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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세계로 뛰는 한국 대표기업]한진해운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세계로 뛰는 한국 대표기업]한진해운

    한진해운이 바다 영토를 넓히고 있다. 연간 1억t 이상의 뱃짐을 실어나르는 국내 최대의 글로벌 해운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은 성공적인 해외진출이다. 매출액의 90%를 해외 영업으로 벌어들이는 중추 신경은 200여개의 해외 지점과 30여개의 해외 현지법인이다. 미국 최대 항만인 롱비치에 46만평 규모의 전용 터미널을 갖추고 있으며 도쿄, 카오슝 등에서도 전용터미널을 통해 뱃짐을 실어나른다. 중국 상하이, 칭다오 등 6개 내륙 물류기지도 운영하는 등 세계적인 물류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2011년에는 미국 동부 잭슨빌에 68만㎡ 규모로 짓고 있는 전용 컨테이너 터미널도 운영에 들어간다. 중국·타이완·일본·독일 선사와 함께 구축한 세계 최대의 선사 전략적 제휴 그룹 ‘CKYHS 얼라이언스’를 통해 아시아·미주·유럽에서 터미널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 중이다. 2006년 9월 호주 매쿼리은행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타이완과 일본의 전용 터미널 운영 교두보를 마련했다. 벨기에 앤트워프항에도 전용 터미널을 설립, 연초부터 운영하고 있다.CKYHS 얼라이언스 공동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전용 터미널을 확보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기도 했다. 지난해 3월에는 베트남 탄깡까이멥 컨테이너 터미널을 포함, 베트남 지역의 물류사업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다. 지중해 전략 거점인 알헤시라스 전용터미널 개발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까지 연간 컨테이너 물량을 67만TEU로 늘리기 위해 올해 1만 3000t짜리 컨테이너선 9척을 확보했다. 벌크부문 영업도 강화한다. 초대형 유조선 2척을 발주했고 지난해 싱가포르에 탱커 전문법인을 설립했다. 3자 물류 사업도 확대한다.2005년 뉴욕, 상하이 등에 물류법인을 세워 중국∼미주구간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는 자체 3자 물류 시스템을 개발하고 아시아와 유럽에 물류법인을 추가 설립했다. 수리 조선소 사업에도 진출했다. 중국 순화해운과 합작으로 저장성 취산도에 부두 길이가 1900m에 이르는 전용 선박 수리 조선소를 건설 중이다. 올 하반기까지 15만t급 도크를 건설하고 운영에 들어간다.40만t급 도크가 추가 건설되면 8000TEU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 선박 수리도 가능해진다. 이 공장이 완공되면 한진해운이 운항 중인 대형 선박의 안정적인 유지·보수가 가능해지고 다른 선사 소속의 선박 수리 물량을 확보해 추가 수익 창출도 기대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독도 실효적 지배권 강화한다

    독도 실효적 지배권 강화한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김성수 김미경기자|정부는 일본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의 독도 영유권 명기와 관련,15일 권철현 주일대사를 일시 귀국토록 조치하는 등 다각도의 총력 대응에 나섰다. 권 대사는 이날 오후 김포공항에 도착 직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을 방문, 유 장관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향후 대책을 숙의했다. ●권 대사 “日 잃는 것 더 많을 것” 유 장관과 권 대사는 이 자리에서 외교 경로 등을 통한 대일 압박 대책과 함께 독도의 실효적 점유권을 강화하고 시민·사회단체 등과의 연계, 국제적 여론을 형성하는 등의 다양한 대응책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권 대사는 17일에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측에 공식 항의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입장을 거듭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 대사는 귀국에 앞서 일본 외무성을 방문, 야부나카 미토지 사무차관을 만나 “독도는 명백한 한국의 영토”라고 강조한 뒤 “일본의 처사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가려는 우리 정부의 노력에 반하는 유감스러운 조치로, 일본은 한·일 관계 및 국제관계에 있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고무라 마사히코 외상은 권 대사 면담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날 오후 김도연 장관 명의의 항의 서한을 외교부로 전달했다. ●독도 경비함정·항공기 전진 배치 해양경찰청은 이날 독도 주변 해역에 경비함정과 항공기를 전진 배치해 해상순찰과 검문검색을 강화한데 이어 상황변화에 따라 대형함정과 항공기를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정부 대응과 별개로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은 이날 여야 의원 21명과 함께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는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현행 일반법으로 돼 있는 독도이용법의 지위를 특별법으로 바꾸는 한편 법의 목적에 ‘독도지역에 대한 영토수호’를 추가하도록 했다. 아울러 ▲독도 거주민 및 왕래인 지원 ▲농작물 재배시설 설치 ▲선박 관련 시설 ▲해양과학기지 구축 ▲독도 관련 민간단체 지원 ▲국제홍보활동 및 국제기구 인력양성 등을 포함시키도록 했다. 한편 일본 문부과학성은 내년부터 중학교 사회교과 수업시간에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가르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NHK에 따르면 문부성은 독도를 포함시킨 중학교 사회교과의 신 학습지도요령 해설서가 적용되는 2012년까지 기다리지 않고 내년부터 독도의 영토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문부성은 이에 따라 내년부터 앞당겨 독도에 대한 수업을 실시할 있도록 지역별로 개최될 신학습지도요령 설명회 등을 통해 학교 현장에 지시해 나갈 계획이다. chaplin7@seoul.co.kr
  • 러, 아무르강 섬 2개 中에 반환

    러, 아무르강 섬 2개 中에 반환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러시아가 79년간 점령하고 있던 중국·러시아 국경 동쪽 끝의 섬들을 다음달 중 중국에 공식 반환키로 했다고 중국신문사 등 중국 언론들이 6일 보도했다. 러시아 연방안전국은 헤이룽(黑龍)강과 우수리강이 만나는 중·러 국경 사이에 위치한 174㎢ 면적의 인룽(銀龍)도 전부와 헤이샤쯔도 일부를 중국에 정식으로 넘겨주게 된다고 밝혔다. 러시아측은 이미 이곳에 진주한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는 2004년 10월 중국과 러시아가 마무리한 양국간 국경 획정 협상에 따른 것이다. 두 나라는 당시 3483㎞에 이르는 국경을 획정하면서 분쟁 대상인 세 개의 섬 가운데 아무르강의 타라바라이섬을 중국에, 아르군강의 볼쇼이섬은 러시아에 귀속시키기로 하고 가장 큰 섬인 넓이 335㎢의 볼쇼이 우수리스크 섬은 중간에서 갈라 절반씩 나누기로 결정했다. 이 두 섬은 1929년 옛 소련군이 진주한 이래 러시아가 79년간 점유해 왔으며 양국 관계가 악화된 1960년대 이후 주요 분쟁거리로 작용했다. 현재 헤이샤쯔섬 동반부에는 1만여명의 러시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중국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을 되찾았다.”며 환영했다. 중국 당국은 헤이샤쯔섬을 중심으로 반경 1800㎞ 안에 중국 동북지방과 러시아 극동지구, 동시베리아, 일본 전체, 한반도와 몽골의 일부분이 들어온다는 점에서 향후 동북아 경제권의 중심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 섬에서 시작되는 푸위안 삼각주는 러시아 극동지구와 일본과 직선 거리로 가장 가깝고 북미대륙과도 최단 거리에 있어 대외무역의 교두보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인근 헤이룽강의 강심이 깊어 5000∼1만t급 선박의 접안이 가능할 정도로 항구로서의 입지 조건도 훌륭할 뿐 아니라 러시아의 극동고속도로와 동시베리아철도가 근접해 있어 유럽∼아시아∼미 대륙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이 섬의 개발계획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jj@seoul.co.kr
  • 코트라 “올해 수출 4000억 달러 돌파할 것”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올해 우리나라 수출은 4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코트라가 해외 바이어, 주재상사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8년 하반기 수출 전망’에 따르면 올해 수출은 전년보다 15.5% 증가한 429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3000억달러는 지난 2006년에 돌파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미국 등 주요 시장 경기 위축으로 수출 감소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세안, 독립국가연합(CIS), 중동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고급가전, 정보통신기기 등 소비재 수출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별로는 대(對)중국 수출이 사상 최초로 100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전체 수출액의 4분의 1 규모다.일본은 299억달러, 대만 등 중화권은 1320억달러, 중남미는 304억달러로 지난해보다 10∼20%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아시아·대양주는 684억달러, 중동. 아프리카는 333억달러, 독립국가연합(CIS)은 158억달러로 지난해보다 20∼40%가량 수출이 증가할 전망이다. 코트라측은 “품목별로는 기계류, 철강, 석유제품, 자동차부품, 선박류, 반도체 등에서 호조가 예상된다.”고 말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직지심경 대모’ 在佛 사학자 박병선박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직지심경 대모’ 在佛 사학자 박병선박사

