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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디스, 日신용등급 하향 경고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25일 일본 정부의 막대한 공공 부채를 지적하며 신용 등급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이에 앞서 지난 9일 세계적인 대량 리콜 사태를 맞은 도요타 자동차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도 언급한 바 있다.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토머스 번 무디스 수석 부사장은 이날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몇 년간 일본 정부의 재정 적자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부정적인 신용 등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일본 여당인 민주당이 6월 발표하기로 예정한 ‘중기 재정 개혁안’을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혁안을 일본 재정 신용도를 평가하는 경계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번 부사장은 일본 정부의 반복적인 과잉 지출과 고질적인 과다 부채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급증하고 있는 재정 지출은 재정 안정을 해치고 투자자들의 일본 국채 매입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무디스의 경고로 일본의 과중한 공공 부채와 앞으로 재정 지속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게 됐다면서 투자자들이 일본의 장기국채 매입을 망설이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 일본의 공공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이라고 덧붙였다. 무디스는 지난해 5월 일본 시장이 신규발행 국채를 원활하게 소화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국내 채권 신용 등급을 Aa3에서 Aa2로 상향 조정했지만 지난 1월 간 나오토 재무상이 선임된 이후 일본의 재정긴축 노력이 느슨해질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일본 경제는 지난달 또 다른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데 이어 무디스마저 하향 조정을 경고해 또 한번의 위기를 맞고 있다. 신용등급이 하락할 경우 일본 정부 발행 채권의 금리가 상승하게 돼 더 큰 재정 부담을 지게 되고 균형재정을 맞추기 위해 재정 감축을 단행할 경우에는 경기가 더욱 침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일본 패망과 한국전쟁

    [한·일 100년 대기획] 일본 패망과 한국전쟁

    2005년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부 관료와 기업 경영자 등 100명을 상대로 전후 60년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응답자들은 전후 일본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경제사건 가운데 한국전쟁을 다섯 번째로 올려놨다. 전후 일본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는 요시다 시게루(1878~1967) 전 일본 총리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신이 내린 선물”이라면서 “이제 일본은 살았다. 하늘이 일본을 돕는다.”고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외손자인 아소 다로 전 총리도 총무성장관 시절 영국 옥스퍼드 강연에서 “운좋게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일본 경제 재건을 급속도로 진전시켰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닷지 불황서 도요타 구출하기도 혹자는 일본 사람들의 근면성이 전후 경제 부흥을 이끌었다고 평가한다. 평화헌법으로 인해 방위비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경제 발전에 주력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공산권에 대항하고 물자 부족시대에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빚은 결과라고 이야기하는 학자도 있다.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했겠지만 어찌됐든 한국전쟁이 일본 경제 부활에 기폭제가 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전후 주택과 산업시설의 상당부분이 파괴됐다. 일본이 세계 전쟁에 명함을 내민 것이 무기와 군수 물자를 지원할 수 있었던 재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판단한 미 군정 사령부는 재벌을 해체하기도 했다. 미 군정 방침이 일본 응징에서 일본 경제 자립으로 방향을 틀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미국의 자금 원조를 받은 일본은 1947년 즈음부터 경제 회복에 시동을 걸었다. 특히 석탄, 전력, 해운 분야 등에 자본이 대량 공급됐다. 그런데 국채(복구채)가 크게 늘어난 탓에 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게 됐다. 1949년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미국 디트로이트 은행장 조지프 닷지가 일본을 찾아 인플레이션 잡기에 나선다. 닷지는 긴축 재정을 펼쳤다. 부흥금융공사의 융자가 멈추고 채권 발행이 중지되자 인플레이션이 해소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해 도산과 실업이 잇따른다. 이른바 ‘닷지 불황’이었다. 1949년 6월 국철 분야에서 약 10만명, 전기·전철 분야에서 약 2만명이 해고됐다. 도시바 등 민간 기업에서도 대량 해고가 이어졌다. 1950년 3월 이케다 하야토 재무상은 군소업자들이 도산하고 자살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하기까지 했다. 이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日경제학자 “마셜 플랜 효과에 필적” 미군의 거점 기지 격이었던 일본에서는 엄청난 수요가 발생했다. 미군은 한국전쟁을 위한 마대·석탄·트럭·포탄 등 군수물자를 일본에서 사다 썼다. 트럭이나 전차·함정의 수리, 기지 건설 및 정비 작업 등도 일본에 발주했다. 당시 도요타는 트럭·탱크로리·덤프 트럭·지프 등을 4679대나 주문 받아 공장 폐쇄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세계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미국이 일본에서 쓴 돈은 최대 30억달러로 추산된다. 이로써 산업 전반에 신규 투자가 가능해진 일본은 1950년대 후반부터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는 고도 성장을 거듭하게 됐다. 일본 경제학자 요네자와 요시에의 분석에 따르면 1951년 12%였던 일본 경제 성장률은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9.4% 또는 4.9%로 뚝 떨어진다. 1950년 6월23일 90.59엔이었던 닛케이 평균 주가가 1953년 7월 휴전 즈음 386.13엔으로 3년 동안 4배 이상 뛴 점도 한국전쟁의 일본 경제 기여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경제학자 나카무라 마사노리는 자신의 저서 ‘전후 일본사 1945~2005’에서 “1949년부터 이어진 닷지 불황에 신음하던 일본 경제에 한국전쟁은 단비와 같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정치경제학자 찰머스 존슨도 “일본에 있어 한국전쟁은 마셜 플랜에 필적하는 효과를 지녔다.”고 분석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저무는 해’ G7

