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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협력법안」 싸고 일 정가 계속 진통

    ◎「자위대파병」 자민당도 엇갈린 목소리/소장파서 신중론… 의회통과 불투명/야당은 지방보선의 쟁점으로 부각 자위대 파병법인 「유엔평화협력법안」을 둘러싸고 일본 국회에서의 논전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집권 자민당은 오는 11월4일 실시되는 아이치(애지)현 참의원 보궐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자민당으로서는 이 선거에서의 승리야말로 여ㆍ야 역전현상을 빚고 있는 참의원에서의 구성비의 격차를 1석이라도 더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엔평화협력법안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24일 공명당소속 다카키 겐타로(고목건태랑)의원이 80세로 사망함에 따라 실시되는 이번 보궐선거에는 자민ㆍ사회ㆍ공산당에선 각각 후보를 내세웠다. 이 선거에서 공산ㆍ사회당후보는 벌써부터 『자위대의 해외파병은 있을 수 없다』며 이 법안 철폐를 최대 쟁점으로 삼고 있는 반면,자민후보는 이 법안에는 언급하지 않고 후생복지문제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다만 지원유세에 나선 자민당의 니시오카 다케오(서강무부) 총무회장만이 『경원만이 아니라 인적인 면에서도 중동위기에 공헌해야 한다』라고 유권자의 이해를 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민당은 지난해 7월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에 참패,정원 2백52 의석중 1백9석을 얻는데 그쳤다. 최근 세금당의원 3명이 자민당으로 당적을 옮겨 의석이 늘어나기는 했으나 과반수 1백26석에는 크게 미달한다. 여기에 이번 법안에 긍적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민사당의원 8명과 보수계 무소속의원 5명을 합치면 숫자상으로는 과반수에서 1석정도 차이가 난다. 따라서 이번 아이치현 1석은 유엔평화협력법안의 성립을 꾀하는 자민당으로서는 놓칠래야 놓칠 수 없는 1석이다. 중ㆍ참 양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일본 국회에서 중의원의 의결은 참의원의 그것에 우선한다. 그러나 그것은 총리지명과 예산안의결의 경우 뿐이며 일반 법률안의 경우는 다르다. 일본 헌법 제59조 ①항은 『법률안은 이 헌법에 특별히 정해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의원에서 가결됐을 때 법률로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제②항에는 『중의원에서 가결되고 참의원에서 이것과 다른 의결을 한 법률안은 중의원에서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다수로 재가결한 경우 법률로 성립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유엔평화협력법안이 법률로 성립하려면 중ㆍ참 양원에서의 통과가 필요하나 자민의석수가 열세인 참의원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현재는 숫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의원에서 조차 「통과전망 불투명」의 소리가 나와 정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자민당내 와타나베파 회장인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 정조회장이 17일 『중의원에서 통과되지 못한다면 국회해산이든가 내각총사직밖에 길이 없다』고 말한 것이 당내에서 억측과 파문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간사장은 『중의원에서 자민당이 과반수를 넘고 있기 때문에 통과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함과 동시에 『참의원은 여ㆍ야가 역전되어 있기 때문에 성립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이후 총리의 책임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어쨌든 법안 자체의 본격적인 심의도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불성립」을 전제로한 의견이 나왔다는 것부터가 이례적인 것이며 이 법안의 심의과정이 순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물론 와타나베회장 발언의 진의에 대해서는 억측이 구구하다. 대권을 노리고 있는 그가 가이후 정권을 흔들려고 한 것인가,또는 당내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인가를 놓고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현재 자민당 사정을 들여다보면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 법안에 대한 반대론ㆍ신중론이 상당히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지난 16일 아침 국회에서 개최된 자민당 국회대책위원회는 1선 의원 40여명을 모아놓고 이 법안의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의원들은 『헌법판단을 좀더 엄격히 해야한다』『태도를 유보한다』는 등 신중한 대응을 요구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선배격인 고가 마코도(고하성) 국회대책부위원장이 나서 『여기는 논의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장소』라며 위압적으로 수습했다. 그러나 젊은 의원들은 그 뒤로도 『멕시코 지진때도 내 보내지 않았던자위대를 파견하려하면서 「헌법의 범위내」라는 설명은 구차하다』는등의 중얼거림을 그치지 않았다. 17일의 젊은 의원들의 모임에서도 『본심을 말하라면 나는 반대다』『선거구에서 의견을 들어보면 여성을 중심으로 반발이 강하다』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여하튼 유엔평화협력법안이 성안되기 위해서는 여ㆍ야역전의 참의원에서의 가결이 최대의 관문이다. 그러나 자민당내의 뿌리깊은 반대ㆍ신중론은 중의원 통과마저도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18일로 끝난 각당 대표질문 이후의 과정이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 저임 동남아시장/새 수출시장 부상

    저임금을 바탕으로 최근 공업화가 크게 진전,새로운 신흥공업국으로 일어서고 있는 동남아가 새로운 대형 수출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1일 상공부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EC 등 선진국 시장에 대한 수출이 마이너스성장을 하고 있으나 동남아의 아세안국가에 대한 수출은 올들어 지난 7월말까지 35.5%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말 현재 아세안지역에 대한 수출은 39억7천만달러를 보이고 있으며 앞으로 이같은 신장세는 계속될 전망인데 우리의 전체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7년 4.1%,88년 5%,89년 6.4%에서 올 7월말까지 누계로는 7.7%로 늘었으며 곧 10% 이상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동남아지역이 큰 수출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최근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으로 현지시장의 수요가 늘고 있는데다 국내 고임금을 피해 현지진출한 국내업체들의 기계설비,원부자재 등의 수출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 비 2백여차례 여진 /아키노,루손섬전역에 비상선포

