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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수의 헌법 너머] 떨쳐내야 할 우리 안의 ‘국가주의’

    [이종수의 헌법 너머] 떨쳐내야 할 우리 안의 ‘국가주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난제처럼 필자가 밥줄로 삼고 있는 헌법학에서도 국가가 먼저냐, 헌법이 먼저냐 하는 곤혹스런 물음이 오래된 논쟁거리다. 근대의 지평 위에서 한쪽은 정치공동체인 국가가 먼저 실재하고 헌법은 단지 그것에 성격을 부여한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다른 한쪽은 헌법의 본원적 기능이 입헌적 국가의 창설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를 반박한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전자의 입장에 서있는 카를 슈미트는 말년까지도 “아직도 헌법이 국가를 만드는가?”라는 반문을 되뇌었다. 어쨌든 헌법과 국가는 이제 서로 떼어낼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고, 헌법국가일 따름이다. 즉 국가라는 틀 없이는 헌법이 존재할 수 없고,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권력을 통제하는 헌법이 없는 국가는 토머스 홉스가 말하는 괴물 그 자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논쟁이 극단적으로는 헌법과 국가 간의 깊은 불화(不和)를 예정하는 가운데 많은 이들에게 때로 편 가르기의 선택을 강요한다. 입헌주의와 더불어 헌법국가는 어느새 지구상에서 보편적이고 압도적인 현상이 됐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 헌법국가가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대혁명이 그랬듯 권력과 기득권 그리고 완고한 편견에 맞서서 새로이 주권자로 등장한 시민들이 흘린 피와 무수한 죽음을 통해 쟁취한 결과물이다. 권력의 헤게모니 변동뿐만 아니라 체제 자체의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왔기에 ‘시민혁명’으로 불린다. 그런데 이후에 진정한 시민혁명이 없이 그저 주어진 헌법국가를 마주했던 많은 나라들이 비슷한 고민에 처했다. 대표적으로 독일이 그러했다. 시민혁명을 거쳐 온 프랑스처럼 ‘국민주권’이 아니라 바뀐 상황 속에서 ‘국가주권’ 또는 ‘법주권’으로 궁색하게 나름의 법리를 새로이 모색하다가 끝내 국가주의로 경도돼서는 양차 세계대전을 호되게 겪고서야 뼈저린 반성과 성찰 속에서 비로소 자유롭고 민주적인 헌법국가에 안착했다. 우리도 이와 다르지가 않다. 일제의 강점으로 구체제가 무너지고서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분단의 상흔과 함께 주어진 헌법국가였다. 이렇듯 시민혁명의 전통이 부재하고 과거 청산이 미흡했던 가운데 친일파 등의 기득권 세력이 온존했고, 분단과 한국전쟁에 뒤따르는 이념적 갈등 등으로 숱한 질곡(桎梏)의 시간을 거쳐 왔다. 전통의 부재에 뒤따르는 허전함 탓이겠으나, 일각에서는 그간 벌어진 여러 사건들에다 ‘혁명’을 수식어로 갖다 붙이곤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혁명이 아니라 불의(不義)한 권력자를 내쫓거나 헌법전의 일부를 바꾼 ‘의거’ 내지 ‘봉기’이다. 이처럼 3·1독립운동, 4·19민주의거,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그리고 국정농단에 분노해 시민들이 들고일어난 최근의 촛불봉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의 여러 저항적 봉기들이 헌법국가로의 경로를 어렵사리 이끌어 왔다. 그리고 이렇듯 중첩된 여러 사건들과 함께 사실상 ‘시민혁명’에 필적하는 나름의 사회적 성찰과 시민사회의 역량이 축적됐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아직은 아닌 모양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에 즈음해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망언과 빨갱이 등의 색깔론이 여전히 난무하고 있다. 몹시 유감이고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최근의 남북한 및 북미 관계 개선과 재집권에의 초조함 등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 이면에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국가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국가의 존립 그 자체가 맹목적인 절대선인 셈이다. 국가대항전인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대회가 그렇듯이 모든 나라에서 어느 정도의 국가주의는 존재하고, 공동체의 통합 차원에서 때로는 긍정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타자에 대한 배타와 차별로 이어질 때는 악이 된다. 이러한 까닭에 위르겐 하버마스는 애국심이 아니라 애헌심(愛憲心)을 옹호한다. 민주헌법국가에서 국가는 더이상 그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지켜내야 할 지고지선의 대상이 아니다. 헌법국가의 존재 의의와 목적은 무엇보다도 정치공동체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그간 겪어 온 역사적 질곡 끝에 한층 성숙해진 시민사회의 자정(自淨) 역량을 기대할 따름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두려워야 망언도 색깔론도 비로소 그친다.
  • 번뇌에 물들지 않은, 행복의 나라… 가난하지만 넉넉한, 말간 얼굴들

    번뇌에 물들지 않은, 행복의 나라… 가난하지만 넉넉한, 말간 얼굴들

    태국 방콕에서 부탄행 항공기로 갈아탄 지 약 세 시간 반. 창 밖으로 만년설이 쌓인 히말라야가 보였다. 부탄이었다. 비행기는 험준한 산골짜기 사이를 파고들며 곡예하듯 비행해 파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해발 2235m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중 한 곳이다. ●곳곳 험준한 산골짜기·비포장 도로·아찔한 협곡 부탄 여행의 첫 목적지는 수도 팀푸였다. 공항에서 팀푸로 가는 길, 비포장 도로는 아찔한 협곡 사이를 지났다. 실수하면 아득한 벼랑 아래로 차는 굴러떨어질 것이다. 가이드는 부탄의 길이 대부분 이렇다고 설명했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버스는 산등성이를 힘겹게 오른다. 부탄 땅의 대부분은 비탈과 협곡이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지와 가축을 기를 수 있는 초지는 국토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시내로 들어서자 극심한 교통정체로 차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팀푸에서 반나절을 보내며 받은 부탄의 첫인상은 부탄이라는 나라가 상상했던 것처럼 신비하고 고요한 도시가 아니라는 것. 팀푸에는 멋진 손동작으로 수신호를 하는 경찰관이 있었고, 맛있는 에스프레소와 라테를 파는 카페가 있었고(전통 복장을 입은 금발의 외국인들이 커피를 마시는 장면은 좀 신비로웠다), 부탄 록밴드의 공연을 보며 춤을 출 수 있는 클럽도 성업 중이었고, 잘생긴 바텐더가 만들어 주는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바도 있었다.부탄에서의 어리둥절한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 본격적인 여행에 나섰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팀푸의 따시최종. 종(Dzong)은 행정과 종교를 관할하는 성을 일컫는 말이다. 티베트 침공에 대비해 세웠는데 지금은 행정부와 사법부, 지역 관할 사찰이 함께 들어선 부탄만의 독특한 복합 청사다. 따시최종은 부탄에 있는 수십 개의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정부청사 역할을 한다. 2008년 이전에는 궁궐로 사용됐으나 이후로는 국왕의 집무실이 있는 정부청사 및 사원으로 용도가 변했다. 4대 왕이 과감히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면서부터 일어난 변화다. 따시최종과 함께 꼭 가봐야 할 곳은 푸나카에 자리한 푸나카종이다. ‘대행복의 궁전’이라는 뜻으로 부탄 전역의 수십 개 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전통 옷을 입고 술을 즐기는 부탄 사람들 부탄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 복장을 입는다. 남자는 우리 한복과 비슷한 ‘고’를 입고 서양식 구두를 신는다.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벅지에 이르는 X자형 띠인 ‘캄니’를 두른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원이나 정부 기관에 갈 때 착용한다. 일종의 예를 갖춘 정장이다. 여자는 복사뼈까지 내려오는 치마인 ‘키라’를 입는다. 화려한 색으로 치장된 천에는 독특한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다. 공무원과 호텔 종업원 등은 반드시 전통 복장을 착용해야 한다.부탄 사람들의 식탁은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밥에 고기 요리를 포함한 서너 가지 반찬을 곁들인다. ‘에마다씨’는 빨간 고추에 산양 치즈를 더한 음식으로 우리 입맛에도 딱 맞는다. 고기 요리도 즐긴다. 시내에는 가공된 고기를 수입해 판매하는 정육점도 많다. 불교 국가인 부탄에서는 살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죽은 고기를 모두 인도에서 수입한다. 부탄 사람들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술을 즐긴다. 우리의 소주와 비슷한 증류주인 아락을 직접 담가 먹기도 하고 위스키와 맥주 등도 많이 마신다. 부탄 맥주인 드룩 비어는 우리나라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 부탄은 2007년부터 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한 세계 최초의 금연 국가지만 외국인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자유롭게 흡연할 수 있다. 운 좋게 부탄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레포츠인 활쏘기를 구경할 수 있었다. 부탄 말로 ‘다체’라고 부르는 이 활쏘기는 부탄의 국민 스포츠다. 표적과의 거리는 무려 140~150m. 올림픽 양궁 종목 50m의 세 배에 이른다. 형식은 양궁보다는 국궁과 닮았다. 전통 의상을 입은 선수들이 마주 보고 과녁에 차례로 활을 쏜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먼 거리에 있는 과녁을 기가 막히게 맞히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점수가 잘 나오면 같은 편 선수들이 환호를 보내고, 못 나오면 상대편 선수들이 놀리는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불심으로 가득한 나라 부탄은 불교 국가다. 국민 모두가 불교신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거리 곳곳에는 불경을 적은 깃발인 룽다가 펄럭이고 사람들은 곳곳에 설치된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다. 부탄의 불교는 8세기쯤 인도 북부에서 태어난 파드마삼바바가 전했다.가장 유명한 사원은 ‘탁상곰파’(탁상사원)다. 부탄을 광고하는 포스터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8세기 호랑이를 타고 날아온 파드마삼바바가 아득한 절벽 위에 이 절을 짓고 수도했다고 전한다. 해발 3140m에 자리잡고 있다. 탁상은 부탄말로 ‘호랑이의 둥지’라는 뜻이다.팀푸 중앙에는 3대 국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거대한 탑인 ‘메모리얼초르텐’이 있는데 팀푸 사람들은 출근할 때 이 탑을 세 바퀴 돌고, 퇴근할 때 다시 세 바퀴 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이토록 간절한 걸음과 아득한 눈빛을 본 적이 없고, 그토록 행복한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부탄 서부 지역 왕디에 자리한 네젤강 사원은 부탄 불교의 시원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부탄의 불교는 티베트 불교에 인도의 불교가 더해진 것으로 주문과 주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밀교다. 파드마삼바바는 경전을 부탄 곳곳에 숨겨 놓았는데 네젤강 사원은 그 가운데 하나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왕디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한 사원은 고요하면서도 장엄하게 서 있다.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사원은 아마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그다지 모습이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곳에 머물며 수행하는 스님들이 읊조리는 경전 역시 당시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치미사원도 재미있는 곳이다. 푸나카 치미 마을에 있는 남근을 숭배하는 독특한 사원이다. 이 사원에는 기이한 행적으로 유명한 둑파퀸리(1455~1529)라는 스님의 남근이 모셔져 있다. ‘5000명의 여자를 취한 자’, ‘히말라야의 미친 걸승‘으로 불렸던 둑파퀸리는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깨달았다는 독특한 수행법을 설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둑파퀸리는 입적하면서 자신의 남근을 잘라서 그 속에 영험한 기운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이 남근은 사원에 잘 모셔져 있는데 아기를 낳지 못하는 이들에게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일본의 사상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의 책 ‘사색기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역시 이 세상에는 가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직접 그 공간에 몸을 두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그런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순간에 내 육체를 그 공간에 두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 흔히들 부탄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한다. 행복지수 세계 1위. 국민의 97%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다. 1999년 부탄의 국가행복지수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행복을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탄행복연구소’ 도지펜졸 소장은 “부탄은 국민의 행복을 모든 정책의 중심에 놓고 국가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어떤 정책도 국민의 행복과 부합하지 않으면 시행하지 않습니다. 모든 정책은 10~15명으로 구성된 ‘국민총행복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총점 78점을 얻지 못하면 자동으로 폐기됩니다.” 이를 위해 부탄 정부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정책을 펴고 있다. 천연자원을 보존하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헌법에 숲을 전국토의 60% 이상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가축 방목과 벌채, 채광은 엄격하게 통제된다. 부탄은 가난한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약 340만원)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탄을 여행해 보면 이들이 절대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넉넉하고 친절한 부탄 사람들 앞에서 한국의 내가 지금까지 가난하게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절대로 행복을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죠.” 도지펜졸 소장의 말이 부탄 여행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 여행수첩 부탄은 우리나라 면적의 약 40%, 경기도와 충청도를 합한 넓이다. 언어는 종카어와 영어. 통화는 눌트룸을 사용한다. 1눌트룸은 약 17원. 달러로 바꿔 가서 현지에서 환전해야 한다. ATM 가능.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로 6~8월은 우기다. 부탄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방콕이나 델리, 카트만두를 경유해야 한다. 부탄은 개별 여행이 금지돼 있다. 1일 최소 200달러의 체류비를 내고 부탄 정부가 지정한 여행사 패키지 투어에 참가해야 한다. 체류비에는 숙박, 교통, 가이드, 식사 등이 포함돼 있다. 부탄문화원(02-518-5012)은 다양한 행사와 수교 프로그램을 진행, 운영한다. 여행에 관한 문의는 부탄문화원으로 하면 된다.
  • 국운 짓누른 일제, 조선왕실 태실 부장품 빼돌리고 집단 이장했다

