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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세 생일 아키히토 일왕 “역사, 후세에 정확히 가르쳐야”

    85세 생일 아키히토 일왕 “역사, 후세에 정확히 가르쳐야”

    재임 마지막 생일 연설…새해 4월 말 ‘생전’ 퇴위 “재임기간 전쟁 없어 안도”…야스쿠니 신사 찾지 않아‘극우 행보’ 아베 총리와 과거사·야스쿠니 행보 대비“2차대전서 많은 목숨 사라져”…이 대목서 음성 떨려12살 때 일본 패전 지켜봐…평민 여성과 결혼도 화제“개인적으로 한국과 연을 느껴”…‘한국인 피’ 인정내년 4월 말 ‘생전’ 퇴위하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자신의 재임 기간 “전쟁이 없어서 안도한다”고 말했다고 왕실 업무를 관장하는 궁내청이 23일 밝혔다. 이날 85세 생일을 맞은 그는 지난 20일 도쿄 왕궁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헤이세이(平成·아키히토 일왕 취임 해부터 시작된 연호로 올해가 30년)가 전쟁이 없는 시대로 끝나게 된 것에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 연설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궁내청은 밝혔다. 그는 일본 우익들의 압력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찾지 않았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는 과거사 및 공식 행보에 차이를 보였다. 아키히토 일왕은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목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라졌다는 것, 일본이 전후에 건설한 평화와 번영이 이 수많은 희생과 일본 국민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 위에 건설된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라고 말했다. 사전에 녹음된 연설에서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다는 부분에선 그의 음성이 떨렸다고 AFP가 전했다. 또 “이 역사를 정확히 전후에 태어난 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아키히토 일왕은 취임 이후 자신이 헌법에 따라 정치적 권한이 없는 ‘상징 천황(天皇)’의 바람직한 자세를 추구해 왔다며 “양위의 날을 맞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런) 자세를 추구하면서 일상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에 이어 현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내년 5월 1일 새 일왕으로 즉위한다. 아키히토 일왕은 오키나와(沖繩)나 사할린, 팔라우, 필리핀 등을 방문해 전쟁 희생자들을 추도한 것을 “잊을 수 없다”며 “일왕으로서의 여정을 끝내려는 지금, ‘상징 천황’으로서 나를 지지해 준 많은 국민에 충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아키히토 일왕은 2차대전 당시 일왕으로 전쟁 가해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 원수’ 히로히토(裕仁·1901~1989)의 아들이다. 그가 11세 때 일본의 패전을 지켜봤다. 선대 왕들과 달리 평민인 쇼다 미치코와 결혼한 그는 히로히토가 사망한 1989년 1월 왕위에 올랐다.아키히토 일왕은 ‘전쟁 책임’이라는 부친의 굴레를 의식한 듯 취임 이후 일본 국민과 고락을 같이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주력했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상징으로의 역할을 국민에게 다가서는 것으로 해법을 찾은 것이다. 그는 재임 중 국내외 전쟁 희생자 위령이나 재해 지역 방문 등의 일정에 신경을 쏟았다. 아키히토 일왕은 재임 중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이나 한신(阪神)대지진 등의 막대한 인명 피해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낀다”면서 자원봉사 등을 통해 서로 돕는 모습에 “항상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집권 자민당과 아베 총리가 극우 일변도의 행보를 보이며 침략전쟁이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는 것과 달리 그는 전쟁에 대한 반성의 뜻도 밝혔다.일본의 패전일인 지난 8월 15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쟁 희생자 추도식에서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이후 4년 연속 반성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자신의 몸에 한국의 피가 흐른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는 2001년 생일 기자회견에서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 천황(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말해 한국인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씨줄날줄] 축구의 두 얼굴/김성곤 논설위원

    [씨줄날줄] 축구의 두 얼굴/김성곤 논설위원

    베트남이 난리다. 지난 6일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필리핀을 2대1로 꺾고 10년 만에 아세안 축구 선수권 대회, 이른바 스즈키컵 결승에 올라 이번 주 말레이시아와 우승을 다투게 됐기 때문이다. 더불어 베트남 국가대표를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인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경기 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베트남 국민은 박 감독의 사진을 들고 이름을 연호했다고 한다. 마치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낳은 히딩크 감독을 연상케 한다. 박 감독의 인기는 한류 가수는 물론 베트남 수출의 28%를 지탱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능가한다고 한다. 아세안 11개국이 참가하는 아세안 축구는 1996년부터 시작됐다. 이후 2007년 아세안 축구 선수권 대회로 명칭이 바뀌고, 2008년 일본의 자동차 회사인 스즈키가 스폰서가 되면서 스즈키컵이 돼 아세안 국가들의 자존심이 걸린 경기로 탈바꿈한다. 베트남은 그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을 했으니 10년 만의 결승 진출에 국민이 열광할 만도 하다. 축구는 인간 본성에 가장 근접한 스포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공 하나를 놓고 11명이 체력과 전술을 바탕으로 몰려다니며 치열하게 다툰다. 팀워크를 기반으로 압박과 탈압박이 쉼없이 오가지만, 메시처럼 걸출한 선수가 수비를 따돌리고, 골을 넣는 장면은 가히 예술이다. 여기에 내셔널리즘이 가세하면 그 폭발력은 더 커진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 대표선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는 비극도 있었다. 국가 대항전인 A매치에서 지기라도 하면 난리가 난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1969년 월드컵 예선 이후 5일간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스포츠는 세계를 하나로 묶기도 하지만, 그 승부욕 때문에 갈라놓기도 한다. 한·일 간에도 축구는 거의 전쟁이다. 한국 선수들은 다른 나라에는 져도 일본에는 질 수 없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한다. 일본에게도 한국은 져서는 안 될 대상이다. 일본에서 혐한이 격화된 게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라고 한다. 당시 일본은 사상 첫 16강에 올랐지만, 공동 주최한 한국은 첫 4강에 올랐다. 일본인 중 일부는 한국이 편파적인 판정에 힘입었다고 깎아내린다. 월드컵 때마다 불거지는 주최국 프리미엄 정도의 문제를 증폭시켜 스스로 위안을 삼고자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2005년 야마노 샤린은 ‘만화 혐한류’를 펴내 톡톡히 재미를 본다. 일본의 우익은 환호한다. 축구의 어두운 면이다. 축구로 인한 광기와 내셔널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흥분시키는 게 또한 축구다. 김성곤 논설위원 sunggone@seoul.co.kr
  • 양심적 日변호사들, 우익의 위안부 영화 ‘침묵’ 상영 방해 제동

    양심적 日변호사들, 우익의 위안부 영화 ‘침묵’ 상영 방해 제동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일어서는 위안부’(이하 침묵)의 일본 상영을 앞두고 뜻을 함께하는 현지 변호사들이 상영장 인근에서 우익단체의 방해행위에 대해 현지 법원으로부터 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아냈다. 가나가와현에서 활동하는 간바라 하지메 변호사와 이 영화를 연출한 박수남 감독 등은 6일 오후 요코하마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날 요코하마지방재판소(법원)로부터 이 같은 결정을 얻었다고 밝혔다. 간바라 변호사는 “오는 8일 요코스카에서의 상영을 앞두고 전국에서 140명의 변호사가 힘을 합해 상영회 주최 측 대리인으로서 지난 4일 우익단체의 접근을 제한하는 가처분을 신청했고 오늘 법원의 결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해당 우익단체는 ‘기쿠스이 국방연합’이다. 법원은 해당 시간에 구체적으로는 집회를 하거나 가두 선전차와 스피커를 사용하는 행위 또는 소리를 지르는 등 상영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변호사들이 의기투합한 것은 지난달 28일 영화 ‘침묵’의 요코하마 상영회에서 우익단체 선전차가 등장하는가 하면 우익단체 회원이 특공복 차림으로 난입하려는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요코스카에서의 영화 상영도 우익단체에 의해 방해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0월 가나가와현 지가사키시 시민문화회관에서 이 영화의 상영을 앞둔 시점에선 지가사키시와 이 시의 교육위원회에 우익들의 항의가 쇄도한 바 있다. 재일교포 2세인 박수남 감독이 연출한 ‘침묵’은 스스로 이름을 밝힌 위안부 피해자 15명이 침묵을 깨고 일본을 찾아가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투쟁 기록을 담았다. 2016년 한국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에서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된 바 있으며 일본에서는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개봉된 뒤 지방 도시에서 순회 상영중이다. 간바라 변호사는 “일본의 가해 책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영화 상영회를 폭력과 협박으로 압박하는 행위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가처분 신청 이유를 설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일본 TBS, ‘방탄소년단 지민 발언 왜곡’ 정정·사과 보도