    ◎“한국인 2명 사망” 현지 공관 보고 【마날라ㆍ바기오 로이터 AP 연합】 16일 필리핀 루손섬을 강타한 강진으로 공식 확인된 사망자수만도 3백11명,비공식집계로는 5백여명이 사망하고 1만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18일 새벽 피해지역에 또다시 강도 6.3,5.9를 기록하는 두차례의 강진을 비롯,2백여차례의 여진이 발생해 주민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북부 바기오시에서는 한국인 1명을 비롯한 5명의 외국인을 포함,1백42명의 사망이 공식 확인됐고 시 외곽 공업단지에서 일어난 화재로 1백50명의 필리핀 근로자들이 사망한 것으로 새로 추정되고 있으며 건물잔해 발굴작업이 진척됨에 따라 사망자수는 5백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이날 수도 마닐라와 바기오를 포함한 루손섬 전역에 비상사태와 가격통제령 및 1개월간 휴교령을 선포했으며 헬리콥터로 바기오시를 방문한뒤 구호품 수송을 위해 도로를 최우선적으로 복구하도록 지시했다. 바기오의 장의업소인 바기오 메모리얼 홈즈사는 평소 10명의 장의능력을 갖고 있으나 60∼70구의 시체가 밀려들어 관을 비롯한 장의용품이 태부족이라고 밝히고 접수된 시체중 2구는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의 것이라고 확인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진앙지인 카나바투안시에서는 필리핀­미국 합동구조반이 아코디언처럼 허물어진 6층짜리 학교건물의 잔해발굴작업을 계속했으나 50명이상의 어린이들이 매몰돼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잔해더미에서는 17일밤 이후 신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구조반은 매몰자 전원이 사망했을 것으로 판단,생존자 구조는 포기했다. 한편 프랑스는 이날 구호금으로 18만달러를,호주는 20만달러를,대만은 20만달러를 각각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일본은 30만달러의 구호금과 함께 26명으로 구성된 구조반을 파견,바기오에 도착했다. 지진 발생 직후부터 전기와 수도공급이 중단된 바기오시에서는 앞으로 2∼3주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여진으로 이미 파손된 집이 무너질 것을 우려한 대부분의 주민들이 한데서 밤을 새우고 있으며 식량과 연료,약품이 떨어져 많은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속속 빠져나가는 바람에 유령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
  • 강의중 건물무너져 35명 떼죽음/비 지진참사 현장 이모저모

    ◎주비미군,의약품 공수… 긴급 구조 ○…마닐라와 필리핀 북부를 강타한 지진의 진앙인 카바나투안시의 필리핀 크리스천대학건물 붕괴현장에는 녹색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파편더미에 깔린채 신음하고 있었으며 곳곳에 구두와 볼펜ㆍ노트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비참한 모습. 느닷없는 지진으로 이 대학6층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통에 오후수업을 진행하고 있던 교사들과 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미처 대피하지 못해 파편더미에 묻혀 버렸으며 캠퍼스 건물은 흡사 눌러진 샌드위치처럼 찌그러든 모습. ○…이곳에는 당시 대학생들과 부속중ㆍ고교의 교사ㆍ학생들은 포함,모두 5백명가량이 있다가 일부만이 용케 대피했으며 파편 더미에 깔린 학생들중에서는 17일 상오 현재 1백여명이 구조되고 35명만이 사망자로 확인돼 피해는 더 늘어날 전망. ○…이날 마침 14번째의 생일을 맞이한 세난도 멤핑군은 3명의 친한 친구들을 레스토랑 식사에 초대했었는데 같은반 학생 54명이 모두 파편더미에 깔려 결국은 그 혼자만이 유일한 생존자로 남는 비극을 겪게 됐다. ○시민들,거리서 방황 ○…한편 미국방부는 공군수색 및 구조대를 지진 현장에 급파했다고 발표했으며 클라크 미공군기지의 한 대변인은 의약품을 실은 미군 헬리콥터 4대가 바기오로 출동했다고 밝혔다. OCD관계자들은 마닐라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던 7명의 환자들이 정전으로 산소공급이 중단되는 바람에 절명했으며 다른 환자들은 주사병을 매단채 거리로 뛰쳐 나갔다고 밝혔다. 또 건물과 다리가 무너지고 교회와 도로가 갈라졌으며 마닐라 시내의 사무실과 아파트 등이 파손되고 곳곳에 화재가 발생,공포에 질린 수천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서 깔리거나 부서진 건물의 파편에 다친 사람들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경찰과 병원관계자들은 말했다. ○쿠데타보다 무섭다 ○…지진발생 순간 대통령궁에서 상원의원들과 회의중이던 아키노대통령은 건물이 흔들리자 재빨리 탁자 밑으로 들어가 30초가량 대피. 그후 기자회견장에 나온 아키노는 『지난해 12월의 군부 쿠데타때 내가 책상 밑으로 숨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탁자밑으로 들어갔다』고 시인,천재지변이 쿠데타보다 더 무서운 것임을 입증. ○세계곳곳 잇단 지진/남미ㆍ대만서도 발생 ○…필리핀에 강진이 발생한 같은 날 칠레 페루 아르헨티나 일본 등 지구촌 4곳에서 지진이 발생한데 이어 17일 새벽에는 대만에도 지진이 일어났다. 칠레 중부지방을 강타한 지진으로 전화가 끊기고 수천명의 산티아고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등 혼란이 일어났으나 인명 및 재산피해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지진이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강타한 직후 이웃인 페루에서도 2번의 지진이 발생. 리히터 지진계로 각각 4.5와 4.4를 기록한 페루의 지진은 리마 북쪽 4백㎞에 위치한 침보테와 3백30㎞남쪽 나스카에서 가장 강력하게 느껴졌다. ○손으로 딸 구조나서 ○구조작업이 펼쳐지면서 진앙지인 카바나투안에선 생과 사를 가르는 희비가 속출. 지진으로 무너진 한 카톨릭계 학교에서 구조작업으로 5명의 여학생이 구출되자 구조대원들은 일제히 환호성. 여학생들은 18시간동안 매몰됐던 탓에 눈이 부신듯 얼굴을 찡그렸으나 곧 미소를 짓는 등 생환의 기쁨을 만끽. 반면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딸의 목소리를 들은 한 아버지가 정과 손만으로 구조작업에 나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도. 올해 17세인 딸 마일렌이 건물더미 속에서 『꺼내줘요 아빠. 더 이상 참기 어려워요』라며 부르짖는 소리를 16일밤 처음 들은 그녀의 아버지 크레센시오 자보르씨는 정과 맨손으로 딸의 구조작업을 펴기 시작. ○우리교민 피해 전무 ○…외무부는 17일 상오 마닐라지진사태와 관련,『현지공관이 외무부에 보고해온 바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현지공관이나 공관원 및 가족들이 피해를 본 것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 도로파괴ㆍ악천후로 구조대 접근못해/이란대지진… 아비규환의 현장

    ◎“살려달라”절규에 장비없어 속수무책/생존주민들 여진 두려워 집에도 못가/“신이내린 시련”… 영국ㆍ이라크 등 각국서 원조나서 ○…21일 이란 북부를 폐허화한 강진으로 1만∼2만5천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란의 정신적인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짤막한 성명을 통해 이번 지진은 「신의 시련」이라고 지적하고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에게 『인내와 협력을 통해 긍지를 갖고 이 시련을 극복하자』고 촉구.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대통령도 3일간을 공식 추도기간으로 선포하고 이란국민들에게 구조작업을 돕도록 당부. ○…이란정부는 각료회의를 소집한 뒤 IRNA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슬프고 고통스러우며 무시무시한 비극으로 지금까지 2만7천여명이 사망하고 2만9천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히고 이란의 모든 정부기관은 「전면적인 비상태세」에 돌입했으며 생존자들에 대한 공중구조를 명령했다고 말했다. 