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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갑다, 단양쑥부쟁이”

    충주댐 건설 이후 절멸된 것으로 알려진 ‘단양쑥부쟁이’의 군락지가 남한강 하류 여주지역에서 발견됐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원장 김형광)은 15일 수목원 식물탐사팀이 멸종위기 특산식물 단양쑥부쟁이(학명 Aster altaicus var.uchiyamae Kitamura)가 자생하는 1000평의 대규모 군락지를 지난주 발견했다고 밝혔다.단양쑥부쟁이는 1937년 충북 수안보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시 일본인 기타무라(北村)는 신변종으로 발표했다. 국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로, 추석 전후 꽃이 피면 온 들판을 보라색으로 물들여 가을 정취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물씬 풍겨준다.1980년 충주댐이 건설되기 이전엔 단양에서 충주에 이르는 남한강변 자갈밭에 널리 분포했으나 댐 건설로 모조리 수몰돼 사라졌고, 단양군 가곡면 1곳에 남았던 극소수 개체도 홍수로 떠내려가 멸종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포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고이즈미 北·日국교정상화 회담 희망”

    정동영 장관이 15일 미·일 두 나라가 자신에게 전달한 대북 메시지를 공개했다. 지난 12일 방한한 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정 장관을 예방하고 대북 메시지를 전했는데, 당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메시지를 보낸 사실은 언론이 전혀 몰랐던 사실.“국교 정상화를 위해 조기 대화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대북 메시지는 그 자체로 깜짝 이벤트다. 남북한 채널이 한반도 평화구축의 관건인 북핵문제 해결,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 등 핵심 사항을 촉진하는 틀로 굳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같은 촉진자 역할이 실질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향후 급박하게 돌아갈 한반도 정세에서 의미를 과소평가할 순 없을 것 같다.●“미국의 진정성을 의심 말라.” 미국측 메시지의 핵심은 북핵문제 협상에 임하는 진지성이다. 베이징 6자회담에서 실질적인 진척을 희망하고 이를 준비해왔다는 점, 북·미 관계 정상화 의지가 분명하며 이를 의심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점 등이 골자다. 북·미 양국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북측도 상응 노력을 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북측은 “상부에 보고하겠으며 이번 협의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고, 회담 진행에 반영하겠다.”고 했다는 게 정 장관의 전언. 통일부 당국자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례적 수준의 답변으로 해석했다.●총선 압승한 고이즈미의 손짓 고이즈미 총리의 메시지는 그가 지난 11일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뒤에 보낸 대북 손짓이어서 관심을 끈다. 북측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정 장관은 설명했지만, 일본인 납치 문제를 놓고 6자회담에서 경원시해온 양국 분위기가 전환될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권력의 안정화에 성공한 고이즈미 총리가 자신감을 갖고 대북 정책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2002년 9월 평양을 방북, 평양선언을 도출해낸 이후 제2의 대북 협상 시도가 이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한편 정동영 장관 등은 국제친선전람관을 관람했다. 고 김 주석의 밀랍상이 전시된 전시실에서 북측 관계자들이 고개를 숙여 조의를 표하는 동안 우리 대표단은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평양공동취재단 서울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총선압승 고이즈미의 日](상)리더십의 원천은

    [총선압승 고이즈미의 日](상)리더십의 원천은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자민당이 일본열도를 삼켜버렸다.” 11일 치러진 중의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일본 언론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1942년 1월8일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출신. 키 169㎝, 체중 60㎏의 말라깽이 체격. 별명 ‘준짱(짱은 이름·호칭 뒤에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해 붙이는 말).´ 36세부터 4년간의 짧은 결혼생활 끝에 이혼, 이후 독신생활 23년.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은 3대 세습정치가. 존경하는 인물은 히틀러와의 전쟁에서 불굴의 정신을 보여준 처칠 전 영국 총리와 19세기 중반 에도막부 혼란기에 생명을 걸고 사심 없이 인재를 배출했던 교육자 요시다 쇼인이다. 최근 선거전에서는 비정한 혁명가로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기도 했다. 무모하다는 평가 속에 중의원을 해산하는 정치적 도박을 성공으로 이끈 고이즈미 총리에게는 ‘생명을 걸거나’ ‘불굴의 정신’ 혹은 ‘비정한’ 승부사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비정한 승부사 고이즈미 총리가 애용하는 전략은 단순화다. 선거전략이 아주 단순하고, 어법도 논리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단순어법을 즐긴다. 이는 거꾸로 ‘포퓰리즘’을 구사한다는 비판론의 근거로 활용된다. 이번 선거전도 단순화 전략을 구사했고, 이것이 철저히 유권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우정민영화 찬성, 반대’ 또는 ‘개혁 대 반개혁’의 단순 대치구도로 선거전을 획정했다. 구호도 “개혁을 멈출 수 없다.”였다. 그는 또 당내 계파별 의원보다는 국민과 당원을 직접 상대하는 대중정치 스타일이다. 선거 직전에도 ‘고이즈미 메일 매거진 201호’를 통해 200만명에 가까운 유권자들에게 이메일로 직접 호소했다. 고이즈미는 여기서 자신의 정책을 알리거나 관저생활상, 관저 정원에서 매미 울음소리를 들은 소회 등을 감성적으로 전달해왔다. 파벌정치와 원칙주의, 관료주의적 사고에 익숙한 일본인들에게 신선할 수밖에 없었고, 대중과 함께하는 이같은 정치스타일로 결국 일본정치의 정점에 오른 것이다. 이번에도 치밀하면서 전광석화 같은 대중교류 선거전략이 10년 이상 장기불황의 터널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일본인들을 사로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독선적인 정치스타일과 리더십이 한층 강화돼 문자 그대로 ‘대통령형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주위의 관측이다. 하지만 12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승부사 고이즈미 총리는 단호하지만 가슴 한 구석이 비어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도 고이즈미 총리는 외롭다. 올 봄 입주한 관저에 가족이라고는 여섯살 위의 독신 누나인 노부코밖에 없다. 양복, 와이셔츠, 넥타이 등 고이즈미 총리의 의상은 노부코가 정한다. 노부코는 30년 이상을 고이즈미 총리의 정책비서로 일하며 때로는 누나로서, 때로는 정책참모로서 정치적 고비 때마다 도움을 줬던 것으로 알려진다. 33년간 분신처럼 고이즈미 총리를 보좌한 비서관 이지마 이사오도 고이즈미를 있게 한 숨은 인물로 꼽힌다. 두 사람은 단순명쾌한 화법,‘선과 악’으로 양분하는 이분법 등이 빼닮았다는 평이다. taein@seoul.co.kr ■ 가까워진 美·日 담 높아진 中·日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일본 자민당의 압승으로 향후 중·일 외교 관계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중국 외교가와 언론들은 12일 자민당을 중심으로 일본 보수파 세력이 결집해 신사참배, 중·일 국경분쟁 등 두 나라 외교 마찰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안보 전문가들은 향후 부시-고이즈미의 미·일 동맹이 강화될 경우 타이완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의 대결구도 고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 펑자오쿠이(馮昭奎) 연구원은 이날 “고이즈미 총리가 이번 재집권을 계기로 제5차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할 것이며 이는 중·일의 교착 상태를 더욱 불안한 방향으로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동중국해를 둘러싼 중·일간 영유권 분쟁 문제는 물론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역사교과서 왜곡 등을 놓고 강경 보수파들이 힘을 얻을 것이란 분석도 지배적이다. 중국 신문신보(新聞晨報)는 이날 미·일동맹 강화로 타이완을 둘러싼 중국과의 대결 강화, 아시아태평양에서의 중국위협론 고조 등을 우려하면서 “고이즈미 총리의 승리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게 기쁨을 줄 것이나 주변국들에는 보다 큰 어려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이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11월 15일이나 16일쯤 일본을 방문하는 방향으로 양국이 의견조정에 착수했다고 교도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부시 정부는 자민당 압승에 따라 후덴마 비행장 문제 등 주일미군 재편 문제와 자위대 이라크 파견 연장 등에 있어 고이즈미 총리의 지도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oilman@seoul.co.kr
  • [사설] 일본의 군비 강화를 우려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일본 중의원 선거 압승을 우리는 ‘강한 총리, 강한 일본’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망이 투영된 결과로 풀이한다. 나아가 변화를 향한 일본인들의 이런 열망이 우경화의 흐름을 타고 군비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힌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러시아와 중국의 군비 강화로 이어지면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안보질서가 심각한 군사적 긴장상태에 놓이게 되는 상황을 염려하는 것이다. 동북아의 안보질서는 이미 변화의 길에 들어선 상황이다. 우선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번 선거로 자민당은 연립여당 공명당과 함께 중의원 개헌발의수를 확보했다. 창당 50주년을 맞는 오는 11월 헌법 개정안 초안 발표와 함께 본격적인 개헌 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개헌안은 자위대를 정규군으로 대체하고, 교전권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멍에를 벗어던지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미 지난해 신방위계획대강을 통해 중국을 가상적으로 규정짓고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에 나선 일본이기도 하다. 미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지난달 중국과 한반도의 ‘스테이터스 쿠오(status quo·현상유지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이 군비 강화를 서두르고 있고, 미국은 이를 뒷받침하면서 다른 쪽으론 중국과 한반도 새 질서를 논의하고 나선 것이 지금의 한반도 상황인 것이다. 이번 선거로 한·일 관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정부 당국의 인식은 안이하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를 항의하고, 교과서 왜곡과 독도 발언을 비난하는 선에 우리 외교가 머물 상황이 아니다. 일본의 군비 강화를 직시해야 할 것이다.
  • 양양 낙산사 화재 5개월…복구현장 가보니

