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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7)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상)

    지금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 안으로 편입시켜 그들의 역사화를 시도하고 있다.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비난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 고구려 영토였던 만주에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200여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그들의 생김새,언어,전통,음식은 한국인들과 닮은 데가 많다.한글과 한문을 함께 사용하는 문자생활,조상 제사하는 방법과 장례 풍속 등의 문화생활도 유사한 데가 있다. 그들의 국적은 중국이며 자식들은 중국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많다.특히 동북 3성이라 일컫는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조선족들은 한글과 한국 역사를 함께 가르치는 조선족 특유의 교육제도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다.그들은 가난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한다.돈을 벌기 위해서다.그런데 참 서럽다.한국인의 지독한 차별대우 때문이다. 고구려 역사문제로 중국에 대해 분노하는 한국인의 태도와 고구려 땅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을 차별대우하는 한국인의 태도 사이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조선족은 한국 슬픔의 한 원류 중국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태도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중국과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며 조선족은 분명 한국 슬픔의 한 원류다.동북 3성이 아닌 중국의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조선족들도 많은데 이들은 조선족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한족(漢族)·몽골족·만주족 등으로 귀화했는데,이들 사는 곳을 두고 조선족들은 관내(官內)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는 교포들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1992년부터 꽤나 긴 시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만주와 북만주,일본의 총련과 민단사회를 두루 방문 여행했다. 특히 동북 3성인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여행은 러시아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카레이츠와 한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갖게 했다.당시 나는 조선족의 기구한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중국 조선족 역사학회’ 이사 서명훈(徐明勳) 선생을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그의 아파트로 방문했다. 1992년 여름에서 1998년까지 사이에 있었던 20여 차례의 여행기록을 토대로 하여 그 이후의 변화된 사정들을 전화 취재와 자료로 보완하면서 한국 슬픔의 뿌리를 들추어 본다. 문:중국 조선족의 역사를 정확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徐:글쎄요.조선족 역사라는 것이 독자적으로 성립된 적이 없어놔서….시작은 조선에서였지만,과정은 후금(後金),청(淸)나라,중국을 거쳐왔기 때문에 각 나라와 시대의 한 부분 또는 토막에 묻혀 있어서…. 문:언제부터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보시는지요. 徐:중국에서 출판된 어떤 조선인 이민사에 관한 기록에 보면 19세기 중엽 또는 19세기 말엽부터였다고 하더군요.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조선족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중국과 조선 역사 기록을 잘 살펴보면 일찍이 17세기부터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민을 왔음이 확인됩니다. 문:중국과 조선의 역사 기록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을는지요. 徐:청대통사(淸代通史),헤이룽장이민개요(黑龍江移民槪要),성정회람(省政回覽),한국이민사연구(韓國移民史硏究),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태조고황제실록(太祖高皇帝實錄),청사고(淸史稿),청조사료총간(淸朝史料叢刊),인조대왕실록(仁祖大王實錄),청태조무황제실록(淸太祖武皇帝實錄),명청사료(明淸史料),만문노로(滿文老櫓),심관록(沈館錄),조선통사(朝鮮通史),선양일기(沈陽日記),랴오둥문헌미략(遼東文獻微略),중국동북농업사,팔기통지(八旗通志),지린통지(吉林通志),헤이룽장조선민족 등이 대표적인 문헌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들 중에는 겨우 몇 마디,몇 글자로밖에 쓰여 있지 않은 것도 있는데,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뭐랄까요,중국역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문제는 바로 그 점입니다.한 두 글자로라도 적혀 있다는 것 말입니다.소위 조선인의 중국 이민을 연구한다는 이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역사란 많고 풍부한 자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淸에 잡힌 조선포로 1만3000명 귀환 기록 없어 문:17세기부터 중국으로 이민이 시작되었다면 구체적인 시기나 원인을 알 수 있습니까. 徐:17세기 초 조선과 청국 사이에는 수차에 걸친 전쟁이 있었지 않습니까.1627년 1월13일 후금(後金)의 황제 황태극이 3만 대군으로 조선을 공격한 일이 있었지요.한국에서는 정묘호란이라 부르지요. 그 후 1636년 3월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그해 12월9일 만주군,몽골군,한군을 합한 12만 대군으로 재차 조선을 공격했는데 병자호란이 그것입니다.패한 조선에서는 수천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정묘호란 때의 포로가 4986명이었고,병자호란 때는 3000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또 1618년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할 때 명나라의 요구에 의해 명나라를 지원하려고 파견되었던 조선군 1만 3000명 중에서 5000명이 후금에 투항하여 포로가 된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보면 이미 1618년에서 1636년에 이르는 18년 동안에 무려 1만 3000여명이라는 많은 조선 군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그들은 결국 청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었겠지요. 문:전쟁 포로를 이민으로 볼 수도 있을까요. 徐:그 점이 조선족 역사의 특성입니다.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에서 살게 된 조선인을 조선족이라고 하는데,중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 포로로 끌려온 경우지요.앞에서 살핀 대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끌려와서 주로 노예신분이 되어 살았습니다. 둘째는 납치된 사람들입니다.즉 후금은 만주 땅에다 나라를 세운 뒤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명나라와 조선에서 사람을 납치해 와서 노비로 삼았지요.현재 랴오닝성의 흥경노성(興京老成) 밖에 있는 고려촌이 그 증거입니다. 셋째는 중국으로 피신해온 사람들이지요.정치범이나 일반 형사범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대표적인 경우로 1625년 인조반정 때 이괄(李适)과 함께 처형당한 한명렴(韓明廉)의 아들 한윤(韓潤)과 조카 한의(韓義)가 후금으로 피신하여 후금의 군인 간부가 된 일이 있지요.한윤,한의는 뒷날 정묘호란 때 후금의 길 안내를 맡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정여립 모반사건 때 화를 피해서 온 정(鄭)가 성씨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굶주림 피해 국경넘어 中동북3성 정착 넷째는 유민(流民)들입니다.조선의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자주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지방에 와서 정착했습니다.17세기 조선 인민들은 경제적으로 봉건통치 계급의 참혹한 착취를 피하거나 천재지변으로 굶주림을 피해서 국경을 넘는 일이 빈번했지요. 토지가 넓고,인구는 매우 적으며,압제와 수탈과 부역이 적은 중국 쪽으로 피해서 살고 싶은 욕망이 크게 작용했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가 이들 유민이었습니다.살아남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국경 탈출을 한 이들이 본격적인 중국이민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들에 관한 일은 1628년,1631년,1635년,1639년,1686년의 여러 기록에 등장하는데,중국의 책임자가 조선의 왕에게 국경을 봉쇄하여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단속해 달라는 강력한 항의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다섯째는 혼인정책에 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조선의 공주가 청나라 왕실과 결혼하거나 조선 대신들의 딸,손녀가 청나라 왕실 귀족들과 혼인한 일이 많았습니다.조선의 공주나 대신들의 딸들이 청나라로 시집을 오게 되면 이들을 따라서 오는 조선인이 많았지요.이들은 친인척들끼리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비교적 높은 벼슬을 유지하면서 중국화되었지요. 그 외에 청나라 때에는 조선에서 여자들을 데려와 혼인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조선에서는 벼슬아치들의 첩실 몸에서 난 어린 딸들을 주로 보내주었지요.이들도 뒷날 중국화했습니다. 문:그러면 포로 등 다섯 부류로 나눠진 조선인들이 중국에 와서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徐:그들의 직업은 크게 나누어 가장 많은 숫자가 농사짓는 노예였고,더러는 귀족 가문에 소속된 노예도 있었고,팔기군(八旗軍)의 병사도 있었으며,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사회 상층부 인물도 있었습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7)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상)