    │도쿄 박홍기특파원│세계의 경제 문제를 협의해왔던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가 외교의 공식 무대에서 퇴장한다. 지난 1973년 발족 때의 ‘비공식 회의체‘라는 원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대신 G7의 역할은 한국·중국·인도 등 신흥국들이 참가하는 G20에서 맡는다. 이에 따라 G7은 오는 5∼6일 캐나다 이콸루이트에서 회의를 갖지만 12년반 만에 공동성명을 내지 않기로 했다.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 등으로 구성된 G7은 최근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 해마다 3차례씩 정례적으로 회의를 열어왔다. G7은 1973년 환율의 안정을 위해 미·일·영·프·서독 등 5개국 재무장관들의 비공식적 모임으로 출범, 87년 이탈리아와 캐나다가 참가하면서 세계 경제의 흐름을 다루는 공식적인 모임의 현 체제를 구축했다. 98년 2월 회의 때부터 매번 경제정세에 대한 인식 및 협력 과제를 정리, 공동성명을 내놓았다. 간 나오토 일본 재무상은 “문서로 정리하지 않고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이 3일 보도했다. G7은 앞으로 환율이나 개발도상국의 원조 등을 논의하는 회의체로 축소될 전망이다. G7은 캐나다 회의에서 향후 G7의 위상과 함께 연 3차례씩의 회의 축소, 부정기적인 회의 등도 중요 의제로 다루기로 했다. hkpark@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

    [한·일 100년 대기획]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

    꼬박 100년이 흘러갔다. 아시아의 평화와 대한 독립을 간절히 원했던 안중근은 옥중에서 미완성 수고(手稿) ‘동양 평화론’을 쓰다가 형이 집행됐다. 머리말과 목차만을 남겼을 뿐이다. 일련의 상황들은 얼핏 역설 또는 가치의 전복에 가깝다. ‘동양 평화’ ‘대동아공영’을 주창했던 일본의 정치인 이토 히로부미를, ‘동양 평화를 원하던’ 안중근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총살했으니 말이다. 안중근의 의거 10개월 뒤인 1910년 8월 일본은 한국을 병탄(倂呑)한다. 100년이 지났건만 평가는 엄정하고, 치밀해야 한다. 새로 오는 100년을 준비하기 위해서 더더욱 냉철하고,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 또한 지난 역사의 평가작업으로서 제기되는 몇몇 의문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필요하다. #장면 1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10분 중국 하얼빈 기차역. 일본의 전 총리이자 조선 통감부 제1대 통감(총독)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탄 기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러시아 군복 스타일의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대합실에서 일어나 천천히 플랫폼으로 걸어나갔다. 만 서른 살의 청년,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 안중근이다. 이토는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68세의 노정객 이토는 기차 안에서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20분 남짓 대화를 나눈 뒤 모습을 드러냈다. 안중근은 러시아 사열병 바로 뒤쪽까지 다가섰다. 신문기자로 위장했기에 접근에 어려움은 없었다. 이토가 사열병 앞으로 다가서는 순간 안중근은 앞으로 뛰쳐나가 품 속에서 권총을 빼내 세 발은 이토에게 명중시키고, 나머지 세 발은 수행원들을 쐈다. 그리고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우레 코레아!(한국, 만세!)”를 외쳤다. 이토는 30분 뒤인 오전 10시 사망했다. 현장에서 붙잡힌 안중근은 일본 법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개인자격이 아닌 대한의군 사령관으로서 처형하였다.”고 밝힌 뒤 사형을 선고받았고, 항소를 포기하며 죽음을 선택했다. 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 뤼순(旅順) 감옥에서 형이 집행됐다.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였다. 뤼순 감옥 뒷산에 묻힌 그의 유해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 지난해 9월 동상으로나마 돌아온 안중근은 여러 논란 속에서 제자리를 못 잡다가 두 달 가까이 지나서야 경기 부천 안중근 공원(구 중동공원)에 어렵사리 정착할 수 있었다. #장면 2 이토 히로부미는 1905년 일방적 을사늑약 체결, 1906년 조선 1대 통감으로서 펼친 각종 조선 말살 및 식민지화 정책,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등 일제가 벌인 동아시아 침략에 주도적 역할을 맡는 등 씻을 수 없는 죄과를 남긴 인물이다. 크고 작은 저항은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 그는 안중근에 4년 앞서 또 다른 대한제국 청년의 의거로 중상을 입었다. 이토는 초대 통감으로 부임(1906년 3월)하기 직전 수원으로 사냥 나들이를 나서는 등 여유 있는 한때를 보냈다. 해 저물녘 안양을 들러 서울행 기차를 타기 위해 자리에 앉았는데 을사늑약 체결에 비분강개하던 스물 세 살 원태우가 돌멩이를 여러 개 던져 유리창을 깨뜨렸고, 이토의 얼굴에는 파편 여덟 개가 박혔다. 원태우는 징역 2개월에 장형(곤장 100대)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과 일본 역사 안에서의 평가는 또 다른 극점에 놓여 있다. 그는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격(格)으로 평가받는다. 빈농의 아들에서 출발한 그는 일찍이 영국 런던대학으로 유학해 화학을 전공하는 등 서구 문물과 근대 교육을 받아들였고, 일본 메이지 헌법의 초안을 마련했으며, 내각제 등 일본 정치제도의 근간을 만들었다. 초대 총리와 5·7·10대 총리를 지냈고, 추밀원 의장, 귀족원 의장을 맡는 등 36년 동안 일본의 최고 핵심권력에 있었다. 하지만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총리에서 몸을 한껏 낮춰 조선의 초대 통감을 자처했으니, 일본에서는 개인의 욕망보다는 겸손하게 대의에 충실한 인물, 동양 평화를 추구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토의 장례는 1909년 11월4일 히비야공원에서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1963년 발행된 일본의 천엔(円)권 화폐 속 인물이 됐을 정도로 지금도 국민적 추앙을 받고 있다.
  • [월드 뉴스라인] 신임 日재무상 “엔화약세 필요”