    국운 짓누른 일제, 조선왕실 태실 부장품 빼돌리고 집단 이장했다

    20일 오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허름한 보리밥집 앞 이름도 없는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서삼릉 서쪽 끝 가까이 된다. 1시 방향 숲길을 따라 150m를 걸으니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선 묘비 50여기가 눈에 들어온다. 조선왕가 ‘태실’(胎室)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출산 때 나오는 태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항아리에 정성껏 담아 땅속에 묻었다. 생명에 대한 외경과 존중심을 보여주는 우리의 대표 풍속 중 하나다. 보관하는 방법은 신분의 지위고하에 따라 다르다. 왕실은 국운과 관련 있다 해 전담 부서에서 전국 명산의 좋은 터에 석실과 석탑을 만들어 보관해왔다는 기록이 전해온다.●일제가 조선왕실의 태실 서삼릉에 집단화 그런 조선왕가의 태실 중 54기가 일제강점기인 1928년 이후 서삼릉 경내로 옮겨 집단화됐다. 태조 등 역대 왕의 태실이 22기, 왕자·대군·왕녀·왕비의 태실이 32기다. 충남 금산군 추부면에 있던 태조의 태실을 비롯해 서삼릉역으로 옮겨온 태항아리 등은 시멘트 원통 속에 자갈을 깔고 묻었다. 바깥 가장자리에는 일제를 의미는 ‘일’(日)자형 시멘트 담장을 쌓고 일본식 철 대문으로 걸어 잠갔다. 효율적인 관리와 도굴 방지를 구실로 한곳에 모아놨으나 조선왕조의 정기를 끊고 태항아리와 함께 묻었던 부장품을 빼돌리기 위해서였다는 게 학계 정설이다. 이은홍 종묘제례보존회 전례이사는 “태실을 신격화했던 일본인들이 조선국왕 태실을 훼손한 것은 조선의 혼을 말살하기 위해서 였다”고 밝혔다. 심현용(고고학박사) 한국태실연구소 소장도 “죽음을 의미하는 서삼릉에 삶과 미래를 의미하는 태실을 집장한 것은 조선의 국운을 말살하려는 의도다”고 했다. 그는 “전통방식은 내항아리에 태를 담아 외항아리에 다시 집어넣는 방식인데 일본은 서삼릉 땅속에 일장기를 상징하는 시멘트 원통을 묻고 태항아리를 넣은 뒤 시멘트 뚜껑 2개를 덮어 일제를 상징하는 日 모양이 되도록 했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바깥을 日 모양의 담을 더 쌓아 조선왕가의 정기와 국운을 이중 삼중으로 억누르려 했다”고 강조한다. 이 담장은 가로 28m, 세로 24m, 높이 1.5m, 총 둘레 104m이다. ●일제, 태실 훼손에 대해 사죄해야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은 일본 황실에 부속돼 이왕가(李王家)가 됐고, 조선총독부는 이왕직(李王職)이라는 행정관청을 둬 세입세출 및 의전을 담당케 했다. 이왕직은 1928년쯤부터 전국에 흩어진 조선왕실의 태실을 옮기면서 ‘태봉’(胎封)이라는 복명서로 기록을 남겼다. 태실을 옮기는 이봉작업은 태를 담았던 태항아리와 태지까지 포함됐다. 태봉 기록에 따르면 1928년 8월 5일부터 30일까지 태종대왕, 세조대왕, 인종대왕, 세종대왕 태실을 조사해서 태항아리와 지석을 경성 봉안실에 보관했다. 이후 서삼릉경에 태실 49기를 이장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장 시기는 1930년 4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이다. 49기의 태실 외 5기의 태실은 1930년 이후에 새롭게 조성됐다. 태실군 주위를 둘러싼 日 모양의 담장은 고양시민들의 민원과 건의를 받아 문화재청이 1995년 3월 27일 중앙을 가르는 담장을, 외곽의 담장과 철문은 1996년 3월 6일 철거했다. 이듬해 3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긴급 발굴조사하면서 태실의 실체와 태항아리 등의 보존 상태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각각의 태실은 시멘트를 이용한 조잡한 이장으로 방수가 안 돼 물이 차고, 태항아리는 물에 둥둥 떠 있다 쓰러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출토된 태항아리 중 일부는 일제가 의도적으로 교체한 사실도 확인했다. 문화재청은 보존관리를 위해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로 태항아리 등을 옮겼다. 태를 생명체의 근원으로 여기며 태의 봉안을 신성시했던 우리 민족에 일제가 속죄해야 하는 이유다. ●자발적으로 집단화했다는 주장도 일부 있어 반면 서삼릉 태실은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설립 주체를 더 파악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안재성 고양향토문화보존회 회장은 “왕세자였던 이구의 태실은 왕자녀의 태실에 있어야 함에도 국왕의 태실 반열에 있다. 이는 다음 왕이 될 신분이므로 그같이 조처할 수 있었지만 당시 이왕가 왕실을 일본 황실에 부속된 한 왕실이 아니라 예전 대한제국의 황실임을 은연중에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밝혔다. 태실 서삼릉 이전이 이왕가가 주체적인 입장에서 시행한 것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태실을 서삼릉역으로 집단 이전한 이유는 뭘까. 당시 조선왕조 태실이 망국과 함께 이를 보호하는 방어막도 점차 엷어졌으리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가운데 이왕직에서는 서둘러 왕가 태실의 태를 한곳으로 옮겨 편리하고 효과적으로 수호하려는 명분을 찾았고 당시 총독부의 허수아비 이왕가는 자진해 태실을 포함한 태봉산을 불하해 이왕가 재정을 충당하려 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태실 이전 장소를 서삼릉역으로 잡은 것은 서울과 가깝고 역대 왕실과 깊은 인연이 있으며, 당시 이왕가 소유였기 때문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아니다”라는 입장이 더 우세하다. 정동일 고양시 향토사전문위원은 “서삼릉에 집결돼 조성된 태실은 이전 각지에 세운 조선시대의 격조 높은 왕실의 태실과 너무도 차이가 나는 작고 단순하며 볼품없는 모습 즉 공동묘지처럼 집단화한 모습으로 볼 때 수긍할 수 없다”면서 “태실을 둘러싼 담장이 일본을 상징한다는 일자인데다, 철문 모양도 일제 양식이기 때문에 더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왕직 장차관 임면권을 일제의 총독이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인정하기 어려운 점이 더 많다는 설명이다.●운명 결정짓는 태… 삼국사기에 유래 남겨져 태실을 조성하고 태항아리와 지석을 묻는데 이것을 장태 또는 안태라고 한다. 태의 처리에 대해서 옛 선인들은 다음 아이를 잉태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믿어서 재앙이 없는 방향에서 태우거나 매장했다. 태장경에는 태의 의미를, 귀인이 되고 못 되는 게 태에 달렸으며, 어질거나 어리석어지거나 쇠망하고 성하는 것은 모두 태에 의해 결정된다고 쓰여 있다. 안태에 대한 기록을 문헌에서 찾아보면 그 기원이 신라 때부터 시작해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전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삼국사기에는 진천현 태영산에는 신라 때 김유신의 태를 묻고 사자를 지어 고려 때까지 국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中, 일본선 은퇴한 2층짜리 고속철 개발

