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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NG 운반선 잇단 수주… 기지개 켜는 조선업계

    삼성重 또 4척 낭보…조선 빅3 주가 ↑ 올해 전 세계 발주량 사실상 싹쓸이 해양플랜트 부문은 일감 바닥 ‘암운’ 국내 조선업계가 최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잇달아 수주하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러나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는 일감이 바닥난 데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아 업계는 잇단 수주 낭보에도 웃지 못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는 지난 2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각각 9.22%, 5.59%, 9% 급등했다. 최근 한 달간 추이를 봐도 주가가 꾸준히 상승세로,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3거래일간 12.14%나 뛰어올랐다. 이는 최근 국내 조선업계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잇달아 수주한 데다 선가가 오르고 있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랙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주 세부 선종별 가격은 전주보다 0.4~0.6% 상승했다. 지난 6개월간 1억 8000만 달러에 머물렀던 LNG 운반선은 지난주 1억 8100만 달러로 0.6% 올랐다. 지난 3년간 극심한 수주절벽을 겪었던 국내 조선업계는 올해 들어 LNG 운반선에서 수주 낭보를 전해 오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17일과 20일 각각 유럽과 북미 지역 선주사로부터 LNG선 총 4척을 수주했다. 수주액은 약 7억 3500만 달러(약 8384억원)에 달한다. 올해 들어 국내 조선 빅3의 LNG 운반선 수주량은 현대중공업 13척, 대우조선해양 12척, 삼성중공업 9척 등으로 전 세계 LNG 운반선 발주량을 사실상 싹쓸이하고 있다. LNG 운반선에서의 선전에 힘입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의 전체 선박 발주량 중 한국이 42%를 수주해 중국(33%)과 일본(10%)을 따돌리고 1위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 선가 상승이 더해지면서 국내 조선업계의 수익성 개선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해양플랜트 수주에는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6월 삼성중공업이 2조 8000억원 규모의 코랄 FLNG(부유식 LNG 생산설비)를 수주한 것이 마지막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일 나스르 원유생산설비의 마지막 물량을 인도한 뒤 일감이 완전히 끊겼고 대우조선해양도 2014년 이후 수주가 없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미국 오일 메이저 셰브론이 발주한 20억 달러(약 2조 2000억원) 규모의 해양플랜트 ‘로즈뱅크 프로젝트’ 수주를 두고 싱가포르의 셈코프마린과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셈코프마린은 저임금 인력을 앞세운 저가 수주 전략을 펴 국내 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저가 공세는 국내 업계가 경쟁하기조차 힘든 수준”이라면서 “로즈뱅크 프로젝트가 셈코프마린에 넘어갈 경우 국내 조선업계의 해양플랜트 사업은 회복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日, AI로 해상 감시 강화… 北선박 불법환적 겨냥

    일본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국 주변의 해상 감시능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20일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정부가 선박에 탑재된 자동식별장치(AIS)에서 자동으로 발신하는 전파 정보를 분석하는 시스템의 개발에 착수했으며, 2021년 자위대가 이를 활용한 감시 시스템의 시험운용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특히 북한이 공해상에서 물품을 옮겨 싣는 환적을 감시할 때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스템의 원리는 선박의 위치, 속도 등과 관련된 대량의 정보를 AI에 학습시켜 선박이 정상경로에서 벗어나거나 반대 방향으로 가는 이상행동을 할 경우 자동으로 걸러내는 것이다. 자위대는 자체 운용하는 경계 레이더 감시 결과와 대조해 이런 선박이 감지되면 호위함과 초계기 등을 투입해 집중적으로 경계·감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인공위성이 포착한 화상정보 분석 기능까지 갖춰 AIS 스위치를 일시적으로 끄는 의심 선박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탐지능력의 향상을 꾀할 방침이다. 일본 정부가 기술 개발에 나선 것은 자국 주변에서 외국 선박 등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이어 “동중국해에서 북한 선박의 환적으로 석유 정제품의 위법 거래가 이뤄지고,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해역에서 중국 선박의 진입이 잇따르고 있으며, 지난 1~2일 독도 주변에서 한국의 해양조사선이 조사활동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요미우리는 이날 일본과 영국 정부가 오는 11~12월 태평양 등 공해상에서 북한에 의한 석유류 등의 환적을 공동으로 감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나라 최초 해수욕장은? - 부산 송도 해수욕장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나라 최초 해수욕장은? - 부산 송도 해수욕장

    “거대한 파도들이 깊은 물이랑을 뒤로 끌면서 말 위에 높이 앉듯 흉흉하게 솟구치고 있었다.” <서정인, 물결이 높던 날. 1963> 소설 속 주인공 ‘현수’는 다방 아가씨 ‘명자’를 사랑한다. 거북섬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송도해변의 높은 파고와 모래밭을 넘어야만 닿을 수 있는 다방과 문 앞만을 맴도는 서툰 염정(艶情). 자신도 어찌할 줄 모르게 솟아오르는 연민과 증오, 욕정의 어지러움을 달래기 위해 송도 해변을 현수는 한없이 걷고 또 걷는다. 소설은 송도해수욕장 주변을 배경으로 한 젊은 청년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쉼없이 드러내고 뱉어낸다. 처음이자 최초로 다가 온 사랑의 감정앞에 현수는 결국 좌절한다. 어찌되었던 간에, 어느 쪽에서나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쥔다는 것은 용한 일이 분명하다. 더구나 사람이나 물건이 아니라 붙박여있는 지역이나 건물이 그런 이름표를 걸게 되면 마을 하나가 살아갈 요량은 더더욱 확실해진다. 그러하다보니 제각기 서로가 원조이자 처음이고, 시작임을 내세우고 싶지만 세상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터. 우리나라 최초 해수욕장이라는 명찰 확실히 붙이고 있는 부산 송도해수욕장으로 가보자. 부산에는 현재 해운대, 광안리, 송정, 일광, 임랑, 송도,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총 7곳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 있다. 이중에서 송도와 다대포 해수욕장은 부산의 서남권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자 부산의 구도심과 연결되어 있어 역사가 만만치가 않다. 특히 송도해수욕장의 경우 부산역과 부산항에 인접하여 접근성이 뛰어나 예로부터 해수욕장 자리로는 제대로였다. 부산 서구 암남동에 위치한 송도(松島)해수욕장은 1913년 7월에 개장한 우리나라 제1호 공설 해수욕장이자 최초의 근대 해수욕장이다. 191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거류민을 중심으로 송도 해변가 주변이 조금씩 해수욕장으로 탈바꿈하다가, 1913년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송도(지금의 거북섬)에 ‘수정(水亭)’이라는 휴게소가 들어서면서 해수욕장이라는 공식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후 송도해수욕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과 6.25전쟁 이후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이름값을 날린다. 1964년에는 길이 420m의 케이블카가 들어서고 거북섬을 잇는 구름다리가 만들어지면서 해수욕장의 인기는 지금의 해운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1970년대에는 신혼부부들이 꼭 가봐야하는 신혼여행지로 명성을 날려 구름다리와 거북섬은 하루 종일 연인들의 사진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몰려드는 인파에 비하여 해수욕장 주변 환경 개선 사업은 전무하였는데 각종 생선 부산물 및 음식찌꺼기와 생활 하수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 내려갔다. 또한 부산 남항에서 배출된 각종 선박들의 오염물질 등으로 인하여 2000년에 들어서서는 송도는 해수욕장 기능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하여 해안도로 200여 미터가 파손되어 송도 해수욕장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부산시는 해수욕장 앞쪽 300m에는 너비 40m, 길이 300m에 이르는 수중방파제인 잠제(潛堤)를 설치하여 모래유실을 막는 공사를 하였고 이에 더해 27만m³의 모래를 백사장에 더해 지금의 송도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만들기도 하였다. 현재는 송도해수욕장의 백사장 길이가 800m, 폭은 공식적으로는 50m이며 바로 옆에 위치한 수변공원의 넓이는 30,000m2에 이른다. 이 외에도 바다 위를 강화유리로 밟아보는 길이 104m, 폭2.3m의 ‘구름산책로’가 있어 바다 위를 걸어 거북섬에 닿을 수도 있으며,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1.6Km 길이를 둘러 해수욕장을 가로지르는 짜릿함도 느낄 수 있다. 2018년 여름. 하루 종일 머리 위 불덩이 하나씩 얹고 보낸 올 여름의 중순. 송도해수욕장에서 여름과의 시원한 작별을 고하는 것도 괜찮지는 않을까. <송도해수욕장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부산 해운대 지구가 아닌 부산 서구쪽 여행을 계획한다면. 부산 구도심과 가까운 해수욕장이서 가벼운 산책길로 괜찮다. 2. 누구와 함께? - 수심이 깊지 않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3. 가는 방법은? - 서면역(1호선 승차) -> 자갈치역(하차) -> 96번 버스(환승) -> 송도해수욕장 정류장(하차) -> 송도해수욕장(도착) - 부산역에서 26번 버스(승차) -> 송도해수욕장 정류장(하차) -> 송도해수욕장(도착) 4. 감탄하는 점은? - 구름다리의 야경. 송림 공원의 시원한 바람.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이름에 비하여 피서객은 많지 않은 편이다. 최근에 다시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6. 꼭 봐야할 공간은? - 거북섬. 케이블카. 구름다리.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예전부터 송도해수욕장은 장어구이가 유명하다. 해안가 주변 횟집들의 수준은 비슷한 수준.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songdo.bsseogu.g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국제시장, 이바구 거리, 산복도로, 자갈치시장.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예전의 바가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정찰제로 운영이 되며 인근 식당의 경우도 주거공간과 아울러 있는 송도해수욕장 특유의 입지 조건으로 인해 도심 여느 식당과 가격 차이가 없을 정도로 준수한 수준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북, 남북장관회담 거부… 상황악화 회피? 대남 압박?