    양양 낙산사 화재 5개월…복구현장 가보니

    천년의 고찰 낙산사를 태운 지난 4월의 강원도 양양 산불로부터 5개월.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과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인간의 집념으로 화마(火魔)가 낸 상처는 어느덧 아물어 가고 있었다. 잿더미를 뚫고 올라온 나무와 풀이 허리춤까지 올라왔는가 하면, 형체를 잃은 낙산사도 새 단장에 분주했다. 남은 태풍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양양 산불 복구현장을 한가위를 일주일 앞둔 11일 둘러봤다. ●적은 비 덕분에 복구 가속 불이 마을 뒤쪽 대나무밭을 타고 삽시간에 번지는 통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용호리. 주저 앉았던 집들이 상당부분 복구돼 있었고 뒷산에는 잡목이 허리까지 자라 있다. 전문가들이 걱정했던 산사태의 가능성도 크게 줄었다. 용호리 토박이 이모(72)씨는 “지난번 장마와 태풍때 비가 적게 온 덕에 공사가 빨리 이뤄졌다.”면서 “특히 2002년 태풍 ‘루사’ 피해 때 통나무 등으로 산 곳곳에 지지대를 만들어 놓았던 게 산사태를 막는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올들어 양양군의 강수량은 580㎜로 평년(연 평균 1200∼1300㎜)보다 적다. 이달 초 태풍 ‘나비’가 왔을 때에도 강수량이 99㎜에 그쳤다. 좋은 토질 덕분에 풀과 나무 등 식생이 빨리 회복된 것도 약해진 지반을 강하게 만들어줬다. 현재 양양군 전체 피해주택 163채 중 66%인 108채의 복구가 끝났다. 나머지도 이달 말까지 복구를 마칠 계획이지만 일부 주민들은 추석을 컨테이너 박스에서 보낼 가능성도 있다. ●“태풍 1~2개 더” 소식에 긴장 관광지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도 한창이다. 이달 30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열리는 ‘송이축제’에는 지난해(1400명)의 2배가 넘는 3000여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배용준(욘사마)이 주연한 영화 ‘외출’의 촬영지 삼척을 둘러보는 일본 여행사의 ‘욘사마 패키지 투어’에 송이축제 관람이 포함됐다. 군청 문화관광과 박상민 과장은 “산불 뒤 송이축제를 치를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으나 송이산지에는 피해가 없어 올해에도 평년수확량인 40t을 무난히 달성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태풍이 더 올 수 있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아직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고 있는 용호리 주민 김모(36·여)씨는 “복구공사가 끝나지 않아 중요한 물건들은 다른 지역에 사는 친척들에게 맡겨놨다.”고 걱정했다. 낙산해수욕장 근처 음식점들도 해변의 포장을 모두 걷어놓은 상태였다. ●“낙산사 원형 복원 전화위복 기회” 걸음을 돌려 접어든 낙산사에서는 고고학과 고건축 전문가 등 10여명으로 ‘복원 추진위원회’가 꾸려져 발굴조사가 한창이었다. 녹아 내린 보물 479호 동종 역시 원형에 가까운 복원을 위해 자문위원단을 구성, 성분과 3차원 영상 등을 분석 중이다. 복원되더라도 문화적 가치가 없는 ‘모조품’에 불과하겠지만 이곳에 다시 가져와 시련과 부활의 상징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산불 당시 화염에 휩싸여 무너지는 모습이 보도된 뒤 낙산사를 찾는 불자들의 발길은 오히려 늘었다. 특히 일대 산림을 포함,30여만평이 소실됐는데도 서까래 하나 그을리지 않은 바닷가 절벽 위 홍련암이 “부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입소문이 확산돼 복원성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글 사진 양양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99회째 하우스콘서트 여는 작곡가 박창수씨

    99회째 하우스콘서트 여는 작곡가 박창수씨

    웬만하면 정장을 입고 가야 하는 클래식 연주회를 마룻바닥에서 뒹굴며 본다면 어떨까. 엎드리면 코가 닿을 곳에서 연주자의 거친 숨소리까지 들린다면 더욱 좋고. 더군다나 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와 와인을 기울이며 말을 틀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클래식 공연에 대한 통념을 뒤집고 2002년 국내에서 처음 시작된 ‘하우스 콘서트’가 어느새 99번째 공연을 갖게 됐다. 공연일자도 마침 9월9일이다. 하우스 콘서트를 꾸리는 음악가 박창수(41)씨를 만나봤다. 박씨가 하우스 콘서트를 구상한 것은 서울예고에 재학중이던 1980년대 초반. 친구 집에서 악기를 연습하는 일이 많았던 박씨는 아담한 집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너무나 좋았다. 격식있는 무대보다는 집처럼 소박한 곳에서 공연을 해보는 게 어떨까라고 상상해 봤다. 그로부터 20여년 뒤. 박씨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낡은 자택을 개조해 1층은 주방·침실로 쓰고 2층의 벽을 터서 30여평의 콘서트 공간을 만들었다. 소년시절의 꿈이 이뤄졌다. 한달에 두어번씩 공연을 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관객만 평균 30∼40명이나 된다. 하우스 콘서트의 큰 특징은 연주자와 관객의 거리뿐 아니라 의자까지도 없앴다는 점. 관객들은 마룻바닥 자신이 앉고 싶은 곳에 방석을 깔고 앉아 몸으로 음악을 느낀다. “관객들이 가까이 있다 보니까 연주자의 표정, 땀방울, 손떨림까지도 보입니다. 작은 공간에서 악기 소리가 몸을 타고 울리면서 음악을 오감(五感)으로 느끼게 되지요. 어떤 의미에서 연주자들은 관객들과 달리 큰 무대에 설 때보다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단골 관객인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그동안 다녀간 관객 2000여명에게 공연일정을 이메일로 보내주고, 공연일에는 관객들을 안내하곤 한다. 하우스 콘서트는 동네에서도 유명해져 인근의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경호원을 대동하고 갑자기 나타나 모두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그동안 하우스 콘서트장에서 선보인 장르를 추려보니 절반은 클래식이고 절반은 프리뮤직(즉흥음악), 재즈, 국악, 무용, 마임 등이었다. 아마추어 뮤지션도 간간이 참여했다.160인치 스크린에 단편영화를 상영하거나 음악에 대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박씨의 집은 문화를 전방위적으로 체험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지난해 타계한 북과 드럼의 대가 김대환씨가 세상을 뜨기 전 이곳에서 마지막 무대를 가졌다. 피아니스트 임미정씨는 북한 작곡가의 곡을 연주해 이 집을 찾은 탈북자들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기타리스트인 이병우씨, 가수 강산에씨, 중국 전통악기인 구젱의 권위자인 펭시아 주, 프리뮤직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본인 하라다 요리유키 등이 이곳을 다녀갔다. 하우스 콘서트가 처음부터 순항을 한 것은 아니었다. 국내에서 개념이 생소했던 당시 연주자들로부터 공연요청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의미에서 저명한 음악인인데도 연주를 흔쾌히 승낙한 콘트라베이스 클라리넷 연주자 볼프강 스트라이(독일)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단다. 그렇다고 하우스 콘서트가 유명한 사람들에게 공연비를 더 얹어주는 것도 아니다. 관람비 2만원 가운데 반은 연주자에게, 반은 뒤풀이에 필요한 와인·치즈·과자를 사는 데 사용된다. 연주비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관객이 많을수록 연주자 연주비도 많아 진다. 하우스 콘서트에서는 관객의 수가 적더라도 정말로 공연을 보고 싶어서 오는 자발적인 관객들만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연주하는 사람들도 관객들의 반응에 다시 감동을 받곤 한다. 연주가 끝난 뒤 이어지는 뒤풀이도 볼거리다. 와인과 치즈를 먹으면서 연주자와 함께 어울리면서 연주자와 관객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공연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그룹으로 카이스트 공학도 음악동호회인 ‘뮤지카´를 꼽았다. 보통 오후 5시쯤 와서 리허설을 하기 일쑤지만 이들은 대전에서 오전 9시부터 오겠다고 성화였다. 매일 야간작업을 하느라 오후에 일어나는 박씨도 두손을 들었다.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프로도 본받아야 한다고 일침한다. 박씨는 스스로 삐딱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말한다.6살때 피아노를 배우기 전 스스로 작곡을 시작했다. 이후 어머니를 졸라 피아노를 집에 들여놓고 혼자서 공부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이기도 했지만 그때부터 무언가에 길들여지기를 원치 않았다. 서울예대 졸업이후 명문대 작곡과에 수석으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틀에 짜여진 작곡보다는 퍼포먼스의 길을 택했다.1987년 행위예술협회의 발기위원으로 참여했고, 여기서 동반자인 김영희(이화여대 한국무용 교수·김영희무트댄스 예술감독)씨도 만났다. 이들 부부는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즉흥공연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집에서 나오는 길. 현관 입구에서 송아지만한 개가 개집에서 중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나와서 꼬리를 흔든다. 개 ‘레트’는 하루에 1시간 이상씩 텔레비전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개주인 박씨는 역시 즉흥 문화연출가답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오는 23일의 100번째 하우스 콘서트는 어떻게 꾸며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그의 홈페이지는 http:///free-piano.com(개설예정). ■ 프로필 ▲64년 서울생 ▲80년 서울예고 입학 ▲83년 서울대 입학 ▲86년 퍼포먼스 활동 시작, 이후 ‘호흡 시리즈´ ‘레퀴엠 시리즈´ 등을 독일·일본 등 17개국서 공연 ▲87년 한국행위예술협회 발기인으로 참여, 협회 사무국장 ▲99년 프리뮤직(즉흥음악) 본격적으로 시작 ▲2002년 7월 국내 최초로 하우스콘서트 시작 ▲2005년 9월23일 하우스콘서트 100회(예정)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무역규모 南의 170분의1… 中의존 심화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는 남한의 170분의1에 불과하며, 특히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갈수록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코트라(KOTRA)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는 28억 5711만달러였다. 이는 지난해 남한의 대외무역 규모 4783억 800만달러의 167분의1 수준이다. 특히 북한은 중국, 태국, 일본 등 대외무역 ‘빅3’ 국가와의 교역 규모는 지난해 19억 6000만달러로 전체의 68.8%를 차지했다. 올 상반기에는 전년 동기대비 25.5% 늘어난 9억 8062만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대중 교역 규모는 전년 동기보다 43.3% 증가한 7억 4000만달러로 빅3 국가 교역 총액의 75.6%(지난해 상반기 52.8%)를 점유하고 있다. 반면 일본과의 교역 규모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25.9% 줄어든 8997만달러에 그쳤다. 코트라 관계자는 “북한과 중국간 거래 품목은 대부분 대체가 어려워 북한의 대중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면서 “대일 교역은 일본인 납치 문제 등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 조치의 영향으로 감소세”라고 설명했다. 올해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는 옛 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3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남북 교역을 포함하면 40억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올 상반기 남북 교역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39.5% 늘어난 4억 5000만달러이다. 교역 규모로는 중국에 이어 두번째이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한국여성처럼 불쌍한 여성은 없다