    中, 일본선 은퇴한 2층짜리 고속철 개발

    중국과학원이 시속 350㎞에 이르는 미래형 2층 고속철 모델을 공개했다고 차이나데일리가 20일 전했다. 2층짜리 고속열차는 이미 프랑스와 일본에서 도입됐다.중국과학원이 공개한 2층짜리 고속철 모델에 대해 전문가들은 속도가 시속 350㎞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웨이화 서남교통대학 교수는 “중국이 프랑스와 독일 같은 전통적인 고속열차 강국처럼 경제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층짜리 고속열차 개발을 하고 있다”며 “객차의 무게중심을 낮추는 설계상의 기술적 문제만 해결하면 2층 열차를 단층 열차와 같은 시속 350㎞로 달리게 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층 고속열차는 급회전할 때 원심력 때문에 안정성을 잃을 수 있다. 프랑스 알스톰에 따르면 이 회사가 제작한 유로듀플렉스는 현재 세계에서 시속 300㎞ 이상으로 달리는 유일한 2층 열차다. 8칸 짜리 이층 유로듀플렉스는 시속 320㎞로 달리며 1층짜리 고속철보다 40% 많은 1268명의 승객을 수송할 수 있다. 일본의 시속 240㎞로 달리는 더블덱 신칸센인 E4는 1985년 도입됐으며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운행됐다. 당시 1634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2층짜리 고속철은 일본 교통수송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일본은 점차 속도 향상과 여객 편의를 위해 2층짜리 신칸센을 1층짜리 E7으로 교체하고 있다. 처음 도쿄와 아오모리를 잇던 도호쿠 신칸센에 도입된 E4는 2012년 중단됐으며 도쿄와 니기타를 오가던 2층짜리 신칸센 E4도 지난해 E7으로 바뀌었다. 자리민 베이징교통대학 교수는 “중국은 기술적으로 2층 고속열차를 설계하고 제작할 준비가 돼 있다”며 “2층 고속철 제작 여부는 철도 당국의 전체적인 계획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는 베이징~상하이, 상하이~항저우 같은 인기 노선에는 2층 고속철 시장 수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김혁철 베트남행, 김정은 기차타고 베트남가나

    김혁철 베트남행, 김정은 기차타고 베트남가나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와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 국장 직무대행,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이 베트남에서 열리는 북미 2차 정상회담의 의제 협의를 위해 20일 오후 베이징에서 하노이로 출발했다. 김혁철 특별대표 일행은 지난 19일 경유지인 베이징에 도착한 뒤 주중 북한대사관에 머물다가 이날 오후 3시쯤(현지시간)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하노이행 베트남항공편에 탑승했다. 베이징 공항은 이날 몰려든 한국과 일본의 취재진에 대해 삼엄한 통제를 펼쳤으며 북한 대표단 일행은 4대의 차량으로 귀빈용 주차장에 도착한 뒤 따로 수속없이 곧바로 탑승구로 향했다. 한편 베트남 정부는 오는 27∼28일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정상회담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열차를 이용해 오는 것에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장소로는 국립컨벤션센터가 북한 측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정부 영빈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이 특별열차로 평양에서 베트남 국경도시 동당역까지 이동할 경우 이틀 반인 약 60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만약 베트남 정부와의 양자회담을 위해 25일까지 하노이에 도착한다면 이번 주말에 김 위원장은 평양을 출발해야 한다. 북중 국경도시 단둥에서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도시 난닝까지는 시속 300㎞가 넘는 고속철로도 30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최고속도가 시속 180㎞지만 안전을 위해 시속 60㎞ 정도로 달리는 북한 특별열차로는 2배가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동당역에서 하노이까지는 시속 170㎞의 차량으로 이동할 전망이라고 로이터는 설명했다.중국 신화통신은 전날 평양의 중국대사관에서 리진쥔 주북한 중국대사가 박봉주 북한 내각 총리 등을 초청해 정월대보름 행사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리 대사는 연설에서 “중국과 북한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는 양국의 지도자들에 의해 정성껏 키워졌으며 양측이 공유하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리 대사는 이어 올해는 북중 수교 70주년인 만큼 중국은 양국 지도자의 중요 합의에 따라 북한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강조했다. 박 총리와 리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은 “김정은 위원장이 새해 벽두부터 중국을 방문해 양국 최고 지도자간의 정을 더욱 돈독히 하는 등 북중의 전통적 우호관계가 전례없이 발전했다”며 “북한은 중국과 힘을 합쳐 올해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총리 등 북한 관료들은 정월대보름 행사에서 중국 지린성 문화대표단의 공연과 중국대사관의 사진전을 감상했다. 글·사진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일본 홋카이도의 반나체 축제 사이다이지 에요 “민망하긴 하네”

    일본 홋카이도의 반나체 축제 사이다이지 에요 “민망하긴 하네”

    월요일 아침부터 민망한 사진 보여주는 게 맞나 싶긴 하다. 팬티만 걸친 남성들이 영험한 기운을 지닌 스틱 둘을 차지하기 위해 꽤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일본 전통 마츠리(축제)인 사이다이지 에요 하다카 사진들이다. 매년 2월 셋째주 토요일 홋카이도 오카야마의 킨료잔 사이다이지 사찰에서 열린다. 무로마치 시대부터 시작됐으니 무려 510년을 이어온 전통 축제다. 일본의 겨울철 축제를 안내하는 캘린더에 ‘반나체 축제’로 소개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축제다. 1만명 가까운 참가자들은 먼저 요시이 강의 찬 물을 몸에 끼얹어 정갈하게 한다. 밤 10시쯤이 되는데 모든 불빛이 꺼지고 주지 스님이 군중을 향해 20㎝ 길이의 스틱 “싱기(shingi)”를 던지면 서로 먼저 이를 차지하겠다며 몸싸움을 벌인다. 2시간쯤 몸싸움을 벌인 뒤 두 명의 행운남(男)들이 절을 떠나면서 축제는 마무리된다. 일년의 남은 기간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때때로 음력 설과 겹쳐 더욱 큰 축제가 되기도 한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여성을 포함한 다른 수많은 이들이 랜턴을 켠 채 축제를 지켜보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돌고래 몰이잡이는 日동물보호법 위반” 현지 단체가 소송제기

    “돌고래 몰이잡이는 日동물보호법 위반” 현지 단체가 소송제기

    일본 와카야마현 다이지마을의 돌고래 몰이잡이는 잔혹할 뿐만 아니라 동물보호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일본의 한 동물보호단체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14일 공개됐다. AFP통신과 일본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나가노현에 본부를 둔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인베스티게이션 에이전시’(이하 LIA)는 이날 도쿄 소재 일본외국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러한 사실을 밝혔다. 제소자는 이 단체의 대표이며, 와카야마현지사와 현을 상대로 몰이잡이 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이번 소송은 지난 9일 접수됐다. 뿐만 아니라 이번 소송에는 다이지마을의 한 주민이 원고로 참가하고 있으며, 호주 돌고래 보호단체 ‘액션 포 돌핀스’가 소송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돌고래를 작은 만에 몰아넣고 포획하는 이 몰이잡이는 공황 상태에 빠진 돌고래가 그물에 엉켜 질식사하는 경우가 많다. 바위에 부딪혀 죽는 돌고래도 있고 어부가 긴 금속막대로 반복해서 척수 부분을 질러 죽는 돌고래도 있다. 이를 소재로 한 2009년 개봉 영화 ‘더 코브’가 미국 아카데미상의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음에 따라 돌고래 몰이잡이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제소에 관여한 변호사에 따르면, 다이지마을의 몰이잡이에 관한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고 측은 이 어법이 동물의 불필요한 살상을 금하고, 죽일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규정한 일본의 동물보호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이지마을 주민 1명과 함께 소송을 제기한 이 단체의 야부키렌 대표는 “많은 일본인이 돌고래를 어류로 간주하고 돌고래에는 동물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일본에는 돌고래를 식용으로 포획하는 전통이 있다. 몰이잡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어법이 현지 전통문화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는 데다가 돌고래는 멸종위기종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LI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41년 간장 외길’ 오경환 샘표 부사장 별세

    ‘41년 간장 외길’ 오경환 샘표 부사장 별세

    간장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 ‘간장공장 공장장’ 오경환 샘표식품 부사장이 13일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1978년 샘표에 입사한 오 부사장은 41년 간장 외길만 걸었다. 2001년부터는 공장장을 맡아 18년 동안 간장 생산을 책임졌다. 지난해 12월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2001년 전통 한식간장인 조선간장 양산에 성공한 것은 오 부사장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밀을 섞는 양조간장과 달리 조선간장은 콩으로만 만들기 때문에 제조 공정이 까다롭다. 우리 간장 알리기에 앞장선 고인에게 ‘간장계의 문익점’이라는 별명을 안긴 일화는 유명하다. 고인은 1986년 일본 유명 간장제조업체인 ‘야마사’의 제국실(메주 띄우는 방)을 견학했다. 삶은 콩을 분해하는 곰팡이는 간장 맛을 좌우하는 ‘영업기밀’이다. 최대한 숨을 크게 마셔 콧속에 곰팡이 씨앗인 포자를 모은 오 부사장은 호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코를 풀었다. 신줏단지 모시듯 코 푼 휴지를 들고 귀국한 그는 분석을 통해 야마사 메주 곰팡이의 비밀을 풀었다. 오 부사장은 생전 인터뷰에서 “내가 만든 간장을 온 국민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 일이 참 중요하구나,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빈소는 경기 이천 효자원 장례식장 207·208호, 발인은 16일 오전 6시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술 이야기] “내추럴와인은 내가 뭘 마시는지 아는 투명한 한 잔”

    [심현희 기자의 맛있는 술 이야기] “내추럴와인은 내가 뭘 마시는지 아는 투명한 한 잔”

