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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는 취업 사기” 류석춘, 日우익 매체에 재차 주장

    “위안부는 취업 사기” 류석춘, 日우익 매체에 재차 주장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일본 우익 성향 잡지에 “위안부는 취업 사기를 당한 것이다”고 재차 주장해 29일 논란이다. 류 교수는 최근 일본의 월간 ‘하나다’에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에 대한 한국 사회의 통념이 잘못됐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반일종족주의’의 저자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며 위안부 숫자는 부풀려진 것이고, 위안부가 곧 성노예라는 통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류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는 우리 안의 위선과 모순을 덮어주는 일종의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본군 위안부제 역시 공창제도의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의 매춘업자에게 취업 사기를 당한 것”이라거나 “강제로 연행당한 결과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역사학계와 위안부 피해자의 강제 동원 주장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이어 류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말했다가, 학생들로부터 괘씸죄에 걸렸다”고 적기도 했다. 류 교수는 자신이 대학 강의에서 “토지조사사업이 한국 사람들 소유 농지의 40%를 일본 사람이나 일본 국가에 약탈당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한국의 역사 교과서가 잘못된 것임을 설명했다. 토지조사사업은 기존의 소유권을 근대적인 방법으로 재확인하여 세금을 정확히 징수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을 뿐”이라며 “한국 쌀을 일본이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갔을 뿐이라는 설명도 했다”고 했다. 산케이신문 “한국은 역사 왜곡을 그만두라” 이날 일본 우익 신문도 강제 징용 문제를 부정했다. 일본 극우 매체인 산케이신문은 이날 일본 군함도의 강제 징용 피해 역사를 제대로 알리라는 한국 정부의 문제 제기가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산케이신문은 ‘한국은 역사 왜곡을 그만두라’는 사설을 통해 “국민징용령에 근거해 1944년 9월 이후 일을 한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측이 말하는 것과 같은 강제 노동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ILO)는 1999년 3월 펴낸 전문가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일제 강점기 징용이 불법 강제 노동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한 2015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정부 대표도 강제 노역을 인정한 바 있다. 앞서 연세대는 류석춘 교수의 강의 중 발언과 관련해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으나, 서울중앙지법은 류 교수가 징계 취소를 요구하며 연세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징계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日언론 “한국의 군함도 시비는 악의적인 정치공작”...도넘은 적반하장

    日언론 “한국의 군함도 시비는 악의적인 정치공작”...도넘은 적반하장

    일본 정부의 약속 파기에 따라 한국 정부가 메이지 시대 산업 유산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취소를 추진 중인 가운데 일본 우익언론이 “악의적인 정치공작”으로 매도하며 “(한국에 대한) 지나친 배려는 (일본의) 국익을 해치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산케이신문은 28일자 ‘군함도: 한국은 역사왜곡을 멈춰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한국 정부는 ‘군함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나가사키시 하시마 탄광의 전시 등에 대해 한반도 출신 근로자들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를 들어 문제시하고 있다”며 “인도주의에 반하는 강제노동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을 반영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썼다. 일본 정부는 2015년 조선인 강제노역 시설 7곳을 포함한 23개 장소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한 것과 관련해 이를 소개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도쿄도 신주쿠구)를 지어 지난 15일부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당초 약속했던 것과 달리 군함도 등에서 있었던 착취와 억압 등 실상은 숨긴채 강제노역이 없었다는 일부 증언을 전시하는 등 외려 역사를 왜곡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포함한 대응을 요구하는 서신을 유네스코에 보냈다. 산케이는 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물과 관련해 “당시 탄광노동이 어디에서나 그랬듯이 가혹한 조건하에 이뤄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리고 있으며, 노동자 가운데는 일본인 외에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는 것도 명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네스코에 대해 한국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주장을 강요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이미지 실추를 노린 한국의 자세는 악의적인 정치공작”이라고 했다. 산케이는 “일본 정부에도 문제는 있었다. 그것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될 때 한국 측에 양보해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만든다고 약속한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이어 “지나친 배려는 국익을 해치는 것”이라는 말로 주장을 마무리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궤변 늘어놓는 日우익신문 “한국, 역사왜곡 멈춰…징용은 합법”

    궤변 늘어놓는 日우익신문 “한국, 역사왜곡 멈춰…징용은 합법”

    산케이 “임금 줬다…한국, 악의적 역사왜곡”ILO “일제 강점기 징용은 불법 노동” 확인산케이, ILO 판단과 정반대 주장 “정치공작”우익 성향의 일본 신문 산케이가 일제 강점기 조선인 징용 현장인 하시마(일명 ‘군함도’) 등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라는 한국의 문제 제기에 대해 “역사 왜곡”이라며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산케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이미 일본의 조선인 징용에 대해 불법 노동이라고 밝혔음에도 한국이 일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거짓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정치공작을 하고 있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산케이 신문은 28일 군함도 등 세계문화유산 등재 현장에서 벌어진 조선인 징용 피해를 일본 측이 왜곡한 것에 맞서 한국 정부가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포함한 대응을 요구하는 서신을 유네스코에 보낸 것과 관련해 ‘한국은 역사 왜곡을 그만두라’는 제목으로 사설 형식의 논설을 실었다. 산케이 “가혹한 탄광 노동 조건 언급,‘한반도 출신 있었다’ 명시해 문제 없다” 산케이는 징용이 강제노동은 아니며 임금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산케이는 한국 측의 비판은 잘못됐다면서 “국민징용령에 근거해 1944년 9월 이후 일을 한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측이 말하는 것과 같은 강제노동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임금 지급을 동반한 합법적인 근로 동원에 지나지 않으며 내지인(일본인을 의미)과 마찬가지로 일한 것”이라고 강변했다.이어 “세계문화유산 등록은 바쿠후(무사 정권 시절의 통치기구)나 한(에도시대의 통치기구)이 시행착오를 하면서 조선 등 산업화를 시작한 1850년대부터 산업화가 일단락한 1910년까지의 기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앞선 대전(태평양 전쟁)의 종전이 임박했을 때의 탄광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썼다. 군함도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에 관해서는 “당시 탄광 노동이 어디서든지 그러했듯이 가혹한 노동 조건에 있었다는 것은 정확하게 전시하고 있다”면서 “노동자는 내지인과 함께 한반도 출신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명시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강조했다. 산케이는 “문화재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유네스코에 대해 한국이 사실을 왜곡한 주장을 강요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다”면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이미지 실추를 노린 한국의 자세는 악의가 있는 정치 공작”이라고 해석했다. 신문은 군함도 등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쟁점이 됐을 때 한국 정부가 유네스코에 배포한 책자에 홋카이도에서 일한 일본인 노동자 사진이 한반도 출신 징용 피해자로 잘못 소개된 일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한국 정부의 대응을 비난했다. 역사 문제에서 식민지 지배와 전쟁에 대한 사죄·반성과는 거리를 두고 우익 세력과 닮은 꼴 주장을 펼쳐 온 산케이의 이날 논설은 국제기구의 판단과는 동떨어진 것이며 일본 정부가 스스로 밝힌 것과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ILO “일본이 한국에 준 ‘국가간 지불’,피해자 상처 치유하기에 충분치 않다” 예를 들어 국제노동기구(ILO)는 일제 강점기 징용이 사실상 불법 노동이라는 견해를 이미 오래전에 밝혔다. ILO가 1999년 3월 펴낸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일본이 2차 대전 중 한국과 중국의 노동자를 대거 동원해 자국 산업시설에서 일을 시킨 것이 ‘협약 위반’(violation of the Convention)이라고 적시했다. 이는 일제 강점기 징용이 강제 노동을 규제하는 ILO의 29호 협약에 어긋난다는 판단인 셈이다. 당시 ILO는 동원된 피해자 개인의 배상을 위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일본이 한국에 지급한 자금 등 이른바 ‘국가 간 지불’이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군함도 등 조선인 징용 현장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한 2015년 7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정부 대표도 강제 노역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사토 구니 당시 주 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돼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로 노역했으며(forced to work),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9살에 간 군함도 생존자 “몽둥이로 맞는강제 징용자 비명 잊을 수 없어” 증언 2017년 10월 70여년 전인 1939년 9살의 나이로 일본 나가사키현 군함도에 가 지옥 같던 6년의 시간을 보낸 군함자 생존자 구연철(87·부산)씨는 끔찍했던 그때를 회상하며 “몽둥이를 맞으며 고통스러워하던 강제 징용자 비명을 잊을 수가 없다”며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알리기 위해 계속 증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씨의 아버지는 조선에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 군함도에 ‘모집 광부’로 지원해 가족과 함께 살기로 했다. 구씨는 부산에서 관부 연락선을 탄 뒤 사흘여 만에 군함도 관리사무실에서 아버지와 재회했지만 충격적인 모습에 눈물을 쏟았다고 전했다. 양복과 넥타이를 맸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일본의 전통 남성 속옷인 훈도시만 입고 온몸에 석탄 가루를 뒤집어쓴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20대 전후의 조선인 청년들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다. 관리사무소와 식당 주변에서 이들이 수시로 몽둥이 등에 맞는 장면을 목격하고 거친 비명을 거의 매일 들으며 학교와 집을 오갔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인 콩깻묵 찐 것을 밥 대신 먹었다. 구씨는 “배가 고파도 먹을 게 없어 찐 콩깻묵을 먹어야 했고 어김없이 설사가 계속됐다”고 말했다. 사는 곳은 더 비참했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일본인들이 사는 번듯한 주거시설의 지하에 살았다. 구씨는 “주거공간에는 통풍이 안 돼 습기가 가득했다”고 증언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70년간 외면한 한국군 위안부 300여명…“아픈 과거사 직면할 때”

