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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침몰-불거지는 책임론] “있을 수 없는 수준으로 개조”…청해진해운 면허취소 추진

    [세월호 침몰-불거지는 책임론] “있을 수 없는 수준으로 개조”…청해진해운 면허취소 추진

    세월호 침몰 사고를 돌이켜보면 출항에서 구조·수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재난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선령이 지난 폐선 수입과 무리한 증축, 화물 과적, 부실한 안전검검, 대출 특혜 의혹 등 탈법과 불법이 난무했다. 정부 컨트롤타워의 부재와 엉터리 초동대처, 선장과 승무원의 무책임한 행태는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 위기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대해 “침몰 사고의 전 과정을 철저하게 되짚어 불법과 탈법에 연루됐거나 책임을 방기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 침몰 전 과정에 대해 고강도 수사에 착수했다. 이번 사고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단계별로 되짚어 봤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선사가 세월호를 들여오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사고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2012년 9월 일본 가고시마현에서 수입할 당시 이미 수명을 다한 18년이나 된 배를 수입했다. 취재 결과 고철 값이나 다름없는 70억~80억원 수준이었다. 이런 배에다 승객 수를 늘리는 등 용량을 키우기 위해 두 차례나 증축하기까지 했다. 배의 증축은 무게중심을 위쪽으로 이동하는 만큼 안전성에 훼손을 가져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22일 선박 설비 안전검사 기관인 한국선급(KR)에 따르면 세월호 중량은 1994년 6월 일본 하야시카네 조선소에서 건조됐을 당시에는 5997t이었다. 그러나 선박 운항사인 마루에페리로 넘겨져 개조 작업을 하면서 6587t으로 늘었고, 18년이 지난 2012년 10월 한국 ㈜청해진해운으로 매각된 뒤에는 6825t 더 늘었다. 탑승 가능한 정원도 181명 더 증가해 921명이 됐다. 선박 운항장비 제조업체인 KCC전자 박수한 대표는 “있을 수 없는 수준의 개조”라고 지적했다. KR은 첫 검사 시 외부에서 충격을 받았을 때 다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인 ‘복원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두 번째 검사에선 별다른 보완 없이 통과시켜 2013년 3월 처음 취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고령의 배를 수입하고 증축까지 가능했던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 규제완화가 일조했다. 2009년 이전 20년이었던 여객선 선령 제한이 30년으로 대폭 완화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13년 연안해운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여객선 217척 가운데 20년 이상 된 여객선이 67척(30.9%)에 이르러 또 다른 세월호 사건의 재발을 우려해야 할 지경이 됐다. 침몰 원인 조사를 통해 선박검사 업무를 맡고 있는 KR, 증개축 설계회사, 증개축 시공업체 등에 대한 책임 추궁이 불가피한 이유다. 세월호 수입, 증축 과정 등에 어떤 외압이나 관련 업무자들의 부정한 사실이 없었는지도 이번 수사 과정에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청해진해운에 대해 해상여객운송사업면허를 취소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선박 침몰에 북핵까지… 근심 깊어가는 靑

    북한이 4차 핵실험 조짐을 보이면서 청와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국방부가 22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다수의 활동이 감지되고 있다”고 공개하기까지 이런저런 우려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국가적 역량과 관심사가 온통 사고 수습에 쏠려 있는 가운데 북핵 문제에 추가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 발생 이후 거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사고 수습에 매달려 왔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를 산하에 두고 있는 국가안보실 역시 침몰 사고 수습에 전념해 온 상황이다. 김장수 실장은 사건 당일부터 지금까지 귀가하지 못한 채 사고 수습과 상황 보고에 매달려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4차 핵실험 징후를 증폭시키면서 의도적으로 긴장 고조를 연출하는 것과 관련, 청와대의 계산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4차 핵실험 조짐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즈음해 구체화되면서 역내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4차 핵실험이 강행되면 대내외적으로 메가톤급 사건이 동시에 터지는 셈이다. 또 한편으로는 북핵 문제에 대한 대처가 평소처럼 자유롭지 못한 것이 청와대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위험의 실재성과 강도에 대해 국민에게 분명히 알리고 매뉴얼대로 대처하면 될 일이지만,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궁지에 몰리니 이를 잠재우기 위해 북핵 문제를 거론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북이 4차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국제사회에 전달될 위기감과 우려, 이를 둘러싸고 남북과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 사이에 점증될 긴장감과 갈등의 상황이 국민에게 잘 전달되기 어려울 수 있고 이때 정부의 조치가 국민적 호응을 충분히 얻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위기감을 강조했다가 ‘물타기’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은 최악이다. 그래서 “북한의 4차 핵실험의 위중함 자체도 세월호 침몰 사고에 묻혀 버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하인리히 법칙, ‘세월호 침몰 사고’ 결국 예견된 참사 ‘소름’

    하인리히 법칙, ‘세월호 침몰 사고’ 결국 예견된 참사 ‘소름’

    ‘하인리히 법칙’ 세월호 침몰 사고에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 적용된다는 의견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이란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반드시 어떤 징후가 존재한다는 이론으로 미국의 한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 지난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하인리히는 통계 작업 도중 산업재해로 1명의 중상자가 나온다면 그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다친 경상자 29명이 있으며 비슷한 상황으로 부상당할 뻔한 사람이 300명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의 이론은 ‘산업재해 예방:과학적 접근(1931)’이라는 책에서 소개됐고 이후 ‘하인리히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작은 사고 징후가 여러 번 겹치면서 대형 참사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청해진해운은 사고 2주 전 조타기 전원 접속에 이상이 있음을 확인했지만 이와 관련한 회사의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월호 이전 선장인 신모 씨의 부인은 “남편이 선박 개조 후 여러 차례 선체에 이상을 느껴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고 전했다. 또 선원들이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탱크와 스태빌라이저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 수리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이 또한 그냥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해양경찰 특별점검에서 배가 침수됐을 당시 물을 막아주는 수밀 문의 작동이 불량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여러 차례 선체의 문제점을 지적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 선박 개조도 대형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중고 여객선을 사들인 뒤 선실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배의 중심이 높아졌고, 세월호가 어느 정도 방향을 튼 순간 화물이 쏠리면서 배가 기운 것으로 전해졌다. 네티즌들은 “하인리히 법칙, 소름 돋네”, “세월호 참사, 작은 징후들을 잘 고쳐나갔더라면”, “하인리히 법칙, 결국 예견된 참사였구나”, “하인리히 법칙, 막을 수 있었던 참사인데 안타깝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하인리히 법칙’ 뭐길래…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외면하다 결국 대참사

