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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호 2승 실패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가 2승 달성에 실패했다. 박찬호는 19일 코메리카파크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등판,6과 3분의 1이닝 동안 안타 7개를 내주며 5실점했다.5-4로 앞선 7회말 1사 3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온 박찬호는 구원 투수 존 로커가 희생플라이를 맞고 동점을 허용,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시즌 1승1패를 유지했고 방어율은 6.61로 높아졌다. 박찬호는 팀이 1회초 공격에서 4점을 뽑아 승수 추가가기대됐다.그러나 쌀쌀한 날씨와 바뀐 투구폼에 대한 적응부족으로 제구력 불안을 드러냈고 수비진들의 수비실책까지 겹쳐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또 지난 13일 복귀전 승리이후 2연승을 노렸지만 이것도 무산됐다.투구수는 복귀전의 78개 보다 많은 93개였다. 박찬호는 4-0으로 앞선 1회말 박찬호는 로버트 픽과 바비 하긴스에게 안타와 볼넷을 허용,1사 1·2루의 위기를 맞았고 드미트리 영에게 2루타를 맞아 2점을 내줬다.3회말에도 연속으로 안타를 허용해 1점을 더 내줬다. 4∼6회를 무실점으로 넘기며 승리에 한발 다가선 박찬호는 그러나 5-3으로 앞선 7회말 우익수 후안 곤살레스의 실책에 이어 라몬 산티아고에게 3루타를 허용,1점을 더 뺏겼다.1사 3루에서 로커에게 마운드를 넘겼지만 로커는 박찬호의 승리를 지켜주지 못했다.텍사스는 7-8의 역전패를 당해 3연패에 빠졌다. **구대성 무실점 호투 승리 놓쳐 일본에서 활약중인 구대성(오릭스 블루웨이브)도 아깝게 승리를 놓쳤다. 구대성은 고베 그린스타디움에서 열린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 선발등판,8이닝 동안 삼진 7개를 빼내며 5안타1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러나 구대성은 0-0으로 맞선 9회초 마운드를 오쿠보에게 넘겼고 공수교대 뒤 팀이 1점을 뽑아 승리투수는 오쿠보에게 돌아갔다. 시즌 2승2패를 기록한 구대성은 3승사냥에는 실패했지만방어율은 1.95에서 1.78로 낮췄다. 박준석기자
  • 두얼굴의 日외교/ “”실리 우선”” 궁지몰린 탈북자 외면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외교가 또다시 실리를 좇아 인권을 외면한 소아적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아나미 고로시게(阿南惟茂) 주중 일본 대사가 탈북자를 염두에 두고 “수상한 사람은 관내에 들이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냉혹 외교’에 비판이 쏠리고 있다. ■아나미대사 발언 파문 [경위] 아나미 대사의 지시는 탈북자 5명이 선양(瀋陽) 일본 총영사관에서 체포되기 불과 4시간 전인 지난 8일 오전10시 대사관 정례 회의 때 내려졌다. 그는 “중국에 불법체류 중인 탈북자가 많다.”고 전제,“수상한 사람이 대사관에 허가없이 침입하려고 할 경우 침입을 저지하라.”고 지시했다. 이같은 지시가 즉각 중국 내 총영사관에 시달됐는지 여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그러나 사건 당일 중국 경찰이 탈북자들을 연행하기 전 선양 총영사관의 부영사가 다카하시 구니오(高橋邦夫) 주중 공사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한 결과 “무리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어떤 경로로든 대사의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일본 내각부의 한 관계자는 15일 “아나미 대사의 발언은지극히 우연”이라고 연관성을 부정했으나 회의에 참석한다카하시 공사가 대사의 ‘지시’를 염두에 두고 선양 총영사관측에 연행에 동의하는 지시를 내렸을 개연성이 크다.이 관계자는 “아나미 대사가 (탈북자가)일단 관내에 들어오면 인도적 견지에서 보호해 제3국 이동 등 적절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도 했다.”고 해명했으나 아나미 대사의 발언의 중점이 ‘탈북자 관내 진입 저지’쪽에 실려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나미 대사는 1996년 공사 시절에도 대사관 직원들에게비슷한 지시를 한 일이 있다고 한 소식통이 15일전했다. 당시 대사관에서 일했던 이 소식통에 따르면 아나미 대사는 한 북한 과학자가 일본대사관에 들어와 한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한 직후 대사관 정례회의에서 “만일 난민이나 망명신청자가 들어오면 그들을 대사관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사실일 경우 이는 중국주재 일본대사관측이 이미 그때부터 탈북자들과 망명신청자들에 대한 불관용 입장을 채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큰파장이 예상된다. [일본 정부의 방침인가] 아나미 대사의 발언이 개인적 소신인지 일본 정부의 내부 방침인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그렇지만 차관급에 해당하는 주중 대사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개인 차원을 넘어서는 무게를 가진다. 일본 정부는 중국 경찰의 총영사관 진입에 초점을 맞추고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있으나 아나미 대사의 지시로미뤄볼 때 “일본측 동의를 얻어 총영사관에 들어간 탈북자를 체포,연행했다.”는 중국측 주장이 보다 현실성을 띤다.결국 아나미 대사의 ‘지시’대로 탈북자의 진입을 저지하지 못한 총영사관측이 뒤늦게나마 중국 경찰의 총영사관 진입을 묵인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난민이나 망명 수용에 극히 냉혹하다.난민지위 조약에 가입한 1981년 이후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이 284명에 불과하고 지난해의 경우 353명이 난민신청을 했으나 7%에도 못미치는 24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됐을 뿐이다. 망명에는 더욱 인색하다.외무성 보도관은 지난 8일 일본 정부가 받아들인 망명 건수를 묻는 질문에 “1996년의 북한 과학자 망명신청 1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른 은폐 의혹] 아나미 대사의 발언도 사실상 은폐된 상태에서 사건 발생 1주일만에 드러났으나 총영사관이 1차로외무성에 제출한 보고서에도 일부 사실 은폐가 있었다. 중국측은 일본측 조사결과에 대해 “부영사가 체포된 탈북자로부터 편지를 받아 읽었다.”고 반박했다.다시 말해 일본 총영사관 직원이 탈북자들의 연행직전 이들이 미국 망명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는 “첫 보고에 편지를 읽었다는 사실은 없었으며 외무성에서 파견된 영사부장의 조사결과 이같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중국측 주장을 일부 시인했다.그러나 이 관계자는 “부영사가 영문 편지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발뺌함으로써 의혹을 증폭시켰다. marry01@ ■약점잡은 中, 對日공세 '고삐'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 정부는 선양(瀋陽) 일본 총영사관의 동의를 얻지 않고 중국 무장경찰이 탈북자 2명을 강제로 끌고나왔다는 일본측의 주장에 대해 지난 11일에 이어 14일 또다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일본측의 주장을 강력반박하고 나섰다. 쿵취안(孔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측이 13일 발표한 선양 일본 총영사관에 대한 조사결과중 일련의 중요한 부분이 사실과 맞지 않아 중국 정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정부가 일본측의 발표내용중 사실과 동떨어진다고 지적한 부분은 무장경찰의 진입에 대한 동의여부.쿵 대변인은 무경 대대장이 일본 부영사에게 “우리가 영사관내 진입해 이들 2명을 데리고 나와도 되느냐.”고 물으니 부영사는고개를 끄덕이고 손짓을 하며 동의를 표시해 관내로 들어갔다고 주장했다.특히 관내로 진입한 대대장이 “데려가도 되겠습니까.”