    70년간 외면한 한국군 위안부 300여명…“아픈 과거사 직면할 때”

    일본군 위안부는 한국군 위안부라는 또 다른 아픈 과거사로 이어졌다. 일본군 장교 출신의 한국군 장교들은 동족과 싸워야 하는 군인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고스란히 심었다. 일본 우익에서는 한국군 위안부를 두고 피장파장의 오류로 왜곡시키기도 한다. 1996년부터 한국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 교수는 이를 반박한다. 그는 “우리 정부가 한구군 위안부라는 아픈 과거사에 대해 진상조사하고 사과할 때”라며 “자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도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1951년 5, 6월부터 전선이 지금의 휴전선 부근으로 교착되며 지난한 장기전이 시작됐다. 이에 한국군은 전선에서 조금 남쪽으로 떨어진 지역에 공식적으로 ‘특수 위안대’를 만들었다. 군의 공식 문서에 확인된 곳만 서울, 강원 강릉, 춘천, 원주, 속초에 이른다. 때로는 최전선에서 교대휴식하는 병사들에게 여성들을 출동시켰고, 섬에 있는 부대에는 따로 위안부를 배치했다. 당시 서울은 행정 복구가 덜 된 데다가 일제시대부터 있던 군부대 시설에 떨어져 있었기에, 서울에서 군 위안부는 민간인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그러나 군이 마을을 빼앗아 주둔하던 속초는 달랐다. 속초 주민들과 주둔하던 미군 폴 팬처는 “시청 인근에 있던 군 위안부 앞에 육군이 줄지어 서 있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 이들은 부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낮에는 밥과 빨래 등 일을 노예처럼 하고, 밤에는 성착취를 당했다”고 증언한다. 위안부는 일반 병사들이 ‘총알받이’를 한다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제5 보급품’이었다. 고위 장교들은 북에서 데려온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포로를 ‘첩’으로 삼았는데, 병사들이 이를 좋게 볼리도 없었다. 납치된 이북 여성이나 북한군이 점령할 당시 부역했다는 죄목으로 여성들이 위안부로 동원됐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장교들은 일반 병사에게 너희들도 북에서 여성들을 데려와 같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했다”고 해석한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시 우리 육군은 사기 진작을 위해 60여명을 1개 중대로 하는 위안부대 3, 4개를 운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예비부대로 빠지기만 하면 사단 요청에 의해 모든 부대는 위안부대를 이용할 수 있었다. 5연대도 예비대로 빠지기도 전부터 장병들의 화제는 모두 위안부대 건이었다.……우리 연대는 위안부대는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워 공을 세운 순서대로 티켓을 나눠줬고, 훈장을 받았다면 우선권을 줬다.” 한국군 위안부에 대한 육군과 장교들의 기록 한국군 위안부의 규모는 군 공식 기록을 통해 추산할 수 있다. 1956년 육군본부가 후방 지원 업무를 발전시키기 위해 ‘후방전사(인사편)’를 펴내면서 특수 위안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서울 1개 소대와 강릉 3개 소대(총 79명)라는 기록과 서울 3개 소대와 강릉 1개 소대(총 89명)를 적은 표를 종합하면, 서울 3개 소대와 강릉 3개 소대에 약 128명의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 김 교수는 “여기에 춘천, 원주, 속초 등의 위안부와 1953년 서울에 추가로 설치된 4개 소대를 합하면, 전국 위안부는 약 300명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또한 ‘후방전사’의 ‘특수위안대 실적 통계표’에 따르면 서울과 강릉의 4대 소대에서 위안부 89명이 1952년 한 해에만 20만명이 넘는 군인을 ‘위안’했다. 단순 계산하면 위안부 한 명이 하루 평균 6명 이상의 군인에게 성착취를 당한 것이다. 소대별로 들여다보면 서울 제2소대(중구 초동 105번지)가 그해 8월 1명의 위안부가 상대한 군인수가 한달 평균 269.6명(하루 8.7명)으로 가장 많았다. 1952년 4월과 8월 강릉 제1소대(강릉 성덕면 노암리)에서도 30명의 위안부가 1명당 한달 평균 266.7명(하루 8.6명)을 ‘위안’했다. 1954년 3월에야 특수 위안대는 없어졌다. 김 교수는 “이들은 직업 여성이 아니라 대부분 납치된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목격자들이 “치장하지 않은 매우 어린 여성으로 보였다”고 증언하고, 한 북파 공작원은 김 교수에게 “자기가 살던 마을에서 여성을 납치해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고 리영희 교수도 1988년 첫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 ‘역정’에서 “낙산사 주변 방공호에서 사병들의 동물적 욕구를 해소케 하는 은전을 베풀었는데, 병사 한명이 자기 고향에서 흘러온 아가씨를 만나 눈물에 젖었다”고 적었다. 복수의 증언자의 소개로 김 교수는 한국군 위안부로 추정되는 여성들을 찾았다. 이들은 “나는 자식들을 키웠을 뿐”이라며 낯선 연구자에게 울음만 토해냈다. 다만 당시 의대생이던 정씨는 국군에게 부역자로 몰려 위안부가 될 뻔했다고 말했다. 피난을 가지 못한 학생들과 인민군을 치료했다는 이유에서다. 정씨는 “○○여대다. ○○여중생이다 하면 모두 빨갱이로 몰려 총살을 당했다. 국군들은 우리를 인민군에게 버림받은 찌꺼기로 여겼다. 친구 3명과 나는 부대 장교 4명에게 배정됐지만 한 군인(남편)의 부탁으로 빠져나왔다. (헤어진 친구 3명에 대해서는) 상상에 맡긴다. 못 다한 얘기는 가슴에 묻은 채 관에 들어가려고 한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원류가 조선시대 기생제?” 한국군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특별 위안대의 설치·운영 책임자는 육군본부 후생감(휼병감)이다. 위안대가 만들어진 1951년 무렵 부임한 장석윤 후생감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10여년을 일본군, 만주국군에서 복무했다.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된 그의 뒤를 이은 김병길 후병감도 태평양 전쟁 당시 학도병 출신이었다. 김희오 장군은 회고록 ‘인간의 향기’에서 “우리 중대에도 주간 8시간 제한으로 6명의 위안부가 배정됐다. 이는 과거 일본군대 종군 경험이 있는 일부 연대 간부들이 부하 사기 앙양을 위한 발상을 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의 원류는 조선시대 기생제”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정면 반박한다. 조선시대에는 군 위안부가 없었고 일제시기부터 생겨났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조선시대 전통적 기생은 예인에 가까웠다. 그러나 일본이 강화도 조약을 맺고 제물포(인천) 등지를 조차하면서 예인이 지워진 기생이 등장하고 러일전쟁 때 확산됐다. 김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가 없었다면 한국군 위안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역사 왜곡도 경계한다.장군들의 회고록에는 위안부에 대한 반성이나 문제의식을 찾기 쉽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공론화가 한국군 위안부의 ‘불편함’을 일깨웠다. 김 교수는 “상급 장교들은 ‘자신을 왜 일본군 취급을 하느냐’며 위안부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북한 여성을 납치한 군인은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는 일본인과 달리 정이 통한다’고 변명했다. 또 다른 군인은 ‘위안소를 이용하면 빨리 죽는다는 소문이 돌아 나는 이야기만 나눴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고 리영희 교수는 “사실 내가 강릉 부대에 있을 때 위안부를 만났다. 그때는 내가 인권 의식이 부족해서 전쟁 체험담으로 기록을 했는데, 부끄럽다”고만 할 뿐 말을 아꼈다. 군 당국은 한국군 위안부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김 교수가 2002년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외압도 이어졌다. 당시 재직하던 학교를 통해 청와대와 국방부는 ‘조용히 연구하라’고 전했다. 지금도 군은 한국군 위안부에 대해 함구하며 외면하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서울신문에 “한국군 위안부 관련 진상조사는 한 적이 없다”면서도 “후방전사 인사편에는 특수 위안대 관련 일부 내용이 기술돼 있으나 지금까지 기술된 내용 외에 구체적인 사료나 자료가 없어 추가적인 사실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또한 “관련 희생자 위령사업 등에 대해 현재 별도의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일본군 경력이 있는 일부 한국군 간부들이 위안부를 설치·운영했다’는 “학계의 주장에 대해서는 육군에서 언급할 사항이 아니”라고 밝혔다. “아픈 과거사 진상조사해야…일본에도 더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김 교수는 공개되지 않은 군 자료 가운데 진상의 실마리가 숨어 있을 것으로 본다. ‘후방전사’에 따르면 육군본부는 일본군 위안부처럼 한국군 위안부가 일주일 2회 군의관에게 성병 등을 검진받도록 했다. 기초 신상과 정확한 규모를 추정하는 단서가 기록됐을 것으로 본다. 발굴 작업은 김 교수의 은퇴 이후 연구 목표이기도 하다.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여러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했지만 군 위안부는 다뤄지지 못했다. 전쟁 중 만연했던 성범죄도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국민보도연맹 사건, 여순 사건 등 직권조사한 사건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피해자나 유가족이 신청한 사건을 조사했기 때문이다.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이 만들어지기 전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김 교수는 성폭력 사건과 한국군 위안부를 다루자고 제안했지만,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김 교수는 지난 5월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연말쯤 꾸려질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 교수는 “내년부터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아베 위기탈출 안간힘…부총리 등 정권 핵심들과 이례적 회동