    지금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 안으로 편입시켜 그들의 역사화를 시도하고 있다.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비난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 고구려 영토였던 만주에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200여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그들의 생김새,언어,전통,음식은 한국인들과 닮은 데가 많다.한글과 한문을 함께 사용하는 문자생활,조상 제사하는 방법과 장례 풍속 등의 문화생활도 유사한 데가 있다. 그들의 국적은 중국이며 자식들은 중국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많다.특히 동북 3성이라 일컫는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조선족들은 한글과 한국 역사를 함께 가르치는 조선족 특유의 교육제도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다.그들은 가난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한다.돈을 벌기 위해서다.그런데 참 서럽다.한국인의 지독한 차별대우 때문이다. 고구려 역사문제로 중국에 대해 분노하는 한국인의 태도와 고구려 땅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을 차별대우하는 한국인의 태도 사이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조선족은 한국 슬픔의 한 원류 중국의 고구려 역사에 대한 태도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태도는 중국과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며 조선족은 분명 한국 슬픔의 한 원류다.동북 3성이 아닌 중국의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조선족들도 많은데 이들은 조선족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한족(漢族)·몽골족·만주족 등으로 귀화했는데,이들 사는 곳을 두고 조선족들은 관내(官內)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는 교포들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1992년부터 꽤나 긴 시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만주와 북만주,일본의 총련과 민단사회를 두루 방문 여행했다. 특히 동북 3성인 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의 여행은 러시아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카레이츠와 한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갖게 했다.당시 나는 조선족의 기구한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중국 조선족 역사학회’ 이사 서명훈(徐明勳) 선생을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그의 아파트로 방문했다. 1992년 여름에서 1998년까지 사이에 있었던 20여 차례의 여행기록을 토대로 하여 그 이후의 변화된 사정들을 전화 취재와 자료로 보완하면서 한국 슬픔의 뿌리를 들추어 본다. 문:중국 조선족의 역사를 정확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徐:글쎄요.조선족 역사라는 것이 독자적으로 성립된 적이 없어놔서….시작은 조선에서였지만,과정은 후금(後金),청(淸)나라,중국을 거쳐왔기 때문에 각 나라와 시대의 한 부분 또는 토막에 묻혀 있어서…. 문:언제부터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보시는지요. 徐:중국에서 출판된 어떤 조선인 이민사에 관한 기록에 보면 19세기 중엽 또는 19세기 말엽부터였다고 하더군요.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조선족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중국과 조선 역사 기록을 잘 살펴보면 일찍이 17세기부터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민을 왔음이 확인됩니다. 문:중국과 조선의 역사 기록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을는지요. 徐:청대통사(淸代通史),헤이룽장이민개요(黑龍江移民槪要),성정회람(省政回覽),한국이민사연구(韓國移民史硏究),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태조고황제실록(太祖高皇帝實錄),청사고(淸史稿),청조사료총간(淸朝史料叢刊),인조대왕실록(仁祖大王實錄),청태조무황제실록(淸太祖武皇帝實錄),명청사료(明淸史料),만문노로(滿文老櫓),심관록(沈館錄),조선통사(朝鮮通史),선양일기(沈陽日記),랴오둥문헌미략(遼東文獻微略),중국동북농업사,팔기통지(八旗通志),지린통지(吉林通志),헤이룽장조선민족 등이 대표적인 문헌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들 중에는 겨우 몇 마디,몇 글자로밖에 쓰여 있지 않은 것도 있는데,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뭐랄까요,중국역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문제는 바로 그 점입니다.한 두 글자로라도 적혀 있다는 것 말입니다.소위 조선인의 중국 이민을 연구한다는 이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대목이기도 합니다.역사란 많고 풍부한 자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淸에 잡힌 조선포로 1만3000명 귀환 기록 없어 문:17세기부터 중국으로 이민이 시작되었다면 구체적인 시기나 원인을 알 수 있습니까. 徐:17세기 초 조선과 청국 사이에는 수차에 걸친 전쟁이 있었지 않습니까.1627년 1월13일 후금(後金)의 황제 황태극이 3만 대군으로 조선을 공격한 일이 있었지요.한국에서는 정묘호란이라 부르지요. 그 후 1636년 3월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그해 12월9일 만주군,몽골군,한군을 합한 12만 대군으로 재차 조선을 공격했는데 병자호란이 그것입니다.패한 조선에서는 수천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정묘호란 때의 포로가 4986명이었고,병자호란 때는 3000명의 포로가 청나라로 끌려왔습니다. 또 1618년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할 때 명나라의 요구에 의해 명나라를 지원하려고 파견되었던 조선군 1만 3000명 중에서 5000명이 후금에 투항하여 포로가 된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보면 이미 1618년에서 1636년에 이르는 18년 동안에 무려 1만 3000여명이라는 많은 조선 군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그들은 결국 청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었겠지요. 문:전쟁 포로를 이민으로 볼 수도 있을까요. 徐:그 점이 조선족 역사의 특성입니다.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에서 살게 된 조선인을 조선족이라고 하는데,중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 포로로 끌려온 경우지요.앞에서 살핀 대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끌려와서 주로 노예신분이 되어 살았습니다. 둘째는 납치된 사람들입니다.즉 후금은 만주 땅에다 나라를 세운 뒤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명나라와 조선에서 사람을 납치해 와서 노비로 삼았지요.현재 랴오닝성의 흥경노성(興京老成) 밖에 있는 고려촌이 그 증거입니다. 셋째는 중국으로 피신해온 사람들이지요.정치범이나 일반 형사범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대표적인 경우로 1625년 인조반정 때 이괄(李适)과 함께 처형당한 한명렴(韓明廉)의 아들 한윤(韓潤)과 조카 한의(韓義)가 후금으로 피신하여 후금의 군인 간부가 된 일이 있지요.한윤,한의는 뒷날 정묘호란 때 후금의 길 안내를 맡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정여립 모반사건 때 화를 피해서 온 정(鄭)가 성씨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굶주림 피해 국경넘어 中동북3성 정착 넷째는 유민(流民)들입니다.조선의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자주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지방에 와서 정착했습니다.17세기 조선 인민들은 경제적으로 봉건통치 계급의 참혹한 착취를 피하거나 천재지변으로 굶주림을 피해서 국경을 넘는 일이 빈번했지요. 토지가 넓고,인구는 매우 적으며,압제와 수탈과 부역이 적은 중국 쪽으로 피해서 살고 싶은 욕망이 크게 작용했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가 이들 유민이었습니다.살아남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국경 탈출을 한 이들이 본격적인 중국이민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들에 관한 일은 1628년,1631년,1635년,1639년,1686년의 여러 기록에 등장하는데,중국의 책임자가 조선의 왕에게 국경을 봉쇄하여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단속해 달라는 강력한 항의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다섯째는 혼인정책에 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조선의 공주가 청나라 왕실과 결혼하거나 조선 대신들의 딸,손녀가 청나라 왕실 귀족들과 혼인한 일이 많았습니다.조선의 공주나 대신들의 딸들이 청나라로 시집을 오게 되면 이들을 따라서 오는 조선인이 많았지요.이들은 친인척들끼리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비교적 높은 벼슬을 유지하면서 중국화되었지요. 그 외에 청나라 때에는 조선에서 여자들을 데려와 혼인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조선에서는 벼슬아치들의 첩실 몸에서 난 어린 딸들을 주로 보내주었지요.이들도 뒷날 중국화했습니다. 문:그러면 포로 등 다섯 부류로 나눠진 조선인들이 중국에 와서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徐:그들의 직업은 크게 나누어 가장 많은 숫자가 농사짓는 노예였고,더러는 귀족 가문에 소속된 노예도 있었고,팔기군(八旗軍)의 병사도 있었으며,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사회 상층부 인물도 있었습니다.˝
  • [이경기의 스크린1인치]父傳女傳 코폴라 '가문의 영광´

    “부친의 업적을 능가할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지(誌)가 극찬을 하고 있듯이 2004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여성 영화인이 소피아 코폴라이다. 그녀는 바로 ‘대부’ ‘도청’ ‘지옥의 묵시록’으로 20세기 최고 감독으로 칭송 받고 있는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딸이다.‘대부’의 라스트에서 펼쳐지는 아기 세례식 장면에서 등장하는 아기가 바로 생후 1년된 소피아다. 소피아는 ‘대부 2’에서는 뉴욕항에 입항하는 증기선에 탑승한 어린 승객으로,‘대부 3’에서는 위노나 라이더를 탈락시키고 메리 콜레오네역에 캐스팅되는 등 부친의 절대적인 후광으로 영화계와 인연을 지속해 나간다.이런 편애에 대해 일부 영화인들은 “부친의 과욕으로 연기력이 부족한 소피아가 기대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비난했다.연기력을 의심 받던 소피아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 워스:에피소드 1’(1999)에서 아미달라 공주(나탈리 포트만)의 모친 사체 왕비역을 맡아 개성 연기자로 어느 정도의 점수를 얻게 된다. 틈틈이 시나리오 습작을 하던 소피아는 2003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연출,시나리오,제작 등 1인 3역을 맡아 만만치 않은 재능꾼임을 드러낸다.이 영화는 위스키 선전 차 일본을 방문한 미국 중견 배우와 CF 감독인 남편을 따라 일본을 방문한 갓 결혼한 20대 여인이 나누는 짧은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이 영화로 소피아는 1월26일 진행된 6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코미디 부문 작품상,남우상(빌 머레이),각본상(소피아) 등 주요 3개 부문상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어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의 피터 잭슨 감독과 함께 가장 많은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된다.골든 글로브가 전통적으로 2월에 개최되는 아카데미 시상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영화제로 인정 받고 있기 때문에 지금 분위기로는 부친의 대를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따낼 확률이 가장 높은 영화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영화는 나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훌륭한 매체”라고 수상 소감을 밝힌 그녀는 “오늘의 영광은 아버지 코폴라에게 있다.”고 덧붙여 뛰어난 부녀 감독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코폴라 가문 외에 부녀 감독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이들이 또 있다.`트윈 픽스’ `멀홀랜드 드라이브’ 등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컬트 감독으로 인정 받고 있는 데이비드 린치의 딸 제니퍼 체임버 린치다.1993년 ‘남자가 사랑할 때’를 통해 부친 못지않은 엽기적 기질을 과시했다.린치 모녀는 그러나 대중적인 측면에서는 코폴라 부녀를 따라 오지 못하고 있다. 한편 국내 영화계에서도 ‘실미도’에서 냉혹한 조중사역의 허준호를 비롯해 최민수,김희라 등이 연기자 2세 시대를 개척해 가고 있는 대표적 배우들.이처럼 영화인 2세들은 오늘도 시네마 천국의 다양성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음악 즐기며 사랑 속삭여요”

    9일 앞으로 다가온 밸런타인데이.달콤한 초콜릿도 좋지만 마음을 녹이는 음악이라도 있다면 사랑 고백이 더 쉽지 않을까.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 망설이는 연인들을 맺어주기 위해 ‘밸런타인데이 콘서트’를 앞다투어 마련한다. 사랑의 세레나데뿐 아니라 마음을 전해줄 다채로운 이벤트도 곁들여져 연인들이 오붓한 시간을 함께 나누기에는 제격인 행사들이다. ‘사랑의 시’로 가요차트 1위를 독주해온 MC The Max가 8일 ‘미리 만나는 밸런타인’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연인들을 위한 첫 테이프를 끊는다. 호암아트홀에서 오후 2시·5시 2차례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불우청소년과 소아암환자를 돕는 뜻깊은 의미의 공연인 만큼 이웃도 돕고 사랑도 키우는 ‘일거양득’이다.(02)751-9606. 주말인 14일은 고민 좀 해야 될 것 같다.워낙 많은 가수들이 사랑의 연가(戀歌)를 부르겠다고 하니 말이다.이승철은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러브 러브 러브’ 콘서트를 연다.이름에서 알 수 있듯 노골적으로 연인들을 타깃으로 삼은 히트 발라드를 작정하고 부른다니 솔로들은 ‘참을 인’을 되새기며 공연을 봐야 할 듯.(02)565-4463. 공연 기획사 ‘피엠지코리아’가 마련한 세 번째 밸런타인콘서트 ‘더 모스트 로맨틱(The Most Romantic)’은 사랑의 감정을 3배로 증폭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김현철·박기영·조규찬 등 실력파들이 한꺼번에 무대에 오르는 데다 자신들의 러브스토리까지 털어놓는다.특별게스트로 출연하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레인’이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로 오프닝을 장식,초반부터 분위기를 다잡는다. 색다른 느낌을 갖고 싶다면 일본 카운터테너 요시카즈 메라의 청아한 목소리와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피아노 선율에 기대봄이 어떨지.일본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의 주제가를 부른 요시카즈의 공연은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4년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요시카즈는 이번 공연에서 ‘원령공주’의 주제가를 무대 위에서 직접 부른다.(02)525-6929. 이루마는 일본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와 함께 12∼14일 울산,서울,제주 3곳을 돌며 ‘러브 에피소드 콘서트’를 펼친다.이사오의 음악은 국내 여러 CF에 쓰였으며 영화 ‘봄날은 간다’와 드라마 ‘비단향꽃무’에 삽입돼 널리 알려져 있다.(02)3487-7800. 이밖에 방송 출연 안하기로 유명한 남성 트리오 바이브가 13·14일 서울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팬들과 만나고 최근 9집 앨범을 낸 신승훈은 14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에 돌입한다.또한 이승환,조관우,윤도현밴드,유리상자 등이 같은 날 서울과 제주,대구에서 각각 콘서트를 열고 만능 연예인 남궁연도 청담동 하드록카페에서 연인은 물론 위기에 빠진 솔로들을 위한 ‘기적의 파티’를 준비해 놓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
  • 주말매거진We/그 영화 어때?