이란관영 IRNA통신은 또 하메네이와 라프산자니대통령이 구조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지진피해지역을 방문했다고 밝히고 구조활동의 협조를 위해 대통령직속 특별대책반이 구성됐다고 말했다. ○일선 의료진등 급파 ○…이란 정부는 이번 지진을 「끔찍한 비극」이라고 설명하고 남아프리카와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에게 지진피해 복구를 위한 긴급 원조를 요청. 이란 당국은 특히 전주민들에게 금요일 기도회에서 헌혈을 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지진으로 인해 부상한 사람들을 위해 혈액을 공급해줄 것을 호소. 한편 일본ㆍ프랑스ㆍ스위스ㆍ영국ㆍ호주도 앞서 미국에 이어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이란에 긴급원조를 제공하겠다고 제의. 일외무성은 이날 이란과 일본간의 우호적인 관계와 인도적인 측면을 감안,이란정부의 구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이에 따라 정부는 적십자사를 통해 1백만달러를 기부할 것이며 53만9천달러 상당의 구호물자 및 의료품을 공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정부는 또한 12명의 구조대와 10명의 의료팀이 외무성 관리 2명 등과 함께 이날 저녁 이란으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봅 호크 호주총리도 호주정부는 이란의 구호활동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고 영국 민간 자선단체소속 자원봉사대 17명도 이란 지진피해 구호활동을 위해 현지로 향할 준비를 갖추었다고 이 단체 관계자가 말했다. ○“관계개선 호기”분석 영외무부도 21일 이란정부의 구호 요청에 즉각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고 영국 적십자사도 우선 지진피해자들을 위한 담요ㆍ의약품ㆍ식료품등 구입 자금으로 1만파운드(1만7천2백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제의. ○…이란의 정치 분석가들은 이번 지진으로 미국 및 서방동맹국들이 이란측에 우호적인 태도와 관계개선을 위한 의사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설명. ○EC,1백만불 제공 ○…유엔은 주제네바 구호조직을 통한 즉각적인 지원활동에 들어갔으며 유럽공동체(EC)도 1백만 ECU(유럽통화단위ㆍ1백20만달러)의 구호금을 전달했다. ○…이란 제1의 적인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21일 새벽 북서부 이란을 강타한 지진과 관련,알리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대통령에게 위로의 전문을 보냈다. 이라크 관영 INA통신은 후세인대통령이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재난에 「심심한 유감」을 표시하는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중상자 테헤란 이송 ○…희생자들이 몇t씩이나 되는 자갈과 파괴된 건물속에 파묻혀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구조요원들이 사고현장으로 몰려가고 있으나 지진으로 인한 도로파괴와 악천후로 현장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IRNA통신은 사고현장으로 통하는 주요도로가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돼 육로를 통해 현장에 접근할 수없어 도로가 복구되길 기다리고 있으며 악천후로 공중수송도 용이하지 않은 상태라고 보도. 또한 중상자들의 대부분은 현장치료가 불가능해 테헤란으로 이송되고 있다. ○…구조대가 겪고 있는 또다른 어려움은 정전. 지진으로 송전시설이 모두 파괴되는 바람에 피해지역 도시와 마을사람들은 칠흑같은 어둠에 싸여있어 조명장비 없이 투입된 구조대원들은 벽돌더미에 깔린채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부상자들의 비명을 듣고도 속수무책인 채로 발만 동동. ○한마을 4백명 사망 ○…전화로 접촉한카스피해 인근 라시트마을의 한 주민은 자기 마을에서만 4백명이 죽은 것 같다고 말하면서 살아남은 주민들도 여진이 두려워 집에 돌아갈 생각을 못하고 길거리에서 서성대고 있다고 울먹. ◎지진지역은 가장 비옥한 차생산지/대부분이 세라믹 벽돌집… 피해 극심 ○…21일 발생한 지진으로 폐허화된 이란 서북지역은 이 나라의 가장 비옥한 토지를 비롯,부유한 마을,경치가 수려한 산들로 이루어진 곳. 이란 관영 매체들은 이번 지진으로 총면적 5만㎢,주민수 4백만명으로 추산되는 길란 및 잔잔주에서만 1천9백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는데 소련 아제르바이잔공화국과의 국경으로부터 테헤란 북쪽 해안휴양지에 이르는 카스피해 해안을 품고 있는 길란주는 주로 건조한 기후의 이란에서 가장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다. 길란주 농부들의 주업은 담배경작. 남쪽으로 잔잔주까지 뻗어있는 고원지대에서는 이란이 생산하고 있는 다작물 거의 대부분이 생산되고 있다. ○…이번 이란의 지진이 엄청난 피해를 부른 것은 이지역 지각을 이루는 2개의 판상이 유동적이며 죄는 형태로 산악지대를 형성,진동을 가져왔기 때문이라는 게 지진전문가들의 진단. 게다가 피해지역의 많은 가옥들이 홍수가 잦은 침전된 평야위에 지어진데다 건축자재가 콘크리트 보강재를 사용하지 않은 세라믹 벽돌이어서 외부충격에 쉽게 무너져 내렸다는 것. ○대수롭지 않게 보도 ○…이란 언론들은 21일 2만5천여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북부이란의 대지진에 대해 별다른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이채. 니코시아에서 수신된 이란 언론매체는 지진 보도에 신속성을 보여 이란통신의 경우 지진발생 30분만에 수도 테헤란에서 진동이 감지됐다고 타전. 그러나 그뒤의 후속 보도들은 잔잔과 길란지방에서 많은 사상자가 우려된다고 짤막하게 언급했을 뿐 주로 농작물에 피해가 났을 것이라고만 전했다. 게다가 이란관영 IRNA통신의 최초 보도들은 재앙의 정도를 극적으로 과소평가하기도. 이 통신이 이날 늦게 사망자수를 1만명으로 보도한 사이 유엔주재 이란대사는 2만5천명이 죽고 수만명이 다쳤다고 말했다. 이란 라디오방송은 6시간30분 뒤에야 지진보도를 했으며 TV는 한술 더떠 12시간이 지난후에야 아무런 논평없이 북부의 지진현장 장면을 반영. 하셰미 라프산자니대통령이 지진희생자들을 위한 3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음에도 TV는 아동용 만화와 교육프로를 내보내고 이집트와 영국간의 월드컵축구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세계 10대 지진 ▲1556. 1.24 중국 산서 83만명 ▲1737.10.11 인도캘커타 30만명 ▲1526. 5.20 시리아 안티오크 25만명 ▲1976. 7.28 중국 당산 24만2천명 ▲1927. 5.22 중국 난산 20만명 ▲1923. 9. 1 일본 도쿄 14만명 ▲1730.12.30 일본 북해도 13만7천명 ▲1920.12.16 중국 감숙 10만명 ▲1290. 9.29 중국 치흘리 10만명 ▲1201. 3 에게해 10만명
  • 노대통령 정상회담 여로