    아베 위기탈출 안간힘…부총리 등 정권 핵심들과 이례적 회동

    2012년 12월 재집권 성공 이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 아베 신조(66) 일본 총리가 위기 반전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권 핵심 인사들과 머리를 맞대는 한편 사실상 물 건너간 ‘임기 중 개헌’에 강한 의지를 밝히며 지지세력 결집을 꾀하고 있다. 21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 19일 밤 아소 다로(80) 부총리 겸 재무상, 스가 요시히데(72) 관방장관, 아마리 아키라(71) 자민당 세제조사회장과 총리관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정권을 구성하는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이 4명의 회동은 3년 만으로, 2017년 7월 자민당이 고이케 유리코 현 도쿄도지사 진영에 역사적 참패를 당했던 도쿄도의회 선거 이후 처음이다. ‘아베 1강’의 독주 속에 필요성을 상실했던 이 만남이 다시 이뤄진 것은 코로나19 부실 대응에 바닥으로 떨어진 민심과 당내 인사들의 이반 움직임, 향후 정권 핵심부에 칼날이 겨눠질 수도 있는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무상 부부 검찰 체포 등 아베 총리가 현재의 위기를 얼마나 심각하게 느끼는지 보여 준다. 이번 만남에는 정권의 안살림을 도맡으며 장기집권에 기여해 온 스가 관방장관과의 관계 악화 의혹을 불식시킨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20일에는 한 인터넷TV 방송에 나와 내년 9월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의지도 재차 확인했다. 개헌추진 동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나온 이 발언에는 보수우익 지지세력 결집을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 들어 있다. 사방이 꽉 막힌 현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로 전가의 보도인 ‘중의원 해산→총선거 실시’ 카드가 거론된다. 그러나 정부 여당의 인기가 바닥인 현 상태에서 선거를 치렀다가는 오히려 의석을 까먹을 가능성이 커 당장 써먹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전화도 안 걸었다”…日여론조사의 실체

