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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라진 위상 어디까지 왔나

    만화에 대한 사회의 대접이 달라졌다.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낙인찍혀 걸핏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던 ‘천덕꾸러기’에서 ‘21세기 문화산업의 총아’로떠오르고 있다. 단속만을 일삼던 정부는 지난 3월부터 한달에 한번씩 좋은 만화를 선정해공공도서관에 비치하는 ‘전향적인’태도를 취하고 있다.만화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채택한 부천시는 지난 4월 ‘만화정보센터’를 세우고,만화산업주식회사 (주)PCN에 대주주로 참여했다.그런가하면 경희대 수원캠퍼스는 도서관에 만화방을 개설했다. 10년 넘게 양자대결 구도를 유지해 온 출판만화시장은 올들어 일대 격변을맞고 있다.서울문화사와 대원이 팽팽하게 맞서온 시장에 시공사가 뛰어들면서 삼파전을 벌이게 된 것.지난해부터 월 평균 15권 안팎의 단행본을 내놓으며 기회를 노려온 시공사는 지난 10일 격주간 순정만화잡지 ‘케이크’창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시장진입을 선언했다.만화잡지도 우후준숙격으로 늘어나면서 1,000원짜리 상품도 선보였다. 만화에 관한 책들 역시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유럽 8개국의 만화문화를짚은 ‘유럽만화를 보러 갔다’(이동훈)나 일본 만화를 집중 분석한 ‘아니메가 보고 싶다’(박인하 외)‘유쾌한 일본만화 편력기’(이명석)등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만화평론가란 직업도 이제 낯설지않다. 만화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90년 국내 처음으로 공주문화대학에 만화예술과가 개설된 이래 지금까지 30여개 대학에 만화관련학과가생겼다. 그는 “선진국에 비해 늦긴 했지만 만화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개선되고 있는점은 다행”이라면서도 ‘만화진흥법’이나 ‘만화진흥공사’등과 같은 정부의 획기적인 지원책이 미흡한 점을 아쉬워했다. 이순녀기자 * 공공박물관 교육강좌 수강생 북적 공공 박물관,문화재청 등 문화재 관련 기관의 문화교육강좌가 인기를 끌고있다.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일반인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충족욕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문화재기관의 사회교육기능이 강조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국립 중앙박물관은 지난 5일 ‘어린이박물관교실’에 참여할 수강생을 모집했다.당초 아침 9시부터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초등학생들은 새벽 5시부터 부모들 손을 잡고 몰려 들었다.이 때문에 접수도 받기전에 모집인원이 넘어 버려 뒤늦게 온 사람들을 돌려 보내느라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중앙박물관은 또 봄부터 가을까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실시하는 노인문화강좌와 주부문화강좌의 수강생도 지난해 174명,153명에서 올해는 217명,214명으로 늘렸다.박물관은 이와 함께 ‘오늘은 박물관에’와 ‘대학·대학원생박물관실습’코너를 신설하는 등 프로그램도 다양화했다. 국립 민속박물관도 지난해 여름방학 인기를 끈 ‘청소년 민속문화탐방’프로그램을 올해 더욱 확대했다.400명이던 수강인원을 600명으로 200명 늘렸고 초등학생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누어 고학년생에게는 짚·풀 공예교실로,저학년생에게는 종이로 거북선 등을 만드는 페이퍼 매직으로 세분화했다.또초등학생과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허수아비 만들기,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할머니·손녀 공예교실 등도 준비돼있다. 민속박물관은 앞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우리문화체험,공예교실 등을 새로 선보일 방침이다. 지난 19일 창경궁에서 처음으로 열린 문화재청의 ‘고궁 청소년 문화학교‘에도 300여명이 참석했다.고궁 청소년 문화학교는 서울시내 5대궁을 둘러보며 고궁의 연혁과 전통건축,조경 등에 대해 배우는 것으로 지난해 여름에는모두 30회 열려 1만638명이 교육을 받았다. 중앙박물관 최무홍 섭외교육과장은 “유물전시는 박물관에 한번 오게 하는데 그치지만 문화강좌를 통해 일반인들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 박물관 찾기가 생활화된다”며 “박물관도 사회교육을 통해 서비스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태순기자 stslim@ * 만화의 상상력 세상을 사로잡다 만화가 문화의 지형도를 바꾼다.90년대 중반이후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을 뿐더러 영화,드라마,연극,미술 등 전방위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애들 장난’쯤으로 치부해온 만화 기법이 할리우드 첨단 SF영화에 즐겨 차용되는가 하면,‘유치하고,황당하다’고 폄하되던 순정만화스토리가 드라마와 연극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개봉된 ‘와일드와일드웨스트’를 비롯해 ‘매트릭스’‘맨 인 블랙’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SF물들은 만화적 상상력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만화에서나 볼 법한 기발한 장면들을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으로 현실화시켜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이런 영화에 발을 구르며 열광하는 관객층은 대부분 만화를 보며 자란 만화세대들.그렇지 않은 이들은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아니면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비웃는다. 지상 최대의 영화공장 할리우드가 만화에 눈돌리는 이유는 뭘까.만화평론가 이명석씨는 “과학의 발달로 영화의 표현영역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풍부한 상상력과 실험적인 형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분석한다.영화가 기술적인 제약에 묶여있는 동안 저예산 실험장르인 만화는 끊임없이 소재와 형식을 개발해 왔고,수십년간 축적해온 아이디어를 이제 영화에 수혈할 때라는얘기다.만화적 상상력을 첨단 기술력으로 스크린에 형상화하는 할리우드 SF영화의 경향은 앞으로 더욱 심화된다는 게 그의 설명. 국내에서는 TV드라마가 ‘만화 따라하기’에 앞장서고 있다.얼마전 SBS에서 방영된 ‘토마토’는 일본 만화 ‘해피’를 베꼈다는 의혹에 시달릴 만큼등장인물의 캐릭터와 구성이 ‘만화적’이었다.단순함을 넘어 유치하기까지한 이 드라마는,그러나 50%에 가까운 시청률을 올리는 이변을 낳았다.비슷한 시기에 KBS는 황미나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우리는 길잃은 작은새를 보았다’를 방영했다.지난해에는 허영만의 만화를 기본 뼈대로 삼은 SBS ‘미스터Q’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드라마뿐만 아니다.지난달 말부터 대학로 은행나무소극장에서 장기공연중인 연극 ‘유리가면’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동명의 일본 순정만화가 원작.단순히 스토리만 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만화적 판타지를 무대위에 재연하는데 역점을 두었다.화가 박관욱씨는 이달 초 경복궁옆 현대화랑에서 연 개인전에서 추상화속에 만화주인공 미키마우스를 그려넣은 독특한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이질적이고 낯설지만,고정관념을 가볍게 뒤엎는 기발함이 신선하다는 평이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영화로 만들어져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80년대와지금은 사회환경이 엄청나게 달라졌다.만화방에서 어른들 몰래 만화를 본 이전 세대와 달리 당당하게 만화책을 사서 보며 자란 지금의 20∼30대는 모든문화에서 만화적 요소를 즐기길 원한다”문화평론가 김지룡씨는 만화에 익숙한 세대가 기성세대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이같은 배경에는 일본 만화문화의 영향이 크다.익히 알려졌다시피 70년대이후 일본 만화는 애니메이션,캐릭터,영화,드라마,소설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며 일찌감치 문화산업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일본이 이미 20년전 개척한 황금산업에 우리는 이제 겨우 손댄 셈이다. 만화 기법 혹은 만화 코드가 장르를 초월해서 확산되는 현상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영화나 드라마,소설 등 타장르가 히트한 만화를 노리는 가장 큰이유는 그만큼 위험부담이 줄어드기 때문이다.김지룡씨는 “남의 인기에 편승하다보면 기초체력이 부실해 질 수 있다”면서 “한쪽에서는 돈을 벌고,다른 쪽에서는 실패할 각오를 하고 다양한 실험에 재투자하는 일본의 문화정책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어찌됐든 만화가 세상을 움직일날도 그리 먼 미래의 얘기만은 아닌 듯하다. 이순녀기자 coral@
  • 다시 불붙은 ‘화랑세기’ 眞僞논쟁

    지난 89년 부산에서 필사본이 발견된 이래 사학계에서 줄기찬 진위논쟁을벌여온 ‘화랑세기(花郞世紀)’가 완역,출간됐다.서강대 이종욱 교수는 5일한문 원문에 한글 번역본을 붙여 ‘화랑세기-신라인의 신라이야기’ (소나무펴냄 1만3,000원)를 출간,필사본 ‘화랑세기’를 둘러싼 진위논쟁에 새로운도전장을 던졌다.만약 이 교수의 주장대로 필사본 ‘화랑세기’가 진짜일 경우 신라사는 물론 화랑·고대 한일관계사 등을 새로 써야할 상황이어서 국내사학계에 일대 소용돌이가 예상된다. ‘화랑세기’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학자 김대문이 680년경 편찬한 것으로 화랑들의 전기(傳記)다.이 책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후대 문헌에서 인용되고 있지만 조선초에 멸실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진위논쟁이 시작된 것은 지난 89년 부산에서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베껴 쓴 것으로 추정되는 32쪽짜리 필사본 일부가 발견된데 이어 95년 노태돈 서울대교수가 보다 완전한 모습의 162쪽짜리의 또 다른 필사본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이 두 필사본들은모두 일제당시 일본 왕실도서관에 근무하던 조선인 박창화(65년 사망)가 필사한 것으로 많은 내용은 대동소이하다.그동한 사학계에서는 이 필사본들을 두고 필사자인 박창화씨가 소설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만든 허구라는 조작설과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그대로 옮겨적은 것이 맞다는 진본설로 팽팽히 맞서왔다. 이 필사본을 두고 가짜라고 주장하는 측은 우선 필사본의 내용중 화랑들과관련한 내용이 종래의 학설과 너무 딴판이라는 것.그동안 화랑은 ‘세속5계’로 상징되듯 충효를 바탕으로 한 청년 무사집단으로 인식돼 왔다.그러나필사본에 등장하는 화랑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관(神官)의 보조역할자로나와 있다. 특히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들이 난잡한 섹스집단 정도로 묘사된점도 의외다. 이에 대해 완역자 이 교수는 “신라사를 유교적 도덕관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그런 식이라면 ‘화랑세기’와 유사한 내용이 포함된 ‘고려사’에 대해서도 진위논쟁이 있어야 마땅하다”고 반박했다.이 교수는 특히 필사본에 등장하는 남여 400여 명의 계보가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것으로봐 원본을 보고 베낀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사본‘화랑세기’는특히 가야 멸망시기 등을 기존 사서(史書)보다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가야가 562년에 멸망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필사본 ‘화랑세기’는 561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신라 진흥왕이 가야를 멸망시킨 후 세운창녕순수비는 561년에 건립됐다고 비문에 적혀 있다.이 책은 또 김유신이 김춘추와 몰래 정을 통해 아이를 밴 문희를 불태워 죽이려 할 때 문희를 구해준 사람이 ‘선덕여왕’이라고 기록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달리 ‘선덕공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뒷날 문무대왕이 된 문희의 아들은 선덕여왕이왕위에 오른 것보다 6년전에 태어났으므로 ‘선덕공주’라는 표현이 맞다.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에서 비교적 중립적 견해를 보여온 이도학한양대 강사는 “신라시대의 역사를 후대의 사서인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전제하고 “기존상식이나 선입관에 위배된다고 해서 모두 가짜라고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본 가능성 쪽으로 견해를 폈다.현재 학계에서는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본론보다는 가짜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번 논쟁으로 어느 한 쪽은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8)남부해상권 장악한 백제