    북, 남북장관회담 거부… 상황악화 회피? 대남 압박?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아세안지역안포럼(ARF) 개막에 하루 앞서 3일 열린 환영 만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지만, 남북 외교장관회담은 무산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 센터 열린 저녁 만찬 상황을 취재진에 소개하며 “만찬장에서 강 장관과 리 외무상이 자연스럽게 만나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이후 여러 상황에 대해 상당히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대화 중에 강 장관이 별도의 남북 외교장관회담 필요성을 타진했지만 리 외무상은 ‘응할 입장이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ARF 계기) 남북 외교장관 회담은 없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리 외무상은 이날 중국을 비롯해 7개국 장관과 양자 회담을 갖는 등 지난해와 다른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비핵화 논의의 교착 상황을 감안할 때 남북 회담은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도 조선중앙통신은 “(북 매체) 민주조선이 남조선 당국의 대미일변도 정책은 북남관계의 획기적인 개선과 전면적인 발전에 작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노동신문도 지난 1일 개인필명의 칼럼에서 남북 관계를 ‘비누거품’에 비유하며 “청와대 주인은 바뀌었지만 이전 보수 정권이 저질러 놓은 개성공업지구 폐쇄나 금강산 관광 중단에 대한 수습책은 입 밖에 낼 엄두조차 못하고 도리어 외세에 편승해 제재·압박 목록에 새로운 것을 덧올려 놓은 형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아세안 국가들과 양자 회담을 갖고 이들 국가의 엄격한 대북 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이어갔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아세안 국가들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제재 강도가 완화될 가능성을 차단하려하는 의도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저녁에 진행된 환영 만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도 전날 한·일 양자 외교장관회담에서 “선박을 통한 불법 환적 문제(북 석탄 반입)가 있는데 안보리(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확실히 이행하기 위해 한·미·일이 특히 노력해야 한다”며 대북제재 유지를 강조했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북한의 남북 외교장관회담 거부는 회담에서 출구를 찾는 대신 외려 상호 입장차만 확인하며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피하려는 선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반면 최근의 대남 압박을 이어가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남북 장관회담은 무산됐지만 (남북 외교장관의) 만찬장 접촉을 통해 상대방 입장을 다시 한번 이해하고 우리 생각도 전달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싱가포르서 미·일 “대북 제재” VS 중 “종전선언”

    싱가포르서 미·일 “대북 제재” VS 중 “종전선언”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연쇄 회담과 관련해 싱가포르에 집결한 주요국 외교장관들은 3일 양자 회담을 통해 각국의 입장을 명확히 드러냈다. 미국과 일본은 대북 제재 유지를 강조했고, 중국은 종전선언을 적극 지지했다. 특히 중국은 대북 제재에 대해서도 북한의 비핵화에 따라 변화할 필요성이 있다며 대치되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은 연내 종전선언과 함께 북·미 간 대화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중재적 입장이고, 북한은 이날 공개 발언을 삼갔다. 이날 오후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종전선언은)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어서 비핵화를 견인하는 데 있어 긍정적이고 유용한 역할을 평가한다”며 “어제 한국 기자의 질문에 설명한 바 있다. 공개적으로 중국 입장을 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 “종전선언 이슈는 우리 시대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고 한반도 두 나라(남북)를 포함해 모든 국가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회담에서 대북 제재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왕이 부장은 역시 전날에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서 당연히 새롭게 다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아세안 국가들과 양자 회담을 갖고 이들 국가의 엄격한 대북 제재 이행을 촉구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아세안 국가들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제재 강도가 완화될 가능성을 차단하려하는 의도로 보인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도 전날 한·일 양자 외교장관회담에서 “선박을 통한 불법 환적 문제(북 석탄 반입)가 있는데 안보리(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확실히 이행하기 위해 한·미·일이 특히 노력해야 한다”며 대북제재 유지를 강조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중국,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을 포함해 7개국과 양자 외교장관회담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은 각국과 조기 종전선언, 대북 제재완화, 경협 등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같은 회담에서 중국, 러시아, 필리핀 등 단 3개국과 양자 회담을 한 것을 감안하면 외교 범위가 크게 확장된 것이다. 다만, 리 외무상은 공식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았다. 이날 저녁에 각국 외교장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갈라 디너’에서 북·미 외교장관이 접촉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불참하면서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4일 예정된 한·미 장관회담에 이어 남북 및 북·미 장관회담이 성사될지가 관건이다. 한·미 모두 북에 양자 장관회담을 요청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판문점 선언에 따라 연내에 종전선언이 진행돼야 하며, 우선 북·미가 접촉해 비핵화 문제와 관련한 최근의 교착상태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북 석탄 반입, 제재 예외 요청… 한국이 대북 제재 구멍 낸다?

    북 석탄 반입, 제재 예외 요청… 한국이 대북 제재 구멍 낸다?

    지난해 10월 북 석탄 9000여t이 한국 인천·포항항에 하역돼 국내로 반입된 문제가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도 화제가 됐다. 지난 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각각 양자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한 일본과 러시아가 이를 언급했다. 특히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선박을 통한 불법 환적 문제(북 석탄 반입)가 있는데 안보리(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확실히 이행하기 위해 한·미·일이 특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은 최근 미국과 유엔에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제재예외조치를 요청한 상태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이 나서 대북 제재에 구멍을 낼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강 장관은 2일 일본과의 양자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까지 제재가 계속돼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준수하며 확고하게 유지할 거란 뜻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느슨해질 경우 대북 제재가 북한을 압박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달 31일 정례 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대북) 제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무를 상기하는 데 이번 기회(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를 활용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미국이 현재 대북제재 유지에 대한 한국의 의지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최근 북 석탄 반입에 대한 한국의 조사 및 일련의 조치 과정에서 외려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북 제재 예외를 미국과 유엔에 요청하는 것이 대북 제재를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한국이 제재를 어기며 몰래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를 통해 유엔과 미국에 예외 조치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대북 제재를 확고하게 준수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노동신문 등을 통해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개를 요구하는 등 한국을 압박하면서, 한국의 최근 제재 예외 요청이 이슈가 되고 있다”며 “하지만 올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부터 한국은 대북 제재를 유지하는 가운데 상황에 따라 남북 교류에 필요한 제재 예외 조치를 꾸준히 국제사회에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강경화 “완전한 비핵화 확신 때까지 대북제재 지속”

    강경화 “완전한 비핵화 확신 때까지 대북제재 지속”

    中 “남북 종전선언 제스처 긍정적” 美대사 “北 가시적 움직임 더 있어야”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일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까지 제재가 계속돼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대북 제재와 관련해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인근 국가의 선박을 통한 불법 환적 문제가 있는데 안보리(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확실히 이행하기 위해 한·미·일이 특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앞서 열린 한·러 외교장관회담에서도 러시아 측이 자국에서 환적된 북한산 석탄이 한국에 들어간 것에 대해 언급하기는 했지만 심도 깊은 논의는 없었다. 최근 북·미 비핵화 협상의 결정적 변수로 부상한 ‘종전선언’은 싱가포르에서도 화두였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언론브리핑에서 종전선언을 묻는 질문에 “종전선언 이슈는 우리 시대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한반도의 두 나라(남북)를 포함해 모든 국가 국민들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적 절차가 필요한 평화협정은)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모여 앉아 진중한 토론을 하고 관련 당사국들이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확인돼야 한다”며 “이 둘(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한반도 양측 또는 다른 당사국들의 선언으로 전쟁을 끝내려는 제스처는 분명 긍정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참여를 원하는 중국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는 대북 제재에 대해서도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서 당연히 새로 다시 고려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날 예정됐던 한·중 회담은 중국 측 일정이 지연되면서 3일로 연기됐다. 한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서울 정동 대사관저에서 부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종전선언을 하려면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더 많은 가시적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며,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 종전선언을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너무 빨리 가다가 (종전선언과 같은) 되돌릴 수 없는 조치를 취했는데 협상이 좌초하면 김정은이 득을 볼 수 있다”며 “한번 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비핵화) 프로세스의 초기 시점에, 종전선언 같은 것을 하는 데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폈다. 중국의 종전선언 참가에 대해서는 “북한 비핵화에 있어 중국은 파트너”라면서도 참가 지지 여부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싱가포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장관의 책상] 루스벨트 대통령이 우리 어촌을 개발한다면/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장관의 책상] 루스벨트 대통령이 우리 어촌을 개발한다면/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1929년 10월 24일 대공황의 서막을 알린 ‘검은 목요일’을 시작으로 미국 주식시장인 월가가 붕괴되고, 시가총액이 40%나 떨어지면서 전 세계는 대공황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이때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뉴딜(New Deal) 정책’을 제시하며 도로, 교량, 공항 건설 등의 공공사업을 통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가며 대공황을 극복해냈다.최근 우리나라도 국가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 등을 위해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어촌은 어가인구 30만명이 훌쩍 넘고, 만선(滿船)의 꿈에 부푼 배들로 활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현재 어가인구는 12만명에 불과하고,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령자에 해당할 만큼 고령화도 심각하다. 연안여객선 이용객도 지난해 1690만명에 달했지만 여전히 노후 선박과 낙후된 선착장 등으로 인해 접근성은 좋지 않다. 이대로 간다면 향후 50년 안에 60개가 넘는 섬들이 무인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특약 처방이 시급하다. 이런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는 해외 성공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환경 파괴로 죽어가던 일본의 ‘나오시마’(直島) 섬은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예술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섬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으로 재탄생하며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주민보다 고양이가 더 많아 ‘고양이 섬’으로 알려진 ‘아오시마’(靑島)는 ‘콘텐츠와 교통, 현지의 노력’이라는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지면서 매년 1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러한 성공 스토리를 보면서 우리 어촌에 필요한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편안하고 쉽게 갈 수 있어야 한다. 교통이 편리하지 못하면 알리기도 어렵고 많이 갈 수도 없다. ‘가기 쉬운 어촌’을 만드는 것이 어촌 발전의 시작이다. 물론 쉽게 갈 수 있다고 해서 사람이 모이는 것은 아니다.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도 이러한 잠재력은 충분하다. 아시아 최초 ‘슬로 시티’로 지정된 ‘청산도’의 여유와 느림의 미학은 많은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사로잡고 있고, 남해의 돌담이나 대나무 그물을 이용한 전통어업 방식인 ‘독살과 죽방렴’ 체험은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인 현지 주민의 노력이다. 지난달 해양수산부는 이러한 계획을 담아 ‘어촌 뉴딜 300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노후화된 여객선 대신 새롭게 건조한 배를 투입하고 선착장도 안전하고 쾌적하게 바꿔 나가는 한편 즐거움으로 가득한 ‘찾고 싶은 어촌’을 만들기 위해 지역의 핵심 자원을 활용한 차별화된 콘텐츠를 발굴해 나갈 예정이다. 어촌의 유휴시설을 청년들의 창업공간이나 문화예술인의 창작공간으로 제공하고 기반시설 투자가 필요한 해양레저 부문은 권역별 거점 조성 후 어촌과 연계함으로써 전국 연안을 종주하며 즐길 수 있는 ‘U자형 해양레저관광벨트’를 구축할 계획이다. 특히 어촌 주민과 지역 전문가로 구성된 ‘어촌 뉴딜 협의체’를 구성해 현장 중심의 프로젝트를 추진, 지역별 자생력과 경쟁력을 키워 나갈 예정이다. 이에 따라 어촌마을마다 독특한 매력과 특색을 가지고 해양레저형, 국민휴양형, 어촌문화형, 수산특화형, 재생기반형 등 다양하게 재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어촌 뉴딜 300 프로젝트’가 우리 어촌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이 단기간 집중 투자로 대공황의 돌파구를 마련했던 것처럼 우리도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어촌의 혁신성장을 이끌어 다가올 변화를 슬기롭게 맞이하기를 바란다.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글로벌 해양 패권을 겨냥해 인공지능 잠수함 개발에 나선 중국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글로벌 해양 패권을 겨냥해 인공지능 잠수함 개발에 나선 중국

