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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⑨ 대학도시 롤모델 英옥스퍼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⑨ 대학도시 롤모델 英옥스퍼드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북서쪽으로 80㎞. 언덕으로 이어진 넓은 초록색 숲을 따라 고속도로를 한 시간가량 달리자 옥스퍼드가 나타났다. 옥스퍼드는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오가는 대학생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을 제외하면 오래된 영국의 중소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시 안쪽으로 들어서자 가정집을 개조한 기숙사들과 오래된 학교 건물들이 이어졌다. ‘영국의 자존심’이자 엘리트들의 대학도시 옥스퍼드에는 ‘첨단’ 대신 ‘고요함’이 가득했다. 옥스퍼드는 케임브리지와 함께 흔히 ‘옥스브리지’로 불리지만 두 도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옥스퍼드는 대학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존재하는 소도시인 케임브리지와 달리, 산업과 관광 등이 공존하는 인구 15만명의 완벽한 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케임브리지대가 과학과 경제에 치중하는 반면, 옥스퍼드대는 인문사회와 이공계를 아우르며 좀 더 폭넓은 종합대학에 가깝다. 옥스퍼드대는 1200년대 초중반, 파리에 유학을 다녀온 수도사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249년 ‘컬리지’라는 단과대학 형태가 정착되면서 이 해가 옥스퍼드의 개교 원년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시내를 중심으로 곳곳에 퍼져 있는 옥스퍼드 건물들은 대부분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다. 수많은 시인과 정치가, 과학자들이 이곳에서 젊음의 꿈을 불살랐고 이들은 나중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원동력이 됐다. 지금까지 30여명의 영국 총리가 이곳에서 배출됐다. 옥스퍼드대 학생들의 엘리트 의식은 대단하다. 대학 관계자는 “한국, 일본, 중국과 인도, 동남아, 남미 등지로 학생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오래 전의 귀족의식은 희박해졌지만 교수와 학생 모두 세계 최고의 대학에 다닌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면서 “품위 규정이나 학업 관리 등은 다른 어떤 대학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옥스퍼드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옥스퍼드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벗어나면서부터다. 옥스퍼드대는 옥스퍼드만이 아닌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이다. 정부는 시를 거치지 않고 대학을 직접 지원하고 관리한다. 기업들 역시 대학 기금 조성과 연구비 지원에만 관심이 높다. 결국 옥스퍼드대로 인해 시가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나 정부 지원은 없는 셈이다. 옥스퍼드시 관계자는 “옥스퍼드대 덕분에 시가 많은 혜택을 얻을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오히려 시가 사용해야 할 예산까지 대학건물 증축과 주택 정책 등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면서 “시를 구성하는 나머지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학만 바라볼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정부와 시의회는 1970년대 후반부터 옥스퍼드 내 다른 대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당시 옥스퍼드에는 옥스퍼드대의 그늘에 가려 있었지만 이공계에 강점을 가진 옥스퍼드 브룩스대와 중하위권 대학인 매드트리 대학 등이 열악한 재정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옥스퍼드 브룩스대에는 기숙사 등 주택정책과 적극적인 홍보예산이 배정됐고, 기업들의 연구비 유치를 위해 시정부가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섰다. 불과 20년이 지나지 않아 옥스퍼드 브룩스대는 영국에서 손꼽이는 신흥 명문대로 발전했고, 그 결과물은 시 예산 확보로 이어졌다. 섬유와 화학공학 등에서 옥스퍼드 브룩스대의 성과가 두드러지면서 각종 기업들이 연구비 지원뿐 아니라 옥스퍼드 근교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직원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런던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인구도 급격히 늘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갈 수 있는 지역이라는 한계 때문에 옥스퍼드에 관심을 갖지 않던 학부모와 학생들도 옥스퍼드를 수많은 선택지 중의 하나로 고려하게 되면서 오히려 관광객과 방문자가 늘어나는 효과도 거뒀다. 이와 함께 시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아시아권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시의 관광자원화도 진행했다. 옥스퍼드대를 구성하는 40여개 칼리지는 대부분 수백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들이다. 크라이스트 교회와 톰 타워 등은 옥스퍼드대를 찾은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영국을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잡았다. 옥스퍼드성의 경우에는 철마다 그림자 귀신축제 등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영국 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1990년대 이후에는 옥스퍼드대의 이름을 내세운 어학연수 코스가 시 재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어학연수생들을 대상으로 홈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 에마 블링크는 “옥스퍼드 지역의 어학연수비나 홈스테이 비용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데도 불구하고, 옥스퍼드 칼리지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순서를 기다려야 할 정도”라며 “대학의 브랜드가치가 결국 도시 구성원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옥스퍼드 박건형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산너머 남촌에는(KBS1 오후 7시30분) 청양댁은 대흥리에 옛 동료였던 ‘떴다방’ 약장수들이 방문하자 기운 없는 길선을 데리고 읍내로 나간다. 공연도 즐겁게 보고 공짜로 한약과 경품도 받아 온 두 사람. 그러나 걱정하는 가족들로부터 한소리 듣자 기분이 상한다. 시골 생활이 무료한 청양댁은 동네 노인들을 데리고 떴다방에 드나드는데…. ●도망자(KBS2 오후 9시55분) 후쿠오카 이민국에서 탈출한 지우는 집요하게 쫓는 도수를 뒤로 한 채 사라진 노트북을 추적해 진이의 행방을 알아내는 한편, 미진의 소재를 캐내기 위해 나카무라 황을 찾는다. 지우를 따돌리고 훔쳐낸 개인용 컴퓨터에서 멜기덱의 뒤를 잡으려는 진이. 그러나 별 소득없이 카이와의 어정쩡한 관계만을 재확인할 뿐이다. ●방방곡곡 해피트레인(MBC 오후 5시35분) 뮤지컬 커플 유승준·정선경 부부, 한국무용 커플 정관영·정유진 부부, 현대무용계의 대부·대모 류석훈·이윤경 부부, 애국자 사물놀이 커플 김영기·강성미 부부. 예술인 부부 들과 함께 떠나는 기차여행 ‘해피트레인’. 열한 번째 여행지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가 만나는 곳, 전북 무주이다. ●뉴스추적(SBS 오후 11시5분) 한국에 살고 있는 통일교 일본인 부인들에 대한 반인륜적이고 반종교적인 인권 침해 실태와 지상파 방송을 통해 전격 공개되는 통일교 내부의 모습을 보도한다. 특히 통일교의 교주인 문선명 총재에 이어 7남인 32세 문형진 세계회장의 통일교 2기 체제에서 변화하는 교회 모습 등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극한직업(EBS 오후 10시40분) 중국 장시성의 소도시 징더전. 1000년 전부터 도자기를 만들어 온 이곳은 인구 50만 명의 30%가 도자산업에 종사할 정도다. 그 명성만큼이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도자기를 제작하기로 소문나 있는 징더전 도자기.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과 고도의 기술로 도자기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징더전의 도자기공을 만나본다. ●메디컬 다큐 생명(OBS 오후 11시5분) 졸음운전으로 인한 중앙선 침범으로 교통사고가 난 두 남녀. 응급실로 후송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의료진들은 다급하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긴 심폐소생술 끝에 환자의 심장박동은 다시 돌아온다. 의료진은 서둘러 흉관 삽관을 시행하지만 갑자기 떨어지는 심장박동에 과다 출혈로 수술도 힘든 상태에 놓이게 된다.
  • [연극리뷰] ‘이번 생은 감당하기 너무 힘들어’

    ‘이번 생은 감당하기 너무 힘들어’(극단 제12언어 연극 스튜디오·젊은공연예술축제 Y.A.F 제작)는 제목 그대로 귀여운 느낌의 작품이다. ‘조용한 연극’, ‘일상적 연극’을 선보이는 일본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을 번안했다. 일본 동북지역 어촌을 배경으로 도쿄와 지방 간 만남을 주선한 원작의 뜻을 살려, 낙동강을 끼고 있는 경남 바닷가의 한 소도시 연구실을 무대로 설정한 뒤 부산 배우 3명을 캐스팅했다. 히라타의 다른 작품에 비해 등장인물 수도 줄고, 소재도 최첨단 과학 대신 기생충이다. 극단에서 이 작품을 ‘별책부록’이라 부르는 이유다. 갯가 출신들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주목받는 젊은 연출가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김한내가 선택한 카드는 의외로 ‘여백’이다. 관객에게 들으라고 대놓고 목청 크게 대사를 외쳐대는 게 보통의 연극적 상황이라면, 이 작품은 빤히 서로를 쳐다보면서 말을 할 듯 안 할 듯 삭히고 삭히는 상황을 던진다. “무심한 듯 흘러가는 간결한 대사들과 그 사이 사이를 채우는 짧은 침묵들에서 관객 개개인이 각자의 주관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연출 포인트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온 부부 진일(홍우진)과 리은(한선영). 낯선 곳에서 외톨이가 된 리은은 진일의 학교 후배에게 기생충학 강의를 청한다. 그나마 의지할 남편과 뜨악해진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 같은 기생충학자가 하는 짓은 하나같이 기괴하다. 기생충에게 애칭 붙여주는 것부터 시작해 기생충을 잘 키우기 위해 제 몸에다 넣어 기르고, 알레르기에 효과가 있다면서 아이에게 기생충을 처방하기도 한다. 작품은 리은이 기생충을 배우는 과정에서 인간 관계에 대한 얘기들을 슬슬 풀어놓는다. 편하게 기생하려면 숙주를 죽음으로까지 몰고가서는 안된다는 역설적 상황이 핵심. 숙주를 위험하게 하는 독한 기생충도 있지만, 그러면 자기들도 죽기 때문에 번성하지 못한다. 여기서 ‘공생하려면 기생하는 법부터 배우라.’거나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 오히려 사랑 아닐까.’라는 얘기를 툭툭 던져 놓는다. 때문에 “광절열두조충처럼 5m가 넘는 기생충이 우리 몸 안에 있어도 별다른 증상이 없는 건, 그네들이 그만큼 평화 지향적이라는 걸 말해 준다.”고 익살떨던 기생충학자 서민(단국대 의대 교수)이 떠오른다. 리은에게 기생충학을 강의하는 석사 1년차 문채욱(조재호)이 극에 활력을 불어넣어줘 조용한 연극임에도 유쾌발랄한 면모까지 갖췄다. 10일까지 서울 대학로 정보소극장. 전석 2만원. (02)742-605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기회와 도전의 현장에 가다] 3조9800억원 종묘시장… 당근 씨앗 70% 한국계 점유