    일본 TBS, ‘방탄소년단 지민 발언 왜곡’ 정정·사과 보도

    일본 방송사 TBS가 방탄소년단(BTS) 지민의 발언을 왜곡해 방송한 일에 대해 사과했다. TBS 뉴스 ‘N스타’는 지난 23일 방송에서 “지난 14일 BTS 멤버가 도쿄돔 콘서트에서 ‘정말 미안해요. 일본 여러분’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며 “하지만 사실은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였다. 정정하고 사과한다”고 밝혔다. ‘N스타’는 14일 “방탄소년단 일본 도쿄돔 콘서트에서 멤버 지민이 ‘원폭 티셔츠’에 대해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 ‘앗코에게 맡겨줘’도 같은 내용을 전달하면서 지민의 영상에 일본 성우의 내레이션을 붙여 지민의 발언인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지민이 콘서트에서 일본 팬들에게 실제로 한 “여러 상황으로 전 세계 많은 분들이 걱정하셨을 거라 생각한다. 마음이 아프다”라는 말을 왜곡한 것이다.앞서 지민은 과거 원자폭탄 투하 이미지가 포함된 광복절 기념 티셔츠를 입었던 일이 일본 우익세력들이 일으킨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 일로 지난 8일 일본 아시히TV ‘뮤직스테이션’ 측으로부터 출연 보류를 통보받기도 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中 D&G 불매운동은 ‘피해의식’의 산물?…“중국도 인종차별 광고했다”

    中 D&G 불매운동은 ‘피해의식’의 산물?…“중국도 인종차별 광고했다”

    “중국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곳과 어떠한 일도 함께 할 수 없다” (아이돌 가수 왕쥔카이) “돌채앤가바나의 어떤 제품도 사거나 쓰지 않을 것이다. 돌체앤가바나가 굴욕을 자초했다” (영화배우 장쯔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Dolce&Gabana)가 최근 중국 여성 모델이 젓가락으로 이탈리아 피자와 스파게티 등을 우스꽝스럽게 먹는 장면을 담은 홍보 영상물을 공개하자 중국인을 비하하고 인종차별을 부추겼다는 논란이 중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주요 연예인들이 중심이 돼 불매 운동 열기를 지피는 한편 중국의 주요 온라인쇼핑몰들도 일제히 돌체앤가바나 상품을 퇴출시키는 데 동참하는 양상이다. 2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주요 럭셔리 온라인쇼핑몰 ‘세쿠’와 ‘육스넷어포터’ 등은 22일 돌체앤가바나 제품 판매를 전격 중단한다고 발표했고, ‘알리바바’와 ‘JD닷컴’ 등에서도 돌체앤가바나 제품을 찾아볼 수 없다. 중국도 흑인비하 광고로 물의..인종차별 논란 하지만 중국인들의 반응에 대해 일부 서방 매체들은 다소 냉소적 시각도 내비췄다. CNN은 최근 잠적했다 재등장한 중국 유명 배우 판빙빙이 탈세 혐의 등으로 당국의 표적이 된 사례 등을 예로 들며 “중국 연예인들은 현재 중국 정부에 자신의 애국심을 입증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면서 연예인들의 불매 운동이 자발적이 아니라 조직적 움직임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FT는 “중국의 민족주의와 ‘보이콧 외교’는 글로벌 기업들에 중요한 근심 거리가 되고 있다”면서 “중국 브랜드들도 인종주의를 자극하는 광고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는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인들의 세계관이 150여년전 서구 제국주의 침탈기의 ‘피해의식’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잉 민족주의 및 국수주의의 발현이라는 서구 일각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실제로 2016년 5월에는 중국 세제회사 ‘차오비’가 흑인을 비하하는 내용을 남은 세제 광고로 물의를 빚었다. 이 광고 영상을 보면 흑인 남성이 여성에게 다가가 입맞춤하려는 순간 이 여성이 남자의 입에 캡슐형 세제 한 알을 넣고 세탁기 안으로 마구잡이로 구겨넣는다. 세탁기 뚜껑 위에 앉아 기다리던 이 여성이 뚜껑을 열자 하얗고 깨끗한 티셔츠를 입은 중국인 남자가 나오는 식이다. CNN은 중국에서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개봉 당시에도 흑인 주연배우 존 보예가를 중국판 포스터에서 비중을 축소시키는 등 흑인에 대해 인종차별적 광고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中 불매운동은 오랜 反외세투쟁의 일환 세계의 중심 국가로 자부하던 중국이 1842년 아편전쟁 패배 이후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한 이후, 중국에서 외국상품 불매운동은 서양 및 일본 침략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일본의 중국 침략이 가시화된 1910~1930년대에는 반일 불매 운동이 매국노와 애국자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1949년 ‘신중국’으로 불리는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 이후 마오쩌둥 시대에는 자급자족의 폐쇄적 경제를 운영했기 때문에 불매운동의 대상이 없었다. 하지만 개혁개방 정책이 채택된지 20년이 지난 1999년 5월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유고 주재 중국 대사관을 폭격한 것을 계기로 미국 상품 불매운동을 시작으로 중국 국민들의 외국 상품 불매운동은 재점화됐다. 이는 그만큼 고도성장에 따른 중국인들의 경제적 자신감을 반영한다. 2005년 일본 정부가 우익의 관점이 반영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승인했을 때도 중국 전역은 물론 홍콩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2008년 4월에는 프랑스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 시짱(西藏·티베트)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이 성화를 탈취하려 한 소동이 벌어지자, 파리 시장이 티베트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게 명예 시민 자격을 부여해 달라고 시 의회에 요청하겠다고 말한 것이 계기로 작용했다. 지난해에는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계기로 환구시보 등 관영 매체의 선동 속에 한국산 제품 불매 운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이는 사드 배치가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보다는 중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는 미국이 중국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한국이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을 압박하고 봉쇄하는 미국 정책에 동조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을 과거 중국의 오랜 속국이었다가 미국의 속국으로 편입했다고 여기는 중국인의 오랜 편견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1989년 이후 다시 강화된 민족주의…미·중 무역전쟁 속 ‘양날의 칼’ 될수도 중국의 강화된 민족주의는 1989년 톈안먼 사태 유혈 진압 이후 집권한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 주석의 애국주의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당시 공산당은 제국주의에 당한 역사적 피해와 민족적 굴욕감을 인식시키기 위해 학생들에게 혁명 유적지를 순례하도록 하는 등 홍색 관광 붐을 일으켰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샤오펀훙’(小粉紅) 세대가 미래의 주역이 되면서 자국에 대한 작은 비판도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을 계기로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중국에서 글로벌 기업에 대한 여론의 심판은 더 강력해지고 있다. 특히 대만, 홍콩, 마카오, 티베트의 분리 독립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애국주의가 심화되고 있으며 중국 당국도 이를 묵인하는 분위기다. 지난 5월에는 미국 의류 브랜드 ‘갭’이 티베트 일부와 대만이 빠진 중국 지도가 인쇄된 티셔츠를 판매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다만 미국과 무역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국 정부는 최근 중국인의 단합된 힘을 보여준 외국제품 불매운동이 자칫 자국의 고립을 심화시킬 ‘양날의 칼’이 될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며 국민에게 냉정한 대응을 유도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압박에 맞서 주요 유럽연합(EU) 국가들과 손을 잡으려는 시점에서 돌체앤가바나 사태가 반(反)유럽 정서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이번 사태는 외교 문제가 전혀 아니며 (유럽과의)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정수의 B-Side] 모른다는 워너원, 책임 없는 방탄소년단… ‘꼭두각시 아이돌’

    [이정수의 B-Side] 모른다는 워너원, 책임 없는 방탄소년단… ‘꼭두각시 아이돌’