라고 다시 물으니 부영사는 허리와 고개를 숙여 동의를 표시하면서 “커이(可以·그렇게 하십시오)”라고대답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러한 외교 공세를 통해 탈북자들을 강제로 끌어낸 데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회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이번 사건이 중·일관계에미치는 파장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중국과 일본은 서로 필요로 하는 존재인 데다 오는 9월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양국이 물밑 교섭을 통해 수습에 나설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중국은 이에 따라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했다 중국 당국이억류중인 장길수군 친척 5명의 탈북자들에 대한 신병처리를 최대한 신속히 처리키로 방침을 정했다. 중·일 외교문제와 이들의 신병처리를 분리처리하는 전략인 셈이다.이들의 억류가 중국의 대외적 인식에 결코 도움이 안된다는 계산 때문이다.그러는 한편 중국은 일본에 대한 외교 공세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해 앞으로 이번 사건을 일본을 상대로 외교적 입지 강화의 호기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khkim@ ■아나미대사는 누구 지난주 탈북자들이 대사관에 들어오면 쫓아내라고 지시했다는 보도로 물의를 빚은 아나미 고로시게(阿南惟茂·61) 주중 일본 대사는 현직 외교관으로서보다 아나미 고 레치카(阿南惟幾) 전 육군대신의 막내아들로 더 유명하다. 아나미 대신은 일본 우익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지난45년 일본의 2차대전 패전 당시 육군대신으로 8월15일 일왕이 항복을 시인하는 라디오 음성(일본인은 이를 옥음(玉音)이라고 함)을 들으며 할복자살한 사람이다.그는 가족들 앞에서 자살했으며,아나미 대사는 당시 4살이었다. 아나미 대신은 패전 하루 전날인 8월14일 일본의 항복을결정한 마지막 어전회의에서 끝까지 본토 결전을 주장한 인물중 하나.“죽음으로 대죄를 씻고자 한다.천황폐하의 깊은 은혜를 입어 남길 말은 없다.신국불멸을 믿으며…”라는유서를 남겼다. 아나미 대사는 도쿄대 법대를 나와 67년 외무성에 들어왔다.아주국 심의관,아주국장,내각 외정실장을 역임했다.보수·우익 외교관으로 분류된다. 김수정기자 crystal@
  • 국보급 ‘日미술명품전’

    기원전 1세기 일본 야요이시대의 ‘청동방울’ 등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를 국내 처음으로 무더기로 선보이는 ‘일본미술명품’ 특별전이 1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된다.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두 나라 문화 교류를 위해 열리는 이번 특별전에선 일본의 국보 17건 24점,중요문화재72건 104점 등을 포함 총 298점의 일본 문화재가 선보인다. 이 문화재들은 대부분 한국에 첫 선을 보이는 것들로,기원전 2,500년 조몬시대부터 16∼19세기 에도시대 말기까지 걸쳐 있다. 이중 특히 한일 고대사 왜곡 부분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고대 일본의 편년체 역사책 ‘일본서기’(720년),기원전 1세기 야요이시대의 제기인 청동방울,옻칠 위에 금은 가루로 화려하게 문양을 장식한 11세기 헤이안 시대 ‘연당초무늬 마키에 경전함(蓮唐草蒔繪經箱)’,문수보살을주제로 한 ‘목조문수보살 및 시자상(木造文殊菩薩·侍者像),귀족적인 미의식을 가장 잘 나타낸 불상으로 알려진‘제석천상(帝釋天像)’ 등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조몬시대의 토기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기원전 2000여년전의 토기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조형성과 세밀함이 뛰어난 이 토기들은 일본 우익교과서 등이 일본열도가 세계 8대 문명발상지 중의 하나였음을 주장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것들이다.전시회는 7월 14일까지 계속된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회 개막에 맞춰 전시물들을모은 도록 ‘일본미술명품’(362쪽,5만원)도 발간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씨줄날줄] 메이지 시대의 그늘

    일본 역사를 통틀어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기는메이지 시대(1867∼1912년)일 것이다.왕 대신 도쿠가와(德川)장군 가(家)가 일본을 통치한 막부 체제가 250여년 만에 무너지고 메이지(明治) 일왕이 등극한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로,일본은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면서 봉건국가의 틀에서 벗어나 근대 산업국가로 거듭났다.막부 체제가 천황중심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드라마틱한 사건이 숱하게 발생했고,따라서 ‘훌륭한 국가 지도자들이 하늘의 별만큼 쏟아져 나왔다.’고 할 정도로 영웅·호걸이 명멸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가 일본인에게 찬란했던 것과는 달리주변국들에게는 불행한 근현대사를 알리는 서곡에 불과했다.메이지유신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정한론’을 주창한 뒤로 일본은 조선을 호시탐탐 노리다가 결국 1910년 강제로 병합했다.류큐(琉球)왕국이 해체돼 일본의 오키나와 현이 된 것도,청·일전쟁의 결과로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도 다 메이지시대 일이다.그뿐이 아니다.아직도 현대 일본사회의 병폐로 꼽히는 우익 운동,황국사관,천황 중심주의 등이 모두메이지 시대에 잉태된다. 일본 야요이(彌生)시대(서기전 3세기∼서기 3세기)에 만들었다는 청동제 창 9점이 사실은 메이지 시대에 제작된가짜라는 사실이 최근 밝혀져 일본 사회가 떠들썩하다고한다.이 가짜 창들은 일본내 박물관과 신사 말고도 이탈리아 제노바의 동양미술관에 소장됐다고 하니,유물 조작으로 악명 높은 일본 고고학계가 이번에는 국제적으로 큰 망신을 당한 것이다.일본에서는 이같은 위조품을 만든 이유를메이지 1년 있었던 신불(神佛) 분리령에서 찾는 모양이다.고유종교인 신도(神道)에서 불교적 요소를 떼어낸 뒤 국교로 삼아 제정일치를 실현하려 한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가짜 청동 창 한점 한점에는,일본 역사의 장구함을 위조하고 일왕을 살아 있는 신으로 조작하려 한 메이지 시대의 그늘이 짙게 배어 난다.메이지 시대의 영광을 즐기는 것은 일본인 자신의 권리지만,그 찬란함의 반대편에드리워진 그늘을 거두는 것은 일본인의 의무다.이를 깨달아주었으면 하는 게 이웃나라 사람의 간절한 바람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대한광장] ‘日 네오파시즘’ 두고만 볼건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가 또 다시 전격적으로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여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다.지난해 8월에 이은 두 번째 참배이다.지난 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총리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적이 있지만,두 번씩이나 참배한 것은 고이즈미 총리뿐이다.그는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문제인가? 말할 것도없이 야스쿠니신사가 A급 전범의 위패까지 봉안한 곳이기 때문이다.야스쿠니신사는 전몰자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시설로서,여느 나라에나 있는 국립묘지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그곳은 근대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의 원흉과 전범들을 군신으로 추앙함으로써 전쟁을 미화하는 역사왜곡의 진원지이다.한번이라도 야스쿠니신사에 가본 사람이라면,그곳을 지배하고 있는 전쟁의 광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신사를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침략전쟁을 긍정하고 전범을 공식적으로 추앙하는 반역사적인 행위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는 일련의 역사왜곡과 동일한 맥락에 있는 정치적 행위로서,우경화운동을 견인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지난해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중학교 교과서에 이어 지난 9일 극우 조직의 하나인 ‘일본회의'의 ‘최신일본사'까지 검정을 통과함으로써 역사왜곡은 고등학교에까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최신일본사'의 집필자들 역시 일본 우익운동을 이데올로기측면에서 실천하고 있는 자들이며,궁극적으로는 ‘전쟁을 할수 있는 나라' 일본을 지향하고 있다.