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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승원 토굴살이] 도깨비 때문에 잠을 설친다

    [한승원 토굴살이] 도깨비 때문에 잠을 설친다

    도깨비 생각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한다. 새만금 바다 사건(나는 그것을 ‘사업’이라고 말하지 않고, 바다에 대하여 무지한 우중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도깨비적인 데가 있다. 유년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도깨비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꼭두새벽에 고기잡이 하러 나가는데 키 장대 같은 도깨비가 씨름을 하자고 덤비어, 도깨비는 왼쪽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놈의 왼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가지고 사장나무 밑동에다가 친친 동여 묶어놓고 낮에 가보았더니 닳아진 몽당 빗자루였다는 이야기, 어느날 밤에 천관산 모퉁이 한 굽이를 떼어다가 바다 한가운데에다 동글동글한 섬 다섯 개를 만들어 놓더니 며칠 뒷날 밤에 두 개만 남겨 놓고 셋을 들어다가 다시 천관산 ‘도둑마끔’ 끄트머리에다 붙여놓은 이야기. “어째서 도깨비는 왼쪽 다리가 약하대요?”내가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대답했다.“강한 체하고 허풍을 치는 것들은 다 왼쪽에 큰 약점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도깨비들은 왜 무단히 산을 떼어다가 섬을 만들기도 하고, 그것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도 한대요?” “힘이 넘쳐나는 도깨비 무리들은 마땅하게 할 일이 없으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죽이곤 하니께, 무리를 거느린 대장이 없는 일을 만들어서라도 시킨단다. 도깨비들은 그렇게 어떤 일인가를 부지런히 해야만, 천만 길 땅 속에 있는 도깨비 대국의 두목이, 아하, 내 부하들이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구나, 하며 황금과 먹을 것을 듬뿍 보내준단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전라북도 군산 모퉁이에서 상하이까지를 막아 농토로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도깨비들의 괴력을 생각했다. 얼마 전부터 내내 불가사의 그 자체였던 도깨비의 괴력을 인간의 광기로 풀이하기 시작했다. 그 공식으로 헤아린다면, 광활한 새만금 바다 물막이 공사는 도깨비적인 사건과 다름없다. 국가의 어떤 일인가를 맡아 하는 ‘공사’들은 국가 발전을 위하여 거듭거듭 어떤 사업인가를 구상하고 기획해야 하고, 정부로부터 그에 따른 예산을 끌어다 사용하지 않으면 자기들의 밥줄이 떨어진다. 그들은 자기네 직원들이 무슨 일인가를 하여 봉급을 받고 살아야 하므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으면 들판 한 복판에 산을 옮겨 놓기라도 하고, 그것을 다시 허물어다가 바다를 메우기라도 해야 한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나라의 국가적인 거대 사업은 대개 도깨비(愚衆·우중)적인 데가 있다. 정치인들이 몰표를 얻기 위하여 도깨비적인 공약을 일삼는 까닭이다. 새만금 사건은 애초에 한 대통령 후보가 전라북도 표를 모으기 위해 그곳을 농토로 만들어주겠다고 한 공약으로 비롯되었지만, 이제 한반도 안의 옥토들을 휴경하게 하고 보상을 해주는 판국이므로, 그 땅을 공장 부지나 관광용지 따위로 용도 변경하여 또 무슨 일인가를 거듭 벌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주의 생명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한 사람들이 예언한 바와 같이, 그들은 새만금의 방죽을 결국 ‘시화 호수’처럼 썩은 물이 고이게 만들어 놓게 될 것이고, 얼마쯤 뒤, 흉측한 냄새 풍기는 죽은 물을 되살리는 묘책은 역시 바닷물이 들어오게 하는 길뿐이라고 하면서 수문을 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막느라고 몇 개의 산이 지도상에서 사라졌는가. 시퍼런 새만금 바다를 육지로 변하게 하려면 몇십 개의 산이 사라져야 할까. 앞으로 몇십 년 동안 몇십조 원을 더 거기 처넣어야 할까. 이 세상을 끔찍스럽게 바꾸어가는 것은, 늙바탕에 들어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대가로 무지막지한 권능을 가지게 된 파우스트가 개발 사건을 광적으로 벌여간 것과 똑같은 도깨비적인 행위와 시행착오의 살상이다.
  • “한·일전 역사앙금 보는듯해 착잡”

    “한·일전 역사앙금 보는듯해 착잡”

    “한국남자가 자상하고 로맨틱하다구요?천만에요. 한국에 욘사마는 절대로 없어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을 하루 앞둔 18일 오후. 두 나라에 ‘타도 일본!’‘복수 한국!’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 서울 종로구 운니동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는 이색적인 양국 화합의 장이 펼쳐졌다. 공보문화원과 JETAA(일본교환교수프로그램 총동문회)가 주최한 제1회 한·일교류 말하기 대회. 상대국 언어 실력을 겨루는 자리로 일본인 7명, 한국인 8명 등 15명이 10대1의 예선 경쟁을 뚫고 본선무대에 섰다. 얼마나 독창적인 내용을,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과 속도로, 호소력 있게 표현해 내느냐가 관건. 참가자들은 대부분 상대국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과정을 주제로 잡았다. ●미묘한 문화의 차이로 남편과 티격태격 대상(1등)은 ‘욘사마 같은 남자는 없다.’를 주제로 말한 구보 료코(29·여)가 차지했다. 그는 한국인의 아내로 살면서 겪은 에피소드로 관객들에게 내내 웃음을 선사했다.“남편과 연애하던 2000년에만 해도 저를 이해 못하는 일본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엔 욘사마 덕분에 ‘선견지명이 있었구나.’라며 부러워들 해요.” 하지만 그는 “드라마의 환상을 좇아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일본 여자들을 보면 안타깝다.”면서 “한국 남자들은 독립심이 없고 잘난 척과 허풍이 심하다.”고 꼬집었다.“툭하면 ‘하늘 같은 남편이 말씀하시는데 어딜!’이라고 말하는 남편 때문에 수도 없이 싸웠지요.” 한번은 팥빙수 먹는 법을 놓고 다투기도 했다. 팥과 얼음을 비벼서 먹는 남편에게 섞지 않고 그대로 먹는 일본식을 얘기했던 게 불씨가 됐다. 하지만 요즘은 구보가 먼저 비벼서 먹는다고. 남편 방식대로 먹어보니 의외로 맛있단다.“한국에 욘사마는 없어도 남편은 저만의 욘사마죠.” ●“요코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카하시 요코(27·여)는 “튼튼한 다리 덕에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고 국내 체류기를 소개, 한일우정상(2등)을 받았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일본어 강사로 있는 그는 지난해 2월 교편을 위해 한국에 온 뒤 몇달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살았다. 한국어를 할 줄 몰랐고 배울 엄두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영화 ‘마라톤’을 보고 춘천이란 도시에 반했고 춘천마라톤 출전을 결심했다. 마라톤 연습을 하면서 몰랐던 길도 하나하나 알아가기 시작했다. 장기 두는 할아버지, 수다떠는 아줌마, 고추 말리는 할머니들…. 낯설기만 했던 한국의 풍경들이 하나둘 가슴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한국에서 첫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해냈어요. 영화 속 초원이 엄마가 ‘요코의 다리도 백만불짜리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다카하시는 19일 한·일 야구가 일본의 승리로 끝난 뒤 “한국에 있는 일본 친구들과 일본팀을 열심히 응원했다.”면서 “세번째 만에 일본이 이겨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두 나라간 미묘한 역사적 감정이 스포츠 경기에 지나친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행사를 기획한 JETAA 한국지부 부회장 박성희씨는 “첫 대회인데도 많은 참가자가 몰려 성황을 이뤘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우정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기고] ‘백제역사문화관’ 성공의 전제/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인간은 역사적 경험과 문화환경의 피조물이다. 그래서 백범은 역사적 긍지가 넘치는 문화가 부강한 국가를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염원하였다. 우리 민족은 불굴의 투지로 정신세계와 언어를 7000년 이상 지켜왔다. 그러나 물질의 역사적 증거인 문화유산은 병란과 약탈의 참화속에서 불타 없어지고 소멸되었다. 역사유적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남아있다면 굴뚝없는 문화관광 수입은 세계인의 부러움을 살 것이다. 관광대국 스페인, 이탈리아, 멕시코를 앞질러 오늘날 문제되고 있는 빈부의 양극화와 500만 젊은이의 일자리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3세기에서 10세기까지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중 문화유적이 가장 철저히 파괴된 나라가 백제이다. 우리는 일본 고대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하였던 아스카, 나라, 헤이안문화가 살아 숨쉬는 교토, 오사카(난파), 나라를 보면서 그 원류인 백제문화의 원형질을 유추해 보는 역사의 서글픔을 안고 대리만족하며 살아왔다. 문화와 민족의 혈맥에 얽힌 유전인자 때문인지 일본의 도쿄, 오사카지역 관광객들은 구다라(백제)를 열심히 찾는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이 그들 조상문화의 옛터에 귀향할 때 망가지고 부서지고 흔적조차 없는 백제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5∼7세기 동북아의 문화저수지 백제가 다시 찾아오고 있다. 충청남도와 문화재청은 4000억원의 국민혈세를 투자하며 100만평의 문화 공원에 고증과 조사연구, 해외자료를 바탕으로 1400년전의 백제를 거울에 비추고 있다. 주초뿐이었던 왕궁의 역사적 재현, 백제인의 삶이 숨쉬는 마을, 고대의 성곽문루, 전통공예촌 예술인마을을 힘겹게 추진하고 있다. 그 중간 길목의 시점에서 문화로 접목시킨 컴퓨터와 비디오, 오디오가 현란하게 만들어가는 시뮬레이션속에 백제의 놀이방 ‘백제역사문화관’이 3월16일 오후 2시 첫 울음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린다.2001년부터 6년간 276억원의 예산과 국민의 정성을 모아 새롭게 태어나는 백제역사문화관의 기와 특별전과 어린이체험실, 김덕수의 사물놀이패가 우리를 삶과 역사, 예술, 문화의 명소로 안내할 것이다. 백제의 도읍이었던 한성(서울), 웅진(공주), 사비(부여)의 문화축은 한국 고대 문화의 심장부이다, 국립부여, 공주박물관의 리얼한 명품의 기품에 기죽은 백제역사 문화관이 아니다. 역사를 소설, 시, 만화, 이야기처럼 쉽게 풀어낸 유비쿼터스 매직 기술을 가지고 가족 모두가 함께 대화하게끔 만든 생활 미술관이다. 우리는 1400년의 타임캡슐을 꺼내어 백제의 역사, 생활문화, 정신세계, 세계화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문화시설도 국민과 마음의 거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부여는 고속도로와 30분안에 곧장 만나는 톨게이트도, 서울고속터미널에서 직접 오는 고속버스도, 그 흔한 기차역 하나 없다. 백제의 수도로서 서울에서 관념의 거리는 지척에 있으나 시간상 거리는 제주도보다 먼 오지이다. 백제 문화를 국민과 피부로 만나게 할 가장 쉬운 방법은 경부고속도로 대전, 외곽순환선의 부여, 공주 연결과 서해안고속도로와 천안, 논산고속도로와 직접 만나는 무인 톨게이트가 뻥 뚫려야 한다. 익산∼오송간 호남 고속철도역의 부여 건립은 4000억원의 문화투자를 값있게 회수할 최소한의 조건이다. 중국과 일본의 백제문화 열성팬들이 편안하고 쾌적하게 쉴 수 있는 농가 체험 쉼터, 국제수준의 생태호텔, 백강 컨벤션센터 등 정부와 민간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계룡산, 칠갑산에 진달래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면서 백마강의 도도한 강물속에 잉어와 메기가 유영하는 설렘의 봄철이다. 백제 문화로 눈과 마음을 씻고 덕산, 온양, 유성의 온천에서 몸을 추스른다면 가족과 함께한 봄 나들이는 더할 나위 없는 역사 추억만들기가 되리라 확신한다. 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 ‘국내파’ 신현수 바이올린 독주회