    음원 유출·재킷 표절 등 논란…워너원 꼭두각시처럼 ‘모르쇠’ 원폭이미지 티셔츠 파문 방탄…사과문에도 소속사 감싸기 ‘눈살’케이팝이 전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는 요즘도 ‘아이돌은 꼭두각시’라는 편견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등급을 매기듯 가창력을 평가하거나 작사·작곡 능력 등 잣대만으로 모든 아이돌을 폄하하는 것은 더 큰 장점을 보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최근 아이돌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일을 잇달아 보게 됐다. 아이돌을 아티스트라 부르기 망설여지는 일들이었다. 지난 19일 워너원의 첫 정규앨범 발매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국민 프로듀서’에 의해 탄생한 워너원의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는 자리여서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해체를 앞둔 심경을 묻는 질문이 많아서인지 간담회는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어 컴백 전 불거진 음원 유출과 앨범 재킷 표절 논란, 콘서트 계획 등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리더 윤지성은 세 질문 중 콘서트 관련에만 “저희가 월드투어를 하면서 앨범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지내서 콘서트에 관해선 아직 전달받은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사회자는 취재진에게 “다른 관련 질문을 해 달라. 해당 내용은 관계자를 통해서 입장을 밝히겠다”며 흐름을 끊었다. 순간 장내가 술렁였다. 몇 가지 질문을 돌아 답변하지 않았던 사안에 대한 멤버들의 얘기를 듣고 싶다는 질문이 또 나왔다. 옹성우는 “저희는 유출 과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회사에서 해결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표절 논란에 대해서는 윤지성이 “저희 콘셉트 포토가 플라톤 ‘향연’의 사랑의 기원을 모티브로 제작했는데 많은 분들의 의견과 관점이 다르다고 생각해서 저희가 뭐라고 설명드리기 어려울 것 같다. 불미스러운 일로 걱정을 끼쳐드린 점은 죄송하다”며 에둘러 답했다.앞서 지난 13일에는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원자폭탄 이미지 티셔츠’, ‘나치 문양 모자’ 등에 대한 입장문을 냈다. 과거 멤버 지민이 원자폭탄 이미지가 들어 있는 광복절 기념 티셔츠를 입었던 일을 일본 우익세력이 논란으로 키운 일과 관련해 원폭 피해자 등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입장문에서 수차례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언급하면서도 “아티스트들은 많은 일정들과 현장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책임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힌다”고 강조했다. 분명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주체는 방탄소년단임에도 모든 책임을 소속사에만 돌린 것이다. 대부분의 팬들은 빅히트의 입장을 지지했다. 특히 방탄소년단에게 책임이 없다고 밝힌 부분을 환영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꼭두각시 아이돌’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워너원에게 한 질문이 책임을 추궁하자는 것은 아니었을 터다. 마찬가지로 방탄소년단이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바라는 사람도 (극우세력을 제외하면) 없을 것이다. 다만 부정적인 이슈와 관련해 본인의 의견을 한마디도 못 하거나 엄마 치마폭에 싸인 아이처럼 ‘과잉보호’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그들의 이미지에 보탬이 될지는 의문이다. 아이돌이라는 말이 계속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tintin@seoul.co.kr
  • [이정수의 B-Side] 모른다는 워너원, 책임 없는 방탄소년단… ‘꼭두각시 아이돌’

    [이정수의 B-Side] 모른다는 워너원, 책임 없는 방탄소년단… ‘꼭두각시 아이돌’

    케이팝이 전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는 요즘도 ‘아이돌은 꼭두각시’라는 편견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등급을 매기듯 가창력을 평가하거나 작사·작곡 능력 등 잣대만으로 모든 아이돌을 폄하하는 것은 더 큰 장점을 보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최근 아이돌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일을 잇달아 보게 됐다. 아이돌을 아티스트라 부르기 망설여지는 일들이었다. 지난 19일 워너원의 첫 정규앨범 발매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국민 프로듀서’에 의해 탄생한 워너원의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는 자리여서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해체를 앞둔 심경을 묻는 질문이 많아서였는지 간담회는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그러던 중 컴백 전 불거진 음원 유출과 앨범 재킷 표절 논란, 콘서트 계획 등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리더 윤지성은 세 질문 중 콘서트 관련에만 “저희가 월드투어를 하면서 앨범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지내서 콘서트에 관해선 아직 전달받은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사회자는 취재진에게 “다른 질문을 해달라. 해당 내용은 관계자를 통해서 입장을 밝히겠다”며 흐름을 끊었다. 순간 장내가 술렁였다. 몇 가지 질문을 돌아 답변하지 않았던 사안에 대한 멤버들의 얘기를 듣고 싶다는 질문이 또 나왔다. 옹성우는 “저희 멤버들은 유출 과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회사에서 해결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표절 논란에 대해서는 윤지성이 “저희 콘셉트 포토가 플라톤 ‘향연’의 사랑의 기원을 모티브로 제작했는데 많은 분들의 의견과 관점이 다르다고 생각해서 저희가 뭐라고 설명드리기 어려울 것 같다. 불미스러운 일로 걱정을 끼쳐드린 점은 죄송하다”고 에둘러 답했다.앞서 지난 13일에는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원자폭탄 이미지 티셔츠’, ‘나치 문양 모자’ 등에 대한 입장문을 냈다. 과거 멤버 지민이 원자폭탄 이미지가 들어 있는 광복절 기념 티셔츠를 입었던 일을 일본 우익세력이 논란으로 키운 일과 관련해 원폭 피해자 등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입장문에서 수차례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언급하면서도 “아티스트들은 많은 일정들과 현장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책임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힌다”고 강조했다. 분명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주체는 방탄소년단임에도 모든 책임을 소속사에만 돌린 것이다. 대부분의 팬들은 빅히트의 입장을 지지했다. 특히 방탄소년단에게 책임이 없다고 밝힌 부분을 환영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꼭두각시 아이돌’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아이돌과 아티스트를 가르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아이돌은 아티스트 이미지를 얻고 싶어 한다. 연차가 쌓일수록 작사·작곡부터 전반적인 프로듀싱에 이르기까지 앨범 참여도를 높이고, 실제 참여한 것 이상으로 아이돌의 역할을 부풀려 홍보하기도 한다. 워너원에게 한 질문이 멤버들의 책임을 추궁하자는 것은 아니었을 터다. 마찬가지로 방탄소년단이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바라는 사람도 (극우세력을 제외하면) 없을 것이다. 다만 부정적인 이슈와 관련해 본인의 의견을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거나 엄마 치마폭에 싸인 아이처럼 ‘과잉보호’ 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그들의 이미지에 보탬이 될지는 의문이다. 아이돌이라는 말이 계속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왼팔 잘린 채 오른팔로 든 태극기…‘남도의 유관순’ 초인적 항일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왼팔 잘린 채 오른팔로 든 태극기…‘남도의 유관순’ 초인적 항일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과 잔인한 고문에도 독립운동가들은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초인적인 저항 정신을 보여 준 독립운동가가 있다. 육신의 일부가 절단돼 선혈이 쏟아지는 중에도 떨어진 태극기를 주워 들고 만세를 더 크게 외친 윤형숙(1900~1950) 열사. 열사를 흔히 ‘남도(南道)의 유관순’이라 부른다. 전남 여천역에서 내려 윤 열사의 조카 윤치홍(78)씨를 만나 여수 이순신공원의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을 둘러보았다. 2014년 건립된 기념탑 옆에는 팔이 잘린 열사의 모습이 담긴 부조물이 있다.윤씨는 “끝까지 일제에 굴하지 않고 평생 나라를 위해 몸바친 인물”이라고 열사를 소개했다. 윤씨의 할아버지 윤자환(1896~1950·대통령 표창) 선생도 3·1 만세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 체포돼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윤씨는 10여년 동안 기록 발굴에 매달린 끝에 알려지지 않은 열사의 공적을 찾아냈다고 한다. 열사는 닥쳐올 운명을 암시하듯 혈녀(血女)라는 이명(異名)으로도 불렸다. 학적부와 판결문에는 ‘윤혈녀’로 적혀 있다. 윤씨는 윤혈녀와 호적상의 윤형숙이 동일인임을 어렵사리 확인했다.●윤 열사 조카, 10여년간 관련 공적 찾아 내 타오르는 들불처럼 만세운동이 번졌던 1919년 3월 광주에서도 민중과 학생들이 떨쳐 일어났다. 윤 열사는 당시 광주 수피아여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이 학교에는 민족의식이 남달랐던 박애순(1896~1969·건국훈장 애족장) 교사가 재직하고 있었다. 박 선생은 고종 황제의 승하 소식과 일제에 빼앗긴 나라 안팎의 사정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광주 만세운동은 3·1운동 전부터 움트고 있었다. 일본 도쿄 유학생 정광호가 귀국해 2·8 독립선언을 청년들에게 알렸다. 서울 유학생인 최정두와 고종 황제의 국장에 참례하고 서울 시위에 참가한 김철도 귀향해 남궁혁의 집에 모여 거사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독립선언서, 태극기, 격문 등을 밤새 만들어 장날인 8일 서울과 똑같은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준비 시간이 너무 짧아 다시 작은 장날인 3월 10일로 거사일을 바꾸고 학생들과 읍민들에게 참가를 독려했다. 이에 박 선생도 김복현, 김강으로부터 독립선언문 50여통을 받고 학생들에게 취지를 설명했다. “당연히 참가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말했다. 학생들은 수피아홀에 숨어 밤새 치마를 뜯어 태극기를 만들었다. 드디어 10일 오후 3시 30분. 광주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에 수피아여학교·숭일학교·농업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기독교인, 주민 등 1000명이 넘는 군중이 모여들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받아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대한독립만세!”, “왜놈들은 물러가라.” 윤형숙은 시위 행렬의 맨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시위대는 시장 안을 돌아 서문통을 거쳐 우편국 앞으로 행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 헌병과 경찰은 군중의 기세에 눌려 감히 시위를 방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위대가 본정통을 돌아 경찰서 앞으로 나아가려 하자 헌병들은 실탄 사격을 하고 검을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일본 헌병이 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던 윤 열사의 왼팔 상단부를 군도(軍刀)로 내리쳤다. 잘려나간 팔이 붉은 피를 뿌리며 땅에 떨어졌다. 남은 팔에서도 피가 쏟아졌고 윤 열사는 정신을 잃었다. 조금 전까지 열사의 몸 일부였던 팔이 땅에 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다섯 손가락은 태극기를 꼭 붙잡고 있었다. 유혈이 낭자한 몸으로 열사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오른팔로 땅에 떨어진 태극기를 주워 들고 높이 흔들었다. 그러면서 더 큰 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군중은 비분강개하여 더욱 격렬하게 항거했다. 군중은 광주경찰서 앞으로 몰려들었다. 일제는 총검을 휘둘렀고 경찰서 앞마당은 피로 벌겋게 물들었다. 그 자리에서 100여명이 구금되었다. 한쪽 팔을 잘리고도 만세를 외친 윤 열사의 행동에 일본 군경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육군성에 다음날 보고됐다. 열사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도 못한 채 심문을 당했다. 일경은 굽히지 않는 열사를 가혹하게 고문해 오른쪽 눈을 멀게 했다. 팔이 잘린 열사는 재판정에도 나가지 못했고 결석재판으로 4개월 형에다 4년 연금형을 더한 판결을 받았다.●팔 잘려 재판 못 나가… 결석재판 징역 4개월 이후 열사는 함남 원산 마르다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고문 후유증이 심해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열사는 요양차 전북 전주로 내려가 전주기전야학교 사감으로 일하고 고창군의 한 유치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건강은 점점 나빠졌다. 1939년 고향 여수로 내려갔다. 왼쪽 눈의 시력마저 거의 잃었지만 열사는 봉산학원 교사로 교편을 잡는 한편 야학을 열어 글을 모르는 마을 청년들을 가르치는 데도 열정을 쏟았다. ‘외팔이 선생’으로 불리며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던 열사에게 더 큰 비극이 닥쳤다. 열사는 평소 반공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1950년 6·25가 터지고 북한군이 여수까지 점령했다. 지인의 집으로 피신했던 열사는 뒤를 캔 내무서원에게 붙잡혔다. 서울이 수복된 9월 28일 북으로 퇴각하기 직전 북한군은 여수 둔덕동 과수원에서 열사를 총살했다. 파란만장한 20세기의 전반을 헤쳐 온 열사의 나이 50세였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한 ‘사랑의 원자탄’ 주인공 손양원 목사도 함께 총살당했다. ●잘린 팔 무등산에 묻혔다 전하지만 못찾아 열사는 1900년 9월 13일 전남 여수 화양면 창무리에서 태어났다. 윤치홍씨와 택시를 함께 타고 30여분쯤 가니 확장 공사 중인 도로 옆 비탈에 열사의 묘소가 있었다. 바로 옆에 작은 공장이 있고 잡초가 드문드문 자란 쓸쓸한 모습이었다. 도로 너머로 추수를 마친 창무리의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창무리는 조선시대에 말을 방목해 기르던 목장이었다고 한다. 묘비에는 ‘고 순교자윤형숙전도사지묘’(故殉敎者尹亨淑傳道師之墓)라고만 씌어 있다. 윤씨는 이 비석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었다. 열사가 총살당했다는 비보를 전해들은 고향 친지들은 20리 길을 걸어 학살 현장을 찾아갔다. 어둠 속에서 한쪽 팔이 없는 시신을 수습해 그날 밤 고향 뒷산에 가매장했다. 이듬해 4월 교회 사람들이 묘비를 만들어 고향 마을로 가져왔으나 마을 사람들은 받아주지 않았다. 항일 운동에 몸바친 열사에게 단순히 ‘순교한 전도사’라고 이름 붙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석은 방치돼 소고삐를 매는 데 사용됐다고 한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뒤 가까운 친지들과 마을 유지들이 모여 묘를 이장하고 조촐한 묘비 제막식을 열어 열사의 영혼을 달래 주었다. 열사의 팔은 누군가 광주 무등산 자락에 따로 묻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이 죽으면 팔을 함께 묻어 달라고 했다는데 팔무덤을 찾을 길이 없었다. 추모비엔 이렇게 썼다. “당신의 충령(忠靈)을 천추(千秋)에 길이 전하게 될 것이며 당신의 거룩하신 충절을 값없이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정부, 2004년에야 건국포장 추서 열사에게도 한때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한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젊음은 일제에, 생의 마지막은 북한군에게 희생된 열사의 일생은 민족 비극의 축소판이었다. 2004년 정부는 열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새로 만든 묘비석에는 이런 글귀가 씌어 있다. “왜적에게 빼앗긴 나라 되찾기 위하여 왼팔과 오른쪽 눈도 잃었노라. 일본은 망하고 해방되었으나 남북·좌우익으로 갈려 인민군의 총에 간다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원폭 티셔츠’ 논란 방탄소년단, NHK 홍백가합전 명단서 제외

