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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다수당 돼 ‘盧 정책’ 다 뒤엎겠다는 민주당

    민주통합당이 주요 국책사업에 잇따라 제동을 걸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집권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겠다더니, 그제는 총선서 다수당이 돼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방침까지 흘렸다. 두 사안 모두 참여정부 때 입안, 추진해 온 정책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잇겠다는 민주당이 참여정부의 약속을 모두 뒤집어 신뢰의 위기를 자초해서야 되겠는가. 얼마 전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대거 주한 미국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한·미 FTA 무효화 ‘시위’를 벌였다. 여론의 역풍을 맞자 재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 애당초 FTA 폐기 주장이 무리였음을 자인한 꼴이다. 노무현 정부 총리로서 FTA 반대 시위를 강력히 비판했던 한명숙 대표가 폐기론을 입에 올리니 어느 국민인들 어리둥절하지 않았겠는가. 백번 양보해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으로 이익균형이 일부 깨졌다고 치자. 노무현 정부 때나 지금이나 수출,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 처지는 그대로인데 어떻게 발효를 앞둔 협정문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자는 주장을 하는 것인가. 제주 해군기지 사업 전면 재검토를 4·11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려는 움직임도 도를 넘긴 마찬가지다. 참여정부는 2007년 우리의 해양주권과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당시 노무현 정부의 각료였던 김진표 원내대표가 이제 와서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한다. 중국이 동중국해 순찰에 3000t급 순찰함을 투입하는 등 중국과 일본의 해군력 강화 움직임을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민주당으로선 시민단체와 연대하기 위해 ‘총선용 접착제’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정략적 차원에서 보면 한·유럽연합(EU) FTA는 문제 삼지 않으면서 한·미 FTA 무효화만 외치는 까닭을 짐작할 만도 하다. 핵안보정상회의를 코앞에 두고 원전 신규 건설을 반대하는 배경도 같은 맥락일 게다. 하지만 수권정당이라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탄소배출량이 규제되는 상황에서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에너지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야, 표만 의식한 정략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익을 생각하는 공당이라면 자신들의 ‘브랜드 정책’을 상황에 따라 뒤엎는 자가당착을 보여선 안 될 것이다.
  • “대학 = 공공재 인식 놀라워… ‘반값운동’ 배울 것”

    “대학 = 공공재 인식 놀라워… ‘반값운동’ 배울 것”

    “서울시립대가 ‘반값 등록금’을 시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 대학평가연구회 소속 와타나베 아키오 고베대 교수는 한국의 반값 등록금 운동이 놀랍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교수들과 함께 반값 등록금 운동을 배우러 한국을 찾았다. 일본 대학평가연구회는 2004년 일본 국공립대 법인화 이후 대학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평가 기준을 만들기 위해 결성한 학술단체다. 14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일본의 등록금 문제는 어떤가. -심각하다. 현재 일본 대학의 등록금은 1년에 국립대가 55만~60만엔(800만~860만원)이고 사립대는 80만~120만엔(1150만~1720만원) 수준이다. 매년 3만~4만여명의 대학생들이 등록금 문제로 학업을 중단한다. 800개 대학 중 80곳만 국공립이고 나머지는 사립이다. →일본에서는 등록금이 비싸다는 비판이 없나. -한국 같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한다. 하지만 대학을 가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므로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40~50대도 반값 등록금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의 가구당 평균 소득은 연 400만~500만엔(5700만~7000만원) 정도다. 대학생 자녀가 2명이면 수입의 절반가량이 등록금으로 들어간다. 가장들의 고통이 크다. 하지만 한국처럼 반값 등록금 촛불시위에 40~50대가 참여하는 경우는 없다. 등록금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바빠서 관심을 못 갖고, 잘사는 사람들은 아예 관심이 없다. →한국의 반값 등록금 운동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놀랍다. 특히 서울시립대가 등록금을 50%나 낮췄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다. 다른 대학들도 등록금을 낮추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배우고 싶은 게 많다. 어떻게 시민들에게 대학교육을 공공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는지, 소극적인 기성세대가 어떻게 운동에 참여하게 했는지….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사료값에 빚만…” 판로 막힌 반달곰 처리 골머리

    “사료값에 빚만…” 판로 막힌 반달곰 처리 골머리

    정부가 농가 수익사업으로 권장했던 반달가슴곰들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사육농가들은 비싼 사료값 때문에 빚만 쌓여가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제적으로 곰 거래가 중단되면서 사육곰들이 웅담채취, 도축 등 변칙적으로 이용돼 동물애호가나 환경단체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다. 사육농가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구제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극한 행동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현재 사육곰에 대한 유전자 정보 관리나 불법 유통실태 등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곰 사육 농가들의 실태와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대책 등을 취재했다. 지난주 말, 환경부 지도·점검팀과 함께 곰 사육 농가를 방문했다. 경기 안성시 삼죽면에서 2대째 곰사육을 하고 있는 농가를 찾았다. 산골마을에 위치한 곰사육 농장은 민가 뒤편 산속에 있어 찾기조차 힘들었다. 촘촘하게 제작된 철창 안에는 크고 작은 반달가슴곰 27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정부 대책만 기다리다 지쳐” 농장주인 윤명덕(51)씨는 점검반을 대하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곰 한 마리 키우는 데 사료값만 연간 200만원 가량 드는데 처분할 길이 없어 막막하다.”면서 “다른 사육농가들도 정부의 대책만 기다리다 지쳐 불만들이 많다.”고 말했다. 사육곰은 멸종위기종이자 야생동물로 분류돼, 일반 가축처럼 사고 팔거나 도축이 금지돼 있다. 현재 합법적인 거래방법은 기른 지 10년 이상된 곰에 대해 용도 변경(도축)을 통해 웅담채취 등 약재용으로 이용하는 것이 유일하다. 윤씨는 “사육곰을 가축으로 풀어주고 판로개척 등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말로는 곧 특별법이 만들어진다고 해놓고선 아직까지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국 사육곰협회 임원으로도 활동했다는 윤씨는 “회원들 대다수가 지난해 서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릴 때 곰들을 싣고 올라가 시위를 벌이자는 의견도 많았다.”면서 “쌓인 불만이 언제 행동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귀하던 몸, 지금은 천덕꾸러기 전락 지역의 다른 곰 사육 농가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최근 소값 폭락으로 비싼 사료값을 충당하지 못해 도산하는 축산 농가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곰 사육 농가의 처지도 절박해 보였다. 한 농장 주인은 “수입원이 없다보니 곰의 개체수를 속이거나, 불법 도축하는 사례가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신고가 안 된 소규모 곰사육 농가들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전국 59개 사육장에서 1077마리(지난해 말 현재)의 곰이 사육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12일 밝혔다. 사육곰은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이 대부분이다. 농가에서 곰을 사육하게 된 계기는 1981년부터다. 농가 소득을 올리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당시 농림부(산하 산림청)가 곰 수입을 제안·허용했다. 일본·말레이시아 등에서 어린 곰을 수입해 키운 뒤 다시 되팔아 이익을 얻는 일종의 ‘곰 사육 무역’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곰 학대 장면 등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사육곰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는 1985년 7월, 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아울러 1993년에는 멸종위기종의 수입·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국제거래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사육곰들은 판로가 막혀버렸다. 1999년 5월에는 사육곰을 비롯한 조수관리 업무가 산림청에서 환경부로 이관됐다. ●관련 특별법 국회서 낮잠 중 수입이 금지된 1985년까지 국내로 반입된 곰은 모두 493마리였다. 반입된 곰들이 번식하면서 한때 1500여마리까지 개체수가 늘어났다. 당시 조수보호법에 나이가 많은 곰은 가공품(웅담) 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처리기준을 마련했다. 2005년부터는 ‘야생동·식물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사육시설 권고기준 등도 추가됐다. 사육 농가들은 개인 자산인데 맘대로 처분할 수도 없게 해 놓고 이중 삼중 관리만 강화한다며 불만이다.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부랴부랴 해법찾기에 나섰다. 지난 9일 정부과천청사 환경부 회의실에서는 곰 사육농가 대표와 녹색연합, 대학교수 등 15명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참석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전국사육곰협회 김광수 사무국장은 “비싼 사료값 충당 등 소득 창출을 위해서는 웅담채취를 위해 도축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편으로는 용도변경 등을 통해 도축을 허용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환경단체 역시 “관리지침은 권고에 그칠 뿐이고, 변칙적으로 도축을 허용한 것은 야생동식물 보호법 근본 취지에도 위배된다.”고 성토했다. 한창 불 붙은 사육곰 관련 대책으로 어떤 대안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사진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이대호 “풀스윙도 아닌데…” 日언론 호들갑 보도에 여유