    지난해 12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한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19)가 17일 오후 8시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25일 오후 5시 고양 어울림극장에서 독주회를 연다. 공연기획사 미추홀(회장 전경화)이 기획한 ‘국제 콩쿠르를 석권한 신예 음악가 초청 시리즈’의 하나로 마련된 무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3학년에 재학중인 신현수는 전주 출신으로 전주예고 1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영재 입학해 현재 김남윤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신현수는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파로서 일찍이 호남예술제, 이화·경향, 한국일보, 대한민국 음악콩쿠르 등에서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시벨리우스 콩쿠르 외에도 지난해 스위스 티보바가 콩쿠르 3위,2004년 이탈리아 파가니니 콩쿠르 3위,2002년 미국 워싱턴 요한슨 콩쿠르 1위,2001년 영국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 주니어부 2위에 오르는 등 국외 대회를 휩쓸었다. 지난해엔 일본인 피아니스트 니시모토 리에와 협연한 음반 ‘트와’(Toi)를 한ㆍ일 두 나라에서 동시에 내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 이자이의 ‘바이올린 소나타 6번 E장조,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d단조’ 등을 연주한다.피아노 반주는 이영희. 신예 음악가의 기량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본격적인 데뷔 무대란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2만∼4만원(나루아트센터),1만∼4만원(고양어울림극장).(02)391-2822.김종면기자 jmkim@seou.co.kr
  • ‘웰컴 투 동남아’

    |도쿄 이춘규특파원|돈많은 일본인 퇴직자들을 유치, 경제활성화를 도모하려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체재 자격 완화와 비자 연장 등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특히 2007년부터 대량퇴직하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 유치전은 한층 가열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은 물론 최근엔 타이완까지 유치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고 13일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일본인 퇴직자들은 당초 하와이나 호주 등 생활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나라에서 노후를 보내려 했다. 하지만 최근엔 동남아국가들이 제도를 정비해주는 데다, 거리도 가깝고 물가도 싼 점이 부각되면서 동남아 열기가 뜨겁다. 일본인 퇴직자 유치에는 말레이시아가 앞서 있다.1987년부터 유치정책을 시작했다. 지난해 320여명의 일본인 퇴직자들이 장기체재비자를 얻었다. 말레이시아는 올 1월부터 돈많은 외국인 퇴직자의 입국비자 유효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다. 정기예금 예치 등 자격도 완화했다. 이주후 1년이 지나면 상장기업에 대한 주식투자도 가능하도록 해 여유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길도 터주었다. 일본인 퇴직자 A(65)씨. 그는 부인과 함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월 연금 23만엔으로 생활 중이다. 방 3개에 거실과 부엌 등이 있는 집의 월세는 5만엔(약 42만원). 생활비 전체가 18만엔이면 충분하다. 일본의 손자들과는 인터넷화상채팅도 한다. 필리핀도 일본인 퇴직자유치에 발을 벗고 나섰다.23일부터 도쿄, 오사카 등 일본 각지에서 유치를 위한 세미나를 갖는다. 올해 외국인 유치목표의 절반인 1000명이 일본인이다. 태국도 정부의 관광청이 나서 일본 등 11개국에서 장기체재자 유치를 위해 뛰고 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외국인을 겨냥한 체재시설도 정비 중이다. 북부 치앙마이 등 12개 도시를 외국인장기체재지로 지정했다. 타이완도 2월부터 55세 이상의 일본인 퇴직자들을 상대로 180일까지 체류가 가능한 복수비자발급을 개시하며 일본인 퇴직자유치전에 가세했다.taein@seoul.co.kr
  • 日 40세 여성 실업가 “후지모리와 곧 결혼”

    |도쿄 이춘규특파원|칠레 산티아고에 구속돼 있는 알베르토 후지모리(67) 전 페루 대통령을 지원하고 있는 일본인 여성 실업가가 그와 곧 결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객실이 226개나 되는 도쿄 프린세스 가든 호텔을 경영하는 가타오카 사토미(片岡都美·40)는 곧 법원에 혼인 신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라는 뜻을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12일 전했다. 그러나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taein@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신증권-양재봉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신증권-양재봉 명예회장家