    방탄소년단이 일본 최고권위 연말 가요축제인 ‘NHK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 올해 명단에서 제외됐다. 멤버 지민의 ‘원폭 티셔츠’ 논란 때문으로 풀이된다. 트와이스는 걸 그룹 최초로 2년 연속 출연한다. NHK는 오는 12월 31일 방영하는 제69회 홍백가합전 출연진 프로필을 14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트와이스가 한국 가수 중 유일하게 올해 출연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방탄소년단은 일본 내 높은 인기에도 출연자 명단에서 빠졌다. 멤버 지민이 과거에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은 사실이 뒤늦게 문제가 됐다. 우익들이 이를 문제 삼아 공격을 퍼붓자 NHK 측에서 부담을 느껴 제외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백가합전은 한 해 최고의 가수들이 홍팀과 백팀으로 나눠 공연으로 대항전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이 방송을 보며 새해를 기다리는 일본인이 많을 정도로 일본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열광의 도쿄… BTS ‘정치 보복’ 뚫었다

    열광의 도쿄… BTS ‘정치 보복’ 뚫었다

    방탄소년단 데뷔 첫 도쿄돔서 공연 아침부터 ‘아미’ 몰려 기념상품 매진 유모차 아이 태우고 온 엄마팬 눈길 내년 2월까지 4개 도시서 8회 진행 소속사 “원폭 티셔츠 진심으로 사과”‘제2의 비틀스’라는 평가와 함께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방탄소년단이 북미·유럽 투어에 이어 일본 돔 투어에 돌입했다. 최근 혐한 세력들의 표적이 되며 ‘반일 가수’로 몰리기도 했지만 방탄소년단은 일본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방탄소년단은 13일 데뷔 후 처음으로 도쿄돔에 입성했다. 도쿄돔은 관객 약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으로 지난 10월 기념비적인 공연 무대였던 미국 뉴욕 시티필드보다 1만석가량 크다. 이들은 내년 2월까지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 4개 도시에서 공연을 한다. 총 8회 38만석의 티켓은 일찌감치 동났다. 도쿄돔 앞은 이날 아침부터 방탄소년단의 굿즈(기념상품)를 사기 위해 몰려든 일본 ‘아미’(팬덤명)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콘서트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까지 동참해 긴 줄이 이어졌고 티셔츠, 배지, 포토카드, 슬로건 등 굿즈가 속속 매진됐다. 공연장 주변에 있던 팬들은 한국 언론에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방탄소년단을 지켜주겠다”며 ‘팬심’을 쏟아내기도 했다. 유모차에 어린 자녀를 태우고 온 엄마 팬, 청소년 자녀와 함께 온 중년 팬들도 눈에 띄었다.공연장 주변에서 우익들의 대규모 혐한 시위는 열리지 않았다. 다만 인근 수이도바시역 앞에서 우익들의 1인 릴레이 시위가 이어졌다. 행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앞서 지난 8일 일본 TV아사히 ‘뮤직 스테이션’이 예정돼 있던 방탄소년단의 출연을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일본의 한 매체가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23·본명 박지민)이 2년 전 입었던 광복절 티셔츠를 문제 삼고 나선 일이 발단이 됐다. 일각에서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갈등,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일본 기업 배상책임 판결 등으로 양국 관계가 불편해지자 방탄소년단이 혐한 세력의 표적이 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일본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들은 지난주 방탄소년단의 TV 출연 금지 조치 파문 이후 상황에 대해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번 논란을 확대하는 데 앞장서 온 우익 성향의 스포츠·연예 매체 도쿄스포츠는 이날도 “한국 연예인들은 일본에서 인기를 얻을수록 한국에서는 반일 의사를 표명해야 하는 모순과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자의적인 해석의 기사를 내보냈다. 한편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이날 관련 입장을 냈다. 빅히트는 “원폭 이미지가 들어 있는 의상을 당사의 아티스트가 착용해 원폭 피해자 분들께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드린 점 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당시 책임은 빅히트에 있으며 많은 일정과 현장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아티스트들은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일부의 흠집 내기 시도에도 일본 내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날 오리콘 뉴스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이 지난 7일 일본에서 발매한 싱글 ‘페이크 러브/에어플레인 파트.2’는 45만 4829점(음반판매량을 바탕으로 매긴 점수)을 얻어 주간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해외 아티스트의 발매 첫 주 점수로는 역대 최고다. 서울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이정수의 B-Side] 혐한의 먹잇감 된 방탄소년단… 독립투사 아니면 친일이라는 흑백논리