    ‘하인리히 법칙’ 뭐길래…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외면하다 결국 대참사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하인리히 법칙’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와 관련한 작은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즉 일정 기간에 여러 차례 경고성 전조가 있지만 이를 내버려 둔 결과 큰 재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통계 작업을 하다 산업재해로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 29명이 있었으며 역시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뻔한 아찔한 순간을 겪은 사람이 300명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인리히는 이 같은 이론을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1931)이라는 책에서 소개했고 그때부터 ‘하인리히 법칙’이 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세월호는 여러 징후를 무시하다 참사를 빚은 ‘하인리히 법칙’의 전형적 사례로 보인다. 사고 이후 관련자의 증언을 통해 세월호에 크고 작은 징후가 여러 가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청해진해운은 사고 2주 전에 조타기 전원 접속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사가 작성한 수리신청서에는 “운항중 ‘No Voltage(전압)’ 알람이 계속 들어와 본선에서 차상 전원 복구 및 전원 리셋시키며 사용 중이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치 못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후 조타기 결함 부분에 대해 수리가 완료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타기는 자동차로 치면 핸들 같은 역할을 한다. 세월호 조타수 조모씨는 “조타기를 돌렸는데 조타기가 평소보다 많이 돌아갔다”며 조타기 결함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세월호의 원래 선장인 신모씨의 부인은 “남편이 선박 개조 이후 여러 차례 선체 이상을 느껴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고 언론에 털어놓기도 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중고 여객선을 사들여 선실을 확대했다. 개조로 배의 중심이 높아져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 때문에 급선회했을 때 화물이 쏠리면서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결국 침몰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분석이 현재까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5월 제주항에 도착해 화물을 부리다 세월호가 10도 넘게 기운 적이 있다는 전직 선원의 증언도 보도됐다. 선원들은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탱크나 스태빌라이저에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보고 사측에 수리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조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는 지난 2월 해양경찰 특별점검에서 배가 침수됐을 때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수밀문의 작동 등이 불량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무시 소식에 네티즌들은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사소한 위반들이 쌓여 결국 큰 사고를 일으켰네”,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규정대로 하면 사고가 왜 일어나나”,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천안함을 겪어놓고 변한 게 없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조선강국의 명암/오승호 논설위원

    우리나라의 조선업은 세계 일류라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업체의 명품 기술은 세계 선박 건조시장을 주도한다. 조선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중국에 잠시 세계 1위를 내줬지만 2012년 세계 1위를 탈환했다. 지난 1월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수주 선박 수는 52척으로 60척인 중국에 비해 다소 뒤졌지만 환산톤수(CGT)로 환산한 수주량은 전 세계 점유율 45.4%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34%였다. CGT는 선박 무게에 부가가치 및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한 계수를 곱해 산출한 무게 단위로, 건조가 어려운 선박을 수주할수록 CGT는 높아진다. 올 1~2월에도 국내 조선업계는 세계 선박 수주량 1위를 차지했다. 3월에는 중국에 선두 자리를 내주는 등 우리나라와 중국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 중인 1967년 조선공업진흥법을 제정했다. 조선업을 육성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1990년 10월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선전문위원회(WP6)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했다. 우리나라 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선진국과의 공식 회의에 참석하는 자리다. 이후 ‘조선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는 국내 조선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듬해부터 외국업체들은 우리 조선업체에 선박 발주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진통을 겪은 끝에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조선해양 강국으로 우뚝 섰다. 세계 각국은 우리나라 조선업체에 자국 군함 건조도 의뢰한다. 2012년 해양 강국 영국은 국내의 한 조선업체에 항공모함 군수지원함 4척의 건조를 의뢰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6월에는 노르웨이 방위사업청에서 2억 3000만 달러의 군수지원함 한 척을 수주했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세계 각지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반면 조선 강국인 우리나라는 연안 여객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중고선 수입이 주를 이룬다. 한국해운조합의 ‘2013년 연안해운통계연보’를 보면 전체 여객선 217척 가운데 선령(船齡) 20년 이상은 67척(30.9%)이다. 정부는 2009년 선령 기준을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했다. 영세 여객선 업체들이 페리와 같은 여객선 건조 비용에 큰 부담을 느끼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대참사를 빚은 세월호는 청해진해운이 수입하기 전 일본에서 18년 운항했다. 해운산업의 대세는 선박을 사고파는 비즈니스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 부문은 초보 단계다. 여객선의 노후화는 안전 문제와 직결된다. 해양관광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에 맞춰 정부 차원의 대책이 요구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시신 대부분이 손가락 골절… 붙잡고 버티다가 최후 맞은 듯

    시신 대부분이 손가락 골절… 붙잡고 버티다가 최후 맞은 듯

    ‘세월호 침몰 사고’ 엿새째인 21일, 유속이 느려지는 ‘소조기’(22~24일)를 앞두고 민·관·군 잠수요원들은 종일 사고 해역에 뛰어들었다. 수색작업은 종일 이어졌지만 팽목항에는 싸늘한 주검만 늘었다.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에겐 22일이 조류 속도가 가장 느려지는 ‘조금’인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실종자가 몰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3~4층 격실 진입을 집요하게 시도했다. 물 위와 바다 아래 침몰 선박을 연결해 잠수요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가이드라인’(안내선)도 이날 1개가 추가돼 모두 6개로 늘었다. 함정 213척과 항공기 35대를 동원해 사고 해역을 수색했고 잠수요원 등 구조대원 630여명이 수색 작업을 벌였다. 이날 오전 5시 51분, 잠수요원들은 선내 식당 통로를 확보해 낮 12시부터 식당칸 진입을 시도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기적 같은 생환 소식 대신 숨진 희생자만 건져 올렸다. 오전 5시 45분 4층 격실 내부에서 여학생 시신 2구를 수습한 데 이어 오후 4시에는 3층 라운지와 4층 선미 부분 객실 등에서 외국인 3명의 시신도 발견했다. 특히, 구조대는 오후 8시쯤 한꺼번에 시신 15구를 수습했다. 오후 들어 시신 수습 속도가 빨라진 것은 소조기를 앞두고 있어 물밑 수색 환경이 나아진 데다 승객들이 몰린 3~4층 내부로 통하는 길목을 잠수부들이 집중 수색했기 때문이다. 선실에서 발견된 시신 중 다수는 손가락이 골절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색작업에 투입된 한 민간 잠수부는 “사고 당시 탈출 과정에서 기울어진 바닥을 붙잡고 버티려다가 부러졌거나 좌초 때 이곳저곳에 부딪혀 부러졌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머구리’로 불리는 민간 잠수부도 10여명 투입됐다. 머구리는 산소통을 메고 입수하는 대신 외부 공기공급장치에 연결된 호흡장치를 입에 물고 잠수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20~30m 깊이에서 보통 1시간 정도 머물 수 있어 군·경 특수요원보다 오랜 시간 수색 작업이 가능하다. 미국, 중국, 네덜란드, 일본 등의 장비와 전문가들의 지원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원격조종 무인잠수정(ROV) 2대와 운용 인력이 전날 오후 사고 해역에 도착해 수중 탐색에 투입됐다. 바닷속 난파선 탐사, 기뢰 제거 등 위험 임무에 활용되는 ROV는 관측함과 케이블로 연결되며 원격 조작 방식으로 해저 영상을 전달받아 수중을 탐색한다. ROV는 21일 오후 3시 20분쯤 선체 내부 투입에 성공해 25분간 정찰했지만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ROV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투입했지만, 큰 기대를 걸 상황은 아니라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해군 관계자는 “ROV는 ‘헬리캠’이 사람이 가지 못하는 공중 촬영을 대신하듯 수중에서 사람의 눈 역할을 보조하며 주로 100~150m의 심해에서 운용되는 장비”라면서 “ROV가 세월호 선체 안으로 들어가려면 결국 잠수부가 들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럴 시간에 잠수요원이 한 명이라도 더 들어가서 통로를 확보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날 팽목항에는 구조용 엘리베이터인 ‘다이빙벨’도 도착했다.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2000년 제작한 다이빙벨은 수심 70~100m에서 20시간 연속 작업을 할 수 있으며 조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그동안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는 물안경과 산소마스크까지 벗겨질 정도로 유속이 빠른 탓에 다이빙벨 사용이 어렵다고 판단했으나 기존 잠수 방식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사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그동안 DNA 검사 결과가 나오고 신원 확인이 돼야 사망자 인계가 됐으나 앞으로는 DNA 검사 확인서가 나오기 전이라도 가족이 원하면 다른 병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또한 해양수산부는 당초 공개한 세월호의 자동식별장치(AIS) 기록에서 사라졌던 3분 36초간의 항적을 복구했다고 밝혔다. 해수부 관계자는 “변침(방향 전환)을 하다 더 돌았을 수 있는데 전타(조타기를 최대로 꺾는 것)까지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진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하인리히 법칙’ 뭐길래…‘하인리히 법칙’ 무시한 세월호, 결국 대참사