교과서를 통한 일본의역사왜곡은 결코 단발적이거나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일본사회 내부를 관류하고 있는 거대하고도 조직적인 네오파시즘의 물결이 만들어낸 파도의 하나이며,총리의 신사 참배는 또하나의 파도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나름대로 절묘한 시점에 신사를 참배했다.8월 종전기념일에 참배하기는 어렵다는 판단 아래,중국과의수교 30주년이 되는 9월을 피하면서 월드컵 공동 개최를 목전에 두고 있는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는 시점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한국 경시의 얄팍한 계산은일시적으로 효과를 거둘것이다.예상대로 한국정부는 일본대사를 불러 ‘엄중 항의'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새역사교과서'와 동일한 사관을 갖고 독도의영유권까지 주장하고 있는 ‘최신일본사' 등의 고교 교과서검정 통과에 즈음하여 ‘일부 기술을 개선한 점에 대해서는이를 평가한다.'는 견해를 표시한 바 있다.지난해 역사교과서 파동 때에 비하면 훨씬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이러한 반응에 대한 회답이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로 나타났다고 하면,억측일까? 역사왜곡과 총리의 잇단 신사 참배,자위대의 해외 파병 등일본은 단계적으로,치밀하게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지금이라도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한다.혹여 월드컵대회를 잘 치르자는 생각에서 이러한 일본의 행위를 감내하려 한다면,회복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정부는 중국,북한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일본의 군국주의화에 공동 대응하는 외교 전략을 수립하고,문화개방의 지연 내지 축소 등 한·일관계를 재점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지난해 화끈 달아올랐던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시민들의관심도 이번에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다.시민들의 자발적인 관심과 일본에 대한 올바른 인식,그리고 적극적인 대응이 아시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가장 굳건한 초석이 될 것이다.그러므로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조직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한편,평화를 사랑하는 아시아 민간인들과의 폭넓은교류와 연대를 모색해야 하겠다. ▲안병우 한신대교수·국사학
  • [사설] 털끝만큼도 변하지 않는 日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21일 2차대전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한 것은침략행위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행위이며,아시아 국가들과 일본의 양심세력에 대한 중대한도전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참배에서 두가지 점을 고려한 것 같다.하나는 패전일인 8월15일을 전후해서 참배함으로써 이웃나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던 점을 피하고자 한 것같다.또 하나는 “정치가로서 두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안 된다는 기분으로 참배했다.”고 말해 부전(不戰)결의가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을 모면하려 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를 앞두고 한국이 강하게 반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참배시기 선택에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고이즈미가 총리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참배 그 자체로서 침략사를 부정하는 행위다.고이즈미 총리 등 일본의 우익들은 침략의 멍에를 벗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 왔다.역사 교과서 왜곡도 그 가운데 하나이며 최근 고이즈미 정권이 일종의 ‘전시 입법’이라고 할수 있는 유사법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그들은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가까워지는데이제는 ‘보통국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바꿔 말해 힘도 쓰고,큰 소리도 쳐 보고 싶다는 것이다.하지만 지난 60년동안 국제사회는 전쟁범죄에 대해 더욱 엄중한 처벌을 내리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과거의 잘못이 방치되면 현재와미래의 평화를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우리도 한·일 우호협력관계와는 별개로,털끝만큼도 변하지않는 고이즈미 총리 등 일본 우익들의 망동에 대해 경계의끈을 늦춰서는 안된다. 정부도 다소 부담이 있더라도 일본정부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길 바란다.
  • 日 왜곡교과서 문제내용/ 독도 “”日고유영토 한국이 위협””

    지난해 일본의 우익단체인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펴낸 후소샤(扶桑社)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 이후 가까스로 봉합돼 가던 한·일 관계가 또 다시 위기를 맞았다.우익성향의 출판사인 메이세이샤(明成社)가 출판한 고교 역사교과서인 ‘최신일본사’가 9일 한·일 분쟁의 상징이라고할 수 있는 ‘독도’에 대해 일본의 영유권을 주장한 내용을 담아 문부성 검정을 통과했기 때문이다.이번 검정 파동은지난해 역사교과서 왜곡파동 이후 일본 정부가 한국측의 반발을 감안해 고심해온 노력,그리고 최근 잇단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관계가 정상궤도로 복원됐다는 정부의 평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당연히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돼 한·일 월드컵 공조 등에도 악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최대 논란은 ‘독도 영유권’ 대목이다.‘최신일본사’는 제4편 근·현대사분야 말미의 ‘현대의세계와 일본’ 항목에 독도 항목을 새로 삽입했다.“우리나라(일본) 고유의 영토가 타국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된다.북방영토는 러시아에 점령된 채로 있으며,한국이 시마네현 다케시마(竹島)의 영유권을,또한 중국 등이 오키나와현의 센카쿠 제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내용이다.일본 고교 역사교과서 26종 가운데 기존에 독도 관련이 기술된 사례는 9종으로 본문에는 ‘한국과 독도 사이에 (영유권)문제가 있다.’는 등의 수준으로 기술하고 있다. 임나(任那)일본부설도 ‘역사적 사실’로 기술했다.임나일본부라는 용어를 명백히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야마토 세력이 한반도 남부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고대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가설을 그대로 썼다.군대위안부관련 조항은 현행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언급없이 신청돼 그대로 검정 통과됐다. ◆개선된 내용은. 일본 정부는 이번 검정 통과시 ‘이씨조선’은 ‘조선’으로,‘임진왜란 후 조선의 도공이 가져간’도자기 등의 표현은 ‘임진왜란시 다이묘(諸大名·지방영주)가 끌고온’ 등으로 수정토록 했다.민비 시해사건도 ‘일본공사가 대원군과 짜고 민비를 살해…’에서 ‘일본공사 등은 독단으로민비를 살해…’로 바꿨다.한일 합방은 한일의정서를 ‘맺어’에서 ‘맺도록 해’로 고쳐 강제성을 부각토록 했다.식민지 시혜를 강조한 내용은 삭제했다. ◆파장. 