    주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큰 大 믿을 信’ 하면 대신증권을 단박에 떠올린다. 한때 큰 주목을 받았던 광고 카피가 알반인의 뇌리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한 이름만큼 회사의 규모나 역사는 일반인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대신증권은 증권업계에서 여타 대형 증권사와 다른 몇가지 ‘독자적인’ 위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선 재벌 계열이나 은행 계열이 아니면서 40년간 업계 상위권을 지켜왔다.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이후 재벌이나 은행을 끼지 않은 증권사가 살아남기 힘든 환경속에서도 여전히 ‘빅5’ 안에 든다. 대신증권은 또 선진국형 증권 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으로 꼽힌다. 증권사 흑판에 분필로 시세를 적던 시절 최초로 ‘전광판’을 도입했다. 이후 ‘온라인 거래의 최강자’란 명성을 얻었고 사이버 누적거래 1위 자리를 지켜 오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3세 경영’을 잇게 된다.‘거상(巨商)의 꿈’ 하나로 빈손으로 대신증권을 일군 양재봉(81) 명예회장의 역할을 현재 아들과 며느리, 사위가 잇고 있으며 머지않아 손자가 이 역할을 대물림받을 전망이다. ●빈손 ‘송촌’ 거상의 꿈 양 명예회장은 1925년 전남 나주군 나주읍 송촌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호를 ‘송촌(松村)’으로 지었고 훗날엔 이 명칭을 딴 ‘송촌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그가 거상의 꿈을 품기 시작한 것은 송촌을 떠나 당시 ‘수재의 집합소’로 불리던 목포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15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나주에서 간 유일한 합격자’가 된 양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일본인들에게 뒤져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공부하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꿈도 키웠다. 그의 첫 목표는 한국은행 전신이었던 조선은행 입사였다. 양 명예회장은 “대학 졸업자들도 번번이 낙방하는 판에 상업학교 재학 중에 그 좁은 관문을 뚫어 자부심이 컸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이 때 생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은 모험에 대한 열망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는 안정된 은행원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다. 거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후 장사를 할 기회를 살피며 아이디어만 생기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목포와 나주 일원의 쌀을 사서 부산에 파는 미곡상을 하기도 했고, 양조 사업에도 손을 댔다. 겁없이 뛰어든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다시 조흥은행 신입 은행원의 자리로 돌아와야 했고, 이후 여러 은행을 거치면서도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끊임없는 새 사업 궁리끝에 시작한 극장 사업에서 성공하면서 그는 자신감을 되찾게 된다. 금융업 경영자로서 본격 나선 것은 한일은행 서울 청량리 지점장으로 재직하던 1970년대초 무렵이다. 지점장 부임 1년도 안 돼 예금 계수를 2배로 만들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어 단자회사 설립을 권유받던 양 명예회장은 미원그룹 임대홍 회장, 해태제과 박병규 사장과 함께 ‘대한투자금융’을 설립했다. 증권 회사 설립은 그로부터 1년 뒤 일본 방문을 계기로 추진한다. 도쿄에 있던 ‘노무라증권연구소’의 선진적 체계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돌아오자마자 증권업 진출을 서둘렀다. 당시 정부는 소규모 증권사 난립을 경계해 새 증권회사 설립 허가를 꺼려했다. 양 명예회장은 75년에 직원 11명의 ‘망해가던’ 증보증권을 전격 인수한다. ●망해가던 증보증권 잘나가는 대신증권으로 증보증권은 경영 실적이 형편없는 하위권 회사였지만 그는 ‘꿈에도 그리던 증권회사를 세웠다.’는 생각에 희망에 넘쳐 있었다. 우선 회사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대신증권’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름을 바꾼 뒤부터 대신증권은 연일 승승장구했다.75년 대기업들이 탐내던 명동 국립극장 입찰에 성공해 ‘주식 투자자들의 베이스 캠프’로 만들었다. 77년 양 명예회장은 대한투자금융 전무이사직을 버리고 대신증권 사장으로 나섰다. 이어 업계 최초로 ‘전광시황 속보판’을 세우는 등 혁신을 거듭한 끝에 업계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성공 가도를 달리던 양 명예회장에게도 암흑기는 찾아온다. 사장 취임 4개월만에 회사 영업부장이 고객과 회사의 돈을 빼돌려 피해자만 100명에 이르는 대형 금융사고를 일으켰다. 대신증권과 자신의 신뢰에 엄청난 손상을 입힌 사고였다. 그 여파가 얼마나 컸던지 양 명예회장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3년간 시골 농장에서 가축을 기르며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다시 증권계로 돌아온 것은 81년. 대신증권의 대주주들이 양 명예회장을 찾아와 쓰러져가는 대신증권을 살려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가 대신증권 사장에 복귀했을 때, 회사는 이미 자본잠식 상태였다. 그는 “죗값을 치르겠다.”는 심정으로 일을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흐트러진 임직원들을 단합시키는 것이었다. ‘구두쇠 100일 작전’,‘개미작전’ 등 전 직원의 단합을 유도하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를 짜냈다. 잘 나가던 대한투자금융 주식을 주고 미원 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대신증권 주식을 인수, 최대 주주가 됐고, 회사 재건에 ‘올인’했다. 다행히 80년대 중반 국내 증시는 최고 활황의 시기를 맞이한다. 양 명예회장은 대신증권의 회생에 성공해 84년 대신경제연구소,86년 대신개발금융,87년 대신전산센터,88년 대신투자자문,89년 대신생명보험,90년 송촌문화재단,91년 대신인터내셔널유럽 등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대신을 명실상부한 종합금융그룹으로 만들었다. ●신뢰 중시 경영으로 IMF 극복 하지만 그에겐 또 한번의 어려움이 닥친다.IMF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연 20%대의 살인적인 고금리 상황이 발생해 수많은 기업이 어려움에 빠졌다. 대형 증권사인 동서증권, 고려증권이 환매 사태로 하루아침에 부도에 이르면서 ‘재벌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비재벌 단독 증권사인 대신증권에도 이 분위기는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대신증권은 단기 차입금을 모두 상환해 빚이 없는 상황이었다.90년대 말 펀드 열풍으로 시중의 자금도 증권사로 몰렸다. 하지만 양 명예회장은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 판매를 전면 중지시키고 안전한 국공채 위주의 채권형 펀드만을 취급하라고 지시한다. 예상은 맞았다. 대우그룹 부도, 하이닉스 사태,SK사태 등이 연이어 터지며 회사채로 수익증권을 판 증권사들은 잇따라 위기를 겪었지만 대신증권은 안전한 국공채를 편입한 수익증권만 판매한 덕에 손실을 입지 않았다. 결국 90년대 초반 업계를 대표하는 5대 대형사의 주인이 모두 바뀔 정도로 부침이 심한 증권업계에서 대신증권은 살아남았다. 양 명예회장이 이처럼 오뚝이처럼 일어선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업부문에 대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결단력 때문이었다. 오래 전부터 전산부문이 증권회사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본 양 명예회장은 전산부문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초기 집중 투자를 통해 온라인거래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로 인해 99년 이후 온라인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자 대신증권은 또 한번의 중흥기를 맞게 됐다. ●내실화 일군 고 양회문 회장 양 명예회장은 2001년 현업에서 물러나고, 차남인 양회문(2004년 작고, 당시 53세) 전 회장에게 회사 경영을 물려줬다. 양 명예회장의 4남4녀 중 차남인 고 양 회장은 75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신증권 공채 1기로 입사했다.10년동안 지점영업에서부터 인수, 법인, 자산운용, 기획, 인사 등 증권 전부문에 걸쳐 실무경험을 쌓으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고 양 회장은 회장 취임후 외형 성장보다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재무 구조 정비에 나섰다. 생명, 정보통신 등을 계열 분리하고 대신증권, 투신운용, 경제연구소 중심으로 그룹을 정리했다. 그는 2002년 초 폐암진단을 받은 후 2004년 작고 때까지 약 3년간 초인적인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리더십을 발휘했다. 대신증권이 외국인 지분율이 가장 높은 내실있는 회사로 재탄생한 것은 고 양 회장의 공이 크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양 회장 작고 이후 대신증권을 이끄는 주역은 고 양 회장의 부인이자 양재봉 명예회장의 둘째며느리인 이어룡(52) 회장이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이 회장은 남편이 투병생활을 하던 3년여동안 집중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은 뒤 2004년 10월 회장에 취임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종종 비교되는 이 회장은 특유의 세심함으로 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 달만에 109개 전 영업점을 순회방문하면서 직원들을 격려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뿐만 아니라 강단도 함께 갖췄다. 