    [기회와 도전의 현장에 가다] 3조9800억원 종묘시장… 당근 씨앗 70% 한국계 점유

    강현욱 베이징세농종묘 연구소장은 “중국인들은 채소를 고를 때 모양보다 색깔을 먼저 본다.”고 말했다. 화려함을 강조하는 중국인의 습관이 반영된 것이다. 강 소장은 “13억명의 인구를 먹여살리는, 중국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산업이 바로 농업”이라며 “중국은 연간 농업 생산량이 240조 8000억원에 달해 세계 농산물 시장의 5분의1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중국의 종자시장에선 현재 8000여개 회사가 경쟁하고 있다. 유럽의 신젠타와 누넘, 리마그렌, 이스라엘의 하제라, 일본의 다키 도키다와 사카타 등 10여개 다국적 기업도 진출해 있다. 멕시코계 세미니스는 점유율이 20%를 넘는다. 전체 종자시장 규모는 3조 9859억원 수준. 벼(25%), 화훼(23%), 옥수수(23%), 과채류(8%), 면화(7%) 순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지난 6월 중순 베이징 외곽 다싱(大興)구. 30도를 웃도는 초여름 날씨 속에서도 1만 7000여㎡ 부지에 들어선 5층 건물에선 100여명 직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곳은 중국인이 즐겨먹는 ‘바이위춘(白玉春)’을 중국에 퍼뜨린 베이징세농종묘의 본사이자 물류창고다. 산둥성 전역과 윈난성, 네이멍구 등에서 주로 재배되는 바이위춘은 흔히 ‘봄무’로 불린다. 그런데 한국 토종 종자라는 사실은 중국인들도 잘 모른다. 박상견 총경리는 “지방 소도시 재래시장에서 무를 사러온 아낙네도 ‘무’ 대신 ‘바이위춘’이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애니콜’보다 많이 팔린 한국 토종 무 종자 이곳에서 자동차로 30여분 거리의 세농종묘 종자연구소. 15만㎡ 부지에 120여개 비닐하우스와 연구동이 들어섰다. 강 연구소장은 “북방과 중부권에 맞춰 개량종자 개발이 한창”이라며 “7만㎡ 규모의 광둥연구소에서도 2007년부터 남방지역 개량종자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농우바이오의 자회사인 세농종묘는 중국에서 선전하는 거의 유일한 한국계 종자기업이다. 채소종자 위주의 시장공략으로 전체 5%대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빅5’ 규모다. 다른 한국 종자기업인 흥농종묘와 서울종묘는 외환위기 직후 다국적 기업에 인수됐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외치던 국내 종자산업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국가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대기업이나 은행뿐 아니라 종자산업도 외국 메이저사에 팔리는 운명을 맞았다. 탈출구는 바로 중국이었다. 세농종묘는 한·중 수교 직후인 1994년 중국에 진출, 운 좋게 1년 만에 독립법인을 출범시켰다. 그동안 20여개 품목, 100여종 종자를 대륙에 뿌렸다. 최근에는 위기의식도 커졌다. 공대경 연구부소장은 “일본과 한국, 중국의 종자기술이 각각 10배가량 차이가 난다지만 이대로라면 중국기술이 한국을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세농종묘도 최근 당근 교배종 시장에 집중하는 등 품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자오춘(朝春)’이란 당근 종자는 시장점유율 70%를 기록 중이다. 배추종자인 ‘쓰지왕(四季王)’과 고추종자인 ‘스농칭자오(世農靑椒)’ 외에도 토마토·가지·수박·참외·멜론 등의 종자를 주력 상품으로 삼고 있다. 박 총경리는 “한국이 세계적인 품종 개량기술을 지닌 분야가 바로 배추, 고추 등 채소작물”이라며 “기후조건이 좋고 인건비가 싼 중국은 품종 개량 전진기지로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중국사업 성공 비결은? “‘13억명에게 껌 한 통씩만 팔아도’라는 말이 있어요. (김치로) 가정해 봅시다. 13억 포기가 되는데 결과는 뻔하죠, 망합니다.” 중국시장에서 한국기업들의 초창기 성적표는 보잘것없었다. 현지 주재원들은 입을 모아 “인구 13억명이라는 시장만 보고 덤벼든 경쟁사가 100여개였다.”고 회상했다. 박 총경리는 “한국기업 10곳 중 9곳은 단순히 숫자로만 계산하고 달려드는데 그러면 무조건 실패한다.”며 “문화와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치를 예로 들면 김치 한 포기가 한국에서 100원이라면, 중국 소득수준에선 10원이 된다. 한국과 비교해 매출은 13억이 아닌 1억 3000만포기 수준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중국인은 대부분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우리는) 중국에서 세금 많이 내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며 “눈높이를 낮추고 원칙에 충실해야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관시’(關係)는 술 몇 잔 함께 먹는다고 쌓이는 게 아니다.”면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나중에 부탁할 때 (중국인은) 바로 선을 그어 버린다.”고 말했다. 중국인은 감성적인 만큼 진실하게 다가가 마음을 건드리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세농종묘는 매년 2000만원가량의 장학금을 지역 학생들에게 내놓고 있다. 30년간 종묘사업에 종사해온 박 총경리는 2003년 6월 부총경리로 발령받아 중국으로 건너왔다. 2006년에는 중국 10대 농업경제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인구 13억명 가운데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한다.”며 “면적은 남한의 97배이지만 아직 채소종자 시장 규모가 2540억원 수준에 불과해 계속 커질 것”이라 전망했다. sdoh@seoul.co.kr
  • 19禁 뱀파이어 시리즈가 온다

    19禁 뱀파이어 시리즈가 온다

    뱀파이어 영화 시리즈 ‘트와일라잇’이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19금(禁)’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영화채널 스크린은 23일 오후 11시부터 섹시 뱀파이어 시리즈 ‘트루 블러드’를 방영한다. 2008년 미국에서 시즌 1이 선보였을 때 회당 시청자가 1240만명을 넘어가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 뉴욕타임스 같은 언론으로부터도 “섹스 앤드 더 시티 이후 최고의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입소문 덕에 국내에도 열혈팬을 두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도 계속 출간되고 있는 샬레인 해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인기 미드 ‘식스 피트 언더’의 제작자 앨런 볼이 연출했다. 드라마의 기본 콘셉트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공존. 이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일본인 과학자가 발명한 인공혈액음료 ‘트루 블러드’ 덕분이다. 이 음료가 개발되면서 뱀파이어들은 더 이상 피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해칠 필요가 없어졌다. 뱀파이어의 공식 메뉴에서 인간을 지워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뱀파이어들은 이제 더 이상 전설 속 괴물로 남아 있지 않으려 한다. 인간 사회로 내려와 인간들과 어울려 지내며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원래 습성은 어디 가지 않는 법. 여전히 사회성이 부족한 뱀파이어들이 넘쳐나고, 이를 지켜보는 인간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뱀파이어들을 적대시하는 교회 등에서는 여전히 삐딱한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미국 남부의 소도시 본톰에 사는 웨이트리스 수키 스택하우스(안나 파킨)는 평범해 보이지만, 특출한 능력이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것. 특출나다는 것 때문에 고통받는 뱀파이어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인간과 뱀파이어와의 공존에 대해 아주 긍정적이다. 특히 173살 먹은 잘생긴 뱀파이어 빌 컴튼(스티븐 모이어)에 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빌에 비해 훨씬 사회성이 부족한 다른 뱀파이어 동료들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도 위기를 겪는다. 이 드라마 덕분에 안나 파킨은 골든 글러브 TV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국내 팬들에게는 배역 이름의 발음 때문에 ‘숙희’라 불린다. 뱀파이어 드라마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늑대인간 등 다양한 존재들이 등장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영화리뷰] ‘베스트 키드’

    [영화리뷰] ‘베스트 키드’

    1980년대 인기 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가 또 개봉한다. 10일 스크린에 걸리는 ‘베스트 키드’다. 원작은 1984년 첫선을 보였다. 주변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약골 고등학생 다니엘이 우연한 기회에 일본 무술인 가라테를 배워 역경을 이겨내고, 무술 대회에서도 우승한다는 이야기다. 23세 나이에 주인공 캐릭터를 맡아 최강 동안을 뽐낸 랠프 마치오는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올랐다. 가라테 스승 역을 맡은 팻 모리타는 미국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원래 제목은 ‘가라테 키드’였는데, 국내 개봉 당시 왜색을 의식해서인지 ‘베스트 키드’로 바꿨다. 폭발적인 인기 덕택에 1986년과 1989년 2편, 3편이 각각 만들어졌다. 팝 밴드 시카고 출신 피터 세트라가 부른 2편 주제가 ‘글로리 오브 러브’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994년에는 마치오 대신 힐러리 스웽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자매 영화 ‘넥스트 가라테 키드’가 나왔다. 2010년판 ‘베스트 키드’는 원작의 골격만 유지한 채 모두 달라졌다. 주인공이 백인에서 레게 머리를 한 흑인 꼬마로 바뀌고, 무대도 미국 소도시에서 광활한 중국으로 변했다. 원작의 다니엘처럼 드레(제이든 스미스)도 어머니가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이사하게 되는데, 가는 곳이 중국 베이징이다. 드레는 쿵푸를 전문적으로 연마하는 동네 아이들의 텃세에 시달린다. 혼자 저항하는 용기도 발휘하지만 역부족. 마침 아파트 관리인 미스터 한(청룽)과 인연을 맺고 쿵후를 배우게 된다. 청룽이 슬픈 가족사를 지닌 은둔형 무술 고수로 나오는 점이 가장 흥미롭다. 이제 그도 자신의 젊은 시절 영화 속 스승인 소화자(원소전) 역할을 해야 할 나이에 접어든 것이다. 원작에서 모리타가 다니엘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며 간접적으로 가라테를 가르쳤던 것처럼, 청룽도 드레에게 옷걸이에 옷을 걸어놓는 동작을 반복하게 하며 쿵후를 습득하게 만든다. 원작에서 동양 무술의 신비로움을 부각시키려고 했는지 모리타가 젓가락으로 파리를 잡는 장면이 있다. 2010년판에서는 이를 코믹하게 패러디한다. 청룽이 젓가락으로 파리를 잡을 것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파리채로 때려잡는 것. 원작을 모르더라도 영화를 즐기는 데 무리가 없다. 전형적인 스토리를 매끄럽게 다듬어 놨기 때문에 딱 그만큼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할리우드 화질에 담긴 현대화된 중국의 모습도 볼 만하다. 제이든 스미스는 할리우드 톱스타이자 이 영화의 제작자 윌 스미스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었다고 하지만, 이미 아버지와 함께 ‘행복을 찾아서’(2006),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지구가 멈추는 날’(2008)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터라 연기력이 제법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이재민 사후관리 정부·市서 앞장

    이재민 사후관리 정부·市서 앞장

    │가시와자키 이종락특파원│일본 니가타현에 위치한 가시와자키 시는 2004년과 2007년 두 차례 지진 피해를 입었다. 2004년 4월 강진으로 21명이 사망하고 2000여명이 부상했다. 이어 2007년 7월에도 진도 6.8의 지진으로 9명이 사망하고 건물 1300채가 붕괴됐다. 몹시 황폐해졌을 것 같은 가시와자키 시이지만 지진이 지나고 간 지 3년 만에 찾은 이곳은 여느 일본 소도시처럼 평온했다. 가시와자키 역에서 열차에 내려 동해를 바라보며 걸어서 5분 거리에 깔끔한 5층 아파트 5채가 눈에 띄었다. 지진 이재민들 중 새로 집을 지울 수 없는 고령자와 장애인 140가구 20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월세는 소득수준에 따라 4000엔~3만엔 정도지만 정작 사정이 딱한 경우는 면제해 주기도 한다. 대부분 10평 이하의 작은 아파트지만 갈 곳 없는 이재민들에게는 어느 곳에도 비할 수 없는 따뜻한 보금자리다. 이곳을 찾은 지난달 27일은 때마침 입주민들에 대한 의료상담과 생활상담을 하는 날이었다. 시가 운영하는 사회복지협의회에서 상담사 6명이 나와 이재민들에 대한 생활지원을 하고 있었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재민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얘기 꽃을 피운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사임 위기에 처해 있느니, 여느 해 봄보다 날씨가 춥다느니 얘기를 주고받으며 활짝 웃었다. 이윽고 NHK에서 건강체조 프로그램이 방송되자 이재민과 상담사들이 모두 한몸이 되어 체조를 따라한다. 이들 이재민이 이처럼 밝은 웃음을 되찾게 된 데는 정부와 시가 철저하고 꾸준한 사후관리를 한 덕택이다. 특히 사회복지협의회 상담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매일 이재민들과 어울려 어려움과 고민을 덜어준 결과다. 지진피해 직후 이재민들은 가설주택에 입주하면서 주위사람들과 대화가 끊기고 여진을 상상하는 환청의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우울증 환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시와 상담사,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인해 대부분의 이재민들이 이젠 지진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지진 당시 피해를 묻자 곤도 사쿠에(80)는 “3년이 지났으니까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여진에 대한 공포와 환청 때문에 몇달 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며 “20대 때 전쟁(2차세계대전)을 치렀지만 전쟁보다 무서운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이재민들은 3년이 지났지만 지진에 대한 얘기를 별로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기자가 지진 피해를 묻자 그제서야 얘기를 꺼내놓으며 서로 “그런 일이 있었냐.”며 맞장구를 칠 정도였다. 오츠카 마미코 가시와자키시 생활지원계장은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지진으로 인한 인명과 재산피해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만 지연재해 이후 피해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가 더 어렵고 힘겨운 과정”이라며 “고베지진때 사회문제화했던 고독사(死)가 가시와자키 시에서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도 주위 사람들의 배려와 관심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jrlee@seoul.co.kr
  • [선택 2010 지방선거 D-75] 지자체 아이디어+주민참여 합작

