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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 호텔서 한국 아이돌 보겠다고 화재경보기 울려…투숙객 혼란

    런던 호텔서 한국 아이돌 보겠다고 화재경보기 울려…투숙객 혼란

    첫 월드 투어를 펼치고 있는 NCT 127이 영국에서의 단독 콘서트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가운데, 이들이 머물던 런던 호텔에서 한 극성팬이 화재경보기를 울려 투숙객들이 혼란에 빠지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SSE 아레나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연 NCT 127은 3시간 동안 총 23곡의 노래를 소화하며 폭발적 환호를 끌어냈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이날 공연 후 숙소로 돌아간 NCT 127을 보기 위해 한 극성팬이 호텔 화재경보기를 울리면서 투숙객들이 불편을 겪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팬은 방으로 들어간 NCT 멤버들을 밖으로 불러내 얼굴을 보기 위해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 갑작스러운 화재 경보에 놀란 호텔 투숙객들은 우왕좌왕하며 한동안 혼란스러워한 것으로 알려졌다.클로이라는 이름의 한 투숙객은 자신의 트위터에 “화재경보기가 울려 매우 놀랐다. 내가 머물던 층에는 특별히 대피 방송이 나오지 않아 불안했다. 가수를 보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질렀다니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고 밝혔다. 리안 조라는 이름의 투숙객 역시 화재경보 때문에 호텔 안에서 진행되던 결혼식도 한때 중단되는 등 불편을 겪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화재경보기가 울리자 놀란 아들이 발작을 일으켜 결혼식이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일로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한국 가수를 보기 위해 화재경보기까지 울렸다는 사실이 회자되면서 현지에서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NCT 127은 지난 2016년 SM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그룹 NCT의 서울 유닛으로, 그룹명 뒤 127이라는 숫자는 서울의 경도 127도에서 따왔다. NCT는 멤버 수 제한이 없는 확장형 아이돌 그룹으로, NCT 127 외에도 NCT U, NCT DREAM 등 다양한 유닛이 있다. 이 중 한국계 미국인과 일본인, 중국인 멤버들이 포함된 글로벌 그룹인 NCT 127은 지난 1월 서울을 시작으로 월드투어에 돌입했다. 북미와 남미는 물론 일본 등 총 20개 도시에서 29회 공연을 펼쳤으며, 6월 2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7월 7일 영국 런던을 거쳐 10일에는 프랑스 파리에서도 콘서트를 개최했다. 오는 20일에는 싱가포르로 향해 월드투어를 이어간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EPL 역대 亞 최고 선수, 박지성 맞죠?

    EPL 역대 亞 최고 선수, 박지성 맞죠?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사무국이 박지성(38)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14주년을 기념하는 팬투표 이벤트를 벌였다. EPL 사무국은 25일(이하 한국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역대 아시아 최고 선수가 누구인지 묻는 팬투표를 시작했다. 형식은 팬투표이지만 “박지성은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다”라고 내건 제목대로 주인공은 박지성이다. 사무국이 게재한 관련 기사 제목도 ‘2005년 오늘. 박지성이 맨유에 입단하다’이다. EPL 사무국은 박지성에 대해 “맨유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7시즌간 미드필더로 뛰면서 프리미어리그와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최초의 아시아인이다. 맨유와 퀸스파크레인저스에서 154경기를 뛰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맨유에서 모든 대회를 통틀어 27골을 터트렸는데 그중 3분의1을 아스널과 첼시를 상대로 넣었다”며 찬사를 보냈다. EPL 사무국이 게시한 팬투표 후보는 박지성을 비롯해 기성용(30·뉴캐슬 유나이티드), 손흥민(27·토트넘 홋스퍼), 일본 출신인 가가와 신지(30·베식타시)와 오카자키 신지(33·레스터 시티) 등 5명이다. 기성용에 대해선 통산 184경기(15골 9도움)를 뛰며 한국 선수로 프리미어리그 최다 출전 기록을 갖고 있다고 소개하며 “2019~20시즌은 프리미어리그에서 그의 성공적인 8번째 시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손흥민(130경기 출전, 42골 19도움)에 대해선 “프리미어리그의 아시아 선수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6년 9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고 최근 세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고 전했다. 가가와(38경기 출전, 6골 6도움)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한 첫 번째 일본인 선수이자 해트트릭을 기록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로, 오카자키(114경기 출전, 14골 4도움)는 프리미어리그의 두 번째 일본인 챔피언으로 소개했다. 이날 오후 10시 현재 팬투표 점유율은 손흥민이 50%, 박지성이 46%로 맞대결 양상을 보였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방탄소년단 팬 미팅 재입장용 팔찌 몰래 판 70대 남성 적발

    지난 15∼16일 부산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부산 팬 미팅 현장에서 재입장용 팔찌를 몰래 판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경찰청은 경범죄 처벌법 위반(암표 매매) 혐의로 A(71) 씨를 적발해 범칙금을 부과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16일 오후 5시쯤 부산 동래구 사직동 부산 아시아드 보조경기장 주변에서 방탄소년단 팬 미팅 공연장 재입장용 팔찌를 일본인 여성 관광객에게 15만원에 팔았다가 경찰에 단속됐다. A 씨는 행사 주최 측에 9만9000원짜리 입장권과 신분증을 보여주고 본인 확인을 받고 나서 재입장용 팔찌를 받은 뒤 일본인 여성 관광객에게 15만원을 받고 팔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일본인 여성 관광객은 재입장용 팔찌만 보여주고 팬 미팅 행사장에 들어가려다 입장권과 신분증이 없어 공연장에 들어가지는 못했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日, 위안부 문제에 무한책임…징용배상 판결 부정도 부적절”

    “日, 위안부 문제에 무한책임…징용배상 판결 부정도 부적절”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무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피해자들이 괜찮다고 할 때까지 항상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로 알려진 하토야마 유키오(72) 전 일본 총리는 1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일본은 전쟁으로 상처를 받은 한국과 중국 분들이 더는 사죄를 할 필요 없다고 말할 때까지 항상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일본에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었다”면서 “식민지 지배에서 가해자는 피해자 쪽에서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2015년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 적이 있다”면서 “일본에서는 왜 일본 총리가 한국에서 무릎을 꿇냐며 분노했는데, 저는 옳은 행동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1991년 야나이 지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 노역 배상 판결과 관련해서 일본이 부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최근 한국, 중국에 대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강경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베 총리는 방위력과 군사력을 강화해 일본이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라면서 “모든 문제는 대화를 통해 마지막까지 노력해야 한다. 군사력으로는 진정한 평화를 결코 쌓아 나갈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평화를 지키려면 자위대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주변국과 어떻게 우호적 관계를 형성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며 “위협을 줄이려면 상대에게 위협의 의도를 없애 주면 된다. 이것이 외교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자신의 저서 ‘탈대일본주의’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지론인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재차 주창하며 “일본 정부가 미국의 비호 아래 군사 대국화를 꿈꾸며 헌법으로 금지돼 있음에도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 나라가 돼 미국이 시키는 대로 전쟁에 협력하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썼다. 또 “경제 대국의 여세를 몰아 정치대국(그레이트 파워)으로 도약하겠다는 일본인의 희망은 허망한 꿈”이라면서 “팍스 아메리카나, 팍스 차이나 대신 팍스 아시아나”를 지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09년 제93대 일본 총리를 역임했다. 총리 시절 부인과 노모가 한류 팬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는 등 한국에 호의적인 일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총리 퇴임 후에도 꾸준히 한일 위안부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현재 동아시아공동체 연구소 이사장 및 국제아시아공동체학회 명예고문을 맡고 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아는형님’ 아이즈원, 멤버들 속이기 고도 심리전 ‘영리해’

    ‘아는형님’ 아이즈원, 멤버들 속이기 고도 심리전 ‘영리해’

    아이즈원이 ‘아는 형님’ 멤버들 속이기에 나선다. 4일 오후 방송되는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서는 전학생으로 출연한 아이즈원의 모습이 전파를 탄다. 최근 진행된 ‘아는 형님’ 녹화에서 형님들은 솔직하고 발랄한 아이즈원의 입담에 진땀을 흘렸다. 특히 ‘최연소 강호동 피해자’에 등극한 안유진이 서운함을 토로하자 강호동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해 웃음을 안겼다는 후문이다. 또 아이즈원은 각자 이름이 가려져 있는 명찰을 달고 등장, 형님들을 대상으로 열두 멤버들의 ‘이름 맞히기’ 테스트를 시작했다. 아이즈원 팬을 자처하는 김희철의 진두지휘 아래 아이즈원은 탁월한 연기력으로 형님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특히 아이즈원은 일본인 멤버를 찾을 때도, 부산 출신 멤버를 찾을 때도, 리더를 찾을 때도 끊임없이 서로 자신이 그 멤버라고 주장해 웃음을 자아냈다. 형님들은 의심스러운 멤버들에게 예리한 질문을 던졌고, 그때마다 아이즈원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또한 후반부에 밝혀진 한 멤버의 정체 때문에 모든 형님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전언이다. 한편, 아이즈원과 형님들이 펼친 고도의 심리전은 오늘 오후 9시 ‘아는 형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아이돌룸’ 트와이스 찾아온 아이즈원 “열렬한 팬”[공식]

    ‘아이돌룸’ 트와이스 찾아온 아이즈원 “열렬한 팬”[공식]