최근에는 자본통합시장법 제정에 따라 일본의 SPARX그룹과 자본 및 업무 제휴를 통해 향후 종합금융투자회사로의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 대만의 IBTS와 제휴하는 등 외국 금융기관과 국제적인 제휴를 진두지휘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 회장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며 조용히 책읽기를 좋아한다. 남편의 투병 중에는 국내·외에서 발간된 대부분의 암 관련서적을 섭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서울과학종합대학 최고경영자과정에 다녔다. 동기로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SK텔레콤 김신배 사장이 있다. 이 회장과 함께 대신증권의 제2도약을 이끌 인물로는 양재봉 명예회장의 사위이자 차녀 회금(52)씨의 남편인 노정남(53) 현 대신증권 사장이 있다. 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온 노 사장은 지난해 10월 대신증권 사장에 취임했다. 노 사장은 77년 한일은행에 입사한 뒤 29년간 금융업에만 종사해온 탁월한 금융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87년 대신증권에 입사해 영국 런던사무소장·지점장,IB담당임원, 상품운용본부장, 국제본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99년부터 6년 동안 대신투신운용 대표이사로 재직해 왔다. 런던 소재 코리아유럽 펀드의 이사를 지내는 등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고 강력한 추진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신증권의 1대 주주이자 실질적인 대신증권의 차세대 주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은 양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이어룡 회장의 아들인 홍석(25)·홍준(22)씨다. 장남인 홍석씨는 현재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며, 차남 홍준씨는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이다. 홍석씨는 올해안에 대신증권에 입사해 아버지인 고 양회문 회장이 밟았던 것처럼 말단에서부터 시작해 경영 수업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이자 장녀인 정연(27)씨는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외국계 컨설팅회사 베어링포인트에서 근무하다 현재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단출한 혼맥… 정략결혼은 없다 양재봉 명예회장은 부인 최갑순(78)씨와의 사이에 고 양 회장 외 3남4녀를 두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연애결혼을 해 평범한 집안에 시집·장가를 갔다. 양 명예회장이 자식들의 의사를 존중해 정략적 결혼을 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송촌 회장 및 전 광주방송 회장을 역임한 장남 회천(57)씨는 대구 교육자 집안 출신의 문홍근(58)씨와 결혼했다. 회천씨는 처음부터 대신그룹에 근무하지 않고 대신전기 등 제조업체를 경영했다. 문홍집(56) 대신경제연구소 사장이 회천씨의 처남이다. 문 사장은 비즈니스 위크에서 아시아를 이끌 50인으로 선정하기도 한 금융 IT부문 한국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대신증권 IT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개발한 온라인거래 시스템인 ‘U-사이보스’는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격찬을 받는 등 전산부문을 한국 최고로 이끈 실력자로 평가받고 있다. 둘째인 고 양 회장과 현 이어룡 회장 역시 연애결혼을 했다. 이 회장은 충북 괴산 출신으로 부친이 한학자였다. 이 회장 동생인 제봉(43)씨는 대학 교수이고, 제영(41)씨는 대신증권 IB 1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3남인 용호(48)씨는 코스닥 상장 창업투자회사인 대신개발금융회장과 아인스 회장을 역임했다. 아인스는 세계 유명 건축물 모형 전시시설인 경기도 부천의 아인스월드를 운용하는 회사다. 서울시 공무원 집안의 조선미(45)씨와 결혼해 2남1녀를 두고 있다. 4남인 정현(37)씨는 현재 코스닥 상장 금융 IT전문 회사인 대신정보통신 전무이사로 있다. 부인 이현아(30)씨는 조선내화 이훈동 회장의 손녀이자, 민주당 이정일 국회의원의 딸이기도 하다. 장녀 영애(59)씨는 대학때 연애를 통해 만난 나영호(60) 현 경원대 겸임교수와 결혼했다. 재무학 박사인 나씨는 대신경제연구소 사장으로 재직하다가 2005년 은퇴했다. 차녀 회금씨와 노정남 대신증권 사장도 연애결혼했다. 노 사장은 한국행정연구원장을 역임했던 노정현(77) 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의 친동생이다. 3녀 미경(42)씨는 이시영(46) 현 중앙대 교수와 결혼했다. 이시영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은 뒤 중앙대에서 사회과학대학 상경학부 교수와 동대학 국제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의 부친은 전북지사와 공보부 차관을 지낸 이춘성씨다. 4녀 회경(41)씨는 이재원(46) 현 대신정보통신 대표이사와 결혼했다. 이 대표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93년부터 금융솔루션 업체인 대신정보통신에 근무하고 있다. s123@seoul.co.kr ■ 슬로건 ‘큰大 믿을信’ 어떻게 지었나 대신증권을 오늘의 위치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은 ‘큰大 믿을信’이라는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양재봉 명예회장의 작품이다. 양 회장은 증보증권을 인수해 새 회사를 만들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믿음이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신념으로 ‘대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큰 대 믿을 신’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1986년부터다. 당시 증권 산업은 성장하고 있었지만 국민들의 증권사에 대한 인식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양 회장은 주식 투자의 대중화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홍보활동을 강화했다. 86년 3월 처음으로 TV CF를 제작했지만 시청자에게는 크게 파고 들지 못했다. 새로운 홍보전략을 구상하던 양 회장은 어느 날 열차를 타고 가던 중 열차바퀴가 레일과 마찰하면서 일어나는 소리가 매우 경쾌하다고 느낀다. 그는 “마치 옛날 서당에서 ‘하늘천 따지’하고 천자문을 읽을 때의 리듬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리가 곧 우리 정서에 잘 맞는 3·3조 가락과 닮았다는 생각에 바로 큰 대 믿을 신 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후 TV 광고에는 ‘큰 대 믿을 신’ 이라는 슬로건을 빠짐없이 사용하게 됐다. 이 슬로건은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증권회사 하면 ‘큰大 믿을信=대신증권’을 떠올리게 할 만큼 히트했다. 이후 ‘큰大 믿을信’은 20여년간 대신증권 광고의 슬로건으로 사용되면서 대신증권을 증권명가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s123@seoul.co.kr ■ 금융통 대거 배출한 ‘증권계 사관학교’ ‘증권업계 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신증권은 금융계에서 내로라할 만한 인물들을 숱하게 배출했다. 주택은행장과 중소기업은행장을 지낸 박동희(76)씨, 정해왕(59)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김정태(59) 전 국민은행장, 이강원(56) 한국투자공사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986년 대신경제연구소에 대표이사로 입사한 박 전 중소기업은행장은 대신개발금융, 대신투자자문, 대신증권 대표이사를 거쳐 대신그룹 부회장을 역임했다. 정 금융경제연구원장은 미국 켄터키 주립대에서 경영대 조교수로 있다가 대신경제연구소 상무이사로 입사,89년부터 4년간 대신경제연구소를 이끌었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도 대신증권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조흥은행 출신인 김 전 행장은 양재봉 명예회장이 설립한 대한투자금융에 74년 스카우트됐다. 양 명예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그는 대신증권 비서실장으로 발령났고,80년 34세의 나이로 대신증권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강원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89년 대신증권 국제영업담당 상무이사로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퇴사 후 아시아개발은행을 거쳐 외환은행장, 굿모닝 증권 사장을 역임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이밖에 이준호(61) 대한화재 사장은 77년 대신증권 종합기획실 실장으로 입사한 뒤 이사, 상무이사를 거쳐 94년에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김한(52) 메리츠증권 부회장은 89년 대신증권에 입사한 뒤 만 35세의 젊은 나이에 이사직에 올랐다.97년까지 대신증권에서 국제본부장, 인수본부장, 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증권계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s123@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주말화제] 연극계도 ‘용병시대’