    ◇ 남부해상권 장악한 전성기의 백제 백제는 정복군주인 근초고왕때에 고구려의 남부를 쳐서 경기만을 내해로 삼고 황해를 건너 동진(東晋)과 교역하면서 해외진출을 시작하였다.그리고 남으로는 전라도해안까지 영역을 넓혀 일본열도로 가는 출해구로 삼았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응신(應神)천황때에 백제등 삼국으로 부터 많은 선진문물이 들어와 문화성장에 활력소가 되었다.또 아직기(阿直岐)와 왕인(王仁)이유교문물을 전해주었고,‘한인지(韓人池)’라는 저수지도 파고, 수로를 만들고 제방을 쌓았다.백제인은 좋은 말을 데려다 사육을 했다.모두 배를 타고온 것들이다. 이와 같은 이주(移住)성격의 비조직적인 진출은 5세기 들어 조직적이 되었고,중국에서 일본에까지 이르는 국가적인 대 진출사업으로 확대되었다.고구려 장수왕에게 한성을 점령(475년)당하는 등 국난을 겪기도 했지만 수도를웅진(공주)으로 옮기고 나서 백제는 금강을 출해구로 삼아 황해로 진출하면서 국가재건을 도모하였다. 중흥군주인 동성왕은 외교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자강이남의 남제(南齊)와 교섭을 시도하였다.484년에는 사신선이 서해 한 가운데에서 고구려수군에게 저지당하였으나, 곧 해양력을 회복하고 황해 남부의 신항로를 개척,양(梁) 진(陳)에 이르기까지 외교 교역 문화교류 등을 활발히 하였다. 그래서 수서(隋書)에는 백제에 왜와 중국사람이 많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해양교류를 통해서 국제화가 되고, 수준높은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킨 것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자치통감’에는 바로 이 시대에 북위가 백제를 쳤으나 패했다는 기록이 나온다.남제서(南齊書)에는 490년에 위가 기병 수십만으로 백제를 공격했다가 크게 패했으며,이에 동성왕은 큰 공을 세운 백제의장군들에게 북위지역의 왕이나 후(侯)등 관작을 줄 것을 남제에 요구한다.남제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오던 백제가 남제와 적대관계에 있던 북위를 물리친 대가를 요구한 것이다.이 전쟁에서도 수군끼리 싸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특히 목간나(木干那)라는 백제의 장군은 성과 배를 부순 공이 있다고나오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대규모의 해전이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 북위는 화북지방에 있었다.그렇다면 백제의 위치와 해양능력은 어떠했을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거기다가 일부 사서에는 백제가 ‘양자강 좌우에서 활동하였다(據江左右)’고 기록하고 있다.좀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백제는 당시에 해양을 무대로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던 국가임이 분명하다.또498년에는 공물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탐라국(제주도)을 정벌하러 남진하다가 영산강 지역에서 중지했다.백제의 해군력을 익히 아는 탐라가 겁을먹고 항복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황해와 남해,동중국해를 연결하는 해상네트워크의 접점으로 남중국 한반도 일본열도로 이루어진 삼각형의 중핵에 위치해 있다.백제는 이곳을 장악함으로써 광범위한 해양활동망을 구축했고,일본열도로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규슈의 서북쪽,아리아케해(有明海)에서 기쿠치(菊池) 천을 거슬러 올라가면후나야마(船山)고분이 있다. 120여년 전에 발굴되었고, 한참 후에 무엇이 나왔는지 발표되었다.집 모양의 돌관에서는 청동거울과 금동 관,금동 제관모,많은칼,금동 신발,말 재갈,갑옷,토기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금동관모는 전북 익산군 입점리에서 발굴된 것과 모양은 물론 뒷꼭지에 달린 방울장식도 똑 같았다.신발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입점리고분이나공주의 무령왕릉에서 나온, 바닥에 침이 박힌 스파이크형이었다. 청동거울과 금제 귀고리도 삼국의 유물과 유사하다.길이 85㎝의 대도(大刀)에는 국화무늬, 말의 은상감과 함께 서치대왕(瑞齒大王),그 칼을 제작한 장인의 이름까지 칼 제작에 관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그러나 중요한 글자들은 마모되었는데,현재는 5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백제 개로왕이 하사한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물론 백제인들의 거주지였던 현재의 오사카지역의고분에서도 300여개의 철제 칼들이 한 군데에서 발견되기도 했다.동성왕에서,무령왕, 의자왕에 이르기까지 백제는 줄기차게 해양으로 진출하였다. 그렇다면 전성기의 백제인들은 어느 정도의 해양능력을 보유하였고,또 어떤 항로를거쳐 중국 남부와 일본열도로 진출했을까? 일본서기에는 백제의 배와 신라의 배에 대한 기록이 꾸준히 나온다.응신천황때에는 길이 10장(丈,약 33m)의 배를 만들게 했다.그 후에도 우수한 배의상징으로 백제 선(船)이 등장하는데 645년에는 왕명으로 백제선을 만든다.일본고분에서는 당시에 사용했던 배를 표현한 유물들이 많이 나온다.후쿠이현의 대석(大石)유적에서 출토된 동탁(銅鐸)엔 마스트와 노가 18∼20정,길이가15m에 달하는 대형 배가 나온다. 특히 미야자키현의 니시도바루 고분에서는배 모양의 부장품이 발견됐는데 좌우에 6개의 노가 달려 있다.백제에는 이보다 우수한 먼거리 항해용 배를 가지고 동아지중해 남부를 항해하였다. 일본항로는 전라도 해남을 포함한 남해 서부,서해 남부를 출발해 규슈 서북부에 도착하는 것이다.제주도를 우측으로 바라보면서 고토(五島)열도에 도착한 다음 규슈 서쪽지방으로 상륙하였다.이어 아리아케해 근처로 들어와 나가사키와 구마모토,사가현의 서부에 정착한 다음 강을 거슬러 내륙으로 진입해들어갔다. 그래서 규슈 서부지역에 후나야마고분과 같은 백제계 유적들이 있는 것이다. 한편남중국항로는 고구려의 해상권 통제와 북위의 견제 때문에 난이도가높은 항로였다.금강하구와 영산강하구 해역 등에서 출발하여 먼 거리인 황해남부를 횡단하다가 회하(淮河)해역의 먼바다에서 남진하거나,아니면 바람을이용해 곧장 사단(斜斷)으로 남진한 다음 양자강 하구로 진입해 갔다. 이렇게 백제는 해양력을 바탕으로 해외로 진출하면서 다시 강국이 됐고,점점 더 일본의 고대국가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이어령의 새 천년읽기]밀레니엄 게이트(上)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는 새이다.하지만 생태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로렌츠의 보고서를 보면 비둘기의 싸움처럼 잔인하고 치열한 것도 없다.상대방이 죽어 쓰러질 때까지 계속 쪼아대기 때문이다.평화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영어의 경우 peace에 감탄부호를 붙여 동사형으로 사용하면 “비 사이렌트! ”( 입닥쳐,조용히 해 )와 같은 뜻이 된다. 평화의 어원인 라틴어 팍스가 전쟁과 정복의 지배언어로 쓰여왔다는 것은일리치의 지적이 아니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팍스 로마노나,팍스 브리타니카는 어느 강대한 제국(帝國)이 무력으로 세계를 제패하여 천하를 통치한 시대를 뜻한다.말하자면 로마인이,영국인이 입닥쳐라고 소리치면 온 천하가 숨을 죽이고 조용해지는 것을 평화라고 불렀던 시대이다.그래서 조지 오웰이 그린 1984년의 가상적인 나라에서는 아예 “전쟁”을 “평화”라고 부른다. 20세기초 자유 무역제도가 처음 생겨나게 되었을 때 신문들은 이제 이 지구상에서 전쟁은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고 했다.그리고 소련이 해체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에도 역시 신문들은 전쟁없는 영구한 평화가 도래했다고 보도했다.하지만 그 말이 끝나자 마자 1차대전이 일어났고 걸프전이 벌어졌다.결과적으로 20세기의 역사는 전쟁으로 막을 열고 전쟁으로 막을 내린 시대가 되었다.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90년까지 총 2천 340주 가운데 이 지구에서 진정 전쟁으로부터 해방된 주는 겨우 3주간밖에 되지 않는다고 앨빈 토플러는 적고 있다.전쟁을 장마철에 비유하고 평화를 그 먹구름사이로 잠시 내비친 햇빛이라고 정의한 사람은 역시 천재였다. 동양인들도 예외가 아니다.투표 계산을 할 때에도 곧잘 애용되는 한자의 정(正)은 올바르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그 자원(字源)을 분석해보면 군사들이 남의 나라 성을 쳐들어가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갑골문자의 정자는 오늘의 발 足자처럼 썼는데 위의 口는 나라를 에워싼 성벽을 나타낸 것이고 아래의 止자는 발 모양을 그린 것으로 행진을 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正자는 征服의 征자나 무력의 武자와 뿌리가 같은 것으로 전쟁이 곧 정의라는사상을 담은 글자이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의 父자도 두 손에 도끼를 들고 서있는 전사의 모양이아닌가.그래야만 살았고 그래야만 가정과 나라를 지켰던 것이 ‘삶의 문법’이요 ‘생존의 규칙’이었다.그러나 같은 전쟁의 패러다임이라고 해도 파워폴리틱스의 서구 문명과 문치교화(文治敎化)의 모럴 폴리틱스로 대비되는 유교문명은 서로 다른점을 지니고 있다.볼테르가 부러워한 것처럼 서양에는 글짓기를 하여 관리가 되는 과거(科擧)제 같은 것은 없었다.그 대신 서양에서는 등자(橙子)가 발명되어 말을 타고도 싸움을 할 수 있게 되면 곧 기사(騎士)와 기사도(騎士道)가 생겨나게 되고 그 힘을 밑받침으로하여 봉건제가 생겨난다.그러다가 대포가 발명되면 이번에는 그 견고했던 성채가 무력해지면서 봉건제도도 함께 붕괴하고 만다.이렇게 모든 기술과 사회제도가 전쟁 패러다임에 의해서 부침해온 것이 파워 폴리틱스를 내세운 서구문명의 전쟁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근대문명도 모두가 전쟁패러다임에서 파생된 것들이다.베니치아의귀족들이갈릴레오의 망원경에 거금의 지원금을 내준 것은 결코 지구가 도는지 해가 도는지의 지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그것은 오로지 먼 바다에 떠있는 배가 적의 군함인지 아닌지를 식별해 내는 군사장비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을 뿐이다. 남태평양 섬의 어민들은 이상하게도 자기네들이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놓아둔 채 서양에서 들여온 통조림고기를 사 먹는다.그들은 선진 문명의 상징물로 부러워하고 있는 그 통조림이 바로 나폴레옹이 개발한 전쟁 산물이라는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것이다.병사들이 전쟁터에서 먹을 수 있는 보존식을 개발하기 위해서 나폴레옹은 현상금을 걸었고 1804년 아페르가 통조림의 원리를 발명하게 되었다.오늘날 평화로운 도시의 슈퍼마켓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통조림문화에 귀를 기울이면 유럽대륙을 향해 끝없이 쏘아대던나폴레옹의 포성이 울려오고 있는 것이다. 산업문명의 꿈을 실현시킨 공산품의 표준화도 나폴레옹의 전술에서 비롯된것이다.대포의 바퀴를 끼우고 빼낼 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보나파르트의권력은 모든 나트의 홈과 그 크기를 똑같이 만들어내게 한 것이다.서구 근대문명이 만들어낸 온갖 기술과 그 발명품들은 크든 작든 나폴레옹의 발상처럼 전쟁터에서 발명된 것들이다.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비행기가 급속도로 개발되고 실용화된 것은 그것이 적진에 폭탄을 투하할 수 있다는 전쟁무기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펜실배니어 대학에서 최초로 개발된 아니액 컴퓨터 역시정확하고 빠른 탄도계산을 위해 미 국방성이 발주한 전쟁장비였다. 술집에까지 불황을 가져왔다는 인터네트의 새 문명은 어떤가.그것 역시 “부루터스 너마저”이다.펜타곤의 컴퓨터가 적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때를대비하기 위해 미 군부가 그 자료들을 여러 곳에 분산시키고 네트워크화한것이 바로 인터네트의 기원이다.원격 화상회의의 기술개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군 수뇌부들이 적의 핵 공격을 피해 각지로 흩어져있어도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군사 참모회의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군사기술이다.더 이상 장황한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군수용 반도체의 수요가없었더라면 어떻게 한가롭던 플람 과수원의 “산타클라라의 골짜기”가 연일 다우 지수의 신기록을 갱신하는 “실리콘 밸리”로 변할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전쟁 패러다임속에서 나온 서구문명의 특성을 세인트 조지 콤플렉스라고 부르기도 한다.그것은 악령을 퇴치하고 공주와 결혼을 하는 서구 영웅전설의 원형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사랑과 평화의 선행사는 언제나 악령 죽이기라는 그 전쟁으로 되어 있다.그러므로 악령이 없을 때에는 악령을 스스로만들어내야만 한다.그것이 이따금 서양사회를 휩쓸고 지나가는 마녀 사냥이며 나치에 있어서의 유태인이다. 소련의 퇴장으로 악령이 사라지게 되었을 때 재빨리 이슬람-유교 커넥션이라는 새로운 악령을 만들어낸 것이 한때 지식계에 선풍을 몰고온 헌팅턴의“문명의 충돌”이다.20세기의 전쟁 책임을 서양 문명에 몰아세우자는 것이아니다.그렇게 하면 우리 자신이 바로 악령만들기의 또 하나의 세인트 조오지 컴플렉스의 감염자가 되는 것이다. 문명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 상생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다시 보여줌으로써 서구 문명자체를 탈구축하려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에 참여할수 있는 것이다.부국강병으로 상징되어온 20세기 전쟁 패러다임을 땅에묻으려고 하는 것은 양차 대전에 수백만의 사상자를 내고 진저리를 친 서구문화권의 당사자들이다.오히려 그 낡은 패러다임을 뒤늦게 좇으려고 하는 것이 근대화의 무지개를 뒤^^는 그 주변 국가들이다.그 증거로 2차 대전후 계속된 국지전쟁은 모두가 비 서구지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동아시아도 그런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홉스 바움의 말대로 서구중심의 20세기 문명은 끝나가고 있다.“인구면에서만 보아도 20세기의 전성시대에는 인류의 3분의 1을 차지했던 유럽 백인들이 이제는 6분의 1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구 식민지에서 유입된 이민들에 둘러싸여 바리케이트 안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의 사회 조직 하나를 두고 보더라도 그렇다.20세기의 기업은 군대조직을 그대로 빼다 옮겨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군대의 총 사령관이 기업에 오면 재벌 총수가 되고 작전 참모실은 기획실이나 비서실이 된다.국 과장의 조직체계는 사단 연대 대대의 피라미트 구조이고 사병은 바로 사원이다.보초대신 수위가 서있는 것까지 똑같다. 그러나 드라카의 지적대로 21세기의 기업은 군대 조직이 아니라 교향학단조직을 모델로 하게 된다고 말한다.서구문명의 파워 폴리틱스 자체가 모럴폴리틱스로 변해가면서 상극의 갈등원리가 상생(相生)의 융합원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관리체제는 참여체제로, 독점은 분유(쉐어)로, 일방통행은쌍방향으로 탈구축되어 간다.기능을 위주로하는 공장이 이제는 감동을 나누는 예술 무대의 원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전쟁의 패러다임이 평화의 패러다임으로 변한다는 것은 ‘생산’이 ‘창조’ 개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지금까지는 현실주의자들이 한 기업이나 사회를 이끌어갔다면 앞으로 오는 새 천년은 꿈꾸는 자의비저너리에 의해서,그리고 강자(强者)가 아니라 적자(適者)에 의해서 그 자리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전쟁의 시대에 평화를 꿈꾸는 덕치주의를 펴다가민족의 존립마저 상실할 뻔했다.그런데 이제는 거꾸로 덕치주의가 새 패러다임으로 부상하려는 이 때에 서구의 낡은 파워 폴리틱스,리얼 폴리틱스의 유산을 상속한입양아처럼 되어 있다.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지구 최후의 분단국에서 살고있으며 북한은 굶주리면서도 핵과 미사일의 무한 강병(强兵)정책을 만방에고하고 있다.그를 빌미로 일본의 극우론자들은 평화헌법에 다시 색칠을 하자고 하고 전쟁의 진저리였던 “기미가요”가 다시 울려퍼지게 되었다. 대체 이런 상황에서 평화의 열두 대문을 세우자는 것이 어리석고 무의미하게 보일는지 모른다.그러나 몽고병의 전화속에서 우리는 그냥 항쟁만 한 것이 아니라 수십년동안 역사상 유례가 없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냈다.그런평화에의 의지가 이 나라를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이며 21세기 새벽에 온 세계를 향해 평화선언을 하고 평화의 밀레니엄 게이트를 기공할 수 있는 자격을갖게 한 것이다.지금 새 천년을 향해서 떳떳하게 평화를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대체 몇이나 될 것인가.남의 나라 영토를 뺏지 아니하고도,폭력으로 노예를 부리지 아니하고도 이 정도의 부와 문화를 누리며 사는 나라가 한국 말고 대체 또 어느 나라가 있을 것인가. 임진왜란을 겪은 한국이었지만 일본인에 주자학을 가르쳐 병마(兵馬)를 충효로 바꾸는 문승지효(文勝之效)로 3백년간 왜적의 침략을 막을 수 있었던그 힘의 원천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이제야말로 그 문화의 힘이 새로운 천년을 지배하는 원동력이 되는 세상이다.100만의 한국인이 그 서원(誓願)의 글을 담아 자신의 서명을 평화의 대문 벽위에 새겨갈 수만 있다면 팔만대장경과도 같은 원력은 온 세계 사람들에게 퍼지며 미사일보다 강한 방벽을 만들어 낼 것이다.평화가 한 나라만의 것이 되었을 때에는 한 마리의 양처럼 약하지만 그것이 열 나라 백나라의 것이 되었을 때에는 사자무리보다도 강하게 된다. 낙원을 의미하는 영어의 파라다이스는 원래 아랍말로 나무도 꽃도 없는 황무지를 뜻한 것이라고 한다.전쟁과 환경오염의 20세기 문명의 뒤안길에 버려진 난지도에 이 평화의 대문을 세운다면 우리는 악취속에서 난초의 향내를맡고 쓰레기 더미에서 푸른 잔디의 생명력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힘으로 20세기의 황무지를 21세기의 낙원의 땅으로약속하는 평화의 열두 대문 하나가 이곳에 세워지는날 2002년 월드컵 손님으로 찾아온 온 세계의 젊은이들은 이곳에 모여 새 천년의 평화와 행복을 다짐하고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를 지배해온 세인트 조지 컴플렉스를 푸는 거대한 상생의 사당이 될 것이며 십년마다 평화의 역사를 정리하는 현대사의 타임 터널이 되어줄 것이다.팍스 로마노의 개선문을 뒤집어라,그러면 한국의 평화와 행복의 그 열두 대문 밀레니엄 게이트가 될 것이다.
  • 공주 정지산 유적은 무령왕비의 殯地