    “박사님, 올해 여든하나이신데 아주 정정해 보이십니다.” “(잠시 창밖을 응시하더니)세월이 그렇게 흘렀네요.” 짧은 생머리, 나이만큼 백발이 묻어났지만 주름살은 별로 없었고, 눈썹과 입술 화장이 잘 어울려 보였다. “여전히 얼굴이 고우십니다. 젊었을 땐 참 예쁘고 미인이었겠습니다.” “어이구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어릴 때 친척들한테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잘생긴 언니와 오빠, 동생들과는 비교가 안됐지요. 미인이라뇨? 천만의 말씀입니다.” 약간 홍조 띤 얼굴로 변한다. “죄송한 질문이지만 결혼은 왜 안 하셨는지요?” 보통 같으면 증손자까지 봤을 법한 할머니에게 던진 질문 자체가 우스웠나 보다. “뭐 특별한 이유가 없어요. 한 가지 일을 끝내면 또 다른 일을 시작하고, 그것에 파고들다 보면 정신없이 시간 가고, 어디 (연애할) 틈이나 생겨야 말이지요. 호호.” 노(老) 박사의 웃음 짓는 모습은 해맑은 소녀의 그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하시는 일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젠 나이도 그렇고 쉬셔도 되는데 젊은이들보다도 정열이 더 뜨겁습니다.” 잠시 한숨을 쉰다.53년 동안 도도히 흐르는 역사와 함께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한우물을 팠다. 또한 해야 할 관련 숙제 역시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인 듯하다. “더 늙기 전에, 총기가 사라지기 전에 선명하게, 뚜렷하게 규명해야 일들이 많이 있네요. 개인이 한다는 게 외롭고 어렵긴 하지만….”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노 박사의 말과 표정이 경외스럽도록 다가온다. 문득 노 박사를 모델로 한 역사 추리소설(외규장각도서의 비밀)이 생각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까.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게스트하우스.‘직지심경(直指心經·직지심체요절)’의 대모(代母) 박병선 박사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가 직지심경의 대모로 불리는 까닭은 1967년 파리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을 발견해내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킨 1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최근 방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의 인터뷰가 쇄도했다. 그래서인지 박 박사는 직지심경이나 외규장각도서 얘기는 하도 많이 해서 가급적 피해달라고 먼저 주문한다. 재불(在佛) 역사·서지학자인 그가 잠시 방한한 이유는 1985년 국내에서 발간했던 ‘조선조(朝鮮朝)의 의궤(儀軌)’ 증보판을 내기 위해서다. 이번 증보판은 300쪽 중 100쪽가량을 프랑스어로 썼다는 점이 눈여볼 대목. 그는 평소 프랑스인들이 병인양요를 거의 모른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증보판 앞 부분에 병인양요에 대한 설명과 ‘왜 한국 사람들이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 달라.’고 요구하는지 등을 프랑스어로 자세히 언급한다. 또한 의궤의 내용과 그것이 프랑스로 가게 된 사연, 당시 프랑스 해군의 일기와 공문서 등도 새롭게 첨부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의 출간을 염두에 두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이번 증보판에는 당시 프랑스 해군들의 행적을 어렵게 추적, 이른바 ‘작전루트’를 처음 공개할 예정이어서 중요한 역사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병인양요와 의궤 반환문제로 프랑스 국영 3TV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이때 방송사 간부한테 ‘프랑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더 이상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때마침 한국학중앙연구원측의 도움으로 이번에 작업을 하게 된 것. 증보판은 한달 후쯤이면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당시 프랑스 해군들의 흔적과 관련된 자료는 많이 있는지요. “프랑스가 1차 원정 왔을 때 일기를 보면 강화도의 문수산성과 적성산성 등을 왔다갔다는 기록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2차 원정때의 군함, 당시 그림과 자료, 관청의 위치도 등을 종합해볼 때 황해도 연안까지 갔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행적을 찾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최초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최대한 자세하게 그려볼 생각입니다. 현재 이 작업만 남아 있습니다.” 그는 방한에 앞서 당시 프랑스 로즈함대장의 후손을 만나 여러 번 설득 끝에 강화도 등에서 프랑스로 압수해간 ‘압수목록표’를 어렵게 얻을 수 있었다(이번 증보판 부록에 실린다). 그는 “로즈함대장의 후손은 할아버지를 영웅으로 알고 있으며 곧 ‘할아버지 전기’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프랑스인들은 병인양요나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달라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지요. “도대체 그걸 왜 반환해야 하느냐고 묻는 프랑스인들이 많습니다. 이때마다 ‘만약 루이 14세의 왕실 행사를 자세히 기록한 유일한 문서본이 다른 나라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되묻지요. 그럼 프랑스인들은 당연히 찾아와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프랑스에서 지내는 50여년 동안 한국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대부분 스크랩해 놓을 만큼 자료 수집에 많은 애착을 갖고 있다. 특히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관 등에서 3·1운동 당시 한국에 주재했던 프랑스 영사관이 본국에 보낸 많은 공문서를 찾아냈다. 또 일제때 일본과 중국에 주재했던 프랑스 공관이 본국에 보낸 공문서 중 한국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모은 자료 등을 합하면 무려 2000상자 1만 5000쪽 분량에 이른다. 이 귀중한 것들을 정리하고 책으로 펴내는 일이 그의 마지막 숙원사업. 파리에도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가 그만큼 많다고 강조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혼자서 어렵게 해왔습니다. “개인이 한다는 게 사실 엄두가 안 나지요. 국가에서는 (반응이)냉랭합니다. 아무튼 어렵게 자료들을 모았으니 그냥 놔둘 수도 없겠고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다가…. 지금이라도 국가에서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당시 독립을 호소했던 김규식 박사의 자취도 추적했다. 파리 시내 서쪽 쇼토 거리에서 이들이 머물던 곳을 찾아냈고 2006년에 겨우 건물 현판 정도만 걸 수 있었다. 기념관이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박 박사의 어릴 적 꿈은 유치원을 설립해 서구식 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대 사대에 진학했지만 나중에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방향을 틀었다. 대학 때는 손보기(사학자)·이두현(민속학자) 선생 등과 친하게 지냈다.6·25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유학을 택한 것은 평소 가톨릭 신자로 프랑스 출신 수녀들과 가깝게 지낸 덕분. 이후 소르본대학에서 종교사를 전공한 뒤 파리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중 1979년 의궤를 찾아낸 직후 ‘비밀을 누설했다.’는 질책과 함께 파리국립도서관을 그만두었다. 이후 여러 파란곡절을 겪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고문서와 귀중한 자료들 속에 파묻혀 ‘여자의 일생’을 걷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8년 서울에서 5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서울대 사대 사회생활학과(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1955년 6·25 이후 민간 여성으로는 첫 프랑스 유학비자를 받고 떠났다. 소르본대학에서 종교사를 전공(석·박사)한 뒤 1967년 파리국립도서관에 근무할 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을 발견해 냈다. 이어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출품, 구텐베르크의 성경책보다 무려 73년이 앞선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1979년에는 조선 왕조의 의식에 관련된 세세한 기록문인 외규장각 도서 279권을 프랑스국립도서관 창고에서 발견, 한국에 알렸다. 이같은 공로로 대한민국훈장 동백장과 제7회 비추미여성대상특별상 등을 받았다. 특히 1919∼1920년 사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있던 청사를 찾아내기도 했다. 현재는 파리 근교에서 살면서 한국 관련 각종 고서연구와 프랑스에서 본 한국의 3·1운동 등에 관한 독립운동사를 정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인쇄사’(프랑스어·스페인어·영어·한국어)가 있고, ‘한국의 무속사’‘한국의 역사’ 등을 프랑스어로 펴냈다.
  • 현대重 최초개발 ‘날개 단 선박’ 인기

    현대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선박 날개’ 기술이 연료 소비를 줄이는 효과로 선주사들로부터 인기다. 현대중공업은 2006년 날개 달린 8600TEU급 컨테이너선을 수주했던 독일 하팍로이드사(社)로부터 최근 같은급 선박 6척에 날개를 달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다른 선주사의 문의도 있다고 22일 밝혔다.현대중공업이 국내 특허등록을 마치고 전 세계 10개국에도 특허 출원을 내놓은 ‘선박 날개(정식이름 추력날개)’기술은 양력(揚力) 을 발생시키는 날개를 선박의 프로펠러 뒤 방향타에 장착하는 것이다. 날개를 달면 프로펠러가 돌면서 발생하는 회전류의 추진력을 재활용할 수 있어 4∼5%의 연료절감 효과를 낸다. 하루 300t 이상의 연료를 쓰는 대형 컨테이너선의 경우, 연간 240만달러(약 24억원)의 유류비를 줄일 수 있다고 현대중공업은 설명했다. 민계식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추력날개는 중국과 일본 등 경쟁국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이라며 “신(新) 선형 설계와 독자엔진 개발 등으로 세계 시장에서 기술우위를 지켜 나가겠다.”고 말했다.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고유가에도 버티는 한국경제…플랜트 산업의 힘