    간 나오토 일본 신임 재무상은 7일 엔고 현상과 관련, “두바이 쇼크 당시에 비해서는 엔화가 약세지만 조금 더 약하게 가는 것이 좋다.”면서 “경제계에서는 1달러에 90엔대 중반이 적절하다는 견해가 많다.”면서 이례적으로 95엔 전후로 엔가치의 하락을 유도했다. 또 “적절한 수준이 되도록 일본은행과 연대해 노력하겠다.”고도 밝혔다. 간 부총리 겸 재무상은 이날 후지이 히로히사 전 재무상의 후임으로 취임했다.
  • 日재계 디플레 대책 요구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재계의 총수들은 신년 인사에서 한결같이 더블딥(이중침체)을 우려했다. 또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경제동우회, 상공회의소 등 일본 3대 경제단체장은 5일 새해 공동기자회견에서 ‘디플레이션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성장전략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게이단렌의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은 회견에서 “불행하게도 일본의 경제 회생은 아직 지속적이지 못하다.”면서 “디플레가 이어지는 가운데 올 상반기도 심각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성장전략을 실천에 옮기는 조치밖에 없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또 기업 활성화를 위해 세제개정 및 규제개혁, 아시아 각국과의 연대강화 등을 주문했다. 상공회의소의 오카무라 다다시 회장도 “하반기에는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면서 “올라운드보다는 기술집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환경에 비중을 둔 녹색공공사업의 추진을 제언했다. 경제동우회의 사쿠라이 마사미쓰 대표는 “정부의 재정지출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독자적인 노력이 중요하다.”며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3대 단체장들은 올해 평균 주가를 8000∼1만 2000, 엔화가치를 달러당 85∼100엔으로 예측했다. 한편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6일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후지이 히로히사(77) 재무상의 후임에 간 나오토(63) 부총리 겸 국가전략담당상을 기용했다. 또 국가전략담당상은 센고쿠 요시토(63) 행정쇄신상이 겸임토록 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오는 18일부터 열리는 정기국회에서의 예산 심의와 함께 인선이 늦어질 경우 국정 혼란 및 비판 여론을 우려해 인사를 서둘렀다. 후지이 재무상은 지난해 9월 출범한 하토야마 정권에서 사임한 첫 각료로 기록됐다. hkpark@seoul.co.kr
  • 삼중고 日경제 “위험수역 진입”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경제가 수렁에 빠졌다. 지난 20일 디플레이션을 공식 선언한 이래 ‘두바이 쇼크’까지 겹치면서 엔화 가치는 급등한 반면 주가는 급락, ‘삼중고’에 걸렸다. 현재로선 디플레이션, 엔고, 주가하락이 뒤섞인 수렁에서 탈출구도 뚜렷하지 않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일본 경제가 위험수역에 들어섰다.”는 경고까지 내놓았다. 지난해 10월 리먼브라더스에 이은 ‘제2의 바닥’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잖다. 엔화 가치는 지난 27일 한때 달러당 84엔대로 가파르게 오르다 86엔대로 물러났지만 1995년 7월 이래 최고 수준이다. 닛케이평균주가지수도 27일 4개월 만에 9100선이 붕괴된 9081.52로 마감, 30일 9000선 붕괴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29일 오후 관저에서 간 나오토 국가전략상과 히라노 하로후미 관방장관, 후지이 히로히사 재무상 등과 긴급회의를 갖고 엔고와 주가하락에 적극 대응토록 지시했다. 특히 2조 7000억엔(약 36조 4500억원) 규모의 올해 제2차 추경예산에 고용·환경·경기 대책뿐만 아니라 엔고 및 주가 대책도 포함시키도록 했다. 수출 기업들을 중심으로 실적 악화 등 실물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한 비상 처방이다. 산업계와 금융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다음달 1일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와 디플레이션과 엔고, 주가 등 경제 상황의 전반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우선적으로 엔고 문제에 집중할 전망이다. 수출 타격이 막대해서다. 금융시장에선 벌써부터 정부가 단기적인 시장개입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후지이 재무상도 엔고와 관련, “(외환시장을) 긴장해서 주시하고 있다. (엔화가) 이상하게 변동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며 여러 차례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터다. 일본은 2004년 3월 이후 외환시장에 한번도 손을 댄 적이 없다. 금융 전문가들은 최근의 엔고 현상을 미국이 경기회복을 위해 초저금리정책을 장기화한 탓으로 돌리고 있다. 때문에 엔고와 달러 약세 현상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미 달러 값이 떨어진 데다 ‘두바이 쇼크’로 유로화의 가치까지 하락하는 현실에서 엔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디플레이션도 큰 숙제다. 물가가 8개월 연속 마이너스에 머물고 있는 디플레이션 상태다. 하토야마 총리는 통화량 완화정책의 지속이 필요한 만큼 시라카와 총재에게 중앙은행이 적절한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hkpark@seoul.co.kr
  • 엔화 14년만에 최고치

    일본 엔화 가치가 14년 만에 달러 대비 최고 수준으로 폭등했다. 미국의 초저금리 정책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달러 값이 폭락하면서 엔화 가치를 끌어올렸다. 26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값은 전날보다 1.57엔 오른(엔·달러 환율 하락) 달러당 86.78엔(일본은행 오후 5시 기준)을 기록해 1995년 7월7일(84.92엔) 이후 14년4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환율은 증시에도 영향을 미쳐 닛케이 평균주가지수가 전날보다 58.40포인트(0.62%) 떨어진 9383.24포인트에 마감됐다. 후지이 히로히사 재무상은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정부가 정상적인 환 움직임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해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하토야마 불황’ 경계하는 열도