    지난주 영화와 음악 시상식이 열린 미국의 베벌리힐스와 프랑스 칸에서는 세계적인 ‘은막의 요정’들과 ‘디바’들이 눈부신 의상과 현란한 몸짓을 선보였다.우승 트로피보다 이들의 관능미가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니콜 키드먼은 ‘몬스터’의 찰리 데론에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빼앗겼지만 금빛 비늘에 싸인 ‘인어공주’로 변신,시상식에 참석한 전 남편 톰 크루즈 등 뭇남성들의 시선을 독차지했다.금발로 염색한 머리와 금구슬이 박힌 헤어밴드,금줄무늬가 들어간 핸드백에 금팔찌,금반지까지 몸 전체를 그야말로 영화제 이름처럼 ‘골드’로 통일시켰다. 유럽 라디오그룹 NRJ의 뮤직어워드에 참석하기 위해 칸에 도착한 팝의 요정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가슴이 절반 넘게 드러난 원피스를 입고 건강한 육체미를 과시했다.최근 고향 친구와의 결혼 소동이후 다소 체중이 늘어 더욱 풍만해진 모습. 역시 NRJ어워드에 나타난 미국 여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지중해 분위기에 맞춰 헤어스타일과 눈화장,드레스,목걸이,귀걸이,왼쪽 팔꿈치 안의 문신까지 이집트풍으로 연출했다. 최근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여가수 비욘세는 흑인혼혈 특유의 탄력있고 풍만한 몸을 한껏 과시할 수 있는 짧은 의상을 입고 NRJ 시상식에서 공연했다.사자갈기 머리를 젖히고 뒤를 돌아보며 던지는 눈웃음이 더욱 뇌쇄적이다. 이도운기자·외신 dawn@ ●신설국-사랑은 눈 녹듯이… 새달 말 개봉하는 ‘신설국(新雪國)’은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모티브로 한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영화의 무대는 제목처럼 눈이 지천에 깔린 마을 츠키오카(月岡).절망적 상실감에 자살 여행에 나선 50대 남자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젊은 게이샤가 서로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이야기다.그 분위기는 화면을 가득 메운 눈처럼 따스하다. 온 마을이 눈으로 덮인 마을 츠키오카역에 뭔가 사연을 간직한 듯한 쿠니오(오쿠다 에이지)가 내린다.특별한 대사없이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영화는 그가 당돌한 게이샤 모에코(유민)를 만나면서 속도를 낸다.연인이 교통사고로 죽는 장면을목도한 상처를 지닌 그녀인지라 직감적으로 쿠니오의 황량한 내면세계를 감지한다.상처입은 과거사를 징검다리로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튼다. 고토 감독이 영화 기획단계에서 염두에 뒀다는 일본의 인기배우 에이지의 우수어린 연기가 은은하게 빛나고 풋풋한 이미지의 유민은 적극적이고 발랄한 연기로 화답한다.지난 2001년 한국으로 건너와 왕성하게 활동하는 일본인 탤런트 유민(일본명 후에키 유코)이 주연으로 데뷔한 영화인데 한국에서는 인터넷에서 누드신이라는 ‘비틀어진 논란’으로 화제를 모았다.정작 영화 속 정사 장면은 그녀의 깔끔한 이미지를 더해준다. 그러나 영화의 따스한 메시지는 갈수록 그 밀도가 떨어진다.별다른 반전 없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니 자연히 산만해지고 식상해진다. 이종수기자 vielee@ ●구루-사랑은 사고처럼… ‘유쾌하고 발랄한 러브스토리.’ 30일 개봉하는 ‘구루(The Guru)’는 존 트래볼타 같은 스타가 돼 부와 명성,인기를 얻겠다고 미국으로 건너온 인도의 댄스 강사 라무 찬드라 굽타(지미 미스트리)의 꿈과 좌절과 사랑 등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다.재미있고 달콤하게 엮어가는 사랑 이야기,성적 이미지와 유머를 결합시킨 참신한 발상에 젖다 보면 94분의 상영시간이 휙 지나간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날아온 라무를 기다리는 것은 냉혹한 현실뿐.울며 겨자먹기로 친구들과 월세방에서 합숙을 하면서 시작한 인도식당 웨이터 일이 성에 찰리가 없다.그러다가 영화사를 찾아가 배역을 맡았는데 알고 보니 “주연이지만 대사가 너무 적은” 포르노 영화다.실의에 빠진 그에게 행운이 찾아온다.뉴욕 상류층 만찬에서 주방일을 거들다 우연히 인도 영적 지도자의 대역을 맡아 정신적 지도자인 ‘구루’로 떠오른다.비결은 포르노의 파트너 샤로나(헤더 그레이엄)가 들려준 성 관련 표현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 미스트리의 신선한 연기가 매력을 뿜고 진지한 조연을 주로 맡아온 마리사 토메이의 코믹연기 변신도 인상적이다. 이종수기자 ●곰이 되고 싶어요-사랑은 함께 하는 것… 30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곰이 되고 싶어요’는 한마디로 기존의 질서를벗어나는 ‘대항적’인 영화다.애니메이션의 양대 산맥인 미국과 일본이 아닌 덴마크·프랑스·노르웨이 합작으로 만들어진 점도 그렇지만,형식과 내용면에서도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깨버린다. 얼음이 뒤덮인 그린랜드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엄마 곰과 에스키모 부부의 출산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갑작스러운 늑대의 습격으로 새끼를 잃은 엄마 곰은 슬픔에 잠긴다.아빠 곰은 대신 인간 부부의 갓난아이를 훔쳐와 자식처럼 키운다.이번엔 행복했던 인간 부부가 곰이 겪었던 비탄에 똑같이 빠지게 된다.한참 뒤 에스키모는 곰을 죽이고 아이를 되찾아 오지만,아이는 이미 정체성을 잃어 버린 상태.외모만 인간일 뿐 곰으로 자라난 아이는 다시 사람이 되길 거부한다.결국 에스키모 부부는 아이를 곰의 세계로 돌려보내고,아이는 고통의 시간을 거쳐 다시 곰으로 살아간다.‘사랑=함께 있는 것’이라는 평범한 상식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이 영화는 아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재미와 감동을 줄 것 같다. 이영표기자 tomcat@
  • 주말매거진We/술따라 맛따라-가야곡왕주

    해마다 5월이 되면 서울 종묘에선 조선조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시고 제례를 올렸던 종묘대제가 재현된다. 이 종묘대제에서 쓰이는 제주(祭酒)가 바로 충남 논산의 ‘가야곡 왕주’다.‘가야곡’은 논산시 가야곡면에서 따왔고,‘왕주’는 왕실에서 마시던 술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술도가의 안주인 남상란(57)씨를 가야곡면 육곡리 가야곡왕주 전시장에서 마주했다.명인 제13호로 지정돼 있는 남씨는 외할머니,친정어머니에 이어 왕주를 빚어왔다. “외할머니(민재득)는 명성황후(민비) 친정인 민씨 집안 분이셨어요.당시 민씨 집안에선 대대로 빚어 마시던 곡주에다 조선 중엽 성행했던 약주를 접목시켜 술을 빚어서 왕실에 진상했다고 해요.그 비법을 친정어머니(도화희)가 이어받아 제게 물려주셨지요.” 지금 ‘가야곡왕주’는 술 이름인 동시에 사업체 상호이다.원래 남씨 시댁은 60년대부터 동동주,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반야주조장)을 운영해온 술도가집.한때 ‘가야곡 동동주’‘뻑뻑주’로 충남 일대에서 이름을 날리기도 했으나,90년대 들어 토속주가 외면당하면서 사업이 위기에 몰렸다. 이때 남씨는 남편(이용훈·57)에게 친정의 가양주를 빚어볼 것을 권유해 91년 ‘가야곡왕주’란 이름으로 빛을 보게 됐다.술이 기대 이상의 호평을 얻고,97년엔 종묘대제의 제주로 쓰이게 되자 부부가 상의해 아예 상호를 가야곡왕주㈜로 바꿨다.왕주는 소곡주처럼 덧담근 약주다.멥쌀떡에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밑술에 찹쌀밥과 누룩,야생국화,홍삼,구기자,오미자,솔잎 등을 혼합해 덧술을 빚는다.재료 하나하나가 예로부터 질병 예방이나 치료에 효능이 탁월한 것만 모아 놓았다.여기에 임금의 입맛과 건강을 생각하며 빚던 정성이 들어있으니,그 맛이 예사롭지는 않을 터. 남씨가 시음용으로 내온 술을 한 잔 권한다.혀끝에 감도는 감칠맛과 그윽한 향은 우리 전통 약주의 맛 그대로인데,무언가 특이한 느낌이 하나 온다.머릿속을 씻어주는 듯한 상쾌함이 그것.누룩 특유의 냄새가 주는 묵직한 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저온 숙성과 급속 냉각 여과법을 쓰기 때문이에요.술을 빚어 숙성시킬 때 10도 이하에서 발효시키고,떠낸 술은 특수한 냉각여과기를 이용해 불순물을 깨끗이 걸러냅니다.” 이 방법은 누룩냄새를 싫어하는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도입했는데 상당히 반응이 좋다고 한다.또 외국인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미국,일본 등에 수출도 한다. 불순물을 깨끗이 걸러냄으로써 보통 상온에서 보름 정도인 저장기간을 2년으로 늘려,보관에 따르는 문제점도 사라졌고,숙취도 거의 없다고 한다. 가야곡왕주㈜가 생산하는 술은 약주인 가야곡왕주와 증류식 소주,막걸리격인 뻑뻑주 등 3가지.남씨의 세 아들인 이정연(36)·준연(33)·규연(30)씨가 각각 하나씩 맡아 왕주의 계보를 잇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이들은 일대에서 ‘누룩 3형제’로 유명하다. 남씨는 요즘 가야곡왕주와 찰떡궁합을 이룰 만한 음식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일본의 청주인 ‘사케’가 생선회(스시)와 결합해 세계시장에서 대 성공을 거두었듯이 전통주와 고유의 음식 결합을 통해 외국인들의 입맛을 잡아보려는 것이다. 글 논산 임광동기자 sdragon@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논산IC에서 빠져 68번,4번 지방도를 갈아타고 가야곡,양촌 방면으로 15분쯤 가다보면 도로 왼쪽으로 가야곡왕주 공장과 전시판매장이 나온다.천안-논산 고속도로 서논산IC에서 나와 4번 도로를 이용해도 된다.전시판매장에서 가야곡왕주를 시음해본 뒤 구입할 수 있다.(041)741-8353∼4. ●여기도 구경하세요 논산은 부여나 공주처럼 백제 유적지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두 도시 못지않게 백제의 흔적이 많다.우선 계백장군이 5000명의 군사로 나당연합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황산벌이 있다.4번을 싸워 이겼으나,결국 패했던 이곳엔 통한의 한을 품고 전사한 계백장군의 무덤이 있다. 고려 태조가 936년 후백제 정벌에 성공하고 세우게 했다는 개태사에도 가보자.태조는 당시 친히 지은 발원문에서 ‘후백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의 도움 때문이니 앞으로 불위(佛威)로써 나라를 옹호하기 바란다’고 했다고 한다.노성면 일대에 있는 노성산성은 논산 동부지역으로부터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당시 백제가 논산 일대에 쌓았다고전해지는 13개의 크고 작은 산성들중 유일하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무얼 먹을까 은진미륵이 있는 관촉사 입구에 가면 ‘돌체’란 한정식집이 있다.주인의 깔끔하면서도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손맛이 느껴지는 곳.특히 생선회와 홍어회 등 해산물 맛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4인기준 1상에 7만원.인원이 적거나 한정식이 부담스러우면 갈치정식(1만2000원)이나 불고기(1만원)를 고르면 된다.(041)732-3422.
  • 주말매거진 We/세상에 이런 일이-국내