    “전화도 안 걸었다”…日여론조사의 실체

    여론조사 17%가 부정 응답으로 채워져“설문 조사를 할 인력 확보가 어려웠다”산케이 “깊이 사과…매우 심각한 사태” 일본 산케이신문의 여론조사 결과가 1년가량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산케이신문은 일본 주요 신문 가운데 아베 신조 정권에 비교적 호의적인 논조를 보였으며,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익 성향을 드러내 왔다. 산케이신문은 후지뉴스네트워크(FNN)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가 조사를 담당한 협력업체 직원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19일 밝혔다. 산케이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지난 5월까지 실시된 14차례의 전화 여론조사에서 다수의 가공 응답이 입력된 것으로 드러났다. 여론조사는 매번 18세 이상 남녀 약 1000명을 상대로 실시됐으며, 이 중 절반 정도를 담당한 업체의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사원이 전화를 걸지도 않고서 응답을 받은 것처럼 반복적으로 결과를 입력했다는 것이다. 이 업체가 매번 담당한 약 500건의 조사 사례 중 백 수십건의 가공 응답이 입력됐다. 이로 인해 전체 여론조사 내용의 약 17%가 부정한 응답으로 채워진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를 일으킨 사원은 허위 답변을 입력한 것과 관련해 “설문 조사를 할 인력 확보가 어려웠다”는 등의 설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산케이신문은 “이번에 부정이 밝혀진 합계 14차례의 여론조사 결과를 전한 기사를 모두 취소한다. 보도기관의 중요한 역할인 여론조사 보도에서 독자 여러분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한 것을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어 “여론조사 결과는 정당이나 정권의 지지율, 중요한 시책에 관한 찬반 비율 등 사회의 중요한 지표이며, 독자 여러분의 여러 판단이나 행동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서 “그 내용에 부정한 데이터가 포함돼 있었다는 것을 매우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케이와 FNN은 이번 사건을 검증하고 정확한 여론조사 방법을 확인해 도입할 때까지 당분간 여론조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시론] 우리가 역사부정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시론] 우리가 역사부정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독일 국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정부를 상대로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국민이 자기 나라 전쟁에 협조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식민시기 조선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국민으로서 자국이 일으킨 전쟁을 도운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가지고 친일이라 하는 것은 몰상식하다.” 일본 우익의 발언일까. 이는 2003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강제동원·친일 진상규명 특별법 공청회에 반대 측으로 출석한 작가 김완섭의 진술이었다. 그는 당시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으로 화제를 일으킨 주인공이었고 ‘신친일파’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반일종족주의’가 화제를 일으켰다. 대표 집필자인 이영훈 교수는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편향된 역사인식을 표출하고 있다. 2003년의 김완섭과 지난해 반일종족주의 집필자들이 가진 대일 역사 인식의 공통점은 식민 지배에 관한 것이다. ‘한일강제병합의 강제성 부정’, 즉 일제의 식민 지배를 합법적 과정의 산물로 인정하고 강제성을 부정하려는 인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강제동원 피해의 역사 자체와 강제성을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들의 주장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일본 국적을 가졌으니 법적으로 평등한 관계라는 주장이다. ‘제국 신민’, ‘내선 일체’라는 언설은 있었으나 법 체계도 제도도 달랐다. 한일병합조약은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다는 것만 명기했을 뿐 주민의 국적에 관한 규정은 없었다. 물론 내부 방침은 있었다. 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얻지만 국내적으로는 차별 취급이 가능하며 외국에 대해서만 일본인”인 이중적인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방침이었다. 의무에서는 일본인이지만 권리에서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인은 당연히 지역에 따라 구별되는 존재였고, 법적 지위와 권리 규정은 없었다. 그러므로 동등한 권리를 누렸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둘째, 일제 말기 동원의 합법성 주장이다. 일본은 스스로 정한 법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일본이 제정한 법에서 규정한 연령 제한은 법조문에 불과했다. 실제로는 법에서 명시한 연령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을 노무자로 동원했다. 더구나 일본 국내법에서도 불법으로 금지한 ‘여성 약취(掠取)’를 어긴 대표적인 사례가 위안부 동원 아닌가. 설령 법이 있다 해도 각종 동원 관련 법령은 일본 스스로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1930년)에도 위반된다. 셋째, 강제성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역사부정론자들이 주장하는 강제성은 국제 사회의 인식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자는 강제성을 인신적 구속 상태로 본다면 후자는 ‘신체적 구속이나 협박은 물론 황민화 교육에 따른 정신적 구속, 회유, 설득, 본인의 임의 결정, 취업 사기, 법적 강제에 의한 동원’을 의미한다. 본인이 결정했다면 강제성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이 결정했으나 약속과 다른 상황이라면, 본인이 결정을 자유롭게 철회할 수 있어야 강제가 아니다. 그러나 국가총동원체제에서는 당연히 이것이 불가능했다. 보편적 구속과 강제성에 대한 인식은 일부 학자들만의 고담준론이 아니다. 2002년 일본변호사협회 조사보고서에도 실린 내용이다. 2007년 3월 일본 아베 총리는 ‘좁은 의미의 강제성’을 내세워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부정했다. ‘좁은 의미의 강제성’이란 ‘유괴범처럼 무단으로 사람을 끌고 가는 방식’의 강제연행이다. 아베 총리가 굳이 좁은 의미의 강제성을 내세운 것은 강제성을 희석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역사부정론자도 동일한 의도를 표출하고 있다. 2003년의 역사부정론자가 ‘작가’의 신분이었다면, 2019년의 역사부정론자들은 ‘학자’라는 외피를 쓰고 정치 행위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의 고언을 제 입맛대로 해석해 세를 키우려는 역사부정론자들이 등장하는 이때 한국 사회가 건강한 역사 인식을 갖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건강한 역사 인식은 피해자성을 공유하는 길이며 자유·인권·평화·평등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다. 여기서 피해자성이란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인식을 공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은 전쟁을 일으킨 권력이 아닌 민중의 시선으로 태평양전쟁을 바라보는 노력을 기울일 때 지킬 수 있다. 우리가 저들이 주장하는 역사부정을 넘어서야만 가능하다.
  • 한국 관계 나빠지자…日요미우리 “문재인 정권 때문” 비난

    한국 관계 나빠지자…日요미우리 “문재인 정권 때문” 비난

    발행부수에서 일본 최대인 요미우리신문이 한일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내세워 양국관계 악화의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 있다고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결노력 없이는 양국 관계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주장을 했다. 조간 기준 하루 790만부를 찍는 보수우익 성향의 요미우리는 노골적으로 아베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요미우리는 11일 ‘문재인 정권이 (한일) 상호불신을 심화시켰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일관계에 대한 양국 국민의 인식이 나빠진 것은 “한국이 집요하게 역사문제를 되풀이해 문제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요미우리는 최근 한일 공동 여론조사에서 현재의 양국관계에 대해 ‘나쁘다’라고 답한 비율이 일본 국민은 84%, 한국 국민은 91%로 역대 최고 수준이고 ‘상대방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응답률도 높게 나온 것을 인용하며, “여기에는 한국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이어 “한국 대법원의 ‘전 징용공’(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실현가능한 해결책을 아직 보여주지 않고 있다”며 “대법원 판결에 따라 차압당한 일본 기업의 자산이 현금화돼 직접적인 불이익이 생기면 이는 일본에 있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태”라고 일본 정부와 동일한 논리를 폈다. 요미우리는 “문재인 정권은 한일 관계에 미칠 타격의 심각성을 인식해 타개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모든 책임을 한국에 떠넘긴 뒤 “보상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한국 정부가 주체가 돼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외할머니와 약산 김원봉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외할머니와 약산 김원봉

