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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의 부활(외언내언)

    12일 저녁 KBS 1TV가 보여준 「일요스페셜」이 매우 인상적이었다.영국 산업혁명의 요람으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명예를 누리던 「뉴캐슬」이라는 도시가,쇠락의 늪에 떨어졌다 부활한 과정을 엮었다. 상승구조로만 치달아 감당할 수 없어진 노동자의 욕구,변화에 대한 오만한 무관심으로 경쟁력을 잃고 치유불능의 「영국병」을 앓게된 산업도시 뉴캐슬의 파탄은 우리의 오늘과 너무도 흡사하다.아니,그래도 우리보다는 덜 비극적일 것이다.그들은 실업보험 같은 탄탄한 사회보장제도가 있었고 「대영제국의 자존심」이 버텨주는 능력있는 국가가 그래도 척추노릇을 했을테니까. 그런 그들이 마침내 다시 참담한 파탄에서 부활하여 일어서는 과정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왕실에서 정부 공무원 노조지도자 시민단체가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여 외국기업을 유치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그로써 모든 도시가 할일을 갖게 되어 활기를 찾고 되살아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을 되살아나게 한 것은 외국기업의 유치였다.그리고 그렇게 「유치되어」 도시를 부활시킨외국기업의 첫번째 나라가 일본이고 두번째 나라가 우리나라 「한국」이다.지금 우리 노동자들이 『작살을 내도 좋다』는 듯이 파업으로 휘젓는 우리 기업들이 그곳에 가서 남의 나라를 부흥시키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땅값이 「거저」에 가깝고 「제도」들은 끝없이 호의적이며 노임이 우리보다 유리하다. 『생산라인은 지구촌 어디를 가나 꼭 같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현대의 산업입니다.그러니까 결국 노동력의 질만이 문제인데 영국의 노동의 질은 세계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는 것이 그곳에 나가 그 도시를 살려주고 있는 우리기업 간부의 말이다. 발벗고 나서서 외국기업의 복수노조 조성을 유보시킨 옛날 노조지도자는 말했다.『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다시 쓸수는 없다.그러나 미래는 우리손으로 만들수 있다』 우리는 그 슬기를 빌려쓸 수 없는 것인지….
  • “새해벽두 전시회 봇물 애호가들 마음 설렌다”

    ◎조선 왕실그림… 15C 북구판화… 한국의 누드화…/조선왕실 그림전­화려한 벽화·일원오봉도 등 80여점/조선 전기 국보전­몽유도원도 등 임란까지의 202점/뒤러와 동시대 판화전­원본작품 80점 등 120점 국내 첫 공개/한국누드미술 80년전­최초의 누드화 「해질녘」 등 100점 선봬 조선시대 왕실그림과 15세기 북유럽 작가들의 판화.그리고 조선전기의 문화재와 한국의 누드­. 새해 벽두,굵직굵직한 대규모 전시회가 미술에 관심있는 이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해마다 이때쯤이면 미술계는 이렇다할 이슈나 전시가 없어 썰렁한 분위기에 젖어들지만 올해는 큼직한 전시들이 동시에 열려 예년과 달리 풍성한 느낌을 전해준다.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관 제1전시실(580­1611)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누드미술80년전」(12일까지)을 비롯해 호암갤러리(771­2381)에서 마련되고 있는 「조선전기국보전」(2월11일까지),과천 국립현대미술관(503­7744)에서 진행중인 「뒤러와 동시대작가판화전」(31일까지),궁중유물전시관(753­2582)에서 개최중인 「조선왕실그림전」(26일까지) 등. 모두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전시들이다.이 전시들의 내용을 살펴본다. ▷한국누드미술 80년전◁ 지난 80년간 한국의 작가들이 그려온 누드작품중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국내 최초의 누드화인 김관호의 작품 「해질녘」(1916년)을 비롯,근·현대의 대표적인 작가 60명의 평면 회화작품 100점을 연대순과 작품별로 구분해 보여주고 있다.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로 평가받는 김관호작 「해질녘」을 복제해 소개하며 누드화의 대가로 불리는 김흥수 화백의 「낙원의 봄」「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구본웅의 「여인」 등이 모두 화제작이다. ▷조선전기 국보전◁ 조선 개국때부터 임진왜란까지 200여년에 걸친 조선전기 문화유산을 전반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는 자리.일본 천리대에 소장돼 있는 조선전기 최고의 그림으로 평가받는 안견 그림 「몽유도원도」와 세종시대 그려진 작가미상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일본 용곡대 소장)를 비롯해 「고사관수도」(강희안작),「묵포도도」(황집중작)와 「화조구자도」(이암작)「청화백자매문죽호」,「조선방역지도」 등 서화 62점,서예·전적류 22점,나전·일반공예 25점,도자기 65점,불교미술품 28점 등 170건 202점이 나와있다. ▷뒤러와 동시대작가 판화전◁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적인 판화작가 4인전.15세기 이후 인쇄술에 종속된 판화를 독립 예술장르로 격상시킨 알브레히트 뒤러의 원본 판화작품 80점을 비롯해 같은 시기에 뒤러와 함께 활동한 한스 발둥 그리인,루카스 크라나흐,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등 독일 작가 4인의 판화 120점 출품.독일 브레멘 미술관 판화실 소장품을 들여와 소개하는 자리로 서양미술사의 거봉인 화가이자 판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의 원본 판화는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것들이다. ▷조선왕실 그림전◁ 조선왕실의 격조를 담고있는 회화류 80여점을 통해 조선시대 궁중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왕실을 화려하게 치장한 벽화와 어좌뒤에 친 임금의 위엄을 드러내는 일월오봉도,선명한 채색의 각종 화조도,불로장생물 열가지를 그린 십장생도,왕실의 여러 행사를 다룬 반차도,의궤도 등 기록화와 임금의 어진 등 인물화와 정조대왕이 부친 사도세자 능으로 행차하는 과정을 그린 8폭짜리 병풍그림 「화성능행도」와 영조대왕의 연잉군 시절 초상화 등이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 조선철화백자(외언내언)

    지난달 31일 뉴욕 크리스티 미술품경매장에서 17세기 조선철화백자항아리가 7백65만달러(한화 63억4천9백만원)에 팔려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값은 예정가보다 무려 20배나 되며 세계 도자기 경매사상 최고가에 해당된다.그전까지 도자기 경매가 최고 기록은 15세기 조선청화백자 보상당초문접시.94년에 3백8만달러(25억5천만원)에 낙찰됐었다. 백자 바탕에 산화철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려넣는 철화백자는 17세기에 유행했던 수법.흰바탕에 주홍빛 색감이 선연하게 돋보인다.용이 구름을 뚫고 틀임하는 그림을 넣은 이 항아리는 왕실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그림이나 항아리 모양새가 아무리 좋은 진품이라 하더라도 도자기 한점값이 63억여원이라니 서민들에게는 믿어지지 않는다.근래 우리 고미술품에 대한 국제경매시장에서의 평가는 상당히 높아졌다.특히 도자기 경우 최고가 1,2,3위를 우리 백자와 청자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 최고기록을 세우면서 이 항아리를 낙찰한 주인공은 누구일까.전화로 응찰했다는 것만 알려졌을뿐,베일에 싸여있다.한때 국제 미술품경매시장에서 엔화의 위세를 업고 일본인들이 싹쓸이 구매를 했었다.90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반 고호의 「가쉐박사의 초상」이 그림으로는 사상 최고값인 8천2백50만달러(약 5백78억원)에 팔려나갔다. 르느와르의 걸작 「물렝드 라가레트」가 7천8백10만달러에 낙찰됐는데 놀랍게도 이 두점을 구입한 사람은 일본의 소규모 화랑이었다.진짜 주인은 따로 있었지만.이때문에 미국에서는 미국 미술관들이 대를 이어 소장한 명품들을 일본에 빼앗긴다고 개탄의 소리가 높았다. 우리의 문화재가 세계시장에서 진가를 인정받고 있음은 나쁠 이유가 없다.그러나 최근 해외에서 유출된 문화재를 되사오면서 국내값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거래하는데는 문제가 있다.우리끼리 경쟁해서 값을 올려놓기 때문이다.세계 최고가 백자항아리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자못 궁금하다.
  • 영 왕실 편찬 세계지도/“동해는 한국해”

    ◎229년전 발간… 미 교포가 구입 우리나라와 일본사이의 공해인 동해의 지명이 이미 2백29년전에 「한국해」(Sea of Korea)로 표기됐음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동해를 둘러싼 한·일간의 오랜 지명분쟁 해결에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영국의 조지 3세 국왕 집정당시(1760∼1820) 토머스 샐몬이 영국왕실의 명령을 받아 쓴 「지리및 역사 입문서」의 13쪽 세계 지도편에서 동해를 「Sea of Korea」로, 그리고 3백95쪽의 아시아 지도편에서는 「Sea of Corea」로 각각 표기했다. 1767년 6월 영국 에든버러에서 인쇄된 이 책은 서문에서 국왕인 조지 3세가 전세계의 풍속과 지리·날씨등을 기록한 안내책을 펴내도록 명령함에따라 집필,발간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4백32쪽에 게재된 중국 지도에서는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하는 등 혼선을 빚고 있었다. 이 책의 원소유주였던 윌리엄 H 밀턴씨는 책 안쪽의 제목밑에 『1782년 5월에 이 책을 구입함』 이라고 적어 놓고 있었다. 이 책은 지난 73년 미국으로이민,현재 뉴저지주 메이플우드에 살고있는 조대현씨(54·충북 제천 출신)가 지난 7월 중순 오랜 친구이자 현재 버지니아주 리치먼드박물관장인 조지 윌턴의 소개로 이 책을 소장하고 있던 조우 밀턴씨(리치먼드 거주)로부터 거액을 주고 구입했다.
  • “고문서토대 국학연구 본격화”

