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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화하는 韓流 꿈틀대는 日流] “의식주·전통문화 ‘간코쿠’ 모든게 궁금해”

    [진화하는 韓流 꿈틀대는 日流] “의식주·전통문화 ‘간코쿠’ 모든게 궁금해”

    일본 속 한국문화와 한국 속 일본문화의 실태를 상·하편으로 나누어 싣습니다. 상편에서는 한류붐이 한국문화에 대한 다양한 관심으로 진화해 가는 현장을, 하편에서는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기반을 다지며 대중화를 노리는 일본문화의 침투 실태를 다룹니다. |도쿄 김미경특파원|지난 4월27일 일본 도쿄의 번화가 신주쿠. 영화관이 몰려 있는 그곳에 최지우 주연의 ‘연리지’와 문근영 주연의 ‘댄서의 순정’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영화관 앞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댄서의 순정’에 대해 “소재가 새롭고 가슴 찡하다.”며 호평했지만 ‘연리지’에 대해서는 “‘지우히메’가 나온다기에 보러 왔지만 스토리가 뻔하다.”며 다소 냉담했다. 한류 스타가 나오기만 하면 열광했던 얼마전까지와는 달리 여느 일본영화나 할리우드영화처럼 작품성을 놓고 평가하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도쿄 어디를 가든 한국문화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드라마에서 다큐멘터리까지 도쿄 시부야의 NHK 본사.1층 로비에 ‘대장금’의 애니메이션인 ‘장금이의 꿈’과 ‘국희’포스터가 걸렸다.‘겨울연가’ 방송을 결정해 일본 속 한류에 불을 댕긴 오가와 준코 수석PD는 1999년작인 ‘국희’ 방송에 대해 “한국적인 정서가 일본에도 잘 맞아떨어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최대 민영방송사인 후지TV 본사 녹화연습실. 한류를 다루는 프로그램인 ‘간(韓)타메DX!’ 제작진이 연습 중이다. 한류스타뿐 아니라 한국의 의·식·주 등 일상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휴가 에이지 부장PD는 “한류 붐이 1년쯤 지나 정착기에 접어들어 한국의 고품격 문화를 알고자 하는 교양 있는 시청자들이 타깃”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국내 방송사의 일본 진출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지난 3월 도쿄에 지사를 개설, 스카이퍼팩트TV를 통해 방송을 시작한 KBS재팬의 신춘범 방송부장은 “개시 후 단독채널 가입자만 2만 4000명을 넘어 월별 가입자 수 1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가요·영화도 저변 확대 KBS재팬과 같은 시기에 방송을 시작한 CJ미디어재팬은 엔터테인먼트채널 ‘Mnet’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K-POP)의 확산을 노리고 있다. 지난달 15일 신화·동방신기 등이 출연한 개국기념 콘서트 전후로 1만 5000명이 가입했다. 민병호 본부장은 “한류 붐이 꺼지면서 팬들이 대안을 찾아 K-POP으로 눈돌리고 있는 만큼 저변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영화 수입·배급사인 SPO엔터테인먼트가 지난 3월 도쿄 미나토구에 개관한 아시아영화 전용극장 ‘시네마토 롯폰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해 4월 최지우·이병헌·권상우 등 한류스타들이 나온 영화를 위주로 ‘한류시네마페스티벌’을 개최했던 SPO는 관객 호응이 커 올해 다시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아예 전용관을 만들었다. 나카네 하루키 매니저는 “올해는 기존 한류스타에서 벗어나 작품성과 새로운 배우 위주로 작품을 선별,40∼50대 여성뿐 아니라 남성과 젊은층에도 어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류에서 한국문화로 간다 일본인들의 호기심은 한국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욘사마’로 상징되는 한류 붐은 쇠퇴하고 있으나 장르별 관심으로 분화해가고 있다. 올들어 임태경이 주연한 뮤지컬 ‘겨울연가’에 이어 조승우 주연의 ‘지킬 앤 하이드’ 등이 인기리에 공연됐다. 도쿄 ‘세타가야 문학관’은 6월 중 한국 사물놀이와 클래식, 문학 등을 접목한 공연을 한다. 배용준의 일본소속사인 IMX가 도쿄 시부야에 오픈한 ‘카페-B’. 남녀노소가 둘러앉아 한국 라면을 먹으며 곧 개봉할 한국 영화 ‘형사-듀얼리스트’ 예고편을 보고 있는 광경에서 ‘좋으면 즐긴다.’는 일본인들의 문화소비 성향을 엿볼 수 있었다. chaplin7@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4) 정동제일교회 ‘벧엘 예배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4) 정동제일교회 ‘벧엘 예배당’

    ‘한국 감리교의 어머니 교회’로 불리는 정동제일교회(서울 중구 정동34·사적 제256호). 정동제일교회의 초석이자 신자 수 150만명에 달하는 한국 감리교의 요람이 바로 ‘벧엘예배당’이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가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들을 중심으로 선교를 펴나간 ‘하나님의 집’(벧엘). 이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건물 안에는 교회사에 남을 숱한 기록들이 담겨 있다. 서울시청 건너편 덕수궁 돌담 길을 따라 걷다가 모퉁이를 돌면 정동극장과 이화여고, 시립미술관에 둘러싸인 아담한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크지 않지만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교회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게 벧엘예배당. 지금은 주변의 높은 빌딩들에 가려 왜소해 보이지만 1898년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통적인 라틴십자형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을 때만 해도 이 ‘언덕 위의 신식 건물’은 단연 장안의 명물이었다. 하나님 신앙을 상징하는 중앙의 높은 천장지붕과 양측 측랑의 삼랑식(三廊式)에, 출입구에서부터 제단까지 장방형의 긴 수평선을 갖추고 있다. 중앙의 높은 수직과 장방형 긴 수평방향의 내부공간이 유럽 전통의 고딕양식을 띠고 있지만 신랑(身廊)과 측랑(側廊) 천장높이의 큰 차이가 없는 것은 전통 고딕양식에서 탈피한 느낌이다. 삼각형의 박공 지붕형태가 고딕 교회에서 흔한 뾰족첨탑을 대신하는 게 독특하다. 기둥은 처음 지어질 땐 없었지만 증축과정에서 생겨난 것.4각 또는 원형의 석조기둥이 중앙 신랑과 양측 측랑을 구분하고 있으며 이 내부 기둥을 통해 가운데 신랑과 양쪽 측랑이 구분되어 종교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창문의 첨두아치와 격자무늬 장식창은 일반적인 고딕형태보다 단순화된 형태로, 나중에 교회창문의 모형이 됐다. 제단은 내부 전면에 4각의 형태로 외부에 약간 돌출되어 있고 내부의 반원형 아치는 전통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만들어 들여온 강단 성구는 한국 개신교 최초의 것으로 이후 모든 교회들이 같은 형태의 성구를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1885년 부활절에 한국 땅을 밟은 선교사 아펜젤러(1858∼1902)가 서울 정동구역에 일군 역사는 곳곳에 스며 있지만 이 벧엘예배당은 그중에서도 핵심. 미국 감리교 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의 책임을 부여받아 한국에 파송돼 온 선교사 아펜젤러 일행이 처음 치중했던 것은 선교가 아닌 교육사업이었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그가 처음부터 선교를 강행하기엔 무리였다. 아펜젤러를 비롯해 당시 선교를 위해 함께 한국에 들어온 일행이 고종으로부터 허락받은 것도 교육과 의료사업에 국한됐다. 그래서 1887년 시작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그같은 분위기에서 본격적인 선교에 앞서 탄생한 한국 최초의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벧엘예배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아펜젤러는 한국에 온 뒤 정동의 조선인 집을 사들여 내실 한 방을 지성소로 꾸며 첫 예배처로 삼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정동예배처’. 한국 감리교와 정동제일교회의 태동지로, 이곳에서 한국선교회가 창시됐으며 배재학당이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남녀가 한자리에 모여 예배드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남자들은 교회이자 학교인 아펜젤러의 집에서 모였고 여자는 함께 파송된 스크랜튼 여사의 집과 이화학당에서 모였다.1885년 10월11일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한 한국개신교 최초의 성찬예배가 드려졌는데 정동제일교회는 이날을 창립일로 지키고 있다. 그러나 조선인에게 전도하는 것은 여전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따라서 아펜젤러는 우선 일본 공관원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이 모임이 성장해 서울연합교회로 발전했으며 초대 담임목사로 아펜젤러가 선임됐다. 그러다가 고종이 ‘배재학당’이라는 학교명을 하사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복음선교사업도 본격화되었다. 이같은 흐름을 타고 세워진 게 바로 벧엘예배당이다. 예배당 건립비용(8048.29원, 조선인 모금액 693.03원)은 미국 선교부가 대부분 충당했고 한국의 교인들도 헌금을 했지만 극히 일부분이었다. 건립 당시의 예배당 규모는 길이 70자, 너비 40자, 높이 25자,115평. 지붕은 함석으로 꾸몄고 사방으로 유리창을 내어 자연채광을 하였다.1897년 6월 거의 완공됐을 무렵 배재학당 방학식을 먼저 치렀고, 헌당예배는 그해 12월26일 성탄절에 드렸지만 실제 건물이 완공된 것은 이듬해인 1898년 10월이었다. 2년 반에 걸친 공사 끝에 세워진 벽돌예배당은 단연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당시만 해도 검은 기와나 초가지붕에 흙으로 쌓은 집 일색이었으므로 당연히 화제가 되고도 남았다. 이 건물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이 줄을 이었다. 처음 보는 십자가 모양 예배당 형태 자체는 물론, 남쪽 귀퉁이에 솟은 종탑은 퍽 이색적인 것이었다.“교회당에 지붕을 올린 후 8개월 동안 고종황제를 비롯해 시골에서 온 농부들까지도 교회당의 구조에 대해 경이로움을 갖고 구경하러 왔다. 교인들과 외국인들도 감격에 겨워 교회당 주변을 맴돌았다.”(1897년 아펜젤러 연례보고서) 예배당이 처음 건립됐을 때만 해도 의자 없이 마룻바닥에 남녀가 따로 앉아 예배를 보았으며 남녀석 가운데에는 휘장을 쳐 남녀를 구분했다. 예배 때면 창문을 통해 예배 모습을 들여다보는 구경꾼들로 혼잡을 빚곤 했다.“주로 이화학당 학생들로 구성된 성가대와 찬송소리를 듣기 위해 주일마다 교회창문은 구경꾼들로 메워졌고 제단에 나와 남녀 교인들이 나란히 무릎꿇고 예수의 피와 살을 받아먹고 마시는 그 거룩한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정동제일교회 구십년사).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혼례도 이곳에서 열렸다. 예배당이 건립된 이듬해인 1899년 7월14일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 두쌍이 합동결혼식을 가진 것으로 이후 이른바 ‘신식결혼’‘연애결혼’이 확산되었다. 벧엘예배당을 중심으로 한 정동거리는 당시 문학예술인들의 중요 활동처. 나도향 전영택 등이 작품활동을 하며 후진을 양성했고 창조, 백조 등의 주요 문학동인지가 탄생했는가 하면 소설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일제치하 벧엘예배당을 중심으로 한 정동교회 역시 수난을 피하지 못했다. 민족대표 33인 중 감리교 대표가 9명으로 이 가운데 정동교회 교인 2명이 옥고를 치렀다. 특히 2만 5000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이 서울 중심부에 몰려들면서 정동교회 주변에 살던 신자들이 성밖으로 밀려나 예배 참석자가 사뭇 줄었고 1912년 한 해에만도 교인 54명이 상하이, 만주로 망명하거나 이민을 간 것으로 정동교회측은 밝히고 있다. 벧엘예배당은 1916년 북편을 증축한 데 이어 1926년 1500명 수용 규모로 60평을 증축하면서 원래의 라틴십자가형에서 지금의 사각형으로 변해 원형을 잃은 아쉬움이 있다. 6·25전쟁 중엔 폭격을 받아 예배당의 절반가량이 무너져 내렸으며 이때 예배당에 있던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도 부서졌다.1977년 문화재로 지정된 뒤 ‘문화재 예배당’으로 불려 왔으며 1987년 화재로 소실된 내부 보수와 1990년 종탑 보수,2001년 건물붕괴 우려에 따른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kimus@seoul.co.kr
  • ‘친한파’돼 한국 도울땐 큰 보람