최근 한·일 투자보장협정과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한시적 상호비자 면제 등 최근 월드컵을 앞두고 조성된 한·일 화해무드에 찬 물을 끼얹을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최신일본사’에서 명시된 ‘독도 영유권’문제는 우리 국민 정서상 결코 용인될 수 없는 내용으로 시민단체 등의 격한 반발이 예상된다. 김수정기자 crystal@ ■정부차원 대응 자제. 정부는 9일 문제의 ‘최신일본사’에 독도관련 언급이 새로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자 공식 유감을 표명하는 등 민감하게 대응했다.특히 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두고 자칫 지난해 교과서 파동때와 같은 갈등이 재연되지 않을까 여론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부는 독도가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이고,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만큼 일본측 움직임에 따라 일희일비하며,공론화하는 것은 일본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때문에 정부 차원의 대응을 자제하겠다는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는 “역사왜곡대책반 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모색할 방침”이라며 “15일 첫 회의가 열리는 한·일 역사공동연구기구를 통해 지속적인 해결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日 역사왜곡 재연 조짐

    86년 역사왜곡 파동을 낳았던 일본 우익세력의 고등학교용역사교과서 ‘신편일본사(新編日本史)’ 개정판이 오는 9일로 예정된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지난해에 이어 한·일간 역사교과서 파동이 재연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난달 28∼29일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린 ‘역사인식과동아시아평화포럼’에 한국측 대표로 참석한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관계자는 4일 “일본 신우익 세력들이 집필,메이세이샤(明成社)에서 출판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오는 9일 검정통과될 것이 확실하다는 보고를 일본 민간단체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현대사를 다룬 교과서는 천황제에 의한 국가주의를 표방한 1890년의 교육칙어 전문을 게재하고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기술하고 있다.”면서 86년 4차례수정을 거쳐 검정통과된 교과서를 검정 이전의 내용으로 다시 고쳐 문부성에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휴간일 없는 日 ‘신문전쟁’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에서 신문사끼리의 ‘월 1회 휴간 협정’이 지난 2월부터 깨져 귀추가 주목된다.협정을깬 것은 보수우익 논조로 유명한 산케이(産經)신문이었다. 산케이는 누적되는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 해 11월석간 폐지를 결정했다.조·석간 동시발행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산케이는 오는 4월부터 석간을 없애는 대신 구독료를 낮추고 휴간일에도 신문을 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휴간일 신문 제작을 차별화의 무기로 내세운 산케이는 지난 달 12일의 휴간일에 조간을 만들어 전철역과 편의점에뿌렸다.배달망이 취약한 산케이는 그날 본사 기자를 비롯한 직원들까지 가두판매에 동원했다. 그러나 대량의 석간 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나 아사히같은 신문사가 산케이의 튀는 판매전략을 두고 볼 리가 없었다.요미우리의 경우 지난 달 휴간일에는 신문배달원에게 높은 휴일수당을 지급해 가며 배달을 시켜 산케이의 ‘휴간일 제작,가두 판매’의 기선을 제압했다.아사히,마이니치(每日),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도쿄(東京)신문 등도 출혈을감수해 가며 요미우리 방식을 따랐다. 더 두고 봐야지만 산케이의 생존을 위한 ‘휴간일 제작’의 차별화 전략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신문 전쟁’으로 불리는 휴간일 제작은 산케이가 백기를 들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신문사의 출혈경쟁,기자들의 노동강도증대는 남의 일 같지 않다. marry01@
  • 獨·日 전쟁반성 차이점 뭘까

    ♧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이안 부루마 지음/한겨레 신문사 펴냄). 왜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가.독일이2차 대전후 나치즘의 완벽한 청산을 위해 노력하는데 비해일본은 인류 최초의 원폭 희생자라는 점만을 강조할 뿐 한국 등 주변 국가들에 가한 죄과를 간과하고 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이안 부루마가 지은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정용환 옮김,한겨레신문사)는 일본인들이 전쟁에 대해 갖는 이같은 태도의 원인을 분석하고있다. 저자는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서양은 죄의 문화인데 비해 일본은 수치의 문화여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감추려는 속성이 있다.”고 주장한 데대해 부분적으로 타당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문화적 특성을 통해 한 민족 전체의 성격을규정하는 것은 다층적·다원적 현대 사회에 대한 복합적인인식을 저해하며, 쉽게 결정론에 기울어진다는 약점이 있다고 본다. 저자가 접근하는 방식은 역사적,정치적인 것으로 독일과 일본의 전쟁 경험 자체와 전후 연합국의 점령정책에서 두 나라의 집단적 기억이 달라지게 된 실마리를찾는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두나라가 갖고 있는 전쟁 기억의 핵을 이루는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난징을 직접 답사했다.또 두 나라의 교과서,박물관,기념물 등에 나타난 과거관을 비교했고 과거의 망각과 부인을 직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전범 재판을 비롯한 연합국의 전후 점령정책에 대한 비판적 조명도 덧붙였다. 책은 인터뷰와 예술작품 분석,현장답사와 에세이로 짜여져 있다.인터뷰 대상은 독일과 일본의 좌우익 정치인,작가,역사가,박물관장,독일의 수용소 생존자,난징 학살 당시현장에 있었던 일본의 퇴역 군인 등 다양하다.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를 주제로 한 시,소설,영화,연극,그림,조각 등도 광범위하게 다뤘다.1만2000원. 유상덕기자 youni@
  • [대한광장] 범국민평화운동을 펴자

    2002 월드컵 제전이 열리는 희망찬 새해가 열린 지 열흘이 지났다.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가장 큰 새해소망은 첫째도 평화,둘째도 평화이다. 그런데 지금 이 한반도의 평화는 불안하기 그지없다.그것의 원천도 우리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우리의 우방이고혈맹인 미국에 의해서 야기되었다고 한다.미국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중순에 “2002년은 전쟁의 해”라고 선포함으로써 전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이 발언은 한반도는 물론이고 전세계에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켜 국제적으로 전쟁분위기가 나날이 고조돼 가고 있다. 9·11테러 사태후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후에더욱 자신감을 얻은 미국은 오만에 가까운 ‘전쟁확전’발언을 서슴지 않아 왔다.그리고 다음 확전 대상에는 이라크,이란 그리고 북한도 포함될 것이라는 추측이다.