    “마을 주민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제사라도 지내야지요.” 수령 1600년이 넘는 ‘괴목’(사진)앞에서 스님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이채로운 장면이 연출된다.충남 공주에 있는 계룡산 갑사 스님들은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에 계룡산 앞 갑사동 용천교 입구에 서 있는 괴목 앞에서 사하촌 주민들과 함께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이른바 ‘괴목대신제’다. 300년 넘게 이어져온 괴목대신제는 60년대 이후 절과 마을의 형편이 여의치 않아 명맥만 겨우 유지됐다.그러다 공주시가 지원을 하고 관심이 높아지면서 2000년 ‘대동한마당’ 형태로 복원됐고 올해에는 스님들은 물론 마을 주민들과 관광객이 모여 더욱 크게 행사를 열기로 했다. 괴목대신제의 유래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300여년 전 갑사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작명등의 기름이 조금씩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상하게 여긴 스님들이 작명등을 지키기 시작했다.칠흑같이 어두운 밤 덩치가 큰 누군가가 기름을 훔쳐가는 것을 발견한 한 스님이 뒤를 쫓아갔다.기름을 훔친 이유를 묻자 ‘나는 괴목의 당산신인데 사람들이 담뱃불로 나무의 뿌리에 상처를 내 치유하려고 갑사의 작명등 기름을 가져가 발랐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스님들과 마을 사람들은 괴목 주위를 잘 정리하고 제사를 지내줬다.그러자 작명등 기름도 없어지지 않고,마을에 돌았던 역병도 사라졌다.이후 갑사 스님들과 마을 주민들이 괴목의 당산신에게 매년 정월 초사흘에 제사를 올리게 됐다는 사연이다. 갑사 주지 장곡(49)스님은 “사찰과 마을의 주민이 제사를 지내는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 문화행사”라면서 “생명존중의 정신이 깃든 행사인 만큼 많은 대중이 동참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주 김효섭기자 newworld@ “왜 일본 남자가 기분 나쁘게 한국 여자랑 일본 노래를 불러?” 서울 강서경찰서는 4일 일본 노래가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일본인과 시비를 벌이다 폭행한 한모(39·여)씨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한씨와 맞붙어 싸운 일본인 K(61)와 한국인 아내나모(56)씨도 함께 입건됐다. 조사 결과 한씨는 전날 오후 8시40분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모 노래방 홀에 앉아 있다 일본 노래를 부르는 K에게 일본인을 비하하는 욕을 하면서 시비가 붙으면서 양측이 서로 주먹질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족보를 위조해 100억원대가 넘는 토지보상금을 다른 파(派)가 가로챘다는 종중간의 법정 다툼이 9년째 계속되고 있다.종중간에 이만한 규모의 문중 부동산을 둘러싼 사기 사건은 보기 드문 일이다.‘족보의 진실’을 놓고 다투고 있는 종중은 온양 정씨(溫陽 鄭氏) 목자공파(穆字公派)와 정랑공파(正郞公派).목자공파의 종손 며느리인 장모(58)씨가 정랑공파와의 재산분쟁에 뛰어든 것은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남편과 일찍 사별한 장씨에게 지난 86년 아버지가 없어 의기소침해하던 작은 아들이 “우리 집안에 족보라도 있냐.”고 물은 것이 계기였다. 장씨는 남편의 뿌리를 찾아 본관인 온양을 시작으로 중앙도서관 족보실,서울대 규장각 등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지난 93년 마침내 온양정씨의 족보를 찾아냈다.목자공파의 4대조는 구한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정술교(鄭述敎)로 을사조약 때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스승인 것도 알아냈다. 그러던 중 천안시가 95년 택지개발을 위해 온양정씨 조상묘가 있는 쌍용동 일대를 매입해 토지보상금을 온양정씨 정랑공파에게 지급한 사실을 알게 됐다. 장씨측 주장에 따르면 초기인 1856년·1916년 족보와 정모씨가 제작한 1923년·1957년 족보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장씨는 친척과 함께 지난 95년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소송 주체를 ‘종손’이 아닌 ‘종중’으로 한 절차상의 문제와 한두명의 전문가 견해는 증거로 불충분하다는 게 이유였다. 장씨는 이후에도 족보가 위조됐다는 흔적을 여러 곳에서 발견했고 손해배상 소송을 내 부분적으로 승소했다.장씨는 최근 “천안시가 선산의 토지개발보상금 140억원을 위조된 족보만 믿고 다른 파에 지급했다.”면서 지난해 3월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그러나 진실을 밝혀내기는 여전히 여의치 않다. 유지혜기자 wisepen@
  • “백제유적 종합전시장”수촌리유적 발굴지도위원회 열려 1호분서 금동허리띠 등 추가 발굴

    무령왕릉 이후 최대의 백제무덤 발굴이라는 충남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유적의 발굴성과와 앞으로의 조사방향을 점검하는 지도위원회가 10일 현장에서 열렸다.참석자들은 현장과 출토유물을 둘러보고는 “백제유적의 종합전시장”이라고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언론에 보도된 것 이상으로 많은 역사적 사실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지도위원회에는 유적의 중요성을 보여주듯 이강승 충남대 교수 등 지도위원과 이남석 공주대 교수 등 자문위원을 비롯한 고고학 및 역사학자들, 노태섭 문화재청장 등 정부관계자와 보도진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충남역사문화연구소의 강종원 연구위원은 현장설명에 나서 “1호분에서 금동허리띠 한점이 추가로 나오는 등 발굴이 진척됨에 따라 유물이 계속 나오고 있다.”면서 “일단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에 기존에 확인된 유물의 수습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장 책임자인 이훈 문화재연구부장은 “2호분에서는 굽은옥(곡옥)이 달린 목걸이와귀걸이 등 백제시대 귀부인이 어떻게 치장했는지를 알 수 있는 유물이 나왔다.”면서 “특히 피장자의 머리쪽에서 나온 붉은색 구슬들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하나인 동수묘의 여인 모습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고 말했다. 지도위원인 최병현 숭실대 교수는 “이 유적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보다 백제왕실이 의탁하여 웅진으로 천도할 만한 세력이 이곳에 존재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라면서 “그동안 일본에서는 다수 나왔지만 국내에서는 출토지가 확실치 않아 일본에서 역수입됐다는 설까지 나왔던 호등(등자)이 나온 것도 큰 성과”라고 밝혔다.들떠있는 분위기를 경계하는 지적도 있었다.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분석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이 관장은 “고고학자는 고고학적으로 판단해야지 역사와 연결시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면서 “수촌리에서 나온 유물이 중앙의 사여품이니 하는 것은 고고학자가 할 만한 얘기가 아닐 것”이라며 섣부르게 유적의 성격을 판단하려는 분위기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현장에는 주민들도 나와 관심있게 지도위원회를 지켜봤다.한 주민은 “이번에 유물이 나온 문둘기산에는 옛날부터 왕의 무덤이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면서 “40여년 전 이웃한 수촌초등학교를 지을 때도 백제토기가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한편 공주시청 관계자는 이날 “의당농공단지를 조성하려고 이미 50억원을 들였는데 유적이 발견됐다.”면서 “어려운 지방자치단체의 사정을 감안하여 정부가 이 부지를 매입, 공주시가 농공단지를 다른 곳에 조성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참석자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공주 서동철기자 dcsuh@
  • 마지막 막부시대 무사들 이야기/12일 개봉 ‘바람의 검, 신선조’