    공주 정지산(艇止山)유적이 백제 무령왕비의 빈지(殯地,왕이나 왕족이 사망했을 때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유해를 안치해 의례를 행했던 곳)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국립 공주박물관은 최근 정지산유적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담은 ‘정지산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무령왕릉이 있는 충남 공주시 금성동 정지산 북쪽자락의 정지산유적은 지난 96년 발굴조사됐다.당시 조사에서 이 유적은 왕실의 제사유적으로 추정됐다.외곽이 울타리로 둘러쳐져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았던 데다 출토된 와당,장고모양의 그릇받침,벽돌무늬 등이 모두 왕의 의식용 제기로 쓰여졌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공주박물관은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이 유적이 빈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무령왕비 지석(誌石)의 글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는 것.지석에 따르면 무령왕비는 사망한 뒤 유지(酉地)의 땅에서 상을 치르고 27개월뒤인 529년2월에 대묘(大墓)인 왕릉에 합장했다고 돼 있다.유지는 서쪽방향을 가리키는데 왕궁지인 인근의 공산성에서 볼 때 유지는 정지산유적이있는 곳과 일치된다.이러한 추론은 무령왕릉의 위치에서도 부합된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높여 준다.즉 무령왕릉 지석은 왕릉을 신지(申地,남서방향)로 적고 있는데 공산성을 기준으로 할 때 신지는 무령왕릉,유지는 정지산유적과 부합된다는 것이다. 박물관은 또 이 유적에서 새로운 형태의 건물지가 확인돼 이에 대한 건축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우선 와건물지(瓦建物址)는 기둥이 3열이고,규모에 비해 많은 기둥을 갖고 있으며 적심(積心)과 초석(礎石)이 없는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또 대벽건물지(大壁建物址)는 일본학계에서 백제계 도래인의 주거형태로 주목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인데 이 유적에서 7기가 확인됐다.박물관은 앞으로 이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조사가 이뤄질 경우 백제교류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임태순기자 stslim@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6)장수왕