    중국이 글로벌 해양 패권을 겨냥해 첨단 무인 인공지능(AI) 잠수함 개발에 나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이 정찰과 기뢰 매설, 매복, 자살 공격 등 다양한 작전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무인 AI 잠수함을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오는 2021년까지 실전 배치할 계획이라고 지난 23일 보도했다. 중국은 특히 미국과의 해양패권 경쟁을 벌이는 서태평양과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영유권 다툼이 치열한 남중국해에 이를 집중 배치할 방침이다. 중국은 AI 기술을 통해 해군력을 강화하려는 야심찬 계획인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에 세계 최대 규모의 ‘드론 보트’(수상 드론) 시험시설을 건설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앞서 지난해 10월 수중 탐사 외에 군사적 목적으로도 활용이 가능한 수중 드론 ‘하이이(海翼) 1000’ 시험에도 성공했다. 수중 드론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과학원 산하 선양(瀋陽)자동화연구소가 개발한 이 수중 드론은 태풍 등 열악한 환경과 최고 수심 6000m 깊이에서 190개 과제를 무난히 수행하는 등 바다 환경보호, 과학 탐사활동뿐 아니라 군사적 목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관영 신화통신은 소개했다. ‘바다의 날개’를 뜻하는 ‘하이이 1000’은 남중국해에서 91일간 임무수행하며 1880㎞의 항해 기록을 세우는 등 내구성도 대폭 보강된 것으로 알려졌다. 위젠청(兪建成) 선양자동화연구소 연구원은 “수중 드론은 잠수함 지원뿐 아니라 중국 영해에서 외국의 잠수함을 탐지하는데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중 드론은 대부분 크기가 작은 만큼 다른 군함이나 잠수함을 지원하는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다양한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비해 현재 개발 중인 무인 AI 잠수함은 일반 잠수함과 맞먹을 정도로 크기가 대규모이다. 때문에 전통적인 잠수함과 같은 선착장에 정박한다. 화물칸은 고성능 정찰 장비부터 미사일 또는 어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물을 수송할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널찍하다. 에너지 공급은 디젤 엔진이나 다른 전원 공급 장치에서 이뤄지는 까닭에 몇 달 동안 장기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AI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적 군함과 민간 선박을 구별하거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항로를 선택하는 것 등을 스스로 수행한다. 정찰과 기뢰 매설, 매복 등의 작전 수행이나 적군의 공격을 유도하기 위한 미끼로도 이용할 수 있다 보니 항공모함이나 순양함 등에 가미카제식 자살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 인명 손실에 대해 우려가 필요없는 무인 잠수함의 특성 덕분이다. 린양(林揚) 선양자동화연구소 해양기술정보장비 책임자는 미국에서 개발 중인 유사한 무기에 대한 중국의 대비책이라며 정보가 “민감한”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기술 사양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무인 AI 잠수함의 대표적 강점은 승무원의 탑승과 안전을 위한 시설을 갖출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건조 비용이 매우 저렴하다는 점이다. 2020년대 초반까지 미국 해군에 인도될 차세대 콜롬비아급 유인 잠수함 12척의 개발과 건조 비용은 무려 1200억 달러(약 135조원)에 이른다. 반면 록히드마틴이 개발하는 무인 잠수함의 개발 비용은 4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다만 항행 중 고장이 났을 때 이를 수리할 승무원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무인 잠수함이 수행할 수 있는 작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국이 AI 잠수함 개발에 총력전을 펼치는 이유는 미 해군이나 서방의 해군 전력보다 자국 해양 전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이다. 중국 잠수함은 미 해군 잠수함에 비해 바다속 작전을 수행할 때 소음이 심한 탓에 적 탐지에 쉽게 노출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지난 1월 ‘093형’으로 불리는 중국의 110m ‘상’(商)급 핵잠수함이 동중국해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인근 해역에 진입했다가 일본 해상 자위대에 발각돼 이틀간 쫓겨 다닌 끝에 공해 상에서 수면 위로 부상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미국이 오는 2020년까지 무인 AI 잠수함을 개발하도록 록히드마틴, 보잉 등에 제작을 의뢰했다는 점도 중국의 AI 잠수함 개발을 부추겼다. 록히드마틴이 만드는 무인 AI 시스템은 잠수함이 본부와 교신하면서 작전을 수행하고 목표 지점에 탑재물을 내려놓고 본부로 귀환하는 기능을 갖추게 된다. 보잉이 개발하는 무인 AI 잠수함은 길이 15m에 지름 2.6m로 수심 3000m까지 잠수할 수 있는 50t급 자율주행 잠수함 시제품이다. 수개월 동안 항행 거리 1만 2000㎞에 이르는 작전을 수행할 수 있으며 최고 속도는 시속 15㎞에 이른다. 러시아도 대륙 간 장거리 작전을 수행할 수 있고 핵무기 장착이 가능한 무인 잠수함을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와 함께 핵잠수함에도 AI 기능을 도입해 잠수함의 ‘두뇌’와 ‘귀’에 해당하는 핵심 무기체계 성능을 크게 향상시킬 계획이다. 1950년대 초 미국이 처음으로 개발한 핵잠수함은 가장 고도화된 전쟁무기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핵잠수함의 ‘두뇌’(전투체계)와 ‘귀’(소나·수중 음파 탐지기)에 해당하는 컴퓨터 기술은 발전이 더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투체계(잠수함이 항해하거나 전투하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를 통합해 처리하는 장비)·소나 등 핵심 장비는 승무원이 조작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흉내낼 수 있는 머신러닝 기술을 도입하면 무인 핵잠수함 운용이 가능하다. AI가 중국 해군이 보내주는 데이터와 선체 내 센서들이 수집한 정보 등을 분석해 전장(戰場)환경 변화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가 인간과 달리 감정 기복 없이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이를 도입하는 이유다. 예컨대 지휘관은 수개월간 바다 밑에서 수백명의 선원들을 관리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오판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AI는 이 같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까닭에 오판 확률을 낮출 수 있다. AI는 지휘관이 내린 군사작전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독창적인 전술을 짜는 것도 가능하다. 적이 보내는 위협 신호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런 만큼 중국은 AI 도입을 통해 글로벌 해양 패권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 해군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라이트 솔루션즈의 조 마리노 최고경영자(CEO)는 “중국과 러시아가 무기 등에 AI를 결합하면 미국의 해양 패권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며 미국도 핵잠수함에 AI를 도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핵잠수함에 AI를 도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AI는 대용량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데, 이 대용량 컴퓨터를 좁은 잠수함 속에 집어넣기는 매우 어려운 탓이다. 잠수함용 AI는 유사시 충격과 열에 견딜 정도의 내구성도 갖춰야 하는데 이런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AI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중국 해군은 핵잠수함용 AI가 최소한의 기본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고 주문했다고 SCMP가 전했다. 이 조건에는 바닷물 상태에 따른 빠른 대응 능력과 실패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낮출 수 있는 단순한 조작체계, 기존 컴퓨터 기술과의 호환성 등이 포함된다. AI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만큼 언제든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어 핵잠수함에 AI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주민 중국과학원 연구원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AI가 핵잠수함 등 무기에 도입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면서도 “일부 규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하나의 대륙을 날려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핵잠수함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성공과 실패 동시에 겪은 일본 생활… ‘프리메이슨’ 활동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성공과 실패 동시에 겪은 일본 생활… ‘프리메이슨’ 활동

