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일본 공주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검찰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삭감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휴식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우승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67
  • 한반도 운명 바꾼 ‘청일·러일전쟁’ 재조명

    한반도 운명 바꾼 ‘청일·러일전쟁’ 재조명

    120여년 전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와 연이어 전쟁을 벌였다. 조선은 전쟁의 시작과 더불어 치열한 격전장이 됐고, 종전과 동시에 일본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됐다. 30일과 31일 밤 10시 KBS 1TV에서 방송되는 ‘다큐1’ 2부작은 대한민국 광복 70년을 맞아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재조명한다. 1편 ‘동아시아 뒤집히다, 청일전쟁’은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한 청일전쟁을 되돌아본다. 시작은 동학농민운동이었다. 1894년 전북 고부에서는 ‘보국안민’을 외치며 전봉준의 주도로 동학군이 봉기했다. 위협을 느낀 조선 정부는 청에 원군을 요청한다. 일본도 거류민 보호를 목적으로 조선에 진출한다.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은 경복궁을 습격한다. 경복궁을 습격해 조선정부로부터 청군을 조선의 영토 밖으로 쫓아내 달라는 부탁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면서 청일전쟁 시작의 구실이 생겼다. 연이은 해전에서 승리는 일본에 돌아갔다. 동학군은 다시 봉기했지만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에 처참하게 패한다. 청일전쟁 직후, 시모노세키에서 청나라와 일본은 강화조약을 맺는다. 이 조약의 1조가 명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조선은 완전한 자주독립국이라는 것. 일본은 청나라로부터 조선을 떼어놓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한다. 원래 자주독립국이었던 조선은 더이상 독립이 아닌 독립이 됐다. 2편 ‘끝나지 않은 패권, 러일전쟁’에서는 20세기 세계사의 흐름을 전쟁의 세기로 이끌어 ‘세계0차대전’이라고도 불리는 러일전쟁을 되짚어보고, 10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한 일본의 전쟁 야욕을 들여다본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인어공주들의 수면아래는…

    인어공주들의 수면아래는…

    28(현지시간) 카잔에서 열린 2015 FINA 월드챔피언쉽(the 2015 FINA World Championships)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단체 프리 예선전서 일본 선수들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한국과 일본이 함께 여는 신 동북아시대 (7회)미래를 위해 뛰는 사람들-일본에선

    [새로운 50년을 열자] 한국과 일본이 함께 여는 신 동북아시대 (7회)미래를 위해 뛰는 사람들-일본에선

    한·일 국교 수립 50주년을 맞은 가운데 한류도 식고 일본 내 반한 감정도 어느 때보다 높지만 개인과 개인, 민간과 민간을 이어 주는 노력에는 쉼이 없다. 정부 간 공식 관계가 냉랭하고 어색한 상황에서도 두 나라 국민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하는 두 사람을 만났다. ■통역사법인 ‘한·중·일에서 세계로’ 우시오 게이코 대표 “마음 잇는 통역으로 한·일 화해 도움 주고파”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직후인 4월 초 서울 홍대 앞에서 중년 여성 10여명이 일주일 남짓 지진 피해 지역 주민에게 보내는 한국 젊은이들의 메시지를 받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전하는 ‘힘내라’ ‘용기를 잃지 말아 달라’는 격려 메시지들은 이들의 손을 거쳐 일본어로 번역됐다. 이들은 한국의 전통 복주머니 800여개에 메시지를 담아 지진 피해가 극심했던 미야기현 게센누마 지역 초·중·고교 교사와 주민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지역 교사와 주민의 감사 답장이 이들의 손을 거쳐 한국어로 번역돼 한국 젊은이들에게 다시 전달됐다. 게센누마 사람들은 답장을 통해 “한국인들의 격려와 관심이 큰 힘이 됐다. 감사한다”는 마음을 전해 왔다. 메시지를 통해 피해 지역 주민과 한국 젊은이들을 연결해 준 이들은 일본의 비영리법인(NPO) ‘한·중·일에서 세계로’의 우시오 게이코(66) 대표와 그 회원들이었다. 우시오 대표는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잊지 않고 응원한다는 사실에 피해 지역 주민들이 감격하고 있다”고 26일 전했다. 그는 1년에 몇 차례씩 지진 피해 지역을 다니며 한국인들의 격려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30여년 경력의 일본 내 대표적인 한국어 통역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 시절 일본을 방문했을 때 통역을 맡았고 세지마 류조 전 이토추상사 회장과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근태 전 의원, 소설가 김훈, 가수 조영남 등의 방일 때도 통역을 했다. 일본 외무성 등 정부 기관이 가장 신뢰하는 베테랑 통역사로 손꼽힌다. 그는 2013년부터 일본 에도시대 때 조선에서 일본으로 보내던 조선통신사를 젊은이들이 재현하는 ‘21세기 유스 조선통신사’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있다. 두 나라 젊은이들이 옛 조선통신사 사절들이 걷던 길을 걸으며 상대방을 이해하고 협력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도록 한다는 의도에서다. 올해는 일본 대학생 50여명이 오는 9월 5일부터 열흘 동안 경북 문경새재를 떠나 영천, 경주, 울산을 거쳐 부산까지 조선통신사들이 한양(서울)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던 한국 내 주요 경로를 밟는다. 일본 학생들의 순례가 끝난 직후인 그달 19일부터는 한국 대학생 50여명이 오사카, 교토에서 시작해 ‘조선인가도’(街道), 시즈오카 및 삿타 고개, 하코네 옛길 등 조선통신사의 일본 내 여정을 따라 걷게 된다. 우시오 대표는 “젊은이들이 직접 보고 듣고 부딪치면서 오해와 벽을 허물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참여했던 젊은이들이 행사가 끝난 뒤 체험을 영상물과 사진, 그림 등으로 남겨 놓고 이를 유튜브 등을 통해 더 많은 또래들과 나누는 것을 보고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을 잘 알지 못하는 일본인이 많은 상황에서 한국에 직접 가 보고 한국인들을 만난 뒤 “(한국에 대한) 생각과 입장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일본 젊은이들을 예상외로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보람이고 기쁨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임혜자라는 이름을 일본 이름보다 먼저 얻은 그의 고향은 서울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1949년 태어나 한국전쟁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고교 1학년 때인 1965년 한·일 국교 수립을 계기로 부친이 있던 서울로 돌아왔다. 서강대 국문과를 나와 일본에서 통역사 일을 하면서 언어를 통한 한·일 협력, 통역을 통한 동북아 화해에 도움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010년 지금의 NPO를 조직했다. ‘한·중·일에서 세계로’는 그와 같은 통역사 40여명의 모임이다. “통역은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 나라 간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일”이라며 “규모는 작지만 이런 생각으로 각자의 경험을 한·일의 화해, 협력에 계속 활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한국 서적 전문 북카페 연 김승복 ‘쿠온’ 출판사 대표 “문인·독자들 교류하는 한·일 사랑방 만들 것” 일본 도쿄의 서점가 진보초에 지난 9일 한국 서적 전문 북카페가 문을 열었다. 일본 유일의 한국 서적 전문 출판사 ‘쿠온’의 김승복(46) 대표가 ‘책거리’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다. 고서점과 각종 전문 서점 등이 있어 도쿄의 명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점 거리인 진보초의 중심가에 입성한 책거리에 들어서면 쿠온이 발간한 한국 작가들의 일본어 번역본과 각종 한국 관련 서적, 한국 신간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서적과 한국 작품의 번역서들을 보는 곳만이 아니라 한·일 두 나라의 문인과 독자, 예술인, 인문학자들과 팬들이 모이는 사랑방, 교류 중심지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 김 대표는 26일 “북카페와 출판사를 거점으로 작가와의 대화나 한국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 일본 독자 초청 감상회 등 한국 문학과 문화에 대한 행사도 계속 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와세다대 도야마캠퍼스에서 열린 ‘한·일 차세대 작가 대담 이벤트’도 그런 계획의 하나로 열렸다. ‘이만큼 가까이’ 등의 작품을 쓴 젊은 소설가 정세랑과 아사이 료가 주인공이었다. 아사이는 2013년 ‘누구’(何者)로 최연소 나오키상을 받은 신예 작가다. 김 대표가 기획하고 국제교류재단 일본사무소 등의 협력으로 함께 연 ‘한·일 차세대 문화인 대담’은 후속 프로그램들이 준비돼 있다. 올가을부터 내년 초까지 일본 극작가 겸 연출가 오카다 도시키와 소설가 박민규의 대담, 하반기에 디렉터 요리후지 분페이와 소설가 김중혁, 건축가 고시마 유스케와 건축가 안기현의 대담 등 벌써 일정이 빡빡하다. 문화인들의 토크쇼와 대담 등은 김 대표가 2010년 도쿄에 출판사를 열면서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문학과 문인, 예술인들을 일본에 알리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말 도쿄 다이칸야마에 있는 대형 서점 ‘쓰타야’에서 소설가 은희경과 히라노 게이치로가 ‘문학은 왜 흥미로울까’를 주제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구상 덕분이었다. 쿠온이 2011년부터 내놓은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불모지였고 문턱이 높았던 일본 출판계에 ‘문학 한류’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 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를 시작으로 지난해 말 황인숙 시인의 장편소설 ‘도둑괭이 공주’, 올 들어서는 정세랑의 ‘언더, 썬더, 텐더’,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 13권이 번역돼 일본 독자들과 일본 출판 시장에 소개됐다. ‘쿠온 인문·사회 시리즈’의 하나인 ‘한국과 조선의 지(知)를 읽는다’는 한국문화의 지적 성과를 104명의 한국과 일본 지성들의 기고로 엮었다. 104명의 문인, 교수, 학자, 전문가들을 일일이 만나 그들의 기고를 얻어 만들었다. 김 대표는 ‘한국과 조선의 미(美)’ ‘한국과 조선의 심(心)’ 등 후속 시리즈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2011년 ‘케이북(K-BOOK) 진흥회’를 결성해 ‘일본어로 읽고 싶은 한국 책 50선’이라는 계간지도 내 왔다. 한국의 신간 등을 알리는 책이다. 이를 징검다리로 28권의 한국 책들이 일본어로 번역돼 일본인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한국의 책과 출판에 관심 있는 일본인들을 경기 파주 출판도시와 한국 각 지역의 출판 산업 및 문화와 접하게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1991년 일본에 유학하러 와 25년째 도쿄에 사는 김 대표는 ‘사명감’이란 단어에는 손사래를 쳤다. “그저 한국의 좋은 작품을 일본에 알리고 한국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일본 독자들과 함께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서 일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박문각 남부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한국사