    [이정수의 B-Side] 혐한의 먹잇감 된 방탄소년단… 독립투사 아니면 친일이라는 흑백논리

    방탄소년단이 ‘반일’ 논란에 휩싸였다. 얼마 전 한국과 일본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퍼져가던 논란은 일본 매체의 기사화와 극우세력의 혐한 정서를 통해 재확산되고 있다.발단은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입었던 티셔츠다. 등에 ‘우리의 역사’, ‘애국심’ 등 문구가 영문으로 적힌 티셔츠에는 광복 당시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원자폭탄이 폭발하는 흑백사진 등이 담겼다. 광복절을 기념해 제작된 티셔츠로, 지민이 사적인 자리에서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광복의 기쁨과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되새길 수 있는 의미 있는 옷이지만 일본의 우익들에게는 먹잇감이 되기 좋았다. 일본의 한 매체는 “방탄소년단이 반일 활동을 한다”는 기사를 썼고 “뿌리 깊은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분석을 곁들였다. 리더 RM이 광복절을 맞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던 5년 전 글도 끄집어 올렸다. RM은 당시 “독립투사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는 하루가 되길 바라요. 대한 독립 만세!”라고 썼다. 일본 온라인에서는 격한 반응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29일 현재 ‘야후 재팬’에 게시된 한 관련 기사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질투가 아닌 분노다. 일본에 오지 말아 달라’는 베스트 댓글은 2만개 이상의 공감을 얻었다. 방탄소년단을 ‘악’으로 규정하는 일부 시각은 온라인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혐한 시위에서도 ‘건방진 방탄소년단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는 한류 스타를 타깃으로 한 혐한 흐름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10년 넘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동방신기는 최근 ‘인종차별’을 했다며 저격당했다. 지난 6월 일본 공연에서 멤버 유노윤호가 원숭이 흉내를 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 정치인, 연예인들은 혐한 발언을 하며 자신의 인기를 이어 가는 수단으로 삼기도 하고 한국 연예인에게 독도 영유권에 대한 생각을 묻는 무례한 질문도 간간이 이어진다. 이런 일부 우익 세력의 도발은 갈수록 덩치를 불려 가는 한류라는 흙덩이에 던져진 달걀인지도 모른다. 팬들 사이에서는 논란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자리잡혔다.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역시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혐한 목소리에 동조하는 일본인이 적지 않지만 다음달 시작되는 방탄소년단의 일본 투어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다만 케이팝 아이돌들이 일본 활동 중 맞닥뜨리는 혐한 분위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일본 음악시장은 미국에 이은 제2의 시장으로 다수의 아이돌에게 필수 시장이다. 자국어로 앨범을 내고 활동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독특한 ‘고립 시장’이기에 빌보드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조차도 일본 현지 앨범을 따로 발매한다. 이와는 반대로 국내에서 ‘친일’ 논란이 점화되기도 한다. 예컨대 독도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리는 상황 등이 비난의 표적이 될 때다. 일본에서 한류를 확산시키는 아이돌들이 ‘독립투사’가 되지 않았다고 과도한 비난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한류에 있어서도 명분과 실리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이 필요할 터이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열린세상] 아베 일본 총리 3선에 부쳐/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베 일본 총리 3선에 부쳐/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선에 성공함으로써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남의 나라 총리가 최장수를 하든 말든 상관할 일이 아니지만, 일본 자위대의 헌법적 지위를 위한 헌법 개정을 목표로 삼는 인물이니 한국으로서는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은 아니다.자위대는 어떤 실체인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의 원자폭탄이 투하됨으로써 결국은 1945년에 항복하게 되었고, 맥아더 원수가 군정을 하면서 다시는 군국주의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평화헌법 제9조를 만들어 군사력을 아예 갖지 못하게 헌법에 못박았었다. 그런데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군사물자 조달 등 일본의 도움이 필요했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에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군대가 부활했다. 미국으로서는 태평양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바라다본 서태평양 끝자락 일본은 전략상 요충지 중의 요충지였기에 일본에 미군을 주둔시키며 자위대 군사력 증강을 부추기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보수 우익은 그들 나름대로 미국을 등에 업고 헌법을 위반해 가며 ‘국제사회에의 평화공헌’이라는 명목하에 첨단 군사력을 증강시켜 왔다. 2018년 10월 19일 현재로 첨단무기 측면에서 아시아에서 일본의 무기를 당해 낼 나라는 없다. 첨단무기의 전시장이라 불릴 만큼 최첨단 무기들로 무장한 일본이다. 이런 일본에 그나마 군사력 증강에 제동 혹은 족쇄가 되었던 헌법 제9조를 개정하려는 아베 총리이니 통한의 식민지배를 당했던 한국으로서는 관심을 두어야 한다. 아베 총리는 1차 총리를 할 때 방위청이었던 정부기구를 장관급의 방위성으로 승격시켰던 인물이어서 평화헌법의 개정 의지가 높은 인물이다. 방위청이 방위성으로 승격되던 날, 필자는 방위성 연병장에서 자위대의 사열을 받던 아베 총리를 직접 보았다. 축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맡았고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청년 장교’로 불리던 나카소네에 이어 아베 총리로 계승되고 있다. 일본의 헌법 개정 과정은 중의원과 참의원 3분의2 찬성이 필요한데 이런 의결 정족수라는 것은 어느 나라나 쉽지 않은 매우 높은 조건이다. 그만큼 헌법을 개정하는 일은 그 어느 나라도 어려운 조건이 붙어 있다. 일본이 한 선거구에서 3명 내지 5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하에서는 다수의 정당이 난립하는 구조여서 집권 자민당이 공명당 등과 연립을 해도 3분의2의 정족수를 채우기 어려웠다. 그러나 일본의 보수 우익들은 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에서 1개 선거구에서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로 바꾸면서 집권 자민당이 공명당 등과 연립하면 3분의2는 거뜬히 마련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마지막 장벽은 국민투표인데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되는데 여론 조사를 볼 때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외국 즉 북한이나 중국의 위협이 커지면 즉각 단결하는 일본 국민이라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면 아베 총리에게 한국은 무엇을 희망사항으로 요청할 수 있는가? 아베 총리는 군사력 증강에 아까운 국가예산을 펑펑 쓰지 말고 중국과의 군비경쟁을 피하면서 동북아 평화체제의 출범을 한국과 함께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동북아시아에서 그나마 민주주의의 경험을 함께해 온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여 무기 사들이는데 돈을 적게 쓰고 그 돈으로 자국민들의 복지를 늘리는 데 서로 머리를 맞대어야 할 것이다. 군사력 증강에 엄청난 돈을 쓰는 중국을 설득해 군비 축소라는 대화의 장을 같이 만들어 나가는데 아베 총리가 함께하기를 희망한다. 일본 국민은 군사력을 늘리는 일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그들도 군국주의 침략전쟁에 휘말려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었던 악몽을 갖고 있다. 거의 모든 일본 국민의 가족 중 적어도 1명 이상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죽어 나갔다. 3선의 총리에 선출된 아베 총리가 군사력을 증강하는 헌법 개정에 골몰하지 말고 동북아 평화체제를 같이 만들어 나가는 일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동북아의 평화를 만드는 중차대한 일에 한국과 일본이 앞장서야 한다.
  • 日, 제주 국제관함식에 해상자위대 함정 불참 통보한 듯