    “미소가…아름다운 기, 김…미옥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사랑해요.” 지난 11일 연세대 한국어학당 422호. 일본인 하세가와 유카에(30·여)가 서투른 발음으로 카드를 읽는 동안 타이완인 짱션리(30·여)는 선생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았다. 한국어 선생님 김미옥(47·여) 교수를 위해 외국인 학생 10여명이 마련한 조촐한 ‘스승의 날’ 파티. 눈가가 붉어진 선생님이 답사를 한다.“외국에는 없는 기념일인데 여러분이 어떻게 이런 날을 알았죠? 정말 고맙고 감격스럽네요.” 김 교수가 이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것은 올해로 25년째.1982년 해외유학을 앞두고 아르바이트 삼아 일을 시작했다가 평생 직업이 됐다. 지금까지 배출한 제자가 줄잡아 2500명이 넘는다. 고국으로 돌아간 학생들 중 상당수가 아직도 명절이면 김 교수에게 선물을 보내거나 한국에 들렀을 때 방으로 들르곤 한다.“말단직원으로 저와 처음 만났던 학생들이 어느날 기업 최고경영자나 정부 고위관료가 돼서 저를 찾아왔을 때의 기쁨 아세요? 특히 이 사람들이 친한파(親韓派)로서 우리나라를 위해 애써 줄 때 큰 보람을 느끼죠.” 김 교수는 83년 한국어 강습 이태째에 만났던 미국 입양아 출신 20대 남학생 제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기는 100% 미국인이라며 한국인임을 강하게 부인했죠. 같은 반 교포학생들과도 어울리지 못했지요. 그랬던 그가 차차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며 증오심을 누그러뜨리더군요.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고나 할까. 한국사람과 결혼해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김 교수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인식과 지원부족이 아쉽다.“외국인에 대한 자국어 교육 지원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빈약합니다.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외국인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에 걸맞은 제도와 사회분위기가 정착됐으면 합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저출산 이대론 안된다] (하)해외사례 분석