    ◎“독일처럼 성과기대”… 레이건,노대통령 성원/“세계적 빅뉴스”… 3천여명 몰려 보도 경쟁/회담장주변 「외교구역」 선포… 삼엄한 경비/고르비 연설 인기… 행사장 참석회비 무려 1천달러 ○숙소 찾아와 20분 면담 ○…노태우대통령은 방미일정 첫날인 3일 하오(이하 현지시간·한국시간 4일 상오) 레이건 전미대통령으로부터 전격적인 면담제의를 받고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서 20여분간 만나 한소 정상회담등에 관해 논의. 레이건 전미대통령은 노­고르비회담이 개최되는 4일 아침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조찬을 갖고 의견을 나눌 예정인데 이날 하오 갑자기 노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면담을 제의. 이날 하오 6시15분 노대통령숙소로 온 레이건 전미대통령은 『다시 만나서 반갑다』며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으며 노대통령은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더욱 건강하다』며 미소로 답례. 노대통령은 『각하께서 8년간 미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힘의 우위 바탕위에 자유세계 진영을 끌어와 오늘의 변화를 오도록 했다』며 레이건 전미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하고 『내일 아침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만나시면 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전달해 달라』고 당부. 노대통령은 이어 『각하께서 재직하실때 북한의 김일성이 개방세계로 나오도록 한미양국이 공동노력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내가 여기 온 것은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개방세계로 나오도록 하기위한 것』이라고 강조. 레이건 전미대통령은 『대통령재직시 베를린에 가서 동서독 장벽이 허물어져야 한다고 연설한 바 있다』고 상기시키고 『한국의 통일도 동서독처럼 빠른 시간내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고 기원. ○한쪽선 반대시위도 ○…한소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샌프란시스코는 2일만해도 양측의 선발대와 일부 보도진으로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으나 노대통령이 3일 상오 도착한 후 활기를 띠기 시작. 노대통령이 숙소인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인 페어몬트 호텔에 도착하자 호텔앞에는 노대통령의 한소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주민들과 한소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동포들의 반대가 어우러져 미묘한 대조를 연출. 우리의 전통무술인 국술원 관계자와 동포 및 미국인 수련생등 1백여명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양손에 들고 북장단에 맞춰 『대한민국 만세』 『노태우대통령 환영』 구호를 외쳤다. 환영시위대 바로 옆에서는 한청연·한겨레애국청년학생회 회원 50여명이 징·쾡과리 등을 두들기면서 『즉각 중단하라 영구분단 음모』라고 외치면서 한소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노대통령의 도착장면을 취재하던 미국기자들과 길가던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호기심에서 열심히 취재하거나 지켜보면서 관심을 표명. ○일본언론들 높은 관심 ○…한소 정상회담에 관한 외국언론들의 관심이 큰 것은 미 언론보도로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언론들이 특히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주목. 요미우리·아사히·마이니치·교도통신 등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워싱턴과 서울특파원들이 샌프란시스코로 몰려와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어 한소 정상회담에 대한 일본의 관심이 얼마나 큰가를 반영. 일본언론의 서울특파원들은 정상회담후 우리측 발표와 관계자들로부터의 취재를 담당하고 워싱턴 특파원들은 소련측 발표나 관계자들로부터 뒷얘기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라고. 우리 언론사들도 청와대 출입기자 이외에 각사에서 정치·외신·사진기자들을 추가로 파견하는 외에 워싱턴 로스엔젤레스 뉴욕주재 특파원들을 투입,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호텔예약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요행 호텔을 구하더라도 호텔비가 하루 이틀사이에 크게 뛰어올라 있음을 드러냈다. 우리측 대표단과 수행원들이 묵고 있는 페어몬트와 마크 홉킨스호텔에 인접한 스탠퍼드 코트호텔은 이틀전만 하더라도 1인1실에 1백56만달러의 숙박비를 요구했으나 취재진이 몰려들면서 하루 2백10달러를 받고 있다. ○취재석만 1천5백개 ○…고르바초프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을 취재하기 위해 소련측에 출입증 발급을 신청한 취재진은 2천여명으로 추산된다는 관계자의 설명. 소련측은 우리 대표단이 들어있는 페어몬트 호텔의 그랜드 볼룸에 프레스센터를 설치했는데 취재진의 좌석만 1천5백석을 준비해 취재진의 규모를 짐작케 했다. 소련측의 프레스센터 설치에는 수십만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필요한 자금은 뱅크 아메리카그룹 허스트계 신문은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휼렛패커드,건설사인 벡텔사 등 15개 기업체와 개인들이 헌금으로 마련된 것. ○미언론,회담의의 강조 ○…워싱턴 미소 정상회담 종료와 함께 한소 정상회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미국언론들은 4일 노태우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회담이 『아시아에서도 냉전구조가 퇴색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가장 명백한 징표』라고 지적. 4일자 LA타임스지는 한소 정상회담의 의의를 미소 정상회담 못지 않게 강조하는 칼럼을 실어 눈길. 브라운대학 하버드대학의 객원연구원인 크래머씨는 미소 정상회담이 양국간 이견을 보이고 있는 재래식무기감축협상과 독일통일문제에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한데 비해 한소 정상회담은 한반도,더 나아가 동서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 그는 한소 정상회담이 단순히 한소 관계개선에 머물지 않고 한소간 수교,그리고 남북한 긴장완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분석. 그에 따르면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돌발적 행동 가능성도 배제키 어려우나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대소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소련과 관계가 증진된 남한과의 진지한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 ○3국 경호팀 합동 근무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는 샌프란시스코시당국은 양국정상의 경호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미 경호대(SS)는 소 KGB와 한국 경호팀과 합동으로 경호업무를 펼치고 있는데 이들은 미 연방수사국(FBI)과 고속도로순찰대,샌프란시스코·스탠퍼드경찰들로 부터도 도움을 받고 있다. ○…미국무부는 3일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는 페어몬트호텔과 그 주변을 특별외교구역으로 선포,경찰력을 외곽에 배치하는 등 삼엄한 경비. 노대통령의 숙소이기도 한 페어몬트호텔주변이 특별외교구역으로 지정됨으로써 이 지역에서는 시위 등이 일체 금지되고 유사시에는 호텔측의 동의없이 즉각적인 법집행이 가능하게 됐다는 것. 이에따라 일부 반한단체의 시위계획도 헌팅턴공원과 다른 지역에서 하도록 지정됐다고. ○역대 대통령들묵은 곳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는 페어몬트 호텔은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의 언덕배기인 놉힐에 위치해 샌프란시스코만을 굽어보는 지상 22층 객실 6백개의 초특급 호텔로서 미국및 외국 원수들이 즐겨찾는 명소. 이 호텔은 당초 1906년 준공예정으로 1902년에 착공됐다가 준공직전에 대지진이 발생,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그후 1년의 공사끝에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발생 1주년인 1907년 4월18일 개업. 연회및 회의실 24개도 갖춘 이 대형 호텔은 자체 오케스트라를 갖고 있는 그랜드 볼룸은 2천5백명이 식사를 나눌 수 있는 규모. 호화호텔답게 하루 숙박료만도 최저 2백만달러에서 최고 6천달러에 이르는데 호텔의 소유주는 뉴욕의 부호 벤자민 스위그씨의 아들 리처드 스위그씨.
