여권에 달한다. 이를 총정리한 ‘여유당전서’는 철학, 법제, 종교, 악경, 의술, 천문, 측량, 건축 등 모든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을 총망라하고 있다. 애초의 초당은 무너지고 1958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가 현재 초당을 다시 지었다. 다만 원래 초당 건물이 아니라 목조 기와건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쓴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초당 뒤 바위에는 다산이 직접 깎은 글자 ‘丁石’(정석)이 새겨져 있으며 앞뜰에는 차를 달였다는 ‘청석’이 있고 한켠에는 ‘약천’이라는 약수터가 있다. 초당 왼쪽에는 작은 연지가 있다. 초당에 관어재(觀魚齋)란 현판이 따로 있는 것으로 봐, 연지에 잉어를 키웠을 것으로 유추된다.초당 뒤 가파른 길은 만덕산 백련사로 이어진다. 꿀럭꿀럭한 산길을 15분 정도 걸으면 동백숲으로 유명한 고찰 백련사로 갈 수 있다. 이 길이 ‘사색의 길’이다. 다산과 백련사 혜장선사의 만남이 이뤄진 길이다. 다산은 차와 바다를 찾아 백련사로 향했고 혜장은 스승과 책을 찾아 초당을 오갔다. 유배 와 제자를 가르치며 산중칩거하던 다산이 다른 철학(불교)을 통해 학식과 견문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당대의 학승 혜장 덕분일 수도 있다. 산중 차향은 그렇게 피어나 학문으로 승화됐다.다산은 강진의 아름다운 산(만덕산, 월출산)과 강(탐진강), 바다(강진만) 등 자연을 사랑했다. 특히 월출산 옥판봉을 바라보는 백운동 원림과 그 인근에서 생산되는 야생차를 각별히 좋아했다. 월출산의 남쪽 월남(베트남이 아니다) 마을에 이르면 다산의 차를 재배했던 다원이 나온다. 전남 최대 가람이었던 월남사지 앞에 차를 재배하며 제다(製茶)해온 다부 이한영 가문의 생가 다향산방과 다원, 전통차문화원이자 시음장이 함께 있다. 이한영의 선조는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이다. 1830년 해배 후 광주(현 경기 남양주)로 올라간 다산은 제자 중 막내인 이시헌에게 편지를 보낸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잘 받았다. 고맙다. 내 몸이 좋지 않아 오직 떡차(餠茶)만 의지하고 있는데 다시 곡우가 되었으니 차를 또 보내 달라”고 했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거칠었다. 반드시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곱게 빻아야 한다. 알아들었느냐?”며 나무라기도 했다.‘목민심서’를 집필한 ‘강직한 공직자’ 다산이었지만 제자에게는 단호하게 차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제자와 맺은 다신계(茶信契) 때문이다. 다산이 강진을 떠나더라도, 제자들은 매년 공부한 글과 차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이시헌은 이 약속을 평생 지켰다. 약속은 100년 이상 대를 이어 전해졌고 마지막으로 이를 지킨 사람이 이한영이다. 평생 차를 위해 살아온 그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에서 난 차가 일본 차로 바뀌어 유통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우리 고유 상표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로,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차’라는 뜻이다. 그는 하마터면 끊어질 뻔한 한국 전통차의 맥을 이었고, 백운옥판차와 금릉월산차는 다시 100여년의 세월을 지나 현 이현정 전통차문화원장에 이르고 있다. 다산이 즐기던 차가 바로 백운옥판차다. 사제 간의 다신계가 정녕 200여년 지속된 셈이다.생가 옆에는 백운동 원림(園林)이 있다.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전통 원림이다. 이곳에도 다산의 흔적이 있다. 다산은 평소에도 백운동 원림을 찾았고 1812년에는 초의선사와 함께 백운동 12경을 방문한 후 각각 그림 같은 풍경에 대한 시(백운동 12승사)를 남겼다. 여기에 초의선사가 그린 그림(백운동도)을 묶은 것이 바로 백운첩이다. 옥판봉, 산다경, 백매오, 홍옥폭, 유상곡수, 창하벽, 정유강, 모란체, 취미선방, 정선대, 운당원 등 백운동 12경이 널리 알려지게 된 일화다.람사르 협약 생태습지로 유명한 남포 습지에도 다산과 관련된 사연이 있다. 