    1888년 아버지와 이모부의 사업을 돕고자 일본으로 간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고베에서 16년간 살면서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봤다. 그는 사업이 번창해 큰 돈을 벌었고 결혼도 했다. 지역 스포츠클럽 사무국장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했다. 반면 비밀결사단체로 알려진 ‘프리메이슨’에도 가입하는 등 미스터리한 면도 보였다. 16세 소년 베델이 고베에 왔을 때는 일본이 고베항을 개방(1868년)한 지 정확히 20년이 되던 해였다. 고베는 개항 당시만 해도 사람이 거의 없던 허허벌판이었다. 하지만 바다 수심이 깊어 큰 배가 쉽게 들어오면서 외국의 자본과 기술이 빠르게 퍼졌다. 인구도 1895년 15만 3382명, 1901년 25만 9040명, 1910년 38만 7915명으로 급속히 늘었다. 20세기 초 조선의 수도 한양의 인구가 20만명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곳이 얼마나 크고 활기찬 도시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일본에서 쓰이는 “성공한 사람은 교토에서 공부하고, 오사카에서 돈을 벌어, 고베에 산다”는 말은 이 무렵부터 생겨났다. 베델은 일본 시절 초기 이모부인 퍼시 알프레드 니콜(1848~1899)의 집(고베시 73번지)에 기거하며 일을 배웠다. 현재 이곳에는 1992년 지어진 ‘신크레센토 빌딩’이 들어서 있다. 고베시 문서관의 ‘재팬 디렉터리’에 따르면 니콜은 적어도 1883년부터 일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업이 번창하자 1886년 동서이자 베델의 아버지인 토머스 행콕 베델(1849~1912)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토머스 행콕도 본업이 궤도에 오르자 자신은 영국쪽 일을 맡고 큰아들 베델을 일본에 보내 분업에 나섰다. 베델은 고베의 이모부와 런던의 아버지 사이에서 업무를 익히며 사업 노하우를 체득해 갔다.이들이 했던 사업은 완호물(玩好物) 매매였다. 완호물은 쉽게 구하기 어려운 외국산 물품을 말하는데, 당시 영국인에게는 일본산 도자기나 골동품, 칠기, 장신구가 그런 것들이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후기 인상파 거장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일본 판화에 매료돼 그 화풍을 모방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듯 당시 영국을 비롯한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예술작품이 인기를 얻었다. 이를 반영하듯 고베에는 외국인을 상대로 옛날 그림과 유기제품, 동전, 고의상, 갑옷 등을 파는 상점들이 많았다.베델이 사업을 하던 19세기 말은 영국이나 일본 모두 무역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때였다. 그는 두 나라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에 런던에 있던 아버지를 도와 상당한 부를 모을 수 있었다. 베델은 성격이 외향적이고 활달했다. 1909년 5월 7·8일자 ‘배설공의 약전’에는 그가 “각종 유희를 좋아하고 활발용장한 품성을 가졌다”고 기록돼 있다. 고베 시절 그는 여러 가지 운동과 음악을 즐겼고 체스도 잘 뒀다. 술과 담배도 좋아했다. 고베 지역 영자지 ‘고베 크로니클’에는 그가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없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는 기사가 수차례 등장한다. 그가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베델은 1901년 고베 외국인 스포츠클럽 ‘고베 레가타 앤드 어슬래틱 클럽’(KR&AC)에서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1901년 1월 30일자 ‘고베 위클리 크로니클’에는 자신을 ‘다섯 살 난 (KR&AC) 멤버’라고 밝힌 이가 “지난해 열린 레가타(여러 명이 함께 요를 젓는 요트) 대회 선수 선발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KR&AC를 비난하는 기고가 실렸다. 그러자 베델은 2월 6일자 기고를 통해 “우리 클럽에 5살짜리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고 비꼰 뒤 “나이에 비해 글을 꽤 잘 썼지만 생각은 매우 어리석다”며 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가 논쟁을 피하지 않는 불같은 면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1899년은 베델에게 큰 전환점이 된 해였다. 아버지 토머스 행콕은 두 번째 동업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일본 사업을 대신 맡아줄 사람이 필요해졌다. 여기에 이모부 니콜도 세상을 떠났다. 51세였다. 그는 사업차 고베에서 영국 런던으로 배를 타고 가다가 포르투갈 해상에서 숨을 거뒀다. 평소 지병이 있었던 것 같다. 베델에게 ‘사업 스승’ 니콜의 죽음은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현재 니콜은 고베 외국인 묘지에 안장돼 있는데, 서울신문은 취재 과정에서 니콜의 묘지를 찾는 후손과 연락이 닿아 이 사실을 전달했다. 27살이던 베델은 이 때부터 독자 사업에 나섰다. 베델은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고자 자신의 첫 회사인 ‘베델 브러더스’를 세웠다. 이 회사는 이름처럼 삼형제인 베델과 허버트(1875~1939), 아서 퍼시(1877~1947)가 함께 운영했다. 이들은 각각 고베와 요코하마, 런던에 사무실을 내고 완호물을 사고 팔았다.이때 베델은 회사 설립을 위해 잠시 영국에 들렀다가 은행원 존 게일의 둘째 딸 메리 모드 게일(1873~1965)을 만났다. 이들은 이듬해인 1900년 고베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베델 부부는 1901년 외아들 허버트 오언 친키 베델(1901~1964)을 낳았다. 그는 ‘짐’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이름 가운데 ‘친키’는 일본어로 ‘新規’(새로운 것)라는 단어다. 그가 일본에서 얻은 아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베델 브러더스‘는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아버지가 물려준 영업처를 형제들이 잘 관리했던 것 같다. 베델은 이때 번 돈으로 1901년 오사카 남쪽 사카이 지역에 러그(깔개나 무릎덮개 용도로 쓰는 직물제품) 생산공장을 차렸다. 당시 러그는 영국인 가정의 필수 품목이었다.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중개하는 수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자본가로 성장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는 훗날 베델이 일본 사업을 포기하는 원인이 된다. 한편 베델은 일본에서 ‘프리메이슨’에 가입해 활동했다. 프리메이슨은 중세 교회 건축가 집단에서 출발했다가 기독교 보수성에 반발해 조직된 비밀결사체로 알려져 있다. 프리메이슨이 ‘그림자 정부’(세계를 은밀히 지배하고 있다는 초국가적 조직)의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도 있다. 정성화 명지대 사학과 교수와 한국학 자료 수집가 로버트 네프가 함께 쓴 ‘서양인의 조선살이,1882~1910’에는 베델이 조선에서 프리메이슨 설립 멤버로 활동했다고 전한다. 프리메이슨 서울 지부인 ‘한양롯지’ 홈페이지에도 베델을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영국에서 만난 베델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은 “할아버지(베델)는 영국 선박업자 조지 쇼어의 소개로 일본 거주 시절 프리메이슨에 가입했다”면서 “할아버지는 (비밀주의 원칙을 지키려고) 가족에게도 프리메이슨 내부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반면, 영국 출신 역사 연구가인 에이드리언 코웰(62)은 “베델은 (일본에서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1908년 영국 법원 판결에 따라 중국 상하이에서 3주간 복역하고 돌아온 뒤에 서울에서 가입했다”면서 “당시 조선에서 프리메이슨이 막 생겨나던 때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요직을 맡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안신 배재대 복지신학과 교수는 그의 논문 ‘한국 프리메이슨의 역사와 특징’에서 “프리메이슨은 신종교 성격을 띤 엘리트주의 모임”이라면서 “다만 베델이 조선에 왔던 시기 프리메이슨은 종교적 의미보다는 친목과 자선을 위한 형제공동체적 성격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고베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런던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세월호 허위보고서 낸 검사원… 대법, 원심 뒤집고 유죄 판결

    대법원이 세월호 증·개축 과정 검사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한 한국선급 선박검사원을 처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미필적 고의를 인정,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한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는 24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한국선급 선박검사원 전모(38)씨 상고심에서 사건을 유죄 취지로 광주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전씨의 경력, 업무 특성, 전씨가 작성한 경사시험결과서 등을 고려해 봤을 때 (전씨는) 세월호의 각종 검사결과서 등을 허위로 제출해 한국선급 선박검사 업무를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미리 인지하고 있는 것을 미필적 고의라고 하는데, 미필적 고의도 업무방해죄의 범행 동기로 인정할 수 있음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대법원 측은 설명했다. 2012년 청해진해운이 일본 나미노우에호를 수입해 세월호로 신규 등록하고 적재공간을 늘리는 증·개축을 하는 과정이 적절했는지 검사하는 선박검사원이던 전씨는 세월호 참사 뒤 경사시험결과서와 검사보고서 등을 허위 작성해 보고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씨는 경사시험결과서가 실제 계측치로 작성됐는지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1·2심은 “전씨가 경사시험결과서 등이 허위라고 인식하거나 한국선급을 오인·착각하게 할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전씨에게 경사시험결과서 등이 잘못됐을 때 해상사고가 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이상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남북사업에 北제재 예외 필요” 비핵화 돌파구 찾아나선 정부