  • 관동대지진때 수용소억류 한인들/일 군부서 인근주민 동원 학살

    ◎민간단체서 목격자ㆍ유해매장장소 일부 확인/야산 끌고가 일본도 처형/「경찰ㆍ자경단만의 소행」설 뒤엎어 【나라시노연합】 지난 23년9월1일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군대가 수용소에 억류돼있던 한국인들을 인근마을 주민들에게 강제로 분배,청부학살시키는 만행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있다. 이같은 사실은 순수한 일본민간단체인 「지바현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 조사실행위원회」회원들이 지바현 나라시노시에서 있었던 「조선인 학살사건」을 10여년동안 추적,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으로 이들을 당시 주민들이 청부학살을 자행한 현장과 조선인들이 암매장된 장소등을 목격자들을 통해 확인,현재 유해 발굴운동을 활발히 추진중에 있다. 10일 이 위원회에 따르면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나라시노시에 주둔하고 있던 나라시노 기병여단은 「재난으로 인한 조선인 격리보호」를 이유로 다카쓰(고진)수용소에 억류돼 있던 조선인 3천1백96명중 반항자들을 골라 처형하면서 이들중 상당수를 수용소 부근 주민들에게 마을별로 할당,학살시키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을주민들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들의 숫자는 대지진당시 계엄령하에 있던 일본군이 관련서류를 소각,구체적으로 몇명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목격자,증언자,관련자의 일기등을 통해 지금까지 확실하게 드러난 숫자는 20명,확인된 학살현장 및 유해 매장장소는 3곳에 이르고 있다. 이 위원회는 현재 1923년9월10일 하룻동안 다카쓰 수용소부근 3개마을에서 20명(목격자의 증언이 확실한 경우만 산정)의 「조선인」이 군대의 지시로 마을주민들에 의해 학살된 사실을 확인해 놓고 있다. 당시 마을주민들은 『조선인을 데려가 죽이라』는 군대의 통보를 받고 인근 관음사라는 사찰에 모여 조선인들을 분배받았으며 처음에는 「생사람을 어떻게 죽이느냐」며 서로 인수를 기피하다 결국 마을별로 할당된 「조선인」들을 끌고 갔다는 것이다. 이렇게 끌려간 「조선인」들은 마을의 야산이나 벌판에서 일본도로 목이 잘려 매장됐다. 이 위원회 회원인 이시와타 노부오씨(우도연남ㆍ48ㆍ교수)는 『관동대지진때 6천∼7천명의조선인이 주로 일본경찰과 자경단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만 알고 있던 이들 주민들도 군대가 직접 학살 대상자들을 선정,민간인들에게 분배해 죽이도록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 처음 공개된 마쓰시로 「제2대본영」

    ◎한인원혼 떠도는 「일제」발악의 현장/지하호 13㎞… 「본토결전」위해 극비공사/한인노무자 7천명 강제동원… 천여명 사망/맨발ㆍ맨손으로 발파작업… 하루3∼5명 희생당해 【마쓰시로 연합】 일본이 패망 직전 일왕의 임시 거처와 전시최고사령부(대본영) 구축을 위해 한국인 노무자들을 강제 동원,극비리에 건설하던 「마쓰시로 대본영」 내부가 22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본군의 「제2대본영」으로 불리는 마쓰시로 대본영은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11월11일 상오 11시 대규모 발파작업을 시발로 도쿄 북서쪽 6백㎞지점의 나가노(장야)현 나가노시 마쓰시로읍 일대 3개 야산의 땅밑에 구축하던 지하호로 당시 현지 경찰과 헌병들조차도 공사사실을 모를만큼 철저히 은폐돼 왔던 곳이다. ○3개 야산에 구축 태평양전쟁말기 사이판섬 함락(44년 7월) 등으로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이 본격화되면서 일본군 수뇌부가 도쿄 대본영을 폐쇄,이른바 「본토결전」태세를 갖추기 위한 배수진으로 마련됐던 이 대본영에는 최소한 한국인 노무자 7천여명이 지하갱도굴착,발파작업 등에 강제 동원돼 1천여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이 패망하기 하루전인 45년 8월 14일까지 9개월동안 계속된 대본영 건설공사에는 당시 돈으로 2억엔이라는 엄청난 예산과 연인원 3백만명이 투입돼 패전으로 공사가 중단될 때까지 총연장 13㎞의 지하호가 완성(공정률75%)됐으며 발파등 가장 위험하고 힘든 막장작업에는 강제징용된 한국인들이 동원돼 하루 3∼5명씩 목숨을 잃은 것으로 생존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요미우리(독매),아사히(조일)등 일본 취재진 50여명과 함께 이날 처음으로 한국탐사팀과 취재진에 공개된 대본영지하갱도 안에는 당시 한국인 노무자들의 참혹했던 상황을 짐작케 하는 낙서,유류품 등이 곳곳에서 발견됐으며 지상에 세운 소위 일왕침실은 완공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무학산,상산 등 해발 1백∼2백50m 높이의 3개 야산 지하에 파들어가던 대본영에는 왕궁,참모본부,왕족학습원,군사령부,정부행정기관 및 언론사가 들어설 수 있도록 돼 있다. ○곳곳에 한인 유류품 총연장 13km의 지하호는높이 3m,폭 3m의 통로가 바둑판처럼 뚫려 있었으며 지질이 단단한 암반이어서 어떠한 공습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 이곳을 공개한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현재 대본영의 지상건물과 갱도 일부는 지진관측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완공된 상태의 일왕 침실은 10평 크기의 일본 고유 다다미방으로 공습위험이 있을 경우 대피하도록 별도의 지하궁전이 마련돼 있었으나 이곳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본영 부근 시노노이 아시히 고교 지하호 연구회가 펴낸 조사서와 와다 노보루(화전등)의 저서 「송대 대본영」에 따르면 한국인 노무자들은 무학산지하호 부근에 78동,상산 지하호 부근에 1백29동등 모두 2백40여개동의 급조막사(반장)에 20∼30명씩 나뉘어 기거하면서 거의 유폐된 상태에서 기계ㆍ노예처럼 혹사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당시의 증언자나 자료가 거의 없어 사망자 숫자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노예처럼 혹사당해 다만 하루 3∼5명씩의 한국인 노무자들이 발파사고,갱붕괴사고 등으로 실려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으며 일왕침실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은 특정공사가 끝나면 20∼30명씩 집단으로 한밤중에 끌려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극소수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최소한 1천여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일본신주대 학생들이 최근 작성한 보고서 등 마쓰시로 대본영에 관한 조사서들은 『특히 일왕의 임시거처에 동원된 한국인의 경우 등 뒤로 수갑이 채워져 어딘가로 끌려갔으며 이들이 산중에서 총살돼 매장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건설현장에 동원됐다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본영 부근에 살고있는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인 최태소씨(68ㆍ본적 경남 합천군 가야면 이천리)는 이날 현지 취재에 동행,자신이 직접 굴착했던 곳을 일일이 기억해내며 참담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최씨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침목이 깔려있던 흔적과 천장,벽에 무수히 뚫려 있는 다이너마이트 발파용구멍 등을 가리키며 45년전의 공사현장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해냈다. ○사담땐 죽도로 구타 최씨가 규수지방에서 거주하다 건설현장에 끌려온 것은 24살 때인 1944년 10월말쯤. 