    트와이스를 위한 깜짝 손님으로 아이즈원이 등장한다. 30일 저녁 6시 30분에 방송되는 JTBC ‘아이돌룸’은 트와이스 특집 2탄으로 꾸며진다. 이날 방송에는 평소 트와이스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아이즈원의 외국인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 야부키 나코, 혼다 히토미가 특별히 찾아온다. 세 사람은 선배 트와이스에게 궁금한 점으로 “한국어를 잘하는 비법이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에 트와이스의 미나, 사나, 모모, 쯔위는 “한국에서 생활한 지 어느새 6~8년이 되어간다”고 밝히며 외국인 멤버로서 활동하며 생긴 다양한 팁과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그중 일본인 멤버 사나는 일본에서 활동할 당시 한국어로 통역을 받았다고 ‘웃픈’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또한 “해외 출국 전에 김치찌개를 챙겨 먹는다”며 완벽하게 한국화 된 입맛을 밝혀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반면,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한국인 멤버 지효와 채영은 “어릴 때부터 간혹 혼혈로 오해를 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트와이스와 아이즈원의 이야기는 30일 화요일 저녁 6시 30분에 방송되는 JTBC ‘아이돌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김재환 ‘불후의 명곡’ 400회 우승 “워너원 메인보컬의 위엄”[종합]

    김재환 ‘불후의 명곡’ 400회 우승 “워너원 메인보컬의 위엄”[종합]

    워너원 출신 김재환이 ‘불후의 명곡’ 400회 특집 우승을 거머쥐었다. 27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400회는 글로벌 특집 2탄으로 일본에서 사랑받는 한국 가요 특집이 이어졌다. 이날 방송에서는 가수 알리, 정동하, 거미, 김재환, NCT DREAM, JBJ 95가 우승에 도전했다. 김재환은 “워너원 할 때 재밌었다. 지금 혼자 나오니 뭔가 뻘쭘한 게 있는 것 같다”며 부담감을 드러냈지만 이어 “팬 분들을 위해 날려버리겠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첫 번째 주자는 거미였다. 거미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선곡했다. 거미의 R&B 감성이 담긴 무대에 MC들과 출연자들은 감탄을 더했다. 두번째 무대의 주인공은 JBJ95였다. 일본인 멤버 켄타는 “일본에서 무대하는 소감”을 묻자 “오히려 더 떨린다. 부담이 더 크다. 영광이기도 하고 그만큼 떨린다”며 긴장감을 보였다. 켄타는 “저희 어머니가 오시긴 했는데 펜타곤, 아이즈원의 팬이셨다. 그래서 저랑 인사만 하고 집으로 가셨다”고 말하며 웃음을 더했다. NCT DREAM은 ‘불후의 명곡이 중국에서도 인기인데 정말 영광스럽다“며 첫 출연 소감을 밝혔다. JBJ95는 동방신기의 ’주문‘을 선곡했고 ”동방신기 선배님들이 워낙 인기가 좋으셔서 부담되지만 열심히 하겠다. 꼭 1승 하고 싶다“며 포부를 전했다. 거미는 근황을 묻는 질문에 ”신혼의 단점은 둘다 너무 바빠서 자주 보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장점은 그래도 같이 살기에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히며 조정석을 향한 애정을 뽐냈다. 켄타는 ”영광스러운 무대였다. 고향에서 무대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첫 1승은 706표를 얻은 JBJ95에게로 돌아갔다. 세번째 무대는 가수 정동하의 차례였다. 정동하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OST인 ’처음부터 지금까지‘를 선곡했다.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드라마인만큼 더욱 관심이 쏠렸다. 정동하는 절제된 감성을 감미롭게 소화하며 색다른 무대를 선보였다. 이에 jbj95를 꺾고 723점으로 1승을 거뒀다. 다음 무대는 가수 김재환이 올랐다. 김재환은 신승훈의 ’I BELIEVE‘를 선곡했다. 김재환은 기타선율을 시작으로 감미로운 무대를 연출했다. 거미는 ”맑고 청아하면서 힘도 있다. 기타까지 노래하는 게 쉽지 않다“며 극찬했다. 김재환은 ”홀로서기하는 시기라 마음이 복잡한 것도 있는데 후회 없이 한 것 같아서 기분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결과는 741점으로 김재환의 승리였다. 이어 알리가 다음 타자로 무대에 올랐다. 5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알리는 ”저는 불후의 명곡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며 ”지금까지 가장 사랑받게 된 프로그램“이라며 애정을 보였다. 알리는 박효신의 ’눈의 꽃‘을 선곡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눈의 꽃‘을 재해석한 알리. 김재환의 무대를 꺾진 못했다. 김재환은 2연승을 거뒀다. 다음은 NCT DREAM의 무대였다. 이들은 보아의 ’NO.1‘을 선곡해 톡톡 튀는 무대를 선보이며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741점을 받은 김재환을 넘지는 못했다. 이로써 400회 특집 최종 우승의 영광은 김재환에게 돌아갔다. 한편 김재환은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최종 순위 4위를 차지했다. 프로젝트 그룹 워너원으로 데뷔해 메인 보컬로 활동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비극과 활극의 만남… 조선인 가슴에 저항정신 불 지르다

    비극과 활극의 만남… 조선인 가슴에 저항정신 불 지르다

    한국 사람이라면 나운규(1902~1937)라는 존재와 ‘아리랑’(1926)이라는 영화 제목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무성영화 시기를 대표하는, 아니 한국영화사 전체를 관통해서도 가장 무게 있는 영화인과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의 필름은 사라졌다. 우리 대부분은 처음 개봉한 지 90년도 훨씬 지난 이 영화를 보지 못했고, 그저 여러 매체를 통해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지 전해들었을 뿐이다. ‘아리랑’은 왜 훌륭한 영화인가.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원로 영화인들의 증언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신화화된 결과가 아닐까.‘아리랑’을 걸작으로 칭송하는 이유는 바로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아낸 민족 영화라는 평가 때문이다. 어쩌면 이 관점은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애초 나운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조선영화도 미국영화처럼 한번 재미있게 만들어보자는 목적이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더이상 활동사진에 신기해하는 초창기 관객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활극적 볼거리와 속도감에 열광하는 영화 팬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은 개봉하자마자 조선인 관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6·25 전쟁 시기까지 수십 차례 반복 상영되며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을 넘어 사회 현상이 되어버렸다. 과연 ‘아리랑’은 어떤 영화였을까.●일본 신파를 극복하다 먼저 1920년대 전반기 조선영화계를 살펴보자. 조선 극영화의 시작은 ‘월하의 맹서’(1923)를 만든 윤백남의 역할이었지만 이후 조선영화를 주도한 감독은 윤백남의 조감독을 맡았던 이경손(1905~1977)이었다. 그는 고대소설을 영화화한 ‘심청전’(1925)으로 감독 데뷔해 이광수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개척자’(1925)로 인정받았다. 이 시기 조선영화 제작은 초창기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춘향전’(1923), ‘장화홍련전’(1924), ‘운영전’(1925) 등 고대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즉 조선 사람이 조선 옷을 입고 활동사진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관객이 몰려들던 시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이경손은 일본영화를 모델로 삼아 상업적인 노선을 모색하는데 일본 신파 ‘곤지키야샤’(金色夜叉)를 번안한 ‘장한몽’(1926), 일본 시대극 영화를 참조한 ‘산채왕’(1926)이 그것이다. 두 영화는 당시 일본 신파소설을 번안하던 조중환과 이경손이 함께 설립한 계림영화협회가 제작했다. 이 시기 조선은 일본 문화의 강력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영화 역시 ‘나의 죄’(己が罪)가 원작인 ‘쌍옥루 전후편’(1925), ‘새장 속의 새’(籠の鳥)를 각색한 ‘농중조’(1926) 등 일본 신파의 조선적 번안이 대세였다. 이처럼 연애비극이나 가정비극을 다루는 신파 서사는 식민지 조선영화의 기본적 설정으로 안착하게 된다.나운규의 ‘아리랑’이 특별한 점은 일본 신파영화의 화법을 받아들인 시기에 등장한 영화였지만 그 영화들과는 다른 방향을 찾았다는 것이다. ‘아리랑’이 어떤 의도로 만든 영화인지는 나운규의 운명 전 해인 1936년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다. 바로 ‘조선영화감독 고심담 아리랑을 만들 때’(‘조선영화’ 제1집)라는 글이다. “그 당시에 조선에 오는 양화(洋畵)를 보면 수(數)로는 서부활극이 전성시대요 또 대작연발시대다. 그리피스의 ‘폭풍의 고아들’(1921)을 보던 관중은 참다 못하여 발을 굴렀고 더글러스의 ‘로빈 후드’(1922)는 조선 관객의 손바닥을 아프게 하였다.” 나운규가 미국영화의 “대작연발시대”를 강조한 것처럼, 당시 조선인 관객들은 화려한 볼거리와 물량 공세, 또 스케일 큰 액션 장면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했고, 이에 익숙해지면서 영화의 감식안도 높아져갔다. 관객들의 취향을 포착한 나운규는 ‘아리랑’을 만들기 직전 선배 감독 이경손에게 “화나는데 서양사람 흉내를 내서 한 작품 만들어봅시다”라고 말했고, 어떻게 하면 “하품 나는 조선영화”를 탈피할 수 있을까, 조선영화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아리랑’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서구영화의 창조적 수용 연출의 기회를 잡은 나운규는 할리우드 활극 스타일을 연출 방향으로 잡고, 어떻게 하면 서구식의 활극 장면을 경제적으로 연출할 것인지에 집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선 사람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스토리까지 고안해냈다. 대중적 화법인 신파 양식을 기반으로 비극과 활극을 직조한 동시에 조선의 식민지적 상황을 상징과 비유가 담긴 이야기로 녹여 민족적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가장 핵심은 ‘아리랑’이 나운규의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점이다. 당시 “전 조선영화를 통하여 가장 우수한 장면”(‘동아일보’ 1926년 10월 7일자)으로 기록된 사막 장면은 단연 영화의 압권이다. 한 나그네(나운규)가 여자(신일선)를 취하려는 악마 같은 상인을 살해한 장면은 주인공 영진(나운규)이 여동생 영희(신일선)를 겁탈하려는 지주의 하수인 기호를 환상 속에서 살해하는 것으로 정확히 반복된다. 광인의 내면세계를 일그러진 세트로 시각화해 보여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같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나운규는 할리우드 활극뿐만 아니라 유럽 예술영화 등 동시기 서구영화의 여러 요소를 포착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또 작품의 인물 구도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지주도 그 하수인도 조선인이라는 설정이지만 돈으로 민중을 괴롭히는 자본가 계급의 폭압적 행태를 당시 조선인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짐작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아리랑’은 민족영화가 되었고, 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으로 한국영화사의 신전에 올랐다.●아리랑의 실제 감독은 누구일까 ‘아리랑’ 개봉 당시 이 영화의 감독은 쓰모리 슈이치(한국 이름 김창선)라는 일본인으로 기록되었다. 이 영화의 실제 감독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 결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 시 재조선 일본인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조선영화인의 협업으로 구축되었던 조선영화 제작현장을 감안해야 한다. ‘아리랑’을 제작한 영화사는 일본인 흥행사 요도 도라조의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인데, 그의 조카 사위 쓰모리 슈이치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다. 현대 영화의 프로듀서 역할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조선키네마의 첫 번째 영화 ‘농중조’와 ‘아리랑’ 개봉 당시 감독 크레디트로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의 문헌들은 두 영화의 감독으로 각각 조선영화인 이규설과 나운규를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당시 제작 현장에서 일본인이 감독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조선인 관객들을 위한 각본을 쓰고, 무성영화이지만 동작 연기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던 배우들의 조선어 대사 연기를 지도한 것은 조선인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무성영화의 논리상 그들의 입에서 발성되어야 할 대사는 변사의 음성에서 들리게 된다). 다시 ‘아리랑’으로 돌아가면 쓰모리가 설령 크레디트상의 감독직을 맡았더라도 각본을 쓰고 실질적인 연출을 진행한 나운규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나운규는 계속해서 요도 도라조의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을 통해 ‘풍운아’(1926), ‘야서(들쥐)’(1927), ‘금붕어’(1927)라는 활극멜로드라마를 그의 이름으로 연출했다. 그리고 나운규프로덕션을 세워 ‘사랑을 찾아서’(1928) 등 자신의 감독 및 주연작을 이어 나간다. ●조선 무성영화 황금기 이끌다 마지막으로 ‘아리랑’이 이후 조선 무성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을 언급해야 한다. 먼저 지주와 소작민, 그 사이 희생양이 되는 젊은 여성이라는 계급구도에 기반한 서사와 활극이 더 선명하게 앞으로 나서는 스타일이 이후 조선영화의 상업적 기준이 된 점이다. 또 일제 치하의 식민지적 현실을 드러내고 저항의 관념을 싣는 수단, 즉 계급 운동으로서의 영화를 지향하는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진영의 영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카프 진영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소설가 심훈의 감독 데뷔작 ‘먼동이 틀 때’(1928)는 단연 ‘아리랑’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조선인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 첫 상업영화 시대 열다