    흔히 과도기에는 많은 이야깃거리가 등장하기 마련.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혼돈의 자리에 갈등과 마찰이 생겨나고 그것은 대개 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개봉하는 ‘바람의 검,신선조’도 그런 과도기와 격동이 배경이다.구체적으로는 일본의 중세와 근대가 맞물리는 19세기 후반 마지막 막부시대 일본 무사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사무라이 출신의 사이토 하지메(사토 고이치)의 회상을 축으로 열고 닫힌다.1898년 아픈 손자를 데리고 병원을 찾은 사이토가 그곳에서 우연히 옛 동료 요시무라 간이치로(나카이 기이치)의 사진을 보고 영욕이 교차하던 ‘신선조’시절을 떠올린다.‘신선조’는 쇼군(將軍)이 이끄는 막부 체제가 미국을 등에 업은 천황파에게 밀려 세력을 잃어가던 19세기 말 당시 수도 교토의 치안을 담당하는 정예의 무사 집단이다.어느 날 일본 남부 모리오카 출신의 시골 무사 간이치로가 무술대회를 거쳐 신선조에 가입한다.칼 솜씨는 누구 못지않지만 촌스러운 외모와 어눌한 말투 등으로 늘 화제를 몰고 다닌다. ‘무사의도’보다는 돈 모으는 데 더 관심이 많은 그에게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하급 무사이자 교관으로서 무사의 정신에 충실하던 그가 찢어질 듯한 가난으로 굶주리는 가족을 위해 고향에 충성한다는 무사의 관습을 깬 것.당연히 그의 마음 속에는 떠나온 고향과 부양할 가족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조롱받던 그의 진면목은 신선조가 천황파와 쇼군파로 나뉘면서 돈보다 의(義)를 위해 신선조에 남으면서 빛난다.대세가 천황에게 기울면서 신선조는 고유 임무가 없어지고 무사들은 자신들의 주군인 쇼군을 위해 마지막 전투에 참여한다. 영화 전반에 ‘사무라이 정신’에 대한 향수 등 일본인 특유의 정서가 진하게 깔려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하지만 ‘러브레터’‘철도원’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사다 지로가 쓴 원작 소설 ‘미부기시전’의 짜임새 있는 전개와 인간미 물씬 풍기는 내용 등은 눈길을 끈다.여기에 ‘이웃집 토토로’‘기쿠지로의 여름’‘원령공주’ 등에서 음악적 재능을 검증받은 히사이시 조의 따스함이 담긴 선율도 감동을 더한다.‘음양사’‘비밀’ 등으로 국내에 알려진 다키타 요지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종수기자 vielee@
  • [씨줄날줄] 폭로 철학

    폭로의 역사는 길다.아마 인류가 군락을 이루며 생활했을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여럿이 어울려 살게되면서 감추고 싶은 비밀이나 구린 것이 늘어나고,폭로도 덩달아 증가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폭로의 사전적 의미는 나쁜 일·음모·비밀을 드러내는 것을 뜻하는데,우리 정서상 여전히 낯설다.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고,아량을 베푸는 통 큰 사회,즉 ‘선비 정신’에 익숙한 문화코드에서 폭로는 고자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폭로가 갖는 정화와 예방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아직 토착화되지 못한 까닭은 남을 해코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민족 역사성의 발로이니,탓할 일은 못 된다. 우리에 비하면 서양은 폭로에 비교적 너그럽다.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나오는 화려한 꽃들의 탄생 비밀은 상당수가 폭로에 있다.태양신 아폴로가 연인이었던 클리티아를 버리고 아리따운 아시리아의 공주 레우코토에에게 가버리자 클리티아는 아폴로의 계략을 폭로했고,결국 죽음을 당한 레우코토에는 태양을 따라 도는 자색의 아름다운 꽃,헬리오트로프(Heliotrope)로 다시 태어난다.영광의 월계수 나무도 아폴로의 폭로로 죽은 아름다운 처녀 다프네의 화신이다. 그러나 우리도 폭로가 저항의 성격을 갖게되면 단호했다.양기탁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배설(裵說)은 고종의 친서를 ‘대한매일신보’에 게재함으로써 일본의 강압적 침략행위를 국내외에 폭로했다.일본의 강제 침탈을 막으려는 자유언론의 저항이었던 것이다.과거 자유당 정권때 김두한 의원의 국회 본회의장 인분 투척사건도 그 본질은 밀수에 대한 폭로였다.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격화된 민주화 투쟁도 독재권력의 만행에 대한 진실 폭로의 산물이다. 요즈음 한나라당 의원들의 잇단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 폭로로 정치권이 어수선하다.재미있는 것은 한나라당 내부 논쟁이다.‘폭로 원조’로 불리는 정형근 의원이 동료의원들의 마구잡이 폭로에 ‘폭로도 철학과 도덕·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아마 폭로에도 나름의 급수가 있고,격이 존재한다는 뜻일 게다.이 분야에 일가견을 이룬 ‘장인 의원’의 닳고 닳은 체험에서 나온 ‘훈계’다. 인간사가 계속되는 한 폭로는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할 것이다.그래서 폭로없는 정치,세상에 살고 싶은 것은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양승현 논설위원
  • 러시아 겨울 녹인 ‘한국의 정서’/성곡오페라단 기획 ‘이순신’ 초연 작곡서 연출까지 모두 러시아인

    러시아 작곡가 브라디슬라바 아가포니코프의 오페라 ‘이순신’이 14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발틱하우스 페스티벌 극장에서 초연됐다.러시아의 연출가와 성악가,오케스트라 합창단이 러시아 극장에서 공연한 글자 그대로의 ‘러시아 오페라’다. 이 작품은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한 오페라의 세계화를 꾀하고 있는 성곡오페라단(단장 백기현 공주대 교수)이 위촉한 것.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가 ‘나비부인'과 ‘투란도트’로 일본과 중국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듯이,‘이순신’을 통하여 한국문화를 세계에 부각시키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국립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작곡과장인 아가포니코프는 이미 체호프의 ‘반카 주코프와 호리스트라’(2001)를 비롯한 5편의 오페라로 호평을 받은 러시아의 중견 작곡가.러시아 국민주의 오페라의 전통을 이으면서,현대적 감각을 입힌 ‘이순신’에서는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읽혔다. 이번 ‘이순신'은 한국을 소재로 한 오페라 가운데 국제 수준에 이른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를 받을 것 같다.성곡오페라단은 1998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 작곡가에게 ‘이순신’의 작곡을 위촉했지만,‘수준 미달'이라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반면 새 ‘이순신’에 나오는 이순신과 박초희의 ‘사랑의 이중창’은 명곡만 모아놓는 ‘갈라 콘서트’에 당장 내놓아도 좋을 만큼 인상적이었고,우리 노래 ‘뱃노래’의 리듬을 이용한 ‘병사들의 합창’도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또 ‘아낙들의 합창’은 멜로디를 ‘새야새야 파랑새야’에서 따오는 등 한국적 정서를 적극 반영했다.그러면서 러시아 오페라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은 것은 “한국음악에는 무언가 러시아적인 것이 있다.”는 아가코니코프의 느낌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벗어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데는,소설가 김탁환(한남대 교수)의 대본이 큰 역할을 했다.대하소설 ‘불멸’로 이순신의 생애를 다루기도 했던 그는 이순신과 원균에 얽힌 기존의 갈등구조를 화해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굳이 이순신이나 원균의 관계,나아가 조선시대나 임진왜란이 아니더라도 어느 시대,어느 나라에 대입해도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극적 구성을 보여준다.그런 점에서 ‘이순신’은 매우 현대적인 감각의 작품이었다. 이날 발틱극장을 찾은 사람은 500명 안팎.830석 짜리 극장인 만큼 대성황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관객들이 뿌듯한 표정으로 극장문을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 출연진의 호연도 큰 몫을 했다. 국립 예르미타제 오케스트라와 모스크바 시립 블라고베스트 합창단은 완벽에 가까운 앙상블로 뒷받침했다.이순신 역의 테너 콘스탄틴 톨로스트브로프와 박초희 역의 소프라노 갈리나 보이코,원균 역의 바리톤 블라디미르 빌리,선조 역의 베이스 비탈리 등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오페라 ‘이순신’은 15일 김남두 정병화 백현진 박태종 안병근 등 한국성악가의 공연에 이어 16일 한국과 러시아 성악가의 합동 공연으로 러시아 초연무대를 모두 마무리했다. 백기현 성곡오페라단장은 “러시아 공연을 성공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만큼 내년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국내 음악계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면서 “꾸준히 보완하여 ‘이순신’이 표준 레퍼토리로 자리잡을 때까지 국내외에 알리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서동철기자 dcsuh@
  • 신·구세대의 좌충우돌 웃음배달/SBS 새 시트콤 ‘압구정 종갓집’ 새달 3일 첫 방영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 일련의 시트콤 시리즈로 독특한 웃음을 선사해온 SBS가 새달 3일부터 새 일일시트콤 ‘압구정 종갓집’(월∼금 오후8시50분)을 방송한다. ‘압구정…’(극본 목연희,연출 김용재 최영훈 장혁재)은 제목에 드러난 대로 압구정과 종갓집,한정식 음식점과 로펌 등 선뜻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공간에서 신세대와 구세대가 엮어가는 건강한 웃음을 담아낸다. 종갓집 기둥인 할머니(나문희)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조달하느라 가세가 기운 집안을 살리고자 서울 수복과 함께 압구정에 음식점을 차려 악착같이 자식들을 길러냈다.괴팍하고 엄격하지만 가끔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인심을 쓰는 자상함도 갖추고 있다. 공주 기질이 있는 철없는 며느리역은 김자옥이 맡았다.매사에 덜렁대는 바람에 성질 급한 시어머니와 사사건건 부딪치지만 낙천적이고 솔직한 성격이라 집안 분위기를 밝게 이끈다.백윤식이 전직 교사이자 음식점 사장으로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소심한 아버지역을 연기한다. 여기에 드라마의 또다른 축인 로펌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일과 사랑이 펼쳐진다. 탤런트 정민이 바람둥이 변호사인 큰아들로 등장하고,우희진이 공과 사 모든 면에서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능력있는 여변호사로 변한다.일본인 탤런트 유민를 비롯해 지수원,김수근 등이 이들과 호흡을 맞춘다. 사고뭉치 로펌사무장인 삼촌 박준규와 주방장 박광정은 콤비를 이뤄 배꼽잡는 코믹연기를 선보인다. 이밖에 천방지축 큰딸 추자현,애교많은 둘째딸 별,그리고 대하사극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역으로 장안의 화제를 일으킨 아역탤런트 조정은이 호기심 많은 박준규의 딸로 출연한다. 이순녀기자 coral@
  • 말못한 사랑 못내 그리워 저리 붉은가