    분단된 한반도를 중심으로 4강 외교가 숨가쁘게 펼쳐지고 있다.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동아질서가 재편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고 있다.그러나 분명한사실은 한반도는 분단되어 있고 주변 4강은 분단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동아시아의 중핵에서 능동적으로 주변국가를 요리한 나라가 있었다.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동서남북으로 전방위 공략을 펼치고,수군과 기마병을 동원해 백제를 공격한 다음 경기만을 장악하였다.장수왕은 즉위한 후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웠다.그 비에서 ‘고구려는 세계의 중심’이며‘하늘과 해의 자손’이라는 성스러운 선언을 국내외에 하였다.그리고 그 의지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한 고구려는 남진정책을 적극 추진했다.이러한 정책들은 국제질서 및 해양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평양은 대동강과 예성강을 아우르며 평안도와 황해도를 동시에 장악하는 전략적인 거점이다.부채꼴로 펼쳐진 하계망(河系網)을 통해 내륙을 통치하고,바다와 연결되어 해양진출과황해북부 해상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그래서 고조선시대 이래 대외교섭과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장수왕은 북방에서 연(燕) 북위(北魏)등과 전쟁을 하면서 남진정책을 전개하였다.신라를 계속 압박하여 468년에는 실직주성(悉直州城:현재의 삼척지방)을 공격하였다.481년에는 청송지역과 포항밑 흥해(興海)까지 공격하였다.이는 동해중부는 물론 남부지역까지 해양활동의 범위를 확대했음을 의미한다. 신라의 수도를 압박하고,일본열도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이곳을 출발하면 해류와 바람을 이용하여 일본열도의 시마네(島根)와 돗도리(鳥取)현 등지로 도착한다. 이 지역은 고구려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제기된다.장수왕은 475년에 백제의 한성을 공격해 점령하였다.백제 개로왕은 죽음을 당하고 백제는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옮겼다. 이렇게 고구려의 국경선은 아산만에서 충주지역을 거쳐 동해안의 영덕까지이르렀고,이 땅의 패자가 되었다.그리고 황해중부 이북과 동해중부 이북의해상권을 장악하였다. 5세기의 동아시아에는 역학관계가 매우 복잡했다.중국은 남북조시대,즉 분단국가가 되어 전쟁을 하는 등 적대관계에 있었다.북방에서는 ‘유연(柔然)’이라는 유목국가가 북위와 싸우고 있었다.한편 백제와 신라는 성장을 하면서 중국지역과 교섭하며 국제질서에 진입하고자 하였다.왜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모든 나라들을 유일하게 연결시키는 외교통로는 바다였다.육지만 장악해서는 동아시아의 강국이 될 수 없었다.장수왕은 이와같은 지정학적 현실을 인식하고,해양능력을 강화시켰다.20세기와는 정반대로 중국 남북조를 대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동시 등거리외교를 하였다.양자강 유역에 도읍한 송(宋)과는 해로를 이용한 해양비밀외교를 펼치며 당시의 기갑전력인 군마 800필과 화살,석궁 등을 배에 실어보내기도 했다.또한 북방의 유연과 남방의 송을 외해양(外海洋)으로 연결시키면서 북위를 협공하는 환상적인 포위망을 구축했다. 이러한 해양비밀외교는 양국의 사신선이 산동 해상에서 북위의 수군에게 나포되면서 외교분쟁을 야기시키기도 하였다.고구려는 황해중부의 해상권과 항로를 장악,백제와 신라가 북위와 교섭하는 것을 통제했다.이러한 질서에 도전하던 백제 개로왕은 결국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이후 백제 신라,왜는 남조(南朝)정권만 교섭하는데 그마저도 자유롭지 못하였다.고구려는 대륙과 한반도,해양을 장악한 동아지중해의 중핵국가로서 역학관계를 조정하는 위치를차지하였다. 고대사회에서 정치적 교섭은 주로 교역을 동반한다.고구려는 해양을 경제활성화에 최대한으로 활용하였다.군마 등 갖가지 물품을 송나라에 수출하고,남방의 물자를 수입하였다.고구려는 중계무역도 하였다.예를 들면 흥안령지역에서 생산되는 말과 담비가죽 등을 수입하고,대신 요동의 철을 수출하였다. 이러한 북방의 특산물은 다시 고구려 배에 실려 남방으로 수출된다.뿐만 아니라 섭라(涉羅:제주도로 추정)의 특산물인 가(珂:흰 마노로 된 구슬)라는보물을 북위에 보내기도 하였다.일본서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279년부터 일본열도로 진출한 것으로 돼있다.특히 월(越:현재의 후쿠이현) 지역은 고구려와 호족들간의 교역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면 이러한 능력을 갖게한 고구려의 현실적인 해양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당시 고구려의 항로는 황해와 동해로 다양했으며 어느 지역으로도 항해가 가능했다.황해북부 연근해항로,황해중부 횡단항로,황해사단(斜斷)항로,동해중부사단항로 등 다양했으며,특히 홋카이도(삿포로 근처)까지 이어주는 연해주 항로도 있었다. 선박은 사신선,전투선,민간교역선 등이 있었다.800필의 말을 싣고 황해를종단 항해,양자강 유역까지 들어가는 등 큰 배로 이루어진 대선단이 있었다. 배안에 2개의 돛대를 갖추고,기록으로 보아 50∼100명 내외의 인원을 태웠다.근해 항로를 많이 활용하였지만 동해를 건너거나 황해를 종단하기 위해서는 별과 해를 관측하는 천문항법을 하였을 것이다. 이같이 고구려 장수왕은 활발한 남진정책과 해양활동을 통해 정치,외교,군사,경제,문화적으로 고구려를 동아지중해의 중핵국가로 만들었다.이러한 해양력의 강화와 ‘동아지중해 중핵조정론’은 21세기를 앞 둔 우리에게 의미있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IOC 이모저모

    오는 12일부터 9일동안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사실상 서울로 옮겨 온다. 올림픽운동의 구심점인 IOC의 구성과 역할,위원의 지위 등 궁금증을 짚어본다. IOC의 구성과 운영 1894년 파리 소르본대에서 15명이 첫 모임을 갖고 데메트리우스 바켈라스(그리스)를 위원장으로 추대함으로써 태동한 IOC는 현재 198개 회원국과 가맹 경기단체 60여개를 거느린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기구. 스위스 로잔에 본부를 두고 있고 캐치프레이즈는 ‘더 빨리(Citius) 더 높이(Altius) 더 힘차게(Fortius)’.최고 의결기관인 총회와 11명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방송 보도 여성 등 27개 분과위원회가 있으며 영어와 프랑스어가공용어로 쓰인다.총회는 해마다 열리며 올림픽 개최연도에는 개최국에서 열린다. IOC위원의 면모와 예우 1국 1명이 원칙이지만 위원을 두지 못한 회원국이더 많다.올림픽을 치른 나라에는 2명까지 둘 수 있고 위원장이 국제경기단체 회장을 위원으로 지명할 경우에는 인원 제한을 받지 않는다.대륙별로는 유럽이 30개국 47명으로 가장 많고 오세아니아가 3개국 4명으로 가장 적다.우리나라는 88올림픽을 치른 뒤인 96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추가로 선임돼 김운용 위원을 포함,2명.현재 2명 이상의 위원이 있는 나라는 모두 21개국이며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 등 3개국.80세가 정년이지만 65년 이전에 선임된 위원은 임기제한이 없다.현재 종신위원은 무살리 전 튀니지 총리 등 6명. IOC위원은 IOC에서 소속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에서 IOC를대표한다.이 때문에 IOC위원은 소속국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으며 총회 등행사에 참여할 때도 숙박비와 항공료 등을 IOC로부터 지원받는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모스크바주재 스페인대사를 지낸 정치가이자 외교관이며 스페인 최대은행 총수.영국의 앤 공주,스페인의 브르봉 공주,네덜란드의 오렌지 왕자 등은 대표적인 왕족이며 케번 고스퍼(호주) 르몽드 백작(프랑스)등은 사업가이고 마크 호들러(스위스) 딕 파운드(캐나다) 등은 저명한 법률가.64·68올림픽 체조에서 금6·은4개를 획득한 체코의 카슬라브스카 등 선수 출신 10명도 포함돼 있다. IOC위원은 국경과 이념을 초월해 모든 나라에서 최상의 대우를 받는다.위원장은 국가원수 또는 국왕,위원은 고위 외교사절에 준하는 예우를 받고 수행원도 관례상 외교사절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도록 돼 있다.위원이 원하면 방문국은 국가원수와의 면담을 주선해야하는 등 웬만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각료보다 낫다.IOC가 발행한 신분증으로 어느 나라든 무비자 입국할 수 있으며 투숙한 호텔에는 IOC기와 함께 위원 국적의 국기가 게양된다. 방문국이 올림픽 공용어 사용국이 아닐 경우엔 통역을 붙여 주어야 하고 한때는 주위에 의료진이 24시간 대기하는 특전을 받기도 했다.이같은 예우는 IOC창설 주역이 유럽 귀족이었던데 배경이 있다. 그러나 지난해 불거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캔들 여파로 예우가 격하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박해옥기자 **
  • 우리 20세기 기회주의자 유달리 많았다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는 금년봄 한 인터뷰에서 우리의 20세기를 ‘비극’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한 바 있다.전반기 일제의 식민지통치기와 해방후의 분단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단어는 ‘비극’ 밖에 없다는 것이 강교수의 ‘20세기관’이다. 역사종합계간지 ‘역사비평’ 여름호는 20세기에 등장한 우리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되짚어 ‘자아확인’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20세기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란 기획특집물이 그것으로 복고주의·사대주의·반공주의·한국적 민주주의·가부장제·가족이기주의·물신숭배·기회주의·기복주의·지역 연고 정실주의 등을 소항목으로 잡고 있다.물론 이 모두가 20세기에 등장한 ‘부정적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부장제·기복주의 등은 지난 역사 곳곳에 기록돼 있다.차이점이라면 이번 기획에서는 이들을 근대적 개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다. 박광용 가톨릭대 교수는 첫머리에서 93년 북한의 단군릉 발굴로 상징되는 20세기의 ‘복고주의’에 대한 경계론을 펴고 있다.특히 ‘새로운’ 광개토대왕,장보고,대륙백제를 표방한 ‘웅비사관’이 사실은 일본인들의 단골메뉴라고 일깨우고 있다. ‘사대주의’와 관련,임대식 서울대 강사는 약소국의 입장에서 사대는 존립과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았다고 보고 그 배경을 물적 기반과 계급성에서 찾고 있다.결국 친일이나 친미는 동일한 것으로하나의 선택이자 노선이었다는 것. 강경성(서울대 외교학과 박사과정 수료)씨는 ‘주장의 과잉’과 ‘연구의결핍’이라는 현상은 ‘반공주의’의 상징적 실상이라고 말한다.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유신시절에 등장한 ‘한국적 민주주의’는 ‘한국적 파시즘체제의 완성된 형태’라고 규정하며 집권세력과 유신 옹호 이론가들이 한국적 민주주의로 정당화했다고 주장한다. 새 천년을 앞두고 21세기는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면‘가부장제’는 사라질 것인가?답은 부정적이다.이승희 성공회대 강사는 가부장제 밖으로 나간 여성들은 남성이 씌워주는 우산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비바람 부는 광야에서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격이라고 말한다. ‘내 자식 제일주의’ 등 ‘가족이기주의’는 전쟁과 산업화가 낳은 가족주의의 산물로 근본적으로는 시민의식·공공의식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김동춘성공회대 교수의 지적은 한걸음 더 나아가면 ‘패거리주의’와 동일선상에서 만난다. 김상태 항공대 강사는 오늘날의 ‘지역·연고·정실주의’는 금세기 전반부기호세력과 서북세력간의 갈등이 후반부 들어 영·호남의 지역갈등으로 증폭돼 왔다며 해결책으로 지역간 균형발전을 우선과제로 들었다. 안동대 임재해 교수가 20세기의 ‘굴절’ 가운데 하나를 ‘기회주의’로 본 것은 탁견이다.변절자·기회주의자가 유달리 20세기에 많은 것은 치열하지못한 역사의식과 이들을 배태시킨 사회적 토양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 백제의 숨결 춤으로 느낀다…국립극장서 ‘백제 춤’ 공연