    ‘참신한 아이디어와 주민의 참여’ 성공한 해외 지방자치단체의 공통점은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지방 정부의 참신한 발상과 주민의 참여가 더해진 민·관 협력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 지역을 발전시킨 사례가 많다. ●효고현 ‘지산지소’ 운동 일본 혼슈 서쪽에 위치한 효고현은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그 지역에서 먼저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으로 유명하다. 각종 식품 파동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찾으려는 주민 욕구를 바탕으로 ‘직판소’라는 시스템을 운영해 주민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끈 게 성공의 요인이었다. 나아가 효고현은 지역 먹거리를 지역 주민이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2004년부터 ‘효고현 식품 인증제’를 도입했다. ●슈퍼 식용유 회수… 정부 재활용 1960년대 일본의 대표 공업도시로 통하던 기타큐슈가 자타가 공인하는 환경도시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도 민·관 협력으로 가능했다. 1970년대 들어 주부를 중심으로 시민운동이 시작됐고, 여기에 지방 정부와 기업이 동참하면서 효과를 낸 것이다. 지금도 기타큐슈내 40여곳의 동네 슈퍼마켓에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폐식용유 수거통이 있다. 폐식용유를 자동차연료로 재활용하기 위해 시가 2008년 9월부터 수거하고 있는 것이다. 도입 당시 월 600ℓ였던 수거량이 지금은 4300ℓ에 이를 만큼 주민 참여도가 높다. ●철물공장을 레저단지로 개조 독일의 에슬링겐은 인구 9만명의 소도시이지만 ‘디자인 도시’를 표방하며 외화벌이로 유명해졌다. ‘자동차 도시’ 슈투트가르트로부터 10㎞ 거리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자동차 부품과 각종 철물 제품을 생산하는 공업도시로 성장했지만 철물공장을 개조한 문화·레저 복합단지인 ‘다스 딕’의 활약으로 연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권경득 선문대 교수는 18일 “지방자치의 주요 목적은 지역 주민의 생활 수준 향상과 지역의 경제발전이므로, 민·관의 협조는 지방자치 성공의 필수 요건”이라면서 “민·관의 협조 체제를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지방시대] e러닝 활성화 공교육 정상화해야/민병기 창원대 국문학 교수

    [지방시대] e러닝 활성화 공교육 정상화해야/민병기 창원대 국문학 교수

    분야별 최고 권위자의 강의를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교육이 e러닝이다. 대·소도시 차별 없이 어디에서나 학생들이 배울 수 있으니, 지방화시대에 꼭 필요한 학습이 e러닝이다. 한 교수나 교사가 수십만명을 대상으로 가르칠 수 있으니, 강의의 전파 효과는 최고다. 선진국들은 이미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인터넷으로 평생교육과 엘리트교육을 병행하는 공교육 제도를 확립했다. 중부 여러 대학들이 e러닝을 제공하는 미국중부대학교(University of Mid America)와 미국 내 대학들과 외국 대학들이 협력하여 공과 분야 e러닝을 제공하는 국가기술대학(National Technological University)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현재 2만 5000여개의 e러닝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참여 학습자가 100만명을 넘는다. 독일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정부는 1974년에 사이버 대학을 창설하여 현재 참여생이 수십만명에 달한다. 덴마크는 1960년대 이미 집에서 대학의 전체 교과과정을 수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e러닝 기관에 참여하는 수강생 비율이 세계 최고인 국가이다. 그 다음으로 높은 곳이 스웨덴·영국·일본 순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현 정부는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특수고교 설립, 학원 통제, 대입제도 개선, 교육계의 비리 척결 등 개혁에 착수했다.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사업이기에 너무 조급하게 성과를 거두려 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정부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바꿀 수 있는 길을 획기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낙후한 우리 교육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e러닝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그 기능을 대폭 강화시키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우리는 e러닝을 단순히 정상 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나 하는 평생교육의 차원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e러닝은 제도권 교육으로 만족할 수 없는 우·열등생 누구나 자신의 관심과 수준에 맞추어 온라인상으로 받는 교육이다. 평생교육과 함께 엘리트 교육이 가능한 가장 진보적인 열린 교육이다. 더욱이 공평하게 제공되는 공교육이니, 능력과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무한경쟁시대에 온라인상에서 지금 교육혁명의 물결이 일고 있는데, 한국은 초기 단계에 있어 그 운영이 부실하다. 입시를 위한 문제 풀기 위주의 왜곡된 우리 학습 풍토를 개혁하기 위하여,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e러닝 기관의 운영은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도 초고속 통신망을 갖추었으니, e러닝 전담기구 설립이 필요하다. 현재 EBS 플러스 같은 방송이 있지만 칠판을 활용하는 문제풀이 설명 수준이다. 과학 같은 학문에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도록 유도하는 ‘NOVA’ 같은 개발학습을 유도해야 한다.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칼 세이건 원작)나 ‘대국굴기’ 같은 내용을 제공해야 한다. 분야별 최고의 강사진으로 구성된 공교육 e러닝 센터가 높은 수준의 내용을 제공해야 교육이 획기적으로 바뀐다. 영국 국회방송의 청취율 상승으로 정치의식이 개혁되었듯이, 한국 ‘EBS 플러스’방송 청취율이 향상되어야 공교육이 개선된다.
  • [객원칼럼] 삼성의 미래를 상상하며/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객원칼럼] 삼성의 미래를 상상하며/김동률 KDI 언론학 연구위원