    고유가에도 버티는 한국경제…플랜트 산업의 힘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를 넘어서게 될 때 정부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2004년 초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당시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출입기자들이 던진 질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8년 현재 국제유가는 40달러의 3배를 훌쩍 넘어 140달러가량 된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을 경우 한국 경제가 완전히 곤두박질칠 것으로 예상했으나, 수출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여전히 두 자리 숫자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고, 경상수지 적자도 68억 달러에 그치고 있다. 경제 성장률도 정부의 목표치인 6%에는 못 미치지만 4% 중반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강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중동·중남미 수출 각각 36%·25% 증가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실장은 “이같은 기초체력 증진은 일반적으로 자원부국인 중동 산유국과 중남미에 대한 수출이 엄청나게 증가한 덕분”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표에서도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2007년 중동과 중남미 수출증가율은 각각 36.4%와 25.2%이다. 반면 같은기간 미국 수출증가율은 6%, 일본은 0.6% 감소했다. 올 1∼4월까지 중동 및 중남미의 수출 증가율은 전년동기 대비 각각 38.9%와 22.3%로, 전체 수출 증가율 19.7%를 웃돈다. 중동·중남미 수출 증가한 데는 플랜트 산업의 역할이 컸다. 한은 관계자는 “70년대말,80년대 초 ‘2차 오일쇼크’때 현대건설 등 국내 건설업체들이 중동 산유국에서 돈을 벌어들이면서 오일쇼크를 완충해 줬듯이, 유가 130달러 시대에는 플랜트 산업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특히 플랜트 산업은 선박·휴대전화·가전제품·반도체 수출이 상품수지에만 잡히는 것과 달리, 국제수지표 상에서 상품수지, 서비스수지, 자본수지 등에 골고루 나눠 잡히기 때문에 우리경제의 기초체력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플랜트 산업의 해외 수주 현황은 2007년 현재 조선수주액 698억 달러의 약 50% 수준인 350억 달러다.5년 전인 2003년에는 선박수주액이 240억 달러, 플랜트가 64억 달러로 약 4분의 1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플랜트의 성장세가 눈에 두드러진다. 지역별로 보면 지난해 중동이 전년 대비 30.6%, 중국·인도 등 아시아가 382.2%, 아프리카가 38.4%의 성장세를 각각 보였다. 산유국의 석유화학시설 투자확대와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신규 전력수요 증가 때문이다. ●2015년엔 세계시장 점유율 10%로 늘듯 전문가들은 플랜트 산업의 성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과 한국플랜트산업협회에 따르면 플랜트의 해외수주는 연평균 약 13%가량 늘어나고 있다. 올해에는 394억 달러,2009년에는 443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5년 2.7%에서 2010년에는 6%대 진입이 가능하다. 현재 국내 자동차업계의 세계 점유율이 2.7∼3%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초체력’으로서 플랜트 산업의 잠재력은 놀랍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우리투자증권 하석원 연구위원은 “국내 플랜트산업은 2015년에는 세계 점유율 10%가 예상된다.”면서 “세계 점유율 60%인 조선업보다 성장성이 크고, 고유가가 계속되면 지속적으로 혜택을 누리는 업종”이라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대한민국 60돌 미래로 세계로] (3) 경제대국을 향해 뛴다

