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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각료 신사참배 반역사 행위”/여야의원 17명 공동성명 전달

    여야의원 17명은 16일 하시모토 일본총리에 이어 일본각료 6명과 국회의원 82명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과 관련,강력히 항의하는 공동성명서를 내고 이를 일본대사관측에 우편으로 보냈다. 이들은 『일본 집권자들의 참배를 보며 일본 권력층의 퇴영적이고 역사의 교훈을 도외시하는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이는 반역사적인 행위로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우리정부가 일본정부에 엄중히 항의할 것을 촉구했다. 참여의원들은 신한국당 서석재 손학규 김문수 홍준표,국민회의 김근태 임채정 이상수 이길재 방용석 박상규 장영달 이성재 조성준,자민련 정우택,민주당 장을병 김홍신,무소속 홍사덕 의원 등이다.
  • 일 군국주의 부활하는가(사설)

    패전 51주년이 되는 15일,일본 도쿄는 사뭇 추모와 경배의 분위기였다고 한다.6명의 현직각료와 1백83명의 현역의원이 대거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을 뿐 아니라 야스쿠니신문(신문) 입구에는 불타는 전투기에 몸을 싣고 미군 함정을 향해 돌진하는 가미카제특공대의 모습등 섬찍한 전쟁기념화전이 열리고 있었다.또 군국일본군의 제복에 대형 일장기를 앞세운 2차대전 참전병사의 추모행사도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그러나 그 규모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데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86년이래 중단된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지난달 29일 재개된 데다 전후 한때 금기시돼오던 일본 각료의 신사참배가 이제 공식화돼가고 있다. 『일본사람이 일본의 가미사마(신)를 참배하는 데 무엇이 잘못이냐』고 항변하는 일본인이 있으나 2차대전의 A급전범이 추모의 대상이 된다면 그 전범으로부터 참략을 받고 수없이 죽어간 피해국민은 어떻게 되는가.『태평양전쟁이 백인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위대한 전쟁이었다』면 백인 아닌일본인의 침략을 받은 다른 아시아인은 또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도쿄의 「8·15」분위기가 일본의 모든 것이라고는 물론 생각지 않는다.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가 최근 조사한 것을 보면 일본국민의 74%는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정책이 건전한 시민의 상식에서가 아니라 소수 강경론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는 사실에 있다.도조(동조)의 군국주의 하에서도 이를 비판하던 세력이 일본내에 없었던 게 아니다. 일본인의 마음속에 대국의식이 확대되는 추세에 있고 이것이 일본의 경제력과 결부돼 어떤 결과를 빚을지에 대해 우리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세계는 일본의 보수화 내지 군국화에 항상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 광복 51돌과 한일관계(사설)

    광복 51주년과 한·일국교수립 31주년을 맞는 올해 한·일양국은 2002년 월드컵을 공동유치함으로써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 구축의 큰 발판을 마련했다.앞으로 양국이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진지하게 공동노력해 나간다면 양국간에 켜켜이 쌓인 반감과 편견을 털어버리고 국민적 화해를 통해 진정한 선린의 신시대를 열수 있을 것이다. 한·일양국은 지난 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냉전체제하의 국제질서 속에서 꾸준히 상호협력관계를 다져왔다.특히 북한 핵문제가 국제적 현안으로 등장한 이후 양국이 미국과 함께 3각공조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는 것은 매우 특별한 협력관계로 평가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불행한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착실히 가꿔 나가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속으로 일본을 안심할 수 있는 이웃으로 신뢰하기엔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걸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의 일만 상기해보자.하시모토(교본용태낭)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정국신사)참배는 우리에게일본 군국주의 망령을 되살리도록 만들었다.재일교포를 잠재적 적으로 표현한 가지야마 관방장관의 극언은 어떤가.한국인을 속죄양으로 삼았던 70여년전 관동대학살의 망령을 떠올리게 했다. 한·일간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문제 해결의 큰 책임이 가해자인 일본쪽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그럼에도 과거의 침략을 합리화하거나 피해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망언소동이 빈발하고 있다는 건 일본 지도층의 잘못된 역사인식과 그 속에 감춰져 있는 팽창주의의 반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일본이 우리의 참된 이웃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지도층의 올바른 역사인식과 선린관의 확립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을 것이다.
  • 일 민족주의 부활을 경계한다(박화진 칼럼)