    [박문각 남부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한국사

    서울신문은 가장 많은 수험생이 응시하는 7·9급 국가직 및 지방직 공무원시험에 대비해 국어·영어·한국사 등 시험 필수과목과 행정학·행정법·사회 등 선택과목에 대한 실전 강좌를 마련했다. 공무원시험 전문학원인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들의 도움을 받아 매주 과목별 주요 문제와 해설을 싣는다. (문제)<가><나>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가>지주와 대치 중인 전남 무안군 암태도 남녀 500여명이 지난 8일 오후 6시쯤에 광주 지방 법원 목포 지청에 몰려 들어오자, 경찰 당국은 정·사복 경관을 늘어세우고 엄중한 감시를 하였다. <나>원산에서 2000여명의 노동자가 파업을 단행한 결과 운수, 인쇄 및 기타 모든 기관의 업무가 중단되었다. 이에 일본 자본가, 상업 회의소, 국수회 등의 알선으로, 시내 각 상점의 점원, 목수, 미장이 등 50여명의 일본인 노동자가 동원되어 매일 부두에 나가 작업을 하였다. [보기] ㄱ. (가)-소작료를 낮추는 성과를 거두었다. ㄴ. (나)-항일 민족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ㄷ. (가), (나)-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ㄹ. (가), (나)-조선 노농 총동맹이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① ㄱ, ㄴ ② ㄷ, ㄹ ③ ㄱ, ㄴ, ㄷ ④ ㄱ, ㄷ, ㄹ (해설)<ㄱ>1923년 전남 신안군 앞바다 암태도에서 지주의 고율의 소작료에 항의하여 소작농들이 소작쟁의를 벌였고, 결국 소작료 인하에 성공한다. <ㄴ>원산 총파업의 시작인 일본인 공장 관리인의 조선인 노동자 폭행으로 시작되어, 조선 노동자들의 일제의 항쟁으로 확대되었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하였다. <ㄷ>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농민·노동자 항쟁이 시작되었다. <ㄹ>조선 노농 총동맹은 1924년 조직되어 1927년 조선 노동 총동맹과 조선 농민 총동맹으로 분리되었다. 시기상 연관짓기 어렵다. (정답) ③ (문제)다음 사료에서 등장한 국왕시기의 사건으로 옳은 것은? 왕은 즉위하기 전에는 총명하고 인후하였으며, 백성의 기대가 모두 그에게 집중되었다. 또 즉위한 후에는 정치에 노력하였으므로 국내외가 크게 기뻐하였고, 태평 세상에 대한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노국공주가 죽은 후부터는 과도히 슬퍼하여 의지를 상실하고 정치를 신돈에게 일임하였으며, 공훈 있고 어진 신하들을 내쫓거나 죽이고 토목 공사를 크게 일으킴으로써 백성의 원망을 샀다. <고려사> ①몽골풍 의복과 변발을 폐지하고, 원의 관제와 연호를 폐지하고 문종 때 원래의 관제로 환원하였다. ②정치도감을 설치해 부원세력 척결을 시도하였다. ③3성은 첨의부로, 6부가 4사로 축소되었다. ④충숙왕에게 전위 후 북경에 들어가 그곳에서 만권당이라는 연구소를 차리고, 조맹부, 염복 등과 고려 이제현을 모아 유학을 연구 토론하였다. (해설)공민왕은 왕위에 오른 뒤 중국 원나라를 배척하고 친원파인 기씨(奇氏) 일족을 제거하였고, 쌍성총관부를 폐지하였으며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는 등 개혁 정책을 단행하였다. ② 충목왕, ③ 충렬왕, ④ 충선왕에 대한 설명이다. (정답) ① (문제)신라시대 골품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못한 것은? ①관등 승진의 제한에 따른 불만을 무마하고자 중위제를 실시하였다. ②진골들도 잘못을 저지르면 6두품으로 강등되는 경우도 있었다. ③6두품은 득난이라 불리며, 중대에는 왕권과 결탁하여 진골에 대항하였다. ④6두품은 집사부 시중직과 각부의 장관직을 맡고 있었다. (해설)6두품은 진골에 비해 관직 진출 및 신분상의 제약이 다소 강했지만, 전체적으로 득난(得難)으로 불릴 정도로 귀성이었다. 중대(통일기)에는 왕권과 결합하여 진골에 대항하지만 신라 하대에 반신라 세력이 된다. ④6두품은 집사부 ‘시랑’직과 각부의 차관직인 ‘경’을 맡고 있었다. (정답) ④ 현창원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
  • 애국심 호소 아닌 절제미로 키운 ‘먹먹한 울림’

    애국심 호소 아닌 절제미로 키운 ‘먹먹한 울림’

    일제가 운영하는 미선소(米選所)에서 일하던 방수국은 일제의 앞잡이인 조선인 감독관에게 강간당한다. 목을 매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그의 연인인 차득보가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끌어안는다. “꽃이 져버렸지라.” “꽃이 진다고 꽃이 아니것소.” 수국 역의 배우 윤공주는 이 장면에서 단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않는다. 불편한 장면들로 성폭력의 잔혹성을 부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고통을 묵묵히 견뎌낸 연인이 초연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을 뿐이지만, 오히려 가슴 한편에 먹먹한 울림을 불러일으킨다. 베일을 벗은 뮤지컬 ‘아리랑’은 이처럼 절제의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극적인 넘버들과 울부짖는 대사들로 민족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연극 ‘푸르른 날에’에서 슬픔을 꾹꾹 눌러 담는 솜씨를 발휘한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은 “‘아리랑’의 정서는 ‘애이불비’(哀而不悲)가 될 것”이라는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였다. 일제에 짓밟힌 민초들의 삶은 매 장면이 미학적으로 승화됐다. 조선 여인들이 일본군에 집단 성폭력을 당하는 장면은 희고 붉은 천을 이용한 군무로 직조됐고, 불에 타 그을린 시체는 검은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고목(枯木) 같은 뒷모습으로 대체됐다. 여기에 현실과 비현실이 맞물린 고선웅 특유의 연출은 행복한 판타지 사이로 송곳처럼 삐져나온 현실의 비극이 가슴에 아프게 와닿게 한다. 작품은 몇몇 주인공들의 서사를 굵직하게 그리기보다 찰나의 순간에 민초들의 한(恨)이라는 감정과 정서를 응축해내는 데 주력한다. 때문에 서사의 연결고리가 다소 느슨한 게 아쉽다. 주인공들 개개인의 감정선과 ‘러브라인’도 중간중간 끊기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민초들의 삶을 따라가며 차곡차곡 쌓인 감정의 결은 2막에서 마침내 보(洑)를 터뜨리는 데 성공한다. 일본군의 총탄에 쓰러지는 비극적인 결말마저 산 자와 죽은 자가 어울려 ‘아리랑’을 부르며 춤을 추는 신명으로 승화한 대목에서는 먹먹함과 슬픔, 벅차오르는 힘 등 복잡한 감정들이 객석을 휘감는다. 제작비 50억원을 쏟아부은 ‘대작’답게 무대와 조명, 음악, 의상 등에서 창작뮤지컬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다. 박동우 디자이너의 무대 세트는 공간을 압축적인 이미지로 제시하고, 고주원 영상디자이너의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 영상은 떨어지는 쌀알, 흩날리는 꽃잎 등 민초들의 감정을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함은 물론 작품의 절제미를 한층 돋보이게 만든다. ‘진도 아리랑’ ‘신아리랑’ 등 전국 각지의 아리랑을 재현한 한국적인 넘버와 “떠난다고 떠나질 땅이여/잊는다고 잊어질 땅이여”처럼 운율과 방언을 섬세하게 매만진 가사도 일품이다. 송수익 역의 안재욱과 감골댁 역의 김성녀가 극의 중심축을 단단히 잡은 가운데 방수국 역의 윤공주는 조선 여인의 강인함을 온 몸으로 체화한 듯 열연한다. 오는 9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6만~13만원. (02)577-1987.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백제, 日과 교류 가장 활발… 아키히토 “나는 무령왕의 자손”

    [새로운 50년을 열자] 백제, 日과 교류 가장 활발… 아키히토 “나는 무령왕의 자손”