    ‘하인리히 법칙’ 뭐길래…‘하인리히 법칙’ 무시한 세월호, 결국 대참사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하인리히 법칙’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와 관련한 작은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즉 일정 기간에 여러 차례 경고성 전조가 있지만 이를 내버려 둔 결과 큰 재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통계 작업을 하다 산업재해로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 29명이 있었으며 역시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뻔한 아찔한 순간을 겪은 사람이 300명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인리히는 이 같은 이론을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1931)이라는 책에서 소개했고 그때부터 ‘하인리히 법칙’이 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세월호는 여러 징후를 무시하다 참사를 빚은 ‘하인리히 법칙’의 전형적 사례로 보인다. 사고 이후 관련자의 증언을 통해 세월호에 크고 작은 징후가 여러 가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청해진해운은 사고 2주 전에 조타기 전원 접속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사가 작성한 수리신청서에는 “운항중 ‘No Voltage(전압)’ 알람이 계속 들어와 본선에서 차상 전원 복구 및 전원 리셋시키며 사용 중이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치 못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후 조타기 결함 부분에 대해 수리가 완료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타기는 자동차로 치면 핸들 같은 역할을 한다. 세월호 조타수 조모씨는 “조타기를 돌렸는데 조타기가 평소보다 많이 돌아갔다”며 조타기 결함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세월호의 원래 선장인 신모씨의 부인은 “남편이 선박 개조 이후 여러 차례 선체 이상을 느껴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고 언론에 털어놓기도 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중고 여객선을 사들여 선실을 확대했다. 개조로 배의 중심이 높아져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 때문에 급선회했을 때 화물이 쏠리면서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결국 침몰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분석이 현재까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5월 제주항에 도착해 화물을 부리다 세월호가 10도 넘게 기운 적이 있다는 전직 선원의 증언도 보도됐다. 선원들은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탱크나 스태빌라이저에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보고 사측에 수리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조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는 지난 2월 해양경찰 특별점검에서 배가 침수됐을 때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수밀문의 작동 등이 불량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무시 소식에 네티즌들은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사소한 위반들이 쌓여 결국 큰 사고를 일으켰네”,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규정대로 하면 사고가 왜 일어나나”,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천안함을 겪어놓고 변한 게 없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日, 선박 압류한 중국 법원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검토

    중국 법원이 일제 침략기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 판결을 근거로 일본 기업의 선박을 압류한 것에 맞서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산케이신문이 21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1972년 중·일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 간의 손해배상 등에 관한 문제가 해결됐다는 주장을 근거로 외교 통로를 통해 중국의 선박 압류에 대해 항의할 방침이다. 또 ICJ 제소도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일 중국 상하이(上海)시는 상하이 해사법원이 19일 저장(浙江)성 성쓰(?泗)현의 마지산(馬跡山)항에 있는 미쓰이상선의 선박 ‘바오스틸이모션’호를 압류했다고 밝혔다. 일본 다이도 해운은 1937년 중국의 중웨이(中威) 페리 회사로부터 선박 2척을 빌리고서 계약 기간이 만료됐는데 반환하지 않았고 해당 선박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침몰했다. 중웨이 페리 설립자의 손자 등은 다이도 해운을 인수한 일본해운주식회사(현 미쓰이 상선)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상하이 해사법원은 2007년 미쓰이 상선이 20억엔(당시 금액으로 약 247억원)을 보상하라고 명령했고 2010년에 이 판결이 확정됐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회견에서 “중국 측의 선박 압류는 1972년 일·중 공동성명에 담긴 양국의 국교정상화 정신을 근본부터 흔드는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 “정부는 외교 루트를 통해 중국 측에 신속한 관련 정보 제공을 요구했으며 앞으로 미쓰이상선과 함께 구체적인 대응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친강(秦剛)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선박 압류는 일반적인 상사(商事) 계약 분쟁으로 중·일전쟁 배상과는 무관하다”면서 “중국 정부는 ‘중·일 공동성명’을 지킨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수천만원 손실 날까봐… 무리한 출항이 화근의 시작