    한국여성처럼 불쌍한 여성은 없다

      『한국여성처럼 불쌍한 여성은 없을 것 같다-』남성으로부터「뭇매를 맞을 듯한 소리」를 펼친다. 신학박사 김태묵(60)목사의 거침없는 결론이다. 약 1년 전부터「카운셀링」(정신위생상담)업을 개업, 갈등을 안고 찾아온 내담자(來談者)와의 정신분석적인 대담 끝에 얻을 결론이란다. 상담실 찾아오는 여성 손님들은 거의 신경쇠약증 환자 김태묵 목사는 그 학위가 말해주듯 바로 신학자이고 또 종교활동가이다.「하와이」한인교회 목사,「워싱턴」한인교회 창립, 서울 남대문교회 목사, 중앙신학교 교장, YMCA연맹 총무, 대구 신명(信明)여고 교장 등의「코스」를 주로 걸어왔다. 그 목사가「한국정신위생원」이라는 정신상담소를 개업, 사무실을 서울 중구 충무로 2가 52의 4에 있는「소피아·하우스」에 차렸다. YMCA에 근무할 때부터 젊은이들의 정신상담을 맡아 듣고 차차 그 방면의 공부를 해온 결과, 근대화병의 하나인「노이로제」를 고쳐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8·15해방과 6·25동란, 4·19와 5·16의 두 차례의 혁명 등 수차에 걸친 정치 문화의 격동기를 거친 우리 겨레는 지금 급격한 사회 변천과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신력의 박약과 부조화로 근심 불안 번뇌 등 각종 정신장애와 절망감 좌절감에 사로잡히는 신경쇠약증에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카운셀링」개업의 변(辯)이다. 『서울에는 정신장애자가 많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일례를 들면 호주머니에는 돈 한 푼도 없으면서 큰 사업을 합네 하고 다방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일종의 정신질환 환자일겝니다』 1년 동안에 약 2백 건의 상담을 받았다. 목회(牧會) 상담학의 강의를 맡고 있는 장로교 신학대학과 숭실대학 학생들의「카운셀링」을 맡아보고 또 교회의 목사들이 보내주는 신도들의 정신상담을 들었다. 상담내용의 대부분이 가정문제 애정문제의 갈등이 일으킨 정신장애, 입시 등에 실패한 중·고교학생들의 열등감과 이로 인한 부모들의 정신적 고통 등이다. 특히 기혼여성들의 대담자가 많았다. 최근에「카운셀링」한 여성 대담자의 고민 두 가지를 실례로 들었다. ① 결혼 생활을 약 20년간 해온 주부 김영숙(45·가명)씨의 경우. 원래는 국민학교의 교사였는데 10년 전에 그만두고 양장점을 차렸다. 장사는 계획대로 잘 되었다. 자연 바빠졌다. 그녀의 장사수완이 가족의 생활을 유지해 왔다. 한편 남편은 회사원이었는데 10년 전에 실업. 월급쟁이는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가 번 돈을 번번이 가지고 나가 사업을 한다고 뛰어 다녔으나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처음 5년 동안은 아내를 실업 이전과 다름없이 다루었다. 폭력도 쓰지 않았다. 그것이 5년 전부터는 아내의 일거일동에 일일이 말썽을 부리고 폭력을 휘둘렀다. 신경쇠약증에 빠진 이 주부가「카운셀링」을 받기 위해 김박사를 찾아왔다. 돈 못 벌면 열등감만 남는 남편한테 매맞고 구박 받기 일쑤 김박사의 진단 -『남편이 의처증을 나타내고 폭력을 쓰는 것은 열등의식의 발로이거든요. 5년 전까지는, 비록 실업상태에 있고 또 아내의 도움을 받았었지만 자기도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뛰어다니는 기력이 있었기 때문에 아내를 옛날과 다름없이 사랑할 수가 있었죠. 빈번한 실패로 그 기력조차 없어지고 아내에 대한 열등의식만이 남았습니다. 남편은 자기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아내에게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김박사는 그 주부를 만난 후 남편의 상담도 받았다.「카운셀링」은 내담자에게 고민거리를 모두 쏟아 놓게 한다. 내담자는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확 털어놓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기의 해결방법을 발견해 낸다. 이 부부는 그 이후 다행히 원만한 가정생활로 돌아갔다. ② 일류 여대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여성 이강희(40·가명)씨의 경우. 초혼에 실패하고 재혼한「인텔리」여성인데 이혼문제를 들고 김박사를 찾아왔다. 초혼에 실패한 것은 춤바람 때문이었다. 그 초혼은 부모가 정해주는 남자와의 평범한 결혼. 십수 년을 같이 살아 오는 사이에 두 남매까지 두었다. 춤을 배우기 전까지는 그저 남자란 모두 남편과 같은 줄만 알고 지냈다. 3년 전에 춤을 배워「댄스·홀」에서 자기와 같은 나이 또래의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가 남편보다 훨씬 좋아졌다. 화끈 달아오르는 연애감정을 느꼈다. 남편과 이혼했다. 친정어머니가 준 돈 3백 만원을 가지고 그 남자와 결혼을 했다. 새 남편은 공무원이었다. 3년 동안의 새 살림을 위해 3백 만원이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남편이 번번이 가출했다. “그래도 무슨 정이 남았는지” 이혼계(離婚屆) 차마 못내기도 드디어 이혼을 결심, 새 남편도 그것에 동의하고 이혼신고서에 도장을 찍었다. 남은 절차는 자기의 도장을 찍어 구청에 내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이여인의 고민이 시작됐다.『그래도 무슨 정이 남았는지』그것을 구청에 낼 수가 없었단다. 신경쇠약에 빠졌다. 이 부부도 다시 평화스러운 가정으로 되돌아갔다. 애정문제의 갈등의 대부분은 여성쪽이 피해자였다. 그래서『우리나라 여성처럼 불쌍한 여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벌써 이혼을 했을지도 모를 문제들을 안고 한국여자들은 고민에 떨어지고「노이로제」에 빠진다. 요즘은 이혼들을 쉽게 한다지만 그래도 이혼이라는 것은 한국여성에게 있어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대사건이다. 여기서 생기는 마음의 갈등과 부조화가 기혼여성들을 괴롭힌다. 김박사는 반드시 결합만 시킨 것은 아니었다. 이혼을 서둘러 시킨 예도 있다. ③ 젊은 남녀가 목사의 소개로 그를 찾아왔다. 두 사람은 결혼식만 올린 부부였다. 결혼식 후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느냐고 두 사람이 대립했다. 남자는 유성온천을, 여자는 제주도를 내세웠다. 그 길로「별거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부부는 나란히 앉아 김박사와 상담한 결과 이혼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삶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영남지방에서 다소는 알려진 승려, 법옹(法翁)스님이 박사의 선친이다. 승려의 아들이 16세에 기독교에 입신, 목사가 됐다. 미국유학(오벨린대학) 중에 제2차대전이 터지자 일어능력으로 발탁되어 대일본어 방송의 요원으로 활약, 일본제국은 궐석재판에서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선고문을 고향인 대구의 자택까지 보내왔다. 선고장을 들고 온 일본인이 김박사의 선친을 위로한답시고 말했단다. 일본이 이길 것이니 전승기념특사가 내리면 10년 징역으로 감형될 것이니 안심하라고. 해방 후는 미군정청 관리로 일했고 4·19 후는 YMCA 총무 자리를「쫓겨났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때까지 안 얻은 미국시민권을 갖고 정신분석학을 연구,「카운셀러」가 된 것이다. 현재는 정신병원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다. 『「카운셀링」은 그러므로 제2경제의 실천행동이 되기도 합니다』라고 상당히 확대된 포부를 피력했다. [ 선데이서울 69년 1/26 제2권 제4호 통권18호 ]
  • 400년전 한·일교류 ‘화려한 부활’

    조선통신사의 의미를 되살리는 ‘조선통신사 한·일 문화교류축제’가 6일부터 10일까지 부산시내 일원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개막일인 6일에는 조선통신사학회가 개최하는 국제 학술심포지엄이 열린다. ‘한·일 문화교류의 관점에서 본 조선통신사’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심포지엄에는 조선통신사 연구의 권위자인 일본 교토 조형예술대학의 나카오 히로시 교수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4개의 소주제에 관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7일 오후 7시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는 21세기판 조선통신사인 한·일 재즈밴드 공연이 펼쳐진다.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중인 재즈 밴드가 출연해 ‘아리랑’‘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을 연주해 의미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한·일 양국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공연무대도 준비됐다. 한국 어린이들이 가야금 병창과 부채춤, 사물놀이, 창작 판소리 등을 선보이고 부산 일본인학교 학생들은 합창과 다이코(북)를 연주하게 된다. 또 일본 아이노시마소학교 학생들이 창작 연극 ‘돌의 노래 울려라’를 공연한다. 이 연극은 1682년 아이노시마를 지나가던 조선통신사를 맞기 위해 이 지역 사람들이 방파제를 만들었던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 있다.10일에는 교류 축제의 백미인 해신제와 행렬 재현 행사가 열린다.이날 오전 부산 동구 자성대 공원 인근 영가대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조선통신사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이어 오후에는 중구 용두산 공원과 광복로 일원에서는 조선통신사 행렬이 재현된다. 이밖에 한·일 조선통신사 연고지에서 참가한 예술단체들이 각 지역의 민속 예술을 선보인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시청태극기’ 경쟁률 12대1