    강경화 “제재 완화 단계 아냐” 강조 판문점 선언 이행에 제재 영향 커 전문가 “장애되는 부분 유예해야” 정부가 4·27 판문점 선언 이행에 필요한 대북제재 예외 인정을 강조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3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해 “지금은 (대북제재) 완화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미국 측에 강조한 부분은) 남북사업에 필요한 대북제재 예외를 인정받기 위한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더이상 제재할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하다. 그러다 보니 단순한 남북 간 접촉에서도 자칫 제재 규정을 위반할 우려가 있는 실정이다.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와 미국, 일본, 한국 등의 정부 독자 제재로 인해 ‘대량 현금’(bulk cash)의 대북 유입뿐 아니라 남북사업을 위한 민간 비행기, 선박의 출입과 물자 제공 등에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인 것이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군통신선 연결,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금강산 면회시설 개보수 등에 있어서도 대북제재의 영향을 받고 있다. 앞서 남북 군사당국은 지난 1월 남북 서해지구 군통신선을 재개했지만, 복구를 위한 광케이블 전송장비 구성품 및 문서교환용 팩스 등 물자 제공이 제한되면서 지난달 16일에야 복구를 완료한 바 있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현 대북제재 상황은 구리선 하나 넘겨주는 것조차 안보리와 미국 등 관련국과 긴밀히 협조해야 되는 상황”이라며 촘촘한 대북제재로 인한 고충을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1월 말 마식령 스키장 남북 공동훈련, 지난 4월 초 평양 예술단 공연, 지난 3일 남북 통일농구대회 참여를 위한 방북 때마다 대북제재로 인해 국내 민간 항공기 섭외에 어려움을 겪었다. 북한을 경유한 항공기는 180일 동안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미 행정부의 독자 제재 때문이다. 남북은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동해선·경의선 철도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을 위해 지난 20일 동해선 공동점검에 이어 24일 경의선에 대한 방북 공동점검에 나설 예정이지만, 대북제재로 인해 구체적인 사업 추진보다 공동연구조사단 구성·운영에 그칠 전망이다. 정부는 남북관계 진전을 통한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진전에도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남북 상시 대화채널인 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등 남북 정상 간에 합의한 사업에 필요한 대북제재의 예외를 인정받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판문점 선언의 이행이 중요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며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판문점 선언 이행에 장애요인이 되는 제재 부분에 있어서는 상시적인 유예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극동개발 땐 부산~블라디보스토크 ‘한반도 新경제’ 퍼즐 완성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극동개발 땐 부산~블라디보스토크 ‘한반도 新경제’ 퍼즐 완성

    지난 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남쪽 방향으로 자동차로 3시간여 정도 달리자 작은 항구도시가 모습을 나타냈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를 잇는 ‘신(新)북방 실크로드’의 거점, 자루비노 항구다.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궂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박 하역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1시간여 정도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러시아와 중국, 북한 3국이 맞닿은 국경 지역이 나온다. 중국의 국경도시 훈춘까지는 63㎞에 불과하다. 한때 러시아에 중국 관광 붐이 일었을 때에는 자루비노를 거쳐 훈춘으로 향하는 도로에 버스가 하루에 몇 대씩 다녔다고 한다. 자루비노항은 잠재력이 큰 항구다. 무엇보다 중국, 북한, 한국, 일본 등과 근접하다는 점에서 위치가 탁월하다. 러시아 정부는 자루비노항을 동북아시아 물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개발 및 현대화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 관계 개선 시 한반도에서 유렵 대륙으로 통하는 관문이 될 수 있다. 인근 평야를 따라 길게 뻗은 철도 위로는 간간이 중국 훈춘으로 가는 석탄이나 휘발유를 실은 화물 열차가 다녔다. 북한의 나진역, 두만강역을 거쳐 러시아 하산으로 연결되는 철도도 이 철도와 합류한다. 철길은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토크역으로도 이어졌다. 앞으로 남·북·러 철도가 연결되면 부산에서 출발한 여객 열차가 이 지역을 지나 유럽 대륙으로 갈 수 있다. 거꾸로 러시아산 석탄을 싣고 우수리스크역에서 출발한 화물 열차가 북한 국경을 넘어 서울역에 도착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주로 바닷길을 통해 이뤄졌던 한·러 교역이 한층 원활해지고, 또 수월해진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2년째 무역업을 하는 한 한국인 사업가는 지난 2일 서울신문과 만나 “지난달 러시아의 우수리스크역에서 북한의 두만강역으로 곡물 150t을 운송하는 사업에 참여했다”며 “이번 건을 시작으로 앞으로 북한을 지나 한국까지 물건을 보낼 수 있는 철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되면 극동 러시아 지역은 동북아 비즈니스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뿐 아니라 기업가 입장에서도 남·북·러 철도 연결을 비롯한 북방 경제협력 활성화는 새로운 기회로 인식됐다. 화물 운송 및 수산물 판매업을 하는 이스트 파트너스사의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 대표는 지난 3일 블라디보스토크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남·북·러 철도 연결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물류 유통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스트 파트너스사는 한국에 석탄 및 수산물을 공급한다. 야코블레프 대표는 “해상 운송보다 철도로 운반하게 되면 비용 자체가 굉장히 저렴해진다”며 “러시아 사업가 입장에서도 남북 상황이 호전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스트 파트너스사는 2015~2016년 대북 교역 사업을 추진했으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벽에 부딪혀 철수했다고 한다. 야코블레프 대표는 “한국은 기술과 노하우가 있고 러시아는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다”면서 “해산물과 농업 등의 분야에서 양측이 결합한다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의 극동지역 개발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와 기업 측에 연일 투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과 극동지역에 경제선도개발구역을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한·러 정상이 합의한 공동성명에도 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강력한 극동지역 개발 의지가 엿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루스키섬은 오는 9월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는 분위기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 동방경제포럼에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지도자들을 모두 초청했다. 동북아 주요 국가들의 지도자가 한자리에 모인다면 역사적인 만남이 될 전망이다. 우리 정부도 러시아 극동지역을 신(新)경제지도를 완성할 마지막 퍼즐로 여기고 북방경제협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 극동지역에는 우리 기업 40여개가 진출해 있다. 하지만 인구 650만명의 작은 시장 규모, 1990년대 초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도입 이후 아직 남아 있는 관료주의, 인프라 부족 등으로 선뜻 투자를 망설이기도 한다. 2015년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 나와 3년째 활동하고 있는 국내 기업 관계자는 “환율 등 외부 변수, 정치적 영향 등으로 국내 기업들이 활발하게 극동지역에 진출하지 않았으나 한반도 평화무드를 타고 이런 변수가 걷히면 매력적인 지역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 중인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극동지역 내 생산기능에 수송, 하역, 보관, 가공, 포장 기능을 결합시키는 형태로 한·러 협력이 가능하다”며 “철도 중심의 단일운송을 도로, 항만, 항공과의 복합운송으로 전환시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블라디보스토크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英항구도시 브리스톨서 유년 보내며 전문대 수준의 교육 받아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英항구도시 브리스톨서 유년 보내며 전문대 수준의 교육 받아