    ■ 일본 “우선 자금지원”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은 지난 주말에도 아이를 적게 낳는 소자화(少子化·저출산)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등 출산율 높이기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일본에서 출산율·인구쇼크는 계속되고 있다.1989년 출산율이 1.59를 기록하자 ‘1.59쇼크’라는 용어가 등장한 뒤 2004년에는 예상 보다 빨리 출산율이 1.29로 떨어졌다. 이것이 ‘1.29쇼크’다. 이어 지난해에는 인구통계 개시 이래 처음으로 전체 인구가 2만명 정도 줄어든 인구감소쇼크가 이어졌다. 내년에는 대입정원이 지원자 수와 같아진다. 소자화의 그림자가 점차적으로 현실화되어 가는 분위기다. 최근 일본 총무성 통계에서는 조사 시작 이래 15세 미만 어린이들의 인구가 25년 연속 줄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어린이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달 현재 13.7%로 32년 연속 최저치였다. 반면 65세 이상의 고령인구는 20%를 넘었다. 인구재앙, 소자화의 재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추산에 따르면 앞으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일본인구는 2050년에는 1억 59만명으로 줄어든 뒤 2100년에는 6000만명선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따라 6세까지 의료비 무료지원, 임신중 검진비용 부담 경감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들도 출산장려대책을 내놓았지만 소자화에 제동은 걸리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육아지원 정책들을 실시해 왔지만 아이낳기 기피 현상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소자화담당 각료까지 임명, 출산율저하 방지 대책을 마련중이다. 최근 열린 일본 정부의 ‘사회보장의 존재방식에 관한 간담회’에서는 소자화가 사회보장에 미칠 영향을 지적하며 “사회보장 급부비용에서 70% 정도를 차지하는 고령자 관련 급부 중 일부를 소자화대책에 돌릴 필요가 있다.”는 요구도 있었다. 이는 소자화 재원마련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대대적인 출산장려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는 일반회계 외에 고용보험적립급 1000억엔(약 8400억원)과 도로특정재원 등 특별회계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긴급히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하지만 졸속대책이라면서 반발도 적지 않다. 현행 부양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등 소득세 감세대책을 내년 세제개편 방안에서 반영하기로 했다. 출산장려를 위해 아동수당과 별도로 0∼3세 유아에게도 수당을 지급할 방침이다. 출산을 위해 병원에 입원할 때는 당장 돈이 없더라도 입·퇴원할 수 있도록 출산·육아 지원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일단 출산한 뒤 의료보험조합에 비용을 청구하면 신생아 1명당 30만엔을 받지만 먼저 본인이 돈을 내야 하므로 저소득층에게는 큰 부담이라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산부가 현금이 없어도 부담없이 입원과 퇴원을 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는 얘기다. 이와는 별도로 인구 및 노동력 감소 대책의 하나로 일본계 페루인, 브라질인 등 외국인을 ‘가족동반’ 등 조건을 붙여 수용, 노동력난을 해결하고 있다. 또 필리핀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서는 거동불편자를 돕는 개호사와 간호사 인력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등 제한적 외국인력 도입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고민은 끝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800조엔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진 국가채무로 인한 심각한 재정난이 걸림돌이다. 실제 지난해부터 차세대육성지원대책 추진법에 근거, 각 지자체가 육아지원을 위한 ‘지방행동계획’을 마련, 이달로 시행 1년을 맞았지만 재원마련 문제로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다.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에 대한 예산지원을 전체적으로 억제하기 때문이다. taein@seoul.co.kr ■ 유럽 “육아·직장 병행”|파리 함혜리특파원|평균 출산율이 1.5명인 유럽은 다양한 출산 장려책으로 인구 감소를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럽의 출산 장려책은 여성들이 육아와 직장생활을 조화롭게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특징이다. 출산율과 관련한 많은 연구 결과 여성들이 수월하게 일할 수 있도록 유아원 확대, 보조금 등 제도를 갖출수록 출산율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성공국가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자녀보육 수당, 교육 수당, 세금감면 등 지속적인 출산장려책으로 1995년 1.71명까지 떨어졌던 출산율을 1.91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가톨릭 인구가 많은 아일랜드(1.99)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가톨릭에서는 피임을 반대하고 있다. 프랑스는 올 7월부터 셋째 아이를 낳는 여성이 육아 휴직을 할 경우 매달 750유로(약 9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획기적인 출산장려책을 실시한다. 출산율이 인구감소를 막을 수 있는 최저 출산율 2.07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에서다. 프랑스에서는 직장 근무 경력이 1년 이상인 모든 여성은 출산 전후에 6개월간 유급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둘째 아이부터는 아이가 3살이 될 때까지 무급휴가(1년씩 3회까지 연장 가능)를 받으면서 월 512.64유로(약 61만원)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새 제도는 두 아이를 가진 가정에서 셋째 아이를 갖고 싶어도 경제적 부담이 크고, 지원을 받으려면 아예 직장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고충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산모들은 짧은 기간 기존의 제도보다 50% 이상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고, 조속히 직장으로 돌아가 직장 경력 관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된다. 탁아소를 설치하는 직장도 늘고 있다. 자녀를 가진 여성들이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들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여성들이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제도를 갖춘 나라는 프랑스 외에 스웨덴과 덴마크를 꼽을 수 있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1960년대에 양성 평등의 이름으로 육아시설을 확대해 여성들이 풀타임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빌렘 아데마 연구원은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 등 일부 서유럽국가에서는 여전히 아주 어린 아기들에 대한 전일 육아제도가 확보되지 않아 어린 자녀를 가진 여성들은 육아와 직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이 부분에서 훨씬 앞서 있다.”고 말했다. 영국도 1.74명에 불과한 출산율을 높이려고 지난해 여성과 남성이 모두 장기 무급 육아휴직을 이용할 수 있도록 노동법과 가족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지금까지 영국 남성들은 15일의 유급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다. 여성들의 육아휴직기간은 6개월에서 9개월로 늘었다. 급여수준에 관계없이 주당 155유로(약 18만원)의 육아 보조금을 받는다. 아기 엄마가 6개월의 육아휴직 후 복직을 원할 경우 나머지 3개월은 아빠가 이용할 수 있도록 탄력성을 두었다. 영국 정부는 오는 2010년에는 여성 육아휴직을 1년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프랑스 다음으로 출산율이 높은 나라는 핀란드(1.80), 덴마크(1.78), 스웨덴(1.75), 영국(1.74) 등 제도가 확립된 나라들이다. 반면 독일은 1.37, 스페인은 1.2에 그친다. 스위스에서는 72%의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지만 절반이 시간제 근로를 선택한다. OECD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와 독일의 경우 고등교육을 받은 40세 여성의 40%가 자녀를 두지 않고 있다. 가족사회학자인 잔 파그나니 박사는 “여성들이 직장과 육아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면 대부분 출산을 자제하고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것을 선택한다.”며 “각국의 출산장려책은 유아원 및 탁아원 확대, 육아보조수당, 자녀 수당 등 제도를 확대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lotus@seoul.co.kr
  • [책꽂이]

    ●단테의 빛의 살인(줄리오 레오니 지음, 이현경 옮김, 황매 펴냄) ‘신곡’의 시인 단테를 탐정으로 부활시킨 이탈리아 추리소설가 줄리오 레오니의 소설. 중세시대 피렌체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연쇄살인을 파헤치는 단테의 활약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전작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은 이탈리아 ‘올해의 베스트셀러상’을 수상했다.9800원. ●뷰티풀 네임(사기사와 메구무 지음, 조양욱 옮김, 북폴리오 펴냄) 2004년 도쿄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계 일본인 작가의 유작집.1987년 열여덟의 나이로 ‘문학계 신인상’을 받으며 혜성처럼 등단한 사기사와 메구무는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세차례나 오르는 등 유미리, 이양지와 함께 대표적인 한국계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유작집에는 재일동포들이 이름 때문에 겪는 고뇌와 갈등을 다룬 ‘안경 너머로 본 세상’등 4편이 실렸다.8500원.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최숙렬 지음, 윤성옥 옮김, 다섯수레 펴냄)미국에서 전업작가로 활동중인 저자의 자전소설. 외세의 침탈, 강제징용의 아픔, 이산과 분단의 비극을 고스란히 겪어왔던 저자의 고통스런 가족사를 이야기한다.1938년 평양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월남한 저자는 이화여대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도서관협회 최우수 도서선정작.9000원. ●레바논 감정(최정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밀도높은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이란 평가를 받아온 최정례 시인이 이수문학상 수상작 ‘붉은 밭’이후 5년 만에 펴낸 네번째 시집.‘옛 애인들은 왜 죽지 않는걸까요/죽어도 왜 흐르지 않는 걸까요’(‘레바논 감정’중)처럼 기억과 시간을 통해 자아의 결핍을 치유하는 존재론을 담은 시편들을 묶었다.6000원. ●칸트의 동물원(이근화 지음, 민음사 펴냄)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 나쓰메 소세키의 산문, 릴케의 시 등 다양한 텍스트를 차용하고, 일상의 묘사에 신화와 동화적 모티프를 뒤섞는 독특한 언어구사가 인상적이다.7000원.
  • [데스크시각] 월드컵 이젠 즐길 때 됐다/김민수 체육부장