    ◎정신문화연구원,제4기 진흥연구사업 계획 발표/「장서각」 고자료 등 단순 수집정리서 탈피/번역·주석작업 중점… 실질적 뒷받침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하 정문연·원장 이영덕)이 고전적 조사연구와 고문서 수집을 토대로 영인본 발간 등 국학자료의 본격적인 출판을 골격으로 한 제4기(97년 5월31일까지) 국학진흥연구사업 계획을 발표해 눈길을 끈다. 국학진흥사업은 정문연이 지난 93년부터 교육부의 특별지원아래 장서각자료 연구를 비롯,전국에 흩어진 고문서와 근대사자료를 수집·발굴·정리하는 정문연의 가장 핵심적인 연찬사업.이가운데 「장서각 고자료 연구사업」은 구 왕실도서관이었던 장서각의 도서가 어떻게 수집 보관돼왔는지에 대한 역사적 조명과 함께 그 장서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이다.지난 해까지 조선후기 실학자였던 이재 황윤석(이재·1729∼1791년)의 초서로 된 일기를 탈초,정리한 「이재난고」 두권을 발간했으며 장서각 소장 금석문 탁본자료 정리와 함께 장서각 도서의 해제를 준비해와 「장서각의 역사와 자료적 특성」,「구결자료집」등 국학연구에 귀중한 새 자료들을 발굴 정리해 출판했다.또 「고문서 조사연구사업」은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고문서를 수집 정리해 소장자 중심으로 「고문서집성」을 발간하는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보완할 수 있는 생활자료의 의미를 갖는 작업으로 평가되고 있다.지금까지 20여만점을 수집해 이가운데 극히 일부 자료만 영인,출판해놓고 있다. 정문연이 제4기에 추진할 사업들은 이같은 작업의 연속선상에서 실질적으로 한국학 연구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자료제공측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우선 「고전적 연구조사」에서는 지난해 집필된 해제원고를 정리보완해 간행하는 한편 장서각 소장 금석문 탁본자료를 영인,인쇄해 상세한 해제를 붙여 두권으로 간행한다는 계획.이와 함께 장서각 자료중 희귀본,유일본으로 지목된 「희현록」「석운일기」「예기대문언속」「낙점)」「증보 만병회춘」중 두권을 택해 영인하면서 구두와 해제를 붙여 출판하고 「이재난고」 3권을 간행,탈초한다. 「고문서 조사연구」사업으로는 충청남북도와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의 서원 향교 사찰및 사가에 소장된 고문서 전적류를 최대한 조사·수집·정리하며 이미 조사된 전남과 경상남북도에 대한 추가조사를 벌여 3만여점을 조사·수집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또 수집자료를 평판작업과 분류·목록·문서번호 부착과정을 거쳐 마이크로필름화해 출판작업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정문연 정구복(자료조사실장)교수는 이와 관련,『지금까지의 국학진흥 사업이 주로 고문서 수집차원인 1차사업에 치중해왔으나 이같은 작업이 한국학 연구의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선 본격적인 해제와 번역,주석작업이 뒤따라야 한다』면서 『정부와 대학,지방 향토사학자,사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황룡사를 복원하자/김호준 논설위원실장(서울논단)

    신라최대의 가람이었던 경주 황용사는 신라불교의 호국도량으로서 국민통합과 삼국통일을 상징하는 곳이었다.진흥왕 14년(서기 553년)에 절을 처음 짓기 시작하여 4대왕 93년에 걸친 대역사 끝에 선덕여왕14년(서기 645년)에 마무리한 황룡사는 신라인의 웅장한 기상이 유감없이 표출된 곳이었다.불국사의 8배나 되는 넓은 경내엔 동양최고의 9층목탑이 하늘을 찌를듯 솟아 있었고 남대문의 9배나 되는 거대한 금당엔 서축 아육왕이 보낸 누른쇠와 황금으로 만들었다는 높이 5m의 장육존상과 두 보살상이 모셔져 있었다.새가 앉으려 했다는 솔거의 그 유명한 소나무 벽화가 그려져 있던 곳이 바로 이 황룡사였다.그러나 불행히도 고려 고종25년(서기 1238년)몽고의 병화로 소실돼 폐허만 남긴채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히고 말았다. 이 황룡사의 복원을 최근 불국사 주지 설조스님이 정부에 청원하였다.그는 청원문에서 『온 국민이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고 있는 때에 신라인의 호국정신과 통일정신의 요람인 황룡사(와 감은사)의 복원 불사를 성취함으로써 통일의 정신적 기틀을 다져야 한다』고 역설했다.760년전 잿더미로 변해버린 황룡사를 오늘에 다시 살려야 할 이유는 바로 이 황룡사에 각인된 호국이념과 통일정신에 있다. 황룡사가 착공된 서기 553년은 신라가 한반도의 심장부인 한강유역을 장악하여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은 해였다.황룡사의 중심가람인 9층목탑은 신라에 침범을 일삼던 주변의 아홉 나라를 부처님의 힘으로 제압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백제멸망 15년전에,고구려멸망 23년전에 완공됐다.당시 건축공사를 지휘했던 아비지라는 백제 공장이는 탑의 기둥을 세우던 날 꿈에 본국인 백제가 망하는 걸 보고 일을 맡은걸 후회했다고 한다.국찰인 황룡사 강당에서는 자장률사와 원효대사가 강론을 하였으며 나라와 왕실의 태평을 비는 팔관회가 열렸다.국민들의 마음을 불심으로 통합시켜 국력결집과 삼국통일을 이끌어낸 곳이 황룡사였다.고려때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는 『(9층목)탑을 세운뒤에 천지가 형통하고 삼한이 통일되었으니 어찌 탑의 영험이 아니겠는가』라고 적고 있다.황룡사를 복원하자는외침엔 무엇보다도 통일의 영험을 다시 보고자 하는 간절한 기구가 담겨 있다. 황룡사 복원을 바라는 또하나의 사연은 그 규모의 웅장함에 있다.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8천8백평의 경내에 1탑3가람이 들어 앉은 황룡사가 소실될때 그 재가 수십일동안 경주 하늘을 칠흑같은 어둠으로 뒤덮었다고 한다.황룡사 찰주기에 의하면 9층목탑은 높이가 2백25자였다.요새 치수로 환산하면 80.18m,아파트 30층에 해당된다.당시로선 그야말로 아찔한 초고층 건물이었다. 황룡사 9층목탑은 목탑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진 중국 산서성의 응현목탑(높이 67m)보다 4백여년 앞서 세워졌으면서도 13m가 높은 것이다.또 일본에서 가장 높다는 흥복사 5층탑(높이 50m)보다 30m가 높다. 황룡사의 규모는 목탑과 함께 소실된 종의 크기로도 유추할 수 있다.삼국유사에 의하면 황룡사의 동종은 49만7천5백근의 구리를 들여 만들었다고 한다.현존하는 우리나라 종 가운데 가장 큰 성덕대왕신종,즉 에밀레종의 4배에 달하는 중량이다.한마디로 말해 황룡사는 우리 건축사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조형물이었다.한반도 동남쪽 구석에 갇혀있다시피한 신라인들이 어떻게 그런 큰 웅지를 품을 수 있었는지 그저 경탄스러울 뿐이다. 중국은 큰 나라였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만해도 스케일면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거대한 문화유산이 적지않다.산덩이 같은 천황릉들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5세기때 축조물로 추정되는 인덕천황능은 길이가 4백86m에 달해 피라밋과 맞먹는 세계최대의 분묘로 꼽힌다.서기 752년에 개안된 높이 15m의 동대사 대불은 후대에 여러번 보수되어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보잘것 없게 됐지만 그 거대함에 있어서는 세계제일이다.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우리 조상들도 웅혼한 기상의 소유자였음을 실증적으로 확인시켜 줄 것이다.우리 문화재에 대해 후손들이 느끼고 있는 왜소 컴플렉스를 씻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건축물이기 때문이다.빈약한 불거리로 고전하고 있는 한국관광도 새명소 새활력소를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황룡사 복원은 불교계가 지난 50년대 부터 추진해온 숙원사업이다.그러나 오늘에 재조명되는황룡사는 불교계를 넘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해야할 과제임을 일깨워 준다.돌이켜 보면 지난해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으로 일제총독부청사철거와 더불어 황룡사 복원에 눈을 돌렸더라면 「철거와 복원」의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그렇게 못한건 참으로 아쉬웠다.물론 지금 착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제일 중요한 문제인 경비를 우선 불교계에서 부담하겠다고 자청하고 있으니 말이다.시급한건 황룡사 복원을 국가적 사업으로 확정하고 추진하는 정부의 결단이다.
  • 올 연세등 3개대 직선제 폐지 계기로본 실태와 문제점(심층취재)