    조선인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 첫 상업영화 시대 열다

    1920년대 전반, 드디어 조선 영화는 무성영화 시대의 막을 올렸다. 연쇄극 ‘의리적 구토’로 조선 영화의 첫발을 뗀 1919년부터 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 ‘아리랑’이 개봉한 1926년 이전의 시기, 조선 영화계는 어떤 영화들을 만들면서 무성영화 시대를 개척해 갔을까. 주목할 부분은 식민지와 제국 구도에서 조선인들만으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 아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국의 정책뿐 아니라 재조선 일본인의 자본과 끊임없이 협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물론 조선인 관객들을 위한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조선의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인 감독의 연출과 조선 사람을 연기하는 조선인 배우들의 연기였다. 이 지점이 조선의 무성영화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던 셈이다.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1923), 일본인 흥행사가 제작한 최초의 상업영화 ‘춘향전’(1923), 조선 영화인들의 손으로 제작된 ‘장화홍련전’(1924) 등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무성영화 제작 현장을 살펴보도록 한다.●조선인이 감독한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 1923년에 공개된 ‘월하의 맹서’는 온전한 극영화의 형식을 갖춘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영화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야외의 활극 장면만 영화로 표현했던 이전의 연쇄극과 달리,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모두 필름 촬영으로 소화한 극영화라는 점 그리고 각본, 감독, 출연 모두 조선인의 손으로 이뤄낸 점이다. 당시 언론인이자 연극인으로 활동했던 윤백남(1888~1954)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그가 이끌어 온 민중극단의 단원 이월화, 권일청, 문수일, 송해천 등이 출연했다. 신파극 무대에서 활약하던 이월화(1904~1933)는 이 영화를 통해 조선 영화 최초의 스타 여배우로 등극한다. 한편 영화 매체를 성립시키는 기술 파트까지 조선인이 해결하기는 힘들었는데, 촬영과 편집은 일본인 오타 히토시가 맡았다. 사실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개봉한 극영화가 아니라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제작한 계몽영화였다. 다시 말해 영화관용 상업영화가 아니라 당국의 선전영화였다. 1923년 4월 9일 경성호텔에서 처음 상영했고, 이후 순회영사로 각 지역에서 공개되었다. 당시 매일신보 기사는 ‘월하의 맹서’의 분량을 ‘전 2권’, ‘2천척의 긴 사진’으로 기록하는데, 이를 상영시간으로 환산해 보면 33분 정도에 해당한다. 중편 길이의 영화였던 것이다. ‘월하의 맹서’ 제작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의 무성영화는 자본과 기술의 제공, 연출과 배우의 역할이 분리되어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제작은 무엇보다 큰 자본이 필요한 작업이고 촬영, 현상 등의 근본적인 기술이 해결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인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본, 연출 그리고 출연 영역에서 조선 영화인들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렇게 조선 무성영화는 첫발을 뗐다.‘월하의 맹서’ 공개 이전에도, 일본인 영화제작사가 만든 ‘국경’(1923)이 상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나리키요 다케마쓰 등 재조선 일본인을 중심으로 한 극동영화구락부가 제작한 영화로, 촬영은 일본에서 온 나리키요 에이가 담당했다. 물론 출연은 박순일 등 조선인 배우들이 맡았다. 이 영화는 중국 국경 지대의 마적을 토벌하는 일본국경수비대의 활약을 묘사한 내용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1923년 1월 13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첫날, 조선인 학생들의 야유로 영화 상영이 중단되었고, 이후 다시 상영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조선공론’의 문예담당 기자 마쓰모토 데루카가 “아무리 영화가 형편없는 것일지라도 직접적인 야유를 보내 중지시키는 것은 심히 좋지 않은 일이다”고 기록한 것에서, 조선인 관객들의 과격한 반응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학생들 야유로 하루 만에 상영 중단된 ‘국경’ 이 영화의 상영이 하루 만에 중단된 사정을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할 수 없지만, 당시 조선인 관객들이 모욕감을 느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로 알려진다. 조심스러운 추정이지만, 조선인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마적들이 만주에서 활약하던 무장독립군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결론적으로 관객과 만나지 못한 ‘국경’은 상업영화로서 실패했지만, 조선인 관객들이 영화를 거부한 사건으로 영화사 기록에 남게 되었다. 조선 영화계가 본격적인 상업영화의 시대를 연 것은 일본인 흥행사 하야카와 마스타로가 설립한 동아문화협회의 ‘춘향전’(1923) 그리고 조선인 영화관 단성사가 영화제작을 위해 설립한 촬영부의 ‘장화홍련전’(1924)이 등장하면서이다. 하야카와는 1913년 경성의 일본인 거리에 고가네칸을 설립하며 조선 흥행계에 뛰어든 인물이다. 그는 조선부업공진회 개최에 맞춰 고전 소설 ‘춘향전’의 영화화를 추진하며, 하야카와 고슈라는 이름으로 직접 연출까지 나섰다. 영화는 전북 남원 현지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고, 조선인 관객들을 위해 당대 최고의 인기 변사 김조성이 이몽룡으로, 기생 한명옥이 춘향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동아문화협회의 간부였던 김조성이 배우의 역할로만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 자본주가 감독에 나선 작품이지만, 조선 고전의 각색과 연출 과정에서 조선인 관객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던 그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춘향전’은 조선부업공진회가 개최된 1923년 10월 5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해 조선인 관객들의 큰 관심을 받았고, 18일부터 전북 군산의 군산좌에서, 21일부터 공진회 내의 활동사진관에서 연이어 상영되었다. 이 작품은 조선의 영화관에서 상영된 최초의 상업영화로 평가할 수 있다. 이후 하야카와는 ‘춘향전’의 성공을 기반으로 1924년 7월 인사동의 조선인 상설관 조선극장을 인수해 단성사의 라이벌로 나섰다.●‘장화홍련전’ 흥행에 日 ‘춘향전’ 재개봉 응수 당시 ‘춘향전’은 “이건 한 개의 슬라이드지, 영화에 대한 몽타주가 아무것도 없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조선인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고 흥행에 성공하자, 조선 영화계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는 조선 흥행계의 유일한 조선인 경영자였던 박승필 역시 단성사에 촬영부를 만들고 조선 영화인들의 손으로 만든 ‘장화홍련전’으로 응수한 것이다. 두 번째는 극장 자본이 주도한 영화제작을 넘어 본격적인 영화사 설립이 추동된 점이다. 바로 부산에 설립된 조선키네마주식회사였다. 조선인 주도의 영화 제작은 바로 이듬해에 이어졌다. 하야카와의 행보에 자극 받은 단성사의 박승필이 1924년 7월 단성사 내에 촬영부를 설치하고, 역시 고전 소설인 ‘장화홍련전’을 극영화로 제작했다. 배우는 장화와 홍련 역에 기생 김옥희와 김운자, 원님 역에 인기 변사 우정식을 출연시켰다. 앞선 ‘춘향전’의 성공 요인을 기반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연출 인력이 보강되었다. 각색은 단성사의 변사로 유명한 김영환이, 감독은 우미관 출신의 영사기사로 단성사의 전체 운영을 맡고 있었던 박정현이 나섰다. 훗날 감독이 되는 이구영도 당시 단성사 직원으로 각본과 연출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무성영화 현장은 지금의 프로듀서와 감독처럼 그 역할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촬영 역시 조선인이 맡았다는 점이다. 조선 최초의 촬영기사로 기록되는 이필우(1897~1978)가 이 영화로 데뷔하게 된다. ‘장화홍련전’의 영화사적 의미는 제작, 연출, 출연 그리고 초창기 영화매체의 가장 중요한 성립 조건인 기술에서도 전부 조선인의 손으로 이루어진 점이다. “경성 천지의 키네마 팬이 한결같이 손꼽아 기다리던” ‘장화홍련전’이 1924년 9월 5일 단성사에서 개봉하자 조선에 영화상설관이 생긴 이후로 처음 맞는 대성황을 이뤘고, 이에 하야카와의 조선극장은 ‘춘향전’의 재개봉으로 응수한다. 이후 동아문화협회는 하야카와가 다시 감독으로 나선 ‘비련의 곡’(1924), 김조성이 감독으로 나선 ‘흥부놀부전’(1925)을 조선극장에서 개봉한 후, 경영난으로 해산했다. ●무성영화 개척해 간 조선영화인들 초창기 조선 영화계에서 극장의 산하가 아닌, 영화제작사로 처음 등장한 조직은 조선키네마주식회사다. 1924년 7월 11일 일본인 사업가들에 의해 부산에서 설립됐다. 촬영소는 복병산에 있던 러시아 영사관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했고, 회사의 중심인물은 부산 묘각사 주지였던 승려 다카사 간초였다. 그는 왕필렬이라는 조선 이름으로 회사 창립작 ‘해의 비곡’(1924)과 원제가 ‘암광’이었던 ‘신의 장’(1925), ‘동네의 호걸’(1925)을 직접 연출했다. 촬영기사는 작품마다 일본에서 불러왔다. 동아문화협회에서 김조성의 역할처럼,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서도 조선 영화인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훗날 무성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는 이경손, 안종화 등 당시 무대예술연구회 단원들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해의 비곡’의 경우 안종화, 이월화, 이채전 등 조선인 배우들이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이경손이 조감독을 맡았다. 실질적인 감독 역할이었다. 규모를 키운 2회작 ‘운영전’에서는 ‘월하의 맹서’를 연출한 윤백남이 감독으로 초빙되었다. 조선키네마 역시 조선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가담으로 제작이 진행되었다. 한편 무성영화의 스타 나운규가 조선키네마의 연구생이던 당시 ‘운영전’에서 처음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1923년부터 1925년까지의 무성영화 전기에 모두 12편의 조선 영화가 제작되었다. 1923년 2편, 1924년 3편, 1925년 7편이다. 이 작품들 중 다수는 일본인 제작자가 만들고 연출도 겸했다. 그리고 그 제작 현장에서 조선인 감독과 기술 스태프들이 성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단성사가 제작한 ‘장화홍련전’처럼 연출과 출연은 물론이고, 조선인 촬영기사가 전면에 나선 작품도 있었다. 이처럼 무성영화 시기, 제작, 연출 그리고 촬영 등의 기술 파트에서 일본인과 조선 영화인이 만들어내는 도제, 경합, 협업 등의 관계가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봄을 달린다, 봄을 달군다… 생활체육인 6만명 충북으로