    수천만원 손실 날까봐… 무리한 출항이 화근의 시작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세월호 침몰 참사를 돌이켜보면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안타까운 순간들이 적지 않다. 이번 참사는 짙은 안개 속에서의 무리한 출항에서부터 운항상 실수, 노후화된 선박, 과적화물, 늑장 신고, 부실한 비상 대피 매뉴얼, 선장과 승무원들의 승객 대피 외면 등이 겹쳐진 최악의 ‘인재’(人災)였다. 대형 사고에 대한 징후가 여러 곳에서 발견됐지만 누구 한 명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아쉬웠던 순간들을 정리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① 짙은 안개에도 유일하게 출항 작년 영업손실만 7억여원… 해운사는 멈출 수 없었다 세월호는 지난 15일 오후 9시 짙은 안개를 뚫고 무리하게 인천항을 출항했다. 세월호는 당초 이날 오후 6시 30분 출항할 예정이었으나 짙은 안개 때문에 2시간 넘게 출발이 지연된 상태였다. 당시 인천지역 시정은 운항관리규정상 필수 가시거리인 1㎞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으며, 출항 예정이었던 다른 여객선은 10척 모두가 안개 때문에 출항을 취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후 8시 30분 인천항만청이 시정주의보를 해제하자 다른 여객선이 출항을 취소한 상황에서 세월호만 유일하게 인천항을 출발했다. 세월호가 출항을 강행한 것은 여객 운임과 화물 운임 등 수천만원의 손실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은 연평균 약 1억원의 영업손실이 났으며 특히 지난해 영업손실이 7억 8500만원을 기록하는 등 적자에 시달렸다. 세월호가 결항을 결정했다면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등 탑승객 476명의 운임과 화물 운임 등 수천만원의 손실과 다음 날 예정된 제주 출항의 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다. 적자에 시달리는 해운사가 이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다. 또한 예정보다 출항이 늦어졌지만 근무수정표를 수정하지 않아 ‘초보 항해사’인 3등 항해사가 가장 위험구간인 맹골수도 구간의 지휘를 맡게 됐다. ② 원래 선장의 휴가 ‘대리선장’ 책임감 실종… 구호 않고 나 홀로 탈출 세월호 침몰 사고를 낸 이준석(69) 선장은 원래 세월호를 몰던 선장 신모(47)씨가 휴가 중이어서 ‘대리선장’으로 투입됐다. 세월호는 건조된 지 20년 된 낡은 선박으로 세월호 운항에 익숙한 신씨가 운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씨도 베테랑 선장으로 알려졌지만 사고 당시 탈출 명령이나 승객 구호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나 홀로 탈출’한 행태를 볼 때 이씨가 대리 선장이었기 때문에 책임감이 덜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청해진해운은 평소 비상상황을 대비해 신씨와 이씨가 함께 배를 타는 데 신씨가 휴가를 갈 경우 이씨 혼자 배를 몬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지난 20일 신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앞서 신씨의 부인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무리한 개조로 인해 진짜 불안해서 배를 못 타겠다는 말을 남편이 했었다”고 전했다. 합수부는 신씨를 상대로 세월호 참사의 핵심 의혹을 풀 수 있는 선체 결함 여부와 맹골수도 항로 운항 과정의 급선회 이유, 승무원의 근무 시스템 등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그동안 세월호의 정비와 유지관리, 증축, 화물선적 등을 어떻게 실시했는지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③ 3등 항해사가 지휘 융통성 없던 교대근무… 초보가 위험지역 운항 세월호가 사고 해역인 맹골수도(孟骨水道)를 지날 때 조타실 지휘는 3등 항해사 박모(25·여)씨가 맡고 있었다. 유난히 조류가 빨라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지만 늦은 출항을 고려치 않은 근무시간표로 인해 초보인 박씨가 운항을 하게 됐다. 세월호는 출항 당시 안개 등 기상이 악화되면서 당초 지난 15일 오후 6시 30분에 출발해야 했지만 2시간 30분 정도 늦은 9시에야 인천항을 나섰다. 일반적으로 4시간씩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출항이 이뤄졌다면 사고 해역에서 조타실 지휘는 박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맡게 된다. 3등 항해사는 상대적으로 경력이 짧기 때문에 편한 시간대인 오전 8~12시, 오후 8~12시에 근무한다. 사고 시각은 3등 항해사가 당직 근무를 서는 시간이 맞지만, 정상적으로 출항했다면 세월호가 사고 해역을 지나는 시점은 오전 6시 전후이고, 이 시간은 1등 항해사가 근무하고 있을 시간이다. 이뿐만 아니라 박씨가 조타실 지휘를 하고 있을 동안 선장 이준석(69)씨가 침실에 있었던 것도 질타를 받고 있다. 박씨의 근무시간이라 할지라도 입·출항 및 위험 지역은 선장이 조타실에서 상황을 지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④ 비상대피 매뉴얼 몰라 승무원 사고대비 훈련 無… 제대로 된 구조 역할 無 세월호 승무원들은 비상상황에 대비한 안전훈련조차 받지 않았고, 회사는 지난해 승무원들의 안전교육비에 단 54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운항관리 규정과 선원법을 준수해 제대로 된 훈련만 받았더라도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선원법에 따르면 여객선의 선장을 비롯해 모든 승무원들은 충돌 및 좌초 등 해양 사고에 대비해 선내 비상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는 충돌·좌초 등 사고 시 행동요령에 대한 훈련은 6개월마다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세월호 승무원들은 수사본부의 조사 과정에서 “비상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또 세월호 승무원들은 운항관리규정에 명시된 비상상황 시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충돌·좌초·퇴선 때 선내 총지휘를 맡아 인명구조에 책임자 역할을 해야 할 선장은 가장 먼저 탈출했다. 3등 항해사는 선장을 보좌해 비상통신망을 운용하고, 1등 기관사는 퇴선 명령이 떨어지면 구명벌을 투하해야 하지만 제대로 이뤄진 행동은 없었다. 훈련 미비와 비상대피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던 선장과 승무원들이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하면서 더 큰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⑤ 규제완화… 日서 낡은 배 들여 선령 제한 20 → 30년으로… 사고방지 안전 점검 안 돼 청해진해운은 2012년 9월 일본 가고시마현에 본사를 둔 일본 선사로부터 낡은 배 한 척을 인수했다. 청해진해운이 사들인 배는 1994년 건조된 이후 18년간 운항하고 퇴역한 여객선으로, 이후 선실 증축 작업을 거쳐 지난해부터 ‘세월호’라는 이름을 붙여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됐다. 만들어진 지 20년이나 된 낡은 배가 취항할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여객선 선령(船齡) 제한이 20년에서 30년으로 대폭 완화됐기 때문이다.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된 2009년 이전에는 여객선 선령이 20년으로 제한됐지만 연간 200억원의 기업 비용이 절감된다는 이유로 해당 법이 고쳐졌다. 경제성 논리를 앞세운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이번 참사의 불씨가 됐다는 지적이다. 다른 여객선들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해운조합이 발간한 2013년 연안해운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여객선 217척 가운데 선령이 20년 이상 된 것은 67척(30.9%)에 달한다. 낡은 배를 수입할 수 있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방지를 위한 안전 점검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는 지난 2월 특별 안전점검 당시 ‘선내 비상훈련 실시 여부’ 평가 결과 ‘양호’를 받았고, 문제가 된 조타기 정상 작동 여부, 화물을 배에 고정하는 장비가 있는지 등도 모두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 하지원·김연아 1억 기부…세월호 참사 애도의 물결

    하지원·김연아 1억 기부…세월호 참사 애도의 물결

    ‘하지원 1억 기부’ ‘김연아 기부’ ’피겨여왕’ 김연아(24)와 여배우 하지원(36)이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며 1억원을 기부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21일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인 김연아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전국민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1억원의 기금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연아는 이날 오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 바 있다. 2010년 7월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로 임명된 김연아는, 임명 전인 그 해 1월 아이티 지진 구호기금으로 1억원을 유니세프에 기부한 바 있으며, 2011년 5월에는 세계선수권 준우승 상금을 일본대지진 피해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해 전달했다. 또한 아이티 후원 공익광고, 동아프리카 후원 공익광고, 시리아 후원 공익광고에도 참여하며 유니세프를 지원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으며, 지난 2010년부터 3년 간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국내의 소년소녀가장, 난치병 어린이들에게 후원금을 전달한 바 있다. 특히 지난 해 11월에는 강력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필리핀 지역 어린이를 돕기 위해 10만 달러(약 1억 725만원)를 기부한 바 있다. 하지원도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 가족에 흔쾌히 1억원을 기부했다. 21일 하지원의 소속사 해와 달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그는 세월호 선박 침몰 사고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드라마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지만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 기부를 통해서 피해자들을 애도하기로 결심했다. 소속사는 하지원이 이번 사고의 피해자 대다수가 청소년이라는 소식에 더욱 가슴 아파했다고 전했다. 하지원의 기부금은 전라남도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에 이날 오후 전달되어 현장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김연아 하지원 기부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김연아 하지원, 천사가 따로 없네”, “김연아 하지원, 정말 감사합니다”, “김연아 하지원, 마음씨도 곱네”, “김연아 하지원, 뭔가 달라도 다르네”, “김연아 하지원, 이런 게 진정한 스타”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흘려보낸 2시간 20분… 내부에 로프라도 연결했다면