    “막막했습니다” ‘한국,천년의 춤Ⅲ’을 통해 백제춤을 무대에 올리는 국립무용단 국수호단장의 말이다.지난 97년 조선시대 민중의 춤,지난 해 신라시대의 몸짓에 이어 세번째 시리즈다. 그가 고민한 것은 전북 익산 미륵사지의 반쪽탑 하나만 빼고는 백제춤을 상상할 자료가 거의 없었기 때문. 백제의 자취를 찾기 위해 공주·부여·광주 등지를 샅샅이 훑었다.박물관을 비롯 많은 절과 유적지를 누비며 ‘백제의 숨결’을 느끼려 애썼다.동작 하나라도 있으면 찾아서 건져야 했다.그걸로도 모자랐다.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백제 문화예술이 건너간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아소카(飛鳥)지역의 마을과 호오류지(法隆寺) 등의 발굴지를 찾아 기록을 뒤지고 다녔죠.1,300여년전 백제인이 세운 석가여래상,아미타불상,사천왕상 등을 본 뒤에 ‘백제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고 몸짓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천왕상 등 불상의 몸짓에서 작품의 틀을 따왔다.또 새의 날개모양이 ‘백제의 선(線)’이라고 결론짓고 작품에 많이 도입했다.양쪽 무대장치도 새날개를 닮은 ‘망새’(집의 합각머리나 너새 끝에 얹는 용머리처럼 생긴 장식)로 꾸몄다. 백제인들의 해맞이 의식춤을 다룬 ‘해오름춤’을 비롯,무속 요소가 강한‘오기무’,불교의 정신을 가득 담고 있는 ‘향’,강강술래인 ‘대동무’와농민들의 춤 ‘탁무’ 등을 보여준다.마지막은 인간문화재 이매방이 직접 나와 오고무(五鼓舞)를 추는 ‘땅의 울림’으로 장식한다. 한편 1부에서는 조선시대의 정재(呈才)를 재현한다.‘춘앵무(春鶯舞)’‘무산향(舞山香)’‘일무(佾舞)’ 등의 정확한 춤사위를 그리기 위해 무형문화재 김천흥 박숙자 김영숙의 자문을 받았다.아울러 ‘최승희 춤의 계승자’백향주가 특별출연해 눈길을 끈다.이번엔 최승희 춤이 아니라 ‘논개’(1부)와 ‘공후’(2부)라는 독무를 보여준다.22일부터 25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 (02)2274-1173이종수기자 vielee@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21) 정공채 長詩 ‘미군의 차’:下

    문제의 장시 ‘미8군의 차’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주둔/버드나무에 말을 맨/주둔./18년(1945년부터 63년까지의 햇수)의 강하와 그/일월./옛날에는 힘센 장수가/무딘 손으로/말고삐를 매었다./버드나무가 줄줄이 늘어선/우리 조선땅에” 미군 주둔을 버드나무에 말을 맨 수사법으로 시작하면서 그 버드나무가 지닌 역사성을 상기시킨다.서론에 해당하는 4장까지 이 시는 쇄국의 대명사인대원군을 “오늘날은 한번쯤 생각해도…”라며 상기시켜 주면서 민족 주체성의 상징으로 버드나무와 그 버드나무를 닮은 여인을 등장시킨다.이어 6·25를 연상하는 전쟁의 잔혹상을 제시하고는 무대를 산촌으로 바꿔 방방곡곡으로 스며드는 ‘박래(舶來)’풍조(외세란 어휘를 차마 쓰기가 두려웠으리라)를 비꼰다. 5장에서 주인공이 비로소 등장한다.“나”로 상정된 주인공은 바로 시인 자신으로 진주농림학교에 다니며 존경하던 임학(林學)선생 한 분이 민족과 국토를 위해 나무를 심자는 가르침에 감동을 받아 일생을 임학에 바칠 각오를굳힌다.그러나 “이 순백의 고등학생들에게도/번져 온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려운/세계의 그 사상” 때문에 “진주에서도 지리산/아직 순백의 애들이,엉터리로 들떠서/교실에서는 조림과 삼림보호를 배우던/친구들이./ 산에서/흐르는 작은 별과같이/총을 맞아 죽어갔다” 바로 지리산의 비극적 상황을 연상토록 만드는 이 대목으로 말미암아 시의 주인공인 ‘나’는 “존경하던 우리 임학 선생님을 등지고/수원농과대학의/푸른 산,푸른 강,푸른 조국의/국가백년지대계의/산에 나무 심어 가꾸어 보호하고 자르는/임학을 버리고//찬물을 마시고 취하는 외교와/거짓 술잔을 높이 들고 미소 짓는/그런 정치외교학과에” 투신했다고 썼는데,이 대목은 바로 정시인이 연세대 정외과를 선택한 배경이 된다. 6장에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 모습을 “바퀴는 굴러가다가 용산/바퀴는 굴러가다가 영등포”하는 후렴식으로 부평,오산 등등 미군기지가 있었던 지명을 열거한다.이렇게 미군이 주둔한 뒤의 한국 땅에서 전개되는 삶의 양식이바뀐 모습을 7장에서 “바퀴가 몇만,몇십만 번을 굴렀는데도/꽃같이 아름다운 자유는/빵과 의복과 따뜻한 주소의/열매를 달지는 않았다./다만 탱 빈 마른 나뭇가지”라고 묘사했다. “에르하르트가 있는/싱싱하여 철철 넘쳐 흐르는/라인강 라인강 기적강 기적강/일하는 사람으로 가득 담긴/독일이라는 강물,근로의 나라.//꼭같이 바퀴가 그 나라에도 뒹굴고/우리나라에도 뒹굴었는데/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에도/바퀴가 궁굴었는데 패잔병은/잔명은/바로 우리다”(9장)는 대목에서는 여러 미군 주둔국 중에서 한국만이 지닌 특수상황이 빚은 비극을 상기시킨다. 분단으로 인한 남북 대결,이런 국제정세 속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일본이 언급되면서 한국 청년들의 방황과 고뇌가 서술된다.이런 와중에 ‘나’는 여행을 떠나는데 이것은 정신적 방황을 상징한다.돈 때문에 연인은 양공주가 되고,남자는 나락의 운명으로 전락한다(14장).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풍자(“한때 암코양이가 울어”등으로 상징)와 4월혁명 예찬과 좌절(15장)을 겪으며 ‘나’는 도시 소시민적인 삶에 묻혀 연애와 방탕과 방황을 거듭한다(16∼17장).물론 가끔은임학기사가 되려했던 옛꿈을 회상하기도 하지만(19장),“썩은 과일”(20장)과 “아편을 맞고/기분좋게 늘어진 나는/패잔병”으로 현실 속에서 안주한다.그런 안주 속에서 ‘나’는 농촌에서의 이상적인 삶을 설계하곤 하지만 현실은 낙담 뿐이다.그런 삶을 시인은 양공주의 일상으로 상징하여 표현한다.“…소공동에서 소공동에서/꽃을 팔지 말아요./제발 이 거리에서 꽃을 팔지 말아요”(26장)란 대목은 양공주의 삶이 우리 모두의 참담함이며,여러 항구를 떠도는 그녀가 곧 ‘나’의 연인과 누이이기도 했음을 시사한다. “패잔병”은 마침내 귀향하여 다시 임학의 꿈을 실현하고자 이를 목관악기의 저음으로 연주한다.그래서 “노오란 자산/미8군의 차보다 큰/교목림으로/이 땅,우리 조국에 가득히/자유의 밭을 이루라./기쁜 밭을 이루라./삼림을이루라”로 이 시는 끝난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어린이날 가볼만한 곳