    ‘하토야마 불황’ 경계하는 열도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의 과감한 공공사업 감축 방침에 따라 경기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가뜩이나 공적자금의 약발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공공사업의 중지 및 수정은 오히려 경기회복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엔고와 주가하락, 실업률 상승과 맞물려 ‘하토야마 불황’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토야마 정권은 올해 추경예산 13조 9000억엔(약 50조 7000억원) 가운데 꼭 필요하거나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공공사업의 재조정에 나섰다. 핵심 공약인 아동수당과 공립고교 무상화 등에 필요한 3조엔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같은 규모의 공공사업이 없어지는 셈이다. 정부는 추경예산 집행정지 총액을 정리해 이르면 6일 발표하기로 했다. 노무라증권금융경제연구소는 3조엔의 추경예산집행을 멈추면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0.4%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또 삭감의 직접적인 영향은 내년 3월까지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후반기의 경기전망은 밝지 않다. 정부에서 국민 한 명에게 1만 2000엔씩을 지급한 정액교부금을 비롯해 에코 포인트제, 친환경차의 감세 등의 효과도 약해지기 때문이다. 노무라증권금융경제연구소 측은 “개인소비와 생산의 악화, 엔고에 따른 수출의 저조 등의 우려가 크다.”면서 “추경예산 집행정지까지 겹쳐지면 경제 전반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엔고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8월31일 1달러당 93.06엔에 달하던 엔화가치는 이날 현재 89엔 후반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달러 대비 1엔이 상승하면 연간 250억엔, 혼다자동차는 120억엔의 영업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닛케이평균주가는 지난 8월31일 1만 493에서 이날 현재 9674까지 떨어졌다. 지난달 실업률은 5.5%다. 후지이 히로히사 재무상은 4일 엔고와 관련, “엔화가 일방적으로 급등할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며 수출을 고려해 외환시장의 개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즈호종합연구소 측은 요미우리신문에서 “목표액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좋다.”면서 “무리하면 국민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주문했다. 물론 공공사업의 집행을 중지시킨 뒤 예산의 사용처를 명확하게 밝히면 경제성장의 악영향이 없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 hkpark@seoul.co.kr
  • 나카가와 전 日재무상 자택서 숨져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인 나카가와 쇼이치(56·8선) 전 재무상이 4일 오전 8시30분쯤 도쿄 세타가야구에 위치한 자택의 2층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나카가와 전 재무상의 부인으로부터 “남편이 침대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도쿄 경시청에 따르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침대에 누운 채 숨져 있었다. 외상도,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아소 다로 전 총리의 최측근이었던 나카가와 전 재무상은 지난 2월 재무상 재직 당시 로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재무장관회의 기자회견에 술에 취해 참석, 횡설수설했다가 파문이 커지자 사퇴했다. 지난 ‘8·30’ 중의원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농림수산상, 경제산업상, 자민당 정조회장, 재무상 겸 금융상 등을 거친 자민당의 실세였다. 아소 전 총리는 사망 소식에 “차세대를 맡을 소중한 인재였다. 말로 할 수 없다.”며 비통해했다.hkpark@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다니가키 사다카즈 자민당 신임 총재

    [피플 인 포커스] 다니가키 사다카즈 자민당 신임 총재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제1야당인 자민당 다니가키 사다카즈(64·10선) 전 재무상이 28일 제24대 총재로 선출됐다. 임기는 2012년 9월까지 3년이다. ‘8·30’선거에서 참패해 망가지다시피 한 자민당의 지도체제를 재정비해 정권 탈환을 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짊어졌다. 내년 7월 참의원‘선거에 앞서 당장 다음달 25일 가나가와현과 시즈오카현 참의원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다니가키는 인사말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 다시 정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그는 총재선거에서 전체 499표 가운데 300표를 얻었다. 최대 파벌인 고가파를 비롯해 모든 파벌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았다. 소장파를 대표해 세대교체를 내걸었던 고노 다로(46·5선) 전 법무 부대신과 니시무라 야스토시(46·3선) 전 외무 정무관은 각각 144표와 54표를 획득했다. 1표는 무효표다. 자민당이 야당으로서 총재선거를 치른 것은 호소가와 정권 때인 1993년 이래 두 번째다. ‘총재=총리’라는 등식이 깨진 총재선거인 탓에 당원들의 호응은 높지 않았다. 변호사 출신인 다니가키는 세습의원이다. 문부과학상을 지낸 자민당 의원인 아버지 다니가키 센이치가 1983년 6월 갑자기 사망하자 후원회 추대로 지역구를 이어받았다. “(정치는) 세습이 아니기 때문에 잇지 말라.”는 아버지의 평소 만류에 당초 정치에 뜻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니가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때인 2003년 9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재무상을 지낸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통이다. 또 후쿠다 야스오 정권 때는 당 정조회장, 국토교통상을 지냈다. 고이즈미 총재의 사임에 따라 실시된 2006년 9월 총재선거에 처음 출마해 아베 신조, 아소 다로 등과 3파전을 벌여 꼴찌에 머물렀다. 다니가키는 ‘지성파’로 통한다. 일처리에 실수가 없을 만큼 완벽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외교 분야에서는 동아시아 중시 노선을 갖고 있다. 각료 재임 때는 고이즈미 총리의 노골적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야스쿠니를 찾지 않았다. 한·일의원연맹 상임간사를 맡고 있다. hkpark@seoul.co.kr
  • 검증받는 하토야마 엔고 방관정책