    흘려보낸 2시간 20분… 내부에 로프라도 연결했다면

    ⑥ 과도한 증축과 화물 적재 제대로 고정 안 한 화물… 급선회에 우당탕 쓰러져 세월호 침몰 사고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들 가운데 과도한 증축과 잘못된 화물 적재 방식을 빼놓을 수 없다. 세월호는 1157t의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 박스와 차량 180대를 실었으나 인천항 운항 관리실에는 이보다 적은 일반 화물 657t과 차량 150대가 실렸다는 가짜 보고서가 제출됐다. 적재량을 의도적으로 줄였다는 점에서 실제로 추가 적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세월호는 또 적재된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한 트레일러 기사는 20t가량의 대형 철제 탱크가 실린 트레일러 3대가 여객의 급회전으로 쓰러졌다고 증언했다. 적재된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에는 장거리 외항 선박들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로딩 마스터’가 없었다. 로딩마스터는 화물을 선적할 때 좌우 균형을 맞춰 자동으로 위치를 정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과도한 증축도 문제였다. 1994년 일본에서 5997t으로 진수된 세월호는 2012년 국내로 들어오면서 5층을 증축하고 239t 분량의 객실을 추가했다. 수직 증축은 선체가 흔들리다가 원 상태로 돌아오는 ‘오뚝이’와 같은 회복력을 떨어지게 만든다. ⑦ 무심한 해상 날씨 사고 다음날 거센 비·바람… 구조대 수색 작업 걸림돌 세월호가 출항한 지난 15~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운항 루트에 별다른 기상악화는 없었다. 사고 당일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 앞바다 사고 해역인 병풍도 날씨 역시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사고 다음 날인 17일부터 비바람이 거세지면서 발생했다. 흐린 날씨 탓에 탁한 시야 등은 구조대의 수색작업을 방해했다. 게다가 정부가 민·관·군의 지휘체계를 일원화하는 등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구조작업은 더욱 난항을 겪었다. 거센 조류도 한몫했다. 사고가 발생한 시점은 물살이 세고 조석간만의 차가 큰 시기인 ‘대조기’(4월 15~18일)였다. 이 시기에 사고 해역인 맹골수도의 최대 유속은 시간당 8㎞ 이상이다. 맹골수도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물살이 거센 곳이기도 하다. 조류가 약한 ‘정조’(밀물과 썰물이 교차해 조류가 약해지는 시간대)는 하루 네 번. 구조 작업을 위해 잠수요원들이 정조 때에 맞춰 투입됐지만, 펄이 많은 탓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구조활동이 한창 이뤄졌어야 할 17일 오전 10시 사고 해역의 바람은 초속 8.9m로 나무가 흔들리는 정도였다. 수온 역시 12도 안팎으로 가만히 있어도 통증을 느낄 수 있어 물에 빠진 승객들의 저체온증이 염려됐다. 낮은 수온은 수색작업을 하는 구조대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⑧ 잘못된 첫 신고 제주 VTS로 사고 신고… ‘골든타임 11분’ 허비해 사고가 발생한 16일 세월호의 첫 신고는 80㎞ 떨어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 접수됐다. 세월호 사고 지점은 가까운 전남 진도 VTS로 신고해 조치를 받아야 했지만 승무원의 안이한 대응으로 승객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 11분을 허비했다. 검·경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세월호는 사고가 발생하자 지난 16일 오전 8시 55분 교신채널 ‘12번’을 통해 제주 VTS에 신고를 했다. 세월호는 진도 지역을 지날 때 교신 채널을 ‘67번’인 진도 VTS로 맞춰야 했지만 미리 목적지인 제주 VTS로 맞춰 놓고 운항한 것이다. 사고가 나자 교신을 맡은 선임급 항해사가 채널을 변경하지 않아 신고가 제주 VTS로 가게 됐다. 결국 11분이 지난 오전 9시 6분 진도 VTS는 세월호의 침몰 사실을 확인하고 교신을 했다. 또한 구조 신고 당시 일반주파수를 사용하지 않은 점도 문제였다. 해상 통신은 일방 통신으로 단거리 근접 통신망(VHF)을 사용하는데 일반주파수인 ‘16번’을 제외하면 다른 선박들은 교신 내용을 들을 수 없다. 합수부 한 관계자는 “구조 교신을 할 때는 주변 선박 등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일반주파수 16번을 사용해야 하는데 세월호는 이를 어겼다”고 지적했다. ⑨ 때 놓친 탈출명령 침몰 직전에도 “선내 대기”… 승객 탈출 기회 날려버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은 침몰 위기 상황에서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나홀로’ 탈출을 했다. 사고 직후 세월호 주변에는 민간 어선들이 대거 모여 있는 상태여서 선장과 승무원이 도망가지 않고 제때 탈출 명령만 내렸더라면 지금과 같은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해경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8시 58분 전남 목포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17㎞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주변에 있던 민간 어선 수십 척에 무전으로 구조활동을 요청했다. 민간 어선 40여척과 해경 경비정, 헬기 등이 세월호 주변에서 구조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가 이미 심하게 기울어 침몰하기 직전인 상황이었는데도 여객선 주변 해상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선장과 승무원이 탈출한 뒤 한참이 지난 오전 10시 15분까지도 선내방송을 통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선내에 대기하라는 말 외에 별도의 대피 명령이 없었다. 세월호는 신고가 접수된 지 2시간 20여분 만인 오전 11시 20분 뒤집힌 채 침몰했다. 선장과 승무원이 탈출한 오전 9시 37분에 승객들에게 탈출 명령만 내렸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구조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⑩우왕좌왕 초동 대처 정부 어리바리 현장 지휘… 선체 내부인원 구조 못해 세월호 침몰 참사는 승객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배를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들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구조 활동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정부의 초동 대처도 문제로 지적된다. 선박 침몰 사고는 승객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가장 중요한데 신속한 초기 구조활동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재난 전문가들은 해난 사고에 능숙한 전문가가 일사불란하게 현장을 지휘했더라면 인명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 구조선과 선박, 헬기 등이 많았지만 선체 외부 인원의 구조활동에 급급해 선체 내부에 있는 인원에 대한 구조 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지기 전에 선체 내부에 진입해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여객선 침몰 사고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장비와 인원도 부족했고,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아울러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여객선 곳곳에 긴 로프를 연결해 놓았다면 침몰한 뒤 구조와 수색도 좀 더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사고가 발생하고 침몰하기까지 2시간 20분 동안의 시간을 밀도 있게 활용하지 못해 더 많은 인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 [세월호 침몰 참사] 日서 ‘고철값 +α’에 인수한 배… 産銀서 100억 특혜대출 의혹