    『근대 일본사의 일관된 목표는 일본민족의 우월의식을 바탕으로한 아시아 제패였다.도쿠가와 막부 말기에는 「아시아 연대」로,메이지 시대에는 「대아시아주의」로,그리고 쇼와 시대엔 「동아연맹­대동아 공영권」이란 모습으로 나타났다.이름만 다를뿐 그것은 일본이 지배하는 아시아 건설이었고 일본의 번영을 위한 아시아의 희생을 의미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러한 목표의 추구가 결국 2차대전으로 이어졌고 수많은 아시아인과 일본인의 희생을 가져오는 좌절의 결과를 낳았다』 일본 근대정치사를 연구하고 있는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의 「일본의 국가주의」란 저서에서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다시 8월이고 우리에게는 광복절이지만 일본에게는 패전기념일인 51번째의 「8·15」를 맞으면서 점점더 공공연해지고 노골화되고 있는 일본민족주의 부활을 상징하는 총리·각료 및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정국)신사 참배및 종군위안부 대응,극우파의 독도영유주장 한국대사관 자동차테러 그리고 계속되는 각종 망언소동 등을 보면서 다시 한번 되새기고 음미하게 되는의미심장한 지적이 아닐수 없다. 야스쿠니(정국)신사는 무엇이며 우리와 중국등 아시아 이웃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총리를 비롯한 일부 각료·정치인들은 해마다 기어이 그곳을 참배하려드는 것인가.야스쿠니신사는 도쿄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2백50여만명의 일본전몰자 위패가 안치된 말하자면 일본국립묘지와 같은 곳이다.메이지 유신 이듬해인 1869년 「초혼사」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으며 야스쿠니신사로 개명된 것은 그 10년 뒤로 「국사로 죽은자」를 이곳에 합사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일본총리및 각료들의 참배가 아닌가.그런데도 해마다 이웃나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고 문제가 되는것은 그것이 갖는 상징적 의미와 배후에 숨겨진 불순한 의도 때문이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도조 히데키(동조영기)를 비롯 군국일본을 주도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패전후 연합군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단죄당한 7명의 A급전범 위패도 지난 78년부터 합사되어 있다.현직총리나 각료가이곳을 참배한다는 것은 곧 군국일본의 침략전쟁을 공인하고 그 주모자들을 추도·추앙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독일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히틀러와 나치스를 공인하고 추모·추앙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특히 48년 처형 당하기전 45년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던 도조는 군국주의 일본이 범한 과오와 지은 죄과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사죄나 반성도 없이 다음과같은 독기어린 유서를 남긴 인물이다.『일본은 힘이 모자라 졌을 뿐이다.나는 이 사실을 인정한다.하지만 영미국인 당신들은 원자탄으로 죄없는 무수한 비전투원을 죽였다.나는 이 사실을 고발하지 않을수 없다.일본국민은 힘이 모자라 졌지만 조국은 불멸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일본은 앞으로 다시 일어날 것이다』 아시아를 위한다는 구실로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중국을 침략했는가 하면 그를 통해 확립한 아시아패권을 지키기위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에 참을수 없는 재난과 희생을 강요한 일제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너무도 당당하고 오만한 자세가 아닌가.그러한 그의 78년야스쿠니신사 합사는 「사실상의 사면」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총리와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곧 그들 전범과 그들의 생각,그들이 이끈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참배요 공인이며 「공식사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일본총리와 각료의 끈질긴 야스쿠니신사 참배노력은 입만 열면 사죄를 하고 곧바로 망언으로 그것을 뒤집는 오늘의 일본도 결국은 지난날의 군국주의·제국주의를 내심으로는 결코 잘못된 과오로 생각지 않고 있으며 도조가 지적한 것처럼 힘이 모자랐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행동의 증거라 할수 있다.과거를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든지 다시 그러한 행동을 되풀이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모든 행동이나 정황증거로 미루어 일본은 정치·군사대국화와 새로운 아시아지배의 패권추구를 지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그것은 이제 어느 누구도 어쩔수없는 방향으로 보인다.구미의 장벽에 막혀 탈구입아로 돌아선 일본은 다시한번 아시아를 기반으로 51년전의 좌절을 설욕해보려 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갖게한다.이미 중국과의 아시아 패권경쟁은 시작된 조짐이다.우리에게도 냉전시대의 자유우방은 아닌 느낌을 주고있다.일본민족주의에 희생당한 구한말의 비극을 되풀이않고 우리와 아시아의 21세기 평화와 번영을 지킬수 있기 위해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오로지 정확한 일본파악과 부국강병의 빈틈없는 자강노력임을 명심해야 할것이다.총리·각료 등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최근 일본이 보이고있는 변화는 그것을 일깨우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 일 총리 「평화헌법」을 「일본국헌법」으로 발언

    ◎2차대전 침략행위 간접 부인/히로시마 피폭 51돌 연설서 【도쿄 연합】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가 6일 히로시마(광조) 피폭 51주년 행사 인사말에서 당초 원고에 쓰여있던 「평화헌법」이라는말 대신 「일본국헌법」으로 고쳐 읽어 일부 피폭자단체로부터 평화를 염원하는 정신이 희박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산케이(산경)신문이 7일 보도했다. 일본 우익세력 사이에서는 「평화헌법」이라는 표현이 2차대전을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사고와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신문은 하시모토 총리가 일본유족회 회장을 역임한 점을 고려할 때 이같은 「평화헌법」이라는 표현을 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하시모토 총리의 처사는 최근의 야스쿠니(정국)신사 참배 강행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보수 우익적 색채를 다시 한번 발휘한 것으로 풀이된다.
  • 한·일 13일 EEZ회담/오늘 어업협정 개정 실무자회의