    1살 많은 누나와 두 명의 남동생과 자라 생가는 단독주택 두 채 붙인 ‘땅콩주택’ 지금도 英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 형태 베델 할아버지는 바지선 운항하던 선주 어려서부터 일 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아 사립학교 ‘머천트 벤처러스 스쿨’서 공부 지역 상인조합 ‘기술인력 양성’ 위해 운영 1904년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삶을 정리한 최초의 기록인 신보 1909년 5월 7·8일자 ‘배설공(公)의 약전(略傳)’ 기사와 베델 연구 1인자로 불리는 정진석(79)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의 자료, 수전 제인 블랙(62)과 토머스 오언 베델(59) 등 베델 후손들의 증언, 서울신문 취재 결과 등을 모아 연대기순으로 소개한다.베델은 1872년 11월 3일 영국 남부의 항구도시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 1873년에 출간된 ‘1872년 브리스톨 인명록’에는 그의 출생지가 ‘Egerton villa, Egerton Road, Horfield’로 돼 있다. 우리 식으로 읽으면 ‘호필드 지역 에저턴 거리에 있는 에저턴 빌라’다. 호필드는 브리스톨 중심에서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150년 전 주소를 지금 영국 행정구역에 맞춰 분석해 보니 ‘에저턴 로드’는 현재 비숍스톤에 편입됐고, ‘에저턴 빌라’는 주소명에서 빠져 있다. 서울신문은 베델 후손들의 조언을 토대로 브리스톨시 아카이브(기록보관소)를 찾아가 150년 가까운 주소 변경 과정을 추적해 그가 태어난 곳이 현재 ‘비숍스톤 에저턴 거리 54번지’임을 확인했다. 지금 주소로는 ‘54 Egerton Road, Bishopston, Bristol’이다.1860년대 지어진 베델의 생가는 단독주택 두 채를 붙여서 지은 ‘세미디태치트 하우스’로, 우리로 따지면 ‘땅콩주택’에 해당한다. 한 집은 2층으로 돼 있고 방 세 개에 거실 두 개 정도를 갖췄다. 지금도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 형태인데, 경제적으로 중산층 가족이 산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 만난 한 마을 주민은 “(베델 생가를 포함한) 에저턴 거리의 주택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60년대에 빠르게 늘던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말했다. 베델의 할아버지인 토머스 베델은 브리스톨 인근 소도시 클리브덴에서 바지선(단거리를 다니는 화물 운반선)을 운항하던 선주였다. 그는 아들 토머스 행콕 베델(1849~1912)이 8살 때인 1857년 사망했다. 토머스 행콕은 21살이던 1870년 영국 성공회 전도사인 존 홀름의 딸 마사 제인 홀름(1848~?)과 결혼했는데, 당시 그는 맥주회사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토머스 행콕은 브리스톨에 살면서 네 차례 주소지를 옮겼지만 비숍스톤 일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다니던 회사가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등에는 ‘베델이 유대인이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 교수는 “19세기 유럽 내 유대인들의 생활상을 감안할 때 그의 할아버지가 바지선 선주였다거나 외할아버지가 기독교 전도사였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베델의 손녀 수전 제인도 “할아버지(베델)는 일본 고베의 기독교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고, 아들 허버트 오언 친키 베델(1901~1964) 또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의 삶과 전혀 다르다”고 덧붙였다. 토머스 행콕은 슬하에 네 명의 자녀를 뒀다. 첫째가 장녀 미니(1871~?), 둘째가 장남 어니스트 토머스(베델), 셋째가 차남 허버트(1875~1939), 넷째가 삼남 아서 퍼시(1877~1947)였다. ‘배설공의 약전’은 베델에게 두 명의 여자 형제가 있었다고 했고, 지금도 국내 자료 상당수에는 베델이 ‘3남 2녀 가운데 장남’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토머스 행콕의 유언장이나 베델 후손의 증언을 살펴볼 때 그에게 여자 형제는 미니 한 명 뿐이었다. 토머스 행콕이 1870년 결혼 당시 작성한 신고서에는 그의 직업이 ‘회계원’으로 기재돼 있다. 2년 뒤 베델이 태어났을 때 제출한 출생신고서에는 ‘맥주회사 서기’로, 셋째 허버트가 태어났을 때는 ‘상업 서기’로, 넷째 아서 퍼시 때는 다시 ‘회계원’으로 쓰여 있다. 그가 맥주회사에서 금전 관련 업무를 도맡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1881년 영국에서 실시된 인구 센서스와 베델이 학교에 들어간 1885년 9월 작성된 생활기록부에는 토머스 행콕의 직업이 ‘맥주회사 지방순회 영업사원’으로 바뀌어 있다. 이때는 사무실에서 회계 일만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주변 지역을 돌며 펍(영국식 맥줏집)을 관리했던 것 같다. 약전에는 베델이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마지못해 사업에 나섰다고 돼 있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배델의 할아버지인 토머스는 선박 소유주로 일종의 자본가였다. 최소한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서울신문이 찾아낸 베델 생가를 보더라도 그가 어린 나이에 장사에 뛰어들어야 할 만큼 가정 형편이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베델의 손자 토머스 오언은 “19세기 영국에서 (베델처럼) 사립학교 교육을 받거나 사업차 일본에 건너갈 수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면서 “할아버지(베델)는 일본에 가서도 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즐겼다고 들었다.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라고 전했다.베델은 시내 중심부의 ‘머천트 벤처러스 스쿨’에서 공부했다. 이 학교는 1856년 ‘브리스톨 무역·광산학교’로 문을 열었다. 이름이 말해 주듯 실업학교였다. 하지만 1885년 브리스톨 지역 상인들의 길드(동업조합)였던 ‘벤처상업협회’가 이 학교를 인수해 시설과 교육 과정을 고치고 교명도 바꿨다. 약전에는 베델이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런던으로 옮긴 뒤 거기서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영국에 사는 동안 브리스톨을 떠나지 않았다. 벤처상업협회는 브리스톨 지역 상인들을 대표하는 이익단체로, 1551년 영국왕 에드워드 6세에게 특허를 받아 법인 조직이 됐다. 영국은 17세기부터 글로벌 무역과 상업을 거머쥐며 ‘대영제국’으로 번영했는데, 벤처상업협회도 나날이 커지는 국력에 편승해 장사일로 큰 자본을 모았다. 이 길드는 유럽 각지 명문 대학들을 돌며 우수 시설과 커리큘럼을 벤치마킹한 뒤 브리스톨 시청 맞은편에 새 건물을 지었다. 당시 베델이 살던 지역에서 유일한 학교였다. 1885년 9월 신학기부터 신청사에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베델은 이때 입학했다. 이 학교는 현장 기술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지금의 전문대학 수준의 교육을 제공했다. 시 교육위원회가 작성한 학업 성취도 평가 자료를 보면 베델은 1885~1886년 학기 시험에서 수학 등 세 과목을 통과한 것으로 나온다. 이 학교는 베델이 졸업한 지 6년 뒤인 1894년 ‘머천트 벤처러스 공업대학’으로 또 한 번 명칭을 바꿨다. 이후 브리스톨대학과 서잉글랜드대학, 시티오브브리스톨 칼리지 등으로 나뉘어졌다. 이 가운데 브리스톨대학은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지역 최고 명문 대학으로 발돋움했다. 베델이 다녔던 ‘머천트 벤처러스 스쿨’ 건물은 지금도 브리스톨시 청사 옆에 남아있다. 지금은 내부를 리모델링해 주거 시설과 오피스텔 용도로 쓰이고 있다. 글 사진 런던·브리스톨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150조원의 금화 실은 러시아배 113년 만에 울릉 앞바다서 발견

    150조원의 금화 실은 러시아배 113년 만에 울릉 앞바다서 발견

    울릉도 앞바다에서 150조원의 금화와 금괴 5500상자(200여t)가 실려 있다고 알려진 러시아 순양함 드리트리 돈스코이(Dmitri Donskoii)호(6200t급)가 침몰된 지 113년 만에 발견됐다.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의 1급 철갑순양함 돈스코이호는 1905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일본 함대의 포위를 뚫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다 울릉도 앞바다 70㎞ 해상에서 침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공항동에 본사를 둔 해운건설업체 신일그룹은 지난 15일 오전 9시 50분쯤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그동안 돈스코이호 비공개 탐사를 준비해 온 신일그룹 탐사팀은 지난 14일 침몰 추정 해역에 유인잠수정 2대를 투입해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박을 발견했다. 이어 고해상도 영상카메라로 장착된 포와 선체를 돈스코이호 설계도와 비교해 100% 동일한 것을 확인했다. 15일 오전 9시 48분엔 함미에서 ‘DONSKOII’(돈스코이)라고 선명하게 적혀있는 함명을 발견하고 촬영했다. 또 203mm 대포와 152mm 장거리포, 다수 기관총, 앵커, 연돌 2개, 마스트 3개, 나무로 만든 데크와 철갑으로 만든 좌우현 선측 등이 계속 확인됐다. 돈스코이호는 뱃머리가 430m 지점에 걸려있고 뒷부분이 380m 수심에서 수면을 향해 있다. 포격을 당해 선체가 심하게 훼손돼 함미 부분은 거의 깨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선체의 상갑판은 나무로 되어 있어 거의 훼손되지 않았고 선체 측면의 철갑 또한 잘 보존돼 있다고 신일그룹 측은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 배에 금화와 금괴가 실려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본체 인양에는 세계적 인양업체가 추가로 참여하며, 돈스코이호 원형을 그대로 보전하기 위하여 통째로 인양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일그룹 관계자는 “이번 발견으로 돈스코이호 존재와 침몰 위치에 대한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며 “탐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소유권 등기와 본체 인양을 위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울릉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속초항~북방항로 9월부터 운항 재개

    강원 속초항에서 러시아 자루비노~중국 훈춘~일본 기타큐슈를 잇는 북방항로가 빠르면 오는 9월부터 재개된다. 2014년 6월 운항이 중단된 지 4년 만이다. 3일 강원도에 따르면 노선에 투입될 선박 인수 작업이 이달 중 완료된다. 선박 인수가 끝나면 안전검증을 거쳐 8월 중 해양수산부에 면허 신청을 하고 9월 중에는 시범운항에 나설 계획이다. 노선은 속초~러시아 자루비노~중국 훈춘~일본 기타큐슈 등을 거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는 노선 활성화를 위해 러시아 자루비노항에서 훈춘으로 넘어가는 통관 절차 간소화를 중국 지린성과 러시아 연해주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북방항로는 북방경제시대의 중요성이 커지는 중국 동북 3성을 연결하는 항로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유엔의 대북 제재가 완화되면 북강원도 원산과 연결해 운항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원산은 국제도시를 목표로 북한이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관광·물류 거점지역이다. 북방항로는 2000년 운항을 시작했지만 적자 누적과 세월호 참사 이후 승객이 급감해 2014년 6월 27일 중단됐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왕족 신분 버리고 일반인과 결혼하는 ‘日공주’ 화제

    왕족 신분 버리고 일반인과 결혼하는 ‘日공주’ 화제

    아키히토 일왕의 5촌 조카인 아야코 공주가 일반 회사원과 결혼할 계획이라고 교도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아야코 공주는 아키히토 일왕의 사촌 동생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1954∼2002)의 셋째딸이다. 다이쇼 일왕 증손녀로, ‘여왕’이라는 칭호를 갖고 왕족에 속해 있다. 궁내청은 아야코 공주가 선박회사 닛폰유센 사원 남성(32)과 10월 29일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왕족의 결혼은 아야코 공주의 언니 노리코 씨가 2014년 결혼한 이후 4년만이다. 아야코 공주는 현재 일본 지바현 조사이 국제대 복지종합학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야코 공주의 결혼 발표와 관련해 일본에서는 여성 왕족이 일반인과 결혼해 분가하면 왕족 신분을 이탈하는 규정을 놓고 논란이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왕실 관련 규정을 담은 ‘왕실전범’은 왕족 여성이 일반인과 혼인하면 왕족 신분을 떠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안그래도 저출산으로 왕족이 적은데, 이런 규정 때문에 왕족 수가 더 줄어들어 왕실 활동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아야코 공주의 언니 노리코 씨 역시 일반인과 결혼해 왕족에서 이미 이탈했고, 아키히토 일왕의 친손녀 마코(26) 공주도 일반인과 결혼할 계획이어서 왕실전범이 바뀌지 않는 이상 왕족에서 제외된다. 마코 공주와 아야코 공주가 예정대로 일반인과 결혼하면 왕족은 19명에서 17명으로 줄어든다. 여성 왕족 역시 14명이었던 것이 12명이 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6월 국회를 통과한 ‘일왕 퇴위를 실현하는 특별법’의 ‘부대 결의’ 사항에 여성 왕족이 일반인과 결혼한 후에도 왕족을 유지하며 ‘여성 미야케’(宮家)를 창설하도록 하는 방안을 ‘신속하게’ 검토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바다의 무법자’로 등장한 중국 어선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바다의 무법자’로 등장한 중국 어선