    지난 3일 오전 11시쯤 충남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고분군. 매표소를 지나 고분군에 들어서자 공원과 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축구장만한 산이 구릉처럼 야트막하다. 송산(松山)이다. 포장된 길 사이로 연두색 잔디밭이 잘 가꿔졌고, 소나무 등 각종 나무가 서 있다. 중간 산자락에 높이가 약간씩 다른 6기의 커다란 묘지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멀리 시내의 아파트와 묘하게 대조됐다. 이 중 유일하게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령왕릉’이 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2001년 12월 23일 68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간무 천황(50대·737~806)의 어머니가 무령왕 자손이라고 기록돼 한국과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일본 고대사 연구의 중요 사서인 ‘속일본기’에 적힌 기록을 인용한 것이지만 일왕 스스로 이를 인정한 파격적 발언이었다. 3년 뒤인 2004년 8월 3일에는 아키히토의 5촌 당숙으로 일본 왕족인 아사카노 마사히코가 친척과 함께 무령왕릉을 참배했다. 여론을 의식한 비공식 참배였지만 일본 왕족의 무령왕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무령왕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백제 한성(서울)시대 마지막 왕인 개로왕이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교류를 돈독히 하고자 461년 4월 동생 곤지를 일본에 보내면서 임신 중인 자신의 부인을 딸려 보냈다. 부인은 그해 6월 규슈 북쪽 가카라시마 섬에서 아들을 낳았고, 이 아이가 25대 무령왕이다. 아키히토 선조인 간무 천황의 아버지는 고닌 천황이고, 그 부인이 무령왕의 10대 후손이다. 간무 천황은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황태 부인으로 추종하고 극진히 제사를 지냈다. 이날 현장 취재에 동행한 박재용(43)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백제 중흥을 이끈 무령왕 때 일본과 교류가 매우 활발했다”며 “이 과정에서 백제의 수많은 선진 문물이 일본에 전수됐다”고 말했다. 고분군 모형전시관에 들어서자 7호분인 무령왕릉과 5·6호분 모형이 눈에 띄었다. 박 연구원은 “송산리고분군 무덤 중 무령왕릉만 지석(誌石)을 통해 주인이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유물 4600여점이 발굴됐다. 발견 당시 유물이 놓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유리관이 보였다. 박 연구원은 “왕과 왕비의 신발, 청동다리미, 수문경(거울)은 똑같은 게 일본 고분에서도 출토돼 백제 문물이 얼마나 전수됐는지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서진 널빤지만 남은 관은 일본에서만 자생하던 금송으로 만들어졌다. 주로 백제가 중국에서 들여온 ‘시경’, ‘춘추’ 등 오경과 갖가지 문물을 일본에 전파했지만 금송처럼 일본에서 넘어온 것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곳을 나와 공주와 인접한 또 다른 백제의 고도 부여로 갔다.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는 학교 운동장만한 크기였고, 연못 위 다리를 건너자 ‘정림사지 5층석탑’이 서 있다. 박 연구원은 “돌로 만든 탑이지만 지붕 처마가 치솟고, 몸돌이 4단으로 이뤄지는 등 목조 양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탑이 나무에서 돌로 바뀌는 초기 형태”라고 알려줬다. 그는 “일본은 이 양식을 받아들여 나무 탑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석탑 뒤에 불상을 모시는 금당 터가 있다. 3층짜리 절이었던 금당은 잔디밭으로 흔적을 표시했다. 그 뒤로 한옥 형식의 강당 건물이 있다. 박 연구원은 “백제 가람(절)의 전통 양식은 남북 일직선상의 1탑 1금당으로 1탑 3금당인 신라나 고구려와 다르다”면서 “백제 양식이 오사카 시텐오지(四天王寺)나 나라 호류지(法隆寺) 등에 적용됐다”고 얘기했다. 무령왕이 웅진(공주)시대를 이끌었다면 성왕은 사비(부여)시대를 연다. 성왕은 노리사치계를 보내 일본에 불상과 경전 등 불교를 전파한다. 백제 기술자들은 일본에 많은 사찰을 지었고, 아스카문화를 꽃피게 했다. 제련기술, 말 사육 방법, 양잠과 의복제작 기술도 일본에 전수됐고 그 흔적이 교토, 오사카, 나라 등에 남아 있다. 선진 문물 혜택을 받은 일본은 백제가 전쟁을 벌일 때 군사를 보내 도왔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유민 4000여명이 일본으로 망명해 여러 촌락을 이뤄 살았고, 거기서 벼슬도 많이 했다. 박 연구원은 “백제와 일본은 형제처럼 서로 도우면서 지냈다”며 “요즘 사사건건 삐걱거리는 한·일 관계를 보면 참 안타깝다”고 씁쓸해했다. 글 사진 공주·부여 이천열 기자 sky@seoul.co
  • 명품관 된 미술관

    명품관 된 미술관

    한국의 전통미술을 얘기할 때 흔히 여백의 미, 소박함,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래의 옛 기록들을 보면 정교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지닌 출중한 미술공예품을 극찬하는 글들이 많다. ‘공교하다’, ‘뛰어나다’,‘세밀하다’는 말을 통해 미술품들을 칭송했다는 것은 당대 우리 선조들의 미감의 기준과 인식을 보여준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이 기획한 ‘세밀가귀(細密可貴):한국미술의 품격’ 전은 세밀함, 정교함, 화려함을 통해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조명한다. 한국미술의 편향된 시각을 극복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공들여 마련한 전시로 고대부터 조선까지 시대별, 장르별 최고의 명품을 망라한다. 금속공예, 회화, 나전, 불교미술 등 국보 21점, 보물 26점을 포함 140여점으로 구성된 전시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한국미술의 품격을 보여주기에 더없이 훌륭하다. 전시 제목의 ‘세밀가귀’는 12세기 고려 미술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사료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1123년)에서 인용했다. 고려 인종 때 중국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은 고려 나전을 일컬어 ‘세밀함이 뛰어나 가히 귀하다 할 수 있다’고 평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 간송미술관, 호림박물관, 동국대박물관 등 국내 19개 주요기관의 대표작품과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보스턴미술관, 영국미술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도쿄국립박물관 등 해외 21개 소장처에서 대여한 국보급 작품들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외국 유수박물관에서 보물로 간직해 온 고려 나전,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 등이 어렵사리 서울나들이를 했다. 전시작 중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독일 함부르크미술공예박물관), 칠보산도병(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동경계회도(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은 국내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전시한다. 전시는 세밀함과 화려함, 정교함을 드러내는 제작 기법을 중심으로 문(文), 형(形), 묘(描)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문양:정교함의 극치, 화려함의 정수’ 부분에선 단조, 입사, 나전, 투각, 상감, 감장 등 여러 가지 장식 기법을 통해 장인들이 빚고 다듬고 두드려 만들어낸 정교한 미감을 살핀다. 금속 덩어리를 두드려 망치, 집게, 가위로 문양 혹은 입체를 만드는 단조로 만들어낸 신라시대 금관(국보 138호)과 금속표면을 파내고 다른 금속선을 박는 입사기법의 청동은입사 보상당초봉황문 합(국보 171호)이나 금선을 붙여 알집을 만들고 유리나 보석류를 박는 감장기법의 금동 수정감장 촛대(국보 174호)가 전시되고 있다. 나전은 광채가 나는 자개 조각을 박아 넣거나 붙여서 장식하는 기법으로 고려 나전은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최고의 경지를 자랑한다. 이번 전시에는 전 세계에 17점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아 희귀한 고려 나전 중 나전 국당초문 경전함(영국박물관), 나전 국당초문 화형합(보스턴미술관) 등 8점이 공개된다. 나전 단화금수문 거울(국보 140호) 등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 나전을 조망하는 특별공간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리움 측은 설명했다. ‘형태:손으로 빚어낸 섬세한 아름다움’에선 장인의 손끝에서 빚어진 치밀한 형태미를 보여주는 금속공예품과 불보살상을 보여준다. 흙으로 만든 거푸집에 녹인 금속을 부어서 굳히는 주조법은 금속공예 성형의 대표적인 기법으로 거푸집의 정교함에 따라 공예품의 완성도가 결정된다.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국립부여박물관)는 백제미술의 뛰어난 조형성뿐 아니라 최고 경지에 도달한 주조법을 보여준다. 화려하고 섬세하게 장식된 보살상들은 입체적인 형상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의 정수를 드러낸다. 금동 보살 좌상(후묘지, 일본 사가현 중요문화재), 금동 대세지보살 좌상(호림박물관, 보물 1047호) 등이 출품됐다. 마지막으로 ‘묘사:붓으로 이룬 세밀함’ 부분은 붓을 통해 표현한 섬세함의 다채로운 모습을 조명했다. 고려불화의 세부묘사는 화공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치밀함을 보여준다.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운품 변상도(국보 235호), 원각경 변상도(미국 보스턴미술관) 등이 전시되고 있다. 깊은 골짜기의 암자까지 세밀하게 표현한 겸재의 금강전도(국보 217호), 조선시대 동물화의 대가 이암의 가응도(보스턴미술관), 인물의 성격과 기질까지 보여주는 조선시대 초상화 등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전시는 9월 13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日, 징용시설 ‘강제노동’ 첫 인정

    日, 징용시설 ‘강제노동’ 첫 인정

    한국과 일본이 5일(현지시간)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규슈·야마구치와 관련 지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조선인 강제 노동 사실이 담겨 있는 최종등재결정문을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일본은 최종등재결정문에 포함된 발표문에서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 노역했던 일이 있었으며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인포메이션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조선인 강제 노동을 일본이 사실상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WHC는 당초 지난 4일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조선인 강제 노동 사실을 최종등재결정문에 포함할지를 놓고 한·일 양국 간 이견이 커 일정이 하루 연기되는 진통을 겪었다. 결국 양국은 강제 노동 부분은 일본 측 발표문에 포함하고 최종등재결정문에는 발표문을 주목한다는 주석을 다는 형식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우리의 정당한 우려가 충실하게 반영되는 형태로 결정됐다”면서 “일본 발표문은 한·일 양자 차원의 합의를 넘어 세계유산위 공식 결정문의 일부가 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대표인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은 일본이 발표한 조치와 위원회 권고를 2018년 회기까지 충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일본이 등재를 신청한 근대산업시설은 규슈와 야마구치 지역 8개 현 11개 시에 있는 총 23개 시설로 구성돼 있다. 이 중 7곳에 5만 7900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됐고 그중 94명이 사망했다. 앞서 WHC는 4일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등재가 확정된 지역은 공주 공산성·송산리 고분군,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능산리 고분군·정림사지·나성, 익산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등 8곳이다. 한국은 총 12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으며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 및 무덤군(2004년, 중국·북한 공동 등재)과 함께 한반도 고대 삼국이 모두 세계유산에 오르게 됐다. WHC 산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는 한·중·일 동아시아 고대 왕국들 사이의 상호 교류 역사를 잘 보여준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백제역사유적지 세계유산 등재] 고대 한·중·일 잇는 독특한 숨결 인정… 700년 王都 깨어난다

    [백제역사유적지 세계유산 등재] 고대 한·중·일 잇는 독특한 숨결 인정… 700년 王都 깨어난다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700년 백제 역사와 문화가 국내외에서 재조명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구려, 신라에 가려 ‘대륙의 한(恨)’으로 남았던 백제가 제대로 빛을 보게 됐다. 다만 백제사 700년 중 초기 500년을 차지하는 한성(서울) 백제의 유산들이 아직 등재되지 못해 미완의 과제로 남은 상태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고도 중 서울을 제외한 공주·부여·익산 지역의 백제시대 대표 유적지 8곳을 한데 묶은 것이다. 백제사 700년 중 후기 200년 도읍지와 그에 버금가는 지역의 유산들이다. 특히 고대 삼국의 유적이 모두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백제왕도(王都)를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로 복원하려는 움직임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3월 충청남도·전라북도·공주시·부여군·익산시 등 지방자치단체들과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를 포함한 백제왕도 핵심 유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백제왕도 핵심 유적 복원정비준비단’을 발족했다. 배병선 백제왕도 핵심 유적 복원정비준비단장 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백제왕도를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나게 하려는 출발선상에서 이번 세계유산 등재는 주목할 성과”라고 말했다. 또한 외교부와 문화재청은 “고대 통상국가이자 문화예술국가였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새롭게 조명되는 기회가 될 것이며, 관광 활성화와 더불어 우리 문화유산의 세계화와 문화 강국으로서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랜 시간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왔던 충남, 전북 등의 반응은 더욱 뜨겁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백제역사유적은 고대 한·중·일과 동북아시아 평화·교류·번영의 결과물”이라며 “1400년 전 고대 왕국 백제의 역사유적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전 세계인이 대한민국을 비롯한 동북아의 과거·현재·미래를 깊게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송하진 전북지사도 “백제가 꽃피웠던 문화가 고대 일본의 문화적 원조란 역사적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시점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그 의미를 부여하고 백제 문화·역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만 한성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여전한 숙제다. 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군 등 서울 지역 백제 유산들이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빠진 이유는 공주·부여·익산이 세계유산 등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던 2010년 당시 서울시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2012년 5월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을 설립했다. 현재 서울시가 역사문화도시로 정립하겠다는 방향을 설정하고 있는 만큼 향후 한성 백제 유산들에 대해 등재를 추진한다면 별도의 신규 등재가 아니라 기존 등재 구역에 추가하는 ‘확장’ 형식을 빌릴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역사적 맥락을 지닌 두 개의 유산을 각각 다른 이름으로 등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3902개 바다 위 보석 ‘島’ 뭍 나그네 유혹하네