    손꼽아온 독일월드컵 본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또다시 ‘월드컵 마법’에 휩싸일 것이다. 든든히 야식을 챙겨둔 국민들은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와 탄식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또 한·일월드컵 당시와 달리 G조 토고·프랑스·스위스전이 밤 10시와 새벽 4시인 탓에 직장마다 지각과 졸음 사태로 웃지 못할 진풍경이 예상된다. 휴식시간 동료들이 저마다 토해내는 분석과 해설도 이때는 솔깃하다. 여기에 길거리 응원의 메카인 서울 광화문과 시청 앞 등 전국에서는 밤을 잊은 열성팬들이 일찌감치 터를 잡고 ‘대∼한민국’을 외쳐 후유증도 상당할 듯하다. 그러면 독일에서도 4년전처럼 온통 기쁨과 희망이 가득한 승전보가 이어질까. 유감스럽게도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소 부정적이다. 최근 300여명의 일선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00여명이 1승1무1패를 꼽았다. 또 80여명이 1승2패를 점쳐 절반 이상이 16강 진출을 어둡게 내다봤다. 전문가의 냉철한 판단으로 믿어진다. 해외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외 언론도 한국의 기량이 만만치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4년전 ‘안방’이 아니라 ‘적지’임을 강조한다. 기량과 경험은 향상됐지만 그 외의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반면 이 설문에서 우리 국민의 89%는 16강은 물론 그 이상의 성적을 낼 것으로 낙관했다. 다분히 기대감이 포함된 수치라 생각된다. 문제는 한국 축구가 기대를 저버리고 예선리그에서 허망하게 탈락했을 때다. 기대치를 감안하면 그 허탈감 또한 엄청날 것이다. 그 충격에 국민들은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한국 축구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식의 해묵은 패배의식의 부활도 우려된다. 이같은 상황에 대비해 처방을 내놓은 이가 바로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이 아닌가 싶다. 그는 꼭 4년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으면서도 선수들에게 “축구를 즐겨라.”라고 주문했다. 이는 선수뿐 아니라 팬들을 향한 메시지로도 여겨진다. 다만 히딩크는 숨막히는 승부의 세계에서 어떻게 축구를 즐길 수 있는지, 구체적인 답을 주지는 않았다. 어떻게 축구를 즐기라는 것일까. 미국의 한 저명한 야구칼럼니스트는 미국과 일본, 즉 서양과 동양의 야구를 비교해 글을 썼다. 그는 미국 야구는 ‘생활’이고 일본 야구는 ‘종교’라고 단적으로 표현했다. 미국인들은 야구를 일상 생활의 일부로 가까이서 즐기는 반면 일본인들은 승리를 위해 기도까지 올려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미국인들도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기원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박진감과 짜릿함을 만끽하는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는 않는 것 같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과정도 중시한다는 얘기도 된다. 어차피 스포츠는 항상 이길 수만은 없다는 원론적 생각에서 나온 여유로움일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잇단 감독 경질과 평가전 등 한국대표팀의 독일행 과정을 지켜봤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면 결과가 어떻든 박수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최선 여부의 판단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몫일 게다. 그렇다면 한국의 16강 진출은 비관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2002년 당시 한국의 4강을 예상한 전문가가 어디 있었던가. 당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한국은 4강 후보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16강 진출의 해법은 이미 4년전 확인됐다. 우리 선수들의 다소 부족한 부분을 수천만 국민들이 뜨거운 함성과 열정으로 메워준 것이다. 4강 신화의 주역인 홍명보 대표팀 코치는 최근 한 월드컵 응원사이트를 통해 “쉴 새 없이 경기를 뛰며 저에게 들리는 소리는 감독도, 선수의 소리도 아니며 바로 여러분의 목소리였습니다. 여러분의 힘찬 응원이라면 독일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우리 국민의 뜨거운 성원이 있는 한 한국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리란 믿음이 든다. 이젠 월드컵을 즐길 때가 됐다. 김민수 체육부장
  • 日유출 한반도 고서 5만여권 목록 집대성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으로 유출된 한국 고서 5만여권의 목록이 한 일본인 학자의 일생에 걸친 작업 끝에 집대성됐다. 일본 조선서지학 연구의 권위자인 후지모토 유키오 도야마 국립대 교수는 그 결실로 ‘일본 현존 조선본 연구’ 중 첫 권인 ‘집부’(集部·개인문집)를 지난달말 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고려말부터 조선시대 전체에 걸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네진 방대한 양의 고서를 확인, 일목요연하게 분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목록에는 고서의 저자와 판본, 각수(刻手·판목을 새긴 사람), 장서인, 종이질, 활자, 간행연도 등 서지학적인 정보가 망라돼 책의 성격과 내용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도록 했다. 후지모토 교수는 한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70년부터 궁내청 도서관과 동양문고, 국회도서관, 도쿄대, 교토대, 게이오대 도서관 등 일본 대형도서관은 물론 지방의 공·사립 도서관과 개인서고, 영국 대영박물관, 타이완 고궁박물관 등 100여곳의 도서관을 훑었다. 이번에 교토대 출판부에서 나온 첫 권인 ‘집부’(1350쪽)에는 3000여종 1만권 이상의 개인문집 목록이 수록됐다. 특히 조선전기 성리학자인 김종직의 문집인 ‘이장길집’(李長吉集) 1권 1책, 안평대군의 문집인 ‘비해당선반산정화’(匪懈堂選半山精華) 6권 2책, 조선 전기 문신 강희맹의 문집인 `사숙제집´(私淑齎集) 17권 4책,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의 문집인 ‘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 13권 13책 등 한국에는 없는 일본 유일본과 최고본, 선본(善本) 등 귀중한 문집이 다수 발굴돼 목록에 포함됐다. 후지모토 교수는 “이 작업이 조선학을 공부하는 세계 여러 나라 학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taein@seoul.co.kr
  • “일본 아직도 제국주의시대 못잊어”

    “일본 아직도 제국주의시대 못잊어”

    일본의 석학으로 꼽히는 고야스 노부쿠니(73) 오사카대 명예교수가 한국을 찾는다. 최근 독도사태로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강한 우려와 동아시아가 힘을 합해 IMF 대신 AMF를 만들자는 논의(서울신문 5월1일자 1면 보도)가 교차하는 상황에서의 방문이라 뜻깊다. 이번 방문은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윤덕홍)의 ‘석학초청강좌’의 일환으로, 고야스 교수는 15∼18일 한중연과 성균관대에서 ‘일본내셔널리즘의 비판적 독해’,‘동아시아와 한자’,‘한·일관계의 역사와 현재’,‘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를 주제로 4차례 특강을 연다. 김석근(연세대)·김경일(상명대)·윤해동(성균관대)·김기봉(경기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선다. 고야스 교수 주장의 핵심은 지금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2차세계대전 패전 뒤 일본은 제국주의를 털어내고 민주주의로 이행했다는 82년 나카소네 전 총리의 ‘전후총결산’ 선언에 일본의 정·관·학계가 암묵적으로든 공개적으로든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 비해 이례적이다. 여기에는 ‘일본만의 것’을 추구하는 국수주의적 태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이는 일본의 역사 자체가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철저히 지우는 것에서 출발한다는데서 유래한다.7세기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記)로 일본국이 성립한 이래 면면히 흐르던 이런 전통은 일본의 근대 여명기 ‘에도 시대’에 더욱 확실해진다. 중국과 한국이 일본에 끼친 영향을 탐구한 지식인들은 지워져 가고, 일본만의 것을 강조하는 지식인만 기억된다. “모든 것을 일국사(一國史)로 환원시키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이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독도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때는 아시아전쟁 대신 일본인의 희생이라는 점만, 독도분쟁은 1905년을 독도를 빼앗은 해가 아니라 러일전쟁의 승전으로만 기억하는데 따른 것이다. 그래서 고야스 교수는 지금 당장 한·중·일 협력을 말하기보다 ‘한자 문화 공동체’로서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공통점 아래 비로소 진정한 연대가 싹틀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다카사키 소지 지음

    일본의 조선지배는 군인과 경찰, 관료들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의 지배구조는 오히려 지배계층의 비호 아래 조선에 이식된 수많은 ‘풀뿌리 식민자’들을 통해 유지됐다고 할 수 있다. 개항 당시 54명에 불과했던 조선 내 일본인은 식민 지배 말기인 1942년에는 75만명을 넘어섰다. 이 숫자는 일본의 작은 부현(府縣)의 인구와 맞먹는 규모다. 요컨대 식민지는 일본 자본주의 모순의 분출구이자 생명선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다카사키 소지 지음, 이규수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은 군인에서 상인, 게이샤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다양한 군상을 통해 일제 ‘풀뿌리 식민지배’의 실상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일본 쓰다주쿠대 국제관계학 교수.1876년 조선 개항부터 1945년 일본 패전까지 일본 식민지배의 양상을 실증적으로 밝힌다. 개항 직후 조선으로 거류민을 가장 많이 보낸 지역은 전통적으로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나가사키였다. 강점 이후에는 지역적으로 조선과 가까운 야마구치나 후쿠오카를 비롯한 규슈와 주고쿠 지방이 주를 이뤘다. 식민 후기로 갈수록 관리와 경찰이 늘어나면서 도쿄 등 대도시 출신자들과 홋카이도를 비롯한 거의 모든 지방의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왔다. 이주 초기에 건너온 일본인 중에는 조선에서 한몫 잡아보려는 대륙낭인들이 많았다.1894년 7월 대원군 추대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도 오카모토 류노스케를 중심으로 한 대륙낭인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은 조선 사람들에 대해 우월의식을 갖고 있었다. 특히 면화 재배나 철도 건설, 식림사업 같은 일들은 자신들이 베푼 시혜로 여겼다. 그런 만큼 조선인에 대한 멸시와 편견은 극심했다. 한 예로 한국의 온돌에 대한 편견은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 널리 유포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18년 조선 주둔 일본군으로 복무한 나가이 요시는 “온돌제 군인들 머리로 뭘 할 수 있겠는가. 온돌방에서 잠을 자면 모두 바보가 된다고들 했다.”고 증언했다. 물론 조선의 민예를 연구한 야나기 무네요시나 아사카와 다쿠미처럼 조선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사랑한 일본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책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눈길을 끈다. 첫째는 자신들의 행동이 훌륭했다고 강변하는 부류다. 압록강수력발전주식회사 사장으로 수풍댐을 건설한 구보타 유타카, 경성제국대 교수로 대륙병참기지론을 편 스즈키 다케오, 전남 지사를 지낸 경찰 출신의 야기 노부오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 전후 대장성 재외재산조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스즈키 다케오는 “…비참한 상태에 있던 조선경제가 병합 이후 불과 30여년 사이 오늘과 같은 일대 발전을 이룩한 것은 분명 일본이 지도한 결과”라고 단언, 일본 정부가 한국과 타이완에 대해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두번째 유형은 일본으로 건너간 뒤 경성회·인천회·벌교회 같은 동향회를 만들만큼 식민지 조선을 그리워하던 부류. 그리고 세번째 유형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비판을 가하는 부류다.‘조선식민자’의 저자 무라마쓰 다케시, 소설가 고바야시 마사루, 조선사연구회 회장을 지낸 하타다 다카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자아비판파’다. 저자는 “역사를 모르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한다.”는 말로 책의 집필의도를 밝힌다. 그동안 식민정책사는 한국사의 영역으로 간주해 중요하게 다뤄왔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삶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에 대한 연구는 마치 일본사의 일부인 것처럼 여겨져온 게 사실이다. 이 책은 식민지 조선 내 일본인에 관한 국내 학계의 연구를 자극하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러·中 부자들 명화 ‘싹쓸이’