    지난 18일 오전 11시쯤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중국명 시사(西沙)군도, 베트남명 호앙사 군도)에서는 강풍과 높은 파도가 일고 있었다. 악천후를 만난 베트남 어선 20척은 서둘러 조업을 포기하고 암초로 대피했다. 베트남 어선에는 어부 100여 명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나타난 대형 중국 어선들의 위협에 혼비백산한 베트남 어선들은 곧바로 물러났다. 베트남 어선들은 베트남 재난대응수색구조위원회에 급히 도움을 요청했고 베트남 당국은 중국 측에 현지 상황을 설명하고 구조 지원을 당부했으나 끝내 허사였다. 지난 5월에도 많은 중국 어선들이 해양경비대를 대동하고 베트남 중남부 리 선 섬으로부터 불과 40 해리(약 74㎞) 떨어진 해역에서 조업했으며 수십 척의 중국 선단이 베트남 어선들을 쫓아낸 경우도 수차례 있었다. 중국 어선들이 ‘바다의 무법자’로 등장했다. 중국 어선들은 우리 서해를 비롯해 가까이로는 동중국해·남중국해, 멀리는 인도양과 아프리카, 남미 해역까지 진출해 세계 어장을 독식하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 어선들을 공격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어민은 2000만명이 넘고 동력 어선만 해도 70만척에 이르는 엄청난 숫적 우세를 바탕으로 전 세계 바다에서 무람없이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전 세계 어장에서 오징어를 남획하는 바람에 자원 고갈, 가격 급등, 수익성 악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오징어 어선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자국 연안은 물론 세계 각국의 인근 공해로 나아가 공격적인 조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멀리 아르헨티나 인근 공해까지 가서 긴 줄에 낚시를 여러 개 달아 낚는 전통적인 오징어 조업과 달리 그물로 한꺼번에 대량으로 잡는 싹쓸이 조업을 하고 있다고 SCMP가 전했다. 속초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는 박정귀씨는 “중국 어선들이 첨단장비로 바다 바닥을 긁어내듯 오징어 싹쓸이를 하면서 낡은 등에 의존해 오징어잡이를 하는 한국 어선들은 중국의 15%밖에 잡지 못하고 있다”며 “수입이 60%나 급감해 배 연료비용도 안 나올 지경”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동남아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 중인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일대에서는 이들은 ‘해상 민병’으로 불리며 군사훈련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어선 위에 살수장치를 장착하고 다른 나라 어선이나 선박이 분쟁해역 내에 들어오면 쫓아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1970년대 중반부터 영유권 분쟁지역뿐 아니라 우리 서해상에서도 해상민병을 활용 중이다. 더군다나 해양강국 건설을 모토로 하는 중국 정부는 어업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불법 조업 단속에는 미온적이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서아프리카에서 중국 깃발을 단 선박은 1985년 13척에서 2013년 462척으로 30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8년 동안에 걸쳐 잠비아, 기니, 모리타니아, 세네갈, 시에라리온 인근 해안에서 적발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114건으로 집계됐다. 이 어선들은 이 부근 바다를 현지 어업 허가권 없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구촌은 오징어를 연평균 270만t 가량 소비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오징어 어선의 50~70%를 보유하고 오징어 어획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징어는 1년 정도밖에 살지 못하는 특성상 군집의 크기와 위치 추적이 쉽지 않아 관련 정보 확보가 중요하다. 중국 정부는 인공위성과 정부 소유 탐사선을 통해 오징어 군집의 성장과 이동에 대한 정보를 대량 수집해 자국 오징어 어선에 알려준다. 중국 어선들의 오징어잡이 추적 정확도가 90%에 이르는 것도 이 덕분이다. 중국이 막대한 정부 지원을 통해 모니터링 능력에서 다른 국가들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거액의 예산을 들여 어선 대형화를 지원하고 연료 보조금을 대주는 등 중국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도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 어선과는 달리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하는 다른 나라 어선들이 이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중국의 한 전문가는 “해양대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 정부는 전 세계 바다에서 다른 나라의 해군력에 맞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길 원한다”며 “오징어 조업은 이를 위한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중국이 오징어 등 어족 자원은 물론 원유, 광물 등 다른 천연자원을 탐사하고 채굴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전략을 펼 수 있다는 얘기다.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중국 오징어 어선이 몰려드는 바람에 지난해 한국의 오징어 어획량은 2003년보다 48% 감소했으며 그 여파로 오징어 가격은 40% 이상 폭등했다. 같은 기간 일본은 더 큰 피해를 입어 어획량이 무려 73% 곤두박질쳤다. 대만도 중국 오징어 어선의 조업으로 인해 어획량 급감과 가격 급등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중국 오징어잡이 정보력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항의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중국에서 오징어를 수입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도 가격 급등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품질이 좋은 오징어는 중국 내에서 소비되는 바람에 이들 나라의 수입 오징어 질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중국이 근시안적인 싹쓸이 조업 행태를 그만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속 가능한 어업’을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중국해양대 톈융쥔 교수는 “원양 어업의 역사가 중국보다 훨씬 긴 서구 국가들은 어업은 물론 어족 자원의 보존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며 “중국이 진정한 해양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을 본받아 지속 가능한 어업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 베트남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에서는 중국 대형 어선들이 베트남 어선을 잇따라 공격하는 바람에 베트남 정부와 어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베트남 어업협회는 지난 4월 파라셀 군도의 링컨 섬 근처에서 중국 대형 어선 2척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 베트남 어선에서 어부 6명이 구조됐다고 밝혔다. 중국 어선들이 베트남 어선을 쫓아와 들이받았고 이후 무장 괴한들이 베트남 어선에 올라 어구와 어획물을 강탈하기도 했다. 중국 어선들이 레이저 공격을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 과학기술 잡지 파퓰러 메카닉에 따르면 중국이 어선을 훈련시키고 선원들에게 보급품을 지원하고 있다, 이 어선들은 중국 군 당국의 눈과 귀 역할을 담당하면서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역을 드나들고 있다”며 “해상민병 역할을 하는 이들 어선이 레이저를 이용해 저공 비행하는 미국 정찰기 등을 공격하고 있다”고 파퓰러 메카닉이 전했다. 때문에 피해 당사국들은 어선 나포, 벌금 부과, 선원 재판 회부 등으로 갖가지 방법으로 대응하고 일부 국가는 총격과 전투기 출동 같은 무력 대응도 불사하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인도네시아 해군은 2016년 나투나 제도 앞바다에서 중국 어선이 불법 조업을 하자 구축함을 파견해 승무원 8명을 억류했다. 이 과정에서 조업 중단 명령을 거부하는 중국 어선에 발포까지 했다. 인도네시아는 불법 조업을 단속하기 위해 나투나 제도에 F-16 전투기 5대를 배치하기로 했다. 필리핀 해안경비대도 같은 해 바부얀 해협에서 필리핀 국기를 달고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2척을 나포했다. 필리핀은 어획물을 압수하고 선원 25명을 억류했다. 아르헨티나 해군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460km 떨어진 푸에르토 마드린 연안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에 발포해 침몰시켰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중국 어선 3척을 불법 조업과 배타적경제수역(EEZ) 무단 침입 혐의로 억류하기도 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해적 잡는데 왜 막강 문무대왕함이 떴을까?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해적 잡는데 왜 막강 문무대왕함이 떴을까?