    ㈜청해진해운이 폐선에 가까운 세월호를 담보로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100억원대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특혜 의혹이 일고 있다. 20일 정부대행 선박검사 법인인 한국선급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은 일본 마루에 페리사가 18년 동안 사용한 세월호를 2012년 10월 수입해 증축 등의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지난해 3월 처음 취항했다. 마루에 페리사 측 관계자는 청해진해운에 세월호를 판매한 가격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50억~80억원보다는) 조금 높은 가격에 매각했다. 철의 가격으로도 그 정도는 나간다”고 밝혔다. 특히 세월호를 매각할 당시 “청해진해운이 배를 사서 재운항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청해진해운은 사실상 폐선에 가까운 여객선을 고철값보다 조금 높은 가격에 수입, 리모델링해 운항해 온 셈이다. 이 과정에서 청해진해운은 리모델링 비용(20억원 전후)을 합쳐 약 100억원을 들여 마련한 세월호를 168억원대 자산으로 회계 처리한 후 한국산업은행에서 100억원의 담보대출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업은행은 세월호의 채권최고액은 120억원, 명목가치는 1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대출을 해 준 것으로 확인됐으나 금융권 및 조선업계에서는 “상당히 후하게 대출이 나갔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출 당시 큰 무리가 가는 여신 취급이 아니었고, 당시 (청해진해운이) 흑자를 내는 상황이라 대출이 나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또 “청해진해운은 배를 계약서상 116억원(8억엔)에 구입해 3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잔금 중 80억원과 리모델링비 중 20억원이 대출금으로 지급됐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외부 기관 감정평가에 의해 대출했기 때문에 특혜 대출 의혹은 없다”고 강조했다. 조선업계에서는 “리모델링을 위해 수입하는 낡은 선박 대금은 보통 현금이 아닌 1~2년 지급기한의 어음으로 대신 지급하기도 한다”면서 “영세업체가 대출금만으로 여객선을 구입하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고 폭로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영세한 여객선사가 폐선을 매입해 초호화 여객선으로 둔갑시켜 수백 명의 승객을 싣고 다니는 게 국내 해운업계의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청해진해운 측은 일본에서의 수입가격 및 리모델링 비용 등에 대해 답변을 피했다. 한편 일본 마루에 페리사에 따르면 1994년 6월 일본 하야시카네조선에서 건조된 세월호는 2012년 9월까지 운행하다 퇴역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中, 일제침략기 계약위반 日기업 선박 압류

    중국 법원이 일제 침략기 일본 선박회사가 중국 배를 빌리고 돈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 선박회사의 선박을 압류했다고 홍콩 문회보(文匯報)가 20일 보도했다. 중국민간대일배상연합회의 퉁쩡(童增) 회장은 중국 상하이(上海) 해사법원이 19일 일본 미쓰이(三井)상선의 28만t급 선박에 대해 정식 압류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중국의 ‘선박왕’으로 불리던 천순퉁(陳順通)이 설립한 중웨이(中威) 페리 회사는 1937년 일본 다이도(大同) 해운에 선박 2척을 빌려 줬다, 그러나 다이도해운은 계약 기간이 지나고 나서도 배를 돌려주지 않았고 선박들은 2차대전 중 침몰했다. 천순퉁의 손자들은 상하이와 일본 도쿄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며, 2007년 말 상하이 해사법원은 다이도해운을 인수한 미쓰이상선에 대해 위약금으로 29억엔(당시 금액으로 약 250억원)을 보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 판결은 당시 중국 민간인이 2차대전 당시 중국을 침입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일본 피고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첫 승소 사례로 기록됐다. 문회보는 법원이 선박 임대 기간이 끝난 뒤부터 배가 침몰했을 때까지 다이도해운이 불법으로 선박들을 점유하고 있었다고 보고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선사·운항관리] 사고 보름전 조타기 ‘전원 접속불량’ 알고도 출항시켰나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선사·운항관리] 사고 보름전 조타기 ‘전원 접속불량’ 알고도 출항시켰나