    러·中 부자들 명화 ‘싹쓸이’

    그림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미술품 감정평가기업 ‘아트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전세계 미술품 가격은 지난 4개월새 무려 16%가 뛰었다. 명화(名畵)유통 중심지인 뉴욕의 분위기는 더 심상찮다.3월말까지 팔린 작품 가운데 100만달러가 넘는 것이 117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배가 넘는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5일 러시아·중국 등 신흥시장의 경기 활성화와 중동의 오일머니에 힘입어 미술품 시장의 ‘거품’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4일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서는 파블로 피카소의 ‘도라 마르’가 9520만달러(약 895억원)에 낙찰됐다. 감정가의 두배에 가까운 액수였다. 하루 전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의 ‘마담 지누’가 4030만달러(약 379억원)에 팔렸다. 고흐 작품으로는 네번째로 비싼 가격이다. ‘거품’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은 러시아의 벼락부자들이다. 서유럽 축구팀에서 지중해 왕실별장, 초호화 요트를 닥치는 대로 사들이며 부를 과시하던 이들이 최근 미국과 유럽의 갤러리를 휩쓸며 돈 되는 작품들을 잇따라 매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약상은 4일 소더비 경매장에서도 확인됐다.‘도라 마르’의 낙찰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장의 대리인이 사용했던 언어로 미뤄 러시아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날 소더비에서는 또다른 러시아인 한 명이 모네와 샤갈의 작품 한 점씩을 포함, 모두 1억 200만달러(약 958억원)어치의 매물을 싹쓸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도라 마르’의 매도자가 시카고의 저명한 명화 수집 가문인 기드위츠가(家)란 사실에 주목한다. 명망있는 수집가들이 소장품을 내놓고 있다는 것과 ‘신출내기 졸부’들이 매입을 주도한다는 것은 거품이 정점에 달했음을 알리는 신호라는 것이다. 지금의 시장상황을 일본인들이 주도했던 1990년의 거품경기에 견주는 시각도 있다. 고흐의 ‘가셔 박사 초상’은 한 일본인에게 1억 1600만달러(약 1090억원)에 팔렸다. 하지만 몇달 뒤 거품이 꺼지면서 아직까지 당시의 가격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다시 문 연 가장 비싼 파출소

    “아저씨, 저 소매치기 당했어요. 빨리 좀 잡아 주세요. 지갑에 돈도 많이 들었는데….” 어린이날로 서울 명동일대가 발디딜 틈 없이 붐볐던 5일 오후 4시,20대 여성 두 명이 급하게 파출소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곧 이어 20여분 뒤 다른 20대 여성 두 명이 들어와 똑같은 신고를 했다. 명동 일대를 순찰하던 경찰관과 의경들에게 긴급 무전이 타전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파출소’인 명동파출소가 2년8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열고 치안 중심으로 부활했다. 명동파출소는 2003년 8월 파출소가 통폐합되면서 사라졌다가 최근 파출소를 다시 두기로 하면서 1000여일 만에 ‘신장개업’을 했다. 그동안에는 경찰이 2인1조로 대기하는 치안센터로 쓰여 왔다.●하루 유동인구 100만… 미아발생 많아 낮 12시쯤, 열 한살 초등학생이 울면서 들어왔다. 어린이날 선물을 사러 나왔다가 엄마를 잃어 버렸단다.“휴일 명동의 유동인구는 100만명이 넘습니다. 미아나 소매치기 신고가 정신없이 들어오지요.”양몽용 파출소장은 오후 4시 이후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방을 등 뒤로 멘 젊은 여성과 쇼핑에 심취한 일본인 관광객이 타깃이 된다고 했다. 관할구역은 명동과 회현동·남산동 일부. 유동인구는 엄청나지만 관내 상주인구는 2497명뿐. 파출소 직원이 26명이니 경찰 1인당 주민 100명꼴로 적은 편이다. 오전에는 이택순 경철청장이 찾아와 직원들을 격려했다. 이 청장은 “관광객이 많으니 외국어 연습 많이 하고 화장실에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병기해 글로벌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1㎡당 명동 3070만원·가거파출소 272원 파출소의 면적은 16.6평. 평당 최고 2억 5000만원(공시지가는 2005년 1월 기준 1㎡당 3070만원)인 시세를 적용하면 땅값이 41억원이 넘는다. 전국에서 가장 싼 땅에 지어진 파출소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의 가거파출소. 이곳의 공시지가는 1㎡당 272원에 불과하다. 명동파출소 1평 가격이면 가거도에서는 11만 2867평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보증금 2억에 월세 900만원 받을 자리”부동산중개업자 강해근(80)씨는 “부지의 폭이 좁고 삼각형 모양이라 건물 짓기 좋은 땅이 아니지만 위치가 좋아 적어도 보증금 2억원에 월세 900만원을 족히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명동성당에 거주하는 정진석 추기경은 파출소의 재개소를 두손 들어 반겼다.“명동파출소가 다시 문을 열어 심야나 새벽에 성당에 오는 신도와 외국인들이 한결 마음을 놓게 됐다. 명동 주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드린다.”고 특별히 경찰에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1966년에 세워진 명동파출소는 예전부터 격무 때문에 악명이 높았다. 한 직원은 “바쁜 낮 일과가 끝나면 취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야간업무가 기다리고 있지만 문화1번지를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일본인 납북 피해자 메구미 부친 15일 방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실종 당시 13살)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73)가 오는 15일부터 사흘간 한국을 방문한다고 일본인 납치자 지원단체 관계자와 가족들이 3일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 일본 정부의 DNA 검사 결과 메구미의 남편으로 알려진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씨의 가족들을 만나기로 했다. 아들 테쓰야(37)가 함께 오며, 지난달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합동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한 아내 사키에는 오지 않는다. 도쿄 연합뉴스
  • “세월 가면 독도는 우리 영토로 굳어져”

    |도쿄 이춘규특파원|독도 논문으로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 정치학자 현대송(45)씨가 이 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로 채용됐다. 지난달 교수가 된 현씨는 이 연구소에서 국제정치를 연구한다. 오는 10월학기부터는 ‘동아시아 국제관계’ 등의 강의를 맡는다.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에는 32명의 각국 정치학자들이 아시아 문화인류학과 정치학 등 동양관계학을 연구하기 위해 모여 있다. 현 교수는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 법학정치학 연구과로 진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지난 2004년 1월 ‘전후(戰後) 한·일 관계와 영토문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인 유학파로는 두번째 도쿄대 교수가 됐다. 박사학위 논문은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 대립사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애매한 전후 처리정책과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소급해 고찰했다.‘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양국의 상반된 주장과 대립이 야기한 한국인의 대일(對日)인식의 형성과 변화 등을 연구했다. 현 교수는 3일 “지난 1965년 이후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10년꼴로 분쟁의 큰 파동이 있었다.”면서 “지난해와 올해는 4번째 주기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파동을 거치면서 한국인의 뇌리에는 일본이 ‘군국주의’가 다시 도져 옛날 버릇을 못고쳤다는 식으로, 일본인의 뇌리에는 한국이 ‘국가주의적’ 성향을 지녔다는 식으로 각각 각인됐다.”고 말했다. 현 교수의 논문은 지난 1990∼2001년 발간됐던 한국과 일본 신문의 독도 보도 논조 분석 및 한국 초·중·고교생(2112명)의 대일 의식조사 등을 통해 ‘파동’이 남긴 부정적 여파를 확인했다. 한·일간의 ‘독도 대치’에 대해 현 교수는 “독도는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만큼 현명히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독도는 세월이 지나면 한국의 영토로 기정사실화되도록 돼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인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의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taein@seoul.co.kr
  • 해외반출 문화재 ‘오구라 컬렉션’ 전시된 도쿄박물관