    日, 제주 국제관함식에 해상자위대 함정 불참 통보한 듯

    일본이 오는 10~14일 제주민군복합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 해상자위대 함정을 보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5일 한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오늘 오전 제주 국제관함식에 해상자위대 함정을 보내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 안에서는 일본이 제주관함식에 함정을 보내지 않는 대신 관함식 행사 중 하나인 서태평양해군심포지움에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일본의 공식적인 입장은 “참가 여부를 조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는 해상자위대 공보담당자와 통화해 ‘해상자위함의 욱일기 게양 논란에 따라 일본측이 행사에 불참하는 방안이 거론된다’는 질문에 “불참키로 한 사실은 없다”고 대답했다고 보도했다. 제주관함식에 일본 자위대 참가 여부가 문제가 된 건 일본이 군국주의와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旭日旗) 게양을 고집하고 있어서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 정부 차원의 행사에 욱일기를 단 일본 함정이 참가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여러 채널을 통해 일본 측에 전달했으나, 일본은 욱일기가 자위대기로서 문제 될 게 없다면서 맞섰다. 행사를 앞둔 해군은 참여 14개국에 공문을 발송해 관함식 하이라이트인 11일 해상사열 때 “자국기와 태극기만을 게양해달라”는 간접 화법으로 일본 욱일기 게양 배제를 요구했다. 외교부도 우리 국민감정을 감안하라는 취지로 일본에 의견을 전달했다. 나아가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일본은 욱일기가 한국인들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일본 측에 욱일기 게양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은 우익 언론매체들을 통해 강하게 반발해온 데 이어 이번에는 자위대 최고위급 관리가 ‘극단적인’ 표현을 써서 거부감을 표시했다. 자위대의 가와노 가쓰토시 통합막료장은 4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해상자위관에게 있어서 자위함기(욱일기)는 자랑이다. 내리고 (관함식에) 갈 일은 절대 없다”면서 분명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일본 측이 끝까지 욱일기 배제에 불응하면 한국 정부 차원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의 참여를 불허하는 방안도 검토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일본 측과 계속 대화할 것”이라면서 “이번 주말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한편 대남 선전 매체인 우리 민족끼리 등은 이날 논평에서 “남조선 당국은 비굴하게 일본 반동들에게 욱일기 게양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 아니라 민심의 강력한 요구대로 단호히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베 내각 우익본색…첫날부터 ‘교육칙어’ 도발

    아베 내각 우익본색…첫날부터 ‘교육칙어’ 도발

    최측근 문부상 “현대적 재해석 검토” 日언론 “전쟁 이전으로 회귀 움직임”지난 2일 새로 임명된 시바야마 마사히코 일본 문부과학상이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만든 ‘교육칙어’의 현대적 재활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시바야마 문부과학상은 아베 신조 총리의 최측근으로 자민당 총재특보를 지내다 이번에 처음 입각했다. 3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시바야마 문부과학상은 취임 후 기자회견에서 “교육칙어의 기본적인 내용을 현대적으로 정리해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는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해석된 형태로 현재의 도덕 과목 등에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보편성을 갖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칙어는 메이지 시대인 1890년 10월 ‘신민(臣民·국민)에 대한 교육의 근본이념’으로 만들어졌다. 효도·우애 외에 ‘국민은 일왕에 충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일본 패망 이듬해인 1946년 연합군최고사령부(GHQ)에 의해 폐지됐다. ‘교육칙어의 부활’은 지난해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3월 각의(국무회의)에서 “헌법이나 교육기본법 등에 위반하지 않는 형태로 교재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답변서를 채택하자 야권에서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교육칙어는 과거 군부 등이 사상통제의 도구로 활용했던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일본 정부는 한 달 후 “교육칙어를 일선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촉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도쿄신문은 “문부과학상의 발언에 대해 교육칙어 배제 및 무효를 결정한 국회 결의를 위반하는 전쟁 이전으로의 회귀 움직임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아베 짙어진 극우 내각… 위안부 망언·개헌파 등 13명 대거 기용

    아베 짙어진 극우 내각… 위안부 망언·개헌파 등 13명 대거 기용

    방위상 이와야…군사 대국화 임무 맡을 듯 문부과학상에 ‘야스쿠니 공물’ 시바야마 개헌 가속화·내년 참의원 선거 승리 겨냥 측근 전진배치·파벌 안배로 당 불만 제거지난달 ‘3기 연속 집권’에 성공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일 내각과 자민당 당직을 개편했다. 각료(장관) 19명 중 13명이 새 인물로 교체됐고, 당 지도부에도 변화가 있었다. 아베 총리는 이번 인선에서 ‘헌법 개정’과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 승리’에 초점을 맞췄다. 친정체제 강화 차원의 ‘측근 전진 배치’와 당내 불만 제거를 위한 ‘파벌 안배’가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과거 망언을 일삼았던 인물들도 기용되면서 극우 색채가 한층 짙어졌다. 아베 총리는 이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을 통해 발표된 내각 개편에서 당내 주요 세력 수장이자 정권 재창출 공신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을 유임시켰다. 스가 장관, 고노 다로 외무상,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 모테기 도시미쓰 경제재생담당상 등도 재신임됐다.방위상에는 ‘아소파’의 이와야 다케시 전 자민당 안보조사회장이 임명됐다. 그는 개헌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하는 우익 인사로, 군사 대국화의 임무가 맡겨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 8월 일본 종전기념일에 아베 총리를 대신해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공물료를 납부했던 시바야마 마사히코 자민당 총재 특보는 문부과학상이 됐다.극우 성향 인사들도 입각했다.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인하며 ‘인터넷 우익’과 교감해 온 가타야마 사쓰키 의원이 지방창생상에, 2016년 “군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발언했던 사쿠라다 요시타카 의원이 올림픽상에 기용됐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총리가 정권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당 총재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해 준 각 파벌을 배려했다”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내각 개편과 별도로 발표한 자민당 간부 인사에서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과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을 유임시켰다. 그러나 개헌안의 국회 제출 승인 권한을 쥐고 있는 총무회장에는 자신의 측근인 가토 가쓰노부 후생노동상을 새로 앉혔다. 헌법개정추진본부장에도 최측근인 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상을 기용하는 등 개헌 추진을 위한 기반을 정비했다. 아베 총리는 올가을 임시국회에 헌법 9조 개정안 제출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내년 참의원 선거를 겨냥한 선거대책위원장에는 아마리 아키라 전 경제재생상을 임명했다. 2016년 대가성 자금수수 의혹으로 물러났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선거 총괄을 위해 최측근을 기용했다. 극우 여성 정치인으로 잦은 말썽을 일으켜 온 이나다 도모미 전 방위상은 수석부간사장에 기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뉴스 in] 아베 측근 집결시켜 ‘개헌 개각’

    [뉴스 in] 아베 측근 집결시켜 ‘개헌 개각’

    2021년 9월까지 일본을 다시 이끌게 된 아베 신조(얼굴) 총리가 2일 자신의 측근과 우익 인사들로 대거 채워진 내각과 자민당 핵심 라인업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아베 총리는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해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헌법 개정에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무리한 개헌을 추진하는 아베 정권의 행보에 주변국은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우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 [황성기의 시시콜콜]꼴보·노이즈 마케팅이 부른 일본 월간지의 ‘사실상 폐간’ 참사