    블라인딩 테이스팅 300잔 시음했을 때 맛있었던 두 잔 모두 내추럴 방식 와인 기존 와인은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지만 내추럴와인은 첨가물에 대해 이야기해 친환경 소비와 함께 꾸준한 성장 기대“사람들은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엔 관심이 많으면서 정작 와인에 들어가는 첨가물이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내추럴와인’은 먹거리와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주죠. 우리는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할까요.” 14일 서울 중구 레스케이프 호텔에서 만난 이자벨 르주롱(47)은 세계적인 와인 전문가이지만, 환경 운동가 같기도 했다. 프랑스 최초의 여성 마스터오브와인(MW)이기도 한 그는 최근 글로벌 식음료업계의 ‘대세’로 자리잡은 내추럴와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수년 전 그가 진행을 맡은 영국 트래블 채널의 ‘미친 프랑스 여자의 와인 여정’은 전 세계 120개국에서 20개 언어로 송출돼 세계 식음료 업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한국에 번역 출간된 그의 저서 ‘내추럴 와인’은 출간되자마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2주 만에 재쇄를 찍어 한국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MW는 영국 런던에 있는 IMW(와인마스터협회)에서 수여하는 자격증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300명밖에 안 되는 와인 자격증의 ‘끝판왕’이다. 한국인 MW는 아직 없으며 동양인도 드물다. 내추럴와인이 ‘힙하다’곤 하지만 여전히 와인 산업의 주류는 거대 와이너리에서 대량 생산을 하는 일반 와인이다. 일반 와인을 공부해 MW 자리까지 오른 그가 어떻게 와인계의 ‘이단’인 내추럴와인에 빠지게 된 것일까. -와인 인생은 어떻게 시작됐나. “부모님은 프랑스 코냑 지방에서 와인 농사를 짓고, 평생 와인을 만들었다. 10대 땐 와이너리의 삶이 지겨웠고 집을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대학에선 당연히 와인과 관련이 없는 경영학을 전공해 런던에서 출판 관련 일을 했다.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집과 농장(와이너리)이 너무 그립더라. 와이너리에서 자랐지만 체계적인 와인 지식도, 와인 산업에 대한 이해도 없어 런던에서 6년간 와인을 공부해 MW가 됐다. 당시 프랑스 여성으로선 최초여서 운이 좋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MW가 되자 강연, 레스토랑 컨설팅 등 일이 쏟아져 들어왔고 프랑스에서도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와인 업계는 매우 보수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MW 출신이 어떻게 기성 와인의 반대 지점에 있는 내추럴와인의 상징적 인물이 됐나. “기성 와인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나와는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들었다. 나는 와인 농장, 현장을 경험하고 알고 싶었는데 커리큘럼은 이론 공부에 치중되거나 와인 비즈니스 쪽에 집중됐다. 결정적으로 내추럴와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TV시리즈를 하면서부터다. 좋은 와인을 소개해 주기 위해 헝가리 와이너리들을 방문해 블라인딩 테이스팅으로 300잔을 시음했던 적이 있었다. 이 가운데 2개가 정말 맛있었는데 같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하더라. 궁금해서 와이너리를 찾았다. 생산자가 전통 방식, 지금 우리가 말하는 내추럴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었다. 일반 와이너리에서 쓰는 큰 압착기, 온도조절 기계도 없이 140종류의 다양한, 살아 있는 와인이 있더라. 당시 대규모 와인 비즈니스 관련 일을 해야 하나라는 커리어에 대한 기로에 서 있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확신이 생겼다.” -처음 ‘내추럴와인’ 관련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 반응은. “최근에는 내추럴와인이 유행해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사람들에게 런던에 남아 내추럴와인의 길을 걷겠다고 말했더니 대부분 ‘커리어 자살’이라는 반응을 보였다(웃음).” -기성 와인 업계에선 내추럴와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데. “원래 기득권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웃음). 현재 와인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규모로 성장해 있다. 대량생산과 양조 시 각종 첨가물을 넣어 맛의 일관성, 표준화를 이뤘다. 이를 기준으로 로버트 파커(와인평론가)의 별점 등 마케팅 포인트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대규모 와인 세계에서 와인을 만들 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무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내추럴와인을 얘기할 때는 양조 시 무엇을 넣고 쓰는가에 대해 투명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바로 기존 와인 산업이 흔들리게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기성 와인이 공급자 위주의 정보만을 준 셈인데, 이젠 소비자 위주의 정보로 전환 되어야 한다.” -내추럴와인이 와이너리 인근 지역에서 신선한 상태로 소비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반박을 위한 반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음식은 생산지에서 소비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내추럴와인뿐만 아니라 기성 와인도 긴 이동 과정을 거친다. 일본과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내추럴와인 마켓 중 하나인데 문제 없이 잘 소비되고 있지 않나. 음식이든 차든 와인이든 좋은 상태로 마시려면 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내추럴와인 열풍은 트렌드의 정점일 뿐 지속성이 없을 것이라는 말들도 있는데. “내추럴와인 시장은 점점 더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추럴와인 페스티벌을 런던, 베를린, 몬트리올 등에서 하는데 신기하게 비슷한 사람들이 온다. 주로 30대, 특히 ‘소비를 잘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강한 사람들이다. 이런 경향이 트렌디하게 비칠 수 있지만, 갈수록 ‘내 몸’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다. 산지 특성을 살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좋은 빵 좋은 차를 고르는 사람들을 위한 가게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지 않나. 무엇보다 내추럴와인이 공통적으로 가진 우아한 산미가 음식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도 대중화에 유리하다. 한국은 이제 시작이지만, 친환경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고 똑똑한 소비자들, 잘 알고 마시는 사람들이 많은 마켓이어서 질적, 양적으로 내추럴와인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좋은 사람이 좋은 술을 만든다’는 말이 떠오른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우리가 삶을 살아 가면서 주변의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내추럴와인은 그런 면에서 ‘좋은 사람이 만드는 좋은 술’이다. 대규모 포도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함부로 경작하지 않고,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땅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자연적으로 발효해 와인을 만들기 때문이다.” -좋은 와인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내추럴와인이라고 다른 와인과 다르진 않다. 일단은 맛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맛의 바탕에 ‘이 포도가 어떻게 길러졌는지, 밭에서 이뤄진 일’들까지 느껴진다면 완벽한 와인이 아닐까.” 글·사진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내추럴와인 포도 재배부터 와인을 만드는 양조 과정까지 화학적 첨가물를 넣지 않는 와인을 뜻한다. 쉽게 말해 일반 와인에 들어가는 농약과 산화방지제(이산화황), 인공효모 등이 아예 들어가지 않거나 극소량만 첨가된 와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럽과 미국, 일본에선 트렌드를 넘어 ‘자연주의’라는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지만, 친환경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엔 3년 전 처음 소개돼 지난해부터 식도락가와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 콧구멍에 곰팡이 숨겨 온 ‘간장계 문익점’ 오경환 샘표 부사장 별세

    콧구멍에 곰팡이 숨겨 온 ‘간장계 문익점’ 오경환 샘표 부사장 별세

    간장을 만드는데 평생을 바친 ‘간장공장 공장장’ 오경환 샘표식품 부사장이 13일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오 부사장은 1978년 샘표에 입사했다. 41년간 간장 외길만 걸었다. 2001년부터는 공장장을 맡아 18년 동안 간장 생산을 책임졌고 지난해 12월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지난 2001년 전통 한식간장인 조선간장 양산에 성공한 것은 오 부사장의 최대성과로 꼽힌다. 밀과 콩으로 만드는 양조간장과 달리 조선간장은 콩으로만 만들기 때문에 제조 공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우리 간장 알리기에 앞장선 고인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오 부사장에게 ‘간장계의 문익점’이라는 별명을 안긴 이야기다. 고인은 2011년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1986년 일본 유명 간장제조업체인 ‘야마사’를 견학한 일을 떠올렸다. 간장의 맛은 콩으로 만든 메주에 피는 곰팡이가 결정한다. 곰팡이가 삶은 콩을 효소로 분해하면서 아미노산이 발생하는데 아미노산의 양에 따라 간장 맛이 달라진다. 이런 곰팡이는 간장 회사의 영업 기밀이라고 할 수 있다. 오 부사장은 야마사의 곰팡이가 궁금했다. 메주를 띄우는 방인 제국실을 보여달라는 오 부사장의 요청을 야마사는 번번이 거절했다. 간절한 그의 부탁에 결국 야마사는 제국실 문을 열어줬다. 오 부사장의 관심사는 오직 숨쉬기였다. 최대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곰팡이 씨앗인 포자를 코 안에 가능한 한 많이 담기 위해서였다. 오 부사장은 제국실을 나오자마자 호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코를 풀었다. 휴지에는 포자가 가득 묻어나왔다. 신주단지 모시듯 코 푼 휴지를 들고 귀국한 오 부사장은 분석을 통해 야마사 곰팡이균의 비밀을 알아냈다. 오 부사장은 간장을 만드는데 일생을 바쳤다. 간장 공장에 취직했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봉급도 적고 야근도 밥 먹듯 하는 그런 일을 왜 하느냐며 놀렸다고 한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내가 만든 간장을 온 국민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 일이 참 중요하구나, 정말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메주 제조실에서 수도 없이 밤을 새워도 전혀 힘든 줄 몰랐다. 더 좋은 간장을 만들 때마다 보람도 있고 일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고인은 생전 식품안전과 품질 개선에 이바지한 공로로 지난해 3월 상공의 날 국무총리 포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2006년 2월 식품위생의 날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2004년 6월 환경의 날 환경부 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빈소는 경기 이천 효자원 장례식장 207·208호, 발인은 16일 오전 6시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일본인 극장 몰려 있던 충무로… 조선 영화관 각축장 된 종로