    오는 28일 6번째 소말리아 파견을 준비 중인 청해부대 제27진 왕건함 지휘부가 21일 정부세종청사 해양수산부 장관 집무실을 찾았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최근 소말리아는 물론 서아프리카 기니만 일대에서도 해적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며 우리 선원과 선박의 안전을 위한 완벽한 임무수행을 당부했다. 청해부대 소관부서인 국방부가 아닌 해양수산부에서 파병을 앞둔 지휘관을 불러 격려와 당부를 남긴 것은 그만큼 악화된 우리 해상교통로의 치안 상황을 말해준다. 최근 중동과 아프리카 정세 불안이 심화되며 소말리아 아덴만은 물론 아프리카 서부 해안까지 해적들의 활동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발생한 마린 711호 피랍사건은 우리나라가 이제는 아덴만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서부 해역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 사건이었다. 그동안 아프리카 서부 해안은 아프리카 동부의 아덴만에 비해 해적 출몰이 많지 않은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세력 보코하람의 세력 확산 등 지역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기니만 일대를 중심으로 해적 활동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활동 영역 역시 점차 먼 바다로까지 넓어지면서 우리의 해상교통로가 위협당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모두 나서 아프리카 정세 불안을 평정해 해적 발생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은 군함을 보내 해적을 억제하고 소탕하는 것 뿐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해적과 무타협 원칙을 고수하며 억제 및 소탕작전을 수행하고 있고, 지난 마린 711 피랍사건 때도 청해부대의 압박 전술이 인질 석방에 큰 기여를 했다. 당시 나이지리아 해적 소굴 앞에 진을 치고 해적들을 압박했던 문무대왕함은 해적을 상대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막강한 군함이었다. 1분에 20발의 포탄을 날릴 수 있는 고성능 함포, 수백km 밖의 표적 건물 몇 층 몇 번째 창문까지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정밀 유도탄을 갖춘 구축함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몇 분 안에 해적 본거지 자체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제법을 준수하는 한국해군이 주권국인 나이지리아 영토 내에 있는 해적 본거지를 직접 포격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해적선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적들이 무장한 채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면 청해부대는 적법절차에 따라 이들을 공격해 격침시킬 수 있다. 바다에는 청해부대가, 내륙으로 가는 길에는 악명 높은 보코하람과 정부군이 버티고 있으니 인질 대치 상태가 계속되는 한 해적들은 본거지에 갇혀 나올 수가 없었다. 해적들은 결국 인질 석방을 택했고, 인질 신병 인도와 함께 해적들에 대한 봉쇄도 풀렸다. 적의 눈앞에 군함을 들이밀고 압박을 가해 요구사항을 쟁취하는 18~19세기 스타일의 ‘포함외교’가 먹힌 것이다. '포함외교'(Gunboat diplomacy)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압박외교전술의 형태다. 수백문의 함포를 장착한 거대한 전함을 적의 바닷가에 띄워놓고 요구사항을 제시하며 협박하는 것이다. 일본을 개항시켰던 쿠로후네 사건이나 조선시대 있었던 신미양요가 바로 이러한 포함외교의 사례였으며, 현대에는 미국이 항공모함을 이용해 상대국을 압박하는 사례들이 바로 이런 포함외교의 케이스라고 하겠다. 이런 유형의 포함외교는 주로 주권국과 주권국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이번 청해부대의 사례처럼 현대에 들어와 해적을 상대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포함외교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프랑스와 러시아다. 해적 사건이 발생하면 그 어떤 협상도 없이 군사력을 동원해 구출작전으로 사태를 해결해온 프랑스는 지난 2009년 4월 자국인 여행객들이 탑승한 요트가 납치되자 구출작전을 감행하는 한편, 요트 피랍을 자행한 배후 세력을 파헤쳐 해당 해적 조직의 근거지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곳에 구축함을 파견해 근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해적 모선 4척과 고속보트 6척을 격침시킨 뒤 살아남은 생존자 35명을 생포해 본국으로 압송했다. 프랑스 선박을 건드리면 본거지가 박살난다는 소문은 해적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고, 이후 프랑스 국기를 게양한 선박을 건드리는 해적은 없었다. 러시아는 프랑스보다 더 강경했다. 러시아는 지난 2008년, 자국 선원이 일부 탑승한 우크라이나 선적 화물선이 피랍되자 해적 근거지를 향해 수백발의 미사일을 탑재한 초대형 핵추진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함을 출동시켜 대응하는가 하면, 얼마 뒤 러시아 선적 유조선이 피랍되자 중무장한 구축함 ‘마샬 샤포시니코프’함을 보내 화력으로 해적을 제압하고 선원들을 구출했다. 체포된 해적들은 모든 물품을 압수하고 맨몸으로 소형 보트에 태운 뒤 해안에서 560km 떨어진 망망대해, 그것도 식인상어 서식지에 방면하고, 그들의 모선(母船)은 함포 사격훈련용 표적함으로 벌집을 만들어 버린 사례가 있었다. 이 사건 뒤로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러시아 국기를 단 선박이 납치되는 일은 재발하지 않았다. 러시아 선박이나 선원을 납치할 경우 협상이나 보상금은 없다는 것을 해적들이 확실히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군함에 의한 해적 억제 활동이 효과를 보기 시작하면서 주요 선진국들은 인도양과 아덴만 일대에 대규모 연합함대를 꾸려 상시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현재 이 해역에는 미국 등 10여 개국 해군이 참여하는 제150연합임무대(CTF-150)와 대한민국 등 15개국이 참가하는 제151연합임무대(CTF-151),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중국과 러시아 함대까지 수십 척의 중무장한 군함들이 해적 퇴치 작전을 벌이고 있다. 그 덕분에 최근 1~2년간 이 해역의 해적은 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급속히 위축됐다. 그러나 내전과 기아, 자원 부족 등 해적 창궐의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군사력을 동원한 해적 소탕은 풍선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동아프리카 해역의 해적들이 서아프리카 해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소말리아 해적의 쇠퇴 시기와 맞물려 최근 동아프리카 해역의 해적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소말리아 해역이 여러 나라의 군함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것처럼 머지않은 미래에 동아프리카 해역에도 이 같은 국제연함함대의 작전 소요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동아프리카 해역은 유럽을 오가는 우리나라 국적 상선들의 통행이 잦은 곳이라는 점에서 우리 해군의 추가 파병 필요성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소말리아 해적퇴치 작전에 해군 핵심 전력인 한국형 구축함(DDH) 1척을 6개월 주기로 파견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단 6척뿐인 구축함 중 3척이 청해부대 파병을 위한 작전·정비·교육훈련으로 묶여 있어 수년째 심각한 전력 공백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추가적인 구축함 파견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해적 퇴치 활동을 전담할 부대를 별도로 만들고, 일부 선진국의 사례처럼 해적 퇴치를 위한 원양초계함(OPV : Offshore Patrol Vessel)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원양초계함은 함포와 헬기 등 해적을 제압할 수 있는 충분한 무장을 탑재하지만, 구축함처럼 고성능 레이더나 소나, 미사일 등을 탑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같은 크기 구축함의 15~30% 가격으로 도입이 가능하다. 이러한 원양초계함이 3~4척 배치된다면 한반도 영해 방위를 위한 핵심전력인 구축함의 전력공백 없이도 우리의 핵심 해상교통로를 해적으로부터 보다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돈과 인력이다. 해외 선진국 사례를 살펴보면 이러한 원양초계함 1척의 가격은 1000억 원을 조금 상회한다. 3~4척을 건조하려면 3~4000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며, 자동화시스템을 많이 도입하더라도 3~4백여 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한데, 현재 예산과 인력 모두 빠듯한 사정인 해군이 이러한 원양초계함을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마린 711호 피랍사건을 계기로 청해부대와 같은 전력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는 지금, 국민들이 나서서 해군의 손에 우리 해상교통로를 지킬 수단을 쥐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트럼프의 ‘악명 높은 악수’…김정은과는 어떻게

    트럼프의 ‘악명 높은 악수’…김정은과는 어떻게

    트럼프 ‘기이한 악수’에 외국 정상들 당황최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악수 싸움’북미 회담 앞두고 WSJ “역사적인 악수” 소개지난 4월 문 대통령·김정은 ‘세기의 악수’ 평가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회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공개석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서 어떤 장면을 연출할지도 관심거리다. 특히 외국 정상을 만날 때 짓궂게 악수하는 것으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나눌 ‘세기의 악수’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회담은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자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비핵화 담판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악수는 커다란 역사적 상징성을 띨 전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정상들과의 만남에서 돌발적인 악수 자세로 여러 차례 화제가 됐다. 지난해 2월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먼저 만났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9초간 이어진 긴 악수에 당황해하면서 “나를 봐 달라(Please, Look at me)”는 말과 함께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인사라기보다 힘겨루기처럼 보였다는 언론의 보도가 이어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는 아예 악수를 나누지 않았다. 지난해 3월 열린 정상회담에서 사진기자들의 악수 요청에 메르켈 총리가 “악수할까요?”라고 물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못 들은 척 악수를 하지 않고 얼굴을 찌푸렸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를 만나 손을 꼭 쥐고 토닥인 것과는 매우 상반된 모습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악수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캐나다 퀘벡주 샤를부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손등에 엄지손가락 자국이 하얗게 날 정도로 손을 꽉 잡았다. 71세의 트럼프 대통령은 40세의 마크롱 대통령이 가진 악력에 다소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고 AFP는 묘사했다.지난해 5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맞잡은 손을 여러 차례 강하게 위아래로 흔들었고, 막판에 트럼프 대통령이 손을 놓으려 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손을 움켜쥐고 지지 않겠다는 등 눈을 응시하며 6초 가량 악수를 이어갔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을 앞두고 이전에 먼저 이뤄졌던 ‘역사적인 악수 : 과거의 정상회담’을 소개했다. 1972년 2월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의 베이징 회담은 미·중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던 닉슨 전 대통령은 이를 “세계를 바꾼 한주”라고 표현했으며, 미국 정부는 이 회담 이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했다. 1978년 9월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미국 대통령 공식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과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간 회담은 중동평화에 초석을 닦은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서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주고 이집트는 이스라엘 선박에 수에즈운하를 연다는 역사적 협상이 맺어졌고, 이는 사다트와 베긴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겼다. 198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19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1987년 미국 워싱턴, 1988년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S.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회담도 역사적 만남으로 꼽힌다. 선거운동 기간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표현했던 레이건 전 대통령은 수년에 걸쳐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회담하며 전략 핵무기 감축 등의 합의를 이뤘으며, 냉전 종식의 길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2013년 12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조우해 손을 맞잡은 것도 역사적인 ‘악수’로 꼽힌다. 이 ‘깜짝 악수’는 수십 년간 적국으로 존재했던 두 나라의 정상이 공개석상에서 나눈 첫 악수였다. 몇 달 후 양국 관계는 급격한 해빙기를 맞았다. 2015년 7월 외교 관계가 복원됐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88년 만에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했다. 미국은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했다. 정상들의 악수 외교와 관련해서 지난 4월 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악수한 장면이 오바마 전 대통령과 카스트로 전 의장과의 악수 등을 포함해 ‘세기의 악수’로 평가된다고 각국 외신들이 보도한 바 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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