    서울시의 광복 60주년 기념행사 태극기에 대한 전국민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2일까지 인터넷을 통해 ‘광복 60주년 태극기’(3600장) 배부 신청을 받은 결과 모두 4만 2858명이 신청했다. 이 태극기는 지난 8월10일부터 21일까지 시청본관 전면을 뒤덮었던 것이다. 당초 무료 배부하려던 계획이 선관위의 반대로 유료 판매(장당 1000원)로 전환되면서 신청자가 줄 것으로 예상됐으나 무려 4만여명의 신청이 쇄도해 경쟁률은 12대1에 달했다. 신청자 중에는 호주, 네덜란드, 미국, 뉴질랜드 등지의 재외동포와 시내 호텔을 주소로 태극기를 신청한 일본인 등 이색적인 사람들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2003년부터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강북구에서는 500명의 구민들이 한꺼번에 신청하기도 했다. 인터넷 대신 장문의 편지로 ‘열의’를 전해온 시민들도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전모(65)씨는 “농촌에 사는 노인이다보니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없어 이렇게 편지를 보낸다. 집에 걸어놓고 보려하니 한 장만 보내달라.”며 태극기 값 1000원과 배송료 1000원을 동봉했다. 군인으로 9년간 재직했다는 이모(64)씨는 붓글씨로 쓴 편지에서 “집에 항상 태극기를 걸어 놓는데 몇 달간 태극기를 바꾸지 못해 때가 묻고 실밥이 나왔다. 컴맹이라 서면으로 신청한다.”며 역시 태극기 값 1000원을 함께 보내왔다. 시는 추첨으로 대상자를 선정,8일 서울시 홈페이지(www.seoul.go.kr)에 추첨 결과를 공지하고 태극기는 기념문구와 사진이 새겨진 케이스에 담아 우편 발송할 예정이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03일 TV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EBS 오전 11시30분) 평범해 보이는 일본인. 이 남자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철권으로 페루를 통치했으며 헌법을 뜯어고쳐 가며 장기집권을 했던 후지모리이다. 지금은 망명정객이 되어 일본에서 살고 있다. 부패, 납치, 살해 혐의로 인터폴 수배명단에 올라있는 그가 페루를 떠난 뒤 처음으로 대외 인터뷰에 응했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20분) 중후하고 정교한 멋으로 변신한 초콜릿 공예, 화려함과 투명함을 자랑하며 보석처럼 빛나는 설탕공예, 먹기조차 아까울 만큼 귀엽고 깜찍한 수제 쿠키까지 달콤한 음식들의 기상천외한 변신, 그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또 한려수도 뱃길을 따라 펼쳐진 남해안의 보석 거문도를 찾아간다.   ●사랑찬가(MBC 오후 7시55분) 조용히 새한과 이야기를 나누던 순진은 쉽게 말을 걸고, 선물도 하면서 마음을 강요했던 새한에 대한 오해가 서서히 풀림을 느낀다. 둘 사이에 신뢰하는 마음이 생긴 사실을 확인한 새한은 순진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청혼을 한다. 청혼까지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순진은 가슴이 먹먹하고….   ●실제상황 토요일(SBS 오후 6시) 채원이의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채원이의 모든 응석을 받아 줬다. 그러나 채원이가 예쁘고 귀여운 손자지만 바른 아이로 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 부모와 함께 노력하기로 한다. 채원이는 점차 천사같은 모습의 귀염둥이로 변신한다. 하지만 은근슬쩍 다른 방법으로 욕을 하는 채원이의 또다른 문제점이 발견된다.   ●박준형의 청년불패(KBS1 오후 1시45분) 화재 진압에서부터 교통사고 구조, 동물 구조는 물론 잠긴 문을 따는 일까지 119대원들은 이제 우리 생활 속 만능 해결사로 통한다.119구조대는 매년 높은 경쟁률을 어야할 만큼 인기직종으로 부상하고 있다.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해 사명감이 있어야만 하는 직업 119대원들의 일상을 따라가 본다.   ●위험한 사랑(KBS2 오전 9시) 세진은 강제와 함께 찬의 친아버지 집 앞으로 가 찬을 데려오며 그의 뺨을 때린다. 찬의 친부는 다음 날 세진의 집에 찾아와서 찬이 부모가 또 이혼하게 하는 꼴은 못 보게 하겠다며 소리를 지른다. 정현은 수완에게 만약 인공수정이 성공적이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자고 말하나 수완의 의지는 강하다.
  • [일본을 다시본다] (20) 특별취재팀 방담

    [일본을 다시본다] (20) 특별취재팀 방담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기획한 ‘일본을 다시 본다.’ 시리즈의 마감을 앞두고 도쿄를 비롯, 교토와 나고야, 오사카 등 일본 현지 곳곳을 누볐던 특별취재팀이 지면에 미처 담지 못했던 얘기들을 방담을 통해 정리했다. ●도쿄의 부동산 열풍 -일본 최대의 번화가 긴자(銀座) 거리를 가보니 엷은 회색 포장으로 바꾸었더군요. 도쿄역 앞을 비롯한 도심의 재개발도 한창이었습니다. 도쿄만을 놓고 본다면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그 때문에 부동산 열풍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도쿄와 도쿄 인근 부동산 값이 너무 치솟아 ‘억션’이라는 말이 유행한다더군요.‘맨션(일본의 저층 고급 아파트)’이 웬만해서는 모두 몇억엔을 호가한다고 해서 일본사람들은 맨션 대신 ‘억션’이라고 부른답니다. 하지만 도쿄 인근을 제외한 그 밖의 지방은 부동산 경기가 죽어 있어 양극화 경향이 심각하다더군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았지만 일본에서 가장 활기 있는 곳은 역시 나고야인 것 같았습니다.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유치한 아이치 만국박람회 덕분이지요. 나고야역에서도 심심찮게 외국인을 볼 수 있었고, 나고야 번화가 어느 상점에나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나고야역 근처 한 전자제품매장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자 점원이 급히 인터넷 번역사이트에서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 프린터로 인쇄해 주더군요. 단순 친절을 넘어 외국인을 고려한 철저한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취재하면서 일본 사회 전체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도 여러차례 실감했습니다. 과거에는 일본의 정치인이나 회사, 단체 등에 인터뷰나 면담신청을 하면 통상 1∼2개월 가량 걸렸는데 이번에는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단체들도 홍보 필요성이 있는 곳은 하루 만에 일정이 잡히곤 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 대학의 한 한국인 교수는 “치밀한 일본인들이 속도감까지 갖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이나 사회가 스피드마저 갖추게 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속도가 빨라져도 그 무서운 준비력은 여전했습니다. 취재원들 모두 뒷받침할 통계나 증빙자료가 없으면 아예 말도 꺼내지 않더군요. -일본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먼저 헤어질 시간을 미리 고지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일단 인터뷰를 하다가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할 텐데, 일본은 미리 양해를 구해놓는 차이가 있더군요. 최대한 신중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태도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가급적 단정적이고 명확한 대답을 요구하는 기자의 욕심을 좀처럼 충족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어봐도 저렇게 물어봐도 신중함의 경계선은 무너지지 않았으니까요. ●감시의 나라, 일본 -일본은 ‘감시의 나라’라는 말도 실감했습니다.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를 취재한 뒤 도쿄전력을 찾아갔는데, 노사관계와 관련해 다소 민감한 질문을 던졌더니 “렌고에서 이미 취재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더군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감시하는 체제가 강력히 구축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쿄전력에서 회사측과 노조측 관계자를 교대로 만났는데, 먼저 취재에 응한 회사 관계자가 나중에 면담한 노조 관계자에게 저와 나눈 대화, 질문 내용 등을 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일본은 지금 패전 60주년이자 러·일전쟁 100주년, 자민당 결성 및 ‘55년 체제’ 50주년을 맞아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가득 찬 상황입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을 바꾸겠다는 상징으로 의회까지 해산하며 우정개혁을 밀어붙이는 최대 강수를 두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을 미국식 경제주의와 일본식 경제주의간의 힘겨루기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식인층과 기득권층은 주로 미국식 경제주의를 도입해야 일본이 살아날수 있다는 논리를 폈고, 렌고 등 노동계와 일부 학계에서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거든요. 이들은 고이즈미의 개혁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단정하고, 강행할 경우 결국 피해는 약자에게만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현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더군요. ●지도층 “패러다임 바꾸자” -제가 만난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일본은 안된다.”고 말했는데, 일본인 특유의 엄살을 감안해도 시대의 변환기에서 적어도 리더그룹들은 일본을 형성해온 ‘패러다임을 바꾸고 변화를 늦춰서는 안될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전보다 다른 나라를 더 의식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본기자들로부터 ‘취재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본우정공사를 취재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도쿄신문 기자가 우정공사 취재 배경 등에 대해 알고 싶다며 인터뷰 요청을 해와 당황했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현지에 있는 지인들에게 했더니 “일본은 그동안 주변 국가들에 관심이 없었지만, 최근 개혁의 파고속에 주변국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귀띔하더군요. -기업의 육아지원책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NEC를 찾았을 때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간단히 NEC의 출산 및 육아지원제도를 소개하고선 오히려 저에게 한국은 어떤지 묻더군요. 출산휴가는 며칠이나 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지 꼬치꼬치 묻는 통에 좀 당황했습니다. 양육지원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한단계 앞서 있다고 하자 얼굴에 안도감과 자부심이 비치더군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일본의 수준을 가늠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21세기 초 동북아 정세에 관해 들은 재밌는 얘기였습니다. 지난 3월 말 외무성 북한반장직을 박차고 퇴직한 서른 다섯살의 어느 지식인은 동북아의 위기상황에 대해 “북핵문제는 표면으로 드러난 문제일 뿐 사실 속을 들여다 보면 결국 동북아의 부(富)를 둘러싸고 중국, 한국, 미국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군대를 보내는 전쟁이 아닌 ‘세련된 제국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본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새삼 실감한 한류 열풍 -현지 취재에 나서기 전 가장 궁금한 것들 중 하나가 한류 열풍이었는데요,‘도쿄의 코리아타운’이라 불리는 신오크보에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더군요.2001년 한국어학원을 개원한 한국인 원장을 만나봤는데, 그때 2곳에 불과하던 학원이 이듬해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조금씩 늘어나더니 한류열풍을 타고 지금은 20여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여성은 팬레터를 쓰고 한국관광을 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는데,MP3 플레이어에 들어 있는 300곡이 모두 한국 노래일 정도로 열성적이었지요. 이 여성은 한국어를 배운 덕에 최근 한국계 기업에 취직까지 했다며 ‘일석이조’ 효과를 얻었다고 기뻐했습니다.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이 1년 안에 사그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현지에 가보니, 그렇진 않았습니다.TV를 보니 배우 장동건이 한국 소주를 선전하는 광고가 나오더군요. 또 아이들 사이에서는 한류 스타의 이름을 끊이지 않고 말하는 일종의 말잇기 놀이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여성은 영문 명함을 건넸더니 제게 명함에 한국어로 이름을 써달라고 하더군요.‘뵨사마(탤런트 이병헌)’가 너무 멋져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한국사람이 직접 쓴 한국어 글씨를 기념으로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여성은 한국에서 욘사마(배용준)와 뵨사마 중에 누가 더 인기 있는지, 이들 말고 또 ‘뜨는’ 연예인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일본 -이번 취재는 우리가 너무 일본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욘사마 신드롬’,‘독도문제’,‘교과서문제’ 등은 일본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측면이 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본 국내의 정치적 갈등에 우리가 끼어들어 곤욕을 치르거나, 일부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대응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본인은 겉(형식)과 속(내면)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 본질을 다각도로 파악해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말하기 쑥스럽지만, 일본은 형식적이면서 실용적인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한 일본인 교수의 고백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에선 지하철이나 전철의 출입구쪽에 주저앉아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는 10대들이 갈수록 늘어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답니다. 전혀 주변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쳐다보지도 않는 어른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고집이 대단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기자가 물어보지 않은 내용인데도, 자기가 할 말은 꼭 하려들어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NEC의 아라이 도시노리 홍보부장은 일본 제조업의 부활을 묻는 첫 질문에 “대답에 앞서 우선 우리 회사 소개부터 하겠다.”면서 캐털로그를 펼쳐놓고 한바탕 ‘강의’를 했습니다. ●5층 빌딩 짓는데 4년 -‘일본의 경주’로 알려진 문화유적의 도시 교토에서는 일본 문화재정책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교토대에 입학, 현재 석사 과정에 있는 유학생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교토대는 그 학생이 신입생으로 입학한 5년 전 총장실 신축 공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날 현장에서 유물이 발견되면서 무려 2년여 동안 공사가 중단됐고 유물 발굴이 다 끝난 뒤에야 건축 공사를 재개했다고 합니다.1학년 때 시작한 공사가 4학년 때 끝났으니 5층건물 하나 짓는데 4년이 걸린 셈입니다. wisepen@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 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 황장석(정치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마니아] “나무방망이 씁시다” 사회인야구 새 바람