    일본인 극장 몰려 있던 충무로… 조선 영화관 각축장 된 종로

    1903년 6월 한성전기회사가 주최한 동대문 기계창에서의 활동사진 상영회가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 공간은 동대문활동사진소로 자리잡는다. 한국에서 관람료를 내고 들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했다는 가장 첫머리의 기록이다. 그리고 1919년 10월 조선인 거리의 영화 상설관 단성사에서 연쇄극 ‘의리적 구토’를 상영해 조선인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는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영화가 다중이 모인 극장에서 공개된 가장 첫 번째 사건이다.이번 주제는 활동사진이 상영됐던 공간, 바로 ‘영화관’에 관한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처음 활동사진을 보기 위해 동대문활동사진소에 운집했던 1903년부터 조선인 거리의 연극장 단성사가 영화 상설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1918년까지 서울 도심에는 어떤 영화관들이 생겨났고, 영화관 거리는 어떤 모습으로 형성됐을까. 우리가 이 시기 영화관의 설립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제작·배급·상영으로 이어지는 영화산업의 기초적인 형태가 구축되기 시작했음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영화관 설립 이전의 상영 공간 한성전기회사가 운영하던 동대문활동사진소는 1908년 흥행 단체인 광무대(光武臺)가 인수하며 ‘광무대’라는 이름으로 재출발한다. 전통 연희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사진까지 상영했던 공간으로 1914년까지 이어졌다. 운영은 조선인 흥행사 박승필이 맡았는데, 이후 그는 단성사를 경영하고 연쇄극을 제작하는 등 초창기 한국 영화의 기반을 만든다. 아직 본격적인 영화 상설관이 설립되지 않았던 시기 활동사진을 상영하던 공간은 또 어디에 있었을까. 서대문 정차장 근처 프랑스인 마르탱이 운영하던 호텔 애스터하우스에서 1907년 프랑스에서 가져온 필름들을 상영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즈음 영화 상설관은 아니지만, 무대 공연을 중심으로 한 극장들이 생겨났다. 상설 극장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902년 대한제국 황실이 국가 경사를 위해 설립한 ‘희대’(戱臺)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 자리에 있었다. 사실 이전의 조선은 건물 안에서 공연하는 극장문화가 없었으므로 최초의 근대식 극장으로 기록되는 곳이다. 희대는 협률사(協律舍) 또는 원각사(圓覺社)로도 불렀는데, 이곳을 빌려 연희를 하던 단체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 가장 먼저 협률사가 운영했던 희대는 1904~1905년 러일전쟁 때 폐지됐다가 1907년 2월부터 관인구락부(官人俱樂部)라는 이름의 사교회장으로 활용됐고, 1908년 7월부터 작가 이인직이 ‘원각사’라는 이름의 연희장으로 운영하며 연극과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볼거리들을 상연했다. ●북촌과 남촌의 극장가 일제강점기 서울 장안은 청계천을 경계로 북한산 아래 북촌의 조선인 거주지와 남산 아래 남촌의 일본인 거주지가 분리돼 있었다. 자연스럽게 극장가 역시 민족별로 구분해 형성됐다. 조선인 극장들은 조선인들의 전통적인 상권인 종로통을 중심으로 들어섰고, 일본인 극장들은 지금의 충무로인 본정(本町)의 일본인 상권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북촌에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종로 2가의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1907년부터 단성사(團成社), 연흥사(演興寺), 장안사(長安社)와 같은 민간 극장이 설립됐다. 조선인들을 위해 전통 연희, 신파극, 활동사진 등 다양한 볼거리가 상연됐던 공간들이다. 조선인 극장의 형성과 프로그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남촌의 일본인 극장들이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대한제국 시기 한국으로 많은 수의 일본인이 건너왔고, 자연스럽게 일본인 거류민들을 위한 극장이 생겨났다. 1907년을 전후한 시점 욱정(旭町) 1정목 쪽의 가부키자(1906년 설립·이하 설립연도), 본정 2정목의 혼마치자(1906년쯤), 본정 3정목의 고토부키자(1907년쯤), 본정 4정목에 이르면 게이조자(1906년쯤)가 있었다. 명동 방향으로는 나니와부시(浪花節)를 공연하는 나니와칸(1909년), 그리고 남대문 앞에는 신파극을 공연하는 이나리자(1910년)가 있었다. 영화 상영을 중심으로 하는 첫 활동사진 상설관은 1910년 지금의 을지로인 황금정 2정목에 세워진 경성고등연예관이다. 목조 건물로 1층에는 긴 의자, 2층에는 다다미를 배치해 600여명이 앉을 수 있었다. 당시 개관 광고를 보면 프랑스 파테사의 영사기를 도입해 세계 각국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세계 제일 활동사진관’임을 거창하게 선전한다. 당시 관객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각각 절반 정도였다. 초창기 영화감독 이구영의 기록에 따르면 서양인 권투선수와 일본인 유도선수가 겨루는 단편영화를 상영하던 중 조선인 관객들이 서양 선수를 응원하는 바람에 일본인 관객들과의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후 일본인 거리의 황금정 3정목에는 다이쇼칸(1912년), 고가네칸(1913년)이 들어섰다. 본정의 가장 번화가인 1정목과 2정목의 교차점에는 1915년 유라쿠칸이 설립돼 남촌의 대표적인 활동사진관으로 자리잡았다.●서양 영화를 상영한 조선인 영화관 북촌에는 1912년 우미관(優美館)이 영화 상설관으로 처음 등장한 후 1907년 설립된 단성사(團成社)가 1918년 영화관으로 재개관했으며, 1922년 조선극장이 설립되면서 조선인 영화 상설관으로는 3대 극장이 각축전을 벌이게 된다. 종로통에 세워진 우미관은 조선인을 대상으로 처음 설립한 영화관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주로 유니버설의 연속영화(serial film·지금의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20분 분량의 필름을 1주일에 1편씩 상영하는 방식)와 유니버설의 자회사인 블루버드와 레드페더 등에서 제작한 5권 분량의 장편 영화를 상영한 서양 영화 전문관이었다. 1907년 세워져 복합 연희장으로 운영되던 단성사는 조선인이 소유한 유일한 극장이었다. 1914년 1월 안재묵이 수용 인원 1000명의 대형 극장으로 신축했으나 1년 만에 화재로 소실된 후 1917년 2월 고가네유엔(黃金遊園)의 소유자 다무라 기지로가 인수했다. 다무라는 조선인 흥행사 박승필에게 단성사의 운영권을 주었고, 그는 1918년 12월 활동사진관으로 신축해 흥행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조선인 영화 상설관이 서양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외화전문관’이었고, 일본인 영화 상설관은 일본 영화를 기본으로 상영하는 ‘방화관’(邦畵館)이면서 서양 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병영관’(映館)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1920년대 들어 경성의 영화관 거리는 조선인 영화관의 경우 조선인 변사가 해설하는 서양 영화를 상영하고, 일본인 영화관은 일본인 변사가 해설하는 일본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구도가 굳어졌다. 이즈음 서울 장안 극장가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활동사진 수입 초기에 선보이던 뤼미에르 형제나 미국 바이타스코프의 백 피트짜리 짧은 필름이 아니었다. 움직이는 사진을 보고 신기해하고 달려오는 기차를 피하던 구경꾼들은 이미 지난 얘기였다. 이야기 전달을 위한 구성력을 갖추어 가는 미국과 유럽의 장편 극영화들은 활동사진을 좋아하던 ‘애활가’(愛活家)들을 본격적인 ‘영화관객’으로 훈련시켰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배우보다 몸값 높은 조선 최고의 변사는?

    배우보다 몸값 높은 조선 최고의 변사는?

    무성영화 시대 외국어 자막 등 해설 필수변사의 입담에 흥행 좌우… 스카우트 싸움도무성영화 시대의 영화관 풍경을 떠올려 보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스크린 옆의 변사(辯士)가 영화를 해설하는 모습이 아닐까. 변사는 서양에서 발명된 영화라는 매체와 전통적인 동양의 공연 방식이 만나 빚어낸 독특한 산물이다. 물론 서구 영화관에도 영화를 설명하는 해설자 역할이 있었지만, 이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서구의 무성영화는 영상과 영상 사이 간(間) 자막 화면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영화 고유의 언어와 문법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일본과 조선 등지에서는 외국어 자막을 비롯해 등장인물의 대사를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 줘야만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무성영화 시대 변사라는 직업은 일본 흥행 산업의 산물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식민지였던 조선, 대만 그리고 일본인 흥행업자들이 시장을 개척했던 태국과 만주에서도 존재했다. 조선에 변사가 전문직업인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10년 경성고등연예관이 개관하면서인데, 영화 상영 전 조선인 변사와 일본인 변사가 번갈아 등장해 한국어와 일본어로 각각 영화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때 조선인 변사로는 서상호, 이한경, 김덕경이 활약했다. 이후 조선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우미관과 일본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대정관과 황금관이 속속 등장하면서 변사의 해설도 언어별로 구분됐다. 무성영화 시대의 흥행 성적은 오로지 변사의 입담에 좌우됐다고 할 정도로 변사는 스타 중의 스타였다. 보통 변사들은 70~80원의 월급을 받았다고 하는데, 당시 일류 배우가 40~50원의 월급을 받았고 고급 관리들의 월급이 30~40원 정도였음을 생각하면 변사들의 대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미관의 주임 변사로 유명했던 서상호가 1918년 단성사가 활동사진관으로 개관하며 스카우트된 것처럼 변사는 무성영화 흥행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사가 전성기를 구가한 무성영화 시기 단성사의 주임변사 서상호, 조선극장의 김조성, 우미관의 이병조가 3대 변사로 꼽혔고, 우정식·서상필·김덕경·성동호 등도 이름을 날렸다.
  • 플라멩구 유소년선수 10명 참변, 브라질 전역이 슬픔에 젖는 이유

    플라멩구 유소년선수 10명 참변, 브라질 전역이 슬픔에 젖는 이유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플라멩구 팬이 된다. 그 뒤 살면서 조금 멀어질 뿐이다.” 브라질 사람들이 곧잘 하는 얘기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 프로축구 클럽인 플라멩구 훈련캠프의 유소년 선수 기숙사에서 8일 새벽(현지시간) 화재가 발생, 14~16세 소년 10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 불은 새벽 5시쯤 시작돼 2시간 만에 꺼졌으나 깊은 잠에 빠져든 시간인 데다 많은 인원이 모여 있어 인명 피해가 컸다. 보수 공사를 거쳐 지난해 11월 새로 문을 열었는데 2개월여 만에 참극이 벌어졌다. 다친 3명도 모두 10대이며 한 명은 위중한 것으로 알려져 사망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소방대는 전했다. 플라멩구는 상파울루의 코린치안스, 파우메이라스, 산투스 등과 함께 브라질에서 서포터가 많은 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리우를 연고지로 하고 있지만 수천㎞ 떨어진 지역에도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해서 단순히 리우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추모 열기가 일고 있다고 영국 BBC는 8일 전했다. 1898년 조정 클럽으로 출발한 플라멩구는 몇년 뒤 축구 팀을 만들어 초기 엘리트 선수 양성소로 역할했다. 하지만 1930년대 브라질에서는 삼바 음악인이 축구 스타보다 훨씬 더 각광받는 등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다. 해서 플라멩구 클럽은 당시 최고의 기량을 갖춘 흑인 선수 셋을 한꺼번에 영입하는 등 격한 변화를 이끌었다. 리우가 연고였으나 라디오 중계를 일찍 시작해 멀리 떨어진 지방 팬들도 자신과 동일시하게 만들었다.참극이 발생한 유소년 선수 기숙사 ‘니뉴 두 우루부(urubu)’란 이름도 이런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원주민 말로 독수리 둥지를 의미한다. 원래 인종차별적 용어였는데 플라멩구 클럽은 과감히 끌어안아 원주민과 노동 하층계급의 사랑을 받게 됐고 그들의 자부심을 대변하게 했다. 이 클럽은 유스 선수들을 육성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1970~80년대 최고의 스타 지코를 이런 식으로 길러냈다. 그가 이끌던 플라멩구는 1981년 일본에서 열린 유럽-남미 클럽 대항전에서 리버풀을 3-0으로 격파하면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절을 경험했다. 지금도 리버풀 팬들은 이를 치욕으로 여겨 리버풀의 경기 기록에 포함시키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그 뒤 재정 위기 때문에 곧잘 궤도를 이탈했다. 1990년대 초반 호나우두 같은 젊은 공격수들을 해외로 빼앗긴 일이 대표적이다. 해서 니뉴 두 우루부에 많은 투자를 해 최근 공격형 미드필더 루카스 파퀘타를 AC 밀란에, 10대 윙어 빈시우스 주니오르를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시키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둘 다 플라멩구의 연령별 팀들을 거쳤고, 참극의 현장을 잘 안다. 그리고 아마도 세상을 떠난 이들과 알고 지냈을 것이다. 파퀘타는 숙소에 가까운 다리를 잊지 못한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자신을 다리 건너편에 데려가곤 했는데 어머니가 “내가 널 여기까지 데려왔다”며 “나머지는 네가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참극을 당한 이들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이는 전도유망했던 골키퍼 크리스티앙 에스메리오(15)로 브라질의 17세 이하 대표팀에 콜업돼 유럽 스카우트들의 표적이 돼 있었다. 7일 밤 베개에 머리를 뉘일 때만 해도 꿈에 부풀었을텐데 너무 안타깝게 됐다고 방송은 전했다. 여러 클럽들이 일제히 애도를 표하고 있는 가운데 리우 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과나바라 컵 축구대회 일정도 연기됐다. 상파울루 시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축구선수가 되기 위한 길을 시작한 청소년들에게 닥친 매우 슬픈 소식을 들었다”며 “유가족들과 고통을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아미우톤 모우랑 부통령도 “플라멩구를 응원하는 팬의 한 명으로 매우 슬픈 아침을 보내고 있다”며 “유가족과 클럽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펠레와 네이마르, 호나우지뉴 등 축구 스타들도 SNS에 애도의 글을 올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체제 경쟁’ 이기고 ‘노동 경쟁’서 졌다… 美 중임금 노동자의 몰락

