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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北 테러국 다시 지정

    美, 北 테러국 다시 지정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은 27일(현지시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발간한 ‘국가별 테러리즘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이래 테러 행위를 지원한 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기술했으나 일본인 납치와 국제사회의 테러 근절 대책에 실질적인 협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테러지원국 재지정의 이유로 밝혔다. 북한과 함께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국가는 이란, 쿠바, 시리아, 리비아, 수단 등이다. 지난해까지 테러지원국에 포함돼 있던 이라크는 제외됐다. 미국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처음 기술했던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다시 거론, 납치를 테러로 분류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보고서는 북한이 일본에 돌려보낸 피랍 일본인 유골의 진위를 둘러싼 북한과 일본간의 논란과 관련,“일본에서 DNA 검사 결과 북한이 주장하는 피랍 일본인의 것이 아님을 시사했다.”며 “이 문제는 (지난해)연말까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일본의 주장대로 가짜라고 단정하지 않고 ‘시사’라는 표현을 쓰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으나 일본의 DNA 검사에 결함이 있다는 과학전문지 네이처의 주장이나 북한측의 반론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보고서는 북한에 남아 있는 1970년 항공기 납치범 일본 적군파 4명의 가족 5명이 지난해 일본에 송환됐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북한이 테러리즘 관련 6개 국제협약과 의정서 당사자이면서도 국제 테러리즘과 싸우는 노력에 협력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무부가 테러 보고서에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처음으로 올렸을 때 코퍼 브랙 테러대책 조정관은 “납치 문제는 북한을 테러 지원 국가로 규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보고서는 이란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테러지원국”이라며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와 정보보안부는 테러행위 계획과 지원에 연루됐고, 여러 조직단체에 대해 목표 달성을 위해 테러리즘을 사용토록 계속 조장하고 있다.”고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보고서는 또 “리비아와 수단은 지난해 반테러 운동에 협력하는 의미있는 조치를 취했다.”고 비교적 긍정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주된 테러 위협은 여전히 알 카에다이며,“다수의 알 카에다 고위 지도부가 아직 붙잡히지 않은 채 미국에 대한 공격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라크와 관련, 보고서는 “민주주의로 이행하면서 테러리즘 지원을 그만뒀으며, 그에 따라 테러지원국 지정이 2004년 10월 해제됐다.”고 밝히고 그러나 이라크가 여전히 “전 지구적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핵심 전장”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국무부 보고서와 별개로 중앙정보국(CIA) 산하 국가대테러센터(NCTC)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651건의 테러 공격이 발생,2003년의 208건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사망자도 625명에서 1907명으로 3배 증가했고, 부상자는 3646명에서 6704명으로 늘었으며, 지난해 납치 피해자도 710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dawn@seoul.co.kr
  • [시론]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황연대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부회장

    [시론]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황연대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부회장

    지난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전후해 언론매체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앞다퉈 장애인 기사를 다뤘다. 성공한 장애인, 장애인과 공동체를 일궈낸 사람들, 체육대회에서 함박웃음을 짓는 장애인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그날 사회 한쪽에서는 ‘장애인 차별철폐’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자유롭지 않은 몸은 전동휠체어의 힘을 빌리고, 소리가 나지 않는 목소리는 호르라기로 대신하며, 자신의 생일날 거리로 뛰쳐나온 장애인들…. 이들이 점거해 버린 마포대교에는 퇴근차량과 뒤엉켜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었다.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의 삶을 지탱해 주는 생계형 트럭도 있었을 것이고, 거래선 납품 시간을 맞춰야 하는 기업체의 긴박한 물품도 있었을 테고, 모처럼만에 장거리 손님을 태운 택시도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이들이 거리로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일년에 딱 하루, 장애인의 날이 아니면 아무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17대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경쟁하듯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탄생시키자, 국회내 편의시설이 빠른 속도로 보완되고 장애인 국회의원들이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장애 당사자가 체감하는 장애인복지 수준은 과거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장애인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장애인의 날을 전후해 온 사회가 장애인 문제에 대해 떠들썩하다가 또다시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해지는 현상. 그 근본 원인은 바로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후진성(시선의 오류)에 있다고 본다. 아직도 장애인을 능력과 개성을 가진 한 주체가 아닌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혹여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날 하루만이라도 떠들썩한 관심을 보여야 나머지 364일이 심적으로 편한 까닭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제 장애인 문제는 복지적 관점에서 베푸는듯 해온 기존의 관행과 인식을 바꿔 ‘인권’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장애인들의 가장 큰 현안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 손꼽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법적인 강제성을 통해서라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장애인의 ‘인권’을 우리 사회가 지켜주어야 한다. 우리 국가와 사회는 장애인문제를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계형 운행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장애인 차량의 LPG 사용을 한달 250ℓ로 상한선을 정한 점,1991년 제정 이래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아직도 2% 선에 머무르고 있는 점(선진국은 최고 15%까지 적용), 장애아동의 양육 문제를 전적으로 가족에게 책임지우는 일 등은 바로 가슴이 아닌 머리로 한 일들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장애인 중 92.4%가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으로 발생한 후천성 장애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 모두는 예비장애인인 셈이다. 따라서 장애인복지에 투입되는 비용은 나와 가족을 위한 미래투자이며, 장애인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사회의 안전망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 줄기세포는 척수장애인의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아 주고, 컴퓨터칩이 내장된 인공 의족과 의수는 불편한 몸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게 해줄 게 틀림없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장애인을 영원히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갈라 놓는다면 이러한 첨단기술들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필자 역시 세 살때 소아마비를 앓아 일본인 교장에게 초등학교 입학부터 거절당했던 아픈 기억을 안고 사는 장애인으로서 이제는 국가경제와 사회 인식 수준에 맞는 장애인정책이 수립되고 운영되길 간절히 바란다. 장애인들이 장애인의 날 길거리에서 처절한 모습으로 절규하는 모습을 더이상 보지 말았으면 한다. 장애인들 역시 이제는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우리 모두의 노력을 통해 장애인의 날이라는 ‘특별한 하루’가 필요없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황연대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부회장
  • 日 부부 30% 침실에선 ‘남남’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에서 한달에 1회도 성생활을 하지 않는 이른바 ‘섹스리스’ 부부가 30%에 달한다는 조사가 나왔다고 도쿄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일본가족계획협회가 16∼49세 남녀 1518명 중에서 성경험이 있다는 1329명에게 최근 한달간 성생활 횟수를 물었더니 ‘없었다.’가 35.2%에 달했고, 기혼자에 한정해도 31.9%(남자 28.4%, 여자 34.0%)가 성생활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협회측은 “특수한 사정이 없는데도 부부가 합의한 성생활이 한달 이상 없었고 앞으로도 오랜 기간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가 ‘섹스리스’라고 할 수 있다.”며 “과중한 일의 부담 등으로 일찍 귀가하지 못하는 것이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인들은 지난해의 한 국제조사에서도 세계 41개국 국민들의 연간 성생활 평균(103회) 조사에서 프랑스(137회), 그리스(133회), 헝가리(131회), 중국(90회) 등에 크게 못미치는 46회로 꼴찌였다. 신문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수입의 남녀차가 없어져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대등한 입장에 가까워진 것도 또다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가족협회 관계자는 “나이에 관계없이 직장 환경이 해마다 악화돼 과중한 업무부담 때문에 귀가시간이 늦어지는 것도 요인”이라고 말했다. taein@seoul.co.kr
  • “야스쿠니 참배 위헌아니다”

    |도쿄 이춘규특파원|한국인과 일본인 1000여명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위헌이라며 일본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지급과 참배금지 등을 요청한 소송이 26일 도쿄지방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이로써 모두 6곳의 일본 지방법원에서 벌어졌던 야스쿠니 관련 소송은 모두 기각으로 막을 내렸다. 다만 후쿠오카지방법원만이 지난해 4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대해서는 위헌이라고 판단했었다. 한국의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등 한ㆍ일 시민단체로 구성된 원고 1000여명은 소송에서 고이즈미 총리 등의 신사참배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참배행위가 정교 분리를 명시한 일본 헌법에 위배된다며 금지시킬 것을 주장하며 1인당 3만엔의 위자료도 요구했다. 반면 일본 정부와 총리측은 “참배는 공무가 아닌 만큼 정교 분리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맞서왔다. 도지사측도 “전몰자의 위령, 추도가 목적으로 종교적 활동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자민당 총재가 될 때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2001년 8월13일 현직 총리로는 5년 만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참배 당시 공(公)ㆍ사(私)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관용차를 타고 비서관을 대동했으며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라고 방문록에 적었다. 이틀 뒤 이시하라 도쿄도지사도 전년에 이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위법 여부를 판단한 것은 후쿠오카지법뿐이었지만 후쿠오카와 지바, 오사카지법은 1심에서 참배의 성격을 ‘공적 참배’로 판단했다. 오사카지법은 2심에서 ‘사적 참배’로 판단을 뒤집었다. taein@seoul.co.kr
  • 지하철 타고 세계로-외국문화원