    검증받는 하토야마 엔고 방관정책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의 경제공약이 외환시장에서 검증되고 있다. 28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1달러당 엔화가 지난 2월 이후 처음으로 88엔대에 거래됐다. 이에 앞서 25일에는 뉴욕 외환시장에서 90엔대가 무너졌다. 엔고(高)가 정착될 조짐을 보이자 일본 내 명품 수입업체들은 세일로 고객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당분간 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적고, 새 정권은 엔고를 방관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기업이 아니라 국민생활을 지원하겠다고 밝혀 왔다. 후지이 히로히사 재무상의 “정부가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25일 발언은 전임 정권 재무상의 발언과 정반대다.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고 엔을 팔아 엔화 약세를 부추기면, 수출하는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일본 국민들은 싸게 살 수 있는 수입품을 비싸게 사야 한다. 이는 지난주 말에 끝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합의에 위반된다. G20 정상들은 세계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 국가들이 소비에 주력하도록 촉구했다. 일본의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16조엔(약 213조원)이다. 문제는 일본의 경제구조다. 수출이 경제성장을 주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전망이다. 엔고로 일본의 수출은 아시아의 주요 경쟁 국가에 비해 더디게 회복되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입물가 하락이 소비자물가 하락으로 이어지면 디플레이션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메릴린치의 도모코 후지이 외환분석가는 “현재의 엔·달러 환율이 최저점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토야마 정권이 개입할 의사를 피력하지는 않았지만 개입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각료 17명 중 9명 지한파로 분류

    │도쿄 박홍기특파원│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의 각료들은 자민당의 정권에 비해 한층 한국과 가깝다. ‘지한파’로 알려진 하토야마 총리를 필두로 각료 17명 가운데 실질적으로 한국과 관련된 인사가 무려 9명에 달했다. 이들은 재일 교포들의 숙원 과제인 지방참정권 부여에 적극 찬성하는 각료들이다. 실제 재일 교포를 비롯, 한국에 대해 깊고 폭넓게 알고 이해하는 의원들로 분류되고 있다. 민주당 안에는 지난해 1월 ‘재일 한국인 등 영주 외국인들의 법적 지위향상을 위한 의원연맹’(회장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이 결성됐다. 중의원 29명·참의원 36명 등 65명이 참여했다. 모임은 2006년 한국에서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 참정권을 인정한 것과 관련, “상호주의에 입각,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의원 연맹 가운데 각료는 오카다 외무상을 포함, 지바 게이코 법무상·후지이 히로히사 재무상·가와바타 다쓰오 문부과학상·아카마쓰 히로타카 농림수산상·마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상·오자와 사키히토 환경상·센고쿠 요시토 행정쇄신담당상 등이다. 간 국가전략상은 의원 연맹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취지에 찬성하고 있다. 마에하라 국교상은 지난 6월 당시 하토야마 대표의 방한 때 동행한 ‘전략적 한·일 관계를 구축하는 의원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다. ‘지한파’ 각료들의 포진에 따라 재일 교포들의 지방참정권 문제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센고쿠 행정쇄신상은 2006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한·일 관계의 악화는 고이즈미와 같은 특이한 인물 탓”이라고 비판한 적도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달 11일 “총리가 돼도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할 생각이 없다.”면서 “각료들도 자숙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서원철 지방참정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은 원래 지방참정권의 부여에 적극적”이라면서 “하토야마 정권이 들어선 만큼 내년 6월까지 법안이 확정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hkpark@seoul.co.kr
  • 日 하토야마 정권 출범

    │도쿄 박홍기특파원│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정권이 16일 공식 출범한다. 하토야마 대표는 이날 개회되는 특별국회에서 제93대 총리로 선출된다. 이어 아키히토 일왕으로부터 인증서를 받아 새 정부, 민주당 연립정권의 닻을 올린다. 민주당은 지난 9일 사민당, 국민신당과 연립 구성에 합의했다. 아소 다로 내각은 하토야마 정권 출범 직전에 총사퇴할 예정이다. 하토야마 대표는 15일 저녁 새 정권을 운영할 17개 부처의 각료 인선을 마쳤다. 조각에서는 정권교체에 부응할 수 있도록 당의 ‘간판급’ 정치인들이 대거 등용됐다. 하토야마 대표는 신설될 부총리급 부처인 국가전략국담당상에 간 나오토 대표대행, 외무상에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 관방장관에 히라노 히로후미 당 대표 비서실장, 재무상에 후지이 히로히사 당 최고고문 등을 내정했다. 가와바타 다쓰오 전 간사장은 문부과학상에 기용됐다. 연립정권의 한 축인 사민당 후쿠시마 미즈호 대표는 소비자행정상을, 가메이 시즈카 국민신당 대표는 금융상 겸 우정문제담당상을 맡았다. 또 나오시마 마사유키 정조회장, 마에하라 세이지 부대표, 오자와 사키히토 국민운동위원장, 아카마쓰 히로타카 선거대책위원장, 센고쿠 요시토 전 정조회장 등도 입각이 확정됐다.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은 이날 열린 참의원·중의원 총회에서 ‘거대 여당’을 이끌 간사장에 정식 취임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이날 오전 민주당 상임간사회에서 “지금부터 시작이다. 국민 중심의 정치를 구축하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다. 일치 단결해 일본의 정치를 밝히자.”고 호소했다. hkpark@seoul.co.kr
  • [시론] 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세가지 제언/이상훈 한국외국어대 일본학부 교수

    [시론] 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세가지 제언/이상훈 한국외국어대 일본학부 교수