    해외반출 문화재 ‘오구라 컬렉션’ 전시된 도쿄박물관

    일제 강점기에 남선합동전기회사 사장을 역임한 일본인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1896∼1964)가 1920∼50년대 국내에서 수집해 간 회화·조각 등 유물 1100여점을 가리키는 ‘오구라컬렉션’의 전모가 담긴 도록이 최근 국내에서 발간되면서 이 컬렉션에 다시 한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구라컬렉션을 소장한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들러 이 컬렉션의 전시 내용을 살펴봤다. 박물관 남동쪽에 있는 동양관 3층에는 한국실과 중앙아시아실이 함께 있었다. 한국실은 크게 고고·미술품 전시파트로 나뉘어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야시대 금동관, 삼국시대 반가사유상 등 일본에서도 중요문화재·미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많다는 것. 그러나 39점이나 되는 중요문화재·미술품 중 일부만 전시돼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한국실에 전시된 유물의 80% 정도가 오구라컬렉션의 기증품이었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조각부터 조선시대 백자까지 모든 시기의 유물을 총망라해 시기별, 주제별로 잘 정돈해 전시하고 있었다. 특히 고려∼조선시대에 걸친 도자기와 소규모 장식품 등은 보관 상태가 매우 양호해 문화유산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오구라컬렉션의 유물들을 관찰하면서 진열대를 따라 걷는 동안 일본인 개인의 기증품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특히 청자·백자 등 도자기와 장식품 등의 상당수는 요코가와 다미스케, 야마다 우시타로, 구도 요시로 등 개인 수집가들이 기증한 것들이었다. 결국 도쿄국립박물관 한국실에 전시된 유물의 90% 이상이 일본인 개인에 의해 기증된 것이라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등 규모가 큰 국립박물관들조차도 기증 유물이 10∼20%에 지나지 않는다. 오구라컬렉션의 높은 수준과, 기증유물로 채워져있다는 점 등은 도쿄국립박물관 한국실의 부러운 점이지만 옥에 티도 있었다. 전시실을 설명하는 패널이 부족하고 관람동선도 명시되지 않아 관람객들이 유물을 순서대로 보지 못하고 우왕좌왕해야 했다.1960년대 한·일 국교교섭에서 오구라컬렉션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한 뒤 한국실이 생겨 컬렉션이 전시돼온 이상 도쿄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이 우리 문화재를 많이 보고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글 사진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독도문제 뿌리를 보라” “외교장관 회담 갖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1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방한한 시오자키 야스히사 일본 외무성 부대신을 면담한 자리에서 독도문제에 대해 “일본은 현상만 보면 안 되며, 그 아래 깔린 뿌리를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 장관은 “일본 측이 독도 문제의 배경에 있는 역사적 연원을 간과하고 있다.”면서 “한·일 양국간에 국교 정상화가 된 지 수십년이 됐는데도 과거문제들이 되풀이되고 있는 점이 안타깝지만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시오자키 부대신은 “일본측으로서도 24일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담화와 관련해 한국민의 심정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도 “독도문제에 관한 한 일본의 입장은 일관돼 있으며 따라서 한·일 양국이 서로 냉정하게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23∼24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협력대화(ACD)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하면 좋은 의사소통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반 장관은 “외교장관 회담은 향후 상황을 봐가면서 결정하겠다.”면서 “일단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시오자키 부대신은 납북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 사건과 관련해 한·일 양국간 공통의 현안인 만큼 서로 잘 협력하자고 제안했으며, 반 장관은 DNA 검사 결과가 나오면 일본측에 통보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의 독도 도발에 ‘조용한 외교’를 접고 강경한 대응으로 선회한 배경에는 ‘망각의 두려움’이 크게 자리했다.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은 1일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핵심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청산이다’란 제목의 글에서 노 대통령이 최근 참모들에게 밝힌 독도 문제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소개했다. 노 대통령은 “역사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망각”이라면서 “혹자는 일본의 사소한 행위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당당한 대응을 선택한 이유는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망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지난날의 잘못을 잊어버린 사람은 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 있다.”면서 “애써 모른 척하는 것이라면 더욱 두려운 일이고, 정말 모른다면 그것도 두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망각에 대한 두려움’을 비단 일본에만 국한하지 않고 “우리의 망각도 두렵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가 치욕을 당한 이유를 잊어버릴까 두려운 것”이라면서 “독도를 강탈당한, 아니 주권을 강탈당한 그 이유를 망각해 대비를 잘못하는 일이 있을까가 두렵다.”고 말했다. 박정현·박홍기기자 jhpark@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 대웅전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 대웅전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서울 종로구 견지동 45번지) 대웅전. 일제치하 불교 총본산으로 세워져 지금은 조계종 직할교구본사 본당의 위상을 갖는 건물이다. 조선시대 억불숭유책에 따라 막혀 있던 승려의 도성출입이 허용되면서 불교계의 중지를 모아 건립된 불당으로, 단일 목조건물론 국내 최대 규모. 조선후기 전통사찰 불전과 궁궐 양식이 혼합된 대웅전에는 일제에 시달렸던 우리 민족의 한과 암울했던 시절 불교중흥을 위한 불교계의 염원이 함께 서려 있다. ‘4방에 계단을 둔 단층 석조 기단위 정면 7칸, 측면 4칸의 평면에 외부 22개의 평주, 내부 12개의 고주를 세워 다포계 단층 팔작지붕을 얹은 155.7평 규모의 남향 불전.’ 조계사 대웅전 앞에 서면 법당은 물론, 기단과 공포(拱包, 처마 끝을 받치는 기둥머리에 맞추어댄 나무쪽)의 크기에 압도당한다. 조선후기 불교 건축양식에 충실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며 조선왕조의 궁전보다 더 장대하고 화려한 외양을 갖추고 있다. 우선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기단. 높이가 160㎝에 이르는 단층 석조인데 경복궁 근정전을 포함해 어느 궁전의 기단보다도 높다. 다음은 공포. 외부 5출목, 내부 7출목으로 짠 다포계로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덕수궁 중화전 등 당시 가장 규모가 컸던 궁전보다 안팎으로 2출목씩이나 더 많을 만큼 장중하다. 대웅전 천장 높이는 자그마치 8.5m. 대웅전 디자인을 비롯해 곳곳에 스며있는 궁궐 양식도 눈길을 끈다. 외벽 큰 기둥을 받친 장초석은 경복궁 집옥재(1873년)의 것과 비슷하며 기단 전면에 일렬로 배치한 석조 동물상 중 해태상도 궁정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이다. 불전에 궁궐양식을 쓴 것은 당시 불교계가 얼마만큼 이 건물을 중시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대웅전 건립을 맡았던 도편수와 부편수는 모두 궁궐 재건공사를 지휘했던 인물들이다. 특히 도편수 최원식은 1920년대 창덕궁 대조전 재건 공사를 총지휘한 도편수로 대웅전 건립을 위해 경복궁과 덕수궁을 여러 차례 시찰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당시 설계 담당이며 관리직들은 모두 이왕직(李王職) 영선과 소속 일본인으로 돼 있었으나 사실상 대웅전 건립은 모두 한국인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불상을 모신 불단도 폭 14.57m, 높이 2.3m의 초대형. 지난 2004년부터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하면서 강원도 홍송으로 교체했다. 불단 크기에 비해 불상은 왜소한 편. 불전 건립때 도갑사의 것을 개금해 모신 것인데 오는 10월쯤 대웅전 동편에 들어서는 영산전으로 옮겨지며 대신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여래불 등 17자 크기의 대형 삼존불이 봉안된다. 석가불좌상 뒤편, 즉 후불벽에는 1978년 새로 봉안된 천불도와 목각탱이 걸려 있다. 대웅전 정면은 전혀 벽이 없이 모두 장엄한 꽃판문과 꽃판창으로 처리했는데 벽 안쪽에는 천부중·신중, 바깥쪽에는 최근에 그려진 불전도가 장엄되어 있다. 바닥은 원래 다다미가 깔려 있었으나 최근 불단과 함께 강원도 홍송으로 바꿨다. 그런데 조계사의 원래 이름이 ‘태고사’였고 대웅전도 증산도 원류인 민족종교 보천교의 본당인 ‘십일전(十一殿)’을 옮겨지은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먼저 태고사는 일제하에서 한국불교를 지켜내려는 당시 불교계의 눈물겨운 노력이 담긴 이름. 일제의 민족말살책에서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가 불교계를 통제하려는 사찰령을 시행한 데 이어 본격적으로 칼을 들이댄 게 바로 총본산 건립이다. 식민지 시절인 만큼 불교계의 통일기관인 총본산 설치에 총독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터이지만 나름대로 한국불교의 맥을 지키기 위해 불교계가 뭉쳤다.1935년 8월 전국 31본산주지회의 이후 ‘조선불교선교양종종무원’이란 대표기관을 설치한 데 이어 한국불교 1번지의 위상을 갖는 사찰을 세운다는 원칙아래 인근 각황사 교당 개축에 뜻을 모은 것이다. 각황사는 지금의 조계사 옆 수송공원에 있던 한국 최초의 불교 포교당. 이 각황사를 헐어 지금 조계사 자리로 이전한다는 것이었는데 새로 대웅전을 건립하고도 그 명칭을 확정짓지 못하다가 고심끝에 한국불교의 법통을 태고 보우에서 찾는다는 뜻에서 삼각산(현 북한산)의 태고사로 정해 총독부에 신청한 것이다. 태고사는 전국승려대회 이후 소유권 다툼이 법정으로 비화한 끝에 1975년 6월에야 명칭이 조계사로 변경되었다. 그러면 왜 하필 보천교 십일전을 옮겨왔을까. 아무래도 당시 신도가 12만명에 불과했던 불교계 형편상 기존 건물을 옮겨짓는 것이 비용절감에 긴요했고 무엇보다 보천교가 일제에 강하게 맞서 일제에게도 위협적인 종교란 점에 착안했던 것 같다. 조계사 대웅전은 단순히 불교의 한 가람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천교는 한때 신도가 200만명에 달할 정도로 교세가 컸다.1928년 당시 전북 정읍의 보천교 본소는 2만평 부지에 지금의 조계사 대웅전, 내장사 대웅전 같은 건축물이 45채나 들어섰을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특히 십일전은 일제가 남산에 설치한 조선신궁(神社)에 대응해 지은 건물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주 차경석이 사망한 뒤 일제는 대대적인 보천교 말살에 나서 결국 십일전을 강제로 헐값(1만 2000원, 당시 쌀 한 가마 값은 5원30전)에 사들였는데 불교계가 이것을 매입해 옮긴 것이다. 대웅전 기둥과 대들보는 십일전의 것을 그대로 옮겨 세웠으며 형태도 사실상 십일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계사 대웅전이 낙성된 것은 1938년 10월25일. 건립엔 총 17만원이 소요됐으며 기술자는 목공 7000명, 와공(瓦工) 200명을 포함해 6500명, 인부는 6만 5000명이 동원됐다. 당시 만해 한용운은 ‘총본산건설의 재인식’(1938년 ‘불교’ 신제17집)이란 글에서 대웅전의 규모를 말하면서 “만일 이 건물을 신축하자면 최소한도 100만원은 초과치 아니하면 안 되겠다고 하니 얼마나 훌륭한 집인가.”라고 적고 있다. 그야말로 19∼20세기를 통틀어 한국 최대의 건축불사(佛事)였던 셈이다. 조계사는 지난 2004년부터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하면서 “전통사찰 양식에 충실한다.”는 원칙을 세워 기둥과 지붕 등 기본 골격과 구조물은 변형하지 않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많은 부분이 바뀌어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고 있다. 우선 천장을 민반자로 완전히 바꾸면서 천장에 있던 그림들이 모두 철거됐고 자개 장식의 불단도 완전히 바뀌었는가 하면 새로 봉안될 3존불 위에 전통양식의 닫집을 설치하면서 기존의 장식이 모두 없어져 버렸다. 이강근(48) 경주대 교수(미술사학)는 “전통사찰 양식도 중요하지만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 문화재의 구조물들을 교체하는 것은 역사인식의 결여를 보여주는 큰 오류”라고 말한다. 이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시작으로 4년 안에 조계사에는 종각과 보제루·영산전이 새로 들어서 환골탈태하게 된다. 경내에 있는 여관 현대장도 헐려 그 자리에 24시간 개방형 시민선방이 세워진다. 조계사 주지 원담(48) 스님은 “조계사는 서울 중심에 위치한 대표적인 신중도량으로 한국불교의 견인차 역할을 계속 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불교 1번지의 위상에 맞지 않게 사찰 형태가 초라하고 급하게 지은 대웅전도 전통 사찰양식에서 비켜난 부분이 많아 해체보수를 통해 한국불교 고유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imus@seoul.co.kr
  • [농업 희망을 쏜다] (4) 희비 엇갈린 일본과 타이완