    지하철 타고 세계로-외국문화원

    “지하철 타고 세계 여행 떠나요.” 반드시 비행기를 타야지만 외국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시내에도 각국의 언어, 영화, 노래, 그림, 서적 등을 접할 수 있는 외국 문화원들이 널려 있다. 외국 문화원을 떠올리면 어학전공자나 가는 곳이라 여기기 쉽지만, 해당 국가에 대한 관심만 있으면 충분하다. 시내에서 각국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외국 문화원들을 소개한다. ●빵굽는 냄새가 뿜어내는 낭만 - 프랑스문화원(1호선 서울역·2호선 시청역) 가난한 대학생들의 영화감상실로 유명했던 프랑스문화원은 여전히 ‘알뜰족’의 데이트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명물인 ‘프랑스 까페(Cafe de France)’에서는 프랑스인 주방장이 제공하는 갈레트, 크레프 등 프랑스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고층빌딩에 위치해 있는 데다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워 여느 레스토랑 못지않은 분위기를 자랑한다. 매주 금요일 6시30분에는 프랑스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 ‘미디어도서관’에서는 프랑스 잡지(40여종),DVD(1400개),CD(800개) 등이 갖춰져 있다. 자료 열람은 무료로 할 수 있지만 대출을 받으려면 회원으로 등록해야 한다. 도서회원은 2만원, 미디어회원은 7만원이며, 일일 이용료는 5000원. 일주일에 한번씩 샹송, 회화, 영화클럽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참가비는 무료다. ●태극권 배워볼까 - 주한중국문화원(3호선 경복궁역·5호선 광화문역) 지난해 12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에서는 네번째로 한국에 설립됐다. 문을 연 지 넉달밖에 안됐는데도 중국 마니아들이 속속들이 몰려들고 있다.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중국 무술인 ‘태극권’과 ‘중국의학’에 대한 강좌가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학의 경우 대한중의협회와 공동으로 기초이론, 기(氣) 호흡법, 안마 등을 교재비(1만 5000원)만 받고 가르쳐준다. 매달 한 번씩 중국 문화에 대한 심층강좌도 열린다. 지난 23일 ‘중국경극감상’에 이어 다음달에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인물 분석’에 대한 강좌가 마련된다.3000원을 내고 회원으로 등록하면 참여할 수 있다. ●‘닛폰필’ 받고 싶다면 - 일본공보문화원(3호선 안국역) 문화원 1층에 들어서면 ‘일본정보광장(JI·Sqaure)’에서 일본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다.3층의 ‘일본음악정보센터’에는 J-POP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CD,DVD, 뮤직비디오 등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신분증을 가져가면 무료로 회원증을 만들어주며 일본 관련 티셔츠도 준다. 도서관에 가면 일본 서적은 물론 일본 만화도 원없이 볼 수 있다. 매달 보름 이상 ‘이달의 상영작’을 정해 무료로 상영한다.4월에는 ‘춤추는 대수사선 2’가 상영되고 있다. 일본인 강사가 무료로 가르쳐주는 ‘일본무용’교실은 지난 24일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터키요리 색다르죠 - 이스탄불문화원(2호선 홍대입구역) 터키 요리는 프랑스·중국과 더불어 세계 3대 요리로 꼽히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터키 요리는 동·서양의 경계에 놓인 지리적 여건에 맞게 풍부한 재료로 다양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문화원은 케밥(고기), 필라프(볶음밥), 글레즈(터키식 찌개) 등 한국의 가정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위주로 매주 월요일 요리강좌를 열고 있다. 한달(8회) 수강료는 재료비를 포함해서 10만원.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마다 터키식 홍차인 차이(Chay)를 마시면서 터키 문화에 대한 얘기 등을 나누는 ‘티 파티’도 열린다.60∼70명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터키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여행안내 책자를 무료로 나눠주고, 일정까지 짜준다. 현지 홈스테이 가정도 연결해준다. 전화예약은 필수. ●몽골리안 삶의 냄새 - 울란바토르 문화진흥원(5호선 광나루역)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수도로 서울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다. 진흥원이 생겨난 배경은 조금 특이하다. 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못하는 몽골인 노동자들이 늘어나자 99년 몽골학교가 설립됐고, 같은 건물 3층에 몽골 울란바토르 문화진흥원이 들어섰다.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와 전통의상인 ‘델’, 말 모양의 현악기인 ‘머링호르’ 등이 볼 만하다.15인 이상이 관람하면 몽골 전통·현대 음악과 영화 등을 볼 수 있다. 한글 영화 자막이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시에서 보내주는 정기 간행물도 볼 수 있다.‘몽골어학당’도 있으며 몽골 여행자에게는 현지 유목민과의 홈스테이를 주선해주기도 한다. 주말이면 몽골인·필리핀인·이란인 등이 모여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랑방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학구파들 모여랏 - 영국문화원(5호선 광화문역) ‘영어의 종주국’답게 ‘어학센터’에서 무려 100여개의 강좌가 열리고 있다. 수강료는 사설학원에 비해 대체로 비싸지만 문화원은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을 보유한 우수한 강사들이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일부 강좌는 조기에 마감될 정도로 학생들이 몰린다.‘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영어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다. 또한 각종 간행물,CD, DVD 등을 통해 영국의 생활방식, 문화, 영국유학에 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인포메이션 센터를 이용하기 위한 연회비는 3만원, 하루 이용료는 3000원이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독일 - 독일문화원(괴테 인스티튜트) 호젓한 남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원은 지하철보다는 시내버스(14·402번)로 가는 게 더 편하다. 경사에 위치해 있어 정문에서는 1층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들어서면 4층이다. 사방이 온통 유리로 되어 있어 남산 풍취를 즐기는 데에도 그만이다. 특히 3층에는 독일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카페테리아가 있어 남산을 산책하러 온 사람들이 쉬어 가기에도 적당하다.1만 2000여종의 서적·DVD·음반 등의 자료를 무료로 빌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독일어 교육1번지’로 통하는 명성만큼 세분화된 어학강좌도 마련되어 있다. ●패션·건축에 빠져볼까 - 이탈리아문화원(3호선 한남역) 예술의 나라답게 패션·건축 분야의 서적이 강하다. 디자인스쿨·요리학원·음악원 유학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 상담도 해주고 있다. 다음달 29일까지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 갤러리에서 ‘이탈리아 각 주의 예술과 맛’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전시한다. 이밖에 이스라엘 문화원(2호선 강남역)은 이스라엘과 유대학 등에 걸친 서적을 2000여권 갖춰 놓았다. 이스라엘에 관한 서적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 신학생·신학자들이 즐겨 찾는다. 사진집도 여러 권 있어 일반인들이 중동지역의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3개월 과정의 히브리어 초·중·고급 강좌도 열린다.26일까지 신청받는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전화·면담 우리말로도 가능 언어장벽 뛰어넘어 즐기기 “@%*$&!#?” 외국 문화원에 전화를 걸면 외국어가 나오기 때문에 당황하기 십상이다. 이 경우 움츠러들지 말고 우리 말로 묻고 싶은 것을 차분히 물어보면 된다. 문화원의 임무가 한국에서 해당 국가의 문화를 알리는 것인 만큼 문화원에 한국인이나 기본적인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외국인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문화원을 방문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말이 통용되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이스탄불문화원에는 한국에서 8년째 생활을 한 터키인이 구수한 한국말로 방문객을 맞아준다. 중국문화원의 중의학·태극권 강좌 등도 우리말로 열린다. 최근에는 우리말 자막을 넣은 영화도 많아지는 추세다. 프랑스문화원은 국내에서 상영됐던 영화에는 우리말 자막을 넣어준다. 일본공보문화원 영화에는 대부분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이탈리아문화원에는 예술의 나라답게 화집집이 많아 언어를 뛰어넘어 문화를 즐길 수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과속에 무너진 ‘철도강국’ 자존심

    |도쿄 이춘규특파원|어처구니없는 열차사고가 잇따르면서 일본의 ‘열차 안전신화’가 무너지고 있다.‘철도 대국’이라는 일본인들의 자존심도 구겨졌다.25일 효고현 열차 탈선 사고에 앞서 도쿄시내 전철 건널목에서는 열차가 진입하는데도 간수가 차단기를 올려 행인들이 사망하는 어이없는 사고도 발생했다. 지난해 10월 니가타현 지진 때는 신칸센도 탈선했다. ●사고순간, 승객 일제히 공중에 떠 이날 사고는 승객이 가장 많은 출근·통학 시간에 일어나 인명피해가 더욱 컸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사고 순간 승객들은 일제히 공중에 뜬 뒤 앞으로 날아가거나 처박혔다고 한다. 승객들은 “가가강…”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객차가 흔들린 뒤 순식간에 굉음이 들리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한 승객은 “속도가 꽤 됐다. 순식간에 유리창이 깨지고 몸이 회전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고 사고순간을 전했다. 승객들은 열차가 전 역을 예정보다 조금 늦게 출발하면서 “늦어서 미안하다.”는 방송을 한 뒤 속도를 올렸다고 말했다. 열차가 들이받은 맨션의 6층에 사는 여성(26)은 “지진인 줄 알고 일어났더니 밑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면서 “한신대지진 때보다 진동이 더 컸다.”고 전했다. ●“지옥 같은 참사현장” 사고 현장 부근에는 “살려달라.”는 구원요청이 빗발치고 울음과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어지럽게 들렸다. 비릿한 피 냄새도 진동했다. 사고로 처참하게 깨진 문이나 창문으로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승객들도 적지 않았다. 맨앞 차량에 타고 있던 여학생(18)은 “정신을 차려 보니 밖으로 튕겨나와 있었다.”고 말했다. 학생은 “주위에는 여럿이 넘어져 있었다. 부서진 펜스가 매달려 있어 그걸 잡고 밖으로 올라왔다.”고 덧붙였다. 구조작업은 경찰과 소방서·자위대원과 자원봉사대 등이 속속 현장에 도착, 긴박하게 이뤄졌지만 희생자는 점점 늘고 있다. ●과속·과실로 인한 인재 가능성 정확한 사고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초보기관사와 과속, 낡은 설비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사고로 이어졌을 것으로 분석했다. 열차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남성 회사원(47)은 “사고현장 직전에 완만한 커브가 있다. 평상시에는 감속했지만 오늘은 그대로 달렸다.”며 과속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회사측은 “계산상으로는 커브길에서 시속 133㎞ 이상으로 달리면 탈선한다.”고 설명했다.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는 올해 23세로 입사한 지 11개월밖에 안된 초보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NHK는 사고 선로의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구형이어서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밖에 1990년대 이후 철도 회사들이 비용절감과 절전 차원에서 차량을 철에서 가벼운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로 바꾼 게 결과적으로 희생을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운행 중인 일본내 열차차량의 절반 이상이 경량 차량이다. 도시 전철은 물론 신칸센도 마찬가지다. 사고 열차는 스테인리스제의 차량이었다. 제조·유지관리 비용, 전력 소비량을 줄이고 소음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효율은 높였지만 측면의 충격에는 약하다는 문제를 노출했다. taein@seoul.co.kr
  • [피플인포커스] 고이즈미 최측근… 대북밀사 맡기도