    3902개 바다 위 보석 ‘島’ 뭍 나그네 유혹하네

    남해안의 청정한 해역과 짙푸른 천연의 해안가로 이뤄진 섬들이 휴가철 피서객에게 손짓하고 있다. 도심인들에게 섬은 생각 자체만 해도 자유로움과 편안함, 힐링 등을 선사한다.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푸른 바다와 깨끗한 공기가 어울린 남국의 정취, 새 파란 물결의 피서지인 섬에서 올여름 가족과 함께 떠나는 재미를 가져보자. 탁 트인 풍광과 토속적인 먹거리, 검은 하늘을 빛나게 밝히는 총총한 별들, 자연 그대로의 기암괴석 등과 조화를 이룬 섬에서의 며칠간 경험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랴. 해수욕과 낚시, 배를 타고 가면서 구경하는 각종 희귀한 섬들을 보는 재미는 덤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3902개의 섬이 있다. 유인도는 460개다. 가는 소금처럼 흩뿌려져 있는 모래사장과 연결된 섬들도 부지기수다. 떠나고 싶은 마음만 먹으면 한여름 가고 싶은 섬은 무궁무진하다. 푸른 잔디에 직접 텐트를 쳐도 좋고, 어딜 가나 편안한 시설이 돼 있는 민박촌을 이용해도 좋다. ●해질 녘 섬이 붉게 보이는 ‘홍도’ 해마다 관광객 20만명이 몰려드는 아름다운 섬이다. 해질녘에 섬 전체가 붉게 보인다 하여 ‘홍도’라고 불린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홍도는 그 수려함으로 2012년 한국관광공사 주관 ‘한국인이 가봐야 할 관광지 100선’ 1위에 선정됐다. 홍갈색을 띤 규암질의 바위섬이기 때문이다. 누에 모양을 한 홍도는 크고 작은 무인도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오랜 세월 풍파로 형언할 수 없는 절경을 이룬다. 남문바위, 석화굴, 만물상, 슬픈여, 일곱남매바위, 수중자연부부탑 등 갖가지 전설이 어린 바위들은 마치 정성스럽게 분재를 해놓은 듯 신비롭다. 해질 무렵에는 일몰전망대, 동백군락지, 깃대봉 정상에서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국내서 가장 길고 넓은 해수욕장 있는 ‘임자도’ 신안군 지도 점안 선착장에서 배로 20분 걸리는 임자도 서쪽에 자리잡은 대광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은 해수욕장이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백사장은 장장 12㎞에 달하며 폭은 300m가 넘는다. 해수욕장 양 끝까지 가려면 걸어서 1시간 20분이나 걸리는 광활한 백사장이다. 완만한 경사와 따뜻한 수온, 광활한 백사장에 넓은 야영장과 천연 잔디로 이뤄졌다. 이 섬에는 2개 해수욕장이 더 있다. 백사장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사계절 꽃피는 해변으로 신안튤립축제, 모래민어축제, 전국 지구력 승마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광활한 갯벌 등 생태 관광지 ‘증도’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증도는 느려서 더 행복한 섬으로 유명하다. 2012년 한국관광공사 선정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 2위, 2015년 등 2회 연속 선정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생태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해송 숲을 따라 걸으면 우전해변의 진한 바다 내음에 취한다. 다양한 수생생물이 서식하는 광활한 갯벌과 국내 최대 규모의 태평염전, 염생식물원, 갯벌생태 전시관에서는 가족들과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길이 4㎞, 폭 100m의 우전해수욕장은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는 앞바다의 풍광이 장관이다. 최근 엘도라도리조트가 개장해 펜션, 사우나, 야외노천탕 등이 운영되고 있다. ●러·英 등 열강이 탐냈던 천혜의 항구 ‘거문도’ 거문도는 풍랑이 불면 들어오라는 듯 두 섬이 팔을 뻗어 둥그렇게 감싸고 있다. 항상 바다가 잔잔하기 때문에 러시아·영국·미국·일본 등 열강이 탐냈던 천혜의 항구였다. 1905년 세워진 거문도 등대는 국내 두 번째, 남해안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지정학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거문도란 이름도 구한말에 생겼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항의하기 위해 중국 청나라 수군제독 정여창이 이곳을 찾았을 때 거문도 사람들의 학식이 높은 것에 감탄해서 학문이 크다는 뜻인 ‘거문’(巨文)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거문도 동백숲길과 더불어 인근에는 남해의 해금강이라 불리 우는 백도(국가명승지 제7호)가 기암괴석과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 바위와 벼랑의 갖가지 기묘한 형상이 아름다운 남해의 소금강으로 불린다. ●아찔한 해안 절벽따라 만든 비렁길로 유명한 ‘금오도’ 바다를 횡단하는 아찔한 해안 절벽을 따라 만들어진 비렁길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총연장 18.5㎞의 탐방로를 걷다보면 쪽빛 남해의 비경에 넋을 놓게 된다. 매년 30만명 이상 찾는다. 금오도까지의 1시간 뱃길은 공룡발자국 화석지인 사도 등 각가지 섬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색다름을 선사한다. 사시사철 감성돔 낚시터로 각광받아 강태공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미역바위 아래쪽에 위치한 절벽은 영화 ‘혈의 누’에서 등장했다. 김복남 살인사건, 인어공주 등 드라마와 영화 촬영 장소로도 사랑받는 곳이다. ●바닷물 빠지면 열리는 자갈길 ‘매물도’ 대매물도와 소매물도, 소매물도 등대섬 등 3개의 섬을 통틀어 매물도라 부른다. 대매물도 중앙에 솟아 있는 장군봉(210m)에 오르면 아름다운 한려수도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소매물도에서 70m쯤 떨어져 무인도인 등대섬이 있다. 두 섬은 바닷물이 들 때는 분리됐다가 빠지면 ‘열목개’라는 자갈길로 이어진다. 소매물도 등대섬은 1910년 일본이 등대를 세워 미군 함정을 감시하는 초소로 이용했다. 풍광이 빼어나 영화 촬영 장소로 즐겨 이용된다. 섬 안에 펜션이 많다. 섬 주변에 낚시터가 유명하고 가자미, 도미 등이 잡힌다. 품질 좋은 자연산 김과 미역 등이 생산된다. ●까만 몽돌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욕지도’ 욕지도는 연화도를 비롯한 9개의 유인도와 30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욕지면의 주(主) 섬이다. 기암절벽으로 된 해안 경치가 장관이다. 까만 몽돌이 깔린 덕동해수욕장이 유명하다. 구석구석 낚시터여서 낚시 인파와 여름철 피서객이 많이 몰린다. 해발 392m의 천왕봉은 산세가 아름다워 사시사철 등산객이 붐빈다. 일주도로가 잘 뚫려 있어 승용차를 이용해 해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강한 해풍과 일조량이 풍부한 황토밭에서 생산되는 고구마와 감귤이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전복과 해삼도 맛이 뛰어난 것으로 소문나 있다. ●바다에 핀 연꽃의 의미 ‘연화도’ 연화도는 바다에 핀 연꽃이라는 뜻이다. 일몰 무렵 햇빛에 황금으로 물든 만물상을 비롯한 바위 군상이 신비롭다. 연화봉(해발 212m)에 오르면 통영 8경의 하나인 용머리와 시원한 바다를 볼 수 있다. 연화사와 보덕암은 일년내내 불교신도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등 불교순례지로도 유명한 섬이다. 한번은 가서 볼만한 비경을 간직한 섬으로 강태공들 사이에 낚시 천국으로도 알려져 있다. ●갯바위 낚시터로 강태공에게 사랑받는 ‘사량도’ 상도와 하도,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섬을 잇는 연도교가 오는 9월 개통될 예정이다. 섬 이름은 뱀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고 해서 유래됐다는 설과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생겨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상도에 있는 지리산(해발 398m) 산행은 섬 가운데 능선을 따라 아찔한 절벽과 다리를 지나며 좌우에 펼쳐진 산세와 바다 풍광을 모두 감상하는 섬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하도에는 볼락, 노래미, 도다리, 감성돔 등의 갯바위 낚시터가 많다. 특히 볼락 맛은 소문나 있다. ●일출·일몰 감상할수 있는 보배로운 ‘비진도’ 보배로운 섬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비진도는 두 개의 섬이 해수욕장으로 연결돼 있다. 600여m에 이르는 해수욕장이 산홋빛 바다를 가로질러 다리처럼 섬과 섬을 이어준다. 해수욕장 양편이 모두 바다로 한쪽(서편)은 모래밭 해수욕장이고 다른 한쪽(동편)은 몽돌밭으로 돼 있다.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감성돔이 잘 낚이는 낚시터가 있어 해수욕과 낚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동백꽃으로 섬 전체가 불타는 것처럼 화려한 ‘장사도’ 섬 숲의 80%가 동백나무여서 동백꽃이 필 무렵이면 섬 전체가 불타는 것처럼 화려하다. 동백산책길과 자생꽃 정원, 생태전시관, 식물온실, 전망대, 조각작품 등이 있는 해상공원이 조성돼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섬 모양이 뱀의 형상이고, 뱀이 많아 장사도라 불리게 된 것으로 전한다. ●아름다운 해상식물공원으로 유명한 ‘외도’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외딴 바위섬을 개인이 사들여 아름다운 해상식물공원으로 조성해 놓은 개인소유 섬이다. 희귀 아열대 식물을 비롯한 740여종의 다양한 식물이 있는 식물원과 전망대, 조각공원 등이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조성돼 있다. 동쪽 끝에는 공룡굴과 공룡바위, 공룡발자국화석이 있고 낚시터가 많다. 숙식은 할 수 없고 해상관광유람선이 다닌다. ●다랑이 논·독일마을 등 풍광 아름다운 ‘남해도’ 남해군을 이루는 본섬인 남해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큰 섬이다. 남해도와 창선도에 딸린 유·무인도는 모두 79개다. 올망졸망한 섬과 높고 낮은 산, 아름다운 해안선 등의 풍광이 보석처럼 아름다워 보물섬으로 불린다. 1973년 6월 남해대교가 건설돼 육지인 하동군과 연결됐다. 금산과 보리암, 상주해수욕장, 가천마을 다랑이 논, 독일마을 등 곳곳에 관광명소가 있다. 조선시대 서포 김만중 선생이 유배생활을 하다 생을 마친 노도가 상주면 앞바다에 떠 있다. 죽방멸치와 마늘, 유자 등이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바다낚시로 유명한 관광휴양섬 ‘대도’ 하동군에 하나뿐인 유인도다. 조개잡이 등 갯벌체험과 바다낚시로 유명한 관광휴양섬이다. 대도는 주민들이 인근 하동 화력발전소로부터 받은 어업권 소멸보상금 150억원을 나눠 갖지 않고 전액을 관광섬 개발에 투자해 관광휴양섬으로 개발되고 있다. 신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씨줄날줄] 한성백제 빠진 백제역사지구/서동철 수석논설위원