    [황성기의 시시콜콜]꼴보·노이즈 마케팅이 부른 일본 월간지의 ‘사실상 폐간’ 참사

    발행부수 1만 6800부에 지나지 않은 월간지 ‘신초 45’가 일본 사회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성 소수자를 차별하는 국회의원의 혐오성 기고를 싣고는, 쏟아지는 세간의 거센 비판에 굴하는 게 싫었던지 아니면 노이즈 마케팅으로 판매 부수를 늘리려는 전략이었는지 ‘신초 45’는 두달 뒤 발매된 10월호(9월 18일 발매)에 그 국회의원과 주장을 옹호하는 특집을 게재한다. 하지만 ‘신초 45’는 두달 전 비판의 몇 배를 넘는 ‘쓰나미’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은 맹렬한 반발에 부딪쳐 결국 휴간이라는 선택에 내몰렸다. ‘신초 45 사태’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이번 소동은 쇠락해 가는 종이 매체의 단말마적인 폭주, 소수자·약자를 대하는 주류 사회의 오만, 그럼에도 이를 묵과하지 않고 맞서는 건강한 지식인의 당당한 대응이 펼쳐지는 일련의 과정 속에 일본의 속살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성 소수자 차별을 주장한 친 아베 의원의 기고가 발단 ‘신초 45 사태’의 전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발단은 ‘신초 45’가 지난 8월호에 스기타 미오(51·자민당 소속) 중의원의원의 ‘LGBT에 대한 지원, 도가 지나치다’라는 제목의 기고를 게재한 데 있다. 이 기고에서 스기타 의원은 “아이를 만들지 않는 LGBT에게는 생산성이 없다”, “LGBT에 대한 대우가 너무 지나치다”, “LGBT에 대한 세금 투입을 줄여야 한다”는 등의 해괴한 논리를 폈다. 소수의 극우보수층으로부터 박수를 받았지만 ‘나치의 우생(優生) 사상 같다’며 대부분은 비판하는 대열에 섰다. LGBT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의 영어 첫 글자를 딴 일본식 조어다. 여기에는 아쿠타카와상 수상 작가로 한국에도 ‘일식’(日蝕)을 비롯한 수십권이 번역돼 있는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도 비난의 대열에 동참했다. 그는 “독자로서, 신초샤의 책으로 내 인생은 바뀌었고, 소설가로서 데뷔해 대표작도 (신초샤에서) 썼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경애의 마음을 갖고 있는 출판사이다. 일개 잡지라고는 하지만 왜 저런 저열한 차별에 가담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성 소수자를 포함한 비판론자들이 ‘신초 45’ 7월호가 나온 직후인 7월27일 자민당 본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는 이례적인 사태로까지 번졌다. 집회에 참가한 사람은 무려 5000명이었다. 집회 문화가 소규모화한 일본에서는 놀라운 숫자다.여기에서 끝났더라면 꼴보(꼴통 보수)·노이즈 마케팅에 편승한 잡지에 단골로 기고하는 우익계 의원의 일탈로 간주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신초 45’ 편집장은 부수의 감소 추세가 멈추지 않는 잡지의 판매를 늘릴 절호의 기회로 여겼는지 7명의 울트라 우익 논객을 긁어 모아 이들에게 스기타 의원을 옹호하는 기획을 꾸려 10월호를 발매했다. 기획의 타이틀도 ‘그렇게 이상한가, 스기타 미오 논문’이다.마치 세상을 향해 싸움을 거는 듯한 도전적인 이 기획에 등장하는 필자들은 장년층 이상의 보수층을 대상으로 한 ‘세이론’(正論), ‘월간 Will’, ‘월간 Hanada’ 같은 잡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오가와 에이타로라는 문예평론가의 글은 ‘신초 45’를 지켜보고 있던 일본 지식인들의 역린을 건드린다. 오가와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자 ‘아베 신조 총리를 원하는 민간인 유지의 모임’을 만드는 등 아베 총리의 사상과 궤를 같이 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승객이 가득한 전철을 탔을 때 여자의 냄새를 맡는다면 손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마는, 그런 치한 증후군 남자의 고생이야말로 지극히 뿌리가 깊을 것이다. 재범을 일삼는 것은 제어불가능한 뇌에서 유래하는 증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치한)이 만질 권리를 사회는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하는 여자의 충격을 생각하라고 하는 건가. 그렇다면 LGBT님이 논란의 큰 길을 걷고 있는 풍경은 나에겐 죽을 만큼 충격이다” 출판 침체 속 극우노선 편승한 ‘신초 45’의 잘못된 선택 스기타를 옹호한다고 쓴 변태적이고 해괴한 글이 사태를 지켜보다 참다 못한 지식인의 집단적 분노를 사고, 여러 매체에 항의성·비판성 글이 동시다발적으로 게재되면서 순식간에 ‘신초 45 사태’로 비화하게 된다. 거기에는 ‘신초 45’를 발행하는 출판 노포(老鋪) 신초샤(新潮社) 트위터 공식 계정의 하나인 ‘신초샤 출판부 문예’가 ‘신초 45’의 기획에 비판적인 글을 올리고 리트윗하면서 불에 기름을 붓는다. 이어 이와나미 서점 등 경쟁 출판사에서 응원의 글을 트윗하면서 비난의 쓰나미는 일파만파로 신초샤를 덮치게 된다. 신초샤 앞에서 항의 집회가 열리고, 간판에 낙서를 당하는 수모도 겪는다. 결국 발매 이틀 뒤인 9월 21일 신초샤는 사장 명의로 성명을 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성명은 ‘너무나도 상식을 벗어난 편견과 인식부족에 가득찬 표현이 있었다’고만 했을 뿐, 사죄의 문구 하나 없어 역효과만 낳는다. 결국 이 성명으로는 분노의 불길이 잡히지 않자 25일 신초샤는 ‘신초 45’의 휴간과 함께 사장과 관련 임원의 10% 감봉 3개월의 조치를 내놓는다. 신초샤는 1896년 설립된 이후 문예지와 단행본, 문고본을 등을 출판하면서 일본 문예를 이끈 역사, 전통을 자부하는 대형 출판사다. ‘신초 45’는 45세 이상의 중년을 타깃으로 1982년 창간했다. 논픽션물을 꾸준히 발굴하고 게재하면서 한때는 논픽션을 쓰는 저널리스트에게 ‘동경의 월간지’였다. 그러나 36년만에 사실상 폐간과 다름없는 기약없는 휴간이란 대참사를 자초했다. ‘양심에 반하는 출판은 죽어서도 하지 않을 일’이라는 설립자의 모토를 근간으로 122년 이어온 신초샤에서 왜 이런 ‘자폭’ 사태가 일어났는지 철저한 자체 검증을 기대한다. 자폭 원인은 몇 가지 면에서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신초 45’가 종이매체의 전반적인 축소 경향에 따른 위기감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을 가능성이다. 일본의 출판과학연구소가 낸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일본 내 출판물 추정판매금액은 1조 3700억엔(13조 7000억원)으로 시장 규모가 정점에 달했던 1996년의 52%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 중에서 잡지는 20년 연속 전년대비 축소경향이 지속되고 있다. 둘째는 생존을 모색하는 여러 방법 중에서 수년 전부터 일본에서 일정한 세를 얻고 있는 애국주의적 극우 성향 잡지의 ‘꼴보 노선’에 힌트를 얻었을 가능성이다. ‘신초 45’가 올들어 특집을 꾸민 타이틀을 보자. 2월호는 ‘반(反) 아베 병에 붙이는 약, 3월호 ‘비상식 국가 한국’, 4월호 ‘아사히신문이라는 병’, 7월호 ‘이런 야당은 방해일 뿐’ 등의 제목에서 보듯, 아베 총리를 반대하는 세력과 아베 비판의 선봉인 아사히신문을 두들기고, 반한(反韓)·반중(反中) 감정을 부추기는 꼴보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셋째, ‘자폭’의 보턴을 누른 10월호에 노이즈 마케팅까지 끌어들였다. 신초샤 내부에서 편집장의 재량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편집 방침을 용인했는지, 체크 기능은 살아있었는지는 향후 신초샤가 검증해서 세상에 밝혀야 할 부분이다. 다양한 비판 속 ‘처음부터 끝까지 총리 안건’ 주장 눈길 지식인들의 ‘신초 45’ 비판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칼럼니스트 오다지마 다카시가 닛케이 비즈니스 온라인에 기고한 ‘신초 45는 왜 불타는 길을 폭주했는가’라는 글이다. 그는 스기타 의원의 기고가 이렇게 활활 타오른 것은 “총리 안건이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길지만 그의 글을 인용해 보자. “아베 총리가 총애하는 여성 의원인 스기타는 여러 곳에서 총리의 내심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온 의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글을 읽은 독자들은 행간에 숨어 있는 총리의 얼굴에 섬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아베 총리가 그런 것(성적 소수자 혐오)을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라고 직감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과잉반응한 것이다. (중략) 자민당의 반응은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둔중했다.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이 ‘이 정도 발언으로 엄살은…’이라며 옹호한 것은 ‘총리 안건’이었다고 생각하면 앞뒤가 맞는다. (중략)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총리 안건이다. 반발하는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는 이유는 단순히 차별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게재 책임이나 출판인의 양심과 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이런 찜찜한 ‘생산성 차별 스토리’의 배후에 일관해서 총리의 의향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초 45 사태’라는 선을 잇는 점의 하나가 아베 총리라는 추론은 대단히 과격하지만 흥미롭다. 이번 사태가 일본 사회에 미칠 영향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소수자·약자에 대한 주류 사회 특히 현 집권세력의 오만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깊다. 아쉬운 것은 사태를 여기까지 끌어온 주인공 스기타 미오 의원이 침묵하고 있는 점이다. 그야말로 정치인 실격이 아닐 수 없다.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열린세상] 교토 우지, 윤동주 시비를 찾아서/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열린세상] 교토 우지, 윤동주 시비를 찾아서/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일본 교토부 우지시(宇治市)는 우지차와 겐지 이야기(源氏物語)로 유명한 곳이다.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우지 강변에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뵤도인(平等院)이 있다. 오사카 출장차 이곳을 들른 것은 태양이 작열하던 지난여름이었다. 역에 내리자 곤타니 노부코(紺谷延子) 부부가 밀집모자를 건네며 반갑게 맞이했다. 곤타니는 시인 윤동주 기념비건립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주부다. 우리 외교부의 도움으로 센다이에 김기림 기념비 건립이 결정돼 공부가 필요했다. 일본 기자의 소개로 곤타니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시비 건립의 긴 경위를 두어 줄에 요약한 회신 메일이 금방 왔다. 역경을 이겨 내고 시민의 손으로 건립한 자부심이 묻어났다.이곳에 시민의 손으로 윤동주 기념비를 세운다는 계획이 만들어진 것은 2005년이었다. 2002년에 발족한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교토의 모임’을 중심으로 기념비건립위원회가 설립되면서다. 기념비의 이름은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 평화학자 안자이 이쿠로(安齋育?)의 글씨로 새겼다. 그 안에도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을 통해 화해에 이르고자 하는 시비 건립운동의 정신이 담겼다. 기본적 인권을 부정당한 청년 윤동주를 기억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평화요, 화해에 이르는 출발점이었다. 곤타니는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에 참가해 그가 체포되기 두 달 전에 도시샤(同志社)대학의 동기생들과 우지 강변에 소풍을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후로 그때 찍은 사진의 배경을 찾아 그의 마지막 행적을 기리는 것이 곤타니의 숙제가 됐다. 치안유지법에 희생된 윤동주를 기리는 것이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본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길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우지 강변에는 야마센(山宣)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야마모토 센지(山本宣治)의 묘가 있다. 역시 치안유지법에 반대하다가 우익에 희생당했다. 우지에는 우토로 마을도 있다. 인권침해에 민감하게 반응해 저항하는 정신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윤동주의 생애 마지막 소풍지였다는 사실이 우지 시민을 움직였다. 역에서 택시로 5분 정도 달려 시비가 있는 우지 강변 신핫코다리(新白虹橋)에 도착했다. 지역 신문 기자들도 도착했다. 마침 일본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패전으로 이어지는 기간이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 미흡한 한계가 있으나 전쟁에 대한 반성이 이 시기 일본 신문들의 주조를 이룬다. 지방 신문의 취재에 ‘올해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일본이 적극 합류하는 것이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과오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시비 건립운동은 건립위원회 발족 후 2년 만에 시비가 제작될 때까지 순조로웠다. 교토의 조각가 다무라 다카시(田村隆)의 작품이다. 한국에서 날라 온 석판과 일본에서 채취한 석판을 나란히 세우고, 두 석판을 윤동주를 표상한 원기둥이 잇고 있다. 두 석판에는 각각 우리말과 일본어로 ‘새로운 길’을 새겨 넣었다. 윤동주의 대표시 ‘서시’의 일본어 번역이 일으킨 논란을 피한 것이나, 그 선택은 탁월했다. 그가 걷고자 했던 새로운 길에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상처가 더 선명히 드러난다. 기념비가 제작된 뒤 때마침 불기 시작한 혐한류의 광풍이 우지시에도 미쳐 어려움을 겪었다. 건립 부지를 제공할 교토부 당국은 윤동주와 우지시의 연고를 증명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이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념비 제작을 위한 모임은 건립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운동 조직으로 바뀌었다. 교토부 지방검찰청에서 윤동주와 그의 사촌 송몽규의 판결문을 새로 발견한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모금 활동을 통해 형성된 네트워크를 모태로 건립위원회는 연구와 서명 활동을 전개했다. 과거를 지우려는 일본 우익의 준동 속에서 숨을 죽이는 일본인들이 있는 반면, 우지 시민처럼 과오의 기억을 새롭게 새기며 인권과 평화의 의지를 단련시키는 일본인도 있다. 기념비건립위 발족부터 12년, 2017년 10월 시비는 건립됐다. 체포되기 직전 25세의 청년 윤동주가 우지 강변을 배경 삼아 수줍게 웃는 사진을 보니 시비에 새긴 윤동주의 글귀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 [씨줄날줄] 혐한 시위와 한류 부활/이종락 논설위원