    한국의 대표 거포 이대호(30·오릭스)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팀의 훈련 캠프가 차려진 오키나와 미야코지마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현지 언론은 “위협적”이라며 호들갑스럽게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 스포츠전문지 ‘닛칸스포츠’는 오키나와의 니혼햄 캠프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이 일본 무대에 첫 발을 내디딘 이대호에 대한 경계령을 내렸다고 4일 보도했다. 그가 밤마다 오릭스와 소프트뱅크 등 라이벌 구단의 전력 분석에 열중하고 있다는 것. 신문은 구리야마 감독이 “다른 구단의 전력에 신경이 쓰인다. 무엇보다 이대호가 어떤 선수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데일리스포츠’도 전날 미야코지마 캠프에서 140m짜리 초대형 대포를 쏘아올린 이대호 소식을 자세히 전했다. 이대호가 좌중간으로 터뜨린 이 홈런은 펜스 뒤 잔디밭을 넘어 실내연습장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졌다. 이 매체는 이대호를 지켜본 소프트뱅크의 사토 사다하루 전력분석원이 “지금까지 일본에 온 외국인 타자들과 견줘 공을 배트 중심에 정확히 맞히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높은 점수를 줬다고 전했다. 지난해 일본시리즈 우승팀 소프트뱅크는 이대호가 가세한 오릭스를 올해 최대 맞수로 꼽고 있다. 분석원들은 이대호를 더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오는 8일까지 미야코지마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호와 4번타자를 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는 오릭스의 전 4번타자 T-오카다(24)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T-오카다는 지난 1일 프리배팅에서 장외포 1개 등 9개의 타구를 담장 밖으로 날리며 이대호 앞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이대호가 1㎏짜리 배트로 140m짜리 초대형 타구를 날릴 때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2년간 오릭스에서 32개의 홈런을 터뜨린 외국인타자 아롬 발디리스도 이대호의 타격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이대호는 “스프링캠프가 끝날 때까지 풀스윙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며 정규시즌 개막에 맞춰 타격감을 끌어올리겠다고 여유를 보였다. 이대호의 배팅을 본 오카다 아키노부 오릭스 감독은 “일본 타자들보다 몸쪽 공을 반 개 이상 붙여놓고 때린다.”며 만족해했다. 다카시로 노부히로 오릭스 수석 코치도 “일본 무대 적응에 걱정없다.”며 “벌써 적응을 마친 것 같다. 현재 훈련량이 많은 게 오히려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MBC 총파업 방송파행 ‘와글’ 정봉주 석방 비키니 시위 ‘와글’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MBC 총파업 방송파행 ‘와글’ 정봉주 석방 비키니 시위 ‘와글’

    한 주간 가장 많은 클릭을 유도한 건 MBC 총파업 돌입 소식이다. 지난달 30일 MBC 노조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파행 편성되던 뉴스에 이어 교양·예능 프로그램도 방송에 차질을 빚었다. 2위는 한나라당 새 당명이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2일 새 당명을 새누리당(새 세상의 우리말)으로 결정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생각과 사람, 이름까지 바꾸게 된다면 우리 당은 완전히 새로운 당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성폭행 사건은 3위에 올랐다. 서울대 학생 40여명은 지난달 31일 대법원 앞에서 2년 전 서울대 대학원 선후배 사이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이 최근 2심 재판에서 가해자의 ‘성기 기형’을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은 것에 수긍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갖고 공정한 3심 재판을 촉구했다. 2심 재판부는 “성폭행 가해자 A씨가 성기 기형 때문에 한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잡고 삽입을 시도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피해자 B씨가 그런 상황을 언급하지 않아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4위는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다. 서울 지하철과 버스의 성인 요금이 오는 25일부터 150원 오르고 어린이와 청소년 요금은 동결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중교통 적자를 없애기 위한 요금인상 필요액은 388원이나 시민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150원을 올리게 됐다.”고 했다. 5위에는 일본 폭설피해가 올랐다. 올 들어 이시가와현 등 북부지역에서는 영하 36도의 냉기가 상공에 머물면서 매일 평균 3m가 넘는 폭설이 내려 니가타 공항이 폐쇄되고 교통편이 마비됐다. 지금까지 46명이 숨지고 600명이 다쳤다. 6위는 나꼼수 비키니 시위 논란이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멤버인 정봉주 전 의원의 석방을 기원하는 ‘비키니 시위’를 두고 소설가 공지영은 트위터에서 “가슴 시위 사건은 매우 불쾌하다.”면서 “스스로 살신성인적 희생이라고 하는 여성들의 멘션까지 나오게 된 것은 경악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7위는 나경원 피부숍. 지난해 10·26 재·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시사IN’이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고발한 사건에 대해 경찰은 지난달 30일 “나 전 후보가 해당 병원에서 쓴 돈은 550만원”이라고 밝혔다. 소녀시대 라이브 위드 켈리가 8위를 차지했다. 지난 1일 미국 ABC의 토크쇼 ’라이브! 위드 켈리‘에서 ‘더 보이즈’를 열창,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9위는 톰 요크가 이끄는 영국의 5인조 밴드 라디오헤드 방한 소식.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되는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에서 한국 첫 공연을 한다. 10위는 송지효 열애. 배우 송지효는 1일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 대표 백창주씨와의 열애 사실을 인정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호주제는 전통 아닌 일제시대 잔재였다”

    “호주제는 전통 아닌 일제시대 잔재였다”

    2008년에 폐지됐지만, 호주제를 없앤다고 하니 대한민국의 유림이 갓 쓰고 도포를 떨쳐입고 나타나 한국의 고유한 전통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반대시위를 벌인 일이 엊그제 같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창졸간에 전통 가치를 파괴하는 몰가치한 사람으로 비쳤다. 과연 호주제가 개인성이나 남녀평등, 민주주의 같은 가치를 위협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전통일까.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가족법 읽기’(창비 펴냄)를 통해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전통이, 특히 가족법에서의 전통 수호가 ‘헤어날 길 없는 시대착오적인 상황, 교착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대한민국 정부는 ‘전통’을 중시하는 입법을 시도했다. 일제 식민지의 잔재를 청산하고 ‘천황제 가족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원형의 ‘조선왕조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것이 그 의도였다. 그러나 1958년 2월 22일 가족법이 발효됐을 때, 유감스럽게도 그 법은 일본 메이지유신때 만든 근대 민법의 흔적을 많이 드러냈다. 1898년 일본에서 공포된 ‘메이지 민법’은 호주권을 강화하고 한국에는 없는 개념인 가족상속제도를 확립했으며, 부부의 불평등을 명확히 적시해 근대적 가족제도를 거부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양 교수는 “1392년 개국한 조선왕조의 가족질서가 20세기 한국 가족제도의 원형이 됐다는 것도 문제이고, 조선시대의 전통적 가족제도라는 것도 실제로는 순수한 형태의 전통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였다.”고 비판했다. 일본 강점기 때 적용된 조선의 가족법은 일본에 의한 왜곡이 불가피했다. 일본은 1908년 5월에서 1910년 9월까지 조선에서 전국적인 관습조사에 들어갔다. 이때 관습의 영역에 ‘경국대전’이나 ‘대명률’과 같은 조선의 법전과 ‘가례’와 같은 예서도 포함됐다. 관습조사에 들어가면서 일제는 객관성을 강조했으나, 사실상 그러지 못했다. 조선 관습조사는 1875~77년 메이지유신 때 일본 전역을 조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또한 관습조사를 위한 206개 문항의 질문은 일본의 민법체계에 충실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일본이 자국 민법에 없는 조선의 관습은 질문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일본법의 영향은 용어와 개념으로 확산됐는데 가독(家督), 타가상속(他家相續), 폐절가(廢絶家), 일가부흥(一家復興) 등과 같이 조선에서는 없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인의 시각에서 조선의 관습을 해석하고 구성한 과정이었고, 이것이 ‘조선의 관습’이란 탈을 쓰고 일제 강점기 조선의 전통이 됐다. 호주제 폐지로 50년 동안 살아 숨쉬던 일제 식민지의 잔재는 가족법 내에서 청산됐다고 양 교수는 말한다. 다만 양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결정한 호주제가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적시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특파원 칼럼] 일본 젊은이들 왜 분노하지 않을까/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본 젊은이들 왜 분노하지 않을까/이종락 도쿄특파원