    봄을 달린다, 봄을 달군다… 생활체육인 6만명 충북으로

    39개 정식 종목에 빙상 등 시범 종목 4개 일본인들도 9개 종목에 176명 출전 준비생활체육인 6만여명이 운집하는 축제가 올봄에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2019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이 4월 25일부터 나흘간 충주시를 중심으로 충북 11개 시·군·구 60개 경기장에서 열린다. 2001년 제주도에서 제1회 대회를 시작해 올해로 19회째를 맞이하는 대회지만, 최근 생활체육이 일상에 더욱 가까워지면서 그 관심도와 열기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은 전국체육대회, 전국장애인체전, 전국소년체전, 전국장애학생체전과 함께 손꼽히는 국내 5대 체전 중 하나다. 엘리트 체육인 위주가 아닌 순수 생활체육인만을 대상으로 한 전국 대회로는,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이 최대 규모다. 엘리트 선수들의 대회는 10~20대가 주축을 이루는 반면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은 40대 이상의 참여율이 높다. 지난해 충남에서 열렸던 대회만 해도 10대 이하는 2005명, 20대는 1634명의 선수가 참가했지만 40대는 전 연령대 중 가장 많은 3709명이 출전했다. 80대 이상의 고령자 그룹에서도 316명이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치열한 승부를 벌이기보단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확인해보며 함께 즐기는 데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올해는 39개 정식 종목에다가 줄다리기, 줄넘기, 핸드볼, 빙상 등 4개의 시범 종목이 추가됐다. 기존에 있던 농구 종목에서는 3대3 부문이 올해부터 신설됐다. 3대3 농구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동호인도 늘어나자 세부 종목을 추가한 것이다. 올해 개회식은 4월 26일 오후 5시 충주종합운동장에서 시작된다. 개회식 때는 유명 전·현직 국가대표선수들을 섭외해 팬 사인회를 여는 등 일반 시민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폐회식은 4월 28일 오후 4시부터 충주시 장애인형 국민체육센터에서 진행된다. 충북에서 생활체육대축전이 개최되는 것은 2002년 이후 17년 만이다. 대한체육회는 전국체육대회 개최 도시가 이듬해 전국소년체전을, 그다음 해에는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을 연달아 치르도록 하고 있다. 2017년 전국체전과 2018년 소년체전을 주최한 충북이 자연스레 올해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을 맡게 됐다. 2002년 당시 2만 5000여명이 참여해 27개 종목에서 뜨거운 경쟁이 펼쳐졌다. 대회 조직위는 올해 43개 종목에서 선수와 임원·관중을 모두 합쳐 나흘간 6만여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 생활체육인도 9개 종목에서 176명이 출전한다. 미세 먼지가 많을 것이라 예상되는 4월에 대회가 진행되기 때문에 고농도 예보 시 야외 경기의 일정을 조정하고 미세먼지 마스크도 제공할 계획이다. 대회 기간 동안 공공기관 차량 2부제를 실시하고 도로 청소차도 확대 운영한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지난해 한일 인적교류 1000만명 첫 돌파

    지난해 한일 인적교류 1000만명 첫 돌파

    지난해 한일을 오고 간 인적교류 규모가 1000만 명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민간교류 수준(연간 약 1만 명)의 1000 배 규모다. 주한 일본대사관이 1일 발표한 한일 간 인적교류 추이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일본에 온 한국인은 753만9000명으로 전년보다 5.6% 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27.6% 급증한 295만명으로 양국 간 인적 왕래 규모가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대사관 측은 일본인의 낮은 여권 보유율(2017년 말 기준 23.4%)과 저조한 해외여행(2018년 1895만명)을 고려하면 지난해 방한 일본인의 증가 폭과 전체 출국자 대비 비중(16%)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저가항공 취항에 의한 좌석 공급량 확대와 케이팝(K-POP) 등 한류 고정 팬 등이 일본인의 방한을 견인했다. 한편 주일 일본대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일본 취업자 수가 1828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해묵은 건물 사이, 켜켜이 쌓인 열강의 흔적…오래된 골목 사이, 틈틈이 쌓인 동심