    ‘체제 경쟁’ 이기고 ‘노동 경쟁’서 졌다… 美 중임금 노동자의 몰락

    영국의 브렉시트 사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심지어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전통이 강했던 유럽에서도 포퓰리즘 성향의 신생정당이 돌풍을 일으키는 것 역시 ‘불평등 확대’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과 포용국가론 역시 ‘불평등 해소’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정책의 세계에서,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정책수단이 좋은 결과로 연결되는 것이다. 좋은 정책의 선결조건은 정확한 ‘원인 분석’이다. 한국의 불평등은 왜 확대되고 있는 것일까? 선진국에서는 왜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는 것일까? ‘불평등 확대 원인’을 둘러싸고,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재벌·대기업의 ‘갑질’과 ‘불공정’ 때문이라고 보는 경우이다. 이를테면 ‘적폐’(積弊) 때문에 불평등이 커진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 경우 불평등 해법은 갑을관계 개선, 원청·하청의 공정경제 실현,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 협력, 부유층에 대한 강력한 누진세 적용 등이 된다. 상대적으로 진보성향 정치권, 진보성향 시민단체, 진보성향 언론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다. 물론 이 주장 역시 ‘진실의 일단’을 담고 있다. 우리는 전속거래의 폐해, 대기업의 기술 탈취, 단가 후려치기 등이 실존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요인들도 불평등 확대의 ‘일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중심적인’ 원인으로 보는 것은 과장된 접근이다. 불평등 확대에 대한 두 번째 해석은 ‘경제 환경의 구조변화’로 보는 시각이다. ‘경제 환경의 구조변화’란 국제 분업 구조의 재편과 기술적 환경변화를 포괄한다. 두 번째 해석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미국의 노동시장 양극화 최근 한국은행이 발간한 ‘미국의 노동시장 양극화 배경 및 시사점’(한은, 국제경제리뷰, 제2019-01호)이라는 연구보고서는 매우 흥미롭다. 미국의 노동시장 불평등이 확대되는 양상과 원인을 명료하게 보여 준다. 최근 미국 실업률은 3.9%(2018년)까지 하락했다. 1969년(3.5%) 이후 최저 수준일 정도로 고용 상황이 좋다. 흥미로운 것은 취업자를 ①고임금 ②중임금 ③저임금으로 나눌 경우 2008년~2017년의 기간 동안 ①고임금(+1.8%) ③저임금(+1.7%)은 늘어났지만, ②중임금(-0.2%)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점이다. 임금수준별 취업자 수 비중 변화를 살펴보면, 2008년~2017년 중 ①고임금(20.3%→22.6%) 비중과 ③저임금(17.4%→19.2%) 비중은 늘어났다. 그런데 ②중임금(62.3%→58.2%) 비중은 오히려 하락했다. 임금수준별 비중의 변화분만을 살펴보면 V자 곡선에 가깝다. 특히 자동화에 유리한 반복 업무(routine job)에서 인력 대체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반복 업무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일자리가 ‘중간숙련 일자리’이다. 2008년~2010년 기간 동안 미국의 제조업 취업자 수는 216만개 감소했는데 이 중에서 78.7%(170만개)가 ‘중간숙련’ 일자리였다. 흥미로운 현상은 중임금(중간숙련) 일자리는 대폭 줄었는데, 고임금(고숙련) 일자리는 오히려 가장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고임금(고숙련) 일자리는 왜 늘어나는 것일까? 2010년~2017년 기간 중 연평균 취업자 수 증가율을 보면, 고숙련(2.0%) 일자리가 중간숙련(1.4%) 및 저숙련(1.8%) 일자리를 상회했다. 세부 직종을 보면 이들은 대부분 첨단 고숙련을 상징하는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 부문에 해당한다. 그럼 저임금(저숙련) 일자리는 왜 늘어났을까? ‘고령화’로 인한 실버산업의 성장 때문이다. 의료 산업, 요양 서비스 산업이 해당한다.●아시아 중산층 승자… 선진국 중산층은 패자 ‘중임금=중간숙련 노동자’는 왜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일까? 부분적으로는 ‘자동화=로봇화’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화보다 더 큰 요인이 있는데 이는 ‘세계화’이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세계화’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손해를 봤는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계화의 실체는 ‘아시아의 경제적 부상’을 의미하며, 세계화의 최대 수혜집단은 아시아의 중산층이고, 세계화의 최대 피해집단은 선진국의 중산층이다. 이런 현상을 잘 보여 주는 자료가 ‘코끼리 곡선’이다.(‘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21세기북스)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곡선 그래프에서 X축은 전 세계 인구를 소득 100분위로 배열했다. Y축은 1988년~2008년 기간 동안의 소득 증가율이다. 그래프상에서 A지점, B지점, C지점을 각각 살펴보자. A지점은 글로벌 소득 백분위로 볼 때, 약 55분위에 위치한다. 해당 기간 동안 소득증가율은 80%에 달한다. X축을 기준으로 글로벌 소득분포에서 40분위~60분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소득증가율이 70% 수준이다. 이들의 규모가 세계 인구의 5분의1이다. A지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고, 나머지는 인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국민들이다. B지점은 글로벌 소득분포에서 80분위~90분위에 해당한다. 이들은 소득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이들은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중임금·저임금 노동자들이다. C지점은 세계 각국의 최고 부유층인 최상위 1%들이다. 이 중 절반은 미국 부유층이고, 나머지는 일본을 포함한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부유층이다. 종합해 보면, 아시아에 몰려 있는 글로벌 신흥 중산층이 세계화로 가장 큰 이익을 봤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중산층이 가장 큰 손해를 봤다.●‘공산주의 붕괴’ 역설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세계화 효과를 측정함에 있어서 해당 기간을 1988년~2008년으로 잡았다. 왜 하필 1988년일까? 그것은 ‘공산주의 붕괴 시점’이기 때문이다. 1989년 동독이 몰락하고 독일 통일이 이뤄진다. 1989년~1990년에 루마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의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이 차례차례 몰락한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소련)이 해체된다.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체제 경쟁’을 했다. 동유럽과 소련의 몰락으로 체제 경쟁의 승자가 분명해졌다. 미국과 자본주의가 승리했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승리하고,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후 발생했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몰락 이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1970년대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공업화를 위한 ‘추격(Catch Up) 전략’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글로벌 노동시장’에서 대격변이 벌어진다. 리처드 프리먼의 연구에 의하면 ‘공산주의 붕괴 이전’에 약 15억명이었던 글로벌 노동시장 규모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에 약 30억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글로벌 노동시장에서 ‘노동력 공급’이 2배로 늘어나게 됐다. 프리먼은 이를 “거대한 2배”(Great Doubling)라고 표현한다. 글로벌 노동력이 30억명으로 늘어나게 되자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시장은 두 가지 영향을 받게 된다. 첫째 자본에 대한 ‘노동의 교섭력’이 약화된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이다. 둘째 선진국 노동시장을 ①고임금 ②중임금 ③저임금으로 구분할 경우, 선진국의 ‘중임금 노동자’가 중국 노동자에 비해 ‘가성비’(가격대비 성능) 차원에서 경쟁열위가 된다. 직관적으로 비유하면, 미국 중임금 노동자가 300만원에 만드는 산출물을 중국 노동자는 200만원에 만드는 꼴이다. 미국 중임금 노동자가 ‘통째로’ 퇴출당하게 된다. 요컨대 선진국의 노동시장 양극화는 선진국 부유층이 ‘착취’를 강화해서가 아니라,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노동자들이 선진국의 ‘중임금 노동자’를 몰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노동시장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는 중이다.●정세 변화의 본질은 ‘경쟁 격화’ 글로벌 정세변화의 본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경쟁 격화’이다. 경쟁 격화는 경제주체 모두에게 과거와 다른 대응을 강요하고 있다. 여기서 경제주체란 ▲국가 ▲산업 ▲기업 ▲지역 ▲개인 모두를 포괄한다. 변화된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대응은 ‘공급측’ 역량강화(Empowerment)에 필요한 정책 일체이다. 전후(戰後) 유럽의 복지국가는 공급측 경쟁압박이 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총수요를 관리하는 ‘수요측’ 복지국가였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론과 포용국가론 역시 전성기 시절 유럽 복지국가 모델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역시 ‘수요측’ 정책이 중심이다. 우리가 ‘경제환경의 구조변화’를 수용한다면, ‘공급측’ 소득주도성장론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공급측 역량강화 정책은 크게 3가지 방향으로 가능하다. 첫째 자본과 노동 자원의 ‘효율적 재배치’를 돕는 정책 일체가 중요하다. 각 부문의 ‘비효율’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공공부문 개혁, 노동시장 개혁, 재벌 개혁, 중소기업 지원체계 개혁을 점진적으로, 그러나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 둘째 경제정책은 경제정책스럽게, 사회정책은 사회정책스럽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경제정책은 ‘효율성’과 ‘규모의 경제’를 중시해야 하고, 사회정책에서는 ‘안전망’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대상자는 좁게, 금액은 두텁게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개별정책으로 보면 ▲근로장려금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인적자원개발 ▲평생교육 체계정비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조기개입 강화(아동장려금, Child Tax Credit)가 중요하다. ‘경쟁격화’의 상황에서는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강조했던 슘페터리안적 접근이 더욱 절실하다. ■2월부터 ‘논설위원의 사이다’와 ´2019년 쟁점 분석´을 격주로 게재합니다.
  • 대구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2~3월 집중 추진