    ◎총장선거/정치판 보다 더 혼탁/경륜·철학은 뒷전… 중상모략·줄서기 경쟁/반대파 사사건건 꼬투리… 행정 마비 일쑤/외부인사 영입 길 아예 막혀… 학교발전 “뒷걸음” 한 때 대학 민주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총장 직선제의 폐해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선거로 인한 폐단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줄서기,편가르기로 반목하고 중상,모략이 횡행한다.소송 사태도 잇따른다.때문에 적지 않은 대학들이 총장 직선제를 폐지했고 많은 대학들이 없앨 움직임이다.직선제 없이도 대학을 민주적으로 내실있게 꾸려가는 나라들은 많다.또 직선제를 도입했더라도 우리처럼 고약한 문제들은 나타나지 않는다.총장 직선제의 실태를 해부하고 모범적인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소개한다.〈편집자 주〉 직선제를 없애려는 움직임은 올들어 더욱 거세지고 있다.지난 3월 말 경남대 계명대 아주대 한남대 전주대 관동대 호남대 등 8개 지방 사립대의 총장들이 모여 직선제 폐지를 결의함으로써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후 연세대 국민대 계명대 등 3개대가 직선제를 없앴다.건국대 아주대 울산대 등은 사실상 지난 해 직선제를 폐기했다. 특히 연세대재단 이사회의 폐지결정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려대를 비롯한 상당수 대학들이 총장선출 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높은 학식과 고매한 인격의 대명사인 총장을 더 이상 선거로 뽑아서는 안되겠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폐지” 공감대 확산 지난 88년 목포대에서 첫 직선 총장이 탄생한 후 현재 전국 1백45개의 4년제 대학 중 26개 국·공립대 및 11개 교육대 모두와 1백8개 사립대학의 절반 가량이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 8년만인 지금,초기의 「장미빛 꿈」은 온데간데 없다. 대부분의 대학이 극심한 선거의 홍역을 앓고 있을 뿐이다.직선 총장들마저도 이 선출방식에 커다란 회의를 표한다. 강의와 연구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이 학연과 지연 등으로 얽히고 설킨다.로비도 치열하고 술과 골프 접대 등 향응은 기본이다. 교수사회의 위계질서가 무너진 지는 오래다.갓 임명된 전임강사도 총장후보 앞에서 다리를 꼬고 맞담배질을 한다.전에는상상도 못하던 일이다.이들도 1표를 가졌기 때문이다. 선거판의 중상모략과 투서는 썩은 정치판을 뺨친다.허무맹랑한 공약과 보직약속 남발도 빼놓을 수 없다. 선거가 끝나면 교수들의 편가르기가 더욱 깊어져 지지파는 무조건 총장을 따르고 반대파는 매사에 꼬투리를 잡아 총장을 공격한다. 학사행정은 마비되기 일쑤고 대학발전은 생각도 못한다.덕망있는 외부인사를 총장으로 영입하는 길은 아예 막혔다.표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훌륭한 자격을 갖췄음에도 혼탁한 선거양상이 싫어,끝내 출마를 고사하는 교수도 많다. ○위계질서 무너져 명문 사학인 Y대는 S총장과 반대파간의 알력으로 몇년째 홍역을 앓고 있다.반대파 교수들은 S총장의 2중국적을,S총장은 인격모독과 학교의 명예실추를 걸어 서로 맞고소했다.이 사건은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S총장을 비난하는 진정서가 청와대와 교육부 등에 숱하게 쏟아졌다.총장을 비롯한 보직교수들은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대학발전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최근에는 상대 출신인 S총장이 경상대에만 신경을 쓴다며 각 단과대별로 『다음에는 우리도 총장후보를 내자』는 집단 이기주의까지 생겼다.수적으로 열세인 일부 단과대 교수들이 연합을 모색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립 지방대인 K대와 사립 M대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총장 임기 4년이 맞고소,교수들의 농성 등으로 점철됐다.급기야 K대는 교육부의 감사를 받아 총장을 비롯한 1백70여명의 교수가 징계·경고·주의 처분을 받았다.소송의 몸살을 앓는 대학은 10군데가 훨씬 넘는다. 또다른 명문 사학인 K대는 H총장의 임기가 2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2년 후의 총장선거에 나설 예비후보 진영에서 정원조정을 포함한 학사행정 전반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 정상적인 대학운영이 마비된 상태이다.H총장은 선거 후 화합차원에서 상대 후보진영의 교수를 주요 보직에 임명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지방 국립대인 C대는 L총장이 선거 때 공약으로 제시한 중간평가 때문에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교수협의회는 중간평가를 거듭 요구하며 집단행동도 불사할 태세이다. 최근에는 학생들까지가세해 기성회 예·결산 전문위원회에 학생 참여 등을 요구하며 총장 불신임을 결의했다.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도 했다. ○교수끼리 맞고소 지방의 사립 D대는 한 총장후보가 교수 자녀의 학자금을 대학졸업 때까지 전액 지원하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공약을 제시해 쓴 웃음을 자아냈다.B여대에서는 직원들에게도 투표권을 달라며 교직원 노동조합을 통해 쟁의발생을 신고하기도 했다. 서울의 K대는 재단과 사이가 좋지 않은 총장이 선출되자 재단의 전입금이 크게 삭감됐다.총장이 내세운 학교발전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지방의 D대는 총장에 반대하는 교수들의 집단 수업거부와 점거농성으로 심각한 학내분규를 겪었고 결국 관선이사가 파견되는 「험한 꼴」을 당했다. 선거를 6개월 가량 남겨둔 국립 S대는 예상후보들이 벌써부터 치열한 사전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지난 총장선거에서는 한 후보의 부인이 총장후보 추천위원회 위원들에게 사과상자를 돌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후보를 판단하는 기준도 학교운영에 관한 경륜이나 철학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선거 때마다 전문 선거꾼으로 변신하는 일부 교수들의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한 교수는 『친목모임에 연고가 전혀없는 교수가 느닷없이 찾아와 인사를 하고 술대접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가장 적극적인 총장 직선제 폐지론자는 박재규 경남대 총장이다.지난 94년 직선제의 폐해도 처음으로 제기했다.박총장은 『몇몇 대학의 경우 일부 교수들이 운동권 학생을 부추겨 학교신문에 총장을 비난하는 글을 싣거나 집단행동까지도 사주한다』고 전했다. ○학생 집단행동 사주 구본호 울산대 총장은 『교수사회가 지나치게 정치화되는데다 인기에만 영합하는 총장을 양산,장기적인 발전계획보다는 급여 인상등 단세포적인 공약만 남발한다』고 걱정했다. 김종운 전 서울대총장도 『외부 인사라 하더라도 훌륭한 인물이면 총장으로 영입할 수 있도록 문호개방 차원에서 직선제는 재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한종태 기자〉 □외국에선 어떻게 선출하나 ◎미국/이사진이 주도… 인물 철저히 탐색·검증 미국의 아이비리그 사립명문대학들의 총장선출은 철저하게 소수 이사진의 주도하에 이뤄진다.대신 전세계에 걸친 광범위한 인물탐색과 여론조사를 거치며 거의 1년이 소요된다. 하버드대학의 경우 현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대로 3백여년 전통의 「후임총장물색위」를 즉시 가동시킨다.하버드대의 모든 결정은 총장,감사,5인의 이사로 이뤄진 하버드법인(코포레이션) 소관인데 이 결정은 30명의 동창대표로 구성된 감독위원회의 추인을 얻어야 한다. 총장물색위는 이 법인 7명 및 감독위 3명등 10명으로 구성되는데 90년 5월 보크총장 후임을 고르기 위해 물색위는 하버드와 관련된 인사 25만8천명에게 마땅한 인물을 추천해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고 3백명의 교수,학생들과 면담했다.배경조사등을 거쳐 10명 정도의 최종추천인물이 가려지자 물색위 위원들은 이들과 개별면담을 가진뒤 91년 3월말 이중 1명의 후보를 추천,법인과 전체 감독위의 승인을 거쳐 10개월만에 26번째의 루덴스타인 새 총장을 선임했다.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역시 총장이 사직하게 되면 총장직무대행 체제와 함께 후임물색위를 가동한다.물색위는 총장,이사,동창대표등으로 코포레이션을 구성하고 동창들에게 의견요청 서신을 띄운다.현 레빈 예일대총장,소번 컬럼비아총장 역시 이같은 방식으로 지난 93년4월과 93년 2월에 각각 최종 선임됐다. 이런 광범위한 인물탐색과 철저한 검증,훌륭한 인물을 뽑기위한 여러 단계의 절차들이 학연이나 혈연을 떠나 인물위주의 총장을 선출하고,대학은 물론 미국을 초일류국가로 만든 밑거름이 되게 했다.〈워싱턴=김재영 특파원〉 ◎영국/사전선거운동 없이 교수위원회서 뽑아 영국 최고의 명문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의 경우 총장은 모든 교수들이 직접 뽑는 직선제에 의하지 않고 30여명의 교수들이 구성하는 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선출된다.총장은 학식은 물론 폭넓은 경험과 행정력을 인정받는 인물이 되며 사전선거운동이나 조율없이 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총장의 임기는 4년이며 차기 총장은 2년전에 선출된다.취임하기 전 2년동안은 수습기간인 셈이어서 대학운영에 관한 업무를 익히게 된다. 한편 명예총장은 실권이 전혀 없으며 일반행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들의 업무는 총장을 뽑을때 고작 위원회의 사회를 보는 일정도다. 명예총장은 왕실로부터 경등의 칭호나 작위를 받은 인사들이 주로 맡는다. 옥스퍼드의 현 명예총장인 젠킨스경은 70년대 노동당 당수를 지낸 정계의 거물이다.이처럼 명예총장직은 은퇴한 정치인이나 고위층 인사들이 평생업적을 인정받아 주어지는 말그대로의 명예스런 자리에 불과할 뿐이다. 졸업한 지 5년이 지난 동문들이 모여 모교의 상징적 인물을 명예총장으로 선출하고 있다. ◎불·일/사전조정 제도적 장치마련… 잡음 없어 프랑스의 국립대학과 일본의 대학총장은 직접선거방식에 의해 선출된다.프랑스 국립대학은 85개로 행정위·학술위·연구 및 대학생활위원회등 3개 위원회가 총장선출에 참여한다.각 위원회는 교수·학생·교직원등이 각각 일정비율로 참여하고 있어 대학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이 총장선출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5년 임기의 총장을 선출할때는 행정위의 부위원장이 선거위원장을 맡는다.대학총장은 이들3개 위원회의 위원장을 겸하고 있어 권한은 막강하다. 일본의 경우 도쿄대학 총장은 2단계로 선출된다.우선 학부,연구소별로 선출된 대의원들이 후보자 5명을 추천한다.그다음 5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교수 전체회의가 직선으로 1명을 선출한다.이때 본인에게 수락여부를 확인,수락하면 총장으로 확정된다. 그러나 프랑스와 일본에서 총장선출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어나거나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경우는 거의 없다.그것은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가 우리와는 달라 사전에 조정이 되도록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첫째 사전협의(네마와시)의 사회문화를 지적할 수 있다.일본의 대학에도 친소관계나 파벌등의 갈래가 존재한다.하지만 파벌 또는 그룹들이 사전협의등을 통해 후보 또는 당선자를 조정함으로써 정면대결의 굉음은 일어나지 않는다.도쿄대의 경우 파벌,그룹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로 도쿄대학 총장직은 관료 최고직위인 사무차관보다 높은 대우를 받지만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다.총장이 예산과 인사권을 쥐고 막강한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단과대학(학부)과 전공별로 자치권이 강하기 때문이다. 셋째 총장은 보통 정년이 임박한 교수가 선출돼 4년 임기의 명예직 성격이 짙다.〈파리·도쿄=박정현·강석진 특파원〉
  • 서울 동작갑/“정치를 바꾸자” 사구동성(합동연설 이모저모)