    젖을 못 먹어 사흘 밤낮 울기만 하는 나를 설탕물 먹여 키운 외할머니는 스물두 살에 과부가 된 여자였다. 징용 간 외할아버지는 일본 홋카이도 비행장 건설현장에서 죽었다고도 하고, 어느 탄광에서 죽었다고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5년 일본에서 귀국하다가 배가 난파돼 죽었다고 답변했다. 일본이 일부러 배를 폭파시켰다는 얘기도 많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참 뒤에야 외할아버지에 대한 보상금 2000만원이 어머니와 이모의 통장으로 들어왔다.스물두 살짜리 과부 외할머니는 배를 곯으며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 성깔 있고 경위가 바른 여자, 남의 것은 조금도 탐내지 않고 스스로의 살과 뼈를 저며 어린 자식들을 먹인 여자. 6ㆍ25전쟁 때는 인민군이 여자의 마을을 지나갔다. 낙동강 전투에 열을 올리던 인민군은 후방작업으로 마을마다 신망 있는 사람, 출신성분 좋은 사람들을 마을 대표로 뽑았다. 남편이 일본에 끌려가 죽고 경위 바르게 홀로 살던 외할머니는 당연히 출신성분이 좋은 여자였다. 영순면 인민군여성동맹위원장을 하게 된 외할머니는 이후 인민군이 북으로 퇴각하고 마을에 국군이 들어왔을 때 총살당할 처지가 됐다. 동네 사람들의 탄원과 우익 쪽 친척의 애원으로 구사일생 살아난 외할머니는 온갖 눈치를 다 보며 어머니와 이모를 키웠다. 어머니가 우리집으로 시집을 오고 이모마저 시집을 가자 홀로 된 외할머니는 망설일 것 없이 짐을 싸서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나를 받아 키운 외할머니는 가끔 한숨을 쉬며 “너이 할배가 돈이나 한보따리 싸들고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어떤 밤에는 6ㆍ25 때 이야기를 하며 국군 때문에 엄마를 마루 밑에 숨긴 이야기, 여성동맹위원장이 됐을 때 마을 사람들의 응원, 국군의 총구가 입안에 들어왔을 때 살아남은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어디 가서 얘기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하며 당신의 지난날들을 내게 심어 주었다. 죽어서도 내 머리 위에 빙빙 돌며 지켜 주겠다던 외할머니는 지금도 내 머리 위를 돌고 있을까. 대학에 가서야 나는 외할머니가 인민군여성동맹위원장이었음을 무섭게 여기지 않게 됐다. 군대를 다녀와서 1991년 대학 4학년 때 낸 첫 시집에 “인민군여성동맹위원장을 지낸 외할머니가 1984년 8월에 돌아가시고 나는 정신이 허황했음”이라고 밝혔다. 연약했던 한 여자 우리 외할머니와 참으로 위대한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 선생을 비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우리 외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약산 김원봉 선생을 존경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여겨진다. 북한군에 부역했든 말든 외할머니는 나의 자랑스러운 외할머니이듯이 북한에서 고위층을 지냈든 말든 약산 김원봉 선생은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독립투사인 것이다. 외할머니가 내게 그러하듯 약산 김원봉 선생은 죽어서도 인민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며 서러운 인민을 호위하고 있을 것이다. 김원봉 선생은 8·15해방 후 12월에 귀국, 여운형 등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민공화국’이 결성되면서 중앙인민위원 및 군사부장을 맡았다. 1947년까지 일제강점기 형사 출신의 경찰에게 체포와 고문, 수모를 겪었다. 이후 계속되는 좌익 단체에 대한 탄압과 테러에 실망과 좌절이 반복된 후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됐고 9월에는 국가검열상에 올랐지만, 1958년 10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 부위원장직에서 해임됐다. 그 후 숙청됐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김원봉 선생은 남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지만 북쪽에서도 끝내 인정받지 못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가장 바른 길을 간 분인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와 김원봉 선생, 저승에서나마 행복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 日우익, 왜곡 역사교과서 승인 탈락하자 “내년에 재검정 추진”

    日우익, 왜곡 역사교과서 승인 탈락하자 “내년에 재검정 추진”

    일본의 극우단체가 거짓된 서술이 많다는 등 이유로 지난 3월 정부 심사에서 탈락했던 자기들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대해 재검정 시도에 나서기로 했다.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를 통한 과거사 왜곡 도발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겠다는 의도다. 8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극우단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은 2022년도 채택을 목표로 문부과학성(일본의 교육부)에 자신들이 제작한 교과서 검정을 다시 신청하기로 했다. 새역모의 교과서는 앞서 지난 3월 발표된 내년도분 교과서 검정에서 탈락한 바 있다. 새역모는 검정 재신청과 관련해 “우리 교과서가 문부과학성 검정을 받는 것 자체가 자학사관 극복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부과학성은 지난해 11월 새역모의 314쪽 분량 교과서 내용 중 405곳의 결함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새역모는 강하게 반박하며 수정하지 않았고, 결국 최종 탈락 처분을 받았다. 이들의 교과서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일본의 동남아 침략을 ‘남방진출’로 표현하는 등 철저히 극우사관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우경화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일본 정부조차 수용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왜곡과 허점이 많았던 셈이다. 이들은 “문부과학성의 검정 의견 중 70% 이상이 ‘오해할 우려가 있다’, ‘이해하기 어렵다’ 등 자의적인 것으로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적은 거의 없었다”며 “문부 과학성에 의한 부당한 검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이들은 문부과학성의 지적을 받은 405곳의 내용을 검토하되 자신들의 역사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수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어서 재검정을 통과할지는 불투명하다. 앞서 새역모의 역사 교과서는 2008년, 2010년, 2014년도에는 검정을 통과해 극히 일부이지만 일선 학교에서 사용돼 왔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코로나 틈타 지지 기반 더 다진 日 극우 정치인들

    코로나 틈타 지지 기반 더 다진 日 극우 정치인들

    자민당보다 우익단체 소속… 물의 잦아코로나19 사태는 여느 나라처럼 일본에서도 주요 정치인의 명암을 극명하게 갈랐다. 아베 신조 총리처럼 무능력·무책임 비난 속에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평판과 인지도 측면에서 수직으로 도약한 인물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요시무라 히로후미(왼쪽·45) 오사카부 지사와 고이케 유리코(오른쪽·68) 도쿄도 지사다. 두 사람은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일본 미디어들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잘한 정치인’ 1위와 2위 자리를 굳게 지켜 왔다.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와 같은 중앙 사령탑이 없는 일본은 현장 실무대응을 전국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지사들이 전담하는 체제다. 이를테면 ‘긴급사태’ 선언 주체는 아베 총리였지만, 실제 주민들의 외출·이동 자제나 상점 휴업 요청 등은 모두 해당 지역 지사들이 해야 했다. 그렇다 보니 지사들은 수시로 기자회견을 열어 지역 내 감염 상황이나 대응 방향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이 과정에서 요시무라 지사와 고이케 지사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 적극적인 대응으로 인지도를 확 높였다. 특히 아베 총리가 ‘아베노마스크’(가구당 천마스크 2장씩 배포) 등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두 사람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더 부각됐다. 그 결과 요시무라 지사는 지난 3월 말 30만명 정도이던 트위터 팔로어가 이달 초 100만명을 넘어섰다. 고이케 지사가 매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리는 코로나19 관련 영상도 이례적으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이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극우 성향의 정치적 이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오사카 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변호사 출신의 요시무라 지사는 일본유신회의 부대표를 겸하고 있다. 일본유신회는 집권 자민당보다 훨씬 더 과격하게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지향하는 정당이다. 그의 성향은 오사카 시장 때인 201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설치된 데 반발, 도시 자매결연을 단칼에 파기한 데서 잘 드러난다. 지난 1일에는 트위터에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용인했다는 이유로 우익세력이 펼치고 있는 ‘아이치현 지사 탄핵운동’에 “응원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일본 최대 우익단체 ‘일본회의’ 회원인 고이케 지사는 방송 앵커 출신으로 2016년 현직에 당선됐다. 일제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의 부정은 물론이고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도 참배하는 인물이다. ‘혐한 망언 제조기’로 불린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 지사조차 거부하지 못했던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대한 추도문 전달을 2017년부터 중단했다. 두 사람은 각자 중요한 정치적 관문을 앞두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 이상의 방송 출연과 광고 제작 등 코로나19 상황을 정략적으로 활용했다는 지적도 많다. 요시무라 지사는 오는 11월 ‘오사카도 구상’에 대한 주민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오사카부와 오사카시를 ‘오사카도’로 통합해 도쿄도와 같은 메가시티로 육성한다는 계획으로, 투표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정치 이력에 든든한 날개를 달게 된다. 곧 임기가 끝나는 고이케 지사는 오는 10일쯤 재선 출마를 선언할 계획이다. 다음달 5일 치러질 선거에서의 승리는 확정적이지만, 압도적인 지지율을 원하고 있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두 사람이 과연 총리의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설왕설래도 나오고 있다.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가 되는 의원내각제의 속성상 당장 현실적으로는 무리다. 그러나 여론 흐름의 변화와 이에 기반한 정계 개편이 교묘하게 맞물릴 경우 상황은 예측불가로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日 극우논객 “일본이 남긴 재산으로 한국 발전” 황당 주장