    “우리도 나무방망이를 씁시다.” 사회인 야구 가족들 사이에 알루미늄 배트가 아닌 나무방망이를 사용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무방망이 도입론자들은 각종 리그의 페넌트레이스를 비롯한 야구대회에서 부상 등을 염려해 꺼려했지만 이젠 기량이 눈에 띄게 좋아졌으니 고려할 때가 됐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에 놀랄 정도로 늘어난 동호인 야구의 저변이 이를 말해준다. 사회인 야구 전문 사이트 ‘베이스볼 코리아’ 운영자인 권병익(37)씨는 “일본 등 외국의 경우 동호인들도 대부분 나무방망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나무방망이를 사용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알루미늄으로 만든 방망이를 쓴다. 그 까닭은 값도 값이거니와 안전하게 경기를 하려는 뜻이 강하다. 국내에서 유일한 일본인 야구 동호회 재팬(JAPAN)의 하쿠(31·일본 통신업체 서울 주재원) 감독은 “일본에서는 연식(軟式)볼을 쓰는 반면 한국에선 경식(硬式)볼을 써 공격적인 야구를 하는 것 같다.”면서 “또한 일본과 달리 알루미늄 방망이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흥미롭다.”고 말했다. 차근차근 기본기부터 다지기를 강조하는 일본과 투수력 보다는 타력에 무게를 싣는 한국이 당장 비교된다는 얘기다. 나무배트 옹호론자들은 조만간 사회인 야구에서 나무방망이를 사용하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neo PSAT와 함께 하는 실전 강좌]

    ●유형가이드 독자가 글을 읽음으로써 노리는 효과가 무엇인지, 글을 쓰게 된 상황 혹은 문제의식은 무엇인지, 대상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각과 태도는 어떠한지, 필자가 글을 통해 주장하는 바는 무엇인지 등을 파악한다. 이는 곧 글의 중심 생각을 파악하는 것과 연관된다. ●예시유형 주어진 글에 드러나는 필자의 의도와 집필의 배경, 주된 견해와 관점을 파악하는 문제 유형. ●해법 1. 사실과 견해를 구분하고 중심 견해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2. 중심 정보와 부차적 정보를 구분하여 파악한다. 3. 글에 담긴 문제의식과 집필의 동기를 파악한다. 4. 필자가 대상(제재)을 다루는 방식 및 대상에 대하여 갖는 태도와 시각을 파악한다. ●문제 다음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1922년에 펴낸 ‘조선과 그 예술’의 서문 중 일부분이다. 이 글에 드러나는 저술 동기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이 책은 조선의 미에 관한, 또 그 특질에 관한 고찰의 하나이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조선과 일본의 사정은 이러한 단편적인 글을 편집한 책이나마 세상에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만큼 해야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 개인의 글로 되어 있지만 그 배후에는 많은 낯선 지기(知己)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또 발언의 자유를 갖지 못한 많은 조선 사람을 대신하여 몇 가지 진실을 말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 개인의 고독한 저술이 결코 아니다. 싹터 나오려고 하는 사조(思潮)가 나를 통해 최초의 목소리를 낸 것일 뿐이다.(중략) 나는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조선을 생각한다’라고 붙였다. 이 제목이 나의 마음을 나타내는 데 가장 적합한 제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의 소망에 따라 ‘조선과 그 예술’이라고 고쳤다. 그것은 조선의 예술을 다룬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제목을 붙임으로써 연상되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약간의 주의를 덧붙일까 한다. 제목을 얼핏 보면 조선미술사에 관한 연구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역사적인 연구와는 완전히 목적을 달리한다는 점을 밝혀야겠다. 전자는 학문적인 연구이지만 내가 여기서 피력하려는 것은 사상이지 학술이 아니다. 사모(思慕)이지 설명이 아니다. 시간상으로 나타나는 예술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마음의 표현으로서 예술에 대한 이해이다. 또한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자의 보고가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자의 통찰이다. 내가 미에 대해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인식한 것을 언급하고자 한 것이다. 단순한 학술적 서술은 미의 본질까지 해명할 수 없다. 나에게는 작품의 객관적인 연구가 주제가 아니다. 그 작품을 통해 민족의 심리를 해명하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조선 민족의 운명과 직접적인 교감이 없는 ‘견해’에는 흥미가 없다. 나는 조선미술사에 밝은 두세 사람을 알고 있다. 언제나 그 사람들의 지식을 존경하지만 동시에 그 사람들이 예술의 작자인 민족에 대해 냉담한 데에는 놀라고 있다. 그들의 연구는 순전히 자기 지식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이지 조선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식은 정확할지 모르나 마음은 무척 차가웠다. 그러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다른 나의 견해는 존재해야 할 적극적인 이유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지식이라 이름 지을 만한 것들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심정을 그 대가로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독자도 아는 바와 같이, 이것은 내가 과거 3년 동안 틈틈이 쓴 단편적인 사상의 잡록(雜錄)이다. 처음부터 계획된 저술은 아니기 때문에 자주 같은 사상이 반복되는 데에 싫증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복된 부분은 틀림없이 내가 강조하여 말하고자 하는 부분일 것이다. 훌륭한 독자는 오히려 그 점에서 무언가를 더 추출해낼 것이다. 나는 이 책으로 문제의 해결점을 제공하려는 것은 아니다. 조선학이나 정치학에 대해 아무런 전문적인 학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독자에게 조선에 대한 정애를 불러일으키는 것뿐이다. 나의 인정의 따사로움을 믿고 거기서 이루어질 마음과 마음의 내면적 이해를 확실히 믿는다. (1)조선인들이 정치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알리고자 했다. (2)일본인들에게 조선적 미의 본질을 일깨움으로써 조선인과의 우의를 도모하고자 했다. (3)조선 예술에 대한 일본인 학자들의 접근 태도에 비판을 가하려는 의도에 입각해 있다. (4)조선 민족의 심리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조선 예술에 대한 체계적 고찰이 요구되었다. (5)심정적 차원에서 조선의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해설 지문에서 필자는 단편적인 여러 글을 모아 ‘조선과 그 예술’이라는 표제로 묶어 출간하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1)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조선과 일본의 사정’을 이야기한 글의 앞부분에서 읽어낼 수 있으며,(2)는 마지막 부분의 ‘독자에게 조선에 대한 정애를 불러일으키는’ 때 ‘마음과 마음의 내면적 이해’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지적한 대목에서 판단할 수 있다.(3)은 중간 부분의 ‘조선 민족의 운명과 직접 교감이 없는 견해에는 흥미가 없다.’는 대목의 전후 문맥에서 읽어낼 수 있으며,(5)는 자신이 피력하려는 바가 ‘사모(思慕)’이며 ‘마음의 표현으로서 예술에 대한 이해’이고 ‘예술을 사랑하는 자의 통찰’이라는 지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조선 예술의 고찰을 통해 조선 민족의 심리를 해명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음을 피력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위해 조선 예술의 체계적 고찰의 필요성이 요구된다는 언급은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책의 성격을 ‘계획된 저술’이 아닌 ‘단편적인 사상의 잡록(雜錄)’이라고 밝히고 있을 따름이다. 정답은 (4) 출제:김병구(숙명여대 교수·국문학 박사)
  • 0.7m의 전율…견지낚시