그의 경솔한 발언에 힘입은 국내외의 전쟁광,극우보수세력 그리고 미국 군수사업가는 이러한 전쟁분위기를 더욱 부추겨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 일례로 일본의 우익정당과 정권도 일본 평화헌법 제9조를 무시하고 자위대 해외파병을 합법화하는 국내입법을완료함으로써 미국의 9·11 테러진압을 빙자하여 해외파병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진정으로 미국이 세계 지도국가가 되려면 9·11 테러사태의 표면적인 현상만을 문제삼을것이 아니라 그 근본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예방적·구체적 처방을 제도적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그래서 9·11 테러사태 공포로부터 전세계인을 해방시키고,평화와안정 그리고 반테러리즘 국제협력체제를 완성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미국은 9·11 테러사태를 빌미로 국제법과 유엔헌장의 기본 정신을 무시하고 있으니 정말 안타깝기짝이 없다.더구나 기후협약을 파기하고 세계환경을 오염시키겠다고 해도,ABM 협정을 깨뜨리고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겠다고 해도 이러한 미국의 서슬에 세계 유명 언론,유엔을 포함한 주요 국제기구,하물며 서방 선진국 누구 하나미국의 눈치만 살피는데 급급하지 용감하게 미국의 잘못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내 USA 투데이와 CNN 그리고 갤럽의 공동 여론조사(2001.12.27)에서 부시 대통령이 1948년 이후 가장존경받는 인물로 지명되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인에게 묻고 싶다.9·11 테러로 인한 미국과 미국인의 참상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지만,그것을 빌미로 미국 일방주의·미국 최고주의·미국 단일문화의 편파적 지향을 전세계에 강요한다면 미국이 표방하는 다원주의·자유민주주의와 인권존중 그리고 국제평화라는 미국정신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게다가 9·11 테러사태를 빌미로 비민주적 권위주의국가들은 국내적으로 반대정권과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데 테러방지법을 악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9·11 테러사태 이후 한반도에는 힘들게 이룬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의 중단으로 화해와 평화의 열기가 냉각되면서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을미국의 양심과 도덕성에만 의존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우리는 국내적으로 보수혁신과 여야정파를 초월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국민과 함께 한반도에전쟁의참화를 막아야 하겠다는 평화운동을 힘차게 벌여야 할 것이다.그래서 남남의 평화세력,남북의 평화세력,동북아의 평화세력,국제적 평화운동의 세력이 하나로 연대해서우리의 평화를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시민단체들이여,이제 과감히 일어나 다시는 한반도에 전쟁발발은 안된다는 ‘평화운동’의 기치 아래 힘있게 단결하여 ‘범국민 평화운동’을 시작하자. ◆이장희 외국어대교수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 조용수사장 40주기 추념 학술회의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40주기 추념 학술회의’가 8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대강당에서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김자동 전 민족일보 기자) 주최로 열렸다. ‘조용수 평전’의 저자이자 첫 주제발표자로 나선 원희복경향신문 사회부 차장은 “조 사장은 우익적 분위기에서 성장했으나 일본체류시절 재일교포 북송반대운동,조봉암 구명운동을 펴는 과정에서 사상적 변화를 겪었다”며 “나중에이같은 전력이 쿠데타 세력들에 의해 용공으로 몰리는 구실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홍석률 박사는 “당시 민족일보가 주도한 통일논의나2대 악법투쟁은 당시로선 일반민 중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던 대중적 주제로 이를 용공으로 몬 것은 역사왜곡”이라고 주장했다.조 사장이 용공혐의를 받게된 또하나의 빌미가 됐던‘혁신세력’이란 용어 사용과 관련,“수구보수세력과 대칭된 개념이었을 뿐 다양한 세력들이 망라된 집단이었다”며쿠데타세력이 조사장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조 사장의 전력보다는 미국의 눈치를 본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한상범 동국대 교수는 “민족일보사건은 쿠데타세력이 법의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른 소위 ‘사법살인’”이라고 규정하고는 “재심청구를 통해 명예를 회복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조용수 사장 처형은 전형적인 빨갱이몰이의 결과”라며 “당시 민족일보사건 재판에 심판관으로 참석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라”고촉구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조선총독부 마지막 일장기 입수

    해방 당시 일제의 조선총독부 앞에 게양돼 있다가 서울에진주해온 미군에 의해 강제 하강된 ‘마지막’ 일장기가 광복 56년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특히 이 일장기는 강제 하강에 직접 관여한 미 진주군 사병이 개인적으로 보관해온 것인데, 태평양을 사이에 둔 한국인 형제의 노력으로 반세기 지나 한국에 올 수 있었다.경기도분당에 살고 있는 박인서(朴仁緖·49)씨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시에 거주하는 친형 경수(慶洙·58·미국명 에드워드 박)씨가 한국에 보낸 ‘총독부의 마지막 일장기’를 본사에 단독 공개했다.박씨에 따르면 형 경수씨는 일본 항복 직후 미군 선발대 사병으로 서울에 입성했던 미국인친구 렉스 펑크(74·샌프란시스코 거주)로부터 이 일장기를입수했다. 당시 펑크 사병은 미 육군 24군단 7보병사단 17대대 1중대소속이었으며 24군단장은 서울 진주후 미 군정사령관에 오른 하지 중장이었다.1945년 9월8일 인천에 도착한 미군은 다음날인 9월9일 조선총독부를 접수,총독부 앞마당의 일장기를끌어내리고 대신 성조기를 게양했다.펑크는 이때 일장기를내린 미군 병사 8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50년 넘게 이 일장기를 ‘가보’로 보관해온 펑크는 한국인 친구인 에드워드 박(경수)의 끈질긴 ‘한국반환’ 요청을거절했다. 그러다가 건강이 좋지 않게 된 지난 99년 2월 펑크는 에드워드 박에게 일장기를 양도했고 경수씨는 이를 지난해 초 동생 인서씨 편에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이 일제의 ‘마지막 일장기’는 가로 141.5㎝,세로 106.5㎝ 크기로 깃발의 흰색 바탕이 연한 황색빛으로 변해 있으나상태는 비교적 양호했다.한국으로 돌아온 일장기는 ‘일장기’란 이유로 관련 기관들이 선뜻 수용 의사를 밝히지 않는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박씨는 “괜히 건네받았다는 후회와 함께 한때 일본 우익들에게 건네버릴까하는 엉뚱한생각도 한 적이 있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독립기념관 이명화 박사는 “독립기념관에 전시된 총독부건물의 첨탑과 함께 일제통치,패망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물증”이라며 “독립기념관에 전시해 후세 교육의 자료로 활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정운현기자 jwh59@
  • [임영숙 칼럼] 서울과 상하이의 時差