    ◎“공작정치 노하우 가진 인물 단호거부”­서울 종로/“15대 국회서 「정치자금」 청문회 개최” 서울 용산/“아름답고 깨끗한 선거문화 조성 앞장” 서울 서초갑 여야는 총선 선거기간 중 마지막 일요일인 7일 전국 1백63개 선거구에서 일제히 정당연설회를 열고 부동층 흡수를 통한 막판 대세몰이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신한국당 김운환후보와 민주당 이기택 후보가 격돌하는 부산 해운대·기장 갑 연설회에는 2만여명의 청중이 운집,높은 관심도를 반영했다. ▷서울 종로◁ 효제초등학교에서 열린 종로구합동연설회는 3천여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9명의 후보들이 열띤 공방을 벌여 이곳이 「정치 1번지」임을 입증. 국민회의 이종찬후보는 『정치란 인간을 어루만지는 것이지,물건을 사고 팔듯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빼돌려 정보를 캐내는 짓이 아니다』며 이명박후보를 비난.또 북한의 「DMZ 의무포기」와 관련,『정부가 이 사건이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계산아래 국내정치에 이용하려고 한다』면서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절대현혹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 이어 등단한 신한국당 이명박후보는 『다가오는 21세기는 기술경제시대이므로 나와 같은 전문가가 나와야지 공작정치의 노하우를 가진 정치인은 필요없다』고 이종찬의원을 겨냥. ○기술경제 전문가 필요 또 『김대중씨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정권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사람이 지금 호남표를 달라고 한다』『북한의 위협이 심각한 지금 안보를 정치에 이용한다고 비판하는 사람이야말로 과거 5·6공때 안보를 정치에 이용한 장본인 아니냐』는 등 맹공. 자민련 김을동후보는 『국회에 들어가면 종로한복판 왕실터에 있는 일본대사관과 문화원을 외곽지역으로 옮겨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겠다』고 주장. 민주당 노무현의원은 『전직대통령에게 뇌물을 주면서 「신화」를 이룬 이명박후보야말로 노태우씨와 함께 법정에 서야 한다』『과거 군사정권에 몸담았던 이종찬후보는 호남표를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두 후보를 싸잡아 비난. ▷서울 용산◁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3천여명이 금양초등학교에서 열린 서울 용산 합동연설회에 참석,후보자들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연설도중 타 후보운동원의 구호연호에 연설자가 이의를 제기,한때 연설이 중단되기도 했다. 신한국당 서정화후보는 『북한의 군사도발에 여야를 초월해서 대응해야 한다』고 밝힌 뒤 『우리 체제의 불안은 곧 북한의 모험주의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정치안정을 위해 집권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몰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용산을 서울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용산에 거주하며 지역발전에 많은 일을 해낸 인물이 당선되어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 ○집권당 압도적 지지를 국민회의 오유방후보는 『북한의 군사도발을 금방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선거에 악용하지 말라』며 『서울시의 제 1당이 국민회의이므로 자신만이 시청용산유치,이태원관광특구지정 등을 해낼수 있다』고 역설. 민주당 강창성후보는 『북한의 움직임에 너무 서두르거나 충격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정상적인 남북대화를 이루어내도록 해야한다』며 『15대 국회에서는 청문회를 개최,구정치권이 받아 온 모든 정치자금을 밝혀내야한다』고 일갈. 자민련 김재영후보는 『현 정권의 철학없는 개혁으로 인한 총체적인 위기로 안정을 희구하는 국민들이 자민련을 지지한다』며 『국민들의 생활에 불편하지 않도록 여러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약속. 무당파연합 정한성후보는 『8백만원의 가장 적은 선거비용을 사용하는 깨끗한 후보를 뽑아야한다』며 『가장 젊고 패기있는』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 무소속 이천형후보는 『현정권은 많은 정책에서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공격하며 『국민이 잘 살기 위한 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서울 동작갑◁ 서울 동작구 노량진 초등학교에서 열린 동작갑 2차 합동연설회에는 접전 지역답게 3천여명의 청중이 운집한 가운데 4후보가 각기 다른 시각에서 『정치를 바꾸자』고 역설. 첫번째 연사로 나선 민주당 장기표후보는 『지금의 잘못된 정치 풍토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마저도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며 『3김이 주도하는 정치판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며,3김 주도하에서는 지역 분할과 부패 정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나머지세 후보를 싸잡아 비난. 이어 등단한 국민회의 박문수후보는 『신한국당 서청원후보가 1차 연설회에서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했으나 사람이 바뀌고 정당이 바뀌어야 정치가 바뀌는 것』이라며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게 아니듯 신한국당으로 이름만 고쳤다고 정치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일침. 신한국당 서청원후보는 『변화의 시대인 21세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생산성 높은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상식과 순리가 통하는 나같은 사람을 국회로 보내야 21세기를 준비할 수 있다』며 지지를 호소. ▷서울 서초갑◁ 서울 방배초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서초갑 합동연설회는 7백여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후보자들이 마지막 합동연설회임을 의식,열변을 토하는 등 진지한 분위기. 특히 이날 유세장에는 신한국당의 최병렬 후보와 가까운 사이인 김학준 전 청와대대변인,김세원 서울대교수,이상우 서강대교수등이 격려차 참석,눈길을 끌었다. 첫 연사로 나선 신한국당 최병렬후보는 『서초갑은 정치의 태를 묻은 영원한 정치적 고향』이라며 『무너져 가는 한강다리를 바로 세운 서울시장의 경험을 살려 서초를 새로운 서울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이어 등단한 국민회의 조소현후보는『현 정권 출범이후 엄청난 인명이 희생됐다』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하는 정권에 절대로 투표해서 안된다』고 맹공. ○3김 짜고치는 고스톱 민주당 곽일훈후보는 『처음 하는 선거운동에서 야만적인 정치풍토를 경험했다』면서 『꽃과 같이 아름답고 깨끗한정치문화를 건설할 민주당에 표를 몰아달라』고 호소. 무소속 도승희후보는 『당의 눈치를 안보고 소신껏 일하기 위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며 『나라를 망친 3김정치를 청산하기 위해 개혁이 아닌 개벽을 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한 뒤 미리 준비한 삭발기로 서너차례 자신의 머리를 깎는 등 3∼4분 동안 소동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무소속 배종달후보는 『4당 모두「검은 돈」에 깊숙이 관련돼 있다』며 『정치자금의 진실을 밝힐 용기있는 신세대 정치인을 뽑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궁중 유물(외언내언)

    며칠전 뉴욕의 세계적인 미술품경매장에서 「신정왕후 팔순진찬도」란 병풍이 1백17만7천5백달러(한화 9억여원)에 팔렸다는 기사가 보도돼 우리를 서글프게 했다.신정왕후의 팔순을 맞아 궁중에서 베풀어진 연회를 10폭 병풍에 담은 이 그림은 장중하고 화려한 궁중무용과 연주를 세필의 극채색으로 그린 뛰어난 작품.1887년 궁중화원의 그림인데 예정값보다 훨씬 높게 낙찰된 것이다. 세계미술시장에서 우리 궁중그림의 진가가 인정받은 것은 반가운 일이긴 하나 창덕궁이나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어야 할 궁중보물이 국제경매의 대상이 되었다니 한심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절제된 구도와 섬세한 화풍의 작품성 외에도 대왕대비의 팔순잔치라는 자료의 희귀성 또한 독보적이다.이 그림의 주인공인 신정왕후는 바로 헌종의 모후인 조대비로 더 알려진 분. 철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서 고종을 왕으로 즉위케 하고 수렴청정을 했던 당대의 실력자다.40이 되는 해부터 격식을 갖춘 생일 축하연을 열었는데 10년마다 되풀이 했다.그래서 4장의 「진찬도」가 그려졌으나 국내에는 40세때 잔치그림 한장만 남아있을 뿐이다. 궁중의 보물이 어떻게 외국으로 유출됐을까.시기와 경위를 헤아릴 길이 없고 다만 6·25중 또는 그 이후에 유실됐으리라고 추측할 뿐.창덕궁에 수장돼 있던 조선왕조 유물들은 해방과 6·25를 겪으면서 대량 분실됐다.일제때 만들어진 도록에 올라있는 유물들중에 감쪽같이 없어진 것도 많다.심지어 국왕의 직인인 옥쇄도 몇 점이나 잃어버렸다.얼마나 관리가 허술했던가 짐작할만 하다. 조선초기 최고화가인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일본 천리대에 소장돼 있고 신라의 고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우리 연구자들이 그것을 잠깐 볼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강화도 외규장각 고문서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3년전 반환약속을 했음에도 아직 이행이 안되고 있다.답답하고 억울한 일이다.〈반영환 논설고문〉
  • 공무원 복장(외언내언)