    0.7m의 전율…견지낚시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계곡들이 고요함과 적막함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곳은 강태공들의 차지. 견지낚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계곡으로, 강으로 손맛을 즐기러 떠납니다. 조상들의 멋과 여유를 간직하고 있는 견지낚시. 아름다운 자연과 한 몸이 되어 강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서나 세월을 낚을 수 있는 견지낚시는 릴낚시나 대낚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다른 맛이 있습니다.‘꾼’만 하는 낚시가 아닙니다. 짧은 낚싯대에 큼직한 고기를 낚는 재미도 좋지만, 맑은 물 흐르는 계곡에서 하루를 보내다보면 스트레스까지 말끔히 날아갑니다. 현대인을 위한 웰빙 레포츠이자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가족형 레저로 견지낚시는 더욱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견지낚시는 물에 들어가서 하는 흘림낚시와 배에 앉아서 하는 배낚시로 나뉩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여울과 견지’, 견지협회 회원들과 함께 견지의 맛을 보러 떠났습니다. 가평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300년이 넘은 낚시 정확하게 견지낚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소요정’이란 그림에 견지낚시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오래전부터 사랑을 받아 왔음은 분명하다. 일본인 미쓰사키 메이지가 쓴 조기백과에는 1730년대 평양에 사는 홍씨가 견지낚시를 발명했다고 적고 있다. 역사가 최소한 300년 이상 되는 셈이다. ●숏다리, 잡으면 대물 견지대는 불과 70㎝. 세계에서 가장 짧은 낚싯대다. 낚싯대보다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은 견지대 하나밖에는 없다고 한다. 그 구조를 살펴 보면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전후 원대(손잡이 부분)에 나무빗살을 스무 두어 개 박은 것으로, 그 모양은 파리채와 비슷하다. 원대의 직경은 겨우 3∼4㎜. 빗살의 위와 아래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약간씩 비틀려 어느 낚시도구에서도 찾아 보기 어려운 절묘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 ‘비틀림’ 때문에 낚싯줄이 고르게 감긴다. 또 큰 고기가 걸리면 낚싯대가 휘면서 줄이 풀릴 때 탄력을 줘 매달린 물고기에게 충격을 가한다. 그 작은 낚싯대가 큰 물고기를 끌어 올릴 수 있는 비결은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대나무와 등나무, 아카시아나무 등이 쓰였으며 지금은 솔리드 글라스대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국내 유일한 배 견지터 청평댐 앞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배 견지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견지낚시는 흐르는 물에서 해야 하므로 댐의 수문을 열지 않으면 낚시를 할 수 없다. 청평배견지(011-745-3342)에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1만5000원이면 OK! 낚시도구에 미끼까지 1만원이면 충분하다. 견짓대 한 대에 수십만원짜리도 있지만 줄을 포함해서 2000∼5000원짜리 보급형도 있다.2만∼3만원이면 사림이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을 구할 수 있다. 칠칠낚시(www.77fishing.co.kr)에서는 미끼와 밑밥을 담은 목걸이형 주머니(1000원), 낚은 고기를 담아 두는 살림망(3000원), 미끼를 담아 물고기를 유인하는 썰망세트(8000원) 등 기본 장비를 판다. 수장대(7000원)는 여울견지에서 몸을 지탱하게 하거나 살림망을 걸어두는 필수 장비. 사고에 대비한 구명조끼(3만원선)와 체온유지를 위해 바지장화(4만원)도 준비해야 한다. # 지금이 ‘딱’이에요 아침 10시 우리나라 유일한 배 견지터인 청평댐을 찾아갔다. 벌써 많은 강태공들이 북한강 지류에서 배를 타고 견지낚시를 하고 있었다. 함께 나간 이들은 강대식(71)·이정훈(56) 씨를 비롯해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 이상 견지낚시를 즐긴 도사급들이다. “이맘때가 견지낚시를 하기에 제일 좋은 시기”라는 강대식씨는 “물고기들이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먹이 사냥 움직임이 활발해져 씨알이 굵은 놈들이 자주 나온다.”고 말한다. 그는 “물도 그다지 차지 않고 무엇보다 피서객들이 없어 한가로이 세월을 낚을 수 있기 때문에 꾼들은 이맘때를 항상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이정훈씨는 “낚시의 종착역이 바로 견지낚시”라며 “견지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고 거든다. 웃음으로 반겨 주는 꾼들의 얼굴에선 한 점의 각박함이나 스트레스를 읽을 수 없었다. 일단 깻묵과 구더기를 4대1정도로 섞어 밑밥을 만든다. 그 다음 밑밥을 넣은 썰망에 추를 달아 강에 던진다. 흐르는 강물을 타고 썰망이 저만치 가라앉는다.“이게 고기들을 유인하는 겁니다. 썰망 사이로 빠져 나가는 미끼를 먹으려고 고기들이 썰망 앞쪽에 모이죠. 자, 손맛을 볼까요….” 손을 강물에 넣어 보았다. 물살이 꽤 빨랐다.“추가 좀더 무거워야 할 것 같은데….”그는 중간 노란 고무에 추를 달고 바늘에 구더기 3마리를 끼우고 강물에 바늘을 던졌다. 순간 “어, 왔네. 역시 바로 오네.” 금방 고기가 물었다. 이씨의 환호에 덩달아 들떴다. 설장(견지대의 머리부분)이 휘청이며 ‘투두둑´ 줄이 풀려 나간다.“견지대를 옆으로 뉘어서 몸쪽으로 쭉 당기세요. 오른손으론 대를 돌려 줄을 감아요. 조심 조심! 줄이 설장 밑으로 감기면 휘어지지 않아 대가 쉽게 부러져요.”뭔가 도울 게 없을까 대를 쥐고 있던 내게 이씨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들고 있는 대가 20만원이나 하는 고가품이라며…. 하지만 물고기가 이리저리 움직이니까 폭이 10㎝도 안되는 설장에 보이지도 않는 낚싯줄을 감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 찌릿찌릿 전기가 오르는 손맛 물고기의 퍼덕거림에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설장이 휘청휘청, 놈이 바늘을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려 할 때마다 손을 타고 온몸에 전율이 전해졌다. 갑자기 이씨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왔다. 저기저기….” 정말 푸른 물 속에 검은 물체가 하나 보였다. 표면에 모습을 드러낸 놈은 누치였다.30㎝는 족히 넘어 보인다. 놈도 위험을 직감했는지 마지막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견지대를 머리 위로 올려서 공기를 마시게 해요. 물고기 힘빠지게….”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이씨는 내게서 낚싯대를 잡아챘다. 순간, 누치는 바늘을 빼고 사라졌다. 아, 그 아쉬움이라니…. 또 다시 바늘을 바닥에 드리우고 견지대를 몸 안쪽으로 당겼다 밀었다하는 스침질을 하며 바닥을 훑었다. 스침질을 할 때마다 설장을 반바퀴씩 돌려 줄을 풀어 준다. 견지로 반평생을 살아온 이씨의 스침질은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몸짓처럼 부드러웠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이렇게 입질이 없을 때는 뭔가 잘못된 겁니다. 줄을 감아 미끼가 있는지 아니면 이물질이 붙지는 않았는지 한번 살펴 보세요.”역시 선배의 말은 들어야 한다. 바늘에 청태(파래같은 물이끼)가 잔뜩 묻어 있다. 새 미끼로 갈았다. 바로 그때 옆자리에선 또 환호성이다.“왔다.” 견지대를 쭉 당겼다 밀면서 감기를 몇 번. 이번엔 20㎝가 넘는 누치였다. 신기했다. 이렇게 작은 낚싯대로 큰 고기를 건져 올리다니…. 내가 잡은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고, 우리 배에서 잡았다는 자족감에 젖었는데 이번엔 옆 배에서 환호성이 들렸다.“멍짜(50㎝가 넘는 물고기)야. 멍짜가 왔어.”박찬화(50)씨는 휘어진 견지대를 두 손으로 잡고 소리친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20분이 흘렀을까, 놈이 실체를 드러낸다.60㎝ 가까운 녀석이라 뜰채로 건져 올렸다. 우리 선조들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어떻게 이런 낚싯대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짧은 낚싯대로 그처럼 큰 고기를 건져 올리다니…. 나는 다시 한번 집중했다. 어깨너머 구경하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는 없는 일. 또 한마리를 더 잡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 물고기도 사람을 알아 본다네 이상도 하지. 같은 배에 나란히 앉아서 스침질도 비슷하게 하는데 왜 내 바늘에는 소식이 없을까. 욕심탓인가, 내 낚시바늘은 여전히 가뿐한데 옆사람은 5분에 한 마리씩 잡아올렸다. 정말 고기에게도 눈이 있다더니…. 누치는 미끼가 흘러갈 때 문다. 그래서 스침질을 할 때마다 줄을 조금씩 풀어줘 썰망 앞에 있는 녀석들을 유인해야 한다. 추를 달아 썰망 앞 2m 정도에서 스침질을 해야만 물고기의 입질을 받을 수 있다. 무작정 던져 놓고 물고기가 물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라나. 역시 어느 분야든지 고수는 다른 법. 우리 배에서만 누치 20여마리를 잡았다. 물론 내가 잡은 것은 한 마리도 없다. 하지만 내가 건진 것은 ‘많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 전, 일행은 잡았던 누치를 모두 놓아 주었다.“원래 우리는 손맛을 보려고 오지. 또 누치는 가져가 봐야 별로 쓸 데가 없어요.”올 때처럼 역시 빈바구니였다. 아, 이것이야말로 자연과 하나된 삶의 모습이구나. # 자연과 내가 한 몸 청평에서 차를 몰고 약 1시간을 달려 홍천 팔봉산 앞 계곡으로 들어갔다. “요즘 계곡에는 피서객들이 지나간 뒤라 입질이 자주 없지만 대물이 종종 출현해 손을 즐겁게 해주지요.” 바지장화를 입고 견지대를 뒤에 꽂고 가는 김정교(50·견지협회 사업국장)씨의 모습이 멋스럽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줄을 강물에 띄워 보내며 스침질을 한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계곡물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만든다.“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어요. 줄을 풀어 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좋은 사람들….” 김군학(51·건축업)씨는 한창 견지낚시 예찬론을 늘어놓는다. “경제적이지요. 낚싯대가 2만원이면 되는데 대낚시나 바다낚시와는 비교가 안되죠. 초보자도 배우기 쉽고….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점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견지를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스트레스가 없어져요.” 섬유수출업에 종사하는 권재구(55)씨의 견지낚시에 대한 자랑은 끝이 없다. #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즐거움 정말 산그늘에서 반짝이는 강물을 보고 있노라니 온갖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면 된다는 듯, 강물은 그렇게 흘러간다. 계곡 얇은 곳에는 아이들과 견지낚시를 하는 가족들이 눈에 띈다.“아빠 잡았어. 이것 봐. 물고기야.”하는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와 반바지를 입고 스침질을 하던 황소윤(9·고양초등학교)양의 목소리다. 불과 2∼3㎝도 안되는 피라미를 잡고는 너무 좋아한다.“견지낚시는 아이들에게 집중력을 키워 주고 자연과 함께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효과가 있지요. 정말 아이들이 쉽게 배우고 바로 손맛을 느낄 수 있어 가족 레포츠로 그만이에요.” 황선태(38·식당운영)씨의 견지예찬론이다. “어허 왔네.” 조그마한 피라미를 들어 올리는 김정교씨의 웃음은 결코 커다란 누치를 잡을 때에 비해 작은 것 같지 않다. 피라미의 손맛은 누치와는 또다른 묘미가 있다. 견지대는 70㎝도 안 될 정도로 작아 손에 오는 느낌이 대낚에 비해 훨씬 살아 있다. 찌를 쓰지 않고 오직 줄을 타고 오는 느낌만을 손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예민하고 섬세하다. 그래서 민물, 바다, 루어 등 낚시를 웬만큼 안다는 사람들이 찾는 마지막 코스다. 또 루어나 플라이처럼 물고기를 찾아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서 물고기를 유인하므로 체력 소모가 적다. 자연과 벗하며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견지를 하며 다가 오는 가을을 준비하면 어떨까.
  • 해외여행 급증… 서비스수지 ‘최악’