    【도쿄 AFP 연합】 한국과 일본은 오는 13일 도쿄에서 양국의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경계획정에 관한 첫 회담을 갖는다고 공동통신이 7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일본 외무부 관리의 말을 인용,이번 회담이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일본총리간의 지난 6월 제주도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양측이 유엔해양법에 따른 경계획정의 기본입장을 설명하게 될 것이라고 이 통신은 덧붙였다. ◎불법어로 단속 논의 한국과 일본은 8일 외무부에서 2차 어업실무자회의를 열고 불법어로에 대한 단속방식과,양국간 공동어로수역에서의 총허용어획량(TAC)등 65년 체결된 양국간 어업협정의 개정방향에 대해 협의한다.
  • 일 각료들도 신사참배/통산상 등 5명 15일에

    【도쿄=강석진 특파원】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일본총리의 야스쿠니(정국)신사 참배에 이어 현직각료 5명이 오는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요미우리(독매)신문이 31일 보도했다. 기자회견등을 통해 참배의사를 밝힌 각료는 쓰카하라 순페이(총원준평) 통산상,우스이 히데오(구정일출남) 방위청장관,나카가와 히데나오(중천수직) 과학기술청장관,가메이 요시유키(귀정선지) 운수상등 5명으로 전원 자민당 소속이다. 이들중 나카가와 과학기술청장관을 제외한 4명은 개인 또는 비공인 입장에서 참배하겠다고 밝혔다.
  • 하시모토와 군국일본 망령(사설)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정국신사) 참배는 우리에게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도록 만들었다.일본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건설적 협력관계를 지향하려는 우리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기도 하다.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한국과 같은 나라에 있어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와 팽창주의의 상징일 따름이다.거기엔 청일·노일전쟁·만주사변의 전몰자로부터 태평양전쟁의 A급전범으로 처형된 도조 에이키(동조영기)에 이르기까지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의 위패가 안치돼 있지 않은가.그런 신사를 참배한다는 건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또한 피침국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측면을 헤아려,하시모토 총리는 참배를 자제했어야 마땅하다.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지난 85년 나카소네(중증근강홍) 당시 총리가 처음 강행했다가 국내외의 심한 반발에 부딪쳐 중단했던 것이다.그걸 11년만에 재개한 의도가 무엇인지 하시모토총리에게 묻고 싶다.특히 전임자들과 비교할 때 역사인식의 후퇴를 보여준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우리는 하시모토 총리가 2년전 통산장관시절 『2차대전을 침략전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킨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시모토 총리는 이번 참배에 대해 자신의 59회 생일을 맞아 개인자격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우리에겐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으로 비쳐지고 있다.방명록에 「내각총리대신」이라고 기입한 것이나 오는 10월 다시 참배할 계획이라는 발언은 그동안 금기시되던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서서히 공식화하려는 기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본내 상황을 보더라도 하시모토의 참배는 우발적인 것으로 간주하기가 어려워 착잡하다.특히 일본의 정치대국 추구와 더불어 목청이 높아지고 있는 독도및 첨각열도 영유권주장 등 팽창주의기류와 무관치 않은 것 같아 우리로 하여금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다.
  • 일 총리 “10월 또 신사참배”

    【도쿄=강석진 특파원】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는 오는 10월16일에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고 산케이신문이 30일 보도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29일 야스쿠니신사 참배 배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이 내 생일이었기 때문』이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사촌의 전사통지가 온 날(10월16일)에도 참배하고 싶다』고 말했다.
  • 일 총리의 신사 참배/강석진 도쿄 특파원(오늘의 눈)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가 29일 야스쿠니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일본유족회의 회장과 「모두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회장을 지낸 하시모토 총리가 총리재임중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주변국의 우려였다.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일본의 총리가 재임중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85년 8월15일 참배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이후 처음이다.85년 국내외의 반발은 매우 컸었다.때문에 다음해부터는 총리의 공식참배는 줄곧 억제돼 왔다.하시모토는 이러한 국내외의 양해 사항을 일거에 무시해 버렸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주변국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 명료하다.2차대전의 전범들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그곳에는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희생된 병사,청일전쟁,러일전쟁을 거쳐 2차대전에 이르기까지 희생된 일본인들이 모셔져 있다.일본인들중에는 이들이 근대국가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고귀한 희생을 치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전범들이다.전범들을 희생자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전범은 군국주의와 인간을 재료나 도구로 생각하는 비인도주의의 화신이었다.따라서 전범들을 떠받드는 야스쿠니신사는 가해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잘못된 부분을 상징한다. 하시모토는 참배후 무슨 신분으로 갔느냐,사적 참배냐 공적 참배냐 등등의 질문에 대해 「시시한 질문」이라고 일축하면서 「내각총리대신」 자격임을 분명히 했다.사적 참배와 공적 참배를 가르는 기준으로 거론되는 「관용차를 탔느냐,개인차를 탔느냐」,「무슨 돈으로 참배금을 냈느냐」 등등에 대해 『경호상 관용차를 탔지만 참배금은 내지 않았다』고 답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사소한 형식의 질문은 시시하다.그가 총리의 자격으로 참배했다는 것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다.그의 말에는 주변국들의 우려에는 괘념치 않고 가슴을 쭉 내밀며 「과거따위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자신감이 배어있는 듯하다.사회의 총보수화,군사적 역할 강화 책동,의혹을 받고 있는 핵물질 축적,보수우익단체들의 발호 등 일본에대한 불신감이 거둬지지 않는 가운데 하시모토는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 일 총리,야스쿠니신사 참배/총리취임후 처음