    |도쿄 이춘규특파원|“야마사키 다쿠를 주목하라.” 24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야당의 텃밭 후쿠오카 2구에서 당선된 야마사키 다쿠(68) 자민당 의원에게 일본 국내외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야마사키는 나의 방패”라고 할 정도로 총리의 맹우이자 정치 보좌관이다.2003년 중의원 선거에서 여성 스캔들로 낙선했다가 와신상담,1년5개월여 만에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고이즈미 총리와 깊은 대화가 가능한 몇 안되는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특히 야마사키 당선자는 지난해 4월 총리의 밀사로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고이즈미 총리의 재방북 길을 닦았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가 대치상태에 놓인 북·일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일미군 재배치 문제와 교과서 왜곡 및 영토분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은 중국 및 한국과의 관계개선 등에서도 중요한 임무를 맡을 것으로 관측된다. 또 고이즈미 총리가 명운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우정 민영화’ 사업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야마사키 당선자가 당분간 우정사업 및 외교분야에서 당정의 물밑 통로 역할에 주력하다 오는 9월 당개편때 중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야마사키 당선자의 정치적 위상이 과대평가됐다는 분석도 있다. 당내의 견제도 크고, 지나친 우파 성향이 한계로 지적되기 때문이다. taein@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아시아 삼바축제… 日 마쓰리에 산다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아시아 삼바축제… 日 마쓰리에 산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한 해는 마쓰리로 시작해 마쓰리와 함께 저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계절 내내 지역별 마쓰리가 계속된다. 일본인들은 마쓰리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고 문화전수도 한다. 큰 규모만도 6만개에서 30만개라는 설이 유력하다. 한사람이 하는 마쓰리에서 수 백만명이 참여하는 마쓰리도 있다. 마쓰리 행사를 위한 물품을 취급하고 행사를 기획하는 전문직업인도 많다. 마쓰리는 생활이요, 사업이다. 일본의 마쓰리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가 시작될 때 오쇼가쓰(正月)마쓰리 등이 많이 열리고, 여름에서 가을로 바뀔 때는 전국적으로 오본(盆)마쓰리 등이 많이 개최된다. 이런 마쓰리 때 가장 신성한 존재는 마을이나 씨족의 신(神)이다. 신들에게 풍요, 행복을 비는 행위가 마쓰리의 기본적인 형태다. ●마쓰리로 시작돼 마쓰리로 끝나 마쓰리는 일반적으로 물과 꽃으로 신을 영접, 차린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은 신사를 축소한 가마 형태의 ‘미코시’(神輿)나 손수레 위에 실은 ‘다시’(山車)로 옮겨져 모셔진다. 본격적으로는 이를 메거나 떠밀고 동네를 돌면서 “왓쇼이, 왓쇼이”를 외친다. 이런 것을 반복한 뒤 음식을 나눠먹는다.‘왓쇼이’가 한국어 ‘왔소’에서 왔다는 것은 통설이다. 미코시나 다시의 운반은 남성의 권리였다.2차대전 후 여성도 참여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도 남성우위 전통이 여전하다. 홋카이도 출신 60대 자영업자 스즈키씨. 그녀는 고향마을에서 어릴 적 “여자는 미코시를 멜 수 없어.”라고 해 뒷전에 밀려 있었다. 도쿄에서 지금까지 살며 먼발치서 구경한 적은 있지만 아직도 참가경험은 없다. 하지만 일본은 1970∼80년대 지방분권이 강해지면서 지역 문화축제가 크게 팽창하면서 여성들의 참여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으로 새로운 볼거리인 마쓰리를 찾아 원정다니는 흐름이 형성됐다. ●이틀간 7000명이 춤을 춰 마쓰리는 사회통합과 전통문화나 가치전수의 장이다. 지역 마쓰리는 한 해 마쓰리가 끝난 직후부터 다음 해의 마쓰리 준비를 위해 구성원들이 물품과 예산을 마련했다. 각종 이벤트성의 마쓰리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도쿄시내의 상점가인 파루센터에서 매년 8월 열리는 마쓰리도 인근 ‘아사가야중학교’ 학생들이 마쓰리에 쓰일 장식품을 합동으로 만들며 ‘지역사회활동 참여’를 배우게 된다. 자동차·전기·전자업체 등 지역 기업·상점들과 자위대까지도 협찬 형식 등으로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리는 도쿄 ‘고엔지 아와오도리’는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춤 대열에 참가한다. 지난해 8월말 이틀간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연인원 7000여명이 춤을 췄는데, 이들은 수십개 팀별로 수개월전부터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익혀 열연했다. 교토의 기온 마쓰리를 구경했다는 한 외교관은 “일본 마쓰리는 단순히 축제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사회 교육의 장이다. 지역사회의 전통문화를 훌륭히 전수한다. 한국도 참고했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통 마쓰리의 소멸 위기 하지만 지금 많은 마쓰리가 존립위기를 맞고 있다. 아예 사라지는 지역 마쓰리도 적지 않다. 그 자리를 하나·춤·상가 마쓰리 등 이벤트성 마쓰리가 대체하면서 “신이 떠나버린 이벤트 마쓰리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는 마쓰리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특히 지역사회 작은 신사가 중심이 돼 주민들이 참여하는 전통적 마쓰리들이 다수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수백명씩이 참석, 미코시를 끌고 마을을 몇차례나 돌 때면 수천명이 길거리에서 호응했었지만 요즘엔 참가자가 수십명으로 줄어, 명맥만 유지하는 곳이 많다. 지방도시는 물론 도쿄도 마찬가지다. 실제 많은 도시인들은 마쓰리를 보지만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50대 이사카씨는 간사이 고향에서 어릴 적 마쓰리에 참가했던 적은 있지만 성인이 된 뒤 이런 기억은 없다. 도쿄에서 태어난 30대 회사원 아오노씨는 지난해 처음으로 도쿄 오모테산노 마쓰리에서 미코시를 한 번 멘 적이 있다. 그러나 “갑자기 사람이 없다고 간청을 해 참가했는데 메고가다 골목길에서 다칠 뻔했다.”며 앞으로 다시는 참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마쓰리가 수백만명이 관람하는 등 대성황을 보이는 이면에 전통적인 마을단위의 마쓰리들이 ‘개인주의 확산’ 등으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 마쓰리란 무엇인가 일본어 마쓰리는 우리말로는 축제로 해석할 수 있다. 원래는 무속신앙의 제사의례를 나타내는 말로 제단 위에 제물을 올린 모습을 본뜬 한자 제(祭)를 빌려서 표시했다. 제사를 올리거나 ‘혼령을 모시다.’는 뜻도 있다. 즉 떠받들거나 바치다는 의미가 강하다. 일왕이 영토나 국민을 다스리는 정치 행위를 ‘마쓰리고토’(政)라고 부른 것도 마쓰리에서 파생됐다. 일왕이 부족연합의 수장인 동시에 최고위 제사장이었던 제정일치 사회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말이다. 마쓰리는 이처럼 신에게 희생물을 바치고 제사를 올리는 집단제의에서 비롯한 축제다. 이런 신성한 축제이기 때문에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장소에서만 행해진다. 참가자들은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하는 동시에 세속의 때도 씻어낸다. 다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 전통적 개념의 마쓰리의 형식과 내용이 변하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주도로 마쓰리가 지역특산물 판매장으로 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 “마쓰리 원형은 가야·백제문화” |도쿄 이춘규특파원|한국과 일본의 지역축제 연구 전문가이면서 영화감독인 마에다 겐지 ‘하늘하우스’ 대표이사는 “마쓰리의 원형은 한반도, 중국남부 등 도래인들의 문화”라면서 “그 가운데 5세기 전후 가야와 백제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마쓰리의 기원은. -일본은 섬나라이다. 따라서 문화는 한반도, 중국남부, 인도네시아는 물론 호주, 그리고 퉁구스 등지서 건너온 ‘도래인(渡來人)’들이 자신들의 조상들을 섬기는 행사를 했다. 그게 마쓰리의 원형이다. 조상신을 섬기는 것이다. 특히 4∼6세기의 가야문화가 중심이다. 백제, 고구려, 신라도 마찬가지다. 마쓰리 행위의 원형은 무엇인가. -도래인들의 생활수단이 마쓰리 행위에 반영돼 전수중이다. 무당이나 광대, 남사당패 등의 문화가 대표적이다. 한자나 불교, 식생활도 반영됐다. 무엇보다 생활 범위를 확대한 도래인들의 ‘프런티어정신’이 마쓰리에서는 중요하다. 일본인들의 선조는 한반도와 깊이 연결돼 있다는 게 마쓰리에서도 확인된다. 마쓰리의 의식형태 등을 보면 어느나라에서 온 것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한국축제 식민지시대에 다 없어져 그런데도 한국에 지역축제는 적다. -한국에도 많았었지만 일본이 1920∼45년 식민지통치기간 한국에서의 ‘마쓰리’를 없앴다. 대신 일본계 신사를 지었다. 이 때 별신굿 등 한국의 전통 ‘마쓰리’들이 사라졌다. 마쓰리의 종류는 어느정도인가. -마쓰리는 혼자서도 한다. 보통 30만개라고 하지만 100만개 이상의 마쓰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마쓰리는 신사가 중심인데, 신사는 큰 것만 6만 9000여개다. 일년에 20회 이상 마쓰리를 하는 신사도 있다. 절이나 이벤트성 마쓰리는 여기서 파생됐다. 최근의 마쓰리 경향은. -풍류 마쓰리, 이른바 이벤트성 마쓰리가 늘고 있다. 대신 애니미즘적 마쓰리나 생활재현 마쓰리, 조상신 마쓰리 등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마쓰리에 여성 차별이 존재하나. -여성이 배제된 마쓰리가 많고 그 시대가 길었다. 오르는 것이 여성에게 금지된 산이 있을 정도였다. 한국은 무당이 굿의 주역인데, 일본은 그렇지 않은 게 많았다. 물론 모심기 마쓰리 등에서는 여성이 주역이었다. 반면 신사를 중심으로 한 마쓰리는 여성의 주체적 참여를 금지하는 곳이 많다. 마쓰리의 장래를 어떻게 보나. -조상신을 모시는 마쓰리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증가될 수도 있다. 전통적인 마쓰리문화는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과도기다. 자연재해극복과 마쓰리의 연관은. -지진과 관련은 적다. 하지만 자연재해의 공포를 극복하고, 힘을 모으기 위한 마쓰리는 많다. 일본사람 마음속엔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가 스며들어 있다. 한국인들은 밝고 재해에 대한 공포심은 적다. 외국의 침략에 대한 공포가 크다는 것이 일본과의 큰 차이다. ●강릉 단오제 일본 왕실 마쓰리 모태 한국문화가 마쓰리에 남아 있나. -너무나 많다. 유명한 아사쿠사 산샤마쓰리의 경우 가장 큰 미코시에는 조선의 신이 탄다. 강릉 단오제는 일본 왕실 마쓰리의 모태다. 줄다리기, 광대, 굿 등의 영향도 크다. 시가현 비와호 주변에선 가야금과 유사한 2000년전의 악기가 발견됐는데 그게 지금도 많은 마쓰리에서 쓰인다. 이와 같이 마쓰리를 연구하면 한반도와 연관 사실이 부각되기 때문에 일본 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는 것이다. 집단적 스트레스 해소책도 되나. -마쓰리는 개인이나 집단의 스트레스해소에 매우 좋다. 그래서 1년간 지역사회에서 마쓰리를 위해 돈을 모아 마쓰리에 쓰면서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지역사회 화합의 요소도 많다. 마쓰리와 ‘천황제’의 관련성은. -민속학과 마쓰리를 파고들면 일본인의 생활전체를 알 수 있다. 일본인의 정신성과 생활형식 등을 연결하는 구조다. 그런 일본인의 정신과 생활구조의 최상층부에 ‘천황’이 존재한다. 마쓰리의 학문적 연구는 적은데. -마쓰리 연구에 대한 지원이 적다. 조선(한반도)을 연구하는 게 많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마쓰리를 지원하는 단체도 없다.(상업적, 이벤트성 마쓰리는 많은 기업들이 지원)마쓰리를 통해 일본 문화의 기원을 알고, 동북아시아나 해양민족의 영향과 교류 등을 알아 거울로 삼으면 좋을텐데 정부차원의 지원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taei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8)목포항 100년의 진실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8)목포항 100년의 진실