    며칠 전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가슴이 매우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잘 알려진 것처럼 서울 송파 풍납토성이 초기 백제의 왕성(王城)이라는 사실을 학계가 공인토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고고학자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최종 결정하는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현지시간 28일부터 새달 8일까지 독일 본에서 열린다. 백제역사지구와 함께 ‘일본 산업혁명 시설’의 등재 여부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다. 일본의 등재 대상지에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이 포함되어 있어 한·일 두 나라의 치열한 외교전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두 안건은 사전 심사를 맡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이미 ‘등재’를 권고한 상황이다.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어떤 형태로 반영하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렇듯 백제역사지구의 세계유산 등재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 교수는 “돌 맞을 이야기일 수도 있다”면서 “회의 마지막 날이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서울을 제외한 백제역사지구의 등재 신청을 철회해 주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라고 했다. 그 이후 서울을 포함한 지자체가 협력해 백제의 흥망성쇠를 모두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백제역사지구로 만들어 등재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을 옮기면 이렇다. 백제는 BC 18년 지금의 서울인 한강 유역에서 건국했다. 이후 문주왕 때인 475년 고구려에 밀려 수도를 지금의 공주로 옮겼고, 성왕 시절인 538년 도읍을 다시 부여로 옮겼지만 의자왕 때인 660년 나당(唐)연합군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그런 만큼 자신의 표현대로 “한성백제를 제외하고 백제 678년 역사의 반 토막도 되지 않는 185년 유산만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등재하는 것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교수는 “공주·부여·익산의 백제 유적을 우선 등재하고, 차후 한성백제 유적을 추가한다는 계획을 모르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일단 등재가 이루어진 뒤 추가 등재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강조했다. 1999년 고창·화순· 강화 고인돌 무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도 당초 고창·화순만 추진했다고 한다. 자신의 건의로 우리 대표적 지석묘 문화인 강화 것을 포함시켜 2000년 등재시킨 경험이 있다고 했다. 고창·화순 것을 우선 등재하고 추가 등재하려 했다면 언제 이루어졌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 있다. 하지만 수년 동안 논의된 데다, 당장 오늘내일 사이 결정이 이루어져야 할 사안을 없었던 일로 돌리는 것도 상식은 아니다. 그런 만큼 정부와 서울을 포함한 해당 지자체는 등재가 결정된 순간 한성백제의 추가 등재를 위해 최대한 힘을 모아 노력한다는 공동 발표문이라도 내면 어떨까 싶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인사]

    ■법제처 ◇법제관△법제지원단 조용호△행정법제국 최종진 ■국세청 ◇부이사관 전보△서울국세청 감사관 임성빈△서울국세청 송무1과장 남판우◇서장급 전보 <본청>△기획재정담당관 천기성△전산기획담당관 윤영석△전산운영담당관 김대원△심사2담당관 정용대△부동산납세과장 안덕수△자본거래관리과장 최성일△이준오 김용완 한지웅 이봉근 김범구 박종희<서울국세청>△조사3국 조사1과장 고근수△조사3국 조사2과장 윤승출△조사3국 조사3과장 전을수△조사4국 조사2과장 오덕근△국제조사관리과장 강성팔△국제조사1과장 한덕기<중부국세청>△개인납세1과장 정병룡△체납자재산추적과장 김갑식△조사1국 조사2과장 박종현△조사1국 국제조사과장 전애진△조사2국 조사1과장 박찬욱△조사3국 조사1과장 김남영△조사3국 조사2과장 김영상△조사4국 조사1과장 오상훈△조사4국 조사3과장 이판식<광주국세청>△조사2국장 김성후<대구국세청>△조사1국장 현종현△조사2국장 김일현<부산국세청>△조사2국장 최판덕<세무서장>△종로 남해찬△중부 오광태△남대문 전영래△성북 강상식△서대문 정종식△영등포 서재익△동작 김춘배△반포 배상재△서초 류득현△성동 이순구△동대문 신광동△강동 이기태△송파 김기복△잠실 유재준△인천 이기철△북인천 박경윤△서인천 유세영△안양 권용수△동안양 류택희△용인 김종찬△시흥 황대철△수원 양신규△동수원 백운철△화성 김지암△평택 이숭건△파주 이제우△천안 임동현△공주 현석△북광주 이광영△남대구 이희백△북대구 최정수△서부산 최명식△북부산 이수진△금정 최정식◇초임세무서장△본청 정보개발2담당관 남우창△광주지방국세청 징세송무국장 박황보△대구지방국세청 징세송무국장 이영중<부산국세청>△감사관 박광수△운영지원과장 임호택△조사1국 조사관리과장 유병철<세무서장>△부천 김종오△홍천 최기섭△영월 김남오△삼척 홍성범△대전 오상준△서대전 김광천△북대전 고영일△제천 오태환△홍성 박헌옥△서광주 채병호△북전주 신재용△목포 김재철△정읍 김광근△남원 정영숙△경주 배철환△구미 조상욱△경산 이응봉△상주 김준우△영덕 고점권△중부산 윤순상△수영 김원용△울산 이훈구 (이상 6월 30일자)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사업단장 조정호 ■한국건강관리협회 ◇본부장급△전라북도지부 본부장 강선규<승진>△광주전남지부 본부장 김병길△경상남도지부 본부장 하동식 ■이데일리 ◇편집보도국△부국장(정경부장 겸임) 오성철△증권시장부장 이정훈△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 겸임) 김민구◇이데일리TV△편성제작부장 채의석 ■삼정KPMG ◇승진 <부대표>△정보통신산업 감사본부장 양승렬△딜어드바이저리2본부장 윤학섭△일본사업본부장 이학률<전무>△강정구 공영칠 김광석 김진태 박성배 석명기 이관범 이찬기 이호준 장영내 전철희 조원덕 한상일 황재남◇신임△파트너(상무) 김민수 백승목 신동준 신문철 어경석 이동근 이상근 이정수 조기욱 현승임 홍명국
  • [新국토기행] 경북 고령군