    [대한민국 60돌 미래로 세계로] (3) 경제대국을 향해 뛴다

    건국 60년의 경제는 한마디로 ‘한강의 기적’으로 요약된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이적인 기록은 한국 경제의 저력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압축성장의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한국 경제는 또다른 도전을 요구받고 있다. 도전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다.60년간 우리 경제의 변천과 산업현장의 주역들인 기업의 눈부신 업적 등을 되돌아 보고 글로벌의 파고를 넘는 ‘60년의 미래’를 짚어본다. ■ 소비자물가·경제규모로 본 과거 60년 달걀 1개면 서울시내에서 버스를 5.5번 탈 수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달걀이 아주 귀했던 1948년 건국 시절의 얘기다. 당시 달걀 1개의 가격은 24.8원(圓)으로 서울 시내버스 요금 4.5원(圓)의 5.5배였다. 건국 60년을 맞은 2008년은 어떨까. 2008년에는 거꾸로 달걀을 5.5개를 모아야만 서울서 버스 한번 탈 수 있다. 달걀 한개 가격이 2008년 현재 163원, 서울시내 버스비는 900원으로 역전됐기 때문이다. 달걀은 60년 전에 비해 6572배(두 차례 화폐개혁 반영해 2008년 가격×1000)가 올랐지만, 서울시내 버스비는 달걀 상승분보다 3배 이상 더 올라 20만 배가 됐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신문이 19일 한국은행에 요청해 1948년 건국 이후 60년 간의 생필품 가격변동을 살펴본 결과다. 한은과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60년 동안 1만 1216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쇠고기 5만 2920배·쌀 1만 7943배 올라 상품별로 쇠고기(500g)는 255.8원(圓)에서 5만 2920배가 오른 1만 3537원이다. 돼지고기는 237.5원(圓)에서 8458원으로 올라 3만 5612배가 뛰었다. 쇠고기가 돼지고기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많이 오른 것이다. 한은 물가통계국은 “1945년에는 쇠고기는 15.8원인 반면 돼지고기는 21.7원으로 더 비쌌다.”면서 “일하는 소가 먹는 소로 인식이 바뀌면서 1948년부터 가격이 역전됐다.”고 설명했다. 소주는 83원에서 942원으로 1만 1349배, 밀가루는 102.1원에서 1454원으로 1만 4241배,80㎏ 쌀은 8875원에서 15만 9242원으로 1만 7943배 올랐다. 금 1g은 1401.6원에서 3만 1489원으로 2만 2466배 올랐다. 특히 광복부터 건국까지 3년간은 주요 생필품이 약 11배(1000%)가 올라, 살인적인 물가상승으로 고통받았던 서민들의 애환을 짐작할 수 있다. 주식인 쌀은 3년간 286.5원에서 8875원으로 약 31배가 상승했고, 서울시내 버스요금도 0.16원에서 4.5원으로 28배가 상승했다. 소비자물가지수로 살펴보면 1945년부터 ‘광복 60년’간 소비자물가는 약 11만배 상승했지만,1948년부터 ‘건국 60년’은 1만 2000배로 대폭 축소된다. 이 역시 건국 직전 3년간의 인플레이션을 짐작하게 한다. ●1인당 국민소득 1만9053배로 확대 건국이후 60년간 경제규모는 1만 9053배(달러 기준으로는 746배)로 확대됐다.6·25 전쟁이 끝난 해이자 통계작성 시점인 1953년 473억원(13억달러)에 불과하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2007년에 901조 1886억원(9699억달러)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1인당 국민소득도 1953년 67달러에서 1995년 1만달러를 돌파했고,2007년에는 12년 만에 2만달러를 돌파하는 기념비적인 해가 됐다. 경제성장률은 1954년 5.6%였고 2007년에는 5.0%였다. 자동차 총보유대수는 2008년 5월 현재 1667만대로 1945년의 7326대와 비교해 2200배가 증가했다. 자동차 생산 대수는 1955년 7대에서 2007년 408만 6308대로 엄청나게 증가했다. 선박 건조량은 1만 8955대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교수가 보는 미래 60년 지역마다 고부가가치 산업 분산 통해 4만달러 시대로 “우리나라 휴대전화가 세계 ‘넘버 원’인 것은 국내의 소비자들이 가장 깐깐하기 때문입니다. 시민과 업체가 끊임없이 함께 토론하고 대안을 찾은 결과죠. 이는 집중을 통해 ‘2만달러 시대’를 맞이했다면 다양한 목소리들의 분산을 통해 4만달러 시대로 나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모든 유행어는 시대의 조류를 품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88만원 세대’라는 표현이 유행어로 떠오른 것은 20대 비정규직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는 전직 말지 기자인 박권일씨와 함께 저서 ‘88만원 세대’를 내놓으면서 시대의 화두를 던진 경제학자다. 우 교수는 지난 60년의 한국 경제를 ‘압축성장’이라는 단어로 정리한다‘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지만 경제적인 불균형이란 부작용을 낳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회적 불균형을 푸는 게 새로운 도약의 시작이라고 우 교수는 지적한다. 이는 유럽의 예와 같이 국가도, 시장도 아닌 ‘시민’이 경제 활동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크게 국가가 운영하는 경제와 시장 중심 경제로 구분한다면 스위스나 덴마크 등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협동조합 등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회적 기업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4만달러 시대’를 맞았습니다. 자원투입형 경제는 이미 ‘과거의 유산’이라는 뜻이죠.”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고유가 시대에서,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 문턱에 와 있는 한국 경제의 수준을 감안했을 때 물량을 투입해서 이윤을 창출하는 기존의 구조는 불가능하다는 게 우 교수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우 교수는 기존의 양을 늘리는 ‘집합의 경제’가 아닌 질을 높이기 위한 ‘분산의 경제’ 체제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좋은 국민경제’의 틀을 갖추는 것은 이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분산의 경제는 구나 동 등이 실제로 한 단위가 돼 경제 활동을 펼치는 것입니다. 또한 지역 경제가 자생력을 갖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 분야에 충분한 사회적 투자가 진행돼야 하죠. 그러나 부동산 투기로 3∼4년 만에 몇 배의 이윤을 챙길 수 있는 상황에서 누가 투자하고 연구하겠습니까. 결국 독점과 투기를 줄이지 않고서는 좋은 국민경제를 만들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규모를 키워 2만달러 시대를 맞았다면 사회를 더 효율적으로 재편하고 의사소통을 활발히 진행시켜야 4만달러 시대로 갈 수 있습니다.” 우 교수는 일본의 사례를 조언한다.90년대 초부터 10년 동안의 헤이세이 공황을 겪었지만 교토 등 지역 경제는 중앙과 달리 탄탄하게 유지됐다. 그래서 다시 안정적인 성장 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역이 중심이 된 분산의 경제는 자연스레 대규모 공장 대신 경쟁력 있는 소규모 공장 체제로 재편된다. 이때의 자원은 석유가 아닌 지식과 문화다. 우 교수는 “우리는 훌륭한 전통을 물려받은 문화국가인 데다 지난 30년 동안 공업을 발전시켜 본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면서 “스위스의 시계브랜드인 스와치 등과 같이 지역에 맞는 정밀기계나 소재, 정밀화학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일으킨다면 전 국토에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성장 중시<60·70년대>→세계화·IMF체제<90년대 초·중반>→분배<2000년대 전후> 경제 패러다임 변화 ‘성장, 분배, 그리고 세계화.’ 우리나라 경제의 60년을 농축하고 있는 키워드다. 1960년대 경제 개발은 성장을 위한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였다고 볼 수 있다.1·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경제도약의 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1970년대는 중화학공업과 수출 중심의 정책이 추진됐다. 지역간 균형발전을 목표로 새마을운동이 도입된 것도 이 때다. 매달 대통령의 수출확대회의 주재,10대 종합상사 설립 등 전폭적 지지로 10년간 연평균 수출증가율은 46%였다. 지난 77년에는 수출 100억달러의 위업을 달성했다. 반면 종합상사를 중심으로 한 수출지상주의는 대기업이 재벌로 성장하는 토대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성장이 이데올로기화되면서 정치·사회발전은 우선 순위에서 밀렸고,1·2차 석유파동과 만성적인 물가상승 등으로 ‘복부인’이란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10·26사태 직후인 1980년 경제성장률은 -2.1%,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8.7%였다. 자연스레 안정성장에 초점이 맞춰졌고, 연 평균 물가성장률을 5%의 틀로 만든 것도 이때부터였다.80년대에는 북방외교 추진, 과거 공산권 국가와의 교류 및 교역확대, 해외투자 증가 등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무리한 성장정책과 노동력 착취 등은 노사분규를 태동시키는 요인이 됐다. 1993년 등장한 문민정부는 ‘세계화’의 흐름이 경제정책을 주도했다.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고 우리나라는 다음해인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이에 따른 외환규제 완화는 외환위기를 부르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다. 외환위기는 경제의 전반적인 패러다임을 확 바꿨다. 전면적 구조개혁이 이어졌고 무리한 성장정책은 안정적인 성장으로, 한편으로는 ‘성장의 그늘’로 여겨진 소외계층에 대한 분배정책이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자리잡았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분배정책에 치중했던 참여정부는 2003년 경제성장률이 3.1%로 뚝 떨어지면서 저성장 논란에 휩싸였다. 동시에 성장과 분배, 그리고 세계화가 서로 맞물리면서 정책적 우선순위를 놓고 적잖은 논쟁을 불러왔다. 분배중심의 경제정책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성장과 글로벌 경제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연평균 7% 경제성장,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7대 경제강국을 의미하는 ‘747공약’도 이런 토대에서 출발하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섬유·가전으로 성장…반도체·車로 글로벌 기업 배출 80년대 이후 수출 효자 ‘선박’ 대표기업 수출품 변천사 1980년대의 일이다. 삼성전자는 한 식당 주인에게서 변상 요구를 받았다. 세탁기가 막혔으니 물어내라는 요구였다. 서비스팀이 출동해 조사해보니 배수관에 감자 껍질이 무수히 쌓여 있었다. 세탁기에 감자를 넣고 돌리면 껍질이 잘 벗겨진다는 경험담이 입소문을 타면서 식당 주인들이 너도나도 감자를 ‘빤’ 것이다. 처음엔 “황당한 요구”라며 실소하던 삼성전자는 그러나 결국 세탁기를 고쳐줘야 했다. 제품 설명서에 ‘빨랫감 외에는 넣지 마시오.’라는 문구를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년 뒤 미국에서 애완고양이를 목욕시킨 뒤 털을 말리려고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가 고양이를 잃은 할머니에게 이 전자레인지를 수출한 일본 가전업체가 수억달러를 물어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역시 ‘음식물 외에는 넣지 말라.’는 경고를 빠뜨린 탓이었다. 일련의 이 사건들은 삼성을 비롯해 앞만 보고 내달리던 국내 기업들에 ‘소비자의 권익’을 의식하게 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기업의 ‘사회 책임’을 고민하게 했다. ●철광석·포목·오징어로 버텼던 ‘기업 태동기’ 한국 기업의 역사는 1896년 서울 배오개 고개에 둥지를 틀고 옷감 등을 내다팔던 박승직상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의 두산그룹 효시다. 구인회상점(1931년,LG 모태), 삼성상회(1938년, 삼성 모태), 현대토건사(1947년, 현대 모태), 선경직물(1953년,SK 모태) 등도 잇따라 태동했다. 하지만 근대 기업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것은 1950년대 중반이라는 게 대체적 견해다. 미국 달러화에 의지한 ‘원조 경제’ 시대였다. 김성수 경희대 교수는 이 시기 경제의 특징을 “돈벌이 자체에 집착한 천민형 자본주의”라고 정의했다. 주된 수출품도 가공하지 않은 원재료였다. 지식경제부 통계에 따르면 1961년 수출 1,2위 상품은 철광석(530만달러)과 중석(510만달러)이었다. 오징어(5위)와 활선어(6위)도 상위권에 포진했다. ●섬유·가발·가전 꽃피운 ‘고도성장기’ 70년대 들어 한국 경제는 질적으로 도약했다. 중공업 비중이 1975년 처음으로 경공업과 같아지더니 이내 역전했다.‘국산 1호’ 타이틀을 건 치약, 라디오, 전화기, 흑백TV, 세탁기, 자동차 등이 줄줄이 쏟아졌다. 중동 특수가 일면서 건설업도 급성장했다.70년대가 LG(당시 금성)의 시대였다면 80년대는 현대의 전성기였다. 그래도 수출 저변은 섬유·의류산업이 떠받쳤다. 1970년 섬유는 단일품목으로 무려 3억달러 이상을 수출하며 1위 품목으로 올라섰다. 그 유명한 가발(3위) 수출도 이 때 이뤄졌다. 정부 주도 ‘계획경제’의 빛과 그림자가 심화된 것도 이 무렵이다. ●반도체·자동차·선박 앞세운 ‘글로벌 성장기’ 80년대 말의 3저(低) 호황과 88서울올림픽 개최에 힘입어 정부와 기업들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민주화 바람을 타고 노사분규도 급증했지만 ‘고도성장’에 묻혔다.1995년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평균 매출 증가율(27.7%)과 영업이익률(11.3%)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최고 기록이다. 산업구조에도 또 한차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반도체, 선박, 컴퓨터, 철강 등이 수출 주력상품으로 전면 부상했다. 반도체는 1992년 수출 1위 품목(68억달러)으로 처음 올라선 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동차도 ‘포니 신화’를 연 지 20년 만인 1995년, 연간 100만대 수출을 돌파했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도 깊듯이’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경제가 크게 휘청댔다. 재계 판도도 바뀌었다. 외환위기 직전인 97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재계 서열 1위(자산 기준)는 현대(54조원)였다. 삼성은 52조원으로 2위였다. 그로부터 11년 뒤인 올 4월, 삼성(144조원)은 현대차(74조원)와의 격차를 크게 벌리며 부동의 1위 자리를 굳혔다. 롯데가 ‘빅5’로 올라선 것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해서다. 반면, 대우, 한라, 진로, 고합, 해태 등 10개가 넘는 재벌그룹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벤처 버블 붕괴’의 고통도 뒤따랐다.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은 “해외 현지생산 확대 등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이 본궤도에 오르고 주주 자본주의가 뿌리내린 것은 이 시기의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IT 경쟁력으로 中 추격 막아야” 미래 성장모델은 “회사가 10년,20년 후에 뭘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이다.”(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5년 전에는 미래를 준비할 시간으로 10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5년간을 여러분(임직원)이 그냥 까먹었다. 이대로 가면 5년 안에 망한다.”(최태원 SK그룹 회장) “해외 진출과 인수합병(M&A)에 대비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실행역량을 강화하라.”(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미래를 걱정하는 대기업 총수들의 발언에는 한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냉혹한 ‘비즈니스 정글’의 생존명제가 녹아있다. 멈추는 순간 쓰러지고마는 굴렁쇠처럼 진화의 노력을 계속하지 않는 기업은 언제건 과거의 영화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변화·혁신 없인 지속적 성장 어려워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55년 국내 100대 기업에 들었던 곳 가운데 50년이 흐른 2005년에도 순위에 들어있는 곳(상호변경 포함)은 CJ,LG화학, 현대해상, 한진중공업, 대림산업, 한화, 한국전력 등 7개에 불과했다. 기업집단으로 따지면 64년 10대그룹 중 지금도 10대그룹인 곳은 삼성과 LG뿐이다. 변화와 혁신은 기업들이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특히 앞으로는 한국기업 고유의 성장모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따라 배울 수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많았다. 미국식이나 일본 또는 유럽식 경영모델 중 적합한 것을 선택해 따라가면 됐다. 실제로 많은 국내 기업들이 이런 벤치마킹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다르다. 김신(경희대 교수) 한국기업경영학회장은 국내기업에 특징적으로 부과된 과제를 ▲소유와 경영에서 어떠한 기업행태를 만들어 내느냐 ▲한국기업이 처한 기업지배구조를 어떠한 방식으로 선진화하느냐 ▲초일류 기업으로서 어떠한 글로벌 경영전략을 수립하느냐 ▲이제까지 세계가 보지 못했던 혁신 제품을 어떻게 개발하느냐 ▲선도기업으로서 국제가격과 기술주도권을 어떻게 획득하느냐 ▲한국형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구현하느냐로 요약했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의 성공적인 발전상을 앞으로도 이어가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기업의 장점과 단점,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철저히 분석하고 여기에 한국적 특수성이라는 변수들을 집어넣어 우리만의 새로운 기업모형과 경영이론을 창출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활용도에 미래경쟁력 달려 이와 함께 많은 전문가들이 국내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요소로 첫머리에 꼽는 것이 세계의 공장 중국의 활용이다. 거의 모든 산업부문에서 중국의 맹추격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버릴 것과 살릴 것을 명확히 구분해 강점있는 분야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산업기술재단 전망에 따르면 현재 한국이 중국보다 우위에 있는 이동통신장비, 디지털TV, 냉연강판 등은 2010년 중국 우위로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MP3플레이어 등에서는 이미 2004년을 전후로 중국에 역전을 허용한 상태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들에 대한 진출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을 지칭하는 ‘브릭스(BRICs)’ 국가들을 필두로 베트남·인도네시아·터키·멕시코 등이 꼽힌다.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비상하고 있는 중동 등 산유국도 국내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해 쟁취해야 하는 주력시장이다. ●규모 큰 세계시장에 집중 투자 글로벌 성장 가능성이 높고 세계시장 규모가 큰 분야에 대한 집중투자도 중요하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제품·서비스와 정보기술(IT)·생명공학(BT) 등의 결합·융합 부문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우리나라가 강점을 갖고 있는 IT 분야의 경쟁력을 지렛대 삼아 에너지, 헬스케어, 환경 등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태양광·연료전지 등을 핵심으로 하는 에너지산업, 건강과 장수의 꿈을 실현하는 생명산업, 개인과 기업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부티크·투자은행 등이 유망분야로 꼽힌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日·타이완 ‘급랭’