    압록강의 신의주, 대동강의 진남포, 한강의 인천, 금강의 군산, 그리고 영산강에 목포가 건설되었다. 개항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 집중되었으니 이는 바다를 통해 들어온 해양제국들이 젖줄인 강을 따라서 식민 내륙까지 뻗어나려는 의도를 잘 보여준다.1897년 7월4일, 조선정부는 각국 사신 앞으로 동년 10월1일을 기해 목포와 진남포 두 항구를 외국통상을 위하여 개항하고 외국인 거주를 허가하는 칙령을 통보한다. ●1897년 10월 자주적으로 개항 청일전쟁 승리의 여세를 몰아서 이노우에(井上馨)영사는 1895년 1월6일 기선을 타고 인천을 떠나 약 한달반 동안 서남해안을 시찰하고 현재의 목포가 가장 합당한 지역임을 건의한다. 그러나 일본의 외압과 무관하게 개항 초기는 아직은 대한제국기로서 제한적이나마 자주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일본의 압력에 의해 개항이 서둘러지기는 했으나 상업을 확장하여 민국의 이익을 발달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칙령에 의해 자주적으로 개항한 셈이다. 목포의 출발은 매우 활기찼다. 자주적이었던 만큼 초기 건설도 일본 뜻대로 되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힘이 미쳤기 때문. 조계지 이외의 도시건설은 전적으로 조선인 손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헌병대목포분견소가 들어서서 위압적으로 나선다. 마침내 1906년에 목포주재 일본 이사청 이사관인 와카야마(若松兎三郞)는 각국 거류지에 관한 권한을 빼앗아 간다. 이로써 목포개항장은 일본인의 수중으로 떨어지고 만다. 한일합병이 되자 일제는 가장 먼저 시가지를 33정 51구획의 일본식으로 바꾼다. 마치(町)는 일본인 거리, 한국인거리에는 동(洞)을 붙여 이름에서부터 차별한다. 즉 목포는 도시계획상의 이중성을 갖고 태어났다. 서울 북촌의 양반, 남촌의 일본인처럼 일본마을(각국공동거류지역)과 조선마을(옛 목포부)로 나뉜다.‘제국주의신도시’ 목포출신의 동반작가 박화성은 데뷔작 ‘추석전야’에서 ‘남편으로는 늘비한 일인의 긔와집이오 중앙으로는 초가와 넷 긔와집이 섯겨있고, 동북으로는 수림 중에 서양인의 집과 남녀학교와 예배당이 솟아있는 외에 몇 긔와집을 내놓고는 땅에 붙은 초가뿐이다. 다시 건너편 유달산을 보자, 집은 돌틈에 구멍만 빤히 뚫러진 도야지막같은 초막들이 산을 덮어 완전히 빈민굴이다.’고 하였다. 일본과 한국으로 분명하게 갈려진 목포시의 이중적 성격을 주목한 고석규(목포대·‘근대도시 목포의 역사 공간 문화’의 저자) 교수는 ‘일제 강점기 서울을 비롯한 식민지 근대도시는 왜곡된 근대 도시화가 만들어놓은 공간의 이중성과 식민지라는 억압구도가 낳은 대중문화의 이율배반성, 신파성을 동시에 갖는 기이한 도시’라고 압축정리한 바 있다. ●바다는 강을 잃고 강은 바다를 잃어… 목포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산강을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하다. 그래서 영산포 북관정에서 목포하구언까지 내려가는 뱃길을 택하였다. 마침 영산강살리기운동이 한창 벌어지면서 도지사 이하 여러 기관장들이 탄 배에 동승하였다. 배는 영산강을 내려가다 영암 몽탄나루에서 잠시 쉬고 다시 유장하게 흘러가다 하구언에서 막혔다. 그쯤에서 전남도청 이전부지인 ‘남악신도시’가 강가에 보인다. 다시 말하여, 목포는 영산강이 바다와 만나는 길목에 자리잡은 요충지인데 바다는 강을 잃고, 강은 바다를 잃어 엉망이 돼버렸다. 바닷배가 오르락거리면서 바다와 직접적으로 통하는 도시였던 광주시도 바다는커녕 강물조차도 끊긴 단절의 도읍이 되고 말았다. 일찍이 이중환도 택지리에서 ‘영산강은 서쪽으로 흘러 무안 목포에 이르는데…강 건너는 큰 평야를 이뤄…풍기가 화창하고 땅은 넓고 물자도 넉넉하여 서남쪽 강과 바다는 운수의 이익을 통제하여 광주와 함께 명읍이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광주를 오로지 내륙도시로만 간주함은 대단히 그릇된 시각이며, 하구언만 터진다면 충분히 해양연계도시로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 ●일본인·조선인 마을 차별 심각 목포는 발전을 거듭했다. 전남의 현관이요 물산집합의 중심지로 조선에서는 제3위를 점할 만한 중요항이자 상업의 요지로 자리잡았다.1930년대에 인구 6만을 돌파하였다. 전남에서는 최초 최대로 근대문명의 세례를 받으며 전국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앞서 있었다. 그러나 그 세례는 사람이나 구역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내려졌던 것은 아니다. 차별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특히 일본과 조선인마을에 대한 차별은 일제강점기 목포도시화의 주요특성이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살기 편하도록 도시를 꾸몄다. 정거장, 관청, 은행, 학교, 시장 그밖에 근대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주요기관을 자신들과 가깝고 편리한 곳에 세웠다. 상하수도, 도로포장, 교통통신, 전기, 가스, 보건, 위생 등도 예외없이 일본인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그네들 거리는 짜임새 있고 깨끗하고 편리하였다. 반면에 조선인거리는 무참하기 그지없었다. 농촌에서 패잔한 무리와 봇짐행상들이 방황하는 곳이 상업도시 목포항의 이면이었다. 청년은 생선장수·지게벌이, 여자는 덕장수·고구마장사, 소년은 겐마이빵·덴뿌라·수건양말장사, 소녀는 콩기름·나물장사 등으로 길거리에 나섰다. 이들은 교통정리를 한답시고 내쫓는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가련한 신세였다.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걸인도 무리지어 나다녔다. 엄청난 숫자의 유곽거리가 존재하여 창녀들이 득실대고 성병이 만연하였다.‘항구의 낭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비참하였다. ●목포시내는 ‘거리 박물관’ 영산강하구언에서부터 찻길을 내달리며 고 교수는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목포시 구분법을 제시하였다.“영산강변의 전남도청부지가 21세기형이라면,1980년대 매립지에 1990년대 세워진 하당신도시는 합리주의식이지요. 신식모텔들이 아파트와 공존하는 90년대식 합리주의의 거리를 벗어나면 국립해양유물전시관 같은 공공시설이 몰려있는 문화의 거리가 나오지요. 세계은행(IBRD)차관으로 만들어진 1970년대식 거리가 나오는데 보행자중심 거리를 만든다고 어정쩡하게 T자형도로를 만들어 어데서고 직진이 불가합니다. 저기에 삼학도가 보이고 유달산이 있지요. 거기가 조선인과 일본인거리가 판이하게 갈렸던 목포시내지요.” 이쯤되면 ‘거리박물관’이다. 일본식과 한국식,70년대식,80년대식,90년대식,21세기식이 병존하면서 차곡차곡 쌓여져서 항구도시를 만들어 왔다. 지난 백년사를 웅변해주는 목포답사 1번지는 오늘날 목포문화원으로 쓰이는 일본영사관이 아닐까.1900년(고종37년) 러시아건축가의 손으로 지어졌는 바, 최고급 대리석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는 등 백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견고한 모습 그대로다. 이곳에서는 동척을 비롯하여 일본인 조차지역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권위적인 위치에 도도하게 자리매김하였다. 목포이사청, 목포부청사 등으로 쓰이다가 광복 후에는 시청, 시립도서관 등으로 이용되었다. 문화원에서 조금 내려오니 동양척식회사 석조건물이 나온다.1920년대 영산포에서 엄청 몹쓸 짓하다가 이리로 옮겨 왔다고 전해지는 바, 남도의 고혈을 빨아먹고 성장한 기관이다. 동척 목포지점은 전국 최대의 소작료를 거두어들였으며 부동산 담보 대부, 고리대 등으로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었다.1930년대 유행한 이난영의 노래 ‘목포의 눈물’은 이같은 슬픈 사연을 안고 흐르는 것이리라. 해군 소유였다가 철폐될 위기에 몰린 것을 시민들이 되살려서 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할 채비를 갖추고 있으니 동척 부산지점과 더불어 전국에 유일하게 남았다. 백미는 역시 이훈동정원이다.1999평이라는데 우치다니 만빼이란 사람이 1930년대에 세웠다. 광복 이후에 해양경비대가 주둔하였고, 국회의원 박기배 소유를 거쳐서 1947년에 조선내화를 설립한 이훈동(1917년 해남출신)에게 넘어갔다. 목포의 진산인 유달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았으며 입구정원, 알뜰정원, 임천정원, 후원 등으로 이루어진다. 남도에서 가장 큰 정원으로 나무 종류만 113종에 이르러 난대지방식물의 보고다. 일본식 석등은 물론이고 일본식다원정, 연못, 석탑 등이 배치되어 있다. 정원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노적봉이 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적을 시험할 요량으로 위장볏가리를 두르게 하여 싸움 한번 없이 물리쳤다는 전설의 주인공이 왜식정원을 굽어보고 있다. 실로 아이로니컬한 대목이다. ●충무공 진지가 목화수탈 현장으로 노적봉에 오르니 코 앞에 고하도가 보인다. 이순신이 명량대첩 후에 1597년 10월29일 고하도로 진을 옮겨 군량미를 비축하고 전력을 재정비하였다가 이듬해 2월17일 고금도로 진을 옮길 때까지 108일 동안의 진영터다.1722년, 통제사 오중주와 충무공의 5대손 이봉상이 유허지에 이충무공 고하도유적비를 세워 오늘에 이른다. 고하도선착장에는 또 하나의 비석이 있으니 조선육지면발상지비다.1899년 일본영사가 미국산 육지면을 시험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재배에 성공하면서 전국으로 육지면이 퍼졌다. 수확기에는 목포항이 온통 흰 목화로 뒤덮였으니 쌀과 더불어 남도수탈의 상징이었다. 1936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영사의 공적비까지 세웠으니 충무공의 진지가 목화수탈의 현장으로 뒤바뀐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목포 100년은 이렇게 슬프게 흘러갔다. 누가 식민지근대를 이야기하는가. 그 누가 계량적 통계수치만으로 식민지축적론과 식민지개발론을 논하는가. 식민지시대의 인간군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항구의 삶은 식민지의 자본축적이 오로지 일본인만을 위한 것이었고 그 열매는 조선인과는 무관함을 웅변한다. 목포항에 산처럼 쌓였던 쌀과 솜은 남도 백성 수탈의 상징이었다. 그러한즉,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서 강조되고 있는 식민지근대론의 허구와 결과론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국내 일부의 탁상이론가들에게 목포항 방문을 강권하고 싶다. 목포항을 1시간만 걷는다면 근대적 개발이 오로지 민족차별 및 착취를 바탕으로 한 날조였음을 금세 느낄 수 있으리라.
  • 조영남 “독도 대처 일본이 한 수 위”