    지난달 30일 일본 국민의 선택에 의해 자민당호가 난파되고, 민주당호는 많은 기대와 관심 속에 출범을 기다리고 있다. 오는 16일 하토야마 정권 출범과 함께 발표될 각료 인사도 민주당 내 대표주자들로 확정되었다. 외상에는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 재무상에는 후지이 히로히사 최고고문, 신설하는 국가전략국 담당상에는 간 나오토 대표대행 등이 내정됐다. 한국 정부나 언론도 하토야마 내각의 출범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시아 외교의 강화, 한·일 양국의 신뢰관계 강화, 야스쿠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립추도시설의 건립, 일본 내 영주외국인에 대한 참정권 부여 등 민주당의 공약뿐만 아니라, 하토야마를 비롯한 민주당 대표주자들이 ‘지한파’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광복 이후의 한·일관계가 ‘안정’과 ‘갈등’을 반복하는 곡절 많은 역사였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갈등’의 배경에는 식민지 지배의 역사와 그 유산으로서의 ‘과거사 청산’에 기인하는 양국 국민의 감정, 외교문제로 확대되기 쉬운 ‘역사인식’의 차이 등이 존재하며, 이것은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쉽게 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역사의 교훈은 양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서는 양국 간에 항상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지만, 그것이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대 한국정부의 대일정책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토야마 정권이 출범한다 하더라도 한·일 양국 간에 존재하는 역사교과서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은 전통적 갈등 요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문제는 언제까지 한국 정부나 여론이 일본의 변화에 대해 일비일희(一悲一喜)할 것인가이다. 일본의 대한(對韓)정책에 어떠한 변화가 오더라도, 한·일 간에 갈등을 야기하는 이슈가 등장하더라도 이에 대해 능동적으로 의연하게 대처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이를 위해 세 가지만 제언하고자 한다. 먼저, 한국의 대일본정책의 큰 틀을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성숙한 동반자관계, 발전적 한·일관계 등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지향하는 한·일관계의 그랜드 디자인을 정립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둘째, 대일정책의 큰 틀 안에서 이를 능동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의 확충이 요구된다. 청와대나 외교통상부 등 정부조직 내 일본 전문가가 너무 부족하다. 정치·경제·사회적 분야에서 일본만큼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국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내에 일본 전문가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한·일 간에 정치 현안이 발생했을 때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여론에 좌우되어 왔다. 셋째, 하토야마 정권의 등장과 함께 일본 정부 내지는 정치가와의 인적 유대관계를 강화해야만 한다. 정부 간의 인적인 유대관계가 약화되면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후 세대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현시점에서 양국 간의 인적 네트워크 형성이야말로 긴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의 출범과 함께 대한정책의 변화가 예상되는 현시점이야말로 새로운 한·일관계 형성을 위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의 변화를 기대한다. 이상훈 한국외국어대 일본학부 교수
  • 오자와 당 인사·국회 운영… 국가전략상 간 내정

    오자와 당 인사·국회 운영… 국가전략상 간 내정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민주당 정권이 정치주도의 정국운영을 위한 골격을 갖췄다. 차기 총리인 하토야마 유키오(62·8선) 대표는 중의원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른바 ‘3인방’을 내각과 당의 핵심 요직에 적절히 배치, 국정의 안정을 꾀한 데다 계파간의 균형을 맞췄다. 오자와 이치로( 67·14선)·간 나오토(62·10선) 대표대행, 오카다 가쓰야(56·7선) 간사장은 ‘트로이카’로 불린다. 오자와 대표대행은 일찍이 당의 실권을 가진 간사장에 내정됐다. 하토야마 대표는 5일 오자와에게 당의 인사와 국회 운영까지 완전히 일임했다. 당내 120여명의 계파 수장으로서 확실하게 당권을 장악, 내년 7월 참의원선거를 진두지휘토록 하기 위한 선택이다. 내각의 경우 부총리급의 국가전략국담당상에 간 대표대행, 외무상에 오카다 간사장을 기용했다. 재무상에는 대장상(현 재무상)을 지낸 후지이 히로히사(77·7선) 당 최고고문을 발탁했다. 당·내각은 실세들의 ‘독차지’가 됐다. 이로써 조각의 윤곽도 드러났다. 간 대표대행은 당 대표를 두 차례나 역임한 데다 계파의원도 40명 정도 거느리고 있다. 국가전략국은 정책을 총괄하는 정권의 사령탑이다. 간은 당초 관료개혁에 의욕을 보이며 관방장관을 기대했지만 국가전략상에 낙점됐다. 당의 정조회장을 겸임, 내각과 당간의 정책 일원화를 꾀할 방침이다. 특히 간은 오자와가 정책을 결정하는 전략국, 즉 내각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방파제’ 역할을 맡았다. 관방장관에 내정된 히라노 히로후미(60·5선) 당대표 비서실장은 자민당 정권 때와 달리 당과 내각 사이의 원활한 소통과 함께 국회 대책에 비중을 두고 있다. 오카다 간사장은 소장파 의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미국·중국 등에 튼튼한 인맥을 형성, ‘대등한 미·일 관계’를 비롯해 한국·중국 등을 포함한 아시아 중시외교를 이끌어가는데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통 재무관료출신인 후지이 최고고문은 공약에서 제시한 아동수당 등 복지공약의 재원 16조 8000억엔(약 224조 8000억원)을 확보하는 한편 내수의 확대에 힘써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hkpark@seoul.co.kr
  • [新일본시대] ‘간판’ 하토야먀 ·‘실세’ 오자와 투톱이 파워인맥 뿌리