    [농업 희망을 쏜다] (4) 희비 엇갈린 일본과 타이완

    미국산 칼로스 쌀이 시장에서 반품되는 등 국내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6일 실시된 3차 공매에선 한톨의 쌀도 낙찰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며 안도의 숨을 쉬었겠지만 국산 쌀값의 ‘동반하락’과 ‘재고처리’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 꼭 좋아만 할 상황은 아니다. 1999년과 2003년, 밥쌀용 수입쌀을 개방한 일본과 타이완에선 서로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됐다. 일본에선 수입쌀이 ‘냉대’를 받아 가격이 일본쌀의 50∼75%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타이완의 경우 고급쌀과 중저가 시장에서 수입쌀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왜 이같은 차이가 생길까. 일본인이 타이완 사람보다 자국 농산물을 아끼는 애국심이 더 강해서일까. 아니면 나라마다 입맛이 달라서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은 정부와 농민, 소비자들이 개방을 준비했지만 타이완은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우리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준비된 일본, 서두른 타이완 일본은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의 결과로 6년간 쌀 관세화를 유예받았다. 대신 관세없이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물량(MMA)을 86∼88년 일본내 소비량의 4∼8%로 정했다. 일본은 처음부터 수입쌀의 일부를 밥쌀용으로 풀었다. 개방에 앞서 일본쌀과 수입쌀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보겠다는 생각에서다. 우리도 당시 10년간 관세화를 유예받았지만 수입쌀을 밥쌀용으로 풀지 않고 가공용으로만 썼다. 수입쌀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형편없다.”이다. 농업문제를 연구하는 민간연구소 GS&J의 이정환 이사장은 “일본은 개방 이전부터 품질개량과 농산물 안정성에 신경을 써 소비자들의 신뢰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수입쌀이 싸더라도 안팔릴 것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는 것. 당연히 수입쌀 가격은 하락해 10㎏짜리 미국산 중립종은 현재 2700엔(2만 2140원)으로 일본에서 가장 싼 북해도산의 3600엔에도 못 미친다. 가장 비싼 니가타현의 쌀 5340엔에는 절반 수준이다. 가격이 싸지만 인기가 없자 일본 정부는 4년만에 관세화로 전환하면서 쌀시장을 완전개방했다. 반면 타이완은 품질개선을 통해 고급쌀을 내놓을 시간이 없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치중하느라 관세유예화 기간을 1년밖에 받지 못했다. 의무수입물량도 8%에서 출발했다. 경쟁력을 높이지 못한 상태에서 수입쌀이 들어오자 타이완 쌀값은 폭락했고 농민들은 ‘패닉(공황)’에 빠졌다. 타이완 정부가 지지가격을 설정, 전량수매에 나섰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희비 엇갈린 수입쌀 관리방식 일본과 타이완은 쌀시장을 개방했지만 고관세(높은 관세율)를 유지했다. 일본은 1000%를 넘고 타이완은 560%에 이른다. 때문에 높은 관세를 물고 들어오는 수입쌀은 거의 없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세가 완전히 철폐되기 이전까지 두나라는 수입의무물량만 잘 관리하면 자국의 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일본은 연간 의무수입물량 76만 7000t 가운데 국영무역으로 들어오는 66만 7000t을 가공용과 사료용, 원조용에 제한했다. 식당 등 외식업체에는 풀지 못하게 했다. 밥쌀용으로 10만t을 할당했지만 연간 소비량의 1.1%에 불과하다. 수입쌀을 언제까지 팔아야 한다는 시한도 정하지 않아 수급을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타이완은 연간 의무수입물량 14만 4720t 가운데 35%를 밥쌀용으로 정했다. 국내 소비량의 4.41%에 해당된다. 또한 일정기간 이내에 수입쌀을 팔도록 해 수확기와 관계없이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영무역으로 들어오는 나머지 수입쌀들도 학교급식용 등으로 배정, 타이완쌀의 입지를 크게 좁혔다. ●승패는 소비자들의 선택에 농촌경제연구원 박동규 박사는 “일본의 소비자들은 국산 농산물을 차별적으로 선호하는 ‘홈마켓 바이어스’가 유달리 강하다.”면서 “국내 농산물에 대한 불만이 거의 없고 정부와 농가가 지속적으로 추진한 쌀 브랜드화 전략도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는 일본의 수입 농산물 안정성 검사가 철저하고 정부가 농산물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지 않아 품질개선 등으로 수입쌀에 대한 ‘내성’을 스스로 키웠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인들은 쌀을 국에 말거나 비벼먹지 않아 쌀 자체의 맛이 소비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수입쌀은 유통기간이 길어 밥맛이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처음부터 경쟁상대가 되기 어려웠다. 타이완은 시장을 개방하기 직전까지 수매제도를 통해 정부가 쌀 가격을 지지했다. 생산하는 물량을 정부가 책임지고 유통마저 관리하다보니 품질개선은 뒷전이었고 경쟁력은 약해졌다. 그런 상태에서 관세화로, 그것도 1년만에 전격 개방되다보니 타이완 쌀시장은 둘로 쪼개졌다. 일본과 미국산 쌀은 고품질 시장을, 중국과 태국·이집트 쌀은 중저가·저품질 시장을 파고들었다. 타이완 쌀은 고관세에만 의지, 사실상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농림부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타결돼 관세가 낮춰지면 타이완 시장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도 타격을 받겠지만 관세감축 등에 대비, 비용절감으로 쌀값을 낮추면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이미 강구하고 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日, 품질 지속개선… 국민입맛 잡아” |도쿄 이춘규특파원|주일 한국대사관 김홍우 농무관은 “일본은 쌀시장을 개방했지만 그 영향은 미미하고 최근에는 중국과 타이완, 싱가포르 등지로 일본의 고급브랜드 쌀을 역수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99년 4월 수입쌀이 들어온지 7년이 지났는데 영향은 어떠한가. -수입쌀 1㎏당 341엔(약 2800원)씩 부과하는 관세 때문에 의무수입물량 이외의 외국쌀은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다.2003년 수입 쌀값은 1㎏ 기준으로 태국산 209엔, 미국산 226엔, 호주산 231엔, 중국산 255엔 등이다. 여기에 관세를 부과하면 ㎏당 322∼644엔 하는 일본쌀과 경쟁이 안된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일본쌀을 좋아해 영향은 미미하다. ▶일본인들은 왜 자국쌀을 선호하나. -한마디로 품질이 좋다.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도 영향이 있다. 학교급식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학부모의 몫이지만 지자체 등의 지원으로 일본쌀을 공급, 어려서부터 일본쌀에 입맛이 들었다. ▶의무수입물량은 어떻게 처리되나. -95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총 678만t이 들어왔다. 밥쌀용은 10%도 안되는 64만t 뿐이다. 가공용 240만t, 원조용 204만t으로 쓰였고, 재고가 170만t이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수입쌀 방어뿐 아니라 공세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상하이 등 중국 연안과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등지에 고급쌀 이미지를 활용, 상류층을 겨냥한 수출을 촉진하고 있다.(우리나라는 일본쌀 수입이 원천규제돼 있다). ▶우리 쌀시장에 주는 시사점은. -우리 농가는 쌀에 대한 의존도가 일본보다 월등히 높다. 다양한 수입원 개발이 필요하고 학교급식 등으로 우리쌀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일본은 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농업비중이 15% 미만이다. 서비스업 시간제 근무, 공장근무 등 겸업수입 비중이 높다. taein@seoul.co.kr ■ “타이완, 쌀개방후 생산조정제 시행” 타이완 정부는 쌀 시장 개방에 따른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경지면적을 줄이는 생산조정제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다음은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장자샹(江嘉祥) 비서관과의 일문일답이다. ▶수입쌀 시판에 따른 영향은. -2002년 1월 1일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쌀 수입을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과거 쌀 산업의 생산구조를 변화시키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를 취했으나 개방을 앞두고 국내 가격이 영향을 받았다. 특히 가격이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쌀 상인들이 쌀을 비축하지 않아 시장에서 쌀 유통이 크게 늘었다. 그래서 쌀값이 크게 충격을 받았다. ▶시장안정을 위해 어떤 정책을 취하고 있나. -생산조정제를 시행하고 있다. 농가와 협의해 경작 면적을 줄이고 쌀 생산량과 판매량을 예고해 시장에 경보를 주는 제도이다. 농민들로부터 쌀을 사들이는 수매업무도 강화하고 있으며 생산량을 소화하기 위해 연이율 2.5%로 농민회와 쌀 상인들에게 쌀매입 자금을 대여하고 있다. ▶품질개선에 대한 노력은. -쌀 등급제와 품질 인증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식품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타이완 쌀을 팔기 위해 국내외 전시회 참가를 적극 돕고 있다. ▶개방에 앞서 관세화 유예기간을 1년으로 정한 것은 수입쌀 준비에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타결되면 쌀 수입이 더 늘지 않겠는가. -농민들이 정부의 휴경제도에 따르지 않으면 과잉생산으로 쌀 가격이 떨어져 농사짓는 사람들의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고 있다. 수급에 따라 생산량을 조정해야겠지만 결국은 품질개선과 경쟁력 제고가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사설] 납북 고교생 송환 적극 나서라