    |도쿄 이춘규특파원|‘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이란 책을 펴낸 가수 조영남씨가 독도 및 교과서문제와 관련,“냉정히 대처하는 일본을 보면 일본쪽이 한수 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조씨는 24일 보도된 산케이신문과 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양국에 대해 “서로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상대의 기분을 이해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무리한 요구를 하면 아무런 진전도 없다.”고 밝혔다. 책의 일본어판 출간을 계기로 일본을 찾은 조씨는 회견에서 “사물을 보는 관점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출간 이유를 밝혔다. 그는 2차대전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가 본 소감에서 “속았다는 생각이었다. 일반 신사와 다르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에서 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 대단한 장소로 세뇌됐었다.”고 말했다. 또 “일본인은 자신의 선조가 아무리 심한 일을 했어도 선조이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참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반면 우리는 범죄자로 취급하니까 합사와 참배는 괘씸하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하나의 사물을 놓고 지배한 쪽과 (지배)당한 쪽은 서로의 입장을 진짜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방일, 국회 연설 장면을 TV로 시청하다가 “회의장에서 18회나 박수가 나왔다. 한국이라면 외국의 원수가 국회 연설해도 최초와 마지막에 박수하는 정도다. 한국인으로서 기뻤다. 이것으로 ‘친일선언’했다.”고 친일선언 배경을 설명했다. 친일선언에 앞선 지일선언은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이 4강에 진출할 때 일본인들의 진지한 응원을 보고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taein@seoul.co.kr
  • [MLB] ‘코리안 호투’… 뉴요커 넋 잃다

    ‘코리안 빅리거’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와 서재응(28·뉴욕 메츠)이 각각 올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며 야구에 죽고 사는 뉴요커들의 혼을 빼놓았다.24일 열린 미국프로야구경기에서 박찬호는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의 안방 양키스타디움에서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위풍당당한 피칭으로 시즌 2승째를 낚아내며 양키팬들의 야유를 잠재웠다. 특히 양키스의 4번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를 3타수 무안타로 꽁꽁 틀어막아 한-일 자존심 대결에서도 완승을 거뒀다. 올시즌 빅리그에 첫 선을 보인 서재응은 ‘돌풍의 팀’ 워싱턴 내셔널스를 홈구장 셰이스타디움으로 불러들여 6이닝을 틀어막아 뉴욕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3이닝 4자책점으로 강판된 워싱턴의 일본인 투수 오카 도모카즈(4자책점)에게도 KO승을 거둔 셈.‘막내’인 최희섭(26·LA 다저스)도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3경기 연속안타 행진을 이어갔다. ●박찬호-텍사스 입단 최고 구위 텍사스 레인저스와 뉴욕 양키스의 시즌 2차전이 벌어진 양키스타디움. 알렉스 로드리게스-제이슨 지암비-호르헤 포사다를 2-3 풀카운트 끝에 3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운 박찬호(텍사스)는 오른손을 불끈 쥐었다.2002년 텍사스 입단뒤 최고의 구위를 뽐낸 박찬호가 ‘올스타 군단’ 양키스의 강타선을 상대로 투심패스트볼과 올시즌 최고 구속인 153㎞의 강속구(포심패스트볼)를 곁들여 시즌 2승을 낚아내 누구도 ‘코리안특급’의 부활에 토를 달지 못하게 만들었다. 박찬호는 24일 양키스와의 원정경기에서 7회 2사까지 단 3안타만을 허용하면서 3안타 1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묶었다. 볼넷 5개를 내줬지만 고비마다 6개의 탈삼진을 뽑아내 위기를 넘겼다. 시즌 최다인 122개의 공을 던졌고 66개의 스트라이크를 기록했다. 시즌 2승1패로 방어율도 5.40에서 4.24로 뚝 떨어졌다. 6-1로 앞선 6회말. 투아웃을 손쉽게 잡은 박찬호는 로드리게스와 지암비에게 연속안타를 내줘 1·2루의 위기에 몰렸다. 만루를 허용한다면 퀄리티 스타트는 물론 승리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영원한 사부’ 오렐 허사이져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뛰어올라갔다. 교체도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돌아온 에이스에 대한 벤치의 믿음은 요지부동. 후속 호르헤 포사다 타석에서 포수 샌디 알로마 주니어가 공을 놓쳐 1,3루의 위기까지 몰렸지만 박찬호는 2-3 풀카운트에서 허를 찌르는 132㎞의 낙차 큰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내 이닝을 끝냈다. 경기를 마친 뒤 벅 쇼월터 감독은 “아주 날카로운 피칭이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타선도 초반부터 불방망이를 뿜어 박찬호의 짐을 덜어줬다. 케빈 멘치와 데이비드 델루치, 마크 테세이라의 홈런포를 포함 장단 19안타를 작렬시켜 10-2로 대승을 거뒀다. ●서재응-마이너 퇴출 한 분풀이 코칭스태프와의 불화와 시범경기 부진으로 마이너리그로 쫓겨가 절치부심하던 서재응은 올시즌 빅리그 첫 등판에서 ‘컨트롤 마법사’다운 완벽한 제구로 첫 승을 신고하며 붙박이 선발의 청신호를 켰다. 전날 이시이 가즈히사의 부상으로 메이저리그로 전격 승격한 서재응은 셰이스타디움에서 열린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6이닝동안 6안타 무사사구 1실점으로 상대타선을 봉쇄했다. 투구수 79개 가운데 스트라이크가 54개일 만큼 흠 잡을 데 없는 피칭으로 1승무패에 방어율 1.50을 기록했다. 3회까지는 일본인 투수 오카 도모카즈(워싱턴)와 서재응의 팽팽한 투수전. 오카는 4회말 무사만루에서 적시타를 두들겨 맞고 강판됐지만 구석구석을 찌르는 서재응의 제구력은 이닝을 거듭할수록 위력을 발휘했다.1회 호세 비드로에게 내야안타를 허용한 뒤 4회까지 무안타의 퍼펙트 피칭을 했고,6회 2사 1,2루에서 카를로스 바에르가에게 우전 적시타로 실점을 했지만, 후속 브라이언 슈나이더를 삼진으로 솎아냈다. 서재응은 6-0으로 앞선 5회초 무사 2,3루에서는 구원투수 조 호건을 상대로 2타점짜리 적시타를 터뜨려 본인의 첫 승을 자축했다. 이날 경기에선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투수끼리 임무 교대를 하는 진기한 장면도 연출됐다.6회까지 79개 밖에 던지지 않았지만 10-1로 벌어져 승리가 굳어졌고 나흘 만의 등판임을 감안, 메츠 벤치에선 투수를 구대성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구대성은 1이닝 동안 3실점으로 무너져 무자책점 행진을 마감했다. 시즌 방어율 5.40. 메츠는 10-5로 승리를 거둬 내셔널리그 공동2위(10승8패)에 올랐다. ●최희섭-3게임 연속 안타 ‘빅초이’ 최희섭은 3경기 연속안타를 터트리며 타격감을 조율했다. 쿠어스필드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경기에 1루수 겸 2번타자로 선발출장해 3타수 1안타 1볼넷 2득점으로 찬스를 만드는 ‘테이블세터’로서 100% 제 몫을 해낸 것. 시즌 타율도 .211에서 220으로 끌어올렸다. 최희섭은 1회 콜로라도의 선발 숀 차콘에게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지만,0-7로 뒤진 3회초 1사 1루에서 깔끔한 우전안타로 추격의 발판을 만들었고, 밀튼 브래들리의 안타때 득점에 성공했다. 선두타자로 나선 5회에는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한 뒤 리키 라데의 적시타로 또 한번 홈을 밟았다. 다저스는 뒤늦게 맹추격을 펼쳤지만 6-8로 무릎을 꿇었고, 김병현(26·콜로라도 로키스)은 출격하지 않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우리네 恨에는 복수 아닌 소망 담겨”