    몇해전 서울을 처음 방문한 한 미국 교수가 시민들의 옷차림에 대해 신기한 듯 논평한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남녀 할것없이 대단히 고급스런 옷을 입은 것이 인상적이다.그런데 리무진을 타고 연회장에 가야할 복장으로 만원 버스를 비집고 타고 가는 모습이 신기하다는 얘기였다.출근하는 사람들이 근무복,작업복 차림 같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우리의 복식문화는 뒤죽박죽 상태다.유교의 영향으로 조선조까지는 대단히 까다로워 신분 그리고 때와 장소에 따라 엄격한 격식이 있었다.신언서판,선비가 갖추어야 할 조건 중 첫째인 몸가짐에 물론 옷차림도 포함됐다.백성은 백의민족으로 살았다지만 왕실이나 사대부의 복식은 매우 까다롭고 화려했었다. 그러나 일제 아래선 까까머리에 유니폼식 복장을,그후 6·25전쟁 와중에는 미군 전투복을 염색해 입는 수준의 복식문화 파괴를 경험하게 됐다.그러다 70년대말의 섬유산업 발달로 오늘의 구미패션과 일본 색채가 마구 뒤섞인,때와 장소를 구분치 않는,그리고 외국인 눈에도 지나치게 화려한 국적불명의 복식문화를 갖게 된것이다. 제대로 된 복식문화 부재속에 총무처가 공무원 복장자율화를 시범적으로 실시키로 했다고 한다.일제 유니폼문화가 밴 짙은 감색 정장 일색에서 벗어나 콤비나 색깔있는 와이셔츠차림 또는 넥타이를 매지않는 간소복을 권장한다는 것이다.개방화·세계화 추세에 발맞추고 개성을 존중하며 창의적 발상을 가능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한다. 공무원의 품위를 지키는 범위내서라고 강조하지만 걱정은 남는다.근무기강이 흐트러지지나 않을까,미국식 캐주얼 일색이 되거나 과거 새마을운동복식의 획일적 복장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것 등이다.검소하달 뿐이지 선진국 공직자들도 격식에 맞는 정장이 보통이다.또 간소복이라도 근무복인 한 지켜야 할 서양식 에티켓이나 동양의 예절이 있게 마련이다.국제적으로는 교양없고 국내적으로는 무례한 얼치기 복장이 휩쓸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공무원복장 자유화는 우리 복식문화 개선의 좋은 계기가 되어야 한다.〈황병선 논설위원〉
  • 지일·극일 3·1절 특집 다양

    ◎일 독도 영유권 주장 시점과 맞물려 관심/KBS­재미 다큐작가 크리스틴최의 「남경대학살」/MBC­독도 둘러싼 한·일분쟁 예고 「표충비의 비밀」/SBS­「3·1절 바로세우기」·드라마 「국화와 칼」 방송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한·일 양국이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올해 3·1절에는 그 어느해보다 많은 기획특집물이 홍수를 이룰 전망이다. 우선 KBS­1TV는 24일 하오 7시30분 「역사추리­서삼릉 태실에 관한 사연」(이상출 연출)을 방송한다. 태실이란 왕실의 안녕과 국가의 번영을 위해 전국의 명당자리를 골라 임금과 왕자·공주등 왕손의 태반과 탯줄을 봉안해놓은 곳.일제 총독부가 조선조 왕과 왕자·공주의 태반과 탯줄 53위를 모아 공동태실을 만들었던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을 찾아 일제가 공동태실을 만든 이유와 또 태를 넣었던 항아리들이 모두 사라진 이유를 추적해 본다. 25일 하오 8시 1TV 「KBS 일요스페셜」시간에는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작가로 이름을 떨치는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틴 최가 제작한 「제국의 이름으로­남경 대학살의 기록」을 방송한다. 샌프란시스코 필름페스티벌에서 특별심사위원상을 받기도 한 이 프로그램은 학살당한 시체와 강간당한 여인의 모습등 남경 대학살 당시의 참혹상을 생생하게 담고있는 미국인 선교사 존 매기의 기록필름에 뉴욕타임스지 기자였던 틸단 듀어딘,한국인 정신대 송신도 할머니,남경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됐던 우에하 후치로,나카토미 하쿠도,아주마 시로 등의 증언을 곁들여 재구성한 것이다. MBC­TV 「논픽션 30」(윤혁 연출)은 25일과 3월3일 상오 8시30분에 2부작 「땀나는 비석­표충비의 비밀」을 방송한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재난을 경고한 것으로 알려진 경남 밀양의 표충비(일명 영당비)를 찾아 1894년 동학농민전쟁 발생 7일전 처음으로 땀을 흘린 이래 최근까지 1백여년동안 수십차례에 걸쳐 땀을 흘린 기록을 되짚어 보고 비석에 얽힌 비밀을 추적한다.또 지난 1월14일에도 땀을 흘려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분쟁을 예고했다는 소문의 진상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26∼28일 하오11시에는 우리 민족의 애환과 영광을 담고있는 전통민요 아리랑의 종적을 찾아가는 특집 다큐멘터리 3부작 「아리랑 아라리요」(송승종 연출)를 방송한다. 해외편,김산·나운규편,국내편으로 나누어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 저자 님 웨일스의 「아리랑」기록들을 통해 미국·일본·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필리핀 등지에 퍼져있는 「아리랑」을 찾아 한민족의 징표임을 확인한다. SBS­TV도 29일 밤 12시10분 「시사 포커스」(박래양 연출)시간에 「3·1절 바로세우기」란 주제로 우리가 갖추어야할 바람직한 대일 자세를 되짚어 보는 한편 3월1일 낮 12시30분부터는 일본 극우세력들의 실체를 파헤쳐 호평을 받았던 2부작 드라마 「국화와 칼」(장형일 연출)을 앙코르방송할 예정이다.
  • 마지막 왕세손(외언내언)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공이 63년 일본에서 환국할 때 그는 병상의 몸이었다.11살때 이토(이등) 통감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고국을 떠난지 56년만에 실현된 영구귀국이었다.김포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차안에서 영친왕은 『고국의 푸른 하늘을 보고 싶다』며 앰뷸런스 커튼을 젖혀달라고 했다.국민들은 그를 「비운의 황태자」라고 불렀다. 영친왕은 26대 고종황제의 셋째 아들.순종이 후사가 없었으므로 황태자로 책봉되었으나 3년 뒤 왕조가 망하는 비운을 겪는다.망국의 황태자는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일본왕실의 귀족인 방자여사와 결혼을 하게되고 왕세손을 낳는다.조선왕실의 재기나 백성들의 왕정 복고를 철저히 막기위해 일제가 취한 정략결혼이었다.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를 대마도 도주에게 강제결혼시킨 것과 같은 술책이었다. 영친왕의 아들은 당연히 왕세손이 된다.왕조시대라면 세자가 되고 때가 되면 왕위에 오르는 길이 열려있는 신분이다.그 마지막 왕세손 이씨가 17년만에 귀국하여 13일 역대왕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종묘를찾아 인사를 올렸다. 웅장한 건물앞 드넓은 어떠했을까. 왕조가 없어진 지금 왕세손이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왕자의 상념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으리라. 일본에서 태어난 이씨는 미국 MIT대학에 유학해 건축학을 전공했으며 미국여성 줄이아와 결혼했었다. 그러나 오랜 별거끝에 이혼했으며 국내에서 사업을 하다 실퍄한 뒤 한국을 떠났었다. 이번 귀국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의 주선에 의해 이뤄졌고 이씨종약원 총재로 추대된 상태라 영구귀국으로 보여진다. 귀국후 생활대책에 대해서 아직은 아무런 보장이 없다. 이씨는 오랫동안 일본에서 일전한 직업없이 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종약원이 그를 불러온것도 국내 정착을 권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오랜 방황끝에 고국에 돌아온 마지막 왕세손이 해마다 가행되는 종묘제례의 제주가 되어 이땅에서 당당한 자세로 여생을 살아가기 바란다.
  • 일본은 「국가 폭력」 핏줄을 잇는가(박갑천 칼럼)