    日 극우논객 “일본이 남긴 재산으로 한국 발전” 황당 주장

    “과거 보상 문제는 한국에서 처리하면 돼”‘일본이 한국 경제발전에 기여’ 日정부 주장일본 우익 언론이 일본 자산으로 한국이 발전했으니 배상 문제는 한국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일제강점기 징용 배상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강제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일본엔 배상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한반도에서 수탈한 막대한 재산과 자원,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비판 여론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주재 객원논설위원은 7일 ‘발전의 근원은 일본 자산’이라는 제목의 기명 칼럼에서 “패전 후 일본인이 한반도를 떠날 때 남긴 거액의 재산이 미국을 거쳐 한국 측에 양도됐고 경제발전의 기초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이 남긴 자산총액이 당시 통화로 52억 달러였고 현재 가치로 수천억달러(수백조원)는 될 것이라며 “방대한 일본 자산을 생각한다면 최근 징용공 보상 문제 등처럼 이제 와서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른바 과거 보상 문제는 모두 한국에서 처리하면 될 이야기”라고 썼다. 그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끝내고 한국을 떠날 때 두고 간 재산(적산)에 관해 다룬 이대근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저서 ‘귀속재산연구’(2015년)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런 주장을 폈다. 이 명예교수는 이영훈·김낙년·이우연·주익종 등 ‘반일종족주의’의 주요 저자가 몸담은 낙성대연구소 창립자다. 구로다 객원논설위원은 SK그룹의 모체인 선경직물이 식민지 시절 일본인의 회사였다면서 “1945년 패전으로 일본인이 철수한 후 종업원이었던 한국인에게 불하돼 한국 기업이 됐다”고 쓰기도 했다. 앞서 일본 정부도 한일 간 과거사 대립이 격해진 시기에 ‘일본이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메시지를 뿌렸다. 일본 외무성은 2015년 각국 언어로 제작한 ‘전후 국제사회의 국가건설: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일본’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에서 “1951년에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해 국제사회에 복귀한 일본은 1954년 미얀마를 시작으로 일찍부터 아시아 각국에 대한 경제협력을 개시했다”며 포항종합제철소 건설 등을 사례로 들었다.구로나 객원논설위원의 칼럼이나 외무성의 동영상은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발생한 수탈, 착취, 인권 침해 등의 실상은 소개하지 않고 일본이 남기거나 제공한 것만 부각했다. 징용 과정에서 다수의 불법 행위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배상 책임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한국 대법원의 판단과는 큰 차이가 있다. 앞서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징용 피해자를 부린 것이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징용피해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며 일본 기업이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확정판결했다. 대법원은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일본이 한국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과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 책임은 별개라는 의미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日 언론 “윤미향 뻔뻔하고 능글맞아…한국인스럽다”

    日 언론 “윤미향 뻔뻔하고 능글맞아…한국인스럽다”

    “박근혜 끌어내린 한국인, 윤미향 사태에선 어떨지” 우익 성향인 일본 산케이신문이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언급하며 한국인을 비하해 논란이 예상된다. 산케이신문은 2일 이날 ‘한국답게 추궁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윤 의원의 지난달 29일 기자회견 내용을 전했다. “윤 씨에게선 입장이 곤란해졌을 때 한국인에게 흔한 언행과 태도가 보였다”면서 예시로 ‘변명’, ‘자기 정당화’, ‘정색하기’, ‘강한 억지’, ‘뻔뻔함’ 등을 거론했다. 그는 “윤씨의 경우 여기에 능글맞음까지 더해져 많은 시민들로부터 ‘어디까지 뻔뻔할 수 있는가’란 비판이 들린다”고 적었다. 나무라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윤씨는 위안부 피해자뿐만 아니라 모금과 기부를 해온 초중고생 등 시민들의 선의를 이용하고 속였던 것”이라며 “촛불집회를 일으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한국 시민. 그런 한국다움으로 한국다운 윤씨에 대한 추궁을 계속할 것인지 눈을 뗄 수 없다”고 썼다. 지국장의 이 같은 칼럼 내용은 일단 윤 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그간 제기된 의혹들은 규명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논지를 세우기 위해 변명·뻔뻔함 등을 ‘한국인의 흔한 모습’으로 거론한 사실은 한국인 전체에 대한 조롱으로도 읽힐 수 있어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윤 의원에 대한 ‘색깔론’ 제기 가와무라 나오야 산케이 편집·논설위원은 ‘한일 분단의 이면…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와 북한의 관계’란 제목의 온라인판 칼럼에서 윤 의원에 대한 ‘색깔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윤 의원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연의 전신) 상임대표 시절이던 2014년 일본 언론들과의 간담회에서 “인도주의적 ‘친북’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에 “북한은 공산주의국가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자유주의 진영을 분단해 이반시키는 걸 투쟁원리로 갖고 있다”며 “윤씨와 정대협·정의연의 오랜 활동 때문에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증오’가 확대됐고, 자유민주진영인 일본과 한국이 분단됐다”고 주장했다. 산케이는 지난달 20일 자 사설에선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윤 의원과 정의연을 공개 비판한 사실을 들어 주한일본대사관 인근 등지에 설치돼있는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韓 ‘G7 초청장’ 받을라… 日 전전긍긍

    韓 ‘G7 초청장’ 받을라… 日 전전긍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오는 9월로 연기하면서 한국 등 4개국을 초청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일본 정부는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면서도 벌써부터 견제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일 정례브리핑에서 한국, 호주 등의 G7 회의 참석에 대해 “G7이라는 틀은 주요국들 사이에 국제사회의 과제에 대한 대응 방침과 연대 협력을 확인하는 장으로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중요하다”고 밝혔다. 지지통신은 이에 대해 주요 선진국 협력체가 한국 등이 포함된 G10, G11 등으로 확장되는 데 대해 신중한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조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G7 이외의 동맹국 등을 결집해 대중국 포위망을 형성하려는 의도이지만, 여기에 필요한 G7 국가들의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요미우리는 특히 한국의 G7 참석과 관련해 “아시아에서 유일한 G7 참가국이라는 일본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외무성 간부의 노골적인 불만을 전하기도 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호주 등은 참석에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으면서도 경제에서는 중국에 의존하는 ‘양다리 외교’의 한국”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연대에 소극적인 문재인 정권이 G7 회의에 끼게 되면 다른 선진국들의 대중국 공동 보조에도 혼란을 줄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일본 정가 소식통은 “당초 이달 말로 예정됐던 G7 회의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불참키로 한 가운데서도 아베 신조 총리는 미국과 동맹을 확인하기 위해 어렵사리 참석을 약속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한국 등 초청에 또다시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아베보다 우익’ 고이케, 선거 맞수가 안 보인다

    ‘아베보다 우익’ 고이케, 선거 맞수가 안 보인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주가를 한껏 띄운 고이케 유리코(68) 도쿄도지사가 오는 7월 치러질 지사 선거 출마 채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재선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궁극적 목표인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를 향한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27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고이케 지사는 5800억엔(약 6조 6500억원) 규모의 코로나19 대응 추가경정예산안이 도의회를 통과하는 대로 재선 입후보를 선언할 예정이다. 다음달 10일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이케 지사는 코로나19 국면에 지지율을 크게 까먹은 아베 신조 총리와 달리 정치적으로 큰 이득을 봤다. 초기에는 바이러스 확산 와중에 도쿄올림픽의 정상 개최에만 집착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지난 3월 24일 올림픽 1년 연기가 확정된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상황을 장악하고 지휘하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 도지사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여당과 도쿄도가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대지만, 고이케 지사에 맞설 만한 후보가 없기 때문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대적 상대가 없기는 야당들도 마찬가지다. 방송 앵커 등을 거쳐 1992년 일본신당 소속으로 정계에 발을 들인 고이케 지사는 여러 번의 당적 변경을 거쳐 자민당에 입당, 2007년 첫 여성 방위상, 2010년 첫 여성 자민당3역(총무회장) 등을 거쳐 2016년 첫 여성 도쿄도지사가 됐다. 그를 방위상으로 발탁한 게 아베 총리지만 현재는 사이가 껄끄럽다. 도쿄도지사가 되는 과정에서 자민당 탈당과 경쟁 정당 결성 등으로 당시 아베 총리와 대립했기 때문이다. 이념적으로는 ‘아베보다도 더 우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대 도쿄도지사들이 빼놓지 않고 해 왔던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 대한 추도문 전달을 지사 취임 이듬해부터 중단한 것이 잘 말해 준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정의연 “이용수 할머니 회견 마음아파…앞으로 활동 최선”