    ◎주변국 반발·비난 예상 【도쿄=강석진 특파원】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 총리는 29일 태평양 침략전쟁등의 전몰자 위패가 안치돼 있는 야스쿠니(정국)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이날 상오 야스쿠니신사 인근의 과학기술관에서 개최된 한 기념식전에 참석한 뒤 귀로에 야스쿠니신사에 들러 「내각총리대신」이라고 기입한 후 참배했다. 총리 취임후 처음인 이날의 전격 참배는 한국·중국 등 아시아 전쟁피해 국가들의 시선을 의식,패전 기념일인 오는 8월 15일을 피해 이루어진 것이나 일본유족회 회장을 역임했던 하시모토 총리의 역사관등을 둘러싸고 피해국들의 반발과 비난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하시모토 총리의 참배강행은 매년 되풀이돼 온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를 앞두고 자민당정권이 주도하고 있는 현 연립정권내에도 적잖은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총리가 재직중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지난 85년 8월15일 국내외의 강력한 비난과 반발을 무릅쓰고 공식 참배를 강행한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전총리 이후 처음이다. ◎정부,일 총리 비난 정부는 29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일본이 인근 국가들과의 진정한 선린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피해를 입었던 국가들의 감정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한국 비난 논평 신한국당 김충근 부대변인은 29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행위와 관련,성명을 내고 『진솔하게 반성하고 참배저의를 설명하라』고 촉구했다.
  • 김 대통령에 위로전문/하시모토 일 총리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총리는 29일 하오 집중호우로 인한 경기·강원도의 수해와 관련,김영삼 대통령 앞으로 위로전문을 보내왔다고 외무부가 이날 밝혔다.
  • 「냉전이후 일의 신아시아정책」(해외논단)