    [주말화제] 연극계도 ‘용병시대’

    연극 배우도 수입하는 시대가 왔다.‘난타’에 이어 해외에서 각광받고 있는 비언어 무술퍼포먼스 ‘점프’가 최근 베이징 경극단 배우, 베이징 체육대학 졸업생 등 중국 남녀 배우 4명을 캐스팅했다. 이르면 이달 말 한국에 들어와 한달간 적응기간을 거친 뒤 5월부터 무대에 선다. 영화 ‘파이란’에 출연한 중국 여배우 장바이즈와 일본인 탤런트 유민처럼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외국 배우나 연예인을 만나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다. 그러나 공연 무대에, 그것도 문화교류 차원의 합작 공연이 아닌 순수 국내 창작물에 외국 배우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장기 출연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무술·연기 갖춘 배우 ‘별따기´ ‘점프’가 중국 배우들을 캐스팅한 데는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다. 무술과 코미디를 결합한 ‘점프’는 남녀 배우 가릴 것없이 태권도, 쿵후, 기계체조, 아크로바트 등 온갖 격렬한 액션신을 직접 해야 한다. 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는 데다 아무리 안전사고에 대비한다 해도 부상당할 위험이 상존한다. 그러다 보니 배우 캐스팅이 늘 골칫거리다. 몸만 잘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연기도 따라줘야 하니 딱 들어맞는 배우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차라리 소림사 무술인들을 데려다 연기를 가르치는 게 낫겠다.” 누군가 던진 푸념섞인 농담은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됐다.‘점프’ 제작사인 (주)예감의 김경훈 대표와 최철기 예술감독은 지난해 가을 베이징행 비행기를 탔다. 베이징 경극원 교수로 일하는 지인을 통해 소림사, 경극원, 수도체육학원, 베이징 체육대학을 섭외했고,4박5일동안 지원자 50명을 오디션해 4명을 뽑았다. ●中교수 월급의 2배 주기로 흑룡강 경극원 배우로 활동 중인 펑성하오(25), 수도체육학원 민족전통체육과 학생 리우커(21), 베이징 경극단 배우 장띠(23), 중국희곡학교 연기과 학생 천친위(20·여)가 그들. 모두 20대 초·중반으로 무술과 연기를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유망주들이다. 이들은 1년의 계약기간에 중국 대학교수 월급의 두배 가까운 돈을 매달 개런티로 받는다. ●창작품 저작료 받고 수출 포석 중국 배우 초빙은 국내에서의 배우난 해소와 더불어 창작 콘텐츠를 해외에 효과적으로 배급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제작사는 기대한다. 외국 흥행작을 들여와 우리 배우들이 공연하는 것처럼 우리 창작품을 해외에 저작료를 받고 팔겠다는 것이다. 김경훈 대표는 “이들을 주축으로 향후 중국에 ‘점프’전용관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프린지페스티벌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점프’는 지난달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에서도 평균 객석점유율 90%를 올려 해외시장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2003년 초연 이후 1200회 공연했다. 상반기 광화문 근처에 전용극장을 마련할 예정이고, 24일부터 제일화재 세실극장에서 앙코르 공연을 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美인권보고서 내용 뭐길래…中 “너나 잘하세요”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베이징 이지운특파원|미국 국무부가 8일(현지시간) 연례 인권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지난해 제외시켰던 중국을 7개 인권 탄압 사례국 중 하나로 포함시켜 파문이 일고 있다. 북한, 미얀마, 이란, 짐바브웨, 쿠바, 벨로루시 등도 함께 탄압국으로 지목됐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반(反)정부 인사들을 괴롭히거나 억류, 수감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중국에 심각한 인권 남용이 자행되고 있다.”며 “출판, 방송, 인터넷 등에 대한 통제 강화에 맞서는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국무원은 9일 ‘미국의 인권 기록’이란 제목의 문서를 발표했다. 미국이야말로 “자국의 인권 상태를 외면한 채 ‘세계의 심판관’마냥 중국을 포함한 190여개국의 인권 상황을 경솔하게 비난했다.”고 맞받아쳤다. 중국의 반박은 7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중국은 다음달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측이 의도적으로 도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강하게 갖고 있다. 중국이 발표한 1만 4500여 글자가 담긴 방대한 문서에는 일반 국민을 상대로 저질러지는 폭력 범죄가 미국에 만연돼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중앙정보국(CIA)의 불법도청, 흑인과 소수자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 이라크 침공과 포로 학대 등도 지적됐다. 미 국무부 보고서는 또 북한 인권에 대해 “여전히 극도로 열악한 상태”라고 규정했다. 정치범 등 15만∼20만명이 강제수용소에 감금돼 있으며, 최근 수용소 숫자가 20여개에서 10개 미만으로 준 것은 통폐합 때문이라고 짚었다. 자의적 처형, 납치 및 실종, 일부 탈북자 처형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믿을 만한 보고들’을 인용, 일본인 말고도 한국인과 다른 외국인들도 해외에서 북한에 납치됐다고 전했다. 한국에 대해선 국제 결혼이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혈통주의 때문에 외국인이 까다로운 귀화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는 등 소수 인종이 차별받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그러나 “아메라시안(미국인과 혼혈인)들에 대한 법적인 차별은 없으며, 비공식 차별도 감소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여성 근로자의 급여 수준이 남성의 63%밖에 되지 않고,50세 이상 고령자 취업 기회가 젊은층에 비해 33.7%밖에 되지 않는 등 성과 나이에 따른 차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dawn@seoul.co.kr
  • 안익태선생 친일논란 휘말리나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이 만주국(일본이 1932년 중국 북동부에 세운 괴뢰국가)의 창립을 기념하는 작품을 작곡하고 이를 직접 지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애국가’ 원곡인 ‘한국 환상곡’의 선율 일부가 만주국 기념 음악의 선율과 흡사하다는 주장도 나와 안익태 선생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올해 안타깝게도 친일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안 선생은 2차세계대전 중인 1942년 독일 베를린 옛 필하모니 홀에서 열린 ‘만주국 창립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하며 자신이 작곡한 축전 음악을 연주했다는 것. 이같은 사실은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 음악학과에 재학 중인 송병욱 씨가 독일 영상자료실인 트란지트필름으로부터 입수한 동영상 자료를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확인됐다. 당시 음악회를 녹화한 7분여 길이의 동영상에는 ‘만주국 창립 10주년 축하 음악회’라는 독일어 자막이 찍혀있고, 콘서트홀 중앙엔 대형 일장기가 세로로 걸려 있다. 또 안 선생이 직접 지휘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합창이 삽입된 이 작품의 가사는 일본인 에하라 고이치가 맡았다.‘만주국 축전 음악’은 그동안 악보도 없었고 안 선생의 작품 연보에도 남아 있지 않았던 곡이다. 한편 자료 제공자인 송병욱 씨는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3월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애국가’의 원곡인 ‘한국 환상곡’이 만주국 축전 음악 선율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제기해 ‘애국가’에 대한 정체성 논란이 예상된다.송씨는 “영상물을 통해 확인한 ‘만주국’이란 작품에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한국 환상곡’의 두 선율이 거의 그대로 나타나 있다.”며 “‘한국 환상곡’에서 그 두 선율이 합창 선율인 것과 마찬가지로 ‘만주국’에서도 또한 합창 선율”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국내 음악계에서는 학술적으로 검증할 여지가 많은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초록향기 외나로도 봉래산 삼나무숲