    서울과 상하이의 시차(時差)는 1시간에 불과하다.10시간 안팎인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아주 짧은 편이다.따라서 상하이 여행후 시차로 인한 피로감(제트래그)은 거의 못 느낄 수 있다.그런데 지난주 그곳에서 열린 관훈클럽 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온 기자는 아직도 제트래그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상하이는 미래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데 서울은 과거로 뒷걸음질치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상하이의 질주는 전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어 “지금까지 외국의 총리급 방문객을 300번 이상 맞았다”는 푸둥지구 공보담당다이후이싱(戴惠興)주임의 자랑으로 요약된다.“중국 역사 5,000년을 이해하려면 시안을,1,000년 봉건사회를 이해하려면 베이징을,근대 100여년을 이해하려면 상하이를,오늘의 중국 발전 10년을 이해하려면 상하이의 푸둥을 찾으라”는 말대로 푸둥의 빌딩 숲과 그것이 상징하는 자본의 위용은 충격적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가운데 비교적 성공한 편이라는 기업들의 모습이었다.상하이의 LG광전전자,쑤저우(蘇州)의 삼성반도체 공장은 몇백명에 달하는 중국인 직원을10명도 못되는 한국인들이 관리하고 있다.지금까지 우리 기업이 중국에 직접 투자한 돈은 48억 달러에 이른다.그 돈이 국내에투자됐다면 얼마나 많은 고용창출이 이루어졌을까.국제통화기금(IMF)체제 진입 이후 최악이라는 청년실업난을 생각하며 착잡해졌다.그러나 세계의 돈이 중국으로 몰리고 있는 터에 우리 기업은 앞으로 중국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우익과 미국의 보수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중국 경제의앞날에 암초는 많다.심각한 빈부격차와 지역격차,재정적자,환경오염,그리고 경제발전에 따른 민주화 욕구로 인해 초래될 정치불안 등이 그것이다.푸둥은 선전 선동에 능한 중국 공산당이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차려 놓은 진열대(쇼윈도)로 보일 수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의 앞날은 밝다는 것이 ‘중국의도약과 한·중 관계’를 주제로 한 관훈클럽 세미나에 참석한한국 언론인들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주제발표자로 나선 이송(李松)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상하이 관장과 김수길(金秀吉) 중앙일보 편집부국장은 세계 경제의 견인차가 되어 가고 있는 중국의 도약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의견을 제시했다.규모의 경제를 위한 투자확대,적극적인 현지화로 독자적인 내수시장 개척 능력 강화,저임 노동력을 활용하는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 필요성,내륙 지방보다는 발해 연안 지역 투자의 효율성,중국시장의 변화에 따른 우리 산업구조의 재편 즉 ‘선택과 집중’전략,미국 유럽연합(EU) 중국등을 적절히 활용하는 포트폴리오 구성,중국보다 우리가 앞서겪은 개발독재의 장단점 활용과 IMF극복 경험의 수출 등. 이 관장은 “우리가 중국에 팔 수 있는 품목이 매년 줄어들어10년 뒤엔 무엇이 남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무역협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 한국산을 추월한 중국산이 86개품목에 달한다.지난 6월까지만 해도 우리 반도체 기술이 5∼10년간은 우위를 지킬 것으로 국내 전문가들은 관측했다.그런데이제 그 격차가 겨우 2∼3년으로 좁혀진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또 토론과정에서 “지난 1960년대까지 필리핀은 우리보다 잘 살았으나 이제 뒤처지고 있다.우리가 필리핀처럼 될까 걱정”이라는 말도 나왔다.상하이,특히 푸둥의 모습은 이런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위기의식이 서울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정치권은 국가 발전 전략보다는 오로지 차기 대권의 향방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잠자는 사자’로 불렸던 중국은 10년 전 잠에서 깨어나 ‘솟구치는 용’이 됐는데 ‘아시아의 4마리 용’가운데 하나로꼽혔던 한국은 지금 혼수상태에 들어갔는가.비통한 마음이다. 임영숙/ 공공정책연구소장 ysi@
  • ‘한일정상회담’ 전문가 좌담

    대한매일은 15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간 한일정상회담이 끝난 뒤 국민대 사회과학대 이원덕(李元德) 교수와 세종연구소 이면우(李勉雨) 부소장을 초청,긴급 좌담회를 갖고 정상회담의 의미 및성과 등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전망했다. [이원덕 교수]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색된 한일관계가복원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경색국면이 일정 부분 풀리는계기가 될 것이다.관계경색은 양국 모두에 좋을 게 없다.관광·무역·투자 등에 손실이 크다.한일관계가 계속 과거사에 얽매이면 우리의 국익에도 손해다.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일본의 협조가 중요하다.구체적인 성과가 미흡하다고 정상회담 의미를 무조건 평가절하하는 것은 문제다. [이면우 부소장] 양국관계가 경색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데 동의한다.서대문독립공원(구 서대문형무소)방문은 고이즈미 총리가 성의를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서둘러 정상회담을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별 성과가 없어 굳이 했어야 했느냐는 의문도 있다.고이즈미의 정치페이스를 도와주는 측면이 있다.그러나 도와주려면 제대로 도와줘야 우리도 얻을 것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이 교수] 고이즈미 방한은 반테러 공조체제 구축을 위한 것으로 급작스럽게 이뤄진 측면이 있다.일본의 경우 테러방지특별법 추진 등 일본의 군사적 역할확대를 위해 주변국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 직접 원인이라고 본다.고이즈미 방한이 일본 언론의 톱뉴스가 아니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이즈미는 지금 한일문제보다 테러방지특별법이 주 관심사이다. 고이즈미의 경우 세력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대중적 어필면에서 외교적 성과만큼 좋은 것이 없다.일본 내에서 자위대파병 반대의 주요 근거는 한국·중국의 여론이다.물론 역사교과서 문제,신사참배 문제,꽁치 문제 등과 관련,대한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시급함도 고려됐다. [이 부소장] 우리측의 입장에서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의체(APEC)정상회담이 다음 주말 중국에서 열린다.중국도 이런 이유에서 고이즈미의 지난 8일 방중을 받아들였다.외교적차원에서 본다면 이번에방한을 수용않았으면 APEC 정상회담에서 경색된 관계를 풀 수 없어 소원한 관계가 오래 지속될것이다. [이 교수] 과거사 문제에 대해 무라야마 전 총리의 발언이라든지,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틀을 넘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몇가지 표현을 달리했을 뿐이다. 중국 방문 때보다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서대문 독립공원을 방문하는 등 고이즈미로서는 최대한 성의표시를 하려고했다.‘오와비’라는 표현은 ‘사죄’보다는 가벼운 느낌을준다.전통적으로 사과할 때 쓰는 외교적 수사이다.굳이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98년에도 ‘오와비’라는 표현을 썼고 우리는 ‘사죄’로 번역했다. [이 부소장] 일본의 우경적 정치인들의 역사인식을 드러낸것으로 본다.호소카와는 ‘침략전쟁’ 등의 직접적 언급으로 반향을 일으켰는데 고이즈미는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이 교수] 일본 교과서 문제도 예상됐던 결과다.이 문제는국가간에,그것도 단기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특히 교과서 인증에 대해 우리와 일본은 체계가 다르다.앞으로 국제사회나 일본의 시민단체 등 보편적인 사고에 호소해야 한다. 양국이 역사연구 공동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는데 비슷한 기구가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때도 만들어졌으나 효과가 없었다.그러나 우리와 중국의 반대로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거의 없다는 것은 우리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소장] 일본은 반성의 말은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은 없었다.그렇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입장표명에도 한계가 있을수밖에 없다.특히 역사교과서 문제는 과거와 다르다.우익적사고를 가진 회사가 만든 교과서를 정부가 통과시킨 것이 문제다.신사참배는 정치 초년병 때부터 계속 해왔던 일이다.