    日·타이완 ‘급랭’

    |도쿄 박홍기·베이징 이지운특파원|타이완 어선이 일본 해상보안부 순시선과 충돌해 침몰한 사건으로 양국간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타이완 시민단체와 의원들이 일본과 영유권 분쟁중인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해역에서 주권 선언을 준비하면서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일본은 타이완에 대한 설득 작업에 나섰지만, 타이완은 군함까지 출동시킬 태세다. 16일 타이완 언론 등에 따르면 ‘바오댜오(保釣·댜오위다오 보존 운동) 연맹’은 지난 15일밤 황시린(黃錫麟) 집행장 등 12명의 시민운동가와 30명의 기자들을 실은 ‘취안자푸(全家福)호’를 댜오위다오 해역으로 출항시켰다. 이들은 타이완 국기와 함께 플래카드,‘비밀무기’ 등을 싣고 댜오위다오에서 타이오 주권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본 측은 이날 오전 타이완의 취안자푸호와 순시선 3척, 그리고 또다른 순시선 6척 등 모두 10척의 선박이 센카쿠열도 서남서쪽 약 22㎞ 지점의 ‘일본 영해’로 진입한 것을 확인, 제11관구 해상보안본부(오키나와 나하 소재)소속 순시선이 이들을 영해 밖으로 퇴거시켰다고 교도(共同)통신이 보도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관방장관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외교 경로를 통해 재삼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발생한 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면서 “이번 사태로 지역의 평화를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관계자가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타이완의 반발이 예상외로 강력해지자 유감을 표명하면서 손실 배상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타이완 대표부인 일본교류협회 타이베이사무소 이토 고이치(伊藤康一) 총무부장은 롄허호 허훙이(何鴻義) 선장을 방문,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측이 ‘사과’ 대신 ‘유감’이란 단어를 계속 사용하자 허 선장은 “공식적인 사과를 원한다.”며 침몰 어선에 대한 배상 요구와 함께 자신에 대한 고소를 철회치 않을 경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타이완 입법원의 외교국방위원회는 오는 18일 천자오민(陳肇敏) 국방부장의 수행하에 군함을 타고 댜오위다오를 방문할 예정이다. 타이완은 90년대 후반 리덩후이(李登輝) 정부 시기부터 일본과는 사실상 동맹국 수준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마잉주(馬英九) 정부의 양안 우선 정책으로 서서히 대일 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뤄즈정(羅致政) 둥우(東吳)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번 어선침몰 사고는 타이완 정부의 대일본 전략 사고가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대외정책 기조가 양안 관계를 우선으로 삼는 방향이 더욱 확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jj@seoul.co.kr
  • 日, 對北 경제제재 일부 해제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가 13일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의 일부를 해제하기로 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은 이날 오후 “북한이 일본인 납치피해자에 대한 재조사와 함께 1970년 3월 일본항공(JAL)‘요도호’납치범의 신병인도에 협조를 약속했다.”고 밝히며 납치문제의 ‘일정한 진전’으로 평가했다. 이어 대북 경제제재 가운데 ▲인도적 물자 수송에 한해 북한 선박의 입항을 허용하고 ▲인적왕래 금지조치를 해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전세항공기 운항 금지도 풀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한이 핵폐기 프로그램 신고대가로 요구한 중유 제공에 대해서는 응하지 않기로 했다. 때문에 납치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팽팽한 입장차 때문에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일 관계가 급진전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북·일 양국간 유일한 직접 교통수단인 ‘만경봉호-92’의 운항이 2년여 만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마치무라 장관은 지난 11일부터 이틀간 베이징에서 열린 양국 실무회담에서 납치문제와 관련,“북한이 해결이 끝난 사안이라는 입장을 바꿨다. 생존자를 찾아 귀국시키기 위해 조사의 필요성이 있음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재조사 방법에 대해서는 “북한 단독으로 할지, 일본과 공동으로 할지 앞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을 계기로 북한 선박의 입항 금지와 북한산 물품 수입금지 등의 6개월 한시적 제재 조치를 발동한 뒤 지난해 4월과 10월, 올해 4월 3차례에 걸쳐 제재 기한을 재연장했다. 일본 정부는 2002년 송환된 5명을 포함, 모두 17명을 납치피해자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요도호 납치범 9명 가운데 3명은 사망,2명은 비밀리에 귀국해 체포된 상태이며, 북한에는 4명이 남아 있다. hkpark@seoul.co.kr
  • 한·일회담 속내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세계 외교사에서 가장 험난한 회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한·일회담. 그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이 모두 다섯 권으로 펴낸 ‘한·일회담 외교문서 해제집’이 그것.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의 전문가 5명이 3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다. 1950년부터 1965년까지 1500여회 넘게 개최된 한·일회담은 일본 측의 망언, 미국의 간섭, 국내 반일여론과 시위 등으로 재개와 휴회를 반복한 마라톤 교섭이었다.1차의 예비회담과 7차의 본회담으로 진행된 한·일회담에서 오갔던 주요 의제는 한국현대사에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일협정 문서는 2005년 1월 일제강점하 피해자들이 문서 공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청구권 관련 문서가 일부 공개됐다. 문서 전체가 공개된 것은 회담 완료 40년 만인 2005년 8월이다. 동북아역사재단 측은 “국민 일반은 물론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과 유족 등 관심있는 독자의 수요에 부응하고자 했다.”며 이번 해제집 간행이 한일협정의 성과와 한계 등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단 측은 이미 일본의 연구자와 출판사 측에서도 번역·출판 제의를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해제집은 회담 때 오갔던 외교문서 3만 6000장을 주제별로 정리했다.▲어업평화선 ▲청구권 일반 ▲선박 ▲문화재 ▲기본관계 ▲재일교포 법적지위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일본군 위안부, 일제 강점하 피해 보상문제, 독도 및 문화재 반환 등은 단순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한일관계를 규정하는 주요 현안”이라며 “이번 학술적 재정리가 오늘의 현안을 풀어가는 데도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태안피해 제대로 보상받자] (4)실수 한 번이면 족하다