    초록향기 외나로도 봉래산 삼나무숲

    3월초인데도 서울에는 아직 겨울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남쪽에는 봄기운이 완연하겠지. 급한 마음에 자동차를 몰고 무작정 남쪽으로 달렸다.7시간 만에 도착한 곳이 전라남도 고흥반도.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의 이름 모를 섬들. 산구비를 돌면 낯선 이방인을 맞아주는 어머니의 품 같은 포구가 따뜻하게 반긴다.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고깃배들의 힘찬 모습, 아직은 좀 차갑지만 갯냄새 가득한 바닷바람에서 싱그러운 봄의 향기가 가득하다. 전남 고흥에는 아기자기한 갯가의 바위를 비롯, 연초록 숲이 가는 곳마다 발목을 잡는다. 화려한 봄꽃이 좋다고는 하지만 아름드리 나무 사이로 부서지는 봄햇살과 푹신푹신한 흙이 가득한 ‘섬속의 숲’나들이는 지금이 제철이다.멀다고 망설이지 말고 사랑하는 애마(?)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남도의 숲으로 봄냄새를 맡으러 떠나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고흥반도가 관광의 메카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13번째인 인공위성 발사대가 설치되는 나로우주센터의 건립계획이 발표되면서다. 하지만 고흥에는 우주센터보다 더욱 유명한 것이 있다. 바로 ‘삼나무숲’과 ‘상록수림’이다. 도대체 이렇게 아름다운 섬에서 바다보다 유명한 것이 숲이라니…. # 원래 이름은 나라도 고흥반도 끝자락 나로도(羅老島)는 연륙교와 연도교로 이어져 있다. 외나로도까지는 내나로도를 징검다리 삼아 두 개의 다리를 건너야만 갈 수 있는 섬 아닌 섬이다. 조선시대까지 나라에 바칠 말을 키우는 목장이 많아 나라의 섬이란 뜻으로 ‘나라도’라 불려왔다. 그러다가 일제시대에 우리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정체불명의 이름인 ‘나로도’로 바뀐,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또한 나로도는 남해안에서 ‘삼치’가 가장 많이 잡히는 어장. 일제시대에는 이 곳에서 잡힌 삼치와 각종 물고기를 전량 일본으로 빼돌리기 위해 400여 명의 일본인이 거주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수산 자원이 고갈돼 삼치가 예전처럼 많이 잡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법 풍어를 이룬다. 고흥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은 외나로도 봉래산 자락에 있는 ‘삼나무 숲’이다. # 숲속의 바다, 바다속의 숲 외나로도 봉래산은 비록 해발 410m의 낮은 산이지만 건립 중인 우주 센터를 품에 앉고 정상에 서면 사면에서 바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산이다. 또한 운이 좋으면 제주도의 한라산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다니 정말 한반도의 남쪽은 남쪽인 것 같다. 봉래산 정상에서 동쪽을 내려다보면 겨우 내내 푸르름을 잃지 않는 숲이 보인다. 바로 삼나무숲이다. 일제 때 시험림으로 조성된 숲으로 무려 20만여 평에 80년 된 삼나무와 편백나무 3만 그루가 자라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경남 함양의 상림숲이나 전남 장성의 축령산보다 더욱 잘 보존돼 있다. 삼나무 숲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첫번째가 봉래산 산행의 시작점인 통신 중계소에서 봉래산 정상, 시름재, 삼나무숲을 거쳐 다시 통신 중계소로 돌아오는 2시간 코스. 두번째가 우주센터가 건립 중인 예내리 예당마을에서 삼나무 숲만 보고 오는 30분 코스. 자신의 일정에 맞추어 선택하면 된다. # 아름다운 봄의 교향곡 예내리 예당마을에서 꼬불꼬불 산길을 10여분 승용차로 오르자 갑자기 커다란 나무숲이 눈에 들어온다.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운 나무들이 모여 있다. 거대한 크기의 나무에 압도당해 ‘거인의 나라’에 온 것처럼 자신이 너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입구에 들어서자 공기부터 확 다르다. 향긋한 나무의 냄새,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실려오는 봄꽃의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멀리 온 보람이 느껴진다. 숲으로 들어서자 말그대로 자연이 빚어낸 ‘위대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파란 하늘 끝에 닿을 듯 쭉쭉 뻗은 삼나무, 봄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연촉록의 나뭇잎, 그 사이를 정신 없이 뛰어노는 청설모와 다람쥐.‘푸드덕’하며 이방인의 침입을 알리는 꿩…. 게다가 연초록의 나뭇잎을 살짝 비켜 얼굴 위로 쏟아져 내리는 하얗고 투명한 봄햇살. 잿빛 도시와는 전혀 다른 낙원이었다. 중간중간에 만들어 놓은 의자가 있었다. 얼른 앉아 눈을 감고 잠시 쉬었더니 온갖 자연의 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한 20여분을 걸었다. 길이 환해지며 숲이 끝나고 멀리 아름다운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삼나무숲을 즐겨도 좋고 내친김에 봉래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도 권할만하다. 어르신이나 아이들도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산행이라기보다는 걷는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는 그런 곳이다. 안내 표지가 만들어져 있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 당집이 있는 나무숲 외나로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숲이 있단다. 궁금했다. 얼마나 멋있고 보존 가치가 있기에 숲이 천연기념물 362호로 지정되었을까. 나로도 해수욕장으로 달렸다. 바닷가에 우뚝 버티고 있는 초록의 숲에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온다. 숲이 얼마나 우거졌는지 한낮의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다. 숲속은 컴컴해 늦은 오후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상록수림은 물고기가 서식하는 알맞은 조건을 만들어 물고기떼를 해안으로 유인하는 어부림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원래 주변에도 숲이 무척이나 우거졌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약 4000평정도의 숲만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상록수림으로 난대림상(暖帶林狀)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구실잣밤나무 등 16종의 상록활엽수가 수관(樹冠·나무가 우거져 줄기 윗부분에만 가지와 잎이 달려 있는 상태)을 이루고 있다. 개서어나무 등 23 종의 낙엽활엽수와 개머루 같은 덩굴식물 등 수많은 식물이 살고 있는 식물의 보고로 손꼽히는 곳이다. 300년 넘는 나무들이 즐비한 숲은 주민들에게 신령스러운 존재로 믿어진다. 상록수림의 가운데에는 말에게 제사를 지낸 마신당과 당묘가 있다. 마신당 안에는 나무로 깎아 만든 말이 있어 정초에 제를 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얼마나 사람들이 숲을 못살게 굴었는지 해마다 훼손이 심해 지금은 숲을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보존에 힘쓰고 있다. 숲을 돌아보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 #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푸름 아름드리 거목들이 항상 푸름을 지키고 있는 금탑사의 비자나무숲은 고흥에 숨겨진 보석. 천등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금탑사는 자동차로 올라간다. 차에서 내려 산책로를 따라 가보자. 숲 바닥에 나뒹구는 갈색의 잎들 사이에서도 봄전령이라는 쑥, 냉이, 달래 등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다. 금탑사는 송광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때(7세기 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됐다. 당시에 금탑(金塔)이 있어 금탑사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4년(선조 37)에 증건축했다. 금탑사를 둘러싸고 있는 비자나무숲은 사찰 창건 후 300∼400년이 지난 1700년 이후에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30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민족의 역사를 굽어보고 있던 비자나무들은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며 잘려지고 훼손되는 수난을 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금탑사와 고흥군에서 비자림 내 모든 나무에 번호표를 붙여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곳의 비자나무들은 높이가 무려 9∼14m, 둘레가 1m가 넘는 등 세월의 무게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가지와 잎이 무성하다. 비자나무림 주변의 숲에는 율곡 이이의 부친이 호환(虎患)이 두려워 심었다는 나도밤나무가 있다. 또 푸조나무, 비목 등 갖가지 나무들이 살고 있으며 참취, 나비나물, 꿩의다리아재비 등이 여러 가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 [WBC] ‘통 큰 야구’가 한수 위

    [WBC] ‘통 큰 야구’가 한수 위

    5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에서 뜨거운 벤치 대결을 펼친 한국의 김인식(60) 감독과 일본의 오 사다하루(왕정치·65) 감독. 이들이 걸어온 길이나 야구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지만 무서운 ‘승부사’라는 점은 같다. 김 감독은 1965년 크라운맥주에 입단한 뒤 1972년까지 해병대·한일은행에서 투수로 뛴 게 선수경력의 전부다. 불과 27살 때인 1973년 배문고 감독을 시작으로 1995년과 2000년 OB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내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김 감독은 선수시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아픔을 되새겨 주목을 받지 못하는 선수들을 발굴하거나 부상 중인 선수들을 다시 그라운드에 세우는 ‘재활의 신’으로 불린다. 선수들을 끝까지 믿고 맡기는 ‘믿는 야구’,‘기다리는 야구’,‘뚝심의 야구’로 대표된다. 인화를 최고 덕목으로 삼아 선수가 능력을 발휘할 때까지 기다리는 ‘덕장’이다. 반면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 감독은 ‘외다리타법’으로 비공인 세계 최다인 통산 868개의 홈런을 쳐낸 일본야구의 신화다.1959년 요미우리에 입단해 통산 13회 센트럴리그 홈런왕에 올랐고, 이승엽 이전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55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1983년 요미우리 감독이 됐지만 독선적인 지도스타일로 코치들과 잦은 충돌을 빚어 4년만에 경질됐다.1995년 다이에 지휘봉을 쥔 오 감독은 한치의 오차 없는 작전야구를 구사,1999년과 2003년 약체 다이에를 일약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탁월한 작전을 통해 승리를 이끄는 ‘지장’인 셈. 김 감독은 때로 예상밖의 강공으로 대량 득점을 하는 등 선수 개인의 화력에 맡기는 ‘빅볼’을 선호한다. 이와 달리 오 감독은 빈틈없는 수비를 바탕으로 일발 장타보다 기동력과 다양한 작전으로 1점씩을 쌓아가는 ‘스몰볼’이 전매특허다. 지난 한·일전에서도 두 감독의 색깔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일본은 경기 초반 7안타를 터뜨리며 착실하게 점수를 쌓아간 반면 한국은 8회초까지 끌려가다 이승엽의 한 방으로 일순간에 게임을 뒤집었다. 두 사람의 역대 전적도 막상막하다.1995년과 1999년 슈퍼게임 때 대표팀 사령탑으로 만나 1승1패로 균형을 이뤘다가 5일 경기로 김 감독이 앞섰다.‘통큰 야구’가 ‘정밀 야구’를 누른 형국이지만 명예회복을 노리는 오 감독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오는 16일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릴 WBC 2라운드 한·일전에서 누가 웃을지 벌써부터 관심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씨줄날줄] 한·일전/오풍연 논설위원