    ◎중 방백화·장전명 교수 공동집필/“일 안보역할 확대땐 주변국과 충돌”/아시아서 독자적 정치력 발휘 한·중·러 등이 반대/주도권 추구보다 주변국과 평등관계 노력해야 지난 4월 발표된 미·일 신안보선언에 따라 일본의 안보역할이 확대되면 아시아국가들과 적지않은 충돌을 야기할 것이라고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에서 펴내는 「현대국제관계」7월호에 개제된 「냉전이후 일본의 신아시아정책」이란 제목의 논문이 지적했다.절강성 공산당학교 방백화,절강대 장전명 두 교수가 공동 집필한 이 기고문을 요약,소개한다. 냉전종식후 일본의 아시아 정책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나.지난4월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일본총리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도쿄서 발표한 「미·일 안보공동선언」은 일본이 새로운 아시아정책을 수립했음을 의미한다. 이 정책의 골격은 일본이 아시아문제와 관련해 단독행동을 자제하고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공동 대처한다는 것이다.냉전이후 미국경제가 내리막을 걷고있는데 비해 일본경제는 계속 발전돼 왔다.가이후(해부)총리정부 출범직후 일본외무성은 『경제력및 기술역량을 바탕으로 국제질서의 주요한 책임담당자가 돼야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새 국제질서 확립을 목적으로한 국제 협력에 참여해야 한다』는 외교기본방침을 확정했다.일본이 과거 미국의 세계전략 보조차원의 문화·경제협력을 해온 차원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정치적 역할을 발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91년5월 동남아방문때 가이후는 미국의 「인권·민주 중시정책」에 발맞추어 일본도 『아시아의 국가건설및 민주운동지원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미야자와(궁택)내각이 들어선뒤 이같은 아시아 중시정책은 행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미야자와는 『아시아·태평양을 중심으로 국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일본은 이후 아시아의 주도적 지위획득을 위해 노력해 왔다. 냉전이후 일본의 아시아중시경향의 배경에는 두가지 요인이 있다.하나는 국제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일본 내부 요구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때문이다.냉전이후 일본의 역할강화를 계속 강조하던 미국은 94년 가을,일본이 새로운 안보영역에 책임져야한다는 입장을 정리했으며 이는 95년 「동아시아 안전전략」보고의 기본 원칙이 됐다.미국의 정책변화에 일본은 긍정 수용하며 신속 대처했다.그에따라 일본은 미·일 신안전보장조약이 일본 국방뿐아니라 전세계의 안정유지에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했다.미·일 안전보장조약이 아시아·태평양 전체지역을 포함한다고 밝히고 나섰다.95년11월 일본정부는 「방위계획 대강」의 임시국회통과와 관련,『미·일 안보체제는 일본의 안전뿐아니라 일본주변의 안정유지에 필요하다』고 공식 천명했다. 지난 4월 체결된 안보공동선언등 일련의 대미협정을 통해 완성된 일본의 아시아 정책 주제는 다음과 같다.미·일동맹관계의 전제아래 미국의 대아시아 영향력을 빌려 일부 국가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일부 국가의 일본에 대한 위협가능성 및 적대적 발전가능성을 견제한다는 것이다.최종적으론 아시아의 맹주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로 정리된다. 일본은 이러한 외교정책 조정을 통해 아시아에서의 패권적 지위를 가진 미국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미국과 함께 아시아의 경제성장이 가져다주는 기회를 분점·향유,유럽공동체 국가들과의 경쟁에 공동대처하겠다는 의도도 같고 있다.일본은 이를 통해 일본이 아시아에서 패권을 추구하는 것을 걱정하는 주변국가의 우려를 불식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향후 한동안 국방·외교력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일본으로선 미국의 역량을 자국의 종합국력과 외교력으로 이용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일본의 정책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정치대국을 꿈꾸는 일본은 아시아의 주도적 위치를 추구중이고 아시아및 전세계에서 패권 유지를 노력하는 미국의 세계 전략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이런 모순은 당장 표면화되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갈등 악화 가능성이 높다.아시아시장에 대한 보완적인 입장도 시간이 가면 경쟁적 측면이 강화될 것이다. 문화적 측면에서 「문화민족주의」와 「일본민족의 우월성」,「순혈통」을 강조하는 민족감정및 사상은 미국의 정치·문화영향등 외래압력에 대한 대항의식을 고조시킬 것이다.서방문화 중심에서 탈피,일본문화를 강조하고 세계문명창조에 역할을 높여야한다는 「일본문화론」의 사조가 시간의 흐름에따라 미·일동맹에 충격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적으로 보면 미·일동맹은 주변국들의 견제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아시아에서 영향력강화를 시도하는 러시아는 일본의 안보역할강화에 반대할 것이다.지난67년 결성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역시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중국 역시 마찬가지이다.한국·북한·인도 등도 일본의 신아시아정책에 중장기적인 제약요소가 될것이다. 일본은 이같은 정황을 고려,주도권 추구가 아닌 평등관계의 발전에 노력해야 할것이다.평화및 평등관계에 기초하고 아시아의 역량과 협조관계를 맺을때 일본은 미국의 외교적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아시아 및 세계평화에 적극적인 작용을 할 수 있게 될것이다.〈정리=이석우 북경 특파원〉
  • “4자회담 성사 노력”/G7 미·일 정상회담

    【리옹=박정현 특파원】 서방 선진7개국(G7) 정상회담에 참석중인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총리는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해 한·미 양국이 제의한 4자회담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 나간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클린턴 대통령과 하시모토 총리는 지난27일 G7회담이 열리기전 30여분간 개별회담을 가졌으며 이자리에서 하시모토총리는 김영삼대통령과의 제주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으며 두정상은 4자회담의 성사를 위해 계속 노력해나가기로 합의했다고 이시가와 가오루 일본정부대표단 대변인인 전했다.
  • 숙소주변 철통 경계…일반인 전면통제/불 리옹 G­7회담 이모저모