    [新국토기행] 경북 고령군

    경북 고령군은 대도시인 대구시와 접해 있다. 하지만 면적(384.10㎢)이 도내의 2%로 23개 시·군 가운데 울릉군(72.56㎢) 다음으로 작다. 인구도 3만 7000명에 불과하다. 주민의 약 30%가 농업에 종사한다. ‘미니’ 농촌 도시이다. 비록 작은 도시이지만 경주와 공주·부여 등과 함께 전국에서 손꼽히는 역사문화관광도시임을 자랑한다. 1600년 전 대가야의 도읍지로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고대사의 화려한 주역이었던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군청 인근에 자리한 대가야박물관, 대가야왕릉전시관, 대가야국악당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연간 관광객 400만명 정도가 찾는다. 고령은 요즘 재도약을 한창 준비하고 있다. 안동의 유교문화권, 경주의 불교문화권과 함께 고령의 가야문화권을 재정립하는 경북의 3대 문화권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특히 고령의 대표 관광자원인 지산리 고분군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면서 국내외로부터 새삼 주목받고 있다. 고령은 대가야의 역사문화뿐만 아니라 선사시대 암각화, 팔만대장경 이운(移運) 경로인 개경포, 고령강정보 등 수많은 관광자원이 산재해 있다. [볼거리]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지산리 고분군’ 대가야읍(옛 고령읍)을 병풍처럼 감싸는 주산(해발 310m)의 남동쪽 능선 위에 분포하고 있는 가야국 최고의 고분군이다. 사적 제79호.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왕릉인 44·45호분을 포함해 왕족과 귀족 무덤으로 추정되는 크고 작은 700여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대가야가 성장을 시작한 400년쯤부터 멸망한 562년까지 만들어진 것들이다. 무덤은 능선 위로 올라갈수록 큰 것이 특징이다. 왕의 힘이 커지면서 더 높은 곳에 더 큰 무덤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고분군에서는 가야금관(국보 제138호)이 출토됐으며 대가야 양식의 토기와 철기, 장신구 등 수많은 유물도 쏟아져 나왔다. 고분군을 따라 걷는 순례코스가 있다. 고분군은 2013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고, 2017년 2월 정식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고분군 출토유물 130여점 전시한 대가야왕릉전시관·대가야박물관 건물은 무덤의 모양처럼 직경 37m, 높이 16m 규모의 초대형 돔 형식 구조로 지어졌다. 내부에는 지산동 44호분을 재현해 놓았다. 당시의 무덤 축조 방식, 무덤의 주인공과 순장자(32명)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중앙에는 발굴 당시의 돌방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발굴 보고서를 토대로 출토 유물과 남아 있는 인굴 등을 복제해 넣어 두었다. 내부 벽체에는 지산동 고분군 출토 유물 130여 점을 비롯해 다른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무구·관·장신구 등의 유물을 전시하고 관련 영상물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입구에는 컴퓨터를 설치해 대가야의 역사와 44호분의 구조, 출토 유물 등 관련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대 가야박물관은 대가야 및 고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상설 및 기획전시실 등으로 나뉘어 있다. ●가야금 창제한 우륵의 모든것 ‘우륵박물관’… 연주 체험장도 갖춰 왕산악, 박연 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불리며 가야금을 창제한 악성 우륵(?~?)의 생애와 음악을 중심으로 한 국내 유일 ‘우륵과 가야금’ 테마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악성 우륵, 가야의 혼을 지킨 우륵, 민족의 악기 가야금, 우륵의 후예들 등 다섯 가지 주제로 꾸며졌다. 우륵의 생애와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게 된 이유, 가야금 12곡과 가야금의 종류, 가야금 모양 등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가야금의 열두 줄은 1년 열두 달을 상징한다. 가야금은 윗판이 둥글고 아랫판은 편평한데 이는 하늘과 땅을 의미한다는 것 등이다. 또 가야금을 비롯해 거문고, 대금, 피리 등 전통악기 18점이 전시돼 있다. 가야금과 양금 연주 체험장도 마련됐다. 전문 장인이 가야금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 가야금의 제작 과정도 관람할 수 있다. ●원시 농경사회의 제사 유적 ‘양전리 암각화’… 암각화 연구의 효시 대가야읍 장기리(옛 개진면 양전리) 회천변의 알터 마을 입구에 있다. 보물 제605호. 선사시대의 바위 그림으로 동심원과 가면 모양 그림이 새겨져 있다. 가로 6m, 높이 3m 정도의 크기다. 이 암각화는 1971년에 발견돼 우리나라 암각화 연구의 효시가 됐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며 탈 모양의 그림은 신상(神像)을 의미한다. 풍요와 다산, 집단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원시 농경사회의 제사 유적으로 추정된다. 인근에는 안화리 암각화(경상북도 기념물 제92호), 지산동 30호 고분 개석암각화, 봉평리 암각화 등이 있다. 그래서 고령은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드문 ‘암각화의 고장’이다. 이들은 모두 회천과 안림천, 대가천변에 위치한 점이 특징이다. 남해안을 통해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 회천을 거쳐 안림천과 대가천 주변에 정착한 것이다. ●야외 캠핑장·고대문화 4D 체험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대가야읍 지산리에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테마로 조성된 관광단지다. 고대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4D 입체 영상관, 유물 및 신비한 나라 대가야 체험관, 대가야 탐방 숲길 등을 갖췄다. 특히 4D 입체 영상관은 대가야 건국 신화와 철의 왕국 대가야를 주제로 한 입체 영상으로서 스릴과 신비감을 만끽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또 야외공연장과 소나무 숲 펜션, 야외 캠핑장, 레일썰매장 등도 마련됐다. 대가야 건국 설화의 주인공인 ‘정견모주’ 음악분수대도 이채롭다. 도자기 및 야생화분 만들기, 아로마·압화공예·한지공예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여름철(6~8월)엔 어린이들을 위한 물놀이장이 개장된다. 최근에는 KBS 2TV 금토 예능드라마 ‘프로듀사’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연중 무휴로 운영된다. 문의 (054)950-7005. ●350년 전통의 기와집 동네 ‘개실마을’… 엿·한과 만들기 등 체험도 쌍림면 합가리에 있는 전통 기와집 동네다. 조선 영남 사림학파의 종조(宗祖)인 문충공 점필재 김종직(1431~1492) 선생의 후손들인 일선 김씨 6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35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김 선생의 종택(경북도 민속자료 제62호)은 안채, 사랑채, 고방, 대문간, 사당으로 구성돼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으로 지어졌다. 마을 입구에는 김 선생의 과업을 기리기 위해 지방 유림들이 건립한 강학당인 도연재(문화재 자료 제111호)가 있다. 현재는 내부를 수리해 관광객들의 민박으로 활용된다. 도연재 옆길로 들어가면 전통 도자기 체험장과 화산재가, 마을 앞마당에는 그네와 관광객들이 쉴 수 있는 쉼터, 솟대 정원, 물레방아, 별자리 체험기 등이 있다. 마을에서는 엿과 한과 만들기, 전통 예절 등 개실마을의 각종 문화 체험과 식사를 할 수 있다. 문의 (054)956-4022. ●팔만대장경 거쳐간 ‘개경포’… 기와·도자기 등 조선시대 유통의 중심 개진면 개포리 낙동강변에 있다. 개포나루였던 이곳은 ‘경’(經)이 더해져 개경포(開經浦)로 불린다. ‘경전을 풀어내린 나루’라는 뜻이다. 팔만대장경과의 인연 때문이다. 고려시대 때 호국을 위해 제작된 팔만대장경이 전란(몽골 침입)을 피해 강화도 선원사에서 배에 실려 서해안과 김해를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승려들은 개경포에서 내린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해인사로 향했다. 조선시대 때는 개경포나루를 중심으로 1899년 조선의 대표 상단인 ‘고령상무사’가 설립됐다. 이를 통해 고령 기와와 고령 도자기, 해산물 등을 조선 전역으로 유통했다. 고령군은 지난해 이 일대에 주막을 비롯해 메모리얼 광장, 공연장, 팔만대장경 및 팔만대장경 관련 기념 조형물, 산책로 등을 갖춘 공원을 조성했다. [먹거리] ●없어서 못 파는 ‘개진 감자’ 감자하면 누구나 ‘개진 감자’를 칠 정도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감자칩 붐과 함께 원료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국내 봄 감자 최대 주산지인 개진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개진 감자는 비싼 가격이지만 없어서 못팔 정도다. 20㎏짜리 1상자당 3만 5000원 정도. 하우스 감자는 이미 동이 났고 노지 감자도 대부분 예약된 상태다. 씨알이 굵고 담백한 맛과 저장성이 탁월한 점이 특징이다. 낙동강 연안의 알칼리성 사질양토과 풍부한 수량 등 우수한 자연환경에다 농민들의 탁월한 재배 기술이 더해진 덕분이다. 개진은 낙동강을 타고 흘러온 흙들이 강 주변에 쌓이면서 옥토(沃土)가 됐고, 오래전부터 감자 재배의 최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개진 감자는 일반 감자에 비해 비타민A와 C가 특히 풍부해 구강질환, 피부병, 고혈압, 비만증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 저농약 농산물인증과 경북우수농산물 지정도 받았다. ●벌 이용한 자연수정으로 고당도 자랑하는 ‘우곡 수박’ 우곡면이 주산지인 우곡수박은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2006년도 KBS ‘신화창조의 비밀’ 프로에 우수 농산물 제1호로 방영됐을 정도다. 맑은 물과 비옥한 토양에서 벌을 이용한 자연수정을 통해 생산해 육질이 아삭하고 당도가 뛰어나다. 보통 수정 후 45일 만에 수확하는 것과 달리 60일 이상 충분히 익혀서 출하하기 때문이다. 토양에 맞는 비료를 사용하고 1년에 한 번만 심고 수확하기 때문에 영양가 또한 높다. 5월 초~7월 하순에 출하되며 4.4~10℃ 사이에서 습도 80~85%를 유지하면 더 맛있다. 우곡수박은 2011년 지리적표시제 제73호로 등록됐다. 우곡면은 280가구가 연간 248㏊에서 수박을 재배해 180억원가량의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우곡그린수박영농조합법인 관계자는 “우곡 수박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크기는 6㎏ 이상, 당도 13도 이상의 고당도 수박만을 출하한다”면서 “물론 소비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게 생산자 연락처도 부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품질 인증받은 명품 ‘고령 딸기’ 가야산의 맑은 물과 비옥한 토양에서 유기농법과 꿀벌로 자연수정을 하는 등 친환경적인 재배로 색상과 당도, 향기가 뛰어나 ‘명품딸기’로 인기를 끌고 있다.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40년의 재배역사와 기술을 자랑한다. 1976년 딸기 작목반을 구성한 쌍림면 합가리에서 처음 시작됐다. 쌍림면 일대를 중심으로 전체 재배 면적(173㏊)의 80% 이상이 무농약 친환경품질인증을 받아 학교급식용으로 납품될 뿐만 아니라 일본, 홍콩, 대만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고령군 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의 딸기 품목은 지난해 ‘경북도 농산물 수출단지’로 지정됐다. 딸기잼과 딸기수확 체험 관광객이 한 해 10만명에 이르는 등 농업의 6차산업화를 선도하고 있다. 고령 딸기의 출하시기는 12월부터 이듬해 6월 말까지다. 연간 생산량은 5700여t 정도다. ●건강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 ‘성산 멜론’ 낙동강 연안인 성산면 일대가 주산지다. 이곳에서 3월 중순부터 생산되는 멜론은 전국 멜론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강변의 비옥한 사질토양과 긴 일조량에다 자연유기농업으로 재배돼 최고의 맛과 향을 자랑한다. 또 당도가 높고 염분이 많아 식후 디저트와 건강다이어트 식품으로 적합하며 환자들의 원기회복에도 그만이다. 특히 깔끔한 외형과 단단한 과육으로 저장성이 뛰어나고, 사근사근한 육질은 신선함을 더해준다. 비타민 A·C와 칼슘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청와대 식탁에 오른 ‘고령 옥미’ 고령지역의 대표 브랜드쌀이다. 가야산의 맑은 물과 깨끗한 토양,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배해 맛과 품질이 뛰어나다. 친환경농산물품질 인증검사에서 통과한 합격품만 출하한다. 재배 면적은 첫해 2002년 26㏊에서 지금은 600여㏊로 10여년 만에 20배 이상 크게 증가했다. 전국적으로 찾는 사람이 늘고 있어서다. 2010년부터 2년 연속 청와대 식탁에 올랐다. 2009년에는 경북도 최우수 브랜드에 선정됐고, 지난해엔 ‘경북 6대 우수 브랜드 쌀’로 뽑혔다. 이 쌀을 주로 재배하는 덕곡면 노리 쌀은 조선시대 진상미로 올려졌다는 명성이 전해지고 있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헐! 회전목돈(木豚)’...돼지 타고 빙글빙글..”

    “헐! 회전목돈(木豚)’...돼지 타고 빙글빙글..”