    해묵은 건물 사이, 켜켜이 쌓인 열강의 흔적…오래된 골목 사이, 틈틈이 쌓인 동심

    건축물은 시간과 공간을 담는 그릇입니다. 건축물을 둘러본다는 것은 그 안에 쌓인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헤아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천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의 건물에는 개항 후부터 지금까지 130여년의 시공간이 담겨 있습니다. 모르고 보면 낡은 일본식 목조건물과 서양의 르네상스식 건물에 불과하지만, 알고 보면 1883년 개항 당시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려 했던 열강들의 세력 다툼과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이 읽힙니다. 적산가옥이 늘어선 거리를 거닐자 오늘과 당시의 시간이 겹쳐집니다. 세월에 빛바랜 건물에서 과거를 들여다보고, 또 다른 기억이 덧씌워지는 중인 현재를 마주합니다.뚜우우우. 뱃고동이 울린다. 배에서 치파오를 입은 중국 상인이 내린다. 부두에는 쌀가마니를 발밑에 내려놓은 나가사키 상인들이 모여 있다. 1883년 인천 제물포항이 개항하자 한적하던 어촌에 외국의 신문물이 쏟아진다. 외국인 전용 거주지, 바다 건너온 물건을 파는 가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무역회사와 호텔이 들어선다. 일본은 조선 수탈을 위한 방편으로 일본 제1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 제18국립은행 인천지점 등을 세운다.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 일대는 인천의 개항기를 간직한 건축물로 가득하다. 거리 전체가 한국의 근현대사를 훑어 볼 수 있는 역사문화공간인 셈이다. 인천역 부근의 인천아트플랫폼부터 신포국제시장 인근의 답동성당까지 찬찬히 걸으면 반나절도 걸리는 거리지만 핵심 장소는 일본풍 거리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개항기 역사가 오롯이 담긴 거리의 건물은 오늘날 박물관, 아트플랫폼, 카페로 변모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개항기 인천의 모습을 겹쳐 보다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 여행의 출발점은 인천아트플랫폼이다. 세월이 깃든 건물과 아티스트의 예술적 기운이 만난 공간이다. 인천시는 1888년에 지어진 일본우선주식회사(등록문화재 제248호)를 비롯해 개항기와 1930~40년대 건축물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국내와 일본의 물류 운송을 담당하던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은 인천아트플랫폼 사무실, 해방 후에 지어 최근까지 대한통운 창고였던 건물은 공연장, 1940년대 문인과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던 금마차다방은 생활문화센터로 재단장했다. 전시장, 공연장, 창작 스튜디오 등 총 13개 동이라 규모가 상당하니 홈페이지에서 관심 있는 전시를 확인하고 가는 편이 좋다. 인천아트플랫폼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과거의 시공간이 펼쳐진다. ‘혼마치도리’라고 불리던 은행 거리다. 길가에 일본 제1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 제18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제58은행 인천지점 등 이국적인 석조 건축물이 나란하다. 초가집이 대부분이었을 개항기에 멀끔한 외국 건축물이 들어섰으니 조선인이 느끼는 웅장함은 지금의 수십 배였으리라. 인천개항박물관은 당시 일본 제1국립은행 부산지점 인천출장소였다. 은행의 설립 목적은 조선 수탈이었다. 은행은 조선에서 나는 금괴와 사금을 사들였고 인천항에 들어오는 무역 상인에게 해관세를 받는 업무도 병행했다. 개항기 인천을 갈무리하는 박물관으로 문을 연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인 2010년.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인 내리교회,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우편제도 등 개항 후 인천으로 들어온 다양한 근대문물을 전시한다. 건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좌우대칭을 이룬 르네상스식 석조건물 내부는 붉은 벨벳 커튼, 아치형 창문, 샹들리에 조명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은 개항장 일대의 건물 모형을 한데 모았다. 이곳의 전신은 일본제18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이 조선 쌀을 싼값에 사서 되파는 일을 했던 나가사키 상인들을 지원하고자 설립한 금융기관이었다. 일본, 청나라 등 각국의 건축양식으로 지은 조계지 건물부터 지금은 소실된 건물, 개항장 거리에 현존하는 건물까지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계단으로 나뉜 일본 조계지와 차이나타운 은행 거리의 이국적인 분위기는 일본식 목조주택이 늘어선 거리, 일본풍 거리로 이어진다. 인천 중구청 앞은 개항기 일본인이 거주하던 일본 조계지였다. 가옥은 점포가 딸린 2층 목조주택과 나가야식(일본식 다가구주택) 1층 목조주택이 대부분이다. 목재 골조, 반듯한 직사각형 창, 검은 기와의 어울림은 언뜻 봐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거리에는 조계지 시절에 지어진 건물과 최근에 세워진 근대식 건물이 뒤섞여 130여 년 전의 아픔을 말없이 전해준다. 건물의 역사성은 유지하되 쓰임새는 달리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일도 한창이다. 개항기 하역회사 사무실이던 건물은 2011년, 원형에 가까운 복원을 거쳐 카페 ‘팟알’로 문을 열었다. 목조 골격을 살린 카페 내부는 낮잠이 들 만큼 아늑하다. 팟알 바로 옆의 관동갤러리 역시 목조가옥의 외관을 유지한 채 갤러리가 됐다. ‘1883년 일본이 조계지를 만들자 1년 후 청나라는 반대편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한다.’ 이 역사적 사실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일본풍 거리와 차이나타운이 맞닿은 지점에 자리한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이다. 청국과 일본 조계지의 경계가 되는 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은 중국식 건물, 오른쪽은 일본식 건물이다. 계단 양쪽 석등도 모양이 다르다. 30여개 계단 끝자락에는 중국 칭다오에서 기증한 공자상이 서 있다. 뒤를 돌면 차이나타운의 오색찬란함과 일본풍 거리의 차분함이 한눈에 담기고 저 너머 인천항이 펼쳐진다.●배다리 헌책방 골목 읽혔으나 누군가에게 다시 읽히길 기다리는 책을 우리는 ‘헌책’이라고 부른다. 인천의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빛바랜 책이 모인 거리다. 헌책방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이, 절판된 책을 찾아 헤매는 이, 오래된 책의 종이 냄새에 파묻히고 싶은 이를 품어 주는 골목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배다리에 헌책방 골목이 들어선 것은 한국전쟁 후. 남루한 마을에 책을 쌓은 리어카가 모이고 책이 주는 지혜에 목마른 이들이 몰려들며 헌책방이 하나둘 생겨났다. 한때 헌책방이 40여곳까지 늘며 서울의 청계천, 부산의 보수동과 함께 전국 3대 헌책방 골목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아벨서점, 한미서점, 삼성서림 등 다섯 곳만이 남아 배다리를 지킨다. 45년 전 6.6㎡(두 평) 남짓 쪽방에서 시작한 아벨서점은 오늘날 헌책방 골목의 터줏대감이다. 내년이면 일흔을 바라보는 주인은 찾는 책이 없어 헛걸음하는 손님이 없도록 ‘어느 책방이 문을 닫는다더라’ 하는 소식을 들으면 한달음에 달려가 책을 사들였다. 그렇게 모은 것이 4만여권, 창고에는 그의 세 배가 넘는 책이 쌓여 있다. 도서 검색대 대신 책장마다 ‘프랑스 문학’, ‘여행’ 등의 견출지가 붙어 있고 비범한 기억력의 주인이 책을 찾아준다.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시 낭송회는 어느덧 100회를 넘겼다. 최근에는 인천 출신의 이설야 시인이 시를 읊었다. ‘살아 있는 글들이 살아 있는 가슴에.’ 아벨서점 간판 옆에 붙은 글귀다. 손때 묻은 책을 뒤적이며 살아 있는 글과 정신을 호흡하는 곳,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다.●동심 한 조각을 되찾다, 송월동 동화마을 동화 줄거리가 가물가물해진 어른이 됐다. 꿈속에서 피터 팬과 같은 편이 돼 후크 선장을 물리치던 때도 있었는데. 차이나타운의 북쪽 끝과 맞닿은 송월동 동화마을은 고마운 공간이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동화 속 주인공들을 되살려 냈으니 말이다. 송월동 동화마을은 세계 명작 동화를 테마로 조성됐다. 입구의 아치형 조형물을 지나면 도로시 길, 빨간 모자 길, 전래동화 길 등 열한 가지 테마의 골목이 발길을 붙잡는다. ‘미녀와 야수’의 주인공이 담벼락에 들어가 있는가 하면 벤치에 피터 팬이 앉아 있고 계단은 색색의 무지개다리다. 사람들은 포토 존에서 사진을 찍으며 동화 속 공주님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개항 후 독일인이 주로 거주하며 부촌이던 송월동은 1970년대 젊은이들이 인천 주변 도시와 서울로 빠져나가며 노인만 남게 됐다. 낙후된 마을은 2013년 중구청의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통해 동화마을로 되살아났고 인천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알록달록한 동화 세상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건 주민들의 생활상과 동화 속 장면이 뒤얽힌 면면이다. 가스계량기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의 몸통이고, 전봇대는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다. 가스 사용량을 재는 생활은 현실이고 동화는 비현실이다. 현실과 비현실이 중첩되는 순간은 동화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려 준다. 전봇대에서 하룻밤 새 하늘까지 자라던 콩나무를 상상할 때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팍팍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32) →가는 길: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인고속도로와 인천대로를 지난다. 경인고속도로 신월IC 통과 후 경인고속도로를 따라 17㎞가량 이동한다. 인천항사거리에서 제2외곽고속도로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수인사거리에서 중구청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인중로와 제물량로218번길을 지나 신포로23번길을 따라가면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의 시작점, 인천아트플랫폼이다. →맛집:인천의 맛을 이야기할 때 짜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식 짜장면은 1883년 인천 개항 후 중국인들이 인천 부두 근로자에게 국수에 볶은 춘장을 비벼 먹는 음식을 팔며 시작됐다. 붉은 간판과 홍등이 수놓은 거리, 차이나타운의 만다복(773-3838)은 하얀 짜장으로 유명하다. 취향대로 고기장과 육수를 넣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동인천 삼치거리에는 삼치와 막걸리를 파는 생선구이 집 10여개가 모여 있다. 인천집(764-6401)은 삼치구이와 조림을 반반씩 맛볼 수 있는 ‘반반 삼치’가 대표 메뉴다. 쌀밥에 겨울이 제철인 삼치 한 점 올려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잘 곳:인천중구청 뒷길에 자리한 호텔아띠(772-5233)는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 등과 가까워 인천의 대표 여행지를 둘러보기 수월하다. 베니키아 월미도 더 블리스 호텔(764-9000)은 월미 문화의 거리에 자리한 호텔이다. 비즈니스센터와 세미나룸이 있어 출장 시 묵기 편리하며 객실에서 인천대교와 영종대교가 한눈에 내다보인다.
  • 아이즈원 측 “사쿠라·나코, HKT48 겸임 활동 아냐”

    아이즈원 측 “사쿠라·나코, HKT48 겸임 활동 아냐”

    아이즈원 측이 일본인 멤버 사쿠라, 나코가 일본 원 소속 그룹인 HKT48 콘서트 출연과 관련 공식입장을 밝혔다. 4일 아이즈원 소속사 오프더레코드 엔터테인먼트는 공식 팬카페를 통해 “결코 HKT48과 겸임 활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HKT48 탄생 8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임에 멤버들이 일부 무대에 참여가 결정되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미야와키 사쿠라, 야부키 나코, 혼다 히토미 3명은 전임 기간 동안 AKB그룹 일원으로 참가하는 일정은 이후 없을 예정”이라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아이즈원 공식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오프더레코드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오는 12월 15일(토) 개최 예정인 ‘HKT48 콘서트’에 IZ*ONE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 야부키 나코가 출연하는 것 관련하여 일본 소속사측과 확인 된 내용에 대하여 알려드립니다. 해당 콘서트는 HKT48 탄생 8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것으로, 이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IZ*ONE 전임 멤버가 된 미야와키 사쿠라, 야부키 나코가 IZ*ONE의 멤버로서 이번 콘서트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결코 HKT48과 겸임 활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HKT48 탄생 8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임에 멤버들이 일부 무대에 참여가 결정되어진 것 입니다. 이미 발표된 것처럼, 미야와키 사쿠라, 야부키 나코, 혼다 히토미 3명은 전임 기간 동안 AKB그룹의 일원으로 참가하는 일정은 이후에는 없을 예정이며, 그룹 IZ*ONE의 멤버로서 전임 활동 기간동안 IZ*ONE 그룹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팬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드리며, 너른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더불어 앞으로도 IZ*ONE을 향한 팬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응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사유리의 고백, ‘반려견 모모코가 저를 인간답게 만들었죠’