    어느 겨레고 역사는 영욕으로 엇결린다.특히 우리처럼 힘이 약했던 겨레에겐 굽잡혀지낸 아픈 자국이 더 많을밖에 없다.고려때 원나라에 여자를 바쳐야했던 일도 그것이라 하겠다. 고종때 쳐들어온 그들은 동남동녀를 요구한다.그후로도 까딱하면 여자를 바치라 을러대므로 고려조정에서는 「과부처녀 추고별감」이라는 이름의 희한한 관아를 만들어 그일을 맡게 했을 정도다.충렬왕∼공민왕때까지의 80년동안 그 문제로 사신이 50여차례나 갔다왔다 했다지 않던가.원제국을 뒤집어놓은 요화 기황후도 끌려갔던 공녀아닌가 생각되고 있다.쓰린 역사는 근대에 들어서도 더 살똥스럽게 되풀이된다.태평양전쟁때 일제가 군대위안용으로 조선처녀들을 강제로 그러모아 일선으로 보냈던것 아닌가.원나라때는 그래도 왕실이나 귀족의 후궁·궁녀·시첩·시비로 되었다.한데 일제는 불특정다수인의 욕구배설에 충당했으니 버력입어 마땅할 무도함이었다. 제1차 십자군원정(1096∼99)에 따라간 여자가 5천명이었다 한다.또 알브레히트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 슈트라스부르크에 입성했을때(1298)는 8백명이,스페인 알바공의 네덜란드원정때(1567)는 말탄 여자 4백명과 걷는 여자 8백명이 따라갔다.그러나 그들은 매춘부.한데 일제가 끌어다 망가뜨린건 우리 처녀들이었다. 일제는 그들을 일러 정신대라 했고 지금도 그리 부른다.하지만 「정신」이란 말뜻은 고약하다.소동파의 유후론등에 의할때 『남보다 앞서 자진하여 나아감,솔선함』같이 쓰이니 말이다.끌려간 것도 분하고 억울한데 앞장서 자진해 간 걸로 표현되다니.「조선조」를 「이조」라 하는 따위 독소섞인 그들의 말을 무심코 쓰는 사례가 「정신대」.달리 갈음됐으면 한다. 오는 3월께 유엔인권위가 『이른바 정신대는 국가에 의한 폭력이자 비인도적 전쟁범죄』라 규정한다고 들린다.보상도 「위로금」 아닌 「법적배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한다.그러나 배상으로 된다해서 짓밟힌 한살이가 보상되겠는가.참으로 잔인한 「국가폭력」이었다. 민주화했다는 오늘의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의 미화등 국가폭력의 맥을 잇는 작태를 곧잘 내발려온다.독도를 자기들땅이라 우기는 것도 침략주의 조상의 핏줄을 이은 떼거리.이웃으로 생각하려는 마음을 쓰렁쓰렁하게 만드는 그들이 아닌가.시마네켄(도근현) 고시보다 3백60여년이 앞선 「패관잡기」에는 대마도가 우리땅이더라마는.
  • 도자기 시제(외언내언)

    우리나라는 「도자기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일찍부터 자기가 유명했다.세계적으로 예술성이 널리 알려진 고려청자의 비색은 청자의 원산지 송나라에서 조차 「천하제일」로 인정했을 정도.청자를 이은 조선백자와 분청사기도 도자예술의 극치로 일컬어진다.일본인에게 최상급의 보물로 예찬되는 「자왕」은 조선초기 만들어진 막사발같은 수수한 그릇. 그동안 세계도자기시장에서 중국자기에 가려져있던 한국의 도자기가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지난해 크리스티국제경매장에서 24억원에 팔린 조선시대 청화백자 접시는 도자기값으로는 세계최고의 기록.조선초 분청사기의 대담하고 자유분방한 그림은 20세기 미술의 거장 피카소의 그림에 견주어지고 있다. 18세기초까지도 유럽에서 자기는 귀족이나 왕실등 상류사회의 전유물이었다.자기를 만들줄 몰라 주로 중국에서 수입해 충당했는데 형평저울에 금과 같이 달아서 팔았다고 한다.그야말로 「금값」이었다.17세기초 일본 지방제후들인 다이묘(대명)의 경제적 번영은 임진왜란때 납치해간 조선도공들의 도자기 덕분이었다는게 지배적 설이다. 조선후기에 단절된 도자의 전통은 최근 30년동안 전국 도처에서 되살아나 전통도자의 맥을 잇고 있다.청자의 지순탁,백자의 유근영 같은 뛰어난 도공들도 배출했다.옛 전통을 되살리는 지역 가운데 이천의 도예마을은 가장 유명하다. 1백40여개의 도자기가마가 밀집해 있고 매장과 전시장이 즐비한 한국전통도예 1번지.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들에게 필수코스로 돼있다. 이곳에서 오는 10일까지 「흙과 불의 잔치」인 도자기 축제가 열리고 있다.도자기를 문화관광 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문화체육부가 기획한 관광이벤트다.도자기 제작과정도 볼 수 있고 재래식가마에 장작불 지피는 모습도 보여준다.세계적인 도자기 수출국인 일본과 영국의 도자산업을 부러워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도자 종주국」의 체면과 전통을 되살려야 할게 아닌가.
  • UNDP 인간개발보고서 워크숍 참관기

    ◎“여성 지위향상” 국제사회 핵심이슈로/인간·여성개발지수 공표… 세계 여론 환기/여성차별 철폐·정치진출 확대 등 열띤 토론 UNDP(국제연합 개발계획)의 「95 인간개발보고서」아시아태평양지역 발표회및 워크숍이 25∼26일 태국 방콕에 있는 UN컨퍼런스센터에서 열렸다.「인간개발보고서」는 UNDP가 세계 1백50여개국의 평균수명·교육·소득수준을 지수화,국가별 인간개발순위를 발표함으로써 해당국가와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키는 연례 행사.올해 제6차 보고서는 세계 최상위 여권국으로 랭크된 노르웨이의 브룬틀란트수상(여)이 세계 발표행사를 유치,지난 18일 오슬로에서 처음 발표됐으며 방콕에서는 후속행사로 진행됐다. 26일 거행된 아시아지역 발표행사에는 태국왕실의 셋째 공주인 츌라폰공주가 참석,태국의 여성개발지수 상위권 진입(33위)을 자축했다.또 네이 튠 UN사무부총장겸 아시아·태평양지역 부행정관,인간개발보고서 연구책임자인 마후 울 하크 전 파키스탄 재무부장관등 UN관계자와 각국 외교사절이 참석,북경 세계여성대회를 앞두고 열린 이 행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반영했다. 또 워크숍에는 한국 중국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 피지등 13개국 정계,관계,언론계,학계,여성계 인사 40여명이 참석해 보고서에 대한 분석과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는 저명한 국제경제학자이기도 한 마후 울 하크박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폭넓은 식견과 진취적인 시각으로 토론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올해 UNDP의 인간개발보고서는 종전의 인간개발지수(HDI)외에 여성 관련 부분을 추가한 여성개발지수(GDI)와 여성의 정치·경제고위직 진출지수(GEM)를 처음으로 산출,여성의 발전정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하크박사는 『인간개발은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선택권을 확대해 주는 과정이며 따라서 여성이 그 혜택에서 제외된다면 이는 진정한 개발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여성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고자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평가결과 HDI상위 10개국은 캐나다 미국 일본 네덜란드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이 차지했다.그러나 GDI상위 10개국은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미국 호주 프랑스 일본 캐나다 오스트리아가,GEM 상위10개국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캐나다 뉴질랜드 네덜란드 미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차지,북구의 여권강세를 입증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국민소득과 성차별 철폐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난 점이다.예를 들면 중국은 GDI10위로 소득 5위인 사우디(81위)보다 상위에 올랐고 태국은 소득은 스페인의 절반이면서도 GDI는 스페인을 앞질렀다.또 폴란드는 시리아와 소득은 같으나 GDI는 50위가 높았다.하크박사는 이를 확고한 정치적 개입이 여성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한국은 HDI31위,GDI37위로 인간개발은 됐으나 의회의석수 1%,행정·관리직 4.1%로 GEM 90위를 기록,정치·경제활동 참여기회가 지극히 저조한 국가로 지목됐다. 워크숍에서는 또 여성노동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거나 무시되고 있는 현실이 과학적 수치로 분석되고 이에 대한 개선노력이 촉구되었다.즉 31개국의 통계자료를 분석한결과 여성은 개도국 전체 노동량의 53%,선진국 전체노동량의 51%를 수행함으로써 남성보다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남성노동의 3분2는 보수를 받는 노동이었으나 여성노동의 3분의 2는 보수가 없는 가사노동이거나 지역사회 활동으로 나타났다.가사노동과 같이 화폐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은 세계적으로 16조달러(세계총생산량 23조달러의 70%에 해당)에 이르며 이중 11조달러가 여성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나 이는 경제통계에서 무시되고 있다.여성은 임금도 남성의 4분의 3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은 전체 빈곤계층 13억중 70%가 여성이고 세계 총재산의 1%만이 여성몫이라는 현실을 낳는 배경이 되고 있으며 여성을 국가정책에서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분석됐다. 따라서 워크숍은 평등사회 실현을 위해 ▲강력한 여성차별 철폐정책 ▲법률적 지위향상 ▲세계은행등 금융계에서 경제주체로서 여성의 신용인정과 융자 실시 ▲국민총생산 산정에 가사노동 포함 ▲정부의 여성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필요하다고 결론짓고 이를 북경여성대회에서 강력히 제시하기로 했다. 이번 워크숍은 한국여성의 지위를 자문해보는 계기가 됐으며 토론에 임하는 남녀참석자들을 통해 여성문제가 국제사회의 핵심이슈로 떠오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이도학 박사,저서 「…고대국가 연구」서 주장