    놀이공원에 가면 ’회전목마(木馬)’를 본다. 어린이들의 인기는 단연 최고다. 말을 탄다는 느낌은 언제나 즐거운 것 같다. 동화 속의 왕자나 공주가 된 듯한 착각에서 일까. 그런데 돼지를 탄다면...’회전목돈(木豚)’, 많이 어색하다. 일본 도쿄도 네리마구에 있는 토시마엔(豊島公園) 유원지에는 ‘회전 목마’ 속에 ‘목돈’이 있다. 하얀 돼지가 혀를 내밀고 말과 함께 돌고 있다. 재미있는 발상임에 틀림없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문각 남부 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10)한국사

    [박문각 남부 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10)한국사

    서울신문은 가장 많은 수험생이 응시하는 7·9급 국가직 및 지방직 공무원시험에 대비해 국어·영어·한국사 등 시험 필수과목과 행정학·행정법 등 선택과목에 대한 실전강좌를 마련했다. 공무원시험 전문학원인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들의 도움을 받아 매주 과목별 주요 문제와 해설을 싣는다. 한국사 과목은 전체 20문제 가운데 전근대사 12~14문제, 근현대사 6~8문제 정도의 비중으로 출제되지만, 최근에는 근현대사 비중이 더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시대적 흐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기초로 기출 문제 유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고려 사회의 모습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천민 출신인 이의민이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②외거 노비가 재산을 늘려, 그 처지가 양인과 유사해질 수 있었다. ③지방 향리의 자제가 과거(科擧)를 통해 귀족의 대열에 진입할 수 있었다. ④향·부곡·소의 백성도 일반 군현민과 동일한 수준의 조세·공납·역을 부담하였다. (해설)①이의민은 경주 천민 출신. ②외거 노비는 주인과 따로 살 수 있으며 재산을 소유할 수 있어 실제 양인과 차이가 없는 삶을 살았다. ③고려의 향리는 과거를 통해 중앙관리가 될 수 있었다. ④고려시대 향, 부곡(농업), 소(수공업) 거주민은 신분상 양인이다. 그러나 조세, 공납, 역의 의무가 일반 군현민들에 비해 훨씬 컸다.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었다. 원칙상 과거응시, 국학입학, 관리임용, 승려출가는 불가능하다. 향·부곡·소의 실제 행정은 향리가 맡았다. (정답)④ (문제)다음은 동학농민운동과 관련한 연표이다. (가)~(라)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동학창시-(가)-삼례집회-(나)-고부관아 습격-(다)-전주성 점령-(라)-우금치 전투 ①(가)-황토현 전투 ②(나)-청일 전쟁의 발발 ③(다)-남·북접군의 논산 집결 ④(라)-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해설)특정사건의 시간순서 흐름을 묻는 유형으로 동학농민운동은 시간순서를 묻는 문제에서 가장 빈번히 나오는 문제다. 동학 창시 이후 전봉준 체포까지 주요 사건을 흐름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동학 창시 1860년-삼례집회(교조신원운동) 1892년 11월-보은집회 1893년 3월-고부관아습격 1894년 1월-무장봉기 1894년 3월-고부 백산에서 4대강령 발표 1894년 3월 26일-황토현 전투 1894년 4월 7일-장성 황룡촌 전투 1894년 4월 23일-전주성 점령 1894년 4월 27일-전주 화약 체결 1894년 5월-조선정부 주도로 교정청 설치 1894년 6월 11일-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1894년 6월 21일-청일전쟁 발발 1894년 6월 23일-1차 갑오개혁 1894년 6월 25일-남·북접군대의 논산 집결 1894년 11월-공주 우금치 전투 대패 1894년 11월-전봉준 순창에서 체포·압송 1894년 12월 (정답)④ (문제)다음 건의를 받아들인 왕이 실시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임금이 백성을 다스릴 때 집집마다 가서 날마다 그들을 살펴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령을 나누어 파견하여, (현지에) 가서 백성의 이해(利害)를 살피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태조께서도 통일한 뒤에 외관(外官)을 두고자 하셨으나, 대개 (건국) 초창기였기 때문에 일이 번잡하여 미처 그럴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제 제가 살펴보건대, 지방 토호들이 늘 공무를 빙자하여 백성들을 침해하며 포악하게 굴어, 백성들이 명령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외관을 두시기 바랍니다. ①서경 천도를 추진하였다. ②5도 양계의 지방 제도를 확립하였다. ③지방 교육을 위해 경학박사를 파견하였다. ④유교 이념과는 별도로 연등회, 팔관회 행사를 장려하였다. (해설)사료제시형 문제로서 사료를 통해 특정시기를 파악한 후, 그 시기의 사실을 묻는 대표적인 유형으로 고려 태조, 광종, 성종이나 조선 태종, 세종, 성종, 영조, 정조에 대해 물을 때 이런 유형으로 출제가 많이 된다. 보기의 자료는 고려 성종 때 최승로의 시무 28조다. ①인종 때 묘청 등 서경파는 서경 천도 추진, 인종은 서경 천도에 호의적이었다. ②현종 때 5도 양계, 경기를 중심으로 지방제도 확립(1018년) ③성종 때 향교 최초 설치, 경학박사·의학박사 파견(987년) ④최승로는 연등회, 팔관회 폐지를 주장했고, 성종은 이를 수용했다. (정답)③
  • 가코공주 협박 40대男 체포 “한국인 남자에게 거역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가코공주 협박 40대男 체포 “한국인 남자에게 거역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가코공주 협박 가코공주 협박 40대男 체포 “한국인 남자에게 거역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손녀 가코(佳子·20) 공주를 협박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40대 남성이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고 교도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일본 경시청은 인터넷 사이트 ‘2채널’에 가코 공주를 협박하는 내용의 글을 올린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도쿄도 신주쿠(新宿)구에 사는 이케하라 도시유키(43·池原利運·무직) 씨를 체포했다. 용의자는 지난 16일 2채널에 “한국인의 손으로 한국인 남자에게 거역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라며 가코 공주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는 듯한 내용의 글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왕궁 측은 호위 담당 인력을 평시의 2∼3배로 늘리는 등 경계수위를 높였다. 20일 경찰에 자진출두한 이케하라 용의자는 “분위기를 띄우려고 그랬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사건의 배경에는 한국 인터넷 논객과 일본 네티즌 사이의 상식을 벗어난 ’사이버 막말 공방’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6일, 한국 인터넷 매체 ‘데일리저널(www.dailyjn.com)’에 “만약 기회가 오면, 우리도 일본 왕실의 가코 공주를 위안부로 보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 실리자 같은 날 일본 ‘2채널’이 들끓었고, 그 와중에 이케하라 용의자가 마치 한국인이 가코 공주를 위협하는 듯한 글을 올린 것이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한일 양국 네티즌들이 포털 사이트의 한글-일본어 번역 서비스 등을 활용해 상대국 매체의 보도를 실시간으로 검색한 뒤 왜곡된 정보를 유포하거나 몰상식한 폭언을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가 만연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왕자의 차녀인 가코 공주는 단아한 외모로 일본 사회에서 ‘아이돌 스타’ 수준의 인기를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일본 왕실 자녀 교육기관의 전통을 지닌 가쿠슈인(學習院) 대학을 그만두고 지난달 개신교 계열의 사립대인 국제기독교대(ICU)에 입학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가코공주에 “한국男 거역 못하게 만들어주마” 협박 용의자, 알고 보니 일본인