    사유리의 고백, ‘반려견 모모코가 저를 인간답게 만들었죠’

    2010년,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여성들과 함께 하는 KBS 토크 연예오락 프로그램인 ‘미녀들의 수다‘에 일본 여성 대표로 출연해 엽기적이고 4차원적인 엉뚱함 뿐 아니라 재미있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사유리씨(본명: 후지타 사유리·39). 하지만 방송에서 보여졌던 모습들과 달리 직접 글을 쓰고 그림까지 그린 ‘눈물을 닦고’란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섬세하게 표현낼 정도로 ‘똑똑한‘ 그녀의 본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터뷰 중, 자신은 한국 영화 매니아로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인들의 감성을 잘 끌어낼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쓸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엔 한 종편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상민과 가상부부로 출연해 방송에서 맺어준 ‘썸’이 실제 ‘결혼’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기도 하다. 그녀는 외국인으로 한국에서 10년 넘게 방송할 수 있었던 건 PD, 작가, 친구, 매니저, 식당아줌마, 경비실 아저씨, 택시 아저씨 등 주위의 모든 사람 덕분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녀들의 수다 출연료로 사랑하는 반려견 모모코와 오리코를 사게 됐고 이들 역시 한국생활을 잘 견디게 할 수 있었던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가 됐다고 한다. 지난 2일 논현동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 최근 방송활동, 이상민씨와의 썸, 반려견 등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각 종 방송프로그램 통해 매우 바쁜데 근황이 어떤지?사실 바쁘지 않거든요. 어제도 그제도 계속해서 놀았어요(웃음). 바쁜 척 만 해요. 3~4년 전에 ‘눈물을 닦고’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어요. 근데 출판사로부터 책 제목을 바꿔서 다시 한번 출판해 보자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지금 새로운 원고를 쓰고 있어요. 방송활동은 이웃집 찰스라고 KBS1에서 하고 있는데 그건 올 해까지 3년 동안 하고 있는 건데. 너무 재미있어요. 항상 새로운 외국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니깐. (Q) 한국에서 방송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오랫동안 관심받게 될 줄 예상했나?사실 저는 인복(人福)이 많은 거 같아요. 옛날부터 항상 제 주변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의 약간 뚱뚱한 매니저도 저랑 처음에 만났을 때 보다 몸무게가 13kg이나 더 쪘어요. 근데 이 매니저도 항상 제 옆에서 가족처럼 해주니깐 저는 지금도 일을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항상 자기가 마인드 컨트롤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일이 많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잖아요. 일이 없을 때 자신감 잃게 되고 뭔가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 수 있어요. 특히 연예인들은요. (Q) 가수 이상민과의 핑크빛 썸의 진척은?저는 눈이 높진 않거든요. 엄마, 아빠 보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끼리 결혼했다는 걸 느껴요. 저도 나이를 먹어서 빨리 결혼해야 된다라는 압박감이 있는 반면에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그렇게 못한다면 차라리 혼자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맘도 있어요. 상민 오빠는 아직 모르겠어요 진짜. 그래서 몇 년 동안 썸만 타고 있는 거죠. 진심 느껴질 때도 있어요. 왜냐하면 정말 좋은 사람이니깐. 촬영 중, 카메라가 멈춰도 우리 엄마랑 매우 친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우리 가족과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 점이 참 좋은 거 같아요. (Q)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지?부모님은 저보다 훨씬 개방적이에요. 특히 엄마는 저의 롤모델이에요. 엄마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라고 항상 생각해요. 엄마가 생각하시기에 제가 가끔 건방진 게 있데요. 그래서 건방지지 말라고 항상 얘기하세요. ‘자신감 있는 건 괜찮지만 건방지게 보이는 건 좋지 않다. 너는 항상 자기가 완벽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살아라’. 이런 말씀을 늘 하세요. (Q) 냉동난자 시술까지 받았는데.지금 동결 난자가 8개 됐어요. 좀 더 해야 되는 데 일단 돈도 많이 들고 몸도 힘드니깐 지금 잠시 쉬고 있어요. 올해 다시 한번 시도해야 할 거 같아요. 저는 무조건 아기를 낳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어요. 이미 늦긴 했지만 그래도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아서 하고 있어요. (Q) 올해 한국나이로 40세이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나이 먹어가면서 ‘몸이 보기 좋다’ 이런 거 보단 건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특히 여기는 외국이고 저는 보험도 없어요. 그래서 몸이 한 번 아프면 전 정말 병원비도 많이 나가게 되고, 여기에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니깐요. 또 아기도 낳으려면 건강해야 되고 그리고 제가 강아지 두 마리 있는데 그 두 마리를 돌봐 주는 사람이 저밖에 없잖아요. (Q) 반려견은 언제부터 키우게 됐고 어떤 강아지들인지?미녀들의 수다를 시작하고 나서 출연료를 모아서 모모코를 샀어요. 그리고 오리코는 2012년에 펫샵에서 샀어요. 모모코는 항상 씩씩해요. 그래서 항상 웃고 있고, 요즘 몸이 아파서 많이 웃을 수 없지만 그래도 항상 저한테 행복감을 주고 오리코는 요즘 살이 쪘어요. 진짜 이만했던 오리코까 이만해져서 지금 다이어트하고 있어요. 둘 다 귀여워요.(Q) 일본분들도 반려동물 사랑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랑은 한국과 비교해서 어떤 편인지?일본 사람들은 고양이를 좀 더 많이 좋아하고 더 많이 키우는 거 같아요. 일본사람과 한국사람들의 공통점은 요크셔테리어, 포메라이언, 말티즈 등 어떤 종류의 강아지가 유행하면 그 강아지만 키우려고 해요.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영국에 갔을 때 느낀 점은 영국 사람들은 강아지 종류를 그렇게 신경쓰지 않더라고요. 믹스 종도 많이 키우고 그런 걸 키우는 거에 대해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문화는 좋다고 생각해요. 일본과 한국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과 달리 강아지나 고양이를 버리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특히 휴가철 때 강아지를 버리고 오는 걸 보면 어떤 마음으로 버리고 오는 건지, 자기 양심도 같이 버리고 오는 구나라고 느껴요. (Q) 사유리씨에게 반려견이란 어떤 존재인지?가족인 거 같아요. 저는 옛날부터 말하는 데, 제가 강아지를 키우는 게 아니라 강아지가 저를 인간으로 키워주는 거라고 느껴요.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책임감이 많이 생겼어요. 혼자 살 때는 저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일단 모모코, 오리코를 먹여 살려야 되니깐 돈을 벌어 와야 되고 모모코가 아프면 병원비를 내야 하고 이런 걸 생각하면 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거에 책임감을 느껴요. (Q) 많은 팬 분들도 모모코 건강을 응원해 주고 있는데 모모코(10살) 건강상태는 어떤지?몇 주 전에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동물병원 선생님이 3주를 못 넘긴다고 했어요. 말기암이 너무 심해서. 근데 제가 집에서 주사하고 약 주고 했는데 조금 좋아졌어요. 지금도 동물병원에 검사하러 갔는데 모모코가 지난주 보다 암수치가 적어졌다고 해요. 너무 기뻐요. (Q)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진단받은 모모코의 나머지 여생을 어떻게 함께 보내고 싶은지?정말 죽는 순간까지 함께 있고 싶어요. 힘들 때 옆에 있는게 중요하잖아요. 제일 힘들고 아픈 상황에서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끝까지 모모코를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게 정말 감사해요. (Q) 집 근처 길고양이에게 하루 두 번 밥까지 챙겨준다고 하는데.아침과 저녁에 제가 ‘쯔쯔쯔’ 소리만 내면 그 길고양이가 와요. 그래서 밥 줘요. 모모코를 키우는 입장에서 만일 모모코가 길고양이였다면 하는 맘으로 돌보고 있어요.(Q)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 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지?정신이 이상한 사람들 같아요. 일본에서도 사이코패스들은 사람을 죽이기 전에 무조건 집 근처에 있는 고양이나 강아지을 죽이기 시작해요. 작은 동물을 아무렇지 않게 학대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보통사람은 아닌 거예요. 인간에게도 똑같이 하는 사람이니깐 그때 이미 치료를 받아야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강아지를 버리는 사람은 자신의 양심을 똑같이 버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강아지를 한 마리 죽여서 소송당한 사람들은, 피해 주인이 그 강아지를 2백만 원 주고 샀던 거라면, 그냥 2백만원 주면 다 된다고 생각해요. 카메라, 책상 이런 것들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정말 인간한테 하는 것처럼 법을 무겁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안되니깐 좀 서운해요. (Q) 반려동물을 키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다면?현실적으로 강아지를 살 때보다 키우면서 나이 들게 되면 훨씬 많은 돈이 나가요. 저도 마찬가지로 지금부터 10~20년까지 산다고 생각했을 때, 자기 경제력이 과연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돼요. ‘아 귀엽다. 키우자’ 단지 이런 생각으로 키운다는 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요. (Q) 삶의 철학과 매사에 긍정적이신데 삶의 철학이 있다면?항상 자기 가치관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방송일이라는 게 내일부터 안 불러 주면 그냥 자연스럽게 끝나는 거니깐요.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상관없어요. 그냥 이거도 하고 안 되면 다른 걸 하면 돼요. 안 되면 안 되는 이유가 있겠지. 더 좋은 게 기다리고 있겠지라고 항상 생각해요. 저는 무조건 10년 후에도 방송일 해야지 하는 마음 없어요. 저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 있으면 다른 거 해야죠.(웃음)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아이즈원, 3000명 팬 앞에서 화려한 데뷔… 댄스팀 데뷔 같았던 올 립싱크 쇼콘