    늦깎이 유학을 떠나 박사과정 코스워크를 끝낸 90년대 중후반, 긴 여름방학을 맞아 플로리다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발사된 우주선을 지휘·통제하는 곳은 텍사스의 휴스턴 나사본부이지만 우주선을 실제로 쏘아 올리는 곳은 플로리다의 소도시 케이프 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센터다. 공부를 겸해 발사센터를 둘러보니 우주선에 장착된 각종 장비와 물품 수백가지가 전시돼 있었다. 한데 그 가운데 국산제품은 하나도 없었다. 실망하는 아이들에게 언젠가 ‘메이드 인 코리아’도 여기 등장할 것이라고 위로하는데 갑자기 큰 아이가 고함을 친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있다는 것이다. 우르르 달려 가니 정말 낯익은 상표와 함께 조그만 전시품이 눈에 띈다. 우리가 흔히 전자레인지로 부르는 소형 마이크로 웨이브. 삼성이라고 새겨진 청색의 타원형 로고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전자레인지가 전자제품 중 가장 단순한 품목이라지만 내게는 단지 그곳에 국산 제품이 하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였다. 사실 6년간의 유학생활 내내 삼성은 내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대형 전자제품 매장인 베스트 바이에 들를 때마다 소니와 파나소닉 뒤편에서 오도카니 먼지 속에 놓여 있던 삼성 TV는 나를 조바심나게 했고, 델과 HP에 비해 한적했던 삼성컴퓨터 매대는 늘 나의 발길을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세상이 변했다. 일본의 자존심이자 오늘날 일본경제를 이끈 주역인 소니, 도요타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 소니의 침체에 이어 세계 최고의 자동차업체인 도요타의 몰락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일본업체의 몰락에 상대적으로 주목받는 기업이 삼성과 현대자동차다. 그중에서도 삼성이 정말 잘 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블룸버그의 올해 매출전망에 따르면 세계 1위업체였던 HP가 1200억달러, 삼성전자가 1270억달러를 기록해 삼성이 세계 최대 IT기업으로 등극할 것으로 예상됐다. 파이낸셜 타임스 역시 삼성이 한때 일본 전자업체들의 모방자이자 부실한 이류기업이었지만 2002년 소니를 따라잡아 시장을 놀라게 했다며, 특히 세계 최고의 IT 기업이 한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G20 의장국인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한때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말이 존재했던 것처럼 삼성에 좋은 것은 한국에도 좋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삼성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린다. 그뿐인가. 많은 언론들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연일 특집기사로 도배하고 있다. 경제가 팍팍하다 보니 낯 뜨거울 정도의 ‘삼성어천가’가 한국인에게 먹혀들어 가고 있다. 모두가 “삼성 최고”를 외쳐댄다. 그러나 정상에 우뚝 선 기업에 칭찬은 이제 이쯤하고 쓴소리를 드리는 게 좋겠다. 도요타도, 소니도 정상에 섰을 때 자만한 결과가 지금의 몰락 원인임에 더욱 그러하다. 나는 삼성이 어렵게 등극한 세계 정상을 지키기 위해서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고언을 드리고 싶다. 우선 정경유착에서 이제는 완전히 손을 떼야겠다. 오너가 치욕스럽게 법정에 불려가는 등 정경유착으로 인한 희생도 치를 만큼 치렀다. 비록 정경유착을 필요악(necessary evil)으로 만드는 한국적인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제 삼성은 그 정도를 초월할 만한 위치에 섰다. 그동안의 무노조 원칙(Anti-Unionism)도 재고할 시점에 왔다. 합법적인 노조설립을 막는 기업이 세계 최고의 일류회사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제품만 세계 최고를 만든다고 해서 저절로 세계최고 기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정상 등극을 계기로 알아줬으면 좋겠다. 비록 쓴소리를 드리지만 내게 삼성은 여전히 사랑으로 남아 있다. 웃돈을 주고라도 삼성 제품을 사야 안심이 되는 지금이 2010년의 한국이다. 제품은 물론 두루두루 모든 면에서 명실공히 진짜 일류로 변해 세계를 호령하는 삼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나는, 대다수 한국인들은 기분이 좋다.
  • [글로벌 시대] 日 시골의 세계적 미술관/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글로벌 시대] 日 시골의 세계적 미술관/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연말휴가차 일본 북부에 위치한 야마가타현을 다녀왔다. 사실 도쿄나 홍콩 같은 대도시로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맨얼굴보다는 마천루 숲에서 같은 브랜드의 커피를 마시는, 글로벌 시대의 비슷해진 일상 풍경을 확인하기 쉽다. 그 나라의 진면목은 오히려 지방도시를 여행할 때 쉽게 드러난다. 야마가타현은 시골 고등학교 재즈밴드의 유쾌한 좌충우돌을 그린 일본 영화 ‘스윙걸스’의 무대였던 곳으로, 뛰어난 자연풍광과 함께 전통문화가 잘 보존된 일본의 변방지역이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별다른 기대 없이 들렀던 야마가타 미술관이었다. 고작 인구 120만명에 일본의 47개 현 중 소득수준이 낮은 이 지방의 시립미술관은 입이 벌어질 만한 프랑스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었다. 일본의 시골에서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을 만날 줄이야. 이 미술관은 1964년 당시 지역신문 사장을 위시한 지역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민간주도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으로 발돋움하게 된 계기는 1991년 이 지방 출신 사업가인 요시노 석고주식회사 회장이 평생에 걸쳐 수집했던 100여점의 프랑스 인상파 및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기부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 샤갈, 마티스. 전시장을 돌다 보면 1980년대 넘치는 유동성으로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을 싹쓸이했다던 일본의 과거가 실감난다. 하지만 주옥 같은 컬렉션을 보다 보면 단순한 경탄을 넘어 이 작품들을 사들였던 수집가의 안목과 열정에 존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지방 도시에서 진정한 선진국다운 일본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대도시나 수도에 국한되지 않고 지방 소도시에까지 탄탄하게 뿌리내린 문화예술 인프라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엔 문화예술에 투자해 온 긴 세월과 민·관협력의 역사가 녹아 있는 것이다. 또 스스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국제통화기금(IMF)이 인정하는 선진 경제가 되고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만 오면 선진국이 되는 것일까? 선진국 문턱을 서성이는 한국은 선진국이 되고 싶어 안달인 나라다. 1990년대 세계화 기치 속에 부자나라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부터 선진국 진입은 우리에게 곧 실현이 가능할 것 같은 달뜬 꿈이자 목표 같은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구분은 경제적 규모와 힘을 잣대로 한다.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부탄은 국민총행복지수(GNH)를 국가지표로 채택하고 있다지만 아시아의 부자나라 한국은 아직 그 정도로 행복을 논할 여유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국내총생산(GDP) 수치에 목을 맨다. 나아가 해마다 발표되는 유엔의 인간개발지수나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순위 등을 보며 부산한 마음으로 우리의 현주소를 비교해본다. 개인적으로 선진국의 면모를 처음 피부로 접했던 건 1990년대 초 유럽의 스웨덴 체류시절이었다. 당시 내게 각인된 선진국의 단상이란 대충 이런 것이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단체관람을 위해 서둘러 앞치마를 벗고 채비를 하는 기숙사 식당 아줌마들,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한밤중 횡단보도 앞에서 묵묵히 교통신호를 기다리는 보행자들, 살 집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적어도 가위눌린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 사회 전반에 느껴지는 상식과 원칙의 무게감, 음침하지 않은 성, 소수자 인권과 제3세계 원조에 대한 관심 그리고 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공용화장실 인심까지. 한국은 얼마나 선진국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올 여름 여행했던 속초를 훗날 다시 찾았을 때 이번 야마가타 미술관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흥을 느낄 수 있다면, 그때쯤이면 우리도 선진국임을 확신할 수 있지 않을까. 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 [열린세상] 아름다운 마을/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열린세상] 아름다운 마을/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얼마 전 영국의 아름다운 마을들을 견학하고 돌아왔다. 영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마을로 꼽는다는 바이버리와 보튼온더워터에서부터 스코틀랜드의 작은 도시와 마을들에 이르기까지 아름답다고 소문난 작은 도시와 마을들을 참관해 본 것이다. 마침 필자가 속한 ‘미래상상연구소’에서 민간 차원의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캠페인을 벌여 오던 차여서 오랫동안 유럽에서 아름답다고 소문난 곳들은 과연 어떤가 본격적인 견학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소문난 아름다운 작은 도시와 마을들의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건축물들이 자연 앞에 겸손하다는 점이다. 한결같이 나무와 숲과 물길들을 소중히 하고 그 조화를 살려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산자락 끝에 슬쩍 비켜서 아늑하게 위치하고 있거나 물가에 작고 단아하게 지어져 있어서 건축물 때문에 경관이 손상되지 않도록 배려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무엇보다 눈을 씻고 보아도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 간판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상점마다 중간색 톤으로, 그것도 보일 듯 말 듯 작고 아름답게 설치되어 있어서 저절로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간판 자체가 예술이었다. 건축물의 외벽색 또한 자연과 잘 어울려 그 일부분인 듯 보일 정도였다. 건물 때문에 자연이 손상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주변이 돋보일 만큼 형태와 색채들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중에는 오래된 건물들도 많았는데 세월의 더께가 얹혀 아름다움에 신비감까지 더하고 있었다. 그 마을과 도시들을 견학하면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미추의 구별은 학습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선험적으로 체득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20여년 전 유럽과 일본 등지를 여행하면서 처음 건물과 간판들의 아름다움에 접하며 놀랐을 때만 해도 내심 이제 우리나라도 여행이 자유화되고 새로운 세대가 장년이 될 20여년 후면 사뭇 달라져 있으려니 기대를 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발견은 사람들이 절대로 길을 막고 서 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시골의 소도시는 물론 아무리 붐비는 박물관이나 지하철 같은 곳이라 해도 반드시 통로 쪽을 비워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을 타도 어딘지 헐거운 느낌이 들 정도이다. 서울에 돌아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원색의 야만적 시각 폭력의 거리와 골목을 거닐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더구나 지하도나 백화점 할 것 없이 어디에서나 툭툭 어깨를 치고 지나가거나 길을 막고 삼삼오오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왜’라는 물음이 절로 고개를 들곤 하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선진국을 갈망한다. 그러나 우리가 목표로 내세우는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가 된다고 해서 저절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제 지표상으로는 잡히지 않는 선진국의 또 다른 조건들이 함께 채워져야 할 것이다. 그중에 한 가지가 도시 미관의 문제이고 거리 간판의 문제이다. 빨주노초의 눈을 찌르는 원색에다 터무니없이 큰 간판들이 무질서하게 도시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한, 그리고 크고 작은 길에 모여 서서 보행을 막아 버리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한 진정한 선진국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 일각에서 대한민국에 긍지를 갖자는 슬로건이 내걸리고 있다. 나라를 자랑스러워하자는 것이야 백번 당연한 일이지만 나라에 대한 사랑과 긍지는 거창한 슬로건으로 몰아가서 되는 일은 아니다. 마음 밑바닥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다. 세계 시민으로서 내 나라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조건 중에 나는 거리 미관이나 질서의 문제를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섬진강이나 낙동강 자락의, 아니면 설악산이나 지리산 자락의 아름다운 마을들을 구경 오는 날들을 그려 본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 [15일 TV 하이라이트]

    ●그것이 알고싶다(SBS 오후 11시10분) 1년에 한 번은 고향땅인 중국 용정 땅을 찾는 윤혜원 여사. 오빠 윤동주 시인의 묘 앞에 설 때마다 그녀는 오빠의 사망 소식을 접하던 64년 전 그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일본 땅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어간 비극의 시인 윤동주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해 그 진실을 밝혀본다.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오전 8시30분) 인구 9만명의 소도시 아비뇽은 축제기간 동안 다른 도시가 된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도시는 언제나 북적거리고 거리는 각종 퍼포먼스와 공연들로 넘쳐난다. 해가 늦게 지는 여름이라 공연은 밤 늦게까지 계속되고 새벽이 올 때까지 사람들은 축제를 즐긴다. 올해로 63회를 맞은 프랑스 아비뇽 축제현장으로 떠나본다. ●솔약국집 아들들(KBS2 오후 7시55분) 사표를 써놓고 고민하던 대풍은 사표를 찢어 버리고, 현우의 존재를 확인한다. 묘한 위기감을 느낀 대풍은 복실이를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가 저녁을 사 주는데 복실은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기 때문에 이제는 정리하고 싶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한편, 진풍은 수진의 차가워진 태도에 당황한다. ●천추태후(KBS2 오후 10시15분) 목종은 급기야 대신들 앞에서도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밝히고 황위에서 물러날 것임을 공표한다. 다급해진 김치양은 직접 천추태후를 찾아가 대량원군 대신 자신의 아들인 황주소군을 황제로 세워줄 것을 애원해 보지만 천추태후는 완강히 외면할 뿐이다. 결국 김치양은 거병을 하게 되는데…. ●찾아라! 맛있는 TV(MBC 오전 10시50분) 대한민국 누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국민남동생 유승호가 ‘스타 맛집으로’에 떴다. ‘음식대격돌 맛수’에서는 여름철 최고의 별미 국수 요리의 대결이 펼쳐지고, 푸드 로드 쇼 ‘미식원정대 황금밥상’에서는 엉뚱 미녀 브로닌과 김한석, 꽃미남 외국인 조리장 미카엘이 우리나라 최고의 횡성 한우를 찾아 나선다. ●효도우미 0700(EBS 오후 5시10분) 지난 5월 화재로 집과 지체1급 장애인 큰아들을 잃은 김복순 할머니. 모든 것을 집어삼킨 화재로 방 안에 누워 있던 큰아들을 떠나보내야 했고, 남은 두 아들은 지적장애와 정신장애로 형의 죽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기에 할머니의 슬픔은 더더욱 크기만 하다. 김복순 할머니의 사연을 만나본다. ●토마토(YTN 오전 8시25분) 인생의 3분의1을 차지하는 중요한 잠. 제대로 못자면 만병의 근원이 된다. 불면증, 코골이, 수면무호흡증 등 수면 관련 질환만 해도 100여 가지에 이르며 국민 2명 중 1명이 수면장애를 앓고 있다. 너무 많이 자도 문제, 너무 못 자도 문제가 되는 잠. 상쾌한 아침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쾌면전략에 대해 알아본다.
  • 현대車 中서 6년반만에 150만대 판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현대자동차의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가 중국 진출 6년반 만에 누적 판매량 150만대를 돌파했다.베이징현대 노재만 사장은 14일 베이징 주재 한국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중국 진출 첫 해인 지난 2002년 쏘나타 1002대를 판매한 이후 6년 6개월 만에 150만 3545대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6년 6개월 만에 150만대를 판매한 것은 중국내 자동차 업계 가운데 가장 빠른 기록이다.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폴크스바겐의 경우 12년이 걸렸다.베이징현대는 2년째인 2003년 5만 128대, 2004년 14만 4090대를 판매하면서 순조롭게 스타트를 끊은 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매년 23만~29만여대씩 판매했다. 올해는 6월말까지 25만 7003대를 팔아 벌써 지난해 판매량 29만 4506대에 근접했다. 노 사장은 “올해 목표 판매량을 당초 36만대에서 45만대로 상향조정했으나 현재 추세라면 50만대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판매 호조로 시장점유율도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6월말 현재 시장점유율은 7.25%로 상하이폴크스바겐, 이치(一汽)폴크스바겐, 상하이GM에 이어 4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7위였던 베이징현대는 올해 들어 도요타와 혼다, 닛산 등 일본계 업체를 모두 제쳤다. 이 같은 실적의 배경으로는 ▲중국 정부의 자동차 시장 부양정책 ▲구매심리 확산 ▲수요 제품별 탄력 생산 시스템 ▲시장 특화 제품 출시 ▲내륙 및 중소도시 딜러망 확충 등이 꼽히고 있다.특히 중국 정부가 1600㏄ 이하 승용차에 대한 취득세 감면 정책 등을 펴면서 엘란트라(구형 아반떼), 신형 엘란트라, 웨둥(悅動) 등 1600㏄ 이하 모델에 강점을 갖고 있는 베이징현대의 부상이 두드러졌다는 평가다.노 사장은 “중국 시장은 이미 미국 시장을 제치고 세계 제1의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했다.”며 “내년에는 베이징현대 및 둥펑기아와 직수입 등을 합쳐 중국내에서 100만대의 현대차가 팔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stinger@seoul.co.kr
  • ‘인우패밀리’ 장윤정ㆍ박현빈 등 한무대 총출동