    가코공주에 “한국男 거역 못하게 만들어주마” 협박 용의자, 알고 보니 일본인

    가코공주에 “한국男 거역 못하게 만들어주마” 협박 용의자, 알고 보니 일본인 ‘가코공주’ 아키히토 일왕의 손녀 가코(20) 공주를 협박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40대 남성이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고 교도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일본 경시청은 인터넷 사이트 ‘2채널’에 가코 공주를 협박하는 내용의 글을 올린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도쿄도 신주쿠구에 사는 이케하라 도시유키(43·무직) 씨를 체포했다. 용의자는 지난 16일 2채널에 “한국인의 손으로 한국인 남자에게 거역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라며 가코 공주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는 듯한 내용의 글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왕궁 측은 호위 담당 인력을 평시의 2∼3배로 늘리는 등 경계수위를 높였다. 20일 경찰에 자진출두한 이케하라 용의자는 “분위기를 띄우려고 그랬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사건의 배경에는 한국 인터넷 논객과 일본 네티즌 사이의 상식을 벗어난 ‘사이버 막말 공방’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6일, 한국 한 인터넷매체에 “만약 기회가 오면, 우리도 일본 왕실의 가코 공주를 위안부로 보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 실리자 같은 날 일본 ‘2채널’이 들끓었고, 그 와중에 이케하라 용의자가 마치 한국인이 가코 공주를 위협하는 듯한 글을 올린 것이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한일 양국 네티즌들이 포털 사이트의 한글-일본어 번역 서비스 등을 활용해 상대국 매체의 보도를 실시간으로 검색한 뒤 왜곡된 정보를 유포하거나 몰상식한 폭언을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가 만연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키시노노미야 왕자의 차녀인 가코 공주는 단아한 외모로 일본 사회에서 ‘아이돌 스타’ 수준의 인기를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일본 왕실 자녀 교육기관의 전통을 지닌 가쿠슈인 대학을 그만두고 지난달 개신교 계열의 사립대인 국제기독교대(ICU)에 입학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백제 제석사 암막새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백제 제석사 암막새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지금까지도 동양 3국의 미술사학자는 용의 입에서 무엇이 나온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용의 실체에 조금도 다가갈 수 없었으며 용과 관련된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없었다. 필자의 체험으로는 사람들이 용의 실체를 모르므로 입에서 무엇이 나온다는 것을 반복해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았다. 그러니 그 ‘무엇’이 무엇인지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용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영기문, 즉 ‘만물을 생성시키는 영기문’이라고 앞서 말했다. 영기문이란 덩굴무늬 같지만 그것이 아니라 ‘생명이 생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형이상학적인 조형’임을 발견했다. 따라서 식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형이상학적 조형이다. 우주에 충만한 보이지 않는 영기를 시각화한 것인데 무슨 식물과 동물이 있겠는가. 원래 여러 단계지만 이 글에서는 마지막 단계만 보여드릴 수밖에 없다. 단계적 전개과정을 보고 싶으신 분은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홈페이지(www.kangwoobang.or.kr)로 들어가시면 여러 가지 영기문의 채색분석 과정을 볼 수 있다. 고구려는 추녀마루기와와 망와를 창안했으며 힘찬 조형의 와당이 많고, 백제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격조 높은 와당을 만들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백제는 가장 위대한 기와를 창안했다. 바로 암막새기와의 창조다. 용의 입에서 양쪽으로 영기문이 발산하는 조형이다. 그 중앙의 정면용이 통일신라시대에 수막새에 자리 잡으며 양쪽으로 영기문이 발산한다. 따라서 제석사 암막새 형식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새로이 암막새와 수막새의 결합에서 가장 쉽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법당이나 궁궐터에서 많이 보이는 수막새와 암막새는 고대 조형예술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동경(銅鏡)처럼 작은 원 안에 우주의 기운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와를 가장 많이 만든 동양 삼국은 연구자들이 아직도 형식의 분류와 제작기법에만 치중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르러 암막새·수막새 결합 익산 제석사(帝釋寺)에서는 백제시대 후기의 영기문 암막새와 연화문 수막새가 짝으로 출토되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전공자들은 수막새는 백제 것으로, 암막새는 통일신라 것으로 다루고 있다. 용과 영기문이 뚜렷한 암막새가 바로 백제의 위대한 창작품이다 ①. 암막새 중앙에 용의 정면상을 돋을새김하고 양쪽으로 제1, 제2, 제3영기싹 영기문이 뻗쳐나가고 있으나, 아직도 우리 학계에서는 모두 그릇된 용어들, 귀면과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이라 각각 부르고 있다. 영기문은 매우 복잡한 듯하지만, 간략화하면 결국 연이은 제1영기싹 영기문이다 ②-1. 최초로 창안한 암막새인데 극히 추상화시킨 정면용의 얼굴은 좌우 영기문의 전개가 완벽하고 절묘하다. 연꽃도 물을 상징하므로 영기문이 발산할 수 있는데, 후에 다루겠지만 귀면처럼 연꽃도 현실의 연꽃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조형들을 만날 때가 올 것이다. 제석사 암막새와 수막새를 채색분석하여 결합시키면 연꽃 양쪽으로 암막새의 영기문이 발산하는 형국이다 ②-2. 삼국시대의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같은 시대의 일본은 물론 중국에서도 암막새를 만들지 않았다. 본격적인 암막새를 세계에서 백제가 처음으로 창안했다는 논문을 필자가 쓴 이래, 지금은 ‘익산 왕궁리 전시관’에 가면 10년 만에 설명 카드에 백제라고 고쳐 쓰고는 있지만 ‘인동당초문’이란 용어는 그대로니 조형해석이 불가능하다. 백제가 암막새를 처음으로 창안했다는 것은 미술사학에서 큰 사건이다. 그런데 단지 용의 얼굴이라고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필자가 용의 속성으로 기와의 많은 진실을 밝힌 것은 기와 연구사의 전환점을 이루어 기와공예를 미술사학의 다른 장르만큼 승격시켰다고 생각한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암막새와 수막새가 아름다운 조형을 이루어 기와 예술의 절정기에 다다랐는데, 중국에서는 기와 예술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백제와 통일신라시대의 기와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여 현재 기와 연구자가 3000명에 이른다. 통일신라시대 와당에서는 수막새에 연꽃이나 정면 용 얼굴을 새기면서, ‘암막새에는 좌우대칭의 영기문을 새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용과 연꽃 본질 같아… 용의 조형적 확산 시작 통일신라 때의 공주 주미사(舟尾寺) 출토 기와는 뚜렷이 그런 원칙을 보여 주고 있어서, 수막새의 용이나 연꽃에서 양쪽으로 뻗어나가서 영기문이 중앙에서 서로 만나도록 했다 ③ ④. 그러니 우리나라는 암막새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창안했으며, 이에 따라 통일신라시대에 온갖 아름다운 조형으로 창작하되 영기문 전개 원리를 정확히 파악하여 만들었으니 얼마나 위대한 일을 백제의 장인들과 통일신라의 장인들은 해냈는가! 그러면 용의 입에서 나오는 연이은 제1영기싹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리고 용 대신 연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용과 연꽃의 본질이 같다는 뜻이며 바야흐로 용의 조형적 확산이 시작되고 있다.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가코공주 협박 40대男 체포 “분위기 띄우려고 그랬다” 미모 보니

    가코공주 협박 40대男 체포 “분위기 띄우려고 그랬다” 미모 보니

    가코공주 협박 가코공주 협박 40대男 체포 “분위기 띄우려고 그랬다” 미모 보니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손녀 가코(佳子·20) 공주를 협박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40대 남성이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고 교도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일본 경시청은 인터넷 사이트 ‘2채널’에 가코 공주를 협박하는 내용의 글을 올린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도쿄도 신주쿠(新宿)구에 사는 이케하라 도시유키(43·池原利運·무직) 씨를 체포했다. 용의자는 지난 16일 2채널에 “한국인의 손으로 한국인 남자에게 거역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라며 가코 공주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는 듯한 내용의 글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왕궁 측은 호위 담당 인력을 평시의 2∼3배로 늘리는 등 경계수위를 높였다. 20일 경찰에 자진출두한 이케하라 용의자는 “분위기를 띄우려고 그랬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사건의 배경에는 한국 인터넷 논객과 일본 네티즌 사이의 상식을 벗어난 ’사이버 막말 공방’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6일, 한국 인터넷 매체 ‘데일리저널(www.dailyjn.com)’에 “만약 기회가 오면, 우리도 일본 왕실의 가코 공주를 위안부로 보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 실리자 같은 날 일본 ‘2채널’이 들끓었고, 그 와중에 이케하라 용의자가 마치 한국인이 가코 공주를 위협하는 듯한 글을 올린 것이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한일 양국 네티즌들이 포털 사이트의 한글-일본어 번역 서비스 등을 활용해 상대국 매체의 보도를 실시간으로 검색한 뒤 왜곡된 정보를 유포하거나 몰상식한 폭언을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가 만연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왕자의 차녀인 가코 공주는 단아한 외모로 일본 사회에서 ‘아이돌 스타’ 수준의 인기를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일본 왕실 자녀 교육기관의 전통을 지닌 가쿠슈인(學習院) 대학을 그만두고 지난달 개신교 계열의 사립대인 국제기독교대(ICU)에 입학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별 없이 혼내주는 선생님… 처음이었어요”

    “차별 없이 혼내주는 선생님… 처음이었어요”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담배를 피우든 결석을 하든 전혀 신경을 안 썼어요. 그런데 우리 선생님은 제가 10분만 지각을 해도 막 문자를 보내는 거예요. 겉은 쌀쌀맞은데 하나하나 챙겨주세요.”-성지고 3학년 1반 유희선(19·가명)양 “우리 아이들은 관심을 받으면 무조건 반응을 보여요. 전날 밤 늦게라도 학교에 꼭 나오라는 문자를 보내면 꼭 나와요. 내가 담임 선생님 불쌍해서라도 나간다고 하는 애들이에요. 사실은 관심에 목이 마른 착한 아이들이죠.” - 성지고 3학년 1반 담임 김유경(36) 교사 14일 오후 서울 강서구 성지고 3학년 1반 교실. 수업은 끝났지만 여고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멋을 내느라 바짓단은 여느 학교 교복보다 짧고 화장도 진하지만 앳된 얼굴은 감출 수 없다. ‘강서의 끝판왕’, ‘방황하는 아이들의 종착역’으로 불리는 성지고 아이들이다. 이곳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과 배움의 시기를 놓친 중장년층을 위해 만들어진 대안학교다. 중학교 과정을 합한 성지중·고 전체 480여명 학생 중 절반가량이 청소년이다. 평소 모였다 하면 쉴 틈 없이 재잘대는 유양과 나지서(19·이하 가명), 최정은(19), 김유리(19), 박은지(19), 김희진(19)양의 이날 대화 주제는 코앞으로 다가온 ‘스승의 날’과 ‘선생님’. 이들은 자기들 이름이 가명으로 나가는 걸 전제로 서울신문 취재에 응했다. “인터넷에서 내 이름 검색되는 건 싫다”는 게 가명을 원하는 이유다. 나양이 이 학교로 온 것은 고1 때인 2013년 4월이었다. 이전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와의 사소한 말다툼이 폭력으로 번졌고, 가해자로 몰렸다. 선생님들이 모범생 말만 믿고 자기 얘기는 들어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몇 차례 흡연과 음주를 걸렸던 게 화근이었다. 등 떠밀리듯 전학을 왔다. “차별하는 선생님이 제일 싫어요. 성적이 같은 반 40명 중 30등 정도 했는데 제가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벌점을 주면서 공부 잘하는 애들이 피우다 걸리면 그냥 넘어갔어요. 한 선생님이 화장을 하고 다니는 저에게 ‘네가 그렇게 사니까 그 모양 그 꼴’이라고 하더라고요.” 나양이 달라진 건 2학년 때부터였다. 당시 담임 선생님을 만난 후 서서히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나양이 기억하는 담임 선생님은 생활기록부를 꼼꼼히 살펴보고 말을 건네는 사람, 처음으로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준 사람이었다. 이후 그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최양과 유양, 김희진 양도 이전 학교에서 말썽을 피워 1학년 때 전학을 왔다. “먼저 다니던 학교에서 선생님이 담배를 피웠다며 뺨을 때렸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피우지 않았거든요. 그냥 그럴 거라 생각하신거죠. 뒤늦게 사실을 알고도 사과를 안 하시더군요.”(최양) 이 학교로 와서 아이들이 느낀 건 선생님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결석하려고 마음먹으면 귀신처럼 휴대전화 문자를 날리고, 잘못을 하면 혼내고 벌 주는, 그런 선생님들도 있다는 걸 알았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차별당하지 않았기에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었다. 지난 봄 소풍 때 아이들은 담임교사에게 초콜릿을 받았다. 겉은 쌀쌀맞지만, 속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이들은 느낄 수 있었다. 3학년 1반 아이들이 김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래서 붙여준 별명이 일본식 조어 ‘츤데레’다. 쌀쌀맞게 굴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이란 뜻이다.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어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훗날 아이들이 고3 시절을 돌이켜 봤을 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던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제자들의 별명도 하나하나 지었다. 나양은 ‘공주병1’, 최양은 ‘공주병2’. 김유리 양은 ‘수녀님’, 박양은 ‘맏며느리’, 유양은 ‘둘째 아이’, 김희진 양은 ‘천상여자’다. 김 교사와 아이들의 애틋한 정이 담겨 있다. “저도 알아요. 제가 다정다감한 스타일이 아니란 걸. 대놓고 챙겨주는 편도 아니고. 그런데도 저한테 속사정을 다 털어놓는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제가 기쁘고 고마운 마음이지요.”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사진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