    기자의 사무실은 일본의 입법·사법·행정부가 몰려 있는 도쿄 시내 가스미가세키의 도쿄신문 5층에 있다. 이 신문사 직원들은 만 60세에 은퇴하지만 본인이 원하면 65세까지 일할 수 있다. 물론 급여는 절반으로 깎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자 출신 은퇴자들의 연봉이 보통 1500만엔(약 2억 2245만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으로 깎여도 61세부터 65세까지 매년 1억 110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 도쿄신문은 한국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매년 노사 간 단체협상을 갖는다. 지난해 노사 간 최대 쟁점은 퇴직 이후 생활자금 지급 문제였다. 노동후생성이 65세 고령 인구가 3000만명에 육박하자 후생연금(한국의 국민연금)의 지급 개시 연령을 68∼70세로 상향 조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비책이다. 노조는 65세에 은퇴한 뒤 후생연금 지급이 실제로 이뤄지는 시기까지 회사에 생활자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회사가 단호히 거절해 노사 간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50줄만 넘으면 아무런 대책 없이 회사를 나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입이 딱 벌어지는 얘기다.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부러운 대상이 노인들이다. 노인 세대는 고실업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 비해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자들은 후생연금을 비롯해 건강보험, 개호(노인요양서비스)보험, 고령자의료제도, 생활보호제도 등에 가입해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는다. 연금가입자로서 회사를 은퇴한 사람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매달 20만~25만엔(약 296만~370만원) 정도를 받는다. 이처럼 노인들의 삶이 보장된 반면 청년들은 실업률이 11.1%에 달할 정도로 냉혹한 ‘취업 빙하기’를 겪고 있다. 노동후생성과 문부과학성이 이달 초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오는 3월 4년제 대학 졸업 예정자 가운데 직장을 구했다고 답한 비율은 68.8%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3% 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96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일본 젊은이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청년실업과 비싼 대학 등록금 등으로 젊은이들이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지만 이들은 잠잠하다. 세계적 이슈가 됐던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도 도쿄에서는 시민단체 관계자들 위주로 100여명이 모였을 뿐이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분노할 줄 모르는 청년층을 개탄하는 의견도 나온다. 현실은 각박하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일본 정부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도 70%의 젊은이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해 과거 40년간의 조사에서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본의 사회학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최근 ‘절망의 나라에 행복한 젊은이’라는 책에서 일본 젊은이들의 사고를 잘 분석했다. 후루이치는 “요즘 청년들은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의 만족스러운 삶에 더 집착한다.”고 주장했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어도 지금의 생활에는 불만이 없다는 얘기다. 세계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일본에서 자랐기에 자기만족에 취해 온순하게 길들여진 탓이리라. 실제로 명문대 졸업생들은 청년 실업난에도 불구하고 취직할 때 아프리카 등 제3세계권 해외부문이 있는 기업은 꺼리는 경향이 적지 않다고 한다. 최근 일본 내 한국기업 지사에서도 일 잘하는 일본 여직원에게 해외발령을 내렸더니 3일 만에 사표를 냈다는, 우리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벌어졌다.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게임기와 학용품, 전자제품에 둘러싸여 자라난 이들은 굳이 일본을 떠나 도전을 할 필요가 없는 ‘갈라파고스’에 갇혀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오늘의 불만을 분출하며 기성 세대를 심판하는 한국 청년들의 모습이 오히려 부럽다는 일본인들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운 요즘이다. jrlee@seoul.co.kr
  • [열린세상] 매뉴얼사회 일본의 함정/국중호 日 요코하마시립대 재정학 교수