    ‘인우패밀리’ 장윤정ㆍ박현빈 등 한무대 총출동

    장윤정, 박현빈, 윙크, 유지나, 양지원 등이 대전으로 총출동했다. ‘트로트 가족’으로 불리는 인우기획 소속 가수들이 지난 9일 방송된 대전방송 ‘전국 TOP10 가요쇼’ 녹화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진행을 맡고 있는 장윤정을 비롯해 박현빈, 윙크, 유지나, 양지원 등 5팀 모두가 출연해 젊고 활기 넘치는 트로트 무대를 선보여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는 양지원은 국내 팬들의 러브콜로 2년 만에 깜짝 무대를 갖고 데뷔곡 ‘나의 아리랑’을 불렀다. 양지원은 ‘트로트계의 보아’를 꿈꾸며 올 가을께 일본에서 정식 데뷔를 앞두고 있다. ‘트로트 퀸’ 장윤정을 필두로 소속가수 5팀이 모두 한 무대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 그동안 개별 활동으로 인해 단 한 번도 함께 만남을 갖지 못했던 이들은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인우기획에 소속된 가수들이 모두 모여 ‘찾아가는 콘서트’를 추진하자는 것에 의견을 일치하고 구체적인 사항까지 논의했다. ‘찾아가는 콘서트’는 일 년에 1회 정도 트로트 팬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직접 찾아가 정기적인 공연을 펼치는 것. 인우기획은 비록 ‘찾아가는 콘서트’가 소규모 공연이 될지라도 서울 뿐만 아니라 중소도시의 노인복지시설이나 아동복지시설 등을 우선으로 방문해 콘서트를 개최하겠다는 취지를 드러냈다. 사진제공 = 인우기획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하정우 “日배우 사토시는 내게 보물이었다”

    하정우 “日배우 사토시는 내게 보물이었다”

    배우 하정우가 함께 영화작업을 한 일본배우 츠마부키 사토시를 높이 평가했다. 하정우는 23일 오후 서울 강남 압구정CGV에서 진행된 영화 ‘보트’(감독 김영남)의 기자간담회에서 “이전에 찍었던 한미합작 영화 ‘두 번째 사랑’이 이번 한일합작 영화 촬영에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촬영소감을 전했다. 일본배우 츠마부키 사토시 작업에 어려움이 없었냐는 질문에 하정우는 “사토시와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통역해주시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실없는 농담 한마디도 다 통역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동시에 생중계가 연상 될 만큼 흥미로운 상황이었다.”고 답했다. 일본 소도시에서 6주에 걸쳐 영화 ‘보트’를 촬영했다는 하정우는 “이번 촬영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사토시와 합숙소를 같이 사용하면서 같이 생활한 게 많은 도움이 됐다.”며 “사토시는 내게 선물이고 보물을 얻은 것과 같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정말 좋았다.”며 츠마부키 사토시와의 만남을 되새겼다. 이어 “사토시를 처음 만났을 때 영화 ‘조제 호랑이’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계란말이 먹는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고 했다. 장난으로 여기서 한 번 더 보여 달라고 했다. ”며 “무엇보다 사토시는 일본에서 굉장한 빅스타고 연예인인데 그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사람이 좋았다.”며 츠마부키 사토시를 높이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하정우는 “영화 ‘보트’는 한국와 일본 양국의 에너지가 합쳐졌다. 양국의 스텝들과 배우들의 열정이 잘 전해져서 재밌는 영화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한국배우 하정우, 일본배우 츠마부키 사토시가 주연을 맡은 영화 ‘보트’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마약을 운반하는 두 남자의 고독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봉은 28일.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4개부처 업무보고] 내년 5조 4484억 투입 174만명 일자리 지원

    [4개부처 업무보고] 내년 5조 4484억 투입 174만명 일자리 지원

    ■ 노동부,대량실업 비상계획 노동부는 내년에 총 실업자가 80만∼90만명 규모가 될 것으로 보고 정책의 초점을 실직자 지원과 일자리 마련에 모았다.아울러 100만명에 근접하는 대량 실업사태로 번질 경우에 대비한 비상계획도 세웠다. 고용이 어려운 업종을 대상으로 고용유지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사회적 일자리와 실업자 직업훈련 대상자를 크게 늘리면서 실업급여 규모를 더 증액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총실업자 80만~90만명 규모될 듯 따라서 노동부는 내년에 5조 4484억원을 투입해 연인원 174만명이 일자리를 찾는 데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올해보다는 1조 4767억원이 늘어난 금액이다. 이 가운데 재직근로자의 직업훈련과 고용유지를 위해 5692억원이 투자되고 실직근로자의 일자리 제공 및 취업지원사업에는 1조 729억원이 배정됐다. 또 청년층 취업지원을 위한 중소기업 인턴제 등에 2220억원을 지원하고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지원(실업급여 등)에도 3조 5843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계획은 35개의 사회 서비스분야,12만 5000여개에 이른다.이 가운데 노동부는 지역개발,환경,문화분야 등에서 모두 1만 5000개의 사회적 일자리를 만든다는 목표로 188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사회적 일자리란 취업이 어려운 중장년 여성과 장기실업자 등을 고용해 간병, 가사, 산후조리 등의 각종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하며,정부가 이에 대한 인건비를 해당 사업체에 지원하게 된다.이 같은 일자리 창출 계획은 내년 상반기에 실업자가 현재(75만명)보다 13만명 늘어날 것이라는 한국고용정보원 전망에 따른 것이다. 또 산업단지에 입주하거나 취업포털 ‘워크넷’에 등록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인력부족 현황을 파악한 뒤 ‘빈 일자리 기업 DB(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실직자와 저소득층 구직자를 중심으로 신속하게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일자리 ‘매칭 사업’도 추진한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폴리텍대학에 ‘웹기반 기계제어’와 같은 유망 분야의 직업훈련과정을 신설하고,중소기업 청년인턴제 등을 통한 고용 촉진 사업도 시행한다. ●외국인 국내인력 대체업체에 1인당 120만원 구조조정을 당할 위험에 놓인 근로자의 실직을 예방하기 위해 전직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1인당 최대 300만원까지 장려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하지만 실업자 일자리 마련을 위해 정부는 재외동포와 외국인 근로자의 국내 취업을 제한하고 내국인 대체를 장려하기로 해 논란도 예상된다. 노동부는 법무부와 협의해 재외동포의 건설업 및 서비스업 방문취업제 규모를 제한하고,건설업에서는 채용 할당제도 시행할 계획이다.외국인을 국내 인력으로 대체하는 사업장에는 1인당 120만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보건복지부 - 실직 뒤 건보자격 유지 1년으로 늘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내년 복지부 업무계획의 핵심은 경제불황으로 급증한 저소득층을 지원하고 일자리를 마련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라고 보고했다.이를 위해 복지부는 재정조기집행률을 올해 55.3%에서 내년에는 62.8%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내년부터 저소득층 가정의 가장이 입원하거나 운영하던 점포를 휴·폐업할 때도 최저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건강보험 지역보험료 납부액이 월 1만원 이하인 저소득층 70만가구에 대해 보험료를 절반으로 깎아주고, 실직 또는 퇴직 후 건강보험 가입 자격을 인정해주는 기간도 현행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린다. 복지부는 도시지역 전세 가격을 고려,최저생계비(4인 가구 기준 132만 6609원)를 받을 수 있는 재산 보유액 상한 기준을 대도시는 현행 6900만원에서 8500만원으로,중소도시는 6100만원에서 6500만원으로 인상키로 했다.사회적 일자리 확대와 관련해서는 취약 계층인 저소득 무직 가구의 여성에 1만 4250개의 사회 서비스 직업을 우선 제공할 방침이다. 인구고령화 대책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적용 대상자를 2만명 늘리고 2010년을 목표로 ‘노인특화 질병 검진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이 밖에 4대 사회보험 징수 업무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일원화해 행정 효율성과 국민 편의를 제고하는 것은 물론 해외환자 유치 활성화 방안으로는 의료비자 발급 절차 간소화,해외환자의 의료 사고 예방 및 분쟁해결 가이드라인 마련 등의 대책도 마련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여 성 부 - 여성 직업훈련·취업지원 50곳 지정 여성부는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여성 새로 일하기 프로젝트’를 수립하기로 했다.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와 산업단지 인근에 설치된 ‘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새일본부)’를 통해 취업단절 여성들에게 종합적인 직업 훈련과 취업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다. 또 새일센터와 새일본부에 취업설계사와 직업상담사 350명을 배치해 10만여명에게 상담이나 직업교육을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여성부는 이를 통해 3만 7000여명이 취업 지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의 예산 조기집행 기조에 따라 예산 780여억원 중 60%인 470여억원을 상반기에 집행하고,특히 여성 인력개발 분야에 책정된 예산의 70%가 넘는 96억원을 조기 투입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기존 여성인력개발센터와 여성회관 중에서 직업훈련과 취업지원 요건을 갖춘 50곳을 우선 새일센터로 지정해 노동부·자치단체와 협력해 국고 143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새일센터도 2012년까지 100곳으로 늘려 나가기로 했다.이와 함께 산업단지 인근에 설치돼 단지 내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해소하고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새일본부도 현재 5곳에서 전국 35개 산업단지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여성부는 사회 안전망 강화와 관련 현재 4곳인 성폭력 피해아동 전담 기관인 ‘해바라기 아동센터’를 내년에는 10곳으로 확충키로 했다.여성·학교폭력 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도 2곳을 추가 설치하고,아동·여성폭력 예방교육 전문 강사를 55명에서 400명으로 확대한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국가보훈처 - 유공자 50만명 보상금·수당 5% 인상 2010년부터 국가유공자와 일반 지원대상자로 보훈지원 체계가 이원화되고 국가유공자 선정 심사가 보다 엄격해진다.또 내년에는 보훈가족 50만명에 대한 보상금·수당 등을 5% 인상해 2조 5000억원을 지급하고 국가유공자 8600명의 취업을 지원한다. 국가보훈처는 업무보고에서 “공무상 단순사고나 질병을 얻은 사람들은 지원대상자로 분류할 방침이며 국가유공자는 국가에 대한 희생과 공헌이 뚜렷해 국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로 엄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국가유공자는 정신적 예우와 경제적 지원을 통해 명예로운 생활을 보장하는 한편 지원대상자는 자립,자활에 중점을 둬 지원할 것”이라면서 개편될 보훈체계는 2010년부터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훈보상금 개편과 관련,“전국 가구 가계소비지출을 기준으로,장애율 100% 상이자에게 전액을 지급하고 나머지 상이자는 장애율(10~100%)에 비례해 차등을 두며 근로능력이 없는 장애율 80% 이상자에게는 ‘중상이 특별가부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보훈처는 “의무복무 군인에게 발병한 중증 질환은 복무 관련성이 낮아도 치료 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이어 경제위기 극복에 동참하기 위해 보훈 예산 중 사업성 예산의 65%인 1164억원을 내년 상반기에 조기집행키로 했다.오는 2011년까지 김해와 대구,대전 3곳에 보훈요양시설을 건립하기로 했다.김해 요양시설은 내년 8월 개원할 예정이다. 전국 5개 권역의 제대군인지원센터 등을 통해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 3000명의 취업을 지원하는 한편 취업소양교육,부부창업교육,사이버교육,대학위탁 전문교육을 실시하고 1인당 100만원까지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 3·1운동과 임정수립 90주년을 계기로,3.1절 기념식은 국민과 함께 상징적 장소에서 하고 전국적 대규모 만세운동을 재현하기로 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식 약 청 - 위해식품 TV자막 경보제 도입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소비자가 안심하고 식품과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위해식품 유통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안전망도 마련된다. 우선 내년부터 위해식품에 대해 TV 자막방송 등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식품위해발생 경보제’가 실시되고,식품위생검사기관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지정 요건을 강화하며 검사기관 지정을 3년마다 갱신하는 일몰제를 도입한다.또 수입식품 검사 비율이 현행 23%에서 30% 수준까지 높아지고,중국 칭다오에 민간이 투자하는 공인검사기관을 설치해 현지 생산 안전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국내 식품위생관리제도를 개선해 안전식품제조업소 인증제(HACCP) 적용 범위를 현재 식품생산량의 30%에서 내년 중 50%까지 늘릴 계획이다.소비자의 선택권을 강화하기 위해 유전자변형작물(GMO) 표시제를 전 가공식품으로 확대하고,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조된 수입식품도 이를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제품 앞면에 표시하도록 관련 규정을 바꾼다. 또 내년부터 지역약물감시센터를 현재 6개에서 15개로 늘려 부작용 모니터링을 강화하고,수입 인체조직과 수입 원료혈장에 대한 안전관리도 강화할 계획이다.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약사법 개정을 거쳐 식약청의 승인 없이 신고만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애덤스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애덤스 신부