    5월5일은 어린이날.어린이들에겐 가장 즐겁고 기쁜 날일 수도 있는 이날 어디를 가볼까.놀이동산을 찾아 모처럼 단란한 가족끼리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고 박물관에서 옛 사람들의 체취를 느껴보는 것도 보람있는 시간이될 수 있을 것이다.어린이날에 맞춰 각 단체나 호텔 놀이동산이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들을 준비하고 있다.어린이들과 함께 가볼만한 곳들을 소개한다. 전곡 구석기문화제 올해로 7번째.장소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구석기 유적관.구석기문화를 흥미있게 재현해보도록 꾸민 문화축제다.연천군과 동아시아고고학연구소,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주최로 해마다 열리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더해가는이색 행사다.‘원시마을에서의 하루’란 주제아래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원시마을의 환영행사부터 시작해 원시인들의 생활을 그대로 느끼는 원시생활 체험코스와 상상화 그리기대회 및 백일장,토우만들기 대회,미스 미스터 원시인 선발대회가 열린다.연극인 정찬교씨가 진행하는 퍼포먼스 ‘원시인’과 상상극 ‘원시가족의 현대나들이’ 등공연도 펼쳐진다.특별전시로 문화유적 발굴사진전과 설치미술전시회도 함께열려 재미와 문화체험을 같이 맛볼 수 있다.(0335)834-7722 안산 에어쇼안산시가 주최하는 한국 최초의 민간 에어쇼.장소는 안산 경비행장.경비행기와 열기구를 직접 타볼수 있으며 항공 시뮬레이션 탑승의 기회도 주어진다. 특별기념 행사로 가족사진 촬영대회와 물로켓 발사대회,보라매 항공캠프가마련된다.공군군악대·의장대·여고 브라스밴드 거리축제와 록 콘서트도 볼거리중 하나이며 한국의 화이어버드,공군 곡예비행팀을 비롯해 호주 스카이댄서,일본 매스 플라이잉·레드 바론,리투아니아 곡예비행팀 등 국내외 유명 곡예비행팀이 연출하는 공중 곡예비행이 하이라이트다.(0345)494-2745 삼성어린이박물관개관 4주년을 맞아 ‘즐거운 우리집’이란 주제로 가족들이 함께 참여할 수있는 프로그램들을 준비한다.서울 송파구 잠실에 있는 박물관 전시장과 야외공간에서 가족놀이문화 성격을 살려 하루 종일 진행한다.특별 초청공연으로인형극 ‘빨간모자’가 오후 2시·4시 두차례 열린다.주차장에선 ‘가족분장놀이’,‘비누방울놀이’,‘우리마을 장승만들기’,‘행운의 박 터뜨리기’행사가 열린다.미술 프로그램 ‘재활용 대형집 만들기’,‘마법의 집 만들기’,‘요술 피라미드 만들기’에도 참여할 수 있다.(02)2203-1871 올림픽공원오전 10시 잠실운동장을 출발한 제9회 서울자선달리기대회 참가자들이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 골인해 어린이날 기념식과 사랑의 나눔 콘서트를 갖는다.오후 2시엔 미8군 댄스팀이 평화의 광장에서 하와이언댄스와 팝·가요 공연을 가지며 제1체육관에서는 가수 신해철 라이브콘서트가 오후7시부터 열린다.올림픽파크텔에선 마술·레크레이션시범이 열린다.(02)410-1240 독립기념관어린이날 경축행사를 오전10시부터 오후5시까지 연다.가족들이 어린이와 함께 동심을 나누는 어린이 동요부르기를 비롯해 충청대의 태권도시범,119구조대시범,충남학생풍물단의 농악·사물놀이 공연,얼굴 분장놀이(페이스 페인팅)등으로 짜여진다.어린이들은 무료 입장할 수 있으며 동요부르기경연에 참가하는 어린이에겐 경품도 나누어준다.(0417)560-0264 놀이동산우방타워랜드(053-6200-262)는 어린이날 기념 불꽃축제와 진기명기 기인쇼,가족 물로켓 발사대회,도전 어린이 올림픽,어린이 노래자랑·디스코 경연대회를 마련한다.한국민속촌(0331-283-2106)은 호남우도농악·택견·북청사자놀음·군악대 초청공연과 함께 전통혼례식,민속놀이대회,화산폭발쇼,통기타라이브쇼 등을 연다.에버랜드(0335-320-8661)는 어린이들을 위해 특별제작한 300여개의 종이풍선을 하늘로 날리는 행사를 마련하며 과천시립어린이교향악단의 동요·클래식 한마당,해군군악대의 공연,삼성농구단의 팬사인회도 준비한다.서울랜드(02-504-0011)도 어린이 무료입장을 실시하며 밤11시까지 문을 연다.공주 선발대회와 첨단 소방장비 전시 및 사용,구조장면 체험 등으로 짜여진 119축제,레이져쇼도 연다.롯데월드(02-411-2102)는 어린이날 축하퍼레이드와 인기가수·묘기팀 초청공연,영화 ‘스타키드’ 시사회를 마련한다.
  • SBS ‘토마토’는 일본産?

    SBS ‘토마토’는 일본産?

    SBS‘토마토’는 과연 일본방송을 표절한 것일까. ‘토마토’가 지난주 방송된 직후 PC통신에는 이 프로의 표절가능성을 지적하는 수많은 글들이 오르고 있다.이에 따라 방송가에서 ‘토마토’의 표절여부가 높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PC통신에 오른 글들은 ‘별은 내 가슴에’‘미스터 Q’와 ‘인어공주’ ‘캔디’ 등 갖가지 일본작품을 거론하며 ‘토마토’의 창의성을 의심하고 있다. 일본만화 ‘해피’가 ‘토마토’의 ‘원작’이라는 의견도 제시됐고 아예‘김희선=마유키,김지영=초코,김석훈=이치로’등의 등식을 만들며 “김석훈의 엄마는 김희선을 싫어하면서도 그녀의 재능 때문에 도와주게 될 것”이라고 드라마의 흐름을 ‘예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토마토’는 첫주에 이미 시청률 30%를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고있다.(미디어 서비스 코리아 자료) 이는 물론 ‘청춘의 덫’의 잔상일 수도있고,스타연기자 김희선의 힘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표절여부를 따지는 글이 통신에 잇달아 오르는 것은 국내 드라마가 다시는 ‘일본 표절’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시청자의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 「오늘 ‘4·19’ 39돌」4·19세대-대학생 좌담

    4·19는 민주와 자유를 열망하는 지식인과 민중들의 힘이 폭발적으로 분출된 혁명이었다.하지만 39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4·19는 ‘미완(未完)의 혁명’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정치·사회·문화적 갈등구조와 맞물려4·19정신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구현되지 못해 왔다는 것이다.4·19세대인이영일(李榮一) 국민회의 의원과 한영우(韓永愚) 서울대 인문대학장,고려대대학원 이준복(李準馥·신방과 석사 과정)씨와 연세대 손수진(孫秀眞·여·신방과 4년)씨의 좌담을 통해 4·19의 의미를 되새기고 4·19정신의 완성을위한 과제와 방안을 짚어본다. 이영일 4·19가 우리 정치사에 준 교훈은 4·19를 계기로 주권재민(主權在民)의식이 국민의 가슴 속에 자리잡았다는 사실입니다.또 우리가 미래에 구현해야 할 비전을 민주주의 형태로 완성했다는 것입니다.4·19가 ‘미완의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은 1년 만에 군사정권에 의해 붕괴됐기 때문입니다.4·19 이후 25년 동안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4·19는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국민이 국회의원을 바꿀 힘은 가지게 됐지만 정권을 바꿀 만한 힘은 갖지 못했습니다.그러다가 97년 12월18일 비로소 국민의 손에 의해 정권까지 바꾸게됐습니다.국민의 정부 탄생으로 비로소 4·19의 이념이 구현된 것이지요.그래서 4·19의 지향성이 국민의 정부에서 꽃피웠다고 봅니다. 손수진 ‘4.19세대는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4·19세대는 사회적으로영향력 있는 위치를 점하면서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는 지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그래서 4·19세대가 변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영일 4·19때 반독재투쟁에 앞장섰다는 사실만으로 평생 투사로 살다 죽으라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백이(白夷) 숙제(叔齊)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이지요.물론 4.19때 불의에 저항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4·19가 민족 대 반민족의 투쟁이라면 불타협의 투쟁을 계속해야 하겠지요.4·19세대에 대한 평가는 당시 어떤 위치에 있었느냐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합니다.4.19때의 활약상을 소개하겠습니다.나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에 다니던 김치호라는 친구와함께 남산합창단 단원이었습니다.종로 5가에서 곤봉을 맞고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문리대 앞 쌍과부집에서 우동을한 그릇 먹은 뒤 그 친구에게 시위하러 다시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그랬더니 그 친구는 도서관에 가방을 가지러 간다고 하면서 경무대로 달려가 죽음을택했습니다.해마다 4·19묘소에 가면 그 친구의 묘에 꼭 들립니다. 한영우 나는 당시 서울대 사학과 4학년으로 후배들을 인솔해 시위를 했습니다.태평로에 있는 옛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할 때 외칠 구호가 없어옆에 있는 조선일보사에서 몇사람이 구수회의를 해 즉석에서 구호를 만든 일이 있습니다. 4·19는 준비된 혁명이 아닙니다.그래서 ‘미완의 혁명’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프랑스혁명은 계몽사상가들이 이념적 토대를 제공했고 지지세력도 있어 폭발적 힘을 발휘했습니다.하지만 4·19는 혁명 뒤에 이념이 만들어져 왔습니다.당시에는 합의된 이념이 없었습니다.막연한 애국심을 가지고 시작된뒤 나중에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 다듬어지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당,야당,재야,혁신에 이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됐습니다.군사정권에 협조한 사람도 있고,군사정권에 대항해 옥살이를 한 사람도 있습니다. 4·19는 작게 보면 3·15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이 도화선이 됐습니다.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선비들이 개혁의 선두에 나섰던 역사의 전통이 반복된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영일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살고 있습니다.4·19때 87달러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시민·사회단체,정당,이익집단,언론 등많은 집단이 더 이상 학생들의 신세를 지지 않고도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학생은 이제 국민의 울분을 대변하는 유일한 집단이 아닙니다.21세기는 정보화시대입니다.정보화에 관한 지식이 가장 중요한 재산입니다.후배 대학생들에게 경쟁력을 갖춘 신지식인으로서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한영우 4·19때 군이 중립을 지켰던 것은 연구 대상입니다.논문에 따르면부정선거와 발포책임자인 최인규 내무부장관 등이 김정렬 국방부 장관에게협력을 요청해 계엄을 선포했는데 국방부 자체가 협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미국이하야를 요구한 것은 이승만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정권은 한반도를 민주주의 진열장으로 만들려는 미국의 의도에 맞지않았습니다.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한·미·일 연합방위체제를 구축하려는 구상에 맞지 않았습니다.이승만은 강력한 반일(反日)주의자였기 때문에일본과 손을 잡기를 꺼렸습니다. 이준복 현재 전체 대학사회에는 다양성이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학생운동에 대한 관심과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떨어집니다.이같은 변화는 93년 들어,특히 93학번부터 뚜렷합니다.90·91·92학번은 87년 6월항쟁의 경험이 있는 87·88학번이 군 복무 뒤 복학했을 때학교를 같이 다녀 80년대 학번들의 영향력 속에서 80년대의 정서를 지니고있습니다.그러나 93학번부터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합니다.이는 고교생 때부터 약자를 배려하는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정의감은 정권을 가진 사람에게 억압당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입니다.그런데 이른바 ‘왕따’문화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없앴습니다.또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부모세대들의그릇된 생각과 모 재벌의 광고처럼 1등만 강조하는 분위기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약화시켰습니다.지금의 대학사회는 4·19와 70·80년대의 정신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손수진 4·19가 ‘미완의 혁명’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혁명은 진보세력이 혁명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비로소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4·19는 완성된 혁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지식인은 자기 만족에 빠져 자기들만의 우리에 갇혀 있었으며,민주화와 자립경제를 시급하게 수립해야 한다는 문제를 인식했으면 민중과 함께 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력을 형성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영우 4·19를 완전 성공으로도,완전 실패로도 보지 않습니다.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4·19는 미성숙 상태에서 일어났으며 지금도 풀어가는 과정입니다.4·19에 0점을 주는 것은 너무지나칩니다.역사는 단번에 100점으로 갈 수 없습니다.현재는 100점으로 가고 있는데 60∼70점에 도달한 상태입니다.지나치게 허무주의적으로 보면 도그마(dogma)에 빠지게 됩니다.도그마에 빠지면 현실에 입각한 생존논리를 주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외래논리를 도식적으로 적용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준복 해방 뒤 우리는 친일파와 변절자에 대한 청산 과정을 거치지 못했습니다.좌·우 이념대립이 반공주의로 나타나면서 청산의 문제가 흐지부지됐습니다.4·19 뒤 부정부패와 비리 청산이 다시 문제로 떠올랐지만 장면(張勉) 정부에서 청산이 되지 않았으며,군사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청산의 문제는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손수진 저는 4·19가 부패로 점철된 이승만정권을 물러나게 하고 사회운동이 조직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합니다.한 교수께서는 4·19등 우리나라의 중요한 사건에서 지식인의 노력이 컸는데 지금의 지식인과 학생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영우 4·19를 바탕으로 1년 앞으로 닥친 21세기의 우리 모습을 그려 나가야 합니다.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방적 민족주의입니다.우리 정서에 맞는 민주주의를 해야 합니다.신자유주의 경쟁원리도 적당한 수준에서 받아들여야 하지만 민족주의를 도외시해서는 안됩니다. 이준복 언론은 학생운동의 이념성을 걱정합니다.그러나 그 이념성은 4·19를 촉발한 정의감과 다르지 않습니다.다만 이념이 더 선명해졌을 뿐입니다. 저는 학생운동의 이념이 불순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손수진 학생운동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폐쇄적인 면을 띠고 있습니다.운동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학생운동이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설득력을 잃어가는 이념을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영우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는 말에 동의합니다.21세기에는 사회과학적 이념보다 전통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중요합니다.자애(自愛)의식을 기른 뒤 세계와 협력해야 합니다.그리고 전통문화를 정치·경제·사회 등모든 분야를이끄는 견인차로 승화시켜야 합니다.20세기 우리 전통문화를 무너뜨렸던 서양문명과 전통문화를 용해시켜 새 문명을 탄생시켜야 합니다. 이준복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사상적 스펙트럼이 보다 다양화돼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공공연히 언급할 수 있는 분위기가조성돼 있지 못합니다.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포괄하지 못하면 4·19는 영원히 진행형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손수진 자라나는 세대들이 통일 후 ‘우리 민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면 회의가 듭니다.교육을 통해 인도주의와 민족 동질성을 가르치고,통일이 앞으로 실현해야 할 미완의 과제라는 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조현석 김미경기자 hyun68@
  • 유적지 안내표지판 한자 병기