    “우리와 일본의 ‘한’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일본은 ‘우라미’ 즉 ‘복수의 한’이지요. 군국주의로 갑니다. 칼바람과 그로테스크, 에로티시즘과 난센스로 가고 있지요. 반면 우리는 ‘소망의 한’입니다. 가난과 무지를 극복하려는, 미래 지향적이고 탐구의 한의 담겨 있습니다.” 원로 소설가 박경리(79)씨. 따뜻한 봄날을 맞아 모처럼 일반인들을 상대로 문학강연을 했다. 주제는 ‘문학의 향기-박경리의 공간’이었다. 강연 도중 일본과 중국 등 이웃나라의 최근 행태에 대해 거침없는 쓴소리를 던져 관심을 모았다. 지난 23일 강원도 원주의 토지문화관 1층 강의실. 대학교수와 문학지망생 등 전국에서 150여명의 문학팬들이 모였다. 토지문화관 바로 옆 자택을 나오면서 박씨는 “3년 만에 이런 자리에 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단에 오른 그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이다. 주제는 문학강연이지만 생명과 건강 얘기를 좀 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물질과 영혼, 시·공간 속에서의 생명의 본질을 어떻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자주 던졌다. 또한 세상은 물과 불, 창과 방패같은 영원한 상극이 있듯이 인간은 어차피 ‘모순’ 속에서 행복과 불행, 죽음과 탄생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양은 이러한 모순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결과를 얻기 위해 끝없이 전쟁과 살육을 벌여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인류는 이제 민족주의를 버려야 할 시점이며 통합을 안하면 멸망만 초래할 뿐.”이라면서 “하지만 일본 같은 나라가 있어서 세계 통합은 어렵다.”고 겨냥했다. 또 “이순신 장군처럼 민족을 지키는 것은 위대한 도덕이지만 (일본처럼)남을 약탈하고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는 것은 인류의 죄악”이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얼마 전 일본 기자들이 집으로 찾아왔더군요. 그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난 반일(反日)작가이지만, 반일본인(反日本人)은 아니다. 일본인도 인류의 차원에서 보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느냐.‘사람’이란 이름으로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한국과 일본의 ‘한’을 비교한 그는 “일제 때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우리 지식인 스스로가 우리의 한을 부정적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미신을 나쁜 것으로, 모순이자 자가당착이라고 비난하는 우를 범했다.”고 꼬집어 참석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박씨는 또한 “중국과 일본은 패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생각보다 엄청난 문화유산과 철학을 가졌다. 시(詩)만 하더라도 보들레르보다 이백의 시가 훨씬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하지만 현재의 중국은 단절됐다. 위대한 유산·사상들이 유럽의 공산주의가 들어서면서 전부 미쳐버렸다. 그런데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중국의 젊은이들은 무식하다.”고 안타까워했다. 1시간30분 동안 강연을 마친 후 약 20분 동안 별도의 만남을 가졌다. 우선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자 “아냐, 안 좋아. 그 전에는 뒷산에 올라가 가지치기도 했거든. 지금은 못해, 농사도 500평 있잖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추농사는 20년 동안 지었어. 뒷산에는 5000그루 나무도 심었고.”라며 웃었다. 이어 담배 한대를 피워물었다. 하루 몇갑 피우냐고 하자 “담배는 내 친구야.”라고만 대답했다.TV드라마 ‘토지’를 보는지 궁금했다.“처음 ‘토지’를 쓸 때에는 열 가닥으로 베틀을 짰지만 지금은 천 가닥으로 베틀을 짜야 할 만큼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제대로 (방송을)하려면 10년이 걸릴 텐데 생략이 있게 마련 아니냐.”고 했다. 또 “돈이 필요해서 (방송국에)팔았으면 잊어버려야 한다. 그 돈으로 (토지문화관 옆에)창작시설을 지었다.”며 또 한번 웃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세상돌아가는 얘기를 어느정도 알고 있다면서 “행정수도를 옮기면 바다에서 얼마나 많은 모래를 퍼내야 하는지 걱정”이라면서 결국 바다와 땅이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계절 중 봄이 제일 좋아.”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토지문화관 뒤뜰로 총총히 걸어나갔다. 팔순을 코앞에 둔 박씨의 뒷모습에는 우리 문학의 큰별다운 총기가 봄볕에 유난히 빛나보였다. 토지문화관 사무실에 걸려 있는 박씨의 최근 시(우리들의 시간)가 눈에 들어왔다. ‘목에 힘주다 보면/문틀에 머리 부딪쳐 혹이 생긴다/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뽐내어 본들 徒勞無益時間(도로무익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 日보선 자민당 석권

    |도쿄 이춘규특파원|24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보궐선거 결과 자민당이 미야기2구와 후쿠오카2구를 모두 석권했다. 이에 따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정권에 더욱 힘이 실리면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도 가속화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후쿠오카2구의 야마사키 다쿠가 당선된 것은 향후 북한과 일본 관계 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적 맹우인 야마사키는 2002년과 지난해 두 차례의 북·일 정상회담 성사를 막후에서 일구어낸 인물이다. 따라서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담당 보좌관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큰 그가 정치일선에 복귀,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 가짜논란 등으로 꽉 막힌 북·일 관계에 숨통 역할을 해 줄지가 큰 관심사다. 일각에서는 야마사키 당선시 “야마사키가 나서 3차 북·일 정상회담을 중재, 북·일 관계의 새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돈다. 야마사키는 올해 68세로 이번 당선으로 11선 의원이 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사업민영화’ 등 국내 정책 추진에 힘을 받게 될 전망이다. 대외적으로는 주일미군 재편 뿐 아니라 북한은 물론 중국과 한국 등과의 외교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여유를 얻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 흐름이 거세질 것이란 외부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지난해 참의원선거에서 약진,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에 젖어 있던 민주당과 오카다 가쓰야 대표는 일대 시련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2개 선거구는 2003년 중의원선거 당시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당선됐던 곳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의석 2곳을 모두 잃은 형국이다. 따라서 오카다 대표는 책임론에 휘말려들고, 당 장악력도 급격히 약해질 전망이다. taein@seoul.co.kr
  • 日 가나가와현 지사 3·1운동기념관 참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및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와 국제 자매결연도시인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마쓰자와 시케후미(松澤成文) 지사가 22일 오전 3·1운동 순국기념관이 있는 화성 제암리를 방문, 일제만행으로 숨진 23인의 묘역에 헌화 분향했다. 마쓰자와 지사는 헌화 분향 후 “일본인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을 애도했다.”고 밝히고 “국가 사이에는 좋은 때도 있고 나쁜 때도 있으며 나는 역사적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기도와 가나가와현의 재매결연 15주년을 맞아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시관에 들러 방문록에 ‘우정(友情)’이라고 적고 20여분만에 제암리를 떠났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씨줄날줄] 다카마쓰塚/이용원 논설위원