    [열린세상] 매뉴얼사회 일본의 함정/국중호 日 요코하마시립대 재정학 교수

    지난 14~15일 일본의 2012년도 ‘대학입학자 선발 대학입시센터시험’(센터시험,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에서 문제지가 잘못 배포되어 4500명의 수험생에게 영향을 미친 최악의 입시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는 매뉴얼 사회 일본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입시사고의 발단은 수험과목 선택의 신(新)방식에 있었다. 종전에는 세계사, 일본사, 지리 과목(각각 A, B로 되어 있어 6과목)을 같은 시간대의 ‘지리역사’라는 교과로 묶어 이들 과목 중 복수 과목을 선택할 수 없었다. 2002년 국립대학협회는 학생들의 역사나 지리 분야 지식 부족을 우려해 대학입시센터에 이 분야를 강화하도록 요청했다. 이를 받아들여 대학입시센터는 ‘지리역사’ 교과에서 두 과목을 선택하거나(예컨대 일본사A와 세계사A) 또는 한 과목은 ‘지리역사’ 교과에서 선택하고 다른 한 과목은 ‘공민’(公民)(현대사회, 윤리, 정치경제, 윤리·정치경제 과목으로 구성) 교과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예컨대 일본사A와 윤리) 신방식을 2012년도부터 적용하였다. 이번 사고에서는 입시 운영이나 감독 실책이 컸다. 신방식 하에서는 두 과목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에게 오전 9시 30분~10시 30분 한 과목(제1과목)의 답안을 작성하여 10시 30분~10시 40분 10분 사이에 제출하도록 하고, 계속해서 10시 40분~11시 40분 다른 한 과목(제2과목)의 답안을 작성하도록 하였다. 이때 신방식의 두 과목 선택을 위해서는 별도 책자로 되어 있는 ‘지리역사’와 ‘공민’ 교과 문제지를 9시 30분 시험 시작 전에 함께 배포해야 했다. 그럼에도 48개 시험장에서 ‘지리역사’교과 문제지만을 나누어 주었는데 시험이 시작되어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공민’교과 문제지를 배포하는 실책을 범하였다. 센터시험 감독요령에는 전반적 주의사항, 교과·과목별 지시내용, 사고대응 등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상세 매뉴얼은 ‘확실하게 대처하기 위해’라는 이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책임회피’의 전형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사고에 대해 대학입시센터 측은 기자회견에서 “각 시험장의 매뉴얼에는 감독 방법이 모두 기재되어 있었으나 주지시키는 것이 부족하였다. 죄송하다.”고 해명하였다. 즉, ‘우리는 매뉴얼에 모두 적어 놓았으니 우리 책임이 아니다.’는 발뺌이 표면화되어 나타났다. 센터시험의 매뉴얼 분량을 보자. 우선 ‘감독요령’이 210쪽, 다음으로 각 ‘시험장에서 만든 책자’(시험교실 배치, 연락표·일시퇴실기록부 등 각종 양식 견본을 싣고 있음)가 42쪽, 여기에 ‘센터시험에서 나타난 사례와 대응’ 책자가 52쪽으로, 이들을 합하면 300쪽이 넘는 분량이다(모두 A4 크기). 지루하고 복잡하여 다 읽기도 어렵고 대부분은 사전설명회에서 입시위원의 설명을 듣고 이해한다. 또 매뉴얼은 대학입시센터에서 전국 시험장에 일률적으로 배부하는 것이므로 행여 어떤 잘못을 지적하여도 금방 고쳐질 리 만무하다. 그러다 보니 매뉴얼상에 까다로움이 있어도 구태여 지적하지 않고 침묵하며, 응당 그 매뉴얼에 따라야 하는 것으로 길들여져 있다. 예컨대 부정행위 적발은 단계별로 되어 있고 따로 카드가 준비되어 있다. 우선 부정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는 수험자에게 보여주고 수험번호와 함께 그 원인이 되는 행동을 기록해야 하는 흰색 경고카드가 있다. 그 다음 실제로 부정행위를 하였을 때 별실로 데려가기 위해 사용하는 노란색 경고카드(부정행위보고서)가 있다. 한국의 아줌마 부대라면 ‘왜 이렇게 복잡한가?’라며 들고 나섰을 것이지만 일본에는 아줌마 부대도 없어 항의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학입시센터는 세세한 규율을 정해놓고 제 덫에 결려 자신의 행동을 제약했다. 일을 복잡하게 얽어 놓음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보이려 했다. 그렇게 얽매이다 보니 일의 맥을 잡을 수 없어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였고 책임 회피를 위한 형식론으로 흘렀다. 이번 입시사고는 명료함을 꺼리는 일본 관료주의가 자승자박의 함정에 빠진 것을 보인 사건이었다.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1. ‘저항’의 시대와 그 기원 누군가 제게 2000년대 문학에게 주어질 단 하나의 이름을 꼽으라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저항의 시대’라고 명명할 것입니다. 물론 이 저항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저항’의 기표, 이를테면 세계에 대한 저항이나 주체를 둘러싼 폭력들에 대한 투쟁 등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최근의 문학이 보여주는 강렬한 ‘저항’들은, 오히려 역사적 투쟁이 끝났다는 저 냉엄한 현실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제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지난 몇 해간 문학은 끊임없이 그가 떠맡을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들에 대해 고민해왔고, 또 우리 앞에 그 실천적 노력을 내놓았으니 말입니다. 실은 저의 고민도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최근 갑작스럽게 대두된 ‘시와 정치’에 대한 격렬한 저 논쟁의 배경에는, 과연 일반적인 평가에서처럼 단지 촛불시위나 용산참사와 같은 문학 외적인 요인만이 작용했던 것일까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진단은 문학이 예술적인 층위에 안주하면서도 대중적 관심을 추수하는, 일종의 권위적 시장주의를 드러냈다는 음울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심사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반응이라고 보기에, ‘시와 정치’논쟁은 지나치게 끈질기고 또 적극적이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단순한 사회적 정세 이상의 무언가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에, ‘저항의 시대’가 숨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2000년대 들어서 낯선 감각과 새로운 어법으로 무장한 젊은 시인들이 ‘집단적’으로 출현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출현과 반응, 이 집단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소통불능의 자폐적이고 이기적인 문학이라는 신랄한 비판이나 조금만 더 자아 밖으로 나오라는 애정 어린 충고에서부터, 여러분이야말로 ‘도래’할 문학적 민중이 될 거라는 뜨거운 격려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반응들의 폭발에 정작 시인들은 당황했다. 새로운 시들을 둘러싼 이 논의들은 여러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나를 난감하게 만드는 문제, 즉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 그리고 그 대답들로 느껴진다.(진은영,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 ‘창작과 비평’ 2008년 겨울호. 69쪽) 문학이 고민하는 정치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시와 정치’논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진은영의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에서부터 이미 드러납니다. 하지만 시가 미학적인 완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귀결은,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에 대한 당연한 정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진부한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라는 그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어째서 진은영은 특정한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낯선 시들의 출현으로부터 시의 정치성에 대한 고민을 읽어냈던 것일까요? 80년대와 결별한 후 정치에 대한 반동적인 면모를 보여 왔던 문학이, 촛불시위와 용산참사를 목격한 후 뒤늦게 정치성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는 해석은 지나친 음모론같이 보입니다. 반면에 이 글의 출발점이었던 ‘젊은 시인’들을 주목하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진은영이 가진 문제의식이란 현실과 문학 사이의 괴리에 대한 즉흥적인 고민이 아니라, 포스트모던 담론 이후 등장한 새로운 시에 대한 오래된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랑시에르의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문학을 비롯한 예술 전반의 문제는 ‘감각적인 것을 분배하는’ 문제이며 그런 면에서 예술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관계한다―책제목 ‘감각적인 것의 분배: 감성론과 정치’라는 말 자체에 이미 그의 문제의식과 결론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진은영, 앞의 글, 71쪽) 진은영이 소개한 랑시에르의 감성론은, 미적 자율성의 이름으로 정치를 함께 담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문단에서 이 이론을 열렬하게 환영했던 데에는, 혹시 ‘시와 정치’에 대한 고민과는 별개의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 문학이 직면했던 거대한 과제,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넘어설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근대문학’이며, 근대의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일종의 상상적 권위에 불과하다는 이 충격적인 선언 앞에 당시 우리 문단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유령처럼 배회하던 ‘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울과 겹치면서, 가라타니의 종언론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탄으로 다가왔던 까닭이죠.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비평가들은,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앞을 다투어 ‘문학의 종언-이후’에 대한 갖가지의 견해들을 내놓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나는 더 이상 문학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라는 가라타니의 태도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종언의 기표일 뿐이라거나, 그가 논의하는 내용이 일본문학만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는 식의 비생산적인 사족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애초에 가라타니가 종언을 이야기한 맥락이 문학의 소멸을 말하는 비관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가라타니가 문학에 요구한 것은 종언을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전개될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였습니다. 이것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표제를 내걸었음에도 실제로 그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 세계자본주의의 전개양상이었던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요. 따라서 문학에 대한 기대를 그만두겠다는 그의 말은, 철저하게 ‘근대문학’에 부여된 상상적 층위의 정치적 역할과 그 권위에 기대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라타니에게 문제의 핵심은 ‘정치’에 있었지만, 당시 우리 문단은 그것을 성급하게 ‘문학’에 국한시키며 오해를 낳은 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급조된 대응담론이 아니라, 고진이 ‘종언’을 선언한 이후에 등장했던 우리의 문학 그 자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 ‘정치’의 자유, ‘정치’로부터의 자유 ‘근대문학의 종언’이 등장했던 해는, 우리 문단에서 ‘미래파’라는 새로운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처음 그 갑작스러운 등장에 대해 보내던 우려와 달리, ‘미래파’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환영하는 이들과 비판하는 이들 모두에게 중심담론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인들이 과거와 같이 (담론화하기 쉬운)특정 논의의 틀 안에 규정되는 일이 드물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미래파 논의가 이토록 빠르게 문단의 중심담론으로 부상한 데에는 분명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죠. 이후 전개된 ‘미래파 논쟁’의 주된 핵심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과연 ‘미래파’란 존재하는가, 둘째는 이들이 진정으로 우리 시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숨어있습니다. 논쟁에 참여한 거의 모든 이들이, 별다른 합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움’을 보여준다는 데에 동의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래파 논쟁’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세가 한풀 꺾였던 것에 비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시적 ‘새로움’에 대한 믿음은 ‘미래파’라는 분류가 유명무실해진 지금까지도 굳건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단순히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적 작업을 분석하여 그것이 ‘미래파’의 증거가 되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우리 문단에 이러한 논의가 등장했고 또 불붙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일인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시의 미래는 이들이 적어나갈 것이다. 이들에게는 80년대 시인들이 걸머져야 했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이 없고, 90년대 시인들이 내세운 그럴듯한 서정, 고만고만한 서정이 없다. 그 대신에 다른 게 있다. 그리고 이들의 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재미있다.(권혁웅, ‘미래파: 2005년, 젊은 시인들’, ‘미래파’, 문학과지성사, 2005. 149~150쪽) 가라타니는 문학의 종언을 가져온 중요한 전제로서, 이제 더 이상 문학이 현실의 ‘정치’나 ‘실천’을 대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권혁웅은 ‘채무의식’이 없어짐으로써 우리 시가 시적인 새로움을 폭발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을 마련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차이로부터 시의 ‘새로움’이 가진 기원을 엿보게 됩니다. 이제 시는 80년대적인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 즉 ‘실천’이라는 기표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당당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현실이 80년대의 시가 직면했던 폭력적인 억압을 그대로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의 억압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시는 더 이상 불가능한 실천을 상상적으로 담보하던 과거의 역할을 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는 ‘우리에게/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진은영, ‘70년대産’)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여전히 존재하는 폭력들과 맞설 것을 요구받습니다. 가라타니가 ‘정치의 자유’로 인해 발생한 이 모순적 상황을 종언의 원인으로 인식했다면, 우리는 이 모순된 상황을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후 겪는 일시적인 홍역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분기점이야말로 어째서 진은영이 랑시에르의 감성론을 급히 ‘수혈’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는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새로운’ 시가, 어떻게 여전히 남아있는 저 정치에 대한 요구를 떠맡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직접적으로 정치적이면서도 첨예하게 미학적이’고 싶다는 진은영의 고백에는, 전자에 의한 ‘실천’의 획득과 후자에 의한 ‘새로움’의 향유를 동시에 소유하고픈 욕망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가 진은영이 랑시에르를 소개한 배경에 ‘근대문학의 종언’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숨어있다고 말한 이유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시적인 ‘새로움’에 대한 요란한 환영, 심지어는 강박적인 것으로마저 여겨지는 저 ‘새로움’에 대한 추수는 단순한 예술사조의 변천이나 시대적 흐름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의지로 얻어낸 것이 아니었던 ‘정치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강한 채무감에서 기인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논의들은 ‘채무의식’의 극복이 ‘새로움’의 원동력이라고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던 셈이지요. 아마도 신형철은 이러한 진실에 일정 부분 닿아 있는 듯 보입니다. 그가 황지우의 시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야기하는 미학과 정치의 논의는, 앞선 것들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한몸이었던 사례가 우리 시사(詩史)에 있는가? 물론 있었다. 예컨대 황지우의 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의 시가 대표적으로 보여준, ‘회의하면서 긴장하는’ 그 언어의 배후에는 권력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억압이라는 외적 상황이 있었다. 할 수 있는 말과 해야만 하는 말의 분열 속에서, 언어의 회의 혹은 언어의 긴장은 (시인 자신의 의지나 역량에 힘입은 바 못지않게) 상당부분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 덕분에 그의 시는 첨예하게 미학적이면서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일 수 있었다.(신형철, ‘가능한 불가능’, ‘창작과 비평’ 2010년 봄호, 375쪽) 과연 최근 우리 시는 80년대의 채무의식을 ‘극복’하였을까요? 신형철은 여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과거의 시가 정치를 떠맡을 수 있었던 원인이 현실정치의 불가능함에 있었다는 가라타니의 견해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날 ‘시’와 ‘정치’가 확고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인이 가진 분노의 감정이 미학의 이름을 통해 고스란히 정치적 정념의 형태로 분출될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형철 또한 이 이상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새로운 시와 비평에 대한 요구가 ‘아무도, 적어도 시에서는, 그 어떤 발화도 억압하지 않는’ 오늘날의 상황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가 제시하는 방향이란 ‘첨예하게 미학적인 시들에서 우선 그 미학적인 것의 핵심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그 이후에 거기에서 정치학적인 것까지를 읽어내는 일’에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것과 ‘정치학적’인 것을 구분하는 신형철의 화법에서, ‘실천’의 강박과 ‘새로움’의 강박을 서로 다른 것으로 떼어놓으려는 시도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들이 지니는 동일성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또 인정하지 않는 이상, ‘시와 정치’는 영원한 제자리걸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정치를 ‘고유한 주체의 합리성에서 유래하는 특정한 행위 양식’으로, 시를 ‘주체가 스스로의 자유 안에서 건네는 내밀한 고백’이라고 정의할 때, 시와 정치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해 보입니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시인을 거부했던 이유는, 시가 가지는 본연의 속성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었던 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훌륭하게 완성된 공동체에게 시는 위협적인 존재가 됩니다. 