    오는 7월 말까지 경주 부여 공주 등 전국의 8개 관광지와 유적지의 안내표지에 한자가 들어간다. 건설교통부는 중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의 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라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15개 관광거점 가운데 8개 지역에 한자 병기(倂記) 관광안내표지를 오는 7월 말까지 시범적으로 설치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표기방법은 ‘출구 예고표지’의 경우 파란색 바탕 중 좌측 하단 일부에 한글-한자-영어로 표기하고 한글-한자-영문의 크기비율은 100 대 80 대 60으로하기로 했다. 박건승기자 ksp@
  • [김삼웅칼럼]생명공학, 덫인가 돛인가

    21세기 인류의 미래는 희망인가 절망인가. 인류역사상 가장 극심한 변화가예상되는 신세기를 불안의 시각으로 예측하는 사람이 적지않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분야의 하나는 생명공학과 유전공학이다. 무정자증 남성의 생식세포를 쥐의 정소(고환)에서 키운뒤 체외수정을 통해 ‘쥐아기’가 태어났다. 2년전 복제양 ‘돌리’의 출현으로 인류를 놀라게한 생명공학은 마침내 쥐아기를 출생시켰다.한국에서도 복제젖소 ‘영롱’이에 이어 복제한우‘진이’가 태어났고 ‘인간복제’도 시도되고 있다. 미국의 생명복제 기업인 베일리언트 벤초는 20만달러에 인간복제를 해주고5만달러에 인간세포를 추출·보관해주겠다면서 국내에 상륙했다.일본에서는쥐의 세포를 사람의 뇌에 이식하는 임상실험이 곧 실시된다.인간 이외의 동물세포를 뇌속에 이식하는 이종이식(異種移植)의 실험결과가 주목된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예언대로 21세기에는 “인간에 의해 개량된 전혀다른 인간형”이 출현할지 모른다.창조주에 의해 출생한 인간이 아니라 과학에 의해 조작된유사인간이 태어날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생명공학 또는 유전공학의 ‘발전’이 이윤추구에 눈이 먼 기업과 합작으로 인류가 엉뚱한 방향으로 내몰리고 있다.‘과학’의 이름으로 일대 재앙이인류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든다. 과학(의학)자들의 ‘과학정신’이 요구된다. 인류는 과학(자)에 의해 오늘의 문명사회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재주와 기술을 전쟁과 범죄와 인류파멸에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잠수함이 무기로 쓰일것을 예견하고 설계도의 발표를 거부했다.17세기에 보일은 다빈치와 같은 이유로 자기가 개발한 독약의 비밀을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제조에 참가했던 미국 과학자 존 힐튼은 “최초의 원폭제조에 참가한 것을 반성한다.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끔찍한 폭탄제조에 참가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내가 이런 끔찍한 일을 맡게된것은‘과학을 위한 과학’이란 잘못된 철학을 믿고 있었기때문이다.”라고참회한 바 있다. 힐튼의 ‘참회’를 더들어보자. “과학을 사회생활이나인간으로부터 분리하여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원폭제조에 참가했던 것이다.우리 과학자는 ‘순수과학’에 헌신해야만 한다.그 나머지는 기술자나 정치인의 일이라고 생각했다.과학은 인류의 이익에 보탬이 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나에게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수많은 사람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해 가을 미국인 시벨리는 소의 난자에 인간세포의 핵을 이식하여 배반포기(착상가능한 세포단계)까지 발육시키는데 성공했다.서울대학 교수들은인간심장을 가진 돼지를 복제하는 연구로 곧 괄목할 성과가 나올 것이라 한다. 미국 토머슨 제퍼슨대학 연구팀은 유전자 변이로 흰쥐를 검은쥐로 바꾸는 연구결과를 공개했다.얼마뒤에는 미녀 상반신에 물고기 하반신의 ‘인어공주’도 나타날 것이며 파충류 난자에 DNA를 이식하여 ‘공룡’의 부활도가능할 것이라 한다.공상과학 소설의 캐릭터가 하나둘씩 현실화되고 있다. 인간이 복제되고 ‘쥐아기’가 태어나는 이 전율할 사태앞에 인간의 생명질서는 어찌되는가.이런 식으로생명공학이 진행되어도 괜찮을까. 생명(유전)공학이 사람에게 유용한 단백질이나 면역성을 가진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나,제초제에 강한 옥수수와 감자,서울대학팀이 연구중인 돼지를 통한 위 콩팥 등 장기의 대량생산은 장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무분별한 복제와 DNA 이식을 통한 생명조작은 중단돼야 한다.창조주의 생명질서를 어지럽힐 때 무슨 가공할 재앙이 닥치게될지 모른다.인간을 위한 과학(자)과 악마를 위한 과학(자)은 분리돼야 한다. 과학(의학)자들의 ‘과학정신’의 회복이 시급하다.‘인간의 모습이 똑같아지는’그런 끔찍한 미래를 막아야 한다.계류중인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을보완하여 이 분야의 안전성과 윤리문제를 다루는 안전장치가 되도록하고,세계적 연대를 통한‘인류보존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아니면 파멸에 이르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 [金三雄칼럼]-금강산의 엷은 햇살

    국가보안법상의 ‘적’이면서 남북기본합의서상의 ‘특수관계’인 북한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남북관계의 양면성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금강산 자락에도 엷은 햇살이 비치면서 잔설이 녹아흐르고 있었다. 장전항에서 ‘입국’절차를 밟고 들어간 온정리는 남한의 여느 시골마을과별로 다르지 않는 예전 우리 모습이었다. 산이 발가벗고 무표정한 어른들의모습이었지만 철부지 아이들은 손을 흔들고 금강산 곳곳에 배치된 안전원들역시 애써 지은 무표정 속에서도 한 핏줄이란 속내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분단 이후 출생자가 남한 83%,북한 87%가 되는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돼야 한다. 군사비가 130억달러 대 40억달러의 비율로 우리쪽이 질과 양에서 훨씬 우세한 편이고,남측 우방인 미국이 세계유일 최강인 반면 북측 우방이었던 소련은 붕괴된 처지에서 그쪽의 입장을 이해하는아량도 보여야겠다. 모름지기 협상이나 거래는 역지사지(易之思之)의 자세가 필요하다. 남북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6,70년대 북쪽이 경제적으로 앞서고 소련과 중국이 지원하고,미국이 한국에서 1개사단을 철수하는 등 이른바 ‘닉슨 독트린’정책으로 안보가 위태로울때 박정희대통령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서둘러야했던 그 절박한 상황을 돌이켜보자. 지금 북한이 사면초가와 체제모순과 거듭되는 재해로 인한 굶주림 속에서 극단의 대처방법을 추구해온 ‘처지’를조금은 이해할 만도 하다. 결코 북한의 핵이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양해하고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서 협상하고 접근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침략전쟁을 잊지 못한다. 6·25와 냉전시대를 겪으면서 국민의 반공주의는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정서와 감정 공포 증오로 자리잡게 되었다. 역대 독재정권과 이에 기생한 언론·지식인들의 안보상업주의도한몫을 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민족문제이면서 국제문제의 이중성을 띠면서 남북문제는 이념대결과 열강들의 이해대립으로 굳어지게 되고 남북문제는 ‘골라디온의 매듭’처럼 되고말았다. 여러해 전 프랑스 몽블랑과 스위스 융프라우를 오르면서 우리 금강산에는언제쯤 가게 될까,기약없이 꿈꾸었는데 이처럼 실현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미 4만명 이상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연말까지 10만명 이상이 금강산 관광을 하게 된다. 큰 변화다. 1년 전에만 해도 금강산 뱃길이 열리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金大中정부의 햇볕정책이 마침내 동토의 문을 열었다. 분단사 또는 통일운동사의 쾌거라 하겠다. 시인·화백 100여명과 함께 오른 만물상과 구룡폭포는 우리가 느껴온 추상보다 훨씬 우람하고 기묘하고 신비하고 청결한 모습이었다. 북한이 금강산을 이렇게 ‘보존’한데 감사드려도 좋을 것이다. 비닐쪽지하나,빈병쪼각 하나도 널려 있지 않는 자연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창조주의손길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금강산 뱃길이 다시 막히지 않도록,아니 묘향산과 백두산의 육로가 뚫리도록 참고 이해하면서 화해와 공존의 길을 넓혀야 한다. 북한에 대한 지원과 이해가 꼭 일방적인 수혜는 아니다. 남북관계가 안전해야 외국의 투자가 가능하고 수출도 늘어난다. 그런 면에서 IMF체제 극복을위해 우리쪽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북한 역시 변화의 흐름을 수용해야 한다. 북한이 기아와 후진성 탈피를 위해서는 남한의 지원과 동포애보다 더 절실한 나라는 달리없다. 또한 지나친군사력 증강이 일본 재무장의 빌미를 주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3박4일의 짧은 금강산행을 마치고 귀로 버스에서 일행은 노래와 시낭송으로 감격과 통일의 꿈을 새겼다. ‘음치’인 탓도 있지만 한편의 즉흥시로 ‘음책(音責)’을 면하고자 했다. 그렇게 어렵던 길이던가 그처럼 사무치던 곳이던가 꿈에도 그립던 길이길래 파도치는 동해뱃길 달려갔거니 당신 의연히 거기 있더이다 만물상 구룡폭포 신비의 모습하며 천고의 나래펴며 거기 있더이다 당신 거기있어 금수강산 이름받고 그대 거기있어 통일조국 소망이네 금강산 당신 품에 안길 때 때묻은 분단의 세월 부끄럽고 속세 티끌 떨친 그대 순수에 인간사 이욕과 갈등 수치였네 당신 보고 가는 서울행 찻길에서 대관령 자락 남은 잔설같은 냉전의 장벽 분단의 빙설 허물며 육로길에 다시 만날날 기약하네./주필
  • [공직탐험]기상청의 꽃 예보관(2)