강진만과 탐진강 물길이 만나는 남포마을은 제주, 완도 등 섬과 육지의 교역 중심지로 예부터 번성했는데 다산초당 만덕산에서 내려오면 닿는 곳이라 다산의 행차도 잦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포마을의 옛 이름은 갈대밭이란 뜻의 갈밭마을. “강진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그 포구를 바라볼 수 있었고, 강진만의 색다른 정취는 그 포구에서 우러나오고 있었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 등장하는 문구다. 다산은 이곳에서 탐관오리들이 민초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세리들은 세금을 징세하기 위해 죽은 이와 갓난아이까지 군적(軍籍)에 올리는 백골징포, 황구첨정 등의 횡포를 부렸다. 도저히 군포를 감당할 수 없어 이에 항의하던 한 백성은 “아이를 낳은 내 잘못”이라며 스스로 거세하기에 이르렀다. 다산은 이 안타까운 사연을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로 남겼다.‘시아버지는 상복 벗은 지 오래고, 갓난아이는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모두 실렸네/ 억울한 사연 호소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은 크게 포효하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네/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간 방에 피가 흥건하고/ 남편은 스스로 아이 낳은 죄를 한탄하네’ ‘애절양’ 시구는 강진만 생태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남포호 전망대에 선명히 적혀 있다. 강진만 생태공원은 3282만㎡(813만평)에 이른다. 자전거와 도보를 이용한 에코 투어 코스가 마련돼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급 정보와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덕인지, 강진에는 특이한 맥주 소비 트렌드가 있다. 인구 3만 5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지만 신기하게도 술집마다 미국 맥주 브랜드인 ‘버드와이저’를 팔고 있다. 서울 등 다른 도시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심지어 생맥주 체인점에서도 버드와이저를 주문하면 따로 내올 정도다. 20여년 전 강진에는 주류를 공급하는 회사가 하나밖에 없었다. 당시 이 회사가 상대적으로 고급제품이었던 버드와이저 마케팅을 펼쳤는데, 뜻밖에 이게 먹혀들어 누구나 버드와이저를 즐겨찾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강진은 전남에서도 주류소비량이 높은 편이라 주류회사들의 주요 마케팅 대상지였다. 이런 시장 상황이 지속되며 버드와이저가 국산 맥주보다 좋다는 이미지를 남겼고 마침내 ‘군민 맥주’로 인정받게 됐다. 싱가포르에서 ‘싱가폴 슬링’을 찾아 마시듯 무더운 여름날 강진에 간다면 시원한 버드와이저 한 잔 마셔 보는 것도 여행의 작은 즐거움이 될 듯하다. 다산이 18년이나 살며 많은 흔적을 남긴 강진 땅. 농가체험숙박 ‘푸소 프로그램’과 역사문화 체험, 청정 생태 여행 1번지로 변모한 이 청잣빛 푸른 땅에 스스로 ‘아름다운 유배’를 떠나보는 것도 역병으로 우울한 이 여름, 참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강진 여행 체크리스트 무엇을 볼까 이한영전통차문화원은 이현정 원장의 재미있는 해설을 들으며 백운옥판차 등 다양한 전통차 시음과 차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월남사지 잔디밭에 앉아 다식을 들며 차 소풍을 즐길 수도 있다. 민화박물관에선 민중의 삶을 그대로 녹인 민화를 통해 조상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2층에선 성문화를 표현한 한중일 3국의 춘화를 만날 수 있다.뭘 먹을까 은행나무는 한정식 미향(味鄕) 강진에서도 이름난 한정식집이다. 반찬 그릇 위에 또 그릇이 올라가는 ‘강진한정식이층탑’ 별칭이 있을 정도다. 해물과 고기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음식의 면면이 훌륭해 어느 하나 손이 안 가는 것이 없다. 토종닭과 전복, 문어를 넣고 끓인 회춘탕(해천탕)도 여름철 복달임으로 좋다. 설성식당은 한 상 가득 돼지불고기 백반상을 받는 집이다. 조선 중후기 육군 사령부가 있던 병영면에 돼지불고기 거리가 형성돼 있다. 불맛 가득한 양념 돼지고기는 물론 각종 곁들임 찬만 해도 12가지가 넘는다. 1인 1만원꼴로 값도 저렴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