    정의연 “이용수 할머니 회견 마음아파…앞으로 활동 최선”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2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의 기자회견에 대해 구체적 입장 표명 없이 “마음이 아프다”고 밝히고, 이용수 할머니의 일부 발언에 대한 ‘설명 자료’를 내놓았다. 정의연은 “오늘 기자회견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봤다. 마음이 아프다”며 “30년간 운동을 함께 해왔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기자회견에 대해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다만 몇 가지 부분에 관해 설명 자료를 낸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30년 동안 이용만 당했다”며 정의연과 그 전신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전 정의연 이사장)을 비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정대협은) 할머니를 앉혀서 증언을 한 번 받은 적이 없다. 1993년도부터 책을 6500원에 파는 것을 봤다. 그래도 몰랐다”고 말했다. 여기서 ‘책’이란 정대협 등이 발간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 증언집’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정의연은 증언집 발간 경위를 설명하고,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 역시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 1집에 수록돼 있다고 해명했다.정의연은 “‘한국정신대연구회’(이후 한국정신대연구소) 연구원들이 참여해 증언 채록을 진행했고, 정대협과 한국정신대연구소 공동저작물로 증언집을 출간했다”며 “당시 증언집은 피해자의 존재를 알리고, ‘증거 문서 부재’를 이유로 불법성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자료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증언집 출간에는 정대협 초대대표를 맡은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정진성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참여했다고 정의연은 설명했다. 정의연은 “피해자의 증언을 부정하려는 일본 우익과 역사부정주의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공격받았던 분이 바로 이용수 할머니였다. 그래서 오늘 기자회견이 특히 더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다”며 “가해자에 맞서며 피해자의 증언 일부가 변화하기도 했지만, 일본군 ‘위안부’로서 겪어야 했던 피해의 본질적 내용은 결코 변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늘 할머니께서 세세하게 피해를 말씀하신 것으로 안다. 가해자들이 하루빨리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이행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가 훼손당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도록 더욱 최선을 다해 활동하겠다”고 다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속보] 정의기억연대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마음아프다”

    [속보] 정의기억연대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마음아프다”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25일 설명자료를 내고 “오늘 기자회견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았다”며 “30년 운동을 함께 해왔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기자회견에 대해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1990년대 초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피해의 실상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정신대’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실제 일제 식민지 시대에도 제도상 혼용과 용어의 혼용이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 위안부 할머니랑 합쳐서 쭉 이용해왔다”며 “위안부와 정신대가 어떻게 같으냐”고 지적했다. 정의연은 이어 일본우익과 역사부정주의자들이 피해자의 증언을 부정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과 명예를 훼손하는 행태를 보이는 데 있어 가장 많이 악용되고 공격받았던 분이 바로 이용수 할머니라 오늘 기자회견이 특히 더 마음이 아팠다고 강조했다. 정의연 측은 “가해자들은 최초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후 자신들의 책임을 부정하기에 급급했고 피해자들의 증언의 신빙성을 공격했으며 피해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가해자에 맞서기 위해 피해자들의 증언 중 일부가 변화되는 과정이 나타나기도 한다”며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로서 겪어야 했던 피해의 본질적인 내용은 결코 변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가 훼손당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정의연은 더욱 더 최선을 다해 활동하겠다고 다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박록삼의 시시콜콜] 진보의 도덕, 보수의 도덕

    [박록삼의 시시콜콜] 진보의 도덕, 보수의 도덕

    사실관계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참담하다. 전세계 인류를 대상으로 저지른 전쟁 범죄에 맞선 30년의 오랜 활동이 기부금의 개인적 횡령, 주먹구구식 회계 비리 등 파렴치범으로 몰리며 도매금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 국제인권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의 빛나는 역사가 허물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뼈아픈 비판도 있고, 모종의 의도에 근거한 억측도 있고, 웬지 주류세력이 된 것 같으니 그냥 비판을 받아라는 식의 몰가치적 비난도 있고, 이참에 기사 조회수 좀 늘려보겠다는 언론 상업주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이죽거리며 내뱉는 썩은 웃음소리들이 있다. 1990년 11월 일본의 전쟁 범죄에 맞서 만들어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김학순 할머니로 시작해서 한국,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덜란드, 호주 등 전세계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증언을 이끌어냈다. 1992년 1월 8일 처음 시작한 수요집회는 1440차에 이르도록 계속되고 있으며 일본의 추악한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죄 요구는 높았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당연히 공식 사죄 및 법적 배상도 외면해왔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제 정대협, 정의기억연대의 불투명한 회계 처리에 대한 비판의 여론이 거세지자 적반하장의 입장을 낸다. 일본 우익 매체 산케이신문은 지난 19일부터 몇 차례에 걸쳐 ‘반일집회를 중단하고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영훈, 이우연 등 극우세력의 이데올로그들은 “강제징용은 없었다. 위안부는 고위험 고수익 시장” 등 기존 의견을 반복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힘입어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미래통합당 홍문표 의원은 “(윤미향 전 대표는) 이완용보다 더한 사람”이라는 무시무시한 비유를 했다. 더더욱 참담한 일이다.회계에 부정함이 있고, 활동에 위법함이 있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관성에 빠져 무사안일했다면 시민들의 죽비를 내려맞아야 한다. 하지만, 전쟁 성폭력 이슈를 힘겹게 끌고오며 국제인권운동사에 길이 빛나는 활동과 성과까지 부정되어선 안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극우세력이 이용할 틈을 줘서도 결코 안된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정부여당(민주당 계열 옛 야당)이 심각한 위기에 빠지는 것은 대부분 도덕성에 타격을 입을 때다. 유교적 문화가 남아 있기에 국민들이 도덕성이라는 가치에 더욱 민감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 잣대는 하필 이들 진보적 가치를 가진 세력에 유독 엄격하게 들이대진다. 그래서 진보단체 혹은 진보를 지향하는 기자 개인 등에서는 스스로 ‘도덕성 컴플렉스’에 빠진 경우 또한 많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였다가는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세력의 위상 추락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도덕’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초적 수단이다. 전통적 측면에서 변화보다는 안정,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추구하는 보수주의자를 보수주의자로 지탱시켜줄 수 있는 핵심 무기가 도덕이다. 민족과 국가의 개념 역시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반면 진보주의를 실천하고 지향하는 이라면 기존의 관성과 제도, 질서, 문화에 대한 전복을 꾀하기 마련이다. 어떤 진보의 가치도 그 배경에 도덕을 필수 기초 요소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사 속 상황은 달랐다. 한국의 보수 세력의 기초는 ‘도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민족 또는 국가의 이익 또한 아니었다. 숱한 보수세력의 정치인, 기업인들은 반공, 반북이라는 이념적 토대 위에서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으로 시작해 이명박,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보수세력의 대통령들이 보여준 부도덕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또한 기업인들 역시 권력에 막대한 돈을 건네며 자신들의 부를 더욱 키우는 데 혈안을 했다. 장삼이사 같은 평범한 보수를 자칭하는 이들 또한 필요하면 기꺼이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흔들어 대고, 또 한때는 가스통까지 들고 광장으로 나와 공권력을 위협했다. 배려, 공정, 타인 및 공동체 존중 등 도덕의 가치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하기에 그 반대편에 있는 진보세력이 오히려 ‘도덕’을 자신의 무기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진보의 가치를 왼손에 들고, 도덕을 오른손에 든 채 ‘도덕적이지 못한 보수’와 맞서는 양상이다. 하나 안타깝게도 자승자박이다. 필연적으로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진보세력이라 하더라도 사적 욕망이 없을 수 없는 개인들의 모임이다. 공공의 가치의 제도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공동체 발전에 대한 비전 마련 등 전통적 의미의 진보와 보수의 가치가 뒤섞여서 진보세력을 이룰 뿐이다. 필연적으로 언제든 도덕적 일탈의 개인이 나올 수도 있는 구조인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상황에서 도덕적이지 않은 채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 시민운동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정의기억연대에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조중동이 100년 동안 저지른 과에 비하면 천분의 1, 만분의 1일 것이고, 그 역사적 기여는 조중동의 백배 천배’(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페이스북 인용)라는 항변처럼 억울함을 토로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항변 또한 많은 이들에게 ‘겨 묻은 개와 × 묻은 개’ 사이의 싸움처럼 비쳐지기 일쑤다. 이제는 시민이 나설 때다. 일탈하는 진보세력 내 개인은 따끔히 단죄하더라도 그 가치와 방향까지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옥석구분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시민사회의 힘은 시민에 있기 때문이다. 박록삼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윤미향에 밀린 낙천자도 참여하나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윤미향에 밀린 낙천자도 참여하나