왜냐하면 시가 가지는 힘이란 공동체의, 세계의 질서가 보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목격함으로써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과정 또한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논의하던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자면, ‘정치는 권력 행사가 아니’며, ‘정치는 그 자체로, 즉 고유한 주체 때문에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세계의 상징체계 속에 ‘없음’으로 규정된 ‘자리-없음’(placelessness)들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실재의 공간이라고 말했던 라캉의 언명과 동일한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란 처음부터 통치 과정(치안)의 바깥,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만이 가능한 행위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깥의 존재양식이야말로 시와 정치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임을 입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쳐버린 권위’라고 생각했던 과거 문학의 정치성을 되돌아보면, 그것들이 방금 이야기한 ‘정치’와는 사뭇 다른 층위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정치적인 시’라고 불러온 것들은, ‘정치’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것’에 더욱 가깝게 다가서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실체가 있는 폭력들에 맞서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였고, 다른 곳에서는 도래할 혁명을 향해 나아갈 것을 소리 높여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신형철도 이미 지적했듯이, 과거 우리 시들이 ‘정치적인 것’에 대한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정치적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맥락에 기댄 결과였습니다. 때문에 이제부터 시가 추구해야 할 정치성이란 랑시에르의 진단과 같이 본래적인 의미의 ‘정치’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의 논의는 단순히 이전과 다른 ‘정치’의 정의에만 집중한 나머지, 스스로 경계할 것을 주장했던 전위적 언어에 대한 맹신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비평가들은 ‘감성의 분할’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것을 벌충하려 하였으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텅 빈 해체’의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시 비평의 영역에서 그동안 관성적으로 제기되어온 ‘소통’에 대한 요구가 지닌 본질적 문제점은, 개인과 사물 세계를 ‘자명한 것’들로 번역하려는 ‘투명성’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오히려 시적 공간에서 보존해야 할 것은 개인과 사물의 불투명성이며, 빛의 언저리에 드리워진 기이한 그림자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아닐까? (…) 그러므로 낯선 현전의 형식들에 직면해 여전히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비평이 우선 대결해야 하는 것은, 텍스트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사소통 공동체의 지평에 나타난 저 낯선 얼룩을 깨끗이 지우고자 하는 순백을 향한 비평 자신의 욕망이 아닐까? (함돈균, ‘균열, 불면, 기화, 그리고 여백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이 되는가’, ‘얼굴 없는 노래’, 문학과지성사, 2009, 133쪽) 함돈균이 내놓은 ‘불투명성’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오류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명한 것’과 ‘투명성’을 추구하는 질서란 개인과 사물을 명확하게 재단함으로써 그것들을 교정하고 규정지으려 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랑시에르가 ‘세계의 감성분할행위’라고 불렀던 것과 동일한 행위를 뜻하지요. 언뜻 생각하기에 이들에 대한 저항이란 혁명의 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규정들을 무화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려한 수사와 문장들을 걷어내고 함돈균의 주장을 다시 읽어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그가 비평이 나아가야 할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비평 자신의 욕망’과의 대결이란, ‘낯선 얼룩’을 보존하고 ‘불투명성’을 획득하는 작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돈균이 이것을 결국 우리들이 직면한 ‘낯선 현전의 형식’에 대한 옹호를 위해 주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의 논리는 세계에 대한 전위의 저항을 제시한 이후에 실제로 태어나고 있는 ‘낯선 형식’들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새롭게 출현한 시들을 ‘낯선 현전’과 ‘낯선 형식’으로 명명한 뒤, 이들에게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의 반동성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함돈균만이 보여주고 있는 문제가 아니며, 전반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공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의 논리적 모순을 합리화해줄 수는 없을뿐더러, 오히려 우리 문학담론 전체의 병폐를 폭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한마디로 해체나 전위를 통한 저항의 대부분은, 다분히 사후적인 평가를 위해 ‘만들어진’ 정치성이었던 셈입니다. 백낙청은 자신의 글에서, 시의 정치성에 대한 논의들이 가지는 이러한 환원론적 오류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통상적인 의미의 윤리 내지 도덕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문학의 진정한 윤리임을 강조하는 데 머물 경우 그것은 구체적인 정치현실과 무관한 또하나의 정언명령을 발하는 것밖에 안 된다.’(백낙청,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 ‘창작과비평’ 2010년 겨울호, 20쪽)고 강조합니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매우 정확한 것이어서, 대부분의 논의들이 가지는 정치성이 단지 제스처에 불과한 껍데기라는 것과 함께, 이제는 그러한 논의방식들이 하나의 새로운 정형이 되어가고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낙청은 그 너머로 논의를 이어가지 못한 채,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 즉 도(道)와 ‘도의 힘’으로서의 덕(德)에 대한 사유가 실종되고 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며 방향을 선회합니다. 그의 글에서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도(道)는 노자의 ‘道’ 개념으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규정적 명명을 거절하는 상태로서의 이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적 사고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부분이지요. 그리고 덕(德)을 일종의 공동체적 당위성, ‘세계-내-존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점으로 바라본다고 할 때, 우리는 백낙청의 이 진술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들의 한계를 재차 강조하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을 이야기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허무주의가 앞뒤 없이 계속된 막무가내식 해체의 결과임을 꼬집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백낙청의 지적은 매우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지적을 어디까지나 ‘모더니즘 논의’의 문제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낙청은 (모순을 드러낸)이들과 달리 ‘다른 흐름’들이 있음을 주장하며, 그것의 구체적 성과로 자신이 전개해 온 리얼리즘 논의를 들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리얼리즘 논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 랑시에르의 감성론보다 훨씬 우리의 현실에 밀착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피하기 위해 자세한 검토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역시, 마구 가거나 너무 가서는 잘 갈 수가 없다’는 경구적 발언을 인용하는 백낙청의 태도로부터, 우리는 자신이 발전시켜온 리얼리즘론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그의 함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문학이 직면한 문제가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의 구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전에 없던 시적 변화들은 문학이 직면한 고민을 그대로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더니즘 논의’로 한정짓는 태도는 여전히 ‘시’와 ‘정치’를 별개의 것으로 보려는 자세를 드러내고 있는 셈입니다. 강동호는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고 정치성의 논의를 상당 부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재현행위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한계를 오롯이 인정하고, 그 실패로부터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우회로를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 시의 잠재적 정치성을 긍정적 어법인 잠재성의 정치로 바꾸는 일은 오롯이 독자에게 남겨진 몫일 것이다. 아울러 저 시적 언어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찾아주는 것, 즉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사하고 그것을 현실의 언어로 변환시키는 ‘목숨을 건 비약’(salto mortale)을 감행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비평가의 몫이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의 미학과 사회적 현실 간의 상관도를 상세히 규명하는 사회학적 분석에 해당하며, 이를 근거로 이 세계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던지는 복화술사의 정치에 속할 것이다. (강동호, ‘존재론적 비명으로서의 시적인 것’, ‘창작과비평’ 2009년 가을호, 312쪽) 시의 언어는 삶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처한 시공간을 써냄으로써 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그의 주장이 기존의 ‘텅 빈 해체’와 결별할 수 있는 것은,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는 진실에 과감하게 다가서는 태도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강동호가 ‘비평의 의무’라고 여기고 있는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색하는 행위란, 어디까지나 시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예외성 너머에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가 세계에 대한 어떠한 물리적 강제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양식을 이끌어내기 위한 선전이 되는 순간, 그것이 이미 시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시인에게 ‘예술가의 의무’라는 이름하에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하는 일이란 기만에 다름 아닌 셈입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 ‘시는 정치적일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가 가진 예외성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강동호가 지적했듯 오로지 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초석이 됩니다. 왜냐하면 시의 예외적 속성에 대한 고의적인 망각이란, 시가 ‘정치적인 것’에 봉사할 것을 요구하는 논리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현실정치에 대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를 가지고 통치행위에 연관된 영향력을 고민하려다 보니, 우리 시는 필연적으로 스스로의 불가능성을 은폐하고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형철이 말한 ‘역사적 맥락’이 소멸한 지금, 더 이상 망각의 방법은 통용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학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신을 첨예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조건’들을 낳았던 본래의 ‘정치’로 회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4. ‘상상적 대리자’에서 ‘상상의 대리자’로 앞서 저는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문학의 의무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구분을 모두 넘어서는 것으로만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모더니즘-리얼리즘의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하자는 맥락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리된 담론으로 여겨져왔던 각각의 한계들을 한번에 조망하고,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극복할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가라타니는 자유로워진 ‘정치’의 시작이 ‘문학의 종언’을 가져왔다고 했지만,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기실 오늘날 우리 문학이 직면한 위기는 달리 보면 ‘정치’의 위기이기도 했습니다. 격렬한 투쟁의 시대가 이미 지나갔음에도, 우리에게 ‘80년대적 실천’은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여전히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두 가지 과제를 오늘의 정치에 요구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지난 역사를 통해 이미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승리의 착각을 극복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투쟁의 과정을 경험하며 우리에게 각인된 ‘실천’의 기표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두 과제는, 흥미롭게도 문학이 직면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유입 이후, 이제까지 문학은 더 이상 대문자로 적어야 할 정치행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를 내달려왔습니다. 지금에야 그 유행이 거의 수그러들었지만,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거대담론이 사라졌다’는 구호가 굉장한 인기를 얻었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러나 80년대의 투쟁이 맞서왔던 억압의 구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의 깊은 이면에 내재된 채 현존하며, 오히려 더욱 교묘한 전술로 우리를 구속하고 있습니다. 허용된 자유의 형태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자유는 문학이 겨냥할 만한 명확한 적대를 제공하지 않았지요. 이후 문학은 진퇴양난의 고민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해체주의의 대안적 담론을 추수하자니, 그것은 이미 ‘거대담론의 붕괴’라는 잘못된 필요조건을 요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고, 과거의 실천적 구호를 답습하자니 오히려 그 적대행위 자체가 초자아적 정언명법이 되어 주체를 구속할 뿐이었습니다. 확고한 결단이 불가능했던 문학은 결국 두 가지 사이에서 모호하게 표류하였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기형적인 ‘미래파’의 규정과, 그들의 부족한 정치성을 벌충할 ‘시와 정치’의 논의였던 셈입니다. 흑백논리의 모순을 회색이 되어 피해보고자 한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문학의 생명력을 더욱 옥죄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며, 가라타니의 진단대로 문학은 독자들에게 더 이상 스스로의 권위를 내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미적 모더니티의 운명’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것이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을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방향성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문학이 철저하게 현실정치의 바깥에 존재하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의 역할을 재인식할 것을 주장합니다. 과거의 문학이 불가능했던 정치의 ‘상상적 대리자’ 역할을 통해 권위를 획득했다면, 이제부터 문학은 그것을 넘어서서 현실정치의 불가능한 감성을 떠맡는 ‘상상의 대리자’가 됨으로써 그것을 넘어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벤야민은 이미 1929년에 이러한 개념의 기초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그 ‘공산주의자 선언’이 오늘날에 내리는 지령을 파악한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들의 얼굴 표정을, 매분 60초 동안 째깍거리는 자명종의 숫자판과 맞바꾸며 짓고 있다. (발터 벤야민, ‘초현실주의’, ‘발터 벤야민 선집 5’, 길, 2008, 167쪽) 오늘날의 문학은 현실정치가 절대로 수행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역할을 짊어짐으로써 스스로의 정치성을 획득해내야 합니다. 우선 첫째는 ‘정치적인 것’들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정치를 대신하여 ‘정치’만의 고유한 미래적 지향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수많은 조건들의 제약을 받는 ‘실천’을 대신하여, 문학은 자신의 자유로움을 통해 ‘정치’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아나키스트적 상상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억압의 구조가 주관적 폭력에서 객관적 합리성으로 이행된 이상, 현실정치의 조직적인 치밀함만으로는 저 합리성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이들에게 객관을 넘어설 상상력을 부여함으로써, 저 ‘정치’에 부재하는 ‘미래에의 의지’를 대신하는 역할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벤야민에게 ‘초현실주의자’로 상징된 예술가의 의무가 다음 시대로부터의 지령을 파악하는 것이었듯이, 시인이 세계를 조망하는 소실점들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란 처음부터 저 상상력을 지켜내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문학에 부여된 두 번째 역할은, 우리 주변의 ‘얼굴 표정’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바라보는 일입니다.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한 번도 진보하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친부살해를 통해 권력구조를 뒤집은 형제는 결국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버지의 권좌에 앉음으로써 권력을 더욱 강하게 재생산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혁명’을 자처했던 지난 역사의 모든 변화들은, 대개 그 결과가 새로운 지배구조를 낳는 반복을 가져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학이야말로 이러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이 됩니다. 이제까지의 혁명이 다시 권력이 된 까닭은, 그 전개과정 안에서 필연적으로 소외되는 이들을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학은 현실정치의 과정이 미처 목격하지 못하는 그늘에까지도 자신의 시선을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학이야말로 모두를 끌어안을 영구한 혁명, 벤야민이 희구했던 단 한 번의 진보를 완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명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수식을 붙인다 하더라도, 문학이 감행하는 정치란 처음부터 예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이야말로 라캉적 ‘없음’이 된 자리들, 상징체계에서 추방된 이들과 초대받지 않은 미래를 세계 속에 드러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감성분할을 재분할하는, 상징계를 넘어설 ‘미학적 예술 체제’의 실재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가 이제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 “올 경제난 작년의 1.5배… 글로벌 위기 실물경제 흔들 것”