    [태안피해 제대로 보상받자] (4)실수 한 번이면 족하다

    ‘쾅, 쾅, 쾅….’ 지난해 12월7일 오전 7시6분쯤, 충남 태안군 만리포에서 8㎞ 떨어진 앞바다. 부선(艀船·바지선) ‘삼성1호’가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를 들이받았다. 예인선의 강철 와이어가 거센 풍랑에 끊어지면서 부선이 표류했고 유조선과 9차례나 충돌했다.14만t급 유조선에는 직경 30㎝∼2m짜리 구멍이 3개나 뚫렸다.1만 500t의 검은 기름이 48시간 동안 쏟아졌다. ●단일선체 2011년부터 운항 금지 유조선이 맥없이 뚫린 것은 단일선체 구조와 무관치 않다. 선박 외벽과 기름탱크의 외벽이 서로 맞닿은 홑겹 구조로 돼 있어 견고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홋카호·에리카호·프레스티지호 등 대형 기름유출 사고 대부분이 단일선체 유조선에서 발생했다. 사고를 예방하려면 이중선체 유조선으로 바꿔야 한다. 이중선체는 선박 외벽과 기름탱크 외벽이 두 겹으로 돼 있고, 그 사이에 2∼3m의 공간까지 두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단일선체 유조선 사용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2005년 127회에서 2006년 155회, 지난해(1월∼11월) 173회로 증가추세다. 단일선체가 아시아를 운행하는 비율도 높다. 지난해 5만t 이상 단일선체 유조선의 80%가,30만t 이상 초대형 유조선의 97%가 아시아 지역을 항해한 것으로 국제민간유조선선주협회가 분석했다. 대형 사고를 겪은 미국과 유럽이 단일선체의 입항을 줄인 탓이다. 태안 사고 직후 우리나라도 오염방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단일선체 운항을 2011년부터 금지하기로 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정유사들이 연간 순이익 20분의 1만 투자하면 올해 유조선을 이중선체로 전면 교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자체 신속 방제 교육 실시를 태안 사고가 터지자 국토해양부 산하 방제기관인 한국해양환경관리공단이 최첨단 방제설비 100여대를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했다. 그러나 방제설비 가동률은 50%에도 못미쳤다. 공단 직원 말고는 설비 사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2∼3개 기계를 오가며 공단 직원들이 정신없이 방제하는 동안 지자체 공무원들은 발만 구를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 있었던 한 공무원은 “기초 지식이라도 있었다면 초기에 훨씬 효율적으로 방제작업이 이뤄졌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공단은 해마다 해안 지역 지자체 100여곳에 전문방제교육을 실시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정작 교육에 참가한 지자체는 한 곳도 없었다. 프랑스는 1978년 기름 22만t을 유출한 아모코 카디즈호 사고 이후 세계적인 방제전문기구인 세드르를 설립했다. 인공해변 등 3만㎡(약 9000평) 부지를 갖춘 덕분에 지자체 공무원은 물론 주민, 경찰, 석유회사 직원들이 실제 상황처럼 방제 훈련을 받는다. 크리스토퍼 루소 부소장은 “각 기관이 똑같은 방제교육을 받아 사고가 발생하면 빠르게 협력,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후쿠이현 등도 97년 나홋카호 사고 이후 해마다 기름유출 사고를 대비, 모의 훈련을 실시한다. ●보충기금협약 21개국 가입 기름유출이 발생하면 1차로 사고 선박 소유자가 배상한다. 금액은 선박의 크기에 따라 정해지는데 최고 8997SDR(IMF 특별인출권·1425억원)까지 가능하다. 피해규모가 크면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이 정유사가 낸 기금으로 2차 보상한다. 보상한도액은 2억 300만SDR(3216억원)이다. 해상수송량이 많은 우리나라는 일본,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기금을 내고 있다. 나홋카호·에리카호·프레스티지호 등 대형 기름유출 사고를 겪으면서 국제사회는 IOPC 보상한도가 부족하다고 판단했고,2003년 5월 보충기금협약을 채택했다. 협약은 보충기금 가입국에 7억 5000만SDR(1조 1881억원)까지 보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협약 가입국이 아니어서 보충기금을 받을 수 없다. 협약 당시 국내 정유사들이 부담이 너무 크다고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리어애드미럴 올림보 보충기금협약 의장은 “대형 사고를 겪으면 보충기금협약의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프랑스·스페인 등 21개국이 보충기금협약에 가입돼 있다. ●외양간 고치기…신속한 백서 발간 재난이 발생하면 당국은 전문가와 함께 원인과 문제점을 밝히고 대책을 마련해 신속히 백서를 발간해야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95년 씨프린스호 사고의 백서는 7년 만인 2002년 7월에야 나왔다. 그것도 시민단체 등이 여수 일대 해안에 기름이 남아 있다고 비판하고, 국정감사 때 사후 관리가 부실하다고 지적하자 부랴부랴 제작한 것이었다. 일본은 97년 나홋카호 사고가 일어난 지 1년 만에 백서를 3권이나 제작했다. 지자체인 후쿠이현과 미쿠니 마을, 지역 언론이 사고 원인과 방제·보상 과정을 각각 분석했다. <특별취재팀> 도쿄·런던·파리·마드리드 정은주 오이석특파원 ejung@seoul.co.kr
  • 국내 첫 크루즈선 ‘순항’

    국내 첫 크루즈선 ‘순항’

    ●중간 기항지서 자기 차로 육상 관광 환상적 바다여행의 지평을 연 크루즈선이 국내 첫 취항 후 한달째를 맞아 순항하면서 국내 관광업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경남과 전남, 제주도 등의 섬과 내륙을 잇는 이 크루즈선은 4일 취항 한 달을 맞는다. 2일 팬스타라인닷컴과 여행사에 따르면 지난달 2일 첫 출항한 1만 5000t급 팬스타 허니호는 첫 운항 때 정원(300명)에 육박하는 평균 250여명이 탔다. 이후 3박4일과 1박2일짜리 등 4번 출항에 평균 탑승률이 150여명이었다. 이 크루즈선은 부산에서 출발, 여수∼진해∼완도∼제주 등 남해안을 오간다. 더욱이 팬스타 허니호는 자동차를 싣고 다니다 중간 기항지에서 멈추면 관광객들이 자신의 차량으로 육상 관광을 할 수 있다. ●지자체들 관광객 증가 기대 이를 노려 여수·진해·완도·제주·통영 등 주요 기항지에서는 단체장들이 크루즈선 입항 때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펴는 등 남다른 기대를 걸고 있다. 여행업계에서는 “선상에서 색다른 공연과 이벤트를 즐기면서 일출과 일몰, 아름다운 섬 풍경, 기항지의 명소와 특산물, 먹을거리 등을 한꺼번에 즐기는 것은 기존 관광 상품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매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배를 탔던 관광객들은 “팬스타 허니호가 세계를 누비는 호화 크루즈선에는 못 미치지만 기존 유람선이나 여객선과는 차별화된 고급 시설과 서비스로 고품격 바다 여행 시대를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전용부두 부족·고유가 등 걸림돌 그러나 1인당 1박 기준으로 15만∼50여만원인 요금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1박2일부터 3박4일까지 상품권이 있고 호텔 수준의 서비스를 받지만 4인 가족이 3박4일 동안 이용하려면 180만원이 든다. 또 대형 크루즈선이 정박할 수 있는 전용부두가 부족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팬스타라인닷컴측은 “대형 선박에는 많은 기름과 인력이 들어가 경영 수지를 맞추기가 어렵다.”며 “면세유 사용이나 선내 면세점 허용 등 정부 차원의 크루즈 관광 육성정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팬스타 허니호는 이달부터 일본의 주요 온천지나 러시아를 둘러보는 국제 크루즈도 시작한다. 한편 전남에서는 크루즈선과 맞먹는 시설을 갖춘 씨월드고속훼리㈜ 소속 1만 7000t급 퀸 메리호가 지난 1일부터 목포항에서 제주항을 하루 1차례씩 오간다. 이 여객선은 길이 150m, 폭 25m로 관광객 1650여명과 차량 300여대를 싣고 4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배 안에서는 300여명이 영화 감상을 할 수 있고 오락실, 레스토랑, 편의점, 사우나, 호텔 수준의 객실(81개) 등이 있다. 부산 김정한·무안 남기창기자 jhkim@seoul.co.kr
  • [한국의 대표기업] (18) 한진해운