    해외여행 급증… 서비스수지 ‘최악’

    해외로 놀러가거나 유학·연수를 가는 사람이 크게 늘면서 지난 7월 서비스수지 적자액이 15억달러에 육박해 월간 규모로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3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5년 7월중 국제수지동향(잠정)’에 따르면 서비스수지 적자는 14억 9500만달러로 6월보다 4억 3000만달러나 늘었다. 이는 지난해 7월의 적자액 8억 9000만달러에 비해서도 6억달러 이상 급증한 수치다. 서비수수지 적자가 급증한 것은 해외여행 등을 하면서 쓴 돈은 크게 늘어난 반면 국내를 찾은 외국 관광객은 줄어든 영향이 크다.7월중 내국인 출국자수는 102만 1000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13.8%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내국인이 해외여행 경비로 쓴 돈은 7월에만 11억 2000만달러에 달했다. 이에 비해 외국인 입국자는 49만 5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감소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7월에 국내에서 쓴 돈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00만 달러나 줄어든 4억 4000만달러에 그쳤다. 최근 3∼4개월 동안 독도 문제 등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유학·연수비용도 7월 중 3억 1400만달러로 전년 동기의 2억달러에 비해 1억달러 이상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유학·연수 비용은 8월에 사상 최대 기록을 다시 갈아치울 것으로 예상된다. 방학을 이용한 해외여행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7월 경상수지 흑자는 전월 대비 9억 3000만달러 줄어든 13억 7000만달러에 그쳤다.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수입이 크게 늘어나 상품수지에서 흑자폭이 전월보다 5억 9000만달러나 줄어든 31억 1000만달러에 그쳤기 때문이다. 월별 경상수지는 지난 4월 9억 8000만달러의 적자를 낸 이후 5월부터 석달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8월은 휴가기간이 많아 영업일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품수지나 서비스수지가 7월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정삼용 국제수지팀장은 “8월에는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19)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지평 모색

    [일본을 다시본다] (19)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지평 모색

    |도쿄 특별취재반|‘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지평 모색.’ 이보다 우리를 더 난감하게 만드는 주제가 있을까. 지금껏 한국과 일본 사이에 ‘미래’가 자리할 틈은 없었다. 한·일은 여전히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고, 과거에 발목잡혀 있다. 독도, 야스쿠니, 역사교과서 등의 현안은 시간의 정방향성과 격리된 채 수십년째 제 자리에서 ‘현재진행형’이다. 한·일관계에 있어 모든 과거는 현재에 투영되고, 모든 현재는 과거에 닿아 있다. 도대체 한·일이 과거를 훌훌 털고 현재를 뛰어넘어 미래로 내달릴 수 있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대전환은 불가능한 것일까. ●지금 뭐라고 했지?… 對한국 관심지수 30 A라는 사람이 친구 B한테 잔뜩 화가 나서 항의한다. 하지만 B는 별다른 대꾸가 없다.A는 더욱 화가 나 욕을 퍼붓는다. 그래도 B는 묵묵부답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A는 급기야 B의 멱살을 잡는다.“야, 내 말이 말같지 않아?” 그제서야 B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뗀다.“응?아까 뭐라고 했지?” A는 얼마나 황당할까. 일본에 가서 일본인과 직접 한·일관계를 얘기하면서 든 기분을 조금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그동안 일본을 향해 분기탱천해온 기억이 무안할 정도로 일본 사람들은 한·일간 현안에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우리의 대일(對日) 관심지수가 ‘100’이라면 일본 국민의 대한(對韓) 관심지수는 ‘30’정도, 심지어는 ‘0’에 가깝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런 정서는 지난달 말 서울신문과 도쿄신문이 공동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됐다.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 상대국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0%대로 나타났지만, 일본인한테서는 유독 무관심성 응답이 35%나 나왔다. 한국인의 대일 무관심 비율 20.9%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일본 국민의 이같은 정서가 정치인들의 반쪽짜리 역사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게 아닐까. 일본의 정치인을 만나면서, 한국이 과거의 거울로 일본을 재려는 데 반해 일본은 과거를 외면한 채 현재만 보려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중의원 해산 전인 지난 5월 만난 고노 다로 의원은 군대를 가질 수 없도록 한 일본헌법 9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거침없이 주장했다.“일본이 이미 해외에 자위대를 평화유지군으로 파병하고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과거는 외면한 채 현재만 보는 논리다. 자민당의 차세대 유력 정치인인 그는 또 “사이가 안 좋다고 한국이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조례안 통과에 대해서도 그는 “시마네현이 일본 정부에 어민들을 좀 챙겨달라는 취지로 한 것이지, 한국을 겨냥한 게 아니다.”면서 “한국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내가 한국 대통령이라면 배용준과 독도에서 함께 사진을 찍어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조언’까지 곁들였다. 야당인 민주당의 기타하시 겐지 중의원이 준 첫 인상도 비슷했다. 그는 “일본인들은 독도 문제를 크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렇게까지 이슈화되는 데 놀랐다.”고 했다. 그는 특히 지난 1970년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나치에 의해 희생된 폴란드의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 유명한 일화를 기자가 꺼내자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느냐. 처음 들었다.”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변화의 씨앗´ 키우는 야당 정치인들 하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한·일관계 개선에 청신호가 될 만한 조짐들을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고무적이다. 기타하시 의원은 “10년 전 한국의 독립기념관을 가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일본 정치인은 아시아 민족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를 안 하는 것은 물론,2차대전 전범은 야스쿠니에서 분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일 정부가 프랑스 등 제3자를 포함시키는 역사 공동연구회를 만들어 연구한 뒤 결과를 TV 등을 통해 공표함으로써 기정사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한국을 향해 한가지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독립기념관의 전시물이 너무 리얼해서 충격적인데, 한국 어린이들이 그런 것을 자꾸 보면 평생 일본을 미워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한·일간 우호가 정착되기 힘들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미카즈키 다이조 중의원은 보다 진보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일본의 미래상은 경제선진국이 아니라 문화선진국, 인간부흥, 자연과의 공생, 아시아 공동체 등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지금 고이즈미 총리의 정책은 자기나라의 이익만 생각하는 정책”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일의 진정한 미래 모색 그럼에도 불구, 결국 한·일간의 진정한 ‘미래’는, 정부 차원의 화해 같은 것이 담보해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닐 것이다. 근본적으로 일본 국민이 변하지 않는 한,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의 변화는 사상누각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 국민들의 변화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 일본에 항의하고 일본 내 양심세력과의 연대를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우리 스스로 힘을 키워 경제적·문화적으로 선진국 대열로 들어서는 것밖에 왕도가 없다는 것이 일본을 취재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지향하며 한국을 아예 맞수로 치지 않는 일본 국민을 향해 “내 말을 들어보라.”고 핏대를 올리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상대가 저절로 관심을 갖게끔 힘을 기르고 매력을 키워가는 게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모색은 그 다음 단계일 것이다. 최근의 ‘욘사마 열풍’은 이런 핵심을 적나라하게 예시한 사례이다. 욘사마 때문에 난생 처음 지난해 한국을 여행했다는 일본인 간다 가쓰에(39)의 ‘고백’은 시사점이 크다.“욘사마 이전에는 한국이나 한·일관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이 아주 발전된 나라더라. 한국을 더 자세히 알고 싶고, 좋은 한국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다.” carlos@seoul.co.kr ■ 日 민주당 ‘386 보좌관’들이 말하는 일본 |도쿄 특별취재반|지난달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국회를 해산하기 전 일본을 취재하면서 도쿄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노자키 도시오 등 민주당의 국회의원 보좌관 6명과 한·일관계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30∼40대 연배인 그들과의 토론을 통해 일본에 대해 갖고있던 선입견이 많이 깨졌고, 일본인을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보좌관들은 일본 정치가 개혁돼야 하고, 그러려면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우경화의 테두리는 벗어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일왕제와 관련해 직설적인 질문을 던져봤다.“일왕제 때문에 일본이 변화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패전에도 불구하고 일왕제가 존속됐기 때문에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집권층은 기득권을 유지했으며, 우경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보좌관들은 하나같이 묵묵부답이었다. 화자(話者)를 배려해 미소 띤 얼굴을 일그러뜨리지는 않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무언의 항변 같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정말 일왕을 신의 자손이라 믿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젓는다.“신의 자손이라고 전혀 믿지 않는다. 다만 국가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본이 왜 우경화 하느냐.”고 묻자 “우경화를 나쁘게만 보지 말라.”고 반박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이 유엔 분담금을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이 내는데,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입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냐.”고 강조했다. “일본국민은 왜 자꾸 자민당에 몰표를 주느냐.”는 질문에는 “막상 정권이 바뀌면 불안해서.”라는 대답과 함께 “이혼을 두려워하는 것” “부모들 때문에 젊은층도 자민당을 찍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젊은층의 정치 무관심에 대해서는 “투표해도 선거결과가 바뀌지 않으니 아예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어봤다.“그전에는 한국이 뒤처진 나라라고 인식했는데 최근 한국 드라마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의견과 “한국 드라마는 한 편도 본 적이 없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취재에 도움을 줘 고맙다는 뜻으로 식사비를 내려 했더니 그들은 “안된다. 더치페이하자.”고 사양했고, 결국 각자 밥값을 계산했다. carlos@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 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 황장석(정치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 야스쿠니 8월 두표정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 야스쿠니 8월 두표정