중국과 한국의 반응을 예측 못한 측면이 강하다.A급 전범을 따로 분리하면 지금처럼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교수] 꽁치문제는 역사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러시아와 일본의 합의는 국제법상 문제가 없다.우리 정서상 비판은가능하지만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다루는 것은 문제다.일본이나 러시아가 다른 대체어장을 내준다면 어업 기득권에서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정부 당국은 보다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앞으로가 중요하다. [이 부소장] 우리의 한일관계 대응이 잘된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꽁치조업이 문제가 된 것은 지난 6월부터로 남쿠릴조업이 이슈가 됐다.일본이 이미 러시아에 항의하면서 문제가 크게 확대됐다.정부는 이같은 사태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했어야 하는데 아쉽다. [이 교수] 일본 자위대를 ‘일본군’으로 표현하는 등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고 있지만 자위대 파병과 그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전투행위를 배제하고,수송 등 지원업무를 한다는 차원이다.앞으로 법이 바뀌어 군사적 행위가 일어난다면모를까 현재로선 현행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 부소장] 한일관계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과거사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없이 방한을 수용한 이번 방문이 잘못된 전례가 될 수 있다는우려도 있다. [이 교수] 재일본 동포의 참정권문제,비자 문제 등은 고이즈미 총리가 결단을 내리면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이에 대해 명확한 진전이 없어 안타깝다.정리=강동형 박상숙기자 yunbin@
  • [씨줄날줄] 일본 구석기유물 조작

    1945년 패전후 만주, 즉 중국 동북 지역에서 수십만명의일본인들이 겪은 고초는 비슷한 역경을 수도 없이 겪은 우리로서도 동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진한 것이었다. 만주 주둔 관동군은 패전 때까지도 천하무적이라고 자랑했다.만일의 경우에도 민간인 소개를 우선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남방으로 주력부대가 빠져나간 줄 몰랐던 일본 민간인은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하지만 패전이 현실화되자 관동군은 자신들과 군인가족을 먼저 피란시키고 수십만명의 민간인은 나 몰라라 했다.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은 가증스럽지만 어린이들까지 거적을 둘러쓰고 배고픔에 떨면서 만주의 겨울 벌판을 헤매는 정황은 지금 들어도 처연하기 짝이 없다. 그런 일본인들이 패전후 일어나기 시작했다.경제부흥과함께 1949년 군마현 이와주쿠에서 구석기 유물이 처음 발견되자 ‘역사에 대한 자부심’도 살아나기 시작했다.‘긴역사’,‘힘의 역사’는 우익의 정신적 지주였다. 이러한 ‘역사 내셔널리즘’은 고고발굴 분야에서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라는 영웅을 낳았다.그는 70년대에서80년대에 걸쳐 일본 미야기현 바바단(馬場壇)과 자자라기(座散亂木) 유적을 비롯,40여곳의 중·전기 구석기 유적을발굴하면서 일본 열도의 역사를 20만년 이전으로 끌어 올렸다.그의 발굴은 홋카이도에서 간토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데다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게 취급돼 왔다. 그러나 지난해 그의 날조 행각이 마이니치신문의 추적 보도로 들통나기 시작했고 지난 4일 아사히신문은 마침내 그의 발굴이 거의 모두 날조였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3만년전 이전 일본 구석기 시대 연구는 총체적으로붕괴됐다고 한다. 그는 “당초부터 좀더 그럴듯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껴왔다”고 말한다.날조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일본 국가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압력 속에 잉태됐던 것이다.‘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등일본 보수 우익이 끊임없이 왜곡된 역사를 보급하려는 것도 맥을 같이한다.그들의 역사인식 속에는 ‘자랑스러운역사’와 ‘허구’가 친화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후지무라나 ‘새역모’등 역사왜곡 집단들을 ‘역사학의관동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하튼 그들의 말을 믿었던 일본인들은 졸지에 역사인식의 허허벌판에 나앉게 됐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
  • [기고] 日총리 방한 기대와 우려

    10월15일에 한일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정부의 발표를 듣고,또 한번 우리 정부가 기회주의적 일본 사람에게 끌려 다닌다고 느끼게 되었다.국민의 분노와 배신감이 팽배할 때는 정부가 일본정부를 다시 상대하지 않을 듯이 무리하게모든 관련 행사를 취소했다.그러나 겨우 2∼3개월만에 ‘일본이 성실하게 요청하고 있다’는 이유로 다시 한일정상회담을 연다는 것은 일본이 ‘이용호 게이트’라는 늪에빠진 한국정부에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듯싶기도 하다. 한일관계의 정상화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의 표시가 양국 정부사이에 공식적으로,수차에 걸쳐 있었음에도불구하고 한국인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그 한을 씻어주지못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질문을 여러 차례 받은일이 있다.그 때마다 나는 늘 다음과 같은 전해들은 이야기가 되살아난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와서 전투를 치르던 일본의 한 장수가 “조선사람들은 소 잔등이에 앉은 쇠파리 떼와 같아 꼬리를 휘저으면 모두 날아갔다가 또다시 날아와 앉아서 소잔등이를 가렵게 한다”며 그가 느낀 바를 이렇게 설명했다.결국 소가 피하지 않고서는 피할 수 없는 불편한 관계라는 것이다. 한국백성의 끈질긴 저항과 풀어지지 않는 원한은 양국 정부가 ‘쇠꼬리’를 휘두르듯 간헐적으로,서로 자국내 정치에 편하고 유리한 시기에만 정치행사를 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쓰다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역사적으로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일본측의 정상들과 회담하면서 무슨 사과를 받은들 우리 국민의 한 많은 그 가슴을 씻어 줄 수있을까? 한 나라 정상의 이름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이번에 고이즈미 총리의 경우는 한국 사람에게 더 많은 원한을 갖게 했으며 한국인에 대한 예(禮)를 더욱 실추했다고 생각한다.교과서의 내용에 관한 것이나 야스쿠니(靖國)신사에 참배하는 일,또는 해외 파병을위한 자위대 조직법의 개정이나 유사시법의 정비에 대한입장에 있어서 한국 사람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일본 국내정치의 필요에 의하여 행동하는 것 같았다. 호소카와,무라야마,그리고 고이즈미로 이어지는 총리들이무슨 말로 사과를해도 한국민의 정서에는 또 속임수라고느껴진다. 그래서 예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더욱이 테러전에 대응하는 일본 자위대의 파병은 일본 우익의 기회주의적 군비확장이 아닐까라고 의구심을 주고있는 지금에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미국의 대 테러전을 지원하는 공조체제를 구상한다면 이번의 정상회담은 또 한번의 ‘쇠꼬리’ 휘젓기가 될 것이다.또한 우리 정부와 일부의사람들이 열정을 쏟고 있는 월드컵을 위해서 양국의 정상이 할 일이 무엇일까 궁금하다.우리의 경우는 월드컵 행사가 정부 일이지만 일본은 후지쓰의 광고회사인 사기업이유치한 행사인 것이다. 한일정상회담에 기대하는 것은 한국인의 정서를 존중하고이해하지 않고서는 또다시 한국민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윤정석 숙명여대 교수
  • 전문가12인의 ‘세상을 보는 눈Ⅰ·Ⅱ’