    [新일본시대] ‘간판’ 하토야먀 ·‘실세’ 오자와 투톱이 파워인맥 뿌리

    일본의 8·30 총선을 승리로 이끈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가 31일 본격적인 정권 인수 작업에 나선 가운데 ‘민주당의 실세’가 주목받고 있다. 지도부가 ‘파워 인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새 내각의 구성과 기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까닭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총선 전부터 내각의 요직을 두고 하마평이 무성했다. ●지도부, 차기내각 요직 차지할 듯 선거 뒤 새 정정권에서는 ‘당의 얼굴’ 하토야마 대표와 이번 선거 승리의 주역으로 불리고 있는 ‘막후 실세’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의 투톱 체제가 파워 인맥의 뿌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투톱 체제 밑으로, 간 나오토 대표대행과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 고시이시 이즈마 참의원 의원 의장까지 민주당의 핵심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들이 차기 내각에서 주요 직책을 차지하리란 전망이다. 실제 이들은 정부의 3대 주요 요직인 관방장관과 외무상, 재무상의 하마평에 올랐다. 하토야마 대표는 선거운동 기간 “가장 중요한 관방장관, 재무상, 외상은 정치인을 기용하고 싶다.”고 인사 구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간 대표대행은 정부 대변인격인 관방장관으로, 오카다 간사장은 외무상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재무상을 맡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 등은 이날 “재무상 후보군으로 오카다 간사장과 간 대표대행, 후지이 히로히사 최고고문 등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후지이 최고고문은 당의 조세정책을 맡고 있는 경제통으로 당내 주요 인맥 가운데 하나다. 미네자키 나오키 민주당 참의원 재정위원장도 재무상 후보에 오르내리고 있다. 보통 재무상은 중의원 가운데 선발되는 것이 관례지만 미네자키는 당의 경제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주목되고 있다. 이미 그는 ‘하토야마노믹스’ 수립 과정에 관여한 인물이다. 하토야마에게 외교·안보 문제 조언을 해왔던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종합연구소 회장, 연금문제 전문가로 통하는 나가쓰마 아키라 중의원, 하토야마 최측근이라 불리는 나오시마 마사유키 민주당 정조회장도 ‘친(親) 하토야마 라인’이다. 데라시마 소장은 방위상에, 나카스마 의원은 국민연금담당상 물망에 오르고 있다. 무소속 출신이지만 이번에 민주당에 입당한 다나카 마키코 중의원 의원도 주요 인맥이다. 학계에서는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와세다대 교수가 민주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민주당 자문역을 맡고 있으며 경제 요직에 앉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야마구치 지로 홋카이도대 교수와 이오 준 정책연구대학원 교수도 민주당 지도부와 활발한 교류를 해 왔다. 민주당의 재계 인맥은 자민당에 비해 빈약한 편이지만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을 필두로 시마 사토시 소프트뱅크 사장실장, 오하시 미쓰오 쇼와전공 회장 등이 주요 민주당 인맥으로 꼽힌다. ●당내 계파문제로 당정 마찰 가능성 하지만 당내 인맥의 주축은 막후실세 오자와 대표대행이다. 민주당 내 오자와 그룹은 선거 이전 50여명으로 추산됐지만 이번 선거 승리로 100명을 넘을 전망이다. 민주당의 지역구 후보자 271명 중 정치 신인이 114명이었고 오자와 대행이 정치 신인 발탁에 적극 관여했기 때문이다. 그는 발탁에 그치지 않고 선거기법 전수는 물론 선거자금까지 지원해 ‘오자와 칠드런’을 만들었다. 새 내각의 총리 자리는 하토야마에게, 당내 지배력은 오자와 대표대행이 실권을 쥐는 ‘상왕 체제’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지난 2005년 총선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게 발탁된 ‘고이즈미 칠드런’은 77명 중 10명만 당선됐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1993년 10개월여 ‘깜짝 야당’… 고이즈미 시절 민심이반 심화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을 54년간 통치해온 이른바 ‘1955년 체제’의 자민당이 사실상 궤멸된 상태다. 중의원선거에서 처음으로 제1당도 빼앗겼다.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자민당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권력을 장기 독점해 왔다. 하지만 2007년 7월 참의원선거 패배에 이어 이날 중의원선거도 완패했다. ●1955년 자유당+민주당으로 탄생 자민당은 창당 이래 10개월간을 빼고는 사실상 집권당의 위치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터다. 1990년 중의원선거 때 리쿠르트 사건, 우노 소스케 전 총리의 여성스캔들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텼다. 1993년 중의원선거에서는 과반수에 실패했지만 제1당을 지켰다. 물론 당시 자민당 장기 집권에 반발한 야당들이 비(非)자민, 비공산 연립정권에 합의해 호소카와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한때 처음 야당으로 전락했다. 총리도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이치 의원이 맡았다. 하지만 호소카와 내각의 자중지란에 따라 자민당은 1995년 6월 일본사회당 등과 연립, 다시 여당으로 복귀했다. 10개월 만이었다. 이후 자민당은 한층 쇠퇴의 길에 빠져들었다. 중의원·참의원선거에서 잇따라 기존의 표를 잃어갔다. 자유당, 공명당과의 연립을 통해 정권을 겨우 유지했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우정(郵政·우체국) 선거’는 예외다. 우정 민영화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개혁 표방에 유권자들은 열광했다. 자민당은 296석을 획득했다. 언론들은 ‘진통제 효과’로 평가했다. 실제 고이즈미 총리의 재임 5년 5개월 동안 도시와 지방간의 격차 심화, 농촌의 피폐화 등 개혁의 피로증에 민심 이반은 심화됐다. 세습 정치인의 전형인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중도 퇴진, 아소 다로 총리의 좌충우돌 행동과 발언은 자민당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한층 키웠다. ●16선 가이후 전총리도 첫 고배 반자민당 정서는 정치 원로와 중진들에게도 직격탄이었다. 16선의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는 정치인생 49년 만에 처음 고배를 마셨다. 자민당내 최대 파벌의 수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 야마자키 다쿠 전 부총재, 아소 총리의 친구인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 9선의 요사노 가오루 재무상 등도 힘을 쓰지 못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54년만의 선거혁명… 新일본 열다