    “올 경제난 작년의 1.5배… 글로벌 위기 실물경제 흔들 것”

    민간경제연구소와 대학 교수 등 경제전문가 8인은 올해 경제난이 지난해에 비해 1.5배가량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 경제 위기·미국 경제 둔화·중국 성장 둔화 등 대외적인 여건은 지난해와 비슷한데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로 원유 가격이 불안하다. 무엇보다 20년 만에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국내 여건이 주요 경제 정책의 변수로 꼽힌다. 5대 경제 부처 및 기관(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한국은행·금융감독원)이 지난해보다 위기 대처 능력을 더 배양해야 하는 이유다. 2일 경제전문가들은 지난해의 경제 여건과 올해의 경제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1~10점 척도(10으로 갈수록 고통)로 나타내 달라는 질문에 2011년은 평균 4.7점, 2012년은 6.7점이라고 답변했다. 올해 경제여건이 지난해보다 1.5배(142.6%)가량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8명 중 7명은 올해가 지난해보다 힘들 것으로 봤다. 유럽 및 미국의 글로벌 위기 여파가 지난해에는 주로 우리나라의 금융부문에 영향을 미쳤지만 올해는 실물경제까지 흔들 것이라는 분석이 가장 많았다. 지난해에는 아시아가 세계 경제를 이끌었지만 올해는 중국의 경착륙 우려가 커지면서 아시아시장까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특히 양대 선거로 인해 추가경정예산이 거론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올해 세계 각국의 선거가 예정돼 있어 국제 공조가 힘들어질수 있고, 국내에서는 복지 재정 증가 등으로 균형 재정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면서 “경제가 정치에 휩쓸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다른 전문가는 “지난해는 유럽과 미국의 돌발변수가 있었지만 올해는 예상된 경제 위험이어서 오히려 경제여건이 나아질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지난해 5대 경제 부처 및 기관이 경제 악재에 대응한 성과에 대해 ‘A+’~‘F’ 중 평균적으로 ‘B-’의 성적을 매겼다. 이날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전체적인 경제정책에 대해 ‘B+’ 평가를 내린 것보다는 다소 박한 평가다. 이는 익명과 실명의 차이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재정부의 지난해 위기 대응 능력은 ‘B’였다. 유럽발 위기 초기에 안이한 대응을 하는 듯했지만 상황 인식이 바뀐 9월 말부터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위기관리대책회의로, 국민경제대책회의를 비상경제대책회의로 발빠르게 바꿔 대응했다는 평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에 대한 평가도 ‘B’였다. 금융위는 초기부터 유럽 악재를 정확히 판단했고, 가계 부채 대책 등 금융기관 건전성 대책을 선제적으로 준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감원은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된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됐지만 미국 반월가 시위 이후 국내 금융기관의 각종 수수료를 내리고 고연봉 및 고배당을 저지한 부분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계 대출 억제를 위한 장기·고정 대출 상품 유인책도 좋았다는 평가다. 한국은행과 공정위에 대한 평가는 C였다. 한국은행은 중국 및 일본과 통화스와프를 맺는 데 크게 기여했음에도 물가목표치를 실질적으로 달성하지 못한 점이 지적됐다. 금리정책을 선제적으로 운영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공정위는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정책은 공감을 얻었지만 라면 가격 인하 등 물가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은 기관의 업무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경주·임주형·오달란기자 kdlrudwn@seoul.co.kr
  • [Weekend inside] 트위터로 살펴본 2011년 월별 이슈는