    [한국의 대표기업] (18) 한진해운

    한진해운이 5대양 바닷길을 넓히고 있다. 한진해운이 연간 실어나르는 뱃짐은 무려 1억t이 넘는다.1950년 대한해운공사로 출범, 연안 물류 수송에 급급했던 회사가 지난해에는 컨테이너 수송량 기준으로 세계 8위 글로벌 해운 물류기업으로 우뚝 섰다. 한진해운이 지난해 실어나른 컨테이너(362만TEU)를 한 줄로 세우면 얼마나 될까.2만 1743㎞에 이른다. 이는 경부고속도로(428㎞)를 25회 왕복한 거리와 같다. ●수송보국… 세계 8위 컨테이너 수송 한진해운의 본격적인 해상 운송은 1977년 한진해운이 설립되면서부터다. 때맞춰 불어닥친 산업화와 수출 물량 증가는 한진해운이 글로벌 해상운송업체로 성장하는 데 디딤돌이 됐다. 그래서 경영이념도 ‘수송보국(輸送報國)’으로 정했다. 하지만 창업 초기 배편이 형편없어 대규모 국제 해상 수송에 한계가 따랐다. 당시 보유한 선박이라곤 고작 컨테이너선 한진 정석호가 전부였다. 이 배로는 연간 5만t을 실어나르기도 벅찼다. 갈림길에 섰다. 이대로 안주하느냐,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투자를 확대하느냐 중대 기로에서 한진은 투자확대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먼저 대형 선박을 사들이는 데 집중 투자했다. 수송량도 점점 늘어났다. 동시에 세계 주요 항구에 물류 거점 기지를 세워 세계적인 해운업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한때 세계 4위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고 호황을 누렸다. 탄탄대로만 달린 것은 아니다.1997년 불어닥친 외환위기는 엄청난 시련을 안겨줬다. 업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부채비율을 낮추라는 정책에 어쩔 수 없이 어렵게 사들인 배를 20여척이나 팔아야 했다. 해운사에서 선박은 제조업체의 공장과 같은 존재다. 배를 파는 것은 생산 원동력인 공장을 처분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한참 뻗어나갈 시기에 한진은 투자 의욕이 꺾였고, 그사이 세계 경쟁 해운업체들은 저만치 달아났다. ●투자 확대… 중대형 선박 210척 운영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다시 배를 사들이고 물류 거점 기지 확보에 나섰다. 버는 돈은 배를 구입하는 데 모두 쏟아부었을 정도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컨테이너선은 6000TEU이상 초대형 8척을 비롯해 모두 84척. 벌크선은 88척을 띄우고 있다. 단기간 사용하는 벌크선까지 더하면 운영 선박은 모두 210척에 이를 정도다. 가장 큰 배는 8000TEU급이다. 투자 확대는 운송 시장 점유율 제고로 이어졌다.1996년 연간 컨테이너 수송량 100만TEU를 기록한 지 불과 4년 만에 200만TEU를 돌파했다.2006년에는 300만TEU, 지난해에는 362만TEU를 실어나르는 기록을 세웠다. 올해는 컨테이너 화물 366만TEU, 벌크 운반 3700만t을 실어나를 계획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미주로 운송하는 컨테이너 화물 수송량 가운데 한진해운의 시장 점유율은 8.37%로 세계 3위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운송하는 컨테이너 화물 수송 시장 점유율도 5%로 세계 6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진해운은 수입의 90%를 3국간 영업으로 벌어들인다. 국내 소비 시장에 연연하는 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수치다. 5대양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거미줄 영업망도 갖췄다. 해외지점 200여개와 현지 법인 30개는 글로벌 해운기업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한다. 컨테이너선은 35개 나라 90개 항구를 누빈다. 정기 항로만 60개에 이를 정도다. 벌크선은 정기적으로 호주·인도·캐나다 등을 오가며 석탄과 철광석 등을 실어나르고 있다. 포스코와 한전 등이 주요 고객이다. 카타르·인도네시아 등을 오가는 LNG선과 세계 각국을 오가며 원유와 LPG를 운송하는 탱커도 있다. ●글로벌 서비스 강화로 시장 확대 투자는 계속 이어진다. 대형 선박 구입과 물류기지 확충, 신규 항로 개척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의 선두주자다. 중국∼미주간 노선에 8000TEU급 컨테이너선 5척을 투입하고 항로를 확대했다. 아시아∼유럽간 항로도 늘리고 있다. 글로벌 해운 물류기지도 넓혀가고 있다. 아무리 뱃짐을 많이 확보해도 원활한 선·하적이 이뤄지지 않으면 서비스는 엉망이 돼버린다. 전용 터미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1986년 시애틀 전용 터미널 개장을 시작으로 롱비치, 오클랜드 등 미국 서안 3대 주요 물류기지에 전용 터미널을 확보했다. 롱비치 터미널은 46만평에 이를 정도다. 미국 동부 잭슨빌에도 전용 터미널을 건설 중이다. 일본 오사카, 도쿄 등 세계 주요 항만에도 전용 터미널을 갖췄다. 올 하반기 로테르담 전용 터미널을 개장하면 유럽 항만 물류 수송 서비스도 훨씬 나아진다. 전략적 제휴도 눈에 띈다.2001년부터 중국∼타이완∼일본∼독일의 내로라하는 해운업체를 끌어들여 ‘CKYHS’그룹을 주도적으로 결성했다. 그룹사인 대한항공이 ‘스카이팀’을 이끌고 있다면 한진해운은 CKYHS그룹으로 세계 물류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 시장 물동량이 폭증할 즈음에 국제 동맹체를 결성해 중국∼미주 노선을 장악할 수 있었다. 장기 비전도 세웠다. 이원우 전무(기획·관리그룹장)는 14일 “새로 발주한 대형 선박을 인수하는 2011년에는 세계 7위 해운사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2017년에는 보유 선박이 800척, 연간 매출액 25조원, 영업이익만 2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8000TEU급 보스턴호는 갑판넓이 상암축구장 2배·길이 300m 한진해운이 갖고 있는 8000TEU급 한진 보스턴호는 얼마나 큰 배일까. 컨테이너선 크기는 20피트 컨테이너를 얼마나 실을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한다.8000TEU급이라면 20피트 컨테이너 7500개를 실을 수 있는 배다. 컨테이너 1개 높이가 2.6m이므로 이 배에 실을 수 있는 컨테이너를 한 줄로 세우면 1만 9500m나 된다. 에베레스트산(8848m) 높이의 2배가 넘는다. 배 길이만 300m다. 배를 세운다면 남산(262m)보다 높다. 갑판 넓이만 서울 상암 월드컵 축구장 면적의 2배에 이를 정도로 큰 배다.20평 아파트를 1579가구를 지을 수 있는 면적이다. 이 배에 쌀을 싣는다면 서울시민이 한 달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렇다면 대형 선박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한진해운이 발주한 1만 3000TEU급 컨테이너선은 1억 6000만달러나 된다. 배 한 척을 구입하면 1600억원짜리 공장을 짓는 것과 같다.LNG선은 2000억원이 넘는다. 해운업체들이 대형 선박 투자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형 선박일수록 운송 단가를 낮출 수 있고 장거리를 수송이 가능하다. 많은 짐을 싣고 떠나는 것이 연료 소비를 줄이고 화물 선적, 선원 고용 등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해운 연계 신규 사업은 3자 물류·배 수리·해외 터미널 운영 해운은 서비스업이다. 단순히 뱃짐만 많이 실어나른다고 일류 기업은 아니다. 빠르고 안전하고 정확한 수송이 해운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한다. 한진해운이 해운 서비스 사업에 진출하는 것도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위한 포석이다. 대표적인 것이 3자 물류 사업과 수리 조선소 사업, 해외 터미널 운영 사업이다. 3자 물류 사업을 위해 2005년 중국∼미주간 시범 서비스를 시작으로 뉴욕, 상하이 및 선전에 물류 법인을 설립했다. 미주와 중국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자체 시스템 개발을 마치고 고객 서비스 능력을 높였다. 아시아와 유럽에 물류 법인을 추가 설립하고, 주요 거점에는 자체 법인을 설립해 영업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해운 업체와 밀접한 것이 배를 수리하는 사업이다. 선박은 2∼3년에 한번씩 점검을 받아야 한다. 한진해운은 중국의 순화해운과 합작으로 중국 저장성 취산도에 안벽 길이 1900m에 이르는 대규모 전용 선박 수리 조선소를 건설하고 있다. 올해 중으로 15만t급과 30만t급 도크가 각각 건설된다.40만t급 도크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이쯤 되면 8000TEU급 이상의 대형 컨테이너 선박 수리도 가능해진다. 수리 조선소 건설로 자체 보유 선박의 안정적인 유지·보수가 가능해지고 다른 선사 선박 수리 물량을 확보해 수익 창출도 기대된다. 해외 터미널 운영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2006년부터 호주 매쿼리 은행의 인프라 펀드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타이완과 일본, 미국에서 전용 터미널 운영 사업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벨기에 앤트워프항에 전용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CKYH 얼라이언스 공동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전용 터미널을 만들고 있다. 베트남 물류사업에도 진출, 탄깡까이멥 컨테이너 터미널을 짓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지중해 전략 거점인 알헤시라스 전용터미널 개발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日, 대북제재 또 6개월 연장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는 오는 13일 기한이 끝나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6개월 연장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발효된 제재조치는 이미 지난해 4월과 10월 두 차례나 연장된 상태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은 2일 기자회견에서 “아무런 긍정적인 반응이 없는 북한 측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연장 방침을 시사했다. 북한에 의한 납치문제나 핵계획 완전신고 등에 전혀 진전이 없다는 판단이다. 대북 경제제재는 화물 여객선 만경봉호를 비롯, 북한 국적 선박의 입항금지와 함께 북한산 물품의 수입금지 등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hkpark@seoul.co.kr
  • 크루즈시대 순풍 만났다

    크루즈시대 순풍 만났다

    다음달 2일 부산에서 국내 최초의 크루즈선이 운항하는 등 우리나라에도 크루즈 산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1000명 이상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데다 편의시설들을 갖춰 ‘떠다니는 호텔’으로 불리는 크루즈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래형 산업이다. 16일 ㈜팬스타라인닷컴에 따르면 부산을 모항(母航)으로 경남 통영과 전남 여수·완도, 제주 등지를 순회하는 크루즈선인 ‘팬스타 허니(PANSTAR HONEY)호’가 다음 달부터 운항된다. 조만간 일본을 취항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허니호는 길이 136m, 너비 21m의 1만 5000t급으로 승무원 52명과 승객 510명을 태울 수 있고, 레스토랑·수영장·연회장·유희시설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췄다. 선내에서 공연 등 승객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또 2005년 말 등장해 인기를 끌다 선사의 사정으로 지난해 4월 중단된 ‘부산항내 크루즈’도 다음달 5일부터 부활돼 부산이 크루즈산업의 메카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인천시도 해양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크루즈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시는 2009년 8월 열리는 인천세계도시엑스포 전까지 크루즈를 유치한다는 방침 아래 인천항만공사, 인천관광공사 등과 공동작업을 펴고 있다. 항만공사는 앞으로 들어설 남항 국제여객터미널부두에 크루즈 전용부두를 건설할 방침이다. 시가 구상 중인 운항코스는 히로시마∼제주∼인천∼톈진∼상하이∼호찌민∼싱가포르 노선이다. 시는 전 세계 크루즈업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선사들을 상대로 집중적인 포트세일즈에 나서는 한편 유럽 선사에 대해서도 인천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주5일 근무제와 국민소득 증가에 힘입어 크루즈업은 유망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크루즈를 유치해 인천이 국제적인 해양관광지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크루즈 관련 법률과 제도가 미비된 데다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항만시설이 부족한 점 등이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관광진흥법에는 관광사업의 종류에 ‘관광유람선업’만 있을 뿐 일반 유람선과는 성격이 상당히 다른 크루즈업은 빠져 있어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한 실정이다. 또 크루즈 관련 행정업무를 전담할 조직이 없이 여러 정부 부처와 지자체 등에 분산돼 있어 정책 조율을 위한 기구 신설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동서대 관광학부 성은희 교수는 “크루즈는 해양산업 중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고 조선·관광 등의 연쇄적인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으므로 정부와 지자체의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김정한·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크루즈시대 순풍 만났다