    수많은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한국은 지구상 유례없는 ‘종교 천국’으로 회자된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은 색이 바래고 있는 것 같다. 종교편향 시비로 불거진 불교계의 집단행동에 즈음해 종교간 갈등이 거론되고 자칫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때맞춰 많은 이들이 종교간 대화를 갈등 해소의 큰 방편으로 입에 올리지만 종교계 형편을 들여다보면 그리 녹록지 않다. 과연 한국의 종교들은 대화를 향한 진정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종교, 특히 한국의 종교간 대화에 천착해 한국에 사는 푸른 눈의 사제가 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로 입국해 목포가톨릭대학에서 지난 9월부터 ‘인간과 윤리’강의를 맡고 있는 아일랜드 출신의 에몬 애덤스(41·한국명 임영준) 신부. 사제서품을 받은 천주교 성직자이지만 틈만 나면 절집들을 찾아 예불도 하고 주지 스님들과 차담을 나누며 불교 연구에 흠뻑 빠져 있는 별난 사제이다. ●전세방 책장엔 불교서적으로 빼곡 광주광역시 쌍촌동 고속버스 터미널 인근, 애덤스 신부가 사는 허름한 아파트 전세방엘 들어가니 책장에 빼곡하게 꽂힌 불교서적들이 시선을 잡는다. 인사를 나누면서도 연신 책장의 책들로 쏠리는 기자의 눈길을 알아챈 신부가 빙그레 웃는다.“두서 없이 덤벼들었더니 책도 뒤죽박죽입니다. 배우는 중이에요.” 겸손한 말과는 달리 깔끔히 정리된 손때 묻은 책들이 소문대로 예사롭지 않은 경지를 보여준다. 육조단경, 보조전서, 한국불교현대사, 한용운전집, 조선불교통사, 친일불교론, 민중불교탐구…. 성경과 천주교 교리서 대신 책장을 가득 차지한 불교 책들. 십자가나 성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사제는 무슨 이력이 있길래 이토록 불교에 빠져 살까. 아일랜드 최북단, 인구 7000명 남짓한 소도시 출신.17살 나이에 성골롬반외방선교회에 입회, 더블린 서쪽의 메이누스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사제서품을 받았다. 한국은 원래 원하던 땅이 아니었다고 한다. 신학대 재학 때부터 종교, 특히 불교에 관심이 많았고 일본불교를 알고 싶어 일본엘 가고 싶었다. 한국은 그저 ‘88올림픽 개최국’정도로만 머리에 있었다. 사제서품 후 선교회 총장 신부가 ‘한국과 파키스탄 중 택하라.’고 해 이왕이면 일본에 가까운 나라를 고른 것이 지금까지 한국에 살게 된 이유이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온 지 올해로 75년째.33명의 선교사가 한국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 고령의 사제들이다.1994년 애덤스 신부가 입국한 뒤 한국을 택해 온 외국인 신부는 필리핀 출신 3명이 전부. 그나마도 모두 출국해 사실상 젊은 사제로는 애덤스 신부가 유일한 셈이다. ●반야경·금강경·화엄경 등 불경까지 통독 한국에 와 곧바로 연세대 서강대에서 한국말을 배운 뒤 광주대교구로 내려가 뉴질랜드 출신 선교사의 집에 얹혀살면서 한국불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도시빈민 사목을 했던 뉴질랜드 신부를 따라다니며 만난 불교 신자들에게서 한국불교를 보게 됐다고 한다. 그때부터 수소문해 대원사며 송광사를 찾아 몇 달씩 살았고 숭산 스님이 주석하던 서울 화계사에서 안거에도 들었다. 절집들을 찾아 만난 벽화며 주지 스님과의 차담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천주교 사제들이며 신자들의 눈총이 따가웠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나요. 빠져들수록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배워야 알지요. 종교간 대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무렵입니다.” 결국 더 배우기 위해 영국 런던대로 유학을 떠났다. 아시아아프리카 학부에 들어 석사학위로 제출한 게 ‘부모은중경’이고 박사학위 논문은 ‘일제시대 한국불교의 혁신운동’이다. “막상 런던대엘 가니 한국불교란 눈을 씻고 봐도 눈에 띄지 않더군요. 일본, 티베트, 태국, 미얀마, 몽골의 불교가 다 있었지만 한국불교는 불모지였어요. 나 자신이 공부하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한국불교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은중경과 한국불교 혁신운동을 택한 것이지요.” 불교 입문자의 필독서인 초발심자경문은 물론 반야경과 금강경, 화엄경을 통독한 실력이다. ●한국 종교 간의 대화 더이상 늦출 수 없어 2007년 2월 한국에 다시 들어와 광주대교구에 머물면서 본격적으로 사찰을 돌기 시작했다. 지금도 틈만 나면 대원사, 무등산 증심사를 찾아 사찰 구석구석을 들쑤시고 염불과 예불도 한다. 화·목·금요일 사흘은 목포가톨릭대 강의에 매달려야 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모두 절집 순례며 종교간 대화 연구에 쏟는다. 주일 미사도 한 성당이 아닌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참석한다고 하니 분명 예사로운 사제는 아니다. 신·구교간 분쟁이 살벌한 아일랜드에서 피로 얼룩진 종교 테러와 살상을 보고 자란 사제에게 평화로운 한국 종교계는 당연히 큰 관심의 대상이었을 터. 그러면 과연 한국은 말대로 ‘종교 천국’일까. “유럽과는 달리 많은 종교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한국의 종교는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문제는 많은 신자들 사이의 갈등이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지요.” 각각의 종교들이 다른 종교에 관여하지 않은 채 따로따로 잘살고 있지만 머지않아 상황은 크게 바뀔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종교간 대화를 더이상 늦출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영국으로부터의 분리, 독립과 맞물린 정치·역사적 상황에 개신교와 천주교가 편들어 가세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띤 아일랜드의 해묵은 종교분쟁. 종교간 대화라는 말을 꺼내기도 어색한 고향 아일랜드와 비교할 때 한국의 상황은 분명 천양지차일 것이다. 하지만 애덤스 신부는 요즘 흔한 한국종교계의 대화에 고개를 흔든다. ●선교는 강요가 아닌 행동으로 말해야 “그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대화가 아닙니다. 진정한 대화는 상호이해와 관용에 바탕해 배우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전제돼야 하지요. 지금 한국의 종교인들은 이런저런 합동행사를 갖고 왕래하지만 다분히 형식적이란 느낌을 갖습니다.” 대화를 하려면 남에게 가르치려는 대신 먼저 남을 배워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칼날 같은 한마디가 요즘 복잡한 우리 종교계의 혼돈에 얹혀 가슴에 콕 박힌다. 천주교 사제가 교육 과정에서 불교 원리와 사상을 배우고 불교 스님들이 기독교 교리와 성경을 배워야 한단다. 지난 8월 오대산 월정사에서 열린 교수불자대회에 불자 아닌 사제로 참석해 종교 본연의 기본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역설해 눈길을 끌었던 그다.“대부분의 종교가 원래 보수적인 속성을 갖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교회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가 불교 공부를 하면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신학 개념의 틀도 깰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종교의 역할은 개개인이 사는 보람을 찾고 넓은 마음을 갖도록 돕는 것”이라는 애덤스 신부. 선교사가 되고 싶어 신학대를 나와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사제의 길을 걷는 그가 생각하는 선교는 무엇일까. “다른 나라에 가서 우리 종교를 믿으라고 하는 게 선교사인가요? 모든 신자들이 다 선교사이지요. 적어도 나에게 선교사의 소임은 사회 속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믿는 것을 행동이나 말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제각각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자리를 인정하고 더 잘살 수 있게 한다는 믿음이 그 바탕이지요.” 다음 학기부터는 본격적인 종교 대화 관련 강의를 하게 될 것이라는 애덤스 신부, 아니 선교사가 품은 욕심은 강의 말고도 많다.‘해방후 한국불교의 혁신운동’ 논문도 써야 하고 한국 불교 27개 종단 소개책자도 영문으로 펴내려 한다. 요즘은 종교와 환경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2012년 여수엑스포를 계기로 종교와 해양을 연결한 국제학술회의 개최와 학회 조직도 벼르고 있다. “화엄경의 인드라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은 모든 존재와 세계가 거미줄처럼 서로 얽혀 있다는 유기체 세계, 종교가 따라야 할 본연의 큰 가치는 바로 인드라망이 아닐까요.” 글ㆍ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애덤스 신부는 ▶1967년 아일랜드 출생 ▶1984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입회 ▶1993년 메이누스 신학대 졸업, 사제수품 ▶1994년 선교사로 한국 입국 ▶1995∼1999년 광주대교구 도시빈민 사목, 한국불교 순례 공부 ▶1999∼2007년 영국 런던대 유학 ▶2007년 한국 귀환, 광주대교구 사목,‘한국 종교간 대화’ 연구 ▶2008년 9월∼ 목포가톨릭대학 출강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유목민들의 환호… 들뜨는 초원 현지에 도착해 사흘째 되는 날 늦은 오후,갑자기 울란바타르 시내가 들썩거렸다.도심 곳곳에서는 차량이 경적을 울려대며 질주하고 있었고,그 차창 밖으로 벗은 몸통을 드러낸 청년들은 뜻을 알 수 없는 환호성을 토해냈다.저녁이 되자 시내 중심지에 있는 정부 청사 앞 수흐바토르 광장에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몽골 혁명의 아버지 수흐바토르가 1921년 울란바토르에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해 조성한 광장이다.울란바토르의 중심부에 있는 이곳에는 지금도 황톳빛 나는 수흐바토르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는 울란바토르와 몽골의 중심 광장이다. 그들은 손에 손에 몽골 국기를 들고 있었다.베이징 올림픽에서 몽골 전통 씨름선수 출신인 투브신바야르 나이단(24)이 유도 남자 100㎏급 결승에서 카자흐스탄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몽골 공화국이 탄생한 이래 최초의 일이라고 했다.그 분위기가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을 때의 서울 풍경과 흡사했다.방송은 종일 그 소식을 전했다.방송체계가 열악해 금메달을 따는 순간의 경기 비디오는 나중에야 국민들에게 전해졌으나 시민들 반응은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방송하며 자국민들의 신명을 긁어댔다. 환호작약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유분방한 유목정신과 버무려진 근대의 국가주의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국가주의의 한 모습은 심야에 대통령이 각료를 불러모아 광장의 연단에 오른 것에서도 확인됐다.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광장의 축하 집회에서는 ‘몽골 만세’라는 구호가 밤새 울려퍼졌다.도심의 건물 곳곳에 대형 몽골 국기가 내걸리고,사람들은 취한 듯 이런 분위기에 젖어 그날도,다음날도,그 다음날도 금메달 얘기를 되내이고 곱씹었다.한 시민은 금메달을 딴 몽골선수에게 족히 5억 토그르기는 주어질 것이라며 부러워했다.일종의 포상금이고 격려금인 셈이다. 하기야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선거부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소요로 곤욕을 치르는 가운데 이들의 관심을 일거에 잠재울 금맥이 터졌으니 그 선수가 얼마나 고맙고 기특했을 것인가.아직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탓인지 그들은 금새 그런 국가적 과제를 잊고 금메달의 환호에 매몰되어 가고 있었다.우리에게도 전두환 집권 초기에 ‘3S(Sports,Sex,Screen) 정책’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그 묵은 관성은 지금도 때만 되면 되살아나 국민들의 정신을 갉아댄다.일종의 심리적 마약 같은 것이다.이번 올림픽도 마찬가지다.애쓴 선수들의 노고와는 별도로 그런 마약 같은 정치적 의도가 많은 국민들의 정서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필자만 가진 것은 아니리라. 초원의 나라를 들뜨게 하는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얼핏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황무지도 가만 들여다 보면 온갖 생명의 약동이 있듯 더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듯 보이는 왕년의 제국 몽골이 긴 잠을 털어내고 약동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그들은 칭기스칸과 그의 후예들이 일군 제국의 꿈을 다시 이루는 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이런 바람은 그들의 유전자가 된 정복욕의 현대적 발현일지도 몰랐다. 이번 여행길에 만난 몽골의 엥크볼드 총리는 이런 말을 했다.“지금 몽골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오로지 말 안장에 몸을 얹은 칭기즈칸이 극동에서부터 멀리 아랍권과 서·동유럽 일대를 아우르고 위대한 승자가 되었듯 우리 몽골도 반드시 국부를 일궈 그 옛날의 영화를 재현하려 한다.” 지금도 몽골 초원에는 양과 말,야크 무리가 끊임없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으며,사내들은 말을 타고 거침없이 초원을 질주한다.그러나 그런 노마드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런지는 알 수 없다.옛적 몽골의 용맹스런 기마부대가 마각(馬脚)을 앞세우고 지축을 흔들며 질주해 간 길을 지금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말과 오토바이가 갖는 기능의 유사함은 놀랄 만큼 닮았다.말이 달릴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오토바이로 달릴 수 있다.몽골 젊은이들이 구닥다리라도 오토바이를 즐기는 것은 이런 말의 문화에 대한 향수를 담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들의 핏속에는 말등에 생애를 얹고 거친 초원을 끝에서 끝으로 달리며 살아온 강인하고 웅혼한 기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울란바토르 시내에서는 검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눈매가 날카로운 안짱다리 사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그들은 바깥으로 휜 안짱다리로 어기적거리며 불안하게 걷는다.다 까닭이 있다.유목민인 그들은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자라고 살아왔다.그런 그들이 말을 버리고 도시로 들어와 살아도 기마의 흔적까지 청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안짱다리는 그들이 말을 몰아 초원을 내달리며 살아왔음의 지울 수 없는 유흔이다.그렇게 말과 함께 살아온 그들이 생계를 위해 다리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가 퇴행성 관절염이다.말을 버렸으니 말이 겪어야 할 다리의 노역을 고스란히 사람이 감당해야 하고,그러자니 관절염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이를테면 문명이 그들에게 편의만 준 게 아니라 관절염의 고통까지 가져다준 셈이다. 사실 지금의 지리멸렬한 몽골을 보면서 옛 영화의 재현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엥크볼드 총리의 말마따나 강한 희구가 또한 강한 동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 혹은 희망이 읽히는 것도 사실이었다.