    [Weekend inside] 트위터로 살펴본 2011년 월별 이슈는

    올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 시위’ 등 지구촌 곳곳에서 민주화와 반금융자본 시위를 촉발했고, 국내에서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서울시장 선거 등 굵직한 현안마다 이슈를 만들어 냈다. 한국인이 올 한 해 트위터 공간에서 공감하고 소통한 얘깃거리는 무엇일까. 30일 SNS 분석업체 코난테크놀로지에 따르면 트위터상에서 올 한 해 한글로 주고받은 멘션(말한 내용) 5억 9960만건을 분석한 결과 트위터 소통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휴가철인 8월과 10·11월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4997만건씩 오가던 트위터 멘션은 8월 들어 전체의 10.9%인 6549만건에 달했고, 10월과 11월에도 각각 6309만건(10.5%), 6582만건(11%)을 기록했다. 1월에는 대한민국 여심을 흔든 SBS 주말 미니시리즈 ‘시크릿가든’(8890건)이 화제였고, 2월에는 연인들이 사랑을 전하는 밸런타인데이(8만 105건), 재스민 혁명으로 촉발된 이집트 시민혁명(2만 2271건) 등이 트위터 공간을 뜨겁게 달궜다. 3월에는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일본 대지진’(20만 6550건)과 쟁쟁한 실력파 가수들이 진검승부를 펼치는 ‘나는 가수다’(6만 5819건)가 회자됐다. 4월에는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지아·서태지 결혼·이혼 사건’(15만 8587건)이 단연 화제였고, 6월에는 대학가를 들끓게 한 ‘반값등록금’(5만 9843)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8월에는 휴가(23만 1380건)와 8월 3일 5집 앨범을 발표한 슈퍼주니어(17만 6555건) 관련 멘션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4만 3676건), 희망버스(1만 7333건) 등이 뒤를 이었다. 10월에는 후보자 등 서울시장 선거 관련 멘션이 136만건을 넘으며 1위에 올랐다. 11월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26만 6618건)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26만 2151건)이 최대 화두였다. 12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18만 8194건)이 트위터 공간에서 많이 언급됐다. 코난테크놀로지 관계자는 “트위터 멘션에서 나, 너, 우리 같은 인칭 대명사나 ‘ㅋㅋㅋ’ 등을 제외하고 출현 빈도가 높은 단어를 중심으로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평화비 철거? 日 몰염치 철거하라”… 분노 더한 1001번째 수요시위

    “평화비 철거? 日 몰염치 철거하라”… 분노 더한 1001번째 수요시위

    “일본 정부는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는 몰염치를 거둬라.” 21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1001회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정기적인 시위였지만, 피해 할머니들의 분노는 더 크게 울려퍼졌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서 지난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건립한 소녀 형상의 ‘위안부 평화비’를 철거하라며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기증한 ‘희망 승합차’를 타고 시위에 참여한 김복동(85)·길원옥(84)씨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영하의 추운 날씨 속, 내리는 눈을 맞으며 한목소리로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죄를 거듭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길 할머니가 주도해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라고 시작하는 노래 ‘바위처럼’을 함께 불렀다. 빨간 산타 모자를 쓴 피해 할머니들은 ‘산타 할머니’가 돼 시위 참가자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기도 했다. 정대협 직원들은 직접 만든 덧신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증정하기도 했다. 캐럴인 ‘창밖을 보라’를 ‘전쟁은 안돼’로 개사해 부르며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되새기기도 했다. 성탄절을 앞둔 이날, 평화비의 머리에는 빨간 털모자가 씌워졌고, 목에는 두툼한 목도리가 둘렸다. 무릎에는 빨간 담요가 덮였고 시려 보이는 발에도 덧신이 신겨졌다. 곁에는 빨간 모자를 쓴 작은 눈사람 인형이 놓여 소녀의 외로움을 달랬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AP “수수께끼 같은 지도자가 숨졌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요국 외신들은 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미국의 AP통신은 평양지국발 긴급 뉴스를 통해 “북한의 수수께끼 같은 지도자 김정일이 숨졌다.”면서 “평양 거리의 시민들은 ‘친애하는 지도자’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 통신은 김 위원장이 2008년 뇌졸중을 앓았지만 최근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한 사진이나 비디오 영상에서는 건강한 것처럼 보였다고 보도했다. 또 김 위원장이 담배와 코냑을 즐겼고 미식가였으며 당뇨병과 심장질환을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상세하게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은 북한이 승계작업을 준비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승계자인 3남 김정은이 있기는 하지만 김 위원장이 숨지면서 북한 내 막후 권력투쟁과 핵무기 문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CNN도 오후 10시(현지시간)가 조금 넘어 앵커가 정규 뉴스를 잠시 중단하고 “남한의 뉴스통신에 따르면 북한 국영TV가 조금 전 김정일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며 속보를 전했다. CNN은 이후 홈페이지를 통한 후속보도에서 북한 후계체제에 대한 예상, 국제 사회의 반응 등을 상세히 전했다. 박한식 미 조지아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CNN에 출연, 김 위원장 사후에 북한에서 ‘아랍의 봄’(중동·북아프리카의 반정부·민주화 시위) 같은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대규모 봉기가 일어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 “한국이 과잉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 평양발로 관련 소식을 신속히 전했다. 이 통신은 “한국 군 당국이 김 위원장의 사망에 따라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며 한국군의 반응도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도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대서특필하면서 권력 승계 과정에서의 불안 탓에 긴장이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아사히신문은 북한이 김 위원장의 사망 이후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체제로의 이행을 선언했지만 이 과정에서 내부 혼란이 발생해 난민 사태가 생기거나 핵무기의 향방을 둘러싼 불투명성이 부각되는 등 정세가 긴박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5년차’ MB 외교력 시험대에

    한·중·일 동북아 3국이 첨예한 외교적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집권 5년차를 앞둔 이명박 대통령이 이 3각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이 우리 해경특공대원을 살해하면서 한·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18일에는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이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설전’(舌戰)에 가까운 마찰을 빚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위안부 수요시위가 1000회에 달하고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비’를 세운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뭔가 미래를 위해서 확실하게 털고 가야 되겠다. 관료들한테 맡겨놓고 질질 끌 그런 사안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하고 작심해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다 총리는 위안부 대일 청구권 문제는 1965년 체결된 한·일 협정으로 이미 다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실무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맞섰다. 더구나 노다 총리는 한술 더 떠 정상회담 직후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겐바 고이치로 외상이 지난 17일 우리 측 수석비서관에게 항의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일본 기자단에 공개했다. 한·중 관계 역시 우리 해경이 피살된 뒤 중국 측이 뒤늦게 명목상의 유감표명은 했지만, 정부의 ‘저자세 대중외교’를 비판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점에서 해법을 쉽게 도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국 정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도 받아내야 한다.”는 국내의 강경한 목소리가 여전한 상황에서,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이 쇠구슬 공격을 받는 등 중국 내 한국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아 한·중 관계 역시 긴장국면이 지속될 전망이다. 한·중·일 3국은 어로갈등(한·중), 과거사 문제(한·일) 등 불거진 현안으로 갈등을 빚고 있지만, 북한 비핵화문제와 6자회담,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경제 협력까지 다각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관계인 만큼 급격히 냉각하고 있는 동북아 3국 외교 채널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국내 문제보다는 외교분야에서 그간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받았던 이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말 또 한번 외교력을 평가받을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할머니들 눈물 그칠 때까지 우리 목소리 낼 것”