지금은 논ㆍ밭으로 변해버린 상산지하터널앞 광장에는 수백채의 조선인 숙소가 빽빽히 들어찼고 그때부터 최씨는 줄곧 인근 마을에서 건설공사 현장 잡역부로 일하면서 거주해왔다고 회상했다. 최씨등 한국인 노무자들이 주로 맡았던 일은 하루 12시간씩 맨발 맨손으로 낙반 가능성이 있는 곳이나 막장 등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한창 나이였던 덕분에 죽을 고비를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최씨는 『50∼60대 한국인 노무자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중노동이나 사고로 숨졌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일본인 작업반장들은 1개조 4명으로 점조직처럼 구성된 작업반원들이 다른 조 사람들과는 물론 반원들끼리도 사담하는 것을 일체 금지시키고 이를 어겼을 경우 몽둥이 죽도 등으로 무참히 구타했다』며 『지금 징용자수나 사망자 수가 유곽도 잡히지 않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인력 더 많을듯 지난 87년 8ㆍ15해방 42주년을기념해 한국인 강제징용 사실을 다룬 「머나먼 여행」이라는 책을 발간했던 하루카 나루타비씨(50ㆍ여)는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현장에 동원됐던 한국인 징용자수와 사망자수을 좀더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날 현지취재에 동행했던 하루카씨는 『4살때인 1944년 10월초 부모를 따라 마쓰시로로 이사했다』며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로는 하루 평균 한국인 노무자 5∼6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하루카씨는 『현재 알려진 7천∼1만명의 한국인노무자 투입은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것』이라며 암반 굴착작업이 하루에 1∼5m씩 진행된 것으로 미루어 볼때 9개월동안 동원된 인력은 이보다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루카씨는 『현재 일본정부는 강제연행자에 대한 공식적인 문서가 다 소각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디엔가 명부가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일본정부의 정확한 기록을 찾아내는 것이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의 진상을 파헤치는 요체』라고 강조했다.
  • 후지모리 후보 예상밖 2위 득표/페루 일본계 대통령 나올까

    ◎점진 개혁ㆍ깨끗한 정치 표방 선거돌풍/좌파도 지지… 결선투표서 당선 가능성 「동방으로부터의 지진」. 페루의 정치분석가들은 지난 8일 실시된 페루대통령 선거에서 일본 이민 2세 알베르토 후지모리(51)가 중도우익의 민주전선연합 후보 바르가스 요사(54)에 이어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한 데 대해 이같이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한달전 여론조사에서 불과 1% 지지율에 그쳤던 후지모리가 30.7%의 지지율로 14% 득표에 그친 집권사회민주 아프리타스당의 알바 카스트로 후보를 제치고 2위를 차지한 것만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아프리타스당등 좌익세력이 33.8%의 지지로 1위를 차지한 요사 후보의 집권저지를 위해 후지모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선언,오는 5월말 또는 6월초에 치러질 결선투표에서 남미 최초로 일본계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기에 이르러서는 「대이변」이란 말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후지모리의 급부상의 배경은 여러 측면에서 분석되고 있다.〈관련기사 12면〉 첫째 연2천7백%를 넘는 높은 인플레와 10년에 걸친 모택동주의 게릴라 센데로 루미노소(빛나는 길)와의 내전,사회ㆍ경제위기를 부른 집권당의 실정에 대한 불만,둘째 요사 후보가 국영기업의 민영화등 충격요법을 내세워 요사가 당선되면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것이란 우려를 부른 것과는 달리 「점전적 개혁」이란 온건정책을 내세움으로써 국민의 호응을 받은 점,셋째 「정직ㆍ기술ㆍ일(HonestyㆍTechnologyㆍWork)이란 그의 선거구호가 그가 경제대국인 일본계라는 점과 함께 근면한 일본계 페루이민들의 좋은 이미지와 부합됐으며 그가 당선될 경우 일본의 지원을 받아 경제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과 넷째 깨끗한 정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워 경호원도 대동하지 않은 채 트랙터로 전국을 누비며 각 가정을 방문한 선거운동이 「보통사람」으로서 페루국민들의 가슴속에 파고든 점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후지모리 자신마저 놀랍게 받아들이는 이변을 낳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지모리가 결선투표에서 남미 최초의 일본계 대통령으로 탄생된다 해도 경험전무의 정치초년병인 그는 어떤 정치적 수완을 발휘,곤경에 처한 페루경제를 소생시키고 내전종식을 갈망하는 페루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것인가라는 힘겨운 숙제를 떠맡아야만 하기 때문에 앞날이 밝다고는 하기 어려운 것 같다.〈유세진기자〉
  • 불안한 기상과 대기오염(사설)

    오늘이 「세계 기상의 날」이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이 날을 정한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30년전 이날을 제정할 때만 해도 기상의 이상이나 대기의 변화와 그 미래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과학공상소설 읽기와 같았고 기상전문학자들의 현학적 관심처럼만 보였었다. 그러나 불과 30년새 기상의 문제는 인류 대부분이 실감하게 된 현안이 되었다. 유럽에선 바로 지난달 이상살인 폭풍으로 무려 2백여명이 사망했다. 그런가하면 미국에서는 이 겨울 어느 때보다 이상한 난동을 살고 있다. 이런 현상들이 모두 여전히 확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온실효과에 의한 결과임을 보다 더 믿게 하고 있다. 따라서 기상현상은 공해오염문제와 한데 엉켜 이제 문명양식의 근본적 전환까지를 논의하게 된 세계 초미의 과제가 되었다. 우리의 관심도는 아직 여기에까지 미쳐 있지 않지만 유엔만 해도 지난해 11월 90년대를 「자연재해 경감 국제 10년」으로 선포했다. 매년 10월 첫 수요일을 「자연재해 경감의 날」로 정하기도 하고 세계의 기상ㆍ지진ㆍ수문ㆍ방재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까지 조직했다. 각국에 국가위원회의 설치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은 이미 국가위원회를 설립했고 또 각각 이같은 의지를 개별적으로 선포했다. 우리도 실은 대기의 심각성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보고 있다. 산성비의 확인 단계를 지나서 서울은 이제 상존하는 산성안개 속에 있다. 누구나 숨이 막히는 것을 체감하지 않을 수 없고 눈아픔과 악취의 불쾌감까지 경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공해스모그 현상이 서울의 몇 지역에서는 4일 이상씩 적체되고 있다. 1952년 런던 살인스모그 현상으로 4천명 이상 사망했던 사건이 7일간 적체가 계속된 때였음을 상기하면 우리의 현단계가 얼마나 위험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우리의 현상을 확인하는 기초연구기능조차 출발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험과 기술수준으로 올 여름 대홍수를 예견하고 있다. 올들어 2월까지의 강수량만 해도 예년 평균을 2.5배나 넘어 이상증상으로 구분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환경문제를 얼마쯤 참고우선 산업발전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지향은 실은 국민적 공감을 가져온 것이었다. 하지만 현상을 좀더 침착히 바라볼 때 이제는 국민이 더 발전을 요구하더라도 국가가 이를 균형에 맞추어 조절하는 데에 나서야 할 만큼 우리의 기상과 대기의 문제가 확대돼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이 기상변화에 직결돼 있는 대기오염의 문제는 나라별로 각자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지구가 하나뿐이기 때문에 단 하나의 문제이다. 이 하나의 지구는 자원의 무한한 보고도 아니고 한정없이 쓰레기를 처넣어도 끄떡없을 수 있는 쓰레기통도 아니다. 대기는 물을 바꾸고 물은 토양을 바꾸며 이 토양은 식량을 오염시키고 다시 대기로 돌아가게 하는 하나의 유기체가 지구이다. 서울 문래동이나 김포공항의 심각성만 먼저 떼어내 말할 일이 아닌 것이다. 세계의 기상변화도 매일 점검하면서 우리의 대기에도 보다 전면적인 대응구조를 시급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기상의 불안한 나날이다.