    이용수 할머니가 오는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을 둘러싼 논란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군 피해자를 지원하는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25일 이 할머니의 의사에 따라 기자회견을 연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와 함께 활동한 최봉태 변호사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용수 할머니의 지난 7일 기자회견이 일파만파가 되고 있다”며 “이왕 발생한 이상 전화위복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오는 25일 여는 기자회견은 할머니 의사 존중의 원칙, 이해 관계자 참여의 원칙, 미래지향의 원칙으로 추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해 관계자 참여의 원칙에 따라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인의 회계 부정 논란을 낳은 가자평화인권당의 비례대표 낙천자 최모씨, 이 할머니의 수양딸, 운전자 박모씨, 할머니 수행 스님들이 25일 기자회견에 배제되지 않도록 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가자평화인권당은 일본군 위안부 및 기타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을 위한 목적으로 창립된 정당이다. 이 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했으나 비례대표 후보에서 배제되면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특히 당의 대표로 비례대표에서 낙천한 최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행사 등에 사진이 찍혔다’는 이유로 ‘부적격’ 통보를 받았고, 그런 사실이 없다며 소명 기회를 요청했으나 그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일본군 성노예문제, 원폭피해자문제, 고엽제피해자문제등 전쟁피해자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수십년간 활동했으며 현재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최 변호사는 이 할머니의 7일 기자회견 이후 일본 우익성향의 산케이신문에서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자세히 보도하는 기사 등에 대해 우려를 표현했다. 그는 공은 공으로 평가하되 이 할머니를 통해 밝힐수 있는 과가 있었다면 그 또한 확실히 가려져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기자회견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아무이슈]이용수 할머니만 할 수 있었던 그 말 “왜 위안부 팔아먹느냐”

    [아무이슈]이용수 할머니만 할 수 있었던 그 말 “왜 위안부 팔아먹느냐”

    [명희진·김희리 기자의 아무이슈] 정의연 논란에 전문가들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얼굴이었던 이용수 할머니의 ‘고백‘을 신호탄으로 정의연의 역할과 존재 이유를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정의연은 “개인적 자금 횡령이나 불법 유용은 절대 없다”고 반박했지만 단체의 성금 횡령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에도 피해자 할머니 33인이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성금 횡령 의혹을 제기한 적 있다. 단체와 할머니 간의 갈등은 앞으로의 한일 관계 풀이법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본 매체도 이번 사태의 전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7일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직후 한 일본 기자는 “정대협은 곧 이용수 할머니라고 알고 있었다”면서 “단순한 돈, 서운함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주장한 그동안의 ‘오류’는 무엇이었고 앞으로의 풀이법은 어떤 모양이어야 할까. “정의연(정의기억연대)을 겨냥해 ‘왜 위안부 문제를 마음대로 팔아먹느냐’는 말은 피해자였던 이용수 할머니니까 할 수 있었던 지적이죠. 외부 사람들은 무언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국민감정과 친일증오 프레임을 앞세워 자기들끼리만 해왔어요. 그만큼 성역(聖域)화된 단체였습니다.”정의연은 외부인 개입 어려운 성역화 된 단체 박인환 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 위원장(전 건국대 교수·사법연수원 16기)은 15일 “정의연이 할머니들을 ‘돌본다’는 표현을 쓰는데 정의연은 사실상 피해자 할머니를 모시고 살지는 않는다”면서 “사실상 할머니를 모시는 곳은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 같은 곳인데, 정의연은 이를 모호하게 해 국민에게서 기부금을 받아 연명해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단체가 기부금에 의존하는 구조이다 보니 ‘봉사단체’처럼 할머니들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박 전 위원장이 4년간 몸담았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원회’는 2010년 3월 발족한 총리실 산하 행정기관이다. 위원회는 2004년과 2008년 각각 설립된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와 ‘국외강제동원희생자지원위원회’를 통합, 일제강제동원의 진상 규명과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들을 지원할 목적으로 출범해 2015년 12월 말 폐지됐다. 박 전 위원장은 ‘팩트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2015년 합의 당시 외교부도 (위원회) 자료만 받고 상의 한번을 하지 않았다”면서 “진실을 찾겠다면 돈을 받지 말고 수미일관한 팩트를 제시해 일본의 양심을 움직여야 한다. 돈만 받아 할머니에게 주면 (이 문제가) 다 끝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그는 “일본사람들이 가장 흥분하는 지점은 (정의연 등이 세운) 기림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3만 내지 40만명’이라는 표현이다. 뉴저지주 기림비에는 ‘수십만명의 성 노예’라는 모호한 표현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피해자는 240명(생존 18명). 그는 “피해자임에도 죄인처럼 숨어 지내야 했던 할머니들의 숫자를 고려하더라도 이 같은 모호한 표현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2015년 합의에 아쉬운 점이 많지만, 국가 간 합의를 계속 거부하고 소녀상 등 감성적인 부분만 강조해서는 일본의 우경화된 역사수정주의에 힘을 쏟아주는 결과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팩트로 무장해 일본의 국격과 양심에 호소해야” 박 위원장은 또 “가해자가 죽고 없는 8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가해’의 실감이 없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계속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라면서 “독일-이스라엘 관계처럼 팩트로 무장해 일본의 국격과 지식인의 양심에 호소해야 한다. 그것이 일본에 진정한 사과를 받는 길”이라고 말했다. 지원 단체의 ‘대표성’ 문제도 앞으로 남은 과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일본전문가는 “우리 사회의 위안부 지원단체에 대한 인식이나 평가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다만 그동안 (정의연이 해온) 위안부 운동의 의의가 훼손되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일종의 인권운동이자 여성운동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는 “(윤 당선인과 이 할머니 간의) 소모적인 폭로전이 계속 될 경우 일본 우익 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면서 “진실공방에서 점점 사적인 의견 충돌의 부분으로 공방이 번지고 있다. 두 분 다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아무 : [관형사] 어떤 사람이나 사물 따위를 특별히 정하지 않고 이를 때 쓰는 말’. 아무이슈는 서울신문 기자들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취재해 이야기를 풀어놓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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