    ●불갑사·용천사등 사찰 주변에 많아 가을 산야의 진객은 단연 꽃무릇이 아닐까.무성했던 수풀이 점차 힘을 다하며 제 빛깔을 잃어갈 때 맑은 가을 하늘을 향해 이파리 하나 없이 빳빳하게 고개를 세운 꽃무릇은 튀고도 남음이 있다. 새파란 하늘빛에 대비되어서인지 유난히 새빨간 꽃무릇은 애틋하면서도 서러운 사랑의 아픔을 담고 있는 듯하다. 꽃무릇을 만나러 남녘으로 달렸다.전남 영광 불갑사,함평 용천사,전북 고창 선운사로. 왜 꽃무릇은 대개 절 주변에 사는 걸까? 아마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무릇의 특이한 생태 때문일 것이다.금욕을 실천하며 수행하는 스님에게 잘 어울리는 꽃이라고 여겨 사찰에서 심은 것이 주변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수국이나 산수국,불두화,백당나무 등 사찰에 심은 꽃들이 대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식물들인 것을 보면 이같은 설명은 분명 일리가 있다.탱화를 그릴 때 꽃무릇 뿌리를 짜낸 즙을 바르면 좀이 슬지 않아 사찰 주변에 많이 심었다는 설도 있다. 불갑산 자락에 자리잡은 불갑사 가는 길.듬성듬성 난 억새며,떼지어 날아다니는 잠자리며,이미 가을색이 완연하다.사찰을 10여리 남겨놓고부터는 길가의 꽃무릇이 손님을 반긴다.코스모스 길에 익숙한 나들이객들에게 빨간 꽃무릇 길은 제법 이색적이다. ●상사병 스님의 애틋한 전설 간직 사찰 아래에 이르자 길 오른쪽 벌판이 온통 꽃무릇이다.안내판에 꽃무릇의 생태와 유래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석산이라고도 불리는 꽃무릇은 일본 원산으로 관상용으로 들여왔다가 퍼진 가을꽃.가을에 핀 꽃이 모두 지면 그제야 초록 잎이 나서 이듬해 봄에 진다.잎과 꽃이 서로 볼 기회가 없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은 ‘상사화’(相思花)로 부르기도 하지만 진짜 상사화는 아니다. 연보랏빛 꽃이 피는 진짜 상사화는 대규모 자생지를 찾아보기 어렵다.상사화는 꽃무릇과 달리 여름에 잎이 모두 진후 가을에 꽃이 핀다.순서야 어떻든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꽃무릇도 상사화의 자격은 갖춘 셈이다.옛날 한 스님이 속세의 미인을 연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어 묻힌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불갑사 뒤 자그마한 저수지 왼편 산자락엔 꽃무릇이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다.꽃무릇에 파묻혀 저수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데이트족들의 표정에서 ‘소박한 행복’이 읽힌다. 불갑사 뒤쪽은 불갑산(525m)이다.군데군데 군락을 이룬 꽃무릇과 연꽃을 닮았다는 기암괴석 봉우리 ‘연실봉’이 아름답다.이곳에 서면 동쪽으로 무등산이,서쪽으로 서해 칠산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불갑산과 인접한 모악산(348m) 아래로는 함평 용천사가 자리잡고 있다.불갑사 주차장에서 차로 20분쯤 걸린다.용천사 아래의 꽃무릇은 양적으로는 불갑사의 꽃무릇보다 한 수 위.함평군이 조성한 공원 옆 산자락 40만여평이 온통 꽃무릇이다.멀리서 보면 산자락이 마치 불타는 듯하다.산자락엔 꽃무릇 사이로 산책로가 꾸며져 있다.산책로 중간중간 초가와 구름다리 등을 조성해놓아 아이들과 함께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에 좋다.특히 산책로에서 붉은 물결 너머로 보이는 용천사의 자태가 그림같다. ●붉은 물결 너머 그림 같은 용천사 용천사는 신라 때 행은존자에 의해 창건된 사찰.사찰앞으로 흐르는 작은 천에서 용이 승천했다고 해 용천이라고 부르는데,용천사란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사찰 건물은 모두 현대에 지은 것이라서 특별히 눈길을 끌 만한 것은 없다.다만 조선 숙종 때 만들었다는 대웅전 옆 석등이 고찰의 흔적을 말해준다. 전북 고창의 선운사 꽃무릇은 한 줌씩,한 아름씩 듬성듬성 꽃을 피운 것이 오히려 운치가 있다.선운사 입구에서부터 절 앞으로 흐르는 도솔천을 따라 도솔암까지 난 3㎞ 숲길엔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앉은 꽃무릇이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그래서 도솔암 가는 길은 마냥 정겹다.꼿꼿한 꽃대,둥글게 굽은 꽃잎,꽃입보다 두 배나 긴 황금빛 꽃술….길가에 솟아난 하나하나의 꽃무릇은 참 독특하고도 귀하게 생겼다. 도솔암 부근엔 수령 600년의 장사송이 있다.마치 암자의 미륵불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우산처럼 가지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범상치 않게 보인다.나무 옆으로 진흥굴이 있는데,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왕비와 공주를 데리고 출가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영광 함평 글·사진 임창용기자sdargon@ 가이드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에서 빠져 22번 국도를 타고 영광읍쪽으로 가야 한다.읍내를 지나 23번 국도로 갈아타고 10분쯤 가면 불갑사로 빠지는 군도가 나온다.군도를 따라 5분쯤 가면 오른쪽으로 불갑사 진입로가 보인다.용천사는 불갑사 들어간 길을 되짚어 나와 다시 23번 국도를 타고 함평 방향으로 가야 한다.5분쯤 가다가 나오는 838번 지방도를 갈아타고 조금만 가면 해보면 광암리에 이르러 용천사 진입로가 나온다. 선운사는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에서 빠져 22번 국도를 타면 바로 닿는다. ●숙박 불갑사나 용천사 인근에서 묵으려면 함평군 해보면 금덕리 관광농원(061-323-3663)이 추천할 만하다.구계동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 쾌적하면서도 넓다.방갈로와 낚시터도 갖추고 있으며,밤 줍기도 할 수 있다.요금은 방 크기에 따라 2만원부터 5만원까지. 선운사 인근엔 동방호텔(061-563-7070) 등 호텔과 전원산장민박(061-561-3120) 등 민박집이 많다. ●함평 해수찜 함평군 손불면 신흥마을은 해수찜으로 유명한 곳.함평해수찜은 1800년대부터 민간요법으로 널리 이용돼온 치료법이라고 한다.도자기 가마를 이용한 한증법을 발전시킨 것으로,해수(海水)탕에 유황 성분이 많은 돌과 삼못초 같은 약초를 넣고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 데워진 물로 찜질을 한다. 온천과 약찜의 효능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어 피부염,산후통,신경통 등 만성질환에 치료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자랑이다.주포함평해수찜(061-322-9489),함평신흥해수찜(061-322-9487),신흥해수찜(061-322-9900) 등이 있다.입욕료 6000원.문의 함평군 문화관광과(061-320-3224),영광군 문화관광과(061-350-5224),고창군 문화관광과(063-560-2230). 식후경 영광의 첫째 먹거리는 뭐니뭐니해도 법성포에서 말린 굴비.법성포는 습도와 일조량,해풍이 조기를 말리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 최상의 맛을 낸다고 알려져 있다.2년 이상 간수가 빠져 쓴맛이 없어진 소금으로 싱싱한 생조기를 정성껏 간을 해 15∼40시간 정도 재워두었다가 깨끗한 염수에 4∼5회 세척한 후 10∼20마리씩 짚으로 엮어 해변가에서 7∼14일 동안 말린다.법성포와 영광읍내엔 굴비를 중심으로한 한정식집이 많다.법성포 포구 바로 앞 ‘1번지식당’의 음식 맛이 유명하다.값은 1인 1만 5000원부터 3만원까지.1만 5000원짜리의 경우 굴비 구이와 조기 찌개를 중심으로 병어,갈치,전어 등 요즘 나는 생선 10여가지와 나물 무침 등을 포함해 30여가지의 반찬이 나온다.3만원짜리엔 굴비찜과 삼합,생선회,홍어회,자린고비,육회,갈비 등이 추가된다.(061)356-2268.영광읍내에선 동락식당(061-351-3363),한아름식당(353-7757)에 손님들이 몰리는 편이다.
  • 부고 / 이대우 전 국회의원

    이대우(李大雨) 전 국회의원(8대)이 18일 오전 1시 경북대학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90세.유족으로는 미망인 이국연씨와 아들 철호(재일본 한의사)·상원(주안통상 대표)·상화(경호실업 대표)·상헌(보험대리점),딸 양숙(서울시 양로원 의무실장)·주경(공주대 교수)씨 등 4남6녀가 있다.발인 20일 오전 10시 (053)420-6145.
  • 조계종 10~13일 해외입양 템플스테이