구체적인 삶의 일이야 짧은 기간 머물다 이내 떠나야 하는 나그네가 관여할 일도 아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원나라 멸망 이후 일패도지해 세계 곳곳에 흩어진 혈족들을 다시 불러모아 당장 뭔가를 도모할 여력을 갖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무한한 자연자원과 광물 등 지하지원,그리고 옛 영화에의 향수가 언젠가는 무한한 에너지로 발산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곳 ‘젊은 전사’들의 눈빛에서 읽힌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사실 몽골에서 마주친 젊은이들은 비록 입성이 초라하고,용모가 꾀지지하다 해도 눈빛 만큼은 여전히 도발적이고 진취적이었다.노마드의 기질을 타고난 그들은 바깥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도 적극적이었다.그들은 소득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자유로운 섹스를 즐긴다고 했다.이것 역시 유목의 한 관습이다.하기야 과거 칭키즈칸의 정복 시절,수만리 원정길에 나선 그 ‘전사’들이 무슨 재주로 제 나라 여자만을 품었겠는가.그렇게 생각하면 답은 간단한 것이었다.그로부터 자유로운 섹스의 관행이 또한 하나의 습속으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울란바토르 시가지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휴대폰으로 통화하고,MP3를 즐겨들으며,더러는 콜라를 곁들인 햄버거를 먹기도 했다.그들 중 한 젊은이와 대화를 나눴다.올해 스물 두살인 그의 이름은 오고바흐타였다. -학생인가. ▲울란바토르 국립대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여자친구는 있는가. ▲있었는데,두달 전쯤 헤어졌다.나는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그 쪽 부모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사실 우리집은 양을 키우는 가난한 집인데 그 쪽은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어서 매우 유족한 편이다. -그런 일로 헤어져 안타깝지 않나. ▲처음엔 무척 속이 상했지만 어쩌겠나,받아들여야지.사실,날 좋아하는 여자들도 꽤 많다. -최근 몽골에서도 부정선거로 인한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 일이 있었지만 외국인에게 국내 일을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그는 자국의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한사코 발언을 꺼렸다.) -사실,옛 영화를 돌이켜 보면 지금의 몽골 모습은 좀 실망스럽다.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기는 어렵다.경제적 어려움은 몽골의 현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중국의 집요한 방해가 크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중국은 네이멍구 자치주의 독립 요구를 의식해 철저하게 우리를 견제하고 있고,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이 더 심하다.사람들은 몰라도 네이멍구는 당연히 우리 땅이다.언젠가는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는데 이 중 생활 여건이 좀 나은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돼 있다.) 또 정치인들이 더 정직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지금 몽골의 많은 실력자들은 부패해 있고,그래서 신뢰를 못 받고 있다. -혹시 밖으로 나가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당연히 기회가 되면 나가고 싶다.나 뿐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이 그걸 바란다.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만약 갈 수 있다면 한국에 가고 싶다. -그럴 이유라도 있나.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으며,나도 마찬가지다.생김이 비슷한 것도 좋고…,한 혈통이라서 그런 것 아니겠나.사실,2년 전 형이 한국 평택에서 돈벌이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 몽골에 들어와 있다.형을 통해서도 한국 얘기 많이 들었다. 오고바흐타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생각보다 깊고 강했다.그들은 중국을 몽골을 토막낸 분열의 조종자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도 있었다.근대 이전에 한족과 몽골족(흉노족·선비족)은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투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중국은 틈만 나면 군대를 동원해 흉노족을 토벌했다.칭기즈칸 이전만 해도 흉노족은 통일된 세력을 이루지 못해 항상 중국의 한족 토벌군에게 쫓기며 살아야 했다.한족 토벌군이 한번 들이닥치면 그들의 생업은 한순간에 초토화되기 일쑤였다.그럴 때면 이들은 또다시 기약없는 유랑길에 오르곤 했다.부족 단위로 연맹체를 이뤄 살았던 이들이 막강한 한족 토벌대에 맞설 결속력을 갖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이런 몽골인들의 한은 이들이 남긴 노래에도 흔적이 남아있다.‘해가 지면 저 먼 동쪽에서 낯선 말울음 들리고 갑옷 입은 적들이 초원의 단잠을 해치러 온다….’ 지금도 몽골의 유목민들은 게르를 지을 때 항상 출입구를 동쪽에 둔다.언제 한족 토벌군이 들이닥칠지 몰라 항상 동쪽을 경계하면서 살라는 의미였다.그것이 오랜 세월 되풀이되면서 전통이 되어버린 것이다.그만큼 그들은 한족의 중국을 두려워하며 살았다.그런 두려움은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해 대제국을 건설할 때까지 계속됐다.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이런 뿌리 깊은 적대감은 중국 본토를 정복해 원제국을 건설한 과정에서 여과없이 투영됐다. 칭기즈칸은 동서양 어느 나라를 정복해도 결코 무리한 동화를 요구하지 않았다.‘너희 식으로 살라.종교든 전통이든 다 예전처럼 향유하도록 허락한다.단,나를 배반하는 것만은 용서하지 않겠다.복종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다.’이것이 정복자 칭기즈칸의 지배방식이었다.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철저한 복속을 요구했다.몽골인들이 갖지 못한 문자 말고는 모든 것을 몽골 식으로 바꿨다.그 과정에서 수많은 살륙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몽골족은 중국 정복 이후 이전의 앙심을 철저하게 되갚았다.몽골이 우리나라를 대한 것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광경이다. 그와의 대화는 계속됐다. -젊은이들의 사교는 자유롭나. ▲그렇다.대학생쯤 되면 대부분 연인을 갖는다. -혼전 관계는 어떤가. ▲자유롭다.요새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다르다.부모 세대와는 그런 점에서 이해를 공유하기 어렵지만 유목민족이어서 그런지 어른들도 그런 점에서는 보기보다 개방적이다.그런 점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의 영향이 크다.이곳에서는 한국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실제로 그곳에서는 아리랑 TV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혼전에 동거하는 경우도 많지 않겠나. ▲당연하다.내 친구 중에도 결혼을 약속하고 같이 사는 애들이 많다.개중에는 아이를 둔 친구도 있다.사실 몽골에서는 유목 특성상 결혼식이라는 의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물론 전통적으로야 그렇지 않지만….요새는 젊은이들이 그런 습속에 얽매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들 얘길 들으면 아직 몽골 대학에는 첨단 기술을 배우는 학과가 부족한 것 같다.한국이나 중국은 같은 기술이라도 세분화해서 가르치는데 몽골에서는 기술 분야의 경우 엔지니어링이라는 큰 틀에서 공부를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분야를 정해 공부를 한다.그런 점 말고는 별로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역사를 자부하되 거기에 갇히지는 말자.” 그 전에 투브 아이마그라는 지방 소도시에서 만난 바이갈마 국립병원장은 자신이 옛 소련에서 의학을 공부했다고 얘기했다.이처럼 기성세대의 주류는 대부분 소련 유학파들이다.당연히 대학 교육의 주류도 소련 유학파들이었다.구미지역으로 나가 공부를 하는 부류는 대부분 나이가 젊은 신세대들이다.그들에게서 몽골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제국의 몰락 이후 한없이 추락하는 지리멸렬한 몽골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뜻밖에 그들은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당찬 모습을 보였고,구닥다리 전통에 발목이 잡힌 답답한 국수주의자나 국가주의자도 아니었다.담담하게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몽골의 모든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어했고,과거보다 다가올 미래를 말하고 싶어했다. 오고바흐타와는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그는 제법 기품있고 당당한 젊은이였다.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별로 주저함이 없었다.그는 몽골이 지금 앓고 있는 병을 ‘전통과 현대의 갈등’이라고 정리했다.현대적인 것도 좋지만 그것이 전통과 잘 어우러져야 하며 특히 현대문명이 몽골의 가족주의를 해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지금 몽골의 젊은이들은 거침없이 초원을 누비던 예전의 ‘전사’가 아니었고 그걸 바라지도 않았다.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열린 세상에서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시민’이었다.오고바흐타가 그런 몽골의 바람을 내게 보여주었다. 하기야 울타리가 없는 초원에서 살던 그들이 문명의 규격화된 틀 속에 갇혀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몽골은 우리나라와 달리 컴퓨터로 대변되는 디지털의 수혜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마치 전통 매듭을 엮어 늘어뜨린 것 같은 그들의 문자 ‘외가르징’을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아서다.이런 까닭에 그들은 지금도 몽골말로 의사 소통을 하면서도 글은 러시아 문자를 쓴다.예전에 한자를 들여와 우리 식으로 음을 부여한 것과 흡사한 방식이다.몽골 구레대학에 재학 중인 아마르자르갈(20)이라는 여학생은 “이런 방식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다.그래도 사람들이 몽골말을 잊은 건 아니다.”고 말한다.그는 “정부가 지금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데 한 3년쯤 후면 우리 문자로 컴퓨터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았다.그들의 얼굴에서 몽골의 내일을 볼 수 있었다. 몽골 제국의 전성기는 10∼12세기였다.이 때 몽골을 이끌었던 칭키즈칸과 그의 아들 우고데이,손자 쿠빌라이칸 등은 몽골은 물론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정복사업을 완성했다.지금 몽골인들이 갖는 자부심은 여기에서 기원한다.물론 그런 자부심이 그들에게 더 이상 ‘빵’이 될 수 없으며 ‘칼’도 될 수 없음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겪어보면 알겠지만 세계 어디를 가봐도 몽골인들처럼 순박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비록 경제적으로는 곤궁하지만 받은 것은 반드시 되돌려 주는 것도 특성이라고 할만 합니다.그것이 모욕이든 은혜든….이런 몽골 사람들을 상대로 일부 한국인들은 구차하다,못 산다,지저분하다며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몸짓과 표정을 드러내 보였는데 그런 한국인들을 보고 이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저것들이 이제와 우릴 얕잡아 본다.예전엔 우리 발밑을 기던 것들이….’라고 합니다.가난하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요.”ACC 김종구 회장의 말이다.그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몽골통이다.울란바토르에만도 그와 형님,동생 하는 현지인들이 즐비하다.몽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뒤 이런저런 인연으로 현 총리와 울란바토르 시장 등 정부 고위 관료들과도 격의없이 지내 이젠 그들과 사적인 인연도 무척 깊다고 말한다.그는 몽골인들의 기질이 사내다운 면모를 좋아하지만 의외로 정에 약하다고 정리했다. 다시 그의 말을 듣자.“사실 많은 사람들이 몽골의 실상을 보고 실망하지만 이 나라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자원이 있습니다.그래서 구미 열강들이 벌써 그걸 노리고 엄청난 공세를 펴고 있기도 합니다.일본만 해도 벌써 몽골의 지하자원 지도를 만들었답니다.우리가 오불관언할 처지가 아닙니다.지금 하지 않으면 늦습니다.알짜배기를 다른 나라가 다 가져간 뒤에 겉만 핥아대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되지요.우리도 몽골을 장기적인 국가전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또 다른 청년 오르디흐(‘오르디흐’는 산을 오르다는 뜻의 몽골어이다.그는 우리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며,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중퇴한 뒤 몽골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런 말을 했다.“잘은 모르지만 유럽 국가들이 우리 지하자원을 불법적으로 채굴(무단 채굴이 아니라 당초의 협정을 위반한 채굴이라는 뜻)해 가고 있으며,이걸 우리 지도자들도 알고 있다고 들었다.그러나 그 후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는 모른다.국민들은 이런 점에서 지도자들이 좀 더 투명한 국정운영을 바라고 있다.”(사실 오르디흐의 말을 듣기 전에도 몽골 권력자들이 지하자원 채굴권을 외국에 넘기면서 막대한 사익을 챙기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대지를 달구던 해가 설핏 기울자 울란바토르 거리에는 다시 사람들로 넘쳐난다.낮에는 없던 과일 노점도 서둘러 좌판을 펴고,재래시장도 아연 활기를 띤다.오가는 차량도 낮보다는 훨씬 많아진 듯 하다.시내의 한 음식점 창밖으로 내다본 울란바토르 시가지는 확실히 낮과 밤이 달랐다.더위 탓이리라.밤이면 활기를 띠는 곳이지만 중국의 도시들처럼 환락적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그런 곳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지만….)도시 분위기는 그냥 수더분하고 소박했다.어둠이 내리자 나방이 다시 가로등을 에워쌌다.도심의 경직된 스카이라인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위는 노을이 조용히 잔광을 거두고 있었다.음식점 점원에게 동쪽을 물었다.그 어디에 서울이 있을 것이다.‘오랑캐 말은 북풍에 귀를 열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운운했던 무명씨의 싯귀가 떠오른다.‘바람의 땅,태양의 나라’에서 맞은 하루가 또 그렇게 저물었다.(하편에 계속)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석유 제로 현장’ 스웨덴 벡셰를 가다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석유 제로 현장’ 스웨덴 벡셰를 가다