    대검찰청은 20일 “이번과 같은 참사는 결국 선박회사와 선주의 회사 경영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검경합동수사본부와 별도로 수사에 착수하도록 인천지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인천지검은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이날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최대 주주인 유모씨 등 2명과 청해진해운 김한식(72) 대표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청해진해운은 조선업체인 천해지가 소유하는 구조로 돼 있다. 천해지는 1980년대 한강 유람선을 운영했던 ㈜세모의 조선사업부를 인수해 만든 회사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같은 조치는 이번 참사가 결국 선박회사와 선주의 회사경영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회사와 선주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해진해운은 2∼3년마다 해상사고를 일으키는 등 총체적인 부실 운영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데모크라시5호(396t)는 2009년 10월 인천 옹진군 덕적도 인근에서 엔진 고장을 일으켜 3시간 늦게 목적지에 도착한 데 이어 지난달 28일 백령도로 가다 7.93t급 어선과 충돌, 승객 141명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오하마나호(6322t급)는 지난해 2월 옹진군 대이작도 인근에서 표류해 6시간 늦게 인천에 입항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대처가 이번 대참사로 이어졌다. 청해진해운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선원 안전교육에 54만 1000원을 썼다. 광고비(2억 3000만원), 접대비(6060만원)에 견줘 초라하다. 전문가들은 항로 급선회만으로 배가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화물기사들은 “갑작스러운 태풍주의보로 심하게 흔들려 침대에서 떨어졌을 때도 화물은 멀쩡했다”며 “세월호 사고 때 화물차량이나 컨테이너 결박이 허술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엔 차량 180대가 실려 한도 150대를 웃돌았다. 화물기사 정모(45)씨는 “4.5t 화물차량 짐칸에 보통 20t의 화물을 싣는다”고 말했다. 결박을 엉터리로 했다는 의혹은 출항 당일에도 드러난다. 항해사가 최소한 15분 전 결박 상태 점검을 마쳐야 하지만 직전까지 차량을 실었다. 짙은 안개로 출항이 2시간이나 지연됐는데도 근무시간표를 수정하지 않아 위험 구간인 맹골도~송도에서 1등 항해사 대신 3등 항해사 박모(25·여)씨가 운항을 맡게 한 것도 문제다. 이날 막 사리(15일)를 지난 데다 썰물 때와 맞물려 물살이 더 거셌다. 박씨는 조타수에게 방향 전환을 지시했다. 병풍도를 끼고 제주를 향해 뱃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변침점(變針點)이라 방향을 바꿔야 하는 곳이다. 조타수는 “평소대로 키를 돌렸지만 많이, 빨리 돌아갔다”고 말했다. 왜인지 회전 각도가 크게 꺾이면서 배를 한쪽으로 쏠리게 했으리라는 추정을 뒷받침한다. 중간수사 결과 실제 세월호는 보통 5도 이내인 것과 크게 동떨어진 115도를 회전했다. 박씨는 제주에서 인천으로 올라갈 땐 여러 차례 운항했지만 내려가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조타기는 사고 보름 전 이미 이상을 보였다. 청해진해운은 지난 1일 전원 접속불량 수리 신청서를 작성했지만 수리를 끝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1994년 5997t으로 진수된 뒤 589t에 해당하는 시설물을 증설한 이후 2012년 수입된 세월호는 다시 5층 증축과 더불어 239t 분량의 객실을 추가했다. 선박 상단에 무게가 쌓이면 무게중심도 올라간다. 특히 수직 증축을 하면 무게중심은 더 올라갈 수 있다. 원상회복 능력을 한층 떨어뜨렸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구명벌(라이프래프트)이나 구명정(라이프보트)을 작동할 수 없었던 것 또한 불합리한 운영을 보여 준다. 지난 5년간 5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자 상당수 선박들은 작동 레버를 아예 더욱 풀기 어렵도록 쇠줄로 묶거나 잠금장치를 설치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 관계자는 “구명벌은 캡슐 모양이라 승객들이 겉으로 봐서 분간조차 쉽지 않다”면서 “결국 키를 쥐고 있는 승무원들이 구명벌과 구명정을 작동시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생존자 증언도 잇따랐다. A씨는 “구명벌이 단단한 쇠줄로 묶여 있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해진해운 쪽 말은 달랐다. 김재범 기획관리부장은 “구명벌은 밧줄로 묶여 있었다”면서 “안전핀을 뽑으면 자동으로 펼쳐지게 돼 있는 구조”라고 밝혔다. 구명벌이 물속에서도 펼쳐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배가 거꾸로 전복되다 보니 눌려져서 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해경 측은 구명보트는 쇠줄(와이어)로 묶어 놓으며, 구명벌도 본체는 쇠줄로 고정시키고 끝 부분만 밧물로 묶어 놓는다고 설명한다. 구명벌은 원통 모양으로 비상상황 때 바다에 던지면 저절로 펼쳐지게 돼 있다. 선박이 전복돼 물속에 5m 정도 들어가도 자동으로 펼쳐진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제정한 규정에는 승선 정원의 2배에 달하는 인원을 태울 수 있는 구명벌을 배 양쪽에 갖춰 놓도록 돼 있다. 세월호에는 개당 15명이 탈 수 있는 하얀색 구명벌 42개가 갑판 좌우에 비치돼 있었다. IMO 규정에는 미치지 못해도 630명을 태울 수 있어 탑승 인원 476명이 모두 대피하는 데 충분한 규모였다. 하지만 세월호가 침몰되는 순간 펼쳐진 구명벌은 2개에 불과했다. 구명벌은 모두 일본산으로 1994년 5월 제작됐으며, 지난해 정기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와 함께 선박이 침몰 위기에 놓였을 때 승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구명정 4대도 갑판에 설치돼 있었다. 대당 25명까지 탑승이 가능하지만 한 대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같은 결과는 구명벌·구명정 작동 레버의 잠금 장치나 밧줄 등을 승무원들이 풀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배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선박직 승무원 15명 전원이 사고 초기에 탈출한 점으로 미뤄 설득력을 갖는다. 승객들이 당황한 상황에서 구명벌·구명정을 스스로 작동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서비스직 승무원(14명) 대부분은 배에 남아 승객 탈출을 도왔지만 잠금장치를 푸는 방법을 몰랐을 개연성이 크다. 결국 청해진해운은 평소엔 물론 사고 당일도 승객 안전에 눈을 감은 채 세월만 보내다 참사를 부르고 말았다. 인천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하인리히 법칙’이란? 하인리히 법칙 무시한 세월호 침몰사고

    ‘하인리히 법칙’이란? 하인리히 법칙 무시한 세월호 침몰사고

    ‘하인리히 법칙’ ‘세월호 침몰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하인리히 법칙’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와 관련한 작은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즉 일정 기간에 여러 차례 경고성 전조가 있지만 이를 내버려둔 결과 큰 재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통계 작업을 하다 산업재해로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 29명이 있었으며 역시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뻔한 아찔한 순간을 겪은 사람이 300명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인리히는 이 같은 이론을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1931)이라는 책에서 소개했고 그때부터 ‘하인리히 법칙’이 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세월호는 여러 징후를 무시하다 참사를 빚은 ‘하인리히 법칙’의 전형적 사례로 보인다. 사고 이후 관련자의 증언을 통해 세월호에 크고 작은 징후가 여러 가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청해진해운은 사고 2주 전에 조타기 전원 접속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사가 작성한 수리신청서에는 “운항중 ‘No Voltage(전압)’ 알람이 계속 들어와 본선에서 차상 전원 복구 및 전원 리셋시키며 사용 중이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치 못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후 조타기 결함 부분에 대해 수리가 완료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타기는 자동차로 치면 핸들 같은 역할을 한다. 세월호 조타수 조모씨는 “조타기를 돌렸는데 조타기가 평소보다 많이 돌아갔다”며 조타기 결함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세월호의 원래 선장인 신모씨의 부인은 “남편이 선박 개조 이후 여러 차례 선체 이상을 느껴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고 언론에 털어놓기도 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중고 여객선을 사들여 선실을 확대했다. 개조로 배의 중심이 높아져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 때문에 급선회했을 때 화물이 쏠리면서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결국 침몰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분석이 현재까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5월 제주항에 도착해 화물을 부리다 세월호가 10도 넘게 기운 적이 있다는 전직 선원의 증언도 보도됐다. 선원들은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탱크나 스태빌라이저에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보고 사측에 수리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조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는 지난 2월 해양경찰 특별점검에서 배가 침수됐을 때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수밀문의 작동 등이 불량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초기 구조] “무분별한 규제 완화 ‘세월호 참사’ 잉태”

    지난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현재 세월호 침몰 참사를 일으킨 원인 중 하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정부가 규제 개혁을 강조하면서 풀지 말아야 할 안전 관련 규제를 완화하게 되면 비슷한 참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0일 조정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시절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여객선 선령(船齡) 제한이 20년에서 30년으로 대폭 완화되면서 세월호 같은 오래된 선박을 들여올 수 있었다. 조 의원에 따르면 2008년 국토해양부 행정규제 개선과제 발표에서 당시 20년으로 획일화된 여객선 선령을 완화하면 기업 비용이 연간 200억원 절감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2009년 1월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30년까지 운항 가능하도록 완화했다.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일본 가고시마현에 본사를 둔 일본 선사로부터 1994년 건조된 이래 18년간 운항하고 퇴역한 여객선인 세월호를 2012년 9월 사들여 선실을 증축하고 지난해부터 인천~제주 항로에 취항했다. 박석주 한국해양대 조선해양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오래된 배를 수입해 오는 것은 경제성 논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낡은 연안 여객선이 갈수록 늘어 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해운조합이 발간한 2013년 연안해운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여객선 217척 가운데 선령이 20년 이상 된 것은 67척(30.9%)에 달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한국 선적 車운반선, 일본 해상 화재 사고…“한국인 등 24명, 구명보트 탈출 전원 생존”