  • 일에 강진/진도 6ㆍ6

    【도쿄 AP 연합】 20일 하오 일본 중남부지역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도쿄 중심가의 건물들이 1분이상 흔들리는 강력한 진동이 있었으나 이 지진으로 인한 즉각적인 사상자나 재산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일본 관리들이 말했다. 이날 하오 3시53분쯤 발생한 이 지진으로 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고층빌딩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건물 바깥으로 대피하고 신간선의 운행이 즉각 중단되는 소동이 일어났다고 일본의 NHK방송이 보도했다. 중앙기상국은 이 지진이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6ㆍ6을 기록했으며 진앙지는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1백㎞떨어진 해저였다고 전했다.
  • 「여대야소」 신 정국의 향방 긴급(대담)

    ◎신당 권력구도 적응,내부통합이 과제/외피적 통합… 대화ㆍ타협으로 극복해야/야 극한투쟁… 정국대립 첨예화 예상/중도 탈피,혁신정당화가 평민 활로/비호남ㆍ호남 대결 우려… 「지역감정 해소책」 기대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ㆍ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22일 청와대에서 긴급회담을 갖고 민정ㆍ민주ㆍ공화당을 주축으로 하는 신당창당에 합의함으로써 앞으로의 정국이 숨가쁘게 돌아가게 됐다. 특히 2년여동안 지속되어 오던 4당체제가 신당의 출현으로 「여대야소」의 2당체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풍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당창당 선언을 계기로 정계개편의 의의와 전망 및 문제점을 송복 교수(연세대) 신희석 교수(외교안보연구원)의 대담을 통해 알아본다. □참석자 송복 신희석 ▲송교수=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을 주축으로 한 신당 출현은 한국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대지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특히 통합신당은 정치지도자들의 담합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정치적 행위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한국정치사의 대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50년대 보수대연합이 이루어졌지만 우리와는 정치적ㆍ사회적 환경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동경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신박사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신교수=3당합당 선언에 따른 정계개편은 한국정치사에 있어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기존정당의 통폐합은 적지 않게 이뤄졌지만 여당,야당세력들만의 통폐합에 불과했습니다. 이번과 같이 정치지도자,이념을 전혀 달리하는 3개정당이 동시 통합한 예는 이웃 일본정치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변혁입니다. 3당통합은 현 4당구조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감정이 탈피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과 함꼐 상당히 빠른 속도로 개편작업이 이루어진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3당통합은 여러모로 일본 자민당창당과 비교됩니다. 일본 자민당은 지난 55년 보수주류와 비주류간의 통합으로 결성된 이래 지금까지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일본 상황과 현재의 우리 사정을 살펴볼 때 크게 3가지 유사점을 발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양측 모두 획기적인 정계개편을 이뤘다는 점이고 둘째 이러한 개편이 국내정치의 전환기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셋째로는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 등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야기된 위기감을 보수정치권이 감지,이를 모면하겠다는 배경을 공통분모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유사점에도 불구,양측간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노정되고 있습니다. 먼저 일본의 통합은 내각책임제하에서 이뤄졌지만 우리의 경우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일본은 당시 보수파간의 통합인 만큼 혁명적인 것으로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전혀 이념을 달리하는 3당간의 통합이기 때문에 가히 혁명적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은 주류와 비주류에 의한 보수통합인 반면 우리의 경우 보수여당과 중도야당간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당시 일본은 2차대전 종전 후의 과도기적 체제였지만 우리는 서울올림픽 개최등 국력향상과 민주화 물결속에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국제정치상황도 50년대는 미소간의 대립냉전기였지만 현재는 신보수주의 물결속에서 경제제일주의를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당시 사회당ㆍ공산당 등 야당의 강력한 등장에 보수세력이 위기의식을 느껴 이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통합을 추진했지만 우리는 민주정치 안정과 효과적인 정국운영이라는 측면에서 3당통합을 추진한다는 데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송교수=2년전 국민들이 만들어준 4당체제를 정치지도자들이 자의적으로 바꾼다는 점이 이번 신당창당을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 시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계개편 추진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첫째 우리의 정치상황은 90년대를 맞았으나 60년대의 초기민주주의 구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역사발전에 맞게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1인당 GNP 80여달러에서 현재 50배가 되는 4천여달러로 급성장했으나 정치구도는 30여년전이나 똑같아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대다수 국민이 정계개편의 필요성에 합의하고 있습니다. 