    “할머니들 눈물 그칠 때까지 우리 목소리 낼 것”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렸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1000번째 수요시위. 앳된 여고생 7명이 760송이의 종이 장미꽃으로 만든 ‘수요시위 1000회’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참여했다. 경기 양평군에 있는 양서고의 동아리 ‘햇살 담아’(햇담) 소속 학생들이다. 2005년 구성된 ‘햇담’은 7년째 활동 중이다. ●한 달에 한두 차례 ‘나눔의 집’ 찾아 봉사 햇담 담당교사인 이원복(41) 교사는 한국 근·현대사 중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다 햇담을 만들었다. 이 교사는 “자기 또래의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몹쓸 짓을 당한 데 충격을 받은 듯 학생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싶다며 수업이 끝난 뒤 찾아왔다.”면서 “학생들이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봉사할 수 있도록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문의까지 했다.”고 말했다. 현재 햇담은 정대협 산하 동아리이다. 1학년이 7기며, 고교생이 35명이다. 회원들은 한 달에 한두 차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을 찾아가 역사관에서 관광객을 안내하는 등 봉사활동을 한다. 3·1절과 광복절 때는 기념 연극을, 방학 때는 중학생들을 상대로 1박 2일 평화 캠프도 열고 있다. 1000회 시위에는 햇담 소속 재학생뿐만 아니라 졸업생들도 참가해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와 할머니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1학년 조민지(16)양은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2주 동안 열심히 장미꽃을 접었다.”면서 “우리 같은 어린 학생들이 많이 참여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국민들이 더 많은 관심 가졌으면” 최이진(16)양도 “시위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감격했다.”고 했다. 장유정(16)양은 “일본 정부가 사과할 때까지 앞으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활동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글 사진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中 무력시위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바랴크함이 지난 8월 10일, 11월 29일~12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시험 항해에 나섰다. 옛 소련이 건조하다 중단한 쿠즈네초프(6만 7000t)급 바랴크함을 2000만 달러(약 231억 3400만원)에 사들여 10년간 개조한 것으로, 내년 8월 1일 인민해방군 건군 기념일에 정식으로 출항할 예정이다. 바랴크함이 남해 함대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필리핀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을 부추겨 동북아시아의 군비 경쟁을 촉발시킬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16일 미국 글로벌시큐리티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육·해·공군, 해병대 병력 228만명 ▲핵무기 400기 ▲항공모함 1척▲ 전투함 42척▲ 잠수함 61척 ▲수륙양용 상륙함 1척 ▲전투기 1605기 ▲폭격기 112기 ▲스텔스 전투기 1기 등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시험 비행한 것으로 알려진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殲) 20기’는 2017년쯤 실전에 배치될 예정이다. 중국의 국방비 규모는 올해 915억 달러(세계 2위)로, 미국(6112억 달러)의 15%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1500억 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같은 막대한 국방비와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힘의 우위를 과시하며 주변국에 끊임없이 ‘도발’을 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3일 일본과의 분쟁 지역인 동중국해 순찰에 3000t급의 순찰함 ‘하이젠(海監) 50호’를 처음 투입, 일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앞서 2일 중국 어선은 필리핀 팔라완 해역에서 불법 조업과 멸종 위기에 놓인 바다거북을 무차별 포획한 혐의로 필리핀 해군에 나포됐으며, 9월에도 이 지역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48명의 중국 어부가 체포됐다. 6월 9일에는 중국 어선이 베트남 배타적경제수역(EEZ)이자 대륙붕 해역에서 원유 탐사 작업을 하던 베트남의 탐사선 ‘바이킹 2호’의 탐사 케이블을 고의로 절단하며 자극하자 베트남은 7월 중순 7일간 미국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며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중국, 힘의 우위 과시 끝이 없다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바랴크함이 지난 8월 10일, 11월 29~12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시험 항해에 나섰다. 옛 소련이 건조하다 중단한 쿠즈네초프급(6만 7000t급) 바랴크함을 2000만 달러(약 231억 3400만원)에 사들여 10년간 개조한 것으로, 내년 8월 1일 인민해방군 건군 기념일에 정식으로 출항할 예정이다. 바랴크함이 남해 함대에 배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필리핀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동중국해 센카쿠열도(尖閣列島, 중국명 釣魚島)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을 부추겨 동북아시아의 군비 경쟁을 촉발시킬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16일 미국 글로벌시큐리티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육·해·공군, 해병대 병력 228만명 ▲핵무기 400기 ▲항공모함 1척 ▲전투함 42척 ▲잠수함 61척 ▲수륙양용 상륙함 1척 ▲전투기 1605기 ▲폭격기 112기 ▲스텔스 전투기 1기 등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10여차례에 걸쳐 시험 비행한 것으로 알려진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殲) 20’ 기는 2017년쯤 실전에 배치될 예정이다. 중국의 국방비 규모는 올해 915억 달러(세계 2위)로, 미국(6112억 달러)의 15%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1500억 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같은 막대한 국방비와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힘의 우위를 과시하며 주변국에 끊임없이 ´도발´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3일 일본과의 분쟁지역인 동중국해 순찰에 3000t급의 순찰함 ‘하이젠(海監)50’ 호를 처음 투입, 일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앞서 2일 중국 어선은 필리핀 팔라완 해역에서 불법 조업과 멸종위기에 놓인 바다거북을 무차별 포획한 혐의로 필리핀 해군에 나포됐으며, 9월에도 이 지역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48명의 중국 어부가 체포됐다. 6월 9일에는 중국 어선이 베트남 배타적경제수역(EEZ)이자 대륙붕 해역에서 원유 탐사 작업을 하던 베트남의 탐사선인 ‘바이킹 2호’의 탐사 케이블을 고의로 절단하며 자극하자, 베트남은 7월 중순 7일간 미국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며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MB맨들 총선 무소속 출마 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난 13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1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예비후보 등록 현황을 보면 이 대통령 측근 가운데 박형준 전 청와대 사회특보는 부산 수영구에, 김희정 전 청와대 대변인은 부산 연제구에 각각 한나라당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그런데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거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대구 중·남구에 무소속으로 등록했다.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 전 차관은 이날 SLS그룹으로부터 일본 출장 중 접대를 받은 의혹 때문에 검찰에 출석했다. 현 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맡았던 이종찬 전 수석도 경남 사천에 무소속으로 등록했다.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 논란에 따른 촛불 시위 때 물러난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전주 완산구을에 무소속으로 등록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 정권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린 이들이 당의 인기가 떨어지자 무소속으로 나오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어차피 대통령과 차별화를 해야 하는 만큼 다른 측근들도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오라.”는 주장도 있다. 당사자들은 “착오가 있었다.”거나 “나중에 입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전 장관은 “등록할 때 사무적으로 착오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곧바로 한나라당으로 소속을 바꾸었다. 하지만 당 관계자는 “정 전 장관은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도 한나라당 전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다.”면서 “착오라는 설명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전 차관은 “내각에 들어갈 때 탈당했기 때문에 현재는 당원이 아니다.”면서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장·차관 출신들과 나중에 함께 입당해 한나라당 소속으로 변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방호 전 사무총장 등과 경쟁하게 될 이 전 수석의 한 측근은 “한나라당 공천이 확실해지지 않으면 무소속으로 계속 선거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위안부 소녀 형상화 ‘평화비’ 건립… 日, 사과없이 철거 요구

    위안부 소녀 형상화 ‘평화비’ 건립… 日, 사과없이 철거 요구

    14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에 고개를 숙인 채 다소곳이 앉은 소녀의 상이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1000번째 수요시위를 맞아 시민사회단체가 모금을 통해 만든 ‘평화비’였다. 130㎝ 크기의 평화비는 한복 차림에 손을 무릎에 모은 채 작은 의자에 앉은 위안부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소녀 옆의 빈자리는 그를 위로하는 시민들의 ‘자리’로 남겨 뒀다. 의자 옆 돌바닥에는 ‘1992년 1월 8일부터 이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운다.’라는 문구가 한국어와 영어·일본어 등 3개 국어로 새겨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주최로 열린 이날의 1000번째 수요시위에는 길원옥(84)·김복동(85)·박옥선(87)·김순옥(90)·강일출(83) 등 5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한명숙 전 총리,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등 정치권 인사와 시민 등 3000여명(경찰 추산 1000명)이 참석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는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 과거 잘못을 사죄하고 배상할 것은 배상하라고 말해 줬으면 좋겠다.”면서 “일본은 이 늙은이들이 다 죽어 없어지기 전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원옥 할머니는 “우울하다. 저 일본인들이 사죄하지 않는데 1000회라고 해서 다를 게 뭐 있느냐.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 다시는 이 땅에서 나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회를 맡은 배우 권해효씨는 “1000회를 맞는 이날까지 우리는 분노하고 있다. 소원이 있다면 다음 주에는 (시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시민단체도 함께 시위에 참가했으며, 일본 NHK와 후지TV, 로이터 등 외국 언론사도 현장을 취재했다. 이날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 등 8개국 42개 도시에서 똑같은 시위가 열렸으며, 국내에서는 서울과 경기, 부산 등 9개 시·도 30개 지역에서 집회가 열렸다. 한편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대사는 이날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를 방문, 박석환 제1차관을 만나 항의의 뜻을 전하고 평화비 철거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박 차관은 “일본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며, 우리 측이 요구한 한·일 양자 협의에 응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밝혔다. 김미경·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도쿄 외무성 앞 ‘인간 띠 잇기’… 세계 42개 도시서 日 규탄

    도쿄 외무성 앞 ‘인간 띠 잇기’… 세계 42개 도시서 日 규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1000번째 수요 시위를 기념하기 위한 지지 행사가 14일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열렸다. 도쿄 가스미가세키의 외무성 주변에선 일본 정부의 사죄·배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회원 1300명이 시위를 벌였다. 홋카이도 삿포로시와 가나가와현, 오키나와 등 일본 내 13개 지역에서도 집회와 시위가 있었다.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전국 행동 2010’은 외무성을 둘러싸는 인간 띠 잇기 행사를 하면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사과하고 한국의 외교 협의 요구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외무성 앞 도로 건너편 인도에는 ‘힘내라 일본 전국행동위원회’ 등 우익단체 회원 1000여명이 모여 “강제연행은 없었고, 위안부들은 단순한 매춘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일부는 경찰의 저지를 뚫고 시민단체 회원들과 충돌을 일으키려고 했다. 미국 뉴욕 퀸즈버러 커뮤니티칼리지 극장에서는13일(현지시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인 이용수(83) 할머니와 이옥선(85) 할머니가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대학살) 생존자인 한 리브만, 에셀 캐츠와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이들은 생전 처음 만났지만 포옹하고 서로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전쟁 범죄로 받은 상처를 공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캐츠의 손을 잡고 “같은 아픔을 겪은 분들이라 우리의 아픔을 잘 알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캐츠는 “인생에서 성취해야 할 목표를 갖고 노력하면 그들(일본)을 이길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격려했다. 도쿄 이종락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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