    한국 선적 車운반선, 일본 해상 화재 사고…“한국인 등 24명, 구명보트 탈출 전원 생존”

    한국 선적 車운반선, 일본 해상 화재 사고…“한국인 등 24명, 구명보트 탈출 전원 생존”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패닉에 빠져 있는 가운데 한국 선적 자동차 운반선의 일본 해상 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다행히 이번 일본 해상 사고에 따른 인명 피해는 없었다.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뉴스는 ‘일본 해상 사고’라는 검색어로 확산되고 있다. 19일 오후 5시 30분쯤 일본 와카야마현 남쪽 약 740㎞의 태평양 해상에서 한국 선적 7만 1383t급 자동차 운반선 ‘아시안 엠파이어’ 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일본 NHK 등에 따르면 일본 해상에서 사고 난 자동차 운반선에는 한국인 11명과 필리핀인 13명 등 24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 해상보안청에 “배에 화재가 발생해 탈출한다”고 통보한 뒤 구명보트로 탈출했다. 전원 다른 선박에 의해 구조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 선적 車운반선, 일본 해상 화재 사고…“한국인 11명, 필리핀인 13명 등 구조”

    한국 선적 車운반선, 일본 해상 화재 사고…“한국인 11명, 필리핀인 13명 등 구조”

    한국 선적 車운반선, 일본 해상 화재 사고…“한국인 11명, 필리핀인 13명 등 구조” 세월호 참사의 와중에 우리나라 선적 화물선의 일본 해상 사고 발생 소식이 전해졌다. 다행히 일본 해상 사고에 따른 인명 피해는 없었다. 국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뉴스는 ‘일본 해상 사고’라는 검색어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19일 오후 5시 30분쯤 일본 와카야마현 남쪽 약 740㎞의 태평양 해상에서 한국 선적 7만 1383t급 자동차 운반선 ‘아시안 엠파이어’ 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일본 NHK 등에 따르면 일본 해상에서 사고 난 자동차 운반선에는 한국인 11명과 필리핀인 13명 등 24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 해상보안청에 “배에 화재가 발생해 탈출한다”고 통보한 뒤 구명보트로 탈출했다. 전원 다른 선박에 의해 구조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 자동차 운반선, 일본 해상 사고…“불 났지만 24명 전원 구조”

    한국 자동차 운반선, 일본 해상 사고…“불 났지만 24명 전원 구조”

    한국 자동차 운반선, 일본 해상 사고…“불 났지만 24명 전원 구조”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비통에 잠긴 가운데 우리나라 선적 화물선의 일본 해상 사고 발생 소식이 전해졌다. 다행히 이번 일본 해상 사고에 따른 인명 피해는 없었다. 국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 소식은 ‘일본 해상 사고’라는 검색어로 확산되고 있다. 19일 오후 5시 30분쯤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 남쪽 약 740㎞의 태평양 해상에서 한국 선적의 7만 1383t급 자동차 운반선 ‘아시안 엠파이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일본 공영방송 NHK 등에 따르면 일본 해상에서 사고 난 자동차 운반선에는 한국인 11명과 필리핀인 13명 등 24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 해상보안청에 “배에 화재가 발생해 탈출한다”고 통보한 뒤 구명보트로 탈출했으며 다른 선박에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해상보안청 제4관구 해상보안본부에 따르면 이날 밤 11시15분쯤 사고 현장 부근을 항해 중이던 선박으로부터 “전원을 구조했다”는 무선 연락이 접수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반도의 호랑이 어떻게 사라졌나 일본인의 사냥기

    한반도의 호랑이 어떻게 사라졌나 일본인의 사냥기

    정호기(征虎記)/야마모토 다다사부로 지음 이은옥 옮김/이항·엔도 기미오·이은옥·김동진 해제/에이도스/216쪽/2만원 야생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주요 이유로 해로운 맹수들을 퇴치해 세상을 편안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이 지목된다. 조선총독부의 ‘조선휘보’에 따르면 1915~1924년(1917·1918년 통계 누락) 일제의 해수구제 정책으로 호랑이 89마리, 표범 521마리가 사살됐다. 통계에서 두 해가 누락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 기간에도 일제의 한국호랑이 소탕작전이 강도를 더했으면 더했지 멈춘 것은 아니었다.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정호기’(征虎記)는 1차 세계대전 때 선박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일본인 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1917년 11월 20일 도쿄를 출발해 부산으로 입국해 한 달간 조선에 머물며 벌인 호랑이 사냥기록이다. 야마모토는 사냥에 동행했거나 후원한 사람들에게 기념선물로 나눠 주기 위해 사냥 기록과 일기를 엮어 비매품 한정판으로 책을 만들었다. 한국 호랑이의 자취를 추적해 온 한국범보전기금이 일본의 인터넷 고서점에서 가까스로 구했다. ‘정호기’에는 사냥기록을 순차적으로 담은 희귀한 사진 97장을 비롯해 사냥지역을 표시한 지도 2장, 사냥과정 기록, 야생동물의 서식 상황, 포획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호랑이 관련 자료가 전무한 국내 상황에서 귀중한 사료다. 야마모토는 강용근, 이윤회, 백운학 등 조선에서 이름을 날리던 포수들을 비롯해 몰이꾼 150여명을 동원했으며 모두 8개 반으로 조를 짜 함경도, 강원도, 금강산, 전라도 등지에서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일본과 조선의 언론사 기자들도 특파원 형식으로 초대돼 정호군의 활약을 즉각 알렸고, 사냥이 끝나고 경성의 조선호텔과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호랑이 고기 시식회에는 당시의 실력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야마모토가 조선반도에서 호랑이 사냥 이벤트를 벌인 이유에 대해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등은 책 해제에서 “겉으로는 총독부의 해수구제 정책과 같은 맥락이지만 실제로는 대자본가의 개인적 소영웅심의 발로, 부의 과시, 일본군 사기 진작,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 확산 등 복합적 의도가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가난한 인쇄공에서 대자본가로 출세해 조선 반도에 호랑이 덫을 놓았던 야마모토는 1차 대전 종전 후 찾아온 세계적 불황으로 몰락해 1927년 4월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도쿄 제국호텔에서 시식회를 연 뒤 10년 후의 일이었다. 한편 이 교수 등은 야마모토 사냥팀에 의해 함경도에서 잡힌 뒤 박제된 호랑이를 교토의 도시샤 고등학교 표본관에서 92년 만에 찾아냈다. 야마모토에 관한 인물정보를 수집하던 중 그가 사냥한 호랑이와 표범을 박제해 자기 모교에 기증했다는 내용을 파악하고 해당 고등학교를 방문, 표본을 찾아내 DNA 시료 채취에 성공했다. 현재 이 교수팀은 채취한 DNA 시료로 한반도 호랑이의 계통분류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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