    ◎각국 정상 테러방지책 논의하며 클린턴 위로/대표단·취재진 4천명 몰려 「호텔 구하기 전쟁」 ○…프랑스에서 네번째로 열리는 서방 선진7개국(G­7) 정상회담을 맞아 개최지인 리옹시는 삼엄한 경비속에 시내 곳곳에 7개국 국기가 내걸리는 등 축제 분위기. 미대표단이 묵고있는 소피텔호텔과 일본대표단이 숙소로 정한 홀리데이 인 등 시내 주요 호텔 주위에는 대규모 경찰력이 투입돼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으며 회의장인 팔레 데 콩그레 주변지역은 일반인의 교통을 완전 차단. ○…선진서방7개국(G7) 정상들은 27일 하오8시 리옹시 청사에서 실무만찬을 갖고 공식일정을 시작. 회담은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미군기지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중동평화및 테러대응방안을 핫이슈로 다룰 전망. ○…정상들은 실무만찬에서 『세계평화를 위해 테러행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위로. 정상들은 또 중동평화구축방안과 테러방지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 만찬에 앞서 G7의장인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하오 도청사에서 클린턴 대통령,하시모토 류타로 일본총리,장 크레티앙 캐나다총리와 잇따라 개별회담을 갖고 상호 관심사를 협의. ○…이날 헬무트 콜 독일총리등 각국 정상들이 속속 도착했으며 대통령 선거 때문에 불참한 옐친 러시아대통령을 대신해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총리가 28일 상오 가장 늦게 도착,G8로 합류. ○…회담 개최국인 프랑스는 회담관련 예산을 예년에 비해 절반이하로 삭감하는 「구두쇠 예산」으로 회담을 개최.리옹 회담의 예산은 2천만달러(1백60억원)로 지난 82년 베르사이유회담의 4천만달러(3백20억원)의 절반 수준. 리옹시 의회는 최근 시가 부담하는 1백70만달러의 G7회담예산을 상정,사회당소속 의원들의 반대속에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한편 리옹에서 발간되는 한 지역신문은 G7회담의 비용이 1분당 9천2백80달러(7백42만여원),1초당 1백55달러(12만여원)라고 계산. ○…프랑스는 문화·예술의 국가답게 리옹시 곳곳에 각종 문화행사를 다채롭게 마련. 미국의 유명 재즈가수 레이 찰스는 이날 하오 시내 토니 갸르니에홀에서 독주회를 가졌는데 리옹시민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특히 회담이 끝나는 29일 티나 터너,폴 매카트니,엘튼 존 등 세계적인 초호화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콘서트도 열릴 예정. ○…대표단 2천여명,취재자 2천여명등 4천여명이 한꺼번에 몰린 리옹시내에는 숙박시설이 부족해 리옹교외 호텔방까지 동나는등 「호텔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기도. 미국측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숙소로 프랑스내에서는 고급호텔이 아닌 소피텔호텔을 사용하고 있으며 하시모토 총리는 홀리데이 인 호텔을 숙소로 이용.일본측은 하시모토 총리가 사용하는 방의 가구및 내부장식을 바꿔달라고 호텔측에 주문했으나 「콧대 높은」 프랑스 호텔측이 이를 거부,벽지만을 교체하는 선에서 합의했다고. ○…리옹시는 고대 로마제국의 식민지 수도로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제2의 도시. 시내를 관통하는 론강과 손강,뛰어난 요리와 포도주로 유명한 도시.파리에서 고속전철(TGV)로 2시간 거리에 있으며 금속세공·직물등으로 유명한 산업도시이기도 하다. ○…클린턴 미대통령은 오는 30일 사우디 아라비아 미군기지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라고 백악관이 27일 밝혔다.
  • 김 대통령,신한국당 당직자 청와대 조찬 대화내용(정가초점)

    ◎“국회문제는 당에서 맡아서 할 일”/김 대통령,과거 집착않고 국정 운영의지/월드컵 개최로 한·일 관계 협력계기 마련 26일 김영삼 대통령이 신한국당 주요 당직자들과 함께 한 조찬모임은 최근 정국과 맞물려 관심을 모았다.미로에서 헤매고 있는 개원국회의 탈출구를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섞인 궁금증 때문이었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신한국당 총재 보다는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더 강조했다.그는 『나 자신은 우리나라 위상이 높아져 일이 너무 많다』며 『당 문제는 전적으로 이홍구 대표위원이 맡아서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이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잘 운영하고 있다』고 칭찬했다.국회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적으로 당이 맡아서 해달라』고 못박았다.개원국회 파행 이후 취해온 자세에 변함이 없었다. 김대통령은 이말을 끝으로 제주 한­일정상회담·남북문제·월드컵문제 등으로 화제를 옮겼다.그 이면에는 두가지 뜻이 함축된 것으로 풀이된다.첫째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 지향적인 국정운영에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둘째 국회 파행사태를 둘러싸고 「3김씨」를 원인 제공자로 보는 시각을 차단하려는 뜻도 읽을 수 있다.당측에 힘을 실어주면서 스스로는 한발 물러서 있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야권 양김씨와 차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25일 이홍구 대표위원등 당직자들의 전방부대 방문에 관심을 표시하며 24일 자신의 전방방문 내용도 소개하고 『장병들 사기도 올려주고 늠름한 장병을 보니 자랑스럽더라』고 높이 평가했다. 김대통령은 『우리 장병 얘기를 들어보니 북한 병사가 임진강에서 고기를 많이 잡고 있다더라』며 『아마 식량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이어 『6·25는 영원히 잊지 못할 동족상잔의 치욕』이라고 지적하고 『우리 군은 강군이며 북한동향을 24시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며 안보태세의 만전을 강조했다.그러면서 『6·25세대가 줄어들어 안보개념이 엷어지고 있는 게 걱정』이라며 『정부와 당이 앞장서 안보의식을 강화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한­일정상회담과 관련,김대통령은 『과거 한­일관계는 역사문제에 얽매여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으나 월드컵을 계기로 양국 협력의 큰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이어 『하시모토 일본총리는 대단히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하시모토 총리는 26살에 중의원에 당선됐는데 초선의원 때 한국에서 나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 소개했다. 김대통령은 또 『하시모토 총리가 나보고 술이 세다고 했는데 사실은 마주앙 2∼3잔 밖에 안마셨다』며 『아마 정상회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보안상 일본 기자들에게 그렇게 한 얘기일 것』이라고 추측했다.월드컵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된다고 봤다가 공동개최하게 되니 충격을 받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김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에서 독도문제가 의제에 빠졌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독도는 우리 땅이고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데 (일본측에)물어보면 이상해지지 않느냐』고 일축했다.〈박대출 기자〉
  • 역사공동연구(외언내언)