둘째 지금까지의 4당체제는 각당의 이념ㆍ지향ㆍ정책이 다른데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지역성에 기인하고 있어 적어도 인위적이라도 4당구조는 전진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점이고 셋째 평민당이 비교적 선명성을 내세우지만 혁신정당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4당 모두가 보수당이기 때문에 정책과 이념대립보다는 지역성ㆍ감정적 싸움으로 극한상황으로 치닫기 쉽다는 점입니다. ▲신교수=송교수 말씀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정치풍토ㆍ사회구조ㆍ정치문화 등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만큼 일본 자민당 모델에 의한 3당통합은 필요불가결하면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의원내각제ㆍ양원제ㆍ권력분산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중심제ㆍ단원제ㆍ중앙당중심체제로 짜여진 우리 정치상황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또 야당의 존재양상도 서로 다른데 일본의 경우 사회당ㆍ공명당ㆍ민사당 등 야당지도자들이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들 야당은 정책이나 이념을 중심으로 구성됐고 총재직도 순환임기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 야당은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대권도전 의사를 갖고 있으며 정책ㆍ이념이 아닌 인물ㆍ지역에 의해 정당이 만들어져 정당의 인물화ㆍ지역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파벌간 영수에 의해 대권교체가 손쉽게 이뤄지는 일본 자민당 정권모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사실 일본 자민당이 35년 이상 장기안정속에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파벌정치를 통한 견제와 균형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는 이러한 「뿌리」가 없기 때문에 자민당식으로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송교수=신교수 말씀대로 50년대의 일본 자민당과 90년대의 우리 정치환경은 다르지만 이번에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이 합의에 의해 개편하게 된 데는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하겠습니다. 민정당이 집권당임에도 불구하고 「여소」라는 상황에서 정국을 열어가는 데 한계성이 있었으며 민주ㆍ공화당이 야당이라고는 하나 제1ㆍ제2당 싸움에서 제3ㆍ제4당은 정국운영의 뒷전으로 밀려나정치현장서 사라지지 않나 우려하고 있어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고 하겠습니다. 이로 인해 3당은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개헌수준의 정계개편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의 사무엘 헌팅턴이 『양당제는 영국과 미국에서만 잘 운영되어오나 고전적인 이 제도는 정치사적 측면에서는 현대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듯이 2차대전 후 프랑스ㆍ영국ㆍ스칸디나비아제국 등 세계각국의 보편적 정치구도는 거대한 「통합정당」과 이에 대응하는 「0.5정당」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0.5정당」이야말로 「통합정당」이 국정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국민들의 거부로 쫓겨나게 된다는 점을 지적,경고적인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지난 50년 이후 일본에서는 자민당 이외의 여타정당은 경고적인 「0.5정당」이었으며 이번 3당의 할당도 전후 자유주의국가 정당의 보편적인 정당개편 유형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신교수=일본식의 정치구도 도입이 우리 정치상황에서 어떤 문제점을 노출시키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신당내부의 정치질서 재편성인데 지금까지 3당은 여야로 나뉘어 대립과 갈등을 반복했다는 사실을 두고볼 때 과연 외형적인 통합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는지 의문시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도 대립과 갈등이 아닌 대화와 타협에 의한 상호인정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다음으로 그동안 야당지도자로 군림해 왔던 김영삼총재와 김종필총재가 신당내에서 어떠한 지위를 차지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최근 일 자민당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총재와 내각총리대신 분리론과 마찬가지로 신당의 총재와 국정최고책임자를 분리시키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당창당에 이은 내각책임제 개헌은 대통령중심제보다 강력한 리더십이란 측면에서 뒤떨어지는 만큼 남북분단의 현실을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송교수=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3당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이름아래 3세력이 필요시에는 힘을 합치고 평소에는 떨어져 있는 「분권구도」라는 느낌입니다. 신당의 「분권구도」에 우리 정치인들이 얼마나 잘 적응할 지가 앞으로의 문제입니다. 조선조 이후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집권화구도」에 익숙해 왔기 때문에 동업자적 조직운영인 「분권구도」에 정치인들이 얼마나 익숙해질 수 있느냐가 신당운영 성패의 관건입니다. 이에 비해 일본 사회는 분권화에 익숙하며 자민당을 중심으로 이같은 구도가 잘 이어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통합신당의 내부문제로는 그동안 3김이 정치자금의 센터역할을 맡아와 정치집단의 축을 이루고 있었는데 통합후에도 정치자금의 주축역할을 하게 되면 신당이라는 한 우산 아래에서 분열의 소지가 남아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밖에 신당출현이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평민당을 고립시킴으로써 정국을 호남 대 비호남으로 갈라놓을 우려가 있습니다. ▲신교수=기존의 다당화에서 양당화 현상으로 이양돼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또 평민당은 통합신당에 거의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의 3당통합이 자칫 호남세력과비호남세력으로 편가르기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더욱이 신당의 장기집권이 예상되는 만큼 새로운 야당은 만년야당이 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대여투쟁을 전개할 것으로 점칠 수 있습니다. ▲송교수=신당이 나타나면 정계구도도 보혁구도로 탈바꿈되어야 합니다. 평민당은 앞으로 보혁의 양날개에서 탈피,혁신정당으로서의 외모를 보여줘야 하며 국민들도 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평민이 중도 온건으로 남으면 우히려 운신의 폭이 좁고 존재 이유도 명확하지 못합니다. 평민당이 재야세력등 혁신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할 때 평민의 구조도 튼튼해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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