    일본인 납북자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으로 알려진 김영남씨 등 1977∼78년 납북된 고교생 5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이 그제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이들이 최근까지 남파 간첩 교육을 담당하는 ‘이남화(以南化) 공작 교관’으로 활동한 사실을 확인해줬다는 것이다. 납북 고교생들은 모두 해수욕장에서 졸지에 피랍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식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30여년의 긴 세월을 참고 기다려야 했던 부모와 가족들의 회한과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정부는 이들의 송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본다. 때마침 미 하원 청문회에 참석한 메구미의 어머니 사키에씨가 자식과 생이별한 부모의 애끓는 마음을 눈물로 증언했다. 납북 고교생들의 부모 마음도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사실을 벌써 알고 있었음에도, 지난 24일 끝난 18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이 문제를 공식 제기하지 않았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정부 입장도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이 문제만큼은 우리가 분명한 원칙과 해법을 공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납북 고교생 가족들도 이제부터는 공개적인 일처리를 당부했는데 비슷한 맥락이라 하겠다. 또한 대북 지원을 통한 반대급부 형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납북된 사람이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일본 납북자구조연합측은 전세계 12개국에서 최소 523명이 북한에 의해 납치됐다고 주장했다. 이 중 한국인이 485명으로 가장 많다는 것이다. 납북자 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더이상 사면초가에 몰리지 않으려면 납북자들의 송환에 최대한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 [Book & Life] 일본 ‘지옥철’속의 독서 열기

    24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의 신주쿠 지하철역. 승강장에 서있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지하철은 오지 않았다. 잠시 후 지하철에 문제가 발생했다며 다른 차량을 타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순간 주변 사람들을 살펴봤다. 동요하거나 짜증을 내는 기색의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손에 한권씩 들고 있는 책에 빠져 열심히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지하철을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평온하기까지 했다. 지난 23∼27일 일본 출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우리나라 지하철보다 훨씬 더 혼잡한 ‘지옥철’을 타고 다니는 일본 사람들의 독서문화였다. 복잡한 지하철 노선에다가, 엄청난 인파에 떠밀려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물론, 서있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자세를 하고 책을 읽고 있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일본인들이 지하철에서 읽는 책은 다양했다. 만화책부터 잡지, 소설책 등….‘만화 강국’답게 만화 단행본을 읽는 성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일본에는 성인에게도 유익하고 교훈적인 만화책이 많다.”는 것이 출장에 동행한 지인의 귀띔이다. 최근 일본에서 영화로 개봉된 ‘다빈치코드’ 등 베스트셀러는 물론, 다양한 정보를 담은 시사잡지 등도 일본 지하철 출·퇴근길과 함께 하는 좋은 친구였다. 옆자리에 서있는 중년 신사의 손에는 타블로이드판 신문이 들려 있었다. 혹시 무가지인가 싶어 물었더니 1000엔(8000원)이나 하는 월간 시사잡지라고 했다. 깊이 있는 내용이 많아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 한달 내내 읽는다고 덧붙였다. 순간 우리나라 지하철을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무가지들이 생각났다. 연예인 등 가십성 뉴스로 가득한 무가지들이 우리나라 지하철 출·퇴근길에 끼어든 지 수년째.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려고 해도 무가지에 먼저 눈길이 가는 현실에서, 우리나라에는 과연 바람직한 지하철 독서문화가 존재하는 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독서의 힘’은 대단하다고 했던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하루 몇 페이지라도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으려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소리 없이 10년 장기불황을 극복한 그들의 저력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美, 탈북문제로 北인권 공세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이 탈북자 문제를 앞세워 북한 인권에 대한 파상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28일 백악관에서 지난 2002년 탈북한 김한미(7)양 가족과 자유북한방송의 김성민 국장, 탈북자를 다룬 뮤지컬 ‘요덕 스토리’의 정성산 감독 등을 면담했다.지난 1977년 납북됐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의 가족과 가토 료조 주미 일본대사, 일본의 납치 피해자 단체 관계자, 제이 레프코위츠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및 미측 북한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함께 참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깊은 관심과 우려를 표시하면서 국제사회가 이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공화당의 크리스토퍼 스미스 하원의원은 27일 기자들과 만나 “부시 대통령에게 올해 열리는 G8 정상회의에서 납북·탈북자 문제를 주요 이슈로 다루도록 권고하는 서한을 보낼 방침”이라고 말했다. 레프코위츠 특사는 27일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의 탈북 및 납북자 관련 청문회에서 “미국의 탈북자 수용이 임박했다.”면서 “곧 몇몇 탈북자를 미국에서 맞이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민주당의 다이앤 왓슨 의원은 “미국 망명을 요구하는 탈북자 10여명이 미국에 있으며 이들 중 많은 수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다.”고 말했다.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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