    한국에 왔다가 독립기념관을 보고 난 일본 청소년들은 『일본 순경이 한국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는 모형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면서 놀란다.일본의 신세대들이 반세기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제시대에 우리 민족이 겪었던 참상에 대해 모르는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그러나 일제시대를 산 장년층,노년층까지 그렇다면 일본측의 역사교육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올해 60세인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가 23일 제주회견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언급한 내용은 그러한 단면을 읽게 해준다.그는 일제시대 한국민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준 창씨개명에 대해 처음 안것이 지난 65년 방한때라고 털어놓았다.패전 당시 국민학교 2학년이었지만 창씨개명에 관해 학교에서 들은 바가 없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무지는 그렇다 치고,한·일 관계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편견은 오히려 역사를 섣불리 아는 식자층(지자층)에서 더 심한 것같다.임진왜란과 한일합방을 일본의 고토회복이라고 보는 견해등이 대표적인 사례다.임진왜란은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과대망상증이 빚어낸 전쟁이었다.그는 중국은 물론 인도까지 평정하여 천황의 거처를 중국 북경으로 옮기고 자신은 영파에서 천하를 다스리겠다고 호언했다가 결국 한반도에서 꺾이고 말았다. 그럼에도 임진왜란을 침략으로 보지않고 6세기 임나일본부의 멸망으로 일본이 한반도에서 잃었던 땅을 수복하려는 것인양 합리화하는 일제시대 식민사관이 오늘날의 일본에서도 여전히 신봉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온다.임나일본부는 우리측 사학자들에 의해 허구의 역사로 부정되고 있지만 일본측은 고대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역사적 사실로 교과서에까지 수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일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려면 양국 국민이 갖고 있는 역사인식부터 바로잡혀야 한다.지난주말 제주회담에서 한·일정상간에 합의된 양국 공동 역사연구회가 그런 역사적 사명에 얼마나 기여하게 될지 궁금하다.〈김호준 논설위원실장〉
  • 한·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요지

    ◎“내국학생·직장인 등 교류 대폭확대” 김 대통령/G7회의때 “KEDO에 협력” 요청계획­하시모토/한반도 평화정착위해 일본과 긴밀 협력­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일본총리는 23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호텔 야외잔디밭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다음은 회견 모두발언과 일문일답 요지. ▲김영삼 대통령(모두발언)=하시모토 총리와 본인은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대회가 성공리에 개최돼 양국 국민간의 우정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하고 양국 정부도 긴밀한 연락체제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우리는 양국의 상호 이해증진을 위해서는 양국에 있어 상대국 및 양국관계에 관한 연구가 한층 활발하고 깊어지는 게 바람직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연구를 지원 장려하기 위해 양국의 민간 지식인에 의한 역사연구에 관한 회의를 조기에 구성하는 게 바람직하다는데 견해를 같이 했습니다.또 차세대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 교류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앞으로 학생·직장인등 청소년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실무협의기구설립을 검토키로 했습니다.두 정상은 21세기를 앞두고 양국간의 경제관계가 더욱 발전하는 게 중요하다는데 기본적 인식을 함께 하고 투자촉진,산업기술협력등 분야에서 공동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키로 했습니다. ▲하시모토 총리(모두발언)=유엔 해양법조약의 체결과 관련,지난번 ASEM에서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내용을 재확인하고 이에따라 영유권 문제와 분리해 배타적 경제수역 경계획정 및 어업협정교섭을 촉진함과 동시에 질서있는 조업을 확보하는등 교섭촉진을 위한 환경조성에도 노력해 나가기로 했습니다.국제정세에 대해서는 양국의 우호협력관계가 아시아·태평양지역 뿐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안정과 번영에 있어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했고 북한의 동향등 동북아정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한·미·일 3국간의 긴밀한 공조체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또 본인은 양측의 사정이 좋은 시기에 김대통령이 방일해 줄 것을 제안했고 김대통령은 이를 쾌히 승낙했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하시모토총리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하시모토 총리=창씨개명 등의 행위가 한국민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는지 상상도 못할 정도였습니다.총리취임이후 과거의 무게와 미래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했습니다.과거의 무게를 안고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미래의 꿈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종군위안부 문제 만큼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준 일은 없었습니다.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말씀을 드립니다. ­일왕 방한에 대한 김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김대통령=일왕의 방한은 이번 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이는 양국의 우호관계를 새롭게 확인하는 좋은 계기로서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양국민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이를 위해 양국민이 상호 노력하는 게 중요하고 그에 따라 빨라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정세에 대한 새 인식을 갖게 됐는지요. ▲하시모토 총리=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일·한·미 3국간 긴밀한제휴가 중요합니다.4자회담을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한일 양국이 공동노력할 생각입니다.그리고 G­7 정상회의에서는 KEDO에 대한 각국의 협력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일·북 관계개선 및 수교협상에 대한 입장을 말해주십시오. ▲김대통령=하시모토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4자회담에 대한 지지입장을 재확인했으며 그 실현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일본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한·미·일 3국 공조의 틀속에서 일본과 긴밀하게 협력을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일본정부도 우리와 공조하에서 대북문제를 풀어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서귀포=이목희·이도운 기자〉
  • 한·일 공동 민간기구로 출범/「역사연구회의」 운영 어떻게