    ◎“백제뿌리는 고구려 아닌 부여”/4세기에 2차 남하… 3년만에 비약적 발전/국호변경·왕성계보·모제등을 근거로 제시 한국 사학계에서 가장 논문을 많이 내는 학자,새 학설을 가장 자주 발표하는 학자로 꼽히는 이도학 박사(38)가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모은 저서 「백제 고대국가 연구」를 최근 냈다(일지사 출판).백제사를 포괄적으로 다룬 국내 학자의 연구서가 많지 않은 학계 현실에서 이 책은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저서에서 이씨는 지난 10여년동안 발표한 논문 40편을 바탕으로,백제의 기원에서 4세기 집권국가 체제를 확립하기 까지의 과정을 새롭게 구성했다.그가 세운 백제사의 틀은 다음과 같다. ­백제 세력은 원래 부여족의 한 갈래로 서기 1세기 무렵 남하,한강 유역에 마한 소국 가운데 하나인 「백제」를 형성한다.이어 4세기 때 중국 동북부에서 활동하던 부여족 일파가 또 백제지역으로 남하한다.한뿌리에서 나온 두 세력은 충돌없이 타협해 「백제」를 형성한다.2차 남하집단은 철갑으로 중무장한 기마병단으로서,우월한 무력을 바탕으로 마한제국을 정복해 나간다.이것이 「일본서기」에 기록된 근초고왕의 마한 정벌이다.이후 백제는 노령 이북을 통치하는 한편 가야와,영산강 일대 마한 잔여지역에 대해서도 통치권을 간접 행사한다.이같은 세력확대를 바탕으로 백제는 국내에서는 율령을 정비하는 등 집권체제를 확립한다… 이씨의 이론틀을 구성하는 부분부분들은 각기 논문으로 발표될 때마다 학계로 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은 새 학설(신설)들이다.이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받은 학설이 「4세기 부여족의 2차남하로 백제가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는 주장이다.「정복국가론」이라고 부르는 이 학설을 일본·미국 학자들이 일부 제기하긴 했지만,이씨가 이를 구체적으로 입론했다. 그는 『4세기에 백제는 한차원 높은 국가적 발전을 이루는데 이에 소요된 기간이 3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이는 외부 세력 영입없이는 불가능하며,그 「외부」의 정체는 만주의 부여족 일파(곧 백제족)라고 주장한다.그 근거로 「백제가 요서지방을 점령,한동안 통치했다」는 중국 사서 기록을 든다.이사료는 그동안 「백제 요서경략설」의 토대가 돼 왔지만 이씨는 거꾸로 「한반도 백제 세력이 요서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백제족이 원래 만주에 있었다」는 증거로 해석한다.그는 자신의 설을 한국·중국의 문헌과 고고학적 성과로 뒷받침하고 있다.이씨는 4세기에 백제 왕실이 교체됐으며,이에 따라 백제사는 마한 소국 단계인 「백제」와,고대국가를 완성한 「백제」로 구분된다고 결론지었다. 「정복국가론」못지않게 중요한 학설이 백제의 기원을 부여에서 찾은 것.학계 통설은 백제를 고구려계로 보았지만 이씨는 백제 개로왕의 상표문,묘제,백제의 왕성,「남부여」로의 국호변경등을 근거로 제시했다.이밖에 ▲백제 「칠지도」의 기본성격 ▲고대국가에서 소금교역,제의권이 갖는 역할을 밝힌 것들이 이씨가 세운 주요 학설들이다. 지난 91년 「백제 집권국가 형성과정 연구」로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씨는 요즘 연세대·한양대등에 출강하고 있다.그는 『백제의 집권체제 확립후 백제말까지를 다룬 후속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그 작업이 끝나는대로 『고조선에 버금가는 노대국이자 고구려·백제의 뿌리』인 부여사 연구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 일 정부,한­일합병때 관리 매수/서지학자 이종학씨 비밀전문 공개

    ◎시종원경 윤덕영 최소 50만원 받아/국호·황제 명칭 일방변경도 밝혀져 한일합병때 합병 조인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조선의 시종원경 윤덕영을 일본정부가 매수한 사실을 밝혀주는 자료가 공개됐다. 서지학자 이종학씨는 10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일합병이 되던 1910년8월8일부터 10월14일까지 초대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다사케(사내정의)와 가츠라 타로(계태낭) 일본 총리대신이 주고받았던 비밀전문 2백91건을 공개하면서 일본정부의 윤덕영 매수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모두 3백45쪽에 달하는 이 비밀전문은 이씨가 지난 연말 일본 도쿄의 국립공문서관에서 발굴한 자료로 그동안 번역작업을 벌여와 이날 부분적인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데라우치가 가츠라에게 1910년8월21일 보낸 전문에는 『임시 은사금의 분배방법중 윤덕영 부채정리에 관한 분을 공채로 교부함은 사정에 적합지 않다고 인정되므로 윤덕영에 대해 20만원이내 현금으로 교부해 이를 처분코저 함.그러므로 먼저 지출을 원했던 임시기밀비 1백만원외 다시 50만원을 지출해줄 것을바란다』고 적혀 있다.이에 대해 다음날인 8월22일 가츠라는 데라우치에게 전문을 보내 『사정이 부득이 하다고 생각되므로 이번에 다시금 50만원을 추가지출하는 것으로 했다』고 말해 당시 왕의 비서직인 시종원경 윤덕영이 한일합병에 앞서 일본측에 매수당해 최소한 50만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함께 공개된 전문에는 합병전부터 일본정부가 한국의 국호와 왕실호칭을 정해가는 과정을 담은 극비전문도 포함돼 있다. 8월17일 데라우치가 가츠라에게 보낸 전문에는 『지난번 통감부 촉탁을 시켜 올려보낸 칙령안에 「한국의 국호는 이를 고쳐 지금부터 조선이라 칭함」으로 고쳐 조약공포와 동시에 공포하고저 함』이라고 밝혀 합병후 우리 국호의 변천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 고문서·시­화첩등 거의 문화재급/반환목록으로 살펴본 데라우치 문고

    ◎최치원·정몽주 서신­이수광·김생 시 포함/한일 수교30년 맞아 반환교섭 결실 예상 일본정부가 이달초 데라우치문고 일부 자료의 내용을 수록한 마이크로 필름과 문고 총목록을 우리측에 전달해옴에 따라 일본에 빼앗겼던 우리의 희귀고문서·서화집 등의 반환이 한발 가까워졌다. 일본측이 건네준 데라우치문고의 목록은 2백쪽짜리 단행본 두권분량으로 문화재급 사료 3천여점의 제목이 수록돼 있다.그러나 문고의 규모가 방대한데다 중국·일본의 고문서도 섞여 있고 내용별 분류가 돼 있지 않아 우리측 전문가를 동원,장시간에 걸쳐 우리 문화재를 따로 추려내는 작업을 벌여야 했다. 정부는 완성된 우리측 자료목록을 기초로 대일 협상창구인 한일의원연맹을 통해 반환받기를 바라는 문화재목록을 일본측에 전달할 예정이다.이어 양국간 협상을 통해 귀중한 우리 고문서들이 80년만에 환국하게 된다. 데라우치문고는 일본의 초대 조선총독(1910∼1916)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조선과 중국·일본 등에서 수집해 일본으로 가져간 문화재급 고문서·서화집등으로 그의 아들 수일이 고향인 규슈 야마구치현의 여자대학교에 기증해 오늘날까지 보관돼오고 있다. 데라우치의 조선문화에 대한 관심은 집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그는 총독으로 부임하기 전인 1902년 조선내 철도회의 의원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이미 조선의 문화재 수집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총독에 취임한 1910년부터는 서적 전문가인 공등장평과 흑전갑오낭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고문서 수집에 나섰다. 수집자금은 주로 왕실로부터 받은 하사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데라우치의 고문서수집에는 돈에 눈먼 조선상인들이 동원됐는데 김생과 최치원의 서신을 담아 귀중본 간찰집으로 꼽히는 「명현간독」은 일금 80원에 넘어간 것으로 목록의 해설란에 기록돼 있다.데라우치는 이와 함께 당시 일본 경찰의 조직까지 동원,김석문을 조사하고,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의 조사와 보수·복각 등을 시도하기도 했다.특히 데라우치는 해인사 대장경판을 세부 인쇄,그 한부를 비단으로 싸서 일왕의 명복을 비는 교토 천용사에 봉헌하기도 했다. 데라우치문고가 우리에게 돌아오게 된것은 한일 양국이 국교정상화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교섭을 벌여온 결과다.양국은 정부차원의 교섭이 자칫 양국 국민의 감정을 건드려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일의원연맹등 행정부 이외의 채널에 협상을 맡겼다. 지난해 데라우치문고가 소장돼 있는 야마구치현립여대를 방문,이들 자료를 점검하고 돌아온 태동고증연구소의 임창순소장은 『목록을 보니 눈이 휘둥그래질 만큼 놀라웠고 한편으로 이것이 일본사람 손에 들어간데 대해 분개하고 애석한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러나 어느 것이 우리에게는 남아있지 않은 자료이며 또 어느 것이 얼마나 귀중한 문화재인지 충분한 검토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환교섭에 앞서 직접 면밀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환추진 데라우치문고의 주요 한국문화재 우리정부와 전문가들 분류에 따르면 데라우치문고내의 우리 문화재는 고문서와 책·간첩류·시첩류·개인서첩·서화첩등으로 분류된다. 고문서와 책들은 다시 교지와 녹봉교지·호적단자·명문·화회문기등으로 세분된다.교지는 정부의 사령장으로 1869년 조석여의 황해도관찰사 제수교서,1790년 강세황의 정헌대부교지·녹봉교지등이 포함돼 있다. 호적단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암행어사 박문수집안인 고령 박씨 종중 1704년부터 1791년까지의 가계를 기술하고 있다.또 전답이나 노비매매문서인 명문은 19건으로 1672년에서 1889년에 이르는 2백년간의 매매문서가 포함돼 역사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화회문기는 재산분쟁을 해결하는 특이한 문서인데,어사 박문수의 할아버지인 박장원의 외가 형제가 모여 유산을 분배하는 과정을 기록한 1건이 수록돼 있다. 물론 이러한 전문적인 문서와 함께 신라·고려와 조선조때 간행된 우리의 대표적 문집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으며,중국에서 발간된 자치통감을 우리나라에서 장정한 서적도 눈에 띈다.또 기사본말 서체로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기술한 작자미상의 「임진란」6책도 있다. 편지모음인 간첩류 가운데는 신라의 김생·최치원을 위시해 고려와 조선초기 인물들의 서신을 작품으로 모은 12첩짜리 「명현간독」이 단연 백미로 꼽힌다.이색·정몽주의 서신도 수록돼 있다. 또 시집인 시첩은 선비들이 연회때 지은 작품,혹은 왕명에 따라 지은 시들이 주류를 이룬다.이와 함께 서울에서 지방으로 전보되어 부임하거나 외국에 사절로 갈 때 동료나 친우들이 지어준 송별시들도 눈에 띈다. 이 가운데 1646년 민성휘가 진하부사로 북경에 갈 때에 이호민·이수광·홍서봉·김육등이 지어준 「정해부연첩」이 백미로 꼽힌다. 서화첩으로는 순조의 왕세자가 태학에 입학하는 의식을 그린 「정축입학도첩」이 중요한 자료로 분류된다. 지난해 정부대표로 데라우치문고를 점검하고 돌아온 문화체육부의 최순희문화재전문위원은 『문고에 소장된 우리나라 도서는 국내에 없는 것이 많고 고려말의 귀중한 문서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서간문이 많아 데라우치가 서책이나 고문서보다는 서간문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 아·아 정상 13명과 개발경험 환담(김대통령 유럽순방 여로)