    “일본은 한국에 있어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과거 식민지 역사에서 비롯된 앙금이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일간 문제는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이성적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부와 권력의 대이동’을 펴낸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미 전략경제연구소장은 몇해 전 두나라 관계를 이처럼 진단했다. 감정적 대응은 한국에 불리하다는 점을 시사한 대목이다. 극일(克日)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은 정치·경제·외교·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국민의 감정 역시 그렇다. 한국에 반일(反日)이 있다면, 일본에는 혐한(嫌韓)의 뿌리가 깊다. 지난해 7월 발간된 ‘만화 혐한류’(야마노 샤링)가 베스트 셀러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만화는 “일본이 오늘의 한국을 건설했다.”는 식의 왜곡과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 일본 우익세력의 대대적인 판매공작 등 지원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스(NYT)가 이를 ‘비이성적’이라고 꼬집었을까. 여기에 보수·우익신문인 산케이는 NYT의 ‘반일’적인 논조를 공격하기도 했다. 5일 오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최종 3차전이 치러진 일본 도쿄돔. 우리 선수들은 3대2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일본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한국 선수단의 이성이 그들의 감정을 압도한 경기였다. 이번에도 일본측이 먼저 우리의 심기를 건드렸다. 오 사다하루(王貞治) 감독과 이치로, 마쓰자카는 ‘30년 망언’ 등으로 기선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달랐다.9회말 박찬호가 이치로를 뜬공으로 잡을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이진영의 호수비도, 이승엽의 2점 홈런도 이성적 판단과 다부진 각오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특히 오 감독의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55개)을 1개차로 갱신한 기록도 가지고 있는 이승엽이 단연 돋보였다. 그의 오기가 일본 야구 영웅들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순간이었다. 한·일전의 승리는 국민에게도 쾌감을 더해준다.13일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WBC 2라운드도 주목된다. 일본과 다시 맞붙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대∼한민국”을 듣고 싶다. 우리 선수단 파이팅!.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日, 자국인 납치혐의 北공작원 국제수배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경찰이 자국민 납치 혐의가 있는 북한 공작원 2명의 국제수배를 요청했다고 교도통신이 3일 보도했다. 일본 경찰청은 북한 공작원 신광수(76)와 최준철이 지난 70년대 4명의 일본인을 납치한 혐의가 있다며 인터폴의 국제 수배자 명단에 올려달라고 요청했다.지난달 일본 법원은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며, 일본 정부는 베이징 대사관을 통해 이들이 일본 법정에 나올 수 있도록 평양에 이들의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신광수는 1978년 7월 7일 후쿠이현 오바마(小浜) 시내 공원 전망대에서, 최준철은 같은 해 7월30일 니가타현 가시와사키(柏崎)시 해안에서 각각 일본인 부부를 납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북한은 이들 4명을 2002년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북한은 일본의 신병인도 요청을 거절했으며, 특히 비전향 장기수인 신광수는 한국에서 간첩 혐의로 15년간 감옥 생활을 해 북한의 국가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taein@seoul.co.kr
  • 98년전 ‘남한 호랑이’

    98년전 ‘남한 호랑이’

    1908년 2월 전남 영광군 불갑산에서 서식하던 호랑이가 최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박제의 모습이긴 하지만 그 위용은 여전하다는 게 호랑이를 본 사람들의 얘기다. 공식적으로 남한에서 잡힌 호랑이 박제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이다. 당시 이 호랑이는 농사꾼이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 사흘 밤낮을 발톱으로 벽을 긁으며 발버둥을 치다가 최후를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남한에서는 1922년 경북 경주시 대덕산에서 호랑이가 사살된 게 마지막 공식기록이지만 박제로 따진다면 불갑산 호랑이의 역사가 더 길다. 불갑산에서 호랑이를 잡은 농부는 당시 논 50마지기 값인 200원에 일본인 하라구치(原口庄次郞)에게 팔았다. 그 일본인은 가죽을 일본에 가져가 도쿄 최고 전문가에게 박제를 의뢰, 한국에 되가져와 목포시 유달초등학교에 기증,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다. 1898년에 문을 연 유달초등학교는 당시 일본인 학교. 이에 따라 그때 이 학교를 다니며 호랑이를 본 일본인 졸업생 30여명이 매년 이 호랑이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이 호랑이는 뒷머리의 황갈색 바탕에 검정색 줄무늬가 있어 왕(王)자가 뚜렷한 한국산. 가슴쪽에서 엉덩이까지 160㎝, 앞발 뒤꿈치에서 머리까지 95㎝ 남짓에 180㎏쯤 돼 보인다. 곰 발바닥처럼 뭉툭한 네발 사이사이에 나온 갈고리 발톱, 송곳처럼 날카로운 위아래 어금니 4개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눈과 혀는 박제시 재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2000년 3월과 2004년 8월 2차례에 걸쳐 손질을 했다. 허진(56) 박제사는 “이빨로 봐서 박제된 호랑이는 생후 13년쯤 된 암컷으로, 머리의 왕자와 줄무늬 등 한국산 호랑이의 특징을 모두 갖췄다.”며 “카메라 플래시 불빛으로 털이 오그라들고 색이 바래 복원 염색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목포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한류통신] 팬을 가족으로 껴안는 한국식 이벤트 기다려

    [한류통신] 팬을 가족으로 껴안는 한국식 이벤트 기다려

    최근 일본에서 뜨거운 한류 화제라고 한다면 ‘파칭코 겨울연가’이다. 이달 13일에 일본 전국의 빠찡꼬 가게에서 전개된다고 한다. 빠찡꼬 기계는 눈의 이미지를 본뜬 은색을 기조로 하고 구슬이 쏟아지면 스토리의 다이제스트판이나 명장면을 볼 수 있게 한 시스템이다. 얼마 전 일본 TV는 지난달 20일부터 이 기계를 들여 영업하고 있는 일부 점포에서 빠찡꼬 손님들과는 거리가 먼 듯한 겨울연가 팬인 아줌마들이 장사진을 치는 장면을 보도했다. 카메라 달린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넋을 잃은 표정의 주부로 가득 찬 가게와는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었다. 겨울연가의 방송으로 일본에 한류가 찾아온 지 벌써 3년이 지나고 있다. 그럼에도 팬들이 어떤 한류 이벤트에도 열광하는 것은 왜일까? 그 의문을 푸는 큰 열쇄는 팬미팅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팬미팅’을 검색하자 결과의 대부분이 한국 연예인들 것이다. 일본 스타에 의한 팬미팅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팬클럽 한정’ 등으로 벽이 꽤 높다. 한류 스타들은 일본의 매스컴이 주저하는 사적인 질문이나 마니아적인 의문에도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팬에게 상품을 건넬 때에는 포옹까지 해준다. 그리고 한 명의 팬에 지나지 않는 자신을 ‘가족’이라고조차 말해준다. 일본 배우에게는 있을 수 없는 것들이다. 팬들의 생각에 부응해주는 한국 스타들에 의해 일본인은 팬미팅을 비롯한 한국식 이벤트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어떠한 이벤트에 참가하기를 포기하고, 인생을 가정에 바쳐온 중년 여성들의 에너지는 엄청나다. 어느 광고업계 관계자는 “광고의 타깃이 20대 여성에서 육아가 끝나고 시간적·경제적으로 여유있는 50,60대 여성이 되고 있다. 그들은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새로운 가치관을 갖고 세상을 바꾸어온 세대이다. 휴대전화나 컴퓨터로 인간관계를 넓히고 지친 남편이나 자식들을 지배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한류 이벤트나 그에 편승한 상품이 나올 때마다 지적되는 배금주의에는 비판도 있고, 마음 속 깊이 칭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벤트를 통해 일본의 연예계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은 분명하고 그 부분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간접적으로 스타를 맛보고 일방적으로 망상하는 수밖에 없었던 일본인은 한류 이벤트에 의해서 자그마한 행복을 느끼게 된 것이다. 도쿄신문 기자
  • 中출신 아내들 “외로워요”