    ◎대표 학자 선임… 자율적 회원 인선/양국 10명으로 출범… 연내 첫 회의 23일 한·일정상회담에서 구성키로 합의한 「한·일 양국의 민간지식인에 의한 역사연구에 관한 회의」는 지난해 11월 김영삼 대통령이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대체하는 기구라 할 수 있다. 역사공동연구위는 양국의 학자가 모여 역사를 공동연구한 뒤 그 결과를 양국정부가 교과서에 반영하도록 노력한다는 취지였다.그러나 이번에 합의한 회의는 직접 연구하는 모임이 아니라,민간단체의 연구를 지원하는 2차적인 성격을 갖는 모임이다. 정부당국자는 이에 대해 『한·일간에 놓여 있는 커다란 인식차를 극복하려는 현실에서 나온 합의』라고 설명했다.지난해 정상간의 합의이후 양국의 외교실무진은 연구위의 인선작업을 벌였는데,그 과정에서 한·일간에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한국에서는 수많은 학자가 외무부로 전화를 걸어 『내가 반드시 위원회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면 일본측에서는 외무부측의 요청을 받은 학자가 모두 『나는 적당치 않은 것 같다』며 참여를 거부했다고 한다.극우주의자를 비롯해,이같은 활동을 하는 데 부담을 주는 요건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양국은 각각 2∼3명정도의 대표적인 학자를 선임한 뒤,이들이 자율적으로 회원인선도 하고,역사연구를 위한 양국간 회의의 명칭과 운영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교과서에 반영을 제안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양국정부는 역사연구회의가 올해 안에 양국을 합쳐 10명의 인원으로 출범,첫 회의를 개최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서귀포=이도운 기자〉
  • “월드컵 성공 긴밀 협력” 합의/한·일 정상 제주회담

    ◎위안부 사과·반성… 「침략사」 언급 없어/하시모토/내국 「공동 역사연구회」 조기 구성키로 【서귀포=이목희·이도운 기자】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는 23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긴밀한 연락체제를 유지키로 합의했다. 김대통령과 하시모토 총리는 이날 조찬을 겸한 단독정상회담에 이어 양국 외무장관등이 배석한 가운데 확대정상회담를 갖고 두나라간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의 구축을 위해 학생,젊은 직장인을 포함한 청소년 교류를 가일층 확대키로 했다. 양국 정부는 실무진으로 청소년교류 협의기구를 설립해 다양한 정규프로그램에 의한 청소년 교류를 촉진,현재의 연간 4천5백명선의 교류인원을 2002년에는 1만명선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두 나라 정상은 또 양측 민간지식인 각 5명씩 10명으로 역사연구회의를 조기에 구성,역사공동연구를 추진키로 결정했다. 양국 정상은 대북문제에 있어 한·미·일 3국 공조를 재확인하고 북한이 4자회담 수용을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했다.또 하시모토 총리가 김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초청함에 따라 추후 구체사항을 외교경로를 통해 협의키로 했다. 이날 정상회담이 끝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하시모토총리는 『군위안부문제만큼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준 일이 없다』면서 『마음으로부터의 사과와 반성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의사를 공식표명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과거사문제에 대해 『창씨개명등과 같은 일이 한국민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는지를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면서 『우리는 과거의 무게를 안고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미래에 대한 꿈을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그러나 위안부문제,창씨개명등 과거사의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공식사과했으나 일본국군주의의 한국침략등 과거사 전반에 관한 구체적인 사과표명은 하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일왕의 방한 가능성」과 관련한 질문에 『일왕의 방한은 양국간 우호관계를 새롭게 확인하는 좋은 계기로 매우 중요하고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친선분위기 조성을 위한 양국민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빠르게 실현될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김대통령은 제주 정상회담이 끝난뒤 이날 하오 서울로 돌아왔으며 하시모토 총리도 이날 낮 1박2일간의 제주방문일정을 마치고 도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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