    ◎저마다 면담 신청해와 만찬합석 낙착/국가위상 반영… 정상외교 새장 열어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WSSD)에 참석하기 위해 10일(이하 현지시간)덴마크의 코펜하겐에 도착한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저녁 13개국 정상들을 초청,만찬을 베풀었다. 이는 김대통령의 코펜하겐 체재기간이 2박3일에 불과해 면담을 희망해 온 각국 정상을 개별적으로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김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청와대 관계자들은 밝혔다. 특히 우리나라가 다자간 회의에 참석한 다수의 정상을 한자리에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서 한차원 높아진 우리의 위상을 반영함과 함께 정상외교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기 넘친 2시간 ▷13개국 정상 초청만찬◁ ○…네팔의 아디카리 총리와 중앙아프리카의 파타세 대통령 등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정상들이 초청된 가운데 코펜하겐의 사스 스칸디나비아호텔에서 열린 이날 만찬은 하오 7시부터 9시까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 김대통령은 만찬 시작 10분전 호텔에 도착,접견장인 2층「아이슬란드 룸」입구에서 속속 도착하는 정상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교환한 뒤 접견장으로 안내. 특히 페루의 후지모리대통령과 보츠와나의 마시레대통령등 취임후 우리나라를 방문한 정상들에게는 『또다시 만나게 돼 반갑다』고 인사. 김대통령은 이어 정상들과 칵테일을 들며 30분 남짓 국제정세등 상호관심사에 관해 환담을 나눈 뒤 기념촬영을 하고 옆방인 「덴마크 룸」으로 자리를 옮겨 만찬을 시작. 김대통령은 만찬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그동안 꼭 만나자고 하였으나 여건이 닿지 못했던 우방 지도자 여러분을 오늘 이렇게 한자리에 모시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언급. 김대통령은 이어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독립한 대한민국은 곧 이어 전쟁의 참화를 겪었으며 이에 따른 극심한 빈곤과 실업을 경험했으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따뜻한 도움을 바탕으로 피땀어린 노력을 기울여 온 결과 산업화와 사회개발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우리의 개발경험을 소개. 김대통령은 『오늘 이자리에 모인 정상들은 비록 여러면에서 서로 다른 여건에 처해 있지만 더불어 잘 사는 지구촌을 만들기 위해 손잡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 만찬을 끝낸 김대통령은 다시 「아이슬란드 룸」으로 자리를 옮겨 정상들과 후식을 들며 잠시 환담을 나눈 뒤 작별인사를 나누며 일일이 배웅.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이날 만찬에 대해 『다수의 정상을 한꺼번에 초청한 정상외교활동은 지금까지 미국등 강대국들만이 해온 것』이라고 상기시키고 『우리가 처음 시도했음에도 불구,13개국 정상이 참석했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층 높아진 우리의 위상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 특히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등 한반도 주변 「4각 외교」의 틀을 넘어 새로운 외교목표를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는 게 현지 외교가의 일반적 시각. ▷코펜하겐 도착◁ ○…김대통령은 2박3일동안의 영국방문을 마치고 이날 상오 특별기편으로 런던근교 히드로공항을 출발,코펜하겐의 카스트룹국제공항에 안착. ○유엔의전관이 영접 히드로공항에서 김대통령 내외는 왕실대표로 나온 트럼핑턴 남작(여)의 안내로 귀빈실로 이동,영국왕실및 정부대표들과 환담을 나누며 『방문기간동안 배려를 아끼지 않은 영국국민과 정부에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표시. 김대통령 내외는 이어 노창희 주영대사의 안내로 한인회장 등 우리측 환송인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해리스 주한대사 등 영국측 환송인사들과 악수를 나눈 뒤 트랩에 올라 환송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 특별기에 탑승한 김대통령은 2시간만에 카스트룹 공항에 도착,덴마크 고위관리및 유엔의전관의 영접을 받으며 2박3일동안의 공식방문 일정을 시작. 한편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는 이날 하오 코펜하겐의 탁아소를 방문. ▷영국총리만찬◁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9일 저녁(현지시간·한국시간 10일 상오) 메이저 영국총리가 총리관저에서 베푼 공식만찬에 참석한 것을 끝으로 영국 방문일정을 마감. ○관례따라 취재 불허 김 대통령은 만찬이 끝난 뒤 숙소에서 공식수행원들로부터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에 대비한 보고를 받고 회의자료등을 검토. 김 대통령은 만찬에서 『한국전쟁 때 용맹한 영국 용사들은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상기시키고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 대한 친밀감에 따라 우리 국민은 영국을 가장 중요한 우방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고 강조. 영국측은 이날 만찬에서 오랜 관례를 이유로 사진기자들의 촬영을 잠시 허용한 대신 취재는 사절. ○전통민화 1점 기증 ▷손여사 대영박물관관람◁ ○…대통령 부인 손여사는 9일 하오 런던의 대영박물관을 관람. 손여사는 박물관측 관계자가 앞으로 설치될 한국관에 전시할 관음도 불경 병풍 고려청자 신라시대 귀걸이를 보여주며 개관계획을 설명하자 『두나라 관계가 더욱 발전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인사. 손여사는 대영박물관의 한국어안내책자를 살펴본 뒤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진 전통 민화 1점을 기증하고 기념촬영.
  • 사람마다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박갑천 칼럼)

    현재의 지구촌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프랑스의 잔 칼망 할머니.며칠 전 1백20번째 생일을 맞았다.그는 『좋잖은 일 잊고 사는 게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한다.태어난 해 1875년이 어느 때인가.우리의 경우 운양호사건이 있던 해이고 영국이 수에즈 운하 주권을 매수했던 해이기도 하다. 그 이상을 살았다는 사람 얘기가 더러 나오지만 「확인된 나이」로들 보지는 않는다.그래서 기네스북(93년판)은 「확실하게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일본의 시게치요 이즈미 할아버지를 꼽는다.1986년 타계한 그는 1백20살 2백37일을 살았다.이미 1백20살을 산 칼망 할머니가 얼마를 더 살아 이 기록을 깰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1백20살이라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어우야담」에 쓰여있는 이야기이다.신희남이란 사람이 아직 생원일 때 한 유생이 아랫집에 살았는데 70살이었다.50년 후 그가 경기감사로 되었을 때 그 유생이 찾아왔다.나이를 물으니 영락없이 1백20살이라 대답했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운 것은 일본 왕실의 옛날 왕들 나이이다.그들의 기록(예컨대 평범사백과사전)에 의하면 초대왕 진무(신무)는 1백26살을 산 것으로 되어있다.5대 고쇼(효소)가 1백13살,6대 고안(효안)은 1백36살,7대 고레이(효령)는 1백27살을 살았다는 식이다.이를 곧이들을 사람은 없을 듯싶다.그들의 역사연대를 꿰어맞추느라고 저지른 왜곡이었다 함이 옳을 것이다. 「사재척언」에 쓰여있는 진천 강혼(진천강혼)과 연성 김준손의 대화가 재미있다.연성이 진천보다 10살이 위였는데 함께 술을 마시다가 화제가 수명에 미쳤다.진천이 연성에게 『공은 나이가 많아서 나보다 먼저 죽을 것이니 앞으로 염라대왕을 조심하라』고 조롱했다.이에 대해 연성은 『들으니 염라대왕이 근래 마음병이 생겨 사람 잡아가는 데도 덤벙대는 통에 선후의 차례를 못가리는 까닭으로 젊은 사람이 먼저 많이 죽어간다』고 대꾸했다. 1백살을 넘어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 가는 걸 보면 연성이 했던 말은 맞는다는 것인가. 사람은 대체로 오래 살기를 바란다.하지만 반드시 오래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듯하다.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고 숨 거두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복 아닐는지.수즉다욕이라는 말은 또 왜 나왔겠는가.사람이 오래 사느라면 겪지 못할 일 겪게도 되는 게 인생사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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