    |도쿄 이춘규특파원|지난달 17일 일본 시가현에서 유치원생 딸(5)의 친구 2명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중국 국적의 다니구치 미에(34)씨 사건을 계기로 20여만명으로 추산되는 일본내 중국인처들의 외로움, 부적응 문제가 집중 부각되고 있다. 다니구치씨는 중개업자의 소개로 2000년 일본인 남편과 결혼하기 직전 일본으로 건너왔다. 언어장벽 문제로 일본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딸의 유치원생활도 고심했었다고 한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04년 일본인 가운데 3만 9511명이 국제결혼했다. 이 가운데 80% 정도가 남성이었다. 그중에서 약 40%인 1만 1915명이 중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대부분 20대인 중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일본인은 40대 전후의 독신남들이다. 최근 10여년간 이러한 국제결혼이 급증,20여만명으로 추산된다. 연애결혼을 한 경우에는 문제가 적지만 400만엔(약 3300만원) 안팎의 중개료를 내고 알선결혼할 때가 문제가 많다고 한다.“주위로부터의 멸시받는다고 느낀다.”,“시부모로부터 음식맛이 없다고 구박받는다.” 등이 스트레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 중국인처들은 “교류할 만한 이웃이나 중국인 친구가 없어 외롭다.”,“아이들이 집단등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인으로서는 스트레스다.” 등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일본인 남편도 의사소통 문제 등으로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 살고 있는 중국인, 타이완인 등의 고민상담을 하는 ‘간사이생명선’ 이토 대표는 “상담건수의 40%정도가 중·일간 국제결혼에 관련된 것”이라면서 “이국생활은 주위, 특히 남편의 도움이 필수”라고 말했다고 뉴스위크 일본판이 1일 보도했다. 한편 중국인과 일본인의 국제결혼에는 옛 만주지역에 집중된 잔류일본인 고아들이 깊이 관련돼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2차대전 패전뒤 현지에 남은 일본인들이 1980년대부터 일본으로 귀국, 이들이 중국내 친척 등과 연결돼 사업목적으로 국제결혼 알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taein@seoul.co.kr
  • 제주도로 방향 튼 한류

    ‘제주발 한류 열풍이 불까.’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드라마 태왕사신기(김종학 프로덕션)로 제주가 들썩거리고 있다. 제주도는 28일 한류 열풍의 주인공인 배용준이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가 3월 중순부터 본격 촬영에 들어가면 겨울연가의 무대였던 남이섬과 춘천에 못잖은 관광객이 제주로 몰려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일본 관광객 부쩍 늘어 태왕사신기의 제1 야외세트장으로 고구려 궁궐이 들어설 북제주군 구좌읍 김녕리 묘산봉 일대에는 벌써부터 일본인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드라마 세트장을 짓기 위해 터 고르기 작업이 진행중인 이곳에는 매일 40∼50대 일본 중년여성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세트장이 들어선 것도 아니고 드라마 촬영이 시작된 것도 아닌데 ‘욘사마’ 열성팬인 일본 여성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투어 공사현장을 찾고 있는 것이다. 김형호 현장소장은 “하루에 수십여명의 일본 관광객이 몰려와 세트장 주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간다.”면서 “공사도 공사지만 앞으로 이들을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까지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이 드라마가 촬영에 들어가고 내년부터 일본과 동남아 등지에 방영이 시작되면 앞으로 2∼3년간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이미 태왕사신기 관광상품이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며 “드라마에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더해져 관광효과가 겨울연가의 남이섬과 춘천을 능가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드라마 제작사는 현재 격구장과 서민주거지 등을 설치할 제2 야외세트장 건설부지도 물색중이다. 이달 중순 성공기원제를 갖고 촬영에 들어가 연말까지 촬영을 마친다는 계획이다.●어린이 SF드라마 세트장도 설치제작사는 올부터 3년간 어린이 SF드라마인 ‘이레자이온’도 제주에서 촬영키로 하고 현재 제주도와 세트장 입지 등에 대해 협의를 진행중이다. 지구를 지키는 별자리 싸움을 그린 이 드라마 세트장 건설을 통해 장기적으로 제주도에 미니 디즈니랜드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김종학 감독은 “SF드라마 세트장은 어린이들이 와서 별자리도 공부하고 꿈을 키워가는 작은 디즈니랜드가 될 것”이라며 “어른들의 관광지만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제주도에 가자고 부모를 조르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광업계 일각에서는 드라마 세트장 관광은 반짝특수에 그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주 신라항공여행사 최경달(50) 사장은 “국내의 세트장이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반짝 관광특수를 누렸다가 드라마가 끝나면 모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면서 “드라마세트장 조성 초기부터 주변 관관광지와 연계한 지속가능한 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재일교포 사명은 평화헌법 수호·확대”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외국국적자 첫 변호사로 재일교포 인권운동에 투신했던 고 김경득 변호사가 재일교포에게는 일본 평화헌법을 지키고 확대시킬 사명이 있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아사히신문이 25일 보도했다. 위암으로 투병하다 지난해 12월 숨진 고인은 지난해 10월 병상에서 사무실 직원에게 구두로 “한국과 일본, 북한과 일본의 다리인 재일교포는 평화헌법을 동아시아에 넓혀갈 사명을 지녔다.”고 유언했다. 고인은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는 식민지지배 침략에 대한 반성의 결과로 생겨났다. 재일교포의 존재는 식민지 지배에 의한 것이다. 내셔널리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일교포야말로 평화헌법의 체현자”라고 강조했다. 고인은 1976년 사법시험을 통과했으나 당시 일본인에게만 입학을 허락했던 사법연수원이 귀화를 종용했던 일 등 자신이 겪은 국적차별을 소개한 뒤 최근 일본 사회의 개헌 움직임을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이같은 유언은 이날 오후 도쿄 젠덴쓰회관에서 열린 추모회에서 발표됐다. 지문날인 거부운동과 일제 강점하 일본군 위안부 소송을 비롯한 전후보상 소송을 이끌며 재일교포 인권운동의 구심점에 섰던 고인은 지난해 12월28일 위암으로 타계했다.taein@seoul.co.kr
  • 한국化상품 세계인 사로잡다

    `생리대부터 피자까지 한국식으로.´ 외국 것을 한국의 입맛에 맞춰 개발했다가 되려 외국시장에서 히트를 친 경우는 무궁무진하다. 피자는`우리 것´이 아니지만 한국적으로 만들어 수출되고 있는 대표적 품목이다. 한국 피자헛이 역수출한 메뉴는 무려 4개. 불고기 피자(1992년), 불갈비 피자(2000년), 치즈크러스트 골드(2000년)에 이어 2003년 출시한`리치골드´가 있다.`리치골드´는 치즈 둘레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고구마 띠를 두른 상품.2004년 일본인의 입맛을 사로 잡았고 중국 피자헛 기술연구팀에서도 한국을 방문해 제품의 노하우를 배워 갔다.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출시됐다. 위스퍼는 한국 여성들 덕분에`생리대 한류´를 일으켰다. 이 회사는 한국 여성들이 냄새에 민감하다는 점에 맞춰 1999년 소나무 재질의 흡수층을 넣은 생리대`위스퍼 그린´을 개발했다.‘생리 중 냄새 걱정을 덜어 준다.´는 주제로 소나무를 상징하는 녹색의 포장까지 세심하게 신경썼다. 한국 여성들에게 어필해 위스퍼 전체 판매량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소문은 해외로 전해졌다. 한국 소비자들만을 대상으로 개발한 위스퍼 그린은 타이완·홍콩 등지로 수출됐다. 위스퍼의 이윤정 부장은 “생리대 하나까지 까다롭게 고르는 한국 여성들의 성향에 맞추니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제품이 됐다.”고 말했다. 외국계 커피 전문점이 한국에서의 자체 개발한 메뉴를 본사로 역수출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자바씨티커피 코리아는 한국의`녹차 열풍´에 맞춰`2004년 그린티 라떼´와`그린티 자바란치´라는 신제품을 개발해 선보였다. 미국 본사에서도 이 메뉴를 채택했다. 아이스크림 회사 한국하겐다즈는 2004년 여름`클래식빙수(팥빙수)´를 만들어 중국 홍콩 싱가포르 유럽 등지로 수출했다. 미국계 주방용품 회사 월드키친은`국물´을 즐기는 한국인을 고려해 2003년`비젼 깊은 양수´를 선보였다. 국물이 넘치지 않도록 깊이를 다른 제품보다 깊게 만든 것. 업체측은 이 제품이 싱가포르·일본·중국 등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도 판매되며 아시아 지역의 인기 제품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전한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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