    54년만의 선거혁명… 新일본 열다

    │도쿄 박홍기특파원│30일 새로운 일본이 열렸다. 이날 실시된 중의원선거(총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은 54년간 장기 집권해온 자민당에 완벽하게 압승했다. 이로써 민주당은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달성,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체제를 출범시키게 됐다. 반면 자민당의 ‘1955년체제’는 막을 내렸다. 선거구별 개표 집계에 따르면 31일 0시20분 현재, 총의석 480석 가운데 민주당은 301석을 획득, 단독 과반수 241석을 훨씬 넘어섰다. 자민당은 112석, 공명당은 20석에 그쳤다. 또 공산당 8석, 모두의 당과 사민당이 각각 5석을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민주당은 절대안정의석을 얻어 중의원의 상임위원회 위원장도 독점할 전망이다. 투표율은 69%를 넘어 지난 2005년 총선거의 67.5%보다 높았다. 차기 총리에 오를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이날 밤 선거결과와 관련, “국민의 뜻이 마침내 결실을 보아 정권교체를 이루게 됐다.”며 국민의 성원에 감사했다. 정권교체를 선택하는 총선거에는 모두 1374명이 출마했다. 소선거구제로 300명,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나눈 비례대표제로 180명 등 모두 480명을 뽑았다. 지난 20 05년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296석, 민주당은 113석을 얻었다. 창당 이래 최대 참패를 당한 자민당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아소 다로 총리는 “자민당에 대한 불만을 씻어내지 못했다.”면서 패배를 선언한 뒤 사퇴의 뜻을 밝혔다. 호소다 히로유키 간사장을 비롯, 당료들도 책임을 지고 당직을 내놓기로 했다.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를 포함, 자민당 최대 파벌의 수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 등 정치 원로 및 중진들도 줄줄이 낙마했다. 연립정권의 한축이었던 공명당의 오오타 아키히로 대표도 낙선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31일 곧바로 ‘정권인수팀’을 구성, 정권 인수 작업에 공식 돌입하기로 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새달 15일쯤 열리는 특별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된다. 정권이행팀은 하토야마 대표가 31일 발표할 관방장관, 국가전략국 담당상, 재무상, 외무상 등 주요 각료 내정자와 간사장 등 당 중역들로 구성된다. 특히 하토야마 대표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등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 한·일관계도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긴밀하고 대등한 외교’를 천명, 미·일 관계의 조정이 주목되고 있다. hkpark@seoul.co.kr
  • 벼랑끝 자민당, 네거티브라도…

    벼랑끝 자민당, 네거티브라도…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자민당이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중의원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민주당의 돌풍에 맞설 바람이 전혀 없어서다. 중의원 의석 480석 가운데 과반수인 241석은커녕 100석을 건지기도 버겁다는 예측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자민당 중앙본부는 현장으로 총출동한 탓에 썰렁하다. 아소 다로 정권의 각료들 역시 우선 자신의 지역구를 챙기기에 급급하다. 결국 네거티브 선거전략도 마다할 수 없는 판이다. 때문에 자민당은 최근 홈페이지에 민주당을 공격하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올렸다. ●각료들도 낙마할까 전전긍긍 노다 세이코 소비자담당상은 25일 마지막 각료회의를 끝낸 뒤 “나도 지금 고전하고 있다. 1분 1초라도 빨리 지역구 기후현에 돌아가야 한다.”며 오타 아키히로 공명당 대표의 지원유세 요청을 거절했다. 노다는 이날 요코하마시에서 당후보 2명의 유세를 돕자마자 “모든 지원 예약은 취소했다. 앞으로 지역구에 머물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만 해도 17명의 각료들은 “선거구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한 멤버”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현재는 불안과 초조, 당혹감이 역력하다. 11개월만에 역풍을 맞았다. 요사노 가오루 재무상은 “민주당의 성난 파도와 같은 물결이 도쿄를 덮치고 있다. 지금 기세라면 국회가 일당 독재가 될 수 있다.”며 위기감을 숨기지 않았다. 요사노는 “브레이크 역할을 할 정당의 존재가 필요하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아마리 아키라 행정개혁담당상은 “(민주당의) 바람은 2005년 중의원선거 때 고이즈미 선풍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라며 힘겨워했다. 7선에 도전하는 모리 에이스케 법무상은 “나라와 고향을 위해 일할 시기가 됐다. 표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야시 요시마사 경제재정담당상은 “마지막 1분까지 착실히 정책을 설명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하토야마 대표, 라면집 주인 격하 자민당은 홈페이지에 민주당을 노골적으로 야유·비판하는 애니메이션 3편을 띄웠다. 한 편은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를 꼭 닮은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라면집’이다. 여기서 “기름이 부족하다.”는 백인 남성에게 주인공이 기름을 주자 후쿠시마 미즈호 사민당 대표와 같은 여성이 “안 돼.”라고 기름을 엎는다. 또 주인공은 라면에 갖가지 재료를 넣어 라면을 아예 잡탕으로 만든다. 해상자위대의 인도양 급유지원을 중단하려는 민주당과 사민당에 대한 비판이다. ‘흔들리는 남자들 편’에서는 하토야마 대표와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 오자와 이치로, 간 나오토 대표대행 등 4명을 등장시켜 “무역자유화” 등을 내놓았다가 해당 단체 등이 반발하면 “그렇게 말할 수 없잖아.”라며 철회하는 모습을 희화화했다. ‘라면집’의 클릭횟수는 25일 게재해 하루 만에 15만, ‘흔들리는 남자’는 8만을 기록했다. ‘프러포즈 편’에서는 주인공이 “육아·교육·노후 등 모든 것을 맡겨라.”며 여성에게 청혼한 뒤 “돈은 많아?”라고 묻는 여성에게 “자세한 것은 결혼하고 나서”라고 대답한다. 민주당의 공약과 관련, 재원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비꼰 것이다. 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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