    아이즈원, 3000명 팬 앞에서 화려한 데뷔… 댄스팀 데뷔 같았던 올 립싱크 쇼콘

    갑작스레 불어온 찬바람도 데뷔의 꿈을 이룬 소녀들의 열정과 그들을 향한 팬들의 사랑을 움츠러들게 하지 못했다. 지난 29일 아이즈원의 데뷔 ‘쇼콘’이 열린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앞은 공연 2~3시간 전부터 이들의 데뷔를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팬들로 북적였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바람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지만 팬들은 긴 줄을 서며 공연 입장만을 기다렸다. 오후 8시 약 3000명의 관객이 가득 들어찬 공연장에 아이즈원 멤버 12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기 다른 모양의 순백 드레스 차림이었다. 이들은 이날 발매한 데뷔앨범 ‘컬러라이즈’ 수록곡 ‘앞으로도 잘 부탁해’로 공연의 막을 열었다. ‘프로듀스 48’(엠넷)을 통해 이미 선보인 적 있는 이 노래는 12명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인사로 더할 나위 없는 선곡이었다. 경쾌한 안무를 조금의 오차 없이 맞춰가며 보여주는 무대에 이날을 위해 쏟은 멤버들의 노력이 느껴졌다.지난 6월 첫 방송된 ‘프로듀스 48’에서 한국의 아이돌 연습생 48명과 일본 걸그룹 AKB48 등의 멤버 48명이 한일합작 걸그룹 데뷔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한국인 9명(장원영, 조유리, 최예나, 안유진, 권은비, 강혜원, 김채원, 김민주, 이채연)과 일본인 3명(미야와키 사쿠라, 나부키 야코, 혼다 히토미)이 최종 선발됐고 아이즈원이라는 이름으로 이날 처음 팬들을 만났다. 1위로 뽑혀 ‘센터’가 된 막내 장원영은 “저희 데뷔를 보기 위해 오신 여러분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라며 첫인사를 외쳤다. 사쿠라는 “날아갈 것 같아요”라며 파닥파닥 날개짓을 흉내냈고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데뷔 콘서트는 엠넷 생방송과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장원영은 미리 준비해 온 영어 인사를 전 세계 팬들에게 건네기도 했다. 2시간 반가량의 공연 중 절반 가까이는 노래가 아닌 영상으로 채워졌다. 이제 갓 데뷔앨범만을 낸 만큼 2시간 넘는 콘서트를 노래로만 채우기는 힘들었을 터다. 대신 ‘프로듀스 48’ 당시의 모습과 데뷔 앨범 준비과정, 데뷔를 맞이한 멤버들의 진솔한 소감 등이 영상으로 전해졌다. 김민주, 이채연, 히토미 등의 코믹 강의 영상과 인기 웹드라마 ‘에이틴’,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등을 패러디한 영상 등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프로듀스 48’이 끝난 지 불과 두달, 데뷔앨범에 콘서트까지 준비할 시간이 넉넉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준비한 8곡의 무대에서 흠잡을 데 없는 군무를 선보였다. 경연 과정에서는 실력이 부족한 연습생들도 있었지만 그게 누구였는지 짐작하기 힘들 정도였다. 데뷔의 꿈을 실현할 이날의 무대를 위한 12명 멤버의 피나는 노력이 엿보였다. 가장 심혈을 기울였을 타이틀곡 ‘라비앙로즈’ 때는 강렬한 빨강 드레스를 입고 나와 고혹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자 몇몇 멤버들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김민주는 “저희 데뷔했어요”라고 입을 뗐지만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이채연은 “앞으로도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강혜원도 “제가 데뷔한 건 다 여러분 덕분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달라”고 말했다.공연 중간 사회를 맡은 오상진은 “‘라비앙로즈’가 7개 음원 차트에서 톱10 안에 들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공연이 끝나갈 때쯤 또 하나의 멋진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오후 6시에 공개된 ‘라비앙로즈’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수가 불과 4시간도 되지 않아 100만뷰를 돌파했다는 소식이었다. 멤버들과 팬들은 다함께 환호했다. 전 세계에 생중계된 공연은 온라인을 통한 동시 접속 인원만 최대 13만명에 달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프로듀스 48’은 ‘프로듀스 101’ 시즌1과 시즌2의 후속으로 방영되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방영 내내 2%대(최종회는 3.1%. 닐슨코리아 기준) 시청률에 머물며 전작들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때문에 아이즈원의 데뷔를 두고도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즈원은 이날 공연을 통해 그런 우려를 불식시켰고, 아이오아이와 워너원을 이을 최고의 아이돌 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립싱크로 일관한 무대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남았다. 대개 타이틀곡 무대만 선보이는 쇼케이스와 달리 이날 ‘쇼콘’은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댄스곡들은 물론 발라드곡 ‘비밀의 시간’, ‘꿈을 꾸는 동안’ 등에서도 아이즈원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콘서트용으로 미리 녹음된 AR에서 들리는 고른 숨소리가 진짜 현장감을 대신했다.이와 관련 소속사 오프더레코드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아이돌 가수들의 무대가 대개 그렇듯 MR을 깔고 했지만 라이브 공연을 한 것은 맞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날 공연에서 아이즈원 멤버의 진짜 노랫소리를 들은 것은 공연 중간 메인보컬 조유리가 ‘1초’ 동안 맛보기로 보여준 게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날 ‘쇼콘’에 앞서 열린 기자 쇼케이스에서 아이즈원의 롤모델을 묻는 질문에 최예나는 “우리 멤버들 모두 소녀시대 선배님들을 롤모델로 꼽는다”고 대답했다. 불과 8~9일 전 소녀시대 태연이 세 번째 단독콘서트를 열고 화려한 춤과 폭발적인 라이브 무대를 보여줬던 것을 알고 있었을까. 피나는 연습에서 보컬 연습은 제외됐던 건지 아니면 보다 ‘완벽해 보이는’ 공연을 위한 소속사의 판단 탓이었는지 이날 공연만 놓고 본다면 신인 가수보다는 댄스팀의 데뷔 같다는 말이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이정수의 B-Side] 혐한의 먹잇감 된 방탄소년단… 독립투사 아니면 친일이라는 흑백논리

    [이정수의 B-Side] 혐한의 먹잇감 된 방탄소년단… 독립투사 아니면 친일이라는 흑백논리

    방탄소년단이 ‘반일’ 논란에 휩싸였다. 얼마 전 한국과 일본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퍼져가던 논란은 일본 매체의 기사화와 극우세력의 혐한 정서를 통해 재확산되고 있다.발단은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입었던 티셔츠다. 등에 ‘우리의 역사’, ‘애국심’ 등 문구가 영문으로 적힌 티셔츠에는 광복 당시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원자폭탄이 폭발하는 흑백사진 등이 담겼다. 광복절을 기념해 제작된 티셔츠로, 지민이 사적인 자리에서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광복의 기쁨과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되새길 수 있는 의미 있는 옷이지만 일본의 우익들에게는 먹잇감이 되기 좋았다. 일본의 한 매체는 “방탄소년단이 반일 활동을 한다”는 기사를 썼고 “뿌리 깊은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분석을 곁들였다. 리더 RM이 광복절을 맞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던 5년 전 글도 끄집어 올렸다. RM은 당시 “독립투사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는 하루가 되길 바라요. 대한 독립 만세!”라고 썼다. 일본 온라인에서는 격한 반응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29일 현재 ‘야후 재팬’에 게시된 한 관련 기사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질투가 아닌 분노다. 일본에 오지 말아 달라’는 베스트 댓글은 2만개 이상의 공감을 얻었다. 방탄소년단을 ‘악’으로 규정하는 일부 시각은 온라인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혐한 시위에서도 ‘건방진 방탄소년단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는 한류 스타를 타깃으로 한 혐한 흐름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10년 넘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동방신기는 최근 ‘인종차별’을 했다며 저격당했다. 지난 6월 일본 공연에서 멤버 유노윤호가 원숭이 흉내를 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 정치인, 연예인들은 혐한 발언을 하며 자신의 인기를 이어 가는 수단으로 삼기도 하고 한국 연예인에게 독도 영유권에 대한 생각을 묻는 무례한 질문도 간간이 이어진다. 이런 일부 우익 세력의 도발은 갈수록 덩치를 불려 가는 한류라는 흙덩이에 던져진 달걀인지도 모른다. 팬들 사이에서는 논란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자리잡혔다.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역시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혐한 목소리에 동조하는 일본인이 적지 않지만 다음달 시작되는 방탄소년단의 일본 투어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다만 케이팝 아이돌들이 일본 활동 중 맞닥뜨리는 혐한 분위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일본 음악시장은 미국에 이은 제2의 시장으로 다수의 아이돌에게 필수 시장이다. 자국어로 앨범을 내고 활동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독특한 ‘고립 시장’이기에 빌보드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조차도 일본 현지 앨범을 따로 발매한다. 이와는 반대로 국내에서 ‘친일’ 논란이 점화되기도 한다. 예컨대 독도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리는 상황 등이 비난의 표적이 될 때다. 일본에서 한류를 확산시키는 아이돌들이 ‘독립투사’가 되지 않았다고 과도한 비난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한류에 있어서도 명분과 실리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이 필요할 터이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아이즈원 ‘라비앙로즈’ 공개..미야와키 사쿠라 “日팬 섭섭함 이해”

    아이즈원 ‘라비앙로즈’ 공개..미야와키 사쿠라 “日팬 섭섭함 이해”