    1972년 3월 말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나라현 아스카촌에 있는 다카마쓰(高松)총을 발굴한 결과 내부에서 극채색 벽화와 사신도·성수도(星宿圖·별자리 그림)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채색 고분벽화가 나온 것은 처음이어서 언론은 ‘전후(1945년) 최대의 발굴’이라며 연일 1면 톱을 장식했다. 예컨대 아사히신문은 첫 보도(3월27일자)에서 제목을 ‘법륭사급 벽화 발견’이라고 뽑았으니 흥분의 정도를 짐작할 만하다.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렸다는 법륭사 금당벽화는, 프랑스의 지성 앙드레 말로가 일찍이 ‘모나리자’‘미로의 비너스’와 더불어 세계 3대 미술품으로 꼽은 작품이다. 최초의 흥분이 가라앉자 이 고분에 관한 학술 연구가 착착 진행됐다. 먼저 고분벽화의 인물군상이 주목 받았다. 벽화에 등장한 여인들은 빨강·녹색 등이 섞인 색동 주름치마를 입었고, 저고리는 치마 위로 길게 늘어뜨렸다. 헤어스타일도 앞쪽에서 추켜올려 뒤에서 묶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여인상이었다. 청룡·백호·주작·현무를 그린 네 벽의 사신도도 고구려 양식을 빼닮았다. 무덤을 조성한 시기는 고구려 고분과 비교해 7세기 말이나 8세기 초로 인정됐다. 아울러 벽화를 그린 이는 고구려에서 건너온 1세대 도래인이라고 보았다. 문제는 묻힌 이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었다. 무덤의 형식은 전통문화 중에서도 보수성이 가장 강해 쉽게 바뀌지 않는 데다, 거대 고분을 조성해 벽화까지 그려 넣을 정도라면 강력한 지배력을 가진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다카마쓰총을 고구려 고분으로 인정하면 7∼8세기 나라현 일대에 고구려계 정치집단이 존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본 학계는 다카마쓰총을 고구려 고분으로 선뜻 규정하지 않고 고구려 출신 일본인이 묻혔다거나, 나라현 일대가 백제 도래인의 집단거주지였음을 들어 백제계 일본인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다카마쓰총을 발굴한 지 26년 뒤에는 그 남쪽으로 1㎞쯤 떨어진 기토라 고분에서도 성수도가 발견됐다. 연구 결과 그 성수도는 기원을 전후해 평양쯤에서 관측한 것으로 확인됐다. 쌍영총 벽화를 그린 안료가 다카마쓰총 벽화에 사용된 것과 같다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사 결과는 다카마쓰총이 고구려 고분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사색기행/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영어 표현 중에 “You are what you eat.”(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육신이 그 사람이 과거에 먹은 것들로 이뤄져 있듯이, 인간의 지성 혹은 감성은 그 사람이 과거에 머리와 가슴으로 섭취한 정신적 자양분으로 이뤄져 있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라는 존재를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음식, 운동, 아니면 독서…. 인문, 사회, 우주, 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글쓰기 작업을 펼치는 일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65)는 인간 존재의 근본을 만드는 것은 바로 ‘여행’이라고 단언한다. 지독한 여행마니아인 그는 여행에 얽힌 글들을 모은 ‘사색기행(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이라는 책을 통해 여행이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밝힌다. 일상성에 지배되는 익숙한 현실 속에선 어떤 의식의 변화도 경험할 수 없다. 지성도 감성도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일상을 탈피한 여행, 그 과정에서 얻는 모든 자극은 우리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뿐만 아니라 지적·정서적 변화를 몰고 온다. 인간은 바로 이런 변화들이 쌓여 만들어진 존재다. 저자는 인생의 고비마다 여행을 통해 의식의 전환을 이뤘다고 말한다. 그런 ‘전환’의 예는 이 책 9장에서 다루는 이스라엘 여행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1972년 이스라엘 여행 당시 이스라엘 정부가 마련한 일정대로 견학했을 때와 혼자 현지에 남아 둘러볼 때의 시각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고 고백한다.“처음 이스라엘을 방문해 예루살렘 구시가지(팔레스타인인 지역)에 들어가 아랍인들 속에 섞여들자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정부 초청 투어로 움직이는 동안 어느새 의식이 이스라엘 쪽으로 기울었는지 팔레스타인사람들이 모두 외계인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을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인간으로 보였다. 선량한 이웃이었다.” 이같은 체험은 훗날 저자가 ‘팔레스타인 보고’라는 글을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나아가 2001년 9·11 테러 직후에는 ‘자폭테러 연구’라는 글을 써 ‘미국의 십자군 전쟁’에 반대하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여행기의 형태를 띤 문명탐사기이기도 하다. 저자의 여행 체험은 다양한 시공간에 걸친다. 책에는 문명으로부터 고립된 마게시마(馬毛島)라는 무인도에서 현대 도시문명의 첨단을 달리는 뉴욕의 맨해튼까지, 최고급 와인 산지인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카브(지하 와인 저장고)에서 피로 얼룩진 팔레스타인,8세기 종교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아토스 반도의 그리스정교 예배당에 이르기까지 수십년에 걸친 여행 경험이 녹아있다. 이 책은 이같은 여행을 통해 깊어진 저자의 내적 통찰의 세계에 동참할 것을 권한다. 저자는 마쿠노우치(연극 막간에 먹는 주먹밥에 반찬을 곁들인 도시락)를 먹을 때처럼 남기지 않고 먹어도 좋고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먹어도 좋다는 비유를 들며 독서법까지 친절하게 일러준다.2만 1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아이고 죽겠다’하면 일본인 깜짝 놀라

    “한국 문화를 느끼면서 배운 한국어를 일본인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축구 국가대표 출신 최성용 선수의 부인인 일본인 탤런트 아베 미호코(30)가 일본에서 한국어 교본을 펴낸다. 책은 ‘아베 미호코의 사랑해요!한국어’(아르크 펴냄)라는 제목으로 오는 25일 일본 현지에서 발행된다. ●“한국문화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 아베는 “일본내 한국어 교재에는 보통 직접 살면서 느낀 문화가 담겨있지 않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단어를 써야할지 설명되어 있지 않다.”면서 “한국인이 자주 일상에서 쓰는 한국말을 일본인이 가볍게 배울 수 있도록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한국 사람은 ‘밥 먹었어요?’라는 질문을 친한 사이에 인사말로 쓰는데 ‘배가 고프면 싸움을 할 수 없다.’는 격언을 쓰는 일본 사람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다.”라든지 “‘∼죽겠어’는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표현으로 한국인이 이 말을 쓸때 ‘죽는다고요?’라고 되묻지 말아야 한다.”는 식이다. 아베는 지난 2003년 12월 28일 최 선수와 결혼, 현재 경기 용인에 살고 있다. 그는 한국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직접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의 손길을 꼽았다. 아베는 “결혼 초기 경남 마산에 있는 시댁에서 한달 동안 살았는데 그때 시어머니가 된장, 간장 등을 손수 만드시는 것을 보고 감동 받았다.”면서 “일본에서는 대부분 장을 돈주고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접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아베는 당시 배운 떡볶이, 떡국, 미역국, 된장찌개, 김치찌개, 비빔국수, 잡채, 파전, 갈치조림, 약식 등 다양한 한국 음식의 조리법도 교본에 소개했다. ●“교본통해 한국·일본 좋은 친구 됐으면” 아베는 최근 한·일관계에 대한 생각을 묻자 “우리는 일본인이고 한국인이기 이전에 지구인으로 서로 존중해야 할 존재”라면서 “서로의 처지를 잘 생각해보고 대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이 더 좋은 친구가 되는데 교본이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생각뉴스] 美관리 “한국 관리들은 화끈…日은 표리부동”

    [생각뉴스] 美관리 “한국 관리들은 화끈…日은 표리부동”

    “일본 정부 인사들은 겉으론 싹싹해도 되는 일이 없고, 한국은 좀 거칠긴 해도 화끈해서 더 낫다.” 우리나라 외교관들은 요즘 들어 미국 정부 인사들로부터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부쩍 자주 듣는다고 한다. 협상에 임하는 한·일 양국 관리의 스타일을 미국 관리들이 나름대로 구분하고 있다는 얘기다. ●日과는 되는 일 없어 21일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가 기자에게 전한 미국 관리들의 ‘평론’은 이렇다.“일본 관리들은 앞에서는 ‘하이(예), 하이’하면서 아주 싹싹하게 하지만, 결국 되는 일은 별로 없더라. 그래서 미·일간에는 미해결 장기과제가 많은 것 같다. 한마디로, 일본에 대해서는 답답함(frustration)을 느낀다.”일본인 특유의 혼네(本音·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밖으로 드러나는 언행)가 외교무대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고, 이것을 미국 인사들도 체감하고 있다는 말이어서 흥미롭다. 반면 한국쪽에 대한 평은 이렇다.“한국 관리들은 협상 스타일이 거친(tough) 편이다. 하지만 결국 되는 일은 화끈하게 되더라. 한국과 협상하는 게 더 편하다.”특히 미국측은 국방 관련 협상 과정에서 이런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이 오히려 편해 하지만 ‘한국식’이 과연 국익면에서 유리한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다. 경희대 정진영 교수(국제정치학)는 “일본은 너무 꼼꼼하게 따져서 협상하기 어려운 반면, 한국은 쉽게 합의해주는 바람에 나중에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치밀함을 보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국대 법대 이용중 교수도 “외교관은 Yes(예)나 No(아니오)를 말하는 순간 이미 외교관이 아니라는 속설이 있는 만큼, 협상 테이블에서는 얼마간의 모호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방부 차관을 역임한 한림대 국제대학원 박용옥 교수는 “1980∼90년대 미국과 방위비 분담 같은 협상을 할 때에도 우리는 직설적으로 톡 까놓고 하는 스타일이었다.”면서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합리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명분을 들어 당당하게 설득하면 흔쾌하게 들어주는 자세를 취했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데스크시각] 일본축구의 북한기피증/곽영완 체육부장