    [씨줄날줄] 혐한 시위와 한류 부활/이종락 논설위원

    일본 도쿄도가 ‘헤이트 스피치’(차별 등을 유도하는 혐오 발언)를 억제하기 위한 조례안을 오는 19일 도의회에 제출한다. 일본 내 헤이트스피치 규제는 2016년 7월 오사카시와 올해 3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 이어 도쿄가 세 번째다.도쿄도의 조례안에는 혐한 시위 등 헤이트 스피치 관련 집회는 도립공원 등 공공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헤이트 스피치 행위나 이런 주장을 담은 시위를 한 단체나 개인의 실명을 공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헤이트 스피치 발언이나 행동, 시위 등의 내용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게재된 경우 이들에게 이를 삭제하도록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 정부는 2016년 6월 헤이트 스피치 억제법을 제정했지만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게 한계로 지적됐다. 이에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만들어 금지 조항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를 ‘혐한 시위’로 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혐한 시위는 2007년 일본 온라인에서 ‘재특회’(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가 결성되면서 비롯됐다. 행동하는 보수를 표방하는 재특회 회원들은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의 사죄 요구, 일본 폄하 발언 등이 이어지면서 인터넷을 넘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혐한 발언 및 인종차별이 담긴 헤이트 스피치를 외쳐 댔다. 재특회의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자 2013년 이들을 봉쇄하는 시민단체 ‘카운터스’가 나타났다. 다큐멘터리 ‘카운터스’가 광복절인 지난달 15일 한국에서 개봉되기도 했다. 혐한 시위를 하는 우익도 있지만, 한국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 혐한 등으로 한동안 꺼졌던 한류의 불씨가 최근 트와이스, 방탄소년단(BTS) 등이 일본 진출에 성공하며 다시 살아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발매된 방탄소년단의 정규 3집 리패키지 앨범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는 한국어 앨범임에도 2주 만에 일본 오리콘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트와이스 역시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데뷔한 이후 내놓은 싱글음반 3장이 모두 오리콘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아사히신문 계열사인 ABCTV(오사카 등 간사이 지역 지상파 방송)는 다음달 10일부터 케이팝을 주제로 한 드라마 ‘케이보이스’(KBOYS)를 방송한다. 배우, 제작진 모두 일본인이다. 세계적으로 인접 국가 간에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웃 국가로서 공유하는 역사가 많은 만큼 그 역사가 남긴 응어리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한 양국 관계를 해치는 극우 인사들을 응징해야 하지만 일본 내 양심세력과는 협력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 [생생리포트]日오사카 시장 “학생 성적 안오르면 교사들 월급 삭감”…커지는 반발

    [생생리포트]日오사카 시장 “학생 성적 안오르면 교사들 월급 삭감”…커지는 반발

    극우세력 출신 젊은 시장의 오만인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충정인가. 일본의 두번째 대도시인 오사카시가 내년부터 학생들의 학업 능력을 교원 인사평가 및 급여에 반영하겠는 시정방침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7일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오사카시의 전·현직 교원들로 구성된 시민단체 등 대표 20여명은 최근 요시무라 히로후미(43) 오사카시장에 대한 항의 성명서를 시교육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학교를 학력테스트 결과의 향상만을 좇는 왜곡된 교육현장으로 만들 경우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들”이라며 오사카시의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시민단체 ‘어린이들에게 건네지 말라! 위험한 교과서’의 오사카지회 소속 이가 마사히로는 “(오사카시장의 계획대로 되면) 시험점수 향상이 학교교육의 중심이 돼 버린다”며 “시험 결과만으로 우리 자녀들이 평가될 우려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단은 지난 7월 31일 발표된 ‘전국 학력·학습 상황조사’(전국학력테스트) 결과. 초등학교 6학년생과 중학교 3년생을 대상으로 문부과학성이 매년 실시하는 이 조사에서 오사카시는 2년 연속 20개 정령지정도시(政令指定都市·인구 50만명 이상 도시 중 정부가 지정한 대도시) 중 최하위인 20위를 했다. 그러자 보수우익을 자처하며 튀는 행동을 자주 하는 것으로 유명한 요시무라 시장이 정부 발표 이틀 만인 8월 2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전국 학력테스트에 대한 목표를 정하고, 달성 여부를 초·중학교 교장과 교사의 인사평가와 급여에 반영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오사카시가 최하위라는 사실에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 “교원의 의식이 바뀌면 결과가 좋게 나올 것이기 때문에 시장의 예산권을 최대한 활용해 의식개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선 내년에 20위에서 15위로 올라간다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과 시교육위원회가 함께 참여하는 ‘종합교육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교원 평가체계를 논의, 연내에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계를 비롯한 곳곳에서 반발이 터져나왔다. 하야시 요시마사 문부과학상까지 다음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학력테스트는 전국적으로 학력을 분석해 교육정책의 성과와 과제를 검증하고 개선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라며 요시무라 시장의 발표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오사카는 앞서 2015년에도 중3 학생들의 학력테스트 결과를 고입 내신평가에 반영시켰다가 문부과학성이 “원래 조사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며 제동을 걸어 1년 만에 중단한 바 있다. 교육계는 물론이고 중앙정부의 교육수장까지 나서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요시무라 시장은 계획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오기 나오키 교육평론가는 “학력테스트 결과를 교원 인사평가 등에 반영하면 학교는 점수를 올리기 위한 지도에만 집중하면서 교육이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오사카시에서 교사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가 줄어들 것이며 그 결과로 교원의 질적 저하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라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오사카시내 한 중학교 교장은 “가정의 경제적 격차와 생활환경 차이 등이 학력테스트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며 “교원에 대한 강압적 시책보다는 주민들의 소득격차를 메우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수정당인 일본유신의회 소속의 요시무라 시장은 중의원 의원을 거쳐 2015년부터 오사카시장을 맡고 있다. ‘전쟁가능국� ?括� 개헌과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에 적극적으로 찬성 의사를 밝혀온 극우인사다. 최근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장에게 “샌프란시스코 공원 내에 설치된 위안부 기림비를 계속 유지할 경우 자매결연을 파기하겠다”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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