    일본의 패전 60주년인 8월15일 야스쿠니(靖國)신사는 또다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찜통 더위에도 불구하고 20만여명의 참배·관람자들과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들어서다. 군국주의 향수에 젖은 우익세력들은 하루종일 신사 경내를 휘젓고 다녔다. 침략전쟁을 반성하자는 양심세력은 신사 근처를 빙빙 돌다 밀려났다. 당연히 엄숙한 추모분위기 대신 소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인들에게 무엇이고, 왜 논란의 중심인가. |도쿄 이춘규특파원|야스쿠니신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집권한 2001년부터 총리가 매년 참배하고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더욱 더 주목을 끌고 있다.2002년 이후 일본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야스쿠니신사는 우익들에게는 군국주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상징적인 곳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군국주의 시절 향수를 자극한다 8월15일 야스쿠니신사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옛 일본군복 차림의 우익인사들이 집단으로 신사를 참배했다. 이들은 오전과 오후 수차례에 걸쳐 거대한 구령소리로 다른 관람자 등에게 위압감을 주면서 옛 일본군이 출전하기 전에 참배하던 식으로 ‘받들어 총’ 자세로 신사를 참배했다. ‘영령에 답하는 모임’ 회원들은 초등학교 어린이까지 가세,A급 전범 분사를 요구하는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도 비난하고 “일본 정부는 외부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분사반대 서명운동을 펼쳤다.‘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고이즈미에게 신벌(神罰)을’이라는 섬뜩한 깃발이 날리기도 했다. 자신을 하라사키라고 밝힌 옛 일본군복 차림의 일본인은 사람들에게 “자위대는 군대다. 따라서 헌법을 고쳐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야스쿠니를 찾는 사람들, 특히 우익들은 한국언론을 싫어한다. 한국어투가 섞인 일본말로 질문하면 “한국인이지….”라며 적대감을 표시한다. 사라지라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그들의 속내를 듣기는 어렵다. 결국 그들간의 대화를 귀동냥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른 나라는 간섭하지 말아줘요 패전 60주년인 올해는 한국인 기자에게 더 민감했다. 평범하게 생긴 60대의 와타나베는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짜증냈다. 자신도 참전했었다는 한 80대 노인은 참배 논란에 “내정간섭”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물론 가족을 기리는 참배자도 많았다. 한 80대 할머니는 “형제가 두 명 전사했다. 생명이 있는 한 참배를 계속 하겠다.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으면 우리 형제들이 불쌍하고, 오기도 싫어진다.”고 우려했다. 평소 연인들도 숲이 우거지고 시내 한복판에 있는 야스쿠니를 데이트장소로 많이 찾는다.20대 연인 한 쌍은 “유족은 아니지만, 일본인으로서 참배하러 왔다. 이분들이 일본의 주춧돌이다.”면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참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한 대학생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총리는 참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국내에도 유족은 아주 많이 있지만, 해외에도 피해자가 있지 않은가.”라고 주장했다. ●소리 안내는 사람들, 마음은 복잡 평소 사석에서 접하는 일본인들은 비교적 본심에 가깝게 야스쿠니신사 문제에 대해 토로한다. 은퇴한 뒤 4년째 각종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나카자와는 태평양전쟁에 자원 입대했던 삼촌 2명이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돼 있다. 그래서 야스쿠니를 특별한 의식 없이 찾는다. 다만 A급 전범 분사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이 확실하다. 일본인은 죽으면 신분 고하를 떠나 신이 되고,A급 전범도 그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분사해도 여전히 신이라고 한다. 따라서 분사해도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인들에겐 생뚱맞게 들릴 법하다. 50대 회사원 곤노의 설명은 현실적이다. 야스쿠니에는 246만여명의 위패가 있기 때문에 일본인 전체가 먼 친척까지 포함하면 야스쿠니신사와 일정정도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계기로 야스쿠니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초·중·고 시절 단체참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국주의 찬양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본에는 분명 야당이나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분사나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중지를 요구한다. 극단적으로는 야스쿠니신사 경내의 전쟁박물관인 유슈칸만이라도 즉각 없애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야스쿠니신사가 국제적 논란의 대상이 된 뒤 호기심에 야스쿠니를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상당수 일본인들은 “야스쿠니 논란 장기화는 누구에게나 상처만 남긴다. 따라서 하루빨리 어떤 형태로든 결론을 내야 한다.”며 걱정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日유족회 모리타 쓰구오 부회장|도쿄 이춘규특파원|야스쿠니신사에 위패가 안치된 태평양전쟁 전사자 유족 모임으로 자민당 최대 후원단체인 일본유족회 모리타 쓰구오(전 참의원 의원) 부회장은 유족회 사무실에서 만난 기자에게 “20년 이상 된 (야스쿠니 신사) 소란이 언제나 그칠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일본인이 야스쿠니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본인 중에도 참배 안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젊은이 가운데는 야스쿠니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찾는 경우가 많다. 일반 신사와 다를 게 없다. ▶고이즈미 총리 등의 참배에 한국, 중국 등이 강하게 반발하는데. -일면 이해한다. 그러나 일본에는 일본의 가치가 있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리다. 참배자 대부분이 A급 전범에 관계 없이 유족의 관점에서 참배한다. 나라를 위해 숨진 영령들을 위령하는 이곳을 국정 최고 책임자인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A급 전범 등은 다르지 않나. -일본인들은 A급 전범을 범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도쿄재판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731부대 책임자가 미국의 정보에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에 전범에서 누락되는 등 의문점이 많다. 전쟁 책임은 인정하지만, 왜 14명만이 특별히 책임져야 하나. 독일도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나치나 히틀러에 대해 사죄했지, 독일 자신의 사죄는 아니었다. 일본에는 히틀러 같은 사람이 없다. ▶A금 전범 분사에 대해선. -한국과 중국을 만족시킬 해결책이 있으면 검토하겠지만 지금은 해결책이 없는 상태다. 분사는 있을 수 없다. 일본을 위한 희생자인데 246만 영령에 끼지 못하는 것은 이상하다. 분사 의견도 있긴 하지만 분사는 도쿄재판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반대한다. ▶무종교 추도시설 건립은. -새 추도시설을 만들어도 결국 새로운 논란만을 낳을 뿐이다. 기념비 같은 것은 해외 여론을 달랠 뿐 국내에선 새로운 논쟁이 격렬해진다. 기독교, 불교 등의 반대가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이후도 130년 역사의 야스쿠니가 유일한 추도시설이다. ▶일반 국민의 유족회에 대한 생각은. -우익단체나 군국주의를 연상하며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시각에 강력히 반대한다. 우리는 피해자다.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1985년 나카소네 전 총리의 참배 이후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커지며 20년간이나 시끄러운 문제가 됐다. 유족들은 유지하고 싶은데 근린제국들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돼버렸다. taein@seoul.co.kr ■ 야스쿠니 신사는야스쿠니 신사는 왕궁, 국회, 총리관저, 관청가와 가까운 도쿄 한복판에 있다. 연간 참배·관람자는 500만여명에 달한다고 신사측은 밝힌다. 야스쿠니는 ‘편안한 나라’라는 의미다. 따라서 나라를 편안하게 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다.1978년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되고,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가 참배하며 국제적인 논란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최근은 더 심하다. 야스쿠니 신사는 옛 일본군들이 “죽은 뒤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며 참배한 뒤 태평양전쟁에 나갔을 정도로 국가 신도의 상징장소였다. 일왕 중심의 군국주의의 온상이기도 했다. 따라서 연합군사령부가 야스쿠니를 없애려다, 동북아에 긴장이 조성되자 유지시켰다.1개 종교법인으로 격하됐지만 일본인들에겐 야스쿠니는 특별한 존재다.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진 무진전쟁 이후 태평양전쟁까지의 11개 전쟁 전몰자 246만 6532명(지난해 10월17일 현재)이 안치되어 있다.
  • [씨줄날줄] 야나기 무네요시/이용원 논설위원

    ‘여러분이여, 당신이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가리지 말고 이 작은, 그러나 정과 사랑으로 쓴 책에서 진리의 물을 길어 달라.…예술은 언제나 국경을 초월하여 우리의 마음을 적셔준다. 예술의 나라에서는 다같이 형제가 아닌가.’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는 1922년 발간한 저서 ‘조선과 그 예술’ 첫머리에서 이처럼 호소했다. 야나기는, 누천년(累千年)에 걸친 한·일교류사에서 한국문화 발전에 직접 공헌한 드문 일본인이었다. 동경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종교철학자이자 예술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데 충격을 받아 그해 5월 요미우리 신문에 ‘조선인을 생각한다’는 글을 연재한다.‘불행한 조선의 국민을 공적으로 변호하는 사람이 없어 서둘러 쓴’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평생토록 한국 미술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을 집필과 미술품 수집, 강연 등으로 구현한다. 야나기가 한국문화에 끼친 대표적인 공로로는 조선시대 민화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학술적으로 체계화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민화(民)’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민중 속에서 태어나 민중을 위해 그리고, 민중이 구입한 그림’이라고 정의했다. 이후 민화가 우리 전통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으면서 그에 관한 연구가 발전한 것은 온전히 야나기의 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야나기의 한국미술 해석이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가 연구 초기에 한국의 미(美)를 ‘비애의 미’‘가련의 미’로 표현한 것은 훗날 우리 연구자들에게 세게 비판받았고 당연히 극복의 대상이 됐다. 그렇더라도 이는 부분일 뿐 야나기 무네요시(국내에서는 그의 한자 이름을 우리 발음으로 표기한 ‘유종열’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의 업적 자체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야나기가 수집해 일본 민예관이 소장한 작품을 주축으로, 일본내에 산재한 조선 민화 120여점이 새달 6일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된다. 대부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진품들이다.‘반갑다! 우리 민화’라는 전시회 이름처럼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알뜰쿠폰이 와르르 쏟아져요

    알뜰쿠폰이 와르르 쏟아져요

    이번 주말에는 깔끔 담백한 캘리포니아 롤의 맛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입 베어 물면 아보카도와 날치알의 싱그러움이 입안 가득 퍼지는 캘리포니아 롤. 미국에 사는 일본인들이 날 생선을 먹지 못하는 미국인의 입맛에 맞춰 개발한 ‘퓨전스시’입니다. 생선의 풍부한 영양과 낮은 열량으로 다이어트는 물론 아이들의 영양식으로 좋습니다. 서울신문 주말매거진 We와 쿠폰 전문업체인 코코펀(www.cocofun.co.kr)은 캘리포니아 롤과 함께 가족들이 색다른 외식을 즐길 수 있는 할인 쿠폰을 준비했습니다. 리틀캘리포니아 노원점과 스시캘리포니아 수유점, 캘리롤 신림점 등은 음식값의 10%를 할인해 주며, 미인(美in) 신촌점은 맥주 1병을 무료로 제공합니다. 신문에 게재된 쿠폰은 인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쿠폰 문의는 코코펀(080-567-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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