    |벡셰(스웨덴) 류지영특파원|“스웨덴에 석유를 거의 쓰지 않고 운영되는 도시가 있다고요? 그것도 제가 사는 바로 옆 마을이라니…허허허. 여기서만 20년 넘게 택시 운전을 한 저로서도 금시초문이군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스웨덴 최남단 도시 말뫼에서 기차로 30분을 올라가 도착한 소도시 에슬롭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오히려 ‘유럽에서 가장 환경친화적인 도시(the greenest city in Europe)’가 자기가 살고 있는 바로 옆 마을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만큼 ‘석유 제로도시’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벡셰(vxj)는 오히려 스웨덴에서는 조용하고 일상적인 모습의 마을이었다. |벡셰(스웨덴) 류지영특파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던가. 유럽에서 가장 환경친화적인 도시를 보면서도 그저 부러워하는데 그친다면 한국의 에너지·자원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서울을 비롯한 우리 도시들도 벡셰처럼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인 청정도시로 탈바꿈할 수는 없을까? “인구 8만명, 면적 1925㎢의 소도시 노하우를 인구 1000만명, 면적 605㎢의 거대도시 서울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죠. 이미 에너지 다소비 구조가 정착된 전세계 여러 도시 담당자들이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서울도 석유 제로도시가 될 수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벡셰시(市) 환경 프로젝트 담당자인 헨리크 요한손은 세계 여러 도시 관계자들과 논의했던 각종 해법들을 소개했다. “석유 제로도시의 핵심은 친환경 냉·난방과 전력 생산을 위한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서울과 같은 큰 도시라면 적어도 20∼30개는 필요하죠.” “하지만 서울에는 그 정도 건물을 지을 만한 부지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라는 기자의 반론에 요한손은 “시간을 충분히 갖고 도심 발전소 건설을 준비하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우선 천연가스나 석유를 사용하는 기존 지역난방시설을 바이오매스 발전시설로 개·보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벡셰도 그런 방식으로 바이오매스 발전을 해나갔습니다. 다음 단계로는 부지 마련이 가능한 외곽 지역에서부터 신규 발전소를 지어 나가고, 장기적으로 도심지역 재개발 계획에 바이오매스 발전시설 건립을 포함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20∼30년 뒤 도시 전역에서 무공해 친환경 발전소를 볼 수 있게 됩니다.” “도시 전체에 전기와 열을 공급할 엄청난 양의 바이오연료는 어디서 충당하나요?” “먼저 쓰레기, 낙엽, 나뭇가지, 음식물 쓰레기 등 도시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연료는 모두 찾아야 합니다. 나머지는 인근 농촌 지역에서 볏짚, 분뇨, 우드칩(나무껍질 등 산지 부산물을 압축해 만든 땔감) 등을 공급받으면 되고요. 벡셰도 모자란 연료를 주변지역에서 충당하고 있는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줍니다. 그래도 부족하면 태양광이나 풍력, 석유 등 에너지원을 고려해야죠. 당연히 패시브 하우스 등 에너지절약형 주택 보급도 병행해야하고요.” “서울은 벡셰처럼 자전거로 출·퇴근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합니다. 도로체계가 엉망이어서 사고의 위험도 높고요.” “석유 제로도시의 또 다른 핵심인 자전거 출·퇴근이 어렵다면 일단 자전거와 대중교통수단 간에 연계망만이라도 편리하고 안전하게 구축해야 합니다. 집에서 자전거로 불편없이 전철역이나 기차역, 버스 정류장까지 이동한 뒤 이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어야 하죠. 이를 위해서는 스웨덴 스톡홀름(인구 170만명), 덴마크 코펜하겐(인구 140만명)과 같은 주요 자전거 도시들의 노하우를 배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막대한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수 있죠?” “벡셰의 경우 발전소, 배관, 자전거 도로체계 등 인프라를 갖추는 데 7000만 유로(약 1100억원)가 들었습니다. 비용은 대부분 정부 보증을 통해 은행 대출로 충당했고요. 서울은 벡셰보다 인구밀도가 높아 단위 면적당 건설비용은 적겠지만 그래도 최소 20억∼30억 유로(약 3조 2000억∼4조 8000억원)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큰 돈이지만 장기적으로 화석연료 절감으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는 비용입니다. 정치권의 합의가 관건이죠.” superryu@seoul.co.kr ●“유럽에서 가장 환경친화적인 도시” “이곳은 인구 8만명의 소도시지만 환경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지난해 유럽연합(EU)으로부터 ‘지속 가능한 에너지상’을, 발틱해 도시연합으로부터 ‘최고의 환경 실천상’을 각각 받았습니다. 해마다 이곳의 도시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전세계 도시 설계자, 언론인, 정치인 등 100여개 그룹이 찾고 있죠.” 역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벡셰 시청사에서 만난 보 프랑크 시장은 기자를 반갑게 맞으며 마을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이 도시가 ‘석유 제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과 개발에 대한 유엔회의’에서부터였다. 당시 소개된 ‘지속가능한 개발’(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는 개념에 공감한 벡셰는 지역 환경단체와 손잡고 ‘화석 연료 없는 도시’를 선언했다. “2005년 현재 벡셰의 총 에너지 소비량은 2만 4794GWh(기가와트시,1GWh는 10억Wh)로, 이 중 바이오매스(분뇨나 나무껍질 등 동식물의 부산물로 만든 연료) 등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52%에 달합니다. 스웨덴 내에서도 최고 수준이지만 석유 사용량을 ‘0’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노력해야 합니다.” 벡셰에서 여러 환경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헨리크 요한손은 기자에게 벡셰의 석유 제로 프로젝트의 핵심사업인 시영발전소 ‘벡셰에너지’(VEAB)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1970년 설립된 벡셰에너지는 오일쇼크를 계기로 1980년부터 바이오 연료를 이용한 전력생산과 난방을 시작했습니다.2002년부터는 바이오연료 사용량이 97% 이상을 차지하고 있죠. 덕분에 2006년 1인당 이산화탄소(CO3/8)발생량(3.2t)을 1993년(4.6t)에 비해 30%나 줄일 수 있었죠.2025년까지는 70%까지 절감할 계획입니다.” 요한손은 또 벡셰에너지가 자리잡은 트루멘 호수 주변에 짓고 있는 5층짜리 ‘패시브 하우스’ 아파트 단지도 소개했다. 패시브 하우스란 단열 효과를 극대화해 기존 주택보다 90% 이상 냉·난방비를 절감할 수 있는 에너지절약형 주택. 현재 벡셰는 기존 주택들을 패시브 하우스로 교체하면서 에너지 소비량을 최소화하고 있다. 요한손은 “최근 벡셰의 쾌적한 환경이 많이 알려지면서 스웨덴 전역에서 이주해 오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면서 “특히 중국과 일본의 도시 관계자들이 시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교통수단이 가장 어려운 개혁대상” “벡셰라고 해서 골칫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자전거 출·퇴근을 위한 여러 시스템을 갖춰 놓았지만 그래도 자가용 사용을 줄이기 위한 묘수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교통수단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개혁 대상이죠. 화석연료 사용량이 전체 에너지의 40%에 육박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벡셰가 석유 제로도시로 이행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보 프랑크 시장은 곧바로 교통수단을 지목했다. 편한 것을 추구하는 개인의 욕망을 바꾸는 게 에너지 위기 극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솔직한 토로였다. “자동차 사용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차량용 바이오연료 보급이라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벡셰의 바이오연료 보급률은 석유 사용량의 3%에도 미치치 못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세계 여러 도시들에 ‘지금 가진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에너지·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자부합니다. 세계가 석유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각종 첨단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기존 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에너지·온실가스 절감효과를 낼 수 있었고요.”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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