    조계종이 추석연휴 기간 중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 출신 입양인들을 위한 템플스테이를 마련해 눈길을 끈다.조계종 포교원이 해외입양인 모임인 Goal과 함께 10일부터 13일까지 3박4일간 충남 공주 갑사 일대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미국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에 살고 있는 20대 후반∼30대 25명이 사찰에서 생활하면서 좌선,행선(묵언산행) 등 불교 의식과 우리 전통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한편 조계종은 지난 대구유니버시아드 기간 중 대구경기장에 불교관을 운영해 외국인 선수와 임원들의 관심을 모았으며,3∼4일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호주 언론인 초청 프로그램을 마련한 데 이어 26∼28일에는 일본 청소년 30명을 강화도 전등사로 초청할 예정이다.
  • 책 /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손정목 지음 한울 펴냄 서울 도시계획의 산증인인 손정목(75·전 서울시립대 교수)씨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서울 도시계획 반세기의 증언을 담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도서출판 한울,전5권)를 펴냈다.지난 70년부터 77년까지 서울시 기획관리관과 도시계획국장을,그리고 22년간 중앙도시계획위원을 지내면서 각종 도시계획에 참여,겪거나 알게 된 ‘비화’들을 소개한다. 서울시의 모습이 가장 달라진 시기는 1966년 김현옥 시장부터 양택식·구자춘시장을 거친 1980년까지의 15년간이다.이른바 강남개발의 첫 단추는 1966년 제3한강교 건설이었다.강남개발은 단순한 인구과밀 억제책이 아니라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경우 6·25 당시 서울시민이 피란을 가지 못했던 것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시작된 것.여기에 1968년 착공된 경부고속도로 주변 영동지역에 400만평이 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되며 허허벌판이던 강남개발은 탄력을 받았다. 지금은 역사의 유물이 된 청계고가도로는 어떤 사연을 안고 있을까. 청계고가도로는 김현옥 서울시장이 부임 이듬해인 1967년,미아리고개∼청계천로∼신촌 등을 연결하는 유료 고가도로를 건설하면 교통 흐름이 원활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즉흥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이다.예산도 설계계획도 잡히지 않은 데다 반대가 많아 고가 규모는 크게 축소됐지만 김 시장은 골격 자체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박정희 대통령의 ‘워커힐 내왕’을 위한 길이었기 때문이다.군사정권 4대 의혹의 하나인 워커힐은 원래 미군장병 3만명의 휴가유치를 위해 건설된 것으로,당시 박 대통령은 개관된지 얼마 안된 워커힐을 자주 찾았다.1970년 양택식 시장으로 바뀐 뒤에도 청계고가도로 공사는 계속됐다. 저자는 충청권 행정수도 계획의 전모도 소상히 밝힌다.박정희 대통령은 1977년 서울특별시 연두순시에서 갑작스럽게 ‘임시행정수도’를 만들겠다고 발표한다.천원·장기·논산 3곳으로 압축된 후보지는 결국 충남 공주의 장기지구로 사실상 내정됐다.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구로카와 기쇼가 참여했고 1979년 5월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종합보고서’가 박 대통령에게 제출됐다.소요기간 15년에 총투자비용은 5조5000억여원.당시는 석유파동으로 세계경제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행정수도 건설은 엄두낼 수 없었던 상황.박 대통령은 순수 중앙행정기능만 대전으로 옮기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 책에는 도시계획 자체에 대한 가치판단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다만 역사를 기록하고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각권 1만 2000원. 김종면기자
  • “한국의 맛과 친절 알려주고 싶어요”/ ‘한국 문화관광 친선대사’ 日 톱스타 요네쿠라 료코

    |도쿄 황성기특파원|한국과의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드라마를 끝내고 쉬러 간 곳이 2001년 9월 서울이었다.하와이쯤으로 가려 했다가 9·11테러로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첫 한국 방문이었다. 지난해에는 한·일 합작드라마(MBC-후지TV) ‘소나기,비 갠 오후’로 그 연을 잇더니 올해 한국 정부의 ‘한국 문화관광 친선대사’가 됐다.일본의 톱 모델이자,탤런트인 요네쿠라 료코(米倉子·28).그녀를 지난 8일 도쿄 시내에서 만났다. “지난 5월이었나요. 한국측에서 친선대사를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 왔어요.우연찮게 연을 맺게 된 한국을 좋아하게 됐던 터라 굉장히 기뻤어요.주저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지난 7월23일 도쿄에서 열린 ‘친선대사’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일 양국의 가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 그녀다.한국의 문화와 관광산업을 두루 알리는 친선대사이지만 비중은 관광쪽에 있다.무보수에 기간은 1년. 국을 찾는 일본인은 2000년 247만명으로 정점을 이룬 뒤 재작년,작년 10만명,5만명씩 줄었다.올들어 5월 사이에는 20%나 감소했다.테러,북핵,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같은 악재가 잇달아 터지면서 방한 외국인의 45% 정도를 차지하는 일본인 관광객 유치에 초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요네쿠라 대사’가 탄생했다. 한국 정부의 사상 첫 일본인 문화관광 친선대사로서 비책을 갖고 있을 법하다.그러나 뜻밖에 “아직 없다.”고 한다.대사 활동을 시작한 지 한달도 안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솔직한 대답이긴 하다. ●훤칠한 키에 뚜렷한 서구적 미모 “저는 여행가이드가 아니니까,다짜고짜 ‘한국에 가세요.’라고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뜻밖에 한국을 잘 모르는 일본인이 많고요.가보니까 좋은 게 아니라 ‘이런 곳이니까 가보는 게 어떠시냐.’라는 점을 전하고 싶습니다.한국말과 일본말이 왜 비슷한지,내가 한국에서 어떤 점을 느꼈는지,그런 미각(味覺)같은 것을 전달해 주고 싶어요.‘일단 가보시라니까요.’는 아닌 거죠.”그럴 법하다. 훤칠한 키(168㎝),선이 뚜렷한 서구적 미모의 요네쿠라는 일본인들이 호감을 느끼는 탤런트라는 점,한국인에게도 ‘소나기’를 통해 알려졌다는 점이 고려돼 친선대사로 뽑혔다.지금은 NHK의 대하드라마 ‘무사시’에 주연으로 출연 중이다. 17살 때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 특별상을 수상,연예계로 나왔다.클래식 발레로 가꾼 몸매를 살려 7년간 모델을 한 끝에 1999년 배우로 돌아섰다.4년간 10편의 TV드라마,2편의 영화,10개사의 CF에 출연,짧은 시간에 톱스타의 궤도에 올라 승승장구하고 있다.지난 2년 동안에만 ‘베스트 드레서’같은 크고 작은 상을 13개나 거머쥐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삼계탕·칼국수 2년 전 여행 때 서울의 남대문,동대문과 압구정동을,‘소나기’ 촬영 때는 부여,공주 등을 다녔다. 삼계탕과 칼국수가 애호음식.술을 좋아해 한국에서 폭탄주도 권유받은 바 있지만 마시진 않았다.막걸리를 즐겨 750㎖짜리 한 통은 거뜬히 비운다.좋아하는 김치를 한국에서 사서 일본의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발효작용으로)다 터져버리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누구도 김치가 폭발한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깔깔대고 웃는다. “두 가지는 싫다.”는 요네쿠라.껍질 같은 것을 꼬치에 끼워 포장마차에서 파는 음식(오뎅으로 추정됨)과 온통 분홍빛의 러브호텔 같은 시골의 여관.그렇지만 한국에서 접한 한국 사람들은 “한번 만나면 금방 가족처럼 대해주는 뜨겁고 친절한 점이 좋다.”고 덧붙인다. 싫고,좋고,알고,모르는 건 분명히 말하는 그녀는 2001년 출연한 일본 TV 드라마 ‘비혼(非婚)가족’의 캐릭터와 아주 닮았다.“실제로도 그러냐.”고 물었더니 “직선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한국말은 ‘소나기’ 촬영 때 대사를 외운 정도.지금도 조금씩은 배우지만 자신은 없다.‘소나기’에서 상대역이었던 지진희와는 지금도 연락을 취하는 ‘오빠,동생’ 사이. 네쿠라의 소원은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을 한번 만나보는 것이다.이 장관의 영화 ‘박하사탕’을 봤다.기자에게 한국인의 이 장관 평가도 묻는다.“왠지 그와 말이 통할 것 같다.”는 그녀는 이 장관이 “함께 영화 만들자.”고 제의하면 응하고 싶다고 한다. 친선대사의 각오는 어떨까.“한국의 일본인 친선대사는 있지만 일본의 한국인 친선대사는 없으니까 저는 두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대단한 일은 할 수 없겠지만 한국인들이 저를 받아들여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임명장 수여식 때 한복을 입은 모습이 TV에 방송돼 “치마저고리가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요네쿠라.“가을쯤 서울에 갈 일이 생길 듯하다.”는 그녀를 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marry01@
  • “청계천서 헌책방 30년 헐린다니 서운하네요”/황학동 ‘터줏대감’ 경안서림 주인 김시한씨