    지식의 세상은 갈수록 쪼개지기만 한다.접근하려 해도 어느 것이 자기 입에 맞는지 알 수 없을만큼 깊어지고 세분화된다.두루 조금씩 맛보기만 할 수 있는 책은 없을까. 이슈투데이 출판사가 내놓은 ‘세상을 보는 눈 I·II’는“복잡한 세상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다양한 읽을거리로 세상을 보는 틀을 제시한다.‘지식의 대중화’를 내걸고 각 분야의 전문가 14인이 역사·철학·문화·수학 등자기 분야에서 다져온 ‘내공’을 하나 하나 쉽게 풀어나간다. 머릿말을 쓴 이근 서울대교수(경제학)는 “교양 교과서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재미있는 교양서라는 차별성을갖고자 노력했다”면서 “이를 위해 인문·사회 쪽에서는시사적인 내용으로 시작했고 자연과학이나 공학은 최근 동향과 이슈를 중심으로 다루었다”고 말한다. 지은이들이 제시하는 틀은 역사(주경철),미술(김민수),기업(김성수),수학(강석진),물리학(신상진),디지털혁명(박동현)등 다채롭다.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연구실에 머무를게 아니라 ‘생활 속으로’ 들어가자는 것이다. 서양사학자인 주경철 교수는 역사를 “현재의 문제의식으로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권력’을 쥔 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역사를 꾸미려 한다.일반인들은 역사학계·대중매체·교과서등이 자기들 입맛에 맞게 가두려는 유혹에 걸려들기 쉽다. 그 결과 본질이 호도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예컨대 역사적 진실 여부를 떠나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가는 ‘역사 스페셜’의 진행자인 유인촌이 아닌가” 싶을 정도인 것이다.영화 ‘쉰들러 리스트’도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을 펼쳐 대학살의 진상을 왜곡할 수도있다는 것이다.혹은 “민주주의란 약자들의 넋두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스타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경우 로마사나 르네상스 시기 소설은 일본 우익 사관을 심을 수 있다고 깨우쳐 준다. 주교수의 대안은 역사학 연구를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는수준 높은 작품들을 많이 만들자는 것이다.‘고급 통속화’ 영역을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강석진교수의 수학을 통한 세상보기도 재미있다.그에 따르면 수학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마치 자신이 “그렇게 아름다운” 심은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듯이. 그는 생활 속의 이야기로 수학을 어렵지 않게,돌아가면서설명한다.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이 연봉협상을 할 때 “팀의 간판이므로 무조건 많이 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투 아웃 후의 타점과 홈런 수”등 자료를 제시해야 설득력 있다는 비유를 하면서 ‘수학의 엄밀성’을 말한다.축구공을 가장 원에 가깝게 만들어 가는 사례 등 생활 주변에“물처럼 공기처럼” 스며있는 수학의 숨결을 들려준다. 이쯤 오다보니 “한국의 대표적 전문가들이,번역서 위주의 한국 출판계에 던지는 도전장”이라는 지은이들의 장담이허황하게 들리지 않는다.남은 건 전문가들이 터준 세상을보는 안목을 바탕으로 알맹이를 채우는 것이다. 이종수기자
  • 미·일 안보조약 50년/ (중)부상하는 일본 역할론

    동아시아를 보는 미국의 시각은 ‘경제적 중요성’과 ‘군사적 위협의 상존’ 두가지로 압축된다. 한국과 일본은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두가지 이슈의 핵심에 있으며 중국과북한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최대변수’가 되고 있다. 중국의 군사력 확충과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98,99년 작성된 ‘럼즈펠드 보고서’와 ‘아미티지 보고서’에서 충분히 예고됐다.럼즈펠드 보고서는 중국과 북한,이란,이라크,파키스탄이 보유한 탄도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가 5년뒤 미국에 전략적 위협을 가하므로 ‘대안적 공격수단’을갖출 것을 권고했다.아미티지 보고서는 북한의 핵 위협 대처를 위한 포괄적 협상이 실패하면 북한으로부터의 공격을봉쇄하고 선제공격까지 검토할 것을 제안하면서 북한의 공격을 원천봉쇄하려면 일본과의 신방위협력지침 입법 일정을 앞당길 것을 강조했다. 두 보고서는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대안적 공격수단을미사일 방어(MD)로 구체화하고 있으며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입법 일정의 조기화로 일본의 헌법 개정에불을 지피고 있다. 21세기 군사전략의 무대를 아시아로 돌리고 있는 미국은MD 계획을 지렛대로 삼아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요구하고있다.‘자위권 행사’를 제한하는 일본 헌법 9조를 개정해서라도 일본을 미국의 ‘대열’에 동참시키려는 것이다.양국은 99년부터 신방위협력지침에 따라 전역미사일방어(TMD) 시스템을 공동연구했다.다만 일본 정부는 위헌 시비와클린턴 행정부의 대북포용 정책을 감안,공론화에 조심스런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전략적 우위를 강화하려는 부시 행정부와 내부의 우익세력에 편승,집권기반을 강화하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은 서로의 필요성에 따라미·일 동맹관계를 군사분야로까지 확산시키려 한다.미국은 특히 일본이 지역안보와 관련된 비용을 함께 부담할 것을 요구한다. 지난달 28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동맹관계 세미나에선 이같은 양측 입장이 적극 대변됐다. 미 헤리티지재단의킴 R 홀메스 연구위원은 “중국과 북한, 러시아가 일본을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일본은 현행 헌법을 재해석하거나 개정해서라도 MD 계획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달 말까지 의회에 국방전략재검토(QDR)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아시아 전문가들은 일본이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에 맞춰 MD에 참여하기 위한 ‘중요한 결정’을 내릴 것이며 이는 헌법 재해석이나 개정 움직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한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 ■日 MD계획 동참 '미적미적'. 부시 미 행정부가 추진중인 미사일 방어(MD) 구상에 대해일본 정부는 다소 어정쩡한 입장이다. 지난 6월 미·일 국방,외무장관에 이은 정상들간 회담까지 3차례의 연쇄회담에서 미국은 일본에 MD 참가를 종용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당장 일본이 MD 참가를 선언하기는 부담이 크다. 먼저 MD 참가는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저촉된다.게다가 미국과 공동으로 MD 개발에 착수할 경우 주변국,특히 중국의 맹반발이 우려돼 동북아에서의 군비확산 가능성이 커진다.다만 여러 고려사항에도 불구,미국이 공동개발을 독촉해오면 ‘군비 분담’이라는 측면에서 일본도 분명한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결국미국의 미사일 개발 진행과 주변국 정세,국내 여론 등을봐가며 일본이 MD 개발에 참가할 것이라는 게 일본 군사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日새역모 회장 전격 교체

    역사왜곡 교과서로 파문을 일으킨 일본 우익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신임회장을 선출하고체제개편에 나섰다고 산케이 신문이 26일 보도했다.‘새역모’는 지난 24일 니시오 간지(西尾幹二)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퇴임시키고 다나카 히데미치(田中英道) 도호쿠(東北)대 교수를 신임회장으로 결정했다. 다나카는 오는 10월 집행부를 새로 구성하는 등 체제개편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새역모’의 이같은 움직임은 자신들의 교과서 채택률저조에 따라 체제를 바꿔 새로운 왜곡 교과서 운동에 나서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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