    크루즈시대 순풍 만났다

    다음달 2일 부산에서 국내 최초의 크루즈선이 운항하는 등 우리나라에도 크루즈 산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1000명 이상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데다 편의시설들을 갖춰 ‘떠다니는 호텔’으로 불리는 크루즈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래형 산업이다. 16일 ㈜팬스타라인닷컴에 따르면 부산을 모항(母航)으로 경남 통영과 전남 여수·완도, 제주 등지를 순회하는 크루즈선인 ‘팬스타 허니(PANSTAR HONEY)호’가 다음 달부터 운항된다. 조만간 일본을 취항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허니호는 길이 136m, 너비 21m의 1만 5000t급으로 승무원 52명과 승객 510명을 태울 수 있고, 레스토랑·수영장·연회장·유희시설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췄다. 선내에서 공연 등 승객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또 2005년 말 등장해 인기를 끌다 선사의 사정으로 지난해 4월 중단된 ‘부산항내 크루즈’도 다음달 5일부터 부활돼 부산이 크루즈산업의 메카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인천시도 해양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크루즈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시는 2009년 8월 열리는 인천세계도시엑스포 전까지 크루즈를 유치한다는 방침 아래 인천항만공사, 인천관광공사 등과 공동작업을 펴고 있다. 항만공사는 앞으로 들어설 남항 국제여객터미널부두에 크루즈 전용부두를 건설할 방침이다. 시가 구상 중인 운항코스는 히로시마∼제주∼인천∼톈진∼상하이∼호찌민∼싱가포르 노선이다. 시는 전 세계 크루즈업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선사들을 상대로 집중적인 포트세일즈에 나서는 한편 유럽 선사에 대해서도 인천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주5일 근무제와 국민소득 증가에 힘입어 크루즈업은 유망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크루즈를 유치해 인천이 국제적인 해양관광지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크루즈 관련 법률과 제도가 미비된 데다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항만시설이 부족한 점 등이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관광진흥법에는 관광사업의 종류에 ‘관광유람선업’만 있을 뿐 일반 유람선과는 성격이 상당히 다른 크루즈업은 빠져 있어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한 실정이다. 또 크루즈 관련 행정업무를 전담할 조직이 없이 여러 정부 부처와 지자체 등에 분산돼 있어 정책 조율을 위한 기구 신설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동서대 관광학부 성은희 교수는 “크루즈는 해양산업 중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고 조선·관광 등의 연쇄적인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으므로 정부와 지자체의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김정한·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안보리, 이란 核제재 3차 결의안 채택

    안보리, 이란 核제재 3차 결의안 채택

    유엔이 ‘평화적 핵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이란에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중단하라며 국제사회의 이름으로 압력의 수위를 높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일(현지시간) 이란에 대한 세 번째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안보리는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제출한 대이란 제재 결의안에 표결을 실시해 15개 이사국 중 14개 이사국의 찬성으로 결의안을 채택했다. 인도네시아는 기권했다. 이번 결의안은 앞선 두 차례 결의안의 내용을 보완·강화한 것이다. 처음으로 민간 및 군용으로 함께 쓰일 수 있는 물품 교역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켜 이란의 경제활동을 더 옥죄게 했다. 이란에서 입·출항하는 선박들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고, 이란 은행들과의 금융거래와 수출신용장 개설금지 등을 촉구했다. 또 자산동결 대상에 12개 기업을 추가하고, 핵 또는 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13명에 대해서는 자산동결과 함께 해외여행시 감시·보고를 의무화했다. 한편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과 독일은 이와 별도로 이란이 핵을 포기할 경우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확대해 재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존 소어스 유엔 주재 영국대사는 ““이란 핵 프로그램 확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를 반영하는 것인 만큼 협상을 통한 진전을 이룰 것을 이란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서방국가들은 이란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이 핵개발을 위한 것이라며 중단을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해 이란은 “평화적 목적에 따른 주권 사항”이라며 일축해 왔다. 모하마드 카자에 주 유엔 이란 대사는 이날 표결에 앞서 “안보리 결의안은 일부 강대국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란에 가하는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압력”이라고 비난했다. 안보리의 3차 결의안은 이란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던 중국과 러시아의 동참을 얻어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미국 등의 성공으로 평가된다. 유엔 소식통은 제재 강화에 난색을 표명하던 국가들이 미국의 새로운 정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주 각국 외교사절과 핵 전문가들에게 이란이 과거에 핵폭탄 설계를 시도했음을 보여주는 새 증거들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국제사회 대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국가정보평가(NIE)가 지난해 12월 “이란이 2003년 핵무기 개발을 포기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한 데다 IAEA도 지난달 22일 이란 핵프로그램 사찰보고서에서 “이란의 협력으로 핵 프로그램의 투명성이 증대됐다.”고 밝히는 등 이란에 유리한 내용들이 잇따라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막한 IAEA 이사회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EU 협상 대표국들은 이란 핵개발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고 있으나 비동맹 국가들이 반대하고 있어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안보리 결의안은 이란의 핵문제를 정치쟁점화해 중동 지역에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미국과 EU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면서 “미국이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이란 핵 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자원외교를 중시하는 새 정부가 어떤 행보를 취할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제주 국가태풍센터 새달 개관

    우리나라 ‘태풍의 길목’인 제주도에 국가태풍센터가 들어서 태평양 해상에서 발생하는 태풍의 진로를 보다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됐다.기상청은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6만 5384㎡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692㎡ 규모의 국가태풍센터 건립공사를 마치고 다음달 문을 열 예정이라고 10일 밝혔다. 국가태풍센터는 현재 기상청내 태풍예보담당관실에서 전담하고 있는 태풍예보 및 분석기능을 이관받아 관련 장비 대부분을 설치했으며 4명의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다. 한반도와 일본 남단 태평양 해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태풍정보를 하루 4차례 제공할 수 있어 원거리를 운항하는 항공기와 선박 등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외국의 태풍예보 모델에 의존해 왔으나 한국형 태풍예보 모델을 추가 개발해 적용함으로써 태풍의 진로는 5일후까지, 강도는 3일후까지 예측할 수 있게 돼 종전보다 예측 기간이 각각 2일,1일 연장된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76년 美견제로 加 원자로 도입 무산 위기도

    76년 美견제로 加 원자로 도입 무산 위기도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6년 우리 정부가 캐나다로부터 원자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견제’로 막판까지 한국과 캐나다간 협상이 난항을 겪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또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1977년 6월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를 통해 김대중 납치사건 등 박정희 정권의 비리와 대미공작을 폭로한 것과 관련, 한국 정부가 ‘김씨의 망명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조속한 신병인도를 요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통상부는 15일 이런 내용들이 포함된 생산 또는 접수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 17만여 쪽을 공개한다. 이들 중 ‘캐나다 원자로형 도입 차관(1975∼1977년)’ 관련 외교문서에 따르면 한국과 캐나다 양국 정부는 협상 체결시한이던 1976년 1월말 직전에 협상 결렬의 위기까지 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당시 한국 정부가 프랑스로부터 핵연료 재처리시설을 도입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미국이 반대했고 이에 캐나다 정부가 동조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양국간 협상은 결국 한국 정부가 재처리시설의 도입을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같은 달 26일 서울에서 체결됐다. 또 박정희 정권에서 최장수 중앙정보부장을 지내다 미국으로 망명한 김형욱씨가 1977년 김대중 납치사건 등 박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자 당시 한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김씨의 신병인도를 요구하고 고소를 제기하는 등 조직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1977년 6월23일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등은 총리공관에서 김형욱 사건에 대한 대책을 집중 논의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재미교포들에게 김형욱을 상대로 민형사 고소를 제기토록 하자고 결론지었다. 또 외무부를 통해 미 행정부에 김형욱의 미국 망명이 설립되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조속한 신병인도를 요구하자고 했다. 이와 함께 각 일간지에 사설과 기획기사, 사회단체 명의의 규탄성명 등을 게재토록 하는 등 국내 언론을 최대한 활용키로 했다. 기사는 주로 김형욱의 인격을 비하하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싣도록 하고 외국과의 정치자금 및 스위스은행 거래설에 대한 외신들 보도내용은 원문대로 국내언론에 보도하도록 했다. 이밖에 북한이 1977년 6월21일 200해리 경제수역을 선포하고 일본이 어로자원 확보 및 민간선박 보호를 위해 북·일간 접촉을 시도하자 한국 정부가 이에 대한 자제를 일본측에 요청하는 등 북·일 교섭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공개되는 문서들은 외교사료관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마이크로 필름으로 열람할 수 있으며 문서 목록은 외교사료관 홈페이지(www.diplomaticarchives.go.kr)와 국내 주요 도서관 등에 배포한 책자를 통해서 볼 수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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