    다섯평 남짓한 가게 안은 묵은 책냄새로 가득했다.발디딜 틈 없이 쌓여 있는 먼지투성이 책더미들.한쪽에는 철거를 앞둔 청계천 책방가의 운명을 암시하듯,주인을 찾지 못한 한지책들이 곰팡이를 머금은 채 쓸쓸한 ‘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안서림 주인 김시한(73)씨는 낡은 철제 의자에 ‘삐딱하게’ 기댄 채 기자를 맞았다.마침 이 곳을 찾아 헌책을 뒤적이던 김명준(80)씨는 “고문서를 수집하는 대학교수건 헌 참고서를 찾는 중학생이건 손님을 일어나서 맞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김명준씨는 10년 단골이다.단골손님들은 김시한씨의 이런 태도를 ‘붙임성 없는 성격 때문’이라고도 하고,‘50년 책장사의 자존심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반복되는 질문에도 “신문에 날 만한 인물이 못된다.”며 한사코 답변을 사양하던 김씨가 ‘사랑방 손님들’의 강권에 못이겨 입을 열었다. “청계천 생활이 올해로 30년째입니다.청춘의 전부를 보낸 이곳을 누군들 떠나고 싶겠습니까.평생 해온 일을 그만 두게 된다니 안 서운할 리 없지요.” 그와 반평생을 함께 한 낡은 선풍기가 힘겹게 더운 바람을 뿜어댔다. 서울 중구 황학동 171번지.1973년 건립된 삼일아파트 14동이 자리잡은 곳이다.서울시는 지난달 이곳을 철거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이곳에서 김씨는 지난 73년부터 헌책을 팔았다.상인들은 그를 ‘청계천 터줏대감’이라 부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복개가 막 끝난 상태였습니다.청계천도 8가를 지나 영미다리까지만 복개돼 있었고 고가도로는 아예 없었지요.장마가 오면 어김없이 홍수가 졌고 사람이 빠져죽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곤 했습니다.” 지금은 도심의 흉물로 손가락질당하는 삼일아파트지만 김씨가 입주할 당시에는 최신식 ‘주상복합’ 아파트였다.지금 13,14동 일대에 남아있는 헌책방은 20여곳.전성기때 100곳에 육박했던 책방들이 언제부턴가 공구상,옷가게,골동품 가게로 간판을 바꿔 달기 시작했다.김씨 역시 전업의 유혹에 시달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70년대 말까지도 학기 초만 되면 중고생과 대학생들이 교재를 구하러 청계천으로 몰려들었습니다.그 뒤론 죽 사양길이었어요.지금은 가게세나 근근이 내는 형편입니다.” 젊은 시절 그는 초등학교 교사였다.광복 이후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안동에서 교편을 잡았다.그러다 전쟁이 터졌다.50년 9월 그는 피란지 부산에서 헌병에게 붙잡혀 팔자에도 없는 미군생활을 했다.“광복동을 걷는데 갑자기 헌병이 붙들어요.다짜고짜 무슨 학교 같은 곳으로 끌고 가더니 신체검사를 하더군요.그러고선 바로 일본행이었지요.” 일본으로 건너가 4주간 기초훈련을 받은 그는 그해 11월 미3사단에 배속돼 미군 상륙정에 몸을 실었다.그가 내린 곳은 원산이었다. 3년 뒤 전쟁이 끝났지만 김씨는 안동의 교사 자리를 단념하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한 사립대학에 편입해 영문학을 공부했다.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호구지책으로 서울대 문리대 앞 둑 위에 판자를 덧대 책방을 열었다.54년 봄이었다. “당시만 해도 평생 헌책방 주인으로 살게 될 줄 몰랐어요.헌책 장사란 게 돈 없는 학생과 학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돈이 들어올 리 없거든요.제 자신이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진작 다른 길을 걸었을 겁니다.” 경안서림 단골 중에는 이름 난 국어학자,역사연구자들이 많다.하동호 전 공주사대 교수,박성봉 경북대 초빙교수 등이 그들이다.이 중에서도 지난 99년 타계한 진동혁 교수와의 인연은 각별하다.조선 영조대 시조작가인 이현보의 시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진 교수에게 문제의 시조집을 처음 발견해 알려준 사람이 김씨였다.조선 중기의 선비인 방원진과 김응정의 시조도 김씨가 발굴해 진 교수에게 보냈다.이 때문에 김씨는 청계천 책장사들 사이에서 ‘논문 제조기’란 별명까지 얻었다. 김씨는 책을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희귀한 고서적이 들어오면 연구자들의 전공과 관심분야를 고려해 미리 연락한다. “저라고 책에 대한 욕심이 없겠어요? 하지만 제가 갖고 있으면 그저 희귀한 수집품에 불과합니다.연구와 해석을 통해 책의 의미가 풍부해져야 문화도 풍요로워지는 법이지요.” 김씨는 서지학 연구에도 대학교수 못지 않은 식견을 갖고 있다.지난 2000년 1월 열린 서울문화사학회 학술발표회에서 김씨는 서울의 한자표기가 ‘徐 ’이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하루는 은퇴한 원로 국문학자가 찾아와 ‘서울이야말로 순 우리말 지명인데 한자표기가 어디 있느냐.’고 호통을 치더군요.그래서 이중화의 ‘경성기략’이란 책을 보여드렸습니다.그랬더니 ‘이런 책이 다 있었냐?’며 한참을 들여다보다 돌아가시더군요.” 김씨는 조선 영조대에 편찬된 ‘문헌비고’와 박제가의 ‘북학의’ 등 서울의 한자표기가 등장하는 고문헌 20여종을 확보하고 있다.조만간 서울 표기의 변천사에 대한 논문과 함께 이 자료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김씨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는 교회사다.기독교의 국내 전파와 관련된 고문헌의 내용은 그의 머릿속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당나라를 통해 경교(기독교)가 통일신라에 전파됐다는 학설과 관련,이슬람 연구자인 정수일 교수와 서신을 교환하고 직접 만나 토론하기도 했다.“서점 문을 닫으면 한국 교회사와 관련된 책을 한 권 쓸 계획입니다.요즘 자료를 모으고 있는데 녹내장 때문에 책 읽기가 쉽지 않아요.” 이세영기자 sylee@
  • “해리포터 못잖은 팬터지 애니 선사”경주엑스포 영상물 ‘천마의 꿈’ 총감독 고욱 아주대 교수

    “우리나라에도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못지않은 팬터지가 있다는 사실을 3D 입체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줄 겁니다.” 오는 13일부터 10월23일까지 열리는 ‘2003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주제 영상으로 상영될 ‘천마의 꿈-화랑 영웅 기파랑(耆婆郞)전’의 총감독을 맡은 아주대 고욱(사진·42·미디어학부) 교수의 각오다. 고 교수는 요즘 영어·중국어·일본어로 더빙 작업을 하느라 바쁘다. ‘천마의 꿈’은 만파식적(萬波息笛)과 기파랑 등 한국의 전통 설화를 디지털 팬터지로 재해석한 작품이다.신라시대 천마(天馬)를 타고 나라를 지키던 화랑‘기파랑’과 나라를 지키는 피리인 만파식적을 불며 평화를 지키던 ‘선화 낭자’가 주인공이다. “17분 영상물에 기파랑의 사랑과 고뇌를 섬세하게 담아내는 작업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선화공주의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50차례 이상 ‘성형수술’을 했어요.” 실제 1초분의 영상을 위해 48시간 컴퓨터를 가동시켰다.3초 동안 나오는 돌 폭풍의 재현에는 20일간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이필요했다.때문에 날아다니는 말인 천마의 갈기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머리카락 한올한올의 움직임,얼굴의 표정 등은 실제보다 더 정교하다. ‘천마의 꿈’ 시나리오는 고 교수와 소설가인 이화여대 이인화 교수,김영남 시나리오 작가가 함께 썼다.음악은 영화 ‘쉬리’ ‘은행나무 침대’ 등의 이동준씨가 맡았다.제작비는 17억원으로 미국 할리우드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지난해 7월부터 꼬박 1년 동안 50여명이 참여했다. “‘천마의 꿈’과 같은 고급 극장용 장편 디지털 영화 제작은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입니다.”‘천마의 꿈’은 디지털 스테레오 시스템을 갖춘 경주 보문단지 에밀레 극장의 가로 21m·세로 11m에 이르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하루 16회씩 상영된다. 서울대와 미국 버클리대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고 교수는 정보통신부 디지털 콘텐츠 총괄 단장을 맡았던 디지털 콘텐츠 개발 전문가이다. 박홍기기자 hkpark@
  • 예술향기 즐기며 ‘한여름 사냥’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만 찾게 되는 휴가철이다.산이나 계곡·바다로 향하는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채 도심에 남아 한적한 여유를 즐기는 것도 현명한 피서법중 하나일 것이다.여기에 평소 보기 어려운 공연을 관람하는 즐거움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일 터.서울과 춘천,북한강변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문화축제를 소개한다. ●아시아의 미래를 본다 -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03 ‘문화 독립군’을 자처하는 아시아의 실험적인 예술인들이 서울 홍익대앞으로 몰려온다.13일부터 9월7일까지 홍익대 주변 20여곳에서 음악,미술,공연,영화 등 각 장르에 걸쳐 국내외 단체 190여팀이 동시다발적으로 실험예술의 향연을 펼치는 것. 비주류 문화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취지에서 98년 ‘독립예술제’로 출발한 이 축제는 지난해 아시아지역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프린지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꿨다.‘아주열정(亞洲熱情)’을 주제로 내건 이번 행사에는 특히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의 프린지축제 감독 알랭 레오나르,홍콩 프린지클럽 예술감독 베니치아 등 해외 프린지 관계자들이 참여해 독립예술의 앞날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도 갖는다. 일본 공연예술계 신진 3인방인 미즈토 아부라,청년단,모노크롬 서커스의 내한공연과 홍콩 아방가르드 미술작가 6인전,싱가포르와 태국의 실험영화 등 아시아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의 독창적인 세계를 엿볼 수 있다.www.seoulfringe.net.(02)325-8150. ●열린 무대가 좋다 - 3회 남양주 세계야외공연축제 7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17일까지 북한강 문화관광마을에서 열린다.행사 주도권을 놓고 남양주시와 불협화음을 빚기는 했으나 행사 자체만 보면 예년보다 규모가 커지고,프로그램 구성도 다양해져 기대할 만하다. 연극,무용,음악,마임 등 30여 단체가 참여하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자연과 인간,그리고 예술’.전야제 공연으로 볼쇼이발레단 주역무용수인 배주윤·콘스탄틴 이바노프의 듀엣과 러시아 국립마린스키 오페라발레단의 갈라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외국 초청작으로는 독일 ‘Syzyzy’ 앙상블의 ‘프리 사운드’,이탈리아 치르코아 바포레극단의 거리극 ‘맥베스 킬즈’,콜롬비아 야외극단 테칼극단의 ‘사진첩’이 공연되고,국내에선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등 16개 단체가 참여한다. 이밖에 영화감독 여균동이 기획한 통일염원 퍼포먼스와 남양주 6개 마을을 도는 순회공연,외국인 이주노동자 문화 마당 등이 부대행사로 열린다.www.noaf.or(031)592-5993. ●예술의 도시로 떠난다 - 춘천 인형극제,무용축제,국제연극제 춘천이 마치 ‘축제의 도시’임을 뽐내기라도 하듯 세 종류의 축제가 앞다퉈 막을 올린다.먼저 올해 15회째인 ‘춘천인형극제’가 8일부터 17일까지 춘천인형극장과 강원 도립화목원 등에서 열린다.인도,불가리아,베트남,러시아 등 해외 9개국 10개 극단과 국내 43개 극단이 참가한다.초등학생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번개 인형극’행사도 마련된다.(033)242-8450. 8·9일 이틀간 열리는 ‘제2회 춘천무용축제’는 ‘춤으로 불어오는 낭만의 바람’을 주제로 ‘권금향무용단’등 8개 단체의 작품을 공연한다.서울발레시어터의 ‘백설공주’를 제외한 모든 공연이 무료이다.(02)2263-4680. 13∼17일에는 프랑스,이탈리아 등 4개국 13개 극단이 참여하는 ‘춘천국제연극제’가 어린이회관 야외무대 등지에서 펼쳐진다.(033)253-7111. 이순녀기자 co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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