    ‘석·박사 아니면 고졸’ 기상청의 인력구조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정부기관 가운데 전문연구소를 제외한다면 석·박사의 비율이 가장 높다.반면 고졸 출신 간부도 아마 비율이 가장 높을 것이다.오히려 학사 출신은 찾기가 쉽지 않다.기상청만의 특이한 충원구조 때문이다. 기상청은 지난 48년부터 ‘기상기술원양성소’를 통해 기상공무원을 키웠다.기상 전문지식이 없는 고교 졸업자를 뽑아 6개월 동안 교육시킨 뒤 특별채용시험을 거쳐 임용했다. 이른바 ‘38 동기생’은 관측소가 대거 신설된 71년 3월 8일 동시에 100명이상 임용된 양성소 출신을 일컫는다.양성소 출신은 현재도 주요 국장과 두곳의 지방청장을 맡고 있을 만큼 기상청 인력의 주력이다. 양성소를 통한 충원은 1982년에야 막을 내렸다.이후 공채로 직원을 뽑고,석·박사를 특채하기 시작했다.중견간부들 사이의 학력차는 이 때문이다.일반직 4급의 경우 석·박사가 16명,학사가 9명인 데 비해 고졸 이하가 21명이다.‘기상청의 꽃’이라는 예보관도 90년대 중반까지 양성소 출신과 석·박사가 뒤섞여 있었다. 한 관계자는 “회의가 열릴 때 보면 아무래도 박사출신과 양성소 출신은 설득력에서 차이가 나게 마련”이라면서 “그런 만큼 살아남기 위한 양성소 출신들의 피나는 노력도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7·9급 공채는 지방청별로 이루어진다.그러나 기상 관련학과는 서울대와 연세대,부산대,부경대,경북대,공주대,강릉대 등 7곳에만 설치되어 있다.호남과 제주지역에는 지방청이 있지만 관련 학과가 없다.인력수급에 문제가 있어기상청은 이 지역대학들에 관련 학과를 설치해 줄 것을 요청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놓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특채를 통한 전문인력의 충원은 활발한 편이다.지난해는 李天雨관측관을 물리부이사관으로 영입했다.미국과 일본 등의 박사 5명도 연구관으로 특채했다.올해도 상반기에만 13명의 석·박사를 특채할 예정이다.계획대로라면 현재본청 전체인력의 27% 수준인 석·박사급의 비율은 2000년대 초반까지 50%대로 높아진다. 徐東澈
  • 사면·복권 주요인물

    22일 발표된 특별사면 대상에는 39년째 복역중인 미전향 장기수 禹용각씨(71)를 포함,많은 공안·시국 사범들이 포함돼 있다. ◆禹용각씨=평북 영변출신으로 지난 58년 동해안으로 침투하던 중 울릉도 서북 해상에서 검거됐다.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9세의 나이에 수감돼 지금까지 대전교도소 특별사동 독방에서 보냈다.뉴욕타임스는지난해 3월 ‘40년 동안 단 한번의 면회도 없이 독방에 수감돼 있는 양심수’라고 禹씨를 소개,석방을 촉구하기도 했다. ◆高永復 전 서울대 명예교수(71)=이화여대 강사로 재직하던 지난 61년 9월북한에 있는 삼촌의 소식을 전하며 접근한 북한공작원에게 포섭됐다.96년까지 ‘부부간첩 최정남·강연정’ 등 북한공작원 6명과 수차례 접촉,은신처를 제공하는 한편 국내정세를 보고해온 혐의로 97년 11월 구속돼 징역 2년을선고받았다.1년3개월 복역했다. ◆趙相綠씨(53)=재일 조총련 간첩단 사건으로 지난 78년 2월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20년 동안 교도소에서 보냈다.남파간첩이 아닌 공안사범 가운데 최장기수다.76년 일본 명치대로 유학간 뒤,조총련계 친지들로부터 북한의 주체사상 등을 교육받고 귀국,가족에게 북한식 통일론 등을 가르친 혐의를받았다. ◆任鍾晳씨(32)=지난 89년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에 선출돼학생운동을 주도했다.林秀卿씨 밀입북과 관련,같은해 12월 체포돼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고 3년5개월 동안의 수감끝에 92년 12월 가석방됐다.현재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으로 시민단체와 연대해 활발한 사회운동을펼치고 있다. ◆林秀卿씨(30)=한국외국어대 4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89년 7월 북한에 밀입북,평양에서 열린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이로 인해 구속돼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은 뒤 수감생활을 하다 92년 12월 석방됐다. 현재 미국에 유학중이다. ◆徐敬元 전 국회의원(61)=평민당 국회의원 시절인 88년 8월 북한에 3일 동안 밀입북한 혐의로 구속돼 8년6개월 동안 복역했다.지난해 3월 가석방으로풀려났다.徐 전 의원은 이번에 잔형면제 및 복권 조치됐다. ◆黃秀英씨(54·필명 黃晳暎)=지난89년 밀입북한 뒤 미국과 독일 등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밀입북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3월 가석방됐다. ◆崔虎敬씨(41)=지난 92년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崔씨는 지난해 8월 8·15특사에서 준법서약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면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사면에서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朴志晩씨(40)=고 朴正熙 대통령의 외아들이다.지난 89년 코카인 흡입 혐의로 처음 입건된 이래 10년 동안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적발돼적발-선처-재적발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면서 4차례나 구속됐다.지난해 4월 히로뽕 흡입 혐의로 4번째로 구속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현재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치료감호를 받고 있다. ◆朴基平씨(40·필명 박노해)=‘노동자 시인 박노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 91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사건과 관련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8·15사면 때 준법서약서를 쓰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지난해11월 노동부 공무원을상대로 특강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白泰雄씨(36)=사노맹 상임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 92년 4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8·15사면 때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金載千 patr
  • ‘아니메’ 관련서적 출간 봇물

    ‘아니메(애니메이션을 뜻하는 일본어)’관련서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엄청난 파급력 때문에 지난해 정부의 일본문화 1차 개방 대상에서는 빠졌지만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이에 따라 그동안막연히 동경하거나,혹은 애써 외면해오던 일본 애니메이션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번역출간된 데즈카 오사무의 저서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하라고 하셨다’(누림)가 대표적인 예.데즈카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신(神)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그의 사망 10주기였던 지난 9일 일본 각지에서는 마니아 동호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추모행사가 치러졌다. 일본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인에게도 그는 각별하다.그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그의 분신인 ‘철완 아톰’,‘밀림의 왕 레오’를 모르는 이는 드물 테니까.이 책은 그가 어떻게 신의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또 일본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디즈니를 누를 수 있었는지를 자세히 다룬다. ‘아니메를 이끄는 7인의 사무라이’(황의웅 지음,시공사)는 데즈카를비롯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7명의 작품세계와 예술관을 조명한다.‘미래소년 코난’‘원령공주’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알프스소녀 하이디’‘빨강머리 앤’의 타카하타 이사오,‘아키라’의 오토모 카츠히로,카와지리 요시아키,오시이 마모루,그리고 ‘신세기 에반겔리온’으로 널리 알려진 안노 히데아키가 그들이다. 만화평론가 박인하씨 등 4명이 쓴 ‘아니메가 보고싶다’(교보문고)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변화와 다양한 면면을 살핀 책.1917년부터 1963년까지 일본애니메이션 초기 역사를 간략히 정리하고 이어 데즈카 오사무,60∼70년대 TV아니메,로봇,마법소녀에 이르기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전반을 설명한다.이밖에 ‘미소녀 게임의 세계’(예솔)도 일본 컴퓨터게임 속에 등장하는 미소녀를 통해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훑어보고 있다.시류에 영합한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것은 국내 애니메이션 발전에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 문화관광부 발표 ‘관광비전 21’

    문화관광부가 28일 확정,발표한 ‘관광비전21-관광진흥5개년계획’은 관광수지 흑자 및 외자유치,고용 창출을 통해 경제위기 극복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또 내년부터 잇따라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2000년),한국방문의해(2001년) 월드컵(2002년) 등 빅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2003년까지 5년동안 외래관광객 700만명 유치와 120억달러 관광수입,70만명의고용창출을 이루겠다는 야심찬 목표아래 추진된다.이 기간 동안 총 8조3,000억원이 투입된다.다음은 주요 내용.▒국제수준의 관광자원 확충 수도권 및 강원 충청 대구경북 부산경남 호남 제주 등 7개 권역으로 나누어 백제문화제(공주·부여) 민속투우대회(경북 청도) 등 지역별로 50개 특화사업을 추진한다.남해안 해양관광벨트 및 어촌 문화관광상품 개발 등 해양 관광자원이 집중 개발된다.이러한 사업은 해양 위락문화관광벨트 전통문화관광벨트 신라문화관광벨트 백제문화관광벨트 등 14개 관광벨트와 연계돼 추진된다.▒국제적인 관광인프라 구축 컨벤션센터 건립 및 국제회의 유치와개최를 지원해 국제회의산업을 육성한다.관광호텔 및 중저가 숙박시설을 확충하고 민박을 활성화하는 등 관광숙박시설을 대폭 늘린다.지역별 관광안내센터를 설치하고 관광안내표지를 개선해 관광안내 서비스체계를 정비한다.외국인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관광정보망을 구축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한 지원체제을 갖춘다.▒밀레니엄 관광이벤트의 성공적 개최 한국·중국·일본의 관광자원을 활용해 오리엔트 크루즈를 개발하는 등 월드컵과 ASEM 등 국제적인 빅 이벤트를 겨냥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한다.▒국민 생활관광 실현 관광요금 할인 및 노약자에 대한 관광편의시스템 구축,장애인을 위한 관광프로그램 등을 통해 소외계층의 관광참여 기회를 늘린다.자연농장 가족캠프청소년스포츠교실 등 가족과 청소년이 함께 할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을확충해 가족단위의 관광을 간접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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