    대구시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2~3월을 기념사업 집중 추진 기간으로 정해 다채로운 시민 참여 행사를 펼치기로 했다. 2 ~ 3월에 추진될 주요 사업과 행사는 일본군위안부 주제 연극 ‘할머니의 방‘이 남구 소극장 함세상에서 2월 19일에서 2월 23일 사이 무료 공연한다. 국채보상운동과 2?28 민주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월 21일부터 2월 28일까지 동성로와 2·28기념공원 등에서 ‘2019 대구시민주간’ 행사를 개최하며, 2월 22일에는 기념 뮤지컬 갈라공연이 동성로 야외무대에서 진행된다. 2월 26일에는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대구시립교향악단의 ‘100주년 기념 음악회’를, 2월 28일에는 3?1절 전야행사인 대구YMCA 주관의 대구만세운동길 걷기 행사 ‘떨리는 밤, 함성전야’를 선착순 1000명 모집, 무료참가 행사로 개최된다. 3월 1일에는 100주년 3?1절을 기념하기 위해 9시에서 10시 30분 사이 달성공원 1000명, 청라언덕 2000명, 반월당 보현사 2000명 등 총 5000명이 3개 경로에서 출발하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으로 집결하는 만세재현 거리행진을 펼친다. 이어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화합의 광장에서 10시 30분 100주년 3·1절 기념식을 개최하며, 12시에는 국채보상기념공원 종각에서 타종식이 이어진다. 이와 함께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일원에서는 17시까지 민족영웅 VR가상체험, 근대 대구풍경사진과 태극기역사 전시,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 교육·홍보관, 독립선언서 탁본·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기 독립운동가 의상과 음식 체험, 대구여성 플래시몹, 서예 퍼포먼스 등 시민참여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이를 통해 대구시는 시민에게 우리지역 역사·문화 전통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또 중구를 제외한 7개 구·군에서도 관내 지정 장소에서 만세재현 거리행진 등 기념행사를 개최하며, 두류공원 일원에서는 100주년 기념 마라톤대회를, 대구스타디움 일원에서는 장애·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어울림 자전거대회를 개최한다. 3월 이후에도 우국시인 현창 문학제, 상설문화관광프로그램, 명사초청 강연회,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포럼, 대구청년상화학교, 청년도시탐험대, 시민토론회, 호국보훈대상 시상 등의 다양한 기념사업이 시민 참여를 기다린다. 대구시는 앞으로 더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념사업 추진을 홍보하여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3?1운동 및 임정수립 100주년을 시민과 함께 기려 대구의 시민정신을 드높이고 시민에게 애국애족, 애향심을 고취할 계획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올 한 해가 뜻 깊은 3?1운동 및 임정수립 100주년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시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자발적인 참여를 부탁한다”며,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잘 관리하여 지역사랑, 나라사랑운동과 지역공동체 통합과 화합의 운동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혜와 역량을 모아 나가 대구 역사의 전통을 대구시민이 인식할 수 있게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독립운동 관심 없다고?” 독립기념관 관람객 꾸준히 증가

    “독립운동 관심 없다고?” 독립기념관 관람객 꾸준히 증가

    ‘요즘 사람들 나라사랑에 별로 관심이 없다?’ 꼭 그렇지도 않다고 항변하듯 독립기념관 관람객이 갈수록 늘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1일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2000년 108만 8563명이던 관람객수가 지난해 163만 1742명으로 늘었다. 18년 간 50% 정도 증가한 것으로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관람객이 크게 늘지 않는 기념관의 일반적 특징과 좀 다른 양상이다. 독립기념관 관람객은 2005년 104만 3639명으로 잠시 줄었으나 2010년 135만 8245명으로 급증한데 이어 2015년 140만 1680명, 2016년 151만 9931명, 2017년 163만 3175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기념관 관계자는 “20~30대 젊은이가 어른 세대보다 관심이 떨어지지만 가족 단위로 많이 오다보니 크게 적지는 않다”면서 “군인들도 많은데 여자 친구와 함께 오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기념관은 군인이 기념관에서 2시간 교육을 받으면 1일 휴가를 주도록 국방부와 협약해 2~3년 전부터 해마다 12만여명이 찾는다고 밝혔다.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3전시관(나라지키기)이다. 목숨을 건 항일투쟁을 담고 있다.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단지 혈서, 1905년 을사늑약에 비분강개해 자결한 민영환의 유서, 일본군이 의병을 ‘폭도’로 몰아 살육한 뒤 올린 보고서 등이 있다. 특히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1904년 7월 창간해 항일투쟁 여론의 선봉에 선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도 전시돼 있다. 기념관 관계자는 “해설사와 동행하며 둘러보는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감동한다. 모르는 내용까지 알려주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겨레의 큰마당에서 ‘한말 국권수호운동과 3.1운동’을 주제로 의병 사진 등 60점이 선보이는 야외사진전이 열리고 설 연휴인 2~6일 겨레의 집에서 윷놀이와 제기차기 등을 즐길 수 있는 전통 민속놀이마당도 있다. 조선총독부 건물 부재 전시공원도 볼만하다. 기념관은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세계 최고의 무궁화공원(10만 그루) 조성, 임시정부 특별전, 독립운동 인명사전 발간 등의 사업을 벌인다. 독립기념관은 국민성금을 모아 1987년 8.15 광복절 날 천안시 목천읍 부지 399만 3836㎜에 문을 열었고, 7개 전시관과 입체영상관을 갖추고 있다. 주변에 유관순 열사 및 이동녕 임시정부 초대의장의 생가와 기념관, 조병옥 박사 생가, 워터파크를 갖춘 상록리조트 등 관광지도 적잖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북한 올해 사상최대 관광수입 전망 이유는

    북한 올해 사상최대 관광수입 전망 이유는

    올해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로 사상 최대 규모의 관광 수입을 올릴 전망이다. 2019년은 북한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지 70주년이 되는 해로 북한을 찾는 해외 관광객의 80%는 중국인이다. 북한은 유엔의 대북 제재에 포함되지 않는 분야인 관광과 약재를 통해 경제 살리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5일 북한 및 중국 언론 등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달 인삼 재배부터 수매·가공·수출 과정을 총괄하는 조선인삼협회를 출범하고 인삼법을 제정했다. 북한의 개성 인삼은 손에 꼽히는 특산품으로 인삼 자체를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약을 만들거나 술을 담가 판매하고, 화장품 성분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이번에 협회를 만든 것은 인삼가공품 생산을 촉진해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개성에 있는 경공업 분야 특화 대학인 고려성균관대학은 고려인삼학부를 두고 인삼 재배와 가공기술 등을 가르치고 있다. 인삼 중에서도 북한이 가장 앞세우는 개성고려인삼 가공공장은 1958년 12월 문을 열어 지난해 창립 60주년을 맞이했다. 인삼협회 서기장을 맡은 김광해 조선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 사장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장수보약재이자 나라의 명산물인 조선 인삼의 재배면적과 생산량을 늘리고 가공을 과학화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달 25일 제정한 인삼법은 인삼부문 사업에서 나서는 원칙들, 인삼밭 조성과 인삼의 재배와 수매, 그 가공품의 생산 및 판매 그리고 이 사업에 대한 지도통제에서 지켜야 할 법적 요구들이 밝혀져 있다. 북한의 인삼은 품질이 뛰어나지만, 가공기술이 떨어지며 비료와 제초제를 덜 쓰기 때문에 더 자연적이라 중국 인삼보다 2∼3배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차 방중 기간인 지난달 9일 베이징 교외 이좡의 전통 중의약 업체 동인당 공장을 시찰했다. 지난달 23~30일 베이징을 방문한 북한 예술단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와 리잔수 상무위원이 공연을 관람하는 등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오는 4월 평양에서 열리는 평양 국제 마라톤대회에는 지난 5년간 참여했던 1000여명보다 훨씬 많은 외국인이 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북한 전문 여행사들은 따로 1만 위안(약 166만원)의 상금을 걸고 평양마라톤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연간 북한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숫자는 약 10만명으로 추산되며 북한의 관광수입은 4400만 달러(약 500억원) 규모다. 지난해 북한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인 판문점을 방문한 외국인은 8만명이었다. 중국의 북한 전문여행사인 INDPRK 설립자 그리핀 체는 “지난해부터 북한 관광산업의 서비스 질이 크게 개선됐다”면서 “호텔과 관광버스 등을 보수하고 장식을 새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의 주요 여행사들이 서양 관광객 증가에 주목해 영어를 할 수 있는 안내원을 더 많이 고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인은 연간 800여명 정도가 북한을 방문하며 이 외에도 일본, 영국, 캐나다, 프랑스, 말레이시아, 터키 등지에서 북한 관광에 참여하고 있다. 더 많은 관광객을 모으고자 마사지 서비스뿐 아니라 승마, 실탄 사격, 롤러코스터를 타는 놀이공원 등의 체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중국 시안, 청두, 타이완 등지에서도 북한으로 가는 관광객을 모집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외국인은 러시아산 Mi-17 헬리콥터를 타고 마식령 스키장에서 스키를 탈 수도 있다. 인민일보 평양 주재 특파원 망주천(莽九晨)은 “북한이 지난해 4월 경제발전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뒤 관광시설과 인프라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특파원 생생리포트]일본에서 주목받는 ‘선택적 싱글맘’…15년새 3배 증가