    일본인들은 흔히 ‘사무라이 정신(武士道)’을 민족혼으로 강조한다.‘사무라이 정신’에는 의(義)와 용기(勇氣), 인(仁), 예의(禮儀), 명예(名譽) 등이 깃들어있다고 한다. 국제연합의 전신인 국제연맹 사무차장을 역임했고,1905년 미국의 중재로 일본에 유리하게 러·일전쟁을 마무리한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한 니토베 이나조가 1899년 미국에서 영어로 쓴 ‘사무라이(원제 BUSHIDO-The Soul of Japan)’란 책에 그렇게 나와 있다. 그는 “사무라이 정신은 12세기 바쿠후(幕府)시대 이후 일본의 통치이념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무성영화 시대 초기 일본 영화에서 보듯 훈도시 차림으로 몰려다니던 12세기 ‘사무라이’들에게 정말 의나 예의, 명예와 같은 ‘정신’이 있었는지부터 의문이 가지만 지금의 일본을 봐도 그런 정신세계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멋지게 포장하고 각색해서 그렇게 봐달라고 우기는 게 더 일본의 정신세계에 가깝다. 칼이야 차고 다녔을 테니 ‘침소봉대’라고 해도 좋겠다. 일본의 이런 ‘우기기’와 침소봉대 능력은 스스로를 부추기는 데뿐 아니라 남을 깎아내리는 데도 요긴하게 쓰인다. 태평양전쟁을 끝내게 한 원폭 피해에 대해서도 그 과정보다는 피해 사실만을 강조해서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억지를 부리는 게 일본이다. 최근 불거져 나온 북한과의 ‘축구 전쟁’도 하나의 사례다. 일본은 오는 6월8일 평양에서 치러질 북한과의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원정경기를 앞두고 예의 침소봉대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평양에서 치러진 북한-이란전에서 북한 관중들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경기장에 난입한 게 원인이긴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문제를 확대시키고 있다. 처음엔 관중 피해를 없애기 위해 제3국에서 경기를 하자더니, 곧 무관중 경기를 주장했고, 최근엔 조류독감 때문에 북한에선 경기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등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실소마저 자아내는 이같은 주장은 아마도 평양에서 하면 질지도 모른다는 저변의 불안감 때문에 제기되는 것 같다. 북한 원정경기가 일본의 본선 진출을 가늠할 중요한 고비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일본으로선 북한을 반드시 꺾어야 본선 직행티켓 2장 가운데 하나를 확보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진 절차와 규정을 외면하고 억지나 떼를 써서 해결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일본이 퍼트린 여러가지 설이 현실로 드러날 가능성도 적다. 경기를 주관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측도 “제3국에서의 경기는 생각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은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본은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었다. 돈밖에 더 있겠는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 좌절될 위기에 처하자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지원을 위해 돈을 쓰겠다는 약삭빠른 일본이 축구라고 해서 돈쓸 생각을 안 할 리는 만무하다. 일본축구협회 가와부치 사부로 회장은 북한-일본전을 치를 장소로 제3국인 말레이시아를 거론하며 입장료 수입은 북한측에 모두 줄 수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북한은 돈 때문에 움직인 적이 별로 없다. 평양에서 경기를 치러도 어차피 조선(북한)축구협회가 수입을 챙길 수는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기댈 곳은 국제축구연맹(FIFA)뿐. 일본축구협회는 이미 이달 초 일본을 방문한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을 상대로 강력한 로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FIFA도 돈에 관한 한 쉽게 통할 곳은 아니다.FIFA는 월드컵 수입 등으로 국제 스포츠 기구 가운데 가장 돈이 넘쳐나는 곳이다. 일본에 남은 선택은 예정대로 평양행을 택하거나, 지금까지와 같이 계속 우기거나 둘 중의 하나다.FIFA가 4월 내에 결정한다고 했으니 우길 시간이 좀더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몰라도 계속 억지를 부리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정정당당하게 평양을 방문하겠다고 밝히는 게 순리 아닐까. 역시 ‘사무라이 정신’은 오래된 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곽영완 체육부장 kwyoung@seoul.co.kr
  • [이사람] 천년 전통 황칠공예 맥 잇는 구영국씨

    [이사람] 천년 전통 황칠공예 맥 잇는 구영국씨

    ‘그대 아니 보았더냐 궁복(장보고의 호)산 가득한 황금빛 액/맑고 고와 반짝 반짝 빛이 나네/껍질 벗겨 즙을 받기 옻칠 받듯 하네/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잔 넘칠 정도/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나니/잘 익은 치자나무 어찌 이와 견줄소냐‘ 정약용의 ‘황칠’이란 시다. 다산이 시를 지을 정도로 칭송한 황칠은 200년전 맥이 끊긴 우리의 전통 칠공예다. 황칠나무 수액에서 난 황금빛 도료를 칠하면 금박을 입힌 듯 은은한 황금색이 나고, 내수·내열·내구성이 강해진다. 좀과 녹이 슬지 않아 몇백년이 지나도 투명한 금빛이 유지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원적외선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안식향이 나오고, 전자파는 흡수한다. 삼국시대부터 쓰였으나, 맥이 끊어진 황칠, 이를 되살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구영국(45)씨. 그는 황칠의 빼어난 화려함에 반해 26년째 변변한 스승과 참고서적도 없이 황칠공예를 연구해온 장인이다. ●황칠나무 수액에서 색을 뽑다 황칠은 황칠나무 껍질에 상처를 입혀 뽑아 낸 수액이다. 처음에는 유백색이던 액이 시간이 지나면 공기 중에서 서서히 황색으로 바뀌는데 이 진을 없애고 정제해 만든 것이 황칠이다. 황칠나무는 거제도, 완도, 보길도, 홍도, 제주도, 전남 고흥과 해남 두륜산 등 남서해안 도서지역에서 자란다.15년 이상 자라야 수액 채취가 가능하고, 채취량은 나무당 평균 8.6g에 지나지 않는다. 아예 황칠액이 나오지 않는 황칠나무도 많아 황칠은 원료 자체를 구하기 매우 힘들다. 황칠공예가 사라진 것은 수액 채취량이 극소량이었던 데다 장인에서 장인으로만 이어지던 비법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황칠은 그 희귀함 때문에 병자호란 이후 조선 왕실에서조차 사용이 금지되고 중국 베이징 자금성의 천장, 벽, 용상 등에 황제의 명예를 높이는 데만 사용됐다. 중국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황칠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초를 넣어 나무를 말라죽게 하거나 밤에 몰래 도끼로 아예 베어내 버리기도 했다(목민심서 ‘산림’편). 중국에 황칠을 갖다 바치기에도 모자라자 조선에서는 치자물에 들기름을 발라 황칠을 대신했다 한다. ●우리 전통 황칠, 일본서 연구되는데… 그는 황칠보다 먼저 나전칠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79년,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정말 사람 손으로 만들었을까 싶을 만큼 번쩍번쩍 빛나는 것을 봤다.“지독히도 화려했던 물건은 나전칠기였죠.”그 아름다움은 한 청년을 평생동안 칠공예에 입문하게 한다. 정계훈, 신강작, 이택영 선생 등 공예의 장인들에게 배우던 시절에는 밤잠을 잊고 전통공예 디자인에만 몰두했다. 선생의 집에서 먹고 자면서 1년 동안 학그림만 그리며 수련했다. 그렇게 나전칠기와 옻칠공예를 하던 구씨는 85년 더 좋은 칠이 없을까 고민하다 전북 김제의 금산사를 찾는다. 노스님은 “백제시대부터 전래된, 사람의 손으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신비의 도료가 있다.”면서 황칠을 소개했다. 구하기 힘들고 돈이 많이 들어 힘들 테지만 한국 칠공예에 족적을 남길 마음이 있다면 도전해 보라고 덧붙였다. 스님이 알려준 황칠은 단박에 그의 맘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황칠을 아는 사람도, 구체적인 기록도 없었다. 혼자서 조약돌, 나무, 종이 등 온갖 물건에 칠해가며 황칠을 연구했다. 그러다 90년 일본 구주공대에 시찰을 갔다가 그곳의 일본인 교수가 황칠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 한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한다.“분명 우리나라에서 건너갔는데 한국에서는 맥이 끊긴 전통공예가 일본에서 자세히 연구된 것을 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일본의 연구에 자극받은 그는 해외에 활발하게 우리의 황칠을 알리기 시작한다. 밀라노·네덜란드·벨기에·미국·브라질 등지에서 열린 박람회 등에 황칠(Gold Lacquer) 공예작품을 출품했다. 외국인들은 처음에 금을 입힌 줄 알다가 나무 수액이 황금빛을 내는 것을 알고는 놀라워했다.“금칠이 딱딱하고 답답한 느낌을 내는 데 비해 황칠은 은은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며 보면 볼수록 질리지 않는 빛을 낸다.”는 것이 외국인들의 평. 황칠을 모르는 사람들도 황칠을 보면 한눈에 그 아름다움에 눈뜨게 된다. 구씨의 작품은 91년 청와대 신축본관 및 영부인 접견실 등에 문갑, 화장대, 이층장 등이 전시됐다. 지난해에는 육군박물관에 작품이 전시되고 감사장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전국 순회 전시회를 준비중이며 ‘한국의 황칠공예’란 책도 발간할 예정이다. 지난 2월에는 일본 칠기계의 사장단이 작업실을 방문,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전통공예가 외면받는 이유는 현대공예와 접목시켜 조화와 발전을 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골프채, 지갑, 벨트 버클, 지팡이, 상, 차기, 만년필 등의 황칠 작품을 만들어 생활에 접목을 시도했다. 그동안은 작품을 거의 팔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작품 판매도 활발히 할 생각이다. 황칠도자기의 가격이 1000만∼1600만원, 황칠합죽선이 400만∼800만원으로 워낙 고가라 대중화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매일 오후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집중이 잘 되는 시간에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이물질이 떨어지지 않는 깨끗한 상태에서 황칠붓을 잡는다. 수십 수백번씩 목기로 된 찻그릇에 황칠을 하면 수백 수천가지 오묘한 색깔이 난다. 구씨는 “작가가 온힘을 바친 전통공예를 사랑하는 소비가 살아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구영국씨는 1978년 서울 문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예계에 입문하여 옻칠 명인 이상호 선생, 동양화의 거장 가향 허영 선생 등을 사사했다.2002년 신미술대전에서 대상을,2003년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에서 특별상을 받았다.2002년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 벨기에 왕국 전통공예, 미국 세계예술페스티벌 등에 초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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