    프로젝트 걸그룹 아이즈원(IZ*ONE)이 ‘라비앙로즈’를 공개하고 정식 데뷔했다. 아이즈원이 2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첫 앨범 ‘컬러라이즈(COLOR*IZ)’ 발매기념 쇼케이스를 열었다. 멤버들은 데뷔 타이틀곡 ‘라비앙로즈(La Vie en Rose)’ 첫 무대를 준비했다.멤버들은 “‘라비앙로즈’를 처음 듣는 순간 너무 좋았다. 우리가 정말 소화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라비앙로즈’를 통해 저희의 강렬한 열정을 보여드리겠다”고 자신했다. Mnet ‘프로듀스48’로 결성된 아이즈원은 멤버 장원영, 미야와키 사쿠라, 조유리, 최예나, 안유진, 야부키 나코, 권은비, 강혜원, 혼다 히트미, 김채원, 김민주, 이채연으로 이뤄졌다. 일본인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는 아이즈원 활동으로 AKB48 활동을 중단하게 된 데 대해 “일본 팬들이 섭섭해하실 수도 있지만, 아이즈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혼다 히토미 역시 “일본 팬들이 섭섭해하시기도 했지만 2년 반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기도 하다. 저희를 응원해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타이틀곡 ‘라비앙로즈’는 파워풀하고 중독성 강한 후렴구가 인상적인 곡. 프랑스어로 ‘장밋빛 인생’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아이즈원의 열정으로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인생을 장밋빛으로 물들이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아이즈원의 데뷔 미니앨범 ‘컬러라이즈’는 29일 오후 6시 온, 오프라인으로 발매됐다. 이들은 이날 오후 8시 데뷔 쇼콘 ‘IZ*ONE ’COLOR*IZ‘ SHOW-CON’을 개최한다. 아이즈원 데뷔 쇼콘은 Mnet을 통해 생중계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황성기 칼럼] 한·일 60점이면 어때

    [황성기 칼럼] 한·일 60점이면 어때

    지난 6월 시작해 8월 말 끝난 ‘프로듀스 48’은 한국, 일본의 아이돌 연습생이 겨룬 생방송 오디션 TV 프로그램이다. 음악 전문 케이블인데도 최고 시청률 3.1%를 기록할 만큼 10~20대의 인기를 모았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들이 우리말과 일본어로 노래하는 장면만이 아니었다. 90여명을 12명으로 압축하면서 다음 단계로 진출하는 사람이 있으면 탈락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인데, 이 과정에서 국적과 경쟁 관계를 초월해 서로의 모국어로 기쁨과 안타까움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김대중·오부치 21세기 파트너십 선언’이 없었더라면 제작 자체가 불가능했을 프로그램이라 감회가 새로웠다.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이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이 선언은 정체돼 있던 한·일 관계를 몇 단계 끌어올렸다. 빗발치는 비판에도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한 김 대통령의 결단은 몇 년 뒤 역설적으로 일본의 한류 붐을 일으킨다. 외교부조차 국민 여론을 의식했던 당시의 대중문화 개방 반대는 돌이켜보면 우리 실력을 과소평가하고 일본을 과대평가한 씁쓸한 소동이었다. 한·일 관계를 20년간 지켜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일 관계를 그래프로 그리면 최고점이 선언을 발표한 1998년이라는 점이다. 한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김 전 대통령이 일본 국회에서 연설을 하고, 일본인의 찬사를 받았다. 오부치 전 총리도 식민지 지배를 겸허히 사죄하는 말을 선언에 담아 한국민의 호평을 얻었다. 그때를 100점으로 치면 지금 한·일의 ‘정치적 관계’는 60점 정도다. 김대중(1924년생), 오부치(1937년생)는 우리로 치면 해방 전, 일본으로 치면 전전(戰前) 세대다. 일본어로 대화가 가능했고, 역사에 대한 일본의 부채의식도 존재했다. 해방 이후, 전후 세대인 문재인(1953년생), 아베(1954년생) 시대의 한·일이 좋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일본 교토의 사립 명문 리쓰메이칸대학이 온천으로 유명한 오이타현 벳푸시의 산 중턱에 2000년 설립한 APU(리쓰메이칸아시아태평양대학)에는 개교 첫해부터 한국 고등학교 출신 85명이 들어갔다. 90개국에서 학생이 몰리는데 올해 한국 출신 신입생은 정원 1260명의 10% 가까운 120명이었다. 내년 한국인 유학생 누계가 2000명을 돌파한다. 이 학교를 나온 한국인의 절반은 일본에서 취업·진학하고 나머지는 귀국하거나 싱가포르, 홍콩, 타이완 등으로 진출한다. 지금은 우리 고등학생이 유학하고 싶은 일본 대학의 상위 반열에 올랐다. 얼마 전 서울에 온 데구치 하루아키 APU 총장은 “전 세계에서 인재를 모아 가르쳐 전 세계로 내보자는 설립 이념에 따라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한국에서 가장 많은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APU가 일본에서 한국인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면, 프로듀스 48은 일본인 연습생을 한국에서 키운다. 샤이니의 열성 팬으로 7년간 한 해 4차례씩 서울을 찾는 50대 일본 여성, 방탄소년단을 좋아해 서울에 오는 일본 여대생, 트와이스에 빠져 도쿄의 코리아타운까지 어머니와 함께 왕복 7시간 걸려 다니는 일본의 지방 초등학생. 모두 지인의 부인, 딸, 친척의 얘기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전 주한일본대사의 혐한 책이 팔리는가 하면, 한편에선 한국인이 되고 싶어 하는 젊은 남녀들이 존재하는 일본이다. 한국은 어떤가. 취업 지옥을 벗어나 일본에서 직장을 잡은 한국 청년이 지난해 2만명을 넘어섰다. 맛집, 가볼 만한 곳을 찾아 툭하면 일본을 찾는 사람이 올해 750만명을 넘을 거란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주년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잘하는 일이다. 사람과 돈, 물건이 이렇게 오가는 요즘 정부 주도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화해치유재단 해산 문제, 욱일기 논란이 현재진행형이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한·일의 21세기 기초를 다진 ‘1998년 정신’을 늘 되새기길 바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년 전 일본 국회에서 했던 연설의 일부다. “한·일이 불행했던 것은 400년 전 일본이 침략한 7년간과 식민지배 35년간입니다.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중략) 두 나라는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핵심은 과거를 직시한 미래지향적 관계다.
  • [스카랑 자카르타] “오빠” 손하트♥… 인니서도 한류 실감하는 국대

    [스카랑 자카르타] “오빠” 손하트♥… 인니서도 한류 실감하는 국대

    인니 팬 환대에 홈인 듯 든든한 기분‘도대체 어떻게 한국인인 줄 알았을까.’ 물어보니 “헤어스타일이 한국인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의 인기가 높다 보니 한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에 대해서도 꿰고 있는 것이다.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경기장 주변에서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자주 듣게 된다. 같은 동양권인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헷갈리는 사람들 때문에 ‘니하오’ 혹은 ‘곤니치와’라는 인사를 받곤 했지만, 이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한국인을 정확히 알아본다. 10~20대 여성들에게는 ‘오빠’라는 말도 유행어처럼 퍼져 있어서 길 가다가 갑자기 손가락 하트(엄지와 검지만 이용해 하트 모양을 만드는 것)와 함께 ‘오빠’라 부르는 현지인을 마주하기도 한다. 한국인 아니냐고 묻고는 같이 사진을 찍자는 이도 적지 않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선수들에게도 이어진다. 배드민턴이 최고 인기 스포츠인 인도네시아에선 이용대(30)가 한국에서보다도 큰 인기를 누린다. 이용대가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 출전할 때면 팬들이 그를 둘러싸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22일에도 정확한 발음으로 ‘이용대’를 언급하며 “혹시 은퇴한 것이냐”고 물어온 이도 있었다. ‘선수 은퇴는 아니고 국가대표에서만 은퇴했다’고 설명해 주자 “이용대는 잘생기고 실력도 좋아서 인도네시아에서 인기가 많다. 이번에 못 봐서 슬프다”며 안타까워했다. 오상욱(22)은 지난 20일 펜싱 남자 사브르 결승전이 끝난 뒤 현지 팬들에게 20여분간 둘러싸여 ‘미니 팬미팅’을 열어야만 했다. 은메달리스트 오상욱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는 요구가 빗발쳤던 것이다. 곁에 있던 관계자가 곤란하다며 막아서기도 했지만 인도네시아 ‘소녀팬’들의 열정은 막을 수가 없었다. 시합이 끝난 직후라 피곤했을 법하지만 오상욱은 수십 장의 사진을 일일이 찍어 준 뒤 선수촌으로 돌아갔다. 인도네시아 대학생 나디라 아유 푸스피타(20)는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지 한국이 좋다. 한국의 은메달리스트와 사진을 찍어서 너무 영광이다. 오상욱은 너무 잘생긴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 뛰는 손흥민(26)도 경기가 끝나면 현지 자원봉사자와 운영요원들에게 둘러싸여 한동안 사진을 찍곤 한다. 이미 은퇴한 박지성(37)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도 인지도가 굉장히 높다. 현지에도 도장이 여러 곳인 태권도 종목에서도 한국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비록 타지에 있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의 따사로운 환영 덕분에 선수들이 마치 홈에서 뛰는 듯한 든든한 기분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글 사진 자카르타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설리 일본 악플, SNS에 ‘기림의 날’ 포스터 올렸다가 “평생 일본 오지 마라”

    설리 일본 악플, SNS에 ‘기림의 날’ 포스터 올렸다가 “평생 일본 오지 마라”

    가수 겸 배우 설리가 SNS에 ‘기림의 날’을 소개하자, 일부 일본 네티즌이 악성 댓글을 다는 등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 14일 설리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기림의 날’ 공식 포스터를 올렸다. ‘기림의 날’은 故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 위안부 피해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린 날(1991년 8월 14일)로 지난해 법률로 제정돼 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설리가 공개한 ‘기림의 날’ 포스터에는 “올해 처음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서 정부 공식행사가 열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라는 내용의 문구가 담겨있다.설리는 이 포스터를 올리며 네티즌 관심을 촉구했다. 하지만 일부 일본 네티즌이 설리 SNS를 찾아 악성 댓글을 달며 그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자신이 일본인 팬이라고 밝히며 “여러 나라 팬이 보는 SNS에 정치적 내용을 올릴 필요가 있냐”며 그에게 쓴소리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평생 일본에 오지 말라”, “진짜 싫다”, “설리 그렇게 안 봤는데 100% 한국인이네”라며 댓글을 달았다. 상황이 이렇자 일부 한국 네티즌은 일본 네티즌 태도를 지적하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사진=설리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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