    [특파원 생생리포트]일본에서 주목받는 ‘선택적 싱글맘’…15년새 3배 증가

    결혼은 안 하지만 자신의 능동적인 의지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른바 ‘선택적 싱글맘’이 최근 일본에서 부쩍 주목받고 있다. 2000년 이후 일본의 미혼 싱글맘이 3배로 늘어난 가운데, 여기에는 이러한 선택적 싱글맘의 증가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선택적 싱글맘은 출산·양육에 대한 능동성이 강조되는 것으로, 원치않는 임신·출산까지 포괄하는 ‘자발적 싱글맘’과 차이가 있다. 경제적으로 능력있는 여성이 늘어난 가운데 결혼보다는 ‘나의 삶’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게 주된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결혼+출산’이라는 전통적 가족관이 지배적인 일본 사회에서 미혼 싱글맘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을 놓고 논란도 일고 있다.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간사이 지방에 사는 여성 회사원 A(43)씨는 35세를 지나면서 ‘앞으로 출산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하루빨리 아이를 가져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20대 때부터 결혼에 대한 희망이 강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A씨는 “무조건 아이는 낳아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사귀던 남자에게 사정 얘기를 말하고 39세에 출산을 했다. 현재 미혼인 상태로 딸(4)을 키우고 있다. A씨는 “우리 딸 덕분에 인생이 다채롭고 행복해졌다”며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니혼게이자이에 말했다. 선택적 싱글맘은 1981년 미국에서 ‘SMC’(Single Mother by Choice)라는 명칭으로 처음 개념화됐다. 일본에서는 2014년 선택적 싱글맘 당사자들의 교류를 위한 ‘SMC네트워크’가 도쿄에서 처음 발족됐다. 참가자는 현재 약 60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싱글맘과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20~40대 여성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다카타 마리(49)는 딸(11)과 둘이서 살면서 정보기술(IT) 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다카타는 31세에 회사를 창업해 일에 파묻혀 사는 동안 30대 중반이 되자 당시 남자친구에게 아이를 갖자고 했다. 그러나 장남이었던 남자친구는 결혼을 하고나면 반드시 자신의 본가가 있는 지역으로 옮겨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카타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반드시 하나의 세트로 할 이유는 없다”고 결론 내리고 현재 상황을 스스로 선택했다. 일본 총무성 통계연구소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혼 상태에 있는 싱글맘은 2015년 기준 17만 7000명으로, 2000년 6만 3000명에 비해 15년새 거의 3배가 됐다. 여기에는 선택적 싱글맘 증가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미혼 싱글맘 가정의 평균 근로소득은 177만엔으로, 이혼·사별 등 이력이 있는 혼인 경력 싱글맘 가정의 평균치(200만엔)을 밑돌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결혼 경력이 없는 싱글맘에 비해 이혼, 사별 등을 겪은 싱글맘은 행정상으로 더 우대를 받기 때문”이라며 “미혼 싱글맘에 대하는 ‘전통적 가치관에 어긋난다’ 등 보수층의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혼 싱글맘의 경우 결혼 경력이 있는 사람에 적용되는 소득공제 등 제도상 우대나 행정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효고교육대 대학원 나가타 나츠키 강사는 “선택적 싱글맘이 주목되는 배경에는 가족 형태의 다양화나 직장여성의 증가 등이 자리한다”며 “일본은 서구보다 결혼·출산을 하나의 세트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개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응원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니혼게이자이에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금요칼럼] 20세기 한국 음악과 근·현대 무형문화유산/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20세기 한국 음악과 근·현대 무형문화유산/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유튜브는 축복이다. 최근 아르메니아 출신 미국 작곡가 앨런 호바네스(1911~2000)의 ‘Mountains and rivers without end’를 발견해 즐겁게 들었다. 번역하면 ‘끝없이 펼쳐진 산과 강’이란 뜻인데 우리에게는 강산무진(江山無盡)이라는 한문식 표현이 오히려 익숙하다. ‘강산무진’이라면 작가 김훈의 소설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시겠다. 호바네스와 김훈의 ‘강산무진’은 음악과 문학으로 장르가 갈리지만 둘 다 조선시대 화가 이인문(1745~1821)의 ‘강산무진도’를 모티브로 삼았다. ‘강산무진도’는 길이가 856㎝에 이르는 대작이다. 호바네스는 1963년 한국을 방문한 길에 덕수궁미술관에서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봤다고 한다. 호바네스는 당시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한없이 긴 산줄기와 강을 따라 떠나는 나그네 길과도 같았다. 안개 속을 헤치고 시작하는 여정은 웅장한 산, 유장한 강, 숲과 폭포, 마을과 사찰을 지나면서 끝없이 이어지다 다시 안개 속에 묻혀 허무 속에 녹아 사라진다’ 내친김에 역시 미국 작곡가 루 해리슨(1917~2003)의 ‘퍼시피카 론도’도 유튜브에서 찾았다. 해리슨은 인도네시아 전통음악 가믈란을 세계에 알린 작곡가이지만, 한국 음악을 재해석하는 작업에도 열중했다. 관현악 모음곡 ‘퍼시피카 론도’는 한국에서 멕시코에 이르는 태평양연안국가의 전통음악을 사실상 편곡한 작품이다. 박(拍)과 편종을 염두에 두었을 울림이 인상적이다. 1950~1960년대 서구 음악계는 기존의 창작 분위기에서 한계를 느끼자 그 돌파구를 동양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호바네스와 해리슨 역시 중국·일본·인도·인도네시아 등의 다양한 동양 음악을 섭렵했고 특히 한국 전통 음악에 특별한 애정을 가졌다. 호바네스와 해리슨이 한국을 찾은 1960년대 초반은 국내에서도 창작 국악이 본격 선을 보이던 시대다. 가야금 창작음악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황병기(1936~2018)의 ‘숲’이 발표된 것도 1963년이다. 한국 음악의 시선에서 서양 음악을 바라보고 쓴 작품이 ‘숲’이라면 서양 음악의 시선에서 한국 음악에 눈뜨며 만든 것이 호바네스와 해리슨의 작품이다. 그런데 ‘강산무진’도 그렇고, ‘퍼시피카 론도’도 그렇고 유튜브에는 한국 음악과의 연관성을 소개하는 아무런 설명도 붙어 있지 않아 섭섭했다. 댓글에서도 이런 인식은 보이지 않았다. ‘숲’을 비롯한 황병기의 작품들이 ‘창작 국악의 고전’으로 활발히 연주되는 것과 달리 호바네스와 해리슨의 작품은 국내 연주회장에서는 듣기가 어렵다. 한국 음악의 역사에서 황병기는 물론 두 미국 작곡가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이런 역사적인 작품들은 문화재 정책 차원에서 ‘근·현대 무형문화유산’이라는 새로운 보존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미래 한국 문화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은 어떨까 싶다. 최근 목포의 근대문화유산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던 것처럼 근대 유형문화재는 문화재청이 등록 보호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무형문화재에는 아직 제도적 보존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다. ‘숲’ 정도라면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나. 호바네스와 해리슨의 작품도 분명 가치가 있다고 본다. 친일 논란이 불거지지만 않았다면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은 당연히 문화재적 가치가 있었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들었을 김정길의 ‘서울올림픽 팡파르’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학창시절 그의 작품 ‘추초문’도 인상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대중음악도 예외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나 남진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의 ‘고향역’은 문화재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 흩어진 거제 조선업 가족들…중공업 유토피아는 어디에

    흩어진 거제 조선업 가족들…중공업 유토피아는 어디에

    기업들이 줄도산한 IMF 시기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자리한 ‘조선업의 도시’ 경남 거제는 황금기를 맞았다. 2010년 중반까지 세계 1위 선박 수주를 자랑하며 승승장구했다. “거제에서는 개가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2015년 하반기 선박 발주량이 급감하는 최악의 ‘수주 절벽’에 부딪히며 상황은 바뀐다. 2015년 대우조선해양은 3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내고, 뒤이어 2016년 앙골라 국영회사인 소난골이 발주한 이동식 시추선인 드릴십 대금을 둘러싼 이른바 ‘소난골 프로젝트’가 유예되며 위기의 골은 깊어진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았고, 협력업체 70%가 폐업했다. 언론은 그들이 일을 마친 뒤 술을 기울이던 옥포동의 상황을 연일 보여 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많은 돈을 받는 ‘귀족노조’가 흥청망청했고, 돈 잔치에 빠진 회사는 방만하게 경영했다는 것이다.●양승훈 교수, 거제 조선업 ‘흥망’ 분석 신간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이런 이야기의 뒤에 숨은 사정들을 들려준다. 저자 양승훈(38)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2012년부터 5년 동안 대우조선해양 인사·기획팀에서 일했던 경험과 사회학자로서의 시각을 섞어 거제의 조선업을 분석한다. 한국이 1990년대 세계 조선 시장을 석권하기 전 유럽과 일본이 조선업 패권을 잡고 있었다. 유럽은 오랜 기술과 주변국의 저임금을 바탕으로 1960년대 전후 조선업을 이끌었다. 그러나 일본이 1970년대 용접으로 강판을 조립하는 방식을 도입하며 주도권을 가져온다. 한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그리고 블록의 대형화·모듈화, 생산효율 극대화 등의 기술로 일본을 누르고 세계 최고에 올라선다. ●정부 적극 투자 등 90년대 시장 석권 저자는 이런 바탕에 ‘중공업 가족´이 있었다고 말한다. 옥포조선소를 비롯해 여러 조선소가 거제시에 들어서며 일감이 늘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 과정에서 끈끈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하는 노동자 공동체, 직원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른바 ‘회사·가족 공동체’다. 그러나 이 가족은 위기를 맞으며 급격하게 무너진다. 2000년대 조선소는 불황과 함께 선박 대신 바다 위에 세워두는 해양플랜트 사업으로 눈길을 돌린다. 선박과 달리 해양 플랜트는 많은 공정을 요구했고, 이에 따른 많은 문제를 불렀다. 급할 때 불러 쓰는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을 가리키는 ‘물량팀’이 업무 시간을 넘어 밤샘하는 ‘돌관 작업’을 해야 했다. ●무리한 해양플랜트 수주는 위기 불러 2008년 경제 위기로 해운 물동량이 줄어든 데다가 해양 플랜트를 과하게 수주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회사·가족 공동체´의 붕괴를 짚어낸다. 고임금을 받는 직영업체 정규직과 더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적은 돈을 받는 하청업체 비정규직 간의 갈등, 그리고 고교만 졸업하고 현장에서 고임금을 받은 과거 직원과 달리 수도권 대학을 나온 고학력 젊은 노동자는 호시탐탐 회사를 벗어나려 노력한다. 여기에 전통적인 남초 현상에 따른 각종 부작용 등으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였던 거제는 서서히 그 빛을 잃는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조선업의 흥망에 맞춰 인구 유입 변화와 부동산 가격 등 각종 통계와 전 세계적인 산업 동향을 함께 엮었다. ●“거제 다음 주역은 누가 돼야 하는지…” 5년 동안 흥망을 바라보고 치밀하게 조선업을 분석한 저자는 이제 미래를 이야기할 때라고 강조한다. 저임금으로 덤비는 중국과 기술력으로 다시 조선업을 넘보는 일본이 있다. 여기에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한 동남아시아의 공세도 매섭다. 저자는 이와 관련,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보장된 정년과 높은 연봉으로 대표되던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 고용 유용성과 저성장에 맞물려 있다. 악화한 시장에서 수주한 선박은 예전처럼 10%에 이르는 수익률을 담보하지도 못한다. 여기에 숙련된 직영 노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이룩했던 왕년의 높은 생산성을 다시 회복해야 하는 과제 등 여러 난관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제의 다음 주역은 누가 돼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거제를 떠났던 딸들, 높은 연봉과 수도권을 향했던 젊은 엔지니어들이 일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1위 규모 ‘매머드급’ 조선사 탄생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과 노조의 반발 등 문제도 여전하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거제는 또다시 중공업의 유토피아로 되살아날 수 있을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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